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와 복음 교역자에게 보내는 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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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오스트레일리아 쿠란봉, 1896.5.30.

사랑하는 ________ 형제에게: 나는 기도 시간을 끝냈다. 중보의 영이 내게 임하여 나는 배틀크릭에 있는 영혼들을 위해 아주 열렬하게 기도 드렸다. 나는 그들의 위험을 안다. 성령께서는 특별한 방법으로 나를 감동시키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를 올리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것이라도 죄된 것의 창시자가 아니시다. 의무를 이행하는데 독특성이 요구된다면 그 누구도 독특한 존재가 될까봐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만일 그것이 죄를 피하도록 우리를 독특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우리의 독특성은 단지 순결과 불결, 의와 불의의 구별에 불과하다. 다수가 범죄의 길을 좋아한다고 해서 우리도 똑같은 길을 택해야 하겠는가? 영감의 말씀은 우리에게 명백하게 말씀하고 있다.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출 23:2). 우리 입장이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1-5).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64 교회 녹명책에 그 이름이 적혀 있는 이들이 진심으로 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교인들은 성령께서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하시는지 체험을 통해 알 필요가 있다. 성령께서는 그분을 받는 자에게 축복을 베푸실 것이요, 그를 축복이 되도록 할 것이다. 모든 영혼이 필수적인 성령의 호흡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우리에게 호흡을 불어넣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죄로 병든 영혼의 치료제로서 성령을 나누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교회는 회심할 필요가 있는데, 어찌하여 우리는 교회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은혜의 보좌 앞에 부복하여 상하고 애통하는 심령으로 성령께서 위로부터 우리에게 부어지시기를 열렬하게 간구하지 않는가? 은총을 베푸사 성령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심으로 우리의 냉랭한 심령이 소생케 되고,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이르러 왔음을 이해할 수 있는 분별력을 소유하게 되고, 그것을 기쁨으로 맞아들일 수 있도록 기도하자. 어떤 이들은 성령을 달갑지 않은 손님으로 대접하고 풍부한 선물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하고, 그것을 시인하기를 거절하고, 그것으로부터 돌아서며, 그것을 광신주의로 정죄하고 있다.* 성령께서 인간 대리자에게 역사하실 때, 그분은 어떤 식으로 작용해야 할 지에 관해 우리에게 묻지 않으신다. 때때로 그분은 예기치 못했던 방법으로 활동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들이 기대했던 대로 오지 않으셨다. 그분은 한 민족으로서의 그들을 영광스럽게 해주는 방식으로 오지 않으셨다. 그분의 선구자는 그분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와서 백성들에게 회개하고, 회심하고, 침례를 받으라고 요구하신다. 그리스도의 기별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바라던 대로 오시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를 거절하였다. 연로하여 백발이 되었다는 이유로 유한한 인간의 사상들이 오류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현재 교회는 바로 이러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65 즉, 유한한 인간의 고안으로 성령께서 임하시는 길을 상세하게 정해 놓으려고 한다. 비록 그들이 그것을 시인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이미 어떤 이들은 이러한 일을 했다. 그런데 성령께서 인간을 칭송하거나 그들의 그릇된 이론들을 세워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려고 오시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성령으로부터 돌아선다. 그들은 스스로의 자기 의를 벗어 버리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불의한 그 자신의 의를 순결하고 순수한 진리가 되는 그리스도의 의와 교환하려고 하지 않는다. 성령께서는 아무에게도 아첨하지 않으시며, 또한 어떤 인간의 꾀대로 역사하지도 않으신다. 유한하고 죄된 인간은 성령을 부릴 수 없다. 그분께서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시는 어떤 인간 대리인을 통해 책망자로서 임하실 때, 그분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인간이 해야 할 일이다.

성령의 현저한 활동

그리스도께서는 떠나시기 바로 직전에 그분의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약속을 주셨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20). 이 말씀을 하시는 동안에 그분은 위로 올리움을 받으셨으며, 천사의 무리가 그분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도성으로 호위해 갔다. 제자들은 이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히 확신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들의 믿음은 흐려지지 않았으며, 성령의 침례를 받기까지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마음을 겸비하게 함으로 자신을 준비하였다.

66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1-4). 그 모인 사람들 중에는 성령의 역사를 인식하지 못하는 조롱꾼들이 있어서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행 2:13)고 말했다.

“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 삼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행 2:14-16). 그 역사를 읽어보라. 주님께서는 그분의 방식대로 일하신다. 그러나 말세를 만난 우리 가운데서 그런 현상이 일어났었더라면, 오순절 당시처럼 어떤 이들이 조롱하지 않았겠는가? 성령의 감화 아래 들어오지 않은 사람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제자들이 술취한 사람들처럼 보였다.

십자가의 증인들

성령의 부어지심이 있은 후에 제자들은 신령한 갑옷을 입고 구유와 십자가에 얽힌 놀라운 이야기를 말하기 위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은 비천한 인물들이었지만, 진리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의 주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그들은 목자 없는 양같이 속절없고, 실망과 좌절을 당한 무리에 불과했다. 67 그러나 이제 그들은 진리의 증인으로서 나아갔는데, 그들에게는 반대를 물리치고 승리를 거두게 해 줄 유일의 무기인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이 있었다.

그들의 구주께서는 거절과 정죄를 당하시고, 수치스러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유대인 제사장들과 관원들은 희롱하며 외쳤다.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마 27:42). 그러나 수치와 고문의 도구인 그 십자가가 세상에 소망과 구원을 안겨 주었다. 신자들은 모여들었으며, 그들에게서 무력함이 떠나가고 스스로 속절없다고 느꼈던 생각이 사라져 버렸다. 그들의 품성은 변화되었으며, 그리스도인적 사랑의 끈으로 연합하였다. 비록 재물도 없고, 세상 사람들에게 무식한 어부로 여김을 받았을지라도 그들은 성령에 의해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다. 지상의 명예나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그들은 믿음의 영웅들이었다. 그들의 입술을 통해 세상을 뒤흔든 거룩한 웅변과 능력의 말씀이 흘러 나왔다.

사도행전 3장, 4장, 5장은 그들이 증거한 것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구주를 거역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이들은 그분의 제자들이 절망 가운데 풀이 죽어 그들의 주님을 부인할 줄로 기대했다. 그들은 성령의 능력 아래에서 전파되는 분명하고도 담대한 증거를 듣고 놀랐다. 제자들의 말씀과 사역은 그들 스승의 말씀과 사역을 대표하였다. 그들은 예수에게서 배웠고, 그분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이야기하였다.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행 4:33)었다.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은 사도들이 무엇을 행하고 가르쳐야 할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나아가 처처에 예수님을 전파할 때, 성령의 역사하심을 입은 이들은 유대인들이 승인하지 않은 많은 일들을 했다. 68 랍비들의 사상과 교리들의 평판이 떨어질 위험이 있었다. 사도들은 놀라운 흥분을 자아내고 있었다. 백성들은 병든 친척들과 사귀들려 고생하는 이들을 길거리로 데리고 나왔다. 무리들이 그들을 에워쌌으며, 고침 받은 이들이 소리 높여 하나님을 찬양하며, 유대인들이 정죄하고, 희롱하고, 침뱉고, 가시 면류관을 씌워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바로 그 분 예수의 이름에 영광을 돌렸다. 이 예수께서 제사장들과 관원들 위에 높이 들림을 받으셨다. 사도들은 그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셨다고까지 선포하였다. 유대 관원들은 이 사업을 반드시 중지시켜야만 한다고 결정하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수의 피를 흘린 죄를 그들이 범했음을 증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신앙으로 회심하는 이들이 증가하는 것을 보았다.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행 5:14).

사도들의 체포와 투옥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행 5:17). 이들은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믿는 자들이었다. 부활하신 후에 예수님을 보았으며, 그분은 승천하셨다고 증거하는 사도들의 주장은 사두개인들의 근본적인 교리를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이 일을 그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제사장들과 관원들은 분노가 가득하여 사도들을 잡아 일반 감옥에 투옥시켰다. 제자들은 협박에 굴복하지도, 낙망하지도 않았다. 그들의 마음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마지막으로 주신 교훈이 떠올랐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 69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거하느니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지 않게 하려 함이니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저희가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이른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이 말 한 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요 15:26.27.16:1-4).

