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봉사

본문보기

469 순결하고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조용하고, 언행이 일치되는 생애에는 유창한 말보다 더욱 강력한 웅변이 있다. 사람의 인격은 그의 말보다 더욱 많은 감화력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께로 파견되었던 관원들은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는 보고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러나 이에 대한 설명은 그분처럼 생애한 사람은 없었다는 뜻이다. 만일 그분의 생애가 당신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았을 것같으면 그분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실 수 없었다. 그분의 말씀에는 그들에게 확신을 주는 능력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 말씀들은 순결하고 거룩하며, 사랑과 동정심이 충만하고, 자비와 진리가 많은 마음에서 나왔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의 감화력을 결정해 주는 것은 우리 자신의 품성과 경험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은혜의 능력을 확신시켜 주려면 우리는 그 능력을 우리 자신의 마음과 생애에서 알아야 한다. 우리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증거하는 복음은 우리 자신의 영혼을 구원해 준 복음이어야 한다. 오직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는 산 믿음을 통해서만 우리의 감화력을 불신의 세계가 느낄 수 있게 할 수 있다. 우리가 급히 흐르는 물결 속에서 죄인들을 건져 내려면, 우리 자신의 발이 만세 반석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굳게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

470 그리스도의 휘장은 겉으로 보여 주는 표지가 아니며, 십자가나 면류관을 달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과 연합함으로 나타내 주는 것이다. 성품의 변화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통하여 세상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세상의 구속주로 보내셨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다. 인간의 심령을 감싸 줄 수 있는 어떤 감화력도 이타적인 생애의 감화력과 같은 그런 능력을 가질 수 없다. 복음을 위한 가장 강력한 논증은 상냥하고 친절한 그리스도인이다.

시련의 단련

그와 같은 생애를 하고, 그러한 감화를 끼치는데는 매 발걸음마다 노력과 자아희생과 수양을 요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그리스도인 생애에서 너무도 쉽게 낙심해 버린다. 생애를 하나님의 사업에 성실하게 바친 많은 사람들이 전에 결코 경험하지 못했던 장애물을 만나고 시련과 난관에 둘러싸이게 되면 놀라고 실망하게 된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같은 품성을 소유하기 위하여, 또한 주님의 사업에 적합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기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본성에 있는 모든 악을 다 자극하는 것처럼 보이는 환경에 처하게 된다. 그들이 그런 것이 있는 것으로 의심해 보지도 않은 결점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옛날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고 계신다면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닥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의심한다.

471 이와 같은 일들이 그들에게 다가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시련과 장애는 주님께서 택하신 훈련의 방법이며, 또한 그분께서 정하신 성공의 조건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성품을 그들 자신이 아는 것보다 더 잘 아신다. 그분께서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올바르게 지도하기만 하면 당신의 사업을 발전시키는데 사용될 수 있는 능력과 감수성이 있는 것을 아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섭리로써 그와 같은 사람들을 각기 다른 위치와 여러 가지 환경에 처하게 하심으로 그들이 지금까지 알지 못한 채 감추어 있는 결함들을 그들의 성품에서 발견하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이와 같은 결함들을 교정하고 당신의 사업에 적합하게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 때때로 그분께서는 고난의 불이 그들을 엄습하도록 허락하심으로써 그들이 정결해 지게 하신다.* 우리가 시련을 견디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실은 주 예수님께서 계발시키기를 바라시는 귀중한 무엇을 우리 속에서 보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만일 그분께서 우리 속에 당신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아시면 그분께서는 우리를 연단하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가치없는 돌을 당신의 용광로 속에 던져 넣지 않으신다. 그분께서 연단하시는 것은 가치 있는 것이다. 대장장이가 쇠와 강철을 불 속에 던져 넣는 것은 그것들이 어떤 종류의 금속인지 알기 위해서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택한 사람들이 어떤 기질의 사람들이며 그들이 당신의 사업을 위하여 적합한 자들이 될 수 있을 것인지의 여부를 시험해 보기 위하여 그들이 고난의 풀무 속으로 들어가도록 허락하신다.

