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에게 보내는 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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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사람들보다도 즐겁고 행복한 백성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아버지이시요 영원한 친구가 되신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올바로 나타내지 못한다. 그들은 마치 먹구름 아래 있는 것처럼 음울하게 보인다. 그들은 때때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얼마나 큰 희생을 치렀는지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들은 자신의 모본과 언사로써 아직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아니한 자들에게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려면 생애의 기쁨과 즐거움이 되는 모든 것들을 희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의 복된 소망위에 검은 보자기를 덮어씌운다. 하나님의 요구는 그것을 즐겨 순종하는 사람에게도 무거운 짐이 되며, 또 쾌락을 주는 것 혹은 감각을 즐겁게 하는 것은 모두 희생해야 된다는 인상을 준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참 신앙을 갖지 못하였다고 주저하지 않고 말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누구든지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는 사랑 안에 거한다. 경험적 지식에 기초하여 하늘 아버지의 사랑과 긍휼하심을 진실로 알게 된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빛과 기쁨을 나누어 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과 하늘에 연결되어 있으므로 그들의 존재와 감화력은 동료 인간들에게 아름다운 꽃의 향기와 같을 것이며, 하늘의 순결과 탁월한 사랑은 그들을 통해 그들의 감화력이 미치는 범위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될 것이다. 364 이것은 그들로 세상의 빛과 세상의 소금이 되게 한다. 그들은 진실로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향기가 되고, 사랑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의 휴양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육체적·정신적 힘을 사용하려는 목적 하에, 무해한 휴양으로 정신을 새롭게 하고 신체를 활발하게 하려고 애쓰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특권이요 의무이다. 우리의 휴양은 어리석은 환락의 장면이나 무의미한 장난의 형태를 취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동료들에게 유익이 되고 그들을 향상시키고 또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에게 위탁된 모든 의무를 더욱 잘 이행할 수 있는 방법으로 우리의 휴양을 즐길 수 있다.

우리가 일상 생애의 모든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못하게 하고 이로써 하나님과 하늘의 사물에 대한 명상의 흥취를 저하시킬 우려가 있는 오락에 열중한다면 하나님 앞에서 핑계치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앙은 즐겁고 향상적인 감화력을 가졌다. 이것은 어리석은 장난과 회롱, 그리고 쓸데없고 경박한 잡담을 초월한다. 우리는 모든 휴양의 시간 동안에 하늘의 능력의 근원으로부터 새로운 용기와 힘을 얻어 보다 성공적으로 우리의 생애를 순결과 참된 선과 성결의 경지까지 고양시킬 수 있다.

미에 대한 사랑

위대하신 하나님께서도 미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손으로 만드신 창조물 가운데 이러한 사실에 대한 틀림없는 증거를 주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시조들을 위하여 에덴에 아름다운 동산을 두셨다. 365 거대한 나무들이 지면으로 부터 자라나게 하셨으며 필요와 단장을 위하여 여러 가지 종류가 있었다. 희유(稀有)의 미와 온갖 색채와 색조를 띈 꽃들이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갖가지 날개를 가진 즐거운 가수들은 기쁨에 겨운 노래로 조물주를 찬양하고 있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돌보는 일 가운데서 행복을 발견하고, 또 동산 안에 있는 실과들로 그의 필요가 충족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우리의 시조들의 본향인 에덴을 그처럼 비할 데 없이 아름답게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장대한 수목과 아름다운 꽃들, 그리고 자연계 가운데 있는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주셨다. 우리로 당신의 성품에 대한 바른 견해를 갖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랑의 표적들을 주셨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의 마음 속에 미를 사랑하는 정신을 심어주셨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랑을 악용하여 왔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여 주신 모든 은택과 미를 경배해 온 나머지 영광스러운 시여자를 잊어버렸다. 이것은 분명 어리석은 배은 망덕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 가운데 있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하며, 마음에서 우러나는 가장 귀하고 거룩한 애정을 하나님께 바침으로써 이 모든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에 응답하여야 한다.

크신 예술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이끌고 흥미를 일으키기 위하여 우리의 주위에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둘러싸 주셨다. 우리로 하여금 천연계의 영광을 당신의 품성과 연결시켜 생각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만일 우리가 천연계의 책을 성실히 연구한다면 우리는 그 책이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능력을 명상하는 풍성한 재료가 됨을 발견할 것이다.

366 많은 사람들은 화폭 위에 아름다운 그림들을 그려내는 예술적 기능을 찬양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온 정력을 미술에 바치지만 천연계가 빚어내는 아름다움에는 도무지 비길 수 없다. 그림으로써는 자연계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완전함을 이룰 수 없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은 석양의 장관을 그린 화면에 도취된다. 그들은 미술가의 능숙한 솜씨를 숭배한다. 그러나 구름 없는 저녁이면 언제나 볼 수 있는 찬란한 일몰의 실경(實景)은 무관심하게 보아 넘긴다.

미술가는 어디서 착상을 얻는가? 자연으로부터이다. 그러나 위대한 미술가이신 하나님께서는 이동하는 변화 무쌍한 하늘의 화폭 위에 아름다운 일몰을 그리신다. 하나님께서는 마치 높은 하늘의 대문을 활짝 열어놓으사 우리로 그 광채를 보고 또 그 내부의 영광을 상상할 수 있도록 하신 것처럼, 하늘을 금, 은, 주홍으로 수놓으시고 물들이셨다. 많은 사람들은 하늘에 그려진 그림에 주의하지 않고 지나쳐 버린다. 그들은 궁창에 나타난 빼어나게 아름다운 그림 속에서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능력을 발견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크신 미술가를 모방한 불완전한 그림들을 보고는 숭배하며 황홀해 한다.―리뷰 앤드 헤랄드, 1871년 7월 25일

유혹을 저항하기에 부적당함

그대들은 오락을 사랑하는 자들, 화려한 것과 쾌락을 사랑하는 자들과 연합하고도 유혹을 저항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지 말라.―시조(영문), 1900년 6월 20일

367 세상을 사랑하는 정신이 청년들의 마음을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우려할 만한 사실이다. 많은 청년들은 자비가 아직 떠나지 않은 이 귀한 은혜의 시간이 무슨 큰 휴일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흥분으로 단순히 자신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처럼 행동한다. 그들은 세상과 세상 사물 중에서 즐거움을 찾으며 하늘 아버지와 성령의 열매에 대해서는 외인이다. 많은 청년들은 조심성 없이 함부로 이야기한다. 그들은 그들의 언사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거나 혹은 정죄함을 받는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다. 많은 청년들의 생애를 특징지우는 경박한 행동과 허무하고 헛된 담소는 하나님을 욕되게 한다. … 사단은 청년들로 하여금 세속적 오락에서 기쁨을 발견하게 하고 그리고 이러한 오락이 폐해와 과실이 없을 뿐 아니라 건강상 중요한 것임을 나타내 보이려고 애씀으로써 스스로를 정당화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사단은 성결의 길은 험하고 세속적 쾌락의 길은 꽃을 뿌려놓은 것처럼 제시한다.

거짓되고 과장적인 색채를 사용하여 사단은 청년들 앞에서 이 세상을 세속적 쾌락으로 단장한다. 그러나 지상의 쾌락은 멀지 않아서 끝날 것이며 스스로 심은 것을 거두게 될 것이다. 개인적인 매력들과 능력과 재능은 우리의 몸을 창조하시고 매 순간 우리를 지켜주시는 하나님께 바치기에는 너무나도 고귀하다는 말인가? 우리의 모든 능력은 하나님께 바치기에는 너무나 귀중하다는 말인가?