기성 교리들과 반대되는 것들을 전파함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가로되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행 5:19.20). 우리는 여기에서 그들이 비록 성경 교리의 교사라고 공언한다고 할지라도 권세 잡은 자들의 말을 항상 순종할 수만은 없다는 것을 보게 된다. 종교적인 신조에 있어서 자신의 것과는 다른 어떤 사상을 제시하는 목소리를 듣게 될 때, 분노와 적개심을 느끼는 이들이 오늘날에도 많이 있다. 그들은 그들의 사상을 진리로써 오랫동안 옹호해 오지 않았던가? 이런 식으로 사도 시대의 제사장들과 랍비들은 다음과 같이 추론하였다. 그들 중 몇은 어부에 불과한 이 무식한 사람들, 학식 많은 제사장들과 관원들이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교리들과는 정반대 되는 것을 가르치는 이 사람들이 무엇을 할 작정인가? 그들은 우리 신앙의 근본 원리를 침해할 권리가 전혀 없다.

그러나 우리는 하늘의 하나님께서 때때로 기성 교리와는 반대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을 가르치도록 사람들에게 명하시는 것을 보게 된다. 70 한때 진리의 보고 역할을 하던 이들이 그들의 신성한 책임에 대해 신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의의 태양의 밝은 광선을 받아들이며, 종교 지도자들의 사상과 일치되지 않는 진리들을 옹호하고자 하는 인물들을 선택하신다. 그런데 그 때에 마음의 눈이 먼 이 지도자들은 애지중지 해 온 허탄한 이야기들을 버리는 이들에게 소위 의분을 쏟아 붓는다. 그들은 마치 이성을 잃은 것처럼 행동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들은 눈을 떠서 자신들이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적용했으며, 거짓 교리를 쌓아 올리고 그것들을 신앙의 근본 교리라고 불렀다는 것을 인식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시시때때로 그분의 선택하신 대리인들을 통해서 진리를 계시하신다. 그러므로 어떤 인간도, 제사장이나 관원일지라도 나는 그것들을 믿지 않으니 그대의 의견들을 공공연하게 말하지 말라고 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 신기한 “나”라는 것이 성령의 가르침을 침묵시키려고 시도할 수 있다. 인간은 한동안 그것을 질식시키고 사장시킬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해서 오류를 진리로, 진리를 오류로 만들 수는 없다. 인간의 창의적인 지성은 여러 면에서 상상적인 견해들을 발전시켜 왔다. 그런데 성령께서 인간 지성에 빛을 비추실 때, 그분은 인간이 말씀에 적용시켜 놓은 모든 것을 존중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종들을 감동시키셔서 인간들이 무엇을 진리로 당연시하고 있든지간에 개의치 않고 진리를 말하도록 하신다.

현재의 위험들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도 예수 안에 있는 진리에 대해 눈을 감아 버릴 위험이 있다. 71 왜냐하면 그것은 진리인 것으로 당연시 해 왔지만 성령께서 진리가 아니라고 가르치시는 어떤 것과 배치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지극히 겸비한 태도를 갖고 힘써서 자아를 추방하며 예수님을 높이도록 하자. 대부분의 종교적 분쟁에서 다툼의 발단은 자아가 지배권을 얻으려고 애쓰는 데 있다. 무엇에 관해서인가? 결코 중대한 요점에 관해서가 아니며, 사람들이 중요성을 부여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되는 것에 관해서이다(마 12:31-37.막 14:56.눅 5:21.마 9:3 참조).

그러나 이제 유대인 제사장들과 관원들이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하였던 인물들의 역사를 더듬어 보도록 하자. 그들이 그렇게 생각했던 이유는 그 인물들이 거의 모든 신학적 주제에 있어서 새롭고 이상한 가르침을 전파했기 때문이다.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행 5:20)고 한 성령의 명령을 사도들은 순종했다. “저희가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 하니 관속들이 가서 옥에서 사도들을 보지 못하고 돌아와 말하여 가로되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킨 사람들이 문에 섰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 하니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될까 하더니 사람이 와서 고하되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하니 성전 맡은 자가 관속들과 같이 가서 저희를 잡아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함이러라”(행 5:21-26). 제사장들과 관원들이 그들의 감정대로 사도들에게 행동을 감행했다면, 역사는 다르게 기록이 되었을 것이다. 72 왜냐하면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 광경을 보고 있었으며, 만일 그분의 종들에게 어떤 위해가 가해졌더라면 하나님의 이름을 높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들의 대답

“저희를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가로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마 23:34.3.참조).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저희가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행 5:29-33).

그 때에 성령께서 바리새인 가말리엘을 감동시키셨다.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교법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행 5:34). 그는 다음과 같이 충고하였다.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저희가 옳게 여겨”(행 5:38-40).

권세자들의 편견

그러나 사단의 속성이 제사장들과 관원들의 마음을 크게 지배했기 때문에 병자를 고치고, 하나님의 종들을 감옥에서 풀어 주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편견으로 가득 차서 분노를 자제할 수 없었다. 73 “저희가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행 5:40-42).

하나님의 자비가 예시(例示)됨

우리는 제사장들과 관원들에게 어떤 증거가 주어졌으며, 그들이 얼마나 완강하게 하나님의 영을 거절하였는지를 볼 수 있다. 다른 권세에게 자기 마음을 꼴 짓도록 내어 맡기고 성령을 거스리는 길을 추구하게 될 때, 지성과 경건에 있어서 뛰어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지극히 두렵고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다. 성령께서 대표하고 계시는 주 예수께서 그 무리들 중에 계시지만 그들은 그분을 식별하지 못했다. 잠시 동안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성령의 책망을 느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책망을 떨쳐 버리고, 이전보다도 더욱 맹목적이고 완고하게 되었다. 구주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도 하나님께서는 자비스럽게도 그들에게 사도들의 활동을 통해서 부가적인 증거를 보여 주셨다. 그분은 그들이 생명의 주를 죽였다는 사도들의 무시무시한 고발까지 보내어 그들에게 또다시 회개하도록 요청하셨다.

그들을 구원에서 끊어지게 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죄 하나 때문이 아니라 빛과 성령의 책망을 완고하게 거절했기 때문이다. 불순종의 자식들 안에서 역사하는 영이 하나님께서 증거를 주신 이들을 학대하도록 그들을 인도하였다. 74 악의적인 반역이 다시 등장하였고, 하나님의 종들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사 선포하도록 하신 기별을 거절할 때마다 그러한 악의는 더욱더 치열해졌다.

진리를 저항함

매번 저항할 때마다 굴복하기는 더욱 힘들어진다. 그들은 백성의 지도자, 제사장, 관원이기 때문에 자신의 노선을 지키는 것이 의무라고 느꼈다. 그들은 자신들이 옳았다는 것을 입증해야만 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일에 전념했기 때문에 매번 저항할 때마다 그것은 더욱 큰 자극제가 되어 계속해서 그 길을 고집하도록 했다. 과거에 반대해 본 경력은 그들에게는 고이 간직되어야 할 소중한 보물과도 같다. 또한 그런 행위들을 고무시킨 적개심과 악의는 사도들을 향해서 집중되었다.

하나님의 영께서는 당신의 임재를 인간을 두려워하거나 그들의 호의에 관계없이 자신에게 위탁된 진리를 선포한 이들에게 나타내셨다. 성령의 권능의 나타남 가운데서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증거를 거절한 자신의 죄악을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 사악한 저항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의 완고함은 점점 더 굳어지고, 그들의 영혼을 파멸시켰다. 그것은 그들이 굴복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굴복할 수 있었지만 굴복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범죄하였으며 진노를 받아 마땅할 뿐 아니라 사단의 속성으로 스스로를 무장했으며, 결심을 굳히고 계속해서 하나님께 대항하였다. 그들은 매일마다 회개하기를 거절함으로 반역을 새롭게 하였다. 그들은 그들이 뿌린대로 거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진노는 단지 그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발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저항 상태 가운데 계속해서 있기로 선택하고, 빛과 지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죄들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75 그들이 굴복한다면 용서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굴복하지 않기로 굳게 다짐했다. 그들은 완고함을 통해 하나님께 반항한다. 이런 영혼들은 자신들을 사단에게 내어 맡겼으며, 사단이 그 뜻대로 그들을 지배한다.

