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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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제 6 부 - 주의와 권고

-6장 -

친절을 나타냄

341 성경은 대접하는 것에 대하여 많이 강조한다. 환대하는 것을 의무로 명할 뿐만 아니라, 이 덕목을 행하는 아름다운 모습과 그것이 가져오는 축복에 대하여 성경은 많이 언급하고 있다. 이들 중 제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브라함의 경험이다.

창세기의 기록에 보면 이 부조가 여름 태양이 뜨거운 정오에 마므레 상수리나무 그늘 아래 쳐 놓은 자기 천막 문에서 쉬는 것을 볼 수 있다. 세 사람의 나그네가 가까이 지나간다. 그들은 대접을 원하지도 않았고 도와 달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들이 기분을 상쾌하게 하지 않은 상태로 계속 길을 가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는 나이가 많이 든 사람이었으며, 위엄과 재물을 갖춘 사람이었고, 높이 존경을 받고 있었으며, 명령하는데 익숙해 있었다. 그런데 그가 이들을 보자 그는 “달려나가 영접하여 몸을 땅에” 구부렸다. 그중 인도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창 18:2, 3)소서. 친히 그가 물을 떠와서 그들이 발의 먼지를 씻을 수 있게 하였다. 그가 그들의 음식을 택하였다. 그들이 시원한 그늘 밑에서 쉬고 있는 동안 그의 아내 사라는 그들을 대접하기 위하여 준비하였고 아브라함은 그들이 그의 대접을 받는 동안 존경 어린 태도로 서 있었다. 길가는 자들, 다시는 그리로 지나가지 않을지도 모르는 나그네들에게 이런 친절을 베풀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접이 끝난 후 그 손님들의 정체가 드러났다. 342 그는 하늘 천사들을 대접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영광스러운 사령관, 그의 창조주, 구주, 왕을 대접하였던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회담 내용이 알려졌고, 그는 “하나님의 친구”라는 소리를 들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비록 소돔성에 자리잡고 살았지만 이 부조의 친절과 환대의 정신에 젖었었다. 해질녘에 두 나그네를 성문에서 만나자, 이 악한 성에서 그들에게 닥쳐올 위험을 알고 롯은 그들을 강권하여 집으로 데려왔다. 그와 자기 가정에 엄습해 올지도 모르는 위험을 생각지 아니하였다. 위험 당한 자들을 보호하고 집 없는 자들을 돌보는 것이 그의 삶의 일부였으며, 알지 못하는 두 여행자에게 베푼 친절은 그의 집으로 천사들을 들이게 하였다. 그가 보호하고자 했던 자들이 그를 보호하였다. 저녁에 그는 그들을 안전하게 하고자 그의 문으로 인도하였다. 새벽에 그들이 그와 그의 가족을 멸망할 성의 문으로부터 안전하게 이끌어 내었다.

이러한 친절의 행동을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 속에 기록으로 남길 중요성이 충분히 있다고 보셨다. 천년 이상이나 지난 후에 영감 받은 사도는 그들에 관하여 언급한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느니라”(히 13:2).

아브라함과 롯에게 주어졌던 특권을 우리도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환대를 베풂으로 우리도 그분의 천사들을 우리의 처소에 들일 수 있다. 오늘날에도 천사들이 사람의 모양으로 사람 사는 집에 들어오며 그들에 의하여 대접을 받는다. 하나님의 얼굴빛에 사는 기독교인들은 항상 보이지 아니하는 천사들의 동행을 얻게 되고 이 거룩한 존재들은 우리의 가정들에 축복을 남기고 떠난다.

“대접하기를 좋아하는 자”라는 이름은 교회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 자에게 성령에 의하여 붙여지는 이름들 중 하나이다. 343 그리고 교회 전체에 다음과 같은 명령이 주어진다.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9, 10).

이 권고는 이상하게도 무시되었다. 기독교인이라고 공언하는 자들 중에서도 참된 환대가 거의 없다. 우리 백성 중에서도 환대를 베풀어야 할 기회를 마땅히 생각할 만큼 특권과 축복으로 생각지 않고 있다. 너무 사귐성이 적고, 가족 식탁에 두세 사람의 자리를 더 만드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하거나 아니면 거창하게 차린다. 어떤 이들은 “너무 일이 많다”고 불평한다. 그러나 만일 “특별한 준비를 못했지만 우리가 차린 식탁으로 환영합니다”라고 말하면 그런 불평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기대하지 않던 손님이 애써서 준비하여 맞은 손님보다 영접해 준 사실에 대하여 훨씬 더 감사할 것이다.

주님께 속한 시간을 다 잡아먹는 손님 접대 준비는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이다. 이 일에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고 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남들에게도 잘못하는 것이다. 잘 차린 접대를 준비함에 있어서 많은 이들이 자기 가족들에게 필요한 관심을 박탈하며, 그들의 모본은 남들로 같은 길을 따르도록 인도한다.

손님들을 대접하는 데 있어서 멋지게 하고자 하는 바람에 불필요한 걱정과 부담이 생긴다. 여러 종류의 음식을 만들고자 주부는 과로하게 되며, 많은 종류의 음식을 준비하였기 때문에 손님들은 과식하게 되어 한편으로는 과로로, 다른 한편으로는 과식으로 인하여 고통과 질병을 얻게 된다. 이러한 거창한 잔치는 부담이며 손해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가 우리 형제들과 자매들의 유익을 위하여 우리가 보살핌을 베풀기를 원하신다. 사도 바울은 이 점에 예증을 주었다. 로마 교회에게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겐그리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천거하노니 너희가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롬 16:1, 2). 344 뵈뵈는 사도를 대접하였다. 그녀는 도움이 필요한 나그네들을 잘 대접하는 자였다. 그녀의 모본을 오늘날의 교회가 따라야 한다.

“나와 내 가족”을 위해 자주 드러내는 이기적 관심에 대하여 하나님은 불쾌하게 생각하신다. 이런 정신을 간직하는 각 가정은 그리스도의 생애에서 나타난 순결한 원칙들에 의하여 마음이 바뀌어야 한다.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자들은, 손님 대접하기를 즐겨 하지 않는 사람들은, 많은 축복을 잃을 것이다.

우리 일꾼들 중 어떤 이들은 자주 형제된 자나 나그네된 손님들을 대접해야만 할 위치에 있다. 합회가 이를 위하여 특별한 계정을 두어야 하며, 그들의 정규 봉급 이외에도 이 과외의 경비를 넉넉히 충당할 자금이 주어져야 한다고 촉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대접하는 일을 모든 사람들에게 맡기셨다. 합회나 교회에서 한두 사람이 대접을 도맡아 하고, 형제들을 대접하기 위하여 몇 일꾼들을 고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이것은 이기심에서 생겨난 발상이며, 하나님의 천사들이 이 모든 일을 주시하고 있다.

이곳 저곳으로 전도자로 혹은 선교사로 여행하는 자들은 그들이 일하는 지역의 교인들로부터 대접을 받아야 한다. 형제 자매들이여, 엄청난 개인적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들을 위하여 처소를 제공하라.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을 위하여 대접하는 데 소요된 모든 경비를 계산하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그 사업을 위하여 필요한 것은 다 공급하실 것이다. 345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기 형제들을 대접하는 자들은, 손님들과 자기 자신에게 그 방문이 유익하게 되도록 최선을 다함으로, 특별한 축복을 받는 일에 합당하다고 하늘에 기록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삶 속에서 환대의 교훈을 남기셨다. 바닷가에서 굶주린 군중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에 그분은 그들이 기력을 차리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셨다.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마 14:16). 창조의 능력을 행사하심으로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음식을 공급하셨다. 그러나 얼마나 단순하게 그 음식이 준비되었는가! 사치스런 것이 없었다. 하늘의 모든 자원을 가지신 그분이 명령만 하면 백성들을 위하여 풍성한 식탁을 차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분은 그들이 필요한 것만을 채워 주셨다. 그분께서는 해변가에 사는 어부들의 일용할 양식이었던 것을 주셨을 뿐이었다.

만일 사람들이 오늘날 단순한 습관을 지니고, 자연 법칙에 조화되게 살면 모든 인류의 필요를 채우기에 충분한 양의 공급이 이루어질 것이다. 핍절한 상황이 훨씬 줄어들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일할 기회가 더욱 많아질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사치의 욕구를 충족시키시면서 사람들을 자기에게로 이끌고자 하지 아니하셨다. 그분이 제공하신 그 단순한 음식은 그분의 능력뿐만 아니라 그분의 사랑, 생활에 늘 있는 필요를 보살피는 그분의 부드러운 손길에 대한 보증이었다. 그들을 보리떡으로 먹이시는 동안 그분은 생명의 떡을 또한 주셨다. 여기 우리의 모본이 있다. 우리의 음식이 단순하고, 심지어 빈약할 수도 있다. 우리의 형편이 빈궁할 수도 있다. 우리의 자원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었던 제자들의 형편보다 더 낫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핍절한 자들과 접촉하게 될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명령하신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 우리가 줄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부족함이 채워지는 것을 보여 주실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를 읽어보자. 흉년이 든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종을 이 이방 나라의 여인에게 보내사 음식을 요구하게 하셨다. 346 “저가 가로되 당신의 하나님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왕상 17:12-14).

이 페니키아 여인이 하나님의 선지자에게 보여준 환대는 대단한 것이었다. 또 그녀의 믿음과 너그러움은 크게 보상되었다. “저와 엘리야와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로 하신 말씀같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이 일 후에 그 집 주모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진지라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로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엘리야가 저에게 그 아들을 달라 하여 그를 그 여인의 품에서 취하여 안고 자기의 거처하는 다락에 올라가서 자기 침상에 누이고…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엘리야가 그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방으로 내려가서 그 어미에게 주며 이르되 보라 네 아들이 살았느니라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함을 아노라 하니라”(15-24절).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셨다. 그분의 능력은 현재 엘리야 시대보다 못하지 않다. 347 지금이라고 해서 그리스도께서 주신 약속이 그가 말씀하신 때보다 덜 확실한 것이 아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마 10:41).

그분의 첫 제자들에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그분의 신실한 종들에게도 그리스도의 말씀은 적용된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40절). 그분의 이름으로 제공된 친절한 행동은 반드시 인정받고 보상받게 된다. 그와 똑같이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연약하고 가장 비천한 하나님의 가족을 자상하게 포함시키셨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믿음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하나 된 형제)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42절).

가난하다고 해서 환대하는 것을 피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 생계를 위하여 애쓰고, 수입과 지출을 맞추는 데 힘든 가정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성도들의 용모와 자태에 나타난 예수님을 사랑하며, 그들의 방문이 유익한 것이 되도록 신자나 불신자에게 환대를 베풀 준비가 되어 있다. 가족 식탁과 가족 제단으로 손님들을 맞이한다. 함께 기도하는 시간은 대접받은 자들에게 감명을 준다. 심지어 한 번 방문으로 한 영혼을 죽음에서 구원하게 될 수도 있다. 이 일을 위하여 주님께서는 계산을 하신다. “내가 갚으리라.”

형제 자매들이여, 대접과 친절한 보살핌이 필요한 자들을 그대들의 가정으로 초청하라. 너무 잘 차리려고 하지 말고, 그들의 필요를 따라 그들을 영접해 들이고 그들에게 참된 기독교적 환대를 보이라. 사귐 속에는 귀한 특권들이 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의 먹을 양식을 나누어 줌으로 우리는 희망과 용기와 그리스도와 같은 사랑을 나누어 주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고후 1:4) 위로해야 한다. 348 그러면 보증은 우리의 것이 된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죄와 유혹의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 주위에는 그리스도 없이 죽어 가는 영혼들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힘닿는 데까지 그들을 위해 일하기를 원하신다. 만약 쾌적한 집을 소유하고 있다면 집 없는 어린것들을 집으로 들이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를, 동정과 친절한 말과 존경과 예절을 그리워하는 자들을 집으로 초청하라. 그대가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데려오고자 소원한다면, 그대는 그분의 피로 사신 그들을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

하나님의 섭리로 우리들은 경험이 미숙한 자들과 또 동정과 관심이 필요한 많은 이들과 관련을 맺고 산다. 그들은 구조가 필요하다. 그들은 연약하기 때문이다. 젊은이들도 도움을 필요로 한다. 무기력하고 무식하고 그분의 소자 중 지극히 작은 자로 여겨지는 자를 향해 자애를 나타내시는 분의 힘으로 우리는 그들의 미래의 복지를 위하여, 기독교인의 품성을 꼴 짓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이 때때로 우리의 인내심을 매우 심하게 시험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다. “삼가 이 소자 중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마 18:10). 이러한 영혼들을 위해 봉사하는 자들에게 구주께서는 선포하신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

이 일을 행한 자들의 이마에는 희생의 관이 씌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상급을 받게 될 것이다. 하늘에서 우리는 우리가 도와주었던 자들을, 우리 집으로 초대했던 자들을, 우리가 유혹에서부터 끌어내었던 자들을 볼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그들의 얼굴에서 반사되는 것을 볼 것이다.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계 22:4).

안식일 준수

349 안식일 준수 속에 큰 축복들이 펼쳐진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이 우리에게 기쁨의 날이 되기를 바라신다. 안식일을 제정할 그 때에 기쁨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하신 일을 만족하게 바라보셨다. 만드신 모든 것을 보시고 “심히 좋았더라”(창 1:31)라고 말씀하셨다. 하늘과 땅은 기쁨으로 가득 찼다.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욥 38:7)다. 비록 죄가 세상에 들어와 그분의 완전한 작품을 손상시켰지만 하나님께서는 전능하고 선함과 자비가 한량없으신 그분이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의 증거로 아직도 우리에게 안식일을 주신다.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는 안식일 준수를 통하여 인간들 사이에 하나님 자신에 관한 지식을 보존하기를 원하신다. 그분께서는 안식일이 참되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이신 그분께 우리의 마음을 향하는 것이 되기를 바라신다. 또한 그분을 앎으로 우리가 생명과 평화를 얻게 되기를 바라신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셨을 때에 그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안식일 준수를 통하여 그들이 우상 숭배자들과 구별되도록 가르치셨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들과 그분을 창조주와 왕으로 받아들이기를 거절하는 사람들을 구분 짓는 것이다. 주께서 말씀하셨다.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출 31:16, 17).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서 지상의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에 안식일이 구별되는 표였던 것처럼 그것은 오늘날도 세상에서 나와서 하늘의 안식으로 들어가는 하나님의 백성을 구별짓는다. 안식일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의 관계의 표이며, 그들이 율법을 존중한다는 표다. 350 그것은 그분의 충성된 신민들과 범죄자들을 구분한다.

