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와 복음 교역자에게 보내는 권면

본문보기

주제제목없음

347 1895.3.8.

나는 원근 각지에 있는 나의 형제들에게 꼭 해야 할 말이 있다. 나는 침묵을 지킬 수 없다. 그들은 올바른 원칙 위에서 일하고 있지 않다. 책임 있는 지위에 서 있는 이들은 그 중요한 지위 때문에 자기가 전혀 과오가 없는 판단의 인물이 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하나님의 관할 아래 있다. 인간들에게 전적으로 안전한 것은 지극히 높으신 분께 지식이 있음을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의 것을 신뢰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그분의 지혜를 신뢰하는 이들은 안전한 행로를 걷고 있다. 그들은 곡식을 밟아서 탈곡하는 황소에게까지도 재갈을 물릴 수 있는 권세가 있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의 동역자요 주 예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28-30)고 말씀하신 인간 대리자들을 지배하려고 하는 것은 얼마나 무례한 짓인지 모른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전 3:9).

주님께서는 과오를 범하기 마련인 인간들의 지시와 지배 아래 그분의 인간 대리자 중 그 누구도 들어가도록 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인간들에게 ‘그대는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는 권세를 주지 않으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지 않으신 한 권세가 배틀크릭에서 행사되고 있으며, 그분께서는 이러한 권세를 착복하는 이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들은 마치 하나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상징물들을 보호하실 수 없기라도 한 것처럼 웃사로 하여금 법궤가 흔들리지 않도록 손을 뻗도록 한 동일한 정신을 어느 정도 갖고 있다. 348 하나님의 인간 대리자들을 향해서 인간의 힘과 권위를 행사하는 것은 훨씬 많이 줄어들어야 한다.

이 시대를 위한 사업

이 시대를 위한 위대한 사업은 생명의 말씀을 제시하며 빛을 전파하기 위하여 인간들이 가까운 곳과 먼 곳, 길과 산울가 등 도처로 나아가기를 요구한다.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의 소유인 교역자들이 그들의 지배를 받아야 되는 것처럼 한 사람이나 어떤 인간 회의에게 이 사업을 지워 주셨는가?

그 어떤 분야이든지 하나님의 사업과 관련된 업무는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며 일하는 인물들을 요구한다. 이는 사업에서의 능력과 성공은 오로지 인간과 하나님의 협력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늘에 속한 영원한 사물들에 대하여 이해하고 있다는 최고의 증거를 보이지 않는 한, 그 인물은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영혼들을 구원하는 사업과 관련해서 어떤 일에도 봉사하도록 승인되어서는 안 된다. 성화되지 않은 손과 뇌에 너무 많은 권력이 전적으로 위탁되어 있어서 매우 현명하지 못한 행동이 이루어졌는데, 그것들은 하나님의 뜻과 길에 어긋난다.

어떤 인간도 다른 사람의 의무에 대하여 적절한 판단자가 될 수 없다. 인간은 하나님께 책임을 진다. 따라서 마치 주님께서 그들에게 일으켜 세우고 쓰러뜨리는 권세를 위임이라도 하신 것처럼 유한하고 잘못을 범하기 마련인 인간이 그 동료들에 대하여 관할권을 장악할 때, 온 하늘은 분노로 가득 찬다. 마치 이들 유한한 인간들이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인간 재판관들에 의하여 인간의 마음과 사업에 관련해서 확립되고 있는 이상한 원칙들이 있다.

349 이 신성한 책임을 지고 있는 이들에게 이것은 어떻게 된 일인가? 영적인 마음이 없는 사람들, 하나님께 헌신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 동료들의 의지와 행동에 관련하여 수행할 수 있는 그 어떤 위임장도 갖고 있지 못하며, 행사할 수 있는 권위도 전혀 없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과 매일마다 교제하지 않으면, 사업에 적합하게 되기 위하여 온 마음을 다해 그분을 찾는 대신에 다른 사람들의 양심을 지배하는 권세를 취하려고 들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의식은 두려움을 주고 영혼을 정복할 것이다. 이것이 그들에게 없다. 영혼 속에서 불타오르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으면, 인간을 향한 사랑은 식어진다. 그들의 마음은 인간의 불행을 보고도 무감각하다. 이기심의 더러운 흔적이 생애와 품성에 남게 되었고, 어떤 이들에게서는 이 형상과 표제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업의 운영이 그러한 손들에 위탁되어야 하는가?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영혼들이 하늘로부터 자기에게 주어진 빛을 거절한 사람들의 뜻에 따라 조종되어야 하겠는가? 우리는 사람이 만든 율법, 그 동료와의 인간 관계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의 원칙들과 일치되지 않는 계획과 방법들에 대해 두려워해야 한다. “너희는 다 형제니라.”

현재의 사정은 변해야 한다

현재의 사정은 변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가 그리스도의 노선 안에서 일하지 않는 당신의 도구들에게 임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대들 중 어느 누구에게 당신의 유업에 대하여 지배권을 주셨는가? 이러한 종류의 일들이 수년에 걸쳐 들어왔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보시며, 그것에 대해 불쾌하게 여기신다. 인간이 하나님과 당신의 인간 대리자 사이에 끼어들 때, 그들은 하나님을 모욕하고 참된 격려와 동정과 사랑을 필요로 하는 이들의 영혼을 확대한다. 나는 우리 교역자들에게 말하도록 강권함을 받고 있다. 350 그대의 지위가 무엇이든지 인간을 의지하거나 육체로 그대의 힘을 삼지 말라.

성령께서 주님의 사업에 관련을 맺고 있는 그대에게 말하도록 나를 강권하고 계신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라. 만일 그대가 마음을 열어 땅에서 기원하지 않는 지혜를 받으려 하지 않거나 그리스도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지 않은 채로 그분의 은혜를 의지하지 않고 한 시간, 혹은 한 순간을 보낸다면, 그대는 다른 불과 신성한 불을 구별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엄격하게 금지된 성격의 말이 그대의 입술에서 신속히 흘러나와 소망과 용기와 믿음을 파괴할 것이다. 하늘 책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대의 말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신 바된 소유인 인간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를 상하게 한 원수의 감동으로 된 것이다. 무한한 가치를 지닌 영혼들이 무관심하게 취급을 받았으며, 소외되었으며, 유혹을 홀로 싸우도록 버려졌으며, 사단의 전쟁터로 내몰림을 당했다.

욥의 친구라고 공언한 이들은 그 일을 더욱 비참하고 견디기 어렵게 한 형편 없는 위로자들이었으며, 그들의 추측처럼 욥에게 죄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과오 때문에 고통과 고민 속에 빠져 있는 이들은 절실하게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는데, 사단은 이들을 절망 가운데로 내몰기 위해 애쓰고 있다. 부드러운 동정으로 잘못을 범한 이들을 만나야 할 사람들이 사단에게 정복당하여 패배감과 무력감을 느끼고 있는 영혼의 애절한 고뇌를 얼마나 적게 이해하고 있는지 모른다!

가장 비참한 것은 죄책감 아래에서 고통 당하고 있는 이의 상태이다. 그는 기절하여 비틀거리며 땅에 쓰러지는 사람과 같다. 자신을 의롭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은 허풍쟁이 위로자가 된다. 그들은 이러한 영혼들을 거칠게 다룬다. 351 모욕과 학대로 그들의 거친 마음을 나타냄으로 그들은 사단이 즐겨 행하는 동일한 일을 행하고 있다. 시련과 시험에 빠진 영혼은 어느 것도 명확하게 볼 수 없다. 마음은 혼란하게 되었으며, 어디로 발걸음을 내디뎌야 할지를 모른다. 오, 그렇다면 깊은 고통을 주게 될 말을 전혀 하지 말라!

실수한 자들을 취급하는 방법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마 18:6.7.10-14).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의인[회개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그대]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 5:32)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동역자된 이들은 그리스도의 노선 안에서 일할 것이다. 오해와 몰이해, 번민과 고통 가운데 푹 빠져 있는 가련한 영혼들, 잃어버린 바된 방황하는 양들이 있다. 그의 마음은 구름에 싸여 있어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으며, 혼자 힘으로는 거의 어떻게 할 수 없는 불신이 그를 사로잡고 있다. 그러나 그는 용서와 평강을 애타게 갈망한다.

352 이런 모습이 그대 앞에 공개될 때, ‘그러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나갈 그리스도인이 전혀 없는가?’라는 질문이 떠오를 것이다. 이 질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신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희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4.5). 차갑고 매정한 바리새주의가 그리스도를 따르노라 공언하는 이들을 사로잡고 있으며 예수님의 사랑은 죽었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계 3:1.2). 여기에서 문제는 해결된다. 여기 기록된 사람들에게는 만일 그들이 그대로 따라서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했더라면 전적으로 다른 행위를 하도록 했을 빛이 있었다. 그들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도와줌으로 예수께서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마 9:2)고 그 영혼을 향해서 말씀하셨을 때 마음속에서 불타올랐던 빛을 살아 있는 채로 간직할 수 있었다.

