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와 복음 교역자에게 보내는 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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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봉사를 위해 영혼을 준비시킴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시 19:7). “행위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실로 저희는 불의를 행치 아니하고 주의 도를 행하는도다 주께서 주의 법도로 명하사 우리로 근실히 지키게 하셨나이다 내 길을 굳이 정하사 주의 율례를 지키게 하소서 내가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할 때에는 부끄럽지 아니하리이다”(시 119:1-6).

이 말씀을 통해 교훈을 얻도록 하자. 모든 낱말을 주의 깊게 연구하라. 올바른 원칙과 순결한 감정을 계발하고 실천할 때, 거룩한 분의 모습을 닮은 성격을 이루어낸다. 하나님과 인간을 거스리지 않는 양심, 특별히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끌기 위하여 인간을 향해 지극히 부드러운 동정심을 품는 마음은 그리스도께서 가지셨던 속성들을 갖게 될 것이다. 이런 모든 사람은 그분의 성령의 감동에 젖게 될 것이다. 그들은 설득의 저장소와 단순한 웅변의 창고를 갖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영혼들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데려오기 위해 지금 아주 열렬하게 일해야 한다. 우리의 그리스도인 생애 속에 천박한 체험의 장(章)들이 결코 수놓아져서는 안 된다. 진실된 체험을 얻기 위해서는 모든 영혼이 사단의 유혹 때문에 노력을 대가로 지불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영혼이 하나님께 대한 지식과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얼마나 갈급해 하는지를 보신다. 그리고 이렇게 약속하신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 5:6).

진실된 탐구자의 특성들

121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에게 그분의 율법에 순종하라고 명령하신다. 그분께서는 인간이 보는 것처럼 보지 않으신다. 그분의 표준은 높고, 순결하고, 거룩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 표준에 도달할 수 있다. 주님께서는 영혼들이 갈급해 하고, 양심적인 영혼들이 갈망하는 것을 보신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행동들이 흘러나오는 마음의 성향을 주목하신다. 말과 생활과 성품 속에서 예수님과 같이 되기 위하여 분투하는 진실된 탐구자는 그분의 형상대로 변화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던 것과 동일한 성향과 마음을 그는 갈망하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그는 수치에 대한 두려움이나 상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며, 그리스도를 대표하기 위하여 자신의 축복을 향상시키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는 최고가 되는 일과 인간에게서 칭송을 받는 일을 갈급해 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의 주 관심사가 아니다. 현재 자기에게 있는 것을 슬기롭게 향상시킴으로 좀더 많은 재능을 얻으려고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께 더욱 크게 봉사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하나님을 갈급해 한다. 그의 구속주의 역사, 그분께서 치르신 헤아릴 수 없는 희생은 그에게 의미로 가득 차 있다. 하늘의 주권자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가난을 통해 부요해지도록 가난하게 되셨다. 단지 부여받는 것에 있어서가 아니라 성취하는 것에 있어서도 부요를 누리게 하셨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제자들이 소유하기를 열렬히 갈망하시는 부요함이다. 진실된 진리 탐구자가 말씀을 읽고 그 마음을 열어 말씀을 받아들일 때, 그는 전심으로 진리를 갈망한다. 그리스도께서 그분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마련하러 가신 하늘 집의 구성 요소가 될 사랑, 동정, 부드러움, 예의, 그리스도인적 예의가 그의 영혼을 사로잡게 된다. 122 그의 목적은 견고하다. 그는 의의 편에 서기로 결심했다. 진리는 심령 속에 들어가 성령에 의해 심겨진바 되는데, 성령께서는 진리이시다. 진리가 마음을 사로잡을 때, 인간은 그리스도의 은혜의 청지기가 됨으로 이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나타낸다.

진실된 그리스도인의 심령은 참 사랑과 영혼에 대한 지극한 갈망감으로 물든다. 그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하여 자기 힘이 미치는 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하기까지 쉬지를 않는다. 시간과 노력을 쏟으며,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즐거움과 평화와 기쁨을 성령 안에서 자기 영혼 속에 가져다 준 진리를 다른 사람들도 받아야만 한다.

