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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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제 31 호 - 교회증언

-1장 -

장막회 설교

9 1881년 9월 25일 콜로라도 보울더

미시간 장막회에 참석할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에게.*

나는 이 계절에 열렸던 다른 어떤 집회보다 이 집회에 더 깊은 흥미를 느낍니다. 미시간은 마땅히 했어야 할 활동을 해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중요한 기관들을 여러분에게 세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는 전지역에서 다른 어떤 합회보다 더 큰 책임이 지워져 있습니다. 큰 빛이 여러분에게 주어졌지만 그 빛에 반응을 나타낸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럴지라도 나의 마음은 미시간에 있는 우리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향하여 부드러운 열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자께서 미구에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는 경고는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기다리고 깨어 있는 자세를 떠났습니다. 생활가운데 나타낸 이기적이요 세속적인 정신은, “내 주인이 더디 오리라”는 마음을 보여 줍니다. 우리의 구주께서는 그런 모든 사람들이 불성실한 종이므로 위선자들과 불신자들이 받을 보응을 받을 것이라고 선언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너무도 큰 흑암에 싸여 있기 때문에 공공연하게 그들의 불신을 나타냅니다.

우리의 목사들은 그들의 모든 의무를 다하고 있지 않습니다. 백성들의 주의를, 너무도 가까이 박두해 있는 중요한 사건으로 돌이켜야 합니다. 시대의 징조들이 그들의 마음에 생생하게 간직되어야 합니다. 다니엘과 요한의 예언적 계시는 도덕적 흑암과 타락의 기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10 그러나 마지막 때,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에 이상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할 것입니다. 예언된 징조들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면 기다리고 깨어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구속이 가까웠기 때문에 위를 쳐다보고 머리를 들라는 명령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마땅하리만큼 강조되고 있을 때,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는 기롱하는 자들이 나타나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벧후 3:4). 그러나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살전 5:3, 4). 모든 사람이 흔들거리는 육적 안전의 요람에서 잠들어 있지는 않을 것임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시대의 징조를 식별하는 성실한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현대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수의 사람들이 행동으로써 그들의 믿음을 부인하고 있는 동안, 끝까지 견딜 얼마간의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기적인 정신, 세상의 관습과 일치되는 동일한 정신이, 노아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세상 일에 열심히 종사함으로 그들의 공언이 거짓임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그들의 은혜의 시기의 마지막 순간이 올 때까지 씨뿌리고 집짓고, 사고 팔고,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갈 것입니다. 이것이 많은 수의 우리 백성들의 상태입니다. 불법이 성함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지고 있습니다. 불과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너희는 다 …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살전 5:5)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영성이 크게 부족한 것을 볼 때 나의 심령은 무겁습니다. 세상의 유행과 관습, 교만, 오락을 좋아하고 과시를 즐기는 마음, 의복, 가옥, 토지에 있어서의 낭비와 방종 이런 일들은 하나님의 재물을 도둑질하는 것이며, 진리의 빛을 세상에 전하기 위하여 사용되어야 할 재물을 자아를 만족시키는 데로 돌리고 있는 셈입니다. 이기적 목적이 첫째로 고려되고 있습니다. 11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활동에 자격을 갖추어 주는 사업은 세속적 사업만큼 그렇게 중요한 비중으로 고려되고 있지 않습니다. 영혼들은 지식의 부족으로 멸망하고 있습니다. 현대 진리의 빛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료 인간들에게 임박한 심판에 대하여 경고하는 활동적인 열심이 없는 자들은 그들의 의무 태만으로 하나님께 문책을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영혼들의 피가 그들의 옷에 묻은 것입니다.

옛 기수들은 쇠약해 가며 쓰러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하나님께 대한 책임을 느끼도록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사업에 활동하도록 조금만 권유를 받으면 그들은 가장 적은 수고와 책임완수로써 가장 큰 보상이 약속되어 있는 일터로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는 한 백성으로서 종말에 가까이 이르르고 있지만 영성이 향상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사업의 위대함과 중요함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계획은 보다 넓고 포괄적인 것이 되지못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위하여 발전되어 가는 사업을 추진시키도록 준비된 남녀들이 슬프게도 부족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도록 요구하시는 사업의 20분의 1도 못하고 있습니다. 사업의 단순함에서 떠나서, 그것을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고, 실천하기 어렵게 만들어 왔습니다. 하나님의 판단과 지혜보다는 인간의 판단과 지혜가 너무도 흔히 지도하고 다스려 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회계해야만 할 자로서 영혼들을 지켜 볼 시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해야 할 중요한 사업을 등한히 한 데 대하여 무슨 변명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대학에서는 젊은이들을 하나님을 위하여 활동할 준비를 갖출 수 있을 정도로 세심하고 철저한 방법으로 교육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그 기관을 설립하게 된 목적입니다. 해외에 있는 우리의 형제들은 대학이 그 본래의 의도에서 벗어나지 않고 같은 종류의 다른 기관들을 따라 꼴 지워지지 않도록 대학을 유지할 뿐 아니라 지키기 위하여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신앙적 관심은 끊임없이 수호되어야 합니다. 시간은 종말을 향하여 접근해 가고 있습니다. 12 영원은 가까웠습니다. 큰 추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업을 준비하기 위하여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대학에 있는 지도적 인물들은 경건하고 헌신적인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그들은 성경을 생애의 법칙과 지침으로 삼고,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벧후 1:19)은 분명한 예언의 말씀에 유의해야 합니다. 우리들 중 아무도 한 순간도 방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마 24:44)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을 행하는 일에 끊임없이 성실한 자들만이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속하지 않은 많은 것들이 우리들 사이에 존재하도록 허용되어 있습니다. 헌신하지 못한 목사들과 교수들과 교사들은, 사단이 그의 깃발을 바로 우리의 요새에 꽂도록 도와줍니다.

우리 대학의 목적이 거듭거듭 천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이 세상의 신에 의하여 너무도 눈이 멀어 있기 때문에 그 참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젊은이들이 그 곳에서 당신께로 이끌림을 받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백성들의 교훈과 교화를 위하여 다함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의 보고에서 새것과 옛 것을 끌어낼 준비를 갖추도록 의도하셨습니다. 교사들과 교수들은 이 시대의 위험과 하나님의 날에 서도록 한 백성을 준비시키기 위하여 반드시 성취되어야 할 사업을 생생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교사들 중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모으기는커녕 흩어 버리는 일을 해 왔습니다. 그들은 스스로의 모본을 통하여 그들의 책임 아래 맡겨진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 사람들의 풍습과 습관을 따르게 합니다. 그들은 학생들이 유행적이고 오락을 좋아하는 불신자들과 손을 잡게 하고, 그들을 세상을 향하여 나가게 하고 그리스도께로부터는 떠나가게 합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주어진 하늘의 경고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에게 주어진 개인적 호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렇게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일에 대하여 분노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의 충성을 시험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범하는 실수 중 많은 것들은, 그들의 이기심과 인정을 받으려는 그들의 욕망과 인기를 얻고자 하는 그들의 갈망의 결과입니다. 13 이와 같은 방법으로 눈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들이 빛의 요소라기보다는 어두움의 요소라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후 6:17, 18). 이것들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게 해주는 조건들입니다. 즉 세상과 분리되고, 미혹시키고, 황홀하게 하고, 올무에 걸리게 하는 이런 것들을 버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 사람들과 연합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후 6:14). 이것은 결혼 관계에 대한 언급만은 아닙니다. 하나님과 진리에 대한 사랑이 없는 자들과의 신뢰와 협동의 어떤 친밀한 관계도 올무가 된다는 뜻입니다.

사도는 계속해서 말합니다.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되리라 하셨느니라”(고후 6:14-16). 이런 사실을 생각하면서, 그는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으라.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라고 부르짖습니다(고후 6:17, 7:1).

우리가 조건에 응하기만 하면 주님께서는 당신의 약속을 성취시키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결코 등한히 해서는 안 될 한 사업이 우리에게 맡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우리는 그 사업을 올바로 수행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앞을 향하여, 또한 위를 향하여 전진할 수 있고, 은혜 안에서, 진리의 지식 안에서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빛의 자녀요, 낮의 자녀들은 불법의 일꾼들을 두르고 있는 밤의 그늘과 흑암을 그들 주위에 모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14 오히려 그들은 빛을 지닌 자들로서 그들에게 맡겨진 의무의 위치에 성실하게 서서, 흑암 속에 있는 자들에게 비추어 주기 위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빛을 모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그들의 성실성을 유지하고, 불경건한 자들의 관습을 “만지지 말라”고 즉, 모방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어 그들을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분의 아름다운 덕을 나타낼 것입니다(벧전 2:9). 이 빛은 희미해지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더 밝아져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기수(旗手)들은 의무에서 결코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그들에게는 요새를 빼앗기 위하여 기다리며 노리고 있는 방심하지 않는 원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파수꾼이라고 공언하는 어떤 사람들은 원수를 그들의 요새는 안으로 끌어들여 그들과 섞이고, 남의 호감을 사기 위하여 애쓰는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들과 사단의 자녀들과를 구분하는 특성을 파괴시켜 왔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대학이 다른 배움의 기관을 본받도록 결코 의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신앙적 요소가 지배적 세력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불신자들이 이 영향을 받고자 한다면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흑암 속에 있는 자들이 빛으로 나오는 길을 택한다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대로된 것 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계를 해이하게 하고, 학생들을 확보하기 위하여 세속적 요소가 주도권을 갖도록 하는 일은 하나님의 뜻에 배치되는 일입니다. 우리 대학의 힘은 신앙적 요소가 주도권을 갖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교사들과 교수들이 세속적이요 오락을 좋아하는 부류의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신앙적 원칙을 희생할 때, 그들은 의무에 불성실한 것으로 간주되어 해임당해야 합니다.

“주께서 가까이 이르렀으니 너희도 예비하라”는, 여러 해 동안 우리의 귀에 들려 온 감동적인 진리는 우리가 그 기별을 처음 들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진리입니다.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들의 가장 소중한 관심과 회개하지 않는 불경한 세상의 운명이 이생과 내세에 걸쳐 여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 17). 15 그 때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나타나셔서,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살후 1:8)실 것입니다.

이 중대한 사건이 다가오고 있지만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은 잠자고 있습니다. 그들이 세상과의 친교를 맺고 있는 현 상태에 머물러 있는다면, 그들은 마음 속으로 “주인이 더디 오리라”(마 24:48)고 말하는 불성실한 종으로 분명히 헤아림을 받을 것입니다. 소망과 믿음으로 기다리고 있는 자들에게만 그리스도께서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나타나실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리의 이론은 간직하고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 속에 거하면, 그것이 생애를 지배할 것입니다. 믿음, 순결, 하나님의 뜻에의 일치는 거룩하게 하는 그 능력을 증거할 것입니다.

목사들의 책임

엄숙한 책임이 파수꾼들에게 지워져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하여 참으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계 1:3). 에스겔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16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고하여 이르라 가령 내가 칼을 한 땅에 임하게 한다 하자 그 땅 백성이 자기 중에 하나를 택하여 파수꾼을 삼은 그 사람이 칼이 그 땅에 임함을 보고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하되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비를 하지 아니하므로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 피가 자기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그가 경비를 하였던들 자기 생명을 보전하였을 것이나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비를 하지 아니하였으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그러나 파수꾼이 칼이 임함을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치 아니하므로 그 중에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제한 바 되려니와 그 죄를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 인자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을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지어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정녕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 길에서 떠나게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그러나 너는 악인에게 경고하여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라고 하되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전하리라”(겔 33:1-9).

오늘날의 파수꾼의 책임은 선지자의 시대에 있어서 보다 훨씬 더 큽니다. 우리의 빛은 그들의 빛보다 더욱 밝고, 우리의 특권과 기회는 그들의 것보다 더욱 크기 때문입니다. 온유와 지혜를 다하여 모든 사람을 경고하고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 목사의 의무입니다. 그는 세상의 습관을 따를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종으로서,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을 위하여 싸워야 합니다. 사단은 영혼들에게 자유롭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그를 저지하는 요새를 무너뜨리고자 끊임없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목사들이 더 이상 영적인 마음을 갖지 않고, 그들이 하나님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지 않는 한 원수는 매우 유리한 위치에 놓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사단의 성공에 대한 책임을 파수꾼에게 물으십니다.

나는 이번에 우리의 장막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에게 경고의 음성을 높이고 싶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습니다. 나의 형제들이여, 목사들과 평신도들이여, 나는 그대들이 지금껏 일해 온 방식과는 다른 방법으로 일해야 할 것을 보았습니다. 교만과 질투와 자존심과 성화되지 못한 독립심은 그대들의 활동을 망가뜨려 왔습니다. 사람들이 사단에 의하여 칭찬과 높임을 받도록 스스로를 허용할 때, 주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또한 그들을 통하여 별로 하실 일이 없으십니다. 17 인자께서 인류를 높이기 위하여 내려가신 굴욕의 경지는 얼마나 측량할 수 없는지요! 목사들뿐 아니라 백성들까지, 하나님의 일꾼들은, 그들이 동료 인간의 유익을 바란다면 그리스도의 온유와 겸비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구주께서는 하나님으로서 인성을 취하셨을 때 자기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거기서 더 한층 내려가셨습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8). 내가 이런 사상을 여러분 앞에 제시하기에 적절한 언어를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휘장이 찢어져서 여러분이 여러분의 영적 빈곤의 원인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필요에 응하고자 준비되어 있는 은혜와 능력의 풍성함을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배부를 것입니다. 우리는 필요한 모든 축복을 위하여 하나님께 부르짖는 일에 더 큰 믿음을 발휘해야 합니다. 우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힘쓰고, 애써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마 11:28, 29)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 목사들, 백성들이여, 그대들이 이 교훈을 아직 배우지 못했다는 사실을 나는 그대들에게 증언하는 바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수치와 고뇌와 죽음을 겪으셨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보복 없이, 복수의 정신 없이 비난과 모욕을 참으십시오. 예수님은 우리의 속죄를 이루시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본이 되시기 위해서 돌아가셨습니다. 아, 놀라운 겸손! 헤아릴 수 없는 사랑! 십자가에 달리신 생명의 왕을 바라보고서 이기심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증오와 복수심을 품을 수 있을까요?

교만한 정신을 겸손하게 낮추십시오. 굳은 마음을 깨뜨리십시오. 자아를 더 이상 귀여워하고 동정하고 높이지 마십시오. 바라보십시오. 아, 우리의 죄 때문에 찔림을 받으신 그분을 바라보십시오. 우리를 건져내기 위하여 굴욕의 길로 한걸음씩 내려가신 분, 더 이상 낮출 수 없는 데까지 자신을 낮추신 분을 보십시오. 이 모든 것은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그처럼 무관심하고, 그처럼 냉랭하고, 그처럼 형식적이고. 그처럼 오만할까요?

18 우리들 중 누가 모본되시는 그분을 성실하게 따르고 있습니까? 우리들 중 누가 마음의 교만과 맞서서 계속 싸우고 있습니까? 우리들 중 누가 이기심이 더 이상 마음 속에 거하지 않고 생활에 나타나지 않을 때까지 훌륭한 열심으로 그것을 대항하여 싸우는 일을 스스로 지속해 왔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쳐다보고 심판에 가까이 접근해 가고 있음을 알려 주는 징조들이 성취되고 있는 것을 볼 때 우리에게 주어진 교훈들이 우리의 마음에 매우 강하게 새겨져서 지금보다 우리가 더욱 겸손하고 더욱 극기하고 서로간에 친절하고, 자아를 덜 돌보고, 비평하는 일이 줄어들고 서로의 짐을 더욱 즐겨 져 주게 되기를 하나님께 소원합니다.

나는 한 백성으로서의 우리가 믿음의 단순성에서, 또한 복음의 순결에서 떠나가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큰 위험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의 행동을 바꾸지 않으면 그들은 쓸모 없는 가지로서 참포도 나무에서 절단 당할 것입니다. 형제 자매들이여, 나는 우리가 영원한 세계의 문턱에 서 있음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매 발걸음마다 승리를 얻을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훌륭한 행동은 뿌려진 씨가 되어 영생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거둔 바 모든 성공은 우리를 향상의 사닥다리의 더 높은 발판에 놓아 주고 새로운 승리를 위한 영적 힘을 우리에게 줍니다. 모든 옳은 행동은 그 행동을 반복할 길을 예비해 줍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은혜의 시기를 마쳐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그 일에 준비가 이루어져 있습니까? 그들은 미래의 생애를 위한 적합성을 이루고 있습니까? 그들의 기록은 잃어버린 기회, 등한히 한 특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열매를 맺지 못한 이기적이요 세속적인 생애 등을 나타내지 않을까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도록 맡겨 주신 사업 중 너무도 많은 부분이 완수되지 않은 채 남아 있습니다. 우리들 주변에는 온통 경고를 받아야 할 영혼들뿐입니다. 그러나 너무도 흔히 이기적인 일에 시간을 빼앗기고, 경고를 받지 못하고 구원을 얻지 못한 채 무덤으로 간 영혼들에 대한 기록만 하나님께 올라가지는 않았는지요.

주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자비의 목적을 여전히 가지고 계십니다. 회개할 기회는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우리 주님의 나타나심을 먼 미래의 일로 간주해 온 여러분에게 이제 시간을 되찾는 일을 시작하라고 호소하는 바 입니다. 19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십시오. 이 집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은 경솔하고 경박한 대화와 무익하고 하찮은 독서를 버리고, 새해에는 부지런하고 경건하게 성경을 연구하여 여러분에게 있는 소망의 이유를 묻는 모든 사람에게 온유와 두려움으로 대답할 수 있게 하겠다고 하나님께 약속합시다. 여러분은 지체없이 하나님 앞에 마음을 낮추고, 여러분의 배교를 회개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사람도 내가 개인들이나 공중에게 증거한 어떤 솔직한 증언을 후회했거나 철회했다는 생각을 갖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가 만일 어딘가 실수를 범했다면, 그것은 죄를 더욱 결정적으로, 분명하게 책망하지 않은데 있습니다. 형제들 중 어떤 사람들은 나의 사업을 비판하는 책임을 자임하고 나섰으며, 나에게 잘못을 교정해 주는 더욱 쉬운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내가,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지 여러분의 방법을 취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내가 증언이나 책망을 통하여 말하거나 기록한 것은 지나치게 솔직하게 표현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할 일을 주셨음으로 나는 그것에 대하여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들 자신의 길을 택한 자들, 그들에게 주어진 솔직한 증언들에 대하여 반기를 들고 그들 가운데 있는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흔들고자 한 자들은 그 문제를 하나님과 해결해야 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철회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들의 생각에 맞추기 위하여, 또한 그들의 품성의 결함을 변호해 주기 위하여 아무것도 경감하지 않습니다. 나는 상황이 요구하는 그 만큼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말하도록 주신 책망의 힘을 어떻게 하든지 감소시키고자 하는 자들은, 그들이 한 일에 대하여 심판을 받고야 말 것입니다.

지나간 몇 주일 동안 죽음을 대면하여 서서 나는 거의 저 세상을 볼뻔했습니다. 만일 주님께서 나를 허약한 현상태에서 일으켜 주시고자 하신다면, 나는 하늘에서 오는 은혜와 능력을 힘입어서 그분께서 내게 말하도록 주시는 말씀을 성실하게 전하고자 합니다. 나의 온 생애를 통틀어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증언들을 전할 때, 어떤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거나 그들의 자기 기만을 깨뜨리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무서울 정도로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나의 기질과 반대되는 일입니다. 그것은 나에게 큰 고통이 되고 여러 날 잠을 못자게 합니다. 20 나를 타이르는 책임을 지고, 그들의 유한한 판단으로 그들에게 더욱 현명해 보이는 길을 제안하는 자들에게, 나는 여러분의 활동을 수락하지 않습니다라고 거듭 말하는 바입니다. 나를 하나님과 함께 있게 버려 두십시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나를 가르치게 해주십시오. 나는 주님께로부터 말씀을 받아 백성들에게 전할 것입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책망을 받아들여서 그들의 생애를 개혁할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변함없이 나의 의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걸어가고, 현세와 내세를 위하여 내게 맡겨진 사업을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주신 사업을 나의 형제들에게는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공적으로 책망하는 나의 방법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예리하고 비판적이고 엄격하게 되었다는 주장이 존재해 왔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들은 그 문제를 주님과 더불어 해결해야 합니다. 만일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지워 주지 않으신 책임을 진다면,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택한 겸손한 도구를 통하여 그들에게 거듭거듭 전해진 교훈, 즉 친절하고, 인내하고, 오래 참으라는 교훈을 무시한다면, 그 결과에 대하여 책임져야 할 사람은 그들뿐입니다. 슬픔으로 무거워진 마음을 안고 나는 나의 가장 사랑하는 친구들을 대상으로 하는 달갑지 않는 나의 의무를 수행해 왔습니다. 나는 심지어 나의 남편에 대해서까지도 책망을 보류함으로 내 자신을 기쁘게 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다른 사람들을 경고하는 일에 있어서 그들이 듣든지 듣지 않든지 상관하지 않고 성실함을 감소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사람들에게 말하게 될 때 나는 내가 생각하지 않았던 많은 것을 말하게 됩니다. 주님의 영이 빈번히 나에게 임합니다. 나는 내 자신에게서 벗어나고 내 자신에게서 떠난 것처럼 보이고, 다른 사람들의 생애와 품성이 나의 마음에 분명하게 펼쳐집니다. 나는 그들의 잘못과 위험을 보게 되고, 내 앞에 제시된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음을 느끼게 됩니다. 나는 하나님의 영을 감히 저항하지 못합니다.

나는 어떤 사람들이 나의 증언을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압니다. 그것은 그들의 교만하고 헌신하지 못한 마음에 맞지 않습니다. 나는 우리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빛을 받아들여서 순종하지 못함으로 당하여 온 손실을 점점 더 뼈저리게 느낍니다. 목회직에 있는 젊은 형제들이여, 나는 그대들이 그대들의 엄숙한 책임을 깊이 생각해 보도록 호소하는 바입니다. 21 하나님께 헌신한다면 여러분은 선을 위한 강력한 감화력을 교회와 세상에서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경건과 헌신이 부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말과 이론에 의해서는 물론이요, 여러분의 선한 행실로써 세상에 빛이 되도록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등에 기름이 없는 어리석은 처녀로 대표될 수 있습니다.

나의 형제들이여, 참된 증인의 책망과 권고에 유의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또한 여러분과 더불어 일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원수들은 강하고 단호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보다 더욱 강한 분이 여러분을 도우실 것입니다. 빛을 비추십시오. 그러면 그 빛이 그 구실을 다 할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야곱의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우리의 대학*

우리의 대학이 그 본래의 계획에서 이탈할 위험이 있다. 우리의 백성들이 학문을 연구할 기회를 가짐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바를 배워야 한다는 그분의 목적이 이미 밝혀졌다. 성경 강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성경의 연구는 우리의 교육 제도에서 첫째 자리에 놓여야 한다.

학생들은 성경의 주제에 관한 강의에서 교훈을 받고자 하는 바로 그 목적 때문에 먼 곳에서 배틀크릭에 있는 대학에 보내진다. 그러나 지난2 년간 우리의 학교를 다른 대학들처럼 만들려는 노력이 있어 왔다. 이런 일이 있게 되면, 우리는 부모들에게 배틀크릭대학으로 자녀들을 보내라고 권유할 수 없다. 22 도덕적·신앙적 영향이 뒷전으로 물러가서는 안된다. 과거에는 교사들의 활동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으므로 많은 영혼들이 진리를 깨닫고 받아들였다. 그들은 대학과의 인연의 결과로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위하여 살겠다는 마음으로 그들의 집으로 돌아갔다. 성경이 그들의 교육에 있어서 한 부분을 이루고 있음을 보고 그들은 그것을 더욱 흥미롭고 중요한 문제로 간주하게 되었다.

목회를 지망하는 젊은이들의 교육에 너무도 주의를 적게 기울였다. 이것은 대학의 설립에 있어서 확보되어야 할 근본 목적이었다. 어떤 경우에서도 이것이 등한시되거나 중요성에 있어서 부차적인 문제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그러나 여러 해에 걸쳐서 불과 소수의 사람만이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를 가르칠 준비를 갖추고 그 기관에서 나갔다. 목회에 뜻을 두고 많은 비용을 들여 찾아온 어떤 사람들은 다년간이 소요되는 공부의 전과정을 이수하도록 교사들에 의하여 권유를 받았다. 그러나 이 계획을 완수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얻기 위하여 문서전도 사업에 투신하였다가 목회할 생각을 모두 포기해 버렸다.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일이다. 우리에게는 일할 해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러므로 교사들과 교장은 하나님의 영으로 감동을 받아 그들 자신의 계획을 실천하는 대신에 하나님의 계시된 뜻과 조화되게 일을 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점에 대하여 말씀하신 바에 유의하지 않기 때문에 매 해 많은 손실을 당하고 있다.

우리의 대학은 이 위험하고 문란한 시대를 위한 증대되어 가는 필요에 부응하도록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이다. 책의 연구만으로는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훈육을 제공할 수 없다. 더 넓은 기초가 놓여야 한다. 어떤 한 사람의 정신을 그대로 새겨 주기 위하여 대학이 존재하게 된 것은 아니다. 교사들과 교장은 형제들로서 함께 일해야 한다. 그들은 함께 의논하고, 또한 목사들과 책임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의논하고, 무엇보다도 학교에 관한 그들의 모든 결정이 하나님의 승인을 받을 수 있는 것이 되도록 하늘의 지혜를 구해야 한다.

단순히 책에 있는 지식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이 기관의 목적이 아니다. 그런 교육은 이 땅에 있는 어느 대학에서나 받을 수 있다. 나는 대학이 세워진 바로 그 목적을 성취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 사단의 목적임을 보았다. 23 대학의 경영자들은 사단의 계책으로 방해를 받아, 세상의 방법을 따라 의논을 하고 그 계획을 본받고 그 풍습을 모방한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영의 마음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훨씬 더 포괄적인 교육, 단순히 학문을 가르치는 데는 필요되지 않는 그런 사상과 노력을 교사들과 교장들에게 요구할 그런 교육이 필요하다. 품성은, 가장 완전하고 가장 고상하게 발달되기 위하여 적당한 훈육을 받아야 한다. 학생들은,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는 문란한 영향에 대항하여 사회에서 존경받을 만하고, 정직하고, 고결하게 설 수 있게 해 줄 그런 훈련을 받아야 한다.

우리의 대학에 경작할 땅과, 여러 가지 분야의 육체적 활동을 통하여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들의 책임 아래 유지되는 작업장들이 딸려있을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육체적·정신적 노력을 결합시키는 일을 등한히 함으로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있다. 학생들의 여가 시간은 흔히 육체적·정신적·도덕적 능력을 약화시키는 하찮은 쾌락에 빼앗긴다. 관능적 방종의 타락시키는 능력이나 시기 상조의 구혼과 결혼의 흥분 때문에 많은 학생들은, 그렇지 않았더라면 도달했을 뻔한 정신적 발달의 높이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젊은이들은 매일 하나님께 대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그분의 율법은, 심지어 신앙을 가진 부모의 자녀들에 의해서도 끊임없이 범해지고 있다. 바로 이런 젊은이들 중 어떤 사람들은 종종 유흥의 소굴을 찾게 되고, 결과적으로 마음과 육체의 힘은 손상을 입게 된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도 그들의 유해한 길을 따르게 한다. 그러므로 교장과 교사들이 학문을 통하여 교훈을 하고 있는 동안, 사단은 몸서리나도록 교활하게 학생들의 마음을 지배하여 그들을 파멸로 이끌고자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젊은이들은 도덕적 힘이 별로 없다. 24 이것은 어린 시절에 교육을 등한히 한 결과이다. 하나님의 품성을 아는 지식과 그분에 대한 우리의 의무는 대수롭지 않은 문제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성경의 종교는 젊은이들을 위한 유일의 안전책이다. 우리의 교육 기관은 도덕성과 신앙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교과서로서의 성경

성경 연구만큼 모든 사상과 감정과 포부를 고상하게 해 주는 연구는 달리 없다. 이 거룩한 말씀은 사람들에게 계시된 하나님의 뜻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인간에게 무엇을 기대하시는지 배울 수 있다. 다른 어떤 책도 마음의 의문과 정신적 갈망을 충족시켜 줄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을 얻고 거기에 유의함으로써 사람은 가장 낮은 무지와 타락의 밑창에서 일어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죄 없는 천사들의 친구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그분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분명히 알게 되면, 우리는 자아가 비천함을 보게 된다.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연구하는 사람은 인간의 지능이 전능하지 않다는 것과, 하나님밖에는 아무도 줄 수 있는 도움이 없으며 인간의 힘과 지혜는 연약하고 무지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교육시키는 능력으로써 성경과 필적할 만한 것은 없다. 엄청난 계시의 진리를 깨닫기 위하여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모든 기능들에 그처럼 활력을 주는 것은 결코 없을 것이다. 정신은 생각하도록 허용되는 주제에 차츰 절로 적응된다. 통속적인 문제에만 몰두하고 위대하고 고상한 주제들을 배제해 버리면 정신은 위축되고 약해진다. 어려운 문제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애쓰고 중요한 진리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 기능을 발휘하도록 결코 요구받지 않으면, 그것은 얼마 후에 성장의 능력을 거의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25 성경은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가장 광범위하고 가장 교훈적인 역사이다. 그것은 영원한 진리의 샘에서 그대로 나왔고 하나님의 손이 모든 시대를 통하여 그 순결함을 보존하셨다. 그 밝은 빛은 인간의 탐구가 미치지 못하는 먼 과거까지 비춘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서만 우리는 확실한 창조의 이야기를 발견한다. 여기서 우리는 땅의 기초를 놓고 하늘들을 펴신 능력을 바라본다. 오직 여기에서만 우리는 인간의 편견이나 인간의 교만으로 더럽혀지지 않은 우리 인류의 역사를 발견한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인간의 정신은 가장 심오한 사상, 가장 고상한 열망을 요하는 주제를 발견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부조들과 선지자들로 더불어 교제하고,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영원하신 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하늘의 왕께서 친히 자신을 낮추셔서 우리의 대리자요 보증인이 되시고 단신으로 흑암의 권세를 대항하여 싸우시고 우리를 위하여 승리를 거두신 것을 보게 된다. 이와 같은 주제들을 경건하게 명상하면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순결하게 하고, 고상하게 하지 않을 수 없고 동시에 정신을 새로운 힘과 활기로 고무시켜 준다.

도덕성과 신앙이 학교에 살아 있게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지식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사람들은 신앙적 교훈이 두드러지게 되면 우리의 학교가 인기가 없어질 것이며 우리의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들이 대학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을 그들의 취향에 맞는 교육 제도를 발견할 수 있는 다른 대학으로 가게 하는 것이 매우 좋다. 우리의 학교는 단순히 학문만을 가르치기 위함이 아니고 위대한 하나님의 말씀의 원칙과 매일의 생활의 실천적 의무에 대한 교훈을 줄 목적으로 세워졌다.

이것은 현시대에 너무도 절실히 필요한 교육이다. 만일 세속적 영향이 우리의 학교를 지배할 것 같으면, 세상 사람들에게 그 학교를 팔아 버림으로 그들이 완전히 마음대로 하게 하고, 그 기관에 자금을 투자한 사람들은 다른 학교를 세워서 인기 있는 학교들의 계획을 따르거나 교장과 교사들의 욕망대로가 아닌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계획대로 운영되게 할 것이다.

26 나는 나의 주님의 이름으로 그 학교에서 책임 있는 위치에 서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되도록 호소하는 바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구별되고 독특하게 되도록 요구하시는데 무엇 때문에 우리가 인기를 갈망하거나 세상의 관심과 행동을 본받고자 노력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는, 성경이 젊은이들의 교육에 있어서 적당한 위치를 차지하는 대학을 이 땅에서 갖는 것이 당신의 목적이라고 주장하셨다. 우리는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다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이 많은 학생들의 정신과 마음에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만일 교사의 사업이 하나님 안에서 성취되었을 것 같으면 가장 부주의한 자들의 마음 속에도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교훈이 어느 정도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성령께서는 뿌려진 씨에 물을 줄 것이며, 그것은 때때로 여러 날 후에 싹이 터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사단은 사람들의 주의를 성경에서 떠나게 하고자 끊임없이 애쓰고 있다. 사람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주의를 제일 먼저 끌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지혜의 말 때문에 등한히 여김을 받는다. 그러므로 능력과 지혜가 무한하신 분께서 그와 같은 인간의 참람과 뻔뻔스러움을 어떻게 참을 수 있으시겠는가!

출판의 매체를 통하여 온갖 종류의 지식이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사회의 너무도 넓은 범위에 걸쳐 도덕적으로 부패하고 정신적인 성취도 피상적이다. 사람들이 성경을 읽는 독자가 되고 성경을 연구하는 학도가 되기만 해도 우리는 달라진 상태를 보게 될 것이다.

죄악이 편만하고 하나님의 품성과 그분의 율법 모두 멸시받는 이러한 우리의 시대에 있어서는, 인류에게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공부하고 존중하고 순종하도록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특별한 노력이 기울여져야 한다. 젊은이들이 성경 연구를 등한히 하기 때문에 그들의 정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생각이 사라져 가고 있다.

27 교장과 교사들은 하나님과 산 연결을 이루고, 그분의 증인으로서 확고하고 두려움 없이 서야 한다. 비겁한 마음이나 세속적 계책에 의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결코 뒷전에 두어서는 안 된다. 학생들은 성경 연구를 통하여 도덕적·영적으로는 물론이요 지적으로도 유익을 얻을 수 있다.

대학의 목적

우리의 대학은 오늘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는 위치에 서 있다. 나는 이 중요한 기관을 위협하는 위험을 보았다. 만일 그 기관의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세상의 표준에 이르고자 노력하고, 그들이 다른 대학들의 계획과 방법을 모방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학교를 불쾌히 여기실 것이다.

내가 결정적으로 말해야 할 시간이 왔다. 우리의 대학을 세우는 하나님의 목적이 분명히 제시되어졌다. 복음 사업에 일꾼들이 긴급히 필요하다. 목회 사업에서 일하고자 계획하는 젊은이들은 교육을 받는 일에 여러 해를 보낼 수 없다. 교사들은 상황을 파악하고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교육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의 사업에 적응하는 데 가장 필요한 분야의 연구를 간단하면서도 종합적으로 시키기 위하여 특별한 혜택이 그들에게 주어져야 한다. 그러나 나는 이 일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보았다.

________형제는, 목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가 해온 것보다 훨씬 더 일을 잘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문제에 있어서 그가 취한 길을 좋아하지 않으신다. 그는 자기 자신을 상황에 적응시키지 않았다. 짧은 기간에 배울 수 있는 것을 배우기 위하여 상당한 희생을 하면서 일터를 떠난 사람들은, 그들이 받아야 할 도움과 용기를 항상받은 것은 아니었다. 장년기의 한창 때에 이른 사람들과, 그들 자신의 가족을 가진 사람들이 쓸데없는 곤란에 빠졌다. ________형제는 심히 민감한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들도 그와 마찬가지로 예민하게 조소와 빈정거림과 비난의 아픔을 느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28 이런 면에서 그는 형제들에게 상처를 주고 하나님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대학의 교사들

우리의 대학에 있는 모든 교사들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다. 어떤 사람도 이기심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교사들의 도덕적·신앙적 품성이 마땅하리만큼 이루어져 있을 것 같으면, 더 좋은 감화를 학생들에게 줄 수 있게 될 것이다. 교사들은 성심 성의껏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그들에게 맡겨진 일을 완수하기 위하여 개인적으로 노력하지 않는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생애와 품성을 본받는 대신에 그들은 자아를 바라보고, 인간적 표준에 응하고자 지나치게 노력한다. 모든 교사들에게, 그들이 젊은이들에게 주는 영향에 대한 책임감을 충분히 깨우쳐 주고 싶다. 사단은 우리 젊은이들의 봉사를 확보하기 위하여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그는 매우 주의 깊이 경험 없는 발 앞에 그의 올무를 놓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의 책략에 대하여 방심하지 말고 경계해야 한다.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과 사랑을 구현한 분이시다. 그분과 진정으로 연결되어 있는 자들은 피차간에 불화할 수 없다.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그분의 영이 조화와 사랑과 연합을 이루어 줄 것이다. 이것과 반대의 현상이 사단의 자녀들에게 나타난다. 질투와 분쟁과 시기를 일으키는 것이 그의 사업이다. 나는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그대들이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가 묻는 바이다.

일반 학교들이 따르는 교육 제도에서는 교육상 가장 요긴한 부분인 이른바 성경상 신앙을 등한히 한다. 교육은 이 세상에서 학생의 생애에 크게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그 영향이 영원에 이르기까지 지속된다. 그러므로 교사들이 올바른 감화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그들은 신앙적 경험을 가진 남녀들이 되어야 하고,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하여 매일 하늘의 빛을 받아야 한다.

29 그러나 교사들에게 부모의 일을 하도록 기대해서는 안 된다. 많은 부모들이 놀라울 정도로 의무를 등한히 해왔다. 엘리처럼, 그들은 적당한 제지를 하지 못한다. 그러고는 그들이 훈련받지 못한 자녀들을 대학에 보내어 그들이 가정에서 받았어야 할 훈련을 받게 한다. 교사들은 별로 알아 주지 못하는 일을 한다. 그들이 이 고집센 젊은이들을 바로잡는 데 성공할지라도 그들은 별로 인정을 받지 못한다. 그 젊은이들이 악한 기질을 가진 자들과 사귀게되어 점점 더 악해지면 교사들이 비난을 받고 학교가 공격을 받는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그 비난은 바로 부모들에게 해당된다. 그들은 정신이 배울 수 있는 상태가 되어 있고 마음과 심령이 쉽게 감화를 받게되어 있을 때 자녀들을 다스리고 훈련시킬 수 있는 첫째이자 가장 유리한 기회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부모들이 나태했기 때문에 자녀들은 그들 자신의 뜻을 따르도록 허용되어 마침내 악한 행동에 굳어져 버렸다.

부모들은 세상에 대하여는 적게 연구하고 그리스도에 대하여는 더 많이 연구해야 한다. 그들은 세상의 습관과 유행을 본받기 위해서는 노력을 보다 더 적게 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아 그들의 자녀들의 마음과 품성을 형성시키는 데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바쳐야 한다. 그런 다음에 그들은 순결한 도덕성과 고상한 목적으로 강하게 된 아들과 딸들을 보내어 유용하고 신뢰받는 위치를 감당할 수 있게 해줄 교육을 받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지배를 받는 교사들은 그런 젊은이들을 더욱 전진시키고 향상시켜 그들이 세상에 축복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훈련시킬 수 있게 된다.

각 교사는 하나님과 연결을 이루어, 그에게 맡겨진 학생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그분의 율법을 순종하게 하는 영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는 그들의 마음을 지도하여 영원한 사물을 명상하게 하고, 가장 탁월한 지성이 그 역량을 다 발휘하여 깨닫고자 할지라도 여전히 피안에 무한히 남아 있는 광대한 분야가 생각의 대상으로 또한 위대하고 고상한 주제로서 그들 앞에 펼쳐지게 할 것이다.

30 우리의 유용성을 가장 크게 해치고, 만일 극복하지 않으면 우리의 파멸을 입증해 줄 자존심과 성화되지 못한 자립심의 악은 이기심에서 나온다. “함께 의논하라”는 말은 하나님의 천사가 나에게 거듭거듭 되풀이해 온 기별이다. 한 사람의 판단에 영향을 미침으로 사단은 일을 자기 자신에게 알맞게 지배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는 두 사람의 마음을 그릇되게 이끎으로써 성공을 거둘 수 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함께 의논하면 더욱 안전함이 있다. 모든 계획은 더욱 철저하게 비판되고, 모든 전진의 움직임은 더욱 주의 깊이 검토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혼란과 어려움과 실패를 초래할 조급하고 무분별한 움직임의 위험이 적어질 것이다. 연합에는 힘이 있고, 분열에는 허약과 실패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한 백성을 인도하고 계시며, 그들을 승천하도록 준비시키고 계신다. 이 사업에 한몫을 담당하고 있는 우리는 하나님의 파수꾼으로 서 있는가? 우리는 연합해서 일하고자 노력하고 있는가? 우리는 즐겨 모든 사람의 종이 되고자 하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의 위대한 모본자를 따르고 있는가?

동료 일꾼들이여, 우리는 각각 인생의 들판에 씨를 뿌리고 있다. 씨가 어떠하면 수확도 그러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불신과 시기와 질투와 이기심 그리고 사상과 감정의 슬픔을 뿌린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영혼의 슬픔을 거두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대하여 친절과 사랑과 부드러운 생각을 나타낸다면, 우리는 같은 것을 돌려받게 될 것이다.

가혹하고, 비판적이고, 교만하고,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무관심한 교사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도 동일한 정신이 나타날 것을 기대해야 한다. 자기 자신의 위엄과 자존심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쓸데없이 다른 사람들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 법칙은 가장 둔감하고, 가장 어리고, 가장 실수가 많은 학생들을 다루는 데 엄격하게 준수되어야 한다. 외관상으로는 보잘것없는 이 젊은이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분께서는 지난날에, 더 이상 가망이 없어 보이거나 매력이 없는 사람들을 당신을 위해 큰일을 하도록 받아들이셨다. 마음에 역사하고 있는 그분의 영은 모든 기능을 일깨워서 활기찬 행동을 하게 했다. 31 주님께서는 이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돌에서, 폭풍과 열과 압박의 시험을 견딜 귀중한 재료를 보셨다. 하나님은 사람이 보는 것처럼 보지 않으신다. 그분은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마음을 살피시고 올바르게 판단하신다.

교사는 언제나 그리스도인 신사로서 처신해야 한다. 그는 언제나 학생들의 친구요, 상담자의 위치에 서야 한다. 만일 우리의 모든 백성들-교사들과 목사들과 평신도-들이 그리스도인 예의의 정신을 계발한다면 그들은 사람들의 마음에 더욱 쉽게 접근하게 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살펴보고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모든 교사가 자아를 잊어버리고, 학생들이 하나님의 소유이므로 그들의 마음과 품성에 미친 자신의 영향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의 성공과 번영에 깊은 관심을 가질 때, 우리는 천사들이 머물기를 좋아하는 학교를 갖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교사들의 사업을 만족하게 바라보고 당신의 은혜를 학생들의 마음에 보내 주실 것이다.

배틀크릭에 있는 우리의 대학은 주님의 가족에 속한 어린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장과 발전 계획에 따라 훈련을 받아야 할 장소이다. 그들은 그들의 창조주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과 그리스도께서 그들이 따라야 할 모본이라는 사상으로 감명을 받아야 한다. 우리의 형제들은 그들의 마음이 너무 좁고 너무 낮은 범위에 머물도록 허용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언제나 염두에 두지 않고, 그들의 눈을 세상의 모본에 고정시키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곳을 쳐다보고, 그대에게 맡겨진 학생들이 그 완전한 품성과 일치되도록 노력하라.

만일 그대가 인기와 인원의 증가를 얻기 위하여 표준을 낮추고, 이와 같은 증가를 기쁨의 원인으로 삼는다면 그대는 크게 눈멀어 있음을 보이게 된다. 만일 인원이 성공의 증거가 된다면 사단은 탁월함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32 이 세상에서의 그의 추종자들이 절대 다수이기 때문이다. 대학의 번영의 증거가 되는 것은 그 곳에 보급되어 있는 도덕적 능력의 정도이다. 기쁨과 감사의 근원이 되어야 할 것은 그들의 인원이 아니고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덕성과 지성과 경건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감화가 없으면 교육은 진정한 유익이 없음이 판명되고, 배우는 자는 교만하고, 허영적이고, 완고해진다. 그러나 위대한 교사이신 그리스도의 고상하게 하고 세련되게 하는 영향 아래 받는 교육은 하나님께서 보시는 도덕적 가치의 측면에서 사람을 향상시켜 줄 것이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교만과 정욕을 제어하게 해주고, 모든 가능성과 모든 기회와 모든 특권을 위하여 하나님을 의지하게 해줌으로써 그분 앞에서 겸손하게 걸어가게 해줄 것이다.

나는 우리 대학의 일꾼들에게 말하는 바이다. 그대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품성을 본받아야 한다. 위에서 온 지혜가 그대들의 모든 교훈에 파급되어 있게 하라. 도덕적 흑암과 타락의 세상에서, 그대들은 행동하게 하는 정신이 위에서 온 것이지 아래에서 온 것이 아님을 보게 해주라. 그대들이 스스로의 힘과 지혜를 전적으로 의지할 것 같으면 그대들의 최선의 활동도 별반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다. 만일 그대들이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 고무되고 그분의 율법이 그대들의 기초가 된다면, 그대들의 사업은 오래 지속될 것이다. 짚과 나무와 풀이 타고 있는 동안, 그대들의 사업은 그 시험을 견딜 것이다. 그대들의 보호에 맡겨졌던 젊은이들을 그대들은 크고 흰 보좌의 주위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만일 그대들이 그대들의 무모한 태도를 허용하거나 제어되지 못한 기질이 패권을 쥐게 함으로 이 젊은이들에게 그들의 영원한 복리를 위한 감화를 주지 못할 것 같으면, 그대들은 그날에 그대들의 사업의 엄숙한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알고 그 율법에 순종함으로써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율법을 범함으로써 그들은 사단의 종이 된다. 한편으로 그들은 도덕적으로 탁월한 어떤 높이에까지라도 이를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 범죄와 타락의 어떤 깊이에까지라도 내려갈 수도 있다. 우리의 대학에 있는 일꾼들은, 달려 있는 상급의 가치-그들의 학생들의 영혼, 하나님의 인정, 영생, 구속받은 자들의 기쁨-에 상응하는 열성과 열심을 나타내야 한다.

33 우리의 교사들은, 그리스도의 동역자로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나누어 주는 그처럼 귀중한 기회를 가지고 마치 위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처럼 일을 해야 한다. 젊은이들의 마음은 굳어 있지 않고, 그들의 사상과 의견은 나이 많은 사람들처럼 진부하지 않다. 그들은 그대들의 거룩한 행실과, 헌신과 그리스도와 같은 발걸음에 의하여 그리스도께 바쳐질 수 있다. 학문의 연구를 그들에게 덜 강요하고 신앙적 특권을 위한 시간을 그들에게 더욱 많이 주는 것이 훨씬 더 좋을 것이다. 여기에서 중대한 실수를 범해 왔다.

하나님이 대학을 존재하게 하신 목적이 잊혀진 바 되어 왔다. 복음사업에 부름받은 목사들은 세속적 요소를 대학에 연합시킬 만큼 위에서 온 지혜가 부족함을 너무도 두드러지게 나타냈다. 그들은 학생들에게 오락을 제공함으로써 하나님과 진리의 원수들과 연합했다. 이렇게 젊은이들을 그릇되게 인도함으로써 그들은 사단을 위한 일을 해왔다. 그들은 그 사업의 모든 결과와 함께 그 사업을 하나님의 심판정에서 다시 목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길을 따르는 자들은 자신들이 믿을 수 없는 사람들임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악한 일을 저질러 놓은 다음에 그들은 그들의 잘못을 고백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일단 발휘한 영향을 쉽게 철회할 수 있을까? 맡은 일에 잘못을 범한 사람들에게 “잘하였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이 불성실한 사람들은 영원한 반석위에 건축하지 않았다. 그들의 기초는 무너지는 모래임이 판명될 것이다.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약 4:4).

우리의 영향이 얼마나 널리 미칠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생각 없이 하는 하나의 행동이 많은 영혼들을 파멸시킬 수도 있다. 우리 대학에 있는 모든 일꾼들의 행동은 젊은이들의 마음에 새겨져서 사람들에게 전달되어 그대로 재현된다. 교사의 지도 아래 있는 모든 젊은이들을 세상에 축복이 되도록 준비시키는 것이 그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이 목적을 결코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34 그리스도를 위하여 일하고 있노라고 공언하면서도 때때로 사단의 편에 가서 그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구주께서 이런 사람들을 보시고 착하고 충성된 종들이라고 선언하시겠는가? 그들은 파수꾼으로서 분명한 소리가 나도록 나팔을 불고 있는가?

각 사람은 심판 때에 선악간에 몸으로 행한 행동에 따라 받을 것이다. 우리 구주께서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막 14:38)고 명령하신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그리스도의 힘으로 극복하고, 우리가 원수들을 만날 때 그리스도의 힘으로 그들을 쫓아 버리고, 우리가 책임을 맡을 때 그리스도의 힘으로 성실히 감당하면 우리는 귀중한 경험을 얻게 된다. 우리는 다른 방법으로는 배울 수 없는 것, 곧 우리의 구주께서는 도움이 필요한 바로 그 때에 도와주시는 분이심을 배우게된다.

우리 대학에는 이루어져야 할 큰 사업, 모든 교사의 협력을 요구하는 사업이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낙심케 하는 것은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는 일이다. 그러나 거의 모든 사람은 사단이 형제들을 비난하는 자임을 잊어버린 것 같다. 그리하여 그들은 원수의 사업에서 그와 연합한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다투고 있는 동안, 사단은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의 미숙한 발 앞에 그의 올무를 놓고 있다. 신앙적 경험을 가진 자들은 사단의 간계에서 젊은이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그들은 자기들도 한때 죄의 쾌락에 매혹되었었던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도 매 시간 하나님의 자비와 오래 참으심이 필요한 처지이다. 우리가 미숙한 젊은이들의 잘못에 대하여 참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부당한 일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그처럼 오랫동안 참으신다면, 같은 죄인된 우리들이 감히 그들을 버리겠는가?

우리는 언제나 젊은이들을 그리스도의 피로 산 사람들로 쳐다보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의 사랑과 우리의 인내와 우리의 동정을 요구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기를 원하면 우리는 우리의 관심과 애정을 우리 자신에게 제한시킬 수 없고, 우리의 시간과 우리의 주의를 일시적 사물에 기울일 수 없고, 우리 주변에 있는 자들의 영원한 이익을 잊어버릴 수 없다. 35 나는 오늘날 한 사람이 동료 인간들의 구원을 위하여 열렬하게 활동하고 있는 곳에 일백명의 젊은이들이 없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이기심의 결과임을 보았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5:12)는 것이 예수님의 명령이다. 그분의 극기를 바라보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어떠한 사랑을 주셨는지를 쳐다보라. 그리고 모본되시는 그분을 본받고자 노력하라.

우리의 대학에서 교사로 일해 온 젊은 남녀들에게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는 많은 것들이 존재해 왔다. 그대들은 너무도 자기 자신에게 몰두되고, 너무도 영성이 결핍되었기 때문에 젊은이들을 거룩함과 하늘로 인도할 수 없었다. 그대들에게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위한 사랑이 부족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완고함에 있어서 더욱 확고해진 상태로 집으로 돌아갔다. 예수님의 정신이 없이 걸어감으로, 그대들은 불신과 경박함과 몰인정에 빠져 왔다는 점에서 그런 것들을 장려해 온 것이다. 이런 길의 결과, 곧 구원받을 수 있었던 영혼들이 잃어버린 바 된 것을 그대는 깨닫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은 ________형제에 대하여 강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그를 불친절하고 거칠고 가혹하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그를 정죄하고자 하는 바로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도 죄가 적은 것이 아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7). ______형제가 반드시 현명하게 행동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디에서 그가 최선의 길을 따르지 않았는지 깨우쳐 주기란 어려웠다. 그는 당연히 그렇게 했어야 하지만 즐겨 권면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의 교훈의 방법과 학생들을 취급하는 자신의 태도를 고치고자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결점 때문에 그를 정죄하려는 자들 또한 정당하게 정죄당할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은 독특한 품성의 결점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그가 형제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약점이 없지만 그 또한 하나님의 눈에는 그보다 훨씬 큰 결점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피차간의 이같은 냉혹한 비판은 완전히 사단적인 짓이다. 나는 __________형제가 한 선한 일은 존경받을 만한 것임을 보았다. 그를 부드럽게 대하도록 하라. 36 그는 세 사람이 감당해야 할 일을 해냈다. 그의 결점을 그처럼 열심히 찾아내고 있는 자들은 그와 비교해서 그들이 한 일을 하나하나 열거해 보라. 다른 사람들이 휴식과 쾌락을 찾고 있는 동안 그는 수고를 했다. 그는 지쳐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여분의 짐들 중 얼마를 그에게서 잠깐 동안 내려 놓기를 원하신다. 그에게는 시간과 주의를 할애해야 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는 어떤 것도 제대로 할 수 없다.

