목사와 복음 교역자에게 보내는 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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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 1892.7.3.

나는 말씀을 전파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자 한다. “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에게 비취어 깨닫게 하나이다”(시 119:130). 그대가 진리 안에서 교육을 받고, 훈련을 받고, 뿌리를 박고 세움을 입게 되도록, 그대의 유익을 위해 증가시킬 수 있는 모든 이점과 특권들은 그대가 마음과 심령의 문을 열어 진리를 받아들이고, 예수님께 문을 닫았던 모든 습관과 행습, 모든 죄를 의식적으로 굴복시키지 않는다면 그대에게 개인적인 유익을 전혀 끼치지 못한다. 그리스도의 빛이 영혼의 어두운 구석 모든 곳에 비치게 하라. 굳센 결심으로 바른길을 택하라. 현재 그대들 중에 많은 사람이 그러한 것처럼 그릇된 길에 집착하면, 그대가 그 순결한 원칙을 사랑하기 때문에 진심으로 진리에 순종하도록 그대 속에서 진리가 변화시키는 능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그대에 대하여 진리는 그 활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며 죄가 강화될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위해 효과적인 일꾼이 되지 못하는 이유이다. 그들은 자신을 즐겁게 하고 자신에게 영광을 돌릴 것을 끊임없이 마련해 내거나, 마음속에 정욕을 품고 있다. 진실로 그들은 십계명에 동의하며, 많은 사람이 이론적으로 율법을 가르치지만, 그들은 그 원칙들을 간직하고 있지 않다. 그들은 순결하고,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는다. 기만적인 삶을 계속해서 살고 있으면서, 그들이 어떻게 능력과 확신을 가질 수 있겠으며, 또한 그런 인물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위한 능력 있는 일꾼이 될 수 있겠는가?

160 구주께서는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라고 그분의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셨다. 그러나 성경 지식을 받는 이들이 진리의 빛에 응하여 자기 습관과 행습을 전혀 바꾸지 않는다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영은 육을 거스려 싸우고 육은 영을 거스려 싸우고 있다. 둘 중 하나가 정복자가 되어야 한다. 만일 진리가 영혼을 성화시킨다면, 죄는 미움을 받고 회피될 것인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존귀하신 손님으로 영접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분열된 심령에 관여하실 수 없다. 예수께서는 죄와 결코 사귈 수 없다. 진심으로 진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아들의 살을 먹고 그 피를 마시는 자들은 영생을 소유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고 말씀하셨다. 진리를 받아들인 자들이 성령과 협력할 때, 그는 기별을 짊어지고 영혼들에게로 향할 것이다. 그는 결코 단순한 설교 제조가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는 위대한 사업에 심령과 영혼을 쏟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종교를 실천함으로 그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선한 사업을 성취할 것이다.

하나님께 묶인 바 됨

모든 신자는 빛의 통로 역할을 하며 영적인 일에 마음을 씀으로 자기 빛을 세상에 비출 의무를 하나님께 대하여 지고 있다. 신성한 목회 사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은혜 안에서, 그리고 우리 주님 구주를 아는 일에서 자라나게 될 때, 그들은 죄와 모든 이기심을 미워하게 될 것이다. 도덕적인 쇄신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그들이 끊임없이 예수님을 바라볼 때, 그들은 그분의 형상을 닮게 될 것이며, 스스로의 의가 아닌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 안에 있는 의를 소유함으로 그분 안에서 온전해진다.