진정으로 회심한 영혼이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게 될 때,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멍에를 메고 그분과 조화를 이루어 일하는 것을 자신의 의무로 느낄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께서 그에게 머무르신다. 그는 구주의 사랑, 자비, 동정을 나타내는데, 이는 그가 그리스도와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예수님께 데려오기를 갈망한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영혼들의 위험을 보게 될 때, 그의 마음은 동정심으로 녹는다. 그는 자기가 회계(會計)해야 할 사람으로서 영혼들을 살핀다. 하나님의 약속들에 대한 확신이 섞인 초청과 간청으로 그는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구원해 들이고자 한다. 그리고 그것은 기록책에 기록이 된다. 그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일꾼이다.

하나님이야말로 본받아야 할 적당한 대상이 아닌가? 그리스도를 옷입고 좀더 온전하게 그리스도의 모습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 생애의 사업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딸은 우리의 모본이신 그리스도를 닮는 일에 전진해야 한다. 날마다 그들은 그분의 영광을 바라보고, 그분의 비할 데 없는 탁월하심을 명상해야 한다. 부드럽고 진실되며 온전한 동정심을 갖고 그들은 육신으로 말미암아 더럽혀진 의복조차 미워하며 불 가운데서 영혼들을 끌어내야 한다.

우리는 홀로 일하고 있지 않다

123 하나님의 백성들에 의해서 성취되어야 할 사업이 있다. 인간의 삶 속에서 참으로 인간을 설복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순결한 감정으로 충만한 심령, 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대한 경외심이다. 그러나 열렬하게 사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정 형태의 의무들이 수행되어 왔지만 그것은 충분하지 않다. 통상적인 통로 바깥으로 걸어나가 보라. 교인들에게 접근할 수 없다고 할지라도 실망하지 말라. 큰 길에 나가 사업을 추진하라. 그대가 위하여 수고하는 이들의 자기 의를 진리의 누룩으로 침투하지 못할 때 일상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샛길로 빠져서 그 곳에서 선교 사업을 수행하라.

하나님께서는 그대 홀로 일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다. 셋째 천사의 기별이 전파된 이래 하나님의 천사들은 열렬하고 단호하게 활동하는 인간 매개자들과 협력하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였던 것보다도 더 깊게 진리의 광산을 파야 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타락한 인간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얼마나 놀라운 사랑을 보여 주셨는가! 진리를 알고 있는 자들이 그토록 궁핍으로 고생하고 있는 이들을 지나쳐 딴 길로 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고대 이스라엘의 예배 전체는 상징과 표상으로 된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단순한 약속으로 그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수백만의 사람들이 이 세상에 스스로를 드러내실 그분께 생각을 기울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고자 고안하신 실제적인 준비였다.

하나님의 계시이신 그리스도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았다. 그분께서는 말씀하셨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요 14:11). 124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요 14:9),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요 14:7). 우리의 모든 진실된 헌신 안에서 우리는 믿음의 눈을 우리의 대언자께 고정시키는데, 그분은 인간과 영원한 보좌 사이에 서서 우리의 모든 노력을 충족시키고 그분의 성령을 통하여 좀더 하나님을 완전하게 알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서 기다리고 계신다.

하나님의 어린양은 하나님의 “보좌 사이에” 서 있는 분으로 우리에게 제시되어 있다. 그분은 하나님과 인간의 연합과 상호 교통의 통로가 되시는 위대한 규례이시다. 따라서 인간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늘 처소들에 앉아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분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지정된 만남의 장소이시다.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 17:19-23). 그리스도께서는 인성을 그분 자신의 신성과 개인적인 관계 속에 들어가도록 하셨다. 이렇게 그분은 우주의 믿음을 고정시키는 하나의 중심을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들이 그분의 율법을 순종하도록 계획하셨다. 사단이 인간들을 미혹하여 하나님이 그분의 품성의 도덕적 표준을 폐지하신 것으로 믿게 만든다면, 인간은 자신이 어떤 유형의 인간인지 비추어 보고 알 수 있는 도덕적 거울을 갖지 못하게 될 것을 사단은 알았다.

125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약 1:23-27).

이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율법은 하나님의 위대한 도덕적 거울이다. 그는 자신의 말, 자신의 정신, 자신의 행동을 하나님의 말씀과 비교해 보아야 한다. 만일 이 말세에 명목상의 교회들의 일상적인 노선을 벗어나는 사업이 우리에게 전혀 맡겨지지 않았다고 결정을 내린다면 우리는 큰 실망을 맛보게 될 것이다. ‘잃어버린 이들에게 접근하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은 탐색하고 달아보고 결정해야 할 위대한 문제이다. 하나님께서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시는 한 가지 사업을 갖고 계시는데 그것에 대해서 내가 밝힐 필요도 없다. 그 사업이 그들 심령 속에서 먼저 이루어지지 않는 한, 그들의 행동 노선을 지적하기 위해 주어지는 모든 구체적인 지시들은 헛수고가 될 것이다.