이루어져야 할 일이 하나하나 상세하게 명백히 제시되었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계 3:2.3). 353 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였으며, 진리에 큰 감동을 받았지만, 독선과 자만 그리고 그들이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진리의 지식을 소유한 것에 대한 교만에 빠져 자신의 영혼이 냉랭하고 그 믿음은 흐릿하게 변해 버리도록 했다. 실천에 옮기지 않은 진리는 그 능력을 상실한다. 마음은 그 신령한 감화에 대해 닫혀지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일꾼이 되어야 할 이들은 게을러지고, 그들이 도와주었어야 할 영혼들은 절망과 흑암과 좌절 속에 버려진다.

가라앉는 영혼들을 도우라

동정에 굶주리고, 생명의 떡을 갈급해 하는 영혼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큰 궁핍을 알릴 만한 자신이 없다. 하나님의 사업과 관련해서 책임을 지고 있는 이들은 자신이 이러한 영혼들을 도와주는 지극히 엄숙한 책임 아래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만일 그들이 부드럽고 설복시키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감화를 지녔더라면, 그들은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준비가 갖추어졌을 것이다. 죽어가는 이 불쌍한 영혼들이 그들에게 도움을 바라고 있는가? 아니다. 그들은 그 방면으로부터의 도움의 소망이 다 떨어질 때까지 그렇게 했다. 그들은 구원하기 위해서 손 하나도 내뻗혀지는 것을 보지 못한다.

내게 이렇게 형편이 제시되었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 어떤 사람이 파도와 더불어 헛되이 싸우고 있던 중 보트 한 척을 발견하고 최후의 남아 있는 힘을 다해서 거기 가는데 성공하여 그 가장자리를 손으로 붙들었다. 힘이 빠져서 그는 말할 수가 없었지만, 그 얼굴에 나타난 고민은 인간애에 호소하여 그 어떤 사람의 마음속에 동정심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그러나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그를 끌어 올리기 위해 손을 뻗는가? 아니다! 온 하늘은 그들이 연약하게 매달리는 손을 뿌리쳐서 고통에 빠진 사람이 파도 속에 가라앉아 두 번 다시 떠오르지 않는 것을 쳐다보고 있다. 이러한 장면이 거듭해서 벌어졌다. 이 장면을 바로 그러한 영혼들의 속량물로 당신의 생명을 주신 분께서 목격하고 계셨다. 주님께서 구원하기 위하여 손을 내리뻗으셨다. 354 주님께서는 죄인들을 향해서 그리스도의 동정과 연민을 나타내는 일에 있어서 인간들이 행하도록 하신 일을 손수 하셨다. 예수께서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고 말씀하신다. 갈바리는 우리 모두에게 그 사랑의 깊이를 보여 준다.

흑암 속에 빠져서 죄책감과 고통과 고민이 가득 찬 채 아직도 하나님은 의로우시며 선하다고 생각하는 영혼들이 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속에 소망의 불길이 꺼지지 않도록 돌보신다. 불쌍하고 어두워진 영혼은 ‘만일 내가 하나님 앞에 나가서 내 처지를 호소할 수만 있다면, 그분께서는 그리스도 때문에 불쌍히 여기시고, 이 무시무시한 두려움과 고민은 물러날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는 사람들에게 말하려고 했지만, 친구로 여겼던 사람들에게 거칠게 거절당하고, 책망 당하고, 조롱 당하였다. 때때로 그들 머리 위에 쏟아진 비난들이 소망의 마지막 불꽃을 거의 꺼버릴 뻔 했다. 진실되고 정직한 목적을 의식하고 있는 영혼은 강철같은 심장의 사람들보다도 하나님이 덜 두렵다는 것을 발견한다. 인간적 고민으로 괴롭힘을 받은 영혼들은 마음을 읽을 수 없으면서도 그 동료들을 판단하는 일을 짊어진 이들의 그릇된 판단과 정죄 때문에 돌아서 버리고 만다. 그는 오해의 그림자가 없으신 분, 마음의 모든 충동을 아시는 분, 모든 유혹의 환경을 아시는 분께로 돌아선다. 하나님께서는 과거 생애의 모든 행동을 아시지만, 이 모든 것을 고려하고서도, 염려에 빠진 영혼은 그분께서 긍휼과 동정의 하나님이신 것을 알고 자기의 경우를 하나님께 의탁하려 한다.

하나님의 손안에 빠지자

355 자기 죄에 대한 처벌을 선택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다윗은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노라”(삼하 24:14)고 말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영혼의 투쟁과 고뇌를 아신다고 느꼈다. 하나님의 성품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될 때, 인간은 하나님이 인간 대리자들을 통해서 엿볼 수 있는 무자비하고 복수심에 불타는 모습이 아님을 보게 된다. 그는 고난과 시련이 그들로 하여금 당신의 은혜를 붙잡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훈련하시고, 당신의 길을 가르치시고자 임명하신 방법임을 보게 된다.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뇨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사 50:10). 뒤로 미끄러지는 불쌍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의 강가로 인도될 때, 그는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 23:10)고 외친다. 고난 당하는 영혼은 역경 아래에서도 하나님 안에서 인내심 있고, 신뢰할 만하며, 승리하는 인물이 된다.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 2:17.18).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4-16).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히 3:12).

유한하고 실수하기 마련인 인간이 자신을 하나님보다도 더 중요한 인물로 여긴다는 증거를 보여 줄 때, 우리 주 예수님의 생애를 특징지운 부드러운 정신을 나타내지 않으면서 자기 자신을 의롭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그가 회개하지 않는 한, 촛대가 신속히 그 자리에서 옮겨질 것임을 알 수 있다. 356 온 하늘은 인간 대리자들의 무시무시한 냉담에 놀란다. 유혹을 받아 죄에 빠지고 용서가 필요한 인간들이 여전히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으며, 원수의 함정에 빠진 형제에게 무정하다. 그들은 그의 필요와 위기를 보고 그 발을 견고한 반석 위에 세우기 위하여 그리스도처럼 동정심과 노력을 베풀어야 한다.

치명적인 기만

인간의 마음에 지극히 두렵고 치명적인 기만이 임하고 있다. 인간들이 하나님의 사업과 관련하여 책임 있는 지위에 있기 때문에 그들은 스스로의 평가를 통해 의기 양양해 하며, 하나님께서 보실 때 그들의 영혼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고귀한 다른 영혼들이 등한시되고 있으며, 거칠게 취급을 당하고 있으며, 상처를 받아 죽도록 내팽개쳐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신성한 사물들을 다루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가장 잘 아시는 어떤 이유로 하나님께서 불을 붙이신 신령한 불과 그들이 드리는 다른 불을 구별할 수 없는 인간들 위에 하나님의 회심시키는 능력이 임해야 한다. 그 다른 불은 나답과 아비후가 드렸던 것처럼 하나님을 모독한다. 하나님의 사랑의 신령한 불은 위기에 빠진 인간들을 향하여 부드럽고 친절하고 동정적인 사람이 되게한다. 날카롭고 고압적인 말을 즐기는 사람들은 사실상 ‘나는 당신보다도 더 거룩하오. 당신은 내 높은 지위를 보지 못하시오?’ 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위가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 357 편파심과 위선 없이 감사하며 자기 본위에서 탈피한 인물이 되도록 하는 것은 품성의 완전, 곧 그리스도의 정신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가치 있게 여기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그 생명이 감취어진 이들에 대하여 주님께서는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사 49:16)라고 말씀하신다.

책임 있는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내게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기별이 있다. 그것은 이사야 55장이다. 이 장을 연구하라. 어떤 사람도 자기 사업 분야에서 더욱 큰 책임을 지고 있다고 해서 그 동료 교역자들보다도 자기가 높은 사람이라고 간주해서는 안 된다. 만일 그가 다니엘처럼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또한 이기적이고 부정직한 행위를 하는 자신의 불완전함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의 안에서 진리를 드러내기 위해서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이르러 오는 능력을 얻으려고 한다면, 교만이나 자만의 흔적을 소유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께로부터 지혜의 정신을 얻게 될 것이다.

거룩한 불과 다른 불

그는 사업의 신성성을 나타낼 것이며, 진리를 크게 할 것이며, 인간과 천사들 앞에 그리스도의 품성의 거룩한 향기를 항상 내뿜을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불을 붙이신 신성한 불이다. 이것 외의 것은 어느 것이든지 하나님께서 증오하시는 다른 불이며, 사업상의 지위가 더욱 클수록 더욱더 불쾌한 것이다.

내게는 하나님께서 시온의 죄인들에게 주시는 기별이 있는데, 그들을 향해 그리스도께서는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계 3:2)라고 말씀하셨다. 그대는 언제나 신성한 불을 드려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 때에 그리스도의 사역, 그분의 사랑, 그분의 긍휼, 그분의 의가 온전하게 가납될만한 거룩한 향연으로서 하나님 앞으로 올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358 그러나 거친 말을 사용함으로, 자만심을 품음으로, 자아를 높임으로, 스스로 의롭다 함으로써, 전제적 권위를 행사함으로, 억누름으로, 학대로, 하나님의 백성의 자유를 제한하고, 그들을 그대의 계획과 규율에 따라 얽어맴으로써 다른 불이 드려지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 아니며, 또한 그분의 마음속에 있는 것도 아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는 다른 불이며, 그분의 품성을 끊임없이 허위로 진술하는 것이다.