목회자 수양회*의 커다른 유익점이 절반도 이해되고 있지 않다. 161 그것들은 많은 기회를 제공하지만, 절반의 성과밖에 거두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거기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그들 앞에 명백하게 제시된 진리를 실천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에게 성경을 설명하는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지배하심에 의식적으로, 그리고 전적으로 마음과 심령과 생애를 굴복시키지 않고 있다. 그들은 죄를 사랑하며, 그것에 집착한다. 나는 불결한 행습, 교만, 이기심, 자기에게 영광 돌리는 태도 등을 통해서 진리를 다른 이들에게 가르치는 이들의 마음의 문조차 닫혀졌으며, 그리하여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이 그들 위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았다. 혁신시키는 또 다른 능력이 그들을 사로잡을 수 없단 말인가? 그들은 고침 받기를 거절함으로 불치의 도덕적 질병에 걸렸는가? 오, 말씀과 교리의 봉사를 하는 모든 사람들이 바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이들을 볼 때에 내 마음은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 그들은 학식이나 웅변보다도 훨씬 가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잠 9:10)다. 그리고 그분의 사랑과 경외는 인간 매개자들을 하나님께로 연합시키는 금실과 같다. 그리하여 인생의 모든 활동이 단순화된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유혹과 더불어 싸우고, 육적인 마음의 정욕들로 더불어 싸울 때, 믿음은 도와주실 수 있는 유일의 분께 그 영혼을 연결시켜 주어 그는 정복자가 된다.

큰 빛을 받은 이들의 마음속에 주님께서 역사하심으로 그들이 모든 죄악으로부터 떠나게 되기를 바란다. 갈바리의 십자가를 쳐다보라. 그 곳에 예수께서 계시는데, 그분은 자신의 생명을 주셨으니 이는 인간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죄를 짓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을 범할 수 있는 자격증을 그들에게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무한하신 희생을 통하여 그들이 모든 죄로부터 구원받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162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완전하신 모본을 통해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19)라고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파하는 이들이 진리로 거룩함을 입으려고 하는가? 그들이 마음과 정신과 혼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고, 그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고자 하는가? 그들이 그리스도인 품성의 지극히 높은 표준에 도달할 것인가? 그들의 취향은 고상하고, 그들의 욕망은 통제되고 있는가? 그들은 참으로 하나님의 조력자가 되기 위해 고상한 감정, 굳건하고 깊은 동정심, 순결한 목적을 간직하고 있는가? 우리는 환난 때에 우리를 붙들어 주시도록 성령을 모시고 있어야 한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2).

더욱 깊은 연구를 위해 참고할 서적: 복음 교역자, 273.284.285.288(영문).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필요함*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 1892.7.3.

우리는 교회 안에 이토록 능력이 없고, 우리 교사들이 이토록 힘이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관해 질문을 받고 있다. 그것은 다양한 형태의 알려진 죄가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이들 속에 간직되어 있으며, 오랫동안의 범죄로 양심이 굳어졌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사람들이 주님과 동행하지 않으며 동료들을 예수께로부터 분리시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 결과로 이기심, 탐심, 자만심, 분쟁, 다툼, 무정한 마음, 음란과 악습이 교회 안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본다. 163 하나님의 신성한 말씀을 전파하는 이들 속에서조차도 이런 악한 상태를 발견할 수 있다. 거룩하지 못하고 성화되지 않은 이들 사이에 철저한 개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러한 인물들은 목회직을 그만 두고 다른 어떤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낫겠다. 그 곳에서라면 그들의 성화되지 않은 생각들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재앙을 가져오지 않을 것이다.

기다리며 깨어 있음

사도는 형제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한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엡 6:10.11.13). 오, 우리 앞에 무시무시한 날이 기다리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주장하는 이들 사이에 얼마나 두려운 체질이 있을 것인지! 불의한 자가 의로운 자 중에서 발견될 것이다. 큰 빛을 받았으면서도 그 빛을 따라 살지 않았던 이들이 그들이 멸시한 빛에 상당하는 어두움 속에 빠질 것이다. 우리는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 9:27)고 한 바울의 말 속에 담긴 교훈에 유의해야 한다. 원수는 배도의 대열에 누구를 더 가담시킬 수 있을지 살펴보기 위해 부지런히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주님은 곧 오실 것이며, 멀지 않아 각 사람의 운명이 영원히 결정될 것이다. 자신에게 은혜로 주어진 빛을 따라 활동하는 이들은 주님 편에 계수될 것이다.