________형제는 자신의 투쟁적 정신이 격발되도록 허용함으로 자기 정당화로 이끌려서는 안 된다. 그는 불만의 기회를 제공해 왔다. 주님께서는 증언을 통하여 이것을 그에게 제시하셨다.

학생들이 결점을 찾는 일을 북돋우어 주어서는 안 된다. 이처럼 불평하는 정신은 권유될 때 증가할 것이다. 그리하여 학생들은 그들의 취향에 맞지 않는 교사들을 비평할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고, 불만과 투쟁의 정신은 신속히 증가될 것이다. 이런 정신은 언짢게 취급되어 마침내 사라지게 해야 한다. 이 악이 교정될 것인가? 교사들은 패권을 쥐고자 하는 욕망을 버릴 것인가? 그들은 겸손하게, 사랑으로, 조화를 이루어 활동할 것인가? 이것들은 시간이 알려 줄 것이다.

부모로서의 훈련

나는 이 시대를 위한 엄숙한 기별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부모들 중 매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자녀들을 훈련시키지 못하고 있음을 보았다. 그들은 자녀들을 제지하지 않았고, 그들을 제지하고자 한 누군가에 대하여 화를 내었다. 그들은 산 믿음으로 날마다 자녀들을 주님의 제단에 붙들어매지 않았다. 이 젊은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일에 자신들의 쾌락을 추구함으로써 넷째 계명을 범하도록 허용되어 왔다. 그들은 안식일에 그들 자신의 오락을 찾아서 거리를 돌아다니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많은 젊은이들이 원하는 곳으로 가고 마음대로 할지라도 그들의 부모들은, 그들이 불쾌하게 여길까 두려워서 엘리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을 통솔하지 않는다.

37 이 젊은이들은 마침내 안식일에 대한 존중심을 모두 잃어버리고 종교적 집회나 거룩하고 영원한 사물에 대한 취미를 갖지 않게 된다. 부모들이 부드럽게 그들을 책망하면 그들은 교인들 중 어떤 사람들의 결점을 열거함으로써 자기 자신들을 방어한다. 이런 종류의 어떤 것이 처음으로 접근할 때 침묵시켜 버리는 대신에 부모들은 자녀들이 생각하는 바와 똑같이 생각하고, 만일 이런저런 사람들이 완전하다면 그들의 자녀들 역시 옳다고 여긴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대신에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죄가 그들에게 변명의 구실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리스도는 유일한 참 모본이시다. 많은 사람들의 잘못이 그들에게 있는 한 가지의 잘못을 변명해 주는 구실이 되거나 그들의 범죄를 조금도 경감시켜 주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완전하고, 고상하고, 숭고한 하나의 표준을 그들에게 주셨다. 다른 사람들이 취하는 행동에 상관없이 그들은 이 표준에 도달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부모들은 자녀들에 대한 맹목적 사랑 때문에 이성(理性)과 판단력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 그러므로 방종되고, 이기적이고, 잘못 지도된 이 젊은이들을 통하여 사단은 오히려 부모들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효과적으로 활동한다. 나는 회의적이요, 불순종한 고대 이스라엘에게 임한 하나님의 진노를 주목하게 되었다. 자녀들을 교훈할 그들의 의무가 그들에게 분명히 지시되었다. 그것은 이 시대의 믿는 부모들에게도 동일한 구속력을 가지고 있다. “내 백성이여, 내 교훈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내가 입을 열고 비유를 베풀어서 옛 비밀한 말을 발표하리니 이는 우리가 들은 바요 아는 바요 우리 열조가 우리에게 전한 바라 우리가 이를 그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 능력과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시 78:1-4).

자녀들은 부모들이 그들의 교훈과 훈육과 모본을 통하여 만드는 그대로의 사람이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위하여 자녀들을 훈련시키는 데 있어서의 부모의 성실성은 압도적으로 중요하다. 자녀들은 일찍부터 신앙적 의무의 신성함을 배워야 한다. 이것은 그들의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38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는 다른 어떤 의무보다 먼저 이행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법을 엄격히 준수하는 것은 원칙에서부터 가르치고 강조해야 한다. “여호와께서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시며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 우리 열조에게 명하사 저희 자손에게 알게 하라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후대 곧 후생 자손에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그 자손에게 일러서 저희로 그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의 행사를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 계명을 지켜서 그 열조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은 하나님께 충성치 아니한 세대와 같지 않게 하려 하심이로다”(시 78:5-8).

여기에서 부모에게 주어진 큰 책임을 보게 된다. 훈련되지 못한 의지와 제어받지 못한 정욕을 간직한 채 장성한 남녀로 자라도록 허용되는 자녀들은 대개 훗날의 생애에서 하나님이 정죄하시는 길을 따르게 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경박한 오락과 신앙 없는 친구들을 찾고자 열망한다. 그들은 신앙적 의무를 등한히 하고 육신적 마음의 경향에 빠지도록 허용되어 왔으며, 그 결과 사단이 정신과 원칙을 지배하게 된다. _______, ________에서는 부모들이 사단에게 그렇게 활동할 수 있는 충분한 여지를 주었다. 그 곳에서 하나님을 배반하게 된 대부분의 경우는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양심적이요, 신앙적인 생애를 하도록 훈련시키는 일을 등한히 한 결과에서 초래되었다. 이런 자녀들의 상태는 통탄할 지경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한다. 그러나 그들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그리스도인이 되는 법, 곧 어떻게 하나님의 자비를 회고하고, 어떻게 그분을 찬양하고, 그들의 생애에서 그리스도의 생애를 본받을 것인지 가르쳐 주는 책임을 이행하지 않았다.

이런 자녀들이 학교에 들어가서 다른 학생들과 사귀게 될 때,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진정으로 노력하고 있는 자들은 많은 빛을 받은 자들 앞에서 그들의 믿음을 실천하기를 부끄러워한다. 39 그들은 유별나게 보이기를 부끄럽게 여기고 성향을 부인하기를 부끄러워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의 갑주가 가장 필요한 바로 그 때, 흑암의 세력이 이 불신의 친구들을 통하여 그들을 그리스도에게서 떠나가게 하고자 활동하고 있을 때, 그 갑주를 던져 버린다. 그들은 신앙적 원칙의 방어와 도움 없이 위험이 가득한 길에 들어간다. 그들이 그들의 신앙을 교실과 운동장과 그들의 모든 교제에 지니고 다니기 어렵거나 불쾌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단의 창에 대하여 그들의 영혼을 무방비상태로 버려 둔다. 이 젊은이들의 보호자들은 어디에 있는가? 누가 한손으로는 하나님의 보좌를 굳게 붙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이 젊은이들을 안아서 그리스도에게로 이끌어 가고 있는가? 이 젊은이들이 신앙의 힘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 곳, 튼튼한 손으로 그들을 굳게 붙들어 줄 필요가 있는 곳은 바로 이 곳이다.

그처럼 오랫동안 하나님의 지도와 보호를 거절해 온 자들 중 많은 사람들은 경박함과 이기적 쾌락의 길을 달려가되, 더욱 나아가서는 저열한 행동과 몸을 더럽히는 일에 빠져든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마음은 더럽혀지고 신앙은 그들에게 있어서 싫은 것이 되어 버린다. 어떤 사람들은 이같은 내리막길을 너무 멀리 가 버리고, 소돔의 길을 너무 열광적으로 따랐기 때문에 그들은 오늘날 거의 저주거리가 되어 있으며 견책과 경고의 음성은 그들에게 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결코 구원을 받지못할 것이며, 부모들은 그들의 멸망에 책임이 있다. 그들로 하여금 그처럼 막대한 희생-건강, 마음의 화평, 영생-을 하게 한 저열한 쾌락은 결과적으로 쓰라린 것이다.

부모들이여, 그대들의 가장 중요한 사업, 자녀들의 품성을 현세와 영원을 위하여 꼴 짓는 사업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실수를 범하지말라. 성실한 교훈의 등한, 혹은 자녀들의 결함에 대하여 그대들의 눈을 멀게 하여 그들에게 적당한 제지를 하지 못하게 하는 어리석은 애정에의 탐닉으로 그대들이 범하는 실수는 자녀들을 멸망시킬 것이다. 그대들의 길은 그들의 모든 장래의 생애를 그릇된 방향으로 가게 할 수도 있다. 40 그대들은 그들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그들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인류를 위하여, 그들 자신의 영혼을 위하여 어떤 일을 할 것인지 그들을 위하여 결정하게 된다.

그대들의 자녀들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다루라. 용감하고 꾸준하게 일하라. 십자가를 무서워하지 말고, 시간과 노력, 무거운 짐과 고난을 아끼지 말라. 그대들의 자녀들의 장래는 그대들의 사업의 성격을 증거할 것이다. 그대들이 그리스도께 바친 충성은 다른 어떤 길에서보다 자녀들의 균형진 품성에서 더 잘 나타날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산 그분의 소유이다. 그들의 영향이 완전히 그리스도 편에 있게 되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동역자가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의 길을 발견하도록 도와주게 된다. 그대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업을 등한히하게 되면, 그대들의 현명하지 못한 훈육의 방법이 그들을 그리스도로부터 흩어 버리는 일을 하게 하며 흑암의 왕국을 강하게 해주는 부류에 속하게 한다.

나는 내가 아는 것을 말한다. 나는 우리의 젊은이들, 믿노라고 공언하는 그리스도인 부모들의 교육받은 젊은이들 사이에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큰 죄, 너무도 흔하기 때문에 마지막 때의 징조 중 하나가 되고있는 죄가 있다는 것을 말할 때, 나는 내가 목격한 것을 그대들에게 증거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정적인 폭로와 견책이 요구되리만큼 악한 성향들로 충만해 있다. 그것은 그들이 일찌기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한 서약을 경솔과 모욕으로 대하는 죄이다. 신앙적 관심에 있어서 성령께서는 그들이 임마누엘왕의 피묻은 깃발 아래 완전히 서도록 그들을 감동시키셨다. 그러나 부모들은, 하나님과 너무 멀리 떠나 있고, 세속적 사업에 너무도 지나치게 몰두되고, 그들 자신의 신앙적 경험에 있어서 의심과 불만에 너무도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교훈을 하기에 전혀 부적당해졌다. 미숙한 상태에 있는 이 젊은이들은 바른길을 가리켜주고 권면과 제지로 그릇된 길을 막아 줄 현명하고 튼튼한 손이 필요했다.

신앙 생애는 세속적 생애와 쾌락을 구하는 생애와 뚜렷하게 구별되도록 나타나야 한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자는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한다. 우리 구주께서 자신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생애하지 않으셨으므로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높은 영적 달성은 하나님께 완전히 헌신할 것을 요구한다. 41 그러나 이런 교훈이 젊은이들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부모들의 생애가 그것과 반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역량껏 그리스도인 생애에 관한 지식을 얻도록 버려졌다. 자녀들이 세상 사람들과 교제하고 세속적 오락에 참여하고자 유혹을 받으면 맹목적인 부모들은 그들에게서 어떤 방종을 금하는 것을 싫어하여,-그들이 그 문제에 관하여 어떤 말을 하거나 행했다 할지라도-너무도 명확하지 않고 우유 부단한 태도를 취하기 때문에 그 젊은이들은 그들이 따르고자 한 길이 그리스도인 생애와 특성에 일치되는 것이라고 스스로 판단했다.

이런 길로 일단 들어서고 나면 그들은 일반적으로 마침내 세속적 요소가 우세해지고 그들이 가졌던 이전의 확신을 냉소하게 되기까지 그 길을 계속하게 된다. 그들은 그들의 마음이 부드러웠던 때에 나타냈던 단순함을 멸시하고, 교회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구속주의 신성한 요구를 회피하기 위한 변명을 찾는다. 이 부류에 속한 사람들은 양심의 각성이 사라지지 않고 가장 거룩하고 가장 부드러운 애정이 무디어지지 않았을 것 같으면 이루어졌을 그런 인물이 결코 될 수 없다. 여러 해가 지난 후에 그들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될지라도 그들은, 거룩한 사물에 대한 불경이 그들의 영혼에 남겨 놓은 흉터는 여전히 지니고 있을 것이다.

부모들은 이런 일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그들의 행동의 결과를 예견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자녀들이 가장 부드러운 교양, 거룩한 생애에서 가장 주의 깊은 훈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이 특별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소유요, 그분의 피로 산 그분의 은혜의 전리품이 되어 있는 사람으로,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데 사용되기 위하여 그분의 손에 쥐어져 있는 우수한 도구로 보지 않는다. 사단은 이런 젊은이들을 그리스도의 손에서 빼앗아 소유하기 위하여 언제나 애쓰고 있다. 그러나 부모들은 큰 원수가 흉악한 그의 깃발을 그들 바로 곁에 꽂고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너무도 눈멀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그리스도의 깃발로 착각한다.

야망과 나태, 회의와 방종을 통하여, 사단은 주님의 속량받은 자들이 걸어가도록 놓여 있는 거룩한 좁은 길에서 떠나도록 젊은이들을 유혹한다. 42 그들은 일반적으로 이 길에서 단번에 완전히 떠나지 않는다. 그들은 점차로 떠나게 된다. 잘못된 발걸음을 한 발자국 내딛음으로써, 그들은 그들이 하나님께 가납됨을 알려 주는 성령의 증거를 상실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좌절과 불신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양심이 그들을 정죄하기 때문에 그들은 종교적 행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이 사단의 함정에 빠졌는데, 피할 길은 오직 하나뿐이다. 그들은 발길을 돌이켜 그들의 반신 반의의 길을 겸손한 마음으로 고백하고 버려야 한다. 그들이 무시해 버린 첫 경험을 새롭게 하고, 모든 거룩한 욕망을 간직해야 한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성령만이 고무시킬 수 있는 거룩한 정서가 그들의 심령을 지배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는 믿음은 지탱해 주는 힘과 인도해 주는 빛을 줄 것이다.

신앙적 경험에서의 이러한 실제적 교훈은 그리스도인 부모들이 그들의 자녀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하여 준비해야 할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에게 이 일을 요구하신다. 그러나 만일 그대들이 이 일을 하지 못하면 그대들은 의무에 등한한 셈이다. 그대들은 하나님의 택한 훈육의 방법과 그리스도인 생애의 성공의 조건에 관하여 자녀들에게 가르쳐 주라.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면서 이 세상 생활을 위한 준비에 지나치게 걱정하는데 그들의 마음을 몰두시킬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라. 그러나 그들이 애써서 일을 할 필요가 없다거나 그들의 여가를 게으르게 보낼 수 있다는 생각을 품지 않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점에 있어서 분명하다. 하늘의 왕, 예수님은 젊은이들에게 하나의 모본을 남기셨다. 그분은 매일의 양식을 얻기 위하여 나사렛의 작업장에서 힘써 일하셨다. 그분은 당신의 부모에게 순종하셨고, 자신의 시간을 마음대로 쓰거나 자신의 뜻을 따르고자 애쓰지 않으셨다. 안이한 방종의 생애를 통하여 젊은이는 한 사람으로서 혹은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진정한 탁월함에 결코 이를 수 없다. 하나님은 당신을 섬기는 일에서 안락과 명예와 부를 우리에게 약속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핍박”과 아울러 모든 필요한 축복이 우리의 것이 될 것이며 내세에서 “영생”을 얻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다(막 10:30 참조).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에 있어서는 바로 완전한 헌신만을 그분께서 가납하실 것이다. 이것은 우리들 각 사람이 배워야 할 교훈이다.

43 성경을 연구하고, 하나님과 상의하고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어떤 환경에서나 현명하게 행동할 수 있게 된다. 훌륭한 원칙들이 실제적 생활에서 예시될 것이다. 이 시대를 위한 진리를 진심으로 받아들여서 품성의 기초로 삼기만 하면, 쾌락의 유혹, 관습의 변덕, 세속을 사랑하는 자들의 경멸, 자아 방종을 위한 마음의 소란 등의 영향을 무력화시키는 확고한 목적을 갖게 할 것이다. 양심이 먼저 계발되어야 하고, 의지는 굴복되어야 한다. 진리와 의에 대한 사랑이 심령을 지배해야하고, 하늘이 인정할 수 있는 품성이 나타나야 한다.

우리에게는 확고한 신앙적 원칙의, 지지해 주는 능력에 대한 두드러진 예증이 있다. 심지어 죽음의 공포도, 피로에 지친 다윗으로 하여금 용감한 군인들이 생명을 내걸고 걸어 온 베들레헴의 물을 마시도록 할 수 없었다. 입을 크게 벌린 사자의 굴도 다니엘이 드리는 매일의 기도를 금지할 수 없었고, 맹렬한 풀무불도 사드락과 그의 친구들로 하여금 느부갓네살이 세운 우상 앞에 머리를 숙이게 할 수 없었다. 원칙에 확고한 젊은이들은, 하나님께 불성실하게 되기보다는 오히려 쾌락을 피하고, 고통을 개의치 않고 사자의 굴과 뜨거운 풀무불까지도 용감하게 맞설 것이다. 요셉의 품성을 주목해 보라. 덕성이 심하게 시험을 받았지만 승리는 완전했다. 모든 점에서 그 젊은이는 시험을 겪었다. 동일하게 고상하고 꺾이지 않는 원칙은 모든 시험에 나타났다. 주님께서는 그와 함께 계셨고, 그분의 말씀은 법이었다.

이러한 확고 부동함과 손상되지 않은 원칙은 이 시대의 젊은이들의 연약함과 무능함과는 대조되어 가장 밝게 빛난다. 몇 사람을 빼놓고는, 그들은 우유 부단하고, 환경과 주변의 변화에 따라 오늘은 이렇게 내일은 저렇게 바뀐다. 쾌락의 유혹과 이기적 만족의 길이 제시되면, 탐하는 방종을 취하기 위하여 양심은 희생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신임할 수 있겠는가? 결코 그럴 수 없다. 44 유혹이 없으면 그는 그대들의 의심과 혐의가 정당하지 않게 보일 정도의 외관상의 예모를 유지하지만 일단 기회가 주어지면 그는 그대들의 신임을 배반할 것이다. 그는 마음이 건전치 못하다. 확고한 태도와 원칙이 가장 필요되는 바로 그 때에 그가 포기해 버리는 것을 그대들은 알게 될 것이다. 만일 그가 아놀드나 유다와 같은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그에게 적당한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부모들이여, 의무의 요구에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그대들에게 수행하도록 맡겨 주신 사업을 마음과 심령을 다하여 착수하는 것이 그대들의 제일 큰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 그대들이 그밖의 다른 모든 일에 실패하더라도, 여기에서만은 철저하고 능률 있게 되라. 만일 그대들의 자녀들이 가정 교육을 통하여 순결하고 덕스럽게 된다면, 만일 그들이 세상의 유익을 위한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에 있어서 가장 작고 가장 낮은 자리라도 차지하게 된다면, 그대들의 생애는 결코 실패로 불려지지 않고 후회로써 되돌아보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가 완고한 젊은이들의 행동과 습관에 굴복해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엘리사는 바로 그의 사업의 초기에 벧엘의 젊은이들에게 조롱과 조소를 받았다. 그는 매우 온후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영께서는 그로하여금 그 욕하는 자들을 저주하게 하셨다. 그들은 엘리야의 승천에 대하여 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엄숙한 사건을 조롱거리로 삼았다. 엘리사는 자신의 거룩한 부르심에 있어서 늙은이들이나 젊은이들이 그를 우습게 보아 가볍게 취급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백하게 나타냈다. 그들이 그보다 먼저 올라간 엘리야처럼 올라가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그에게 했을 때, 그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저주했다. 그들에게 임한 무서운 심판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었다. 그 후에 엘리사는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는 데 더 이상의 어려움이 없었다. 50년 동안 그는 벧엘의 성문은 출입하며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왕래하면서 가장 악한 무리들과 무례한 게으름뱅이들과 방종한 젊은이들 사이를 지나다녔지만 아무도 그를 조롱하거나 지극히 높으신 분의 선지자로서의 그의 자격을 무시하지 않았다. 그의 사업의 초기에 있은 무서운 가혹한 처사에 대한 이 한 가지 예증은 그의 온 생애 내내 존경을 얻게 하는데 충분했다. 그가 만일 그 조롱을 그대로 지나쳐 버렸을 것 같으면, 그는 조소를 받고, 욕을 듣고, 심지어 폭도에게 살해되었을 것이다. 45 그리하여 큰 위기를 당한 나라를 교훈하고 구원하기 위한 그의 사명은 실패로 끝나게 되었을 것이다.

친절까지도 제한이 있어야 한다. 권위는 확고하고 엄격한 처사에 의하여 지탱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조소와 모멸을 받을 것이다. 부모들과 보호자들에 의하여 젊은이들에게 표현된 이른바 온유, 감언으로 달래고 마음대로 하게 하는 것 등은 그들에게 주어질 수 있는 가장 나쁜 악이다. 확고 부동, 결단, 적극적 요구 등은 모든 가정에 필수적인 것들이다. 부모들이여, 등한히 한 그대들의 책임을 감당하고,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벧전 2:9)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그대들의 자녀를 교육하라.

중요한 증언

1882년 3월 28일 캘리포니아 힐즈버그 사랑하는 _______형제에게: 그대의 편지는 알맞은 때에 받았다. 그대에게서 소식을 듣고 기뻤지만 그 내용을 읽고는 슬퍼졌다. 나는 유사한 편지들을_______자매와 ______형제에게서 받았다. 그러나 나는 _______형제나 그를 지지하는 어떤 사람으로부터도 편지를 받은 적이 없다. 그대 자신의 편지들을 통하여 나는 그대가 _______형제에 대해서 어떻게 처신해 왔는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배틀크릭에 그런 일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놀라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내가 크게 존경해 온 형제인 그대가 하나님께서 인도하고 계시지 않는 자들과 함께 잘못된 편에서 이 문제에 관련된 것을 알게되어 괴롭다. 이들 중 어떤 사람들은 정직하지만 기만당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이 아닌 다른 근원에서 그들의 인상(印象)들을 받아오고 있다.

나는 중요한 문제들에 관한 나의 의견을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기 위하여 세심한 신경을 써왔다. 내가 가장 믿고 털어 놓은 말들이 자주 부당하게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46 사람들은 여러 가지 점에 관하여 나의 소견을 듣고자 시도하고 있다. 그런 다음에 그들은 왜곡하고 잘못 표현하여, 나의 말을 내가 주장한 것과는 전혀 다른 사상과 의견으로 나타낸다. 그러나 이런 일로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대의 작금의 어려움들이 생긴 데 대하여 나는 침묵을 지키기로 작정했다. 나는 문제들이 진전되도록 버려둠으로 나의 남편을 비난하고자 그처럼 애써 왔었던 자들이, 그들의 불만의 대상이 되었던 그 사람이 무덤 속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는 오늘날도 그들의 마음 속에 존재하고 여전히 살아 있는 그 불평의 정신을 보게 해주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위기가 반드시 오리라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하여 이 백성들에게 분명하고 확실한 증언들을 주셨다. 그들이 경고와 권면과 애원으로 주어진 성령의 음성에 순종했을 것 같으면 그들은 오늘날 연합과 평화를 얻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증언들을 믿노라고 공언한 자들이 거기에 유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떠나가고 그분의 축복을 물리치게 되었다.

사람들의 구원을 성취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매개를 사용하신다. 그분은 당신의 말씀을 통하여 또한 당신의 종들을 통하여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그분은 또한 성령을 통하여 경고와 책망과 교훈의 기별을 보내신다. 이런 수단들은 사람들의 이해력을 깨우쳐 주고, 그들에게 그들의 의무와 그들의 죄와 그들이 받을 수 있는 축복을 보여주기 위하여 계획된 것이다. 또한 영적인 부족감을 그들에게 깨우쳐줌으로 그들이 그리스도께 나아가서 필요한 은혜를 그분 안에서 발견하게 하고자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길 대신에 그들 자신의 길을 따르기로 선택한다. 그들은 하나님과 화목되어 있지 않으며, 자아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마음 속에 살아 계시기 전에는 그렇게 될 수도 없다.

각 사람은 자기 자신의 행위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정신을 품고 그분의 모본을 따르는 일을 거절함으로써 그분을 자기에게서 떠나가게 하든지, 자아 부정과 믿음과 순종을 통하여 그리스도와의 개인적 연합을 이루든지 한다. 우리는 각각 스스로 그리스도를 택해야 한다.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택하셨기 때문이다. 47 그리스도와의 이런 연합은 본래 그분과 원수되었던 자들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은 철저한 의존 관계인데, 교만한 마음을 가진 자들도 그 관계에 들어가야 한다. 이것은 주도 면밀함이 필요한 사업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관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들은 명목상 구주를 받아들이지만, 그들의 마음의 유일한 지배자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속죄의 필요를 느낀다. 그들이 이 필요를 깨닫고 마음의 변화를 바라기 때문에 투쟁이 시작된다. 그들 자신의 의지, 아마도 그들이 택한 애정의 대상자나 직업을 버리는 데는 노력이 요구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주저하고 머뭇거리고 뒤로 물러간다. 그러나 진정으로 회심한 모든 사람은 이 싸움을 반드시 싸워야 한다. 우리는 내외의 유혹에 대항하여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자아를 정복하고 애정과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 그리하면 영혼이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게 된다. 메마르고 생명이 없는 것같이 보이는 가지가 산 나무에 접붙임을 받는 것처럼 우리도 참 포도나무의 산 가지가 될 수 있다. 그리하면 그리스도에 의하여 맺혀진 열매는 그분을 따르는 모든 자들에 의해서도 맺혀질 것이다. 이 연합이 이루어진 후에, 오직 계속적이고, 열렬하고, 힘든 노력에 의해서만 그것이 보존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거룩한 결속을 보존하고 수호하기 위하여 당신의 능력을 발휘하신다. 그러므로 의존할 수밖에 없고, 속절없는 죄인은 불굴의 정력으로 그의 몫을 담당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단은 그의 잔인하고 교묘한 힘으로 그 사람을 그리스도에게서 분리시킬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끊임없이 경계하는 위치에 서서 사단이 접근할 수 있는 영혼의 모든 통로를 지켜야 한다. 그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하여 기도하고 동시에 죄악으로 기울어지는 모든 경향을 단호히 저항해야 한다. 용기에 의하여, 믿음에 의하여, 끈덕진 노력에 의하여 그는 정복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승리를 얻기 위하여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가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도록하라.

그리스도와 신자들과의 연합은, 피차간의 연합을 하나의 필연적 결과로 이루어 줄 것이며, 그 연합의 유대는 지상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와 하나이신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가지들인데, 산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유일의 가지들이다. 하나의 가지가 다른 가지에게서 생명력을 빌려오지 않는다. 우리의 생명은 포도나무의 줄기에서 와야 한다. 48 우리가 성령의 열매를 맺으려면 매일, 매 시간 그리스도와 개인적으로 연합하고, 그분과 교통하는 길밖에 없다.

그리스도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정신이 배틀크릭 교회에 침투해 왔다. 그것은 진리를 위한 열성이 아니며,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계시된 그대로의 그분의 뜻에 대한 사랑도 아니다. 그것은 독선의 정신이다. 그것은 그대를 예수님보다 더 높이게 해주고, 그대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피차간의 연합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도록 해준다. 그대는 슬프게도 형제 우애가 결여되어 있다. 그대의 교회는 뒤로 물러간 교회이다. 진리를 알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주장하면서도 열매를 맺지않고 믿음을 끊임없이 행사하면서 살지 않으면, 불순종과 자기 과신에 빠져 마음이 굳어진다. 은혜 안에서의 우리의 성장, 우리의 기쁨, 우리의 유용성은 그리스도와의 우리의 연합과 우리가 그분 안에서 발휘하는 믿음의 정도에 모두 좌우된다. 세상에서의 우리의 능력의 근원이 여기에 있다.

그대들 중 많은 사람들은 피차간에 영광을 구하고 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로 여기는 사람에게. 영광이나 사람의 인정이란 무엇인가?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매일 얻고 있는 자에게, 무엇이 이 세상의 쾌락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받아 주시는 그에게, 무엇이 사람의 모욕과 반대인가?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행사하고 있는 마음 속에 이기심이 살아 있을 수 없는 것은 빛과 어둠이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영적 냉랭함과 나태와 교만과 비겁은 똑같이 믿음 앞에서 물러간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와 밀접히 연합되어 있는 자들이 예수님을 빼놓고 모든 사람에 관하여,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그대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만일 그대가 실수가 많고, 속절없고, 정죄받은 죄인임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으면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다. 만일 그대가 자아를 높이고 영화롭게 한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다. 만일 그대 안에 어떤 선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자비하신 구주의 자비에서 기인된 것이다. 그대의 가문, 그대의 명성, 그대의 재산, 그대의 재능, 그대의 덕성, 그대의 자선 행위, 그대 안에 있거나 그대와 관련된 어떤 것도 그대의 영혼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결속을 이루게 할 수 없다. 49 그대가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한 교회와 이룬 그대의 연합, 형제들이 그대를 대하는 태도는 전혀 쓸모가 없다. 그분에 관하여 믿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그대는 그분을(In Him) 믿어야 한다. 그대는 그분의 구원의 은혜를 완전히 신뢰해야 한다.

배틀크릭에 있는 그대들 중 많은 사람들이 기도 없이, 그리스도에 관한 생각없이, 그대들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분을 높이는 일 없이 살아가고 있다. 그대들은 그리스도를 높이는 말을 하지 않고, 그분에게 영광을 돌리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대들 중 많은 사람들은 마치 그분의 이름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와 진실로 낯선 사이가 되어 있다. 그대들은 그리스도의 평안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그대들에게 평안의 진정한 기초가 없기 때문이다. 그대들이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대들은 하나님과의 교통이 없다. 우리 구주께서는,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그리스도의 사업에 쓸모가 없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신다. 곧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리스도께서 그대들의 손에서 받으실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가 없으면 그대들은 기만적인 소망 외에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다. 그분께서 친히,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요 15:6)고 선언하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 경험에 있어서의 향상은 지식이 증가된 결과로 겸손이 더해가는 것으로 특징지워진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사람은 누구나 모든 죄에서 떠나게 될 것이다. 나는 그대들 중 많은 사람들이 거짓 기초 위에 하늘에 대한 그대들의 소망을 쌓고 있기 때문에 영생을 얻지 못할 것을 본 사실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그대들에게 말하는 바이다. 하나님은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신 8:2)여 그대들을 버려 두신다. 그대들은 성경을 등한히 했다. 그대들은 증언들이 그대들이 좋아하는 죄를 책망하고 그대들의 자기 만족에 장애가 되기 때문에 그것을 멸시하고 거절했다. 그리스도를 마음 속에 모시게 되면 그분의 형상이 생애에 나타날 것이다. 한때 교만이 주권을 가졌던 곳을 겸손이 지배할 것이다. 순종, 온유, 인내는 본성적으로 심술궂고 충동적인 기질에 속한 거칠은 특성들을 부드럽게 해줄 것이다. 50 예수님께 대한 사랑은 그분의 백성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것은 변덕스럽거나 발작적인 것이 아니고, 조용하고 깊고 강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생애에 모든 가식이 벗겨진 바 되고 모든 가장과 술책과 거짓이 없게 될 것이다. 그것은 열렬하고, 진실하고, 숭고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말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모든 행동에 그분이 나타나신다. 생애는 마음 속에 거하시는 구주의 빛으로 빛난다.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고 하늘의 사물을 즐겁게 명상함으로 심령은 하늘을 위하여 준비되고 다른 영혼들을 그리스도의 우리 안으로 모아들이기 위하여 활동하게 된다. 우리 구주께서는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우리를 위하여 하실 수 있으시고 또한 즐겨 하신다.

배틀크릭의 교회는 자기를 낮추는 겸비의 정신이 필요하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패권을 쥐기 위하여 거룩하지 못한 욕망을 간직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많은 사람들은 높임을 받기를 좋아하고 경멸과 멸시에 대하여 방심하지 않고 살펴보고 있다. 거칠고 용서하지 않는 정신이 있고, 시기와 분쟁과 다툼이 있다.

하나님과 교통하는 데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가장 큰 겸손보다 더 요긴한 것은 없다. 높고 거룩하신 분께서는, “내가 …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사 57:15)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대들이 첫째가 되고자 그처럼 열렬하게 애쓰고 있을 때, 온유하고 겸손한 정신을 품지못하면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마음의 교만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성공을 할 수 있었던 곳에서 실패하게 할 것이다.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잠 18:12).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전 7:8). “에브라임이 말을 발하면 사람이 떨었도다 저가 이스라엘 중에서 자기를 높이더니 바알로 인하여 범죄하므로 망하였거늘”(호 13:1).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 22:14). 많은 사람들이 자비의 초청을 받고, 시험을 받아 입증되고 있다. 그러나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으로 인침을 받는 자는 별로 없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하여 어린 아이처럼 자신들을 낮추는 자들은 별로 없다.

자기를 낮추고, 자신의 무가치함을 깊게 그리고 계속적으로 의식하면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 자들은 별로 없다. 51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의 현현을 감당할 수 없다. 이것이 자존심과 교만과 시기를 그들 속에서 격동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주님께서 오늘날 우리를 위하여 그처럼 적게 일하실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이 개인적으로 그대 자신의 마음 속에서 사랑의 완성과 겸손을 구하기를 바라신다. 그대들의 주된 관심을 그대들 자신에게 쏟고, 그대들로 하여금 순결한 자들과 거룩한 자들과의 교제에 적합하게 해줄 품성의 탁월함을 계발시키도록 하라.

그대들은 모두 회개케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하다. 그대들은 스스로 그분을 찾을 필요가 있다. 그대들의 영혼을 위하여 이 일을 더 이상 등한히 하지 말라. 그대들의 모든 어려움은 그대들이 하나님과 분리되므로 생긴다. 그대들의 분열과 불화는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품성의 열매이다.

나는 침묵을 지키고 그대들이 그대들의 행동의 죄악상을 깨닫고 싫어하게 될 때까지 계속해서 그 길을 가도록 버려 두고자 생각했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배반할 때 마음의 완고함과 정신적 맹목이 생겨서 참된 상태를 깨닫는 지각이 점점 흐려져서 마침내, 유대 민족의 경우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물러가게 된다.

나는 나의 입장이 분명히 이해되기를 바란다. 나는 _______형제에 대하여 취해 온 행동에 찬성하지 않는다. 원수는 많은 사람의 마음 속에 증오의 감정을 일으켜 왔다. 그가 범한 잘못은 참견 잘하고 험담 잘하는 혀들이 불에 연료를 더한 것처럼 끊임없이 확대되면서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전해졌다. 자녀들의 영혼을 위하여 마땅히 해야 할 걱정을 한 번도 하지 않고, 자녀들에게 적당한 제지와 교훈을 결코 한 적이 없는 부모들이, 학교에서 그들의 자녀들이 제지를 당하고, 책망을 받고, 교정을 받을 때, 가장 심한 반대를 하는 바로 그런 자들이다. 이런 자녀들 중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 불명예가 되고 재림교인이라는 이름에 수치가 된다.

부모들 자신이 책망을 멸시했으며, 자녀들에게 주어진 책망도 멸시했다. 그리고 이것을 그들에게서 숨기고자 유의하지 않았다. 부모들의 죄는 그들이 가정을 올바로 관리하지 못한 데서 시작되었다. 52 이런 자녀들 중 어떤 사람들의 영혼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을 받지 않고 가정에서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잃어버린 바 될 것이다. 그릇된 행동을 한 자녀들을 동정하는 대신에 부모들은 그들을 책망하고 성실한 교사들을 지원해 주었어야 했다. 이 부모들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않았다. 이것이 그들의 무서운 의무 태만의 이유이다. 그들이 뿌린 것을 그들은 또한 거두게 될 것이다. 그들은 반드시 수확을 하게 된다.

학교에서 _______형제는 어린이들의 그릇된 행동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제지 때문에 증오를 일으켜 키워온 부모들의 지각없는 처신에 의하여 무거운 짐을 져왔다. 가정에서 도움을 얻기는커녕 오히려 끊임없이 분노의 자극을 받는 상황에서의 과로, 끝없는 염려 등으로 그는 때때로 자제력을 잃어버리고 무분별하게 행동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이용하게 되었고, 대수롭지 않은 잘못을 큰 죄처럼 나타냈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을 연합시키고자 노력하고, 한 손으로는 진리를, 다른 손으로는 세상을 붙들고 안식일 준수자로 공언하는 부류의 사람들은 신앙과 그리스도의 영과 전혀 상관이 없는 분위기로 그들의 자녀들을 두르고 교회를 어둡게 하였다. 그들은 감히 공공연하게 진리의 요구를 반대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대담하게 일어서서 증언들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명목상 두 가지를 다 믿노라고 주장하면서도 그들은 어느 하나도 순종하지 않았다. 행동을 통하여 그들은 둘 다 부인했다. 그들은 주님께서 그분의 약속을 그들에게 성취시켜 주기를 바라지만 이 약속의 기초가 되어 있는 조건에 응하는 일은 거절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적수가 되는 모든 것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말씀의 전파에 의하여 세속에 대한 부분적 억제는 있지만, 애정의 근본적인 변화는 없다. 세속적 욕망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최종적으로 승리를 얻는다. 이 부류의 사람들은 모두 그리스도인으로 공언하는 자들이다. 그들의 이름은 교회 녹명책에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한동안 외관상 신앙 생애를 한다. 그런 다음에 그들의 마음은 마침내 너무도 흔히 세상의 우세한 영향에 굴복된다.

53 ________형제의 잘못이 무엇이든지간에 그대들의 행동은 정당할 수 없고 그리스도인답지 못하다. 그대는 여러 해 전의 그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불리한 모든 것, 온갖 악의 그림자를 찾아내어, 그를 말씀을 어긴 자로 만들었다. 그대들은 고발자로서의 그대들의 행동을 지지하기 위하여 모든 힘을 기울여 진력해 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대들 각 사람을 동일한 방법으로 취급하실 것을 기억하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 7:2). 이 수치스런 일에 참여한 자들은 그들이 한 일을 다시 대면하게 될 것이다. 그대들의 행동이 지금껏 제지를 감내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런 일이 그들의 품성과 그들의 생애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이런 일에 관하여 증언들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비록 품성의 그릇된 한 가지 특성, 간직하고 있는 하나의 그릇된 죄악적 욕망일지라도 마침내 복음의 능력을 모두 무효로 만들 것이다. 하나의 죄악적 욕망이 널리 보급되어 있다는 사실은 영혼이 기만당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 욕망에 빠질 때마다 하나님께 대한 영혼의 반감은 강해진다. 의무의 고통과 죄악의 쾌락은 사단이 사람들을 그의 올무에 묶는 줄이다. 하나의 그릇된 행동을 하기보다는 차라리 죽고자 하는 자들이 성실한 자로 판명될 유일한 사람들이다.

어린이가 건전한 신앙 교육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만일 부모들과 교사들과 보호자들이 그의 품성이 그릇된 습관으로 빗나가도록 허용한다면, 그리고 극복되지 않는다면 그 습관은 두드러진 세력이 될 것이고, 그 어린이는 잃어버린 바 될 것이다.

하나님의 영을 통하여 그대들에게 전달된 증언은 다음과 같다. 적과 화평의 교섭을 하지 말라. 가시들은 죽여 버려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들이 그대들을 죽일 것이다. 마음의 묵은 땅을 갈아라. 그 일을 깊고 철저하게 하라. 진리의 보습이 잡초와 찔레나무들을 뽑아 내게 하라.

그리스도께서는 분노하여 송사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7)고 말씀하셨다. 54 _______형제를 그처럼 비난하고 정죄하고자 열광하는 자들은 죄가 없었던가? 그들의 품성과 생애를 그들이 _______형제의 품성과 생애를 살핀 것처럼 그렇게 철저하고 공공연하게 살폈을 것 같으면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그 형제 앞에 제시하고자 노력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나쁘게 나타났을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침묵을 지키고 싶지 않다. 나는 그대들과 배틀크릭의 교회에 말하는 바이다. 그대들은 큰 잘못을 범했다. 그대들은 그대들과 그대들의 자녀들이 깨닫지 못하는 감사의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을 불의로 대해 왔다. 그대들은 그대들이 대학에 끼친 영향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 학생들이 그들 자신의 길을 갔기 때문에 평화가 찾아왔다. 다른 위기에 있어서도 그들은 이 경우에서처럼 확고하고 끈덕질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형제와 같은 유능한 옹호자를 만나면 그들은 다시 그들의 목적을 성취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교사들과 학생들과 교인들에게 말씀해오고 계셨다. 그러나 그대들은 그분의 말씀을 등뒤로 던져버렸다. 그대들은 결과에 상관없이 그대들 스스로의 길을 따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께서는 한 백성으로서의 우리를 세속적 관습과 정책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좌우로 경고와 책망과 주의를 베푸셨다. 그분은 세상 사람들보다 훨씬 뛰어난 표준에 이르게 하고자 품성에 있어서나 믿음에 있어서 독특해지기를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형제는 주님께서 우리를 취급하시는 바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대들 사이에 들어왔다. 처음으로 믿음 안에 들어왔기 때문에 그는 거의 모든 것을 배워야 했다. 그러나 그대들은 주저하지 않고 그의 판단에 의견을 같이했다. 그대들은 그에게 있는 그리스도께 쓸모 없는 정신과 행동 노선을 인정해 주었다.

그대들은 하나님의 영이 억제하고자 애쓰는 비평의 정신을 품도록 학생들을 부추겼다. 그대들은 그들로 하여금 신임을 배반하게 했다. 우리들 사이에는 가장 귀중한 품성의 특성들에 대하여 ______형제에게서 받은 지식과 원칙들의 덕을 입고 있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 55 안식일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사업의 여러 가지 다른 분야에서 많은 사람들의 유용성의 대부분은 그의 훈련 덕이다. 그러나 그대들의 영향은 배은망덕하도록 격려했고, 학생들로 마땅히 간직해야 할 것을 멸시하게 했다.

다른 사람이 시달리는 특별한 시련을 당하지 않는 자들은 그들이 그 사람보다 더 훌륭하다고 자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을 시련의 풀무불 속에 두어 보라. 그러면 그들 역시 그들이 비난하고 그릇 판단하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거의 그 시련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의 고통을 참으로 조금밖에 알 수 없고, 다른 사람의 환경을 참으로 별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현명한 권면을 하기가 어렵다. 우리에게 적절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상 완전히 정반대일 수도 있다.

_______형제는 열렬하게 지식을 추구해 왔다. 그는 학생들에게, 그들의 시간과 그들의 재능과 그들의 기회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고자 노력해 왔다. 사람이 허둥대고, 피곤하고, 초조해지지 않고 그처럼 많은 업무를 감당하고 그처럼 무거운 책임을 수행하기란 불가능하다. 혼신의 힘을 다 소모시킬 짐을 지기를 거절하는 자들은 이 짐을 질 수밖에 없는 자들을 내리누르는 압력을 전혀 모른다.

_______형제와 교제함으로 불행하게 되고 바람직하지 못하게 된 것만을 찾아온 자들이 대학에는 있다. 이 사람들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고상하고, 그리스도인다운 정신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모든 경솔한 말과 행동을 될 수 있는 한 나쁘게 보이게 했으며 시기와 편견과 질투가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마음들에서 활동할 때 이것들을 다시 끄집어 냈다.

한 저술가는, “질투의 기억이란 적의를 걸어 두기 위한 낚시의 행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마음이 끌리는 사물이나 인물보다는 오히려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사물이나 인물을 하나하나 열거하는 것이 우월의 증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위대한 사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형제들을 이렇게 권고한다. 56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빌 4:8).

질투는 단순히 기질의 왜곡이 아니고, 모든 기능을 혼란시키는 이상한 병이다. 그것은 사단에게서 시작되었다. 그는 하늘에서 첫째가 되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구한 모든 능력과 영광을 소유할 수 없게 되자 하나님의 정부에 대하여 반역했다. 그는 우리의 첫 조상에 대하여 질투하고 그들을 범죄하도록 유혹하였다. 그리하여 그들과 모든 인류를 파멸시켰다.

질투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훌륭한 특성과 고상한 행동에 대하여 눈을 감는다. 그는 언제나 비방하기에 민감하고 탁월한 것을 허위로 대표한다. 사람들은 흔히 다른 결함들을 고백하고 버리지만, 질투하는 사람에게서는 바랄 것이 거의 없다. 사람이 질투한다는 것은 그가 우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므로 자존심이 어떤 양보도 하지 않을 것이다. 질투하는 사람에게 그의 죄를 깨우쳐 주고자 시도하면 그는 그의 감정의 대상에 대하여 더 한층 가혹해지고, 너무도 흔히 치료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질투하는 사람은 어디로 가든지 독을 발산하여 친구들을 이간시키고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증오와 반역을 일으킨다. 그는 용감하고 자아부정적인 활동을 함으로써 탁월의 고지에 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있는 그 자리에 서서 다른 사람들의 노력에 해당되는 공로를 감소시킴으로 가장 훌륭하고 위대하게 인정받고자 노력한다.

대학에서는 물론이요 교회에서도 어떤 사람들이 마음 속에 질투를 품어왔다. 하나님께서는 그대의 행동을 불쾌히 여기신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대가 ______형제를 취급한 것처럼 어떤 다른 사람을 결코 취급하지 말도록 호소하는 바이다. 고상한 성격은 다른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데서 기뻐 날뛰거나 그들의 결점을 찾는 데서 기뻐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비방의 잔치에서 염증을 품고 돌아설 것이다. 이 경우에 활동적이었던 어떤 사람은 고통 중에 있는 주님의 종들 중 한 사람, 그들의 활동에서 건강과 힘을 희생시킨 자에 대하여 취한 그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 57 주님께서는 압박받는 자를 옹호해 주시고 고통받는 당신의 종에게로 얼굴빛을 돌리셨다. 그 때 나는 하나님께서 지금 하신 것처럼 그 사람들을 다시 시험하시고 그들의 마음 속에 무엇이 있는지 드러내고자 하시는 것을 보았다.

다윗이 범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가 하나님께 형벌을 받을 것인지, 사람의 손에서 받을 것인지 택하게 하셨다. 회개한 그 왕은 하나님의 손에서 당하기로 택했다. 악인의 부드러운 자비는 잔인한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만 바른길을 계속해서 걸을 수 있는, 실수와 죄가 많은 사람은 여전히 마음이 굳고 잘못한 형제에 대하여 용서하는 마음이 없다. 배틀크릭에 있는 나의 형제들이여, 하나님의 심판정에서 그대들은 어떤 결산 보고를 할 것인가? 책망과 경고와 호소를 통하여 큰 빛이 그대들에게 주어졌다. 그러나 그대들은 하늘이 보낸 그 빛을 얼마나 배척했던가!

소식을 전해 주면 나도 소문을 퍼뜨리겠다고 말하는, 해를 끼치기 좋아하는 혀, 지껄여 비밀을 누설하는 혀를 사도 야고보는 지옥의 불을 붙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횃불을 각 곳으로 퍼뜨린다. 비방의 행상인은 그가 무고한 자를 중상한다는 것을 조금인들 염두에 두겠는가? 비록 그가 무거운 짐에 눌려 이미 가라앉고 있는 자들에게 있는 희망과 용기를 파괴하고 있을지라도 그는 그의 악한 일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주문을 좋아하는 자신의 경향에 몰두하는 것에만 마음을 쓴다. 심지어 그리스도인으로 공언하는 자들도 순결하고, 정직하고, 고상하고 사랑스러운 모든 것에 대하여는 눈을 감고 못마땅하고 불쾌한 것은 무엇이나 수집해서 그것을 세상에 퍼뜨린다.

그대들은 사단이 들어오도록 스스로 문을 열었다. 그대들은 조사에서나 심문의 장소에서 그를 영예로운 자리에 앉혔다. 그러나 그대들은 여러 해 동안의 성실로 이룬 품성의 탁월함에 대해서는 존경을 표하지 않았다. 시기하고 복수하기를 좋아하는 혀는 그들 자신의 생각에 맞도록 행동과 동기를 채색했다. 그들은 검은 것을 희게, 흰 것을 검게 보이게 했다. 그들의 말에 대하여 항의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58 말한 사실이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대들의 행동을 정당화시켜 주는가? 아니다. 결코 아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실지로 그대들에 대하여 제기하실 수 있는 모든 비난을 취하셔서 그대들을 벌주기 위한 채찍을 만드실 것 같으면 그대들의 상처는 그대들이 _______형제에게 가한 것보다 훨씬 더 크고 깊을 것이다. 심지어 사실조차도 잘못된 인상을 주도록 언급될 수도 있다. 그대들은 그에게 불리한 모든 소문을 수집하여 그의 명성을 파괴하고 그의 유용성을 소멸시키기 위하여 그것들을 이용할 권리가 없다. 만일 주님께서 그대들이 그대들의 형제에 대하여 나타낸 것과 동일한 정신을 나타내신다면 그대들은 무자비하게 멸망당할 것이다. 그대들은 양심의 가책이 없는가? 나는 없을까 두렵다. 이 극악한 마력이 힘을 잃어버릴 시간이 왔다. ________형제가 그대들이 그에게 대하여 나타내는 그대로라 할지라도,-나는 그가 그렇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그대들의 행동은 여전히 정당하다고 인정받을 수 없다.

우리가 우리 형제에 대한 비난을 들을 때, 우리는 그 비난을 간직하게 된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시편 기자는,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라고 대답했다(시 15:1-3).

만일 각 사람이 그에게 다른 사람들의 결점을 말해 주는 자들이 유리한 기회에 그의 결점도 마음대로 널리 알릴 것이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험담의 세계는 예방될 것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특별히 좋게 생각하되 우리의 형제들에 대해서 달리 생각하지 않을 수밖에 없게 될 때까지는 그렇게 해야 한다. 우리는 나쁜 소문을 성급히 신임하지 않아야 한다. 이런 것들은 흔히 질투나 오해의 결과로 생겨나기도 하고 혹은 과장이나 사실의 부분적 표현에서 나올 수도 있다. 질투와 의심은 일단 자리잡도록 놓아 두면, 엉겅퀴의 관모(冠毛)처럼 스스로 자신을 멀리까지 퍼뜨린다. 어떤 형제가 잘못한다면 그 때는 그에게 대한 그대의 진정한 관심을 보여야 할 때이다. 친절하게 그를 찾아가서, 그리스도께서 그의 구속을 위하여 지불하신 무한한 대가를 기억하면서 그와 함께 그리고 그를 위하여 기도하라. 59 이와 같은 방법으로 그대는 한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고, 허다한 죄를 덮어 줄 수 있다.

한 번의 눈짓, 한마디의 말, 음성의 억양까지도 거짓말로 충만하여 미늘 달린 화살처럼 어떤 사람들의 심장 속으로 뚫고 들어가서 치료할 수 없는 상처를 줄 수 있다. 그와 같이 하나의 의심, 하나의 비난이 하나님께서 선한 사업을 이루시고자 하는 사람에게 던져질 수 있으며 그의 영향력이 방해를 받고 그의 유용성이 파괴된다. 어떤 종류의 짐승들 사이에서는, 그들의 동료들 중 하나가 상처를 입고 쓰러지면 그는 즉시 엄습당하여 그의 동료들에게 갈갈이 찢긴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남녀들이 똑같은 잔인한 정신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은 그들 자신보다 죄가 적은 다른 사람들을 돌로 치는 바리새인적 열성을 나타낸다. 그들 자신에게서 주의를 돌리거나 하나님과 교회를 위하여 큰 열성이 있다는 신임을 얻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의 결점과 실패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다.

