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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장-가난한 자를 동정함
5편재물에 대한 청지기

33장 - 가난한 자를 동정함

160 하늘이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려고 하는 것을 볼 때에 그리스도의 은혜의 부요함에 참여한 자들이 그들의 동료 인간들에게 대한 관심과 동정심을 거둘 수 있겠는가? 어떻게 계급이나 신분에 대한 자만으로 불행에 처한 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멸시할 수 있겠는가?

아직도 신분으로 인하여 교만하고 가난한 자를 압제함이 세상에 편만한 바 이런 일이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하는 자들 중에도 있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인류를 향해 충분히 발휘되어야 할 동정심이 많은 사람에게서 얼어 붙은 것 같다. 사람들은 남에게 복을 끼치도록 위탁받은 선물들을 자기들을 위해 사용한다. 하나님의 집에서까지도 부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고 이렇게 번 돈을 가지고 그들의 교만심을 만족시키고 옷치장을 하는 데 쓴다. 가난한 사람들은 예배 행사에 참여하려면 많은 돈이 있어야 한다고 느끼게 된다. 세상에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한 공중 예배에는 부자들만이 참여할 수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주님께서 가난한 자들과 마음으로 통회하는 겸비한 자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나타내시지 않았더라면 이 세상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슬픈 곳이 되었을 것이다. … 세상의 구속주는 가난한 부모의 아들이었으며 그가 유아시에 봉헌식을 할 때 그의 모친은 가난한 자들에게 허락된 예물-비둘기 한 쌍이나 산 비둘기 두 마리-밖에는 드릴 수 없었다. 그는 세상에 보내어진 값으로 측량할 수 없는 귀한 선물이었으나 가장 적은 예물로밖에는 답례할 수 없었다. 우리의 구주께서는 그의 모든 지상 생애 동안 가난하고 비천한 운명에 처하셨다. 167 극기와 희생이 그의 생애를 특징지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혜택과 축복은 모두 주님에게서 온 것이다. 우리는 그분의 은혜와 그가 주신 현세적 선물의 청지기이다. 가장 작은 재능과 가장 미천한 봉사도 예수님께 헌신한 예물로 간주하여 그분은 자기 자신의 공로의 향기와 함께 그것을 아버지께 바치실 것이다. 만일 예수님께 봉사하고자 하는 갈망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실한 마음으로 우리가 소유한 최소한의 것을 바친다면 그 예물은 온전히 가납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하늘에 보물을 쌓을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사람이 될 수 있다(딤전 6:18, 19).

동정의 줄로 붙들어 매라

부자와 가난한 자가 동정과 도움의 줄로 함께 밀접히 연합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 그분은 우리 각자를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 당신을 섬기는 모든 자에게 주님은 사명을 주셨다. 주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이 고통과 필요에 관심을 가지라고 명하신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부요하셨으나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우리로 부요케 하시려고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다. 그는 당신이 현세의 축복을 위탁하신 모든 자에게 당신의 모범을 따르라고 명하신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다고 하신다. 세상에 있는 궁핍과 불행은 끊임없이 우리의 동정심과 자비심에 호소하고 있으며 구주께서는 고통과 고난중에 있는 자들을 대하는 봉사가 당신을 가장 기쁘게 하는 봉사라고 선포하신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사 58:7)고 하신다. 162 우리는 병든 자를 간호해야 하며 주린 자를 먹여야 하고 벗은 자에게 옷을 입혀야 하며 무지한 자를 가르쳐야 한다.

세상에 궁핍과 가난이 이렇게 많기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는 자들이 많다. 그러나 그분은 자비의 하나님으로서 주의 사물을 위탁해 주신 당신의 대표자들을 통하여 당신의 피조물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고자 하신다. 그분은 모든 사람의 필요를 위하여 풍성한 준비를 해 놓으신 바 만일 사람들이 주의 선물을 남용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동료 인간들에게 주기를 거절하지만 않는다면 아무도 궁핍으로 고통당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 RH, 1893.6.20.