토기장이는 진흙을 가지고 자기의 뜻대로 형체를 만든다. 그는 흙을 이기고 또 빚는다. 그는 그것을 떼어서 찧고 또 눌러서 뭉친다. 그는 물로 축이고 다시 말린다. 그는 얼마 동안 손을 대지 않고 그것을 놓아둔다. 그것이 완전히 말랑말랑해 지면 그는 그것으로 그릇을 만드는 일을 계속한다. 472 그는 그것으로 모양을 만든다. 그리고 녹로에서 깎고 다듬는다. 그는 그것을 햇빛에 말리고 솥에서 굽는다. 그리하여 그것은 사용하기에 알맞은 그릇이 된다. 이와 같이 일꾼의 지도자 되시는 위대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빚어 만들기를 원하신다. 마치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는 것처럼 우리는 그분의 손에 놓여 있어야 한다. 우리는 토기장이의 일을 하고자 노력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 자신을 바침으로 일꾼의 지도자 되시는 예수님에 의하여 꼴지어지면 된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2, 13).* 밝은 대낮에, 그리고 다른 음성으로 된 노래들이 들려오는 동안에는 새장 안에 있는 새가 그의 주인이 가르쳐 주고자 애쓰고 있는 노래를 부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 새는 노래의 한 절 한 절씩을 여기 저기에서 떼어내어 짤막짤막하게 부르는 흉내만을 낼지언정 결코 단독으로 완전한 곡조를 다 부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주인이 새장을 덮고 그 새가 하나의 노래만을 들을 수 있는 곳에 두면 그는 노래를 부르게 된다. 어두움 속에서 그는 되풀이해서 그 노래를 부르고자 노력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는 그 노래를 배워 완전한 곡으로 부르게 된다. 그런 다음에 그 새를 밝은 곳으로 내어 놓으면, 그는 거기에서 그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이 당신의 백성을 취급하신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노래가 있다. 우리가 고통의 그늘 아래서 그것을 배우게 되면, 우리는 그 후에 언제나 그 노래를 부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필생의 사업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환경이 마음에 맞지 않으므로 그럴 것이다. 그들은 보다 높은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이 그들에게 있다고 생각되는데도 불구하고, 평범한 일로 그들의 시간을 빼앗기게 된다. 흔히 그들의 노력은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하고 결과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장래는 불확실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닐지라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택해 주신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을 기억하자. 473 좋아하는 일이든지 마음이 내키지 않는 일이든지 간에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의무를 감당해야 한다.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전 9:10).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니느웨로 가서 기별을 전하기를 바라시는데, 우리가 욥바로 가거나 가버나움으로 간다면 그분을 기쁘시게 해 드리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발길을 인도하여 그 장소로 보내는데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 바로 그곳에 우리가 주어야 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어떤 사람이 있을 것이다. 빌립을 이디오피아의 내시에게로, 베드로를 로마의 백부장에게로, 이스라엘의 작은 소녀를 수리아의 장군 나아만에게로 보내어 도우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남녀들과 젊은이들을 당신의 대표자로 하나님의 도움과 지도를 요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로 보내신다

하나님의 계획이 최선임

우리의 계획이 반드시 하나님의 계획과 일치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경우에서처럼 우리 자신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의도를 버리는 것이 우리 자신과 당신의 사업을 위하여 최선의 길임을 보고 계실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기 자신들과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을 진정으로 바치는 사람들을 그분께서 축복하시고 그분의 사업의 발전을 위하여 사용하신다는 사실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들의 소원을 허락하는 것이 최선의 일이 아니라고 보시면, 그분께서는 당신의 사랑의 증거를 보여 주시고 그들에게 다른 사업을 맡겨 주심으로 그렇게 거절하신 일에 균형을 이루게 해주실 것이다.

사랑으로 우리를 돌봐 주시고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시며, 흔히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것보다 우리 자신을 더욱 잘 이해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신의 야망을 채우기 위하여 이기적으로 구하는 것을 허락지 않으시고 거절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곁에 있는 평범하면서도 신성한 의무를 지나쳐 버리도록 허락지 않으신다. 흔히 그와 같은 의무는 우리가 더욱 고상한 사업을 위하여 준비하는데 요긴한 훈련을 우리에게 준다. 때때로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우리의 계획은 실패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진정으로 희생하도록 요구받는 일은 결코 없다. 그분께서는 많은 것들을 당신께 바치라고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하늘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것을 버리는데 불과하다. 474 심지어 그 자체가 좋은 것들을 버리라는 요구를 받을 때일지라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위하여 더욱 훌륭한 일을 이루어 주고 계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장차의 생애에서는 이 땅에서 우리를 괴롭게 하고 실망케 했던 신비들이 밝혀질 것이다. 우리는 응답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보였던 우리의 기도와 좌절당했던 희망이 우리에게 가장 큰 축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모든 의무를, 비록 그것들이 아무리 비천해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사업의 일부로서 신성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 우리는 매일 다음과 같이 기도 드려야 한다. “주님, 나를 도와 주셔서 최선을 다하게 해 주십시오. 일을 더욱 잘 하는 방법을 내게 가르쳐 주소서. 나에게 힘과 기쁨을 주십시오. 나를 도와 주셔서 나의 봉사가 주님을 즐거운 마음으로 섬기는 일이 되게 해 주십시오.”