내게는 그대에게 줄 기별이 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사 55:6-11).

“공평이 뒤로 물리침이 되고 의가 멀리 섰으며 성실이 거리에 엎드러지고 정직이 들어가지 못하는도다 성실이 없어지므로 악을 떠나는 자가 탈취를 당하는도다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시고 그 공평이 없은 것을 기뻐 아니하시고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의로 호심경을 삼으시며 구원을 그 머리에 써서 투구를 삼으시며 보수로 속옷을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을 삼으시고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그 대적에게 분노하시며 그 원수에게 보응하시며 섬들에게 보복하실 것이라 서방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겠고 해돋는 편에서 그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 기운에 몰려 급히 흐르는 하수같이 오실 것임이로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 중에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사 59:14-20).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359 오스트레일리아 그랜빌, 1895.9.

나는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 상징적인 모습으로 장면들이 잇달아 내 앞을 지나갔으며, 그것들을 모두 쓰기 시작하기까지는 결코 안정을 얻을 수 없다. 사업의 중심부에서 일이 꾸며지고 있으며 다른 모든 기관은 동일한 길을 따라가고 있다. 대총회 자체가 잘못된 의견들과 원칙들로 말미암아 부패되어 가고 있다. * 계획을 수행하는 일에 있어서 아주 오랫동안 배틀크릭의 일들을 지배해 왔던 동일한 원칙들이 나타나고 있다.

유대 민족이 그들의 사상과 관습 상태에 빠진 것은 갑작스럽게 이뤄진 것이 아님을 나는 보았다. 세대를 거쳐 내려가면서 그들은 진리에 위배되는 원칙들을 완성하고, 그들의 종교 사상과 인간 지성의 산물인 계획들을 결합 시켜서 결국 거짓 이론에 따라 움직이게 된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것들이 최고의 것으로 군림하였다.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원칙들이 신성한 불로 대표되지만, 다른 불이 거룩한 불을 대신하여 사용되었다. 진리와 의에 어긋나는 이러저러한 계획들이 “하나님의 사업의 발전을 위하여 행해져야 한다”라는 구실로 교묘하게 들어왔다. 360 그러나 그것은 학대와 불의와 악행으로 이끄는 인간의 궁리이다. 하나님의 사업은 모든 불의의 오점으로부터 벗어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가족들에게서 그 개성이나 권리를 강탈함으로 전혀 유익을 얻을 수 없다. 모든 그러한 행실은 하나님께서 불쾌하게 여기시는 것이다. 서적 출판과 관련하여 그대들의 회의에 침투한 것과 같은 그런 행습들을 하나님께서는 결코 고무시키지 않으신다.

주님께서는 그러한 거래를 결코 받지 않으신다. 이런 행동들에는 번영이 뒤따르지 않을 것이다. 그분의 사업과 관련된 인물들이 부당하게 거래해 왔으며, 지금은 중단해야 할 때이다. 인간들로 하여금 사람을 다룰 때 십계명의 원칙에 입각하여 하도록 하고, 사업적인 거래에 있어서도 이러한 원칙들을 무시하지 않도록 하라. 허위 주장들이 마치 진리와 의인 것처럼 받아들여졌고, 만사가 그러한 주장들을 완수하는 길로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지 않으며, 그분의 품성을 그릇되게 보여 주는 것이다.

위대하시고 거룩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부정직한 행실과 결코 결탁하지 않으실 것이다. 단 한 번의 불의와의 접촉까지도 옹호하지 않으실 것이다. 인간들은 자기 권력 아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부당하게 이용해 먹었다. 그들은 개인들을 자기에게 굴복시키기로 작정하였다. 그들은 다스리거나 혹은 파멸할 것이었다. 새로운 질서를 이루기 위해서 결정적인 조치들이 취해질 때까지 결코 본질적인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판단의 지배 아래 마음과 재능을 속박하게 될 그 어떤 계획이나 방법이 우리 기관에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질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만 속해 있는 감화력의 달란트를 인간에게 주셨다. 따라서 비록 사업에 이익이 되도록 그 이점이 사용된다고 할지라도 한 명의 유한한 대리자가 다른 사람들의 재능을 자기의 절대적인 지배 아래로 끌어들이는 것보다도 더 크게 하나님을 모욕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361 그러한 조치를 통해서 한 사람의 마음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지배를 받게 되며, 인간 대리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되고 유혹 앞에 노출된다. 사단의 방법들은 한 가지 목적을 갖고 있는데, 곧 인간을 인간의 노예로 삼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그 결과로 혼란과 불신, 시기와 악한 추측들이 나타난다. 그러한 길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파괴시키고, 우리를 지배해야 하며 죄와 온갖 종류의 이기심과 위선으로부터 정결하게 해 줄 원칙들에 대한 믿음도 파괴한다.

독단적인 권세

마치 지위가 사람을 신으로 만드는 양 발전되어 온 독단적인 권세에 나는 두려움을 느끼는데, 그것은 마땅히 공포를 일으켜야 한다. 어디에서건, 누가 그렇게 행하건 그것은 저주이다. 하나님의 유업에게 이렇게 행세하는 것은 혐오스러운 인간의 지배를 초래하여 종속 상태가 벌어지게 될 것이다. 백성들은 높은 책임의 자리에 있는 인물들이 다른 사람의 마음과 성격을 꼴 짓는 데 믿을 만 하지 못하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그 결과로 신실한 인물들의 경영조차도 신뢰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특별한 도우심이 없이는 자기가 아무것도 아님을 인식하는 일꾼들을 일으키실 것이다. 시대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선물을 당신의 교회에 전해 주셨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초림하셨을 때, 산헤드린의 회원들은 그들의 뜻대로 사람들을 지배하는 데 그 권위를 휘둘렀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사단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기 위해 당신의 생명을 주신 영혼들이 다른 형태의 속박 가운데로 굴러 떨어졌다.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위치를 인식하여 하나님께 고용된 종들로서 우리의 청지기 직분을 싸게 팔아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는가? 362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을 수행해야 할 개인적인 책임을 하늘 우주 앞에서 지고 있다. 우리의 마음은 분기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수입을 나누어 주기 위해서 손에 무엇인가를 쥐고 있어야 한다. 우리 중에 지극히 비천한 사람도 그분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우리의 은사를 사용하는 하나님의 대리자가 될 수 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재능을 향상시키는 자는 하나님께 자기의 제물을 드릴 것인데, 그것은 거룩하게 구별된 선물로서 하나님 존전에서 향기로운 향처럼 될 것이다. 자기의 재능을 최선을 다해서 향상시키고 마땅히 돌려드려야 할 선물로서 유익을 끼치도록 유의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의무이다.

지배하려는 정신이 우리의 합회장들에게 뻗어가고 있다. 자기 뜻대로 지배할 권리를 부여받고 있다고 느끼면서 자기 힘에 대해 자신만만하고, 그 형제들을 지배하려고 드는 사람이 있다면 가장 훌륭한 최선책은 그를 제거하는 것인데, 이것은 커다란 해를 입지 않고, 그의 영혼을 잃어버리지 않고, 타인의 영혼을 위태롭게 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너희는 다 형제니라.” 하나님의 유업을 지배하고자 하는 이러한 성향은 이들이 자신의 길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 한, 부작용을 일으킬 것이다. 권세 있는 자리에 앉은 이들은 그리스도의 정신을 나타내야 한다. 그들은 주의를 요하는 모든 경우를 취급할 때 주님께서 그렇게 하셨을 방식으로 취급해야 한다. 그들은 성령의 채우심을 입고 나가야 한다. 인간의 지위는 하나님 보시기에 한치도 그를 위대하게 만들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가치 있게 보시는 것은 품성이다.

하나님의 선하심, 긍휼과 사랑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세에게 선포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품성이었다. 하나님을 섬기노라고 하는 이들이 그분의 부모와 같은 품성을 무시하고 그 형제들을 다루면서 존귀와 의에서 벗어날 때, 사단은 크게 기뻐하는데, 이는 그가 그들에게 자기 속성을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로마교를 좇아가는 것이다.

로마교를 좇아가는 일

363 주님의 속성을 나타내라는 분부를 받은 이들이 성경적 토대를 벗어나서 인간적 판단에 따라 타인의 의지를 강요할 규칙과 결의를 고안해 낸다. 다른 사람의 명령을 좇도록 강요하기 위한 조치들은 동정과 부드러운 사랑을 짓밟고, 하나님의 긍휼과 공의와 사랑에 대해 눈멀게 한다. 도덕적 감화와 개인적 책임이 발에 짓밟힌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그리스도의 의가 어떤 이들에게 무시를 당하고 있다. 이것은 그들의 정신과 전 생애의 체험과 반대가 되기 때문이다. 규칙, 규칙이 그들의 행동 노선이었다. 사단은 자기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 기회를 가져 왔다. 그리스도의 대표자라고 하는 이가 매섭게 사람들을 다루고, 어려운 처지로 사람들을 몰아넣는다면, 그렇게 학대를 당하는 이들은 제지하는 모든 사슬을 깨뜨려 버리든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가혹한 주인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강한 반감을 품게 될 것이며, 영혼은 그분께로부터 소외되어 사단이 그렇게 되기를 계획한 대로 될 것이다.

