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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장-하나님의 거룩한 안식일의 준수

47장 - 하나님의 거룩한 안식일의 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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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 안식일 준수에는 큰 축복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이 우리에게 기쁨의 날이 되기를 바라신다. 안식일이 제정되던 때 그 곳에는 기쁨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손으로 지으신 것들을 만족스럽게 바라보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만드신 만물을 “심히 좋”다(창 1:31)고 선언하셨다. 하늘과 땅은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었다.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었느니라”(욥 38:7). 죄가 세상에 들어와서 하나님의 완전하신 역사(役事)를 훼손시켰을지라도 전능하시고 온유와 긍휼이 무한하신 분께서 만물을 지으셨다는 증거로서 여전히 안식일을 우리에게 주신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안식일을 준수함으로써 사람들 사이에 당신을 아는 지식을 보존하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이 우리의 마음을 참되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 향하게 하기를 원하시며 그를 앎으로써 우리가 생명과 평안을 누리게 되기를 바라신다.

주께서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 내시고 그들에게 당신의 율법을 주셨을 때 그는 저들이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우상 숭배자들과 구별될 것임을 저들에게 가르치셨다. 하나님의 주권을 시인한 자들과 하나님을 저희의 창조주와 왕으로 받아들이기를 거절한 자들과의 사이에 구별이 있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주께서는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이 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출 31:17, 16)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지상 가나안에 들어갈 때 안식일이 저들을 구별하는 표징이 되었던 것처럼 지금도 안식일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에서 나와서 하늘의 안식으로 들어가는 때에 저들을 구별하는 표징이 된다. 안식일은 하나님과 당신의 백성들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의 표징이요 저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존중히 하는 한 표징이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백성과 범죄자들과를 구별하여 준다.

그리스도께서는 구름 기둥으로부터 안식일에 관하여 언명하시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출 31:13)고 하셨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라는 표징으로 주어진 안식일은 그가 또한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시라는 표징이기도 하다. 만물을 창조하신 능력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재창조하는 능력이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자들에게 안식일은 곧 성화(聖化)의 표징이다. 참된 성화는 하나님과 일치하며 품성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성화는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인 원칙들에 순종함으로써 얻어진다. 262 그런데 안식일은 곧 순종의 표징이다. 넷째 계명을 진심으로 순종하는 자는 온 율법을 순종할 것이다. 그는 순종을 통하여 성화된다.

안식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리하였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영원한 언약”으로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성일을 존중히 하는 자들에게 있어서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저들을 택하신 백성으로 인정하시는 표징이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언약을 저희를 위하여 성취시킨다는 보증인 것이다. 하나님의 정부의 확인을 받아들이는 자는 누구나 자신을 신령하고 영속적인 언약 밑에 두고 있는 것이다. 그는 고리마다 허락인 순종의 금 사슬에 자신을 묶어 두는 것이다. ― 6T, 349, 350.

안식일을 기억하라

넷째 계명의 벽두에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기억하라” 하셨다. 주께서는 숱한 우수사려 속에서 사람이 율법의 온전한 요구에 응하지 못하는 것을 핑계하거나 혹은 그 신성한 중요성을 잊어버리게 될 것을 아셨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 20:8)고 하신 것이다.

온 주일(週日)을 통하여 우리는 안식일을 기억하고 계명에 따라 안식일을 지킬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안식일을 다만 법적인 근거로만 지켜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안식일이 모든 생활 전반에 신령한 감화를 끼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안식일을 저들과 하나님 사이의 표징으로 생각하여 하나님은 저들을 성화시키는 분이심을 보여 주는 자들은 모두 그의 정부의 원칙들을 나타낼 것이다. 저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율법을 매일의 행습에 실천할 것이다. 안식일의 성결함이 저들 위에 임하게 되기를 날마다 기도할 것이다. 저들은 날마다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그의 품성의 온전하심을 예증할 것이다. 매일 저들의 빛은 선한 행위 가운데서 다른 사람들에 비쳐 나갈 것이다.