우리는 이 땅의 역사를 종결짓는 엄청나고 두려운 장면을 기다리며 주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 엄숙한 사건과 관련해서 방심하지 말고 일해야 한다. 하나님의 살아 있는 교회는 기다리며, 주시하며, 일할 것이다. 아무도 중립적인 입장에 설 수 없다. 모든 사람은 멸망해 가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열렬하게 노력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대표해야 한다. 164 교회가 지금 팔짱을 끼고 있어야 하겠는가? 미련한 처녀의 비유 속에 나타난 것처럼 교회가 잠을 자야 하겠는가? 모든 예방책은 지금 강구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되는 대로 하는 일은 영적 침체를 야기시킬 것이며, 그날이 도적처럼 우리에게 닥쳐올 것이기 때문이다. 지성은 강화되어 우리가 믿는 것에 대한 이유들을 깊이 살펴보고 식별할 수 있어야 한다. 영혼의 성전은 진리로 정결하게 되어야 하는데, 이는 청결한 심령을 가진 사람만이 사단의 간계를 대항하여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과 우리의 관계

우리는 세상의 행습을 그대로 모방해서는 안 되며, 그렇다고 해서 세상 사람들과 동떨어지게 지내서도 안 된다. 우리의 빛이 땅을 뒤덮고 있는 도덕적 흑암 속에 빛을 비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서로를 향한 그리스도인적 사랑이 교회 안에 부족하다. 이 사랑은 쉽게 사라졌다. 그런데 이것이 없이 우리는 그리스도인 교제를 누릴 수 없으며, 또한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이들을 사랑할 수 없다.

우리 형제들은 다음의 권면을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딤후 2:24-26). 우리는 세상과 교회 안에서 비뚤어진 요소들을 직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큰 빛을 가졌노라고 주장하며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업에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이 빛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큰 흑암인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지시된 대로 취급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오류 속에 빠진 이들이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느라고 흥분할 수 있을 것이나, 빛 속에서 행하는 이들은 잘못된 이들을 침착하고 온유하게 대할 수 있다. 165 그들은 “가르치기를 잘하며”, 하나님께 간구하여 그분께로부터 지혜를 받았다는 사실을 나타낼 것이다. 그들은 흥분적으로 움직일 어떤 기회도 갖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슬기와 인내를 갖고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딤후 2:25.기회를 얻을 것이다.

진리 속에 뿌리를 내리고 터를 잡고 있는 이들이 자신의 굳건함과 결정을 나타내고, 무지하고 흔들리는 이들의 궤변과 속담과 우화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낼 시간이 이르러 왔다. 근거도 없이 사람들은 진리라고 강변(强辯)하는 진술들을 할 것이나 그들의 그럴 듯한 주장에 대해 그들과 변론하는 것은 전혀 쓸모 없는 일이다. 오류에 대처하는 최선책은 진리를 제시하는 것이며, 터무니없는 주장들에 관심을 보이지 않음으로 그것이 사그러 들도록 하는 것이다. 진리와는 대조적으로 오류의 취약점은 모든 지성적인 사람들에게 분명히 드러난다. 반대자들과 우리 중에서 일어나 영혼들을 기만하는 이들의 오류를 주장하는 일이 반복될수록, 오류는 더욱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사단의 제안에 공개적인 관심을 보이면 보일수록, 그 임금 사단은 더욱더 기뻐한다. 성화되지 않은 심령들은 사단이 그들을 위해 마련해 놓은 쭉정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조차도 이런 유의 위험을 직면할 수 밖에 없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쓸모 없는 것을 중요한 것으로 여기게 될 것이요, 중요한 일을 사소한 것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들을 사용함