모세의 생애에서 배울 교훈

모세의 경험을 생각해 보라. 그가 왕의 손자로서 또한 장차 왕위를 계승할 후계자로서 애굽에서 받은 교육은 매우 철저하였다. 애굽 사람들은 지혜를 이해하고 있었으므로 그를 현명한 사람으로 만드는 일로 생각되었던 것은 어떤 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는 문무(文武)를 겸한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속박에서 해방시키는 사업을 위하여 충분히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르게 판단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섭리로써 모세를 양을 치는 목자로 40년 간 광야에서 훈련을 받게 하셨다.

모세가 애굽에서 받은 교육은 여러 가지 면에서 그에게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평생 사업을 위하여 가장 귀중한 준비는 목자로서 일하는 동안에 받은 것이었다. 모세는 천성적으로 성질이 급한 사람이었다. 애굽에서 성공적인 군대의 지도자로 왕과 국민들의 총애를 받아왔기 때문에 그는 칭찬과 찬사를 받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는 국민의 인기를 끌었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는 과업을 성취하고자 희망하였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대표자로서 배워야 할 교훈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그가 양떼를 끌고 거칠은 산을 통과하여 골짜기의 푸른 초원으로 인도해 다니는 동안, 그는 믿음과 온유와 인내와 겸손과 무아(無我)의 정신을 배웠다. 475 그는 약한 것을 돌봐 주고, 병든 것을 치료해 주고, 길 잃은 것을 찾아내고, 성질이 사나운 것을 참고, 어린 것을 보호하고, 늙고 쇠약한 것을 간호해 주는 법을 배웠다.

이렇게 일하는 동안 모세는 목자장 되시는 그리스도께로 더욱 가까이 나가게 되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과 밀접히 연합하였다. 그는 이제 더 이상 큰 일을 하고자 계획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하나님께 하는 것처럼 성실하게 하고자 힘썼다. 그는 그의 주위에 하나님께서 임재해 계심을 깨달았다. 천연계의 모든 사물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그에게 말해 주었다. 그는 하나님을 개인의 하나님으로 알았다. 그리고 그분의 성품을 명상하는 중에, 그는 그분께서 임재해 계심을 더욱 더 충분히 깨닫게 되었다. 그는 영원한 팔에서 피난처를 찾았다.

그와 같은 경험이 있은 다음에, 모세는 그의 목자의 지팡이를 권능의 지팡이로 바꾸고, 양떼를 떠나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을 때, 그는 자신(自信)이 없고, 말이 느리고, 수줍은 사람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대변자가 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어쩔 줄을 모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을 완전히 신뢰함으로써 그 일을 수락하였다. 위대한 그의 사명은 그의 최선의 정신력을 요구하였다. 그가 즐거운 마음으로 순종하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그를 축복하셨다. 그리하여 그는 일찍이 사람에게 위탁된 사업 중 최고의 사업에 적합하리 만큼 능변적이고, 희망에 넘치고, 침착한 사람이 되었다. 성경은 그에 대하여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라고 기록하고 있다(신 34:10).

476 자신의 사업이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더욱 큰 책임을 맡고자 갈망하는 사람들은 “대저 높이는 일이 동에서나 서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에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이를 높이시느니라”(시 75:6, 7)는 말씀을 기억하라.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안에 자신의 위치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그 위치를 채우는 여부는 하나님과 협력하는 우리의 성실성에 달려있다.* 우리는 자신을 동정하는 일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대가 마땅히 받을 만큼 평가를 받지 못하고, 그대의 노력이 인정받지 못하고, 그대의 사업이 너무 어렵다는 등의 생각을 결코 갖지 말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참으신 것을 생각하고, 불평하는 생각을 일체 버려라.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받으신 것보다 더욱 좋은 대접을 받고 있다. “네가 너를 위하여 대사를 경영하느냐 그것을 경영하지 말라”(렘 45:5).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지는 것보다 면류관을 얻고자 더욱 갈망하는 자들을 위하여 당신의 사업에 자리를 마련해 두지 않으셨다. 477 그분께서는 보수를 받는 것보다 의무를 다하고자 더욱 노력하는 사람들, 곧 승진을 위하여서보다 원칙을 위하여 더욱 큰 열심을 가진 사람들을 원하신다.