구름기둥으로부터 그리스도께서는 안식일에 관하여 선포하셨다.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출 31:13).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의 표로 세상에 주어진 안식일은 그분이 거룩케 하시는 자임을 알리는 표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창조하신 능력은 그분의 형상을 따라 영혼을 재창조하시는 능력이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자들에게 있어서 안식일은 성결의 표다. 참된 성결은 하나님과 조화되는 것이며 그분의 품성과 하나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분의 품성의 사본인 원칙들을 순종함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안식일은 순종의 표다. 진정으로 넷째 계명을 지키는 자는 율법 전체를 지킬 것이다. 그는 순종을 통하여 거룩하게 된다.

이스라엘에게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안식일은 “영원한 언약”으로 주어졌다. 그분의 거룩한 날을 중히 여기는 자들에게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자기 선민을 인정하시는 표로 인식된다. 그것은 그분께서 그분의 언약을 성취하실 것의 담보물이다. 하나님의 통치의 표를 받아들이는 모든 자는 자신을 거룩하고, 영원한 언약 하에 두는 것이다. 그는 자신을 고리 하나 하나가 약속으로 된 순종의 황금 사슬을 단단히 묶는다.

열 계명 중에서 오직 넷째 계명만이 위대하신 율법 제정자, 하늘과 땅의 창조주의 인을 포함하고 있다. 이 계명을 지키는 자들은 그분의 이름을 입으며, 그에 따르는 모든 축복들이 그들의 소유가 될 것이다. 35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민 6:24-27).

모세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약속이 주어졌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면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너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세계 만민이 보고…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영광을 듣고 지켜 행하며”(신 28:9-13).

시편 기자는 성령에 의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대저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 위에 크신 왕이시리로다 땅의 깊은 곳이 그 위에 있으며 산들의 높은 것도 그의 것이로다 바다가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시 95:1-7, 100:3).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이 약속들은 또한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것이다. 이것들은 안식일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기별들이다.

안식일 준수의 개혁GG 안식일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을 연합시키는 금으로된 걸쇠이다. 그러나 안식일 계명이 범해졌다. 하나님의 거룩한 날이 더럽힘을 당하였다. 352 안식일은 죄의 사람에 의하여 그 자리에서 찢겨져 나갔으며, 보통 일하는 날이 그 자리를 대신 채우고 존귀케 되었다. 율법이 깨어졌다. 이 파손된 것을 수리해야 한다. 참된 안식일이 하나님의 안식의 날로서 제자리에 올려져야 한다. 이사야 58장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해야 할 일이 제시되어 있다. 그들은 율법을 찬미하며 그것을 존귀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오래 황폐된 곳을 일으키며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아야 한다. 이 일을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12-14절).

안식일 문제는 전 세계가 참여할 최후의 투쟁의 정점이 될 것이다. 인간이 하늘을 다스리는 원칙보다도 사단의 원칙을 존중하였다. 그들은 사단이 자기의 권위의 표로 세운 거짓 안식일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왕으로서 당신의 요구에 도장을 찍으셨다. 이 두 가지 안식일 제도는 그 권위를 나타내는 지울 수 없는 표로서 그 창시자의 이름을 각각 지니고 있다. 백성들이 이것을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우리는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의 표를 받거나 반역의 나라의 표를 받는 것이 너무 중요한 것임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표를 받은 나라의 신민임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짓밟힌 안식일의 깃발을 높이 들라고 우리를 부르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는 바른 모본을 보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353 새로운 교회들을 설립함에 있어서 목사들은 합당한 안식일 준수에 관한 주의 깊은 가르침을 베풀어야 한다. 하나님의 거룩한 쉼의 날을 지킨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현재 일요일 준수자들 사이에 만연한 해이한 준수가 모방되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조심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의 표를 지닌 자와 또 반역의 나라의 표를 지니는 자들의 구분이 명확하고 뚜렷해야 한다.

안식일을 지킨다고 말하는 많은 이들이 생각하고 행하는 것보다 안식일은 훨씬 더 신성하다. 주님께서는 문자로나 정신으로나 간에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자들에 의하여 지나치게 욕을 당하셨다.

안식일 준비GG 넷째 계명 서두에 주께서는 “기억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분께서는 인간들이 수많은 걱정과 문제 속에서 율법의 온전한 요구를 이루지 못한다고 핑계할 유혹을 받거나, 그 신성한 중요성을 잊을 것을 아셨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씀하신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 20:8).

한 주일 내내 우리는 안식일을 생각하고 계명대로 그것을 지키고자 준비해야 한다. 우리는 안식일을 단지 법조항으로만 지켜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안식일을 삶의 모든 부분과 영적으로 연결시켜 이해해야 한다. 안식일이, 그분은 그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임을 보이는 그들과 하나님 사이의 표라고 생각하는 모든 자들은 그분의 정부의 원칙들을 나타낼 것이다. 그들은 그분의 나라의 율법을 매일 실천할 것이다. 안식일의 성결케 함이 그들 위에 머물기를 매일 기도할 것이다. 354 그들은 매일 그리스도와 동행할 것이며, 그분의 품성의 완성을 구현할 것이다. 매일 그들의 빛은 선행을 통하여 타인에게 비춰질 것이다.

하나님의 사업의 성공에 해당되는 모든 일 중에, 가장 먼저 보는 승리는 가정 생활 속에 있다. 여기서부터 안식일 준비가 시작되어야 한다. 한 주일 내내 부모들은 가정이 학교가 되어 자녀들이 위에 있는 궁정을 위하여 준비하도록 해야 함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바른 말을 해야 한다. 자녀들이 듣지 말아야 할 말을 입밖에도 내지 말라. 정신을 사납게 하지 말라. 부모들이여 한 주일 동안, 자녀들을 주사 훈련시키게 하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사는 듯이 살라. 집에서 작은 교회를 훈련하여, 안식일에 모두 성전에 나아가 함께 예배드릴 준비를 하라. 매일 아침, 저녁 그대의 자녀들을 그분의 피로 사신 유산으로 하나님께 바치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최고의 의무이며 특권인 것을 가르치라.

부모들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그들의 자녀들에게 실물 교훈으로 만드는 일에 주의해야 한다. 성경절들을 자주 외우게 하고, 특별히 예배를 위하여 준비시키는 성경절들을 외우게 하라. 귀한 말씀들은 자주 반복시키는 것이 좋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도다”(시 62:5).

안식일을 이런 식으로 기억하면 일상적인 것이 영적인 것을 침범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엿새 동안에 할 일을 안식일에 하지 않을 것이다. 한 주일 동안 우리의 힘을 일상적인 일을 하는 데 지나치게 소모하지 않으므로 주께서 쉬시고 기운을 얻으신 그날에 우리가 너무 피곤하여 예배에 바로 참여하지 못하는 일이 없게 될 것이다.

안식일 준비를 한 주일 내내 할 것이지만, 금요일은 특별한 예비일이 되어야 한다. 모세를 통하여 주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셨다. 355 “내일은 휴식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 너희가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고 그 나머지는 다 너희를 위하여 아침까지 간수하라”, “백성이 두루 다니며 그것(만나)을 거두어 맷돌에 갈기도 하며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 과자를 만들었으니”(출 16:23; 민 11:8).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하여 하늘에서 온 양식은 요리해야 되는 것이었다. 주께서는 이 요리하는 일을 예비일인 금요일에 해야 한다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에게 이것은 시험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지를 보기 원하셨다.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지시는 우리를 위한 것이다. 성경은 완전한 지침서이다.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성경을 연구하면 이 문제에 있어서 오해할 소지가 없을 것이다.

많은 이들은 안식일 예배에 올 때 어떻게 옷을 입어야 하는지를 배워야 한다. 그들은 주일 중에 입는 보통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나가지 말아야 한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집에서 예배에 참석할 때에 입을 특별한 옷을 따로 갖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세상 유행을 따라가지 않지만, 우리의 외모에 무신경해서는 안 된다. 장식은 없어도, 우리는 단정하고 깨끗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외모로나 마음으로나 순결해야 한다.

금요일에 안식일 준비가 완료되게 하라. 모든 의복이 준비되고, 모든 요리가 마쳐졌는가 확인하라. 신발은 닦아 놓고, 목욕을 하라. 이것은 가능한 일이다. 이것을 규칙으로 삼으면 할 수 있다. 안식일에 옷을 수선하거나, 음식을 요리하거나, 쾌락을 구하거나, 기타 세상적인 일을 하지 말 것이다. 해가 지기 전에 모든 세상 일을 제쳐놓고, 세속적인 모든 신문, 잡지들을 눈에 보이지 않게 치우라. 356 부모들이여 자녀들에게 이렇게 하는 준비와 그 목적을 설명하고, 그들이 계명을 따라 안식일을 지키는 준비를 하는 데 참여하게 하라.

우리는 안식일의 모든 부분을 열렬히 지켜야 한다. 매 순간이 다 바쳐진 시간이며 거룩한 시간임을 기억하라. 가능할 때마다 사용자들은 고용인들에게 금요일 정오부터 안식일 시작 시간까지를 주어야 한다. 그들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어 그들이 주의 날을 고요한 마음으로 영접할 수 있게 하라. 그렇게 함으로 그대는 물질적으로 손실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예비일에 특별히 주의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이 날에 교회나 가족 중에서 형제 사이에 갈라진 것을 다 해결해야 한다. 모든 악독과 분노와 악의를 영혼으로부터 몰아내어야 한다. 겸손한 정신으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약 5:16).

안식일이 시작하기 전, 몸만이 아니라 생각조차도 세상적인 사업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엿새 동안의 일하는 날들 마지막에 두셔서 사람들이 죄인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순결한 나라를 위해서 준비하는 일에 얼마나 득을 얻었는지를 멈추어 서서 생각하도록 하셨다. 우리는 매 안식일마다 지난 한 주일이 영적으로 손실이었는지 아니면 이득이었는지를 계산해야 한다.

안식일을 주 앞에서 거룩히 지키는 것은 영원한 구원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삼상 2:30)리라.

가정에서의 안식일GG 일몰 시간 전에 가족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찬미하고, 기도하도록 하라. 이 일에 개혁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많은 이들이 이 점에 태만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고, 서로 죄를 고해야 한다. 357 우리는 하나님께서 축복하셨고 거룩하게 하신 날을 존귀케 하고자 모든 식구들이 예비되도록 특별한 준비를 하는 일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

안식일의 귀한 시간이 잠자리에서 낭비되지 않도록 하라. 안식일 아침에는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만일 늦게 일어나면 아침 식사와 안식일 학교를 위하여 준비하는 일이 혼란하고 부산하게 될 것이다. 서두르고, 부딪히고, 성급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집안에 불경건한 느낌이 생길 것이다. 안식일이 그렇게 더럽혀지면, 그 날은 피곤한 날이 되며, 안식일이 오는 것이 기다려지기보다는 겁이 날 것이다.

우리는 안식일에 평일보다 더 많은 음식, 갖가지 음식들을 내놓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음식은 매우 단순해야 하며 적게 먹어서 정신이 맑고 힘이 있어서 신령한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 과식은 정신을 흐리게 한다. 가장 귀한 말씀을 들어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게 되는데 왜냐하면 정신이 부적당한 식사로 혼란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안식일에 과식함으로 많은 이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다.

안식일에 요리하는 일을 피해야 하지만, 찬 음식을 꼭 먹을 필요는 없다. 추운 날에는 전날 준비한 음식을 데워 먹으라. 비록 단순하지만 맛있고 식욕이 당기게 요리하라. 그리고 매일 먹지 아니하는 특식을 준비하라.

가족 예배 시에 자녀들이 참여하게 하라. 각자가 다 성경을 가져와서 한두 절씩 읽도록 하라. 잘 아는 찬미를 몇 장 부르고 기도하라. 그리스도께서는 이 일의 모본을 주셨다. 주의 기도는 형식으로만 반복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기도가 단순하고, 진지하며, 포괄적이어야 함을 가르쳐 주는 예증이다. 단순한 간구 속에서 주께 그대의 필요를 아뢰고, 그분의 자비에 감사를 표하라. 그리하여 그대는 예수를 그대의 가정과 마음에 반가운 손님으로 초청하게 되는 것이다. 358 가정에서 대상과 장소에 맞지 않는 주제로 길게 기도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기도는 특권과 축복으로 생각되어야 하는데, 긴 기도는 기도 시간을 지루하게 만든다. 기도하는 시간을 기쁨과 흥미의 시간으로 만들라.

안식일학교와 예배 시간은 안식일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가족에게 맡겨진 부분은 안식일 시간 중에 가장 신성하고 귀한 시간이 될 수 있다. 이 기간의 대부분을 부모들은 자녀들과 함께 지내야 한다. 많은 가정들에서 어린 자녀들이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을 찾도록 방임된다. 자녀들끼리만 방치하면 마음이 들뜨게 되고, 놀기 시작하거나 엉뚱한 장난을 치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안식일의 신령한 의미를 상실한다.

청명한 날씨에 부모들은 자녀들과 함께 들과 논을 거닐라. 천연계의 아름다운 것들 사이에서 안식일이 제정된 이유를 설명하라. 하나님의 위대하신 창조의 사업을 묘사하라. 세상이 그분의 손에서 처음 생겼을 때에 그것은 거룩하고 아름다웠다는 것을 그들에게 말해 주라. 각종 꽃과 관목과 나무들은 그 조물주의 목적에 응하였다. 사람의 눈이 가는 곳마다 모든 것은 다 아름다웠고 하나님의 사랑의 생각으로 마음을 가득 채웠다. 모든 소리는 하나님의 음성과 조화된 음악이었다. 죄가 하나님의 완전한 작품을 망가뜨렸다는 것을 보여 주라. 가시와 엉겅퀴와, 슬픔과 고통과 죽음은 다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의 결과임을 알려 주라. 비록 죄의 저주로 손상되었지만 지구가 아직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내고 있음을 그들에게 말해 주라. 푸른 들, 키 큰 나무들, 빛나는 햇살, 구름, 이슬, 밤의 적막함,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 아름다운 달, 이 모든 것들이 창조주를 증거한다. 떨어지는 빗방울 하나, 감사할 줄 모르는 세상을 비추는 한줄기의 빛이라도 하나님의 사랑과 오래 참으심을 증거하지 아니함이 없다.