교회들이 깨어나서 이미 주신 빛대로 행동할 수 있도록 우리는 교회를 위해 좀더 무엇인가를 할 수 없을까?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자기의 일을 하도록 하신다. 가장 강한 자는 물론 지극히 비천한 자까지도 주님 편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을 부여 받았으며, 그들은 각자에게 맡겨진 처지에서 의무를 다 함으로 자신의 재능을 그분께 바쳐야 한다. 주님께서는 각자가 최선을 다 하기를 기대하신다. 166 빛이 마음속을 비출 때, 그분께서는 우리의 사업이 우리의 빛과 일치되고, 우리가 받은 그리스도의 충만하신 분량에 조화되기를 기대하신다. 우리의 지식을 활용하고 우리의 능력을 발휘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욱더 많은 지식을 얻게 될 것이며, 더욱 훌륭한 일을 더욱 많이 행할 수 있는 더욱 큰 능력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의 재능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갖고 장사해야 할 주님의 재산이다. 우리는 주님의 소유를 사용하는 일과 남용하는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위탁받은 재능들을 투자하라고 명령하시는데, 이는 주인께서 오실 때 이자까지 합쳐서 받으시고자 함이다. 그분 자신의 보혈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그분의 종으로 사셨다. 우리는 그분을 섬겨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로 우리 자신을 드리기 위해 지금 힘써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행동을 통해 우리가 그분의 은혜의 청지기라는 것을 나타내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순결하고 진실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서 주님을 위해 바친 모든 노력은 그분께 향기로운 제물과 같이 될 것이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지성적 존재들 앞에서 행하고 있다. 우리가 어떻게 주님께서 맡겨 주신 상품들을 장사하고 있는지를 보기 위해서 한 목격자가 끊임없이 우리 곁에 서 있다. 선한 청지기는 자기 달란트를 그 이익금까지 붙여서 되돌려 드리면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 달란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자기에게 이르러 온 것임을 깨닫고, 주인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그는 위탁금 없는 이익과 원금 없는 이자란 전혀 있을 수 없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마 25:20)라고 말할 것이다. 주님께서 주신 원금에 이자를 내고 있는지 지금 교회들은 자신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은혜가 없이는 모든 영혼이 영원한 파산을 맞이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것도 정당하게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것도 주장할 수 없지만, 주님께서는 마치 모든 것이 우리 자신의 공로인 것처럼 우리에게 상을 주실 것이다. 167 그분께서는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마 25:21)라고 말씀하신다.

때가 영원히 늦어 버렸을 때 잃어버린 기회 때문에 통곡하게 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오늘날 우리는 재능과 기회를 소유하고 있지만, 이것이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 수중에 있을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아직 해가 있는 동안 일하도록 하자. 밤이 올 터인데,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마 24:46).

처음 사랑으로 돌아오라*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 1892.7.15.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고 나아갈 때, 수많은 사람들이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실패하는 이유는 그들이 자기 자신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일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소유하고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를 가르치게 될 때까지는 그들은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떨면서 행하고 있다. 나는 속죄의 희생이란 큰 주제를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펜으로 기록해야 할는지 알지 못한다. 나는 주제들을 내 앞에 서 있는 모습 그대로 생명력 있게 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지 알지 못한다. 나는 천박한 말들로 위대한 구속의 경륜을 하찮게 보이도록 할까봐 두려워 떨고 있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놀라움과 경외심을 갖고 ‘이 일에 적합한 자가 누구오니이까?’ 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내가 내 형제들에게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써야 그들이 하늘로부터 번쩍이는 빛줄기를 붙잡을 수 있겠나이까? 내가 무엇을 말해야 하겠나이까?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교회의 분위기가 너무 냉랭하고 그 정신이 이런 부류에 속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초대교회적인 그리고 하늘에 그 기원이 있는 경건의 모본을 유지하거나 감당할 수가 없다. 168 그들의 첫 사랑이 얼어붙어 버렸으며, 그들이 성령의 침례로 다시 적셔지지 않는 한, 회개하고 처음 행위를 갖지 않는 한, 그들의 촛대는 제 자리에서 옮겨질 것이다. 교회의 처음 행위는 신자들이 친구, 친척, 아는 사람들을 찾아 나아가 사랑이 넘쳐 흐르는 마음으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어떤 분이시며 그들은 예수께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사랑의 이야기를 말해 주는 것 가운데서 나타났었다. 오, 주님께서 책임 있는 자리에 앉은 이들을 일깨워 주셔서 자기 스스로의 영민함을 의지하여 사업을 감당하지 않게 해 주시기를 바란다. 그들의 손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업은 그리스도의 꼴 지우심과 서명 승인이 결여될 것이다.

