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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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이 기별은 세상을 위한 것이다. “누구든지”란 말은 조건에 부합되는 어떤 사람이나 모두가 축복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개인의 구주로 믿는 모든 사람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된다. 우리가 영원한 상급을 받을 수 있는 모든 준비가 갖추어져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속죄제물, 우리의 대리인, 우리의 보증인, 우리의 거룩한 중보자이시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히 9:24)신다.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중보는 우리의 대리인이요 보증인으로서 그분 자신이라는 제물에 나타난 그분의 공로를 아버지께 제시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하늘로 올라가셨기 때문이다.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 1:1, 2).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느니라”(요일 4:10).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히 7:25).

106 이 성경 말씀을 볼 때 그대가 죄인이고 무가치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대를 받아 주시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그대의 영혼이 괴로워하고 불신 속에 빠지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하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약 4:8). 그대의 사정을 그분 앞에 제시하고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그대를 위해 흘리신 보혈의 공로를 간구하라. 사단은 그대를 엄청난 죄인으로 비난할 것이다. 그런데 그대는 그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대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죄인임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게는 구주가 필요하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나에게는 구원을 주장할만한 아무런 공로와 선이 없다. 그러나 나는 모든 죄를 속죄하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흠 없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피를 하나님 앞에 제시한다. 이것이 나의 유일한 탄원이다. 예수님의 이름이 나를 아버지께 가까이 나아가도록 해준다. 그분의 귀와 마음은 나의 가장 연약한 간구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열려 있으며, 그분께서는 나의 간절한 필요를 채워주신다.”

이것이 칭의이다

회개한 죄인을 하나님께 가납되게 해주고 그의 칭의를 이루어 주는 것은 그리스도의 의이다. 그의 생애가 아무리 죄악적이었을지라도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믿으면, 그는 그리스도의 입혀주는 의의 흠 없는 예복을 입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

범죄와 죄악으로 거의 죽을 지경이 된 죄인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소생함을 입는다. 그는 믿음으로 예수님께서 자기의 구주가 되시고 영원히 살아 계셔서 “그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믿는 자는 그를 위해 이루어진 속죄를 통하여 효능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닫고, 곧 그처럼 무한한 값으로 산 구원의 완성을 깨닫고 그의 영혼이 찬양과 감사로 충만해진다. 그는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며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는 것을 깨닫는다. 107 그는 그리스도의 의의 두루마기가 하늘의 베틀로 짜여지고 자기의 순종으로 이루어져서 그분의 이름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회개한 영혼에게 입혀진 것을 깨닫는다.

죄인이 예수님의 비길 데 없는 매력을 보게 될 때, 죄는 더 이상 그에게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만사람에 뛰어난 분, 그 전체가 사랑스런 분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는 그 방대한 계획이 존귀한 목적에 의해서만이 비견될 수 있는 복음의 능력을 개인적인 경험을 통하여 깨닫게 된다.

우리에게는 살아계신 구주가 있다. 그분은 요셉의 새 무덤 속에 계시지 않고 사망에서 일어나 모든 믿는 영혼을 위한 대리자와 보증인으로서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 5:1). 죄인은 예수님의 공로를 통하여 의롭게 된다. 이것은 인간을 위해 지불한 몸값이 완전하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은 회개하는 죄인을 아버지께서 받아주신다는 보증이다. 이럴진대 우리가 의심하고 믿고, 믿고 의심하는 모호한 경험을 가져야 할 것인가?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께 가납되게 하시는 담보물이다. 우리는 은총을 입고 하나님 앞에 서 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어떠한 공로로 인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이신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자 지성소에 서 계신다. 그곳에서 그분은 자기의 백성을 매 순간 나타내어 그분 자신 안에서 완성시키는 일을 중단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우리가 아버지 앞에 그렇게 제시된다는 이유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자비를 이용하여 부주의하고 무관심하고 방종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는 죄의 봉사자가 아니시다. 오직 우리가 믿음으로 그분 안에 거할 때만 그분 안에서 완전해지고 사랑하는 자녀로 그분께 가납된다.

우리 자신의 선한 행실로는 결코 완전함을 이룰 수 없다. 믿음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영혼은 자기 자신의 의를 포기한다. 그는 자기 자신이 불완전하고, 자신의 회개가 미흡하고, 자신의 가장 강한 믿음도 연약한데 불과하고, 자기의 가장 값진 희생도 빈약하다는 것을 깨닫고 십자가의 발 아래 겸손하게 엎드린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서 한 음성이 그에게 들려온다. 108 놀랍게도 그는 “그대는 그분 안에서 완전하다”라는 기별을 듣는다. 이제 그의 영혼은 편히 쉬기만 하면 된다. 더 이상 그는 자기 자신 안에서 가치있는 어떤 것을, 하나님의 호의를 얻기 위해서 공로 있는 어떤 행위를 발견하고자 애쓰지 않아도 된다.

붙잡기 어려운 진리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바라봄으로써 그는 그리스도의 평화를 발견한다. 왜냐하면 용서라는 글자가 그의 이름 위에 쓰여져 있고 그는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골 2:10)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의심에 익숙해진 인간성 때문에 이 위대한 진리를 붙잡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평화를 영혼에게 가져다 주며 얼마나 생기에 넘치는 삶을 가져다 주는가! 하나님께 가납되기 위한 의를 얻고자 우리 자신을 바라볼 때, 우리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라는 말씀에서 잘못된 곳을 바라보게 된다.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광으로 말미암”(고후 3:18)기 때문이다. 그대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바라보므로 그대의 완전을 찾아야 할 것이다.

범해진 하나님의 율법 앞에 설 때 죄인은 스스로를 정결하게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는 그분의 무한한 사랑의 대상이 되어 그분의 흠 없는 의의 옷으로 입혀진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위해서 예수님은 기도하셨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요 17:17-22).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삽고 저희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삽나이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25, 26).

109 믿는 죄인을 완전하게 하여 그를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하나님께 나타나게 해주는 그런 의의 본질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신다는 하나님의 보증된 말씀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절대적인 신뢰로 그분의 말씀을 의지하고 그분의 가장 풍성한 축복을 누리게 하신다.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나를 하나님께로서 온 줄 믿는고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요 1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