야고보서 2장을 읽어보라. 진리를 그대의 일상 생활에서 실천하라. 그러면 주님께서 그대에게 행하도록 주신 일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4장을 읽되, 특히 5-12절을 읽으라. 5장, 특히 13-20절을 읽으라. 이 장들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교인이라고 주장하는 많은 수효의 사람들에게 무효한 글과 같다. 나는 그대에게 특히 이 성경 말씀과 마태복음 7장을 지적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대는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생명이 걸려 있는 것처럼 연구해야 한다.

126 배틀크릭 교회에 필요한 것은 말씀의 실천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많은 사람을 배틀크릭으로부터 다른 장소, 촌락, 도시로 인도할 것인데, 그 곳의 백성들은 그대가 가지고 있는 빛과 기회를 갖지 못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 저울대 위에 놓여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고 있지 않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모으고 있지 않다. 그들의 영향력은 나뉘어졌다. 그들은 멀리 흩는다.

특별히 이 말씀에 유의하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 7:24-27). 현재 안전하게 서 있다고 추측하고 있는 많은 집들이 무너질 것이다. 주님께서는 나뉘어진 봉사를 받지 않으실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경고와 약속의 귀한 말씀들

내가 그대에게 제시한 장들 속에서 발견되는 경고의 말씀에 유의한다면, 그대는 그대의 태도를 바꿀 것이며,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대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통하여 그대의 영혼을 구하게 될 것이다. 그대는 이사야 58장에 주어진 권면을 받을 것이다. 만일 그대가 지적한 지시들을 따른다면 다음의 약속이 성취될 것이다. 127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사 58:8-11).

그대에게 맡겨진 사업에 착수하라. 주님께서 그분 편의 약속을 성취시키실 것이다. 그대가 그분께서 요구하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님께서 믿지 않으셨다면, 이 영감의 성경 말씀은 결코 그대에게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대는 다음과 같은 초청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9.30).

그대는 성령께서 그대를 부르시는 높은 곳에 오를 수 있다. 참된 경건은 그대의 실생활 속에서 말씀대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 말씀의 실천 없이는 그대의 공언이 전혀 가치 없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 9:23). 이것이 제자되는 조건이다. “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성령을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마 12:18-21).

교회 밖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한 사업을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리자. 교회는 그 백성들 이외의 사람들을 위하여 활동하는 것에 대해서 적절하게 교육을 받아오지 못했다. 128 만일 더 진보된 진리의 빛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모든 지역의 교인들이 영혼들을 진리 가운데로 돌이키기 위해 온 마음과 정신을 다해 목소리를 발했더라면, 교회 밖의 많은 사람들이 깨우침을 받고, 훨씬 더 많은 빛이 교회 안에 들어왔을지도 모른다. 교인들은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너무 적게 일하였다. 주님께서는 선언하신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마 12:20.21).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협력하는 자들은 이 모든 약속이 그 자신의 체험 가운데 성취되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모든 영혼의 의무를 지적하고 계신다. 심판 때에 자기의 의무를 등한히 한 것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변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제자됨에 대한 좀더 면밀한 시험

제자됨에 대한 시험이 침례를 받고자 하는 이들에게 마땅한 만큼 면밀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회심했노라고 공언하는 이들이 단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의 이름만을 취한 것인지 아닌지, 혹은 세상으로부터 나와서 분리되어 부정한 것을 만지지 않고 주님 편에 선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들이 자기 입장을 충분히 이해했다는 증거를 보이면 그들은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세상의 관습과 유행과 감정을 따라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면 그들은 신실하게 취급되어야 한다. 자신의 행동 노선을 바꾸어야겠다는 아무런 부담도 느끼지 않고 있다면, 그들을 교인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교회를 구성하는 이들이 진실되고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의 은혜의 청지기가 되기를 원하신다.