그들에게 구원의 길을 말하라. 359 어떻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요 3:16) 하셨는지를 말해 주라. 베들레헴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반복하여 들려주라. 자녀들에게 부모에게 순종했던 어린 예수, 가정을 돕고 뒷받침했던 신실하고 부지런한 소년 예수에 관하여 말해 주라. 그리하면 그대는 그들에게 구주께서 어린 시절의 시련과 곤란과 유혹과 희망과 기쁨을 알며, 그들에게 동정과 도움을 주실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때때로 그들과 함께 성경 역사의 재미나는 이야기들을 읽어라. 그들에게 안식일 학교에서 배운 것을 물어 보고, 다음 안식일 교과를 함께 공부하라.

해가 넘어갈 때에 기도와 찬송으로 거룩한 시간이 끝남을 장식하고, 수고의 한 주일 동안 모든 일에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실 것을 구하라.

그리하면 부모들은 안식일을, 마땅한 대로, 주일 중 가장 즐거운 날로 만들 것이다. 그들은 자녀들이 그 날을 즐거운 날이라, 날 중의 날이라. 여호와께 거룩하고 존귀한 날이라고 생각하도록 인도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형제 자매들이여 내가 권면합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십시오.” 그대의 자녀들이 계명대로 안식일을 지키기를 원하면 그대는 율례와 모본으로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 마음에 진리가 깊이 아로새겨지면 완전히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조금 흐리게 될는지는 몰라도 결코 멸절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 받은 감동은 훗날에까지 살아 있을 것이다. 자녀들이 부모와 집을 떠나 살아야 할 형편이 닥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살아 있는 한 유아 시절과 어린 시절에 받은 교훈은 그들에게 축복이 될 것이다.

안식일 여행GG 우리가 순종하는 자들에게 약속된 축복을 받기 원한다면 우리는 안식일을 더욱 철저히 지켜야 한다. 360 우리가 피할 수도 있는 여행을 안식일에 자주 하는 것을 나는 염려한다. 안식일 준수와 관련해서 주께서 주신 빛에 따르면 우리는 안식일에 배나 차로 여행하는 일에 있어서 더욱 주의를 해야 한다. 이 일에 있어서 우리는 자녀들과 어린이들에게 바른 모본을 보여야 한다.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교회들에 가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이 듣기를 원하시는 기별을 그들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안식일에 여행을 할 필요가 있는 때가 있다. 그러나 가능한 한 다른 날에 표를 사고 모든 일을 마무리지어 놓아야 한다. 여행을 떠날 때에 우리의 목적지에 안식일에 도착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들여 여행 계획을 짜야 한다.

안식일에 여행을 하게 될 경우에 우리는 세상 것에 눈을 돌리게 할 동행을 피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께 고정되고, 그분과 교통해야 한다. 기회가 생길 때마다 우리는 남들에게 진리에 관하여 말해야 한다. 우리는 항상 고통을 경감시키고, 곤경에 처한 자를 돕고자 준비되어야 한다. 그런 경우가 닥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식과 지혜를 우리가 사용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사업상의 이야기나, 일상적이고 세속적인 대화를 삼가야 한다. 모든 시간과 장소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안식일을 존귀케 함으로 그분에 대한 우리의 충성심을 보이기 원하신다.

안식일 집회GG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 두세 사람의 신자들이 있더라도 안식일에 함께 모여 주의 약속을 구하도록 하라.

그분의 거룩한 날에 예배드리러 모이는 작은 무리들의 모임들은 여호와의 풍성한 축복을 주장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주 예수께서 그들의 모임 중에 귀한 손님으로 계심을 믿어야 한다. 361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모든 참된 경배자들은 다음의 약속을 구하여야 한다.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출 31:13).

안식일 예배 시의 설교는 대체로 간략해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그들의 감사와 찬양을 표하는 기회가 주어지도록 해야 한다.

교회에 목사가 없을 시에 한 사람이 예배의 인도자로 지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사람이 설교를 한다던가 예배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할 필요는 없다. 설교보다는 짧고 재미있는 성경 읽기가 더욱 이로울 경우가 많다. 이어서 기도와 간증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교회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주일 중 신체적·정신적 힘을 다 소모하여 버려서 안식일 예배 시에 그리스도의 복음의 생생한 감화를 주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일상적인 일을 적게 하라. 안식일에 그분께서 받으실 수 없는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것을 약탈하지 말 것이다. 그대들은 영적 생명이 없는 사람들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백성들은 안식일에 그대들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들에게 말씀의 양식을 주라. 거룩한 날에 하나님께 최고의 선물을 가져오라. 헌신된 예배를 통하여 영혼의 귀한 생명이 그분께 바쳐지도록 하라.

아무도 예배드리러 와서 자지 못하게 하라. 하나님의 집에서 자서는 안 된다. 그대들은 일상적인 사업을 할 경우에 잠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대들이 그 사업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영원한 중요성이 있는 예배를 일상 생활보다도 더 낮은 곳에 방치할 작정인가?

우리가 이렇게 한다면 우리는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축복을 받지 못할 것이다. 안식일은 무용한 게으름의 날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가정과 교회에서 예배의 정신이 나타나야 한다. 362 우리의 일상 생활을 위하여 엿새를 주신 하나님께서 제칠일을 축복하시고 거룩케 하셨으며, 자신을 위하여 따로 떼어 놓으셨다. 이 날에 그분께서는 예배에 헌신하는 모든 자들을 특별한 방법으로 축복하실 것이다.

온 하늘이 안식일을 지킨다. 그러나 무관심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식으로 지키지 않는다. 이 날에 영혼의 모든 에너지가 일깨워져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과 우리 구주 그리스도를 그날 만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그분을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분께서는 모든 영혼을 새롭게 하시고 축복하시고자 갈망하신다.

각자는 안식일 집회들을 흥미있게 만드는 일에 책임을 느껴야 한다. 그저 형식적으로 모여서는 안 된다. 생각을 교환하기 위하여, 매일의 경험을 이야기하기 위하여, 감사를 표하기 위하여, 하나님과 그분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도록 거룩한 일깨움을 받고자 하는 마음의 신실한 소원을 아뢰기 위하여 집회에 모여야 한다. 그리스도를 염두에 두고 함께 교제하는 것은 삶의 시련과 투쟁에 있어서 영혼을 힘있게 한다. 기독교인이면서도 자기만 생각하여 자기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지 말라. 각자는 인류라는 거대한 망의 한 부분이다. 개인의 경험은 이웃들의 경험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배하려고 함께 모일 때에 얻어야 하는 축복의 백분지 일도 얻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수용하는 능력이 더 길러져야 한다. 함께 교제하는 것을 기쁜 일로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가진 그러한 소망과 더불어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왜 불타오르지 않는가?

우리는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이 거기 계셔서 참 예배자들을 도우시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영적 감각을 살려서 매 집회에 참석해야 한다. 집회 장소에 들어갈 때에 주님께 마음의 모든 악을 제거해 달라고 기도하라. 그분께서 축복하실 수 있는 것만 가지고 성전으로 나아가라. 363 성전에서 그분 앞에서 무릎을 꿇고 그분께 속한 바 그분께서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것을 드려라. 예배의 설교자나 인도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생명의 말씀을 전할 자를 통하여 큰 축복이 오도록 기도하라. 스스로 축복을 얻기 위하여 열렬히 구하라.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위하여 이렇게 준비하는 모든 사람들을 축복하신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였기 때문에 성령의 보증을 얻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것이다.

예배 장소가 매우 보잘것없을 수도 있으나 그렇다고 하나님이 덜 인정하시는 경우는 없다. 신령과 진정과 성결의 아름다움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에게는 그 장소가 마치 하늘 문처럼 될 것이다. 교인 수가 적을지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들은 매우 귀하다. 그들은 진리의 정으로 세상의 채석장에서 떼어 내진 돌이며, 깎이고 다듬어지도록 하나님의 작업장으로 들여졌다. 비록 거칠지라도 하나님의 보시기에는 귀하다. 시련의 도끼와 망치와 끌이 기술이 좋으신 분의 손에 들려 있다. 그것들은 파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매 영혼을 완성시키고자 사용된다. 궁정의 식양대로 다듬어진 귀한 돌로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늘 성전에서 자리를 차지하게 되기를 바라신다.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약속과 베푸심은 한이 없다. 은혜의 보좌 자체가 최고의 매력의 장소인데 왜냐하면 그분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도록 우리에게 허락하신 분이 그 곳에 앉아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사랑만 주어질 동안은 구원의 대강이 완성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신다. 그분의 약속대로 그분께서는 그분의 제단에 우리의 본성을 입으신 옹호자를 두셨다. 우리의 중보자로서 그분의 일은 우리를 하나님께 그분의 자녀로 소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을 영접한 자들을 위하여 중재하신다. 그분께서 그분의 공로를 힘입어 왕족의 일원이, 즉 하늘 왕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 364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그 피로 우리의 속전을 치르신 그리스도로 인해서, 그리스도의 친구된 우리들을 하나님의 친구로 영접하고 환영함으로,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을 나타내신다. 그분께서는 이루어진 속죄에 만족해 하신다. 그분께서는 아들의 성육신과 생애와 죽음과 중보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신다.

하나님의 자녀가 시은좌 앞에 나아가자마자 그는 위대한 옹호자의 고객이 된다. 용서를 위한 그의 참회와 호소의 첫마디가 발해 질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말을 받아들여서 자신의 것으로 삼으시고 그 간구를 마치 자신의 요구인 양 아버지께 드린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중재하실 때 아버지께서는 그분의 모든 보화를 우리가 사용하고, 누리고, 남들에게 전해 줄 수 있도록 열어 주신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다. “내 이름으로 구하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너희를 사랑하시니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내 이름을 사용하라. 이것이 그대들의 기도에 효력을 줄 것이며 아버지께서는 그분의 은혜의 풍성함을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구하라 그러면 받을 것이요 너희 기쁨이 넘치리라’”(요 16:24 참조).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자녀들이 축복을 달라고 하고 그분 앞에 나아가 찬미와 감사를 드리기를 바라신다. 하나님께서는 생명과 능력의 근원이 되신다. 그분께서는 계명을 지키는 자들을 위하여 광야를 열매가 맺히는 밭으로 만드실 수 있다. 왜냐하면 이것이 그분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택하신 백성을 위하여 모든 사람의 마음에 감사가 우러나오게 하는 일을 이루셨다. 그러나 너무 찬양이 없으므로 그분의 마음은 우울하게 된다. 그분께서는 백성들이 기쁨과 즐거움의 이유를 알고 있음을 나타내는 더 강한 표현들이 백성으로부터 터져 나오기를 바라신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다루시는 일은 자주 반복해서 말해져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고대 이스라엘 백성을 다루셨음을 증거하는 표를 얼마나 자주 세웠던가! 과거의 역사를 그들이 잊지 않도록 그분께서는 모세에게 이 사건들을 노래로 지어 부모들이 그 노래들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도록 하셨다. 365 그들은 기념물을 만들어 그들의 눈에 띄도록 하였다. 그것들을 보전하기 위하여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서 자녀들이 이 일에 관하여 물을 때에 전체 이야기를 반복하였다. 그리하여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과 하나님의 돌보심과 구원 속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선하심과 자비를 마음속에 간직하도록 하였다. 우리는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히 10:32)는 권고를 받는다. 주님께서는 이 세대의 자기 백성을 위하여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으로 역사하셨다. 하나님의 사업의 과거 역사가 노유를 막론하고 백성들 앞에 자주 제시되어야 한다. 우리는 자주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야기하며, 그분의 놀라운 일을 인하여 그분께 찬양을 돌려야 한다.

우리끼리만 모이는 모임을 게을리 하지 말라는 권고를 받았지만, 이 모임들은 우리들의 영혼만 쇄신되는 기회로 삼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받은 바 위로를 나누어 주고자 하는 열성으로 충만해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열성을 내고, 나쁜 말을 하지 않으며, 마치 하나님의 요구가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는 인생을 주는 듯한 슬픈 기색이나 잘못된 말이라도 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슬픔과 실망과 죄의 세상에서라도 주님께서는 우리가 기뻐하고 그분의 능력 안에서 강해지기를 원하신다. 한 사람의 인격 전체가 모든 방면에 있어서 결정적인 증거를 전할 특권을 가지고 있다. 모양, 기질, 말, 품성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좋은 것임을 증거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시 19:7)라고 선포한다.

매일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들에 의하여 우리 신앙의 밝고 쾌활한 면모가 나타난다. 우리는 슬프게 보이는 시련을 비참하게 말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시련을 인생의 교사로 여기면 도리어 기쁨이 생긴다. 366 신앙 생활 전체가 고양되고, 고상하게 되며, 고결하게 되며, 선한 말과 일로 향기나는 것이 될 것이다. 원수는 영혼들이 슬프고, 낙심하고, 울며 신음할 때 매우 기뻐한다. 그는 우리 신앙의 결과가 마치 그런 것인 양 인상을 지우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비참해지지 않도록 계획하셨다. 그분께서는 구주의 지키시는 권세 안에서 모든 영혼이 승리하기를 바라신다. 시편 기자는 말한다.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 내 대적으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시 29:1, 2, 30:1-4).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이다. 이 땅의 신자들과 한 번도 타락하지 아니한 하늘 존재들이 한 교회를 이룬다. 하늘의 지적 존재들은 지상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고자 모이는 성도들의 회집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 땅 곧 바깥뜰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증거하는 소리를 하늘 안뜰에서 그들이 듣는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아담의 자손들을 위하여 헛되이 죽으시지 않으셨기 때문에 예배자의 감사와 찬미가 하늘의 찬양 속으로 들어가며, 찬양과 즐거운 소리가 하늘 궁정에 울려 퍼진다. 천사들이 샘 근원에서 마시는 동안 지상의 성도들은 보좌로부터 흘러 나는 맑은 강, 우리 하나님의 도성을 기쁘게 하는 이 강에서 마신다. 오, 우리가 다 하늘과 땅이 이렇게 가까움을 느낄 수 있으면 오죽 좋으랴! 세상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알지 못하지만 그들은 빛의 천사들을 동무로 하고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영혼을 소리 없는 증인이 지키며 그 영혼을 그리스도께 이끌고자 애쓰고 있다. 희망이 있을 동안, 즉 사람들이 성령을 거절하여 영원한 파멸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들은 하늘의 존재들에 의하여 보호를 받는다. 367 모든 사람들은 이 땅에서의 모든 성도들의 모임마다 하나님의 천사가 함께 하며 간증과 노래와 기도를 듣는다는 것을 기억하자. 우리의 찬양이 하늘 천군의 찬양대에 의해서 보충됨을 기억하자.