비뚤어지게 하는 이기심의 능력

이기심은 성별되지 못한 교역자들이 행하는 모든 일을 망친다. 그들은 항상 기도해야 할 필요가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업의 신성성을 느껴야 하지만, 그것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일상적인 것을 다루듯이 신성한 사물을 다룬다. 영적인 것들은 영적으로라야 분변(分辨)되며, 그들이 생명수를 마시고 그리스도께서 그들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실 때까지는 그들은 아무도 새롭게 하거나 축복할 수 없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촛대는 그 자리에서 옮겨지게 될 것이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있어서 계속적인 인내, 정복할 수 없는 사랑, 전능한 믿음이 필요하다. 자아가 두드러지게 나타나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께로부터 이르러 온 지혜로 인간의 심령을 대해야 한다.

영혼들을 성공적으로 다루는 모든 교역자는 자아를 벗어 버리고 사업에 임해야 한다. 책망과 짜증이 결코 있을 수 없으며, 독단적인 권위를 행사할 수 없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빈말만 남발하는 일이 결코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예수께 대한 사랑과 그분께서 위하여 죽으신 고귀한 영혼들에 대한 사랑으로 마음이 뜨거워져서 일하게 될 것이다. 169 자만하는 자들은 자신의 약점을 숨길 수 없다. 그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지나친 신뢰에 대해 시험을 받게 될 것이요,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낼 것이다. 이렇게 자만하는 영혼들은 소수가 아니며, 그들은 좌절과 실패의 쓰라린 경험을 통해 배워야 할 교훈들을 갖고 있다. 소수의 사람이 그러한 경험을 환영하는 미덕을 소유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은 시련 속에서 뒤로 물러간다. 그들은 자신의 좌절에 대해 환경을 탓하며, 다른 사람들이 자기의 재능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수하에서 자신을 낮춘다면, 그분께서는 그들을 가르치실 것이다.

봉사하는 일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들

날마다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사람들, 열렬하게 기도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는 사람들은 어떤 분야에서든지 하나님의 사업을 수행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만일 그들이 행한다면, 인간적 타락성이 분명히 그들을 정복하게 되어 그들은 자기 영혼을 쓸모 없는 지경에 이르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동역자가 되어 영적인 일들을 영적으로 분별할 수 있는 영성을 가진 자들은 그분의 사업을 수행하는 일에 하늘로부터 이르러 오는 덕성과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불타오르거나 빛을 비추지 않으면서도 만족 가운데 빠져 있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비참하게 냉랭하고 무관심한 상태 가운데 빠져 있으며, 진리를 아는 큰 무리가 의무를 등한히 하고 있는데, 주님께서는 이에 대해 그들에게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님을 주셨으며, 그분 안에 하나님께서 나타나 계신다. 우리의 구주께서는 말씀하신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요 14:23).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의 안과 아버지의 안에 거하리라”(요일 2:24). 170 우리가 하나님과 그분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면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이 영혼 속에 찾아 올 것이다. 오,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의 임재를 필요로 하는가! 성령의 침례를 위해 모든 교역자는 하나님께 기도의 숨을 토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떻게 사업을 궁리하고 계획하고 실천해야 할 것인지 알기 위하여 함께 모여서 특별하신 도움과 하늘로부터의 지혜를 간구해야 한다.