지혜의 길

368 청년들은 때때로 정신에 활력을 주고 기분을 전환시킬 무엇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이야말로 필요되는 바로 그것이다. 신앙은 신자들에게 안위자가 되고 참된 행복의 원천으로 인도하는 확실한 안내자가 됨을 알게 될 것이다. 청년들은 명상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여야 한다. 그들은 그들의 여가를 이보다 더 가치 있게 사용할 수는 없음을 발견할 것이다. “지혜의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잠 3:17).

바울은 디도에게 편지하면서 청년들에게 절제에 대하여 훈계하였다. “너는 이와 같이 젊은 남자들을 권면하여 근신하게 하되 범사에 네 자신으로 선한 일의 본을 보여 교훈의 부패치 아니함과 경건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딛 2:6-8).

나는 청년들 자신을 위하여 사도의 훈계에 주의를 기울이기를 간청한다. 이 모든 은혜로운 교훈과 경고와 책망들은 생명에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향기가 되거나 혹은 사망에서 사망으로 인도하는 냄새가 될 것이다.

청년들은 일반적으로 그들에게는 많은 책임이나 염려, 혹은 무거운 짐이 맡겨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각 사람에게는 성경상 표준에 도달해야 할 책임이 지워져 있다. 모든 특권과 기회, 또는 성경 말씀을 통한 충고와 경고와 책망의 봉사 가운데서 발산되는 빛은 인격을 완성하거나 혹은 부주의한 자를 정죄할 것이다. 청년들과 연장자들 모두가 이 빛을 간직해야 한다. 이제 누가 하나님의 편에 서서 그분께 대한 봉사를 생애의 첫째로 삼겠다고 결심할 것인가? 누가 짐지는 자가 될 것인가?

369 “너는 청년의 때 … 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전 12:1). 예수께서는 새벽 이슬 같은 청년들의 봉사를 요구하신다. 그분께서는 그들이 불멸의 후사가 되기를 원하신다. 나이가 어린, 많은 청소년들을 타락하게 하는 도덕적 부패가 세상에 편만해 있을지라도 그들은 고상한 성인 남녀로 장성할 수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다. 그들은 빛의 자녀가 되고, 어둠의 자녀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청년 남녀들에게 모든 악습을 버리고, 부지런히 일하고 열심을 내어 하나님을 섬길 것을 요구하신다. 그들은 나쁜 습관을 이기고 행실을 고치기 위한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게으름만 피워서는 안 된다. 그들이 드린 기도의 진실성은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려고 힘쓰는 그들의 활기찬 노력으로 증명될 것이다. 매걸음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성령의 능력을 통해 이길 힘을 주실 것을 믿으면서 나쁜 습관과 교제를 끊어버릴 수 있다.

작은 일에 충실함

개인적이고 끊임없으며, 연합된 노력은 성공으로 보상받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선을 많이 행하기를 원하는 자들은, 작은 일들을 하나님의 방법에 따라 즐겨 행하는 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위대하고 놀라운 일을 성취함으로써 가장 높은 업적을 이루려는 야망을 가진 자는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할 것이다.

한 가지 선한 일에 부단히 전진하고 한 가지 신실한 봉사를 누차 반복하는 것은, 위대한 사업을 행하여 청년들이 명성을 얻고 그들의 노력에 대한 좋은 평판을 받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더욱 가치가 있다. 370 … 청년들은 영혼을 구원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서 선을 행할 수 있다. 하나님께는 그들에게 위탁된 재능의 사용 여부에 대하여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과 딸된 것을 주장하는 자들은 높은 표준을 목표로 삼도록 하라.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재능을 사용하도록 하라.―청년 지도자, 1907년 1월 1일

충족되지 못한 욕망들

유쾌한 오락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은 심령의 깊은 갈망을 드러낸다. 그러나 세상 쾌락의 샘에서 마시는 자들은 그들의 영적 기갈이 여전히 채워지지 않았음을 발견할 것이다. 그들은 기만당하여 향락을 행복으로 오인하였다. 그러므로 흥분이 사라질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실망과 낙담의 심연 속으로 빠져버린다. “오! 생수의 근원”을 버리고 세속적 쾌락의 “터진 웅덩이”(렘 2:13)에서 마시려 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고 미친 짓인가! ― 그리스도인 교육의 기초, 422.

증거할 수 있는 기회

그대들이 진실로 그리스도께 속하였다면 예수를 위하여 증거할 기회를 가질 것이다. 그대들은 오락의 장소에 참여해 달라는 초청을 받을 것이며 그것은 그대의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한 기회가 될 것이다. 그대들이 진실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때에 그 곳에 참석하지 못하는데 대하여 여러 가지 변명을 늘어놓는 대신에, 명백하고 겸손하게 그대들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비록 한 번일지라도 하나님의 임재를 초청할 수 없는 장소에 가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고 언명할 것이다.―청년 지도자, 1893년 5월 4일

371 정신력 뿐만 아니라 체력을 훈련시켜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법도에 규정된 것이며 우리가 취하는 육체적 운동의 성격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주신 교훈과 완전히 일치되는 것이라야 한다. 그리스도의 교훈이 그리스도인 생애에 실증됨으로써 교사들과 학생들의 모든 교육과 자아 훈련에 있어서 하늘 천사들이 그들을 “쾌락을 사랑하”는 자로 기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오늘날 많은 무리들에 대하여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딤후 3:4)는 자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이 사단과 그의 부하들은 사람들을 잡으려고 올무들을 펴고 있다. 그들은 교사들과 학생들의 마음을 충동시켜 운동이나 오락에 열중하도록 하며 그러한 오락은 저열한 정욕을 조장하고 마음에 작용하시는 성령의 역사에 방해가 되는 식욕과 정욕을 일으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학교에 있는 모든 교사들에게 일의 전환으로 일종의 운동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이 운동이 어떤 것이어야 함을 지정하셨는데 그것은 곧 유익한 실제적 노동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저버리고 영적 생애에 손실을 주는 인간적인 고안에 집착한다. 유희(遊戱)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성령의 역사를 소멸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으며 주님을 슬프시게 한다. …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372 마귀는 운동장에 서서 그대들의 오락을 주시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감시를 떠난 사람을 발견할 때마다 그를 포로로 하고 인간의 마음에 자기의 씨를 심으며 인간의 정신에 대한 지배권을 얻는다. 그는 또한 교사(校舍) 내에서 하는 모든 운동에도 참석하고 있다. 마음을 놓고 경기에 크게 흥분하는 학생들은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가르침, 충고 및 견책을 받기에 가장 불리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육체적 노동은 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지정하셨다. 모든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실생애의 의무들을 배우는데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는 분야의 교육을 위해서 매일 몇 시간씩 시간을 바쳐야 한다.

모든 학교와 그 밖의 각 교회 기관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다니엘처럼 모든 지혜의 근원이 되시는 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짐으로써 모든 분야에서 최고의 표준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다니엘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으며, 하나님께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그는 위대한 교사이신 주님의 보호와 사랑에 더욱 충실한 보답을 하기 위하여 가능한 한 자신의 모든 능력을 훈련하였다. 히브리의 네 청년들은 이기적 동기나 오락을 사랑하는 마음이 황금과 같은 생애의 순간들을 점령하는 것을 허락할 수 없었다. 그들은 자발적인 마음과 민첩한 정신으로 일하였다. 이것이 바로 모든 그리스도인 청소년들이 도달해야 할 가장 높은 표준이다.―부모와 교사와 학생에게 보내는 권면, 231-233.