129 이 말세의 죄가 공언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존재하고 있다. 이기심, 쾌락에 대한 사랑, 의복에 대한 사랑을 통해서 그들은 그리스도, 즉 그들의 교인 신분이 따라가고 있노라고 말하고 있는 그리스도를 부인한다. 나는 신자들 마음속에 있는 모든 충동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신다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공언한다. 그들의 부질없는 행동과 천박한 대화, 높은 경건성의 부족과 저급한 목표 때문에 이런 기만적인 인물들, 곧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으며 그분의 뜻이 아닌 자기 생각을 따를 뿐인 인물들의 모본이 없었더라면 다른 길을 추구했을 사람들이 잘못 인도되고 있다.

예수님은 겸손하고 온유한 모든 심령을 아신다. 이들은 시련을 겪고 실수를 저지르지만, 그들을 사랑하사 그들을 위해 죽으신 구주를 슬프게 했다는 것 때문에 심령이 상한 이들이다. 그들은 그분의 발 앞으로 겸손하게 온다. 그들은 그분의 싸움을 싸운다. 온유하고 겸손한 심령으로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고자 한다. 그들은 진리를 전진시키기 위하여 선하고 열렬한 노력을 기울인다.

주 예수께서는 위하여 그분의 생명을 바친 이들을 사랑하신다. 따라서 그들과 그들을 도우시는 분 사이에 세속적인 영향이 개입하도록 허용될 때, 그리스도는 제쳐놓고 우상들을 선택할 때, 인간 영혼에게 주시는 그분의 호소가 무관심 속에 어떤 응답도 받지 못할 때, 예수님은 슬퍼하신다. 그분은 그들이 큰 손실을 당했음을 아시는데, 이는 그들이 죄인들에게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모으는 자가 아니라 그분으로부터 흩어 버리는 자들이다. 그러나 큰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께서 그들의 심령에 접촉하시는 때에 그들은 그분께로 돌아서며, 그분은 그들의 기도를 들으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현세적 유익과 영원한 유익을 위해서 그분을 섬기도록 모든 영혼에게 주신 능력들을 알고 계신다. 그분은 이 영혼들이 그분을 실망시키지 않게 되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그들이 그분의 왕국에서 빛나기를 바라신다. 130 최고도의 영예를 받을 사람들은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이다.

진리가 실제적인 것이 되게 하라

주 예수께서는 모든 영혼이 진리를 실제적인 것으로 만들기를 요구하신다. 그대는 절반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며, 절반은 세상과 함께 하는 인물이 아님을 믿는다는 것을 보여 주라. 그러한 모든 사람에 대해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신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 3:15.16). 그리스도의 사랑을 감사하게 여기는 사람은 영혼들의 곡식단을 그 주인에게 바치기 위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열렬한 일꾼이 될 것이다. 철저한 사업이 그리스도와 연결된 모든 사람에 의하여 언제나 이루어진다. 그들은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열매를 맺는다. 그러나 게으름과 부주의, 그리고 천박한 행동은 영혼을 그리스도에게서 분리시키며, 사단이 그 가련하기 짝이 없는 세상의 신민에게 자기 뜻을 역사하기 위해 접근한다. 우리는 위대한 진리를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우리의 부주의와 무관심으로 인하여 진리가 그 힘을 잃어버리고 있다. 사단은 허울 좋은 시험을 갖고 접근하고 있으며,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이들을 그들의 인도자로부터 따돌려 미련한 처녀의 부류 가운데 떨어지게 한다.

주님은 오신다. 우리에게는 지금 우리의 등잔과 함께 은혜의 기름이 든 그릇들이 필요하다. 나는 ‘누가 지금 주님 편에 설 것인가?’ 를 묻고자 한다. 예수님은 떠나시기 전에, 다시 돌아와서 우리를 그분께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3)고 약속하셨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요 순례자들이다. 우리는 기다리며, 깨어 기도하며, 일해야 한다. 모든 정신, 모든 영혼, 모든 심령, 모든 힘은 하나님의 아들의 보혈로 산 바 되었다. 우리는 바로 특정의 색깔과 형태의 순례자의 옷을 입는 것을 우리의 의무로 느끼지 말고, 영감의 말씀이 우리가 이것을 입어야만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 깨끗하고 정숙한 옷을 입어야 한다. 131 만일 우리의 심령이 그리스도의 심령과 연합되었다면, 우리는 그분의 의로 옷입기를 지극히 열망하게 될 것이다. 주의를 끌거나 논쟁을 일으킬 만한 것은 아무것도 사람들에게 제시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교-이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것은 외부에 걸치는 어떤 것이 아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생명으로 수놓은 생애이다.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고 있음을 의미한다. 세상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은 “우리는 정치에 손을 대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는 순례자요 나그네이며, 우리의 시민권은 위에 있다”고 단호하게 말할 것이다. 그들은 쾌락을 찾아 친구를 선택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는 유치한 일에 몰두하기를 그쳤다’고 말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히 11:10)을 바라보고 있는 나그네요 순례자이다.