몇 주일 전에 나는 꿈속에서 조사를 위한 그대들의 한 모임에 참석했다. 나는 학생들이 _______형제를 반대하는 증언을 들었다. 바로 그 학생들은 그의 철저하고 성실한 교훈으로 많은 유익을 얻은 사람들이었다. 한때 그들은 그를 극찬했었다. 그 당시는 그를 존경하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경향이 다른 길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그들의 진정한 본성을 드러냈다. 나는 한 천사가 묵직한 한 권의 책을 펴고 모든 증언을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각 증언의 반대편에는 그 증언을 한 사람의 죄와 결점과 잘못 등이 기록되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_______형제의 활동으로 얻은 큰 유익이 기록되어 있었다.

우리는 한 백성으로서 ______형제의 고된 활동의 열매를 거두고 있다. _______형제가 바친 것보다 더 많은 시간과 생각을 자신의 사업에 바친 사람이 우리들 사이에는 없다. 그는 그를 지지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을 느끼고, 어떤 격려에 대해서도 감사의 마음을 느꼈다.

대학의 설립에 있어서 확실하게 해야 할 목적들 중 하나는 우리의 젊은이들을 세상의 정신과 영향에서, 세상의 관습과 어리석음과 우상에서 분리시키는 것이었다. 60 대학은 노아의 시대처럼 타락한 세상을 만드는 현시대의 부도덕을 막는 장벽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었다. 젊은이들은 구혼과 결혼을 위한 열정에 사로잡혀 있다. 사랑에 번민하는 감상주의(感傷主義)가 편만하다. 젊은이들을 이런 그릇된 영향에서 각성시키기 위하여 큰 경계와 지혜가 필요하다. 많은 부모들은 자녀들의 경향에 대하여 눈이 멀어 있다. 어떤 부모들은 크게 만족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자녀들이 이성의 주목을 끌기 위한 욕망이 없다고 나에게 말했다. 그러나 사실상 그렇게 말하는 그 때에 그 자녀들은 비밀리에 그런 관심을 주고받고 있었지만 부모들은 세속적인 일과 험담에 너무도 몰두했기 때문에 그 문제에 관하여 아무것도 몰랐다.

우리 대학의 기본적인 목적은 젊은 남자들에게 목회를 위하여 연구할 기회를 제공하고 또한 남녀들을 다 같이 준비시켜 여러 분야의 하나님의 사업에 일꾼이 되게 하는 것이었다. 이 학생들은 공통적인 교육 분야의 지식이 필요했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이 필요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우리 학교는 불충분했다. 이 분야의 사업에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는 사람이 없었다. 하나님의 영으로 감동을 받은 젊은이들이 목회직에 자신을 바치기 위한 목적으로 대학을 찾아왔다가 실망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위하여 적당한 준비가 갖추어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어떤 교사들은 이 사실을 깨닫고 젊은이들에게 다른 공부를 하여 다른 직업을 위하여 준비하도록 조언했다. 이런 젊은이들이 그들의 목적에 확고하지 않았을 것 같으면 그들은 목회직을 위한 공부에 대해 모든 생각을 버리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일은 단순히 삯을 위하여 일하고, 하나님의 영으로 감동을 받지않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않은 성화되지 못한 교사들이 끼친 영향의 결과이다. 이 사업에 있어서 _______형제보다 더 적극적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성경은 공부의 주요한 과목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 61 우리가 미래의 생명, 불멸의 생명을 얻기 위하여 현실 생애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를 알려 주는 이 책은 학생들에게 있어서 다른 어떤 책보다 더욱 귀중하다. 우리가 이 말씀의 진리를 익히 배울 수 있는 기간이 매우 짧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했고, 다른 어떤 교사보다 젊은이들에게 성경의 지식을 얻도록 도와줄 수 있었던 그 사람이 학교에서 떠나갔다.

교수들과 교사들은 대학의 계획을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대학에 바라시는 바를 이루기 위하여 재산과 생각과 노력을 쏟았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한 백성으로서 인도하신 길을 거의 완전히 모르는 자들의 의지와 판단은 그 대학에서 지배적인 영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인기 있는 학교들을 본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되풀이해서 보여 주셨다. 다른 교단의 목사들은 교육을 받는 데 여러 해를 보낸다. 그러나 우리의 젊은이들은 짧은 기간에 그들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 오늘날 한 사람의 목사가 있는 곳에, 우리의 대학이 하나님의 도움으로 복음 사업에 들어가도록 준비시킨 사람이 20명은 있어야 한다.

우리의 젊은 목사들 중 많은 사람들과, 더욱 성숙한 경험을 가진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히 하고, 또한 그분의 영의 증언들을 멸시하고 있다. 그들은 증언들에 포함되어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알고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품성의 결함을 발견하여 그것을 고치기를 원치 않는다. 많은 부모들은 증언에서 교훈을 찾고자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물론 그것을 자녀들에게 나누어 줄 수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교훈과 완전히 반대되게 행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빛에 대하여 모멸을 나타낸다. 사업의 중심에 있는 자들이 그런 본을 보였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싸움을 세상에 널리 알렸다. 그대들은 한 백성으로서 배틀크릭에서 더욱 유리한 빛 가운데 서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이, 그분과 하나님이 하나가 되신 것처럼 하나가 되어 하나님이 그분을 보내신 것을 세상이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셨다. 과거 몇 개월 동안 그대들은 어떤 증거를 해 왔는가? 62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계신다. 그분은 우리의 동기를 헤아려보신다. 그분은 모든 영혼을 시험하실 것이다. 누가 그 시험을 견딜것인가?

무시된 증언들

1882년 6월 20일 캘리포니아, 힐즈버그

배틀크릭에 있는 형제 자매들에게: 나는 교회에서 읽혀지게 해달라는 요구와 함께 _______형제에게 보낸 증언*이 그가 받은 후 여러 주일이 지나도록 그대들에게 전달되지 않은 것을 안다. 그 증언을 보내기 전에 나의 마음이 하나님의 영으로 너무도 크게 감동되었기 때문에 나는 그대들에게 편지를 쓰기 전까지는 밤이나 낮에 쉬지 못했다. 그것은 내자신이 원해서 택한 사업이 아니었다. 남편이 죽기 전에 나는 잘못을 책망하거나 의를 옹호하는 데 있어서 어떤 사람에게 증언하는 것을 나의 의무로 여기지 않기로 결심했다. 왜냐하면 실수하는 자들을 가혹하게 취급하거나 내가 전혀 지지하지 않은 행동을 한 어떤 사람들을 지혜롭지 못하게 높이는 일에 있어서 나의 말이 이용당하였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증언들을 제멋대로 설명했다. 하나님의 진리는 사람들의 유전과 조화 되지 않고, 그들의 의견에 일치되지도 않는다. 그것은 그 거룩한 창시자와 마찬가지로 변함이 없고,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다. 하나님에게서 분리되는 자들은 어둠을 빛이라 부르고 오류를 진리라 부른다. 그러나 어둠은 빛이 된다는 것이 결코 입증되지 않고 오류가 진리가 된다는 것 또한 입증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관례와 세상의 습관과 세상의 영향으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 어두워지고 혼란해졌기 때문에 빛과 어두움, 진리와 오류를 분별하는 모든 능력이 파괴된 것처럼 보인다. 나는 나의 말이 이해될 것이라는 희망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를 너무도 결정적으로 감동시키셨기 때문에 나는 그분의 영을 물리칠 수 없었다. 63 그대들 자신이 사단의 올무에 말려 있는 것을 알고 나는 위험이 너무 크기 때문에 침묵을 지킬 수 없음을 느꼈다.

여러 해 동안 주님께서는 그대들 앞에 교회의 상태를 제시해 오셨다. 거듭거듭 경고와 책망이 주어졌다. 1879년 10월 23일에 주님께서는 배틀크릭의 교회에 관하여 가장 인상 깊은 증언을 나에게 주셨다. 내가 그대들과 함께 지낸 과거 몇 달 동안, 폐부 깊숙히 그렇게 느꼈어야 할 자들이 비교적 안락하고 태연했던 반면에 나는 교회를 위하여 무거운 짐을 졌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가고 있는 길을 신뢰할 수 없었다. 그들이 주님께서 하지 못하도록 경고하신 바로 그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영적 상태를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주장하신다. 그들은 악을 품고 내게서 분리되었다.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이 길을 잃었다. 죄가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들은 생수의 근원이 되는 나를 버리고 물을 저축할 수 없는 터진 웅덩이를 팠다. 많은 사람들이 내 앞에서 그들의 길을 타락시켰다. 질투, 피차간의 증오, 시기, 그릇된 추측, 다툼, 분쟁, 빈정거림 등이 그들이 맺는 열매다. 그러므로 그들은 내가 보내는 증언에 유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곡한 행위를 보고 회개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내가 그들을 고칠 수 있을 터 인데.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진리를 옹호해 온 오랫동안의 세월을 만족감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다. 그들은 오늘날 그들의 과거의 시련과 순종 때문에 상급을 받을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그들의 성실을 유지하면서 완전을 향하여 전진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과거에 하나님께 속한 일에서의 이 진실한 경험이 그들로 하여금 그분 앞에서 더욱 죄가 많게 한다. 지난날의 성실이 현실의 태만을 결코 속해 주지 않을 것이다. 어제의 정직이 오늘의 거짓을 속해 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은, “화잇 자매가 남편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증언들이 남편의 정신과 판단에 의하여 꼴 지워지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그들이 증언들을 무시하는 일을 변명했다. 64 또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시키거나 그들에게 영향력을 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나에게서 얻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교회에서 회개시키는 하나님의 영이 보이기 전에는 나의 펜에서 더 이상의 것은 아무것도 나가지않게 해야 한다고 내가 결심한 것이 그 때였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나의 심령에 무거운 짐을 지우셨다. 나는 여러분들을 위하여 열렬하게 활동했다. 이것이 나의 남편과 내 자신에게 얼마나 큰 희생을 겪게 했는지는 영원이 말해 줄 것이다. 주님께서 여러 해 동안 내 앞에 그들의 상황을 제시해 주셨을 때 내가 교회의 상태를 모르고 있었던가? 반복해서 경고가 주어졌지만 결정적인 변화는 없었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과 동화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쾌히 여기신 것을 보았다. 나는 _______형제의 자녀들이 그에게 올무가 되어온 것을 보았다. 그들의 사상과 의견, 그들의 감정과 말이 그의 마음에 영향을 주고 그의 판단을 눈멀게 했다. 이 젊은이들은 불신앙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져 있다. 하나님을 믿는 어머니의 믿음과 신뢰의 부족은 하나의 유산으로 자녀들에게 주어졌다. 자녀들에게 대한 어머니의 헌신은 하나님께 대한 그의 헌신보다 더 크다. 아버지도 그의 의무를 등한히 했다. 그들의 그릇된 행동의 결과가 자녀들에게 나타난다.

내가 교회에 말할 때 나는 부모들에게 자녀들에 대한 엄숙한 책임을 감명깊이 알려 주고자 노력했다. 왜냐하면 나는 이 젊은이들의 상태와, 어떤 경향이 오늘의 그들로 만들었는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는 그대들 사이에서 마지막으로 노력하면서 내가 어떤 짐을 졌는지 안다. 내가 만일 그대들의 위험을 보지 않았을 것 같으면 나는 결코 혼신의 힘을 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그대들의 마음을 겸비하게 하고, 회개와 믿음으로 그분께 돌아오도록 그대들을 각성시키고자 열망했다.

그러나 이제 내가 그대들에게 경고와 책망의 증언을 보내게 되자 그대들 중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단순히 화잇 자매의 의견이라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그대들은 하나님의 영을 모독했다. 그대들은 주님께서 예언의 신을 통하여 그분 자신을 어떻게 나타내셨는지 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내 앞에 지나갔다. 65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들이 내게보였는데 여러 해 후 그들을 보았을 때 나는 그들을 알아보았다. 나는 나의 마음에 이전에 제시되었던 문제들에 관한 생생한 느낌을 가지고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하여 한밤중에 쓴 편지들이 대륙을 횡단해 가서 위기의 때에 그 편지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은 큰 재난을 모면했다. 이것은 여러 해 동안의 나의 사업이 되어 왔다. 한 세력이 내가 생각하지못한 잘못을 책망하고 견책하도록 나를 강요했다. 과거 36년 동안의 이 사업은 위에서 온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아래에서 온 것인가?

틀렸기는 하지만, 어떤 사람들이 그렇게 나타내려고 애쓰듯이 내가 교인들에게서 받은 편지들을 통하여 편지를 쓰도록 영향을 받았다고 가정해 보자. 바울은 어떠했던가? 글로에의 집안을 통하여 고린도 교회의 상태에 관하여 소식을 듣고 그는 그 교회에 첫 편지를 쓰게 되었다. 존재하는 사실들을 그에게 알려 주는 개인적 편지들이 그에게 왔고, 답장을 보내면서 그는 유의한다면 존재하는 악을 교정할 수 있는 일반적 원칙들을 제시했다. 매우 부드럽고 지혜롭게 그는 그들 사이에 분쟁이 없이 같은 것을 모두 말하도록 그들을 권고한다.

바울은 영감받은 사도였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언제나 당신의 백성들의 상태를 그대로 그에게 계시하지 않으셨다. 교회의 번영에 관심을 가진 자들이 악이 침범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 문제를 그에게 제시해 주셨었다. 그러자 그는 이미 받은 빛에 의하여 이런 일의 참 성격을 판단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주님께서 그 특별한 때를 위하여 어떤 새로운 계시를 그에게 주지 않으셨다는 이유로, 진정한 마음으로 빛을 구하고 있던 자들이 그의 기별을 다만 일반적인 편지로 간주해 버리지 않았다.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주님께서는 교회에 일어날 어려움과 위험을 그에게 보여 주시고, 그런 일이 일어날 때에 그가 어떻게 처리할지 알 수 있게 해주셨다.

그는 교회를 보호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다. 그는 하나님께 결산보고를 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영혼들을 돌봐야 했다. 66 그럴진대 그가 그들의 무질서와 분쟁의 상태에 관한 소식에 유의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결코 그럴 수 없었다. 그가 그들에게 보낸 책망은 그의 다른 서신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영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 이 책망이 주어졌을 때, 어떤 사람들은 교정을 받고자 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고 바울은 하나의 인간으로서 단순히 그의 의견을 피력한 데 불과하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 자신의 판단을 바울의 판단 못지않는 것으로 간주했다.

우리 백성들 사이에서 옛 지계표를 떠나 자신의 명철을 따라온 많은 사람들도 그와 마찬가지이다. 나의 사업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라는 신념으로 양심을 안정시킬 수만 있다면 그런 사람들은 얼마나 큰 안도감을 느끼겠는가. 그러나 그대들의 불신이 그 상황에 있는 사실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그대들은 품성에 있어서, 도덕적·신앙적 경험에 있어서 결함이 있다. 원한다면 그 사실에 대하여 그대들의 눈을 감아보라. 그러나 이것은 그대들의 극히 적은 부분도 더 완전하게 하지 못한다. 유일의 치료 수단은 어린 양의 피에 씻는 것이다.

만일 그대들이 제멋대로 하기 위해 하나님의 권고를 저버린다면, 그대들이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에게 보내신 증언들에 대한 그들의 신임을 감소시킨다면, 그대들은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이 한 것처럼 분명히 하나님을 반역하고 있는 것이다. 그대들은 그들의 역사를 알고 있다. 그대들은 그들이 그들 자신의 의견에 있어서 얼마나 완고했던지 알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판단이 모세의 판단보다 낫고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큰 해를 끼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그들과 연합한 자들은 그들의 의견을 그처럼 굳혔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독특한 방법으로 나타나서 지도자들과 족장들을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이튿날 살아남은 자들은 모세에게 와서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도다”(민 16:41)라고 말했다 우리는 얼마나 무서운 기만이 인간의 마음을 엄습하는지 보게 된다. 하나님께로서 오지 않은 영에 물든 영혼들을 각성시키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나는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그대들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있는지 조심하라고 말하고자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업이다. 그러므로 그대들이 하나님의 기별을 취급하는 태도에 대하여 그분께 결산 보고를 해야 한다.

67 죽어가는 남편의 병상 곁에 서 있는 동안, 나는 다른 사람들이 그들에게 해당되는 짐을 졌을 것 같으면 그가 살 수도 있었을 것을 알았다. 그때 나는 고뇌하면서, 참석한 사람들이 마음을 강퍅하게 함으로써 더 이상 하나님의 영을 슬프게 하지 않도록 탄원했다. 몇 일 후 내 자신이 사경을 헤메이게 되었다. 그 때 나는 내 자신에 관하여, 또한 교회에 관하여 가장 분명하게 보게 되었다. 그것이 다만 나의 마지막 기회가 될른지 알지 못하면서 나는 매우 쇠약한 중에 그대들에게 나의 마지막 증언을 했다. 그대들은 그 엄숙한 시간을 잊어버렸는가? 나는 그것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내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출두당했던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대들의 배교의 상태, 그대들의 마음의 완고함, 그대들의 사랑과 영성의 조화의 부족, 하나님이 그대들에게 보존하기를 바라시는 단순과 순결에서의 이탈-나는 그 모든 것을 알았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느꼈다. 흠잡기, 비난하기, 질투, 최고의 자리를 위한 다툼 등이 그대들 사이에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그것이 어디로 이끌고 갈지를 보았다. 나는 그 노력이 나의 생명을 앗아가지나 않을까 두려워했다. 그러나 그대들에 대하여 내가 느낀 관심은 나로 하여금 말하게 했다. 하나님께서 그날 그대들에게 말씀하셨다. 그것이 어떤 지속적인 인상을 남겼는가?

내가 콜로라도에 갔을 때 나는 그대들을 위하여 너무 무거운 짐을 졌기 때문에 쇠약한 중에서도 나는 여러 페이지의 편지를 써서 그대들의 장막집회에서 읽혀지게 했다. 나는 몸이 연약하고 떨렸지만 그대들에 편지를 쓰기 위하여 새벽 3시에 일어났다. 하나님께서는 흙인 인간을 통하여 말씀하고 계셨다. 그대들은 이 교통이 다만 하나의 편지에 불과하다고 말할 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은 하나의 편지였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영으로 감동된 것이었다. 그 편지는 내게 나타난 것들을 그대들에게 제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내가 기록하는 이 편지들, 내가 전하는 증언들을 통하여 나는 주님께서 내게 제시하신 것을 그대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나는 단순히 내 자신의 사상을 나타내는 하나의 기사도 기록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이상 가운데 내 앞에 펼쳐 주신 것-보좌에서 비취는 귀중한 광선들이다.

68 오클랜드에 온 후 나는 배틀크릭의 상황을 깨닫고 괴로움을 당하였다. 나는 그대들을 돕기에는 연약하고 힘이 없었다. 나는 불신의 누룩이 역사하고 있음을 알았다.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의 명령을 무시한 자들은 그 말씀에 유의하도록 그들을 권유한 증언들을 무시하고 있었다. 지난 겨울 힐즈버그를 방문하고 있는 동안 나는 많은 기도를 드렸고 근심과 슬픔으로 눌렸다. 그러나 내가 기도하고 있는 동안 주님께서는 흑암을 즉시 몰아내 버리셨고, 큰 빛이 방에 충만했다. 하나님의 천사가 내 곁에 있었으며, 나는 베틀크릭에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대들이 회의에 참석하여 거기서 하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만일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나는 나의 기억에서 영원히 지워 버릴 수 있기를 바랄 것을 보고 들었다. 나의 심령이 너무도 큰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 하고 어떻게 말할지를 몰랐다. 어떤 것들은 내가 언급할 수가 없다. 나는 이것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많은 것들이 아직도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게 주어진 빛을 모아서 그 광선을 하나님의 백성에게 비추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기사를 씀으로써 이 일을 해 왔다. 나는 여러 달 동안 거의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배틀크릭에서 내게 주어진 마지막 두 증언 후 기록된 다른 기사들을 모았다. 나는 이것들을 기록하여 그대들에게 서둘러 보냈다. 그러나 내 자신을 적절히 돌보는 일을 등한히 했으므로 나는 무거운 짐에 눌렸다. 나의 기록은 그대들이 대총회에 참석하기 전까지 모두 끝나지 않았다.

다시 기도하는 동안에, 주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계시하셨다. 나는 다시 한 번 배틀크릭에 있었다. 나는 많은 집에 있었고, 그대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하는 말을 들었다. 상세한 것은 내가 지금 말할 여유가 없다. 나는 또한 매우 인상적인 여러 꿈들을 꾸었다.

그대들은 어떤 음성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인정할 것인가? 주님께서 그대들의 잘못을 고쳐 주고 그대들의 행동을 사실 그대로 알려 주기 위하여 어떤 능력을 여분으로 더 간직하고 계신가? 교회에서 역사할 어떤 능력을 여분으로 더 갖고 계신가? 69 만일 그대들이 불확실의 모든 그림자와 의심의 모든 가능성이 제거될 때까지 믿고자 하지 않을 것 같으면 그대들은 결코 믿지 못할 것이다. 완전한 지식을 요구하는 의심은 결코 믿음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믿음은 증거 위에 세워지는 것이지 실증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다른 음성들이 반대의 길을 따르도록 우리를 권유하고 있을 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의무의 음성에 순종하도록 요구하신다.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말하는 음성을 분별하도록 우리에게 열렬한 주의를 기울이라고 요구한다. 우리는 성향을 저항하고 정복해야 하며, 협상이나 타협 없이 양심의 소리에 순종하여, 양심의 명령이 중단되어 의지와 충동이 지배하지 않도록 해야한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지 않기로 작정함으로써 그분의 영을 저항하지 않은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말씀이 이르러 온다. 이 음성은 경고와 권면과 책망을 통하여 듣게 된다. 이것은 주님의 백성에게 주어지는 주님의 빛의 기별이다. 우리가 만일 더 큰 음성의 호소와 더 좋은 기회를 기다린다면 아마도 빛은 떠나가고 우리는 흑암 중에 머물게 될 것이다.

순종이 십자가를 요구할 때, 하나님의 영의 호소와 그분의 말씀에 따르기를 한번 등한히 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은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는데, 마지막 날에 책들이 펼쳐지기 전에는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는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쾌락과 성향이 반대 방향으로 이끌기 때문에 오늘 등한히 한 성령의 호소는 내일은 각성시키거나 심지어 감명을 주는 일에서까지도 무력해질 수도 있다. 민첩하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현재의 기회를 이용하는 것이 은혜와 진리의 지식 가운데서 자라나는 유일의 길이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만군의 여호와 앞에 서있다는 생각을 언제나 간직하고, 심지어 한마디의 말, 하나의 행동, 한가지의 생각까지도 영원하신 분의 눈에 거슬려서는 안 된다. 그 때 우리는 사람이나 지상의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우주를 통치하시는 왕, 우리 개인의 운명을 쥐고 계시는 분께서 우리의 모든 일을 인정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어느 곳에서나 지극히 높으신 분의 종인 것을 느낀다면 우리는 더욱 신중해 지고, 우리의 전 생애는 세상의 명예가 결코 줄 수 없는 의미와 거룩함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70 만일 하나님의 임재를 계속해서 느낀다면, 마음의 생각, 입술의 말, 생애의 모든 행동이 우리의 품성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 것이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말은, “보라, 하나님이 여기 계시다”는 것이 되게 하라. 그러면 생활은 순결해지고, 품성은 흠이 없어지고, 심령은 계속해서 주님께로 올라가게 될 것이다. 그대들은 배틀크릭에서 이 길을 좇지 않았다. 나는 만일 저지되지 않으면 영적 죽음을 초래할 고통스럽고 전염성이 있는 질병이 그대들에게 있는 것을 보았다.

많은 사람들은 안락과 쾌락의 생애를 욕망함으로써 멸망당한다. 극기는 그들에게 있어서 달갑지 못하다. 그들은 하나님께 충성하는 길에서 분리할 수 없는 시련을 피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그들은 이생의 좋은 것들을 갖는 데 마음을 두고 있다. 이것은 인간적인 성공이다. 그러나 그것은 미래의 영원한 복리를 희생하여 얻는 것이 아닌가? 생애의 위대한 사업은 우리 자신들이, 이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는 하나님의 진실한 종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우리는 의무의 길에서 발견되는 그런 현실적인 행복과 성공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야 한다. 우리의 가장 큰 힘은 우리가 우리의 연약함을 느끼고 인정할 때 얻게 된다. 배틀크릭에 있는 그대들 중 어느 한 사람이 당할 수 있는 가장 큰 손실은 옳은 일을 행하고자 하는 열성과 줄기찬 열심을 잃어버리는 것, 유혹을 저항할 힘을 상실하는 것, 진리와 의무의 원칙을 믿는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어떤 사람도 자신의 양심상 정직을 보존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진리와 하나님께 완전히 바치지 않는 한 성공한 사람으로 스스로 자긍해서는 안 된다. 어떠한 시련이 우리의 길을 둘러싸고, 어떠한 도덕적 흑암이 우리를 포위할지라도 우리는 꾸준하게 앞을 향하여 전진하고 선한 사업에서 용기나 희망을 결코 잃지 말아야 한다. 인내와 믿음과 의무를 좋아하는 마음은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다. 자아를 굴복시키고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은 매일의 과업이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신뢰하고 당신의 도움을 구하는 영혼을 결코 바라지 않으실 것이다. 71 생명의 면류관은 오직 승리자의 이마에만 씌워진다. 각 사람에게는 생명이 지속하는 한 하나님을 위한 열렬하고 엄숙한 사업이 있다. 사단의 세력이 증가하고 그의 간계가 더해 감에 따라 하나님의 양떼를 돌보는 책임을 맡은 자들은 기량과 민활과 철저한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우리 각 사람은 자기 자신의 영혼을 위하여 해야 할 일이 있을 뿐만 아니라 영생을 얻도록 다른 사람들을 깨울 의무도 있다.

나의 형제들이여, 그대들이 빛 가운데로 걸어가는 일을 죄스러울 정도로 등한히 했기 때문에 그대들이 흑암 속에 덮여 있는 사실을 말하기란 참으로 고통스럽다. 그대들이 오늘날 빛을 깨닫지 못함으로 순종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정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대들이 품어 온 의심과, 하나님의 요구에 유의하지 않은 그대들의 등한이 지각을 너무도 눈멀게 했으므로 지금은 흑암이 그대들에게 빛이 되고, 빛은 흑암이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에게 완전을 향하여 나아가도록 명령하셨다. 그리스도교는 전진의 종교이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빛은 완전하고 충분하며, 우리가 그것을 요구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주님께서 어떤 축복을 주시든지 간에 그분은 필요 이상의 무한한 공급품, 우리가 얼마든지 꺼낼 수 있는 무진장의 저장물을 가지고 계신다. 회의론자는 복음의 거룩한 요구를 농담과 조롱과 부인으로 대할지도 모른다. 세상의 정신은 많은 사람을 오염시키고 소수의 사람을 지배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사업은 큰 노력과 계속적인 희생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지만 마침내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다.

그 말씀은 앞으로 전진하라, 그대들 개인의 의무를 감당하라, 그리고 모든 결과는 하나님의 손에 맡기라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이 인도하시는 곳을 향하여 움직이면 우리는 그분의 승리를 보고 그분의 기쁨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승리의 면류관을 쓰려면 투쟁에 참여해야 한다. 예수님처럼, 우리는 고난을 통하여 완전해져야 한다. 만일 그리스도의 생애가 안락한 것이었다면 우리도 편안한 마음으로 게으름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의 생애가 계속적인 극기와 고난과 자아 희생으로 특징지워졌으므로, 우리가 그분과 같은 일을 당한다 하더라도 아무런 불평을 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빛되시는 분이 우리의 안내자가 된다면 우리는 가장 어두운 길에서도 안전하게 걸어갈 수 있다.

72 주님께서는 그대들을 시험하며 입증하고 계신다. 그분은 권면하고, 권고하고 호소하셨다. 이 모든 엄숙한 권고는 교회를 더욱 좋게 만들거나 결정적으로 더 나쁘게 만들거나 할 것이다. 주님께서 교정하고 권면하기 위하여 더 자주 말씀하시면 말씀할수록 그대들은 그분의 음성을 무시하고 그대들은 더욱 더 그 음성을 거듭해서 거절하고자 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부를지라도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펼지라도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라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잠 1:24-31).

그대들은 두 견해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지 않은가? 그대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빛에 유의하기를 등한히 하고 있지 않은가? 그대들 중 어느 사람이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떠나갈까 조심하라. 그대들은 권고받는 날을 알지 못한다. 유대인들의 큰 죄는 현실의 기회를 등한히 하고 거절한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오늘날 당신을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을 살펴보실 때, 그분은 비열한 배은망덕, 텅 빈 형식주의, 위선적 불성실, 바리새인적 교만과 배교를 보신다.

그리스도께서 감람산 꼭대기에서 흘리신 눈물은 마지막 때까지의 각개인의 완고와 배은 망덕 때문이었다. 그분은 당신의 사랑이 멸시당한 것을 보신다. 영혼의 성전 뜰은 거룩하지 못한 장사의 장소로 바뀌었다. 이기심, 황금만능주의, 적의, 질투, 교만, 정욕은 모두 인간의 마음 속에 간직되어 있다. 그분의 경고는 거절당하고, 멸시받고, 그분의 대사들은 무관심하게 취급되고, 그들의 말은 무익한 이야기로 여겨진다. 73 예수님은 자비로 말씀하시지만, 이 자비가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분은 엄숙한 경고로 말씀하셨지만 이 경고는 거절당했다.

나는 오랫동안 믿음을 공언해 온 그대들, 지금도 여전히 그리스도께 외관상 존경을 표하고 있는 그대들에게 호소한다. 그대들 자신의 영혼을 속이지 말라. 예수님께서 높이 평가하시는 것은 온 마음을 다해 드리는 헌신이다. 심령의 충성만이 하나님 보시기에 가치가 있다.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너도”-그리스도께서는 이 순간에 그대들에게 개인적으로 말씀하시며, 당신의 보좌에서 굽어보시고. 자신의 위험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긍휼히 여기지않는 자들을 애타는 마음으로 동정하고 계신다.

많은 사람들은 영적으로 죽어 있으면서도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어느 날 이렇게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2, 23) 말하게 될 것이다. 만일 그대들이 의의 태양이 질 때까지 빈둥거리며 머뭇거린다면 그대들을 향하여 화가 선언되고, 영원한 밤의 어두움이 그대들의 몫이 될 것이다. 아, 그 냉랭하고 형식적이고 세속적인 마음이 녹아질 수 있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눈물뿐 아니라 당신의 피도 흘리셨다. 그분의 이와 같은 사랑의 표현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크게 겸손하도록 각성시켜 주지 않겠는가? 하나님께 인정을 받기 위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겸비와 겸손이다.

하나님께서 인도하고 계시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불만족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완전하신 분에게서 오는 빛이 그에게 비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본되시는 분을 보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평가하는 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기 위하여 결함들을 볼 것이다. 그들은 예민하고 회의적이고 정죄를 잘한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세우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을 무너뜨릴 것이다.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그대들의 상황을 내 앞에 제시하시고, 그대들이 받은 바 빛에 유의하지 않았음이 내게 알려졌을 때, 나는 그분의 이름으로 분명히 그대들에게 말해 주라는 명령을 받았다. 74 그분의 분노가 그대들을 향하여 불타올랐기 때문이었다. 이런 말이 내게 주어졌다. “그대의 사업은 하나님께로부터 임명받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대의 말을 듣지않을 것이다. 그들이 위대한 교사에게서 듣기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길이 그들의 눈에 옳기 때문에 교정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듣든지 안 듣든지 상관하지 말고 내가 그대에게 주는 책망과 경고를 그들에게 전하라.”

나는 주님의 증언을 그대들에게 전한다. 즐겨 교정을 받고자 하는 자들은 모두 그분의 음성을 들을 것이다. 그러나 원수에게 기만을 당한 자들은 그들의 행위가 책망을 받을까봐 두려워서 지금 빛으로 나오기를 원치 않고 있다. 그대들 중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역사와 임재를 분별할 수 없다. 그대들은 그분이 어떤 분임을 알지 못한다. 주님께서는 여전히 은혜로우시며, 회개와 믿음으로 당신께 돌아오는 모든 사람을 즐겨 용서하고자 하신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어디에 걸려 넘어지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에 유의하지 않고, 그들 자신의 시력과 마음의 식별을 따른다. 불신과 회의가 믿음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들은 나를 버렸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그들의 단순함에서 떠나고 거룩한 복음의 소명을 등한히 한 것을 보았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세상의 관습과 처세훈을 적용함으로 스스로를 타락시키지 말도록 권고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측량할 수 없는 부를 값없이 풍부하게 주시고자 하셨지만 그들은 그것을 받기에 합당하지 않음을 스스로 증거한다.

많은 사람들은 심령을 허영적으로 높이고 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사업에 사용할 수 있는 어떤 재능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자마자 즉시 그 재능을 과대 평가하여 마치 그가 교회의 기둥이나 된 것처럼 자기 스스로를 지나치게 높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는 마음에 들도록 자신이 해낼 수 있는 사업을 자신이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적은 재능을 가진 어떤 사람이 하도록 넘겨 준다. 그는 더 높은 위치를 생각하고 이야기한다. 그는 사람들 앞에 자신의 빛을 비추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생애에서 비취는 은혜와 온유와 마음의 겸손과 친절과 너그러움과 사랑 대신에 잘난 체하는 자아를 어느 곳에서나 나타낸다.

75 우리의 감화가 언제나 축복이 되고 격려가 되고 향상시키는 것이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정신이 우리의 품성과 행동을 지배해야 한다. 우리의 사상과 우리의 말과 우리의 행동은 우리가 하나님께로서 난 사실과 그리스도의 화평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음을 증거해야 한다. 이런 방법으로, 우리는 우리 구주께서 우리의 빛을 사람들에게 비추라고 명령하실 때 말씀하시는 그 은혜로운 빛을 우리 주변에 비추게 된다. 이와 같이 우리는 하늘로 향해 가는 빛나는 자취를 남기고 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그리스도와 연결되는 모든 사람은 이 하늘의 기름 부음 없이 가장 유능한 설교의 활동에 의한 것보다 가장 효과적인 의의 전파자들이 될 수 있다. 마치 가장 적게 과시하는 꽃들이 가장 감미로운 향기를 흩뿌리듯이 그들 자신의 밝음을 가장 적게 의식하는 빛의 전달자들이 가장 순결한 빛을 비추게 된다.

우리 백성들은 매우 위험한 실수를 범하고 있다. 어떤 사람을 칭찬하고 추켜 세우면 반드시 그에게 큰 해를 끼치게 된다. 이렇게 하는 자들은 심각한 실망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유한한 인간은 지나치게 신뢰하면서 결코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은 충분히 신뢰하지 않는다. 공중의 주목을 끌도록 사람들을 권유하고자 하는 열망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세상과 친구가 된 증거이다. 그것은 오늘날을 특징짓는 정신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예수의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영적 흑암과 심령의 빈곤이 그들을 엄습한다. 때때로 열등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은 예수에게서 시선을 돌려 인간의 표준에 불과한 것을 바라본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자기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지 못하게 됨으로써 자신의 능력과 타고난 재능을 지나치게 펑가하게 된다. 한 백성으로서의 우리들 사이에는 인간적 도구와 단순한 인간적 재능에 대한 우상숭배가 있으며, 피상적 품성을 지닌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고 있다. 우리는 자아에 대하여 죽고 겸손하고 어린 아이 같은 믿음을 간직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들의 단순함에서 떠나갔다. 하나님을 그들의 힘으로 삼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영적으로 약하고 무력하다.

나는 세상의 정신이 신속히 교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았다. 그대들은 고대 이스라엘이 따랐던 것과 동일한 길을 따르고 있다. 76 그대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으로서의 그대들의 거룩한 부르심에서 똑같이 떠나가고 있다. 그대들은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동참하고 있다. 그대들이 불신자들과 연합함으로 주님께서 불쾌히 여기셨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평화에 관한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들은 신속하게 그대들의 눈에서 숨겨지고 있다. 빛을 따르기를 등한히 하기 때문에, 그대들은 그리스도께서 저주를 선고하신 유대인들보다 불리한 위치에 놓일 것이다.

나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반함으로 증언을 불신하는 일이 꾸준히 증가해 온 것을 보았다. 그 일은 우리의 대열 전반을 통하여, 곧 모든 지역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우리의 교회들이 경험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나는 현재 우리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섭리 아래 있음을 보았다. 그러나 이 일이 얼마나 오랫동안 계속될지 아무도 말할 수 없다. 우리에 대하여 나타내신 자비가 얼마나 큰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진심으로 하나님께 헌신한 자들은 별로 없다. 폭풍이 심한 밤에 뜬 별들처럼 구름 사이에서 여기저기 빛나는 자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만족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리를 듣는 많은 사람들이 살아있노라고 공언하지만, 영적으로는 죽어 있다. 여러 해 동안 그들은 우리의 회중 가운데 출입했지만, 그들은 점점 더 계시된 진리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그들은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지 않는다. 그들은 영적이요 신령적인 것의 맛을 모른다. 그들은 진리에 동의하지만 진리를 통한 거룩함을 입고 있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도 그분의 영의 증언도 그들에게 어떤 영속적인 감명을 주지 않는다. 바로 그들이 등한히 한 빛과 특권과 기회에 따라서 그들은 정죄받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하는 많은 사람들 자신이 죄를 품고 있다. 거룩한 멜로디와 같은 하나님의 영의 호소, 그처럼 풍부하고 풍성한 그분의 말씀의 약속들, 우상숭배와 불순종에 대한 위협, 이 모든 것도 세속으로 굳어진 마음을 녹이기에 무력하다.

우리 백성들 중 많은 사람들은 미지근하다. 77 그들은 편들지도 않고 대적하지도 않고, 차지도 않고 더웁지도 않는 메로스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기는 해도 행하지는 않는다. 만일 그들이 이런 상태에 머물 것 같으면, 그분께서는 혐오로써 그들을 거절하실 것이다. 큰 빛과 큰 특권과 온갖 영적 유익을 누려 온 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거의 동시에 그리스도와 세상을 찬양한다. 그들은 하나님과 재물 앞에 머리를 숙인다. 그들은 세상의 자녀들과 흥겹게 지내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축복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주님께서 그대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기를 바란다. 만일 그대들이 이 길을 따라간다면 그대들에 관하여서는 불행 외에 아무것도 예언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에는 목적이 있다. 그러나 그대들은 그 목적을 좌절시키고 있다. 그분께서는 그대들이 얼마 안 있어 좌절되는 것을 보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사태가 이르러 오도록 하실 것이나, 그 때는 너무 늦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잔인하고 기만적인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시리아의 왕이 되게 하고 그로 하여금 우상숭배에 젖어 있는 이스라엘을 응징하도록 명령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대들이 좋아하는 기만 가운데 그대들을 버려 두지 않으실지 누가 아는가? 성실하고, 확고하고, 진실한 설교자들이 우리의 배은 망덕한 교회들에게 평화의 복음을 전해줄 마지막 사람들이 될지 누가 아는가? 멸망시키는 자들은 이미 사단의 손에 훈련을 받고 있으며, 위치를 바꾸기 위하여 몇 사람의 기수들만 더 떠나가고, 주님께서 평화가 없다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평화, 평화”라고 부르짖는 거짓 선지자의 음성이 들릴 때만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좀처럼 울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나의 눈은 눈물이 어려 볼 수 없다. 내가 글을 쓸 때 눈물이 종이 위에 떨어지고 있다. 우리들 가운데서 모든 예언하는 일은 머지않아 그칠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분기시켜 온 음성은 더 이상 육신적 잠을 자고 있는 자들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비상한 일을 지상에서 행하실 때, 거룩한 손들이 법궤를 더 이상 나르지 않을 때, 사람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다. 아, 그대들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78 아, 우리의 백성들이 니느웨의 거민들처럼 온 힘을 다하여 회개하고, 온 마음을 다하여 믿게되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맹렬한 노를 그들에게서 돌이키시기를 바란다.

나는 부모들이 세상과 일치되고, 이와 같은 시대에 자녀들로 하여금 세상의 표준에 맞추도록 허용하는 것을 보면 고통과 번민으로 충만해진다. 나는 현대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가족들의 상태가 내 앞에 펼쳐질 때 두려움으로 가득해진다. 젊은이들의 방탕과 심지어 어린이들의 방탕도 거의 믿을 수 없을 정도이다. 부모들은 은밀히 행하는 악습이 자녀들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고 훼손시키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소돔 사람들의 특징이 되었던 죄가 그들 사이에 존재한다. 부모들에게 책임이 있다. 그들이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도록 교육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녀들을 제지하지 않았고. 여호와의 도를 그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지 않았다. 그들은 자녀들이 원하는 시간에 출입하게 하고 세상 사람들과 교제하도록 허용했다. 부모의 교훈과 권위를 무효로 만들어 버리는 이와 같은 세속적인 영향들은 주로 이른바 상류 사회에서 볼 수 있다. 그들의 의복, 외관, 오락 등을 통하여 그들은 그리스도께 반대되는 분위기로 그들을 둘러싼다.

우리의 유일한 안전은 하나님의 독특한 백성으로 서는 것이다. 우리는 이 타락한 시대의 습관과 유행에 한 치도 양보하지 말고 도덕적으로 자립하고 그 부패한 우상숭배의 관습과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교계의 신앙적 표준보다 더욱 뛰어나는 데에는 용기와 자립이 요망될 것이다. 그들은 구주의 극기의 본을 따르지 아니한다. 그들은 희생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제자가 되는 표라고 주장하시는 십자가를 면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우리의 백성들을 각성시키기 위하여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성경을 풀이하기 위하여 백성 앞에 서는 적지 않은 목사들이 더러워져 있음을 그대들에게 말한다. 그들의 마음은 부패하고, 그들의 손은 부정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평안하다, 평안하다”라고 부르짖는다. 그러므로 죄악의 일꾼들은 불안해 하지 않는다. 79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그분의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다. 오직 우리의 죄악이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분리시켰다. 교회는 몸을 더럽히고 심령을 불결하게 하는 교인들 때문에 부패해진다.

만일 덕을 세우는 일과 기도를 위한 집회에 함께 참석하는 모든 사람들이 진정한 예배자로 인정받을 수만 있다면, 비록 우리가 해야 할 것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을지라도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속일 수는 없다. 사실은 외관상으로는 보여지는 것과 너무도 다르다. 멀리에서 보면 많은 것들이 아름답게 보일지라도 가까이에서 살펴보면 결점 투성이로 나타날 것이다. 우리의 시대에 편만한 정신은 불신과 반역의 정신, 진리의 지식 때문에서가 아니고 실상은 가장 맹목적인 추측 때문에 생긴 거짓된 계몽의 정신이다.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과 그분의 영의 증언에 반대되는 정신이 있다. 단순한 인간의 이성을 계시된 하나님의 지혜보다 맹목적으로 높이는 정신이 있다.

이른바 소수의 자만에 빠진 철학가들의 견해를 성경의 진리나 성령의 증언들보다 더욱 신뢰할 만한 것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우리들 사이에서 책임 있는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바울과 베드로와 요한의 믿음과 같은 그런 믿음은 오늘날에 있어서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고 통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불합리하고, 신비적이며, 지성적 마음에 합당치 못하다고 선언된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들이 우리 백성을 징계할 하사엘임을 나에게 보여주셨다. 그들은 기록된 말씀보다 더 현명하다. 인간의 판단으로 하나님의 일의 신비를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분의 말씀의 진리를 이와 같이 불신하는 일은 어느 곳에서나, 또한 사회의 모든 계층에서 발견된다. 그것은 대부분의 우리의 학교에서 교수되고 양성소의 교과에 편입된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거짓의 영들을 좇고 있다 어느 곳에서나 신앙의 옷을 입은 흑암의 영이 그대들과 대결할 것이다.

80 거룩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모든 사람들이 실제적으로 거룩한 생활을 산다면, 세상에 진리를 증거하노라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이 진리를 전파하되 그것을 대항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이라면, 우리는 편만한 도덕적 흑암 속에서 무엇인가 희망적인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적 그리스도의 영은 이전에 결코 없었던 그런 범위까지 편만해 있다. 우리가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가 인생 중에 없어지도소이다”(시 12:1)라고 부르짖는 것도 당연하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시대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보았다. 이렇게 안이한 것을 좋아하는 영혼들은 전반적인 멸망에 삼키운 바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절망하지 않는다. 우리는 성실한 목사들이 없는 곳에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가졌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하나님께서는 목자들이 성실하지 못하면 당신이 친히 양 떼들을 돌보는 책임을 지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양떼들을 결코 인간 기구들에게 완전히 의존하게 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교회를 순결하게 할 날은 급히 이르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순결하고 진실한 한 백성을 소유하실 것이다. 미구에 크게 키질하는 일이 있을 때 우리는 이스라엘의 능력을 보다 더 잘 측정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 당신의 손에 키를 가지고 계신다는 것과, 그분께서 타작 마당을 철저히 정결하게 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나타내실 때가 가깝다는 징조들이 보인다.

큰 당황과 혼란이 있을 날이 신속하게 접근하고 있다. 천사의 옷을 입은 사단은 할 수만 있으면 택한 자라도 미혹할 것이다. 신들도 많고 주도 많을 것이며, 온갖 교리의 바람이 불 것이다.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딤전 6:12)에 가장 큰 존경을 바쳐온 자들은 그 때에 지도자들이 되지 못할 것이다. 지성과 비상한 재주와 재능을 의지해 온 자들은 그때에 일반 대중의 선두에 서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빛에 보조를 맞추지 않았다. 불성실한 자로 드러난 자들에게는 그 때에 양떼가 맡겨지지 않을 것이다. 불과 소수의 위대한 사람들만이 마지막 엄숙한 사업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자부심이 강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그분께서 그들을 사용하실 수 없다. 주님께서는 성실한 종들을 갖고 계시는데 그들은 흔들고 시험하는 시기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81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숨은 고귀한 사람들이 오늘날 있다. 그들은 그대들에게 집중적으로 비춰온 빛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거칠고 매력 없는 표면이면에 있는 진정한 그리스도인 품성의 순결한 빛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낮에 우리는 하늘을 쳐다볼지라도 별들을 보지 못한다. 별들은 물론 하늘에 고정되어 있다. 그러나 눈으로 그것들을 분별해 낼 수 없다. 밤에 우리는 별들의 진정한 빛을 바라보게 된다.

각 영혼에게 시험이 다가올 때가 멀지 않다. 짐승의 표가 우리에게 강요될 것이다. 한걸음 한걸음씩 세상의 요구에 양보하고 습관에 순응해 온 자들은 조소와 모욕과 위협적인 투옥과 죽음을 당하기보다는 오히려 권력에 굴복하는 것이 어려운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싸움은 하나님의 계명과 사람의 계명 사이에서 전개된다. 이 때에 교회 내에서 황금과 불순물이 분리될 것이다. 참된 경건은, 경건의 모양과 경건의 외부적 장식과는 분명히 구분될 것이다. 우리가 그 찬란한 광채로 인해 존경해 온 많은 별들이 흑암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쭉정이가 바람에 구름처럼 날려갈 것인데, 심지어 우리가 오직 풍성한 알곡만을 보는 곳에서도 그러할 것이다. 성소의 장식만을 취하고 그리스도의 의로 옷입지 않은 모든 사람은 그들의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낼 것이다.

열매 없는 나무들이 땅만 버리는 자로 베어질 때, 수많은 거짓 형제들이 진실한 사람들과 구별될 그 때, 숨어 있던 자들은 드러나서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호산나를 외치면서 대열에 참여할 것이다. 겁이 많고 자기를 불신했던 자들이 그리스도와 그분의 진리를 공개적으로 선포할 것이다. 교회에서 가장 약하고 주저하는 자가 다윗과 같아지되, 자원하는 마음과 담대한 마음으로 그러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서 밤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별들은 더욱 찬란해질 것이다. 사단은 충성된 자들을 몹시 괴롭힐 것이다. 82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넉넉히 이길 것이다. 그 때에 그리스도의 교회는, “달같이 아름답고 해같이 맑고 기치를 벌인 군대같이 엄위”(아 6:10)할 것이다.

선교 활동을 통하여 뿌려지고 있는 진리의 씨들이 그 때에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환난을 참고 예수를 위하여 고난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으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할 영혼들이 진리를 받아들일 것이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전세계를 휩쓰는 징벌이 세상을 지나갈 때, 키가 여호와의 타작 마당을 정결케 할 때,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들의 도움이 되실 것이다. 사단의 전리품들이 높이 들림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순결하고 거룩한 자들의 믿음은 쇠하지 않을 것이다.

엘리야는 밭을 갈고 있는 엘리사를 만나 성별의 겉옷을 그에게 던졌다. 이 위대하고 엄숙한 사업에 대한 부르심은 학문과 지위를 갖춘 사람들에게 주어졌다. 이 사람들이 스스로를 작게 여기고 주님을 완전히 의지했을 것 같으면, 주님께서는 당신의 깃발을 든 그들을 승리하게 하심으로써 영화롭게 해주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되고, 세상의 영향에 굴복했으므로 주님께서는 그들을 거절하셨다.

많은 사람들은 과학은 높이고, 과학의 하나님은 잃어버렸다. 이것은 가장 순결한 시대의 교회의 형편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시대에 거의 아무도 예상하지 않는 일을 하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학문을 연구하는 기관에서 외부적 훈련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서보다는 그분의 영의 기름 부음에 의하여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을 우리들 사이에서 일으키고 높이실 것이다. 이런 기관들은 멸시를 받거나 정죄를 받아서는 안 된다. 그것들은 하나님이 제정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다만 외부적 자격만을 줄 수 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학식이 많고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을 의존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나타내실 것이다.

우리들 가운데 진정으로 헌신한 사람은 별로 없고, 자아와의 싸움에서 싸우고 정복한 사람도 별로 없다. 진정한 회개는 감정과 동기의 결정적 변화이다. 83 그것은 세속적 연결에서 실제적으로 떠나는 것이며, 그들의 영적 분위기로부터 서둘러 떠나는 것이고, 그들의 사상과 견해와 영향의 지배적 능력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분리는 쌍방에 고통과 쓰라림을 준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주기 위하여 오셨다고 주장하시는 불화이다. 그러나 회개한 자들은, 그들의 친구들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지 않으면 최종적인 영원한 분리가 있을 것을 알고 그렇게 하기를 끊임없이 간절히 욕망할 것이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믿지 않는 친구들과 함께 있는 동안 경솔하고 경박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영혼들의 가치는 너무도 크다.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33)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로부터 애정을 분리시키는 것은 무엇이나 버려야 한다. 재물은 많은 사람들의 우상이다. 그 황금 사슬은 그들을 사단에게 붙들어 맨다. 명성과 세속적 영광은 또 다른 계층의 사람들에게 숭배를 받는다. 이기적 안락의 생애와 의무에서의 해방은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이다. 이것들은 부주의한 자의 발을 걸리게 하고자 쳐 놓은 사단의 올무이다. 그러나 이 노예적 속박은 반드시 깨뜨려져야 한다.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은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 우리는 절반은 주님의 것이요, 절반은 세상의 것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완전히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 않으면 그분의 백성이 아니다. 온갖 무겁고 얽매이기 쉬운 죄는 벗어 버려야 한다. 하나님의 파수꾼은 하나님께서 평강을 말씀하시지 않으신 때에 “평강하다, 평강하다”(렘 8:11)라고 부르짖을 수 없다. 성실한 파수꾼의 다음과 같은 음성이 들릴 것이다. 너희는 “그 가운데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여 스스로 정결케 할지어다”(사 52:11).

