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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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 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아들아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싫소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가로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그리스도께서 산상 설교를 하실 때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고 말씀하셨다. 사람의 진실성의 증거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행실에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너희가 남보다 더 나은 말을 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지 않으시고, “너희가…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마 5:47)고 물으신다.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요 13:17)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은 의미심장한 말씀이다. 그에 상응하는 행실이 따르지 않는 한 말은 아무 가치도 없다. 이것이 바로 두 아들의 비유를 통해서 주신 교훈이다.

이 비유는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하셨을 때에 하신 말씀이다. 273 그는 성전에서 물건을 매매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셨다. 그의 음성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저희 마음을 찔렀다. 그들은 놀라고 무서워서 아무런 변명이나 저항도 없이 그의 명령에 순종하였다.

저희의 공포심이 진정된 후 성전으로 돌아온 장로들은 그리스도께서 병자와 죽어가는 자들을 고치고 계시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감사하는 소리와 찬송의 노래를 들었다. 건강을 회복한 아이들은 바로 성전 안에서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면서 다윗의 아들에게 호산나로다 하며 노래를 불렀다. 어린아이들의 음성은 크신 의사를 찬양하는 노래를 더듬거리며 불렀다. 그러나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이 모든 것을 보고도 여전히 저희의 편견과 질투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 이튿날 그리스도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와서 그분에게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또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뇨”라는 질문을 했다.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그리스도의 권능에 대하여 의심할 수 없는 증거를 보았다. 그리고 저희는 그리스도께서 성전을 정결케 하실 때에 하늘의 권세가 그의 얼굴에서 번쩍이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그가 그것을 힘입어 말씀하시는 그 권세를 감히 대항할 수 없었다. 그는 또다시 당신의 병을 고치는 기이한 행사로써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셨다. 그는 남이 논박할 수 없는 당신의 권위의 증거를 보이셨다. 그러나 저희가 원하는 것은 증거가 아니었다. 제사장과 장로들은 예수께서 친히 당신 자신이 메시야라고 선포하기를 몹시 원했는데 그리하면 그들은 그분이 하신 말씀을 책잡고 악용해서 백성들이 그분을 대적하도록 선동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그의 감화를 소멸시키고 그를 죽이고자 했다.

예수께서는 저희가 만일 당신 안에 계신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고 또한 당신의 행위 속에서 신성의 증거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자기가 아무리 그리스도라고 주장할지라도 저희가 믿지 않을 것을 아셨다. 예수께서는 대답하실 때에 그들이 논쟁을 일으키려는 문제를 피하시고 그들의 비난을 저들 자신에게 돌리셨다.

274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요한의 침례가 어디로서 왔느냐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제사장과 관원들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저희가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로서라 하면 어찌하여 저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만일 사람에게로서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백성이 무섭다 하여 예수께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는 이 대답은 거짓말이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저희의 입장이 곤란하게 된 것을 깨닫고 저희의 입장을 은폐하기 위하여 거짓말을 했다. 침례 요한은 저희가 지금 그 권위에 대하여 질문하고 있는 자(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하여 왔다. 그는 예수를 가리키면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라고 말했다. 침례 요한이 그분에게 침례를 베풀었고 침례 후에 그리스도께서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의 모양으로 그에게 임하고, 하늘에서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고 말하는 음성이 들려 왔다.

제사장들과 관원들은 요한이 메시야에 관한 예언을 반복해서 말을 한 것을 기억하면서 또 예수께서 침례 받으신 장면을 기억하면서도 요한의 침례가 하늘로서 왔다는 말을 감히하지 못했다. 만일 저희가 믿는대로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했다면 나사렛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요한의 증거를 어찌 부인할 수 있겠는가? 또 저희가 요한의 침례가 사람에게서 왔다는 말을 할 수 없는 것은 요한을 선지자로 믿는 백성들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고 말하였다.

그 다음으로 예수께서는 아버지와 두 아들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셨다. 아버지가 큰 아들에게 가서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라고 명령을 했다. 275 이 아들은 대답하기를 “가겠나이다”라고 하였으나 가지 아니하였다. 아버지는 둘째아들에게 가서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했을 때에 그 아들은 즉시 대답하기를 “싫소이다”라고 했다. 그는 순종하기를 거절하고 악한 길로 행하며 악한 동무들과 사귀었다. 그러나 그 후에 회개하고 그의 아버지의 부르심에 순종하였다.