더욱 깊은 연구를 위해 참고할 서적: 그리스도인 교육의 기초, 107-112.174-180(영문); 교회증언 9권, 161-166.169-172.200.201(영문).

충성의 표징 안식일 준수*

서니사이드, 쿠란봉, 1898.1.12.

나는 원칙상 그릇된 행동 노선에 연합한 모든 사람들에게 결정적인 개혁을 하고 영원토록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라고 권하는 바이다. 세상은 신속하게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아들의 죽음에 대해 반드시 복수하실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못 박으라’고 외치면서 바라바를 선택하고 있다. 그들은 그분의 성도들을 그렇게 함으로써 이런 짓을 행할 것이다. 그들은 유대 제사장들과 관원들이 그리스도를 취급할 때 했던 것과 같은 일을 저지를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무죄한 분이신 그분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듣기를 즐겨 하지 않는 진리들을 말씀하셨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셨다. 그러나 그분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132 오늘날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하며 그분의 계명에 대해 전혀 존경을 표시하지 않는 이들은 대배도의 편에 서고 있다. 그들은 죄로 오염된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율법은 무효라고 선언한다. 이것을 진리인 것처럼 선언하는 이들은 백성을 기만하고, 여호와의 율법을 두 명의 강도 가운데서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다. 얼마나 무시무시한 생각인가!

타락하지 않은 세상과 하늘 우주 앞에서 세상은 온 땅의 심판자, 그들이 정죄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바로 그분께 회계해야 한다. 어떠한 심판의 날이 되겠는가! 그 날은 하나님의 복수의 큰 날이다. 그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빌라도의 심판대 앞에 서지 않으신다. 빌라도와 헤롯, 그리고 그분을 모욕하고, 채찍질하고,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이들은 어린양의 진노를 느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들의 행위들의 그 진정한 성격이 그들 앞에 나타날 것이다.

두려운 기만

세상이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마음에 얼마나 두려운 기만이 임해 있는가! 그리스도께서는 “노아의 때와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고 선언하신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 24:37-39). 하나님의 율법을 거절함으로 세상이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다.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계 14:9-11).

133 요한은 주일 중 첫날을 지킴으로 짐승이나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이들과는 구별되는 한 백성을 바라보도록 요청을 받았다. 그날을 지키는 것은 짐승의 표이다. 요한은 선언한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계 12:17). 우리 주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두 무리가 존재하게 될 것이 우리에게 명백하게 보여졌다. 어느 무리 가운데서 우리가 발견되기를 원하는가?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계 22:12-14). 이것이 계명을 지키는 자들의 목적지이다.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그 성에 들어가는 무리의 숫자 속에 속하기를 우리 모두가 원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담과 하와와 그 후손은 불순종 때문에 생명나무에 나아갈 수 있는 권세를 상실하였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창 3:22.23). 134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였다. 이것 때문에 그들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 생명 나무로부터 분리되었는데, 범죄 후에 이것을 먹게 된다면 죄가 영속되었을 것이다.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 3:24). 인간은 불멸성을 얻기 위하여 생명나무를 의존했었는데, 주님께서는 인간이 그 나무 실과를 먹고 영생하는 불멸의 죄인들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러한 예방 조치를 취하셨다.

범죄 때문에 사망이 세상에 들어왔다. 그러나 인간에게 또 다른 시험의 기회를 주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생명을 주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율법을 폐지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두번째 시험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분은 죄에게 불멸의 속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죽지 않으셨다. 그분은 사망의 권세를 가진 자, 곧 마귀를 멸망시키실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서 죽으셨다. 그분은 범해진 율법의 모든 형벌을 온 세상을 위해 당하셨다. 이것을 그분은 행하셨는데, 인간으로 하여금 계속해서 범죄하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충성 가운데로 돌아와 자기 눈동자처럼 하나님의 계명과 그분의 율법을 지키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순종의 표

순종의 표는 넷째 계명의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다. 만일 인간이 넷째 계명을 지킨다면, 그들은 나머지 모든 것도 지킬 것이다. 모세에게 말씀하시며 안식일을 표징으로 주신 것은 결코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 무릇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지며 무릇 그 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쳐지리라”(출 31:12-14).