교회는 세상에 의해서나 사람들의 의견에 의해서 혹은 과거 한때의 상태에 의해서 평가할 수 없다. 현재의 교회의 믿음과 세상에서의 그 위치는, 만일 교회가 계속적으로 전진하고 향상했을 것 같으면 그들이 될 수 있었을 뻔했던 그 상태와 비교되어야 한다. 교회는 성소의 저울에 달려질 것이다. 만일 교회의 도덕적 특성과 영적 상태가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특권과 축복에 상응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부족함이 드러날 것이다. 84 빛은 교회가 가는 길에 분명하고 확실하게 비추어 오고 있다. 그리고 1882년의 빛은 교회에 책임을 요구한다. 만일 교회가 그의 달란트를 활용하지 않을 것 같으면, 교회의 열매가 하나님 앞에 완전하지 못할 것 같으면, 만일 교회의 빛이 어두워졌을 것 같으면, 교회는 분명히 부족함이 드러나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상태를 보시는 것처럼 그것을 아는 일이 우리에게서 숨겨진 것 같다. 우리는 보기는 하지만 깨닫지는 못한다. 우리는 듣기는 하지만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낮의 구름기둥과 밤의 불기둥이 성소 위에 머물러 있는 듯이 태연하게 안식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지만, 행동으로는 그분을 부인한다. 우리의 행동은, 우리가 지배를 받고 있노라고 공언하는 진리와 의의 원칙에 노골적으로 반대된다.

우리 대학의 교역자들

우리 대학의 모든 진정한 번영의 기초는 교사들과 학생들 편에서 하나님과 밀접히 연합하는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 그분의 교훈이 생애의 법칙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성경을 통하여 당신의 자녀들에게 계시된다. 성경이 읽혀지는 곳은 어디에서나,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교회에서나, 모든 사람들은 마치 하나님께서 실지로 임재하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조용하고 경건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고상한 신앙적 원칙이 우리의 학교에서 항상 유지되어 온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교사들과 학생들은 한 가지로 그들의 신앙을 숨기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특별히 세상 사람들이 대학을 후원하게 된 때부터 이런 현상이 존재해 왔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서 공공연하고 용감한 믿음의 고백을 요구하신다. 모든 사람은 자기의 위치를 고수하고,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기대하시는 그대로 세상과 천사들과 사람들 앞에서 구경거리가 되어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빛이 되어 말이나 침대 아래 감추지 않고 등경 위에 놓여져 집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빛을 비출 수 있게 해야 한다.

85 우리 대학의 교사들은 세상의 관습을 따르거나 세상의 원칙을 채택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께서 가장 크게 평가하시는 속성은 사랑과 순결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 속성을 간직해야 한다.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4:7, 12, 2, 3).

하나님께서는 젊은이들이 목회직에 투신하도록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셨다. 그들은 다른 어떤 곳에서는 얻을 수 없는 유익을 얻고자 하는 희망을 품고 우리 대학을 찾아왔다. 그러나 영혼의 가치를 별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의 구원에 대한 책임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 교사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은 엄숙한 확신을 대수롭지 않게 취급해 왔다. 그리고 교사들은, 하나님께서 젊은이들을 인도하고자 원하고 계셨던 길에서 그들을 돌이키려고 노력해 왔다.

자격을 잘 갖춘 교사들의 보수는 우리 목사들의 보수보다 훨씬 더 높은가 하면, 교사는 사업에 자신을 완전히 바치는 목사처럼 그렇게 열심히 활동하거나 그처럼 큰 불편을 감수하지 않는다. 이런 일이 젊은이들 앞에 제시되었고,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그분의 약속을 불신하도록 권고받아 왔다. 많은 젊은이들은 보다 안락한 길을 택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대신에 과학을 가르치거나 다른 어떤 직종에 종사하기 위하여 준비해 왔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업은,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면서도 진리의 사랑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지 않는 헌신하지 않은 교사들에 의하여 방해를 받아 왔다. 교육받은 젊은이는 그의 재능을 그리스도의 사업에 바치기에는 너무 귀중한 것으로 바라보도록 가르침을 받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아무런 요구도 할 수 없으신가? 누가 이 정신적 소양과 이런 업적을 얻을 능력을 주었는가? 그들은 여호와와 전혀 상관없이 그렇게 된 것으로 주장하겠는가?

86 세상을 모르고, 자신의 약점을 모르고, 장래를 알지 못하는 많은 젊은이들은 그들의 길을 가리켜 줄 하나님의 손이 필요함을 느끼지 못한다. 그는 암초들 사이로 자기 자신의 배를 운행해 가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젊은이들은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의 통치의 영역을 벗어나 있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창조주의 뜻을 염두에 두지 않고 그들이 원하는 길을 택할 자유가 없다.

재능은 가장 필요한 곳에서 제일 잘 계발되고 가장 좋게 평가된다. 그러나 두드러지기를 열망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진리를 간과해 버린다. 비록 신앙적 경험과 정신적 성취에 있어서 피상적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근시안적 야망은 하나님의 섭리로 그들에게 주어진 영역보다 더 높은 행동 영역을 탐한다. 주님께서는 요셉과 다니엘에게 요구하신 것처럼 그들에게 세속적 영화와 높은 지위의 유혹을 저항하도록 요구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에게 적합한 단 하나의 의무의 위치를 버리고 위험이 수반되는 위치를 차지하려고 기를 쓴다.

마게도냐의 부르짖음은 사방에서 우리에게 들려오고 있다. 동부와 서부에서, “우리에게 일꾼을 보내 달라”고 긴급하게 요청한다. 우리의 주변에는 모두, “희어져 추수하게” 된 들판들뿐이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요 4:35, 36)고 있다. 이런 들판들을 떠나서 오직 금전적 유익만을 줄 뿐인 사업에 종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높은 급료만을 구하고 있는 이기적인 일꾼들을 원하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그들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 것처럼 당신을 위하여 즐겨 가난하게 되고자 하는 자들을 부르신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 앞에 제시된 자극제는 무엇이었는가? 모욕, 조소, 가난, 수치, 거절, 배반, 십자가의 죽음이었다. 작은 목자들이 그들의 주인보다 더 안락한 운명을 구할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은 인생의 복잡한 일을 매우 단순하게 해준다. 열렬하게 구하는 모든 자에게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를 준다. 우리는 고난을 통하여 구속함을 받았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를 위하여 속죄를 이루어 주는 것은 그리스도의 귀중한 피이다. 수고와 희생과 위험을 통하여, 세속적 재산의 손실을 통하여, 그리고 심령의 고통을 통하여 복음이 세상에 전해졌다. 87 하나님께서는 활기와 힘을 가진 젊은이들을 부르셔서 당신과 함께 극기와 희생과 고난을 나누게 하신다. 그들이 그 부름을 받아들이면 그분께서는 그들을 그분의 도구로 삼으셔서 그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영혼들을 구원하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이 그 값을 헤아려 보고, 그들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속죄주를 섬기는 조건을 충분히 깨달은 후에 그들의 사업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신다.

나는 우리의 대학 설립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목적이 얼마나 무시되어 왔는지를 생각할 때 나의 감정을 도저히 표현할 수 없다. 그들의 헌신하지못한 생애를 통하여 경건의 모양을 가진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는 진리의 능력을 부인하고 있다. 진리를 위하여 궁핍과 수치와 학대와 죽음까지 당한 사도들의 역사를 바라보라.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받기에 합당하게 인정받은 것을 기뻐했다.

만일 많은 노력과 큰 고난으로 큰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의 백성된 우리들 중 누가 희생을 거절할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의 복음은 기쁜 소식의 그 기별을 들은 모든 영혼을 그 요구 속에 포함시킨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은혜에 우리는 무엇으로 보답할 것인가? 그분의 무한한 자비는 결코 갚을 수 없다. 우리는 다만 자원하는 순종과 감사한 마음으로 하는 봉사를 통하여 우리의 충성됨을 증거하고, 우리의 구속주를 영화롭게 할 수 있다.

나에게는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게 하는 순수한 신앙의 정신으로 감동된 우리의 젊은이들을 보는 것보다 더 큰 바램은 없다. 원칙의 지배를 받고, 순결과 의의 옷을 입은 그리스도의 젊은 제자들이여, 앞으로 전진하라. 그대들의 구주께서는 그대들의 재능에 가장 적합한 위치로 그대들을 인도하시고 그대들이 가장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는 곳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의무의 길에서, 그대들은 사는 날 동안 충분한 은혜를 분명히 받게 될 것이다.

복음의 전파는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택하신 수단이다. 그러나 우리의 첫번째 과업은 우리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과 일치되게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일할 준비를 갖추게 된다. 88 지나간 세대에는 우리의 열렬한 교역자들 사이에 마음을 크게 살피는 일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지도를 받기 위하여 함께 의논하고, 겸손하고 열렬한 기도로 연합했다. 그런데 목사들과 교사들 사이에 참된 선교 정신이 쇠퇴해가고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우리가 믿었던 그 때보다 더욱 가깝다. 지나가는 하루하루는 우리에게, 세상에 경고의 기별을 전할 날을 하나씩 감해준다. 오늘날 하나님께 대한 더욱 열렬한 간구와 더 큰 겸손과 더 큰 순결과 믿음이 있기를 바란다.

모든 사람은 끊임없이 위험을 당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하지만 그 말씀이 가르치는 겸손과 극기의 정신을 간직하지 않는 자들을 경계하도록 나는 교회에 경고하는 바이다. 그런 사람들은 위기의 때에 의존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들은 사울처럼 쉽사리 하나님의 음성을 무시한다. 그리고 그 사람처럼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길을 정당화시키고자 한다. 여호와의 선지자를 통하여 그분의 책망을 받았을 때, 사울은 단호하게 그가 하나님의 음성을 순종했노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는 양들과 소들은 그가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했다. 똑같은 방법으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충성을 주장하지만, 그들의 연주회들과 다른 쾌락적 모임, 그들의 세속적 교제, 그들의 자아 만족, 인기를 얻기 위한 그들의 열렬한 욕망 등은 모두 그들이 그분의 음성에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한다. “내 백성을 학대하는 자는 아이요 관할하는 자는 부녀라”(사 3:12).

그것은 복음이 우리 앞에 제시해 주는 높은 표준이다. 언행이 일치된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일 뿐만 아니라 고상한 피조물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늘과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보여주는 다함이 없는 빛이다. 그리스도에게서 생명을 흡수하고 있는 사람은 세상의 경박하고 만족을 줄 수 없는 것을 갖고자 하지 않을 것이다.

젊은이들은 품성과 교육이 가지각색일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독단적 제지와 거칠은 환경에서 살아왔음으로 그런 것이 그들에게 완고와 반항의 정신을 육성시켰다. 또 어떤 사람들은 가정의 귀염둥이로 지내면서 맹목적인 사랑을 가진 부모들에 의하여 그들의 기분대로 하도록 허용되어 왔다. 89 마침내 그들의 품성이 비뚤어질 때까지 모든 결점은 변호되어 왔다. 이처럼 기질이 다른 청년들을 성공적으로 취급하기 위하여 교사는 통솔에 있어서 확고 부동해야 함은 물론이요 지도에 있어서 큰 기지와 부드러움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적절한 규율에 대한 반감과 경멸까지도 때때로 나타날 것이다. 어떤 학생들은 범죄의 결과에 대하여 무모한 냉담을 보여 주는 반면에 또 어떤 사람들은 벌을 면하는 일에 그들의 비상한 재간을 다 발휘할 것이다. 이 모든 일은 그들의 교육을 맡아 있는 자들 편에 더욱 큰 인내와 더 큰 노력을 하도록 요구할 것이다.

교사들이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던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부모들측에서 대학의 징계 처분에 협력하지 못한 점이다. 만일 부모들이 교사의 권위를 지지해 주고자 굳게 서약했을 것 같으면, 많은 불복종과 부도덕과 방탕이 예방되었을 것이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정당한 권위를 존중하고 순종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그들은 자녀들이 올바른 습관을 굳게 형성하기까지 그들을 교훈하고, 지도하고, 제지하기 위하여 부단한 주의를 기울이고 부지런하게 활동해야 한다. 이런 훈련을 받음으로써 젊은이들은 사회의 제도와 도덕적 의무의 전반적 제지에 순응하게 될 것이다.

교훈과 모본에 의하여 젊은이들은 한 가지로 의복과 태도의 단순함, 근면, 절제, 검약 등을 배워야 한다. 많은 학생들은 부모들에게서 받은 돈을 너무 지나치게 낭비한다. 그들은 과시와 방종을 위하여 돈을 낭비함으로써 친구들에게 그들의 우월함을 보여 주고자 시도한다. 어떤 교육 기관에서는 이 문제가 너무도 심각한 문제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학생들의 의복이 규정되고 그들의 금전의 사용이 법으로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방종한 부모들과 학생들은 법을 피하기 위한 어떤 길을 발견할 것이다. 우리는 그런 수단을 쓰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 부모들에게 이 모든 문제를 주의 깊고 경건하게 고려해 보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권면을 구한 다음 그 말씀의 교훈과 일치되게 행동하도록 요구한다.

90 만일 노작 활동을 위한 시설들이 우리의 학교와 관련되어 제공되고, 학생들이 어떤 활동적인 일에 그들의 시간의 한 부분을 바치도록 요구되었을 것 같으면, 그것은 교육 기관에 파급되어 있는 악한 영향 중 많은 것을 방지하는 방위 수단임이 입증될 것이다. 경박하고 타락하게 하는 오락을 대신할 활기 있고 유용한 일들은 젊은이들의 생애의 원기 왕성을 발산할 수 있는 정당한 영역을 제공해 주고, 품성의 자중과 안정을 촉진시켜 줄 것이다. 지적인 계발은 물론이요, 도덕적·육체적 계발을 위한 욕망을 북돋우기 위하여 가능한 한 모든 노력이 기울여져야 한다. 만일 소녀들이 요리하는 법을 배우고, 특별히 좋은 빵을 굽는 법을 배울 것 같으면, 그들의 교육은 훨씬 더 가치 있는 것이 될 것이다. 유용한 노동에 대한 지식은, 수많은 사람들을 파멸시켜 왔고 지금도 여전히 파멸시키고있는 병든 감상주의(感傷主義)를 대부분 예방해 줄 것이다. 두뇌와 함께 근육을 활동시키면 실제적 생활의 평범한 의무에 대한 미각을 고조시켜 줄 것이다.

오늘날은 교육이 과시적이요 표면적 사업에 머물게 된 시대이다. ________형제는 본성적으로 조직적이고 철저한 것을 좋아하는 성품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일생 동안의 훈련과 교육을 통하여 습관화된 것이다. 그는 이것 때문에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 왔다. 그가 학생들에게 피상적인 사람이 되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의 활동은 진실로 가치가 있다. 그러나 학교의 설립을 위한 그의 노력의 벽두부터 장애에 부딪쳤다. 만일 그가 조금만 더 확고하지 못하고 참을성이 없었을 것 같으면 그는 그 싸움을 포기했을 것이다. 부모들 중 어떤 사람들은 학교를 돕는 일을 등한히 했고, 그들의 자녀들은 그 교사가 허술하게 옷을 입고 있다는 이유로 그를 존경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의 외모를 보고 그를 괜히 싫어하게 되었다. 이 불경의 정신은 주님의 책망을 받았고, 그 교사는 그의 사업에 격려를 받았다. 그러나 자녀들을 통하여 집으로 전달된 불평과 어리석은 보고는 부모들의 편견을 강하게 했다. _______형제는 참된 원칙을 가르쳐 주고 바른 습관을 이루어 주고자 노력하는 동안, 지나치게 방종된 아이들은 과중된 그들의 공부를 불평하고 있었다. 91 나는 그들의 마음이 적당한 문제들로 충분히 채워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 이 학생들이 고통을 받고 있음을 보았다. 그들의 사상은 타락하게 하는 문제들에 머물러 있었고, 마음과 육체는 다같이 수음의 습관을 통하여 약해졌다. 이 아이들이 빈번히 병에 걸리고, 부모들이 바라던 향상을 이루지 못하게 된 것은 이 악한 습관 때문이었지 공부를 많이 한 때문이 아니었다.

주님께서는 오늘날 운영되고 있는 학교의 기초를 놓고 있었던 ________형제의 전반적 행동을 인정하셨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의 짐을 가볍게 해줄 확고하고, 복스럽고, 기운을 북돋워 주는 단 한 가정의 영향도 없이 너무도 열심히 일을 했다. 과로의 긴장 때문에 그는 약간의 잘못을 범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그에 대하여 가혹하게 생각해 온 자들이 말한 잘못의 절반도 안되는 것이었다. 젊은이들과의 관계에서 그는 사도들이 마지막 때의 징조 중 하나로 주장하는 반역과 반항의 정신과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학의 교사들 중 어떤 이들은 그들의 지위에 대한 책임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우는 자들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준비가 갖추어져 있지 못하였다.

학생들 사이에는 게으르고, 나쁜 습관을 가진 자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학생들은 책망과 징계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개혁될 수 없다하더라도 그들을 성마름과 엄격함을 통하여 구덩이 쪽으로 더 내몰지 말라. 교사들은 그들의 책임 아래 있는 젊은이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산 사람들이며, 주님의 가족에 속한 어린 사람들임을 언제나 명심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구속하기 위하여 무한한 희생을 치르셨다. 그러므로 교사들은 이 학생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기 위한 선교사로 서야 한다는 것을 느껴야 한다. 만일 그들이 본성적으로 싸움을 좋아한다면, 그들이 이 성격을 마음대로 드러내지 않도록 그들로 매우 조심하도록 하라. 젊은 시절의 위기를 통과한 사람들은 초기 생애의 유혹과 시련, 그리고 그들이 동정과 친절과 사랑을 얼마나 바랐던지를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92 박애의 사업에서 고된 공적 활동에 몸을 바치는 사람은 흔히 자기 가정에 바칠 시간이 별로 없다. 어느 의미에서 그는 거의 가족도 없고, 노변의 친교의 영향도 받지 못하면서 지낸다. _______형제가 그런 상황이었다. 그는 그의 정신을 끊임없이 혹사시켜 왔다. 그는 자녀들의 애정을 이끌거나 그들에게 필요한 제지와 지도를 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대학에는 철저한 회개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어떤 사람도 자기의 눈 속에 들보를 가지고 있으면서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알아 내고자 노력하지 말도록 하라. 각 사람은 자기 자신의 영혼의 성전을 더러움에서 정결케 해야 한다. 시기와 질투는 쌓여진 쓰레기와 함께 사라져야 한다. 엄청난 값을 주고 우리를 위하여 구입된 고상한 특권과 하늘의 재능은 우리가 받기만 하면 값없이 주어진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빛과 특권의 신도에 따라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책임을 지우신다. 그러나 우리가 만일 우리에게 맡겨진 재능을 계발시켜 하나님께 돌려드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분의 은총을 상실하게 된다.

_______교수가 어떤 사람에 의하여 추켜 세워지지 않고 또 어떤 사람에 의하여 정죄받지 않았을 것 같으면 그는 그대들에게 훌륭히 봉사했을 것이다. 그는 당황했다. 그는 억제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품성의 특성들을 소유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열성에 못이겨서 그에게 지나친 신임과 칭찬을 했다. 그대들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회복시키고 자신의 참 위치를 찾기 어려운 곳에 처하게 했다. 그는 교회 안에 있는 양 파 모두에 의하여 희생을 당했다. 그들이 하나님의 영의 권고에 유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에게 대한 비행이다. 그는 신앙을 받아들인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전개된 상황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우리의 행동이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장래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우리는 별로 알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하는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만일 그들이 원하기만 하면 이 음악회에 참석하고, 그 오락을 통하여 세상과 연합하는 것 등이 그들에게는 손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이와 같이 사단은 그들의 욕망을 지도하고 지배한다. 93 그리고 그들은 그 결과가 가장 중대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영혼을 사단의 올무에 붙들어 매어 그의 영원한 파멸을 결정하는 사건들의 사슬의 연결 고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행동은, 비록 아무리 적은 것일지라도 생애의 큰 드라마에서 일익을 담당한다. 단 한 번의 식욕의 충족을 위한 욕망이 우리의 세상에 죄가 들어오게 하고, 그 무서운 결과를 빚게 된 것을 생각해 보라.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맺은 신성하지 않은 결혼은 홍수로 말미암는 세상의 멸망으로 끝난 반역을 초래했다. 가장 하찮은 방종의 행동이 큰 혁명들을 일어나게 했다. 이것이 오늘날의 상황이다. 신중한 사람들은 매우 적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들은 권면의 말씀에 유의하지 않고 그들 자신의 기호를 따른다. 그들은 그들이 주목을 받을 수 있는 모임들에 참석하는 데 있어서 세속적인 사람들과 연합하여 그렇게하여 선두에 서서 가며 다른 사람들은 뒤따른다. 일단 행해진 일은 그들 자신과 많은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다시 행해질 것이다. 매 걸음마다 이것들은 그들 자신의 양심과 습관에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양심과 습관에도 영구적인 인상을 남긴다. 이와 같은 고려는 인간의 생활에 놀라운 위엄을 준다.

우리 교회들 때문에 나의 마음은 밤낮으로 매일 아프다. 많은 교회들이 나아가고 있지만 뒷 걸음질 치는 데서 그렇다. “의인의 길은 …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잠 4:18). 그들의 행진은 앞과 위를 향하고 있다. 그들은 능력에서 능력으로, 은혜에서 은혜로, 영광에서 영광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우리의 모든 교회들에게 있는 특권이다. 그러나 아, 그들은 얼마나 이것과는 달랐는가! 그들은 거룩한 조명(照明)이 필요하다. 그들은 정반대 방향으로 돌아서야 한다. 나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안다. 만일 그들이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는 한 그들은 연약함에서 연약함으로 나아가게 되고, 분열은 더해지고, 많은 영혼들은 실망으로 인도될 것이다.

내가 그대들에게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께서 그대들에게 주신 빛을 받아서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그 빛을 따르라. 94 그것이 그대들의 유일한 안전책이다. 그대들은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해야 할 일이 있다. 비록 자아가 십자가에 못 박힐지라도 그 일을 하도록 주님께서 그대를 도와주시기를 바란다. 등한히 하고 거절했던 빛줄기들을 모으라. 온유하고 두렵고 떨림으로 그것들을 모으라. 고대 이스라엘의 죄는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무시하고 성화되지 못한 마음이 이끄는 대로 그들 자신의 길을 따른 데 있었다. 현대 이스라엘은 그들의 발자취를 신속히 따르고 있다. 그러므로 주님의 불쾌히 여기심이 분명히 그들 위에 머물러 있다.

우리가 하기를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다. 그러나 우리의 성향에 완전히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십자가를 들어 올리는 일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이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가 되신 것처럼 그분의 제자들이 하나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다. 이 연합은 하나님께서 그분을 보내신 사실을 세상에 알려 주는 그리스도의 신임장이다. 문제들에 관하여 제 멋대로 하는 일이 없어질 때 그리스도와 신자들과의 연합이 이루어질 것이다. 마음을 굳게 하여 이것을 위하여 모든 사람이 기도하고 활동함으로 당신의 교회의 연합을 위하여 드린 그리스도의 기도가 가능한 한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

시기와 헐뜯는 일은 정죄됨

나는 우리 교인들에게 다루기 어려운 혀들이 있다는 말을 하기가 괴롭다. 해악(害惡)을 길러 주는 거짓 혀들이 있다. 교활하고 수근거리는 혀들이 있다. 잡담을 늘어 놓고, 당치 않게 간섭하고, 교묘하게 질문하는 일이 있다. 험담을 좋아하는 자들 중 어떤 사람들은 호기심에서, 또 어떤 사람들은 시기로 그렇게 하는가 하면,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책망하는 말씀을 하기 위하여 매개로 사용하시는 자들에 대한 증오심으로 그렇게 한다. 이 모든 불화의 요소들이 활동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알고 있거나 심지어 의심하는 것까지도 모두 공개하고자 열을 올리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나쁘게 여기는 그들의 진정한 감정을 숨긴다.

나는 진리를 거짓으로, 선을 악으로, 순결을 죄로 바꾸고자 하는 바로 그러한 거짓말의 정신이 오늘날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95 사단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의 상태를 보고 즐거워 한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영혼은 등한히 하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비평하고 정죄할 틈을 열렬하게 살핀다. 모든 사람에게는 품성의 결함들이 있음으로 시기심이 그들에게 손해되도록 해석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아내기란 어렵지 않다. 이 스스로 임명된 재판관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 우리는 진상을 파악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죄명을 그들에게 씌울 것이다.” 그들은 적당한 기회를 기다리고 그 다음에는 그들의 험담의 꾸러미를 만들어서 그들의 재미있는 뉴스를 발표한다.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을 할 때, 본성적으로 강한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속이고 다른 사람들을 기만하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 그들은 피차간에 마음 놓고 한 말을 수집하되, 그 말이 성급히 한 것이기 때문에 말한 사람의 진정한 감정을 나타낸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고 그렇게 한다. 그러나 흔히 너무 하찮은 것이기 때문에 주목할 가치조차 없는 이 우연한 말들은 사단의 확대경을 통하여 살펴지고, 깊이 고려되고, 되풀이되어 마침내 두더지가 파 놓은 흙 두둑산이 된다.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된 채 악을 추측하는 자들은 유혹의 노리개감이 된다. 그들은 그들의 감정의 힘이나 말의 결과를 거의 알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정죄하고 있는 동안, 그들은 그들 스스로가 훨씬 더 큰 잘못에 빠진다. 언행 일치는 하나의 보배이다.

준수해야 할 친절의 법은 없는가? 그리스도인들이 피차간에 비평하고 정죄하라는 권위를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는가? 우정을 가장하여 어떤 사람에게 있는 비밀을 다른 사람의 입술에서 얻고, 그렇게 얻은 지식을 그 사람을 해치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 명예로운 일이요, 또한 정직한 일이겠는가? 떠돌아다니는 온갖 소식을 수집하고, 다른 사람의 인격에 의심을 던져 줄 온갖 것을 발굴해 내어 그 사람을 해치기 위하여 그것을 사용하는 데서 기쁨을 얻는 것이 그리스도인 사랑인가? 사단은 그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중상하고 해칠 수 있게 될 때 크게 기뻐한다. 그는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계 12:10)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그의 사업을 도와줄 수 있겠는가?

모든 것을 보시는 하나님의 눈은 모든 사람의 결점과 각 사람의 주정(主情)을 보신다. 96 그러나 그분께서는 우리의 잘못을 오래 참으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신다. 그분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동일한 친절과 인내의 정신을 품도록 명령하신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의 결점과 약점을 폭로하는 일을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야비한 것과 결함된 것에서 돌아서서,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것을 마음에 품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는 결함을 찾아내는 모든 행동, 비난과 정죄의 모든 말이 고통스럽다.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남녀들, 그들의 생애가 거룩하게 하는 진리의 감화에 일치되지 않은 남녀들이 언제나 존재해 왔다. 그리고 성실하지 않으면서 자기 스스로를 속이고, 그들 자신을 죄 가운데 머물도록 권하고 있는 자들이 있다. 불신이 그들의 생애와 품행과 품성에 나타나고, 이 무서운 악은 마치 구강 궤양처럼 작용한다.

만일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말하는 대신에, 조사하기를 좋아하는 그들의 능력을 그들 자신에게 고쳐야 할 필요가 있는 악이 무엇인지를 보는 데 사용할 것 같으면 오늘날 교회에는 훨씬 더 건전한 상태가 존재하게 될 것이다. 정직이 아무런 희생을 수반하지 않을 때 어떤 사람들은 정직할 것이다. 그러나 방책이 가장 좋은 유익을 가져다 줄 때, 정직은 잊어버린 바 된다. 정직과 방책은 동일한 마음에서 공존하지 못할 것이다. 때에 따라, 방책이 축출되고, 진리와 정직이 최상권을 잡거나, 방책이 간직되고 정직을 잊어버린 바 되거나 할 것이다. 그것은 결코 일치되지 않으며, 공통적인 것이 전혀없다. 하나는 바알의 선지자이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참 선지자이다. 주님께서 당신의 보배들을 만드실 때, 진실한 자, 솔직한 자, 정직한 자들은 기쁨으로 우러러보는 대상이 될 것이다. 천사들은 이런 사람들을 위한 면류관을 만드는 일을 한다. 그리고 별이 박힌 면류관에는 하나님의 보좌에서 비춰 오는 빛이 찬란하게 반사될 것이다.

목회직에 있는 우리의 형제들은 너무도 흔히 교회 안에 있는 시련들 때문에 무거운 짐을 진다. 그리고 그들은 너무도 빈번히 설교에서 그 시련들을 말한다. 그들은 교인들이 피차에 불평하도록 권유하지 말고 그들 스스로의 행동을 살피는 자가 되게 할 것이다. 97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들의 잘못에 관하여 편견과 원한의 감정을 일으키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은 그 문제의 양편에 대한 내용을 듣기까지 끈기 있게 기다려야 하고, 그런 다음에 그들이 믿을 수밖에 없는 엄격한 사실들만 믿어야 한다. 언제나 안전한 행동은 성경의 법칙을 엄격하게 따른 이후가 아니면 나쁜 소문에 대하여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수상하게 여기지 않는 자들로부터 그들과 상관이 없고 알아서 유익이 되지도 않을 문제들을 알아내기 위하여 교묘하게 활동해 온 어떤 사람들에게 해당될 것이다.

나의 형제들이여, 그대들의 영혼을 위하여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염두에 두도록 하라. 할 수 있는 대로 그대들의 생각에서 자아가 사라지게하라. 우리는 마지막 때에 가까이 가고 있다. 그대들의 동기를 영원에 비추어 살펴보라. 나는 그대들이 정신을 차려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안다. 그대들은 옛 지계표에서 떠나가고 있다. 이른바 그대들의 학문은 그리스도인 원칙을 훼손시키고 있다. 나는 만일 그대들이 하나님과 분리되면 분명히 따르게 될 길을 보았다. 그대들 자신의 지혜를 신뢰하지 말라. 나는 그대들의 영혼이 엄청난 위험 속에 놓여 있음을 말하는 바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대들이 왜 신앙적 활동에 그처럼 마음이 없는지 살펴보고 깨달으라.

주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시험하고 입증하고 계신다. 그대들은 그대들 자신의 결점 많은 품성에 대하여서는 그대들이 원하는 대로 가혹하고 비판적이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는 친절하고, 동정적이고, 예의바르게 하라. 나는 철두 철미하게 건전한가,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거짓된가라고 날마다 자문해 보라. 이 점에 관한 모든 기만에서 그대들을 구원해 주시도록 주님께 간구하라. 영원한 이익이 포함되어 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명예를 갈급하고 이득을 탐하고 있는 동안,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그대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보증을 열렬하게 구하고, 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해 주는 길을 누가 내게 알려 주겠는가라고 부르짖고 있는가?

사단은 사람들의 타고난 죄들을 주의 깊이 연구한 후에 그들을 유혹하고 함정에 빠뜨리는 사업에 착수한다. 우리는 가장 심한 유혹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주님의 싸움을 용감하게 싸울 것 같으면 우리에게는 승리가 주어진다. 모든 사람이 위험 속에 빠져 있다. 98 그러나 만일 그대들이 겸손하고 경건하게 행할 것 같으면 그대들은 시험하는 과정을 거쳐 순금, 곧 오빌의 순금보다 더 귀중하게 되어 나올 것이다. 그러나 부주의하고 기도하지 않으면 그대들은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같이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회의론의 미로(迷路)에 빠져서 거의 잃어버린 바 되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는 바이다. 그대들의 마음을 그 길에서 끌어올리라. 그대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붙들어 매라. 믿음과 거룩함이 그대들을 영원하신 분에게 더욱 밀접하게 결속시켜 주면 줄수록 그분의 처사의 공의로움이 더욱 분명하고 밝게 그대들에게 나타날 것이다. 생명, 곧 영생을 그대들이 추구하는 목적으로 삼으라.

나는 그대들의 위험을 안다. 만일 그대들이 증언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릴 것 같으면, 그대들은 성경의 진리에서 떠나가게 될 것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이요 의심하는 입장을 취하지나 않을까 두려워 해왔다. 그러므로 그대들의 영혼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나는 그대들에게 경고하고자 한다. 몇 사람이나 그 경고에 유의할 것인가? 그대들이 이제 그 증언들을 붙들 때, 그대들의 길과 반대되는 것이 주어져서 그대들의 잘못을 교정해 준다면, 그대들은 어떤 부분이나 전체를 받아들이거나 거절하는 일에 아무런 부담을 느끼지 않겠는가? 그런데 사실상 그대들이 받아들이기를 가장 꺼려할 그 부분이 바로 가장 필요한 부분이다. 하나님과 사단은 결코 협력하지 못한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결코 맺을 수 없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누가 그분의 말씀을 듣고 떨었는가?

주의 날이 가까움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심히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애곡하는도다 그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무와 패괴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나팔을 불어 경고하며 견고한 성읍을 치며 높은 망대를 치는 날이로다 내가 사람들에게 고난을 내려 소경같이 행하게 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습 1:14-17).

99 “그 때에 내가 등불로 예루살렘에 두루 찾아 찌끼같이 가라앉아서 심중에 스스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는 자를 벌하리니”(습 1:12).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일지어다 모일지어다 명령이 시행되기 전, 광음이 겨같이 날아 지나가기 전,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임하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리할지어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습 2:1-3).

우리는 마지막 때에 가까이 이르고 있다. 나는 하나님의 보응하시는 심판이 이 땅에 이미 내리고 있음을 보았다. 주님께서는 바야흐로 일어나려고 하는 사건 등에 관하여 우리에게 경고하셨다. 빛은 그분의 말씀에서 비취고 있지만, 어두움이 세상을 덮고 캄캄함이 사람들을 뒤덮고 있다.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 5:3).

사람들이 그 큰 미혹을 스스로 초래한 길을 우리가 피하기 위하여 이 무서운 흑암의 원인을 살펴보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깨닫고 순종할 수 있는 기회를 세상에 주셨다. 그분은 당신의 말씀을 통하여 진리의 빛을 그들에게 주셨다. 그분은 경고와 권면과 권고를 보내셨다. 그러나 그분의 음성에 순종할 자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유대 민족처럼 대다수의 사람들, 심지어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자들까지도 그들의 우월한 장점을 자랑은 하지만 그 큰 축복들에 대한 보답을 하나님께 전혀 하지 않는다. 무한한 자비로써 마지막 경고의 기별이 세상에 전해져서 그리스도께서 문 앞에 오셨다는 사실이 선포되고 깨어진 하나님의 율법에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그러나 홍수 전의 사람들이 노아의 경고를 조롱으로 거절한 것처럼 오늘날 쾌락을 좋아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성실한 종들의 기별을 거절한다. 100 하나님의 진노가 그분의 율법을 범한 자들에게 바야흐로 내리려고 하는 동안, 세상은 그 사업과 쾌락에 여전히 몰두된 채 변함 없이 그 일을 따르고 있다.

자비로우신 우리 구주께서는 이 시대에 당신을 따르는 자들을 둘러쌀 위험을 미리 보시고 그들에게 특별한 경고를 하셨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눅 21:34-36). 만일 교회가 세상의 길과 유사한 길을 따른다면 그들도 동일한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기보다는 그들이 더 큰 빛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의 벌은 회개하지 않은 자들의 벌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한 백성으로서의 우리는 세상에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앞서 있는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공언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생애와 품성은 그런 믿음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악한 자들이 가라지처럼 마지막 큰 날의 불에 태워지기 위하여 거둬들여지고 있는 동안, 의인들은 귀중한 알곡처럼 하늘의 곳간에 들어가기 위하여 단으로 묶여질 날이 우리에게 이르러 오고 있다. 그러나 알곡과 가라지는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마 13:30) 될 것이다. 생애의 의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의인들은 마지막 날까지 경건하지 못한 자들과 접촉하게 될 것이다. 빛의 자녀들은 흑암의 자녀들 사이에 흩어져서, 모든 사람에게 뚜렷한 구별이 보여질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벧전 2:9)되어야 한다. 마음 속에서 불타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 생애에 나타난 그리스도와 같은 조화는 세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늘의 모습을 잠깐 보여 주게 될 것이므로 그들이 보고 그 탁월함을 분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유유 상종이다. 동일한 축복의 샘에서 마시고 있는 자들은 서로 더 가까워질 것이다. 101 신자들의 마음 속에 있는 진리는 복되고 행복한 동화(同化)를 이루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와 하나되신 것처럼 당신의 제자들을 하나되게 해달라고 드리신 그분의 기도가 응답될 것이다. 진정으로 거듭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은 이와 같이 하나가 되기 위하여 노력하게 될 것이다.

경건하지 못한 자들에게는 영구적 불화를 부분적으로 감추는 일에 불과한 기만적인 조화가 있을 것이다. 다른 모든 점에서는 증오와 경쟁 의식과 시기와 치명적 분쟁으로 분열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과 진리를 반대하는 일에는 그들이 하나로 연합한다.

순수한 금속과 열등한 금속이 오늘날 함께 섞여 있기 때문에 무한하신 하나님의 식별하시는 눈만이 그들을 분명히 구별하실 수 있다. 성결과 진리의 도덕적 자석은 질 낮은 가짜 금속은 물리치는 반면에 순수한 금속은 함께 끌어 모을 것이다.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심히 빠르도다”(습 1:14). 그러나 우리는 어디에서 참된 재림 정신을 바라볼 수 있는가? 누가 우리 앞에 다가온 시험의 때에 서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가? 이 시대를 위한 엄숙하고, 거룩하고, 시험하는 진리를 하나님께로부터 위탁받은 백성들은 그들의 위치에서 잠들어 있다. 그들은 그들의 행동을 통하여, 우리는 진리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계 3:17)고 말한다. 그러나 참된 증인은 네가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 3:17)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얼마나 솔직하게 교회의 현재의 상태를 묘사하고 있는가.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성령에 의하여 주어진 경고의 기별들은 하나님의 종들을 통하여 증거되고 품성의 결함들이 잘못한 자들 앞에 제시된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나의 경우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대들이 제시하는 기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나는 진리를 믿는다.”

마음 속으로 “주인이 더디 오리라”(마 24:48)고 말한 종은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라고 공언했다. 102 그는 마음으로는 사단에게 굴복했음에도 불구하고 겉으로는 하나님의 사업에 헌신한 종이었다. 그는 조롱하는 자처럼 진리를 공공연하게 부인하지는 않을지라도 그의 생애를 통하여 주님이 더디 오리라는 마음 속의 감정을 나타낸다. 추측 때문에 그는 영원한 유익에 대하여 무관심하다. 그는 세상의 처세훈(處世訓)을 받아들여 그 습관과 관습을 따른다. 이기심, 세상의 자랑, 야망 등이 지배적이다. 그의 형제들이 자기보다 더 높은 위치에 설까 두려워서 그는 그들의 활동을 헐뜯고 그들의 동기를 비난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그는 그의 동료 종들을 때린다. 그가 하나님의 백성들과 분리됨에 따라 그는 점점 더 경건하지 않은 자들과 연합한다. 그는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며, 세상 사람들과 연합하고 그들의 정신에 동참하고 있음이 나타난다. 그리하여 그는 속임을 당하여 육적인 안락 가운데로 빠져들고 망각과 무관심과 나태에 정복당한다.

바로 악의 시초는 경성과 은밀한 기도의 등한이었다. 그 다음에는 다른 종교적 의무의 태만이 따랐고, 그같이하여 뒤이은 온갖 죄에 대한 길이 열렸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유혹, 육신적 본성의 부르짖음, 사단의 직접적인 시험 등으로 공격을 받을 것이다. 아무도 안전하지 않다. 우리의 경험이 어떠했는지, 우리의 지위가 아무리 높든지 상관없이 우리는 끊임없이 깨어 기도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매일 하나님의 영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사단의 지배를 받게 된다.

제자들에게 대한 구주의 교훈은 각 시대에 그분을 따르는 자들의 유익을 위하여 주어졌다. 그분께서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분께서는 마지막 때 가까이 살아가는 자들을 염두에 두시고 말씀하신 것이다. 각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여 성령의 귀중한 은혜를 마음 속에 간직하는 것이 우리의 사업이다.

사단은 끊임없는 인내와 강한 정력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을 자기의 대열로 끌어가기 위하여 활동하고 있다. 그는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살후 2:10) 공작하고 있다. 그러나 사단이 흑암의 왕국을 유지시키는 유일한 일꾼은 아니다. 103 죄를 짓도록 유혹하는 자는 누구나 유혹자이다. 큰 기만자를 본받는 자는 누구나 그의 조력자가 된다. 악한 일을 뒷받침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자들은 사단의 고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행동은 원칙과 동기를 드러낸다. 주님의 포도원에 있는 나무라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맺은 열매는 그들이 가시와 찔레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 준다. 온 교회가 그 교인들 중 어떤 사람들의 그릇된 행동을 시인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시인이 잘못을 옳은 것으로 입증하지는 않는다. 포도를 가시딸기로 만들 수는 없다.

현대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어떤 사람들이 그들의 진정한 위치를 이해할 것 같으면, 그들은 하나님의 자비를 단념할 것이다. 그들은 진리를 대항하고, 경고의 음성을 대항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항하여 그들의 모든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그들은 사단의 일을 해왔다. 많은 사람들은 사단의 기만에 의하여 너무도 얼이 빠졌기 때문에 결코 회복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배교의 상태는 필연 많은 영혼들을 잃어버리게 할 것이다.

교회는 계속해서 경고를 받아왔다. 하나님의 백성의 의무와 위험은 분명히 밝혀졌다. 그러나 그들에게 세속적 요소가 너무도 강함이 입증되었다. 영혼을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하는 습관과 행습과 유행이 경고와 성령의 호소를 무시하고 여러 해에 걸쳐 기반을 구축해 왔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의 길이 그들 자신의 눈에 바르게 보이고 성령의 음성은 거의 들리지 않게 되어 버렸다. 사람이 일단 자기 자신을 큰 기만자의 세력에 굴복시킬 때 그가 죄 가운데 얼마나 깊이 빠질 수 있을 것인지 아무도 말할 수 없다. 사단은 가룟 유다에게로 들어가서 그의 주님을 팔도록 유혹했다. 사단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성령을 속이게 했다. 하나님께 완전히 헌신하지 않은 자들은 비록 그들이 그리스도를 섬기고 있노라고 스스로 자부할지라도 사단의 사업을 하도록 인도될 수가 있는 것이다.

형제 자매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후 13:5)고 호소하는 바이다. 104 그리스도인 사랑의 따뜻함과 순결을 유지하는 데는 끊임없는 그리스도의 은혜의 공급이 요망된다. “너희 사랑을 … 점점 더 풍성하게 하”고,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빌 1:9-11)는 의의 열매가 가득하기 위하여 그대들은 모든 수단을 활용해 왔는가?

의와 진리를 위하여 굳게 서야 할 많은 사람들이 사단의 공격을 자극해온 연약함과 우유 부단을 나타냈다. 은혜 안에서 자라나지 못하고 신령한 재능으로 가장 높은 표준에 도달하고자 노력하지 않는 자들은 정복당할 것이다.

이 세상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나그네와 원수의 땅이다. 그가 자신의 방어를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성령의 검을 휘두르지 않을 것 같으면, 그는 흑암의 세력의 포로가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의 믿음은 시험을 받을 것이다. 모든 사람은 마치 금이 불 속에서 연단되는 것처럼 연단될 것이다.

교회는, 사랑과 인내의 발휘가 계속적으로 요구되는 불완전하고 실수가 많은 남녀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전체적으로 미지근한 상태가 지속되어 왔다. 교회에 들어온 세속적 정신은 분리와 흠잡기와 적의와 분쟁과 범죄를 수반하게 되었다.

마음과 생애에 있어서 헌신하지 못한 사람들이 설교를 더욱 적게 하고, 하나님 앞에 심령을 겸비하게 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바칠 것 같으면, 우리는 주님께서 그대들을 돕기 위하여 나타나시고 그대들의 배교를 고쳐주시기를 바랄 수 있을 것이다. 최근의 설교 중 많은 것들은 거짓 안전이 생기게 한다. 하나님의 사업에 있어서의 중요한 관심사가 우리의 목사들 중 어떤 사람들의 경험과 같이 하나님과의 진정한 연결을 별반 이루어 오지 않은 자들에 의해서는 현명하게 처리될 수 없다. 그런 사람들에게 사업을 맡기는 것은 마치 어린아이들에게 큰 배를 맡겨서 바다에서 조종하게 하는 것과 같다. 하늘의 지혜가 부족하고, 하나님과의 산 능력이 결핍되어 있는 자들은 빙산과 폭풍을 뚫고 복음의 배를 조종할 수 없다. 교회는 심한 투쟁을 거쳐가고 있다. 그러나 그런 위험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분명히 파선시킬 사람들의 손에 교회를 위탁할 것이다. 105 우리는 이제 한 도선사(導船士)를 배에 태울 필요가 있다. 우리가 항구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 백성으로서 세상에 빛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어리석은 처녀가 되어 그들의 등과 함께 등잔에 기름을 가지고 있지 않다. 모든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시고, 용서가 많으신 주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구원해 주시므로 우리가 악인들과 함께 멸망당하지 않게 해주시기를 바란다.

이와 같은 투쟁과 시련의 시기에, 우리는 신앙적 원칙에서, 확고한 신앙적 확신에서, 마음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보증에서, 거룩한 사물에 대한 풍성한 경험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모든 도움과 위로가 필요하다. 우리는 오직 은혜 안에서 착실하게 성장한 결과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남녀들이 될 수 있다.

아, 멀어 있는 눈을 뜨게 하고 영적 이해력을 깨우쳐 주기 위하여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죄는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 완전한 도덕적 개혁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는 영속적인 산 믿음과 함께 하나님의 사랑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불로 연단한 금이다. 우리는 그것을 그리스도에게서만 얻을 수 있다. 진지하고 열렬하게 구하는 모든 사람은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 그의 심령은 지각을 초월하는 그 사랑을 충분히 깨닫기 위한 강한 열망으로 충만해질 것이다. 신령한 생애에서 향상해 감에 따라 그는 하나님의 말씀의 숭고하고 고상한 진리를 더욱 잘 깨닫게 되고, 마침내 바라봄으로써 그는 그의 구속주의 모습으로 변화되고 그 모습을 반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어리석은 결혼

나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그들의 위험을 진정으로 깨닫고 있지 못함을 보았다. 하나님께서 여러 분야의 당신의 사업에 일꾼들로 받아 주시고자 하지만 사단이 개입하여 그들을 그의 그물에 너무도 얽어 버리기 때문에 하나님과 분리되고 그분의 사업에서 무력해져 버린 젊은이들이 많이 있다. 사단은 용의 주도하고 끈기가 있다. 그는 부주의한 자들을 어떻게 함정에 빠뜨릴 것인지 안다. 106 그리고 신의 간계에서 피하는 일에 성공을 거두는 예가 별로 없다는 것은 우려할 만한 사실이다. 그들은 위험을 깨닫지 못하고 그의 책략에 대하여 경계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의 지혜와 그분께서 경고하고 책망하고 권면하기 위하여 보내신 자들의 지혜를 구하지 않고 피차간에 애정을 쏟도록 그들을 부추긴다. 그들은 자부심이 강하기 때문에 제지에 견디지 못할 것이다.

_______형제여, 그대의 경우는 이것에 대한 유력한 예증이다. 그대는 결혼에 대한 생각으로 얼이 빠졌다. 일반적으로 이 길에 마음을 기울여온 사람들의 경우처럼, 하나님의 종들의 경고는 그대에게 별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나는 그대가 얼마나 쉽게 주변의 영향을 받고 있는지 보게 되었다. 만약 그대가 열등한 기질의 마음을 가진 친구들과 관련을 갖게 되면 그대는 그들과 같이 될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경외를 그대 앞에 두지 않을 것 같으면, 그들의 사상은 그대의 사상이 될 것이다. 그들에게 경외심이 부족하다면 그대 역시 불경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들이 경솔하고, 쾌락을 찾는 데 몰두한다면 그대 역시 더 훌륭한 사업에 합당한 열성과 인내를 가지고 동일한 그 길을 따라갈 것이다.

그대가 애정을 쏟아 온 그 젊은 여자는 사상과 품성의 깊이가 없다. 그의 생애는 보잘것없고, 그의 마음은 좁고 피상적이다. 그러나 그대는 그대의 아버지나 그대의 사랑하는 자매나 교회 안에 있는 그대의 친구들의 경고를 계속 거절해 왔다. 나는 그리스도의 사신으로 그대에게 왔다. 그러나 그대는 그대의 완고한 감정과 그대의 자기 과신 때문에 위험에 대하여 눈을 감고 경고에 대하여 귀를 막았다. 그대가 취한 길은, 마치 아무도 그대 자신만큼 그렇게 잘 알지 못하고 그대의 영혼의 구원은 그대 자신의 판단을 따르는 데 달려 있는 양 끈덕진 것이었다.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모든 젊은이들이 그대가 한 것처럼 한다면 가정과 교회의 상태가 어떻게 되겠는가? 그대의 완고와 자만을 통하여 그대가 부모에게 나타낸 불경을 생각해 보라. 그대는 완고하고 거만하다고 묘사된 부류에 속한다. 107 이와 같은 열중(熱中)은 신앙적인 것들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 대신에 그대 자신 만을 생각하게 했다. 이런 친교와 애착에서는 아무런 유익도 얻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은. 그대가 따르고 있는 것과 같은 그런 고의적인 외고집의 길에는 임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가 그대 자신의 품성을 철저하게 확립하기 전에는 결혼 관계에 들어가서 가족을 돌보는 일을 떠맡고자 열망해서는 안 된다. 나는 그대가 큰 흑암 속에 빠져 있지만 자신의 위험을 깨닫지 못하는 자로 여긴다.

진리가 그대의 생애와 품성을 개혁시키고 있었고, 그대는 형제들의 신임을 얻고 있었다. 그러나 사단은 그가 그대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그는 그대를 그의 교묘한 올무에 걸리게 하고자 자신의 노력을 더하여 놀랍게도 성공을 거두었다. 지금껏 발견되지 않았던 그대의 성격의 약점이 이제 드러났다. 그대는 비록 다른 사람들에게는 매우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그대의 상태를 깨닫지 못한다. 빛은, 그것을 얻고자 노력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오지 않는다. 그대의 형제와 자매들이 그대가 취한 길 때문에 슬퍼한 것을 깨달았을 때, 그대는 그 길을 중단하고, 그대가 하고 있는 일을 생각하고, 많이 기도하고, 교회 안의 경험 있는 사람들과 의논하고, 그들의 충고를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때였다.

그러나 그대는 “내가 내 자신의 감정과는 상관없이 형제들의 판단에 따라야 할 것인가”라고 말한다. 나는 교회가 지상에서 하나님께로부터 권위를 위임받고 있다고 대답하는 바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8:18)고 말씀하셨다. 동일한 교회의 교인들의 의견을 너무도 존중하지 않는 일이 있다. 형제들 사이에 그처럼 많은 문제가 생기는 원인은 교회의 의견에 대한 존경심의 부족 때문이다. 교회의 눈은 실수한 개인 신자가 볼 수 없는 것을 식별할 수 있다. 소수의 사람은 실수한 당사자처럼 맹목적일 수 있지만 교회의 다수는 그 개인 신자들을 통제해야 하는 하나의 힘이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한다. 108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 5:5). 바울은 또 이렇게 권면한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하며”(롬 12:10).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 5:21).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 2:3). 교회의 충고와 권면이 존중되지 못하면 교회는 정말로 무력해진다. 하나님께서는 교인들을 다스려야 할 한 음성을 교회에 맡기셨다.

만일 그대가 오류보다는 진리에 의하여 지도를 받으면 그대는 부모에게 즐겨 순종하고 교회의 음성을 신성하게 여길 것이다. 그대는 그대의 부모나 교회의 요구에 상관없이 그대가 옳다고 생각한 것을 실행하겠다는 결정을 내려 놓고 기도를 드려왔다. 그대의 생애를 통하여 내내 그대는 대체로 이기적 감정에 움직여 행동해 왔다. 때때로 하나님의 말씀에 제시된 조건에 부합되고 원칙대로 행동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크게 희생해야 한다.