하나님 앞에는 계급이 없다

우리는 특히 가난한 자와 거래할 때 결코 냉담해서는 안 된다. 예의, 동정, 자비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야 한다. 부자를 편애하는 것은 하나님을 불쾌하시게 한다. 가난한 주의 백성이 멸시당할 때 예수께서 멸시를 당하시는 것이다. 그들은 이 세상 물질에는 부요하지 못하나 주님의 사랑의 마음에는 귀한 존재들이다. 하나님께서는 계급의 구별을 인정하지 않으신다. 그분에게는 계급이 없다. 주의 눈앞에서 사람은 선하든 악하든 단순히 사람이다. 최후의 심판의 날에는 지위, 계급, 부가 사람의 입장을 털끝만큼도 변경시키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보시는 하나님에 의하여 그 순결성과 고상함과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 여하에 따라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이 가난한 자들에게 전파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진리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에게 전파될 때보다 그것이 더욱 사랑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때는 결코 없다. 복음의 빛은 농부의 초막이나 노동자의 초라한 집에 비쳐질 때 가장 분명하고 찬란하게 비추인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 곳에 임재하고 그들의 임재로 빵 한 조각과 물 한 컵을 가지고 잔치를 베풀게 된다. 163 세상에서 천대 받고 버림받아 온 자들이 지존자의 아들과 딸이 된다. 그들은 세상이 줄 수 있는 어떤 자리보다 더 높이 들리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늘 처소에 앉는다. 그들은 지상의 보화는 없을지 모르지만 극히 값진 진주를 찾은 것이다. ― RH, 1910.7.21.

과부와 고아의 요구

우리의 도움을 요청하는 자마다 닥치는 대로 주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렇게 함으로 게으름과 부절제와 낭비를 조장하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그대의 문전에 와서 동냥하면 빈손으로 거저 돌려보내지 말라. 그대가 가진 어떤 것이든 먹을 것을 주라. 그대는 그의 환경을 모르지만 그의 빈곤이 불행의 결과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도움이 요구되는 모든 자들 중에서 고아와 과부는 우리의 동정과 관심을 가장 크게 요구한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니라” (약 1:27).

하나님의 영원하신 약속을 의지하고 믿음 안에서 잠든 아버지는 주께서 그들을 돌보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자기의 사랑하는 가족들을 남겨 두고 떠났다. 그러면 주께서는 이 유가족들을 어떻게 부양하시는가? 주께서는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시는 이적을 행하지 않으시고, 음식을 물고 가도록 까마귀를 보내지도 않으시지만 인간의 마음에 이적을 행하신다. 주님은 영혼 속에서 이기심을 몰아내시고 자비의 샘을 여신다. 주께서는 고난중에 있는 자들과 유가족들, 가난한 빈민과 고아를 신자들의 부드러운 자비심에 의탁하심으로 주님을 따르노라는 자들의 사랑을 시험하신다. 이들은 특별한 의미에서 그리스도께서 돌보시는 지극히 작은 자들이요, 이들을 등한시하는 것은 주님을 저버리는 것이다. 164 이런 자들을 등한히하는 것은 주의 고난당하는 자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등한히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행한 모든 진정한 행위는 마치 주님께 행하는 것과 똑같이 주님께 가납된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고난당하는 인생의 문제를 자기의 문제와 동일시하기 때문이요, 주께서 당신의 교회에게 궁핍한 자와 고난당하는 자를 돕고 축복함으로 당신께 봉사하는 숭고한 일을 맡기신 연고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그들에게 봉사하는 모든 자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임할 것이다.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가 되기까지는 돌보아야 할 고아들이 있을 것이다. 만일 우리 교인들이 그들을 위하여 부드러운 자비와 사랑과 친절을 베풀지 않으면 그들은 더 많은 고난을 당할 것이다. 주께서 우리에게 명하시기를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라”고 하셨다. 기독교는 이들 집없는 자들을 위해서 부모들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기도와 행실 가운데 나타나는 과부와 고아들을 위한 자비심은 미구에 보상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 앞에 기억될 것이다.