135 주님께서는 명확한 설명 없이 이토록 중요한 계율을 주지 않으셨다.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제칠일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출 31:15.16).

인간의 철학 대(對) 하나님의 계시

인간의 철학은 세상을 창조하는 일에 불분명한 시간적 기간이 걸렸다고 선언한다. 하나님께서 이 일에 대해 그렇게 말씀하시는가? 아니다. 그분은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여섯 개의 불분명한 시간적 기간이 아니다. 그런 경우라면 넷째 계명에 구체적으로 지적된 날을 지킬 수 있는 방도가 인간에게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천지를 창조하고 제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 신명기 5장을 조심스럽게 읽어보라. 하나님께서는 또다시 말씀하신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잊지 말고] 거룩히 지키라 …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 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8-11).

말씀을 전파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살아 있는 성경 말씀을 앞에 두고서도 인간이 생각해 낸 가설들, 인간의 처세술과 교훈을 제시한다. 그들은 그들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무효화시킨다. 불분명한 시간적 기간에 세상이 창조되었다는 궤변은 사단의 기만 중 하나이다. 136 하나님께서는 인간 가족에게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말씀하신다. 그분은 이 문제를 불분명하게 내버려 두어 인간들이 저마다의 이론대로 그것을 취급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주님께서 그분이 6일간 세상을 만들고, 일곱째 날 쉬셨다고 선언하셨을 때, 그분은 24시간 하루를 의미하셨으며, 일출과 일몰로 그것을 표시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에 대한 명쾌한 이해를 인간들에게 제시하지 않으셨다면, 안식일 무시에 대한 형벌로 사형 선고를 제시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우리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 그분은 그분께서 하신 일을 보셨고, 그것을 매우 좋다고 선언하셨다. 그리고 지구의 기초가 놓여졌을 때, 안식일의 기초도 마찬가지로 놓여졌다. “그 때에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었느니라”(욥 38:7). 하나님께서는 낙원 안에서조차도 안식일이 인간에게 필수적임을 보셨다. 안식일을 주실 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영적·육적 건강을 고려하셨다.

칠일 중 아무 날이라도 되는 것이 아님

하나님께서는 문자 그대로의 6일 동안 세계를 지으시고, 문자 그대로 일곱째 날 그분께서 하시던 모든 일로부터 안식하시며 쉬셨다. 그래서 그분은 인간에게 일할 수 있는 6일을 주셨다. 그러나 그분은 그분께서 안식하신 날을 거룩하게 하시고, 모든 세속적인 일로부터 벗어나 준수해야 할 날로 인간에게 주셨다. 이렇게 안식일을 구별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하나의 기념일을 주셨다. 그분은 일곱 날 중 아무 하루를 구별하신 것이 아니고 특정한 한 날, 곧 제칠일을 구별하셨다. 따라서 안식일을 준수함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살아 계신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로 인정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안식일은 어떤 특정 계층의 사람들에게만 제한된다는 것이 안식일 속에 전혀 없다. 이것은 모든 인간을 위해서 주어졌다. 이 날은 게으르게 지내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업들을 명상하면서 지내야 한다. 137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출 31:13.수 있도록 사람들은 이 일을 해야 한다.

주님은 그분께서 축복하시고 거룩하게 하신 그 날, 그분의 백성들에게 아주 가까이 오신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시 19:1.2). 안식일은 하나님의 기념일로서 인간에게 그 창조주를 가리켜 주는데, 그분은 세계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만드셨다. 영원한 산들, 높이 치솟은 나무들, 그리고 피어나는 봉오리와 활짝 핀 꽃 속에서 우리는 위대하신 대 예술가의 작품을 볼 수 있다. 모든 것은 하나님과 그분의 영광에 대하여 우리에게 말한다.

모든 충성된 하나님의 자녀들은 진리를 알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요한은 어린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명백하게 진리를 기록하였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요 14:15-17). 진리를 분별할 수 없고, 원수의 기만적인 세력에 너무 눈이 멀어서 아버지의 본체의 형상이신 그분을 보지 못하는 무리 속에 우리가 계수되기로 선택해야 되겠는가?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은 전혀 다른 계층의 사람이다.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요 14:17-19).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 138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요 14:23.24). 인간의 말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거나 믿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먼저 ‘그들이 말씀과 조화되게 말하고 있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그것이 십자가를 수반하기 때문에 “주께서 가라사대”라는 명백한 말씀을 거부하고 있는가?