이 비유 가운데 나오는 아버지는 하나님을 대표하고, 포도원은 교회를 대표한다. 두 아들은 두 계층의 사람을 대표한다. 276 “싫소이다”라는 말로 그 명령을 순종하기를 거절한 아들은 공공연하게 죄를 짓는 생애를 사는 자들로써 믿는 체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율법이 요구하는 제재와 순종의 멍에 메기를 공공연하게 거절하는 자들을 대표한다. 그러나 이들 중 많은 사람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였다. 그들에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3:2)는 침례 요한의 기별이 임했을 때에 저희는 회개하고 저희 죄를 자복하였다.

“가겠나이다” 하고 가지 아니한 아들로 말미암아 바리새인의 성격이 드러났다. 유대 나라의 지도자들은 이 아들처럼 회개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만족하였다. 유대 국민들의 신앙생활은 외식적이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으로 율법이 반포되었을 때 모든 백성은 순종하겠다고 맹세했다. 그들은 “가겠나이다”라고 대답했으나 가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들에게 율법의 원칙들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오셨을 때에 저희는 그분을 거절하였다. 그리스도께서 그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당신의 권위와 신령한 능력에 대한 증거를 충분히 보여 주셨다. 그들은 그 증거를 보고 확신했으나 그 증거를 받아들이지는 아니하였다. 그들은 순종하고자 하는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불순종하기를 계속했다고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는 그들에게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마 15:6, 9)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 앞에 서 있는 무리들 가운데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섞여 있었는데, 그리스도께서는 두 아들의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청중들에게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라고 물으셨다. 바리새인들은 저희 자신을 생각지 아니하고 “둘재아들이니이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들은 그들 자신에게 정죄의 선고를 내리고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 다음에 그리스도의 입술에서는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저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기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종시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라는 공공연한 비난의 말씀이 떨어졌다.

277 침례 요한은 진리를 가르쳤고 그의 가르침으로 죄인들이 죄를 깨닫고 돌아왔다. 이러한 죄인들이 스스로 의로운 체하고 엄숙한 경고를 거절한 자들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세리와 창기들은 진리의 길을 알지 못했으나 이 유식한 자들은 진리의 길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낙원으로 인도하는 길로 걸어가기를 거절했다. 그들에게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향기가 되어야 할 진리가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되었다. 죄를 기탄없이 범하던 자들이 요한에게 침례를 받았다. 그러나 이 교사(제사장과 서기관 등)들은 외식하는 자들이었다. 저희의 완고한 마음은 진리를 받는 데 장벽이 되었다. 그들은 죄를 깨닫게 하는 하나님의 영의 감화를 물리쳤고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기를 거절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너희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을 하지는 않으셨으나 그분은 그들로 하여금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장벽을 저희 자신이 만들었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문은 아직까지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열려 있었다. 초청의 기별이 아직도 유효했다. 278 그리스도께서는 저희가 죄를 깨닫고 돌아오기를 몹시 바라고 계셨다.

이스라엘의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종교 의식에 저희 생애를 바쳤으며 그 의식은 세상 사업과 연관시키기에는 너무나 신성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저희는 저희의 생애가 절대적으로 신앙적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저희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하여 의식을 행했는 데, 그렇게 한 것은 세상 사람들이 그들은 경건하고 헌신한 자들이라는 생각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저희는 순종한다고 말하면서도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거절하였다. 저희는 진리를 가르친다고 공언했으나 진리를 실천하는 자들이 되지 못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침례 요한이 가장 위대한 선지자들 중에 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으며, 청중들에게 요한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자라는 충분한 증거를 그들이 갖고 있음을 보여 주셨다. 광야에서 외치는 전도자의 말에는 권능이 있었다. 그는 거리낌 없이 제사장들과 관원들의 죄를 책망하고 그들에게 천국에 들어가기 위하여 해야 할 일을 보여 주었다. 그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하라고 명하신 일을 거절함으로써 슬프게도 아버지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했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는 죄와 타협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불의한 길에서 돌아섰다.

유대 나라 지도자들이 공언한 신앙이 참이었다면 저희는 요한의 증거를 받고자 했을 것이며, 예수를 메시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저희는 회개의 열매와 의의 열매를 맺지 못했다. 저희가 업신여기던 자들이 오히려 저희보다 먼저 하늘나라에 들어가고 있었다.