하나님의 사업을 성공시키는 데 관계한 모든 것 중에서도 가장 첫째 가는 승리는 가정 생활에서 얻어져야 한다. 안식일의 예비는 가정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온 주일을 통하여 부모들은 저희의 가정이 저희 자녀들을 하늘 조정을 위하여 준비시키는 학교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을 기억할 것이다. 저들이 발하는 말이 옳은 말이 되게 하라. 자녀들이 들어서는 안 될 말은 저희 입술에서 새어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 초조한 정신을 품지 않도록 하라. 부모들이여, 주일 동안에 그대들에게 자녀들을 주시고 당신을 위하여 훈련시키라고 하신 거룩하신 하나님의 목전에서 생애하는 것처럼 생애하라. 하나님을 위하여 그대의 가정의 작은 교회를 훈련시켜서 안식일에는 모두가 하나님의 성소에서 예배드릴 준비를 하게 하라. 아침마다, 저녁마다 그대의 자녀들을 주께서 피로 사신 유업으로서 하나님께 드려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저희의 가장 고상한 의무요 특권임을 가르치라.

이와 같이 안식일을 기억할 때 세속적인 것이 신령한 것을 침식해 들어올 수 없을 것이다. 6일 동안에 해야 할 의무가 안식일에 하도록 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주일 중에 세속적인 일에 우리의 정력을 지나치게 사용하여 주께서 쉬시고 다시 활기를 얻으신 그날에 너무 피곤해서 주께 봉사하는 일에 종사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다.

263 안식일을 위한 예비가 온 주일을 통하여 있어야 되겠지만 금요일은 특별한 예비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주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자녀들에게 이 같이 말씀하셨다. “내일은 휴식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 너희가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고 그 나머지는 다 너희를 위하여 아침까지 간수하라.” “백성이 두루 다니며 그것을 거두어 맷돌에 갈기도 하며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 과자를 만들었으니”(출 16:23; 민 11:8)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하늘에서 보낸 떡을 준비하고자 하면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있었다. 주께서는 이 예비하는 일이 금요일, 즉 예비하는 날에 행하여져야 한다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금요일에 안식일의 예비를 마치게 하라. 모든 의복이 다 준비됐는지 음식준비가 다 됐는지 알아 보라. 구두도 닦고 목욕도 하도록 하라. 이것은 능히 할 수 있다. 그대가 그것을 규례로 삼으면 이를 행할 수 있다. 안식일을 옷을 꿰매는 일에나 음식을 요리하는 일에나 오락을 구하는 일에나 혹은 다른 세속적인 일을 위해서 사용해서는 안 된다. 해가 지기 전에 모든 세속적인 사무를 걷어치우고 모든 세상 신문들을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치우라. 부모들이여 그대가 하는 일과 그 목적을 자녀들에게 설명하여 계명을 따라 안식일을 지키기 위하여 그들도 함께 예비하게 하라.

우리는 안식일을 시작할 때부터 마칠 때까지 빈틈 없이 지켜야 한다. 순간마다가 구별된 거룩한 시간임을 기억하라. 고용주들은 가능하다면 언제나 고용인들에게 금요일 정오부터 안식일이 시작되는 때까지의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들에게 예비할 시간을 주어서 조용한 마음으로 주님의 날을 맞이하도록 하라. 이런 처사를 행한다고 하여 세속적인 일에라도 손해를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예비일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또 한 가지 일이 있다. 이 날에는 가족 사이거나 교회에 있어서나 간에 형제들 사이의 모든 불화를 버려야 한다. 모든 가혹함과 분노와 악의는 심령에서 쫓아내라. 겸비한 마음으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약 5:16). ― 6T, 353-356.

하나님 보시기에 거룩한 안식일을 범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을 말하지 않고 두거나 행하지 않고 두었다가 안식일에 말하거나 행하는 일이 결코 없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안식일에 육체 노동을 금할 뿐 아니라 거룩한 주제에 대해서 생각하도록 정신적인 훈련을 받으라고 요구하신다. 세속적인 일에 대해서 얘기를 주고 받거나 혹은 경박하고 어리석은 담화를 함으로써 실질적으로 넷째 계명을 범하는 바가 된다. 마음 속에 떠오르는 것을 무엇이나 다 말한다는 것은 곧 사사로운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올바른 것에서 벗어나는 모든 것은 우리를 속박하고 정죄한다. ― 2T, 703.