안식일마다 모일 때에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분께 찬양을 돌리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를 씻으신”분께 우리 마음의 찬송을 드리자. 설교자가 말할 때에 그리스도의 사랑의 부담을 갖고 말하자. 단순한 언어로 모든 찬양의 노래 중에 그 사랑이 표현되도록 하자. 하나님의 영의 감동이 그대의 기도를 지도하게 하라. 생명의 말씀이 선포될 때 그대의 감동적인 반응으로 그대가 하늘로서 오는 기별을 받고 있다는 것을 표하게 하라. 이것이 매우 구식임을 내가 잘 안다. 그러나 그것은 굶주린 영혼에게 주어진 생명의 양식에 대해 하나님께 바치는 감사제가 될 것이다. 성령의 감동에 대한 이 반응은 그대의 영혼에 힘이 되며 남들에게 용기가 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집에 빛을 발산하는 돌들이 있다는 증거를 줄 것이다.

우리가 과거의 어두운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큰 자비하심과 다함없는 사랑의 나타남을 돌이켜 볼 때에 우리는 불평 대신에 찬양할 것이다. 우리는 참되고 부드러우며 동정 많은 양무리의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그 양무리에 관하여 아무도 그분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을 것이라고 선포하신 그 신실하신 사랑에 대하여 말하게 될 것이다. 마음의 언어는 이기적인 불평이나 투덜거림이 아닐 것이다. 맑은 물의 흘러감 같은 찬양이 하나님의 참된 신자들로부터 나올 것이다. “선하심과 그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시 23:6, 73:24, 25).

368 우리 순례길에서 왜 우리의 영적 노래 소리를 일깨우지 않는가? 왜 단순함과 열의 있는 삶으로 돌아가지 않는가? 우리가 더이상 즐거워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첫사랑을 잊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촛대가 우리로부터 옮겨가지 않도록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하나님의 하늘 성전이 열렸다. 그 문지방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킬 모든 교회를 위한 영광으로 빛나고 있다. 우리는 연구하고, 명상하고, 기도해야 한다. 그리하면 우리는 하늘 성전의 안뜰을 분별할 영적 통찰력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는 보좌 주위를 둘러싼 하늘 찬양대의 노래와 감사의 주제를 깨닫게 될 것이다. 시온이 일어나 빛을 발할 때에 그 빛은 가장 찬란하며, 귀한 감사의 노래가 성도들의 모임 중에서 들릴 것이다. 적은 실망과 곤란함 때문에 생기는 불평하고 투덜거림이 사라질 것이다. 우리가 금으로된 안약을 바를 때에 우리는 저 너머에 있는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믿음은 사단의 무거운 그림자를 가를 것이며,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공로의 향을 드리는 우리의 옹호자를 보게 될 것이다. 주께서 우리가 보기를 원하시는 대로, 실상대로 우리가 보게 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거대함과 다양함을 깊이 느끼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집에 모여서 완전한 사랑을 함양해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이런 일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그분께서 마련하실 처소에 지상의 거민들이 적합하게 되도록 해 준다. 매 안식일과 월삭에 높은 음조로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께 영원토록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일에 연합하고자 그들은 성소에 모일 것이다.

건강 개혁의 부흥

369 자연 법칙 순종 자연 법칙은 하나님의 법칙이므로 이 법칙들을 자세히 연구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인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우리 몸에 관계된 자연 법칙의 요구를 잘 연구하여 그 법칙을 따라야 한다. 이 방면에서의 무지는 죄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5, 19, 20).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께서 사신 소유물이다. 우리 마음대로 몸을 사용할 자유가 없다. 사람들은 이렇게 해 왔다. 몸의 법칙을 어겨도 벌이 없는 듯이 몸을 마구 다루었다. 부패한 입맛을 통하여 그 기관과 힘은 연약해지고, 병들고, 불구가 되었다. 사단의 그럴듯한 유혹에 의해 생긴 이 결과들을 사단은 하나님을 조롱하는 데 사용한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소유물로 사신 인간의 몸을 하나님께 제시한다. 인간은 그의 조물주를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는 형편이 아닌가! 인간이 자기 몸에 죄를 짓고, 그 길을 부패케 함으로 하나님은 욕을 당하신다.

사람들이 참으로 회심하면 그들은 그들의 신체 속에 하나님이 제정하신 법칙을 양심껏 지키며 육체적, 정신적, 도덕적 연약함을 피하고자 할 것이다. 이 법칙들을 순종하는 것은 개인적인 의무로 인식되어야 한다. 우리는 법칙을 범함으로 받는 해를 스스로 당하고 만다. 우리는 우리의 습관과 버릇에 관하여 하나님의 추궁에 답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은 “세상이 무엇이라 말할까?”가 아니다. 370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하는 내가 하나님께서 주신 이 몸을 어떻게 관리할까? 내 몸을 성령이 거하시는 전으로 생각하고 신체적으로나 영적으로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고자 노력할 것인가 아니면 세상의 사상과 행습에 내 자신을 희생시킬 것인가?”가 되어야 한다.

건강한 삶은 가정의 중요한 관심이 되어야 한다. 부모들은 하나님이 주신 책임을 잘 알아야 한다. 부모들은 건강 개혁의 원칙을 연구하고 자녀들에게 극기의 길이 유일의 안전한 길임을 가르쳐야 한다. 세계 거민의 다수가 신체적 법칙을 무시함으로 자제력을 파괴하고 영원한 것들을 이해하는 데 스스로를 부적합하게 한다. 자기 몸의 구조를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 그들은 자녀들을 자아 방종의 길로 접어들게 하며 자녀들이 자연 법칙을 범한 벌을 받도록 준비시킨다. 이것은 그들 가족들의 복지에 관하여 현명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 않는 것이다.

교회와 건강 개혁GG 모든 교회에서 건강 개혁의 기별이 전해져야 한다. 모든 학교들에서 이 사업이 또한 이루어져야 한다. 교장이나 교사이거나 간에 그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실제적인 지식을 갖출 때까지는 아이들을 맡겨서는 안 된다. 어떤 이들은 그들이 경험적으로 전혀 모르는 건강 개혁의 원칙들에 관하여 비판하고 질문하며 흠을 잡았다. 그들은 바른 노선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마음을 합하여 일해야 한다.

건강 개혁의 주제가 교회들에서 발표되었다. 그러나 그 빛은 제대로 환영받지 못하였다. 사람들의 이기적이고 건강을 파괴하는 방종은 하나님의 큰 날을 위하여 한 백성을 예비하려고 주어진 기별의 영향에 반작용하였다. 교회들이 힘을 원한다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기별대로 살아야 한다. 371 우리 교인들이 이 주제에 관한 빛을 무시하면 그들은 영적, 신체적 퇴보의 분명한 결과를 거둘 것이다. 그리고 이 오래된 교인들의 영향이 새로 믿는 자들을 부패시킬 것이다. 한번도 회심해 보지 않는 교인들과 한 번 회심했으나 속으로 물러앉은 교인들 때문에 주께서는 지금 많은 영혼들이 진리에 들어오도록 일하지 않으신다. 헌신하지 아니한 교인들이 새로운 회심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담당해야 할 하나님의 기별을 효과 없이 만들지 않는가?

모든 이들이 그들에게 실제적인 손해를 끼치는 것에 빠져 있지 않나 스스로를 살피도록 하라. 먹고 마시는 일에 있어서 건강에 해로운 모든 것을 다 멀리하도록 하라. 어떤 이들은 먼 나라에 가서 더 좋은 기후 속에 살고자 한다. 그러나 그들이 어디 있든지간에, 위장은 해로운 환경을 만든다. 그들은 아무 다른 사람도 경감시킬 수 없는 고통을 스스로에게 가한다. 그들의 일상 생활이 자연 법칙과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믿을 뿐만 아니라 실천함으로 생명에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향기가 되는 분위기가 영혼과 몸을 위하여 이루어질 것이다.

형제들이여, 우리는 너무 낙후되어 있다. 산 교회가 되기 위하여 교회가 해야 할 많은 일들을 하지 않았다. 왜곡된 식욕의 방종을 통하여 많은 이들이 영혼의 최고의 유익에 지속적으로 방해되는 건강 상태에 자신을 둔다. 진리가 제대로 전달되어도 수용되지 않는다. 나는 이 문제를 모든 교인들 앞에 제시하고 싶다. 우리의 습관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어야 한다. 372 우리는 “너희 안에 역사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확신하지만 사람이 정욕과 식욕을 조절하는 자신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종교 생활은 하나님의 능력과 더불어 조화된 정신과 마음의 활동을 요구한다. 아무도 자신의 구원을 스스로 이룰 수 없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협력 없이 이 일을 그를 위해 하실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이 열렬히 일하면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 일하셔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주신다.

건강을 주제로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우리가 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다”고 장담하기가 일쑤다. 그들은 신체의 건강에 관하여 받은 바 모든 빛에 대하여 책임이 있으며, 모든 습관은 하나님의 심사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육체의 생명을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모든 기관과 모든 근육이 해로운 습관으로부터 각별히 지켜져야 한다.

식사GG 우리의 식사 습관은 우리가 세상에 속하는지 아니면 주께서 강한 진리의 끌로 세상으로부터 분리해 내신 주님의 백성에 속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이며, 선한 일을 하기에 열심이 있는 백성이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말씀하셨다. 다니엘과 그의 세 동무들의 이야기 속에 건강 개혁의 설교가 들어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의 역사를 통하여 말씀하셨다. 그들을 위하여 그들의 식단에서 고기를 제하도록 하셨다. 그분께서는 하늘에서 온 떡으로 그들을 먹이셨다. “사람이 천사의 음식을 먹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세상적 식욕을 부추겼다. 그들이 애굽의 고기 가마를 생각할수록 그들을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건강하게 지켜 줄, 하나님께서 주신 음식을 싫어하게 되었다. 그들은 고기 가마를 사모하였으며, 오늘날 많은 이들이 그러한 것처럼 그들이 그토록 그것을 사모하였다.

많은 이들이 식욕의 방종으로 병들고, 무덤으로 내려간다. 그들은 그들의 타락한 입맛에 맞는 것을 먹어 소화 기관을 약하게 하고, 생명을 유지케 하는 음식을 동화시키는 기관의 힘에 해를 끼친다. 373 이것은 급성 질환을 가져오며, 죽음이 뒤따르는 경우가 너무 잦다. 몸이라는 섬세한 유기체는 그것을 더 잘 알아야 할 사람들의 자살적 습관으로 인하여 지쳐 버린다.

교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빛에 철두철미하고 신실해야 한다. 각 교인은 생활 속에서 모든 타락한 식욕을 제거하기 위하여 지혜롭게 일해야 한다.

식사의 극단GG 우리 형제 중 많은 이들이 마음과 행실로 건강 개혁에 반대하고 있음을 나는 안다. 나는 극단을 옹호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쓸 글들을 훑어보면서 방종과 식욕의 만족과 옷 자랑에 빠진 세상의 습관과 행습을 흉내냄으로 우리 백성에게 올 위험에 대하여 결정적인 증언과 경고를 전하였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현재 상태를 생각할 때 내 마음이 아프고 슬프다. 우리 형제 중 어떤 이들이 이 문제를 너무 심하게 강조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이 간혹 건강 개혁에 관한 그들의 생각을 무분별하게 강조했다는 이야기 때문에 이 주제에 관한 진리를 감추어 버릴 자가 감히 어디 있겠는가? 세상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식사에 있어서 방종과 부절제의 극단에 치우쳐 있다. 그 결과로 욕망을 채우고자 하는 일이 범람한다.

주를 위하여 일하고자 준비하였으나 건강 법칙을 준수하는 신성한 의무가 없다고 생각한 많은 자들이 지금 죽음의 그림자 아래 있다. 신체 조직의 법칙은 참으로 하나님의 법칙이다. 그러나 이 사실이 잊혀진 것 같다. 어떤 이들은 식단을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지 못할 부족한 것으로 제한한다. 그들은 해로운 음식을 대신할 영양가 있는 음식을 조달하지 않는다. 374 그리고 그들은 음식을 가장 건강한 방법으로 준비하는 데 있어서 머리를 써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신체가 그 기능을 하려면 적절히 영양을 섭취해야 한다. 건강에 해로운 음식을 다 버린 후에 다른 극단으로 치우쳐 양과 질에 있어서 아주 저질의 음식으로 전환하는 것은 건강 법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이것은 건강 개혁이 아니라 건강 개악이다.

참 절제GG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록하였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 9:24-27).

악독한 습관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이 세상에 많다. 그들을 다스리는 법은 입맛이다. 그들은 잘못된 습관으로 도덕적 식별력은 어두워졌고 거룩한 것을 분별하는 능력은 크게 파괴되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엄격히 절제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표준을 높여야 한다. 먹고, 마시고, 옷 입는 데 있어서 절제가 필수적이다. 식욕이나 기호(嗜好) 대신에 원칙이 다스려야 한다. 너무 많이 먹든지 아니면 마땅치 못한 음식을 먹는 자들은 쉽게 방탕으로 빨려 들어가며, 다른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딤전 6:9). “하나님과 더불어 일하는 동역자”들은 참된 절제 원칙을 파급하는 일을 장려하기 위하여 그들의 모든 영향력을 다 행사해야 한다.

하나님께 진실하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375 그분께서는 그분의 봉사 사업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을 그분의 소유로 여기신다. 그분께서는 정신과 몸이 최선의 건강 상태에 있고, 모든 능력과 재능이 하나님의 주관 아래 있으며, 주의 깊고 철저한 절제 습관이 만들어 낼 수 있는 활력 넘치는 상태에 있게 되기를 바라신다. 우리는 우리의 몸과 영혼을 아낌없이 하나님께 헌신하여, 모든 능력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 이해하며, 그분을 섬기는 데 사용되도록 해야 할 의무 아래 있다. 우리의 모든 힘과 능력은 이 유예 기간에 계속적으로 강인하게 하고 증진시켜야 한다. 이 원칙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몸을 지혜롭게 잘 보호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도록 훈련된 자들만이 이 사업을 위하여 책임을 맡도록 선택되어야 한다. 진리 안에 오래 있었으나 참된 의의 원칙과 악의 원리를 구분하지 못하며, 정의와 자비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해력이 어두워진 사람들은 책임을 맡지 않게 되어야 한다. 모든 교회는 분명한 나팔 소리를 내는 명확하고 예리한 증언이 필요하다.