343 흥분과 재미있는 환락에 대한 욕망은 하나님의 백성들 그리고 특히 청년들에게 하나의 시험이요 올무이다. 사단은 미구에 있을 장면들에 대비하는 엄숙한 사업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내기 위한 유인물을 끊임없이 준비하고 있다. 사단은 세속에 속한 자들의 힘을 빌려서 방심한 자들을 세속적인 쾌락에 동참하도록 유혹할 계속적인 흥분을 유지시킨다. 흥행과 강연과 세상에 대한 사랑으로 이끌도록 계획된 천태 만상의 오락들이 있는데 세상과 이처럼 연합함으로써 믿음은 약하여진다.

사단은 끈기 있는 일꾼이며 교활하고 흉악한 적이다. 아첨하는 말이나 청년들로 어떤 죄에 대하여 미워하는 마음이 적어지게 하는 부주의한 말을 할 때에 사단은 이것을 이용하며 악의 씨를 배양하여, 그것이 뿌리를 박고 풍성한 결실을 내게 한다. 사단은 모든 의미에 있어서 문자 그대로 사기꾼이요 능란한 마술사이다. 그는 얼핏 보기엔 해롭지 않은 것같이 보이나 청년들과 부주의한 자들을 얽어매도록 교묘하게 준비된, 곱게 짠 그물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인간의 본성은 쾌락과 육체적 만족을 즐기는 경향이 있다. 우리의 마음을 세속적 쾌락으로 채워줌으로써, 나의 영혼이 어찌 될까를 물어볼 시간이 없도록 만들려는 것이 사단의 책략이다.

불행한 시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청년들에게 매우 불행한 시대이다. 374 사회의 일반적 풍조는 청년들로 저들 자신의 본성대로 따라가는 것을 허락하는데 찬동하고 있다. 비록 자녀들이 심한 방종에 빠질지라도 그들이 장성하고 철이 들면 나쁜 습관들을 버리고 유용한 남녀들이 될 것이라고 스스로 자위하는 부모들이 있다. 이 얼마나 모순된 생각인가! 여러 해 동안 그들은 원수가 마음 밭에 씨를 뿌리는 것을 허락하고 또 그릇된 원칙들이 자라서 행복한 길처럼 보이는 행로에 매복된 위험과 두려운 종말을 식별하지 못하는 듯이 보인다. 대부분의 경우 후일에 청년들에게 쏟는 모든 노력은 아무 쓸모도 없게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자들 중에는 경건에 대한 표준이 매우 낮으며 청년들은 많은 교회 신자들에 의해서 조장된 세속적 감화력을 저항하기가 곤란하다. 이름만을 가진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고 있다고 공언하지마는 사실상 그들은 세상을 위해서 살고 있다. 그들은 하늘 사물들의 탁월성을 식별하지 못하므로 이런 것들을 진실한 마음으로 사랑하지 못한다. 그리스도교가 명예스러운 대우를 받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한다. 그들은 참된 그리스도교란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임을 깨닫지 못하며 그들의 신앙은 그들로 세속적 쾌락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감화력을 상실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무도장에 들어가서 거기서 제공하는 모든 오락에 탐닉한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극단에까지는 미치지 않으나 향락적인 모임, 야유회, 쇼, 그 외의 여러 가지 세속적 오락 장소에 참석한다. 그리하여 가장 식별력이 예리한 자라도 저들의 모양과 불신자들 사이에 있는 차이를 찾아내지 못한다.

375 현재와 같은 사회 상태에서는 부모들이 그들의 자녀들을 제어하여 바른 성경의 법칙에 따라 지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자녀들은 때때로 제재를 참지 못하고 자기 고집대로 하며 자행 자지하고자 한다. 특별히 10세로부터 18세까지 사이에는 젊은 친구들의 세속적 모임에 가는 것이 별로 해로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경험이 있는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거기에 위험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들은 그들의 자녀들의 특이한 기질들을 잘 알고 있으며 이런 모든 세속적인 사물들이 자녀들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자녀들의 구원을 바라는 마음에서 부모들은 모든 자극적인 오락에서 자녀들을 격리시켜야만 한다.

자녀들이 스스로 세상 쾌락들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는 결심을 할 때에 주의 깊고 신실한 부모들의 마음에서 얼마나 큰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되겠는가! 그러나 그러한 순간에라도 부모들의 노력이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청소년들은 죄와 인간 본성의 악들을 대적하여 싸우는 전쟁을 이제야 겨우 시작하였을 뿐이며 저들은 특별한 의미에서 부모들의 충고와 보살핌이 더욱 필요하다.

청년들 앞에 놓인 시련의 때

세속적인 감화력에 굴복한 젊은 안식일 준수자들은 단련을 받아야 하고 확증을 받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 날의 모든 위험이 우리들에게 다가오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시련이 청년들 앞에 놓여 있다. 청년들은 괴로운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며 그들의 신앙의 진실성이 가려질 것이다. 그들은 인자의 나타나심을 고대한다고 공언하면서도 그들 중의 더러는 불신자들에게 아름답지 못한 모본을 보여주고 있다. 376 그들은 기꺼이 세상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야유회나 기타 모든 쾌락을 위한 모임에 참석함으로 세상과 연합해 왔고 그러면서도 그들은 해롭지 않은 오락에 참가하고 있다고 스스로 위로한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방종들이 그들을 하나님에게서 분리시키고 그들로 세상의 자녀들이 되게 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끊임없이 세상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그들의 견해와 감정은 극기하는 그리스도의 추종자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세속적인 정신과 더욱 잘 조화를 이루어 왔다. 그들이 자기 자신과 마음이 일치한 자들로 더불어 교제하기를 선택하는 것은 완전히 자연스럽게 보였다. 따라서 이러한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지나치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합류하여 같은 이름을 가졌으나 실제로 그들은 불신자 들이나 교회 안에 있는 연약하고 헌신하지 못한 자들에게 하나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이러한 시련의 때에 자칭 신자라고 하는 자들은 진리에 복종함으로 전적으로 회개하고 성화되든지 아니면 세상 사람들과 함께 그들의 보응을 받기 위하여 세상에 버린 바 되든지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쾌락을 찾는 자들을 당신의 추종자로 받지 않으신다. 자기를 이기는 자들, 절제와 겸손과 성결의 생활을 하는 자들만이 참으로 예수님의 추종자들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자들은 세상을 사랑하는 자의 경박하고 헛된 이야기를 즐길 수 없다.

세상에서 분리됨

그리스도의 참된 추종자들이 반드시 해야 할 희생이 있다. 그들은 세속적 오락의 장소를 피할 것이다. 이는 그들이 그곳에서 예수님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들로 하늘의 성품을 갖게 하여 은혜 가운데 더욱 장성하게 하는 감화력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377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만이 그들을 이런 모든 것에서 벗어나게 하고 분리되게 할 것이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20)고 구세주께서는 말씀하셨다. 모든 참된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열매를 맺는다. 그들의 생애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선한 일이 이뤄진 것과 성결에 이르는 열매를 맺은 사실을 증거할 것이다. 그들의 생애는 향상될 것이며 순결하게 변화될 것이다. 바른 행실은 참된 경건의 틀림없는 열매가 되며 이런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사물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들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다. 예수님께서는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4, 5)고 말씀하셨다.