하나님과의 연결의 증거인 자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남에게 주도록 우리에게 당신의 축복을 나누어 주신다. 우리가 주의 사랑이 흘러나갈 수 있는 통로로 자신을 복종시키는 동안 그분은 이 통로를 계속 채우실 것이다. 그대가 하나님께 매일의 양식을 구할 때 주님께서는, 그대가 그대보다 더 궁핍한 자에게 그 양식을 나누어 주는가 그대의 마음속을 들여다 보신다. 그대가 “하나님이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할 때 주님은 그대와 교제하는 자들에게 자비를 나타내는가를 주목하신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과 연합된 증거이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비하신 것처럼 우리도 자비를 나타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주님의 것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불편하고 아무리 우리 자신의 감정에 맞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주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반드시 행해야 할 것이다. 165 …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고통하는 자와 고난당하는 자에게 행하신 것과 같이 봉사하면서 그리스도의 사업을 행함으로 그리스도인 품성을 계발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위하여 극기를 실천하고, 십자가를 지며, 잃은 자를 구원하는 일에 수고하고 희생하라고 하시는 것은 우리의 유익을 위함이다. 이것은 우리 안의 저속한 요소를 정화시키고 그리스도 예수 안의 품성의 귀한 특성이 신자에게서 나타나도록 하시는 주님의 정련의 과정이다. 모든 찌꺼기는 진리의 성화시키는 힘을 통해서 심령 속에서 제거되어야 한다. …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하여 남을 복되게 하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은 은혜 가운데서 우리를 자라게 하는 수단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미래의 영원한 행복을 더 증가시키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동역자로 살아온 자들에 대해 그분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실 것이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 RH, 1893.6.27.

게으른 자를 원조해서는 안 됨

개인적인 선물이나 교회 돈으로 게으른 남녀를 원조하는 습관은 그들에게 나쁜 습관을 조장시킨다. 이런 일은 의도적으로 피해야 한다. 모든 남녀 어린아이들까지 유용한 일을 하도록 교육받아야 한다. 모든 사람은 어떤 직업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천막을 만드는 일이든지, 또 다른 어떤 사업이든지간에 모든 사람은 그들의 능력을 어떤 목적을 위하여 활용하도록 훈련받아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부지런한 습관을 기르는 모든 자들의 재능을 증가시켜 주실 것이다. 우리는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게으름을 경계하는 모든 자를 축복하실 것이다. ― RH, 1900.3.13.

선교 자금에서 유용하는 자금

166 많은 경우에 선교 사업에 바쳐져야 할 자금이 자선에 대한 그릇된 사상 때문에 다른 방향으로 사용된다. 우리는 가난한 자들에게 축복이 못되는 선물을 주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그들로 하여금 남들이 자기들의 고생을 내버려두지 않을 터이니 애쓰거나 절약할 필요도 없다고 느끼게 하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는 방종하도록 도와주어 게으름을 조장하거나 자아 만족의 습관을 길러주어서는 안 된다. 도와야 할 가난한 자를 등한히 않는 한편 모든 사람에게 가능한 한 자립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영혼 구원은 우리가 짊어져야 할 사업이다. 그리스도께서 그 큰 희생을 하신 것은 이 때문이며 특별히 우리의 자선이 요구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본교 외방 선교 약사, 293.

극기-자아 희생

하나님의 자녀들은 궁핍과 고난중에서 그리스도께 부르심을 받는다. 많은 사람들이 절대 빈곤으로 죽어가고 있다. 이들의 울부짖음은 “안식일의 주인”의 귀에 도달한다. 주님께서는 궁핍한 자들을 등한히 한 자들에게 엄격한 계산을 요구하실 것이다. 이 이기적인 부자들은 주께서 그들에게 “나를 위하여 사용하라고 내가 준 돈으로 너는 무엇을 했는가?” 라고 질문하실 때 어찌할 것인가. “저희는 영벌에 들어가리라.” 주께서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저주를 받을 자들아 나를 떠나라 … 내가 주릴 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마 25:42, 43).

세상의 슬픈 탄식 소리가 우리 주위 도처에서 들린다. 죄가 그 그늘을 우리 위에 던지고 있다. 주님과 협력하도록 자신을 준비시키라. 167 이 세상의 쾌락과 권세는 지나갈 것이다. 아무도 자기의 지상 보화를 영원한 세계로 가지고 갈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일에 생명을 바친 자는 영원히 살 것이다. 하나님의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바친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나타나게 될 것이다. ― RH, 197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