우리가 절제에 대해 우리 백성의 도덕적 감성을 일깨우면 큰 승리를 얻을 것이다. 삶의 모든 일에 있어서 절제는 가르쳐지고 실행되어야 한다. 먹고, 마시고, 자고, 옷 입는 일에 있어서의 절제는 종교 생활에 있어서 중대한 원칙들 중에 하나이다. 영혼의 성소에 전해진 진리는 몸을 다루는 데 있어서 안내자가 될 것이다. 인간의 건강에 관계된 어느 사항도 무관심하게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영원한 복지는 생활 중에서 시간과 힘과 영향력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다윗은 선언하였다. 376 “나의 지으심이 신묘막측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그러한 몸을 주셨는데 매 부분을 왜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는가? 생각과 마음의 방들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다면 육감적이며 저열한 쾌락을 즐기며 지하실에 사는 대신에 이 아름다운 방들을 열어 놓고 주 예수님을 들어오라고 초청하여 우리와 함께 살도록 하지 않겠는가?

목사들이 건강 개혁을 가르쳐야 함GG 우리 목사들은 건강 개혁에 관하여 잘 알아야 한다. 그들은 생리학과 보건을 알 필요가 있다. 그들은 신체에 관한 법칙을 이해해야 하며, 그것이 마음과 영혼의 건강에 미치는 관계를 알아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놀라운 몸에 대해서 거의 모르며, 몸 관리에 대해서 무지한 상태에 있다. 그들은 훨씬 덜 중요한 과목들을 공부하는 것에 더 신경을 쓴다. 목사들은 이 분야에서 할 일이 있다. 그들이 이 주제에 있어서 바른 입장을 취한다면 많은 유익을 얻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과 가정에서 생명의 법칙들을 순종하고 바른 원칙들을 실천하며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 그리하면 그들은 이 주제에 관하여 바른 지식을 전달할 수 있으며 백성들을 보다 더 고차원적인 개혁 사업으로 인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 자신이 빛 가운데 살므로 바로 그러한 증거를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매우 귀한 기별을 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목사들이 교회에서 하는 모든 수고에 건강 문제를 연결하여 제시하면 풍부한 경험과 귀한 축복들을 얻을 수 있다. 백성들은 건강 개혁에 관한 빛을 소유해야 한다. 이 사업이 소홀히 여겨져 왔다. 많은 이들이 그들이 이기적 방종을 버리기 전에 반드시 얻어야 하는 빛을 얻지 못하여 죽어 가고 있다.

우리 합회장들은 그들이 이 문제에 있어서 바른편을 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을 깨달아야 한다. 377 목사들과 교사들은 그들이 받은 빛을 남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 모든 분야에서 그들의 일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도와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굳게 서서 자아 방종을 따르기 위해 진리와 의로부터 멀어져 가지 않는 그분의 종들을 강하게 하실 것이다.

의료 선교 분야에서 교육하는 일은 사람의 도덕적 책임감을 일깨우는 중요하고 진보된 계단이다. 목사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빛을 따라 이 사업을 다방면에서 발전시켰을 것 같으면 먹고 마시고 옷 입는 일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개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건강 개혁의 발전을 위해 직접 일해 왔다. 그들은 그들의 무관심과 정죄로의 말과 우스갯소리와 농담으로 백성들이 진보하지 못하게 막았다. 그들 자신과 다른 많은 이들이 고통을 당하여 죽음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모든 사람들이 지혜를 얻지는 못하였다.

가장 공격적인 전투로만 진전이 있었다. 백성들은 자신을 부인하기를 원치 않았으며 그들의 생각과 뜻을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기를 원치 않았다. 그들은 고통중에, 그리고 남들에게 미치는 영향 속에서 그들은 그 행로의 말로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교회는 역사를 창조하고 있다. 전투와 전진은 매일 있다. 우리는 사방에서 보이지 아니하는 원수들에 의해 우겨 쌈을 당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정복하든지 아니면 정복을 당하든지 한다. 나는 건강 개혁에 관하여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자들에게 마음을 돌이키라고 촉구하는 바이다. 이 빛은 귀한 것이다. 378 주님께서는 내게 이 기별을 주셔서 하나님의 사업에서 어느 분야든지 책임을 맡은 모든 이들이 마음과 삶 속에서 진리가 더욱 구현될 수 있게 주의를 기울이도록 촉구하셨다. 이렇게 해야만이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반드시 만나게 되는 시험에 대처할 수 있게 된다.

목회하는 형제들 중 어떤 이들이 왜 건강 개혁에 관심을 두지 않는가? 왜냐하면 모든 일에 있어서 절제하라는 교훈이 그들의 자아 방종의 생활에 대립되기 때문이다. 어떤 곳에서는 이것이 백성들을 인도하여 건강 개혁을 연구하고 실천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는 데 큰 방해가 되었다. 가르침이나 모본이 하나님께서 그분의 종들에게 주신 음식에 대한 증언과 배치되는 사람은 아무라도 교사가 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것이 혼란을 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 건강 개혁을 무시하는 그의 태도는 그를 주님의 사자로 세우기에 부적합하게 한다.

주님께서 이 주제에 관하여 그분의 말씀 가운데서 주신 빛은 분명하다. 사람들은 그들이 이것에 주의하느냐 하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많은 방식으로 시험을 받고 판단을 받는다. 모든 교회, 모든 가정은 그리스도인 절제에 관하여 교훈을 받아야 한다. 모든 이들은 건강을 보존하기 위하여 어떻게 먹고 마셔야 할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세상 역사의 마지막 장에 살고 있다. 그리고 안식일 준수자들 속에 행동의 조화가 있어야 한다. 이 문제에 있어서 백성들을 교훈 하는 위대한 사업을 등지고 섰는 사람들은 위대하신 의원이 인도하시는 길을 따르지 않고 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다.

주님께서는 아주 많은 이들이 건강 개혁의 실제적 감화를 통하여 신체적, 정신적, 도덕적 타락에서 구원받게 될 것을 알려주셨다. 건강 강좌가 개설되고 출판물들이 증가하게 될 것이다. 379 건강 개혁의 원칙들은 좋게 받아들여질 것이며, 많은 이들이 일깨움을 받을 것이다. 건강 개혁과 연결된 감화들은 빛을 원하는 모든 사람들의 판단에 그 빛을 좋게 제시할 것이며, 그들은 한 계단씩 이 시대를 위한 특별한 진리들을 받기 위해 전진할 것이다. 그리하여 진리와 의가 함께 만날 것이다.

생명은 하나님께서만 우리에게 주사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도록 맡기신 거룩한 신탁물이다. 사람의 놀라운 몸의 구조를 형성하신 그분께서, 사람이 그분의 뜻에 위배되지 않게 한다면 그것을 바로 지켜 주시고자 특별한 보살핌을 베푸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달란트를 우리가 향상시키도록 도우며, 우리가 그것을 주신 분의 뜻에 일치하게 사용하도록 도울 것이다. 우리는 여러 날, 여러 달, 여러 해를 더 살게 되어 우리가 우리 개인의 구원을 이루는 기회와 유리한 경우를 증진시킬 것이며, 우리의 무아적 삶으로 남들의 복지를 증진시키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왕국을 세우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것이다.

복음과 의료 선교 사업은 병행하여 전진해야 한다. 복음은 참된 건강 개혁의 원칙과 결부되어야 한다. 기독교는 실생활 속에 이루어져야 한다. 열렬하고 철저한 개혁 사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참된 성경의 종교는 하나님의 사랑이 타락한 인류에게 흘러 나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진리를 구하는 사람들, 매우 진지한 시대에서 자기의 역할을 다하기 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기 위하여 곧 바른 노선으로 전진해야 한다. 우리는 사람들이 이 원칙들의 필요성을 알아보고, 실천할 수 있도록 힘을 다하여 백성 앞에 건강 개혁의 원칙들을 제시해야 한다.

발성 훈련의 중요성

380 우리 사업에 있어서 발성 연습에 더욱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에게 지식이 있다 하더라도 음성을 바로 쓰지 못하면 우리의 사업은 실패하고 만다. 우리가 적당한 언어로 우리의 사상을 옷 입히지 아니하면 우리의 교육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리가 말의 재능을 잘 계발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아는 것도 별로 소용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지혜롭게 도움이 될 말을 하고 주의를 집중시키는 방법으로 말하여 지식을 전하면 놀라운 능력이 된다.

하나님의 사업을 위한 일꾼이 되고자 하는 학생들은 분명하고 바르게 말하는 방법을 체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좋은 감화가 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분명하고 명확하게 말하며, 온전하게 부드러운 어조로 말하는 능력은 어느 분야의 사업을 위하여도 귀중한 것이다. 이 자질은 목사와 전도자와 성경 교사와 문서 전도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필수적인 것이다. 이 분야의 사업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진리에 관하여 말할 때에 선을 위한 결정적인 감명이 끼쳐지도록 음성을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진리가 엉성한 말로 전달됨으로 손상을 입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자기가 판매하기 원하는 책의 장점을 분명하고 또렷하게 말할 수 있는 문서 전도인은 이것이 그의 사업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됨을 발견할 것이다. 그는 그 책의 한 장을 읽을 기회를 가질 수도 있으며 그의 음악 같은 음성과 어떤 단어를 강조하여 마치 실제로 보는 듯이 듣는 이 앞에 그 장면을 생생하게 제시할 수 있다.

회중에서나 가정에서 성경 문답을 읽는 사람은 듣는 이들을 매혹시킬 부드럽고 음악 같은 소리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

381 복음 목사들은 영생의 말씀을 풍부한 표현으로, 감동 있게 전달하여 청중이 그 중요성을 느끼게끔 말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많은 목사들의 결점 투성이의 음성을 들을 때에 내 마음은 아프다. 그런 목사들은 그들이 능력 있게 말씀을 전하도록 자신을 훈련시켰으면 하나님이 얻으실 수 있는 영광을 도적질한 것이다.

끈질긴 노력으로 자기 말의 결점을 극복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자신을 목회에 자격 있는 자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만일 그가 말의 재능을 사용할 방법을 알지 못하고 백성 앞에서 말하고자 한다면 그의 감화의 반은 상실되는데 왜냐하면 회중의 주의를 끌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직업이 무엇이든 간에 각자는 음성을 관리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리하여 무엇인가 잘못되어 갈 때에 그는 마음의 가장 악한 감정을 자극시킬 어조로 말하지 않게 될 것이다. 너무 자주 말하는 자와 듣는 자가 말을 날카롭고 심하게 한다. 날카로운 말과 명령조의 말이 딱딱하고 격한 어조로 말해지면 그것들은 친구들을 분리시키고 영혼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게 한다.

발성 훈련에 관한 교훈이 가정에서 주어져야 한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분명하게 말하도록 가르쳐서 듣는 사람들이 모든 말을 다 알아듣도록 해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방법으로 성경을 분명하고 또렷하게 읽는 것을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가족 예배로 모여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의자에 푹 들어가게 앉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들이 고개를 들고 경건하게 아버지께 알아들을 수 있는 어조로 말하도록 하자.

부모들이여, 자신을 훈련시켜 아이들에게 축복이 되는 방법으로 말하도록 하라. 여인들도 이 점에서 훈련을 받아야 한다. 바쁜 어머니들도 그들이 원한다면 말의 재능을 계발할 수 있으며 자녀들이 바로 읽고 말하도록 훈련시킬 수 있다. 382 그들은 일을 해 가면서도 이것을 할 수 있다. 발전시키는 데 늦었다는 것은 없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들에게 가정의 테두리 안에 가능한 모든 완전함을 이루도록 촉구하신다.

기도 집회로 모일 때에 모든 사람들이 전해진 간증을 알아듣고 그것에서 도움을 얻게 되도록 분명하고 또렷하게 말하는 것이 특별히 요구된다. 하나님의 백성이 자기들의 경험을 기도회에서 말할 때에 난관들이 제거되고 도움이 주어진다. 그러나 너무 자주 간증들이 결점 투성이의 불분명한 말로 전해짐으로 무슨 말을 하였는지를 바로 아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그리하여 자주 축복을 상실하게 된다.

기도하는 자, 말하는 자는 단어들을 적절하게 발음하고, 분명하고 또렷하고 고른 어조로 말하도록 하라. 기도가 적절히 올려지면 선을 위한 능력이 된다. 그것은 주께서 진리의 귀한 보화를 백성에게 전달하는 데 사용하시는 수단들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기도하는 이들의 결점 투성이의 발성으로 인하여 기도는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기도가 거의 잘 안 들릴 때 사단은 기뻐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이 가진 진리를 적절히 나타내는 방법으로 말하고 기도하기를 배우도록 하라. 간증과 기도가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게끔 하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모든 사람은 다 언어의 재능을 최대한 활용하라. 하나님께서는 더 높고 더 완전한 봉사를 요구하신다. 그분께서는 각고의 노력으로 그분을 위한 가납될 만한 대변자가 될 수도 있었던 사람이 불완전한 언사로 말함으로 욕을 당하신다. 진리는 너무 자주 그 통로로 인하여 손상을 당한다.

주께서는 그분의 사업과 관련된 모든 자들이 발성 훈련에 주의를 기울여서 그분께서 그들에게 위탁하신 위대하고 엄숙한 기별을 합당한 방법으로 말하게 되기를 요구하신다. 아무도 어설픈 언사로 진리를 손상시키지 말라. 383 언어의 재능을 계발하는 일을 소홀히 한 사람은 아무도 목회에 자격을 갖추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직도 전달의 능력을 획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대가 말할 때에 모든 단어를 잘 말하고, 부드럽게 하며, 매 문장의 마지막 단어까지 분명하고 또렷하게 하라. 많은 이들이 문장의 끝에 오면 목소리를 죽여서, 알아듣지 못하게 끝맺음으로 사상의 힘이 파괴된다. 말할 가치가 있는 말은 분명하고, 또렷하게 말하고 강조점과 표현을 넣어 말해야 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유식하게 들릴 단어들을 결코 찾으려 하지 말라. 단순하면 할수록 그대의 말은 더 잘 이해될 것이다.

젊은 남녀 청년들아, 하나님께서 그대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업을 향한 열망을 주셨는가? 그러면 기필코 음성을 최대한으로 계발하여 귀중한 진리를 남들에게 분명히 말할 수 있게 하라. 기도를 너무 불분명하게 하며, 너무 작은 소리로 말하는 습관에 빠져서 그대의 기도가 해설자를 필요로 하게끔 하지 말라. 단순하지만 분명하고 또렷하게 기도하라. 알아들을 수 없게 작은 소리로 기도하는 것은 겸손의 증거가 아니다.