일몰 예배

많은 공언하는 안식일 준수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안식일은 훨씬 더 신성하다. 264 안식일을 의문이나 정신면에 있어서 계명에 따라 지키지 않는 자들로 말미암아 주께서는 크게 수치를 받아 오셨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 준수의 개혁을 요구하신다.

해가 지기 전에 가족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찬미를 부르며 기도하라. 이 점을 개혁할 필요가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이것에 부주의하여 왔다. 우리는 하나님에게와 상호간에 자복할 필요가 있다. 가족의 모든 식구가 하나님께서 복 주시고 성결하게 하신 날을 존귀히 할 예비를 할 수 있도록 특별한 준비를 새로이 시작해야 한다.

가족 예배에는 아이들도 참례하게 하라. 모든 식구가 저희의 성경을 가지고 각기 한 절이나 두 절썩 읽도록 하라. 그런 후에 잘 아는 찬미를 부른 다음 기도를 드리라. 그리스도께서는 이를 위하여 모본을 주셨다. 주님의 기도는 한갖 형식적으로 반복하도록 의도된 바가 아니요, 그 기도는 곧 우리의 기도가 마땅히 어떠하여야 할 것이라는 예증, 즉 단순하고 진실하며 이해하기 쉽게 한다는 예증인 것이다. 단순한 기원(祈願)으로써 주께 그대의 필요를 아뢰고 그의 긍휼하심을 인하여 감사의 뜻을 표하라. 이와 같이 하여 그대는 그대의 가정과 마음에 예수를 환영받는 한 손님으로 초대하는 것이 된다. 가정에서 거리가 먼 문제에 대해서 길게 기도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 기도는 특권과 축복으로 여겨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기도 시간을 지루하게 만들어 버린다. 기도 시간을 흥미있고 기쁜 시간이 되게 하라.

해가 질 때에(안식일이 마치는 시간에) 기도와 찬미를 부름으로써 거룩한 시간이 끝났음을 나타내고 주일(週日)중에 하는 일에 하나님께서 내내 임재하시도록 간구하라.

주님께 거룩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곧 영원한 구속(救贖)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삼상 2:30)리라고 하신다. ― 6T, 353-359.

가정에서의 가장 거룩한 시간

안식일 학교와 예배를 위한 집회는 다만 안식일의 일부를 차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나머지 시간은 가족에게 안식일 모든 시간 중에서도 가장 거룩하고 귀중한 시간으로 사용될 수 있다. 부모들은 이 시간의 대부분을 저희의 자녀들과 함께 보내야 한다. 많은 가정에서 어린 자녀들을 저희들대로 버려 두어 저희 마음껏 놀게 한다. 홀로 버려 두면 자녀들은 곧 불안하게 되고 해로운 장난을 하거나 그런 일에 빠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되면 안식일은 그들에게 아무런 신성한 의의도 없는 것이 된다.

날씨가 명랑하면 부모들은 저희 자녀들과 함께 들과 숲속을 거닐어라. 아름다운 천연물 속에서 안식일을 제정하신 이유를 그들에게 말하여 주라. 하나님의 위대하신 창조 사업을 그들에게 설명하여 주어라. 이 세상이 하나님의 손에서 지음을 받았을 때에는 거룩하고 아름다웠었다는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모든 꽃과 관목과 수목은 그 창조주의 목적에 순응하였다. 눈에 띄는 모든 것은 사랑스러웠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을 충만하게 하였다. 모든 소리는 하나님의 음성과 조화가 되는 음악이었다. 하나님의 완전한 작품을 손상시킨 것은 곧 죄였음을 보여 주어라. 가시와 엉겅퀴, 슬픔과 고통과 죽음은 다 하나님을 불순종한 결과임을 보여 주어라. 비록 죄의 저주로 상함은 받았지만 지구가 아직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어떻게 드러내 주고 있는지 보도록 일러주어라. 265 푸른 들, 높이 솟은 수목, 명랑한 햇빛, 그리고 구름과 이슬과 밤의 엄숙한 정적(靜寂), 별이 반짝이는 하늘의 영광, 황홀한 달, 이런 모든 것은 창조주를 증거한다. 한 방울의 비도 한 줄기의 빛도 하나님의 관용하심과 사랑을 증거함이 없이 이 감사할 줄 모르는 세상에 떨어지거나 비치는 일은 전혀 없다.