진리를 믿노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이렇게 매정한 것에 대하여 사단은 그것이 진리의 영향 때문이라고 비난할 것이며, 이렇게 해서 사람들은 진리에 대해 역겨워하며 돌아서 버릴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부드러운 마음이든 강철같은 마음이든 어떤 마음을 갖든지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우리 기관에서 전혀 책임을 져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자기가 하나님의 공의를 대표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분의 부드러움과 위대하신 사랑은 대표하지 않는다. 364 사단의 그럴 듯한 계략에서 우러난 인간적 창작품이 눈먼 이들에게는 아름답게 나타나는데, 이는 그것이 그들 본성 속에 본래적으로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짓을 믿고 실행함으로 그것은 그들에게 일종의 진리가 된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독창적인 마음의 작용을 통해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게 만드는 사단의 대리자들의 목적은 성취된다.

그러나 인간이 어떻게 그러한 오류에 빠지는가? 거짓 전제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그 후에는 오류를 진리인 것으로 증명하는 일에 모든 것을 동원한다. 어떤 경우에는 첫째 원리들 속에 진리와 오류가 섞여 있지만, 그것에 대한 어떤 정당한 조치도 취해지지 않으므로 사람들이 잘못 인도함을 받게 된다. 지배하고 세력자가 되기 위하여 그들은 자신의 원칙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단의 방법을 사용한다. 그들은 자신을 탁월한 판단가로 치켜세우며, 하나님의 대표자로 행세해왔다. 이들은 거짓 신이다.

어느 깃발 아래 설 것인가?*

9.24.

우리 세상의 모든 것은 격동하고 있다. 다가오는 사건들이 우리 앞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시대의 징조는 정말로 불길하다. 인간적이고 땅에 속한 것은 그 어느 것도 신뢰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은혜스럽게도 휴식의 순간을 주셨다. 모든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빌린 것이며, 그것이 신체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도덕적인 것이든 무지 속에 멸망해가고 있는 우리의 동료들을 위해서 일하도록 하신 것을 할 수 있도록 신성하게 보존해야 한다. 경고의 말씀이 온 세상에 퍼져나가야 한다. 결코 지체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지도자들의 움직임을 들뜬 마음으로 기다리고 바라보면서, 신속하게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한 깃발 밑으로 집결하고 있다. 365 우리 주님의 나타나심을 바라보고 기다리며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에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최초의 대 배도자의 지휘 아래로 신속히 떨어져가고 있다. 그들은 인간 가운데서 신을 찾고 있으며, 사단은 그들이 찾는 자를 인격화한다. 다수의 사람들이 진리를 거절함으로 매우 크게 기만을 당하여 위조물을 받아들일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으로 갈채를 받는다.

하늘 궁전으로부터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하여 한 분께서 인간의 형체로 오셨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인간이 되어 우리 속에 거하셨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4.5.9-12).

오직 두 부류밖에 없다. 사단은 그 왜곡되고 기만적인 세력으로 역사하며, 강력한 기만을 통해서 진리 안에 거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사로잡는데, 그들은 진리로부터 우화 쪽으로 그 귀를 돌린 자들이다. 사단 자신은 진리 안에 거하지 않으며, 그는 불법의 비밀이다. 그는 영혼을 멸망시키는 오류를 교묘하게도 진리처럼 보이게 한다. 여기에 그 기만시키는 힘이 있다. 강신술, 신지학(神知學), 기타 유사한 오류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는 것은 그 것들이 진리의 위조품이기 때문이다. 이것들 속에는 사단의 지배력이 있다. 그는 인간의 구주요. 인류의 은인인 척하며, 이렇게 해서 멸망받는 희생자들을 더욱 신속히 유혹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자지 않고 깨어 있어야 안전하다는 경고를 받는다. 366 진리와 의의 곧은 길 안에서만 우리는 유혹자의 세력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러나 세상은 덫에 걸려들었다. 자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셀 수 없이 많은 계획과 방법을, 고안해내는 일에 사단의 재산이 사용되고 있다. 위장술은 그에게 훌륭한 예술이 되어 버렸고, 그는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고 활동한다. 하나님의 눈만이 그 얼굴에 진정한 선의 모습을 띠고 거짓되고 파괴적인 원칙으로 세상을 오염시키고자 하는 그의 계략을 분별할 수 있다. 그는 종교의 자유를 제한하고, 종교계에 일종의 노예 제도를 도입하고자 일하고 있다. * 하나님의 능력으로 유지되지 않는 한 조직과 기관은 사단의 명령 아래 놓여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도록 할 것이다. 또한 사기와 기만이 진리를 위하고 하나님의 왕국의 발전을 위한 열성의 모습 띠게 될 것이다. 우리의 행습 가운데 대낮처럼 환하게 공개되지 않은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악의 임금의 방법에 속한다. 그의 방법은 심지어 발전된 진리를 가졌노라고 주장하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안에서도 실행되고 있다.

만일 인간이 주님께서 그들에게 보내시는 경고를 저항한다면, 그들은 악행에 있어서도 지도자가 된다. 그러한 인물들은 하나님의 대권을 감히 행사하고자 한다. 그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고자 노력하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행하시지 않을 일을 행하고자 한다. 그들은 자신의 방법과 계획을 도입하며,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통해서 진리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약화시키고, 누룩처럼 우리 기관과 교회를 물들게 하고 부패시키는 작용을 하게 될 거짓 원칙들을 가져온다. 의와 공평과 공정한 심판에 대한 인간의 관념을 낮추는 그 어떤 것, 하나님의 인간 대리자들을 인간의 마음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하는 그 어떤 계획과 개념도 하나님께 대한 저들의 믿음을 손상시키고 영혼을 하나님께로부터 분리시킨다. 이는 그것이 엄격한 성실과 의의 길에서 빗나가게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조금이라도 인간이 그 동료를 지배하거나 압제하도록 하는 계획을 옹호하지 않으실 것이다. 367 타락한 인간의 유일의 소망은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유일한 구주로 영접하는 것이다. 인간이 타인을 위해 철칙을 만들기 시작하자마자, 자기 마음에 따라 사람들을 부려먹고 그 길로 내몰기 시작하자마자, 그는 하나님을 모욕하며, 자기 영혼과 그 형제들의 영혼을 위태롭게 한다. 죄 있는 인간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 소망과 의를 발견할 수 있으며, 그 어떤 인간도 하나님을 믿고 그분과 더불어 살아 있는 관계를 유지하지 않는 한 의롭게 될 수 없다. 들판의 꽃은 땅에 뿌리를 박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공기와 이슬, 소나기와 햇빛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이러한 혜택을 받는 한 번성할 수 있는데, 그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우리는 영혼의 생명에 기여하는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는다. 우리는 인간을 신뢰하거나 육체로 그 권세를 삼지 말라는 경고를 받고 있다. 이렇게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저주가 선언되었다.

예수님과 니고데모

밤중에 니고데모가 예수님과 면담하려고 와서 말했다.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요 3:2). 사실상 이것은 진실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예수 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여기 책임 있는 높은 지위의 사람, 곧 유대 관습에 따라 교육받은 사람으로 여겨지고 그 마음이 지혜로 가득 차 있는 한 인물이 있었다. 그는 정말로 보통 사람 이상의 달란트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는 낮에 예수님께 오려고 하지 않았는데, 이는 사람들에게 말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멸시받고 있는 나사렛 사람에게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유대인들의 관원에게 아주 수치스러운 일이 될 것이었다. 368 니고데모는 그분이 진실로 이방을 밝히는 빛이요 이스라엘의 영광인지 내 스스로 이 선생의 사명과 주장에 대해 확인해 보리라고 생각했다.

예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사실상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대의 경우에 도움이 되는 것은 논쟁이 아니다. 영혼에 빛을 가져다 주는 것은 논쟁이 아니다. 그대는 새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하늘 나라를 식별할 수 없다. 그대를 올바른 위치에 서게 하는 것은 더욱 큰 증거가 아니라 새로운 목적, 새로운 행동의 원천이다. 그대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 만물을 새롭게 하는 이러한 변화가 있지 않는 한, 제시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증거들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대의 마음속에 부족함이 있다. 모든 것이 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이것은 니고데모에게 아주 굴욕적인 진술이었으며, 약간 성난 기분으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는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요 3:4)라고 질문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말씀의 의미를 파악하기에 넉넉할 만큼 영적인 마음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구주께서는 논쟁에 대해 논쟁으로 대하지 않으셨다. 엄숙하고 조용한 위엄 가운데서 그의 손을 드시고 그분은 더욱 큰 확신으로 그 진리를 가슴에 박히게 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 3:5-8). 니고데모는 그분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요 3:9.하고 질문했다.