그대는 어느 편에 섰는가?

우리는 하나님께 충성을 바치기를 거절하는 이들 편에 서 있는가? 그들은 하나님을 아는 일에 전혀 흥미를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 모든 인간적 선의 화신이신 분을 거절한다. 그들은 어떤 책잡을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대신에 도둑과 살인자를 선택했던 이들 편에 선다. 이것은 세상의 도덕적 감각에 대해서 증거한다. 우리는 세상 편에 설 것인가, 혹은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요 15:10)켰다고 선언하신 그리스도 편에 설 것인가?

여호와의 말씀은 영원히 서게 될 것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14).

139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자신의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는 이들은 세상과 조화될 수 없다. 명확히 구별되는 두 무리가 있다. 한 무리는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 이들로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반면에, 또 다른 무리는 세상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이들로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내팽개치고, 예수님을 거절하는 배도자의 말들을 받아들인다.

그대는 누구를 택하겠는가?

그대는 어느 편에 서 있는가? 세상은 그리스도를 내팽개쳤으나, 하늘이 그분을 영접했다. 유한한 인간이 생명의 왕을 거절하였으나, 절대 주권을 지니신 우리의 통치자 하나님께서 그분을 하늘로 영접해 들이셨다. 하나님께서 그분을 높이셨다. 인간은 그분께 가시 면류관을 씌워 드렸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분께 왕의 위엄이 서린 면류관을 씌워 주셨다. 우리 모두는 정직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대는 이분 그리스도께서 그대를 지배하시도록 하려는가, 혹은 바라바를 선택하려는가?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분의 자비를 거절한 이들에게 자비가 전혀 섞이지 않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가져온다. 이것이 어린양의 진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분을 영접하고 그분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소망과 영생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독생자, 빌라도와 헤롯의 법정에 서셨던 분의 죽음을 보복하기 위해서 아주 확실하게 세상을 심판대 앞으로 불러내실 것이다. 그분께서 지금 하늘 법정에 계시면서 그분을 거절하는 백성을 위해 간구하고 계신다. 우리는 세상의 인을 선택할 것인가, 혹은 하나님의 구별된 특별한 백성이 되기로 선택할 것인가? 140 우리는 인간의 “누구누구 가라사대” 대신에 주께서 가라사대를 받아들일 것인가? 교황권 즉, 불법의 사람은 로마 가톨릭교회가 하나님의 율법을 변경시켰다고 판결한다. 제칠일 대신에 그들은 교황권의 자식, 곧 주일 중 첫날을 침례 주고, 거룩한 안식의 날로 준수하도록 세상에 제시했다. 개신교계는 이 교황권의 자식을 받아들이고 육성하고, 하나님께서 제칠일에 부여하신 영예를 그것에 주었다.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규례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르쳤나니 이는 너희로 들어가서 기업으로 얻을 땅에서 그대로 행하게 하려 함인즉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함은 열국 앞에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 함을 얻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두렵건대 네가 그 목도한 일을 잊어버릴까 하노라 두렵건대 네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날까 하노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 네가 호렙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나를 위하여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로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려 하노라 하시매 … 여호와께서 그 언약을 너희에게 반포하시고 너희로 지키라 명하셨으니 곧 십계명이며 두 돌판에 친히 쓰신 것이라”(신 4:5-13).

141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신 6:4-9).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 그런즉 너는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할지니라”(신 7:6-8.11). 신명기 7장 전체를 주의 깊게 읽고 주님의 말씀을 숙고하라.

그대는 아담의 죄와 타락에 대해서 읽고 “주께서 가라사대”라는 명백한 말씀으로부터 돌아서겠는가? 그는 주님의 말씀을 내버리고 사단의 말에 유의함으로 타락하였다. 범죄하는 것이 이익이 되는가? 범죄 때문에 아담은 에덴을 상실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김으로 인간은 하늘과 천국의 영원한 기쁨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결코 헛된 말이 아니라 진리이다. 또 다시 그대에게 질문하노니 그대는 어느 편에 서 있는가?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왕상 1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