그대는 “부모들이 자녀들의 마음이나 감정에 상관없이 배우자를 택할 것이냐”고 묻는다. 나는 거기에 합당한 질문을 그대에게 하는 바이다. 자녀가 먼저 부모에게 의논하지 않고서 배우자를 택할 수 있겠는가? 그런 조치가 자녀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애정을 가지고 있다면 부모의 행복에 실제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될 터인데도 그 자녀가 부모의 권면과 권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따르고자 고집해서야 되겠는가? 나는 결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분명히 대답하는 바이다. 그가 결코 결혼을 하지 못할지라도 그럴 수 없다. 다섯째 계명은 그런 행실을 금지한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 여기에 주님께서 순종하는 자들에게 분명히 성취시켜 주실 약속 있는 계명이 있다.

현명한 부모는 자녀들의 욕망을 무시하고 자녀들을 위한 배우자를 결코 택하지 않을 것이다. 109 어떤 사람도 그대의 경우에 있는 이 일을 하고자 제안한 적이 지금껏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젊은이들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의 대부분은 맹목적 충동에 지나지 않는 것인데, 그것은 그들의 멸망을 꾀하기 위하여 사단에게서 나온 것이다.

나의 형제여, 지금 그대가 이미 계획한 대로 우리 대학에 간다면 나는 그 곳에서의 그대의 행동에 대하여 염려하는 바이다. 그대가 어느 곳으로 가든지 여자 친구를 갖고자 하는 분명한 결심은 그대가 배틀크릭에 감으로써 유익을 얻게 될 위치와는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음을 나에게 보여 준다. 그대가 빠져 있는 심취 상태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고 사단에게서 온 것이다. 나는 배틀크릭에 관하여 그대를 실망시킬 마음은 없다. 그 곳에는 규칙이 엄격하다. 구애(求愛)는 허용되지 않는다. 만일 학생들이 그대가 지금껏 해온 것처럼 연애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 그 학교는 학생들에게 전혀 가치 없이 될 것이다. 우리의 학교는 미구에 부도덕해질 것이다. 부모들은 사랑에 병든 감상주의의 생활을 시작하도록 자녀들을 우리 대학이나 우리의 출판소에 보내는 것이 아니고 학문을 통하여 교육을 받고 인쇄 기술을 배우도록 보내는 것이다. 그대가 몇 달 전에 해온 것처럼 젊은이들이 이성 교제에 얼이 빠지고 정신 못차리는 일이 허용될 만큼 규칙이 해이할 것 같으면 배틀크릭으로 가는 그들의 목적은 잃어버린 바 될 것이다. 만일 그대가 이것을 완전히 그대의 마음에서 제거해 버리고 배우는 자의 정신과 그대 자신을 각성시킬 목적으로 그 곳에 가서 가장 열렬하고, 겸손하고, 진지한 노력을 하고 하나님과 밀접한 연결을 이루고자 기도할 수 없다면 그대는 집에 머물러 있는 것이 훨씬 더 나을 것이다.

만일 그대가 간다면 그대는 유혹을 저항하고 교수들과 교사들의 손을 붙들고자 준비를 갖추고, 그대의 영향을 오로지 규율과 질서 편에 두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업에 활동하는 모든 사람이 서로 순복하고 충고와 교훈을 받을 준비를 갖추도록 의도하신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도움을 받아 그들의 정신과 마음이 다른 사람들을 훈련시키기에 적합한 상태를 이루기 위하여 가장 엄격한 정신적·도덕적 훈육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훈련시켜야 한다. 열렬한 기도와 겸손과 열성은 하나님의 도움과 결합되어야 한다. 110 인간적 약점과 감정이 지배권을 쥐기 위하여 끊임없이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진리를 순종함으로 자기의 심령을 순결케 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고자하는 마음으로 자기를 낮추고 예수님과 그분의 은혜를 높여야 한다. 그리하여 끊임없이 빛을 향하여 전진함으로 그는 하나님을 잘 알고 그분의 은혜를 받게 될 것이다.

대학에 다니는 자들 중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시간을 적당히 활용하지 않는다. 젊음의 활기로 넘치는 그들은 그들에게 부과되는 제지를 무시한다. 특별히 그들은 젊은 신사들이 젊은 숙녀들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일이 허용되지 않는 규칙에 반기를 든다. 이 타락한 시대에 있어서 그런 행로가 끼치는 해악은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너무도 많은 젊은이들이 함께 교제하고 세상의 관습을 본받고 있는 대학에 있어서는, 이런 점에서 지식의 탐구와 신앙적인 일에 대한 관심을 방해하는 길로 생각을 돌이키게 할 것이다. 학교 시절에 젊은 남녀들이 피차간에 애정을 둠으로써 양편이 다 얼빠진 상태가 되면 훌륭한 판단의 결핍을 보이게 된다. 그대 자신의 경우에 있어서처럼 맹목적인 충동이 이성과 판단을 지배하게 된다. 이 매혹시키는 미혹 아래 모든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느꼈던 중대한 책임감은 등한시되고, 영성은 죽고, 심판과 영원도 그 심각한 의미를 잃어버린다.

맹목적 사랑이라는 이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의 모든 기능은 그것에 굴복된다. 그들은 건전한 분별력이 전혀 없는 것같이 보이고, 그들의 행동은 그것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에게 혐오감을 느끼게 한다. 나의 형제여, 그대는 그대 자신을 화젯거리로 만들었고, 그들의 인정을 그대가 자랑스럽게 여길 사람들의 평가에서 그대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렸다. 많은 사람들은 질병의 위험을 조혼(早婚)에서 맞게 된다. 신기한 것이 지나가고 구애의 황홀한 힘이 그치고 나면 한쪽이나 두쪽이 다 그들의 진정한 상황을 깨닫게 된다. 그 때에 그들은 잘못된 짝이지만 평생을 위하여 연합되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111 가장 엄숙한 서약으로 피차를 결합시켰기 때문에 그들은 그들이 가야 할 비참한 생애를 침울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그들은 될 수 있는 대로 그들의 상황에 순응해야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아들은 그들의 결혼 서약에 불성실하게 되든지 그들 자신의 목에 메겠나고 끈덕지게 주장해 온 멍에를 너무도 고통스럽게 만들어 적지 않은 사람들이 비겁하게도 그들의 목숨을 끊든지 하게 될 것이다.

허망한 자들과 피상적인 자들과 회의론자들과 교제하게 되면 도덕적 타락과 파멸이 나타날 것이다. 대담하고 뻔뻔스런 젊은 신사나 숙녀들은 그들의 말 속에 마음을 즐겁게 하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심지어 나쁜 것을 좋은 것처럼 나타내 주는 빛나는 정신력과 기량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을 황홀하게 하고 어리둥절하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영혼들은 잃어버린 바 될 것이다. 각 사람의 생각과 행동의 영향은 공기처럼 그들을 두르고 있는데, 그것은 모르는 사이에 그들과 접촉하는 모든 사람들이 마시게 된다. 이 공기는 흔히 유독한 영향으로 채워져 있다. 그러므로 그 영향을 받아들일 때는 도덕적 타락이 분명히 초래된다.

나의 젊은 형제여, 나는 그대에게 그대의 참 상태를 깨우쳐 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대가 회개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를 볼 수 없다. 경건을 공언하는 많은 젊은 남녀들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무엇임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선을 행하는 일에 있어서 그분의 모본을 따르지 아니한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감사가 마음 속에서 솟아나오지 않고 그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들은 극기의 정신을 소유하지 않고, 성결의 길에서 피차간에 격려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노라고 공언하지만, 정신차리고 기도하며 저리로서 그들의 구주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하늘에 대하여 대화를 하는 자들과 같은 위치를 취할 수 있는 도덕적 능력을 소유하지 않은 젊은이들이 하나님의 엄숙한 사업에 종사하기를 원치 않는다. 우리는 안식일 준수자라고 공언하면서도 배우자를 택하는 일을 통하여 그들의 도덕적 상태가 낮다는 것을 보여 주는 젊은이들이 배클크릭으로 가기를 그다지 원치 않는다.

112 우리 대학의 문은 신앙을 고백하지 않은 자들에게도 언제나 열려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배틀크릭에 오는 젊은이들은 원하기만 하면 이와 같은 불신적 교제에 들어갈 수 있다. 만일 그들이 이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올바른 동기를 가지고 그들의 영향을 저항하기에 충분한 영적 능력을 소유하고 있을 것 같으면 그들은 선을 위한 능력이 될 것이다. 그들은 배우는 자이면서 동시에 가르치는 자가 될 수 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신앙이 없는 자들의 생활을 두르고 있는 분위기를 좋아하거나 칭찬과 찬사를 받기 위해서 회개하지 않은 자들과의 교제를 택하지 않고, 빛과 지식을 전달하고 숭고하고 고상한 표준, 곧 영원한 진리의 넓은 강령을 그들에게 제시할 목적으로 택한다.

자신의 재능을 올바로 사용하기 위하여 지성적이 되고자 하는 열정과 순수한 동기를 가진 한 사람은 학교에서 선을 위한 하나의 능력이 될 것이다. 그는 하나의 형성시키는 감화력을 갖게 될 것이다. 부모들이 학교의 권위와 훈육 방침에 대한 자녀들의 불평을 정당화시켜 줄 때 그들은 오늘날 그처럼 무서울 정도로 뻗고 있는 부도덕의 세력을 그들이 증가시켜 주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젊은이들을 두르고 있는 온갖 영향은 올바른 편에 놓여질 필요가 있다. 젊은이들의 타락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젊은이들에게는 교제와 쾌락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의 열중케하는 정열이 된다. 옷을 입고, 방문하고, 식욕과 정욕에 탐닉되고 일련의 사교적 유흥에 돌아다니는 것이 생존의 큰 목적처럼 보인다. 그들이 외로이 홀로 남게 되면 그들은 불행해진다. 그들의 주요한 욕망은 칭찬받고 추켜세워지는 것이며, 사회에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욕망이 충족되지 않으면 생애가 견딜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매일 얼마의 시간을 명상과 기도에, 또한 성경 연구에 바치는 자들은 하늘과 연결되고 그들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구원하고 변화시키는 감화를 주게 될 것이다. 위대한 사상, 고상한 욕망, 진리와 하나님께 대한 의무에 대한 의식 등이 그들의 것이 될 것이다. 113 그들은 순결과 빛과 사랑과 하늘에서 오는 모든 은혜를 갈망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열렬한 기도는 휘장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이 부류의 사람들은 무한하신 분 앞으로 나올 거룩한 담력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하늘의 빛과 영광이 그들을 위한 것임을 느끼고, 그들은 또한 이처럼 친밀하게 하나님을 앎으로써 세련되고, 고상하고, 숭고해질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이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의 특권이다.

추상적인 명상은 충분하지 않고 바쁜 활동도 충분하지 않다. 그 두가지는 다 그리스도인의 품성 형성에 요긴하다. 열렬하고 은밀한 기도에서 얻은 힘은 사회의 유혹을 물리치도록 우리를 준비시켜 준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세상에서 물러나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그리스도인 경험은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불신자들을 하나님께 연결시켜 줄 목적으로 그들과 섞이고 그들의 영향을 물리칠 만큼 영적으로 충분히 강할 것 같으면 불신자들과의 교제가 우리에게 손해를 주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을 구원하고, 타락한 인류를 무한하신 하나님과 연결시키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빛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과의 교통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들은 흑암과 오류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하늘에서 주는 귀중한 축복을 전해 주어야 한다. 에녹은 그 당시에 존재했던 악으로 더럽혀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우리는 오늘날 그렇게 될 필요가 있는가? 그러나 우리는 우리 주님처럼 고통 중에 있는 인류를 동정하고, 불행한 자들을 긍휼히 여기고, 감정이 예민한 자들을 관대하게 대하여 주고, 궁핍한 자, 어려움을 당하는 자, 낙망 중에 있는 자들의 필요를 채워 줄 수 있다.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고자 노력하고, 동시에 침착하고, 거룩한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도록 그들의 말과 행동을 조절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주님처럼 되고 그분의 형상을 지니고, 그분의 모본을 따르고, 그분의 생애를 살도록 요구한다. 이기심과 세속적 마음은 그리스도인의 나무에 맺히는 열매들이 아니다. 어떤 사람도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면서 하나님의 시인을 받을 수 없다. ― 1879.9.5.

경고와 책망

114 _________에 있는 교회는 그 교회의 영적 유익에 손해되는 요소가 있다. 활력이 넘치는 경건, 체험적 신앙이 크게 부족하다. 나는 이름들을 말하지는 않겠다. 각 사람은 자기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그 자신의 불완전함을 깨닫도록 하라. 언제나 세상으로 기울어지고, 세속적인 대화로써 언제나 신앙의 표준을 낮추고 있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마음 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간직하고 있지 않다. 그들은 교회 안에 진정한 도움이 필요할 때 약한 실정이다. 이와 같은 영적 연약함은 가장 크게 도와줄 수 있는 때와 장소에서 책임을 지기 싫어하기 때문에 생긴 결과이다. 그러나 이루고자 하는 그들 자신의 어떤 계획이나 방책이 있으면 그들은 어떤 책임이라도 즐겨 감당하고자 한다. 그들 자신의 길을 따르고자 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다. 만일 거룩한 방법으로 그러하다면 그렇게 나쁘지 않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하나님의 사업에는 열심 있고 사욕이 없는 일꾼들이 매우 필요하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한 사람의 헌신적인 교인은 절반만 회개하고, 성화되지 못하고 자부심이 강한 일백명의 일꾼들보다 교회 안에서 더 많은 선을 행할 수 있다. 교회에 속한 교인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짐을 지고 책임을 감당하지 않을 것 같으면 교회는 살아 있고, 활동적인 교회가 될 수 없다. 교회의 관계에 있어서는 각기 다른 성질과 기질이 함께 연합하게 된다. ________교회에는 기도를 많이 하고, 교회의 짐을 지고, 그 교인들의 번영에서 자신의 행복을 찾는 헌신적이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성실한 영혼들이 몇 사람뿐이다. 다른 곳에서처럼 여기서도 사단은 끌어내리고 타락시키기 위하여 끊임없이 활동하고 있다. 만일 번영하기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될 모든 조직을 약화시키고 파괴하는 것이 영혼들의 원수가 하는 사업이다.

젊은이들이 진리를 받아들이고 얼마 동안 잘 지속해 왔다. 그러나 사단은 어리석은 애착과 가엾은 결혼으로 그들을 둘러 자신의 그물을 쳐 버렸다. 115 그는 이것을 거룩함의 길에서 그들을 유혹할 수 있는 가장 성공적인 길이 될 것으로 보았다. 한동안 이 젊은이들 중 몇은 위엄과 은혜로 복음의 갑옷을 입었다. 마음과 정신이 하나님의 뜻에 굴복되어있는 동안은 번영이 있었다. 그러나 눈이 예수님에게서 이탈되고 가치없는 대상으로 끌리게 되자 자기 주장이 지배적이 되고 육신적 이성(理性)이 현명한 판단과 정직보다 우세해졌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 갑옷은 그처럼 나이가 젊은 사람들이 지기에는 너무 무거운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것은 나이가 들고 경험이 많은 복음의 병사들은 감당할 수 있겠지만 젊은 사람들에게는 너무 무거운 것으로 여겨졌다. 유혹자는 그리스도인의 길에서 변덕과 주저를 유발하도록 의도된 많은 암시를 했다.

그들의 구원의 대장의 명령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영혼을 성실하게 지키기는 너무 어려웠고, 사단의 기만적 능력과 거짓된 마음은 그리스도에게서 떠나가도록 유혹했다. 만일 이 젊은 남녀들이,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고전 6:19, 20)라고 한 사도의 말을 생각했을 것 같으면 그들은 무한한 값으로 사 주신 하나님에게서 떠나갈 자유가 있다고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책임을 느끼는 젊은이는 백명 가운데 한 사람도 없다. 모든 육체적·정신적 능력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가장 훌륭하고 가장 고상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주의 깊이 보존되어야 한다. 그들의 능력이 악용되도록 허용함으로 하나님의 선물을 남용하고 있는 그 젊은이들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마련된 것을 이용함으로 이룰 수 있었던 선에 대하여 엄격한 문책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능력의 활용을 요구하신다.

________교회에는 그리스도인의 확고 부동한 덕성을 계발시키고 믿음있는 사람으로 자라나야 할 젊은이들이 있다. 그들은 진리 안에 뿌리를 박고 터가 굳어져서 튼튼하고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116 그 교회는 그들이 반드시 주도록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로 그 도움이 필요하다. 그분의 이름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은 그들의 능력을 완전하게 남김없이 그분께 바치지 않고, 다소간 사단을 섬기는 일에 그것들을 바쳤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께 도둑질 해왔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위탁받은 달란트를 불성실한 청지기처럼 그들은 하나님의 선물을 땅속에 감추어버렸다.

________에 있는 교회에 큰 해를 끼치는 또 하나의 것은 그 교회로 들어온 요소이다. 이 요소는 하나님의 영으로 녹아져야 한다. 조야하고 거칠은 품성의 특성들 속에 찌꺼기가 보이는데, 만일 그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배우는 자들이었을 것 같으면 이것들은 이미 제거되었을 것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의 정신과 영향에서 그들 스스로를 완전히 분리시키지 않았다. 그들은 날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과 재능과 능력을 세속적인 요소에 혼합시킴으로 그분께 도둑질한다. 그런데 이 능력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는다면 영원한 파멸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 비록 그대가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멸망할지라도, 그대는 값으로 산 바 되었다.

거룩한 천사들은, 그 교회에 속한 교인들이 그들의 구속주께 영광을 돌릴 것인지 보기 위하여, 그들이 사랑하고 높이고 섬기노라고 공언하는 주님을 더 이상 속이지 않고 그들이 하늘과 연결된 위치에 그들 스스로를 둘 것인지 보기 위하여 비상한 관심으로 주시하고 있다. 그분께서는 그분 자신의 소유를 요구하신다. 그대는 창조를 통하여 그분의 것이 되고 또한 구속을 통하여 이중으로 그분의 것이 되어 있다. 그러나 그대가 부정한 정욕의 불에 눈이 밝아지도록 허용한다면, 그대가 거룩한 천사들을 그대에게서 떠나가게 하는 말을 하게 된다면, 그대가 형제들의 잘못을 생각한다면, 그대가 사악한 이득으로 그대의 손을 더럽힌다면, 그대는 그대의 지체들을 불의의 도구로 바치고 있는 것이다.

______형제여, 나는 하늘의 원장(元帳)에 있는 그대의 이름 곁에 “부족하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대는 인내에 있어서, 오래 참음에 있어서, 자제에 있어서, 겸손과 온유에 있어서 부족하였다. 이와 같은 하늘의 덕성들이 부족할 때 하늘의 문들은 그대에게 분명히 닫혀질 것이다. 그대의 육체, 그대의 영혼, 모든 능력과 함께 그대의 몸 전체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것으로 주장하는 것들이다. 117 그 조급하고 제어되지 않은 기질은 극복되어야 한다. 영적 질병은 이와 같은 까다롭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정신에 굴복할 때 생기는 분명한 결과다. 그리고 이 심령의 질병은 그대 자신의 실수로 얻은 것일 것이다. 까다롭게 되는 일을 그치고, 완고하게 되는 일도 그치고, 자아를 귀하게 여기는 일도 그치라. 그리고 하나님을 위하여 고상한 마음을 가진 씩씩한 사람이 되라. 예수님께서 그대를 사랑하신다. 그분께서는 그대가 어려운 처지에 빠질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충분한 준비를 갖추어 놓지 않으셨는가? 그분께서는 말씀하신다.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사 5:4).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교회에 베푸신 꾸준한 보호 후에, 맺도록 요구하시는 열매는 믿음, 인내, 사랑, 오래 참음, 하늘의 마음가짐, 온유 등이다. 이것들은 햇빛 속에서는 물론이요 폭풍과 구름과 흑암 속에서 익는 열매의 송이들이다.

________형제는 교회에는 속해 있지만 주님께는 속해 있지 않다. 그는 병약한 신앙을 가지고 있다. 그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놓여 있지 않다. 그는 자아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는 그리스도의 정신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과 연합함으로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그는 거의 모든 덕성이 부족하다.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쓸모가 없고, 교회에 대해서도 크게 거치는 돌이 된다. 사랑하는 형제여, 사단이 그대를 크게 지배해 왔다. 그대의 사상은 거룩하지 못하고, 그대의 행동은 진실한 그리스도인 정신과 일치되어 있지 않다. 그대가 그대 자신에게 질병을 가져왔다. 그러므로 그대는 신령한 의사의 도움으로 그대 자신의 회복자가 되어야 한다. 그대의 도덕적 능력은 자양분의 부족으로 약하다. 그대는 성경의 진리, 곧 생명의 떡에 영적으로 굶주려 있다. 그대는 산 포도나무에게서 매일 자양분을 흡수할 필요가 있다. 교회는 그대에게서 아무런 힘을 얻지 못한다. 그대의 현 상태로써는 그대가 없으면 훨씬 더 형편이 나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그대의 길과 반대되는 어떤 일이 생겨서 그대가 문제를 좌우할 수 없게 되면 그대는 완고하게 처리하고, 교회에 무거운 짐을 지우기 때문이다. 그대는 사업의 책임이나 짐을 전혀 지지 않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대를 오래 참으셨다. 118 그러나 그분의 오래 참으심에는 한계가 있는데, 그 선을 넘어가면, 그분의 영이 더 이상 그대와 다투지 않고, 이기심으로 더러워지고 죄로 인하여 천하게 된 그대 자신의 외고집대로 하도록 버려두실 것이다.

________형제는 올바른 정신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주도하려는 그의 기질이 그로 상처를 받게 하는데 그는 이런 일을 하기에는 전혀 적합한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아를 내세우지 않는다면 그는 교회내에서 훌륭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좀더 유순하고 겸비하면 그의 노력은 짐이 되는 대신에 교회에 축복이 될 것이다.

나는 그대의 이름 반대편에도 “부족하다”는 말이 하늘의 기록 책에 적혀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대는 자아를 비우고 영혼의 성전을 정결케 할 필요가 있다. 그대들은 다 같이 선을 행할 능력을 소유하고 있지만 그것은 거룩해지지 않은 능력이다. 그대는 경건의 단순함이 크게 결여되어 있다. 만일 교회가 그대의 신앙의 표준대로 형성되도록 방치된다면, 그것은 세속적이요 거룩하지 못한 형태로 저하될 것이다. 그대는 교회에 큰 축복이 될 수 있었지만 크게 기대에 어긋났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정신에서 나오도록 그대에게 명령하신다. ______자매여, 나는 그대와 그대의 영향을 받고 있는자들을 위하여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다. 그대는 낮은 표준에 이르고 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그대의 말과 행동을 통하여 그대는 지금 씨를 뿌리고 있다. 그대는 육신을 위하여 뿌리거나 성령을 위하여 뿌리거나 둘 중 하나를 하고 있다. 마지막 심판의 날에 각 사람은 낫을 들고 자기 손으로 뿌린 곡식을 베지 않으면 안 된다.

그대의 남편은 그의 일을 잘못하고 있다. 그가 자신의 마음을 어린아이처럼 낮추고, 자기 자신의 중요함을 적게 느끼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도움을 더 크게 느낄 그 때에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될 수 있는 위치에 놓이게 될 것이다. 실상이 그러하듯이 그는 그 사업의 필요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자아가 너무도 크게 드러나고, 많은 사람들의 생애와 품성에서 예수님이 너무도 적게 나타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손에서 아무것도 받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곧 하나님의 준비의 날의 엄숙함을 깨닫는 자는 별로 없다. 119 만일 그대들이 다 같이 회개하여, 교회를 약화시키고 원수가 교인들을 세상으로 이끌어 가는 사업을 도와주는 대신에 교회를 세우는 길을 연구하는 데 그대들의 재능을 바쳤을 것 같으면 그대들은 매일의 생활에서 귀중한 경험을 얻고 있을 것이다. _______형제는 교회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 그의 매일의 생애가 그의 고백과 일치되지 않으면 그는 교인이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당신의 자녀로 인정하지 않으신다. 그는 오늘날 흑암의 권세의 검은 깃발 아래 서 있다. 사단이 그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

이처럼 강하고 절망적인 영향은 교회가 거의 저항할 수 없는 너무도 강한 시대적 풍조가 되었다. 완전히 겸손한 마음으로 걸어가는 열 명의 신자는 현재의 교인 전부일지라도 연합이 부족한 온 교회가 가진 것보다 훨씬 더 큰 힘을 세상에 발휘하게 될 것이다. 분열과 불화의 요소가 많으면 많을수록 교회는 세상에서 선을 위한 능력을 적게 소유하게 될 것이다.

나의 형제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있는 큰 위험을 그대들의 흐려진 감각에 분명히 설명해 줄 수 있었으면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 선악간의 모든 행동은 그 행동이 반복될 길을 닦는다. 바로의 경우에 있어서 그 일은 어떠했던가? 성경의 기록은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다고 되어 있다. 하나님의 능력의 현현 가운데서 빛이 반복해서 주어질 때마다 그 말은 되풀이된다. 그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기로 거절할 때마다 그의 마음은 점점 더 굳어지고 하나님의 영에 의한 감동을 덜 받게 되었다. 그는 고집의 씨를 뿌렸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자라나도록 방임해 두셨다. 그분께서는 이적을 통하여 그 일을 방지하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그분의 계획이 아니었다. 그분께서는 그것이 자라나서 같은 종류의 수확을 거둠으로써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고 한 성경의 진실성을 입증하도록 허용하셨다. 사람이 의심을 심으면 의심을 거두게 될 것이다. 첫째 빛과 그후 계속된 다른 빛줄기를 거절함으로써 바로의 마음의 강퍅의 정도는 점점 굳어졌고 마침내 장자의 싸늘하고 죽은 모습에서 다만 일시적으로 그의 불신과 고집이 저지되었을 뿐이었다. 120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지 않기로 결심한 그는 마침내 홍해의 물에 휩쓸려 버릴 때까지 외고집의 자기 길을 계속해 달려갔다.

이 사건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기록에 남아 있다. 바로의 마음 속에서 일어났던 바로 그 일은 빛을 받아들이고 그 빛줄기를 따라 즉시 걸어가기를 등한히 하는 모든 사람의 심령 속에서도 일어날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도 멸망시키지 않으신다. 죄인은 회개하지 않는 고집에 의하여 스스로를 멸망시킨다. 사람이 일단 하나님의 영의 초청과 책망과 경고에 유의하기를 등한히 하면, 그의 양심은 무디어지고, 다음 번에 권고를 받을 때는 전보다 순종하기가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므로 반복될 때마다 그런 일이 생긴다. 양심은 인간의 정욕의 갈등 속에서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그것이 거절될 때 하나님의 영은 슬퍼하게 된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영혼이 어떻게 멸망당하는지 이해하기를 원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선고를 내리시는 것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뚫을 수 없는 흑암을 눈앞에 던지지 않으신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의 영의 움직임을 처음에 거절한다. 그리고 일단 거절하면 두번째는 그렇게 하기가 더 쉬워지고, 세번째는 그보다 더 쉬워지고, 네번째는 휠씬 더 쉬워진다. 그리하여 그가 뿌린 불신과 거절의 씨앗의 결과를 거두어들일 때가 이르러 온다. 아, 낫으로 거두어들일 어떠한 죄악적 방종의 추수가 준비되고 있는가!

오늘 은밀한 기도와 성경 읽는 것을 등한히 하면, 내일은 양심의 항의를 별반 받지 않고 그것들을 생략할 수 있다. 그리하여 긴 생략의 목록이 이루어질 것인데, 그것은 모두 마음의 흙 속에 뿌려진 하나의 낟알 때문인 것이다. 반면에 간직된 빛의 매줄기는 빛의 열매를 맺을 것이다. 일단 물리친 유혹은 둘째번에는 더욱 확고하게 물리칠 능력을 줄 것이다. 자아에 대하여 새로운 승리를 얻을 때마다 더 높고 고상한 승리의 길이 마련될 것이다. 모든 승리는 영생을 위하여 뿌려진 씨앗이다.

어느 곳에서나 우리 교회에는 열렬하고, 성실하고, 자아 부정적인 일꾼들이 크게 필요하다. 121 어떤 사람도 세상 끝에서 뿐만 아니라 현세에서도 풍성한 수확을 거두지 않고서 안식일 학교에서나 절제 사업에서 활동할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을 계몽시키고 축복하기 위한 바로 그 노력을 통하여 그 자신의 식견은 더욱 분명해지고 넓어질 것이다. 영혼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를 설명하고자 노력하면 할수록 그 진리가 우리 자신에게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그것은 언제나 새로운 미와 힘을 가지고 설명자의 이해력을 열어 준다.

그대의 교회에는 몇 명의 훌륭한 일꾼들이 있지만 이 극기의 사람들은 그들이 선교 지역에서 꾸준한 노력을 통하여 얼마나 많은 선을 이룩했는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요구에 순종해 온 사람들이 있지만, 그 보다 더 많은, 교회 내의 남녀들에게 주님께서는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이루고 있는 돌들 중 어떤 것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그들에게 비취는 빛을 반사하지만 다른 돌들은 빛을 내지 않음으로 그들이 택하심을 입은 귀중한 산 돌이 아님을 분명하게 나타낸다. 그들은 경건하지 않으며 기도는 하지 않고, 말이 많고 신앙이 없다.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구주께서 주신 모본을 본받아 온유하고, 겸손하고, 오래 참고, 친절할 것이며 호소를 쉽게 받아들이고, 교만과 완고함에서 벗어날 것이다.

젊은이들의 위험

________씨는 사단이 마음 놓고 이용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 경우는 결혼에 관하여 젊은이가 배워야 할 경우이다. 그의 아내는 배우자를 택하는 일에 이성과 사려 분별을 따르지 않고 감정과 충동을 따랐다. 그들의 결혼은 진정한 사랑의 결과였던가?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그것은 충동의 결과, 맹목적이요 거룩하지 못한 정욕의 결과였다. 둘 중 어느 누구도 결혼 생활의 책임을 감당할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새로운 생활의 신기함이 지나가 버리고, 피차간에 잘 알게 된 후에도 그들의 사랑은 더욱 강해지고, 그들의 애정은 더욱 깊어지고, 그들의 생애는 아름다운 조화 속에서 함께 결속되었는가? 122 전혀 반대되는 일이 생겼다. 그들의 품성의 가장 나쁜 특성들이 표현에 의하여 깊어지기 시작했고, 그들의 결혼 생활은 행복한 것이 되기보다는 어려움이 더해지는 것이 되었는데, 특별히 아내에게 그러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비로 그 여자를 시험하시고, 그의 생명을 아끼시고, 미래의 생애를 위한 적합성을 이루도록 그의 은혜의 시기를 연장시켜 주셨다.

그의 남편은 매우 결점이 많은 품성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철저한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으면 그는 어떤 여자와도 결혼으로 결합하기에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너무도 철저하게 자아로 채워지고 너무도 완전하게 자아 방종의 습관과 안일한 나태에 빠져 버렸기 때문에 아내나 자녀를 훈계하는 일에서 무엇인가를 해야 하기보다는 오히려 자기 자신이 훈계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사람의 정신은 열등한 주형(鑄型)에서 주조되었다. 조잡한 것과 좋지 못한 품성의 특성들을 조장해 왔는데, 마침내 그는 품성에 있어서 구제될 가능성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내 앞에 제시되었다. 오직 한 가지 희망이 있는데, 그것은 그가 자기 자신을 보고, 자기 자신을 멸시하고 싫어함으로 새 마음을 받고 새로 태어나기를 원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는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근면은 그에게 큰 유익이 될 것이다. 그의 행동은 하나님께 거슬리는 것이 되어 있으며, 그것 때문에 그는 시험을 자초한다. 그의 버릇 없는 태도, 그의 위협, 그의 길들일 수 없는 무례한 정신은 그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그를 저주가 되게 할 것이다. 그의 아내의 어머니에 대한 태도는 무례하고 신사답지 못한 것이었다. 다툼을 야기하고 결혼 서약을 깨뜨리는 모든 일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남편과 아내가 다 같이 지금부터 평생의 연구 대상으로 삼아야 할 과제이다.

바로 이와 같이 신성하지 못한 결혼이 안식일 준수자들의 대열에 끼어들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행복해지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만일 그들이 그분에게서 배울 것 같으면 그분께서는 이와 같은 불행한 연합 때문에 생기는 매일의 불행에서 그들을 구원해 주실 것이다. 많은 결혼이 오직 불행이 생기게 하는 데 불과하지만 젊은이들의 마음은 이 길로 달려간다. 123 왜냐하면 사단이 그 길을 통하여 그들을 이끌고, 그들이 자기 자신을 제어하거나 가족을 부양할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행복해지기 위하여 결혼을 해야 한다고 믿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불쾌한 다툼과 분쟁을 피하기 위하여 피차의 기질에 자신을 적응시키기를 원치 않는 자들은 그 계단을 밟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말세의 꾀이는 올무 중 하나이며, 그것에 의하여 수천명의 사람들이 이생과 내세에서 파멸을 당한다. 공상과 사랑에 병든 감상주의는 마치 문둥병을 경계하듯이 경계해야 한다. 이 시대의 매우 많은 젊은 남녀들은 덕성이 결여되어 있다. 그러므로 큰 주의가 필요하다. 덕스러운 품성은 건물을 지을 기초이다. 그런데 기초가 사라지면 건물은 쓸모 없이 된다. 비록 다른 바람직한 자격에 있어서 부족할지라도 덕스러운 품성을 보존해 온 자들은 진정한 도덕적 가치가 있을 것이다.

교회가 번영하려면 그 교회에 속한 교인들 측에서 귀중한 사랑의 식물을 소중히 기르기 위하여 주의 깊은 노력을 해야 한다. 그 식물이 마음 속에서 무성해지도록 온갖 편의를 제공해 주도록 하라. 모든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이 거룩한 사랑의 특성을 자신의 생애에서 계발시킬 것이다. 그는 오래 참음과 선행의 정신을 나타내고, 질투와 시기에서 벗어나 있음을 보여 줄 것이다. 말과 행동에 나타난 이 품성은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배격하지 않고 접근하기 어렵고, 냉랭하고, 무관심하지 않을 것이다. 귀중한 사랑의 식물을 가꾸는 사람은 정신에 있어서 자아 부정적이고, 성나게 하는 상황에서도 자제를 잃지 않을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잘못된 동기와 악한 의향을 전가시키지 않고 그리스도의 제자들 중 어떤 사람에게서 죄가 발견될 때 그것을 깊이 느낄 것이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는다. 그것은 겸손한 요소이다. 그것은 자랑하게하고 자기 자신을 높이도록 사람을 결코 충동하지 않는다. 하나님과 우리의 동료 인간에 대한 사랑은 경솔한 행동을 통하여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며, 우리로 하여금 거만하고, 결점을 찾고, 전제적이 되도록 이끌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자만심을 일으키게 하지 않는다. 124 사랑이 지배하는 마음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변덕스러운 마음에 적합하든지 적합하지 않든지, 그들이 우리를 존경하든지 나쁘게 취급하든지 상관없이 그들에 대하여 친절하고, 예모 있고, 동정 깊은 태도를 취하도록 이끌어 줄 것이다. 사랑은 하나의 적극적인 원칙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장점을 우리 앞에 항상 제시해 주고, 우리가 영혼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경솔한 행동을 못하도록 제지해 준다. 사랑은 그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안락과 자아 방종을 구하도록 충동하지 않을 것이다. 그처럼 흔히 사랑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은 우리가 “자아”에 대해서 나타내는 존경이다.

하나님께서 그 생애를 받으셔서 세상에서는 유용성으로, 하늘에서는 영광으로 충만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가난하고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사단은 그들이 생명의 길과 전혀 반대되는 곳에 투신하는 그런 성품의 소유자들과의 결혼을 통하여 하나님의 목적을 좌절시키고 그들을 멸망의 나락으로 끌어내리고자 끈덕지게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얽힘에서 당당하게 벗어나는 자들은 매우 적다. _____형제여, 그대는 자원하여 실험을 하고 그 법칙에서 예외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요셉은 유혹을 저항할 수 있었던 소수의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만을 안중에 두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그는 감옥에 갇혀 있을 때나 왕위의 다음 자리에 있을 때를 막론하고 똑같이 하나님의 뜻을 크게 존중하였음을 입증했다. 그는 어디로 가든지, 그가 어떠한 처지에 놓이든지 간에 자기의 신앙을 가지고 다녔다. 참된 신앙은 완전히 스며 있는 하나의 능력이다. 그것은 사람이 하는 모든 것에 기풍을 준다. 그대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하여 세상에서 벗어날 필요가 없다. 그대는 거룩하게 하는 신앙의 영향력을 모두 간직한채, 그대가 행동하고 말하는 모든 것 가운데로 그대의 신앙을 가져갈 수 있다. 그대는 마음을 하늘의 사물에 고정시킴으로 하나님께서 그대를 처하게 하신 그 상황에 속한 의무를 훌륭하게 수행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어리석은 교제를 통하여 그대에게 엄습한 마력을 깨뜨리게 될 것이다. 그대가 만일 빛을 따랐을 것 같으면 그대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자들이 그대의 영혼을 빼앗기 위하여 놓은 올무를 지금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젊은이들이 본받을 만한, 요셉의 품성에 있는 또 하나의 인상적인 점은 자식으로서의 그의 깊은 존경심이다. 125 눈물을 흘리면서 아버지를 대면할 때, 그는 애정 깊고 사랑에 넘치는 포옹으로 그의 목에 매달린다. 그는 부모를 충분히 위로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어머니의 사랑처럼 부드러운 사랑으로 그의 만년을 살펴보는 것 같다. 어떤 경우에서나 그의 존경과 사랑을 나타내기 위하여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요셉은 젊은이들이 마땅히 본받아야 할 하나의 모본이다. 그대의 어머니에 대하여 나타낸 사랑은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실 그런 아름다운 품성의 특성을 드러내 줄 것이다.

경건한 부모의 권면에 대한 존중심의 부족은 이 타락한 시대의 두드러진 죄악들 중 하나이다. 어둠 속으로 한걸음 내딛었기 때문에 어둡고 비참해진 많은 사람들의 생애가 우리 나라에 있다. 하나의 불순종의 행동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은 온 생애를 시들게 하고, 사랑이 많은 어머니의 마음을 번민으로 눌리게 했다. 만일 그대가 이 길을 따라간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대를 죄 없다 하지 않으실 것이다. 자신의 생애를 자녀들을 위하여 즐겨 바치고자 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어머니의 권면을 멸시함으로 그대는 다섯째 계명을 범하고 있다. 그대는 그대의 발걸음이 그대를 어디로 이끌어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나는 다시 어머니의 주장, 어머니의 사랑을 변호하는 바이다. 그리스도인 어머니에 대한 불순종의 죄보다 더 저열한 배은 망덕을 나타낼 수 없다. 속절없는 영아 시절에 어머니는 그대를 돌봐 주었고, 그가 애정어린 마음으로 그대를 기를 때, 그의 기도와 눈물을 하늘이 목격하였다. 자녀들을 위하여 그는 고생하고 계획하고, 생각하고, 기도하고, 극기하였다. 그대의 온 생애를 통하여 그의 진실한 마음은 그대의 복리를 위하여 염려하고 성실했었다. 그러나 이제 그대는 그대 자신의 길을 택하고, 그대가 거두게 될 쓰라린 수확과 그대가 어머니에게 가져다 줄 슬픔을 개의치 않고 그대 자신의 맹목적이고 완고한 뜻을 따른다.

쇠약함이 그대의 어머니 주변에 몰려들고 있다. 그에게는 그대가 필요하다. 그대가 기울이는 어떤 주의도 그에게는 매우 귀중할 것이다. 그의 다른 자녀들 중 아무에게도 그는 기대할 수 없다. 그들은 그에게 대한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 126 그러나 그대는 지금은 그대의 것인 특권이 미구에 상실되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대가 아들로서의 특권과 의무를 등한히 하면 어머니가 고통을 받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말라. 그는 그대가 스스로 버린 의무를 이행하는 것을 하나의 특권으로 여길 친구들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대의 어머니를 사랑하시며 돌봐주실 것이다. 만일 그의 자녀들이 그를 등한히 할 것 같으면, 그분께서는 다른 사람들을 일으켜서 그들이 했어야 할 일을 하게 하고 그들에게 주어진 축복을 받게 하실 것이다. 그의 마지막 때가 그에게 있어서 가장 좋고 가장 행복하게 되도록 해주는 것이 그들의 특권이다.

하나님께서 그대의 길을 좋아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대가 깨닫지 못할 뿐 아니라 만일 현명한 권면을 따르는 길을 택한다면 피할 수도 있는 어려움이 그대 앞에 있다. 우리 구주께서는 그대가 현명하게 되어 그대 자신을 파멸시키지 않도록 하시고자 그대를 당신의 불굴의 활동과 부드러운 근심의 대상으로 삼으셨다. 그는 무한한 동정과 사랑으로 그대를 사모하면서,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눅 13:34)라고 부르짖으신다. 그대의 어리석은 마음은 그대의 가장 좋은 친구들의 권면에서 돌아섰다.

평생의 실수에서 그대를 지켜 주기 위한 열렬하고 성실한 경고 때문에, 그대는 교회에 큰 유익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대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유용하게 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과 교회는 그대가 없어도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이다. 그대가 원하면 그대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로 이루어진 군대에 속할 수 있다. 그대는 그 싸움과 승리에 동참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그대가 그렇게 하지 않는 길을 택한다면 피묻은 십자가의 깃발 아래 모인 극기의 군대는 분명한 승리를 향하여 전진하고 그대를 뒤에 남겨 놓을 것이다. 만일 그대가 그대 자신의 약한 배를 타고 폭풍이 심한 인생의 바다를 건너가고자 한다면 그대는 주제넘음에 대하여 답변을 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만일 그대가 원칙에 있어서 이미 얼마나 약한 상태였는지 볼 수 있을 것 같으면, 그대가 그대의 명예와 정직이 위태롭게 되어 있음을 볼 수 있을 것 같으면 그대는 하나님이 그대와 함께 계시지 않으시다는 것과 그대가 지금 처해 있는 책임 있는 위치에 서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127 그대는 무가치하다. 만일 그대가 자신을 하나님께 바쳤을 것 같으면 그대에게 가능했던 것을 내가 깨닫고 원수가 그대를 장악하고 있는 능력을 볼 때 나의 마음은 참으로 슬프다.

안식일 학교 사업은 중요하다. 그러므로 진리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은 그 사업을 번영하게 하기 위하여 활동해야 한다. 교회 안에 있는________형제와 다른 사람들이 바른길을 따랐을 것 같으면 그 형제는 이 분야의 사업에서 훌륭하게 봉사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너무도 많은 칭찬과 귀여움을 받았다. 그것 때문에 그는 거의 파멸되었다. 주님께서는 그가 없어도 하실 수 있으시다. 그러나 그는 주님이 없으면 일할 수 없다. 주님께서는 깨끗한 손과 순결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당신의 사업을 맡기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사업에 책임을 맡는 것은 영광된 일이다.

절제 사업 역시 그대가 최선을 다해 활동할만한 것이다. 그러나 절제의 집회가 할 수 있는 대로 고상하고 품위 있게 이루어지도록 크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피상적인 사업과 연극적인 성격의 것을 모두 피하도록하라. 이 사업의 엄숙한 성격을 깨닫는 자들은 표준을 높이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절제 사업을 진정으로 존중하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유일한 관심은 연단에서 그들의 재치를 자랑해 보이는 데 있다. 순결한 자들과 생각이 깊은 자들과, 이 사업의 목적을 이해하는 자들은 이 위대한 개혁의 분야에서 일하도록 격려되어야 한다. 그들은 지성적으로 위대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순결하고 겸손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진실하기만 하면, 주님께서는 그들의 봉사를 받아 주실 것이다.

문서회가 꽤 빈번히 조직되기는 하지만, 열 가지 경우 중 아홉은 영혼들에게 축복보다는 손해가 된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 이유는 언제나 견고한 것에서 피상적인 것으로, 실제적인 것에서 허구적인 것으로 끌어가는 영향력을 끼치는 그런 경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나 세상과 결연을 이루기 때문이다. 문서회는, 신앙적 요소에 의하여 지배를 받기만하면 크게 유익할 것이다. 그러나 조만간 불신적 요소가 지배권을 잡고 압도적인 영향을 발휘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 128 우리의 절제회도 그것과 똑같다. 사업의 엄숙함이 모두 피상적인 것으로 가리워져 있고 계속적인 유혹이 우리가 구원하고자 하는 젊은이들 앞에 놓여 있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사실들을 주목해 보라. 우리들 사이에서 짐을 지고 있는 자들은 조용한 무덤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적극적인 교인들, 모든 개혁에 있어서 진실한 일꾼들은 대부분 인생의 전성기를 지나서 육체적·정신적 힘이 쇠약해져 가고 있다. 우리는 누가 일어나서 그들의 자리를 채울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교회의 중요한 사업을 누구에게 맡겨야 할 것인가? 우리는 깃발을 든 사람들이 몇 사람 더 쓰러진다면 하나님의 사업의 책임들을 누가 감당할 것인지,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질문해 볼 것이다. 우리는 오늘의 젊은이들이 그 짐을 맡을 자로, 그들에게 그 책임이 돌아갈 것으로 마음을 졸이며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남겨 놓은 그 곳에서 사업을 맡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길은 도덕과 신앙과 산 경건을 보급시키든지, 부도덕과 불신이 가치 있는 모든 것을 타락시키고 시들어 버리게 하든지 결정하게 될 것이다. 지금 깃발을 드는 방법이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부모들이여, 그대들은 그대의 행동을 통하여 건전한 제지와 훌륭한 질서와 평안이 지도 원칙이 되도록 지금 보여 줄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생애의 길이, 그들이 경박한 정신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과 도덕적 가치의 저울에서 낮다는 것을 보여 주는 자들이 형성시키고, 지배하는 영향을 발휘해야 할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믿는 당신의 백성들이 당신과 연결되어 예수님의 발자취를 겸손하게 따라감으로 그들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도록 요구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대에게 의견의 교만과 의복의 자랑과 자아 존대를 버리고 훌륭하고 고상한 정신의 능력들을 사용함으로써 강화시키도록 요구하신다.

인간에게 전해진 것 중 가장 엄숙한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남녀들이 원칙에 진실할 것인가? 만일 그들이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이끌어 주는 영향력을 가지려면 그들이 마땅히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129 그들의 의복과 대화가 그들의 독특한 믿음에 엄격하게 일치되어야 한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교훈과 모본을 통하여, 사회와 그들의 창조주께서 지워 주신 책임을 완수하는 법을 젊은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이 젊은이들에게는 무거운 책임이 지워져야 한다. 문제는 그들이 자기 자신을 다스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씩씩한 기백을 순수한 그대로 굳게 유지하고 방종과 불화의 기미가 있는 것은 무엇이나 가증히 여길 수 있을 것인지의 여부이다.

내가 어떤 말을 함으로 젊은이들을 감동시킬 수 있을 것인가? 이전에는 그처럼 위태로웠던 적이 결코 없었다. 오늘날 활동 무대에 등장하는 사람들에게처럼 한 세대에 그처럼 중요한 결과가 좌우된 적은 결코 없었다. 한 순간도 그들은 훌륭한 품성을 소유하지 않고서 신임받는 어떤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마치 가시떨기에서 포도를,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고자 기대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훌륭한 품성은 벽돌을 하나씩 차례로 쌓아야 하고, 쏟는 노력에 따라 매일 자라남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사람들이 하늘로 가져갈 특성은 그들 자신의 능력을 부지런히 발휘하고, 하나님의 섭리로 그들에게 주어지는 모든 장점을 이용하고 모든 지혜의 근원되시는 분과 연결됨으로 얻어져야 한다. 낮은 표준을 목표로 삼지 말라. 그대들의 마음이 열등한 주형에서 주조되지 않도록 하라. 요셉과 다니엘의 품성은 그대들이 따라야 할 훌륭한 모본이지만, 그리스도는 완전한 모본이시다.

_______교회의 형제 자매들 중 어떤 사람들은 이미 훌륭한 선교 사업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관심이 시들어져서는 안 된다. 그들의 힘이 미칠 수 있는 범위 이상의 일을 한 사람들도 몇 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그들의 음식과 음료이었다. 모든 사람이 이 사업의 한 부분을 담당할 수 있으며, 아무도 면제되어 있지 않다. 예수님은 당신의 이름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들이 열렬한 일꾼이 되기를 바라신다. 모든 교인은 개인적으로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질 필요가 있다. 각 사람의 영적 기초를 극도로 비틀고 시험할 폭풍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므로 모래 바닥을 피하고, 바위를 찾으라. 130 깊이 파고, 그대들의 기초를 분명하게 놓으라. 아, 지으라, 영원을 위하여 집을 지으라. 눈물로 건축하고 마음을 찢는 기도로 건축하라. 그대들 각 사람은 지금부터 선한 행실로 그대들의 생애를 아름답게 꾸미도록 하라. 갈렙과 같은 사람들이 이 마지막 때에 가장 필요한 사람들이다. 우리의 교회들을 활기있게 만들고 그들의 활동을 성공적으로 만드는 것은 떠들썩한 사업이 아니고, 조용하고 겸손한 사업이며, 과시하고 과장된 활동이 아니고 인내하고, 경건하고, 오래 참는 활동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마 12:30)라고 말씀하셨다. 오늘날 설 수 있는 남녀들은 전심 전력하고, 철저하게 결심한 자들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리스도 교회의 기초를 놓기 위하여 한때 다만 열 한 명과 성실한 소수의 여자들만이 남을 때까지 당신을 따르는 자들을 거듭거듭 체질하셨다. 짐을 져야 할 때에 물러설 자들이 있다. 그러나 교회가 모두 열성으로 꿇게 되면 그들도 열심을 내어 노래하고 부르짖고, 열광적이 된다. 그러나 그들을 관찰해 보라. 그 열기가 사라져 버리면, 다만 성실한 소수의 갈렙들만이 앞으로 나와서 불굴의 원칙을 보여 준다. 이 사람들은 맛을 잃지 않은 소금이다. 교회에 진정한 조력자들이 등장하는 때는 사업이 난관을 뚫고 나갈 때이다. 이 사람들은 자아에 대하여 이야기하지 않고, 자아를 옹호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의 자아를 잃어버릴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크게 되려면 겸비에 있어서, 믿음의 단순함에 있어서, 그리고 사랑의 순수함에 있어서 어린 아이가 되어야 한다. 모든 교만은 멸절되고, 모든 시기는 극복되고, 최상권을 위한 모든 야망은 버린 바 되고, 어린이의 온유와 신뢰가 권장되어야 한다. 그런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가 그들의 보호의 반석이요 그들의 강한 망대임을 발견할 것이다. 그들은 그분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것이며, 그분께서는 그들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실 것이다.