홍수 전 세계의 반역한 거주민들은 어떠했는가? 노아의 기별을 거절한 후에 그들은 전보다 더욱 크게 방종하여 그 극악스런 부패한 행습을 배나 더하였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임으로 개혁을 하고자 하지 않는 이들은 죄 속에 있으면서도 고쳐야 할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그들의 마음은 반역적 정신에 굳게 고정되어 있으며, 그들은 결코 굴복하지 않을 뿐 아니라 굴복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홍수 전 세상에 내리신 심판은 그것을 치료하는 일이 불가능했음을 선언하였다. 소돔의 멸망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의 주민들이 죄 속에서 올바로 되는 일이 불가능했음을 선언하였다. 하늘에서 내려온 불과 유황은 롯과 그의 아내, 그리고 두 딸을 제외한 모든 것을 태워 버렸다.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뒤를 돌아본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 민족이 불평하고 반란을 일으키며, 안식일을 범하고 다른 모든 율법의 교훈들을 범하고 있는 동안, 그들에 대해 얼마나 참으셨는가! 그분은 반복해서 그들이 이방인들보다도 더 악하다고 선언하셨다. 매 세대마다 앞 세대의 사람들의 악행을 능가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사로잡혀 가도록 허락하셨으나, 구출 받은 후에 그들은 그분의 요구 사항들은 잊어버렸다. 그분께서 신성하게 보관하도록 백성들에게 맡기신 것들은 반역적인 인간들의 고안물에 의해 왜곡되거나 대체(代替)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그들에게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요 7:19)라고 말씀하셨다. 이들은 성령께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도록 감동시키고 계신 사람들 위에 재판관과 감찰관으로 군림한 인물들이었다(요 7:19-23.27.28.눅 11:37-5.참조).

성령께서는 활동에 제한을 받지 않으셔야 함

76 이 성경 말씀을 백성들에게 읽어 주라. 조심스럽고 엄숙하게 읽으라. 그러면 그대가 그것을 읽을 때, 마음들을 감동시키기 위하여 성령께서 그대 곁에 계실 것이다. 그러나 그대 마음속에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반드시 인식하고 읽도록 하라. 만일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언제나 말씀하셨다면 이 성경 말씀은 그것을 듣는 이들에게 아주 많은 의미를 안겨 줄 것이다.

유한한 인간은 그 동료들을 지배하려고 함으로 성령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세상에 자기가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을 전하고 자기 사상과 반대되는 것은 어떤 것도 전파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자신들의 권리라고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도록 하자. 이것은 그들의 일이 아니다. 자신의 성경 해석이 언제나 옳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진리임이 분명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어떤 이들이 전혀 흠이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상들과 관련해서 가장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나야만 할 것이다. 이들은 틀릴 수 있다는 증거를 아주 많은 면에서 나타내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정죄하는 원칙에 입각하여 활동하고 있다. 내 속 깊은 곳에서 느끼고 있고, 그들의 사업이 하나님의 사업이 아니라는 것을 내게 말해 주고 있는 것은 그들이 동료 인간을 지배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점이다. 주님께서는 그 누구에게도 그들을 지배할 원리를 주지 않으신 것처럼 그들에게도 다른 이를 그렇게 할 수 있는 권리를 전혀 주지 않으셨다. 동료 인간을 지배하고자 하는 이들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사업을 자기의 유한한 손으로 부여 잡으려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미네아폴리스에 만연했던 그 정신을 품고 있는 것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일이다.* 온 하늘은 배틀크릭에 있는 우리 출판 기관이 여러 해 동안 드러낸 정신에 대하여 분개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참지 않으실 불의가 자행되고 있다. 77 그분은 이 일들에 대해서 보응하실 것이다. 잘못을 지적하여 주님의 이름으로 결정적인 변화를 간청하는 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러나 그 누가 주신 교훈의 말씀을 따랐던가? 그 누가 마음을 낮추어 악하고 압제적인 정신의 흔적을 떨쳐 버렸는가? 나는 이런 일의 실상을 백성들 앞에 제시하는 일에 큰 부담을 느껴 왔다. 나는 그들이 그것을 보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이것을 읽는 이들이 깨닫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더욱 깊은 연구를 위해 참고할 서적: 복음 교역자, 278.279(영문); 교회증언 5권, 702-706.가려뽑은 기별 1권, 155-208(영문).

충성된 기별

타스마니아 호바르트, 1895.5.1.

많은 사람이 재림신앙에서 벗어났음 불법이 성함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 가고 있다. 재림신앙에서 벗어난 인물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세상을 위해 살고 있으며, “주인이 더디 오리라”(눅 12:42)고 말할 뿐 아니라 그렇게 되기를 바라면서 동료 종들을 때리고 있다. 그들은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과 동일한 이유로서 이렇게 행한다. 아벨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시를 좇아 하나님께 경배 드리기로 결정했다. 이것 때문에 가인은 불쾌해졌다. 그는 자기 계획이 최선의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주님께서 그의 계획에 양보하실 것으로 생각했다. 가인은 제물을 통하여 그가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그의 아버지 아담이 에덴에서 추방된 것은 가혹한 대접이었다고 생각했다. 죄를 항상 상기시키고, 자기 외부의 어떤 능력을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고백으로서 도살한 어린양의 피를 드려야 한다는 생각은 가인의 교만한 마음에 고통이었다. 78 그는 장남이기 때문에 아벨은 자기 모본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벨의 제물을 하나님께서 가납하셔서 거룩한 불이 제물을 사르어 버렸을 때, 가인은 심히 분노하였다. 주님께서는 그 일을 그에게 설명하기 위해 내려오셨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 화해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하나님께서 아벨에게 호의를 보이신 것을 인해 아벨을 미워했다. 그는 너무 성이 나서 자기 아우를 죽였다.

주님께서는 불신과 회의심에 젖어 그분께서 더디 오신다고 말하는 모든 이들과 더불어 다투신다. 그들은 동료 종들을 때리며, (자기와 동일한 원칙에 따라 일하는) 술 취한 이들로 더불어 먹고 마신다. 그들은 술 취했으되, 술로 인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비틀거리되 독주(毒酒) 때문이 아니다. 사단이 그들의 이성을 지배하고 있으며, 그들은 자신이 무엇에 걸려 넘어지는지 모르고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결과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성령의 굴복시키는 능력으로부터 그 마음이 벗어나게 되자마자 사단의 속성이 나타나게 될 것이며, 그는 그 동료 인간들을 억압하기 시작한다. 그에게서 진리와 정의와 의에 상반되는 영향력이 퍼져 나간다. 이런 성향이 우리 기관에 나타났는데, 교역자 서로 사이에서 뿐 아니라 한 기관이 다른 모든 기관들을 지배하려는 욕구 속에서도 이것을 볼 수 있다. * 중책을 맡고 있지만 하나님과 산 연결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한 이들이 그분의 영을 멸시해 왔으며, 그렇게 하고 있다. 그들은 고라, 다단, 아비람, 그리고 그리스도 당시의 유대인들이 품었던 동일한 정신을 품고 있다(마 12:22-29.31-3.참조). 이런 이들을 향해서 하나님께로부터 경고의 말씀이 거듭하여 발해졌지만, 그들은 그것을 내팽개치고 감히 동일한 노선을 계속적으로 추진한다.