참 하나님을 경배하려 하는 자들은 반드시 모든 우상을 희생하여야 한다. 예수님께서 법관에게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 22:37, 38)라고 말씀하셨다. 십계명의 첫 네 계명은 우리들의 사랑을 하나님에게서 분리시키는 것을 용납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발견되는 가장 큰 기쁨을 아무것에게도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분리 시키는 모든 것을 제거해 버리기 전까지는 우리들은 신앙적 경험에서 전진할 수 없다.

당신의 백성들을 세상에서 선택하사 불러내신, 교회의 큰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세상과 분리될 것을 요구하신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추종자들이 계명의 정신에 의해서 당신에게 이끌려 오므로 그들을 세속적 요소로부터 분리시키도록 계획하셨다. 378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세속적인 쾌락과 우정을 사랑하는 것과는 천양지차이다. 그리스도와 마귀 사이에는 아무것도 일치되는 것이 없다.

청년들에게 하신 허락의 말씀들

그리스도를 따르는 청년들 앞에는 전쟁이 있다. 그들은 세상에서 나와 그리스도의 생애를 본받기 위하여 날마다 십자가를 져야 한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구세주를 찾는 자들을 위하여 귀중한 많은 허락들이 기록되어 있다. 지혜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 8:17)고 인간들을 부르고 있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 1:13-15).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심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딛 2:11-14).―부모와 교사와 학생에게 보내는 권면, 266-270.

379 청년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능력을 올바로 향상시킬 수 있도록 굳건한 원칙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청년들은 원칙을 잊은 채 맹목적으로 충동만을 따름으로 끊임없이 위험에 처한다. 청년들이 언제까지나 부모와 후견인들의 지도와 보호를 받을 수는 없을 것이므로 자립과 극기의 훈련을 쌓을 필요가 있다. 그들은 양심적인 원칙에 의하여 생각하고 행하도록 교육을 받아야 한다.

휴양과 오락

연구에 몰두하는 자들은 휴양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정신은 끊임없이 면밀한 사색에 혹사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섬세한 뇌수(腦髓)의 기관이 피로해지기 때문이다. 정신뿐만 아니라 육체도 운동의 시간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다른 모든 일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오락에 있어서도 절제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오락의 성질을 주의 깊이 또 면밀히 검토하여야 한다. 모든 청년들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이 오락들은 육체적·정신적·도덕적 건강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내 마음이 이것에 매혹되어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지경에까지 이를 것인가? 나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지나 않을 것인가?

카드 놀이는 금지되어야 한다. 이러한 교제와 경향은 위험하기 이를데 없다. … 이러한 오락은 영육간에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한다. 거기에는 지력을 강화하는 것도 없으며 장래에 사용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사상의 축척도 하나 없다. 380 때때로 그들은 가치 없고 비속한 문제에 관하여 담화하기가 일쑤다. … 카드를 다루는 능란한 솜씨를 갖게 되면 때때로 이 지식과 재간을 개인적 이익을 위해 사용하려는 욕망을 갖게 된다. 처음에는 소액의 금전을 걸고 도박을 시작하지만 점차로 좀더 많은 돈을 걸게 되고, 도박에 대한 갈망이 불타오르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틀림없이 파멸에 빠지고 만다. 이런 유해한 오락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모든 범죄 행위로, 빈곤으로, 감옥으로, 살인으로, 또 교수대로 인도하였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모들은 우리 청년들 앞에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무서운 패망의 구렁을 보지 못하고 있다.

가장 위험한 쾌락의 장소 중 하나는 극장이다. 자주 주장되는 바와 같이 극장은 도덕과 미덕의 학교이기는 커녕 부도덕의 온상이다. 악한 습관과 범죄의 경향이 이러한 오락으로 말미암아 강화되고 굳어진다. 저열한 음악과 음탕한 동작, 표정, 태도가 생각을 타락시키고 도덕을 저하시킨다. 이러한 음행장에 습관적으로 드나드는 청년은 부패한 원칙을 갖게 될 것이다. 사람의 상상에 해독을 끼치고 신앙적 인상을 파괴하며 조용한 즐거움과 인생의 진정한 현실에의 취미를 흐리게 하는데 있어 극장의 오락보다 더 강력한 것은 이 땅에 없다.

이러한 장면에 탐닉할 때마다 마치 마취 음료를 사용함으로써 이를 구하는 욕망이 강해지는 것과 같이 그에 대한 애착도 증가된다. 유일의 안전책은 극장이나 곡예, 또는 그 밖에 의문되는 오락의 장소를 피하는 일이다.

영과 육 모두에 크게 유익이 되는 오락의 형태도 있다. 381 계발되고 분별력 있는 마음은 무해할 뿐 아니라 교육적인 출처에서 여흥과 기분 전환을 위한 풍성한 재료를 발견할 것이다. 호외에서 휴양하고 자연계 가운데서 하나님의 작품들을 명상하는 것은 최고의 유익이 될 것이다.―교회증언 4권, 651-653.

해독이 없는 오락을 공급함

청년들은 노인들처럼 침착하고 근엄하게 될 수 없으며 어린이는 어른처럼 점잖게 될 수 없다. 죄악적인 오락은 마땅히 폐기되어야 하는 동시에 부모들과 교사들과 청소년들의 보호자들은 나쁜 오락들을 대신해서 품행을 더럽히지 않고 부패하게 하지 않을 순결한 오락을 마련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들 자신이 압박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므로 이를 깨뜨리고 어리석음과 멸망의 길로 달려가게 하는 일이 없게 하라. 단호하고 친절하며 동정적인 손으로 관리함으로 그들의 마음과 목적을 지도하고 조종하되 유순하게, 슬기롭게, 또한 사랑스럽게 함으로써 그대들이 한결같이 그들의 최선의 유익을 생각해 준다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하라.―부모와 교사와 학생에게 보내는 권면, 274.

선교 사업에서 얻는 휴양

그토록 빈번하게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지 못하는 오락에 낭비된 시간은 가난한 자와 병든 자와 수고하는 자들을 방문하거나, 혹은 도움이 요구되는 자들을 돕는 일에 사용되어져야 한다.―교회증언 6권, 276.

382 나는 우리 학교의 학생들에게 침착한 마음을 가지라고 탄원한다. 하나님께서는 청년들의 경박한 행동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그들의 운동 경기와 놀이는 유혹의 홍수를 맞아들이기 위하여 문을 여는 것이 된다. 그들은 천부의 모든 지적 기능들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그들은 그들의 사상이 천박하고 비천한 일에 물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을 좇아 형성된 품성은 불굴의 원칙과 순결하고 고상한 포부를 나타낼 것이다. 성령께서는 인간의 모든 정신력과 협력하며 그 결과로 고상하고 거룩한 충동이 나타나게 된다. … 먹고 마시며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기 위한 저열하고 속된 향락적 모임은 지옥에서부터 나온 정신의 충동을 받은 것이다. 그런 것들은 모두 사단에게 바치는 제물에 불과하다. … 이런 경박한 일들을 자진해서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사업에 쉽게 지워버릴 수 없는 오점을 남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심령을 상하게 하고 그 상처는 일생을 통하여 남아 있을 것이다. 악을 행한 자가 자신의 죄를 보고 회개할 수도 있고 또한 하나님께서 이런 범법자들을 용서하실 수도 있으나 신성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기 위하여 항상 예리하고 민감한 상태로 보존되어야 할 식별력이 크게 손상을 입게 된다.―부모와 교사와 학생에게 보내는 권면, 300, 301.