특별히 주님께서 그분의 매개자로 삼으사 선교사로서 성령으로 침례를 베풀고자 하시는 이들은 기도해야 한다. 오순절의 축복이 이르러 오기 전에 제자들은 열흘 동안 기도했다. 능력 있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고, 하나님께 더욱더 가까이 나아가며,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 마음을 낮추고,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형상으로 변해가는 일에 그 모든 시간이 그들에게 필요하였다. 축복이 이르러 왔을 때, 그것은 그들이 모여 있던 모든 장소에 충만했으며, 능력을 옷입고 그들은 주님을 위해 힘있게 일하기 위해 나아갔다.

목회를 위해 인물을 선택함

우리에게 맡겨진 신성한 사업을 수행할 인물을 선택하는 일이 너무 소홀히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부주의의 결과로 회심하지 않은 이들이 선교지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그들은 정욕적인 욕망으로 가득 차 있고, 감사하지 않으며, 거룩하지 않다. 그들 중에 어떤 이들은 이따금 책망을 받지만, 자기 노선을 바꾸지 않으며, 그들의 음탕한 행습은 하나님의 사업에 수치를 안겨 준다. 그러한 수고의 열매는 무엇이 되겠는가? 사람들을 선을 향해서, 그리고 하나님을 향해서 이끌어 가는 성령의 모든 고무하심이 하늘 책들에 언급이 되어 있으며, 주님께서 빛을 나르시는 통로인 교역자는 하나님의 날에 칭찬을 받을 것이다. 171 교역자들이 자기에게 지워진 영원한 책임을 인식한다면, 그들이 그 신성성을 깊이 인식하지도 못한 채 사업에 들어설 수 있을까? 우리는 목회에 자신을 바치려는 이들에게서 하나님의 성령의 깊은 감동하심을 보게 되기를 기대하지 않겠는가?

사도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4)고 말한다. 모든 영혼이 이 말씀에 유의하여 주 예수께서 어떤 타협도 용납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하자. 품성의 불완전한 면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그들의 봉사에 대해 온전히 신임할 수 있도록 하지 못하는 교역자들을 받아들이고 붙잡아 둠으로 표준이 아주 낮아졌다. 사도의 권면에 유의하지 않고 육신의 정욕을 채우는 일을 하는 이들이 책임 있는 지위에 많이 있다. 교역자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그분 안에서 지혜와 성화와 구속을 발견하지 않는다면, 그가 어떻게 예수님의 종교를 대표할 수 있겠는가? 그의 모든 유능함과 모든 보상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된다. 목자의 엄숙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에게서 한치의 남김도 없이 자신을 사업에 바치고 있다는 증거가 발견되어야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그들의 개인적인 구주로 모셔야 한다. 목회에 오랫동안 종사해 온 이들이 주 예수의 은혜와 그 지식 안에서 자라지 않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나는 그들이 자신의 이기적인 성향을 만족시키고, 그들의 기호와 사상에 부합되는 것들만을 행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교만과 관능에 몰두하기 위해 준비하며, 자신의 이기적인 야망과 계획을 수행한다. 그들은 자기를 대단하게 평가한다. 172 그러나 비록 그들의 악한 성향이 오른손이나 오른 눈처럼 그들에게 귀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들은 교역자에게서 분리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하나님께 받으신 바 될 수 없다. 신성한 사업에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철저히 조사를 하지 않고서 그들에게 안수하여 목회직에 임명한다. 그러나 그들을 목사로 받아들이기 전에 철저하게 심사하는 것이 그들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사업에 그들의 영향을 미친 후에야 엄격하게 시험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낫다.

성별된 생애

다음 인용문은 진실된 헌신으로 무엇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데, 이것은 우리 교역자에게 우리가 요구하는 바이기도 하다.