79 마태복음 23장 23절의 그리스도의 말씀을 읽으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이러한 통렬한 견책의 말씀은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한 이들에게 경고로 주신 것이다. 그들은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행하는 일에서 벗어났다고 말한다. 또한 그들은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예하지 아니하였으리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됨을 스스로 증거함이로다”(마 23:30.31). 여기에 놀라운 교훈들이 있다. 두렵고도 결정적인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구박하리라”(마 23:34). 이 예언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내신 사자들을 취급하는 일 가운데서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다. 이 말세에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정죄하신 이들의 모본을 따르게 될 것인가?

이 두려운 예고의 말씀을 그들은 아직 완전히 성취시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시고, 미네아폴리스 집회 전후로 그들의 행동을 특징지었던 동일한 정신을 품는다면, *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때 그분을 정죄했던 이들의 행위를 온전히 본받게 될 것이다.

말세의 위기가 우리에게 닥쳐오고 있다. 사단은 결정적으로 하나님의 영의 지배하에 있지 않은 모든 마음을 지배한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전해야 할 특별한 기별을 위탁하신 사람들에 대해 증오심을 키우고 있다. 그들은 이러한 사단적 사업을 미네아폴리스에서 시작했다. 80 후에 그들은 그 기별이 하나님께로부터 이르러 왔다는 것을 증거하는 성령의 나타나심을 통해 보고 느꼈을 때, 그것을 더욱 미워하였는데, 이는 그것이 그들을 거스리는 증언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음을 겸비하게 가져 회개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옳은 것을 옹호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 마음대로 행하였고, 유대인들처럼 미움과 질투, 그리고 악한 추측으로 가득 찼다. 그들은 하나님과 인간의 원수를 향해 마음을 열었다. 그러나 이런 인물들이 책임 있는 지위들을 차지해 왔으며, 할 수 있는 한 그들의 모습을 좇아 사업을 꼴 지어 왔다 ….

회개하라는 권고

지금은 선두이지만 하나님의 사업에 진실되게 행하지 않은 자들은 회개하지 않는 한, 곧 마지막이 될 것이다. 그들이 신속하게 반석 위에 떨어져 깨어지고 거듭나지 않는 한, 품어 온 정신은 계속해서 품어질 것이다. 부드러운 자비의 목소리를 그들은 깨닫지 못할 것이다. 성서적 신앙은 개인적으로나 공적으로 그들에게 한낱 과거의 일에 불과한 것이 될 것이다. 그들은 열광주의와 광신주의를 열렬하게 비난해왔다. 인간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하나님을 찾는 믿음,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향해서 행사하라고 요구하시는 믿음이 광신주의라고 일컬어진다. 그러나 성화된 열성으로 인간을 고무시키는 그 어떤 것이 이 땅 위에 있다고 하면, 그것은 예수 안에 있는 진리이다. 그것은 웅장하고 위대한 구속 사업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신 그리스도이시다.

주님께서는 오직 계시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을 죄로부터 개심시키고, 범죄로부터 지켜 줄 수 있다는 것을 그분의 섭리 가운데 자주 보여 주셨다. 81 죄의 죄됨을 보여 주는 그 말씀은 인간의 심령에 작용하여 인간을 바르게 하고 그렇게 유지시키는 능력을 갖고 있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연구하고 순종하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실생활에 실천되어야 한다. 그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의 품성처럼 변하지 않는다.

열정으로 이끄는 참된 영감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갈바리 십자가이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요일 3:1).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그리스도는 영접받으시고, 믿는 바 되시고, 높임을 받으셔야 할 분이시다. 그리스도의 고귀하심이 바로 대화의 주제가 되어야 한다.

심령 속에 좌정해야 할 진리

배틀크릭에는 그 심령 속에 진리가 심겨진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그들에게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러나 진리가 심령 속에 좌정하지 않는다면, 흑암으로부터 광명 가운데로 완전하게 옮기지 않는다면, 신성한 직임들을 맡은 이들은 흑암의 봉사자요, 소경을 인도하는 소경이다. 그들은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유 12)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성호를 부르는 모든 영혼에게 마음의 중심부에 진리를 품으라고 요구하신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그것을 요구한다. 영원이 그것을 요구한다. 순수한 믿음이 그것을 요구한다.

세속적인 오락

82 쾌락적인 파티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흥분하거나 열광할까봐 지나치게 걱정하는 일이 있는 한편, 또 다른 영역에서는 많은 사람에게 매우 좋게 여겨지는 열광이 있다. 나는 우리 백성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쾌락적인 파티들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공언하는 백성들이 이러한 행사에 많은 시간과 주의를 빼앗기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임들이 그분의 성호에 영광을 돌리는 경향이 있는가? 그들을 주관하시도록 그리스도께서 초청을 받으셨는가? 함께 모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불타오르고 있다면, 또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교환하기 위해서나 그분의 사업을 추진시키기 위한 길을 모색하고 그들의 동료들에게 선행을 하기 위해서 모인다면, 사교 집회는 최고도로 유익하고 교훈적인 것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게 할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고 말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분을 환영하는 손님으로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영예를 얻으시고 함께 모인 사람들은 새롭고도 굳건하게 될 것이다.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말 3:16.17).

그러나 배틀크릭에서는 전혀 성격이 다른 사교 모임이 있어 왔다. 그것들은 우리 기관과 교회에 수치가 되는 파티들이었다. 그것들은 의복에 대한 자랑, 외모에 대한 자랑, 자기 만족, 들뜬 생각, 무익한 행동을 조장한다. 83 사단이 존경받는 손님으로 초청을 받으며, 그는 이러한 모임을 후원하는 이들을 사로잡는다. 그러한 한 무리가 내게 보여졌는데, 거기에는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이들이 모여 있었다. 한 사람이 악기를 연주하는 자리에 앉아 있었으며, 바라보는 천사가 눈물을 흘릴 그런 노래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곳에는 환희가 있었으며, 조잡한 웃음과 넘쳐나는 열광이 있었고, 일종의 흥이 있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직 사단만이 창조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이러한 열광과 심취에 대해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그것을 통해서 참가자들은 거룩하지 못한 생각과 행동에 젖게 된다. 그런 장면 속에 들어갔던 어떤 이들이 수치스러운 행실에 대해 진심으로 회개했다고 생각할 만한 이유가 내게는 있다.

그러한 모임의 효과

수많은 그러한 모임들이 내게 제시되었다. 나는 환락과 의복에 대한 과시, 개인적 치장을 보았다. 모든 사람은 좀 화려해지기를 원했으며, 들떠서 시시덕거리고, 천박하고 거친 아첨의 말을 하며, 소란스럽게 웃는 일에 몰두했다. 눈은 빛이 나고, 얼굴은 상기되었으며, 양심은 잠이 들었다. 먹고 마시고 흥청댐으로 그들은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을 잊는다. 쾌락의 장소가 그들의 낙원이다. 그런데 하늘은 모든 것을 주시하고 바라보며 듣고 있다.

자전거 스포츠

다른 장면으로 눈을 돌려보자. 시가지에 자전거 경주를 하려고 모인 무리들이 있다.* 이 무리들 중에는 역시 하나님과 그분께서 보내신 자 예수그리스도를 아노라고 공언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그 흥분적인 경주를 보는 사람들 중에 그 누가 그렇게 흥분하는 이들을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로 생각하겠는가? 그 무리 중에 어느 누가 그리스도의 필요를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84 그들이 자신의 시간과 육체적 능력의 가치를 하나님을 섬기는 데 사용하도록 베푸신 그분의 은사로 인식하고 있다고 그 누가 생각하겠는가? 사고의 위험이나 그 난폭한 질주의 결과가 사망이라는 것을 그 누가 생각하고 있는가? 예수님의 임재하심과 돌보는 천사들의 보호를 위해 그 누가 기도했는가? 이러한 행실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가? 사단은 이 영혼들의 생명을 놓고 게임을 하고 있으며, 그가 보고 듣는 것에 대하여 아주 만족스러워 한다.