비유 가운데 “가겠나이다”라고 대답한 아들은 신실하고 순종하는 아들처럼 보였으나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서 그의 고백이 결국에는 진실하지 못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는 자기 부친에 대한 참된 사랑이 없었다. 이와 같이 바리새인들도 저희의 성결함을 자랑했으나 시험을 받았을 때에 부족함이 드러났다. 율법을 준행하는 것이 저희에게 유익이 될 경우에는 그 율법의 요구 조항들을 매우 엄격하게 만들었으나 그것이 그들에게 순종을 요구할 때에는 간교한 궤변을 써서 하나님의 계명의 효력을 상실시키는 논리를 전개했다. 279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 대하여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마 23:3)한다고 하셨다. 저희에게는 하나님과 사람들에 대한 참된 사랑이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축복하시는 일에 그분과 동역자가 되도록 하시기 위하여 그들을 부르셨다. 그러나 그들이 말로는 그분의 부르심을 받아들였다고 주장했지만 실제 행동으로는 순종하기를 거절했다. 저희는 자기 자신을 의지하고 자신의 선행을 자랑했다.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을 업신여겼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맡겨 주신 일을 하기를 거절했다. 그리하여 그들의 범죄로 인하여 주께서는 불순종하는 백성들을 당신 자신에게서 끊어 버리시기로 작정하셨다.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실제로는 의로운 사람이 아니다. 스스로 의롭다는 생각을 고집하는 자들은 무서운 기만에 빠지게 되어 그 결과를 거두게 될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고 주장하면서도 저희 마음속에 다른 사람에게로 흘러갈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지 못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을 구원하는 사업에 그분과 협력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그들을 부르고 계신다. 그러나 그들은 “가겠나이다”라는 말만으로 만족하고 있다. 그들은 가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과 협력하지 않는다. 그들은 게으름뱅이들이다. 신실치 못한 아들처럼 그들은 하나님께 거짓 약속을 한다. 그들은 교회와 엄숙한 언약을 맺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순종하고 저희 자신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바치겠다고 서약하지만 저희는 그것들을 실행하지 않는다. 말로는 저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주장하지만 저희의 생애와 품성은 그 관계를 부인한다. 그들은 자신의 의지를 하나님께 바치지 않는다. 그들은 거짓된 생활을 살고 있다.

저희가 순종하기로 약속한 것이 아무런 희생도 요구하지 않을 때에만 그 약속을 이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극기와 자아 희생이 요구될 때나 십자가를 져야 할 일이 생길 때에는 뒤로 물러간다. 그리하여 의무에 대한 자각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계명을 알고 범하는 일이 습관화된다. 귀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만 영적 식별력은 사라져 버렸다. 마음은 완고해지고 양심은 마비된다.

그대가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생각을 갖지 말라. 280 우리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 자신의 영혼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사용하라고 주신 것들 곧 그것이 시간이거나 재물이거나 또는 다른 어떤 재능이거나 간에 그것을 사용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다.

사단은 소위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자들의 냉담하고 졸고 있는 나태 상태를 이용하여 자기의 세력을 강화시키고 영혼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인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실제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그리스도의 편에 섰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결국에는 원수로 하여금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도록 하고 있다. 그들은 주를 위하여 근실한 일꾼이 되지 않고 또 해야 할 의무를 행하지 아니하고, 해야 할 말을 하지 아니함으로 인하여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 있었던 많은 영혼들을 사단이 주관하도록 용납해 왔다.

게으르고 활동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다.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고 무익한 생애를 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떠돌다가 천국으로 흘러 들어가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게으름뱅이는 그 곳에 들어갈 수 없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하여 싸우지 아니하고, 또 천국의 국법을 열심히 배우려고 애쓰지 않는다면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협력하기를 거절하는 자들은 하늘에서도 그분과 협력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천국에 데려가는 것은 안전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그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보다는 차라리 세리와 죄인들이 더 큰 희망이 있다. 자기 죄를 숨기지 아니하고 자기가 죄인임을 아는 자들 곧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영과 혼과 몸을 더럽히고 있다는 것을 아는 자들은 천국에서 영원히 끊어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하게 된다. 그는 자기의 병적 상태를 깨닫고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요 6:37) 고 말씀하신 크신 의사에게 가서 고침을 받으려고 노력한다. 주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당신의 포도원의 일꾼으로 쓰실 수 있다.

