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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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유대인들이 구주를 데리고 빌라도에게로 다시 돌아왔을때, 빌라도는 대단히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유대인들에게 어떻게 해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예수님을 심문해 보았지마는 그분에게서 아무런 죄도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을 상기시켰습니다. 그는 그들이 예수님께 대하여 송사하였지마는 그들은 송사의 내용을 입증할 수 있는 것을 한 가지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을 그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앞의 장(章)에서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그들은 그분을 자기들과 동일한 유대인인 헤롯에게로 데리고 갔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분에게서 죽음에 해당될 만한 것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송사하는 자들을 진정시키기 위하여 빌라도는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눅 23:16).

여기에서 빌라도는 자신의 약점을 나타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무죄하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그는 그분에게 벌을 주어야 합니까? 그것은 불의와의 타협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모든 재판 과정을 통하여 그 사실을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로마의 총독을 위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께 대한 정죄의 선고가 내릴 때까지 그들의 유리한 점을 그대로 밀고 나갔습니다.

134 무리들은 그 죄수의 생명을 빼앗고자 더욱 큰 소리를 지르면서 소동하였습니다.

빌라도가 어떻게 할 바를 알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을때, 그의 아내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기별을 보냈습니다.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나이다”(마 27:19)

빌라도는 그 기별을 받자 얼굴이 창백해졌습니다. 그러자 무리들은 그의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고 더욱 강경해졌습니다.

빌라도는 무엇인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유월절이 되면 백성들의 선택에 따라 죄인 하나를 석방시켜 주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로마의 군인들은 최근에 바라바라고 하는 유명한 강도를 체포하였습니다. 그는 타락한 악한(惡漢)이며 살인자였습니다. 그러므로 빌라도는 무리들을 향하여 매우 열렬하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마 27:17).

그들은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라고 대답하였습니다(눅 21:18).

빌라도는 놀라움과 실망으로 말문이 막혔습니다. 자신의 판단력을 양보하고 백성들에게 호소함으로, 그는 자신의 위엄과 군중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후부터 그는 다만 군중의 도구에 불과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빌라도를 그들의 마음대로 쥐고 흔들었습니다. 그 때에 그는 물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라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은 일제히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고 부르짖었습니다.

빌라도가 말하기를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

저희가 더욱 소리지르기를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마 27:22, 23)고 부르짖었습니다.

빌라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고 하는 무서운 부르짖음을 들었을 때 그의 얼굴은 창백해졌습니다. 135 그는 그와같은 일이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죄가 없다는 사실을 되풀이해서 선언하였습니다. 그러나 무리들은 그분에게 가장 무섭고 잔인한 죽음을 당하게 하겠다고 작정하였습니다. 다시 빌라도는 물었습니다.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러자 다시 무서운 함성이 일어났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혀야 하겠나이다.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빌라도는 최후의 노력을 다하여 그들의 동정심에 호소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피곤으로 지치시고, 상처 투성이의 몸으로 당신을 송사하는 자들의 목전에서 곤욕을 당하셨습니다.

“군병들이 가시로 면류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앞에 와서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바닥으로 때리더라”(요 19:2, 3).

그들은 그분에게 침을 뱉았습니다. 어떤 악한 손이 그분의 손에 쥐어져 있던 갈대를 빼앗아 그분께서 쓰고 계신 가시 면류관을 쳤습니다. 그리하여 가시가 그분의 이마에 박히게 하고 그분의 얼굴과 턱수염을 타고 피가 흘러 내리게 하였습니다.

사단은 잔인한 군인들을 충동하여 구주를 모욕하는 일을 하게 하였습니다. 할 수 있는 대로 그분으로 하여금 화를 내어 복수를 하게끔 충동하거나, 그분께서 그 괴로운 상황에서 풀려나기 위하여 이적을 행함으로 구원의 계획을 실패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사단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분의 인간 생활에 한 가지의 흠이라도 생기거나 그 무서운 시련을 견디는 일에 있어서 그분의 인성이 실패하게 되면, 하나님의 어린양은 완전한 제물이 될 수 없을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의 구속(救贖)은 실패로 끝나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군사들을 명령할 수 있고, 당신의 도움을 위하여 거룩한 천사의 무리들을 즉시 부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중의 한 천사만으로도 잔인한 폭도들을 즉시 제압할 수 있으며, 당신의 거룩한 위엄이 번쩍일 때 그분을 고문하는 자들을 넘어뜨릴 수 있었던 그분께서는 위엄 있는 침착성으로 가장 거칠은 모욕과 분노를 참으셨습니다.