신앙에 대한 모독

이러한 운동에 참여하는 한때 열렬했던 그리스도인은 내리막길에 들어서는 것이다. 그는 하늘의 생생한 대기가 충만한 지역을 벗어나서 짙은 안개가 끼어 있는 지역으로 뛰어든 것이다. 이러한 운동에 어떤 미약한 신자가 권유를 받고 참가할지 모른다. 그러나 만일 그가 그리스도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 그는 흥분시키는 장면 속에 진정으로 뛰어들 수 없을 것이다. 그가 듣는 언어들은 상쾌한 것이 아니니 그것은 가나안의 언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말하는 이들은 그들이 마음 가운데서 하나님께 대하여 노래하고 있다는 증거를 주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잊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다. 그분은 전혀 그들의 생각 속에 자리잡고 계시지 않다. 흥분시키는 스포츠의 쾌락을 누리기 위해서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이들이 모인 이런 모임들은 신앙과 하나님의 성호를 모독하는 것이다.

사단의 기만적인 활동

대화의 경향은 마음속에 소중히 여기는 것을 드러낸다. 웃음을 자아내기 위해서 발하는 천박하고 품위 없는 말, 아첨의 말, 어리석은 재치의 말 등은 사단의 상품이며, 이런 대화에 몰두하는 이들은 사단의 상품을 거래하는 것이다. 85 이런 것을 듣는 이들에게는 헤로디아의 딸이 헤롯 앞에서 춤을 출 때 그에게 끼친 것과 유사한 인상이 끼쳐진다. 이 모든 거래는 하늘 장부에 기록이 된다. 그리하여 최후의 그 큰 날에 죄지은 이들 앞에 그 실상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모든 사람은 그 속에서 마귀의 유혹적이고 기만적인 작용을 볼 터인데, 그것은 그들을 넓은 길과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문으로 이끌기 위한 것이었다.

사단의 미끼 역할을 하는 공언하는 그리스도인들

사단은 배틀크릭에 그의 덫을 증가시켜 왔다. 그 유혹자는 피상적인 품성과 신앙적 체험을 가진 공언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사용하고 있다. 이 부류의 사람들은 언제나 쾌락과 스포츠를 위해서 모일 준비가 되어 있으며, 그들의 영향력은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성경적인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노력해 온 젊은 남녀들이 그 무리에 가담하도록 설득을 당하며, 그 패에 이끌려 간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란 나무가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해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알기 위해 기도하는 중에 신령한 표준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들은 이러한 행사들이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영혼들이 초대받지 못하도록 사단이 마련한 만찬회라는 것을 식별하지 못한다. 그것들은 품성의 흰 두루마기, 곧 그리스도의 의를 그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을 행해야 옳은지에 대해 혼란을 느끼게 된다. 그들은 유별나다는 평가를 받기 싫어한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다른 이의 모본을 따르게 된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심령과 마음속에 거룩하신 분과 전혀 접촉해 보지 못한 이들의 영향력 아래로 들어간다.

인간적 영향의 마력과 정욕에 휩쓸리는 이런 흥분적인 모임들 속에서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도록 주의 깊게 교육을 받아 온 청년들이 그릇된 교육과 거짓 경건에 젖은 이들을 사랑하게 된다. 그들은 자신을 평생의 종으로 판다. 86 그들은 사는 날 동안 천박하고 피상적인 인물과의 결합으로 인하여 방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 인물은 과시하기 위해서 살지만, 소중한 내적 단장, 곧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지극히 값비싼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단장을 소유하지 못했다. 단지 자신을 즐겁게 하는 일로 인생을 보낸 이들에게 질병과 죽음이 찾아올 때, 그들은 그들의 그릇과 등잔 속에 기름을 넣지 않았음을 발견하게 되며, 인생의 막을 내릴 준비가 전혀 갖춰지지 않았음을 느끼게 된다. 이런 일이 있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다.

우리는 배틀크릭에 있는 큰 빛을 소유한 이들에게 묻고자 한다. 하나님의 진리가 영혼 속에서 그 힘을 잃지 않았는가? 정금이 빛을 잃지 않았는가? 무엇이 이런 광신주의와 열광주의의 원인이 되어 왔는가? 두려운 책임이 세상을 사랑하는 이기적인 부모들에게 놓여져 있으니, 죄에 대한 책임이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현재 배틀크릭에 있는 학교 건물들이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안식일 준수자라고 공언하는 이들이 살고 있는 그 거대한 부락에서 분리된다면, 훨씬 더 좋을 것이다.

통탄할 만한 생각이 퍼지고 있음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가 불분명한 소리의 나팔을 불고 있으며, 세상 길을 따르고 있다는 생각이 세상에 널리 퍼지고 있다. 배틀크릭에 있는 가정들은 하나님을 전혀 사랑하지 않는 자, 경솔하게 인생을 살아온 자들, 결코 자기를 부인해 본 적이 없고, 경험을 통해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들과 결혼하려고 계획함으로 하나님에게서 떠나가고 있다. 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그릇된 가르침이 받아들여지고 가르쳐지고 있는데, 그것은 영혼들을 미혹과 기만 속에 붙들어 맨다. 87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켠 불꽃의 빛 가운데서 행하고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이들은 헛되고 쓸모 없는 사교 생활을 선택하기 위하여 세속적인 차원으로 내려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회심하지 않은 남녀들에게 매혹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예수님은 그들을 옹호하실 것이다.

사업상의 부정직한 거래

진리를 알지만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 이들 중에는 그들의 사업상의 거래에 있어서 하나님의 율법을 짓밟는 이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이 갖고 있는 정신에 물들어 그들과 같은 운명에 빠지지 않도록 그들과 절친하게 사귀지 말아야 한다. 부조 야곱은 그의 아들들이 저지른 끔찍스러운 어떤 일을 생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예하지 말지어다”(창 49:6). 그는 자기가 죄인들의 행동에 동참할 때, 자신의 명예가 더럽혀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우리가 그 악행에 동참할까봐 그런 무리들로부터 멀리 떨어지라고 경고하기 위해 위험 표지판을 치켜들고 있다. 성령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해 유사한 경고의 말씀을 하신다.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엡 5:11).

그리스도인들의 진실된 태도

영원하신 하나님께서는 성도와 죄인, 회심한 자와 회심하지 않은 자 사이에 구별하는 선을 그어 놓으셨다. 그들은 마치 무지개 색깔처럼 모르는 사이에 서로 하나로 합쳐질 수 없다. 그들은 한밤중과 대낮처럼 분명히 구별된다.

그리스도의 의를 추구하는 이들은 위대한 구원의 주제들을 끊임없이 생각할 것이다. 성경은 그들의 영혼에 영양 많은 음식을 공급하는 창고이다. 88 그들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명상하며, 그들을 멸망으로부터 구원하고 용서와 평강과 영원한 의를 갖다 주기 위해 치러진 위대한 희생을 명상한다. 영혼은 이 웅장하고 고상하게 하는 주제들로 불타오른다. 거룩함과 진리, 은혜와 의가 생각을 차지한다. 자아는 죽고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종 안에 사신다. 말씀을 묵상할 때에 그들은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마음처럼 속에서 뜨거움을 경험하게 된다.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동행하시면서 그분께 관한 성경 말씀을 그들에게 열어 보여 주셨던 것이다.

예수님이 보이지 않게 그들 곁에서 동행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는 이가 얼마나 적은지!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그분의 음성을 듣게 된다면, 또한 그분께서 그들의 어리석고 평범한 대화를 들으셨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 것인가! 구주께서 그들 곁에 계시고, 그분께서 임재하시는 거룩한 분위기가 그들을 두르고 있고, 그들이 생명의 떡을 먹고 있다는 것을 알기만 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거룩한 기쁨이 불타오를 것인가! 구주께서 그분을 따르는 자들이 그분의 고귀한 교훈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신다면, 또한 그들이 거룩한 사물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아신다면, 그분은 얼마나 기뻐하시겠는가! 진리가 마음속에 거하게 될 때, 하나님의 종들에게 비평이 설 자리를 잃게 되며, 그분께서 보내신 기별을 흠잡는 일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마음속에 있는 것이 입술을 통해 흘러 나오기 마련이다. 그것은 억제될 수 없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그분께서 마련하신 것들이 대화의 주제가 될 것이다. 심령에 깃든 그리스도의 사랑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이 되어 흘러가는 곳마다 생명과 기쁨을 주는 생수를 내어 보낼 것이다.