383 의인의 장래의 거처와 그들의 영원한 상급은 젊은이들을 위한 높고 고상한 명상의 주제이다. 영광의 왕의 보혈을 힘입어 그대들이 고상해지고, 순종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보좌에까지 마침내 높임을 받기 위하여, 영광의 왕께서 치르신 큰 희생, 놀라운 구원의 계획을 깊이 생각하라. 이 주제가 가장 고상한 마음의 명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것은 얼마나 귀한 특권인가! … 젊은 친구들이여, 나는 그대들이 이런 일을 하고 이런 식으로 기분을 전환시킨다면 행복해질 수 있음을 보았다. 그러나 그대들이 불안해 하는 이유는, 그대들이 유일한 참 행복의 근원을 찾지 않기 때문이다. 그대들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견하는 그 기쁨을 그리스도 밖에서 찾고자 언제나 애쓰고 있다. 그분 안에서는 희망이 실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기도. 아, 이 귀중한 특권이 얼마나 등한히 여겨지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 마음이 기도하도록 준비된다. 기도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는 경향이 그대들에게 그처럼 적은 가장 큰 이유는, 상상력을 자극시키고 거룩하지 못한 정욕을 일으키는 매혹적인 소설을 읽음으로 그대들 스스로를 이 거룩한 일에 적합하지 않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취미가 없어지고, 기도의 시간은 잊어버린 바 된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힘이다. 혼자 있을 때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볼지어다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신 분의 임재를 느끼게 된다.

젊은이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바로 그것을 원하는데, 그것은 이른바 신앙이다. 그것을 대신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고백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다. 384 이름이 지상에 있는 교회의 녹명책에는 기록되어 있지만 생명책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나는 20명의 젊은이들 중 한 사람도 체험적 신앙이 무엇인지 아는 자가 없음을 보았다. 그들은 스스로를 섬기고 있으면서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공언한다. 그러나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마력이 깨뜨려지지 않는 한, 그들은 범죄자에게 해당되는 몫이 그들의 것임을 미구에 깨닫게 될 것이다. 진리를 위하여 극기와 희생을 하는 대신 그들은 그 모든 것보다 더욱 편안한 길을 발견해 냈다.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를 받고 사단의 유혹에 저항하기 위한 힘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께 눈물을 흘리고 크게 부르짖고 간구해야 할 때, 그들은 그렇게 열렬하고 간절하게 할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그런 일 없이 잘 지낼 수 있다. 영광의 왕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아버지께 심령의 요구를 토로하기 위하여 때때로 혼자서 산과 한적한 곳으로 가셨다. 그러나 능력을 갖고 있지 않은 죄 많은 사람은 그처럼 많은 기도 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교회증언 1권, 519, 520.

예수의 모본

예수께서는 모든 형태의 방종을 책망하셨으나 그의 본성은 사교적이었다. 그는 모든 계급의 사람들의 접대를 받으셨으며 부자와 가난한 자, 유식한 자와 무식한 자들의 가정을 방문하시고 일상 생활의 문제들로부터 신령하고 영원한 사물들에게로 그들의 생각을 향상시키려고 힘쓰셨다. 그는 방탕하는 것을 용인하시지 아니하셨으며 세속적인 경박의 그림자가 그의 행동에 흠이 가게 하는 일도 없으셨다. 그렇지만 그는 순진하고 행복한 정경에서 즐거움을 찾으셨으며 친히 참석하심으로 사교의 모임을 인정하셨다. 유대인의 혼인은 인상적인 행사였으며 그 기쁨은 인자에게도 불쾌한 일은 아니었다. 예수께서는 이 잔치에 참여함으로 혼인을 하늘이 명하신 제도로서 존귀하게 하셨다.―시대의 소망 1권, 194, 195.

385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우리들의 정신을 새롭게 하고 신체를 원기 왕성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한편 우리들의 모든 힘을 항상 최선의 목적을 위해서 사용할 것을 요구하신다. 우리들은 우리들이 취하는 휴양으로 부여된 모든 의무들을 더욱 잘 수행할 수 있고, 우리와 교제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더욱 유익한 감화를 끼치기에 합당한 방법으로 휴양을 계획하고 또한 그렇게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우리들은 새로운 정신과 원기를 회복한 몸으로 휴양지에서 집으로 돌아와 더 좋은 희망과 더 큰 용기를 가지고 새롭게 일에 착수할 준비를 갖출 수 있어야 한다. … 우리들은 인류 사회에 유익을 주고 축복이 되기 위하여 살고 있다. 그러므로 헛되고 어리석은 것들만을 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정신을 쏟는 헛된 길로 우리들의 마음을 쏠리게 한다면 어떻게 우리가 우리 동족들과 이 세대에 유익을 주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두 가지 원칙을 대조함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그리스도인로서의 휴양을 즐기는 것과 쾌락과 오락만을 위주로 한 세속적인 모임과의 사이에는 현저한 대조가 있다. 기도와 그리스도 및 거룩한 사물들에 대하여 말하는 대신에 세속적 인간들의 입술에서는 어리석은 웃음과 경박한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다. 그들의 목적은 대체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는데 있다. 그들의 오락은 어리석게 시작하여 헛되게 끝마친다. 386 우리가 집에 돌아올 때에는 하나님과 사람에 대해서 죄책이 없는 양심과 우리와 사귄 자들에게 어떤 모양으로도 상처를 주거나 해로운 감화를 끼치지 않았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그런 방식으로 우리들은 회합을 경영하고 우리 자신이 그렇게 처신하여야 한다.

우리들의 본성은 쾌락과 자신의 만족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을 편만하게 하는 것이 사단의 술책이다. 사람들이 “나의 신령적 상태는 어떠한가?” 라고 스스로 물어볼 시간의 여유를 가지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사단은 사람들의 마음속을 세속적 오락에 대한 욕망으로 채워주려고 힘쓴다. 쾌락을 사랑하는 마음은 전염된다. 이에 굴복할 때에 마음은 언제나 계속하여 또 다른 오락들을 찾아 헤매게 된다.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할 때에 우리는 이러한 성벽을 막고 경건치 못한 것을 방어하는 장벽을 쌓게 된다.

젊은 사람들은 그들이 향유하는 모든 특권, 시간의 이용, 그들의 재능의 올바른 사용 등에 책임을 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우리에게는 아무런 오락도 휴양도 없는 것인가? 아무런 변화 없이 일하고 또 일할 것인가?” 라고 물을지 모른다.

그대들이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면서 참석할 수 있는 오락이라면 위험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은밀한 기도와 기도의 제단에서의 헌신, 그리고 기도회 참석 등에 그대들을 부적합하게 만들어주는 오락은 어떤 것도 안전하지 못하며, 위험한 것들이다.―부모와 교사와 학생에게 보내는 권면, 275, 276.

387 사교적 집회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모인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작열할 때,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거나 혹은 주의 사업을 진전시키고 동료 인간에게 선을 행하기 위한 방법을 생각할 때 가장 유익하고 교훈적인 집회가 된다. 이러한 집회에서 성령을 반가운 손님으로 환영하고, 그 손님을 슬피 떠나가게 하는 어떤 말이나 행동도 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영광을 얻으시고 거기 모인 사람들은 새롭게 되고 힘을 얻는다.