136 그분을 고문하는 자들의 행동이 그들을 인간 이하, 곧 사단의 형상으로 전락시켜 준 반면에, 예수님의 온유와 인내는 그분을 인성 이상으로 높여 줌과 동시에 그분께서 하나님과 동등되심을 입증해 주었습니다.

빌라도는 구주의 불평없는 인내심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는 사람을 보내어 바라바를 법정으로 데리고 오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두 죄수를 나란히 세워 두었습니다. 그는 구주를 가리키면서 엄숙한 음성으로 말하였습니다. “보라 이 사람이로다.”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다”(요 19:4).

거기에는 조롱의 옷을 입고 가시 면류관을 쓰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서 계셨습니다. 허리까지 옷이 벗겨져 있는 그분의 등에는 깊고 흉악한 매 자국이 나 있었으며, 거기에서는 피가 그침없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분의 얼굴은 피로써 얼룩져 있었고 피로와 고통의 흔적이 뚜렷이 나타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얼굴은 그 전에 그렇게 아름다와 보인 적이 결코 없었습니다. 모든 모습은 부드러움과 인종(忍從)과 당신의 원수들에 대한 가장 부드러운 동정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그분의 옆에 있는 죄수는 너무나 대조적이었습니다. 바라바의 얼굴 모습 하나 하나는 그가 완악한 악인이라는 것을 나타내 주고 있었습니다.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중의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동정하였습니다. 심지어 제사장들과 지도자들까지도 그분은 과연 당신이 주장하시는 그대로의 분이심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군중들이 광적인 분노를 갖도록 충동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제사장들과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다시 부르짖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마침내 그들의 야성적이요 보복적인 잔인성에 더이상 견딜 수 없게 된 빌라도는 그들에게 말하였습니다.

137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노라”(요 19:6).

빌라도는 구주를 석방시키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부르짖었습니다.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요 19:12).

그것은 빌라도의 약점을 공격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미 로마 정부의 의심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와같은 종류의 보고가 들어가면 그는 죽임을 당할 것이었습니다.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마 27:24)

빌라도는 예수님께 정죄의 선고를 내리는 죄를 면해 보고자 노력하였으나 모든 일이 허사였습니다. 만일 그가 처음부터 신속하고도 단호하게 자신의 마음의 각성을 따라 올바르게 행동했다면, 그의 의지는 무리들에 의하여 압도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를 좌우하고자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의 요동하고 우유부단한 태도가 자신의 멸망을 자초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놓아 줄 수는 없을지라도 자기 자신의 지위와 명예는 보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는 세속적 권력을 상실하기보다는 흠없는 생명을 희생시키는 길을 택하였습니다. 군중들의 요구에 못이겨서 그는 다시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세심한 주의를 기우렸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두려워했던 바로 그 일이 그 후에 그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는 명예를 잃어버렸고, 높은 관직에서 쫓겨났고, 자책감과 상한 자존심으로 고통을 받은 나머지, 주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지 얼마 후에 자신의 생애를 마쳤습니다.

138 그와 마찬가지로 죄와 타협하는 모든 사람은 모두 슬픔과 멸망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 14:12).

빌라도가 그리스도의 피에 대하여 죄가 없다고 선언하자, 가야바는 도전적인 음성으로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마 27:25)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무서운 말은 제사장들에 의하여 메아리쳤고, 백성들에 의하여 다시 메아리쳤습니다.

그것은 그들 자신에게 내린 무서운 선고였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후손들에게 넘겨 줄 무서운 상속이었습니다.

그것은 약 40년 후에 예루살렘이 멸망당하는 무서운 사건에서 글자 그대로 그들에게 성취되었습니다.

그것은 그 날 이후로 그들의 후손들이 흩어지고, 멸시 받고, 압박 받는 상태에서 글자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그것은 다시 마지막 심판이 다가올 때 글자 그대로 성취 될 것입니다. 그 때에는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질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예수는”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행 1:11, 살후 1:8)기 위하여 오실 것입니다.

그 때에 그들은 바위와 산들을 향하여 탄원할 것입니다.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계 6:16,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