진리의 몇 가닥 빛이 이 관원의 마음을 꿰뚫고 있었다. 그리스도의 말씀 때문에 그는 두려움으로 가득 차서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하고 질문하게 되었다. 깊은 열성으로 예수님은 대답하셨다.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요 3:10). 369 그분의 말씀은 니고데모에게 교훈을 안겨 주었다. 그는 명백한 진리의 말씀 때문에 기분 상해하고 비꼬는 대신에 자신의 영적 무지를 인해 자기 자신에 대하여 훨씬 겸손하게 생각해야 했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그토록 엄숙한 위엄으로 주신 바 되었지만, 표정과 억양 속에는 그를 향한 간절한 사랑이 표현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가 자기의 비천한 위치를 인식하게 되었을 때에도 그는 화가 나지 않았다.

백성의 종교적 문제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처럼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그들이 꼭 이해해야 할 진리에 대해 무지해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 3:11.12).

이 교훈은 오늘날의 우리를 위한 것임

니고데모에게 주신 이 교훈은 니고데모가 소유했던 것과 동일한 정신이 있음을 증거하는 목소리를 회의석에서 자주 내고 있는 오늘날 이스라엘의 관원으로서 책임 있는 지위에 있는 이들에게 크게 적용할만 하다. 대관원에게 주신 교훈이 그들의 마음과 생애에도 동일한 감화를 끼칠 것인가? 그리스도의 말씀은 합회장들과 교회 장로들에게, 또한 우리 기관에서 공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에게 각별하게 주어진 것이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만일 성령께서 그대의 마음을 날마다 꼴 지우시도록 한다면, 그 때에 그대는 하나님 나라의 성격을 인식할 수 있는 신령한 통찰력을 갖게 될 것이다. 370 니고데모는 그리스도의 교훈을 받아들여 진실된 신자가 되었다.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하는 조치를 반대하는 그의 음성이 산헤드린 회의에서 들려왔다.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고 그는 말했다. 조소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상고하여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요 7:51.52).

예수께서는 니고데모가 제자감임을 보셨다.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었던 그날 밤에 그 회심한 사람은 그의 마음의 내실 속으로 비춰 들어오고 그 마음에 감동을 주는 진리의 부드럽고 설복시키는 감화 아래 구주 앞에서 일어섰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기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요 3:12.13). 예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천국을 보기 위해서는 새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을 뿐 아니라 새 마음을 얻는 비결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그분께서는 진실된 진리 탐구자의 의문에 찬 마음을 읽으시고, 그 앞에 당신 자신의 상징물을 제시하신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4.15). 살아 있는 모든 영혼에게 이 교훈은 가장 중대한 것 중 하나이다. 왜냐하면 구원의 방식이 여기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 이 외의 다른 구절이 없더라도 이것 하나만으로도 영혼들의 지침이 될 것이다.

371 상담가의 책임을 받아들인 모든 사람들, 인간의 영혼을 다루는 모든 사람들에게 특별히 이 장엄하고 아름다운 진리는 광명하게 빛나는 빛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하고 있는 이들이 “나는 전혀 체험이 없어. 나는 이것들을 이해하고 있지 않다” 라고 말한다면, 결코 신임받을 만하지 못하다. 자신에 대한 평가를 훨씬 덜 중요하게 매기기 전까지는 결코 현명한 인물이 못될 것이다. 그는 어린 아이로서 그 교훈을 배워야 한다. 그는 영혼의 중생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이해하는 것을 첫번째 의무로 삼아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하나님의 신성한 사업과 관련해서 그가 지도자나 관원의 자리를 받아들이기 전에 모든 사람 속에서 일어나야 한다. 만일 하나님과의 살아 있는 관계가 없다면, 그 자신의 정신과 감정이 이길 것이다. 이러한 것은 신성한 것 대신에 드린 다른 불로 잘 대표되어 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사업에 자신의 품성적 결함, 인간적이고 땅에 속한 꾀, 자신과 그를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덫이 되는 기만을 짜 넣고 있다.

아말렉에 대한 심판

하나님께서는 만일 그대가 당신의 길로 행하고 공의와 심판을 행하면 그대를 축복하시겠다고 지극히 거룩한 말씀으로 서약하셨다. “너는 주머니에 같지 않은 저울추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넣지 말 것이며 네 집에 같지 않은 되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두지 말 것이요 오직 십분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십분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날이 장구하리라 무릇 이같이 하는 자, 무릇 부정당히 행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하니라 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너를 길에서 만나 너의 피곤함을 타서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느니라”(신 25:13-18).

372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의 권면을 떠남으로 그분을 자주 슬프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께서는 그들을 여전히 따뜻하게 돌보아 주셨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원수들이 그들의 환경을 이용하여 그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보셨다. 그러한 일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래 여행하고 있던 피곤한 이들에게 고통을 가져다 주기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심판의 말씀을 들으라.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기업으로 얻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로 사면에 있는 모든 대적을 벗어나게 하시고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할지니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신 25:19).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 공언하는 이들이 아말렉의 행위를 따름으로 그들에게 선언된 저주를 받지 않도록 하나님의 이 말씀을 쓴다. 이방인들이 연약하고 지친 이들을 정복한 일 때문에 이런 저주를 받았거늘, 빛과 기회와 특권을 갖고 있지만 그 형제들을 향해서 그리스도의 정신을 나타내지 않은 자들을 향해서 주님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시겠는가?

주님께서는 믿음을 약화시키고, 공의와 공평을 다루는 사람들로서 그들에 대한 신뢰심을 파괴시키는 형제에 대한 형제의 모든 처리를 보신다. 지극히 적극적인 언어로 그분께서는 상거래 속에서 행해지는 죄악에 대해 불쾌감을 표하신다. 그분께서는 “내가 만일 부정한 저울을 썼거나 주머니에 거짓 저울추를 두었으면 깨끗하겠느냐”(미 6:11)고 말씀하신다. 여기 언급된 것과 똑같은 잘못이 우리 기관에서는 범해지지 않았겠지만, 이것이 대표하는 행위가 범해졌고, 여전히 범해지고 있다.

이런 일에 대해서는 몇 면이라도 기록할 수 있겠다. 온 합회들이 동일하게 빗나간 원칙들로 말미암아 부패해가고 있다. 373 “그 부자들은 강포가 가득하였고 그 거민들은 거짓을 말하니 그 혀가 입에서 궤사하도다”(미 6:12). 주님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정결케 하기 위해 일하실 것이다. 내가 그대에게 진실로 말하는데 주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기관들* 속에서 뒤엎고 뒤집어엎고자 하신다.

이러한 정결의 과정이 어떻게 시작될지 정확하게 나는 말할 수 없지만, 이것은 오랫동안 지체되지 않을 것이다. 그 손에 키를 갖고 계신 분께서 도덕적 더러움으로부터 당신의 성전을 정결하게 하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철저하게 당신의 타작 마당을 정결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조금이라도 불의를 행하는 모든 사람과 다투신다. 그렇게 함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권위를 거절하고, 속죄와 그리스도께서 아담의 모든 자녀들을 위해 착수하신 구속에 대한 관심을 위태롭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증오하시는 노선을 택하는 것이 유익하겠는가? 다른 불이 담긴 향로를 하나님 앞에 드리고도 그렇게 해도 전혀 차이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유익하겠는가?

배틀크릭에 그토록 많이 집중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내게 경고로 제시되었던 것과 같은 상태가 존재하고 있다. 나는 나타난 모습에 매우 실망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이처럼 타락적인 상태를 막기 위해 경고를 주셨지만, 그것들은 주의를 끌지 못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13).

나는 내 형제들에게 깨라고 호소한다. 신속하게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나는 백성들에게 진상을 말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일의 상태는 변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회심하지 않은 인물들은 그토록 중요하고 신성한 사업에 더이상 경영인이나 감독이 되어서는 안 된다. 다윗처럼 우리도 “저희가 주의 법을 폐하였사오니 지금은 여호와의 일하실 때니이다”(시 119:126)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374 더욱 깊은 연구를 위해 참고할 서적: 시대의 소망, 167-176(영문).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과 다투심*

오스트레일리아 쿠란봉, 1896.7.5.

각자가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관심이 기울여져야 한다. 이는 그분께서 모든 지혜와 힘과 능력의 근원이시기 때문이다. 나는 배틀크릭에서 특별한 책임이 있는 지위에 앉은 자들에게 보통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과오임을 보았다. 그들에게 그런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그들이 신적 깨우침을 갖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들의 권면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아들여 이들의 인간적 판단을 의지한다. * 그러나 이것은 안전하지 않다. 왜냐하면 인간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헌신하지 않는 한, 사단이 듣는 이들의 현재적 유익과 영원한 유익이 되지 못하는 그런 지식을 그들을 통해 나누어 주기 위해서 역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궁지에 빠지게 될 때 편지를 쓰거나 권면과 조언을 구하도록 자신을 길들여 왔다. 그러나 우리의 다른 기관들에서 책임 있는 자리에 앉은 이들이 지나칠 정도로 많은 부담과 책임을 지고 있는 이들에게 의지하는 것은 잘못이다. 전적으로 타인을 의지하도록 교육받은 이들은 연약하고 병적인 체험을 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빠져 있다. 그들이 의지하는 이들은 그들보다도 하나님을 적게 두려워할 수도 있다. 어린 아이가 되지 말고 굳건하고 용감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빌려 주신 달란트를 이용하여 이미 가진 것을 활용함으로 좀더 많은 재능을 얻고자 한다면 그들의 것이 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정신력과 재능을 그들이 더 많이 소유하고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375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의 사용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우리의 지성은 계발되어야 한다.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주도 면밀하고 깊게 생각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각자에게 일을 지정해 주셨으며, 당신께서 인간을 책임 있는 지위에 앉히실 때에는 당신의 성령을 그들에게 주셔서 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하실 것이다. 그러나 일을 꾸미고 계획하는 일에 타인들을 도와주기 위해 멀고도 비싼 여행을 요청받는 이들은, 만일 그들이 스스로의 힘과 지혜를 의지한다면, 그들 자신이 모든 지혜의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것이다.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의 멍에를 자원하여 지고자 하지 않았다면, 또한 그분의 학교에서 그분처럼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갖는 일을 배우지 못했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짐을 짊어지고 그분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는 것을 배우지 않았다면 그들의 값비싼 여행은 무엇이 되겠는가? 그들의 지혜가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하나님께 미련한 짓이 되지 않겠는가?