목사로서 하나님의 사업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단호한 결심으로 완전히 언어를 구사하고자 노력하라. 이 큰 목표를 이루도록 힘을 달라고 하나님께 구하라. 회중 가운데서 기도할 때에 그대가 하나님께 말하는 사실과 하나님께서는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이 알아듣고 그들의 간구가 그대의 기도와 합해지게 되기를 바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급하게 드려져 말들이 뒤엉킨 기도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하며 듣는 자들에게 유익을 끼치지도 못한다. 공중 기도를 드리는 목사들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듣는 이들에게 축복이 되는 방법으로 기도드리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들은 천천히 또박또박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듣기에 충분히 큰 어조로 말하여 백성이 아멘으로 합할 수 있게 말해야 한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384 주께서 그의 백성에게 이 시대를 위한 기별을 주셨다. 그것은 말라기 3장에 제시되어 있다. 이 장에서 나타난 것보다 더 분명하고 더 힘있게 그분의 요구를 더이상 어떻게 제시하겠는가?

모두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요구들이 다른 모든 요구의 기초를 이룬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분께서는 풍성하게 주시며, 그분께서 인간과 맺은 계약은 소유의 십분지 일을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청지기들에게 그분의 보물을 은혜로 맡기셨다. 그러나 그 십분지 일에 관하여 그분은 말씀하신다. 이것은 나의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맡기신 소유물에 비례해서 사람은 그의 모든 소유의 충성된 십일조를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 한다. 이 분명한 제도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만드셨다.

이 사업은 엄숙하고 영원한 결과들을 포함하며 인간의 충동에 따라 처리되도록 방임되기에는 너무 신성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이 일을 처리해도 된다고 생각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요구에 응하여, 그분의 사업을 위하여 정규 금액을 거룩한 것으로 따로 내어 놓아야 한다.

첫 열매GG 십일조 외에, 주께서는 우리가 얻은 모든 것의 첫 열매를 요구하신다. 이것을 그분께서는 따로 떼어 놓으셔서 지상에서의 그분의 사업이 충분히 유지되도록 하셨다. 주의 종들이 쥐꼬리만한 봉급을 받도록 해서는 안 된다. 그분의 사자들은 생명의 말씀을 펼치는 데 있어서 장애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진리를 가르칠 때에 그들은 사업의 발전을 위하여 투자할 자금이 있어야 한다. 이 사업은 구원하는 효과를 최대한 나타내기 위하여 적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자선 사업이 있어야 한다. 가난한 자들과 고통당하는 자들에게 도움이 베풀어져야 한다. 이 목적을 위하여 선물들과 헌금들이 사용되어야 한다. 385 특별히 새로운 지역들에서, 진리의 깃발이 한 번도 들려진 적이 없는 곳에서 이 사업은 이루어져야 한다. 만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모든 백성들이 노유를 물론하고 그들의 의무를 이행할 것 같으면 재물 창고에 부족이 없을 것이다. 모든 이들이 십일조를 충성되이 드리고 소득의 첫 열매를 주께 드린다면 그분의 사업을 위하여 충분한 자금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은 존중되지도 않고, 순종되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것이 핍절의 압박을 주게 되었다.

가난한 자를 기억함GG 우리가 일하는 시대는 결핍의 시대이므로 우리의 생활 속에서 모든 사치가 없어져야 한다. 우리 주위에 핍절과 고통이 널려 있다. 가족들은 음식이 모자란다. 어린것들은 먹을 것을 달라고 아우성이다. 가난한 자들의 집은 적당한 가구와 잠자리가 없다. 많은 이들이 문명의 이기는 거의 하나도 없는 굴과 같은 곳에서 산다.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상달된다. 하나님은 보신다. 하나님은 들으신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자신을 영화롭게 한다. 그들의 동료 인간들이 가난하고 굶주리고, 음식이 없어 고통당하는 동안 그들은 식탁을 위하여 돈을 물쓰듯 하며 필요한 것에 훨씬 지나도록 먹는다. 하나님의 돈을 이기적으로 쓴 것에 관하여 곧 사람들은 어떤 보고를 하나님께 드릴 것인가!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하나님이 마련하신 것을 무시하는 자들은 동료들을 노략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노략함으로 하나님을 노략하였으며, 그분의 소유를 착복한 것이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 속함GG 인간이 향유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자비로 인하여 온다. 그분은 위대하며 풍성한 수여자이시다. 그분의 사랑은 인간을 위하여 이루신 풍성한 공급 속에서 모든 이들에게 나타난다. 그분께서는 하늘 궁정을 위하여 품성을 형성할 유예의 시간을 우리에게 주셨다. 386 그분을 위하여 우리 소유의 한 부분을 떼어 놓으라 하신 것은 그분이 무엇이 필요하셔서 그런 것이 아니다.

주께서는 보기에 아름답고 식물이 될 갖가지 나무를 에덴에 두셨다. 그리고 그 축복을 마음껏 누리라고 아담과 하와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한 가지 예외 규정을 두셨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그들이 먹어서는 안 되었다. 이 나무를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모든 것의 주인임을 계속해서 나타내는 기념으로 떼어 놓으셨다. 그리하여 그분께서는 이 요구에 절대 순종함으로 그분에 대한 그들의 믿음과 신뢰를 나타낼 기회를 주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도 그와 마찬가지이다. 그분께서는 보화를 사람들의 손에 놓으셨다. 그리고 요구하시기를 십분지 일을 그분의 사업을 위하여 충성되이 떼어 놓으라고 하신다. 그분께서는 이 부분이 그분의 창고에 충실히 드려지기를 바라신다. 그것은 그분의 것으로 그분께 바쳐져야 한다. 그것은 신성하며, 신성한 목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구원의 기별을 땅 끝까지 전하는 자들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 그분께서는 이 부분을 확보해 두어 창고에 자금이 넘쳐서 진리의 빛이 원근 각처에 퍼지도록 하셨다. 이 요구를 신실하게 이행함으로 우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인정한다.

주께서 이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실 권리가 없으신가? 그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사 죽음에서 구하시고자 독생자를 주시지 않으셨는가? 우리의 감사의 예물이 그분의 창고로 들어가고 지상에서의 그분의 왕국의 전진을 위하여 거기서부터 자금이 흘러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소유의 주인이시므로 그분에 대한 감사가 우리로 하여금 자원하는 예물과 감사의 예물을 드리도록 자극하여 그분이 영혼과 육체와 영과 소유물의 주인되신 것을 인정하게끔 될 것이 아닌가? 사람들이 하나님의 계획을 따랐다면, 그분의 창고에 자금이 흘러들어 갔을 것이며, 새 지역에 목사들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자금이 지상의 어두운 곳에 진리의 깃발이 서도록 목사와 함께 연합할 일꾼들이 풍성해졌을 것이다.

387 핑계가 없음GG 인간이 주님께 그분의 것을 돌려 드리는 것은 하늘이 정한 계획이다. 그리고 이것은 너무 명백히 진술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지우신 의무와 책임을 회피하거나 오해할 핑계도 없게 되어 있다. 이것이 그들의 의무임을 알 수 없다고 말하는 자들은 온 우주와 교회와 세상에게 자신들이 이렇게 명백히 진술된 요구를 보기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주님의 계획을 따르므로 그들의 재산이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그 이기적인 영혼의 탐심으로 그들은 자금 전체 즉 원금과 이자를 다 소유하여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쓰고자 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의 소유물 위에 그 손을 얹으시고 말씀하신다. 나는 우주의 소유자이다. 이 물건들은 나의 것이다. 그대가 빼돌린 십일금은 내가 흑암의 지경에 있는 자들과 율법을 모르는 자들을 위해 성경을 열고 가르치는 일을 할 나의 종들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따로 떼어 놓은 것이다. 그대의 욕망을 채우고자 내가 떼어 놓은 자금을 사용함으로, 그대는 내가 영혼들을 위하여 마련한 빛을 그들로부터 약탈해 간 것이다. 그대는 나에게 충성심을 보일 기회가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아니하였다. 그대는 나를 약탈하였다. 그대는 나의 적립금을 훔쳤다.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말 3:9).

또 하나의 기회GG 주님은 오래 참으시며, 은혜로우시므로 이 악을 행한 자들에게 또 하나의 기회를 주신다. “내게로 돌아오라 그러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들이 말한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7절). 그들의 자금이 그들의 소유이며 마치 빌린 것이 아닌 양 그것들은 자신들과 자신들의 영광을 위한 일에 흘러 들어갔다. 그들의 왜곡된 양심은 너무 굳어지고 감동을 받을 수 없게 되어 그들은 진리의 사업이 전진하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치는 아주 악한 일을 한 것을 깨닫지 못한다.

388 유한한 인간은,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파하고 구주의 사랑의 복음을 죽어 가는 영혼에게 전하도록 비축하신 달란트를 자신을 위해 사용하면서도, 그의 이기심으로 길을 막으면서도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고 묻는다. 하나님께서 대답하신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8, 9절). 온 세계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빌려주신 돈을 가지고 그들은 방탕과 오락과 술취함과 흥청거림과 수치스러운 방종에 허비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5절). 온 세상이 그 큰 날, 각자가 자기의 행위대로 언도를 받을 때에 계산해야 할 것이 있다.

축복GG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계명을 순종하는 자들을 축복하시겠다고 서약하셨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10-12절).

그들 앞에 이러한 빛과 진리의 말씀이 있는데 사람들은 이렇게 명백한 의무를 어찌 감히 무시하는가? 그분의 요구에 순종하는 것이 이 세상살이와 영적인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축복을 가져오며, 불순종이 하나님의 저주를 불러오는데 어찌 그들이 감히 하나님을 불순종하는가? 사단은 파괴자이다. 389 하나님께서는 충성된 청지기가 되기를 거절하는 자들을 축복하실 수 없다. 그분이 하실 수 있는 것은 사단이 그의 파괴 공작을 수행하도록 용인하시는 길밖에 없다. 우리는 모든 종류의 재난, 여러 다른 정도의 재앙이 지구에 임하는 것을 본다. 왜 그럴까? 주의 억제하시는 능력이 구사되지 않고 있다.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양 살아간다. 노아 시대의 거민들처럼 그들은 하나님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악은 정신없이 창궐하며, 세상은 추수되기 위해 무르익었다.

불평하는 자들GG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창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니라”(13-15절). 하나님의 것을 빼돌리는 자들이 이런 불평들을 한다. 주께서는 그들에게 십일조를 그분의 창고에 들여 그분께서 축복을 부어 주시는지를 시험하라고 하신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속에 반역을 품고 있으며, 하나님께 불평한다. 동시에 그들은 하나님을 노략하며 그분의 소유를 착복한다. 그들의 죄가 그들 앞에 드러날 때에 그들은 말한다. ‘나는 곤경에 처했었다. 나의 농작물은 빈약하였다. 그러나 악인들은 번성하였다. 하나님의 율례를 지키는 것은 유익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그분 앞에서 슬프게 행하기를 원치 않는다. 그렇게 하나님을 불평하는 자들은 화를 자초한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며 그분의 사업은 그분의 창고로 들어가야 할 돈이 이기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는 바람에 방해를 받았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계획을 실행하지 않으므로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불충성을 드러내었다. 390 하나님께서 그들을 번성하게 하시고 그분의 몫을 바치라고 요구하셨을 때에, 그들은 머리를 흔들었고, 이것이 그들의 의무인지를 알지 못하였다. 그들은 눈을 감고 이해하려 하지 않았으며 그리하여 결국 그들은 보지 못하게 되었다. 그들은 주님의 돈을 빼돌렸으며 그분께서 계획하셨던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방해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맡기신 재물의 사용을 통하여 높임을 받지 못하셨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저주가 임하게 하셔서 노략자들이 그들의 과실을 파괴시키고 재앙이 임하게 허용하셨다.

“그들이 여호와를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GG 말라기 3장 16절에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보이는데 이들은 함께 모여서 하나님을 흠잡고자 하지 않고 그분의 영광과 자비에 관해 말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본다. 이들은 의무에 충성되었다. 그들은 주님께 그분의 것을 드렸다. 하늘 천사들로 노래하게 하며 기뻐하게 하는 간증들이 증거되었다. 이들은 하나님께 불평이 없었다. 빛에 행하고, 그들의 의무를 이행하기에 충성되고 참된 자들은 불평하거나 흠잡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용기와 희망과 믿음의 말을 한다. 하나님께 그분의 것을 드리지 않고 자신만 섬기는 자들이 불평하는 자들이다.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이들을 아낌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16-18절).

마음을 다하여 후하게 드리는 자세에 대한 보상은 마음과 생각을 성령과 더욱 밀접한 교제로 이끄는 것으로 나타난다.

391 살기 어려운 사람, 빚진 사람은 하나님의 것으로 동료 인간에게 진 빚을 갚으려 해서는 안 된다. 그는 이런 거래를 통하여 그가 시험을 받고 있으며 주님의 것을 자신을 위해 사용함으로 주신 이의 것을 도적질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는 그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 빚진 것이며, 인간에게 빚진 것을 갚기 위하여 주님의 구분된 자금을 사용함으로 하나님께 이중적으로 빚을 지게 된다. 하늘 책에 그의 이름 옆에 “하나님께 불충성됨”이라고 기록된다. 주의 재물을 자신의 편리를 위하여 유용함으로 하나님과 계산할 일이 생긴 것이다. 하나님의 재물을 오용하는 일로 나타난 그의 무원칙한 태도는 다른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도 나타날 것이다. 이것은 그 자신의 사업과 관련된 모든 일에서도 나타날 것이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려는 사람은 위에 있는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일에 있어서 자신을 낙방시키는 품성을 함양하고 있는 것이다.

이기적인 재물의 사용은 그 사람을 하나님께 불충성된 자로 증명하는 것이며, 하늘의 더 귀한 것을 맡을 청지기가 되지 못하게 한다.

자선이 이루어질 통로가 사방에 널려 있다. 필요가 끊임없이 발생하며, 선교 사업은 자금이 모자라서 장애를 입는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진상에 눈을 뜨지 않는다면 이 사업들은 방치되고 말 것이다. 죽을 때에 이르러 유언을 하지 말고 그대가 살아 있을 때에 재산을 처분하라.