그들에게 구속의 방법 곧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요 3:16)신 것에 대해서 얘기하라. 베들레헴의 그 아름다운 얘기를 반복해서 말하여라. 자녀들에게 예수께서 어린이로서 부모에게 순종하신 것과 청년이 되어서는 가족의 생계를 도우시면서 충실하시고 근면하셨다는 것을 공개하라. 이와 같이 함으로써 그대는 구주께서 청소년의 시련과 곤혹과 시험과 그리고 소망과 기쁨을 알고 계시므로 저들에게 동정과 도움을 주실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칠 수 있다. 시시때때로 성경 역사의 흥미있는 얘기들을 저들과 함께 읽어라. 저들이 안식일 학교에서 배운 것에 대해서 물어보고 저들과 함께 다음 안식일 공과를 공부하라. ― 6T, 358, 359.

안식일에는 하나님의 가족들이 엄숙한 예배를 드려야 한다. 계명은 우리의 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포함시키고 있다. 집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세속적 일을 중단하고 거룩한 시간을 예배에 바쳐야 한다. 모든 사람이 연합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날에 즐거운 예배로써 그분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 증언보감 2권, 193.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자

그리스도께서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고 말씀하셨다. 어디나 두세 사람의 신자가 있는 곳에서는 안식일에 함께 모여서 주의 허락을 구하도록 하라.

주의 성일에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하여 모인 적은 무리들은 여호와의 풍성하신 축복을 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저들은 주 예수가 저희의 회집의 귀빈이심을 믿어야 한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모든 진실한 경배자는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출 31:13)고 하신 허락을 간구해야 한다. ― 6T, 360, 361.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며 사람의 마음을 세속적인 사무에서 떠나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영광을 명상하게 함으로써 사람에게 축복이 되게 하셨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얘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포함되어 있는 진리들에 대한 사상과 생각을 교환하며 시간의 일부를 기도하는 일에 바치기 위하여 모이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기회는 비록 안식일에라도 너무 길게 하거나 흥미없이 함으로써 싫증이 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2T, 583.

교회에 목사가 없을 때에는 어떤 사람이 회집의 인도자가 되도록 임명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가 설교를 하거나 혹은 예배 시간의 대부분을 쓰게 할 필요는 없다. 짧고도 흥미있는 성경 낭독이 때로는 설교보다도 더 큰 유익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이것이 끝나면 기도회나 간증회로 모일 수가 있다.

모든 사람이 자기가 안식일 집회를 흥미있게 하는 데 한 역할을 맡아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져야 한다. 266 그대는 단지 형식적으로 모여 온 것이 아니요 생각을 교환하고 그대의 매일의 경험을 얘기하며 감사의 뜻을 표하며 하늘의 빛을 바라는 신실한 열망을 바라기 위하여 온 것이니 이리하여 그대는 하나님과 또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에 관하여 함께 교류함으로써 영혼이 생애의 시련과 투쟁에 대해서 강하여질 것이다. 그대가 그대 자신에만 머물러 있으려고 하면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각자는 인류라는 큰 피륙의 일부이며 각자의 경험은 그가 사귀는 사람들의 경험에 의하여 대부분 결정될 것이다. ― 6T, 361, 362.

안식일 학교

안식일 학교 사업의 목적은 영혼들을 거두어 들이는 것이 되어야 한다. 사업 운영의 질서에 흠이 없고 있어야 할 설비가 다 갖추어진다고 하여도,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지 못한다면 그 안식일 학교는 실패인 것이다. 그 이유는, 만일 영혼들이 그리스도에게 인도되지 않는다면, 그들은 형식적인 종교의 감화 아래서 점점 감수성이 약하게 되고 말기 때문이다. 교사는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 문을 두들기고 반드시 협력해야 한다. 만일 학생들이 성령의 탄원에 응답하고 예수께서 들어오시도록 마음 문을 연다면, 예수께서는 그들의 이해력을 도와 하나님께 속한 사물들을 이해하도록 해주실 것이다. 교사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님의 영으로 행해진다면, 하나님의 영의 역사하심을 받아 거기에는 깊이와 능력이 더해질 것이다.