이것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라

주(州) 합회는 빛과 지식과 지혜를 대총회에 의존할지 모르나, 그들이 이렇게 하는 것이 안전할까? 배틀크릭은 하나님 사업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 홀로 이 자리를 채우실 수 있다. 다른 곳에 있는 우리 백성들이 특별한 회집을 열게 될 때,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고 그들 자신의 영혼을 위하여 육체로 그 권세를 삼지 말라고 가르치라. 인간에게는 그 동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다. 주님은 우리가 안전하게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며, 어느 곳에서든지, 또한 합회 내의 어떤 교회든지 접근할 수 있는 분이다. 하나님께서 계셔야 할 자리에 인간을 앉히는 것은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을 드리지 못한다. 대총회장이 백성들의 신이 되어야 하겠는가? 배틀크릭의 인물들이 무한한 지혜를 갖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여겨져야 하는가? 376 주님께서 인간의 마음과 지성에 역사하실 때, 이것과 다른 원칙과 행실이 백성들 앞에 제시될 것이다. 너희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시 146:3)라.

주님께서는 이 문제를 두고 당신의 백성과 다투신다. 그들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시는 주 그들의 하나님을 그들이 떠난 이유는 무엇인가? 그분의 사랑은 모호하거나 변동되지 않으며, 하늘과 땅 차이처럼 다른 모든 사랑 위에 훨씬 뛰어나다. 항상 그분께서는 영원 무궁한 사랑으로 당신의 자녀들을 보살피신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3).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 긍휼과 사랑과 지혜는 하나님 안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분을 아노라 하는 많은 이들이 우리의 영생의 소망이 집중되어 있는 그분에게서 돌아서서 실수와 잘못을 범하기 마련인 그 동료들을 의지하는 데 길들여졌다. 이렇게 할 때 그들은 영적으로 절름발이이다. 이는 그 어떤 인간도 과오가 없는 이가 없으며, 그 감화가 그릇 인도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의지하는 사람은 부러진 갈대를 의지하고, 사단이 들어올 수 있는 기회를 줄 뿐 아니라 믿는 사람까지도 해친다. 그는 자신을 높게 평가하여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의식을 상실한다. 하나님께서 계셔야 할 곳에 인간이 앉자마자 그는 자기의 순결성, 열성,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신뢰 등을 상실한다. 도덕적인 혼란이 일어나는데, 이는 그의 능력들이 성화되지 않고 비뚤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그 동료를 판단할 능력이 충분하다고 느끼며, 부당하게도 그들 위에 신으로 군림하고자 애쓴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377 그러나 하나님 사업에는 자기를 높이는 일이 전혀 있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많이 안다고 해도, 지적 재능이 아무리 위대하다고 해도,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자랑할 수 없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은 위탁된 선물로 시험대 위에 서 있는 우리에게 빌려 준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재능들을 신실하게 향상시키는 것이 영원을 위한 우리의 운명을 결정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자아를 높이거나 우리를 치켜세울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는 우리에게 있는 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예의 바르게 대하고, 부드럽고 동정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땅 위에 계셨을 때 나타내신 품성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더욱 밀접하게 연합할 때, 더욱 부드럽고 애정적인 태도를 다른 사람들을 향해 나타내게 될 것이다. 인간의 구속은 인간이 비록 타락했지만,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계획된 것이다. 만일 그분의 은혜를 통해서 우리가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면, 우리가 주위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위험한 것이 아니라 유익한 것이 될 것이다. 우리의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우리는 우리가 교제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이 될 수 있다. 이는 인간 심령에 작용하는 성령의 능력이 순결하게 하고 순결을 지켜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지 않는 이들, 심령과 품성에 그분의 은혜가 임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이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감화를 끼칠 수 없다. 인생에서 그들의 지위가 어떠하든지 그들은 사단을 섬기도록 하는 일에 사용될 영향력을 지니고 다닐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영생의 모든 소망을 상실하고, 자신의 그릇된 모본으로 다른 사람들을 방황하게 한다.

십자가를 연구하라

갈바리의 십자가는 멸망해 가는 영혼들에게 모든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아들의 고난과 죽으심을 통하여 인간의 구원이 가능하게 되었다. 378 성령의 작용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인간 안에 당신의 형상을 회복하고자 하시며, 새롭고 살아 있는 생명의 원칙이 죄로 더럽혀진 마음속에 들어가게 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님 안에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받아들이게 될 모든 믿는 영혼들을 온전히 회복하고, 재건하고, 격려하고, 굳건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일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인간이 그리스도와 함께 멍에를 메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연구되어야 한다. 그것은 주의를 고정시키고, 애정을 사로잡아야 한다. 그 곳에서 죄를 위해 흘려진 보혈은 온갖 이기심으로부터 마음과 생각을 정결하게 하고 깨끗이 씻어 줄 것이다.

진리를 통해서 성화됨

하나님께서는 모든 진리의 창시자이시다. 진리를 실천할 때 더욱 발전된 진리를 얻을 수 있는 길이 마련된다. 하나님의 지명을 받은 종들이 신선한 진리를 선포할 때, 성령께서는 빛 가운데 행함으로 준비되어 있는 마음에 역사하셔서 지각력을 깨우치사 진리의 아름다움과 위엄을 식별할 수 있게 하신다.

그러나 자신의 고상한 영적 특성을 통해서 세상이 줄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선 힘, 곧 진리 자체의 그 신성하고 독특한 성격에 일치하는 감화를 나타내지 않는 이에게 진리는 전혀 진리가 아니다. 진리로 성화된 사람은 그가 접촉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하는 산 감화를 끼칠 것이다. 이것이 성경의 경건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대속적 희생에 의해서만 구원을 받는 인간은 그 동료들 보다 자신을 높일만한 권리를 전혀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스스로 빛을 발하기 위해 애쓰지 말고, 예수님의 발 아래 앉아야 하며, 그분께 배워야 한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들 안에 거한다면, 그들은 세상에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을 내뿜으며 무의식적으로 비추게 될 것이다. 379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 12:32)고 말씀하셨다. 만일 목사가 그리스도를 자기의 소망, 자기의 신뢰할 분, 자기의 의지자로 삼는다면, 그는 그리스도와 하나된 자요 하나님의 동역자이다. 그의 봉사를 통해서 영혼들은 그리스도께로 돌이킨다.

모든 재능은 하나님께로부터 이르러 온다

학식이 없고 별로 큰 은사를 받지 않은 이들이 있지만, 그들은 이것 때문에 실망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자기 품성의 모든 약점을 신실하게 지키고, 그것을 강하게 하기 위해 거룩한 은혜를 구하면서 자기에게 있는 것을 사용해야 한다. 하나님께로부터 전혀 어떤 힘이나 재능도 받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그것이 흘러나오는 원천은 지극히 연약한 인간에게도 열려져 있다. 만일 그가 다함이 없는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 나아간다면, 그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약속을 성취시켜 주시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일에 있어서 우리는 수천 마일 바깥에서 도와줄 사람을 불러올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께서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마 7:7)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마음 내키는 대로 달란트를 주지 않으셨으며, 그것들을 사용할 수 있는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에 따라 주셨다. 인간에게 빌려 주신 달란트가 크면 클수록 돌려드려야 할 것도 큰 법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 대리자들에게 살아 있는 말씀을 상고하여 만사에 있어서 당신의 표현된 뜻에 정통하게 되기를 요구하시며, 빌려 주신 달란트들을 부지런히 사용함으로 그는 다른 것들도 얻을 수 있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엄숙한 교훈을 배우길 원하신다. 이생에서 우리가 형성하는 품성은 우리가 영원한 세월을 통해 살기에 적합한지 아닌지를 결정한다. 게으름을 피우면서 안전한 채로 남을 수 있는 자는 없다. 그에게는 달란트가 별로 많지 않겠지만, 그에게 있는 것으로 장사하게 하라. 380 그러면 그가 하나님과 그 동료들을 향해서 나타내는 성실성에 비례하여 하나님께서 그를 축복하실 것이다.

성령께서는 모든 믿는 영혼들을 돕기 위해 기다리시며, 예수께서는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고 선언하신다.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굳세고, 기도에 힘쓰고, 구원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능력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한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5).