그러나 이와 반대되는 특성을 지닌 사교적 모임이 있으니 거기에서는 외양에 대한 자랑과 환희와 그리고 경박한 것을 너무나 번번이 보게 된다. 거기 모인 자들은 오락에 대한 욕망이 지나쳐 하나님을 잊어버릴 위험이 있으며, 또 수호하는 천사들을 비탄에 잠기게 할 사건들이 발생한다. 잠시 동안은 쾌락의 장면이 낙원이 된다. 모든 사람은 환희와 연락에 도취된다. 눈에는 불꽃이 일고 뺨은 붉어진다. 그러나 양심은 잠자고 있다.

영성의 부족이 드러남

이러한 열심과 자극은 그 기원을 하늘에 두고 있지 않다. 이런 것들은 모두 이 땅의 것들이다. 천사들은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그처럼 많은 희생을 치르신 자들의 이 같은 배은 망덕을 슬픈 낯으로 바라보고 있다. 자신을 기쁘게 하는 데만 전생애를 바쳐온 사람들에게 질병과 죽음이 이를 때, 그들은 등에 기름이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으며 아무런 준비도 못한 채 인생의 역사를 끝마쳐야 하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나, 때는 이미 늦었다.

388 많은 사교적 집회에서 나누는 대화의 주제는 그들의 마음이 어떠한 기초 위에 있는지를 나타내 준다. 다만 웃음을 자아내기 위한 경박한 이야기나 어리석은 재담은 그리스도를 올바로 표현하지 못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말한 자들은 그들의 말을 적어둔 기록을 보려 하지 않을 것이다. 듣는 자들은 그릇된 인상을 받고 그리스도에게 비난을 가하게 된다. 아! 청년들은 말을 극히 삼가서 해야 한다. 이는 그들이 그 말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거나 혹 정죄함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든지 예수께서 그대들 곁에서 그대들의 행동을 주시하고 그대들의 말을 경청하고 계심을 기억하라. 그대들에게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또 주께서 그대들의 대화를 듣고 계시는 것을 알 때 그대들은 부끄럽지 않겠는가? … 한때 열렬했던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속적 오락에 참여하는 것은 위험한 지반에 서는 것이다. 그는 생기 발랄한 하늘의 분위기로 충만한 지역을 떠나 안개와 연기가 가득한 곳으로 뛰어들어 갔다. 이는 대개의 경우 쾌락적 사교와 오락을 위한 집회는 그리스도교회를 비난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자는 진정으로 이러한 회합에 참가할 수가 없다. 그가 듣는 이야기들은 그의 마음에 맞지 않을 것이니 이는 그 말이 가나안의 언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말하는 자들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름다운 노래를 드린다는 증거를 주지 못한다.

음험한 감화력

가식적인 품성과 신앙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쾌락과 오락을 위하여 아주 쉽게 모인다. 그리고 그들의 감화력은 다른 사람들까지도 이끌어 들인다. 어떤 때에는 성경대로 행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노력하는 청년 남녀들도 설득당하여 회합에 참가한다. 389 이상한 사람이라는 지적을 받기 싫어하고 또 천성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모본을 쉽게 따르는 그들은, 일찍이 마음이나 가슴에 성령의 접촉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스스로 감연된다.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란 나무가 맺어야 할 과실에 관한 그리스도의 말씀을 배우기 위하여 기도하면서 하늘의 표준을 상고했더라면, 이러한 연회가 실상은 사람들로 하여금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마련된 잔치인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때로는 하나님의 길로 신중한 지도를 받은 청년들이 오락의 장소에 자주 출입함으로 인간적 감화에 매혹되어 세속적 성향을 띤 교육과 훈련을 받은 자들에게 애착심을 갖는 일이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단장하지 못한 사람들과 교제함으로써 스스로를 종신 노예로 팔아버린다.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자들은, 마음 속에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지 아니한 사람들과 교제함으로써 세속적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할 것이다. 그들의 길이 비록 극기와 희생의 길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담대히 설 것이다.

경박한 언행의 중화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수고와 희생의 생애를 사셨다. 그런데 우리는 그분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할 수 없단 말인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속죄와 우리에게 주려고 기다리시는 그의 의는 우리 마음을 사로잡을 가치 있는 주제가 되지 않겠는가? 390 청년들이 성경이란 창고에서 보물을 꺼내고, 또 극기의 생애를 산 자에게 주어지는 사유와 평화와 영원한 의에 대하여 명상한다면 이상한 흥분이나 오락에 대한 욕망을 갖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청년들이 구원이라는 크고 고상한 주제를 생각할 때 기뻐하신다. 그는 마치 영주하는 손님처럼 이런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 들어가셔서 기쁨과 화평으로 채워주신다. 마음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요 4:14)과 같다. … 이러한 사랑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준비하신 것들에 대하여 즐겨 이야기할 것이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는 성도와 죄인, 회개한 자와 회개하지 아니한 자를 구별하는 선을 그으신다. 이 두 계급은 무지개의 빛과 같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서로 섞이지 않고 한낮[正午]과 한밤이 확연히 다른 것처럼 서로 구분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진리를 알면서도 실행하지 않는 자들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것은 결코 안전하지 못한 일이다. 조상 야곱은 그 아들들의 행위에 대하여 염오하는 마음으로,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예하지 말지어다”(창 49:6)라고 외쳤다. 야곱은 만일 자기가 죄인들의 행위에 가담한다면 자신의 영광이 손상되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위험 신호를 들고 나쁜 친구들과의 교제를 피하라고 경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악에 물들게 된다고. 그리고 성령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이와 유사한 경고를 하신다.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돌이켜 책망하라”(엡 5:11).―청년 지도자, 1897년 2월 4일

합당한 사교적 집회

391 모든 영향력 있는 재능은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모아들이는 목적을 위하여 거룩하게 보존, 사용되어야 한다. 청년 남녀들은 흔히 행해지는 운동 경기와 야회(夜會), 그리고 음악 연주회가 그리스도께서 받으실 만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나는 우리의 모든 집회가 확고한 종교적 감화를 그 특징으로 삼아야 한다는 빛을 거듭거듭 받아왔다. 만일 우리 청년들이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눅 10:25) 하고 물으면서 성경을 읽고 이해하고자 모이며, 다 같이 진리의 편에 서고자 한다면 주 예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축복하실 것이다.

오! 교회의 모든 신도들과 교회 기관의 모든 일꾼들이, 이생의 삶이 순결과 깨끗한 사상과 무아의 행동에 관한 하늘 아버지의 시험을 준비하는 학교인 것을 깨닫기를 바라노라! 모든 언행과 모든 사상이 낱낱이 하늘 기록책에 기록된다. … 우리가 성화되고 성경 말씀 가운데 주어진 표준의 참된 품격으로 향상되어야만 하는 것은 진리의 힘과 그 역사를 통해서이다. 하나님의 도는 다만 당신의 말씀에 유의하여 순종함으로써만 배울 수 있다. 말씀을 연구하라.―청년 지도자, 1906년 8월 14일

392 휴양은 육체 노동에 종사하는 자들에게 필요하며, 주로 정신 노동을 하는 자들에게는 더 한층 필요하다. 심지어 신앙에 관계된 문제라 할지라도, 정신을 끊임없이 과도히 활동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구원이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필수적인 것이 아니다. 무도, 카드 놀이, 장기, 바둑 등과 같은 오락들이 있는데, 우리는 그것들을 찬성할 수 없다. 하늘이 그것들을 정죄하기 때문이다. 이런 오락들은 큰 죄악을 향하여 문을 열게 한다. 그것들은 그들의 성향에 유익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흥분시키는 영향을 주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마음 속에 도박과 유흥으로 이끌어가는 이 놀이들에 대한 욕망을 일으켜준다. 이 모든 놀이들은 그리스도인들에 의하여 정죄되고, 전혀 손해를 주지 않는 어떤 것으로 대치되어야 한다.