잠시 동안 아버지의 명령을 순종하기를 거절한 아들을 그리스도께서는 정죄하지도 않으셨고 그렇다고 칭찬하지도 않으셨다. 281 둘째 아들같이 순종하기를 거절하는 계층의 사람들은 그 거절한 일로 인하여 칭찬을 받을 수 없다. 그들의 솔직성을 미덕으로 여길 것이 아니다. 진리와 거룩함으로 성화된 솔직함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위한 담대한 증인이 되게 하지만 이 솔직함을 죄인들이 사용할 때에는 그것이 하나님을 모독하고 반항하는 것이 되며 하나님께 대한 불경에 가깝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이 외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결코 그 사람의 죄를 가볍게 해주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호소가 우리에게 임할 때에 가장 유일의 안전책은 지체 없이 그 호소에 응하는 것이다.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는 부르심이 있을 때에 그 부르심을 거절하지 말라.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히 4:7). 순종하기를 지체하는 것은 안전하지 못하다. 그대는 그 부르시는 소리를 다시는 듣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무도 지금 품고 있는 죄를 점차적으로 쉽게 끊어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 그렇게는 되지 않는다. 마음속에 품은 모든 죄는 품성을 약하게 하고 죄의 습성을 강화시킨다. 그 결과로 육체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과, 도덕적인 면에 타락이 따르게 된다. 그대가 저지른 잘못을 회개하고 바른길로 나아갈 수도 있으나 그대의 마음에 형성된 틀과 악에 대한 익숙함이 그대로 하여금 옳고 그름을 분간하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사단은 형성된 악습을 통하여 그대를 되풀이해서 맹렬히 공격할 것이다.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는 명령으로 각 사람의 진실성이 시험을 받고 있다. 말과 행실이 일치할까? 부르심을 받은 자가 과연 자기가 가진 모든 지식을 다하여 포도원 주인을 위하여 사심이 없이 충성스럽게 일할까?

사도 베드로는 우리가 따라야 할 방책에 대하여 지시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28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 1:2~7).

그대가 그대의 영혼의 포도원을 신실하게 가꾼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대를 당신과 함께 일하는 자로 삼으실 것이다. 그리하여 그대는 그대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할 일이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포도원으로 비유했다고 해서 우리의 동정과 수고를 우리 신자들에게 국한시켜야 한다고 가르치신 것은 아니다. 주의 포도원은 확장되어야 한다. 그분은 세계 도처에 당신의 포도원이 확장되기를 바라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훈과 은혜를 받는 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그 귀한 포도나무를 잘 가꿀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는 주의 포도원을 확장시킬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과 사랑과 인내의 증거를 보시고자 하신다. 그분은 우리가 하나님의 낙원, 곧 아담과 하와가 범죄로 인하여 추방된 그 에덴에 들어가기 위하여 이 세상의 포도원에서 유능한 일꾼이 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영적 이점을 사용하고 있는지를 주목하여 보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 대해 아버지의 관계를 가지고 계시며 그분은 아버지로서 우리에게 충성된 봉사를 요구하신다. 그리스도의 생애를 생각하라. 인류의 선두에 서셔서, 아버지를 섬기신 그분은 우리가 어떠한 아들이 되어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모본이 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께서 바치셨던 그 같은 순종을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도 요구하신다. 그분은 당신의 아버지를 사랑으로 섬겼으며 즐거운 마음과 부담 없는 정신으로 봉사하셨다. 그분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시 40:8)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성취하시러 오신 사업을 이루시기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도 너무 크다고 생각지 않으셨으며, 어떠한 수고도 너무 괴롭다는 생각을 갖지 않으셨다. 283 그는 열두 살 때에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눅 2:49)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부르심을 듣고 그 일을 맡으셨다. 그는 또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 4:34)고 말씀하셨다.

우리도 그처럼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순종하는 데 있어서 최고의 표준에 이르는 자만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저희 자신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천사들과 협력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각 사람에게 시금석이 된다. 주께서는 자기를 신실하게 섬기는 사람들에게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말 3:17)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이루어 나가시는 주요 목적은 사람들을 시험하셔서 그들에게 저희 품성을 계발시킬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다. 그분은 그와 같이 저희가 당신의 명령을 순종하는 여부를 시험하신다. 선행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살 수는 없으나 그것은 우리가 그 사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 준다. 우리가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께 바친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얻으려고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값없는 선물로서 우리의 심령에 받아들이게 될 것이며 그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그분의 명령을 순종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세상에는 두 계급의 사람들만이 살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때에도 단지 두 계급의 사람으로 구별될 것이다. 즉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사람들과 그 율법을 순종한 사람들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충성과 불충성을 입증할 수 있는 시험을 주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요 14:15~24),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 1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