주님의 간청

나는 우리 합회와 교회들을 향해서 인간을 의지하고 육체로 그 권세를 삼는 일을 그만두라고 간청한다. 진리의 깨우침 아래에서 타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 지를 보거나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그들을 바라보지 말라. 고위 책임자에게서 힘을 얻을 것으로 기대하지 말라. 그들은 책임 있는 지위를 하나님의 특별한 능력의 증거로 간주하는 위험에 빠져 있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는 인간적 수단을 바라보고 의지하도록 교인들을 교육했기 때문에 연약하다. 궁핍과 근심에 싸여 있는 이들을 돕기 위해서 예수께서 가까이 계시는데도 유한한 인간들이 작은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이곳 저곳으로 옮겨 다니느라 수천 달러의 돈이 불필요하게 허비되고 있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는 경고들은 단지 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땅 위에 살게 될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화 있을진저 패역한 자식들이여 그들이 계교를 베푸나 나로 말미암아 하지 아니하며 맹약을 맺으나 나의 신으로 말미암아 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그들이 바로의 세력 안에서 스스로 강하려 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으되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으니 죄에 죄를 더하도다”(사 30:2). 381 만일 주님께서 어려움에 빠졌을 때 당신께 권고의 말씀을 구하는 것을 등한히 한 데 대해서 옛날의 당신의 백성을 책망하셨다면, 당신의 백성들이 그들의 길을 환하게 할 의의 태양의 밝은 빛을 의지하는 대신에, 그들 자신처럼 실수 많고 능력이 없는 인간의 도움을 구하고자 시험과 환난 때에 당신으로부터 돌아서 버리는 것에 대해 불쾌히 여기시지 않겠는가? 우리의 능력이 어디에 있는가? 우리처럼 힘이 없고 의존적인 인간, 우리가 그러는 것처럼 하나님의 지도를 필요로 하는 인간 가운데 그것이 있는가?

당장의 도움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고 말씀하시며 언제든지 필요한 때마다 당장의 도움으로 성령을 준비하셨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은 성령의 능력을 위해 주님을 찾는 대신에 육체로 그 권세를 삼기 때문에 연약한 신앙 체험을 누리고 있다. 환난의 때에 하나님께로 돌아섬으로 모든 믿는 영혼에게 예와 아멘 되는 약속의 말씀으로부터 힘을 얻도록 하나님의 백성들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7-11).

하나님의 약속은 충만하고 풍성하며, 그 누구도 힘을 얻기 위해서 인간을 의지할 필요가 전혀 없다. 382 당신을 부르는 모든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도움과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가까이 계신다. 또한 하나님을 신뢰하겠다고 해놓고 그 다음에 우리를 오해하시지 않을 유일한 분이시며 틀림이 없는 권면을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되신 그분께로부터 돌아서서 인간적 약점을 지니고 있기에 우리를 곁길로 인도하기 쉬운 인간들에게로 향하게 될 때 그분께서는 크게 모욕을 당하신다.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의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리워지리라 화 있을진저 자기의 도모를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는 자여 그 일을 어두운 데서 행하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니”(사 29:13-15).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길을 보여 주셨다. 우리는 그 안에서 행할 것인가? 혹은 유한하고 실수가 많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꾀를 따라 걸으며, 그분께서 우리에게 그것에 대하여 경고해 주신 원칙을 실행할 것인가?

현재의 경고

“이제 가서 백성 앞에서 서판에 기록하며 책에 써서 후세에 영영히 있게 하라 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하는 자식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이라 그들이 선견자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정직한 것을 보이지 말라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너희는 정로를 버리며 첩경에서 돌이키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로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 하는도다 이러므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이 말을 업신여기고 압박과 허망을 믿어 그것에 의뢰하니 이 죄악이 너희로 마치 무너지게 된 높은 담이 불쑥 나와 경각간에 홀연히 무너짐 같게 하리라 하셨은즉”(사 30:8-13).

383 “그들이 이르기를 그가 뉘게 지식을 가르치며 뉘게 도를 전하여 깨닫게 하려는가 젖 떨어져 품을 떠난 자들에게 하려는가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 하는도다 그러므로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사 그들로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잡히게 하시리라 이러므로 예루살렘에 있는 이 백성을 치리하는 너희 경만한 자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말이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음부와 맹약하였은즉 넘치는 재앙이 유행할지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니 우리는 거짓으로 우리 피난처를 삼았고 허위 아래 우리를 숨겼음이라 하는도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나는 공평으로 줄을 삼고 의로 추를 삼으니 우박이 거짓의 피난처를 소탕하며 물이 그 숨는 곳에 넘칠 것인즉”(사 28:9-17).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가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 너희가 원치 아니하고”(사 30:15), “그 날에 귀머거리가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 데서 소경의 눈이 볼 것이며 겸손한 자가 여호와를 인하여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빈핍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강포한 자가 소멸되었으며 경만한 자가 그쳤으며 죄악의 기회를 엿보던 자가 다 끊어졌음이라 그들은 송사에 사람에게 죄를 입히며 성문에서 판단하는 자를 올무로 잡듯 하며 헛된 일로 의인을 억울케 하느니라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구속하신 여호와께서 야곱 족속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야곱이 이제부터는 부끄러워 아니하겠고 그 얼굴이 이제부터는 실색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 자손은 나의 손으로 그 가운데서 행한 것을 볼 때에 내 이름을 거룩하다 하며 야곱의 거룩한 자를 거룩하다 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며 마음이 혼미하던 자도 총명하게 되며 원망하던 자도 교훈을 받으리라 하셨느니라”(사 29:18-24).

384 이상의 경고를 무가치한 것으로 받아들여 그냥 지나치려는가? 주님께서는 모든 교사와 모든 목사와 당신의 진리의 빛을 받아들인 모든 사람들에게 자기의 영적 입장에 주의를 잘 기울이라고 환기시키신다. 그들에게는 큰 빛이 있으며, 만일 그들이 영생을 얻고자 한다면, 더이상 유한한 인간들을 의지하지 말고 확실한 기초 위에 집을 세워야 한다.

하나님의 원칙들을 굳건히 붙잡으라

하나님의 원칙을 제거하고 자기 것을 세워 놓고도 안전을 누릴 수 있는 인간의 회의는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선포하기 때문이다. “나는 공평으로 줄을 삼고 의로 추를 삼으니 우박이 거짓의 피난처를 소탕하며 물이 그 숨는 곳에 넘칠 것인즉”(사 28:17). 385 “대저 여호와께서 브라심산 에서와 같이 일어나시며 기브온 골짜기에서와 같이 진노하사 자기 일을 행하시리니 그 일이 비상할 것이며 자기 공을 이루시리니 그 공이 기이할 것임이라 그러므로 너희는 경만한 자가 되지 말라 너희 결박이 우심할까 하노라 대저 온 땅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신 것을 내가 만군의 주 여호와께로서 들었느니라”(사 28:21.22).

우리는 각자에게 지극히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빛이 한결같이 선명한 광선으로 우리 주위를 비추고 있다. 이 빛을 제대로 받아들여 이해하기만 하면, 그것은 우리와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의 지혜와 힘을 의지하거나, 우리 동료의 지혜와 힘을 의지한다면, 그것은 독약이 될 것이다. 영생을 위한 투쟁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기댈 수 없다. 생명의 떡을 각자가 먹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우리는 그것을 취함으로 영혼과 육체와 마음이 그 변화시키는 능력으로 소생함을 얻고 굳세어져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성품에 동화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만사에 있어서 첫째요 마지막이요 최선이 되셔야 한다.

각자는 스스로 의에 대해 굶주리며 갈급해 해야 한다. 인간에게 기대고, 그들의 지혜를 신뢰하는 것은 그 어떤 그리스도인의 영적 생애에도 위험하다. 신임하는 이들이 정직하고 진실되며 아주 부지런하게 주님을 섬기는 자일 수 있다. 그러나 만일 개인적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려고 노력한다면, 일관된 겸손한 생애로 인해 우리가 칭송하고 있는 이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분을 따라갈 수 있다.

인간이 아니라 주님

우리가 우러러보았던 이들이 생각했던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경우가 자주 있다. 때때로 마음속에 죄가 잠재해 있으며, 잘못된 습관과 기만적인 행실이 품성 속에 짜여진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것을 어떻게 보실까? 그분의 권면은 언제나 신뢰할 만하며, 그분께서는 인간을 위한 그 큰 사랑을 증명하셨다. 그리하여 그분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당신께로부터 돌아서서 그들이 알지 못하고, 그 판단과 체험을 신뢰할 수도 없는 유한한 인간을 의지하도록 고무될 때 슬픈 눈으로 바라보신다. 386 그러나 이런 일이 벌어졌으며, 하나님께서는 이차적인 분이 되셨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하노니 하나님의 백성들이여, 능력을 얻기 위해 주님을 의지하라. 하나님께서 계셔야 할 곳에 인간을 두지 않도록 조심하라. 우리는 인간을 우리의 권위나 우리의 지도로 삼을 때 안전하지 못하나니 이는 그들은 분명히 우리를 실망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 안 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빌 2:13)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우리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고귀한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는 광대하고 거룩한 사업을 수행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과 하늘 우주가 보는 앞에서 그 안에 “영원한 능력”을 갖고 계신 주 여호와의 권능으로 당신의 깃발을 높이 들라고 각자에게 명령하신다.