나는, 우리의 휴일들이 세상을 본받아 허비되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시된 채 지나쳐버려도 안 될 것을 보았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자녀들에게 불만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자녀들이 악한 영향에 노출되어 세상의 쾌락과 흥분으로 타락해질 위험이 있는 이런 시대에, 부모들은 더욱 위험한 오락을 대신할 어떤 것을 연구해 내기 위하여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대들이 자녀들의 복리와 행복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해주라.

도시와 촌락에 사는 몇 가정들이 연합해서 그들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치게 만든 일에서 벗어나서 시골로 들어가 경치가 아름다운 조용한 천연의 호숫가나 숲 속에서 소풍을 즐기도록 하라. 393 그들은 단순하고 위생적인 음식, 가장 좋은 과일 등을 가지고 가서 나무 그늘 아래나 창공 아래 식탁을 차릴 것이다. 승차, 운동, 경치 등이 식욕을 돋구어줄 것이므로, 그들은 왕들도 부러워할 만한 식사를 즐기게 될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부모들과 자녀들이 걱정과 노동과 어려움에서 해방되어 있음을 느껴야 한다. 부모들은 자녀들처럼 어린이가 되어, 할 수 있는 대로 그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하여 모든 것을 주선해야 한다. 하루를 다 레크리에이션에 바치도록 하라.

옥내에서 혹은 앉아서 일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옥외에서의 운동이 건강에 유익이 될 것이다. 가능한 한 모든 사람은 이 길을 따르는 것을 하나의 의무로 여겨야 한다. 그렇게 하면,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고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생기와 새로운 용기를 가지고 직장으로 돌아와 열성껏 활동할 수 있게 되고, 질병을 저항하기 위한 준비도 더 잘 갖추게 된다.―교회증언 1권, 528, 529.

그리스도인의 즐거움의 근원

하나님께서는 부자와 가난한 자가 모두 누릴 수 있는 즐거움 곧 순결한 사상과 무아의 행동을 계발하는 가운데서 발견되는 쾌락과 동정의 말과 친절한 행위를 하는 가운데서 오는 즐거움을 각 사람을 위해 준비하셨다. 이러한 봉사를 하는 사람들로부터 그리스도의 빛이 발하여져서 많은 비애로 어두워진 사람들의 생애를 빛나게 한다.―교회증언 9권, 57.

394 나는 문예반이 청년들에게 유익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때때로 받는다. 이 질문에 올바른 대답을 하기 위하여 우리들은 이러한 문예반이 공언하고 있는 목적만을 생각해서는 안 되며 경험에 의해서 증명된 바 그들이 실제로 끼치는 감화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우리의 지적 발달은, 우리 자신에 대해서나 사회에 대해서 또는 하나님께 대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의무이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지적인 면을 계발하려는 수단을 꾀하려고 도덕과 신령한 것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 그리고 지적인 면과 도덕적인 면이 다 같이 최고의 완성에 도달하는 것은 이 두 가지 재능이 조화된 발전을 함으로만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들을, 일반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문예반을 통해서 얻을 수 있겠는가?

문예반들은 거의 대부분이 그 이름이 시사하는 것과는 반대되는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일반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문예반들은 청년들에게 해를 주고 있는데, 그 이유는 사단이 들어와서 모든 활동 과정에 자기의 낙인을 찍기 때문이다. 남자는 남자답게 하고 여자는 여자답게 하는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품성에서 반사되는 것이다. 우리들이 이러한 문예반에 참석함으로 그리스도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이 적어지고 이런 생각이 적으면 적을수록 그만큼 지배력을 가져야 할 고결함과 세련되고 고상한 요소들이 결핍하게 된다. 세상 사람들이 이러한 집회를 저희 마음에 원하는 대로 지도해 나아갈 때에 그리스도의 정신은 제외된다. 마음은 심각한 반성을 하지 못하게 되고 하나님을 떠나며 현실과 실제를 망각하고 다만 상상적이며 피상적인 것들을 따르게 된다. 문예반들-과연 그 이름이 그들의 참 특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일까? 쭉정이를 알곡에 비할 때에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395 문예반을 조직하기에 이른 취지와 목적은 좋은 것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에게서 온 지혜가 이러한 단체들을 지배하지 않는 한 그것들은 절대적인 폐해를 끼칠 것이다. 마음과 생애가 경건하지 못하고 헌신하지 않는 자들이 일반적으로 가입되고 또한 이러한 자들이 때때로 가장 책임 있는 지위에 서게 된다. 모든 유해한 감화력을 제어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되는 규칙과 조례(條例)들을 채택할 수 있을 것이지만 교활한 장군인 사단은 그 회합을 자기 계획에 적합하도록 판을 짜는 일에 마침내 성공하는 예가 너무나 많다. 대적 마귀는 과거에 그가 지배해 오던 자들에게 쉽사리 접근하게 되며 그들을 통해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다. 이러한 모임은 세속적인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각종 여흥이 소개되며 소위 문예반의 행사들은 퇴폐적인 연극 공연과 저속한 넌센스로 타락하는 예가 너무나도 많다. 이 모든 것들은 육신에 속한 생각을 만족시키는 것으로 하나님과는 적이 된다. 그것은 지력을 강화하거나 도덕력을 견실하게 하지 못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이러한 모임에서 불신자들과 교제함으로 죄인들을 성도로 변하게 하지는 못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세속적이며 성별되지 못한 사람들과 연합하고 그들에게 지배권을 줄 때에 그들은 신성하지 못한 감화에 의해서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된다. 잠시 동안은 별로 반대할 점이 없는 것처럼 보일는지 모르나 하나님의 성령의 지배 아래 있지 않은 사람들은 진리와 의의 향기를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만일 그들이 지금까지 영적 사물을 조금이라도 즐기는 마음이 있었던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열에 가담하였을 것이다. 396 이 두 계급은 서로 다른 두 주인의 지배를 받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의 목적, 희망, 취미 및 소원에 있어서 서로 반대된다. 예수를 따르는 자들은 검소하고, 현명하며 고상한 문제들을 즐기는 반면에 거룩한 사물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피상적이며 비현실적인 것들이 그 행사의 주요 부문이 되지 않는다면 이러한 모임에 취미를 붙이지 못할 것이다. 영적 요소는 조금씩 조금씩 경건치 못한 자들에 의해서 침해를 받게 되며 본질적으로 적대되는 두 가지 원칙을 조화하려는 노력은 확실히 실패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문예반을 설립하기 위한 계획을 고안하기 위하여 무수한 노력을 해왔다. 즉 모든 회원들이 그 모임의 근본 목적에 일치하도록 하며 또한 이런 단체가 때로 종교적 원칙을 범하기 쉬운 위험스러운 모든 악습을 피하기 위하여 전회원이 도덕적 책임을 느낄 수 있는 사교 단체를 조직하려고 노력하여 왔다. 분별이 있고 좋은 판단력을 가졌으며 하늘과 산 관계를 맺어 악의 경향을 파악하고, 또 사단의 기만을 물리치며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군기를 높이 들고 성실한 길을 걸어갈 수 있는 바로 그런 사람들이 이런 단체들을 지배하는데 필요하다. 그런 감화야말로 사람들의 존경을 얻게 할 것이며 이런 집회는 저주가 되는 대신에 축복이 될 것이다.