아, 현대 진리를 믿는 모든 사람이 주님을 찾도록 경고를 받게 되었으면 좋겠다.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와 그분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생각은 모든 사람에게 그분의 본을 따르도록 영향을 끼쳐야 한다. 그러나 상황이 그렇지 않다. 우리의 자매들 중 어떤 사람들은 의복과 과시를 좋아하는 데 지나치게 거리낌없이 몰두한다. 그들은 우리의 거룩한 믿음에 전혀 일치되지 않게 의복을 입는다. _______자매가 사실상 그렇다. 세상은 이 자매가 보여 준 것보다 더 좋은 모본을 보아야 한다. 131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책임을 느끼고 그의 영향력을 하나도 남김없이 그리스도 편에 기울이고 그와 접촉하는 사람들이 보다 세속적으로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와 _______자매가 스스로 검소한 옷을 입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장려하였을 것 같으면 그들은 교회에 더 큰 유익이 되었을 것이다. 양재를 하고 최신 유행의 옷을 연구하는 그 자매들은 교회 안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 그들의 의복을 세상의 본을 따라 재단하고 장식하도록 권유함으로써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을 하도록 흔히 이끈다. 그들의 생애에서 장식을 덜하고, 천박하고 세속적인 이야기를 덜하고, 방문(訪問)을 덜하는 것이 보였다면, 또한 그대들을 위한 목회활동에 대하여 불평하고 투덜거리는 일을 덜하고 더 많이 기도하는 것과 성경을 읽는 것이 보였다면, 선을 행하기 위한 그 자매들의 활동은 하나님께 훨씬 더 가납되었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교회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목회직에 있는 그들의 형제들 중 몇 사람들에 대하여 취한 행동을 불쾌히 여기신다. 그분께서는 그대들의 매정한 말을 그치고, 투덜거리고 불평하고 결점을 찾는 말 대신에 용기를 주는 말을 하도록 그대들에게 명령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성도들을 통하여 그대들에게 말씀하고 계시지만, 그대들은 그분의 권면을 멸시하고 그분의 책망을 거절했다. 이런 일을 더 이상 하지 말라. _______목사는 동부에서 뿐만 아니라 많은 곳에서 해야 할 사업이 있다. 만일 그가 예수님 안에 감추어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 하시고 그를 형통하게 하실 것이다. 결코 잘못이 없는 사람이 아니므로 그가 때때로 판단을 잘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하도록 명령하신 말이 효력을 상실하지 않도록 그대들이 어떻게 말할 것인지 주의하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면 그는 비록 생명이 희생될지라도 그것을 행하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들 중 많은 사람들이 다만 어떻게하면 자신을 기쁘게 하고 안락한 생활을 할 것인지만을 계획하고 있는 동안, 그의 온 생애와 관심은 하나님의 사업에 온통 파묻혀 있다. 사업을 위하여 연구하고 계획하는 동안, 그는 때때로 꼼꼼하고 날카로운 점을 나타냈고,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잘못된 판단을 받게 되었다. 그의 목적은 자기 자신을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니고, 그가 사랑한 사업을 이롭게 하는 것이었다. 132 주님께서 그대들에게 그분의 시련당하는 종들의 손을 성실하게 붙들어 주기를 바라시면서, 그분은 새로 믿음에 들어온 자들이나 과거의 생애와 활동을 잘 모르는 자들을 지나치게 신임하지 않도록 그대들에게 경고하신다.

번영하고 행복한 교회가 되게 하는 것이 그대들의 특권이다. 그대들 각 사람은 스스로의 마음을 살피고, 더러워진 영혼의 성전을 정결케하고, 깨어 기도하라. 그대들이 발견할 때까지 예수님을 찾고자 결심하라. 그분의 사랑이 그대들의 마음 속에 거하고, 그분의 정신이 그대들의 생애를 지배하고 그대들의 품성을 꼴 지워 줄 때까지 그분을 붙든 손을 놓지 말라. 그리고 믿으라. 그러면 그분께서 그대들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을 알고 담대하게 그분의 보좌 앞에 나갈 수 있다.

하나님의 일꾼들

큰 추수장에서 일하는 동료 일꾼들이여, 우리에게는 일할 시간이 조금밖에 남아 있지 않다. 지금은 우리에게 주어질 수 있는 가장 유리한 기회이다. 그러므로 매 순간을 참으로 주의 깊이 이용해야 한다. 우리 구주께서는 영혼들을 구원하는 사업에 너무도 헌신했기 때문에 그분은 당신의 피의 침례까지도 갈망하셨다. 사도들은 주님의 열성에 사로잡혀, 위대한 그들의 사업을 완수하기 위하여 확고하고, 착실하고, 열렬하게 앞으로 전진하고, 정사와 권세와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대항하여 싸웠다.

우리는 사도 시대보다 더 큰 열성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 속한 목사들 중 많은 사람들에게는 불안한 정신과, 현대 부흥사들의 허황된 스타일을 본받고자 하는 욕망과, 무엇인가 큰일을 하고, 선풍을 일으키고, 유능한 설교자로 인정을 받고, 그들 스스로 영광과 명예를 얻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만일 그런 사람들이 위기를 당할지라도 영웅들에게 주어진 명예를 받을 수만 있다면 그들은 지칠줄 모르는 정력으로 사업에 종사할 것이다. 133 그러나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생애하고 활동한다는 것, 무명의 상태에서 예수님을 위하여 수고하고 희생하고, 사람들에게 특별한 칭찬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것은 불과 소수의 사람들만이 소유하고 있는 건전한 원칙과 확고한 목적을 요구한다. 하나님과 겸손하게 동행하기 위하여 더 많이 노력하고, 사람을 보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서만 활동할 것 같으면, 훨씬 더 많은 것이 성취될 것이다.

목회직에 있는 나의 형제들이여, 완전한 겸손과 온유로 예수님을 찾으라. 사람들의 주의를 그대들 자신에게로 끌고자 애쓰지 말라. 그대가 예수님을 높이고 있는 동안, 그들이 도구를 볼 수 없게 해주라. 예수님을 이야기하고, 예수님 안에서 자아를 잊어버려라. 갈바리와 십자가는 잊어버린 바 되는가 하면, 우리의 신앙 주변에는 너무도 많은 소동과 소란이 있다.

우리가 서로 칭찬을 받을 때, 서로를 높이기 위하여 공모를 할 때, 우리는 가장 큰 위험에 빠지게 된다. 바리새인들의 가장 큰 관심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는 데 있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이 그들이 받을 상급의 전부라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우리에게 지정된 일을 맡아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하도록 하자. 우리가 궁핍을 당한다면 그것이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 되게 하자. 거룩하신 우리 주님은 고난을 통하여 완전하게 되셨다. 아, 우리가 그분께서 일하신 것처럼 일하는 사람들을 언제 보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표준이다. 모든 사랑의 행동, 모든 친절한 말, 고난과 압제받는 사람들을 위한 모든 기도는 영원한 보좌 앞에 보고되고, 불멸의 하늘 기록에 올려진다. 하나님의 말씀은, 가장 어두워진 이해력에 빛을 비추어 주고, 그 빛은 가장 교양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무능과 죄악상을 느끼게 해준다.

원수는 오늘날 매우 헐값으로 영혼들을 사고 있다. 성경은 “너희가 값없이 팔렸”(사 52:3)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세상의 칭찬을 얻기 위하여, 어떤 사람은 돈을 위하여, 어떤 사람은 저속한 정욕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또 어떤 사람은 세속적 오락을 위하여 자기의 영혼을 팔고 있다. 그런 매매는 매일 이루어진다. 사단은 그리스도의 피로 산 바된 자들을 사기 위하여 입찰하고 있으며, 사람들을 위하여 지불한 무한한 값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헐값에 사고 있다.

134 우리에게는 큰 축복과 특권이 있다. 우리는 가장 귀중한 하늘의 보화를 얻을 수 있다. 목사들과 백성들은 복음의 진리가 구원하지 못하면 파멸시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날마다 자비의 초청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영혼은 그의 심령을 분기시키는 감동하나 없이 미구에 가장 긴급한 호소를 듣게 될 것이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으로서 우리는 더욱 열렬한 경건과 보다 적은 자고(自高)가 필요하다. 자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하나님의 영의 증언을 믿는 믿음은 더욱 감소될 것이다. 하나님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자들은 그분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아는 자들이다. 영적인 자들은 영적인 사물을 분별한다. 자기 자신을 완전히 신뢰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영의 증언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점점 덜 보고있는 동안, 그런 사람들은 주님께서 그들의 잘못을 지적해 주신 것을 감사하게 생각할 것이다.

우리의 사업에는 깊은 겸손과 금식과 기도가 수반되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일에 평안과 기쁨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슬픔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면 기쁨으로 거두게 될 것이다. 흑암과 절망이 때때로 자아 희생적인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올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더욱 열렬하게 찾도록 해주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인지도 모른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갈렙과 같은 사람들, 성실하고 진실한 사람들이다. 나태는 오늘날에 있어서 너무도 많은 사람들의 생애를 특징짓고 있다. 그들은 인내하면서 그들의 모든 힘을 적극적으로 활동시켜야 할 바로 그 때에 분발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종들이여,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엡 5:14). 그대들의 활동은 자아가 너무 강하게 부각되므로 그리스도는 잊어버린 바 된다. 그대들 중 어떤 사람들은 응석받이로 자랐으며, 치켜 세워졌고, 우쭐해 한다. 노아의 때와 같이, 지나치게 많이 먹고 마시고 심고 집을 짓고 있다. 세상은 그리스도의 종들의 힘을 도적질해 갔다. 형제들이여, 그대들의 신앙이 불신자들에 의하여 높임을 받게 하고자 한다면 거기에 부응하는 행동을 통하여 그대 자신이 그것을 높이라. 135 난관과 세상의 압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밀접한 연결과 성경의 진리에 대한 엄격한 집착을 통하여 그대들이 진리의 정신을 자녀들의 마음 속에 넣어 줌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손에 들린 선을 위한 기구로써 그대들과 함께 효과적으로 일하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과식과 호색적인 정욕을 채움으로 말미암아 정신적·육체적 활동 모두를 할 수 없게 된다. 도덕적·영적 특성이 약해지는 반면에 동물적 성벽은 강화된다. 우리가 크고 흰 보좌 주위에 둘러설 때, 거기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의 생애의 기록은 어떠할 것인가. 그 때에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남용하지 않았을 것 같으면 그들이 무엇을 이루게 되었을지 보게 될 것이다. 그 때에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위탁하신 모든 육체적·정신적 능력을 하나님께 바쳤을 것 같으면 그들이 도달하였을 지적 위대함의 높이를 깨닫게 될 것이다. 후회의 번민 속에서 그들은 그들의 생애를 다시금 살아보고자 갈망할 것이다.

나는 빛의 전달자-양떼의 모본-로 공언하는 자들에게 모든 악에서 떠나라고 호소하는 바이다. 이제 그대들에게 맡겨진 조그마한 나머지의 시간을 잘 이용하라. 그대들은 가장 무서운 핍박이 닥칠 때 그대들의 신앙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하나님을 굳게 붙들고 있으며, 그분의 사업에 헌신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깊은 사랑만이 우리에게 박두한 시련 가운데서 영혼을 지탱해 줄 것이다.

극기와 십자가는 우리의 몫이다.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일 것인가? 우리들 중 아무도 마지막 큰 시련들이 우리에게 엄습할 때 필요하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자아 희생적, 애국의 정신이 계발될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정말로 그렇게 기대하지 말 것이다. 이 정신은 우리의 매일의 경험에 혼합되어 교훈과 모본을 통하여 우리 자녀들의 정신과 마음 속에 주입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의 어머니들은 그들 스스로 용사들이 되지는 않을지라도, 여호와의 날에 전신 갑주를 입고 용감하게 싸울 용사들을 기를 수는 있다.

목사들과 백성들은, 그들이 주님의 날에 설 수 있으려면 회개시키는 은혜의 능력이 필요하다. 세상의 죄악과 인간의 타락이 하나님의 간섭이 필요되는 지점까지 급속히 접근하고 있다. 136 그 때에 그분을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은 그분의 거룩한 율법에 대한 충성심에서 더욱 두드러져야 한다. 그들의 기도는 다윗의 기도와 같아야 할 것이다. “저희가 주의 법을 폐하였사오니 지금은 여호와의 일하실 때니이다.” 그들의 행동을 통하여, 그들은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을 금 곧 정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라고 말할 것이다(시 119:126, 127).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나타내는 바로 그런 모독은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백성들이 전면에 나서서 짓밟힌 그분의 율법에 대한 존중과 존경을 보여 주어야 할 충분한 이유이다.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 24:12). 대기 자체가 죄로 더러워져 있다. 미구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불같은 시련으로 시험을 받을 것이다. 오늘날 순수하고 참된 것처럼 보이는 자들 중 매우 많은 비율의 사람들이 천한 금속임이 판명될 것이다. 반대와 위협과 모욕으로 강해지고 굳세어지기는커녕 그들은 비겁하게 반대자들의 편에설 것이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삼상 2:30)라는 약속이 있다. 세상의 대부분이 하나님의 율법을 폐하고자 시도해오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그 법에 애착심을 덜 가질 것인가?

이미 하나님의 심판은 폭풍과 홍수와 폭풍우와 지진을 통하여 보여진바와 같이 이 땅에 널리 내리고 있다. 위대하신 영원자존자(永遠自存者)께서는 당신의 법을 폐하는 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진노가 세상에 쏟아질 때, 누가 능히 설 것인가? 지금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원칙에 진실함을 스스로 보여 주어야 할 때이다. 그리스도교가 가장 크게 모독을 당하고, 그분의 율법이 가장 크게 멸시를 받을 바로 그 때 우리의 열성은 가장 뜨겁고 우리의 용기와 확고함은 가장 불굴의 것이 되어야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우리를 버릴 때 진리와 의를 옹호하여 굳게 서고, 투사가 적을 때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는 것-이것이 우리의 시험이 될 것이다. 이 때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냉(冷)에서 열(熱)을, 그들의 비겁에서 용기를, 그들의 반역에서 충성을 취해야 한다. 이 국가는 큰 반역의 지도자 편에 설 것이다.

137 시험은 분명히 올 것이다. 36년 전에 나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이 일어날 것을 보았고, 여호와의 거룩한 안식의 날이 짓밟히는 반면에 법왕권 제도의 준수가 일요일 법령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강요될 것을 보았다.

우리의 구원의 대장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싸워야 할 싸움을 위하여 그들을 강하게 해주실 것이다. 사단이 그의 군대를 총동원하여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엄습하여 죽음이 목전에서 그들을 노려보고 있을 때 열렬한 기도가 믿음을 통하여 싸움터에 있는 여호와의 군대의 대장에게로 상달되어 전세가 역전되고 압박받는 자들이 구원을 받은 경우가 얼마나 흔했던가.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가 사람들의 자녀들에게 쏟아질 때 우리가 숨김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과 밀접히 연결되어야 할 때는 지금이다. 우리는 옛지계표를 떠나 방황하고 있다. 이제 돌아가도록 하자. 만일 여호와가 하나님이면 그분을 섬기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섬기자. 그대들은 어느 편에 서겠는가?

사단의 앞잡이들

사단은 죄를 짓도록 유혹하고 그것을 매력 있게 만드는 앞잡이로서 남녀들을 사용한다. 그는 이 앞잡이들이 죄를 잘 변장시키도록 충실하게 교육시켜서 그가 더욱 성공적으로 영혼들을 멸망시키고 그리스도에게서 그분의 영광을 빼앗을 수 있도록 만든다. 사단은 하나님과 인류의 큰 원수이다. 그는 그의 앞잡이들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빛의 천사로 변장시킨다. 성경에서 그는 파괴자, 형제들을 참소하는 자, 기만자, 거짓말쟁이, 괴롭히는 자, 살인자로 불리워진다. 그는 많은 사람을 고용하고 있지만, 그가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을 자신의 극악한 사업에 사용하게 될 때 가장 성공적이다. 그들의 영항력이 크면 클수록 그들의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들이 하나님과 그분의 사업에 관하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노라고 공언하면 할수록 그는 더욱 성공적으로 그들을 이용할 수 있다. 누구든지 죄를 짓도록 유혹하는 자는 그의 앞잡이이다.

138 동부의 장막회들 중 하나에 참석하고 있는 동안 나는 어느 금요일에 여러 명의 여자들과 어린 아들과 함께 하나의 천막을 쓰고 있는 한 사람에게 소개되었다. 그날 밤에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나의 심령은 매우 무거워졌다. 밤에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는 동안, 여러 해 전에 나단풀러의 행동이 책망을 받던 당시에 주어진 이상이 나의 마음에 뚜렷하게 되살아났다. 그 때에 나는 경건을 공언하면서 동일한 죄악의 길을 가고있던 세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것을 보았다. 이 사람은 그 세 사람 중 하나였다. 오전 집회에서 내가 증언할 때, 하나님의 능력과 영이 내게 임하였다. 그러나 나는 개인의 경우들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후 낮에 나는 나의 의무에 관하여 분명히 느끼고, 그의 경우에 대하여 가장 분명하게 증언하였다. 이 행동을 통하여 이 사람은,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는 사도의 지시를 완전히 어기고 있었다. 그는 넷째 계명을 지키고 있노라고 공언하면서 일곱째 계명을 어기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기만을 통하여, 마치 성실한 아내가 남편을 따르듯이 이 장소에서 저 장소로 따라다니는 한 무리의 여자들을 그의 주위에 모으고 있었다.

한 백성으로서, 우리는 독특한 백성으로 인정받고 있다. 우리의 위치와 믿음은 우리를 다른 모든 교단과 구별지어 준다. 만일 우리가 생애와 품성에 있어서 세상 사람들보다 낫지 않으면, 그들은 조소의 손가락질을 하면서, “이 사람들이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이다”, “일요일 대신에 제칠일을 지키는 백성의 한 표본이 여기에 있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마땅히 찍혀야 할 낙인이 양심적으로 제칠일을 지키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와 같이 찍히게 된다. 아,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진리를 순종하는 체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이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책망을 받아야 하고, 그와 함께 있던 여자들도 그와 헤어지고 잘못된 그들의 신뢰를 버리도록 권고를 받아야 할 것을 느꼈다. 139 그들이 들어간 길에는 불행과 파멸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늘의 책은 이 사람을,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기만자, 간음자”라고 증거한다. 그의 간악한 궤변으로 얼마나 많은 영혼들을 파멸시킬 것인지 심판만이 보여 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업에 계속적인 치욕을 안겨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즉시 그들은 책망을 받고 창피를 당해야 한다.

지구 역사의 마지막이 가까워짐에 따라, 위기와 위험이 우리 주변에 점증한다. 경건의 공언만으로는 쓸모가 없다. 우리의 믿음을 공언하는 자들을 통하여 가장 교묘하고 은밀한 방법으로 우리 가운데로 들어오고 있는 악을 분별하기 위한 영적 시력을 소유하려면 하나님과의 산 연결이 이루어져야 한다. 가장 큰 죄는, 성화되었다고 공언하고 죄를 지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통하여 들어온다. 이 부류에 속한 많은 사람들은 날마다 죄를 짓고 있으며 마음과 생애는 부패하다. 이와 같이 자부심이 강하고 독선적인 자들은 그들 스스로의 의의 표준을 만들고 있으며, 성경의 표준에 전혀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드높은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약속의 언약에 대하여 외인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외고집을 참으시고, 그들을 땅만 폐하는 자로 베어 버리지 않으시고 아직도 용서받을 가능성을 남겨 주시는 것은 큰 자비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계속적으로 이용당하고 그분의 자비는 남용당한다. 다윗은 그 당시에 사람들이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의 경계를 넘어갔기 때문에, 그분께서 그분의 명예를 옹호하고 불의를 제지하기 위하여 간섭하셔야 한다고 생각했다.

_______씨는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교리를 가르치는 교사이다. 그에게는 희망의 빛이 거의 없다. 그는 너무 오랫동안 자기 자신을 속이고 다른 사람들을 미혹해 왔기 때문에 사단이 그의 마음과 몸을 거의 완전히 지배해 버렸다. 그가 공언하는 의의 옷이 그에게서 찢겨지고 그의 비열한 목적과 사상이 폭로됨으로 그가 다른 사람들을 계속해서 지옥의 길로 이끌어 갈 수 없게 되는 것, 이것이 우리 모두가 기대할 수 있는 전부이다.

140 그는 하나님의 경고가 하나님의 율법의 빛에 비추어서 자기 자신의 잘못된 길을 보여 주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 경고를 싫어하고 그 다음에는 거절했다. 여러 달 여러 해가 지나가도 회개의 각성이 없는 것은 눈을 멀게 하는 죄악의 영향에 대한 가장 슬픈 증거 중 하나이다. 그는 고집스럽게도 자신이 택한 내리막길을 따라갔다. 그는 후회의 쓰라린 감정도 없고, 하늘의 보복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거짓말과 기만으로 자기의 죄를 눈에 띄지 않게 할 수만 있으면 그는 만족한다. 의와 불의에 대한 모든 감각은 그의 안에서 죽은 상태이다. 그가 무서워 떨면서 거둬들이게 될 수확이 그 앞에 있다.

이 경우에 있어서 가장 악한 면은 그의 모든 극악한 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표자라는 가장하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빛의 천사처럼 가장한 한 죄인은 측량할 수 없는 해를 끼칠 수 있다. 음험하고도 무서운 계획들이 남편과 아내를 분리시키기 위하여 신중하게 세워진다. 사도는 “저희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딤후 3:6)된다고 말했다. 이와 같이 음탕한 인물들은 존경할 만한 가정에까지 몰래 들어가 그들의 기만적인 간계와 술책으로 양심적인 사람들을 타락시킨다. 가증한 이단설이 진리로 받아들여지는 바 되고, 가장 반역적인 죄들이 의의 행동처럼 범해진다. 왜냐하면 양심이 혼미해지고 마비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자신의 신앙적 경험을 정직한 척 가장하기 위하여 제칠일이 주님의 안식일이라는 인기 없는 교리를 받아들였다. 우리의 견해가 우리의 출판물들을 통하여 분명히 밝혀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사실을 은폐해 버리고, 진리에다 자기 자신의 모독적인 이단설을 혼합시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그에게 성경에 관한 새 빛을 주신것으로 믿게 하고자 노력했다. 이와 같이 그는 넷째 계명의 안식일과 그것과 유사한 진리들에 관하여 백성들을 위한 큰 빛을 가지고 있노라고 공언함으로 의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지도를받아 온 것처럼 보이게 했다. 그러나 일단 신임을 얻게 되면, 그는 하나님의 율법에 정죄된 간음이 일반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바와 같은 뜻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고자 노력함으로써 성경의 참뜻을 곡해시키는 자신의 극악한 사업에 착수한다. 141 그는 분별 있는 여자들에게, 아내들이 그들의 결혼 서약에 성실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께 불쾌한 일이 아니라고 믿게 만들고자 진지하게 노력한다. 그는 이것이 일곱째 계명을 범하는 것임을 인정하지도 않을 것이다. 사단은 안식일을 준수하노라고 공언하지만 그로 하여금 그들의 마음과 애정을 지배하도록 허용하는 죄인들을 교회 안으로 들여보내 다른 사람들을 기만하고 타락시키는데 그들을 사용하기를 좋아한다.

이 타락한 시대에 많은 사람들은 죄악의 가증함에 대하여 너무 눈멀어 있기 때문에, 죄악이 육신적이고 왜곡된 마음의 경향에 맞는다는 이유로 육욕적인 생활을 택한다는 사실을 나타낼 것이다. 거울인 하나님의 율법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마음과 품성을 하나님의 표준에까지 올리는 대신에 그들은 사단의 대리자들이 그의 표준을 그들의 마음 속에 세우도록 허용한다. 타락한 사람들은 그들의 타락과 죄를 포기하고 마음과 생애를 순결하게 하기보다는 죄악 속에 있는 그들을 지지하기 위하여 성경을 그릇되게 해석하는 것이 더 쉽다고 생각한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욱 많으며, 우리가 마지막 때에 접근해 감에 따라 그들은 더욱 증가할 것이다. 성경의 진리 안에 뿌리를 박아 굳게 서지 않고, 하나님과 산 연결을 이루고 있지 않는 한 많은 사람들은 분별력을 잃고 기만당하게 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위험들이 우리의 길을 둘러싸고 있다. 우리의 유일한 안전은 끊임없이 깨어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우리는 그분의 순결하고 거룩한 품성에 더욱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죄는 우리에게 더욱 가증스럽게 보이고 그리스도의 순결과 밝음은 더욱 고상하고 바람직한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자신의 타락한 생애를 가리우고 그의 죄를 무해한 것으로 나타나게하고자, 이 사람은 성경에서 훌륭한 사람들이 유혹에 넘어진 예증들을 열거할 것이다. 바울은 그 당시에 바로 그런 사람들을 만났으며, 교회는 각 시대를 통하여 그런 사람들 때문에 저주를 받아 왔다. 밀레도에서 바울은 교회의 장로들을 함께 불러모으고, 그들이 직면하게 될 일에 관하여 경고했다. 142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행 20:28-31).

불의 가운데서 진리를 신봉하고, 그것을 믿는 자신의 믿음을 역설하면서도, 자신의 언행 불일치의 생활로써 날마다 진리를 해치는 자는 자기자신을 사단을 섬기는 일에 바치고 영혼들을 파멸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이 부류에 속한 사람은 타락한 천사들과 교통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는 일에 그들의 도움을 받는다. 매혹시키는 사단의 능력이 사람을 지배하게 되면, 하나님은 잊어버린 바 되고 타락한 목적으로 충만해진 사람은 높임을 받는다. 은밀한 방종이 하나의 미덕처럼 기만당한 이 영혼들에 의하여 자행된다. 이것이 일종의 마법이다. 갈라디아인들에게 한 사도의 질문은 다시 반복해 볼 만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갈 3:1). 이단과 방종에는 언제나 꾀는 힘이 있다. 마음이 너무 흐려져 있기 때문에 이지적(理智的)으로 판단할 수 없고, 환상은 마음이 순결에서 떠나도록 끊임없이 이끌고 있다. 영적 시력이 흐려져 있기 때문에 지금껏 흠이 없던 도덕적인 사람들이, 빛의 사자로 공언하는 사단의 대리자들의 미혹시키는 궤변 때문에 혼란해진다. 이런 대리자들에게 힘을 주는 것은 이와 같은 미혹이다. 만일 그들이 떳떳하게 나타나서 공공연하게 행세했을 것 같으면 그들은 한 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배척을 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처음에는 동정을 얻고 그 다음에는 그들이 하나님께 속한 거룩하고 희생적인 사람이라는 신임을 얻기 위하여 활동한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자로서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무효로 만들어 버리고자 시도함으로 영혼들을 바른길에서 떠나가게 하는 간교한 그들의 사업에 착수한다.

143 목사들이 그들에 대한 백성들의 신임을 이렇게 이용하여 영혼들을 파멸로 이끌게 될 때, 그들은 그들의 공언이 큰 그만큼 자신을 보통 죄인보다 훨씬 더 죄 많은 상태로 만든다. 하나님의 날에 하늘의 큰 원장(元帳)이 펼쳐지면, 마음과 생애가 순결한 것처럼 행세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탁받은 것으로 공언하면서도 그들의 위치를 이용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도록 영혼들을 유혹해 온 목사들의 이름도 거기서 발견될 것이다.

남녀들이 타락시키는 사단의 능력 아래 들어가면, 그들을 그 무서운 함정에서 건져내어 다시 순결한 사상을 갖게 하고 하나님의 요구를 분명히 깨닫게 해 주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들의 미혹된 마음에는 죄가 목사들에 의하여 거룩해졌으므로 하나님께서 죄를 보시는 것처럼 다시는 그렇게 가증한 눈으로 죄를 보지 않게 된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도덕적 표준이 낮추어지고, 그들의 판단이 왜곡되면 그들은 죄를 의로, 의를 죄로 보게 된다. 성향과 습관이 고상하고 순결하지 못한 이런 사람들과 교제함으로써 다른 사람들도 그들과 같이 된다. 그들의 취향과 원칙이 거의 모르는 사이에 받아들여진다.

덕스럽고 순결한 사람과의 교제보다는 불순한 마음과 방종된 습관을 가진 사람과 교제한다면 그것은 취향과 성향이 일치하고 있으며 도덕적 수준이 낮아졌다는 확실한 징후인 것이다. 기만당하고 미혹된 이 영혼들은 이 수준을 고상하고 거룩한 심령의 친근성, 곧 영적 조화라고 부른다. 그러나 사도는 그것을 우리가 열렬하게 대항하여 싸워야 할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엡 6:12)이라고 말한다.

기만자가 기만하는 그의 일을 시작할 때 그는 빈번히 취향과 습관의 차이를 발견한다. 144 그러나 경건을 크게 가장함으로써 그는 신임을 얻고, 일단 그렇게 된 다음에는 그의 간교하고 기만적인 능력을, 자신의 계략을 수행하기 위한 방법 그대로 발휘한다. 이런 성분의 사람들과 교제함으로 여자들은 불순한 공기를 마시는 것이 습관화되고, 거의 모르는 사이에 동일한 정신으로 바뀌어진다. 그들의 본질은 잃어버린 바 되고, 그들은 그들을 유혹하는 자의 그림자가 된다.

새 빛을 가지고 있노라고 공언하고, 개혁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시대에 존재하는 이단설을 믿고 교회의 영적 상태에 만족하지 못하는 특정 부류의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발휘할 것이다. 진실하고 정직한 마음을 가진 이런 사람들은 더 좋은 것에 대한 변화, 더 높은 영적 수준에 이르는 것을 보고자 한다. 만일 성실한 그리스도의 종들이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순결하고 순수한 현대 진리를 제시한다면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 진리에 순종함으로 자신들을 순결케 할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깨어 있는 사단은 미심쩍어 하는 이 영혼들의 발자취를 따른다. 개혁자라고 크게 공언하면서 그들에게 오는 어떤 사람은 마치 사단이 빛의 천사처럼 가장하여 그리스도에게 온 것처럼 그들에게 와서 그들을 바른길에서 더 멀리 떠나가게 한다.

방종에 따라 야기되는 불행과 타락은 헤아릴 수 없다. 세상은 그 거민들 때문에 더럽혀진다. 그들은 죄악의 양을 거의 채웠다. 그러나 가장 심한 형벌을 가져올 것은 경건의 가면 아래 자행되는 죄악이다. 세상의 구속주는 아무리 큰 범죄일지라도 진정한 회개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바리새인과 위선자들에게 심한 책망을 하셨다. 이 부류의 사람들보다 공공연한 죄인에게 훨씬 더 큰 희망이 있다.

“이러므로(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음으로)하나님이 유혹을 저희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살후 2:11, 12). 이런 사람과 그에게 기만당한 자들은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불의에서 쾌락을 얻고 있다. 145 방종과 간음 가운데 하나님께 불쾌한 것은 조금도 없다는 것보다 더 강한 미혹이 그들을 엄습할 수 있겠는가? 성경에는 이런 죄에 대한 많은 경고들이 있다. 바울은 디도에게,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딛 1:16)등에 관하여 편지한다.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여럿이 저희 호색하는 것을 좇으리니 이로 인하여 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을 것이요”(벧후 2:1, 2). 여기에 언급된 자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하는 자들이 아니고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면서도 그들의 품성의 비열함 때문에 진리를 비난받게 하고 그것을 훼방하는 자들이다.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으니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한 것을 훼방하고 저희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연락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저희 간사한 가운데 연락하며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저희가 바른길을 떠나 미혹하여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좇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불법을 인하여 책망을 받되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것을 금지하였느니라”(벧후 2:3, 12-16).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니 저희를 위하여 캄캄한 어두움이 예비되어 있나니 저희가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여”그들의 빛과 진리에 대한 그들의 지식과 사랑을 자랑하지만, 그들은 “미혹한 데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서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벧후 2:17, 18)한다.

146 우리의 원수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는 이 타락한 시대에, 나는 경고의 음성을 높일 필요를 깨닫는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막 14:38).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악하게도 사단의 사업에 자신을 바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세상에서 나왔노라고 공언하며 그 흑암의 일에서 떠났노라고 하는 한 백성에게 내가 어떤 경고를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율법의 보관자로 삼으셨지만,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처럼 바로 전능하신 분의 면전에서 외관상으로 무성한 가지들만 자랑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매를 맺지 않는 한 백성에게 무슨 경고를 할 것인가?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불순한 사상, 부정(不淨)한 상상, 저속한 정욕을 소유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나무에 맺힌 열매를 미워하신다. 사단이 즐거워하는 동안, 순결하고 거룩한 천사들은 그런 사람들의 행동을 가증하게 바라본다. 아, 그런 남녀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범함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 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하한 환경에서도 그리고 모든 환경에서 범죄는 하나님께 대한 모독이요 사람에게 저주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외관이 아무리 좋아 보이더라도, 그리고 누가 저질렀던지간에 죄를 그와 같이 간주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나는 현대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그대들이 불결에 조금이라도 접근하는 일을 즉시 후회하고 불순한 암시를 토로하는 자들과의 교제를 버리도록 호소하는 바이다. 가장 강한 증오심으로 더럽게 하는 이 죄들을 혐오하라. 심지어 대화를 통해서라도 그런 길로 마음이 달려가게 하고자 하는 자들에게서 피하라.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마 12:34)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더럽히는 죄를 범하는 자들이 세상에서 꾸준히 증가되고 있고 그들이 우리 교회 안으로 침투하고자 하는 때에, 나는 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말라고 그대들에게 경고하는 바이다. 유혹자들에게서 돌아서라. 비록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로 공언할지라도 그들은 인간의 형상을 입은 사단이다. 그는 그의 주인을 더욱 잘 섬기기 위하여 하늘의 옷을 빌려 입었다. 147 그대들은 한 순간이라도 불결하고 탐욕적인 암시가 용납될 자리를 주어서는 안 된다. 마치 불결한 물이 그것을 통과시키는 수로를 더럽히는 것처럼 이런 것이 심령을 더럽힐 것이기 때문이다.

죄로 영혼을 더럽히기보다는 차라리 궁핍과 비난과 친구들과의 분리와 어떤 종류의 고난이라도 택하라. 불명예나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기보다는 죽음을 택하겠다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표어가 되어야 한다. 개혁자라고 공언하며 가장 엄숙하고 순결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간직하고 있노라고 공언하는 한 백성으로서 우리는 표준을 현시대에 있는 것보다 더 높여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감염되지 않도록 교회 안에 있는 죄와 죄인들은 신속히 처리되어야 한다. 아간과 같은 사람들에게서 장막을 정결하게 하기 위한 더욱 철저한 사업을 하는 데는 진리와 순결이 필요하다.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형제에게 있는 죄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 그가 죄를 버리든지 교회에서 떠나든지 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에게 알려 주라.

교인들 한사람 한사람이 온유하고 겸손한 구주를 진정으로 따르는 사람으로 행동할 것 같으면, 죄를 가리워 주고 변명하는 일은 적어질 것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면전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들은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눈이 그들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과 가장 은밀한 생각도 그분께서 아신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품성, 동기, 욕망과 목적 등은 전능하신 분의 눈에 햇빛과 같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사실을 명심하는 자는 별로 없다. 많은 부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정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모든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운 문책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너무도 모른다.

그처럼 큰 빛을 받았노라고 공언해 온 그대들이 낮은 수준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와,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고 온 세상의 심판자께서 문 앞에 서 계신다는 엄숙한 진리를 깨닫기 위하여 참으로 열렬하고 끊임없이 구해야 한다. 그대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의롭고 거룩한 요구를 무시할 수 있겠는가? 그대들은 바로 여호와의 면전에서 어떻게 범죄할 수 있겠는가? 그대들은 순결한 천사들과, 그대들을 모든 불법에서 구속하고 정결케 하여 선한 일에 열심하는 특별한 백성으로 삼으시기 위하여 자신을 주신 구속주께서 훤히 보는 앞에서 부정한 사상과 저속한 정욕을 품을 수 있겠는가? 148 그대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비취는 빛 가운데서 그 문제를 명상할 때, 죄가 영원한 세계의 바로 경계에 서 있는 지금 탐닉하기에는 너무도 비열하고 위험하게 보이지 않을 것인가?

나는 우리 백성들에게 말한다. 만일 그대들이 질서 정연한 생활과 경건한 대화로써 그리스도께 가까이 나가고 그대의 믿음의 고백을 단장하고자 노력할 것 같으면 그대들의 발은 금지된 길로 들어가지 않도록 보호될 것이다. 그대들이 만일 경계하고, 끊임없이 깨어 기도할 것 같으면, 그대들이 또한 바로 하나님의 면전에 모든 일을 할 것 같으면, 그대들은 시험에 굴복하지 않도록 구원을 받고, 끝까지 순결하고, 흠이 없고, 더럽힘이 없이 보존되기를 바랄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그대들이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대들의 길은 하나님 안에서 굳게 세워질 것이다. 은혜로 시작된 것이 우리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광으로 관 씌워질 것이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 23).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우리는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게 될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할 것인가?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빛과 진리의 전파가 하늘의 선물을 받은 사람들의 자발적인 활동과 헌금에 의존되도록 하셨다. 목사나 선교사로 다니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비교적 소수에 불과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들의 재물로 진리를 전파하는 일에 협력하도록 부름을 받고 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죄는 우리의 예물과 헌금에 관하여 속이는 죄를 알려 주기 위하여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업의 발전을 위하여 그들의 재산의 일부를 바치기로 자원하여 약속했다. 149 그러나 재물이 손에 들어오자 그들은 그 의무 이행을 거절하면서도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모든 것을 바친 것처럼 나타내고자 했다. 각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원한 경고로 삼기 위하여 그들의 형벌이 기록되었다. 동일한 죄가 현 시대에 놀랍게 퍼져 있지만 우리는 어떤 주목할만한 형벌이 내린 사례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한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요구와 위엄에 대한 그런 모독을 얼마나 가증하게 여기시는지 일단 사람들에게 보여 주신 후에 그들이 하나님이 다스리는 일반적 원칙을 따르도록 놓아 두신다.

자원하여 바치는 헌금과 십일금이 복음 사업의 수입원이 된다. 사람에게 맡기는 재물 가운데서 하나님은 특정한 부분, 곧 10분의 1을 요구하신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십일금이 얼마나 되는지, 그보다 더 많이 바칠 것인지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의 자유 의사에 맡기신다. 그들은 마음에 의도하는 대로 바칠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어떤 특징한 몫을 바치기로 서약하면 서약한 그 사람에게는 바쳐진 몫에 대한 어떤 권리도 더 이상 없다. 그는 자신의 서약을 사람들 앞에서 했다. 그러므로 그 사람들은 그 서약에 대한 증인 역할을 하게 된다. 동시에 그는 지상에서 주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에 그분과 협력할 가장 신성한 성격의 의무를 지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한 이런 종류의 약속들은 구속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될 것이다. 그 약속들이 하나님께 한 것이면 더욱 신성하고 구속력이 있지 않겠는가? 양심의 법정에서 한 약속들이 사람들과 문서로 한 계약보다 구속력이 적은가?

거룩한 빛이 비범한 명료함과 능력으로 마음 속에 비췰 때, 습관적인 이기심은 그 힘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사업에 바치는 기질이 생긴다. 어떤 사람도 사단 편에서의 항의 없이 이미 한 약속을 성취시키도록 허용될 것으로 기대할 필요는 없다. 그는 지상에서 구속주의 나라가 서는 것을 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서약한 바가 너무 많으며, 그것은 재산을 얻거나 가족들의 소원을 만족시켜 주기 위하여 하는 그들의 노력에 장애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암시한다. 150 사단이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는 능력은 놀라운 것이다. 그는 마음을 자아에 붙들어매 두기 위하여 가장 열렬하게 활동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정하신 유일의 길은 재산의 축복을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다.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햇빛과 비를 주신다. 그분은 식물이 자라게 하신다. 그분은 건강을 주시고 재물을 얻을 능력도 주신다. 우리의 모든 축복은 그분의 풍성한 손에서 온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그분께서는 남녀들에게 십일조와 헌물-감사헌물, 자원하는 헌물, 속건 헌물-을 통하여 특정한 부분을 그분께 돌려드림으로 그들의 감사를 표시하기를 바라신다.

사람들의 마음은 이기심으로 굳어져 버렸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십일조의 법칙에 따르는 체하면서 돈의 일부를 보류해 두고자 하는 유혹을 받는다.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는가? 하나님의 계획대로 재물-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이 정확하게 창고에 들어갈 것 같으면, 하나님의 사업을 발전시키기에 넉넉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사업에 바치라는 요구를 계속해서 받을 때, 바치는 데 지쳐 버렸다고 말할 것이다. 그대도 그러한가? 그렇다면 한가지 물어 보자. 그대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손에서 받는 것도 지쳐 있는가? 그분께서 그대에게 축복하는 일을 중단하지 않는 한 그분이 주장하는 몫을 그분께 돌려드리는 의무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분께서는 그대의 힘으로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게 하고자 그대를 축복하신다. 그대가 받는 일에 지쳐 있을 그 때에, 그대는 ‘나는 바치라는 부름을 너무 많이 듣고 지쳐 버렸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받는 모든 것 중 특정한 부분을 그분 자신의 것으로 여기신다. 이 부분의 것이 그분께 돌려질 때, 나머지 부분이 축복을 받는다. 그러나 그것을 바치지 않고 간직하고 있을 때 전체가 미구에 저주를 받게 된다. 하나님의 요구가 첫째이고, 다른 모든 것은 그 다음이다.

모든 교회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재정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교인들은 가장 편리한 대로 일주일에 한 번이나 한 달에 한번, 하나님께 감사의 헌금을 바쳐야 한다. 이 헌금은 건강과 음식과 안락한 의복 등의 선물을 받은 데 대한 우리의 감사를 나타내게 될 것이다. 151 하나님께서 이런 편의를 제공함으로써 우리를 축복하심에 따라 우리는 가난한 자들과 고통 중에 있는 자들과 낙심 상태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저축을 해야 할 것이다. 나는 특별히 이 점에 대하여 우리 형제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기억하라. 그대의 쾌락 중 어떤 것들이나, 심지어 편의까지도 없이 지내고 가장 빈약한 음식과 의복만을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라. 그들을 위하여 그렇게 함으로 그대는 예수님의 성도들을 통하여 그분께 하고 있는 것이다. 그분은 자기 자신을 고통 중에 있는 인간과 동일시하신다. 그대의 가상적 욕구가 다 채워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그대의 감정에 의존하여 그대가 바치고 싶을 때는 바치고 바치기 싫을 때는 바치지 않는 그런 상태가 되지 말라. 그대가 하나님의 날에 하늘의 기록에서 보기를 원하는 대로 한 주일에 10센트, 20센트, 혹은 50센트 이거나간에 규칙적으로 바치라.

그대의 선한 의욕을 우리는 감사할 수 있다. 그러나 가난한 자들은 선한 의욕만으로 안락하게 지낼 수 없다. 그들은 음식과 의복을 통하여 그대의 친절에 대한 실제적 증거를 소유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어떤 사람도 음식을 구걸하도록 의도하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근면과 절약으로 자급 자족할 수 없는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 주기 위하여 그대에게 풍부하게 주셨다. 그들이 그들의 필요에 대하여 그대의 주의를 환기시키기까지 기다리지 말라. 욥처럼 행동하라. 그가 알지 못했던 것을 그는 찾아내었다. 사정을 알아보기 위한 여행을 하여 필요한 것을 알아내고, 그것을 가장 잘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길을 연구하라.

나는 우리 백성들 중 많은 사람들은 주님에게서 십일조와 헌금을 도둑질하고 있으며, 그 결과로 그분의 사업이 크게 방해를 받고 있음을 보았다. 하나님의 풍성한 선물로 살아가면서도 마음을 닫고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또한, 그분의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전혀 아무것도 하지않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저주가 임할 것이다. 형제 자매들이여, 그대들이 재물을 붙들고 이기적으로 그것을 그대들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을 때, 어떻게 자비로운 아버지께서 그대들을 계속해서 그분의 청지기로 삼고 그분을 위하여 사용해야 할 재물로 그대들을 번영하게 하실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의 손에 넣어 주신 재물을 그분께 돌려드리는 대신에 많은 사람들은 더 많은 토지에 투자한다. 이런 악은 우리의 형제들에게 증가되고 있다. 그들은 그들이 잘 관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전에 가지고 있었다. 152 그러나 돈을 사랑하는 마음과 그들의 이웃 사람들처럼 부요한 사람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 그들로 하여금 재물을 세상에 감추게 하고 마땅히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그분의 것을 돌려드리지 않게 한다. 그들이 번영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놀라야 할 것인가? 하나님께서 그들의 곡식에 축복하지 않으신다 해서 그들이 실망해야 할까? 우리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20에이커의 땅을 축복하셔서100에이커만큼 수확을 거둘 수 있게 하실 수 있음을 기억하기만 하면 그들은 계속해서 스스로를 땅에 매장하지 않고 그들의 재물이 하나님의 창고에 흘러들어가게 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눅 21:34) 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사단은 그대가 토지를 넓히고 그대의 재물을 세속적 사업에 투자하기를 좋아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대가 하나님의 사업의 발전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염려와 과로로 영생에 대한 그대의 전망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늘날 우리 구주의 다음과 같은 명령에 유의해야 한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눅 12:33). 지금은 우리의 형제들이 그들의 소유를 늘리는 대신에 줄여야 할 때이다. 우리는 바야흐로 더 좋은 나라, 하늘에 있는 나라로 옮겨 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의 거민이 되지 말고 살림살이를 가능한 한도로 줄여서 사는 방향으로 하라.

우리가 어떤 값으로도 팔 수 없는 때가 다가오고 있다. 짐승의 표를 가진 자 외에는 어떤 사람에게도 사거나 파는 일을 금지하는 법령이 미구에 내리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극히 최근에 캘리포니아에서 이 일이 실현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이 일은 다만 네 바람이 불 징후에 불과했다. 아직도 그 바람은 네 천사에게 붙들려 있다. 우리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아직도 완수해야 할 사업이 있다. 그 후에 천사들은 놓도록 명령을 받고, 네 바람은 지상에 불게 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결정적인 때, 개국이래로 없었던 환난의 때가 될 것이다. 지금은 우리가 일할 기회이다.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는 불안의 정신이 있다. 153 어떤 사람들은 다른 나라나 주(州)로 가서 많은 토지를 구입하고 넓은 범위의 사업을 하기를 원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도시로 가고자 한다. 그리하여 작은 교회들은 약해지고 낙심하여 죽어간다. 이런 때에, 그 교회들을 떠나간 자들이 보다 적은 규모의 일에 만족하고, 그들의 작은 사업을 충성을 다해서 했을 것 같으면 그들은 가족들을 안락하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그들 자신의 영혼을 유감없이 지키게 되었을 것이다. 이사를 해 가는 많은 사람들은 낙심하게 된다. 그들은 소유하고 있던 적은 재산을 잃어버리고, 건강도 잃는다. 그리하여 마침내 진리를 버리게 된다.

주님께서는 오신다. 모든 사람은 행실로써 자신의 믿음을 보여 주라.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는 믿음은 교회들에서 시들어 가고 있으며, 이기심은 하나님께 도둑질하게 하고 그들 자신의 개인적 이권을 섬기게 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면 우리는 그분처럼 극기하게 될 것이다.

지나간 때에는 우리 백성들에게 너그러움이 매우 많았다. 그들은 여러 가지 분야의 사업을 도우라는 요구에 대하여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변화가 생겼다. 세속적 마음과 재산에 대한 사랑이 늘어나고 있는 동안, 특별히 동부의 형제들에게는 재물을 붙들고 있는 현상이 생겼다. 우리의 여러 기관들과 사업을 돕기 위하여 한 약속을 차츰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교회를 짓고, 대학에 바치고, 선교 사업을 돕기 위한 기부금 서약이, 형편이 좋지 않으면 지킬 의무가 없는 약속으로 간주된다. 이런 약속들은 하나님의 영의 거룩한 감동 아래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정당하게 하나님께 속한 것을 붙들고 있음으로써 그분의 것을 도둑질하지 말라. 형제 자매들이여, 그대들의 지나간 생애를 돌아보고 하나님과 성실하게 관계를 유지해 왔는지 살펴보라. 그대들에게는 이행하지 못한 어떤 서약이 없는가? 만일 있다면, 그리고 그럴 능력이 있다면, 그것을 지불하겠다고 결심하라.

여호와의 권면을 들어보라. 154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말 3:10-12).

그대들은 여호와께서 여기서 하시는 약속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이기심을 그대들에게서 몰아내고 그분의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열렬하게 일에 착수하고 있는가? 그대들보다 더 가난한 이웃을 이용함으로써 이 세상을 붙드는 일을 굳게 하지 말라. 하나님의 눈이 그대들을 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모든 동기를 읽으시고 그대를 성소의 저울에 다신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사업에 바치지 않고 붙들고 있으면서 죽을 때에 자선하게 될 것이라고 그들의 양심을 진정시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살아 있는 동안 무엇인가를 주기 위하여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신뢰를 좀처럼 발휘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임종의 자선 행위는 그리스도께서 그분을 따르는 자들에게 요구하시는 바가 아니다. 그것은 살아있는 자들의 이기심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다. 마지막 순간까지 재산을 굳게 붙들고 있는 자들은 그것을 사업에 바치기보다는 오히려 죽음에 바치게 된다. 손실은 계속적으로 생기고 있다. 은행은 파산되고, 재산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손실된다. 많은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하고자 의도하지만, 그 일을 지연시킨다. 그리고 사단은 재물이 창고 속으로 전혀 들어오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위하여 활동한다. 재물은 하나님께로 돌아오기 전에 잃어버린 바 되고, 사단은 그렇게 되는 것을 기뻐한다.

그대들이 재물을 가지고 선을 행할 마음이 있으면, 사단이 그것을 손에 넣고 하나님의 사업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즉시 그 일을 하라. 많은 경우에, 형제들이 하나님의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그들의 재물을 처리할 길을 주님께서 열어 주시면, 사단의 대리자들은 형제들이 그들의 재산을 배로 증가시킬 수 있다고 그들이 확신하는 어떤 사업을 제시해 왔다. 그들은 미끼에 걸린다. 그들의 돈은 투자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업과, 흔히는 그들 스스로도 한푼의 돈을 받지 못한다.

형제들이여, 하나님의 사업을 기억하라. 그대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재물이 생기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딤전 6:19)하도록 하라. 155 예수님께서는 그대들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고, 그분의 가난으로 그대들이 하늘의 보화로 부요해지게 하셨다. 그대들은, 그대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주신 예수님을 위하여 무엇을 바치겠는가?

그대들의 자선적 선물을 임종시의 유언장에 의한 유증에 의존하고자 한다면 그대들의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그대들은 그 자선적 선물로 하나님의 사업이 유익을 얻을 것이라는 최소한의 보증도 가질 수 없다. 사단이 친척들을 충동하기 위하여 빈틈없는 솜씨로 활동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업에 엄숙히 바쳐진 것을 세상으로 넘겨 주기 위하여 온갖 거짓 주장이 나타난다. 그리하여 유언으로 표시된 액수보다 훨씬 적은 것을 언제나 받게 된다. 사단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그들의 친척들이 그들의 재산을 바치는 것에 대하여 반대하는 생각을 넣어 주기도 한다. 그들은 주님께 바친 모든 것을 죽은 자의 친척들에게서 도둑질하는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만일 그대들이 하나님의 사업에 그대들의 재산 혹은 생계 유지에 참으로 필요로 하지 않는 모든 것들을 바치기를 원한다면 살아 있는 동안에 그렇게 하라. 형제들 중 소수의 사람들은 이렇게 함으로 그들 스스로가 집행자가 되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사람들의 탐심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빌려 주신 재산이 영원히 쓸모 없는 것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의 생명이 빼앗기는 일이 필요하게 만들 것인가? 그대들 중 아무도 자신을 주님의 돈을 땅속에 감춘 무익한 종의 운명에 처하게 하지 말라.