89 더욱 깊은 연구를 위해 참고할 서적: 시대의 소망, 313(영문); 교회증언 5권, 22-24.81.82.85.86.208.233.234.508.509.545-551.교회증언 2권, 289-292(영문).

빛을 거절함*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종들에게 말씀하신다.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같이 날려 내 백성에게 그 허물을, 야곱 집에 그 죄를 고하라”(사 58:1).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함을 받은 입술을 통해서 분명하고도 곧은 기별이 흘러나올 때, 그것을 경멸하는 이들이 있다. 우리 중에 말로는 그렇게 하지 않을지라도 행동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선견자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정직한 것을 보이지 말라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너희는 정로를 버리며 첩경에서 돌이키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로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 하는도다 이러므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이 말을 업신여기고 압박과 허망을 믿어 그것에 의뢰하니 이 죄악이 너희로 마치 무너지게 된 높은 담이 불쑥 나와 경각간에 홀연히 무너짐 같게 하리라 하셨은즉 …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 너희가 원치 아니하고”(사 30:10-15).

심령을 정결하게 하는 일이 필요함

나는 배틀크릭의 책임 있는 자리에 앉은 이들에게 질문한다. 그대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대들은 주님께로부터 얼굴을 돌린 것이 아니라 등을 돌렸다. 그대들은 가장 중요한 주제들-주 하나님, 영원, 진리-과 관련하여 마음과 느낌과 공감성과 말들이 정결하게 될 필요가 있다. 이 시대에 전해야 할 기별은 무엇인가? 그것은 셋째 천사의 기별이다. 그러나 그 영광으로 온 땅을 환하게 해야 할 그 빛이 현대 진리를 믿노라고 주장하는 이들에 의해 무시당해왔다.* 그것을 취급하는 일에 주의하라. 90 그대들의 발에서 신을 벗으라. 사단의 속성들에 물들어 성령의 나타남에 대해 경멸을 퍼붓지 않도록 조심하라. 돌아와 회개하기에는 현재 너무 멀리 가버린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안다.

빛을 나누어 줌

나는 사실을 기록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스도를 믿고, 모든 빛줄기를 열렬하게 붙잡는 영혼들은 빛을 보고, 진리 안에서 기뻐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빛을 전할 것이다. 그들은 거룩함 안에서 자라날 것이다. 이 위대하고 엄숙한 사실들을 감사할 줄 모르고 비방하는 이들의 영혼을 감싸고 있는 냉랭한 분위기를 성령을 받은 이들은 느끼게 될 것이다. 그들은 저들이 악인의 꾀를 좇으며, 죄인의 길에 서 있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을 느낀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짓이 아닌 진리를 말한다. 그 속에는 곡해하거나, 극단으로 치우치거나, 과장된 것이 전혀 없다. 우리는 그것을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교회는 그들이 행하지 않았던 것들을 수행해야 할 의무를 지게 된다. 그들은 책임을 회피하지 말아야 하며, 시련과 시험 속에서 하나님을 더욱더 굳세게 의지해야만 한다. 난관이 닥쳐오겠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한결같이 위기에 응해서 일어나야 한다. 교회와 우리 하나님께 이행해야 할 의무들이 있다.

하나님의 영께서는 그분의 백성 중 많은 이들에게서 떠나가고 계신다. 많은 사람들이 어두컴컴하고 은밀한 길로 들어섰으며, 어떤 이들은 결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계속해서 넘어지며, 파멸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모욕하고, 빛을 거절하여 왔다. 그들에게 주어질 모든 증거들을 그들은 이미 받았지만 유의하지 않았다. 91 그들은 빛보다도 어두움을 선택했고, 자신들의 영혼을 더럽혀 왔다. 쾌락을 사랑하는 이들과 교제하면서 주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단순하게 믿는 이들에게 보내신 귀중한 빛에 대해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나 교회는 결코 없다. 세상은 노아 시대처럼 오염되고, 부패되었다. 유일한 치료제는 진리를 믿는 것이요, 빛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나타남을 통해 말씀하신 진리를 듣기는 들었으되, 그 기별을 거절할 뿐 아니라 그 빛을 미워하고 있다. 이들은 영혼을 파멸시키는 패거리들이다. 그들은 하늘이 보낸 빛과 백성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짓밟아 왔으며, 그분의 성령을 무시하고 행동하고 있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눈을 뜨라고 호소한다. 진리와 의에 조화되지 않는 인물로 알려진 사람들의 결정을 시인하고 수행하게 될 때, 그대는 자신의 믿음을 약화시키고, 하나님과의 교제에 대해 흥미를 잃게 될 것이다. 그대는 여호수아에게 전달된 음성을 들어야 한다.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기었나니 … 이스라엘아 너의 중에 바친 물건(저주받은 물건)이 있나니.” “그 바친 물건(저주받은 것)을 너의 중에서 제하기 전에는 너의 대적을 당치 못하리라”(수 7:10-13). 그리스도께서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눅 11:23.고 선언하신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의 기별

주님께서는 크신 자비를 베푸셔서 와그너와 존스 목사를 통해 그분의 백성들에게 지극히 소중한 기별을 보내셨다. * 이 기별은 들리움을 받으신 구주, 온 세상의 죄들을 위한 희생 제물에 관한 소식을 세상을 향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낼 것이다. 92 그것은 보증물을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를 제시하였다. 그것은 백성들에게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이도록 초청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대한 순종으로 나타난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야에서 잃어버렸다. 그들은 그분의 거룩한 인격, 공로, 인간 가족들에게 행하신 변함없는 사랑을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모든 권세가 그분께 주어졌으므로 그분은 인간들에게 풍성한 은사를 나누어 주시며, 값으로 헤아릴 수 없는 그분 자신의 의를 속절없는 인간 대리자들에게 나누어 주신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세상에 전파하도록 명하신 기별이다. 이것은 셋째 천사의 기별이며, 이 기별은 큰소리로 전파되고, 크나큰 성령의 부어지심이 수반될 것이다.

들림을 받으신 구주께서는 값없는 언약의 축복 즉, 그분을 믿는 모든 영혼을 위하여 얻으시려고 죽으신 유익을 나누어 주시기 위해 보좌에 앉으신, 죽임을 당한 어린양으로 그분의 효험 있는 사업 가운데서 나타나야 한다. 요한은 그 사랑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것은 너무 깊고, 너무 넓었다. 요한은 인간 가족들을 향하여 그것을 쳐다보라고 호소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늘 법정에서 교회를 위해 간구하고 계시며, 그분의 생명의 피로 구속의 값을 치르어 주신 이들을 위해 간구하고 계신다. 아무리 세기가 바뀌고 세월이 흘러갈지라도 이 대속하는 희생의 효력은 결코 줄어들 수 없다. 그분의 은총의 복음 기별은 교회를 향해 분명하고도 명백한 모습으로 제시되어야 했다. 그렇게 함으로 세상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가 율법, 율법만을 말하면서 그리스도를 가르치거나 믿지 않는다는 말을 더이상 할 수 없게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효력은 생동감 있게, 능력 있게 백성들에게 제시되어야 했는데 이는 그들이 믿음으로 그 공로를 붙잡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93 향기로운 향연이 하나님 앞에 올라가고 있는 동안에 대제사장이 속죄소 위에 따뜻한 피를 뿌렸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고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의 효력을 간구할 때, 우리 기도는 우리 구주의 품성의 공로의 향기와 함께 하늘로 올라간다. 우리는 자신의 무가치함에도 불구하고 죄를 짊어지시고 죄인을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 계시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통회하는 심령으로 하나님 앞에서 시인한 모든 죄를 그분은 제거하신다. 이러한 믿음이 교회의 생명이다. 광야에서 모세에 의하여 뱀이 들려지고, 불뱀에게 물린 모든 이들에게 쳐다보고 살라는 명령이 내렸던 것처럼, 인자도 들려져야만 했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죄인이 들림 받으신 구주를 바라보는 일을 필생의 사업으로 삼고, 주장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그 공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는 예수께 눈을 고정시키지 않고서는 물 위를 걸을 수 없었던 베드로처럼 구원을 받을 수 없다. 현재 사단은 시야에서 예수님을 놓치게 하고, 인간을 바라보게 하며, 인간을 신뢰하도록 하고, 인간에게서 도움 받기를 기대하도록 하는 것을 단호한 목표로 삼고 있다. 여러 해에 걸쳐서 교회는 인간을 바라보고 인간에게서 많은 것을 기대해 왔으나, 우리에게 영생의 소망의 중심이 되시는 예수님은 바라보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종들에게 예수 안에 있는 진리를 제시하는 증언을 주셨는데, 이것은 분명하고도 명백한 면에 있어서 셋째 천사의 기별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든 사람이 빛을 분별하고 빛 가운데서 행할 수 있도록 요한의 말을 외쳐야 한다.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쳤느니라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1-36).