부모된 이들이여, 그대들의 자녀들과 안식일 학교 교과를 공부하기 위하여 매일 얼마의 시간을 따로 정하여 놓으라. 거룩한 역사에 대한 고귀한 공과를 위해 바칠 시간을 희생하기보다 차라리 필요에 따라서는 사교적 방문을 포기하라. 어린이들은 물론 부모들도 이 공부에서 유익을 얻을 것이다. 교과에 관련된 더욱 중요한 성경 인용절들은 고역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특권으로 여기고 암기하도록 하라. 처음에는 기억이 잘 안 될지 모르지만 연습함으로 실력이 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얼마의 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이렇게 고귀한 진리의 말씀을 간직한다는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습관은 신앙적 성장에 더할 나위 없이 가치 있는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입증될 것이다. … 그대들의 가정에서 성경을 연구할 때에는 조직적으로 하라. 현세적 성질의 것은 무엇이나 등한시하라. 필요 없는 모든 바느질이나 쓸데없는 식탁 준비는 그만두고, 영혼이 생명의 떡을 먹도록 노력하라는 말이다. 즐겁고 화기애애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데 바쳐진 매일의 한 시간 혹은 비록 반 시간이라 할지라도 그 좋은 결과란 헤아릴 수 없이 귀중한 것이다. 성경을 그 자체의 주석자로 삼고 주어진 한 문제에 관해 같지 않은 시간과 각각 다른 환경 아래서 언급된 모든 것을 함께 모아 보라. 방문객이나 손님 때문에 가정에서 공부하는 시간을 깨치는 일이 없도록 하라. 공부하는 시간에 그런 사람들이 오거든 그들도 함께 참석하도록 초청하라. 그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지식을 쌓는 일을 이 세상의 이익이나 쾌락보다 더 중요시한다는 것을 보여 주도록 하라.

267 어떤 안식일 학교에서는 유감스럽게도 교과책에서 교과를 그저 읽어나가기만 한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만일, 흔히 불필요하게, 심지어는 악하게 허비하는 시간을 성경 연구에 바친다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교사나 학생들이 안식일 학교 교과를 일반 학교 과목보다 완전하지 못하게 배워야 한다는 이유는 조금도 없다. 안식일 학교 교과는 분명히 보다 더 중요한 문제를 취급하고 있으므로 어느 무엇보다 더 잘 배워야 한다. 여기에 게으름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안식일 학교 사업에 관한 권면, 109).

안식일 학교에서 가르치는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의 진리로 뜨겁게 하고 활기 있게 하며, 성경 말씀을 듣는 사람이 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가지가 줄기에서 영양분을 공급받듯이 그리스도에게서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한다.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동산 안에 있는 꽃처럼 봉오리가 피고 무럭무럭 자라서, 아름다운 향기를 내뿜는 귀중한 식물이 되도록 하늘 은혜의 이슬이 그들 위에 내려야 할 것이다. 교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부지런한 학생이 되어 언제나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매일의 교과를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위대하신 교사요 세상의 빛이신 그분에게서 받은 빛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어야 한다.

때때로 임원들을 선정하는 경우에는 개인적인 편애가 지배하지 않도록 하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경외하며 그분을 저희의 상담자로 삼는 자들을 책임있는 직위에 두도록 하라. ― 증언보감 2권, 575-586.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가정에서나 교회에서 봉사의 정신이 나타나야 한다. 세속적인 일을 하도록 엿새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서는 제칠일을 복주시고 성결하게 하사 당신 자신을 위하여 그날을 구별해 놓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이 날에 당신께 예배드리기 위하여 자신을 헌신하는 모든 사람들을 특별한 방법으로 축복하실 것이다.

온 하늘이 안식일을 지키지마는 지리하게 아무것도 안하는 방법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아니다. 이날에 영혼의 모든 정력이 일깨워져야 하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 구주 그리스도를 상면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믿음으로 그를 바라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각 심령을 새롭게 하사 복 주시기를 갈망하신다. ― 6T, 361, 362.

하나님의 자비는 병자와 고통당하는 자들을 돌보도록 지시하셨다. 그들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한 활동은 필요한 일이며,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필요 없는 모든 일은 피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예비일에 해야 할 사소한 일들을 안식일이 시작될 때까지 부주의하게 미루어 둔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거룩한 시간이 시작될 때까지 등한히 하여 하지 않은 일은 어떤 것이든지 안식일이 지나갈 때까지 하지 말고 그대로 두어야 한다. ― 증언보감 2권, 191.