더욱 깊은 연구를 위해 참고할 서적: 선지자와 왕, 119-189(영문).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와 하나이신 것처럼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야 하며,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를 사랑하실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가지셨던 동일한 도움을 얻을 수 있으며, 모든 위기의 때에 능력을 얻을 수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앞과 뒤에서 우리를 지키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사방에서 우리를 지키시며, 우리가 통치자들 앞과 세상 당국자 앞에 서게 될 때에 우리는 무엇을 말할 것인지 먼저 생각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날에 우리를 가르치실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교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기 전에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셔서 예수님의 발 앞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시고 그분께 배우게 해주시기를 바란다. 리뷰 엔드 헤랄드, 1890.2.18.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소중하신 그리스도*

387 오스트레일리아 쿠란봉, 1896.5.4.

그토록 실망의 정신이 배여 있는 그대의 편지를 읽을 때, 내 마음은 염려되었다. 에베소서 2장 4-22절을 읽으라. 이 성경절이 그대를 위해 내게 주어졌다. 그 이전에 결코 읽지 않았던 것처럼 그 말씀을 조심스럽게 읽으라. 이 속에는 교훈으로 가득 차 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속에 거하신다는 뜻은 그리스도를 명상하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우리의 최고의, 존중히 여김을 받으시는 친구로서 사랑하는 구주를 항상 간직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는 그 어떤 행동으로도 그분을 슬프게 하거나 화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위로하고 돕겠다는 이런 약속이 항상 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사단의 지옥의 그림자가 우리의 믿음을 방해하기 위해서, 또한 의의 태양이신 예수님의 임재로부터 발산되는 빛을 가려 버리기 위해 우리 길을 뒤덮어 버릴 때가 결코 오지 않을 것임을 명심하라. 우리의 믿음은 흔들릴 것이 아니라 그늘을 뚫고 나가야 한다. 우리에게는 의심의 어두움에 파묻혀 버릴 수 없는 체험이 있다. 우리의 믿음은 감정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 속에 있다. 영감 받은 사도는 우리가 사도들과 선지자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 모퉁잇돌이 되시는 터 위에 세워졌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로 지으심 받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만일 우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졌다면, 우리는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엡 3:17-19). 오, 얼마나 귀한 가능성과 격려의 말씀인가! 388 모든 도덕적 부정으로부터 정결하게 된 인간의 마음속에 소중하신 구주께서 거하셔서 전 본성을 고상하고 거룩하게 하시며, 인간을 성령의 전으로 만드신다.

개인의 구주이신 그리스도

그러면 그리스도께서는 개인의 구주이신가? 우리는 주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지고 다니는데, 그것은 우리에게 생명과 구원과 의로움이 된다. 어디에 가든지 우리에게 사랑스러우신 분에 대한 회상이 있다. 우리는 살아 있는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한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개인적으로 믿음을 사용할 때 우리 마음속에 거하신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임재의 교제가 있으며, 우리가 이러한 임재를 인식할 때 우리의 생각은 예수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바 된다. 우리의 영적 활동은 생기 넘치는 이러한 교제 의식과 조화된다. 에녹은 이런 식으로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어떤 분이시며, 구속의 경륜 속에서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이루셨는지를 생각할 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마음속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하신다. 우리는 우리 세상과 우리 개인을 향해서 주신 하나님의 이처럼 엄청난 선물에 대한 의식을 계발함으로 가장 큰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이러한 생각들은 온 성품에 지배력을 갖고 있다. 나는 그대가 하려고만 한다면 언제나 하나님과의 교제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그대의 마음에 인상지워 주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고후 6:16). 그리스도께 마음을 쏟게 될 때, 품성은 하나님의 모습으로 꼴 지워질 것이다. 생각은 그분의 선하심과 그분의 사랑에 대한 의식으로 압도된다. 우리는 그분의 품성을 명상하며, 그리하여 그분께서 우리 생각 가운데 계시게 된다. 그분의 사랑이 우리를 감싼다. 만일 우리가 단 한 순간만이라도 한창 이글거리는 태양을 바라본다면, 우리 눈을 돌렸을 때, 태양의 모습이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것 속에 나타날 것이다. 389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볼 때도 똑같다.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것마다 그분의 형상, 의의 태양을 반영한다. 우리는 그 어느 다른 것도 볼 수 없고, 다른 어떤 것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다. 그분의 형상이 영혼의 눈에 새겨져서 우리의 일상 생애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끼쳐 우리의 전 본성이 부드러워지고 굴복하게 된다. 바라봄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모습, 그리스도의 모습에 일치하게 된다. 우리가 사귀는 모든 사람에게 우리는 밝고 쾌활한 그분의 의의 광선을 반사한다. 우리의 품성은 변화되었다. 왜냐하면 마음, 영혼, 정신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해 당신 자신을 주신 분을 회상함으로 빛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또다시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속에 개인적이고 살아 있는 감화력의 실현이 있게 된다.

예수님의 지속적인 임재

그분의 교훈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이 우리를 사로잡을 때,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임재하셔서 우리의 생각과 사상과 행동을 주관하신다. 우리는 세상이 일찍이 알았던 분 중 가장 위대하신 교사의 교훈으로 충만해진다. 인간의 책임 의식과 인간의 영향력에 관한 의식이 우리의 인생관과 매일의 의무에 대한 견해에 고아한 품격을 부여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신다. 그분은 처음이요, 나중이요, 만사에 최선이 되신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영, 그분의 품성이 모든 것을 채색한다. 그것은 날줄과 씨줄로서 우리 전 존재의 피륙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자아에 집중시킬 수 없다. 그분은 영광의 소망이시다. 자아는 죽지만 그리스도는 살아 계신 구주이시다. 계속적으로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우리는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그분의 형상을 반사한다. 390 우리는 멈추어 서서 우리의 실망을 생각할 수 없으며, 그것들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더욱 상쾌한 모습 곧 예수님의 소중한 사랑이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진리의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 거하신다.

야곱의 우물가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0.13.14). 그리스도께서 언급하신 생수는 당신의 말씀 속에 있는 당신의 은혜의 계시였다. 당신의 영, 당신의 교훈은 모든 영혼에게 만족을 주는 샘물이다. 그들이 즐겨 찾아가는 다른 모든 근원은 만족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 입증될 것이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은 시원한 시냇물과 같아서 언제나 만족을 주는 레바논 강물로 대표되었다. 그리스도 안에는 충만한 기쁨이 영원히 있다. 세상의 욕망과 쾌락과 오락은 결코 만족을 주지 못하며 영혼을 고치지도 못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요 6:54)다고 말씀하신다.

당신의 말씀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자비로우신 임재는 항상 영혼에게 말씀하시며, 갈급해 하는 영혼을 상쾌하게 해주시는 생명샘으로 그분을 제시하신다. 지속적으로 살아 계신 구주를 모시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다. 그분은 우리 안에 심겨진 영적 능력의 근원이시며, 그분의 영향은 언행 가운데서 흘러나와 우리의 영향권 안에 있는 모든 이를 상쾌하게 하고, 그들 속에 능력과 순결, 거룩함과 평강, 전혀 슬픔을 동반하지 않는 기쁨을 갈망하고 동경하도록 할 것이다. 이것은 내재하시는 구주의 결과이다.

그리스도의 간구

391 예수께서는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고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한때 한 인간으로서 땅 위에서 행하셨고, 그분의 신성은 인성을 옷입으셨으며, 고난과 시험을 당하는 인간으로서 사단의 공격을 당하셨다. 그분께서는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므로 시험 당하는 자를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지를 아신다. 지금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우편에 계시며, 하늘에서 우리의 중보자로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신다. 우리는 이것을 생각하며 항상 위로를 받고 소망을 가져야 한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 있는 시험에 굴복하기 쉬운 이들을 생각하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우리 각자를 생각하고 계시며,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신다. 시험받을 때에 그분께서 나를 돌보시며, 나를 위해 간구하시며, 나를 사랑하시며, 나를 위해 죽으셨다고 말하라. 나는 내 자신을 아낌없이 그분께 바치겠다. 마치 우리가 우리 자신의 구주인 것처럼 우리 자신에 대해서 슬퍼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슬프시게 한다. 아니다. 우리는 신실하신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우리 영혼을 지켜 주시도록 맡겨야 한다. 그분께서는 항상 살아 계셔서 시련과 시험 속에 있는 이들을 위해 간구하신다. 그대의 마음을 의의 태양의 광명한 빛을 향하여 열라. 의심의 씨앗을 뿌리지 않도록 그대는 한치의 의심도, 의심 섞인 단 한마디의 말도 그대의 입술에서 흘러나오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를 위해 풍성한 축복이 있다. 그것들을 믿음으로 붙잡도록 하자. 내가 그대에게 간청하노니 주님 안에서 담대하라. 신령한 능력이 우리의 것이다. 용기와 능력과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자. 에베소서 3장을 읽으라. 주신 교훈을 실천하라. 모든 환경 아래에서 하나님을 위해 산 증거를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