임종시의 자선은 살아 있을 때의 자선에 비하면 빈약한 대행물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재산 중 극히 적은 부분 외의 모든 것을 친구들과 친척들에게 유언에 의하여 준다. 그들은 이 적은 부분을, 그들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고,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기 위하여 모욕과 조롱과 죽음을 당하신 그들의 가장 귀중한 친구를 위하여 남겨 둔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죽은 의인들이 불멸의 생명으로 일어날 때 이 친구가 그들을 영원히 살 곳으로 데려갈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리스도의 사업은 단순히 지나가는 생각에 의해서, 또한 어떤 우연한 행동에 의해서 약탈당하지 않는다. 결코 그렇지 않다. 그대들은 의도적인 행동으로 유언서를 만들어서 그대들의 재산을 불신자들의 처분에 맡겼다. 156 그대들은 생전에도 하나님께 도둑질하였고, 죽은 후에도 계속해서 그분께 도둑질하고 있다. 그대들은 유언장이라고 부르는 문서를 통하여 그대들의 정신력을 다 기울여 완전한 합의 아래 이 일을 한다. 그대들이 주님의 재산을 이렇게 빼앗은 데 대하여 그대들을 향한 그분의 뜻이 어떠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대들의 청지기 직분에 대한 책임을 물을 때 그대들은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형제들이여, 그대들의 이기적인 생애에서 깨어나서 언행 일치의 그리스도인들처럼 행동하라. 주님께서는 그대들에게 돈을 절약하고, 그대들의 안락을 위하여 필요되지 않는 모든 돈을 하늘 금고에 넣도록 요구하신다. 자매들이여, 그대들이 사탕이나 옷의 주름 장식이나 리본을 위하여 쓰고자 하는 그 10센트, 그 20센트, 2달러를 가져다가 하나님의 사업에 바치라. 우리 자매들 중 많은 사람들이 많은 급료를 받지만 거의 모두들 그들의 의복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써버리는 실정이다.

우리가 때의 종말에 가까워질수록 사업의 필요는 계속해서 늘어갈 것이다. 젊은이들에게 우리 학교에서 단기간의 공부를 시켜서 목회직이나 그밖의 다른 분야의 사업에서 효과적인 활동을 하도록 준비시키기 위한 자금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 문제에 있어서 우리의 특권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들에게 있는 모든 학교들은 미구에 문이 닫히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그리스도인 자선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요구에 순종했을 것 같으면, 얼마나 더 많은 일이 이루어졌겠는가! 이렇게 준비가 되었을 것 같으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사람이 어떤 영향을 세상에 주게 되었겠는가! 그것은 우리가 믿노라고 공언하는 진리를 위한 가장 확신 있는 논증, 세상이 오해하거나 반박할 수 없는 논증이 되었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세상 사람들의 눈앞에서까지 당신의 축복으로 두드러지게 하셨을 것이다.

최초의 그리스도 교회는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특권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이었지만 진리의 능력을 느꼈다. 그들 앞에 있는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모든 것을 투자하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그들은 세계의 구원과 상실이 그들의 도움에 달려 있음을 느꼈다. 그들은 그들에게 있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의 명령에 따라 가든지 오든지 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157 우리는 동일한 원칙에 의하여 지배를 받고, 동일한 정신에 의하여 영향을 받고 있노라고 공언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치는 대신에, 많은 사람들은 금덩이와 아름다운 시날산의 외투를 취하여 장막 속에 감추었다. 한 사람의 아간의 존재가 이스라엘의 온 진영을 약화시키기에 충분했다면, 모든 교회와 거의 모든 가정에 아간이 있는 때에 우리의 활동에 따르는 적은 성공을 보고 놀랄 수 있겠는가? 우리는 사욕 없는 자선의 모본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을 자극하기 위하여 개인적으로 일하러 나가자. 모든 사람이 재물로 하나님의 금고를 채우기 위하여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것 같으면 사업은 훨씬 더 큰 능력으로 추진되었을 것이다.

진리의 능력

하나님의 말씀은 초기에 하나님의 종들을 통하여,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고전 2:4) 전파되었다. 사람들의 마음은 복음의 선포로 감동되었다. 왜 오늘날은 진리의 전파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데 그처럼 무력한가? 하나님은 사도 시대에서보다 이 시대에 당신의 사업을 위하여 일하는 자들에게 축복을 주기를 보다 적게 원하시는가?

우리가 세상에 전하는 경고는 사람들에게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게 하는 향기이거나 사망에서 사망에 이르게 하는 냄새임이 입증되어야 한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이 두렵고 엄숙한 경고를 전하도록 당신의 종들을 보내시면서 당신의 성령을 그들에게 주지 않으시고 보류하고 계시는가? 약하고 실수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한 은혜와 능력을 받지않고서 영생의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감히 설수 있겠는가? 우리 주님은 은혜가 풍성하시고, 능력이 많으시다. 그분께서는 믿음으로 당신 앞에 나오는 모든 사람에게 이 선물을 풍성하게 주실 것이다. 그분은 부모가 자녀들에게 좋은 선물을 주고자 하는 것보다 더 기꺼이 당신께 구하는 자들에게 성령을 주시고자 하신다. 158 이 시대를 위한 귀중하고 중요한 진리가 구원하기에 능하지 못한 이유는 우리가 믿음으로 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제자들이 오순절 날에 성령의 강림을 위하여 기도했던 것처럼 열렬하게 기도해야 한다. 그 당시에 그들에게 그것이 필요했다면 우리는 오늘날 더욱 그것을 필요로 한다. 도덕적 흑암은 죽음의 휘장처럼 지상을 덮고 있다. 온갖 거짓 교리와 이단설과 사악한 기만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오도하고 있다. 하나님의 영과 능력이 없으면 우리가 진리를 제시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 헛된 일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를 명상하고, 그분을 믿는 믿음을 발휘하고, 그분의 구원의 은혜를 우리 스스로 체험함으로 우리는 그분을 세상에 제시할 자격을 갖추게 된다. 우리가 예수님에게서 배웠을 것 같으면 그분이 우리의 주제가 될 것이다. 우리의 마음의 제단 위에서 불타고 있는 그분의 사랑이 사람들의 마음에 닿게 될 것이다. 진리는 냉랭하고 생기 없는 이론으로서가 아니라 성령의 나타남으로 제시될 것이다.

우리의 목사들 중 많은 사람들은 설교할 때 이론에 너무 많이 집착하고 실제적 경건을 충분히 강조하지 않는다. 그들은 진리에 대한 지적인 지식은 가지고 있지만 그들의 마음은 진실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뜨거움에 감동되어 있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의 출판물을 연구함으로 진리를 지지하는 논증적 지식은 얻었지만 그들이 스스로 성경을 연구하는 학도가 되지는 않았다. 그들은 성경에 계시된 그대로의 구원의 계획에 대한 더욱 깊고 더욱 철저한 지식을 얻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지 않다.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하고 있는 반면에 그들은 신앙적 성장에서 난쟁이가 되어 가고 있다. 그들은 세상에 그리스도를 올바로 제시하기 위하여 자주 하나님 앞에 나가서 그분의 영과 은혜를 달라고 간구하지 않는다.

인간적인 힘은 약한 것이고, 인간적인 지혜는 어리석은 것이다. 우리의 성공은 우리의 재능과 학식이 아닌, 하나님과의 산 연결에 달려 있다. 진리는, 자신의 학식과 재능을 과시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전파될 때 그 능력을 상실한다. 159 그런 사람들은 또한, 그들이 체험적 신앙을 거의 알지 못하고, 마음과 생애가 거룩하지 못하며, 헛된 자만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배우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구주를 다른 사람들에게 제시할 수 없다. 그들의 마음은, 그리스도께서 죽어가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치르신 큰 희생을 분명히 이해함으로 말미암아 부드러워지고 유순해지지 않는다. 그들은 자아를 부인하고 그분이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고난받는 것이 하나의 특권임을 느끼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자아를 높이고, 자아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들은 사람들의 주의를 목사에게 집중시키기 위하여 설교를 준비하고 기사를 쓰고, 목사가 적절한 영광을 받지 못할까봐 두려워한다. 예수님을 더욱 크게 높이고 목사를 더욱 적게 칭찬해 왔을 것 같으면, 그리고 진리의 근원되신 분을 더욱 찬양하고 그분의 사자들을 적게 찬양해 왔을 것 같으면, 우리는 오늘날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를 하나님 앞에서 차지하게 되었을 것이다.

구원의 계획은 단순한 믿음이 무엇인지 아는 목사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단순한 그대로 제시되지 않는다. 진리를 지성적으로만 아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진리의 능력을 우리의 마음과 생활에서 알아야 한다. 목사들은 어린 아이들처럼 그리스도께로 나올 필요가 있다. 형제들이여, 그대들이 그리스도 때문에 용서를 받고 영접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예수님을 찾고, 그분의 죄를 고백하고, 밤낮 하나님께 탄원하라. 그리하면 그대들은 많이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많이 사랑하게 될 것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죄를 용서하시는 구속주로 가리켜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대들은 또한 거룩하게 하는 진리의 능력을 느끼는 벅찬 마음으로 진리를 제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나의 형제들이여, 나는 그대들을 염려한다. 나는 그대들이 초기의 제자들처럼 성령의 침례를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도록 권고하는 바이다. 그대들이 믿음으로 그대들의 능력의 팔을 굳게 붙잡기 전까지는 설교단에 나갈 자유가 있다고 결코 생각하지 말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정신을 소유하고 있을 것 같으면, 우리는 그분께서 일하신 것처럼 일하게 될 것이고, 나사렛 사람의 바로 그 사상을 받아서 그것을 사람들에게 제시하게 될 것이다. 160 만일 우리가 형식적인 신앙 고백자와 회개하지 않은 목사들의 처지에서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될 것 같으면 우리는 너무도 온유하고 열렬하게 진리를 제시하게 되고, 우리의 생애를 통하여 그것이 또한 너무도 두드러지게 예시될 것이므로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공언하는 바를 우리가 믿고 있는지의 여부를 계속해서 의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영혼들의 가치를 끊임없이 염두에 두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전한 기별은, 세상 사람부터라도 “그들이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들이라”는 판단을 얻어 낼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개혁시키기를 원하면 그들에게 강요하고자 하는 원칙들을 우리 스스로가 실천해야 한다. 말이 아무리 훌륭할지라도, 일상생활과 일치되지 않으면 힘이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종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딤전 4:16)고 권고하는 바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있는 죄는 책망하면서 그대들에게 있는 죄는 변명하지 말라. 만일 그대들이 온유와 사랑에 관하여 설교한다면 이 덕성들이 그대들 자신의 생애를 통하여 예시되게 하라. 만일 그대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가정에서 친절하고, 예모 있고, 세심한 사람이 되도록 강조한다면, 그대들 자신의 모본이 그대들의 권면에 힘이 되게하라. 그대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빛을 받았기 때문에 그대들의 책임도 그만큼 크다. 주님의 뜻을 행하는 일에 등한히 하면 그대들은 많은 채찍으로 맞아야 할 것이다.

사단의 올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그들에게 놓여 있었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놓여 있다. 우리는 그 백성들의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다. 경솔과 허영, 안락과 쾌락을 사랑하는 마음, 이기심과 불순이 우리들 사이에 증가되고 있다. 하나님의 권고를 남김없이 선포하는 일에 확고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처럼 잠들지 않고 깨어서 정신을 차리고 있는 사람들이 오늘날 필요하다. 우리의 목사들에게 거룩함과 능력이 크게 부족함을 알고 있으므로 나는 자기 찬양을 위한 노력을 보고 매우 괴롭다. 그들이 예수님을 현실 그대로 보고, 또한 너무도 연약하고 너무도 불완전하고, 너무도 주님을 닮지 않은 그들의 현실을 그대로 볼 수만 있다면 그들은, 나의 이름이 생명책 맨 구석에라도 적힐 수만 있다면, 그분께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없는 나에게는 족하다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모본되시는 분을 연구하고 본받은 것이 그대들이 해야 할 과업이다. 161 그리스도께서 극기하셨는가? 그렇다면 그대들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분께서 온유하고 겸비하셨는가? 그대들도 그러해야 한다. 그분께서 영혼들을 구원하는 사업에 열성적이셨는가? 그대들도 그러해야 한다. 그분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노력하셨는가? 그대들도 그러해야 한다. 그분께서 자주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셨는가? 그대들도 그러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참으셨는가? 그대들도 그처럼 참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원수들은 용서하신 것처럼 그대들도 용서할 것이다.

우리의 진정한 성품을 드러내 주는 것은 설교단에서의 신앙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가정의 신앙이다. 목사의 아내와 그의 자녀들과 그의 가정에서 조력자로 일하는 자들은 그의 경건을 판단하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들이다. 훌륭한 사람은 가정에 하나의 축복이 될 것이다. 아내와 자녀들과 조력자들은 그의 신앙 때문에 더욱 좋은 사람들이 될 것이다.

형제들이여, 그분을 가정에 모시고 들어가고, 그분을 설교단으로 모시고 들어가고, 어디로 가든지 그분을 그대들과 함께 모시고 다녀라. 그리하면 그대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목회 봉사를 인정해 달라고 강요할 필요가 없게 된다. 그대들은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하늘의 신임서를 가지고 다닐 것이기 때문이다. 고독한 시간에 예수님을 모시고 다니라. 그분께서 자주 기도하셨다는 것과 그분의 생애가 성령의 새로운 영감으로 언제나 지탱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대들의 사상과 그대들의 내면 생활이, 하나님의 날에 그 기록을 대하기에 부끄러워할 것이 없는 그런 것이 되게 하라.

하늘은 의인들의 열렬한 기도가 상달되지 못하도록 닫혀 있지 않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지만 주님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시고 가장 두드러진 방법으로 응답하였다. 우리가 하나님께 능력을 얻지 못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우리 자신에게서 발견되어야 한다. 만일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의 내면 생활이 그들 앞에 제시될 것 같으면 그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은혜 안에서 자라나고 있지 않다. 매우 급한 기도가 때때로 드려지지만 하나님과의 진정한 교통은 없다.

거룩한 생애에서 향상하려면 기도를 많이 드려야 한다. 진리의 기별이 처음 선포되었을 때 우리는 얼마나 많은 기도를 드렸던가! 162 얼마나 자주 중보의 음성이 방에서, 헛간에서, 과수원이나 숲속에서 들렸는가. 빈번히 우리는 열렬한 기도로 여러 시간을 보내고, 두세 사람이 함께 약속을 주장했다. 때때로 우는 소리가 들리고, 감사의 음성과 찬양의 노래도 들렸다. 지금은 하나님의 날이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훨씬 더 가까워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초창기보다 훨씬 더 열렬하고 열성적이어야 한다. 우리의 위험은 그 당시보다 훨씬 더 크다. 심령들은 더욱 굳어져 있다.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물들어야 하며 우리가 그것을 받을 때까지는 쉬지 말아야 한다.

형제 자매들이여, 그대들의 기도가 큰 추수장에 있는 일꾼들과 함께 예리한 낫처럼 나가야 한다는 것을 잊었는가? 젊은이들이 진리를 전하기 위하여 나갈 때, 그대들은 그들을 위하여 기도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친히 연합하여 지혜와 은혜와 지식을 주시도록 기도하라. 그들이 사단의 올무에서 보호를 받고 사상이 순결하고 마음이 거룩하게 보존되도록 기도하라. 나는 주님을 경외하는 그대들에게, 무익한 이야기나, 자고한 마음을 충족시키고 식욕에 탐닉되기 위한 쓸데없는 노력에 시간을 허비하지 말도록 권고하는 바이다. 이렇게 하여 얻은 시간을, 그대들의 목사들을 위하여 하나님과 더불어 씨름을 하는 데 바치도록 하라.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떠받친 것처럼 그들의 손을 붙들라.

우리의 장막 집회들

나는 우리의 장막 집회들 중 어떤 것들은 주님께서 의도하셨던 바와는 너무도 거리가 먼 것을 보았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령의 강림하심에 대하여 준비를 갖추지 못한 상태로 온다. 대개 자매들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매우 값진 내면적 단장은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으면서도, 외모의 단장을 위한 의복 준비에 상당한 시간을 바친다. 또한 쓸데없는 요리를 하고, 많은 파이와 케이크, 먹는 사람들에게 분명히 손해가 되는 여러 가지 종류의 음식물을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163 우리의 자매들이 훌륭한 빵과 어떤 다른 종류의 건전한 음식물을 제공하였다면, 그들과 가족들이 생명의 말씀을 깨닫기에 준비가 더 잘 갖추어지고 성령의 감화에 훨씬 더 민감해졌을 것이다.

활동의 양이 두 배 혹은 세 배가 되는 가정에서 먹는 것처럼 평범하고 단순하지 않은 음식으로 위장은 때때로 과도한 짐을 지게 된다. 이것 때문에 정신이 너무도 무기력해져서 영원한 사물을 분별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리하여 집회가 끝나면 그들은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더 많이 체득하지 못한 데 대하여 실망하게 된다.

집회를 위하여 준비하는 동안 각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의 마음을 철저하고 비판적으로 살펴야 한다. 만일 가정에서 불쾌한 감정이나, 불화나, 다툼이 있었다면 이런 잘못들을 피차간에 고백하고 함께 기도하고 피차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준비하는 데 첫째로 해야 할 일들 중 하나이다. 하나님 앞에서 그대 자신을 낮추고 영혼의 성전에서 온갖 종류의 쓰레기-온갖 질투와 시기와 의심과 흠잡기-를 버리기 위하여 열렬하게 노력하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 4:8-10).

주님께서는, 너의 골방에 들어가서 조용한 가운데 너 자신의 마음과 교통하고, 진리와 양심의 소리를 들으라고 말씀하신다. 은밀한 기도만큼 자신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은밀한 중에 보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분께서는 그대들의 이해력을 열어 주시고 그대들의 간구에 응답해 주실 것이다. 등한히 해서는 안 될 평범하고 단순한 의무들이 그대들 앞에 펼쳐질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그대 자신과 그대들의 모든 힘을 바치기로 그분께 약속하라. 이와 같이 미진한 일을 장막회에 가져오지 말라. 만일 가정에서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대들 자신의 영혼은 고통을 받고, 다른 사람들도 그대들의 냉랭함과 무감각과 영적 혼수 상태 때문에 크게 손해를 받게 될 것이다.

164 나는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의 상태를 보아왔다. 에스겔선지자의 말은 이 시대에 있는 그들에게 적용된다. “인자야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 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 그런즉 너는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 중에 무릇 그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고 선지자에게 나아오는 자에게는 나 여호와가 그 우상의 많은 대로 응답하리니”(겔 14:3, 4).

만일 우리가 세상의 사물들을 사랑하고 불의에서 쾌락을 얻고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한다면 우리는 우리 앞에 죄악의 거치는 것을 두고 우리의 마음에 우상을 세우게 된다. 그러므로 결정적인 노력으로 그것들을 제거해 버리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아들딸로 인정을 받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 가족들이 우리의 거룩한 집회에 오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음식과 의복을 위한 준비는 이차적인 문제가 되게 하고, 가정에서 마음을 깊이 살피는 일을 시작하라. 하루 세 번씩 기도하고, 야곱처럼 끈질기게 졸라대라. 가정에서 예수님을 발견하여 그분을 집회에 모시고 온다면, 그 곳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참으로 귀중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시기를 위하여 준비하는 개인적인 일을 등한히 한다면 어떻게 주님의 임재를 느끼고 그분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보리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대들 스스로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또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가정에서 일을 하라. 그대들은 늘상 기도하던 방식대로 기도하지 말라.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찢으라. 그대들의 집을 질서 있게 하라. 그 때를 위하여 자녀들을 준비시켜라. 그들에게 좋은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나타나는 것이 깨끗한 손과 정결한 마음으로 나타나는 것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라. 그대들의 길에 있었을지도 모를 모든 장애-그대들 사이에서나 그대들과 그들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불화-를 제거하라. 165 그렇게 함으로 그대들은 주님을 그대들의 가정으로 초청하게 되고, 집회를 향해서 갈 때 거룩한 천사들이 그대들과 함께할 것이며, 그 천사들의 빛과 임재는 악한 천사들의 흑암을 물리쳐 버릴 것이다. 불신자들까지도 그 장막 집회에 들어갈 때 거룩한 분위기를 느끼게 될 것이다. 아, 이 중요한 일을 등한히 함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있는가! 그대들은 설교로 기쁨을 얻고, 활기를 되찾고 생기를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회개하게 하고 개혁시켜 주는 하나님의 능력은 마음 속에서 느껴지지 않을 것이며 그 일은 기대한 만큼 진지하고, 철저하고, 영속적(永續的)인 것이 되지 못할 것이다. 교만은 십자가에 못 박고, 심령은 귀중한 그리스도의 의의 옷으로 입히라. 그리하면 그대들은 어떠한 집회를 갖게 될 것인가. 그 집회는 그대들의 심령에 하늘의 문과 같을 것이다.

겸비하게 하고 마음을 살피는 동일한 일이 교회에서도 진행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형제들 사이의 모든 불화와 이간은 이 연례적 집회시에 주님 앞에 나타나기 전에 버리도록 해야 한다. 이 일에 열성적으로 착수하여 그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쉬지 말라. 왜냐하면 그대들이 의심과 불평과 논쟁의 마음으로 집회에 오게 되면 악한 천사들을 장막 안으로 불러들여 그대들이 어디로 가든지 흑암을 가져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와 같은 준비가 없었기 때문에 이 연례적 집회들이 별 성과가 없음을 보아 왔다. 목사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일할 준비가 별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 예리하고 괴상한 것들을 말하고 고의적으로 다른 교회들을 채찍질하고 그들의 믿음을 조롱하는 설교자들은 많이 있지만, 하나님을 위한 열렬한 일꾼들은 별로 없다. 예리하고 자부심이 강한 이 설교자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앞선 진리를 가지고 있노라고 공언하지만 그들의 일하는 방법과 그들의 신앙적 열성은 그들의 믿음의 공언과 결코 일치되지 않는다.

나는 우리의 목사들이 항상 입어야 할 알맞는 옷인 심령의 겸비를 보기 위하여 살펴보았으나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입고 있지 않았다. 나는 주님께서 마땅히 소유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영혼에 대한 깊은 사랑을 찾았으나 그들에게 그것이 없었다. 나는 그들의 가정과 교회에 있는 회개하지 않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 때문에 눈물과 심령의 번민으로 드리는 열렬한 기도를 듣고자 귀를 기울였다. 166 그러나 그런 기도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성령이 함께하는 증거를 가지고 호소하는 음성을 듣고자 했지만 듣지 못하였다. 나는 이러한 때에 책임을 맡은 자들이 마땅히 낭실과 단 사이에서 울면서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으로 욕을 받게 마옵소서 라고 부르짖는 것을 듣고자 기대했다. 그러나 그러한 간구를 듣지 못했다. 소수의 열렬하고, 겸손한 자들이 주님을 찾고 있었다. 이런 집회들 중 어떤 곳에서는 한두 사람의 목사들만 책임을 느끼고 마치 무거운 짐을 실은 마차처럼 눌려 버렸다. 그러나 목사들 중 대다수는 마치 어린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사업의 신성함을 깨닫지 못하였다.

나는 이런 연례적 집회들이 어떤 집회들이 될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떤 집회들이 되어야 할지를 보았다. 즉 이 집회들은 열렬한 활동의 집회들이 되어야 한다. 목사들은 다른 사람들을 돕는 사업에 착수하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백성들이 목사들 중 많은 사람들보다 앞서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님께서 그들을 축복하시기까지 기도로 끈기 있게 씨름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의 마음의 제단에서 불타고 있을 때, 그들은 자기 자신의 영리함을 나타내기 위해서가 아니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를 제시하기 위하여 설교할 것이다.

초기의 교회에서는 그리스도교가 순수한 그대로 가르쳐졌고, 그 교훈들은 영감의 음성으로 주어졌고, 그 의식들도 사람들의 고안으로 더러워지지 않았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정신을 드러내고, 단순한 그대로 아름답게 나타났다. 교회의 장식은 거룩한 원칙들과 신자들의 모범적 생활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과시나 학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단순한 전파에 수반된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그리스도께 인도되었다. 그러나 교회는 타락해졌다. 그러므로 오늘날은 그 어느 때보다 목사들이 빛의 통로가 되어야 할 필요가 더 크다.

성경의 진리를 경박하게 말하는 자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의 심령은 마치 길보아산에 우로가 메말랐던 것처럼 하나님의 영이 메말라 있다. 그러나 우리는 철저하게 회심하고 하나님께 마음을 바치는 길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167 경건의 능력은 우리의 교회들에서 거의 존재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가? 주님께서는 여전히 자비를 베풀고자 기다리고 계신다. 그분은 하늘의 창들을 닫지 않으셨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그분과 분리시켰다. 우리는 믿음의 눈을 십자가에 고정시키고 예수님이 우리의 힘이요 우리의 구원이심을 믿을 필요가 있다.

목사들과 백성들에게 지워진 사업의 책임이 그처럼 적은 것을 보고, 우리는, 주님께서 오실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물어 보는 바이다. 부족한 것은 믿음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요구하면 주실 은혜와 능력을 풍성하게 간직하고 계시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필요를 크게 느끼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보고 예수님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높이고 그분의 공로를 완전히 의지하지 않는다.

나는 목사들과 백성들에게 마음 속에서 이루어져야 할 더욱 깊은 은혜의 사업의 필요와 우리의 장막 집회의 정신과 활동에 들어가기 위하여 더욱 철저한 준비의 필요를 감명 깊게 새겨 주므로 그들이 이 집회에서 가장 큰 유익을 얻게 되기를 바란다. 이 연례적 집회들은 특별한 축복의 기회가 될 수 있고, 영성에 크게 손해가 될 수도 있다. 사랑하는 독자들이여, 그 집회들이 그대들에게 어떤 것이 되기를 원하는가? 그것은 각 사람이 스스로 결정하는 대로 된다.

형제 우애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5). 우리가 품성에 있어서 우리 구주를 더욱 밀접하게 닮으면 닮을수록 그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자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더욱 커질 것이다. 피차간에 이타적인 사랑의 정신을 나타내는 그리스도인들은 불신자들이 결코 반박할 수도, 저항할 수도 없는, 그리스도를 위한 증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모본의 능력은 도저히 측정할 수 없다. 교인들이 나타낸 그리스도의 사랑만큼 사단과 그의 사자들의 계책을 성공적으로 좌절시킬 수 있는 것도, 구속주의 나라를 세울 수있는 것도 없다. 168 평안과 번영은 온유와 사랑이 적극적으로 발휘될 때만 누릴 수 있다.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첫 편지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마땅히 간직해야 할 그 사랑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1-3).

공언하는 바가 아무리 클지라도 하나님과 동료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마음이 물들어 있지 않는 자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다. 비록 그가 큰 믿음을 가지고 있고 이적을 행할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그의 믿음은 가치가 없다. 그는 크게 자선을 베풀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진정한 사랑보다는 어떤 다른 동기에서 그의 모든 재산을 주어서 가난한 자들을 구제한다면 그런 행동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열성 때문에 그는 순교자의 죽음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랑의 황금이 부족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기만당한 열심가 혹은 야망적인 위선자로 취급하실 것이다.

사도는 이어서 사랑의 열매를 자세히 열거한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고전 13:4). 마음을 지배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교만과 이기심을 근절한다.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고전 13:4). 가장 순수한 기쁨은 가장 깊은 겸손에서 솟아난다. 가장 강하고 가장 고상한 품성은 인내와 사랑의 기초 위에 세워지고, 또한 하나님의 뜻에 의심 없이 맡기는 것을 기초로 이루어진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고전 13:5)한다. 169 사랑이 지배하는 마음은, 자존심과 이기심을 견딜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상처 때문에 분노와 복수심으로 충만해지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의심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동기를 언제나 가장 호의적으로 해석한다. 사랑은 쓸데없이 다른 사람들의 결점을 결코 폭로시키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좋지 못한 소문을 듣기 위하여 열광적으로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명예가 실추된 사람의 어떤 좋은 특성들을 생각해 내고자 노력한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고전 13:6)한다. 사랑에 물든 마음을 가진 자는 다른 사람들의 실수와 약점을 보고 슬픔에 싸인다. 그러나 진리가 승리하고, 다른 사람의 훌륭한 명성을 가리웠던 구름이 사라지거나 죄가 고백되고 바르게 교정되는 것을 볼 때, 그는 기뻐한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7). 사랑은 다른 사람들의 실수를 참아줄 뿐만 아니라 그런 참음이 가져다 주는 어떠한 고난이나 불편도 기꺼이 감수한다. 이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고전 13:8)한다. 그것은 결코 그 가치를 상실할 수가 없다. 그것은 하늘의 속성이다. 그것을 소유한 자는 그것을 귀중한 보배로 하늘 도성의 문을 통과하여 들어올 것이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이다. 불화와 다툼은 사단의 일이며 죄의 열매이다. 우리가 한 백성으로서 화평과 사랑을 맛보려면, 우리는 우리의 죄를 버려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고, 피차간에 조화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각 사람은 이렇게 자문해 보도록 하라. 나는 사랑의 덕성을 소유하고 있는가? 나는 오래 참고 온유하게 되는 길을 배웠는가? 이런 하늘의 특성이 없으면, 재능과 학문과 웅변은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처럼 무의미한 것이 될 것이다. 진리를 소유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 귀중한 보화를 그처럼 가볍게 평가하고 그처럼 적게 구하고 있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바울도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편지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 3:12-15). 170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7).

우리가 그리스도께 그처럼 큰 의무를 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구속하기 위하여 돌아가신 사람들에 대하여서도 가장 신성한 의무를 우리에게 지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나타내신 것과 똑같은 동정과, 똑같은 자비와 이타적 사랑을 나타내야 한다. 이기적 야망과 우월하고자 하는 욕망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애정을 차지하실 때 사라질 것이다.

우리 구주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 6:12)라고 기도하도록 가르치셨다. 한 큰 축복이 조건들 아래 여기에 간구되고 있다. 이런 조건들을 우리가 우리 입으로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내는 자비대로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자비가 적용되도록 구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를 취급하시는 기준이라고 주장 하신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 6:14, 15). 얼마나 놀라운 계약인가! 그러나 그 말씀이 얼마나 적게 이해되고 있으며 유의되고 있는가. 가장 흔한 죄악들 중 하나이며, 가장 유해한 결과가 따르는 하나의 죄는 용서하지 않는 정신을 품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적의나 복수심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이고 그들이 용서해 주는 것처럼 용서해 달라고 구할 것인가. 분명히 그들은 이 기도의 의미를 진정으로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그러한 기도를 감히 입술로 가져가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매일 매 시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에 의존한다. 그러하거늘 우리가 어떻게 우리와 같은 동료 죄인들에게 가혹한 마음과 적의를 품을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인들이 날마다의 모든 교제에서 이 기도의 원칙을 실천할 것 같으면 얼마나 복스러운 변화가 교회와 세상에서 이루어지겠는가! 171 이것은 성서 신앙의 진실성을 입증하는 가장 설득력 있는 증언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이 깨닫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요구하신다. 만일 우리가 하늘에 대한 우리의 소망을 거짓 기초 위에 건설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성경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를 그대로 믿어야 한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성취할 은혜를 주시지 않을 것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우리 앞에 제시된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날에 아무런 변명도 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사도를 통하여,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롬 12:9, 10)하라는 권면을 받고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유발된 순결하고 이기심 없는 사랑과, 세상에 널리 보급되어 있는 무의미하고 기만적인 허식을 우리가 구별하기를 바란다. 이 저속한 모조품은 많은 영혼들을 그릇되게 이끌어 왔다. 그것은 범법자에게 자신의 잘못을 성실하게 보여 주는 대신에 그에게 동의함으로써 옳은 것과 그릇된 것 사이의 구분을 말살시켜 버릴 것이다. 그런 행위는 진정한 우정에서 결코 나오지 않는다. 그런 행동을 유발시키는 정신은 오직 육적 마음 속에 거한다. 그리스도인이 언제나 친절하고, 동정적이고, 용서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동안, 그는 죄악과의 조화를 느낄 수 없다. 그는 악을 미워하고, 불경건한 자들과의 교제나 우정을 희생하고서 선한 것에 집착한다. 우리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어떠한 희생도 즐겨 감수하고 있는 한, 그리스도의 정신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미워하게 해줄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엡 4:17-19). 172 사도는 그의 형제들에게, 그들이 복음을 믿노라고 공언한 후에 이방인들처럼 행동하지 말고 매일의 행실을 통하여 그들이 진정으로 회개한 사실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을 주 예수님의 이름과 권위로 권면한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쫓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24). 한때 그들은 부패하고, 타락하고, 육욕적인 정욕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들은 세속적 마취제에 의하여 중독되고, 사단의 간계에 의하여 눈이 멀고, 당혹감을 느끼고, 속임을 당하였다. 이제 그들은 예수 안에 있는 진리로 가르침을 받았으므로, 그들의 생애와 품성에 결정적인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마음이 새로워지지 않고 생애가 개혁되지 않은 교인들의 교회 가담은 교회가 약해지는 근원이다. 이 사실이 흔히 무시된다. 어떤 목사들과 교회들은 교인들이 증가되는 것을 너무도 바라기 때문에 비그리스도인적 습관과 행실을 정죄하는 성실한 증언을 하지 않는다. 진리를 받아들이는 자들은 그들이 이름으로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고 있으면서 행동으로는 세상 사람이 되는 것은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지 않는다. 지금까지 그들은 사단의 백성이었지만, 지금부터는 그리스도의 백성이 되어야 한다. 생애는 그들의 주인이 바뀐 것을 증거해야 한다. 일반 대중의 견해는 그리스도교의 공언에 호감을 갖는다. 경건의 모양을 옷입고 교회의 명부에 이름을 등록하는 데는 극기나 자아 희생이 별반 요구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은 먼저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일없이 교회에 소속된다. 이런 점에서 사단은 승리한다. 이런 회심자들은 사단의 가장 효과적인 도구이다. 그들은 다른 영혼들을 유혹하는 자가 된다. 그들은 부주의한 자들을 멸망으로 유혹하는 거짓된 빛이다. 그리스도인의 길을 속인(俗人)들을 위하여 넓고 유쾌하게 만들고자 노력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거칠고 좁은 길을 평탄하게 하시거나 넓히지 않으셨다. 우리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이 걸어가신 것과 동일한 길-겸손과 극기와 희생의 길-을 따라가야 한다.

목사들은 그들 스스로의 마음이 진리로 말미암아 거룩함을 입고 있는지 보고, 그들의 회심자들도 그 결과를 얻도록 활동해야 한다. 173 목사들과 백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순결한 것은 신앙이다. 마음 속에서 죄악을 제거해 버리고 열렬한 간구로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뻗는 자들은 하나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그 도움을 얻게 될 것이다. 사람들의 영혼을 위한 값이 지불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서 용서와 순결과 하늘을 얻을 기회를 가질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하고 통회하는 자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신다. 거룩한 지혜와 능력을 얻기 위하여 진실하고 열렬한 탄원을 자주 하나님의 보좌에 드리는 자들은 적극적이고, 유력한 그리스도의 종이 되지 못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들이 큰 재능은 소유하지 않았을지라도, 마음을 겸손하게 하고 예수님을 굳게 의지함으로 그들은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일에 있어서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통하여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종들은 거룩한 사업을 온 심령을 다해서 해야 한다는 것을 언제나 느껴야 한다. 그들의 노력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어야 하지, 백성들 앞에서 자기 자신을 높이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성실한 목사를 그리스도의 대사로 존중하고 있는한, 그들은 사람의 칭찬을 모두 피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엡 5:1, 2). 사람은 악한 행동으로 자신을 하나님과 분리시켰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원하는 모든 사람이 죄에서 해방되어 창조주의 은총을 회복할 수 있도록 당신의 생명을 주셨다. 그리스도로 하여금 이러한 큰 희생을 하게 만든 것은 그분께서 구속받은 거룩한 우주를 내다보셨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처럼 비싼 값을 치르고 산 특권을 받아들였는가? 우리는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하나님을 따르는 자인가, 그렇지 않으면 흑암의 왕의 종인가? 우리는 여호와를 경배하는 자들인가, 바알을 경배하는 자들인가?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인가, 우상을 섬기는 자들인가?

외관상 신전은 보이지 않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상(像)은 없을지라도 우리는 우상숭배를 할 수도 있다. 174 간직된 사상이나 대상의 우상을 만드는 것은 나무나 돌로 신들을 조각하는 것과 똑같이 쉬운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속성에 대하여 그릇된 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바알의 종들처럼 사실상 거짓 신을 섬기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와 천연계를 통하여 계시된 그대로의 참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가 아니면 그분 대신에 안치된 어떤 철학적 우상을 섬기고 있는가!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이시다. 공의와 자비가 그분의 보좌의 속성이다. 그분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당신의 아들, 곧 우리 구주를 통하여 나타나신다. 그분은 인내와 오래 참으심의 하나님이시다. 만일 그런 분이 우리가 숭배하고 있는 분이며. 그분의 품성을 우리가 본받고자 애쓰고 있는 분이라면 우리는 참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으면, 우리에게 전가된 그분의 공로는 아름다운 향기처럼 하나님 아버지 앞에 상달된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 속에 심겨진 우리 구주의 품성의 은혜는 우리 주변에 귀중한 향기를 발산할 것이다. 우리의 생애에 고루 퍼져 있는 사랑과 온유와 인내의 정신은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깨뜨리는 힘이 되고 믿음을 극렬히 반대하는 자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해 줄 것이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빌 2:3, 4, 14, 15).

허영과 이기적 야망은 많은 영혼들을 파선시켜 온 암초이며 많은 교회들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헌신을 거의 모르는 자들, 하나님과 거의 연결을 이루고 있지 않는 자들이 제일 높은 자리를 가장 열렬하게 구할 자들이다. 그들은 그들의 연약함과 그들의 품성의 결함들을 깨닫지 못한다. 우리의 젊은 목사들이 개심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을 느끼지 못할 것 같으면, 그들의 활동은 교회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장애가 될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교리를 배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를 배우지는 않았다. 175 예수님을 끊임없이 쳐다보는 자들은 그분의 극기하는 사랑과 깊은 겸손을 깨닫고 그분의 모본을 따르게 될 것이다. 교만, 야망, 기만, 증오, 이기심은 마음에서 제거되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특성들은 부분적으로 억제되었으나 마음에서 철저하게 뿌리 뽑히지는 않았다. 유리한 환경을 만나면 그것들은 새롭게 돋아나서 하나님께 대한 반역의 열매를 맺는다. 여기에 무서운 위험이 놓여 있다. 여하한 죄라도 그것을 간직하는 것은 우리를 파멸시키고자 방심하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을 뿐인 원수를 간직하는 것이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약 3:13). 나의 형제 자매들이여, 그대들은 말의 선물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 그대들은 혀가 언제나 계발된 양심과 거룩한 애정의 명령을 순종하도록 그것을 제어하는 법을 배웠는가? 그대들의 대화는 경솔, 교만과 악의, 기만과 불순에서 벗어나 있는가? 그대들은 하나님 앞에서 기만이 없는가? 말은 현저한 능력을 발휘한다. 사단은 할 수만 있으면, 그를 섬기는 데 혀가 바쁘게 사용되도록 할 것이다. 우리는 제어하기 힘든 그 지체를 통제할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다.

탁월해질 수 있는 방법을 열렬하게 연구하고 있는 자들은 차라리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약 3:17)는 지혜를 얻는 법을 연구해야 한다. 나는 많은 목사들이 이 말을 심령의 돌비에 새겨 두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보았다.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께서 마음 속에 형성된 사람은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약 3:13) 것이다.

베드로는 신자들에게 이렇게 권면한다.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벧전 3:8-12).

176 올바른 길이 그처럼 분명히 나타나 있는데 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그 길로 가고 있지 않는가? 왜 그들은 한마음이 되기 위하여 연구하고 기도하고 열렬하게 노력하지 않는가? 왜 그들은 악은 악으로, 욕은 욕으로 갚는 대신에 형제로서 사랑하기 위하여 피차간에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품고자 노력하지 않는가?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누구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조건-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않는 것-에 응하는 자들이 얼마나 적은가. 온유하고 겸손하신 구주의 모본을 즐겨 따르고자 하는 자들은 별로 없다. 많은 사람들은 주님께 그들을 겸손하게 만들어 달라고 구한다. 그러나 그들은 필요한 훈련에 응하고자 하지 않는다. 시험이 닥치고 시련이나 어떤 난처한 일이 생기면, 마음은 반역을 하고 혀는 독을 지닌 화살이나 황폐시키는 우박과 같은 말을 쏟아 놓는다.

험담은 듣는 사람에게보다는 말하는 자에게 훨씬 더 중하게 내리는 이중의 저주이다. 분열과 분쟁의 씨를 뿌리는 자는 그 자신의 심령에서 치명적 열매를 거둔다.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자, 악을 추측하는 자는 얼마나 불행한가! 그는 진정한 행복을 알지 못하는 자이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마 5:9). 은혜와 화평은 구설의 다툼에 동참하지 않는 자들에게 임한다. 추문의 행상인들이 이 가정에서 저 가정으로 지나가고 있을 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가정을 정숙하게 수호하는 자들이 될 것이다. 너무도 흔히 쓸데없고 경박하고 악의에 찬 험담에 허비된 시간은 더욱 높고 고상한 목적에 바쳐져야 한다. 만일 우리의 형제와 자매들이 하나님을 위한 선교사들이 되어 병자들과 고통당하는 자들을 방문하고 실수한 자들을 위하여 꾸준하고 친절하게 활동 하기를 원한다면, 다시 말해서, 그들이 모본되시는 분을 본받으려고 한다면 교회는 그 모든 영역에서 번영하게 될 것이다.

177 험담의 죄는 악한 생각을 품는 데서 시작된다. 궤휼은 온갖 형태의 불순을 포함한다. 불순한 생각이 용납되면 부정한 욕망을 품게 되고, 심령이 더럽혀지면 그 정직성도 손상된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죄를 짓지 않으려면 우리는 바로 처음부터 죄를 피해야 한다. 모든 감정과 욕망은 이성과 양심에 굴복되어야 한다. 모든 부정한 사상은 즉시 배척되어야 한다. 그대의 밀실까지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가 되라. 믿음으로 기도하고 온 마음을 다하여 기도하라. 사단은 그대의 발을 함정에 빠뜨리고자 주시하고 있다. 그대가 그의 간계를 피하고자 하면 그대는 위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한다.

모든 사람은 믿음과 기도로써 복음의 요구 사항을 충족시킬 수 있다. 어떤 사람도 강제로 범죄하게 할 수는 없다. 그 자신의 동의를 먼저 얻어야 한다. 정욕이 이성을 지배하고 불의가 양심을 이기기 전에 심령은 범죄의 행동을 의도해야 한다. 유혹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죄에 대한 핑계는 결코 있을 수 없다.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벧전 3:12). 시험받는 영혼이여, 주님께 부르짖으라. 속절 없고 무가치한 그대로 그대 자신을 예수님께 던져 버리라. 그리고 바로 그분의 약속을 주장하라. 주님께서는 들어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육신적 마음의 성향이 얼마나 강한지를 아신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시험을 받을 때마다 도와주실 것이다.

그대는 죄 가운데 빠져 있는가? 그렇다면 지체하지 말고 자비와 용서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을 찾으라. 다윗은 자기의 죄를 깨닫게 되자, 회개와 겸손으로 그의 심령을 하나님 앞에 토로했다. 그는 그의 면류관은 잃어버려도 견딜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총을 빼앗기고는 견딜 수 없다고 느꼈다. 자비는 지금도 여전히 죄인에게 뻗혀 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방황하고 있는 동안 내내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렘 3:22). 만일 우리가 호소하는 성령의 음성에 유의할 것 같으면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시 103:13).

사업상 근면

178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잠 22:29).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잠 10:4).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 12:10, 11).

구약과 신약에 있는 근면에 대한 많은 권면은 우리의 생활 습관과 신앙적 감정과 실천 사이에 존재하는 밀접한 관계를 분명히 알려 준다. 인간의 정신과 육체는 그 모든 기관이 적당하게 계발되기 위하여서는 많은 운동이 필요 되도록 구조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세속적 사업에 너무도 지나치게 몰두되어 있는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반대의 극단으로 기울어져서 그들 자신이나 그들에게 예속되어 있는 사람들을 부양하기 위하여 충분하게 활동하지 않는다. ________형제는 이런 부류에 속한 한 사람이다. 그가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그는 사실상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그가 부주의한 게으름에 빠져 있거나 가족의 부양에 별로 도움이 안되는 적은 일에 분망해 있는 반면에 그는 가장 무거운 책임과 짐을 그의 아내가 지도록 허용한다. 그는 여러 시간 동안 앉아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 관하여 그의 아들들과 이웃 사람들로 더불어 잡담을 한다. 아내요 어머니 되는 사람은 먹을 음식과 입을 의복을 준비하기 위해서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는 반면에 그는 태평하며 여유 자작하다.

이 형제는 가난한 사람이므로 그가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특권을 주장하고 남자답게 되지 않으면 언제나 사회에 짐이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든지 진정으로 바라기만 하면 할 수 있는 어떤 종류의 일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만일 부주의하고 무관심할 것 같으면 그가 얻을 수 있었던 위치를 더 큰 활동력과 사업적 기량을 가진 다른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의 형제여,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지금 처해 있는 가난한 위치에 놓이도록 결코 계획하지 않으셨다. 179 왜 하나님께서는 그대에게 그런 육체적 체질을 주셨는가? 그대는 그대의 형제들이 그들의 재산에 대하여 책임이 있는 것처럼 그대의 체력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이 그들의 재산을 그대의 체력과 바꿀 수 있을 것 같으면 오늘날 이득을 얻는 자들이 될 것이다. 그대와 입장이 바뀌어졌을 것 같으면 그들은 정신과 육체의 힘을 다 같이 부지런히 사용하므로 미구에 궁핍에서 벗어나고 어떤 사람에게도 전혀 신세를 지지 않게 될 것이다. 환경이 그대에게 불리하게 보이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어떤 원한을 가지셨기 때문이 아니라, 그분께서 주신 힘을 그대가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대의 힘이 활동하지 않으므로 녹슬어 버리도록 의도하지 않으시고 사용하므로 강화되도록 의도하셨다.

그대가 가지고 있노라고 공언하는 신앙은 안식일에 교회에 출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하는 엿새 동안에 그대의 시간을 이용할 의무를 지워 준다. 그대는 사업에 부지런하지 않다. 그대는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여러 시간, 여러 날, 심지어 여러 주일을 흘려 버린다. 그대가 세상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설교는 그대의 생애에 결정적인 개혁을 보여 주고, 그대 자신의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될 것이다. 사도는,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 5:8)고 말한다.

그대는 한동안 어떤 지역에서 게으름에 빠지므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하여 빚을 질 수밖에 없는 형편에 처하게 되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에 욕을 돌리게 된다. 그대는 이처럼 빚을 갚는 데 항상 별로 신경을 쓰지 않으며,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간다. 그렇게 함으로 그대는 이웃에게서 속여 빼앗고 있다. 세상은 성경상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에게서 엄격한 정직을 기대할 권리가 있다. 한 사람이 정당하게 갚아야 할 빚에 관하여 무관심하므로 우리의 모든 백성들이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을 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 7:12). 이 말씀은 나누어 주어야 할 선물을 가진 자들에 대한 것은 물론이요 손으로 활동하는 자들에 대한 언급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는 그대에게 힘과 기술을 주셨지만 그대는 그것들을 사용해오지 않았다. 180 그대의 힘은 그대의 가족을 풍부하게 부양하기에 충분하다. 아침에 일어나되, 필요하다면 별들이 빛나고 있는 동안에 일어나라. 무엇인가를 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이룩하라. 질병이 그대를 쓰러뜨리지 않는 한 모든 서약을 이행하도록 하라. 다른 사람들에게 당연히 갚아야 할 빚을 갚지 못하는 것보다 그대 스스로 음식과 수면을 부인하는 것이 더 낫다.

발전의 언덕은 노력 없이 오르지 못한다. 신앙적 문제이거나 세속적 문제이거나를 막론하고 어떤 사람도 자기 자신의 노력 없이 이럭저럭 하다가 상급을 받게 되리라고 기대할 수가 없다. 경주는 반드시 빠른 사람에게 상급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전쟁은 반드시 강한 자에게 승리가 돌아가는 것이 아니지만,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사람은 가난해질 것이다. 참을성 있고 근면한 자들은 자기 자신이 행복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도 크게 공헌한다. 상당한 재산과 안락은 열렬한 근면의 값을 지불하지 않고서는 대개는 얻어지지 않는다. 바로가 요셉에게, “그들 [요셉의 형제들]중에 능한 자가 있는 줄을 알거든 그들로 나의 짐승을 주관하게 하라”(창 47:6)고 말했을 때 그는 이 품성의 특성을 깨닫고 있었음을 나타냈다.

________형제는 안락을 사랑하는 마음과 계획을 세워서 스스로 일에 착수할 능력이 없음을 핑계하는 길 외에는 변명할 여지가 없다. 그가 지금 따라야 할 최선의 길은 집을 떠나서 그를 위하여 계획을 세워 줄 어떤 사람의 지도 아래 일을 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을 다스리는 데 있어서 너무 오랫동안 무관심하고 게으른 주인 노릇을 해왔으므로 별반 성취한 것이 없고, 자녀들 앞에서의 그의 모본도 나쁘다. 그들은 그의 품성을 그대로 본받고 있다. 그들은 어머니가 무거운 짐을 지도록 한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하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 그것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어린이들이 당연히 그러해야 하는 것 즉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을 깨닫고 하라는 말을 듣지 않을지라도 그것을 하는 능력을 계발시키지 않는다.

여자가 자기 자신의 일과 가족의 일까지 할 때-남편과 아들들이 화롯가에 앉아서 사교적인 안락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안 그가 나무를 가져오고 물을 긷고 심지어 나무를 패기 위해 도끼까지 들 때 그는 자기 자신과 가족에게 큰 잘못을 범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아내요 어머니들이 가족들에게 종이 되도록 결코 계획하지 않으셨다. 181 많은 어머니는 자녀들이 가정의 짐을 나누어 지도록 교육을 받지 않는 한편 염려로 무거운 짐을 진다. 그 결과로 그는 늙어지고 자녀들의 미숙한 발길을 지도해 줄 필요가 가장 절실할 때에 그들을 남겨 놓고 조사(早死)한다. 누가 잘못인가?

남편들은 아내의 염려를 덜어 주고 그의 정신을 명랑하게 해 주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게으름을 길러주거나 용납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미구에 습관이 되기 때문이다. 유용한 일에 몰두하지 않으면 기능들은 가치 없이 되거나 악한 일에 적극적이 된다.

나의 형제여, 그대에게 필요한 것은 적극적인 활동이다. 그대의 얼굴 표정 하나하나, 그대의 정신적 기능 하나하나가 이 사실을 말해 준다. 그대는 고된 일을 좋아하지 않고 그대의 이마에 땀을 흘림으로 양식 얻기를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삶의 질서에 있어서 하나님의 정하신 계획이다.

그대는 그대가 착수하고 있는 일을 이루지 못한다. 그대는 그대 자신을 규칙에 지배되도록 훈련시키지 않았다. 체계적으로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같은 시간에 한 가지 일만 하라. 그리고 그것을 잘해 내고, 그대가 두번째 일에 착수하기 전에 그것을 끝마치라. 그대는 규칙적인 기상과 기도와 식사 시간을 가져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침실에서 귀중한 시간들을 허비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연적 성향을 충족시켜 주고 또한 노력을 요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아침에 허비된 한 시간은 결코 회복될 수 없이 잃어버린 바 된 시간이다. 현인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증왕에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가시덤불이 퍼졌으며 거친 풀이 지면에 덮였고 돌담이 무너졌기로 내가 보고 생각이 깊었고 내가 보고 훈계를 받았었노라 네가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잠 24:30-34).

경건한 체하는 자들은 그들이 믿노라고 공언하는 교리를 잘 단장해야 하고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그들의 행동 때문에 진리가 모욕을 당할 기회를 주지 않아야 한다. 사도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롬 13:8)고 말한다. 182 나의 형제여. 그대는 지금 그대의 게으른 습관을 고치고 시간을 아끼기 위하여 열렬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진리가 그대의 생애에 개혁을 이루어 놓은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주라.