안식일에 요리를 하는 것은 피하여야 할 일이지만 그렇다고 식은 음식을 먹을 필요는 없다. 추운 날씨에는 전날 준비해 놓은 음식을 따뜻하게 데워라. 그리고 식사는 단순할지라도 맛있고 탐스럽게 만들어라. 가족이 늘 먹는 것이 아닌 것으로 별식이 될 만한 것을 준비하여라.

만일 우리가 순종하는 자에게 허락된 축복을 원한다면 안식일을 더욱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 268 여행을 피하여야 하는 이 날에 우리는 종종 여행을 하지 않는가 나는 두렵다. 주께서 안식일 준수에 관하여 주신 빛에 일치하게 되기 위해서 우리는 이 날에 배나 차를 타고 여행하는 일에 더욱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이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유년들과 청소년들 앞에 올바른 모본을 제시하여야 한다. 우리의 도움을 요구하는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듣게 하기를 원하시는 기별을 전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안식일에 여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능한 한 다른 날에 차표도 사고 모든 필요한 행장도 준비해야 한다. 여행의 길을 떠나면 온갖 노력을 해서라도 안식일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일을 피해야 한다.

안식일에 불가불 여행을 할 경우에는 우리의 주의력을 세속적인 사물에 이끌게 하는 자들과의 교제를 피하도록 힘써야 한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머물게 하여 그와 더불어 교통해야 한다. 기회가 있는 대로 진리에 대해서 남에게 얘기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항상 고통당하는 자의 고통을 덜어 주고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도와줄 용의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경우에 하나님께서는 그가 우리에게 주신 지식과 지혜를 활용하기를 바라신다. 그러나 우리는 사업에 대한 얘기를 하거나 속된 세상의 얘기를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항시 어느 곳에서든지 우리가 안식일을 존귀히 함으로써 그에게 충성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를 요구하신다. ― 6T, 357-360.

안식일에 학교에 다니는 일

넷째 계명을 순종하는 자는 누구나 자기 자신과 세상을 분리시키는 선이 그어져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안식일은 인간의 요구에 대한 시금석이 아니고 하나님의 요구에 대한 시금석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과 그분을 섬기지 않는 자들을 구분해 줄 것이다. 그리고 이 점에서 진리와 오류 사이의 마지막 대쟁투가 일어날 것이다.

우리 백성들 중 어떤 사람들은 안식일에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고 있다. 그들이 이렇게 하도록 강요당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학교 당국자들은 아이들이 엿새 동안 출석하지 않으면 그들을 받아 주지 않겠다고 했다. 이런 학교들 중 어떤 곳에서는 학생들에게 일반적 분야의 학과를 가르쳐 줄 뿐 아니라 여러 가지 종류의 일을 하도록 가르친다. 계명을 지키노라 공언하는 자들의 자녀들이 안식일에 이런 곳으로 보내어진다. 어떤 부모들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인용함으로써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시키고자 노력한다. 그렇게 되면 똑같은 이유로, 사람들은 자녀들을 위한 양식을 얻기 위하여 안식일에 일할 수 있다고 주장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나타내는 한계와 경계선이 제거된다.