“할란 페이지(Harlan Page)는 멸망해 가는 이들을 구원하는 일에 주님의 영광을 높이기 위해 생활하고 일하기로 결심하고 자신을 하나님께 구별하였다. 임종할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처음으로 소망을 갖게 되었을 때, 나는 영혼들을 위해서 일해야 한다고 느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영혼을 구원하는 도구로 사용해 주시기를 여러 해 동안 기도 드렸다.’ 그의 기도는 현저하게 응답을 받았다. 페이지는 영혼들에게 등불을 비추어 줄 수 있는 기회를 하나라도 잃지 않았다. 거룩하고 열렬한 모본을 통해서 뿐 아니라 편지와 대화, 전도지와 기도, 호소와 경고를 통해서 그는 방황하는 이들의 마음을 붙잡아 주고, 신자들을 굳건하게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공장에서, 학교에서, 어디에서든지 이 기술자는 일을 했으며, 이토록 미천한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것을 성취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길은 오직 강력한 은혜의 능력에 그 공을 돌리는 것 뿐이다. 그의 생애는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고전 1:27.28)라는 말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주석이다. 그는 외쳤다. 173 ‘우리가 동료 인간들의 구원을 등한히 할 때, 영원의 실재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연약하고 의무감은 약화된다. 우리의 의무를 깨닫고 우리에게 혀나 펜이 있는 동안에 그것을 지극히 높으신 분을 섬기는데 바치도록 하자. 우리 자신의 힘으로서가 아니라 강한 믿음과 굳건한 확신으로 그리하자.’”

우리는 증가된 빛을 갖고 있다. 우리는 세상에 전해야 할 엄숙하고 중대한 기별을 갖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선택함을 받은 제자들이 깊은 체험을 갖고 성령의 능력으로 채워지도록 의도하셨다.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이것은 다윗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이었으며, 죽을 때에 그는 솔로몬에게 이렇게 증거했다.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쁨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뭇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세상을 아시나니 네가 저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버리면 저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대상 28:9).

우리는 이 땅의 역사에 있어서 중대한 기간에 살고 있다. 진리의 빛이 우리 위에 비치고 있으므로 우리는 이제 낮은 수준에 머물렀던 순간에 대해 변명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동역자로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그분의 고난에 참여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우리는 그분의 생애를 바라보고, 그분의 성품을 연구하고, 모본되시는 분을 모방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완전한 인성에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 우리는 영원을 위해 품성을 형성해야 한다.

174 더욱 깊은 연구를 위해 참고할 서적: 복음 교역자, 437-455(영문), 교회증언 4권, 315.318.320.371-383.437.441.442(영문).

우리의 요청과 받아들임을 기다리고 있는 성령의 능력*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 1891.12.28.

예수께서는 하늘 궁정으로 되돌아가시고자 그분의 제자들을 떠나시기 바로 직전에 성령의 약속으로 그들을 격려하셨다. 이 약속은 그들에게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주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백성들 앞에 제시되는 일은 얼마나 드문 일인지 모르며, 그것을 받는 것에 대해 교회 안에서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 지극히 중요한 주제에 대해 침묵한 결과로 모든 영적 수고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하는 성령의 선물에 대한 이 풍부한 약속만큼 실현되지 않은 약속도 드문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성령의 약속은 이따금 우리의 설교 속에 등장하기는 하지만, 우연히 지나쳐 갈 뿐이고, 그것으로 그만이다. 예언들을 연구하고 교리들을 설명해 왔지만, 영적 능력과 능률에 있어서 성장하고, 확신을 끼치는 설교를 하며, 영혼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기 위해서 교회에 필수적으로 있어야 할 것에 대해서는 목회적 노력이 크게 부족하다. 이 주제는 미래 어느 때에나 고려되어야 할 것처럼 도외시되었다. 다른 축복들과 특권들은 백성에게 제시되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것을 얻고자 하는 갈망감이 교회 내에서 일깨워졌다. 그러나 성령에 대한 인상은 이 선물이 지금 교회를 위한 것이 아니며, 미래 어느 때에 교회가 그것을 받을 필요가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다른 모든 축복