성경 전체의 주제는 그리스도

392 십자가에 달리시어 구주되신, 그리스도의 영생을 주시는 능력이 백성들에게 제시되어야 한다. 신약이 능력이 드러난 복음인 것처럼 구약도 예표와 그림자 속에 있는 복음임을 백성들 앞에 보여 주어야 한다. 신약은 새 종교를 제시하지 않는다. 구약은 신약에 의하여 폐지될 종교를 제시하지 않는다. 신약은 단지 구약의 발전이며 전개인 것이다. 아벨은 그리스도를 믿었으며, 베드로나 바울처럼 그분의 능력에 의하여 구원을 받았다. 사랑받던 제자 요한이 그리스도의 대표자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에녹도 그러하였다. 에녹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였다. 그러다가 사라졌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기 때문이다. 그에게 그리스도의 재림의 기별이 위탁되었다. “아담의 칠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유 14, 15). 에녹에 의하여 전파된 기별과 그가 하늘로 승천한 것은 당시의 모든 사람들에게 확신이 가는 증거였다. 이것들은 므두셀라나 노아가 의인은 승천할 수 있다는 사실을 힘있게 증명할 좋은 재료로 사용될 수 있었다.

에녹과 동행하셨던 하나님은 우리의 주님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셨다. 그분은 지금도 그러하시듯 그 때에도 빛이셨다. 그 당시 사람들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쳐 줄 교사가 없지 않았다. 왜냐하면 노아와 에녹이 그리스도인이었기 때문이다. 복음은 레위기에서 율례로 주어졌다. 그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절대 복종이 요구된다. 이 말씀의 중요성을 깨닫는 것이 얼마나 필수적인가!

이런 질문들이 나온다. 교회에 돈이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대답은 우리의 마음이 말씀으로부터 멀어진 것에 있다. 393 만일 하나님의 말씀이 영혼의 양식처럼 섭취되며, 존경과 엄숙함으로 취급되었다면 이토록 자주 반복해서 증언들이 전해질 필요가 없었으리라. 성경의 단순한 선언이 받아들여지고 사람들은 그것을 따라 행동하였을 것이다.

그것의 산 원칙들은 열국을 치료하는 생명 나무의 잎들과도 같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은 단지 기록되기만 하지 않았고 말로 전달되었다. 성경은 우리가 귀로 확실히 들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우리가 이것을 깨닫는다면, 어떤 경외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펴며, 그 율례를 어떤 열성으로 상고할 것인가! 성경을 읽고 명상하는 것은 무한하신 분께 듣는 것으로 간주된다.

사단이 그의 생각을 우리 마음속에 밀어 넣고자 할 때에 우리가 주께서 말씀하신 것을 생각하면 지존자의 은밀한 피난처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우리의 거룩한 모본되신 분이 지닌 품성의 분명한 점을 거의 연구하지 않기 때문에 그분을 닮는 데 실패한다. 많은 이들이 바쁜 계획 속에 갇혀 있고 항상 분주함으로 존귀한 예수님과 가까운 친구로 지낼 시간과 장소를 얻지 못한다. 그들은 “이것이 주님의 길입니까?”라고 물으면서 모든 생각과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 그들이 정작 그리했다면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였을 것이다.

정부의 권위에 대한 우리의 자세

394 어떤 무리의 형제들이 정부와 법률에 반대하는 것으로 해석될 많은 것들을 말하고 저술하였다. 스스로를 오해받는 입장에 두는 것은 실수이다. 위정자들이 하는 일에 대해 항상 흠을 잡는 일은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개인이나 기관을 공격하는 것이 우리의 사업이 아니다. 우리는 권세 잡은 자들을 반대하는 입장에 있다고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의 싸움은 공격적이어야 함에는 틀린 바 없으나 우리의 무기는 분명히 “주께서 말씀하신” 것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의 사업은 하나님의 그 큰 날에 한 백성이 설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을 갖지 않은 자들 사이에서 논쟁이나 반대를 일으킬 소지가 있는 길로 우리가 접어들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반란을 일으키려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방식으로 일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모든 출판물과 말에 있어서 문맥과 상관없이 떼어 내면 법률과 질서를 반대하는 것처럼 오해될 표현들을 삭제해야 한다. 모든 것은 신중히 하여 우리가 나라와 그 법률에 불충성할 것을 격려한다는 느낌을 제공할 어떤 내용도 기록에 남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권세들을 무시하라는 요구를 받지 않았다. 우리가 성경의 진리를 옹호하기 때문에 반역자로 취급받을 때가 올 것이다. 그러나 적개심과 분란을 쓸데없이 조장하여 이 때가 속히 오도록 하지 말 것이다.

우리 형제들이 부주의하게 말하거나 저술한 내용 속에 나오는 조심성 없는 표현들을 우리의 원수들이 우리를 정죄하는 데 사용할 때가 올 것이다. 이런 말을 한 사람들만 정죄하는 데 사용될 뿐만 아니라 재림교도 전체를 책잡는 데 사용될 것이다. 395 우리를 고소하는 자들은 모일 모시에 우리의 책임 있는 모 인사가 이 정부의 행정자들에 반대하여 이러저러한 말을 하였다고 할 것이다. 많은 이들이 우리의 대적들의 논거를 위하여 수많은 말들이 기억되고 간직된 것을 볼 때 소스라치게 놀랄 것이다. 많은 이들은 그들의 뜻하지 않는 대로 그들의 말이 곡해되는 것을 들으면서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일꾼들은 언제나 어디서나 조심스럽게 말해야 한다. 부주의한 표현으로 사람의 영혼을 시험할 큰 위기의 때가 오기 전에 환난의 때를 자초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권세와 세력에 대하여 직접적인 비난을 적게 할수록 미국에서나 외국에서 더 큰 일을 성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외국들도 미국의 모본을 따를 것이다. 미국이 선두에 나서고 온 세상에 흩어진 우리의 백성에게 같은 위기가 닥쳐올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찬미하고 높이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의 진리는 드러나야 한다. 우리는 성경을 삶의 기준으로 들어 올려야 한다. 모든 겸손함과 은혜의 정신과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는 주 하나님이 천지의 창조자이시며 제칠일은 주의 안식일임을 사람들 앞에 제시해야 한다.

주의 이름으로 우리는 그분의 깃발을 펄럭이며, 그분의 말씀을 옹호하여 전진해야 한다. 권세자들이 이 사업을 못하게 하며,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선포하지 못하게 막으면 그 때에는 사도들처럼 다음과 같이 말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행 4:19, 20).

396 진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전파되어야 한다. 이것만이 우리의 기별을 효과 있게 할 수 있다.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만 우리는 승리를 얻을 수 있고 그것을 유지할 수 있다. 인간 대리자는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일해야 한다. 일꾼들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보호를 받아야 한다. 그들은 거룩한 지혜를 가져서 우리의 길을 막도록 사람들을 자극하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말아야 한다. 영적 진리를 교육함으로 우리는 세상의 고위 공직자들 앞에서 우리의 신앙의 이유에 대하여 온유함과 두려움으로 말할 수 있는 한 백성을 준비시켜야 한다.

우리는 진리를 단순하게 제시하며 실제적 경건을 옹호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일을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해야 한다. 그러한 정신을 나타냄으로 우리의 영혼에 최선의 감화를 끼칠 수 있으며, 남들에게 확신을 주는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주님께 그분의 대리자들을 통하여 일하실 기회를 드려라. 그대들이 스스로 미래의 계획을 세울 수 있다고 생각지 말라. 하나님을 조타수로 서 계신 분으로 항상 인정하라. 그분께서는 적절한 수단을 통하여 역사하시며 그분의 백성을 유지하시고 증가시키시며 세우실 것이다.

주의 대리자들은 성화된 열성, 즉 그분의-온전한 지배를 받는 열성을 가져야 한다. 폭풍우의 시간이 곧 닥쳐올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때가 속히 오도록 재촉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환난의 때가 와서 오직 그분의 소유가 되고자 하는 모든 자들을 그분께로 몰고 갈 것이다. 시련의 도가니 속에서 시험되고 증명될 때까지 우리는 자신들을 알지 못한다. 남들의 품성을 재어 본다든지 셋째 천사의 기별의 빛을 아직 받지 못한 자들을 정죄한다든지 하는 것은 우리에게 합당한 일이 아니다.

우리가 믿는 진리가 영혼을 거룩케 하며 품성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깨닫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계속적으로 맹렬히 비판해서는 안 된다. 397 이런 식으로 했다가는 우리가 믿는 교리가 기독교적 교리가 아니라는 결론을 그들이 내리게 될 것인데 왜냐하면 그 교리가 우리를 친절하고 예모 있고 존경할 만한 사람들이 되도록 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독교 정신은 질타하는 비난과 정죄 속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 백성 중 많은 이들이 남들 위에 군림하며 동료 인간을 압제하려는 위험에 빠져 있다. 책임을 맡은 자들이 성화되지 않는 의지의 힘만 인정할 위험이 있다. 어떤 이들은 이 능력을 무분별하게 사용하여 주께서 사용하시는 사람들에게 큰 좌절을 안겨 준다. 세상의 가장 큰 저주 중 하나는(교회 안과 사회의 모든 곳에서 나타나는) 최상권에 대한 사랑이다. 사람들은 힘과 인기를 얻고자 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다. 슬프고도 부끄러운 것은 이런 정신이 안식일 준수자들 사이에도 엄연히 활개를 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적인 성공은 단지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온유와 겸손을 배운 자들에게만 이르러 온다.

세상은 우리가 보이는 대로 우리를 판단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대표하고자 하는 자들은 변덕스런 품성의 특질을 나타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온전히 앞에 나서기 전에 성령께서 우리 위에 부어졌는지를 알아보자. 만일 이렇게 되었다면 우리는 결정적인 기별을 전할 것이며, 다른 어떤 이들이 행한 것보다 정죄하는 성향이 훨씬 경감된 상태로 기별이 전파될 것이다. 그리고 믿는 모든 자들이 우리의 반대자들의 구원을 위하여 훨씬 더 열성을 낼 것이다. 공직자들과 정부를 정죄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직접 하시도록 하라. 우리는 충성된 파수꾼으로서 온유와 사랑의 정신으로 예수 안에 있는 진리의 원칙들을 옹호하도록 하자.

398 형제간의 사랑GG 계명을 지키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할 특성들은 곧 인내와 오래 참음과 화평과 사랑이다. 사랑이 부족할 때에 만회할 수 없는 손실을 입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업에 관련된 후에라도 영혼들이 진리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이다. 영향력을 가진 중요한 위치에 있는 우리 형제들은 성령에 의하여 주어진 사도 바울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롬 15:1-3). 다른 곳에서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 6:1, 2).

회복의 사업이 우리의 짐이 되어야 함을 기억해야 한다. 이 일은 교만하고, 사무적이며, 교묘한 방법으로 수행되어서는 안 된다. “내가 세력이 있으니 그 힘을 써서 도와주겠다”는 식으로 말하지 말며, 잘못을 한 당사자에게 비난을 퍼붓지 말라. 회복의 일을 “온유한 정신으로 하며 자신을 살펴서 자기도 유혹을 받지 않게 하라.” 우리 형제들을 위해서 해야 할 바 우리 앞에 놓인 일은 그들을 한 편으로 제쳐놓는다거나 그들에게 “당신이 나를 실망시켰기 때문에 당신을 도와주지 않겠소”라고 말하면서 그들을 실망과 좌절 속으로 몰아넣지 않는 것이다. 자신을 지혜와 힘이 충만한 자로 드높이며, 억압받고 곤란에 빠져 도움을 구하는 자의 기세를 꺾는 자는, 바리새인의 정신을 나타내는 것이며 자신이 구성한 위엄의 옷으로 자기를 치장하는 것이다. 399 그런 정신 속에서 그는 그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음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자신의 삶이 칭찬할 만하며 자신을 유혹 받지 않을 정도로 튼튼하다고 상상한다. 그러나 “만일 누가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3절). 그 자신은 항상 위험 속에 있다. 자기 형제의 곤궁함을 모른 체하는 자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그의 형제가 경험한 시련과 슬픔의 동일한 입장에 놓이게 될 것이며, 쓰디쓴 경험을 통하여 그 자신 역시 그가 돕기를 거절했던 그 고통당하는 형제와 다를 바 없이 무력하고 곤궁한 자임이 입증될 것이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7절).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1-5).

우리가 그리스도께 더 가까워지고, 우리가 더욱 온유하며 겸손하며 자기를 신뢰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우리는 그리스도를 더욱 굳게 잡을 것이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인들을 회심시킬 우리의 능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왜냐하면 영혼을 감동시키는 것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늘의 존재들이 인간 중개자와 협력하여 마음에 진리를 감동시킨다.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 우리는 남들에게 영향력을 구사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하신 분의 임재 때문에 가능하다. 사단을 극복하는 우리의 힘은 우리 안에서 그 선하신 뜻대로 결정하시고 이루시는 그리스도의 역사의 결과이다.

400 현대 진리를 부드럽게 제시함GG 진리는 거룩한 기지와 부드러움과 예의 바름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그것은 부드러워지고 동정적으로 된 마음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예후에게 발생했듯이 자아가 일어나지 않도록, 그리고 시들은 식물들을 소생시키는 이슬이나 가랑비와 같지 않은 온당치 못한 격한 말들을 내뱉지 않도록, 하나님과 밀접한 교통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우리에게 있다. 영혼을 구원하고자 노력할 때에 우리의 말이 부드럽도록 하라. 거룩한 원천으로부터 지혜를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지혜가 되실 것이다. 우리는 사방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 우리는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한다. 우리 안에 있는 소망의 이유를 온유와 두려움으로 말할 채비를 항상 갖추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한 영혼에게라도 잘못된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들어올려야 한다. 그리하여 기회가 올 때에, 때에 맞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만일 하나님의 사업을 이런 식으로 수행하면 하나님의 영이 그대의 조력자가 될 것이다. 성령께서 영혼에 대한 사랑으로 발해진 말씀을 적용하실 것이다. 그리스도의 은혜의 감화 아래서 전해진 진리는 살리는 힘을 갖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선 마음에 이르는 것이다. 진리를 말하라. 그리고 그분께서 개혁의 능력과 원칙을 수행하시도록 하라. 반대자들이 말한 것을 언급하지 말고 진리만이 개진되도록 하라. 진리는 아픈 곳을 찌를 수 있다. 그 모든 감명으로, 말씀을 명백히 드러내라.