우리 형제들이 그들의 자녀들을 넷째 계명을 지킬 수 없는 곳에 놓아 두고 있는 한, 하나님의 인정을 바랄 수는 없다. 그들은 자녀들이 제칠일에 등교하지 않는 길을 얻기 위하여 당국자들과 모종의 협의를 해야 한다. 만일, 그것이 안 되면, 그들의 의무는 분명하다. 그들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하나님의 요구에 순종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주님께서 그분의 요구에 지나치게 까다롭지 않으시다는 것과, 그처럼 큰 손실을 당하면서 안식일을 엄격하게 지키거나 그들이 국가의 법과 상치되는 곳에 놓이는 것이 그들의 의무가 아니라는 것을 주장할 것이다. 269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을 인간의 요구보다 더욱 존중할 것인지 않을 것인지 하는 시험을 받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존중하는 자들과 그분을 존중하지 않는 자들을 구분해 줄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충성심을 입증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점이다. 하나님께서 각 시대를 통하여 당신의 백성을 취급하신 역사는 그분께서 엄격한 순종을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만일 부모들이 자녀들을 세상 사람들과 함께 교육받도록 허용하고 안식일을 평범한 날로 만들 것 같으면, 하나님의 인이 그들에게 쳐질 수 없다. 그들은 세상과 함께 멸망당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의 피에 대한 책임이 부모들에게로 돌아가지 않겠는가? 그러나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자녀들에게 성실하게 가르치고, 그들을 부모의 권위에 순종하게 하고, 믿음과 기도로써 그들을 하나님께 위탁할 것 같으면, 그분께서는 우리의 노력에 협력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 그렇게 하시기로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하늘의 형벌이 이 땅 위에 두루 편만해질 때, 그들은 우리와 함께 여호와의 은밀한 장막 속에 감추어질 것이다. ― 증언보감 2권, 187-191.

세상 일을 좇지 않고 쉬는 날임

유한한 인간이 자신의 사소한 세속적인 유익을 얻기 위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더불어 감히 타협을 하고자 하는 것은 가장 심한 참람이다. 때때로 안식일을 세상 사무를 위하여 쓰는 것은 안식일을 전적으로 거절하는 것과 다름없이 무참히도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주님의 계명을 편리한 대로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라는 음성이 시내산에서 천둥처럼 들린다. 자기를 미워하는 자의 죄는 아비로부터 자식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고 자기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풀겠다고 선언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부분적인 순종이나 분열된 관심은 받으시지 않으신다. 이웃 사람의 것을 약탈하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며 또 이와 같은 행위로 범죄하였다고 여겨지는 자에게 돌아오는 치욕은 큰 것이지만 자기의 동료 인간을 속이는 일을 경멸히 여기던 자가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으로 축복하시고 구별해 놓으신 시간을 파렴치하게 하늘 아버지에게서 도적하는 일은 더욱 큰일이 될 것이다. ― 4T, 249, 250.

말과 생각을 주의 깊이 지켜야 한다. 안식일에 사업 문제를 토의하고 계획을 세우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실제적인 사업을 한 것으로 간주하신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기 위하여 우리는 우리의 마음까지도 세속적인 성격을 띤 사물에 머무르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 ― 증언보감 2권, 191, 192.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곧 사람이 순종할 것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행하면 사람에게 편리하냐고 물어 보시지 않으신다. 생명과 영광의 주께서는 하늘 사령관의 직을 버리시고 비애의 사람이 되시사 슬픔을 당하시고 사람을 불순종의 결과에서 구하시기 위하여 수치와 죽음을 받으셨을 때 당신의 편리함이나 향락을 고려하시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사람을 구원하시되 죄 가운데 그대로 있게 하기 위하여 죽으신 것이 아니요 죄에서부터 온전히 분리하게 하기 위하여 죽으셨다. 사람은 그의 그릇된 길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모본을 좇아 그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자신을 부인하고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하나님을 순종해야 할 것이다.

270 어떤 사람이든지 안식일에 세상의 이익을 위하여 일하는 것을 그 환경을 가지고 합리화하지는 못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면제하신다면 아마 모든 사람을 면제하실 것이다. 가난한 형제가 생계의 수입을 얻기 위하여 일을 함으로써 자기 가족을 보다 더 잘 부양할 수가 있는데 왜 안식일에 일해서는 안 되는가? 다른 형제들이나 혹은 우리 모두가 편리할 때만 안식일을 지키면 왜 안 되는가? 시내산에서의 음성이 이에 답하신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출 20:9, 10)이니라.

그대의 연령이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구실이 되지 못한다. 아브라함은 나이 늙었을 때 심한 시험을 받았다. 주의 말씀은 상심한 노인에게는 두렵고 지나친 것처럼 생각되었지만 그는 그 타당성을 의심하였던가, 또는 순종하는 일에 주저하지 아니하였다. 그는 자기가 늙고 허약해졌으니 자기 생애의 기쁨인 아들을 희생시킬 수 없다고 탄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이 명령이 아들에 관해서 주신 바 허락과 모순이 있다는 것을 주께서 상기하시도록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순종심은 불평이나 비난을 하지 않았다. 하나님께 대한 그의 신뢰는 절대적이었다. ― 4T, 250-253.