겸손하고, 그들의 일을 하나님께 하는 것처럼 수행하는 사람들은 떠들썩하고 잘난 체하면서 일하는 사람들보다 겉으로 나타나는 업적이 크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사업이 더욱 가치가 있다. 흔히 외관을 크게 자랑하는 사람들은 사람들과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아 자신에게로 주의를 집중시킨다. 그러므로 그들의 사업은 실패하게 된다.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무릇 너의 얻은 것을 가져 명철을 얻을지니라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잠 4:7, 8).

많은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를 제어하고 개혁할 결심을 하지 않으므로 잘못된 행동을 기계적으로 되풀이한다. 그러나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최선의 봉사를 할 수 있게끔 그들의 능력을 계발시킬 수 있다. 그리하면 그들은 언제나 봉사의 요청을 받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가진 가치 그대로 인정을 받게 될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들이 높은 위치에서 일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되면, 주님께서는 그 짐을 그들에게 뿐만 아니라 그들을 시험해 본 자들, 그들을 지혜롭게 전진하도록 격려할 수 있는 자들에게도 지우신다. 지정된 일을 매일 충실하게 수행하는 자들이, 하나님께서 정한 때가 이르면, “더욱 높이 올라오라”는 그분의 부르심을 받게 된다.

목자들이 베들레헴의 언덕 위에서 그들의 양떼를 지키고 있는 동안 하늘에서 온 천사들은 그들을 방문하였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에도 하나님을 위한 겸손한 일꾼이 그의 일을 하고 있는 동안,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의 곁에 서서 그의 말을 듣고, 그가 일하는 방법을 주시하고, 더욱 큰 책임을 그의 손에 위탁할 수 있을지의 여부를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재산과 그들의 교육과 그들의 지위에 의하여 그들을 평가하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그들의 동기의 순결성과 품성의 아름다움에 의하여 그들을 평가하신다. 478 그분께서는 그들이 당신의 성령을 어느 정도 소유하고 있으며 당신의 형상을 그들의 생애에 어느 정도 나타내고 있는지 살펴 보신다. 하나님 나라에서 위대하게 되는 것은 어린 아이처럼 겸손하고, 믿음이 단순하고, 순결한 사랑을 갖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리라고 말씀하셨다(마 20:25, 26).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실 수 있는 선물 중에서 그리스도의 수난에 참례하는 것이 가장 가치 있고 가장 영광스런 것이다. 하늘로 옮기어 간 에녹이나, 불병거를 타고 승천한 엘리야도 옥중에서 홀로 죽은 침례 요한보다 더욱 위대하거나 더욱 큰 영광을 받지 못하였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빌 1:29).

장래를 위한 계획

많은 사람들은 장래를 위하여 분명한 계획을 세울 수 없다. 그들의 생애는 불안정하다. 그들은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어떻게 될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것 때문에 그들은 염려와 불안을 갖게 된다.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자녀들의 생애는 순례자의 생애임을 기억하자.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애를 위하여 계획을 세울 지혜가 없다. 우리의 장래를 꼴지어 주는 것은 우리가 아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히 11:8).

479 그리스도께서는 지상 생애를 하시는 동안 당신 자신을 위한 계획을 세우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받아들이셨고, 날마다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계획을 나타내 주셨다. 그와 같이 우리도 우리의 생애가 단순히 그분의 뜻을 이루는 생애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길을 그분께 위탁할 때, 그분께서는 우리의 발길을 인도해 주실 것이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빛나는 장래를 위하여 계획을 세우는 중에 완전한 실패를 한다. 하나님께서 그대를 위하여 계획을 세우게 하라. 작은 어린 아이처럼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분의 지도를 의지하라(삼상 2:9). 만일 하나님의 자녀들이 처음부터 끝까지를 볼 수 있고, 그들이 그분과 협력함으로 성취하고 있는 목적의 영광을 식별할 수 있다면, 그들이 지도받기를 바라는 바로 그 길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급 료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제자들을 따라오도록 부르셨을 때,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이 세상에서의 어떤 바람직한 전망을 제공해 주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유익이나 세속적 명예를 약속하지 않으셨다. 그들 역시 어떤 보수를 받겠다는데 대하여 계약을 맺지 않았다. 세관에 앉아 있는 마태를 향하여 구주께서는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마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았다(눅 5:27, 28). 마태는 그 봉사의 요청을 수락하기 전에 그의 종래의 직업에서 받았던 액수와 비등한 어떤 봉급을 요구하지 않았다. 480 그는 질문하거나 주저하지 않고 예수님을 따랐다. 그는 구주와 함께 있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과 함께 그분의 사업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였다.