믿음으로 주장하기만 한다면 이 약속된 축복은 다른 모든 축복들을 함께 몰고 올 것이며,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후하게 주어질 것이다. 175 원수의 간계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지극히 적은 분량의 은혜의 소나기가 갈한 영혼들에게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의 노력을 의지해야 하며 하늘로부터는 적은 도우심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익숙해져 있다. 그 결과로 그들은 오류와 흑암 속에서 죽어가고 있는 다른 영혼들에게 나누어 줄 빛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 오랫동안 교회는 적은 분량의 하나님의 축복으로 만족해왔다. 그들은 무한한 값을 치르고 사들인 고상한 특권들에 도달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있다. 그들의 영적 힘은 미약해졌으며, 그들의 지지부진한 절름발이 체험은 주님께서 그들에게 행하도록 하신 사업에 합당하지 못한 자가 되게 했다. 그들은 성령의 활동을 통해서 영혼들을 책망하고 회심시키는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의 크고 영광스러운 진리를 제시할 수 없다. 하나님의 능력은 그들의 요청과 받아들임을 기다리고 있다. 진리의 거룩한 씨앗을 뿌리는 이들은 기쁨으로 추수해 들일 것이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 126:6).

세상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정말 기쁨이 없으며,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은 매력이 없고, 하나님의 축복은 비싼 값을 치르는 이에게 내려진다는 생각을 교회의 태도를 통해서 받아들였다. 자신의 시련에 집착하고 고난을 크게 여긴 나머지 우리는 하나님과 그분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릇되게 나타낸다. 신자의 영혼을 감싸고 있는 어두움 때문에 천국길은 매력이 없어졌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로부터 실망하여 돌아선다. 176 그러나 그렇게 그리스도를 제시하는 이들이 신자들인가? 아니다. 왜냐하면 신자는 거룩한 약속을 의지하고, 성령께서는 책망자일 뿐 아니라 위로자이시기 때문이다.

강하고 균형진 성품을 쌓고자 할진대, 균형이 잘 잡혀진 신앙 체험을 하려고 할진대 그리스도인은 모든 기초를 닦아야 한다. 사람들이 성경 속에 제시된 대로의 진리와 의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준비를 갖추는 것은 이런 방식을 통해서이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유지되고 힘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진실된 그리스도인은 아주 부드러운 감정을 아주 굳건한 목적, 하나님께 대한 흔들림 없는 충성심과 결합시킨다. 그는 어떤 경우에도 신성한 위임을 저버리는 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성령을 부여받은 사람은 심령과 지성의 위대한 능력을 소유하며, 정복할 수 없는 의지와 목적의 힘을 갖는다.

더욱 깊은 연구를 위해 참고할 서적: 교회증언 5권, 109.110.54.77.78.시대의 소망, 302.672.412.805.821.822.827(영문).

나의 형제들이여, 그대들은 우리 주님께로부터 그분을 어떻게 증거하는지에 대해 주의하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 그대는 좀더 깊게, 더욱 깊게 말씀을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대는 온갖 부류의 마음들을 만나야 하며, 신성한 말씀의 진리를 가르칠 때, 그대는 열렬함과 존경과 경외심을 나타내어야 한다. 그대의 말 속에서 이야기를 뽑아 버리고 말씀을 설교하라. 그러면 그대는 더욱 많은 알곡을 주인께 갖다 드리게 될 것이다. 그대의 청중 속에는 끊임없이 시험에 시달리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어떤 이들은 의심과 더불어 씨름하는데, 거의 낙망과 절망에 빠져 있다. 투쟁하는데 그들에게 힘을 줄 말씀들을 말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간구하라. ― 리뷰 앤드 헤랄드, 1904.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