예수를 위하여 일하는 목사들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견책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저들은 안식일에 세속적인 얘기를 하는 자들을 친절하고도 엄숙하게 견책하는 동시에 안식일 준수자가 되라고 요구해야 한다. 저들은 주의 성일에 하나님께 헌신하라고 격려해야 한다.

아무라도 자유로이 무익한 방법으로 구별된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이 안식일의 대부분의 시간을 잠자버린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저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저희 창조주께 욕을 돌리고 저희 모본으로써 6일이란 세월이 너무 귀중해서 쉬면서 소비할 수가 없다는 것을 말하여 주는 것이다. 저들은 자신에게 필요되는 수면을 도적질하면서까지라도 돈을 벌어야 한다. 그리하여 저들은 거룩한 시간을 수면으로 낭비함으로써 부족한 잠을 보충한다. 그리하여 저들은 스스로 변명하여 이르기를 “안식일은 쉬는 날로서 주어진 것이다. 내게는 휴식이 필요하니 집회에 참석함으로써 휴식을 빼앗기지 않겠다”고 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거룩한 날을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저들은 그 낮에는 특별히 저희 가족을 안식일을 지키는 일에 관심을 갖게 하고 경우에 따라 소수나 혹은 다수의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는 집에 모여야 한다. 저들은 저희 시간과 정력을 신령한 예배를 위하여 바쳐서 안식일에 임한 신령한 감화가 1주일 내내 저들과 함께 하도록 해야 한다. 주일(週日)의 모든 날 중에서 안식일만큼 헌신적인 생각과 감정을 갖기에 유리한 날은 달리 없다. ― 2T, 704.

안식일이 항상 신성하게 준수되어 왔었더라면, 무신론자나 우상 숭배자가 결코 생겨날 수 없었을 것이다. 에덴에서 기원된 안식일 제도는 이 세상 만큼이나 오래되었다. 창조 이후에 모든 부조들이 그 날을 준수하였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동안에 그들의 감독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안식일을 범하도록 강요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날의 신성성에 대한 지식을 대부분 잊어버렸다. 시내산에서 율법이 선포되었을 때에 넷째 계명의 맨 처음 말은 안식일이 그 때에 제정되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낸다. 271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의 기원이 창조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지적하신다. 사단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하나님을 지워 버리기 위하여 이 큰 기념물을 파괴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사람들이 그들의 창조주를 잊어버리도록 만들 수 있다면, 그들은 악의 세력을 저항하고자 전혀 노력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은 확실하게 사단의 밥이 될 것이다. ― 부조와 선지자, 336(영문).

안식일을 지킴으로 얻는 축복

나는 온 하늘이 넷째 계명의 요구를 시인하고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을 안식일에 바라보며 감찰하는 것을 보았다. 천사들은 이 하나님의 제도에 대해서 흥미와 깊은 관심을 드러내 보였다. 엄격한 헌신적인 정신으로써 주 하나님을 저희 마음에 거룩히 모시고 그 거룩한 시간을 안식일을 최선의 능력으로 지키는 데 이용하여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고 함으로써 하나님을 존숭히 하려고 하는 자들-천사들은 특별히 이런 사람들에게 빛과 건강으로써 축복하였으며 특별한 능력이 그들에게 주어졌다. ― 2T, 704, 705.

하늘의 요구를 엄격하게 순종하면 영적 축복은 물론 현세적 축복도 받게 된다. ― 선지자와 왕, 546(영문).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치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 같이 행하는 사람, 이 같이 굳이 잡는 인생은 복이 있느니라”, “또 나 여호와에게 연합하여 섬기며 나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나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사 56:1, 2, 6, 7)라. ― 각 시대의 대쟁투, 451.

하늘과 땅이 존속하는 한 안식일은 창조주의 능력의 표징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에덴이 다시 지상에 회복될 때에 하나님의 거룩한 안식의 날은 해 아래 있는 모든 사람에 의해 존귀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 “매 안식일에”영화롭게 된 새 땅의 주민들이 “이르러 내 앞에 경배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마 5:18; 사 66:23). ― 시대의 소망, 283(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