만일 성숙한 남녀들이 청년들과 연합하여 이런 문예반을 조직하고 지도 한다면 유익하고 흥미있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집회가 한갖 흥이나 소동으로 타락된다면 그는 결코 문예적이거나 향상적인 것이 되지 못한다. 그런 집회는 정신과 도덕을 저하시킨다.

397 성경 연구, 성경 문제들에 대한 비판적인 검토, 또는 정신을 계발하고 지식을 줄 수 있는 문제에 대하여 기록한 수필, 예언 연구 혹은 그리스도의 귀중한 교훈에 대한 연구-이 모든 것들은 지력을 강화하고 영성을 증진시킬 것이다. 성경을 가까이 하고 자주 접촉함으로써 식별력이 예민해지고, 사단의 공격에서 영혼을 보존하게 된다.

생각과 상상을 통제하는 습관을 길러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자가 많지 못하다. 훈련되지 않은 정신을 항상 유익한 문제에 집착시키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생각들을 올바로 활용하지 않는다면 신앙이 그 사람의 영혼 안에서 자라지 못하게 된다. 거룩하고 영원한 사물로서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는데 만약 그렇게 하지 않을 때에는 경박하고 피상적인 생각만이 마음에 깃들게 될 것이다. 지적·도덕적 능력은 모두 훈련을 받아야 하는데 그런 훈련을 통해서만 강화되고 향상될 것이기 때문이다. … 마음과 함께 지력도 하나님을 섬기는데 바쳐야 한다. 주께서는 우리에게 속한 모든 것을 요구하실 권리를 가지고 계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비록 어떤 것이 순진하고 칭찬할 만하게 보일지라도 그것이 그의 열심을 감소시키고 그의 영성을 축소시키는 것이라고 양심이 고해 주는 것일 때에는 어떤 만족에도 이에 탐닉하지 말아야 하고 어떤 기도(企圖)에도 참가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악의 조류를 물리치고 우리 청년들을 멸망 가운데로 휩쓸려고 하는 세력으로부터 저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셔서 이 조류(潮流)를 저항하여 힘써 전진하게 되기를 기도하는 바이다.―부모와 교사와 학생에게 보내는 권면, 450-453.

398 참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축복을 구할 수 없는 어떤 오락장이나 유흥에도 들어가거나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극장이나 당구장, 혹은 볼링장에 가지 않을 것이다. 그는 화려한 댄서와 연합하지 아니할 것이며 마음 속에서 그리스도를 쫓아내는 것이면 어떠한 매력을 가진 쾌락에도 탐닉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오락들을 변호하는 자들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그런 것들에 탐닉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극장이나 무도장에서 보낸 시간에는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할 수 없다. 어떤 그리스도인도 이러한 장소에서 죽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아무라도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그러한 장소에서 뵈옵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최후의 시간이 이르러 우리들의 생애의 기록을 직접 마주하게 될 때 우리는 쾌락의 모임에 그다지 참석하지 아니한 것을 후회할 것인가? 또 철없는 환락의 장면에 그처럼 적게 참여한 것을 후회할 것인가? 우리는 도리어 그처럼 많은 귀중한 시간을 자기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허비해 버린 것-즉, 올바로 활용하였더면 우리에게 불멸의 보배를 가져다 주었을지도 모를 많은 기회를 등한히 한 것을 심히 후회하지 아니할 것인가?

믿노라고 자칭하는 자들이 마음에 집착하는 거의 모든 유해한 방종을 변명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상례가 되어버렸다. 죄에 물든 탓에 그들은 죄의 흉악함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은 교회 자선 사업이라는 미명 하에 경건치 못한 잔치를 벌임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이 정죄하는 죄들을 그럴싸하게 얼버무린다. 399 이와 같이 그들은 하늘의 의복을 빌려 입고 마귀를 섬긴다. 사람들은 기만을 당하고, 길을 잃고 방황하며 또, 이 모든 방탕으로 말미암아 덕과 성실을 상실한다.

방탕의 길에서

믿는 많은 가정에서도 무도와 카드 놀이가 실내의 소일거리가 되어 버렸다. 이 모든 것들은 부모들의 감시 하에서 아무 폐단 없이 즐길 수 있는 조용한 가정 오락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극적 쾌락을 사랑하는 마음이 이러한 오락으로 말미암아 배양되고 가정에서 폐해가 없다고 생각되던 것이 머지 않아 가정 밖에서는 위험한 것으로 간주될 것이다. 이런 오락들로부터 어떤 훌륭한 것을 기대한다면 그것은 어림없는 일이다. 그런 것들은 몸에 활기도, 마음에 휴식도 주지 못한다. 그것들은 또한 마음 속에 도덕적이고 거룩한 감정을 심어주지 못한다. 도리어 그것들은 진실한 사상과 신령한 봉사에 대한 사랑을 모두 파괴한다. 품위 있는 사람들의 선택된 모임과 저열한 댄스장의 난잡하고 타락된 모임 사이에는 실로 커다란 대조가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한가지로 방탕의 길로 들어가는 계단이 된다.

오늘날 행해지는 댄스라는 오락은 타락을 키우는 학교요, 사회에 대한 무서운 저주이다. 만일 우리 대도시에서 해마다 이로 말미암아 멸망당하는 모든 사람들을 한데 모아놓을 수 있다면 얼마나 비참한 생애의 역사가 전개될 것인가! 이러한 행습에 대하여 변명을 늘어놓으려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결과를 보고 고민과 놀람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인가! 어찌 그리스도인 부모로서 공공연히 그들의 자녀들과 함께 이러한 환락의 장소에 출입함으로써 그들을 유혹의 길에 두는 것에 동의할 수 있는가? 400 어찌 청년 남녀들이 그들의 영원한 행복을 이 미혹하는 쾌락과 바꿀 수 있을 것인가? ― 리뷰 앤드 헤랄드, 1882년 2월 28일

오락의 위험

쾌락에 대한 사랑은 가장 위험한 것 중의 하나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도시에 사는 어린이들과 청년들을 엄습하는 많은 유혹들 가운데 부지 불식간에 작용하는 것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휴일의 수는 많고 운동 경기와 경마는 허다한 사람들을 끈다. 그리고 흥분과 쾌락의 선풍이 그들을 휩쓸어 생애의 진정한 의무를 떠나게 한다. 보다 유용하게 쓰기 위하여 쌓아두었어야 할 돈-많은 경우에 그것은 가난한 자들의 빈약한 수입-이 오락을 위하여 낭비된다.―그리스도인 교육의 기초, 422.

원칙의 지도를 받음

많은 사람들은 악의적인 비평과 험담을 두려워한 나머지 원칙대로 행동할 용기를 갖지 못한다. 그들은 감히 자신을 그리스도를 완전히 따르는 자들과 같은 편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들은 세상의 습관과 합치하여 세간의 칭찬을 받는 것을 원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신 것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딛 2:14).―리뷰 앤드 헤랄드, 1887년 11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