시련이 우리 주위를 에워쌀 때에 우리 진중에 분리와 연합이 나타날 것이다. 현재 무기를 들고 싸울 채비가 된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진짜 시련의 때가 되면 그들이 굳센 반석 위에 집을 짓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게 될 것이며, 그들은 시험에 굴복할 것이다. 위대한 빛과 귀중한 특권을 가졌으나 그것들을 증대하지 아니한 자들은 이 핑계 저 핑계로 우리 진영에서부터 떠날 것이다. 401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을 받지 않음으로 그들은 원수의 속임에 빠질 것이며 그들은 속이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 급기야는 믿음에서 떠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핍박의 폭풍이 우리에게 엄습해 올 때에 참된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들을 것이다. 잃은 자를 구원하기 위한 자아 부인의 노력이 기울여질 것이며, 우리에서 떠나간 많은 이들이 위대한 목자를 따르고자 돌아올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함께 모여서 원수와 맞서는 일에 연합 전선을 구축할 것이다. 공동으로 당한 위험을 적시하고, 우열을 다투는 일은 그칠 것이다. 누가 가장 크냐는 싸움이 없어질 것이다. 참된 신자 중 아무도 “나는 바울에게 속하였고, 나는 아볼로에게 속하였고, 나는 게바에게 속하였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사람은 제각기 이렇게 간증할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께 붙었으며 나의 구주인 그분 안에서 기뻐한다.”

그리하여 진리는 실생활 속에 나타날 것이며, 수치와 죽음을 당하시기 직전에 발하신 그리스도의 기도는 응답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과 우리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와 함께 지냈으며 그분께로부터 배운 사실을 세상에 증거할 것이다. 그러면 셋째 천사의 기별은 확장되어 큰 외침이 될 것이며 온 세상은 여호와의 영광으로 환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확신들은 매일의 겸손하며 진실된 기도와 말씀으로 보강되어야 한다. 우리 각자가 개성이 있고 우리의 깨달은 바들을 굳게 잡아야 하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하나님의 진리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 안에서 붙들어야 한다. 우리가 그리하지 않으면, 그것들은 우리의 손에서 곡해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최고

402 하나님의 백성은 인간 정부를 하나님이 정하신 제도로 인정하며 그것에 대한 순종을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 신성한 의무라고 가르칠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주장이 하나님의 주장과 상치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인간의 법률보다 위에 있는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이 교회나 국가가 말하였다는 것 때문에 제외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면류관이 세상의 유력자들의 면류관보다 높이 들려야 한다.

우리가 지금 고수해야 하는 원칙은 종교개혁 시대에 복음의 옹호자들에게 의해 유지되었던 것과 같은 것이다. 1529년 스파이어스 의회에 군주들이 모였을 때에 세상의 희망은 묵살될 것처럼 보였다. 이 회집에서 종교 자유를 제한하며 개혁 교리들이 더이상 파급되지 못하게 막는 황제의 칙서가 제시되었다. 독일의 제후들이 그 칙서를 받아들일 것인가? 아직도 여전히 흑암 속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의 빛은 가려져야 하는가? 세계를 위한 중대한 사활의 문제가 현안이었다. 개혁 신앙을 받아들인 자들이 함께 모여서 만장 일치로 다음과 같은 결의를 채택하였다. “그 칙령을 거부합시다. 양심의 문제에 있어서 다수결은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이 종교 개혁자들이 높이 들었던 진리와 종교 자유의 깃발이 마지막 투쟁을 위해서 우리에게 위임되었다. 이 위대한 선물의 책임이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의 지식으로 축복한 사람들에게 놓여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최고의 권위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그 진리들을 몸소 수용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연구하여 그 진리들을 찾아낼 때에야 비로소 그 진가를 알아볼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삶의 인도자로 삼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다음과 같은 기도가 응답될 것이다. 403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언행 속에서 그 진리를 인정하는 것이 우리 믿음의 고백이다. 그렇게 할 때에만 남들도 우리가 성경을 믿는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우리에게 프로테스탄트라는 이름을 전해 준 개혁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사 세상에 복음을 나눠 주라 하신 것을 깨달았으며, 이 일을 행할 때에 그들은 재산과 자유와 생명까지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 대쟁투의 마지막 싸움에 임하는 우리들도 개혁자들이 그들의 맡은 바에 충성했던 것처럼 맡은 일에 충성하는가?

핍박과 죽음을 무릅쓰고 그 때를 위한 진리는 원근 각지에 퍼졌다. 하나님의 말씀이 백성에게 전해졌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빈부 귀천을 막론하고, 학식 유무를 막론하고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진리를 열렬히 상고하여 빛을 받은 사람들이 뒤이어 다시 기별자들이 되었다. 그 당시에 진리는 인쇄물을 통하여 백성들에게 전파되었다. 루터의 필치는 힘이 있었다. 그의 저작은 널리 퍼져서 세상을 흔들어 놓았다. 우리는 그같은 수단들을 사용할 수 있다. 그 시설은 수백 배나 뛰어나다. 이 시대를 위한 진리를 개진하는 성경들과 수많은 언어로 된 출판물들이 우리 수중에 있으며 온 세상에 속히 전달될 수 있다. 우리는 인류에게 하나님의 마지막 기별을 전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성경을 연구하는 진지함은 어떠해야 하며, 빛을 전하는 열의는 어떠해야 할까!

최후의 위기를 위한 준비

404 큰 위기가 우리 앞에 있다. 그 시련과 유혹에 대항하려면, 그 의무를 수행하려면 끈질긴 믿음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영광스럽게 승리할 수 있다. 깨어 기도하며 믿음을 지키는 영혼은 하나라도 원수에게 잡히지 않을 것이다.

우리 앞에 있는 시련의 때에 우리의 안전에 대한 하나님의 보장은 그분의 인내의 말씀을 지킨 자들에게 주어질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신실한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간 숨을지어다”(사 26:20). 그분의 은혜를 거절한 자들에게 그렇게 무서운 유다의 사자이신 그분은 순종하고 신실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실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자들에게 진노와 공포의 의미를 갖는 구름기둥은 그분의 계명을 지킨 자들에게는 빛과 자비와 구원이다. 반역자들을 치는 일에 강한 팔은 충성된 자들을 구원하는 강한 팔이 된다. 신실한 모든 자들이 분명히 모여들게 될 것이다.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 24:31).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가 주어진 형제들이여 이 세상 역사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대들은 무슨 역할을 할 것인가? 그대들은 이런 엄숙한 실제 상황을 알고 있는가? 그대들은 하늘과 땅에서 계속되고 있는 준비의 큰 역사를 깨닫고 있는가? 빛을 받은 모든 자들, 예언을 읽고 들은 자들은 그 가운데 기록한 것에 귀를 기울이라. “이는 때가 가까움이라.” 이제는 아무도 더이상 세상에 비극을 가져온 죄를 달래며 살지 말라. 더이상 무기력과 둔한 무관심 속에 살지 말라. 405 그대 영혼의 운명을 불확실한 곳에 걸지 말라. 그대가 완전히 주님 편에 섰는지를 확인하라. “누가 능히 서리요?”라는 질문이 신실한 마음과 떨리는 입술에서 나오게 하라. 은혜의 기간의 이 귀중한 시간에 그대의 품성 건설에 최고의 자재를 투입하였는가? 그대는 자신의 영혼에서 모든 더러움을 제거해 왔는가? 그대는 빛을 순종하였는가? 그대의 일이 신앙 고백과 일치하였는가?

부드럽게 하며, 굴복시키는 하나님의 은혜의 영향이 그대에게 역사하였는가? 그대는 느낄 수 있는 마음과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고 있는가? 영원한 진리의 선포가 지상의 나라들에 관하여 이루어졌는데, 그것이 허지로 돌아갔는가? 그들은 정죄 아래 있으며,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영원한 결과를 낳는 이 중요한 날에 중대한 진리의 보관자로 선택된 백성은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야 한다. 그들의 죄 중에 망해 가는 나라들을 밝히기 위하여 그대는 빛을 발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계명을 짓밟고 있는 자들 앞에서 그대가 그 계명을 변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부분적이며, 형식적인 신자로 살다가 부족함이 드러나 영생을 잃을 수도 있다. 성경의 어떤 명령들을 순종하며 그리스도인으로 간주되다가 그리스도인 품성의 필수적인 자격이 미비하여 멸망하게 되는 일도 가능하다. 하나님께서 주신 경고를 소홀히 한다든지, 혹은 무관심하게 취급하며, 죄를 간직한다든지, 죄에 대해 핑계를 댄다면 그대는 자신의 영혼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이다. 그대는 저울에 달려서 부족하다는 판정을 받게 될 것이다. 은혜, 평화, 용서 등이 영원히 그대를 떠날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대의 기도와 간구가 미치지 못할 곳으로 떠나실 것이다. 아직 자비가 머무는 동안, 아직 구주께서 중보하시는 동안 영원을 위한 일을 철저히 이루자.

406 그리스도께서 세상으로 돌아오실 날은 오래 지체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모든 기별의 요지가 되도록 하라.

그리스도의 재 강림의 복된 소망은 그 엄숙한 상황들과 함께 자주 백성들에게 제시되어야 한다. 신속히 오실 우리 주를 기다리는 것은 우리로 세상 것들을 공허하고 허무한 것으로 여기게 인도할 것이다.

아마겟돈 전쟁이 곧 일어날 것이다. 그의 옷에 만왕의 왕, 만주의 주라는 이름을 쓴 분이 곧 하늘의 군대를 인도하실 것이다.

지금은 선지자 다니엘이 “정한 때는 오랜 후”(단 10:1 흠정역)라고 말할 것처럼 하나님의 종들이 말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위한 증인들이 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하여 일해야 할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의 편협하고 이기적인 계획을 제쳐놓고 우리에게 가장 큰 일, 가장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 일을 함에 있어서 우리는 첫째, 둘째, 셋째 천사의 기별들을 전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의 영광으로 세상을 환하게 할 하늘로부터 오는 천사의 나타남을 위해 준비될 것이다.

주의 날이 도적과 같이 임하고 있다. 그러나 소위 위대한 사람들과 현인들은 그리스도의 오심의 징조와 세상 끝에 관하여 알지 못한다. 범죄가 만연하며 많은 이들의 사랑은 냉담하게 되었다.

현재 셀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영생이나 영멸의 결정을 내리고 있다. 407 회계 사무실에서 돈 세는 일에 푹 빠져 있는 사람, 도박장에서 쾌락을 찾는 사람, 부패한 식욕을 즐기는 사람, 오락을 즐기는 사람, 극장과 댄스홀에 자주 가는 사람들은 영원을 그들의 생각 속에서 몰아내고 있다. 그들의 삶의 모든 관심사는 우리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이다. 그들은 하늘을 향해 나가는 대열 속에 들어 있지 않다. 그들은 대 배도자에 의해 인도되고 있으며, 그와 함께 망하게 될 것이다.

영원으로 신속히 움직이는 각 순간의 중요성을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며 하나님의 큰 날에 설 준비를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불충성한 청지기가 될 것이다. 파수꾼은 밤의 시간을 알아야 한다. 이 시대를 위한 진리를 믿는 사람들이 반드시 깨달아야 하는 모든 것을 엄숙함이 감싸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날을 염두에 두고 행동해야 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세상에 임하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큰 날을 위하여 준비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시간은 귀하다. 미래를, 불멸을 위하여 준비해야 하는 은혜의 날이 몇 날 남지 못하였다. 우리는 시간을 아무렇게나 소모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의 겉만 핥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땅에 계셨을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원수의 영역에 복음이 들어가기만 하면 원수의 큰 군대의 맹렬한 공격을 맞게 된다. 우리가 당하는 이 투쟁은 유사 이래로 가장 혹심한 것이다. 그러나 비록 사단이 무장하여 강한 사람으로 묘사되었지만, 그의 패배는 완전할 것이며, 충성보다는 배도를 택함으로 그와 연합하는 모든 자들은 그와 함께 망할 것이다.

408 억제하시는 하나님의 영이 지금 세상으로부터 거두어지고 있다. 허리케인, 폭풍, 태풍, 화재, 홍수, 재난 등이 꼬리를 물고 신속히 일어난다. 과학은 이 모든 것을 설명하고자 애쓴다. 하나님의 아들의 오심이 가까움을 알리는, 우리 주위의 허다한 징조들은 참된 원인이 아닌 다른 원인에 의한 것으로 이해된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 치기까지 네 바람이 불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파수꾼 천사들을 분변하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천사들에게 바람을 놓으라고 명령하시면 글로 묘사할 수 없는 요란한 장면이 펼쳐질 것이다.

이런 때에 대해 무관심한 자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경고는 다음과 같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 3:16). 입 밖으로 토하겠다는 표현은 그분께서 그대들의 기도나 사랑의 표현을 하나님께 바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분께서 그대가 그분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나 그대의 영적인 일을 인정하실 수 없다. 그분께서 그대의 종교 활동들에 은혜를 주시리라는 요구를 아버지께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휘장이 걷힐 수만 있었다면, 운명지어진 세계에 임할 심판과 하나님의 목적들을 그대가 알아볼 수만 있었다면 그리고 자신의 태도를 볼 수만 있었다면 그대는 자신의 영혼과 동료 인간들의 영혼들로 인해 떨게 되었을 것이다. 가슴을 찢는 고뇌의 열렬한 기도가 하늘로 올라가게 되었을 것이다. 그대는 그대의 영적 눈먼 상태와 타락의 모습을 고백하면서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울었을 것이다.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고하고 백성을 모아 그 회를 거룩케 하고…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골방에서 나오게 하고 여호와께 시중 드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으로 욕되게…하지 못하게 하옵소서”(욜 2:15-17).

409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여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끼치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지 누가 알겠느냐”(12-14).

이스라엘의 배도와 쓰디쓴 보응 후에 회개하는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의 기별은 다음과 같다. “그러므로 내가 저를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거기서 비로소 저의 포도원을 저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저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호 2:14, 15).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16-20절).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욜 2:27).

410 세상의 끝이 우리에게 임하였는데 경고와 권고와 약속 이 모든 것은 우리를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살전 5:6).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 21:34).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막 14:38). 가만히 접근하는 원수를 경계하라. 옛 습관들과 육신의 성향들이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경계하라. 그들을 밀어내라. 그리고 경계하라. 사상을 조심하고, 계획에 조심하여 그것들이 자아 중심적인 것이 되지 않도록 하라.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영혼들을 잘 돌보라. 그들에게 선을 행할 기회들을 잘 살피라.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의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막 13:36) 깨어 있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