이미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 역시 그러하였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그의 친구들에게 당신을 따르라고 명령하셨을 때, 그들은 즉시 배와 그물을 버렸다. 그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생계를 그들에게 의존하고 있는 친족들을 데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구주의 초청을 받았을 때, 그들은 주저하지 않고, “내가 어떻게 생활하며 나의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을 것입니까”라고 질문하지 않았다. 그들은 부르심에 순종하였다. 그 후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내가 너희를 전대와 주머니와 신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고 질문하시자, 그들은 “없었나이다”고 대답할 수 있었다(눅 22:35).

오늘날 구주께서는 마치 당신이 마태와 요한과 베드로를 부르셨던 것처럼 우리를 당신의 사업에 부르고 계신다. 만일 우리의 마음이 그분의 사랑으로 감동을 받으면 보수 문제는 우리의 마음에 제일 중요한 것이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협력자가 되는 것을 즐거워하고, 그분의 보호에 의지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힘으로 삼을 것같으면, 우리는 의무에 대한 분명한 지각과 이타적인 욕망을 갖게 될 것이며, 우리의 생애는 세속적 동기를 초월한 고상한 목적으로 고무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심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근심스럽고 불안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들은 하나님께 완전히 헌신하지 아니한다. 481 왜냐하면 그들은 그와 같은 헌신에 따르는 결과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와 같은 헌신을 하지 않으면 그들은 평안을 찾지 못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세상의 표준에 도달하고자 애쓰기 때문에 근심의 짐을 지고 마음에 고통을 받고 있다. 그들은 세속적 봉사를 택하였고, 세속적 근심을 받아들였고, 세속적 관습을 적용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의 성격은 망가졌고, 그들의 생애는 근심으로 눌리게 되었다. 계속적인 근심은 생명력을 소모시킨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 속박의 멍에를 벗어 버리기를 바라신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멍에를 메라고 그들에게 초청하신다. 그분께서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30)고 말씀하신다. 근심은 눈을 가리우므로 장래를 식별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보신다. 모든 어려움 중에서 그분께서는 구원해 줄 길을 마련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이다(시 84:11).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도무지 알지 못하는 수 많은 길을 준비해 놓고 계신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최선의 것으로 여기는 원칙을 수락하는 사람들은 난관들이 사라지고 앞길에 평탄한 길이 펼쳐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오늘의 의무를 성실하게 감당하는 것이 내일의 시련을 위하여 가장 잘 대비하는 일이 된다. 내일의 부담과 염려를 모두 모아서 오늘의 짐에 첨가하지 말라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 6:34).

희망과 용기를 가지자. 하나님의 사업에서 실망하는 것은 죄악적이며 부당한 일이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온갖 필요를 아신다. 언약을 지켜 주시는 우리의 하나님, 만왕의 왕이신 전능한 하나님은 부드러운 목자의 보호와 친절을 겸하여 가지신 분이시다. 그분의 능력은 절대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분을 신뢰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의 약속을 성취시켜 주겠다는 분명한 보증이 된다. 그분께서는 모든 어려움을 제거해 줄 방편을 소유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그분을 존경하고 그분께서 마련하신 방편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482 그분의 사랑은 마치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다른 어떤 사랑보다 더욱 뛰어난 사랑이다. 그분께서는 측량할 수 없이 영원한 사랑을 가지고 당신의 자녀들을 돌보신다.* 가장 어려운 상황인 것처럼 보이는 최악의 시간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라. 그분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고 계시며, 당신의 백성의 유익을 위하여 모든 것을 호전시키고 계신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들의 힘은 날마다 새로와질 것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종들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온갖 도움을 주실 수 있고, 또한 즐거운 마음으로 주신다. 그분께서는 그들의 여러 가지 필요에 따라 요구되는 지혜를 그들에게 주실 것이다.

사도 바울은 시련 중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게 이르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라”(고후 12: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