94 이것은 세계 방방곡곡에 전파되어야 할 증거이다. 그것은 율법과 복음을 제시하며, 두 개를 완전히 하나가 되도록 묶는다(로마서 5장과 요한일서 3장 9절부터 그 장 마지막까지 참고하라). 이 소중한 성경 말씀은 마음문을 열고 받아들이는 모든 이에게 감동을 줄 것이다. “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에게 비취어 깨닫게 하나이다”(시 119:130). 그런 사람들은 심령에 통회하는 자들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이들은 단지 이름뿐인 신앙, 진리에 관한 이론, 율법주의적인 종교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효과적으로 믿으며, 하나님의 풍성한 선물들을 받아들이는 자들이다. 그들은 은사 주시기를 간구하는데, 이는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 1:16)고 말할 수 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요일 4:8-13).

이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기별

95 주님께서 그분의 종들에게 주신 기별이 모든 인간 대리자들의 심령과 마음속에서 역사하는 것이 그분께서 원하시는 바로 그 일이다.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며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교회의 끊임없는 삶이다. 그러나 하나님께나 인간에 대한 사랑이 거의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사자들에게 백성이 필요로 하는 것을 주셨다. 기별을 받아들인 자들은 큰 축복을 받았는데, 이는 그들이 의의 태양으로부터 나오는 광명한 빛을 보았으며 그들의 심령 속에 생명과 희망이 솟아올랐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바라보았다. 그분은 영원한 보증의 말씀을 주신다. “두려워 말라 나는 …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계 1:17.18).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요 14:19). 흠없으신 하나님의 어린양의 보혈을 신자들은 심령에 적용한다. 위대한 원형이신 분을 바라보며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4). 의의 태양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알려 주시기 위해 우리 마음을 비추어 주신다. 성령의 직무에 대해 그분께서는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요 16:14)고 말씀하신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기도했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그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시 51:7-13).

주님께서는 이 위대한 주제들이 우리 교회들 안에서 연구되기를 원하시며, 모든 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도록 한다면, 그것은 우매한 자들에게 빛을 비추어 깨닫게 할 것이다. 96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뇨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 불을 피우고 횃불을 둘러 띤 자여 너희가 다 너희의 불꽃 가운데로 들어가며 너희의 피운 횃불 가운데로 들어갈지어다 너희가 내 손에서 얻을 것이 이것이라 너희가 슬픔 중에 누우리라”(사 50:10.11). (이사야 29:13-16.18-2.참조).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9:23.24).

주님의 율법이 효력을 상실케 된 이 말세 시대만큼 주님께서 그 선택하신 자들에게 위대한 은혜를 나타내신 때가 결코 없었다. “여호와께서 자기의 의로우심을 인하여 기쁨으로 그 교훈을 크게 하며 존귀케 하려 하셨으나”(사 42:21).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에 대하여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이 백성이 도적맞으며 탈취를 당하며 다 굴 속에 잡히며 옥에 갇히도다 노략을 당하되 구할 자가 없고 탈취를 당하되 도로 주라 할 자가 없도다”(사 42:22). (이사야 43장 참조). 이것은 성취될 예언들이다.

하나님의 기별을 경멸하는 것에 대한 경고

나는 오랫동안 빛을 거절하고* 반대하는 정신을 품어 온 이들에게 경고 하고자 한다. 그대는 얼마나 오랫동안 하나님의 의의 사자들을 미워하고 멸시하려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분의 기별을 주셨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증거한다. 97 그대에게는 구원이 있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해서 뿐이다. 성령의 은혜가 거듭거듭 그대에게 제공되었다. 위로부터 빛과 능력이 그대들 속에 충만하게 임하였다. 주님께서 그분의 종들로 인정하시는 이들이 누구인지를 모든 사람들이 분별할 수 있는 증거가 여기에 있었다. 그러나 그 사람들과 그들이 증거하는 기별을 멸시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그들을 광신주의자, 극단주의자, 열광주의자라고 조롱해왔다. 내가 그대에 대해 예언을 하고자 한다. 만일 그대가 신속히 그대의 심령을 하나님 앞에서 겸비하게 하고 수없이 많은 그대의 죄들을 고백하지 않는다면, 때가 너무 늦었을 때 그대가 하나님을 대항하여 싸워 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더이상의 개혁이나 용서를 이룰 수 없는 때, 그대가 거스려 말한 이들이 세상에 표징이요 하나님을 위한 증인이었다는 것을 그대는 성령께서 주시는 깨달음을 통해 보게 될 것이다. 그 때에 그대는 만일 과거를 속할 수 있다면, 또한 그토록 열렬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영의 감동하심을 받아 세상을 향해 엄숙한 경고의 음성을 높이 발할 수 있다면, 또한 그들처럼 반석처럼 견고한 원칙 위에 설 수 있다면, 온 세상이라도 바치고자 할 것이다. 그대가 사태를 뒤집어 버린 것들을 주님께서는 아신다. 지금까지 걸어온 것처럼 빛을 거절하며 조금만 더 가보라. 그러면 그대는 잃어버린 바 된다. “사람이 부정하고도 스스로 정결케 아니하면 … 총회 중에서 끊쳐질 것이니라”(민 19:20).

그토록 오랫동안 거짓된 이정표 역할을 하며 그릇된 길을 가리켜 왔던 이들에게 나는 결코 부드러운 기별을 전할 수 없다. 만일 그대가 그리스도께서 파송하신 사자들을 거절한다면, 그대는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것이다. 그대 앞에 여러 해 동안 제시된 이 위대한 구원을 거절하고, 영광스럽게도 제시된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한 칭의와 성령의 정결케 하시는 능력을 통한 성화를 멸시해 보라. 그러면 더이상 속죄하는 제사가 없게 되며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게 된다. 그대에게 간청하노니, 그대 자신을 낮추고 빛과 증거를 더이상 완고하게 거절하지 말라. 98 주님께 이렇게 말씀드리라. 내 죄악이 나와 나의 하나님 사이를 내었다고 주님께 말씀드리라. 오 주님, 내 죄악을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의 기념책에서 내 죄들을 도말해 주십시오. 그분의 성호를 찬양하라, 그분께는 용서가 있으며, 그대는 회심하고 변화될 수 있다.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 9:13.14).

더욱 깊은 연구를 위해 참고할 서적:복음 교역자, 297-304(영문); 가려뽑은 기별 1권, 350-400(영문).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이스라엘 자손들의 우상숭배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침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 시라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고전 10:1-5). 사도에 의해 위의 말씀에 언급되고, 시편 105편과 106편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경험은 말세를 사는 하나님의 백성이 특별히 연구해야 할 경고의 교훈을 간직하고 있다. 나는 이 장들을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읽으라고 권한다.

99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고전 10:6.7).

온 이스라엘 백성이 듣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무섭도록 장엄한 모습으로 그분의 율법의 계율들을 선포하였다. 죄책감에 사로잡혀 주님의 임재의 영광에 소멸될까봐 두려워서 백성들은 모세에게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출 20:19)라고 간청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한 율법을 모세에게 전달하시고자 그를 산으로 불러 올리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를 통해 받았던 그 엄숙한 인상이 얼마나 빨리 백성들에게서 사라져 버렸는가! 무리의 지도자들까지도 이성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하나님과의 언약, 공포에 질려 벌벌 떨며 엎드려 있던 일 등이 연기 사라지듯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아직도 하나님의 영광이 소멸시키는 불처럼 산상에 머물고 있건만 모세가 그들에게서 떠나간 때에 예전에 젖어 있었던 사상과 감정이 그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였다. 백성들은 모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데 지쳐 하나님을 대표할 만한 어떤 가시적(可視的)인 것을 만들자고 극성스럽게 요구하기 시작했다.

진영을 책임지게 된 아론은 그들의 소동에 굴복하였다. 자기를 붙들어 주시도록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면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발휘하는 대신에 그는 백성들의 요구를 물리친다면 그들이 자기를 죽일 것이라고 믿도록 유혹을 받았다. 그리하여 그는 그들의 요구대로 행하였다. 그는 금으로 만든 장신구들을 모아 녹여서 송아지를 만들고, 조각하는 연장으로 새겨 형상을 만들었다. 그 후에 백성의 지도자들은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출 32:4)라고 선포했다. 100 자기가 만든 형상이 백성들을 즐겁게 하는 것을 보았을 때, 아론은 그의 솜씨를 자랑하였다. 그는 우상 앞에 제단을 만들고, “공포하여 가로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출 32:5.6). 그들은 마시며 축제를 벌이고, 환락과 춤에 흠뻑 빠져 버렸으며 이교의 거짓 신상 숭배의 특징인 수치스러운 음란 행위로 끝이 났다.

하늘의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보시고 진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모세에게 경고하셨다.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모세가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애굽 사람으로 이르기를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주를 가리켜 그들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나의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영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출 32:10-14).

손에 두 개의 증거판을 들고 산에서 내려올 때, 모세는 백성들의 함성을 들었으며, 가까이 갔을 때에 그는 우상과 흥청대는 무리를 보았다. 101 하나님께서 수치를 당하셨고, 백성이 그분과 더불어 맺은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에 두려움과 분노에 사로잡힌 그는 두 돌판을 땅에 내어 던져 산 아래에서 깨뜨려 버렸다. 그들을 위해서 스스로 자기 목숨을 내어 놓을 만큼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성 때문에 그는 화를 내었고, 그것은 이토록 무시무시한 의미를 지닌 행동으로 표현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꾸짖지 않으셨다. 돌판을 깨뜨린 것은 이스라엘이 극히 최근에 하나님으로 더불어 맺은 언약을 깨뜨렸다는 사실을 대표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것은 죄에 대한 의분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성에서 우러난 것이지, 자기애(自己愛)나 상처받은 야심 때문에 일어난 화가 아니다. 이것을 가리켜 성경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엡 4:26)라고 언급하는데 모세의 분노가 이러한 것이었다.

“모세가 그들의 만든 송아지를 가져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시우니라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 백성이 네게 어떻게 하였기에 네가 그들로 중죄에 빠지게 하였느뇨 아론이 가로되 내 주여 노하지 마소서 이 백성의 악함을 당신이 아나이다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되었는지 알 수 없노라 하기에”,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로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출 32:20-25).

사단의 일의 특별한 영향력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전 10:11)는 경고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102 대활동가 사단을 섬기는 일에 그들의 극단주의와 광신주의가 끼친 영향력을 주목하라. 그 악한 자가 백성들을 지배하기 시작하자마자 악마적인 특성들이 나타났다. 백성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자비하심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또한 가장 수치스러운 행동을 하도록 이끌고 있는 마귀를 저항해야 할 필요성도 전혀 생각하지 않고 먹고 마셨다. 동일한 정신이 벨사살의 신성 모독적인 잔치에도 나타났다. 그들은 감각이 마비될 정도에 이를 때까지 환락과 춤, 유쾌함과 노래에 몰두하였다. 그 후에 그들은 부절제와 욕정 속에 빠져 버렸다. 그 수치스러운 장면 속에는 이 모든 것이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하나님께서 치욕을 당하셨다. 이방인들의 목전에서 그분의 백성들이 수치거리가 되었다. 분별력을 상실하고 정신을 잃어버린 그 무리에게 심판이 떨어질 찰라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비하시게도 그들에게 죄를 떠날 기회를 주셨다.

“이에 모세가 진문에 서서 가로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출 32:26). 나팔수들은 말을 받아서 나팔로 그것을 울려 퍼지게 하였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오는지라”(출 32:26). 회개하는 모든 이는 모세 곁에 설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그 친구를, 각 사람이 그 이웃을 도륙하라 하셨느니라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명 가량이 죽인 바 된지라”(출 32:27.28). 죄인을 지켜 주기 위해서 어떠한 편견이나 위선을 행하지 않았으며, 전혀 모의하지도 않았다. 여호와의 공포가 백성들 위에 임했기 때문이다.

103 하나님의 임재와 위대하심을 거의 인식하지 못한 자들과 그분의 위엄이 나타난 후에도 주님을 떠나려고 했던 이들은 이스라엘에게 끊임없이 올무가 될 것이었다. 그들은 도륙을 당하여 죄에 대한 견책이 되었으며, 하나님께 수치를 돌린 백성들에게 두려움이 되었다.

자기를 기쁘게 하는 일의 위험

나는 더이상 이 이야기에 대해서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모든 도시, 모든 촌락, 모든 가정에 거하는 각 사람에게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는 영감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이 성경의 교훈을 연구하라고 권하는 바이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밝혀져 있는 유일한 택정(擇定)이 나타나 있다. 넘어질까 조심하는 이들은 결국 받아들여진 바 될 것이다. 사람들을 감히 자기 만족의 길로 이끌고 가는 것보다 더 치명적인 뻔뻔스러운 행위는 없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엄숙한 경고를 바라보며 부모들은 조심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께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청년들에게 쉴새없이 다가오는 위험들을 부모들은 충성스럽게 지적해야 하지 않겠는가? 건강과 행복에는 오락이 필수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여 청년들에게 쾌락적인 파티들을 허용하는 이가 많지만, 그 길에는 얼마나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른다! 쾌락에 대한 욕구가 충족되면 될수록 그것은 더욱 배양되고 강력해진다. 생애의 체험은 주로 오락을 통한 자기 만족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는 조심하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신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더욱 깊은 연구를 위해 참고할 서적: 교회증언 2권의 색인에서 “청년”란을 참조하라.

104 우리는 모든 차이가 녹아 없어지는 지점에까지 도달해야 한다. 내게 빛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그것을 전하는 의무를 행할 것이다. 주님께서 백성들에게 전달하라고 내게 주신 기별에 대하여 다른 이들과 상의한다고 가정해 보라. 문은 닫혀져서 그 빛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내시는 이들에게 도달하지 않을 수 있다. 예수님이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의 본 바 모든 능한 일을 인하여 기뻐하며 큰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가로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눅 19:37-40). 리뷰 앤드 헤랄드, 1890.2.18.

나의 형제들이여, 하나님께서는 위대하신 자비와 사랑으로 그대에게 큰 빛을 주셨으며, 그리스도께서는 그대에게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 10:8)고 말씀하신다. 그대에게 주신 빛을 어둠 속에 있는 이들에게 비추어라.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말씀만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일에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신 것, 그리고 그분의 능력 안에서 우리가 넉넉히 이길 수 있게 하신 것에 대해 기뻐하고 즐거워 하자.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신다. “내게로 오라 내게는 모사와 깊은 판단이 있노라 너에게 줄 지식과 힘이 있노라”. 우리는 하나님의 감동하심 아래 기록된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시 18:35)라는 말씀을 기억하면서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하여야 한다. 하나님께 그분의 은혜의 기름을 주시기를 간구하라. 기록되었든지 말씀되었든지 어떻게 주어졌든지간에 모든 말씀을 주의 깊게 상고하라. ― 리뷰 앤드 헤랄드, 1904.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