배틀크릭으로 이사하는 일

우리 구주께서는 당신 자신을,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나면서 택한 종들에게 각각 일을 맡겨 집을 관리하게 한 사람으로 나타내신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의 주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무엇인가 할 일이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안락과 편의를 구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나라를 세우는 것을 첫째 관심사로 삼아야 한다. 우리의 동료 인간들을 도와주고 축복하기 위한 이타적 노력은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나타낼 뿐 아니라 우리를 신뢰와 믿음으로 그분과 가까워지게 해줄 것이며 우리 자신의 영혼은 은혜와 진리를 아는 지식으로 끊임없이 자라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여러 지역 사회에 흩어 두심으로 세상을 덮고 있는 도덕적 흑암 속에서 진리의 빛이 계속해서 비췰 수 있게 하셨다. 우리 주변의 흑암이 크면 클수록 우리의 빛을 하나님을 위하여 비췰 필요가 더욱 커진다. 우리는 큰 어려움과 시련을 겪는 환경에 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로 우리에게 정해진 바로 그 위치에 우리가 있지 않다는 증거는 아니다. 바울 당시에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바울은, 그들이 “가이사집 사람 중”(빌 4:22)에 있다고 말한다. 잔인하고 방탕한 네로 아래 있는 로마의 왕궁에서보다 그리스도교에게 있어서 더 불리한 도덕적 분위기는 아무 곳에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황제에게 봉사하고 있는 동안에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자들은 회개한 후에도 그들의 의무의 위치를 떠날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매력적인 유혹, 극심한 반대, 소름끼치는 위험을 당하면서도 그들은 그리스도의 성실한 증인들이었다.

하나님의 은혜를 완전히 의지하는 자는 누구나 진리를 위하여 끊임없이 증거하는 생애를 살게 될 것이다. 183 어떤 사람도 진실하고 성실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는 상황에 처하지는 않는다. 장애가 아무리 클지라도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작정한 모든 사람은 그들이 전진할 때 길이 열리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반대하는 영향이 심한 중에서 하나님께 계속 충성하는 자들은 가장 값진 경험을 얻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힘은 장애를 극복할 때마다, 시험을 이길 때마다 증가된다. 이 사실이 자주 간과되고 있다.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면 잘못 생각하고 있는 친구들은 그에게 어떤 시험이나 시련이 닥칠 것을 두려워하여 즉시 그가 좀더 안락한 처지에 놓이게 하고자 노력한다. 그는 모든 것이 그와 조화를 이루는 어떤 곳으로 간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영적 힘이 증가되는가? 많은 경우에 그렇지는 않다. 그는 온실에서 자란 식물처럼 원기를 거의 갖지 못하게 된다. 그는 경계하기를 그치고 그의 믿음은 약해진다. 그는 그 자신이 은혜 안에서 자라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도 도와주지 못한다.

불신과 반대 속에서 진리를 수호하는 일을 꺼리는 사람이 있는가?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네로의 집에 있는 신자들을 기억하도록 호소하는 바이다. 그들이 만난 타락과 핍박을 생각하라. 그리고 그들의 모본에서 용기와 불굴의 정신과 믿음의 교훈을 얻으라.

믿음에 있어서 어린 사람들은 큰 유혹과 반대에서 벗어나서 경험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보호와 권면을 받을 수 있는 처지에 놓이는 것이 때로는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생애란 끊임없는 전쟁이라는 사실과, 게으름과 나태에 빠지는 것은 성공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언제나 마음에 간직해야 한다.

우리는 진리를 받아들인 후에, 진리를 반대하는 자들과 연합하지 않아야 하고, 또한 어떤 형태로나 우리의 믿음을 실천하기 어려운 곳에 우리 스스로를 두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동안에 진리를 받아들였다면 그는 자신의 위치에서 떠나기 전에 주의 깊이 그 문제를 헤아려 보아야 한다. 그의 감화력과 모본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의 지식이 전달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의 계획일 수도 있다.

184 많은 사람들은 믿음을 반대하는 자들과 가족 관계를 이루고 있다. 이런 신자들은 때때로 큰 시련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그들은 진리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가장 효과적인 봉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시는 그런 위치에서 성실해야 한다. 만일 더욱 큰 유용성의 기회가 제시된다면 우리는 주님께서 명령하실 때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하면 그분께서는 인정하는 미소를 우리에게 보이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께서 다른 분야에서 그분을 섬기도록 우리의 의무를 분명히 지시해 주지 않는 한 우리에게 지정된 사업에서 떠나기를 두려워해야 한다.

각각 다른 자격들이 각각 다른 분야의 사업에 필요하다. 목수는 모루에서 일하기에 적합하지 않고, 대장장이는 대패를 사용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상인은 병상 곁에 부적합하고, 의사는 회계사무소에 부적합하다.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일에 지쳐 있는 자들이, 그들이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위치에 자신을 둔다면 게으른 종으로 간주될 것이다. 각 사람에게는 그의 일이 맡겨져 있다. 아무도 면제된 사람은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정해 주신 바로 그 위치에서 하나님의 선교사로 행동해야 할 우리의 의무는 한 백성으로서의 우리가 크게 등한히 여겨온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현재의 의무와 기회를 버리고 어떤 더 넓은 분야로 열렬하게 돌아서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어떤 다른 위치에서는 진리를 순종하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큰 교회들은 유익한 점이 많은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 백성들 사이에서는 그들의 특별한 의무의 위치에서 떠나 배틀크릭이나 어떤 다른 큰 교회의 부근으로 이사해 가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이와 같은 일은 우리의 작은 교회들의 번영과 생명까지도 위협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도록 맡겨 주신 바로 그 일을 하지 못하도룩 막아 버리고, 한 백성으로서의 우리의 영성과 유용성을 파괴하고 있다.

미시간에 있는 거의 모든 우리의 교회에서, 또한 다소간 다른 주들에서, 우리의 형제와 자매들이 배틀크릭으로 몰려오고 있다. 185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작은 교회들에서 유능한 조력자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이사는 그 작은 예배소들을 크게 약화시켰고, 어떤 경우에는 교회가 완전히 해산되기도 했다.

배틀크릭으로 이사해 온 자들이 교회에 도움이 되는 사실이 입증되었는가? 그 문제가 내 앞에 제시되었을 때, 나는 누가 하나님을 위하여 생생한 증거를 하는지, 누가 젊은이들에 대한 책임을 느끼는지, 누가 집집을 방문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기도하고 그들의 영적 유익을 위하여 활동하는지를 보기 위해 바라보았다. 나는 이 사업이 등한히 여겨져 온 것을 보았다. 이 큰 교회로 오게 되자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활동할 몫이 없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그들은 팔짱을 끼고 모든 책임과 활동을 피하게 된다.

단순히 재정적 유익을 얻기 위하여 이 곳으로 오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교회에 무거운 짐이 된다. 그들은 땅만 폐하는 자들이며, 그들의 열매 없는 큰 가지들은 하늘의 햇빛의 영광이 다른 나무들에게 비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우리의 목사들 중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배틀크릭에 정착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바가 아니다. 만일 그들의 가족들이 여러 다른 지역에 흩어진다면 그들은 더욱 유용해질 것이다. 목사들이 다만 짧은 기간에만 가정에서 보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시간이 하나님의 사업에 훨씬 더 큰 유익이 될 수 있는 많은 장소들이 있다.

주님께서는 배틀크릭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대들이 여기서 무엇을 하느냐고 말씀하신다. 그대들은 그대들에게 지정된 사업에서 떠나서 교회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방해가 되어 있는 데 대하여 어떤 이유를 제시할 수 있겠는가?

형제들이여, 나는 그대들 자신의 현재의 영적 상태를 그대들이 그리스도의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던 때의 상태와 비교해 보도록 간청하는 바이다. 교회를 돕고 용기를 주고 있는 동안 그대들은 유용한 경험을 얻고 있었고 그대들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지키고 있었다. 그대들이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활동하기를 그쳤을 때 그대들 자신의 사랑은 냉랭해지고 그대들의 열성은 무력해지지 않았는가? 그대들의 자녀들은 어떠한가? 186 그들은 진리 안에 굳게 서고 이 큰 교회에 오기 전보다 하나님께 더욱 헌신하게 되었는가?

하나님의 사업과 오랫동안 관련이 되어 온 어떤 사람들이 나타낸 영향은 영성과 헌신에 치명적이다. 복음에 대하여 마음이 강퍅한 이 젊은이들은 자신들을 세속과 불경과 불신의 분위기로 둘러쌌다. 그대들의 자녀들이 이런 교제의 영향을 받는 위험을 감히 무릅쓰겠는가? 하나님의 원칙과 축복을 희생하고서 교육을 받는 것보다 그것을 결코 받지 않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배틀크릭으로 오는 젊은이들 가운데는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약간 있기는 하지만 그 수는 적다. 진리와 성경과 신앙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이 곳에 온 많은 사람들이 신앙 없는 친구들 때문에 타락하게 되어, 한 백성으로서의 우리가 귀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모든 진리를 의심하면서 가정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배틀크릭으로 이사하고자 생각하거나 그들의 자녀들을 이 곳으로 보내고자 생각하고 있는 우리의 모든 형제들은 이 일을 하기 전에 그 문제를 충분히 숙고해야 한다. 이 큰 중심에서 영향력을 강력하게 발휘하고 있지않는 한, 교회의 믿음과 헌신이 그가 받은 특권과 기회에 비례하지 않는 한, 이것은 그대들이 선택할 가장 위험한 위치이다. 나는 이 교회의 상태를 천사들이 보는 것처럼 보았다. 백성들과 파수꾼들은 다같이 영적기만을 당하고 있다. 그들이 경건의 모양은 유지하지만 변치 않는 의의 원칙은 결여되어 있다. 이 교회에 결정적인 변화, 뚜렷한 변혁이 없는한, 이 곳에 있는 학교가 다른 어떤 지역으로 옮겨가야 한다.

이 곳에서 여러 해 동안 살아온 젊은이들이 그들의 특권을 이용했을 것 같으면 오늘날 회의론자가 되어 있는 여러 사람들이 목회의 사업에 투신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진리를 의심하는 것이 지적으로 탁월한 증거인 줄 생각하고 불신을 간직하고 독존하는 일을 자랑으로 여겨 왔다. 187 그들은 은혜의 성령을 멸시하고 그리스도의 피를 짓밟아 왔다.

사업의 중심부에서 마땅히 배출시켜야 할 선교사들은 어디에 있는가? 해마다 20명 내지 50명의 사람들이 흑암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진리를 전하기 위하여 배틀크릭에서 나가야 한다. 그러나 경건이 너무 쇠진해지고, 헌신의 정신이 너무 약해지고, 세속적인 것과 이기적인 것이 너무 팽배해져 있기 때문에 도덕적 분위기는 선교적 열성에 치명적인 혼수상태를 이루어 놓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한 선교사가 되기 위하여 외국으로 갈 필요는 없다. 우리의 주변에는 “희어져 추수하게” 된 들판이 있으므로 누구든지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거둘 수 있다(요 4:35, 36). 하나님께서는 영적 태만으로 죽어가는 배틀크릭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부르셔서 그분의 사업에 그들의 활동이 필요한 곳으로 가도록 요구하신다. 비록 금전적 희생이 요구될지라도 배틀크릭에서 나오라.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이 될 수 있는 어딘가로 가라. 그대들이 약한 교회를 도울 수 있는 곳으로 가라. 하나님께서 그대들에게 주신 힘을 사용하라.

그대들의 영적 태만을 벗어 버려라. 지금은 “평안하다 안전하다” 라고 부르짖을 때가 아니다. 이 기별을 전하는 데 필요한 것은 응변적인 연사가 아니다. 엄격한 진리를 요점이 분명한 그대로 말해야 한다. 활동하는 사람들, 교회의 정결과 세상의 경고를 위하여 열렬하고, 중단 없는 정력으로 활동할 사람들이 필요하다.

위대한 사업이 성취되어야 하고, 더욱 넓은 계획이 세워져야 하고, 백성들을 각성시키기 위하여 음성이 발해져야 한다. 믿음이 약하고 흔들리는 사람들은 이 중요한 위기에 사업을 추진시킬 자들이 아니다. 우리는 영웅들의 용기와 순교자들의 믿음이 필요하다.

교회 안에 있는 세속주의

188 옛날의 거룩한 사람들에 대해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세상의 재물을 탐하거나 세속적 계획이나 야망 가운데서 행복을 추구하는 대신에 모든 것을 하나님의 제단 위에 올려 놓고 그분의 나라를 세우는데 그것들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살았고,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라는 사실을 분명히 주장하고, 더 좋은 나라, 곧 하늘에 있는 나라를 열망했다. 그들의 행동은 그들의 믿음을 분명히 나타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진리를 그들에게 위탁하셔서 그들을 통하여 세상이 그분의 뜻을 아는 지식을 받을 수 있도록 하실 수 있으셨다.

그러나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백성들은 그분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어떻게 하고 있는가? 세상은 그들이 특별한 백성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추론할 수 있을까? 그들은 하늘에 시민권이 있다는 데 대하여 어떤 증거를 제시하고 있는가? 그들의 방종되고 안일을 좋아하는 행동은 그리스도의 품성을 잘못 나타낸다. 그분께서는 그들이 그분의 품성을 그릇되게 나타냈음을 시인하심 없이 세상 앞에서 어떤 두드러진 방법으로도 그들을 영화롭게 하실 수 없으셨다.

나는 배틀크릭에 있는 교회에게, 그대들이 세상에 대하여 어떤 증거를 제시하고 있는가라고 묻는 바이다. 그대들의 행동이 내 앞에 제시되었을 때, 나는 최근에 우리 백성들이 그 도시에 세운 주택들을 지적당했다. 이 건물들은 그대들이 믿노라고 공언하는 교리들을 그대들이 불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너무도 많은 기념탑들이다. 그것들은 강단에서 전해진 어떤 설교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설교하고 있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농담과 조롱으로 그것들을 가리키면서, 그것들이 우리의 믿음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그 소유주들이 마음으로 “주인이 더디 오리라”(마 24:48)고 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나는 의복을 바라보았으며,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의 대화를 들었다. 둘 모두 진리의 원칙에 반대되었다. 의복과 대화는 이세상에서 순례자요 나그네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어느 것을 마음에 가장 크게 간직하고 있는지를 나타낸다. 189 “저희는 세상에 속한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요일 4:5).

청교도적 검소함과 단순함이 이 시대를 위한 엄숙한 진리를 믿는 모든 사람들의 주택과 의복의 특징이 되어야 한다. 의복이나 우리의 집들을 꾸미는 데 쓸데없이 사용된 모든 돈은 우리 주님의 돈을 낭비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존심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사취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기관들은 빚을 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 기관들을 어려움에서 모면해 주기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을 해주지 않고 있으면서 그것들의 번영을 위하여 드리는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기를 어떻게 주님께 기대할 수 있겠는가?

나는 마치 그리스도께서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야 하겠다”(요 3:7)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대들에게 말하고자 한다. 마음을 그리스도께 지배당하고 있는 자들은 세상의 과시를 본받고자 하는 욕망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어느 곳에나 십자가의 깃발을 가지고 다니며 언제나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욱 높은 목적과 더욱 고상한 주제에 대한 증인이 될 것이다. 우리의 의복, 우리의 주택, 우리의 대화는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증거해야 한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두 버린 사실을 입증한 자들에게 어떤 능력이 따를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분의 자녀로 인정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그분의 헌신한 백성을 축복하실 것이며, 불신의 세상은 그분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성령을 통하여 죄인들의 각성과 회개를 위하여 크게 역사하고자 하신다. 그러나 그분의 거룩한 계획에 의거하여, 그 사업은 그분의 교회의 기구를 통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교인들이 그분에게서 너무 멀리 떠나버렸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그들을 통하여 그분의 뜻을 이룰 수 없다. 그분께서는 수단을 통하여 일을 하기로 택하신다. 그러므로 사용되는 수단은 그분의 품성과 조화되는 것이어야한다.

배틀크릭에 성실하고 진실한 자들이 누가 있는가? 그들을 주님 곁으로 나오게 하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는 위치에 놓이고자 하면 우리는 개인적 믿음을 가지고 개인적 경험을 해야 한다. 하나님을 완전히 신뢰하는 자들만이 오늘날 안전하다. 우리는 어떤 인간적 모본을 따르거나 어떤 인간적 도움을 의지해서는 안 된다. 190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그릇된 위치를 취하고 있고 그릇된 길로 가고 있다. 그들의 지도를 따를것 같으면 우리는 그릇된 곳으로 인도될 것이다.

하나님의 대변자로 공언하는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일상 생활을 통하여 믿음을 부인하고 있다. 그들은 중요한 진리들을 백성들에게 제시한다. 그러나 누가 이 진리들에 의하여 감동을 받는가! 청중들은, 전도하고 있는 자들이 내일이면 쾌락과 환락과 경솔한 행동에 가담하는 첫 번째 사람들이 될 것을 안다. 강단 밖에서의 그들의 영향은 회개한 자들의 양심을 달래 주고, 목회 활동이 멸시를 받게 한다. 그들 자신이 영원한 세계의 바로 문턱에서 잠자고 있다. 영혼들의 피가 그들의 옷에 묻어 있다.

그리스도의 성실한 종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모든 기도와 간구로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골방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어느 곳에서나 기도하고,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쓸 것이다(엡 6:18). 그들은 영혼들이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을 느끼고 있으므로 열렬하고 겸손한 믿음으로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간구한다. 그리스도께서 지불하신 속전-십자가상에서의 속죄-은 언제나 그들 앞에 있다. 그들은 그들의 목회 활동에 대한 인증의 표로 영혼들을 갖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의 교만과 불신을 책망하신다. 그들이 그분의 말씀과 그분의 영의 교훈에서 떠나가고 있는 동안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그분의 구원의 기쁨을 회복시키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그분을 두려워하고 진리 안에서 걸어가는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고 세상과 동화하는 모든 자에게서는 그분의 축복을 거두실 것이다. 자비와 진리는 겸손하고 회개하는 자들에게 약속되고, 심판은 반역하는 자들에게 선고된다.

배틀크릭의 교회는 우상숭배에서 해방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그 교회의 성실성은 다른 교회들에게 모본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교회는 세상과의 우정을 끊어 버리기보다는 하나님의 계명에서 더욱 즐겨 떠나가고자 한다. 그는 그가 택한 우상과 연합한다. 현세적 번영과 악한 세상의 혜택이 그의 것이기 때문에 그는 그 자신이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다고 믿는다. 191 이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치명적 기만임이 입증될 것이다. 그의 거룩한 특성과 영적 힘은 그에게서 떠나갔다.

나는 구주의 권고에 유의하도록 이 교회에 권면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5).

우리가 강신술 의사에게 진찰을 받을 것인가?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저희더러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 보라 하니라 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서 저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왕하 1:2-4).

이 이야기는 하나님을 떠나서 사단의 대리자들을 찾아가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을 가장 분명하게 나타낸다. 위에 기록된 사건이 있기 조금 전에 이스라엘의 왕국에는 통치자들이 바뀌었다. 아합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쓰러지고, 쓸모 없는 인물인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위를 계승했는데, 그는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할 뿐이었고, 그의 부모의 길을 따라가고,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였다. 그는 그의 아비 아합처럼 바알을 섬기고 그에게 경배하여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의 노를 격발시켰다. 그러므로 심판이 그 반역한 왕의 죄에 철저히 따랐다. 모압과의 전쟁, 그 자신의 생명을 위협한 사건은 아하시야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냈다.

192 이 이스라엘의 왕은 그의 아버지의 시대에 나타난 지극히 높으신 분의 놀라운 업적을 얼마나 많이 듣고 보았던가. 하나님께서는 반역한 이스라엘에게 당신의 엄격과 질투에 대한 얼마나 무서운 증거를 보이셨던가! 이 모든 것을 아하시야는 알고 있었지만 그는 마치 이 두려운 사실들과 그의 아버지의 무서운 종말까지도 다만 하나의 근거 없는 이야기에 불과한 것처럼 행동했다. 마음을 여호와 앞에 낮추는 대신에 그는 그의 운명을 결정지은 가장 대담 무쌍한 불경의 행동을 감행했다. 그는 종들에게 명령했다.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보라.”

에그론의 우상은 그의 제사장들의 매개를 통하여 장래의 사건에 관한 정보를 알려 주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것이 그처럼 일반적인 신임을 얻고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먼 거리에서도 많은 수의 사람들이 찾아갔다. 거기서 한 예언들과 제공된 정보는 흑암의 왕에게서 직접 나왔다. 그의 역할을 통하여 흑암과 거짓의 왕국은 지탱된다.

아하시야왕의 죄와 형벌의 역사는 아무도 무시하고는 무사할 수 없는 경고의 교훈이 된다. 비록 우리가 이교의 신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지라도 수많은 사람들은 바로 이스라엘의 왕이 한 것과 똑같이 사단의 신전에서 경배를 하고 있다. 비록 과학과 교육의 영향을 받아 더욱 세련되고 매력적인 형태를 취하기는 했지만 바로 그 이교의 우상숭배의 정신은 오늘날 매우 널리 퍼져 있다. 분명한 예언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신속히 줄어들고 있는 슬픈 증거가 날마다 더해가는가 하면 그 대신에 미신과 사단의 마법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성경을 열렬하게 탐구하여 생애의 모든 욕망과 목적을 그 분명한 시금석에 굴복시키지 않는 모든 사람,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하여 그분을 찾지 않는 모든 사람들은 바른길에서 떠나가고, 사단의 기만에 빠지게 될 것이다.

193 이교의 예언자들은 오늘날로 말하면 강신술의 영매와 천리안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자들과 오늘날의 점쟁이 등이다. 에그론과 엔돌에서 말한 그 신비한 음성들은 여전히 그들의 거짓말을 통하여 사람들을 그릇되게 이끌어가고 있다. 흑암의 왕은 새롭게 가장을 하고 나타난 데 불과하다. 교적 예배의 신비는 우리 시대의 마법사들의 은밀한 단체와 강신술 의회, 애매한 것과 기사(奇事)등으로 대치되었다. 그것들이 나타나자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영으로부터 오는 빛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그것들을 받아들인 그들이 옛날의 마법사들을 조롱하고 있는 동안 큰 기만자는, 다른 형태로 가장된 그의 술책에 그들이 넘어가는 것을 보고 의기 양양하게 웃는다.

그의 대리자들은 여전히 질병을 고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그들의 능력을 전기, 최면술(magnetism) 또는 “공명 치료” 등으로 돌린다. 사실상 그들은 사단의 전류를 전해 주기 위한 통로에 불과하다. 이런 매개들을 통하여 그는 사람들의 육체와 심령에 그의 마법을 건다.

나는 때때로 교회의 목사들과 평신도들로부터 강신술자와 천리안의 의사들에게 진찰을 받는 것이 그릇된 일이라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하는 편지를 받았다. 나는 시간이 없어서 이 편지들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바로 지금 나는 그 문제에 관심을 촉구받았다. 이와 같은 사단의 대리자들이 너무도 수가 많아지고 그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일이 너무도 보편화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경고의 말을 하는 것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건강 법칙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그분께 받으실 만한 봉사를 하기 위하여 우리의 육체적 능력을 최선의 상태로 보존하는 것을 우리의 의무로 정하셨다. 자비롭게도 그들의 손이 미치는 범위 안에 놓여진 빛과 지식을 이용하고자 하지 않는 자들은 육체적 생활은 물론이요 영적 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허락하신 수단들 중 하나를 거절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사단의 미혹을 받게 될 장소에 자신을 두고 있다.

194 이 그리스도교 시대와 그리스도교 국가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기보다는 악의 영들을 찾아간다. 자녀의 병상을 돌보고 있는 어머니는 이렇게 부르짖는다. “나는 더 이상 할 수가 없다. 내 아이를 고쳐줄 능력을 가진 의사가 없는가?” 그는 어떤 천리안을 가졌다고 주상하는 사람(Clairvoyant)이나 최면술 치료자(magnetichealer)에 의하여 이루어진 놀라운 치료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의 사랑하는 아이를 그의 보호에 맡기고, 마치 그의 곁에서 있는 것처럼 사단의 팔에 정말로 안겨 준다. 많은 경우에 그 아이의 미래의 생애는 깨뜨리기가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사단의 세력에 지배된다 많은 사람들은 생명의 법칙과, 건강의 회복을 위하여 적용되어야 할 단순한 수단을 아는 지식을 얻기 위하여 필요한 노력을 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를 생명에 대한 바른 관계에 놓지 않는다. 질병은 그들이 자연의 법칙을 범한 결과이지만 그들은 그들의 잘못을 고치고자 노력하지 않고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의사들을 찾아간다. 만일 그들이 건강을 회복하게 되면 그들은 모든 영광을 약물과 의사에게 돌린다. 그들은 언제나 인간의 능력과 지혜를 우상화하고자 하고, 피조물, 곧 티끌과 재에 불과한 피조물 외에는 어느 하나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한 어머니가 어떤 불신자 의사에게 그의 자녀의 생명을 구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음성을 들었다. 그러나 내가 그분께 나오는 모든 자들을 온전히 구원해 주실 수 있는 위대하신 의사에게 도움을 구하도록 간절히 요청하자 그는 참을성 없이 돌아갔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하시야가 나타낸 것과 동일한 정신을 보게 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 않는 의사들을 의지하는 것은 안전하지 못하다. 하나님의 은혜의 영향을 받지 않으면 사람들의 마음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렘 17:9)이다. 자아의 과시가 그들의 목적이다. 의학적 전문성이라는 가면 아래 어떠한 죄악이 숨겨져 있으며, 어떠한 기만이 지지를 받고 있는가? 의사는, 그의 품성이 타락한 상태이고 그의 행동이 생명의 법칙과 반대 될지라도 큰 지혜와 놀라운 기량을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우리 주 하나님은 은혜롭게 되시고자 기다리고 있다고 우리에게 보증하신다. 195 그분은 환난 날에 당신을 부르도록 우리에게 요청하신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찌 육신적 팔을 의지하고자 그분에게서 돌아설 수 있겠는가?

나와 함께 저쪽에 있는 병실로 가보자. 거기에는 한 남편이요 아버지, 사회와 하나님의 사업에 축복이 되고 있는 한 사람이 누워 있다. 그는 질병으로 갑자기 쓰러졌다. 열의 불길이 그를 사르어 버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타는 입술을 축이고, 극심한 갈증을 해소하고, 열이 난 이마를 식히기 위하여 깨끗한 물을 원한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다. 의사가 물을 금지시켰다. 알콜 음료의 자극이 주어지므로 불에 연료가 더해진다. 하늘이 보내준 복된 물을 슬기롭게 사용하면 삼켜버리는 불꽃은 꺼져 버릴 것이다. 그러나 물은 유독한 약물 때문에 제쳐 놓은 바 된다.

한동안 자연은 그의 권리를 찾고자 싸운다. 그러나 마침내 정복당하여 그는 싸움을 포기한다. 그리하여 죽음이 그 고통받는 자를 해방시켜 준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살면서 세상에 축복이 되기를 바라셨다. 그러나 사단은 그를 멸망시키고자 작정하고 의사의 직능을 통하여 성공하게 되었다.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의 가장 귀중한 빛이 이처럼 꺼져 버리도록 허용하겠는가?

아하시야는 에그론에 있는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그의 종들을 보냈다. 그러나 우상에게서 기별을 듣는 대신에,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로부터 무서운 선고를 받았다.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왕하 1:4). 배도한 왕에게 이 말을 하도록 엘리야에게 명령하신 분은 그리스도셨다. 여호와 임마누엘께서는 아하시야의 불경을 크게 불쾌히 여기셨다.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의 마음을 얻어서 그분 자신을 확고 부동하게 신뢰하는 마음을 그들에게 일으켜 주기 위하여 무엇을 하지 않으셨던가? 여러 시대를 통하여 그분께서는 가장 겸손한 친절과 비할 데 없는 사랑을 나타냄으로써 그분의 백성을 찾아오셨다. 부조들의 시대로부터 그분께서는 얼마나 “인자들을 기뻐하였”(잠 8:31)는지 보여 주셨다. 그분은 진실한 마음으로 그분을 찾은 모든 사람들에게 즉각적인 도움이 되어 오셨다.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 사랑과 그 긍휼로 그들을 구속하시고”(사 63:9). 196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도움을 얻고자 주님의 가장 악한 원수를 찾아갔다.

히브리인은 참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은총을 받은 유일의 민족이었다. 이스라엘의 왕이 이교의 예언자에게 묻고자 보냈을 때 그는 이교도들에게 그가 그의 백성의 하나님, 하늘과 땅의 창조주보다 그들의 우상을 더 신뢰한다는 것을 선포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흑암의 세력으로부터 도움과 권고를 구하고자 힘과 지혜의 근원되신 분에게서 돌아설 때 똑같은 방법으로 하나님께 욕을 돌리게 된다. 악하고 우상숭배에 젖은 왕이 취한 그런 행동 때문에 하나님께서 분노하셨다면 그분의 종들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취한 유사한 행동을 그분께서 어떻게 여기시겠는가?

사람들이, 인간을 창조하신 분, 한 번의 만짐과 한마디의 말씀과 한번 쳐다봄으로써 온갖 종류의 질병을 고칠 수 있는 분을 신뢰하기를 그처럼 싫어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를 구속하시고자 그처럼 큰 희생을 하신 분보다 더 크게 신뢰할 만한 자가 누구인가? 우리 주님께서는 병이 들었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의무에 대하여 사도 야고보를 통하여 분명히 교훈하신다. 인간의 도움을 얻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도우시는 분이 되실 것이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약 5:14, 15). 만일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마음의 순결을 가지고, 사단의 역사를 신뢰하는 것만큼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을 발휘할 것 같으면 그들은 심령과 육체에 생명을 주는 성령의 능력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백성에게 큰 빛을 주셨지만 우리는 유혹이 미칠 수 없는 곳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 중 누가 에그론의 신들에게서 도움을 구하고 있는가? 상상으로 그리지 않은 이 그림을 바라보라. 심지어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 사이에서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주도적 특성들이 보일 것인가? 한 환자, 분명히 매우 양심적이지만 고집이 세고 자부심이 강한 한 환자는 하나님께서 자비하시사 한 백성으로서의 우리가 받아들이도록 이끄신 건강과 생명의 법칙을 서슴없이 경멸한다. 197 그의 음식은 그의 병적인 욕망을 만족시켜 주는 방법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건전한 음식물이 제공되는 식탁에 앉기보다는 그는 음식점들의 단골 손님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거기서 자유로이 식욕에 방종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향력 있는 절제 옹호자인 그가 그 기초적 원칙을 무시한다. 그는 구제되기를 바라지만 극기의 대가로 그것을 얻고자 하지는 않는다. 그 사람은 왜곡된 식욕의 신전에서 경배하고 있다. 그는 우상 숭배자이다. 거룩하고 고상해지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사용될 수 있었던 능력들은 약해지고, 적은 봉사를 하게 된다. 성미 급한 기질, 혼란한 뇌, 약화된 신경은 그가 자신의 법칙들을 무시한 결과들이다. 그는 비능률적이고, 신뢰할 수 없다.

그가 직면한 위험을 경고해 줄 용기와 정직을 가지고 있는 자는 누구든지 그의 비위를 건드리게 된다. 가장 약한 항의나 반대도 그의 투쟁적 정신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제는 마력의 매체를 통하여 힘을 얻는 자로부터 도움을 구할 기회가 주어져 있다. 그는 열광적으로 이 근원을 이용하고, 제공된 혜택을 얻을 희망으로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쓴다. 그는 기만과 미혹을 당한다. 마법사의 능력이 찬양의 주제가 되므로 다른 사람들로 그의 도움을 구하도록 영향을 받게 된다. 그리하여 사단의 능력은 존경과 높임을 받는 반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치욕을 당하신다.

나는 그분을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렇게 말하는 바이다. 그대들이 처음에 받아들인 믿음 안에 거하라. 불경스럽고 헛되게 떠드는 소리를 듣지 말라. 마력을 신뢰하는 대신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라. 엔돌과 에그론으로 가는 길은 저주를 받았다. 금지된 땅으로 감히 들어가고자 하는 발은 걸려 넘어지고 자빠질 것이다. 이스라엘에는 압제받는 모든 자를 건져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의가 그분의 보좌의 거처이다.

주님의 교훈에서 조금이라도 떠나가면 위험이 따른다. 198 우리가 분명한 의무의 길에서 벗어나면 옳은 일로부터 저항할 수 없이 점점 더 멀리 떠나가게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련의 환경이 나타날 것이다.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는 자들과 쓸데없이 친숙하게 되면 우리는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꾀임을 받게 될 것이다. 세상 친구들에게 거슬리기를 두려워하게 되면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나타내거나 그분을 의지하는 믿음을 시인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적으로 가까이해야 한다. 우리는 그 말씀의 경고와 격려, 그 말씀의 위협과 약속이 필요하다. 우리는 오직 우리 구주의 생애와 품성을 통해서만 주어진 완전한 모본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그분의 백성들이 의무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동안 그들을 지켜 줄 것이다. 그러나 고의적으로 사단의 땅에서 모험하는 자들에게는 그와 같은 보호의 약속이 없다. 큰 기만자의 대리자는 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어떤 것이나 말하고 행할 것이다. 그가 그 자신을 강신술자, “전력 치료 의사”, 혹은 “자력 치료자”라 부르든지 간에 그것은 별반 상관이 없다. 허울 좋은 가장을 통하여 그는 부주의한 자들의 신임을 얻는다. 그는 그를 찾아오는 자들의 생애의 역사를 알고 그들의 모든 어려움과 고난을 이해하는 체한다. 검은 함정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그는 빛의 천사로 가장하여 그의 조언을 구하는 여자들에게 큰 관심을 나타낸다. 그는 그들의 모든 어려움이 불행한 결혼 때문에 생긴다고 그들에게 말한다. 이 말이 사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상담자는 그들의 상태를 호전시켜 주지 않는다. 그는 그들에게 사랑과 동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들의 복리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체하면서 그는 의심하지 않는 그의 희생자들에게 마법을 행사하여 마치 뱀이 떨고 있는 새에게 마력을 거는 것처럼 그들에게 마력을 건다. 미구에 그들은 완전히 그의 능력 안에 있게 된다. 죄, 수치, 파멸 등이 무섭게 이어진다.

이와 같은 불법의 일꾼들이 적지 않다. 그들의 길은 황폐한 가정, 깨어진 명성, 파괴된 마음 등으로 특징지워진다. 그러나 세상은 이 모든 것에 대하여 별반 알지 못한다. 그들은 여전히 새로운 희생자들을 만들고 있으며, 사단은 그가 이루어 놓은 파멸을 보고 즐거워 한다.

199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는 매우 밀접하게 접촉되어 있다. 만일 휘장이 거두어진다면 우리는 악한 천사들이 그들의 흑암을 우리 주변에 밀어넣고 온 힘을 다하여 기만하고 멸망시키기 위하여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악한 사람들은 악한 영들에게 둘러싸여 영향과 도움을 받는다. 믿음과 기도의 사람은 하나님의 지도에 심령을 굴복시켜 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빛과 힘을 그에게 가져다 준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빛과 어둠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사단을 섬기는 일보다 더 크게 반대되지는 않는다. 선지자 엘리야는 그가 두려움 없이 반역한 이스라엘에게 호소할 때 참 빛 가운데서 그 문제를 제시했다.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왕상 18:21).

자기 자신을 사단의 마력에 맡기는 자들은 그것을 통하여 큰 유익을 얻은 것으로 자부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의 길이 현명하거나 안전하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가? 생명이 연장된다고 그럴까? 세속적 이득을 얻는다고 그럴까?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는 것은 결국 이익이 될까? 그와 같은 외관상 이득은 모두 회복할 수 없는 손실이었음이 입증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단의 세력에서 그분의 백성을 보호하기 위하여 구축해 놓으신 단 하나의 방호벽도 벌을 받지 않고 무너뜨리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의 유일한 안전은 옛 지계표를 보존하는 데 있다.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사 8:20).

예수님을 바라봄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감정을 계속해서 주시하고 그들의 발전이나 쇠퇴를 그것으로 판단함으로써 그들의 신앙 생애에 있어서 심각한 잘못을 범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납하심을 받은 증거를 찾기 위하여 마음 속을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거기에서 우리를 실망시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200 우리의 유일의 소망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히 12:2)는 데 있다. 그분에게는 희망과 믿음과 용기를 고취시켜 주는 모든 것이 있다. 그분은 우리의 의요, 우리의 위로요 기쁨이시다.

위로를 얻기 위하여 마음 속을 쳐다보는 자들은 지치고 실망할 것이다. 우리의 연약함과 무가치함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속죄하시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간구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그분의 공로를 의지할 때 우리는 안식과 평안과 기쁨을 발견할 것이다. 그분은 당신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오는 모든 사람을 온전히 구원하신다.

우리는 매일, 매 시간 예수님을 의지할 필요가 있다. 그분의 은혜를 통하여 우리는 현실의 모든 짐을 지고 그 의무를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장래의 어려움을 미리 짐작하고 압도당한다. 그들은 내일의 짐을 오늘 지고자 끊임없이 애쓰고 있다. 그와 같이 그들의 어려움 중 상당 부분은 상상적인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준비도 갖추어 놓지 않으셨다. 그분은 오직 오늘만을 위한 은혜를 약속하신다. 그분은 내일의 염려나 어려움을 지지 말도록 우리에게 명령하신다.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기 때문이다(마 6:34).

예상되는 불행을 곰곰이 생각하는 습관은 지혜롭지 않고 그리스도인적이 아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현재의 기회를 이용하지 못한다. 201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오늘의 의무를 이행하고 그 시련들을 견디도록 요구하신다. 우리는 오늘 말과 행동으로 잘못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지 않으면 안된다. 오늘 산 믿음을 실천함으로써 우리는 원수를 정복해야 한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을 찾고 그분의 임재 없이 만족한 채 안식하지 않으리라고 작정해야 한다. 우리는 이 날이 우리에게 허용될 수 있는 마지막 날인 것처럼 경계하고 일하고 기도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생애는 참으로 얼마나 열렬해질 것인가! 우리는 모든 말과 행동으로 예수님을 참으로 밀접하게 따라가게 될 것인가!

귀중한 기도의 특권을 올바르게 깨닫고 이용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우리는 예수님께 가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그분께 알려야 한다. 우리는 더 큰 어려움은 물론이요 우리의 작은 염려와 걱정을 그분께 가져갈 수 있다. 우리를 곤란하게 하고 어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는 기도로써 그것을 주님께 가져가야 한다. 우리가 발걸음마다 그리스도의 임재가 필요함을 느낄 때, 사단은 그의 시험을 개입시킬 기회를 거의 얻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가장 선량하고 동정 깊은 친구에게서 우리를 분리시키려고 그는 심사 숙고해서 노력한다. 우리는 예수님 외에 아무도 우리의 막연한 친구로 삼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모든 것을 그분에게 안심하고 알릴 수 있다.

형제 자매들이여, 그대들이 예배를 위하여 모일 때 예수님께서 그대들을 만나신다는 것을 믿고, 그분께서 그대들에게 즐겨 복을 주시고자 하신다는 것을 믿으라. 자아에게서 눈을 돌려 예수님을 바라보고, 비할 데 없는 그분의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하라. 그분을 바라봄으로써 그대들은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될 것이다. 그대들이 기도할 때는 간단 명료하게 하고, 바로 요점으로 들어가라. 그대들의 긴 기도로 주님께 설교하지 말라. 마치 배고픈 어린이가 그의 육신의 아버지께 떡을 구하듯이 생명의 떡을 구하라. 만일 우리가 단순함과 믿음으로 하나님께 구할 것 같으면 그분께서는 필요한 모든 축복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목사들이 설교하기 전에 드리는 기도는 흔히 길고 적합하지 않다. 그들은 그 상황의 필요나 백성들의 요구와는 상관없이 전 주제를 두루 언급한다. 그런 기도들은 골방에서는 적합하지만 공중 앞에서 드려져서는 안 된다. 청중들은 지루해져서 목사가 기도를 그쳐 주기를 바란다. 형제들이여, 그대들의 기도에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하라. 믿음으로 그대들의 구주께로 가서 그 상황에 필요한 것을 그분께 말씀드려라. 그때에 필요한 축복을 얻기 위한 간절한 욕망으로 영혼이 하나님을 찾아가게 하라.

기도는 가장 거룩한 영혼의 활동이다. 그것은 진실하고, 겸손하고, 열렬해야 하며,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발한 새 마음의 욕망이어야 한다. 탄원자가 거룩한 임재 앞에 있음을 느낄 때 자아는 잊어버린바 된다. 그는 인간적인 재능을 과시하기 위한 욕망을 갖지 않을 것이다. 그는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고자 노력하지 않고, 영혼이 갈망하는 축복을 얻고자 노력할 것이다.

202 우리가 주님의 명령을 따라 그분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어떤 축복이 우리에게 소유될 것인가! 나는 더욱 열렬하고 효과적인 기도가 있기를 바란다. 그리스도는 믿음으로 그분을 찾는 모든 사람들을 도우시는 분이 되실 것이다.

일꾼들을 부름

세속적 정신과 이기적 정신은 교회에서 많은 축복을 박탈했다. 우리는 교회의 유용성이 제한된 것은 교회에 하나님의 빛과 능력이 독단적으로 억제되었기 때문이라고 가정할 권리가 없다. 과거에 잘 지도된 노력에 뒤따른 성공의 정도는 그런 생각을 반박한다. 성공은 언제나 이루어진 활동에 비례했다. 교회의 유용성을 제한한 것은 오직 활동과 희생의 제한이다. 선교 정신은 약화되고, 헌신은 저조되고, 이기심과 탐욕, 탐심과 사기가 교인들 사이에 존재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것들에 유의하지 않으시는가? 그분께서는 마음의 의향과 목적을 읽으실 수 없는가? 열렬하고, 뜨겁고, 회개하는 기도는 하늘의 문을 그들에게 열어 주고 은혜의 소나기가 내리게 해 줄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분명하고 확고한 견해는 그들의 세속적 마음을 제거해 주고 겸손과 참회와 감사로 그들의 심령을 채워 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 자신의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바 된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치명적인 영적 질병이 교회에 있다. 교인들은 사단에게 상처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기 위하여 놋뱀을 쳐다보았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쳐다보지 않을 것이다. 세상이 그들에게 너무 많은 요구를 하기 때문에 그들은 갈바리의 십자가의 영광을 보거나 그 능력을 느낄 만큼 충분하게 오랫동안 그것을 바라볼 시간이 없다. 그들은 진리가 요구하는 극기와 헌신을 이따금 일별하지만, 그것이 달갑지 않다. 그러므로 그들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 그들은 미구에 그것을 잊어버리게 된다. 203 주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이 당신이 제시한 조건에 응하고자 유의하지 않는 한 그들을 유용하고 유능하게 하실 수 없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에게 주신 빛을 도처에서 크게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요구들은 대부분의 분야에서 허지로 돌아가고 있다. 누가 하나님과 그분의 사업에 자기 자신을 헌신해야겠다는 부담을 느끼고 있는가? 이 부르심에 부응하기 위하여 스스로 자격을 갖추고 있는 젊은이들은 어디에 있는가? 진리의 빛이 결코 뚫고 들어가지 못한 넓은 지역들이 우리 앞에 열려 있다. 어느 쪽을 바라보든지, 우리들은 거두어들여지기 위하여 준비된 풍성한 수확물을 보게 된다. 그러나 거두어들이고자 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 진리의 승리를 위하여 기도가 드려지고 있다. 형제들이여, 그대들의 기도는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그대들은 어떤 종류의 성공을 바라고 있는가? 그대들의 게으름에 적합한 성공인가, 그대들의 이기적 방종에 적합한 성공인가? 그대들 편에서의 어떤 노력도 없이 스스로 유지되고 지탱될 수 있는 성공인가?

엄숙한 사업에 적합한 일꾼들을 일터로 내보내기 전에 바람이 미치지 않는 곳에 누워 있는 자들에게 불편을 느끼게 할 결정적인 변화가 교회 안에 있어야 한다. 각성이 있어야 하고, 영적 혁신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경건의 열이 고조되어야 한다. 지상의 모든 민족에게 진리를 전하기 위한 계획들이 세워지고 실천되어야 한다. 사단은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그들 주변에서 영혼들이 죽어가고 있는 동안 잠자도록 어르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의 태만에 대하여 주님께 무슨 변명을 할 수 있겠는가?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마 20:7). 그리스도께서 하신 이 말씀은 교회에 적용된다. 왜 그대들은 그분의 포도원에서 재능껏 일하고 있지 않는가? 그분께서는 거듭거듭,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마 20:4)고 명령하셨다. 그러나 하늘에서 온 이 은혜로운 초청은 대부분의 사람들에 의하여 무시당해 왔다. 그대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기에 꼭 알맞은 때가 아닌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각 사람을 위한 사업이 있다. 204 하늘에서 온 음성은 그대들을 순종하도록 엄숙히 부르고 있다. 이 음성에 유의하여, 어떤 장소에서나, 어떤 재능으로나 즉시 일하러 가라. 왜 그대들은 종일 여기에 게으르게 서 있는가? 그대들에게는 해야 할 사업, 그대들의 최선의 정력을 요구하는 사업이 있다. 귀중한 생애의 매 순간은 그대들이 하나님과 동료 인간들에게 이행해야 할 어떤 의무와 관련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들은 나태해 있다.

영혼들을 구원하는 위대한 사업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남아있다. 모든 흑암의 악마들이 이 사업을 반대하고 있는 동안 영광중에 있는 모든 천사는 그것에 종사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마음 속에 간직된 영원한 사랑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셔서 인류를 그분의 모든 부를 상속하는 후사로 삼으시고자 제안하심으로 영혼들의 위대한 가치를 우리에게 실증하셨다. 그분은 범죄한 인류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우리 앞에 드러내 주고 그분을 의로우시며, 또한 믿는 자를 의롭게 하시는 분으로 제시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롬 15:3). 그분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다. 그분의 사업은 타락한 인류를 위한 것이었다. 이기심은 그분의 면전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었다. 그분은 우리를 대신하여 고난을 당하기 위하여 우리의 본성을 취하셨다. 이기심, 곧 세상의 죄는 교회의 편만한 죄가 되었다.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희생하심으로 그분께서는 모든 이기심의 뿌리를 강타하신다. 그분은 아무것도, 그분 자신의 명예와 하늘의 영광까지도 보류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당신이 축복하고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자들에게서 합당한 극기와 희생을 기대하신다. 모든 사람은 그의 역량껏 일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모든 세속적인 고려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도외시되어야 한다. 세속적 유익을 위한 유일한 욕망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업을 더욱 잘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관심사와 그분을 따르는 자들의 관심사는 동일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세상은 그것들이 별개의 것이 되고 구분되어 있다고 판단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어 있노라고 주장하는 자들도 그렇게 주장하지 않는 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목표를 열렬하게 추구하여 똑같이 이기적으로 그들의 물질을 낭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속적 번영을 첫째로 구하게 되는데, 어떤 것도 이것에 필적하도록 허용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사업은 그들이 그들 자신을 위하여 특정한 분량을 모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205 그들은 만난(萬難)을 무릅쓰고 그들의 소유를 증가시켜야 하고, 영혼들은 진리의 지식이 없어서 죽어야 한다. 그들의 소유와 그들의 상품과 그들의 가옥과 그들의 토지와 비교할 때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한 영혼은 얼마나 가치가 있는가? 영혼들은 그들이 무엇인가를 할 준비가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재물을 섬기는 이 사람들을 게으르고 불성실한 종들이라고 부르신다. 그러나 재물은 그들이 가장 부지런하고 헌신적인 그의 종들 중에 속한다고 자랑한다. 그들은 그들의 주님의 소유를 안락과 쾌락에 희생시킨다. 자아는 그들의 우상이다.

우리가 손이 미치는 범위 안으로 구원을 가져다 주기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신 예수님께 영혼들을 인도하기 위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이기심은 그리스도의 박애와 사랑이 교회에서 물러가게 하고 있다. 주님의 곳간이 비어 있는 동안 수백만의 그분의 돈은 세속적 정욕을 만족시키는 데 낭비된다. 나는 이 문제를, 나에게 제시된 그대로 그대들 앞에 어떻게 제시할 것인지 알지 못한다. 해마다 수많은 돈이 의복을 자랑하는 마음을 만족시키는 데 소비된다. 바로 그 돈은 우리의 사명을 완수하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나는 식탁을 거의 온갖 진미의 음식으로 차리고, 좋은 의복에 대한 거의 모든 욕망을 만족시키는 가정들을 보았다. 그들은 번창하고 있는 사업을 하고 있거나 좋은 급료를 받고 있다. 그러나 거의 모든 돈은 그들 자신이나 그들의 가족들을 위하여 사용된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본받고 있는 일인가? 이 사람들은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사업을 발전시키는 데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하여 주의 깊이 절약하고 좋아하는 기호를 부인하는 일에 어떤 책임을 느끼고 있는가? 이와 같이 쓸데없이 낭비된 자금 중 얼마를 앤드루스 목사가 이용할 수 있다면 그에게 큰 축복이 되고, 그의 생명이 연장되는 편의가 주어질 것이다. 더 큰 계획들을 수행하는 일에 사용될 더 많은 자금이 있을 것 같으면 선교 사업은 백 배나 더 확장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바로 이 목적을 위하여 사용되도록 의도하신 자금은 안락과 행복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물품들을 구입하는 데 허비된다. 그런데 그 자금이 진리를 확장시키는데 그처럼 크게 필요한 자금이 아니었을 것 같으면 그런 물품들을 소유하는 것이 죄가 안 될 수도 있었다. 나의 형제들이여, 그대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대들 자신의 것은 구하고 있으면서 예수그리스도의 것은 구하고 있지 않는가!

206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 거하시므로 온갖 형태의 이기심이 교회에서 제거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 상상해 보라. 그리스도께서 처음에 세웠던 교회에서와 마찬가지로 조화와 연합과 형제 우애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 활동은 어느 곳에서나 보이게 될 것이다. 온 교회는 불이 붙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희생의 불꽃으로 타오를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제단 위에서 사뤄지도록 자신의 극기의 열매를 드릴 것이다. 유용성의 새로운 방법을 고안하고 불쌍한 죄인들을 영원한 파멸에서 건져내기 위하여 접촉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일에 한층 더 큰 활동이 있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유행과 상관없이 평범하고 검소한 의복을 입고, 우리의 식탁이 언제나 온갖 사치와 낭비를 피하고 단순하고 건전한 식물로 차려지고, 우리의 가옥들이 평범하게 세워지고 그와 같이 꾸며진다면, 거룩하게 하는 진리의 능력을 보여 주게 되고, 불신자들에게 효력 있는 감화를 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문제에 있어서 세상과 동화되고, 어떤 경우에는 기상(奇想)을 다한 꾸밈에 있어서 세상 사람들보다 뛰어나고자 두드러지게 노력하고 있는 동안 진리의 전파는 조금밖에, 혹은 전혀 효과가 없게 될 것이다. 진리를 믿노라고 이미 공언하고 있는 자들이 그들의 믿음과 행동이 상치되고 있는 데 누가 이 시대를 위한 엄숙한 진리를 믿겠는가? 하늘의 창들을 우리에게서 닫아 버린 분은 하나님이 아니시고 세상의 습관과 행동에 일치된 우리 자신의 상태이다.

요한계시록 14장의 셋 째 천사는 하늘을 급히 날아가면서,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계 14:12)들이 여기 있다고 부르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사업의 성격이 나타나 있다. 그들은 너무도 중대한 기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 그 기별을 전함에 있어서 날아가는 것으로 표현된다. 그들은 굶주린 세상에 전해 줄 생명의 떡을 손에 쥐고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들을 강권한다. 이것은 마지막 기별이다. 207 이 기별이 그 사명을 다한 후에는 더 이상 주어질 자비의 초청은 없다. 얼마나 큰 책임이 지워진 기별인가! 은혜스런 초청의 말씀을 전할 모든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큰 책임이 지워져 있다. “성경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계 22:17).

듣는 자는 누구나 ‘오라’고 말해야 한다. 목사들뿐만 아니라 백성들도 그러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그 초청에 가담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그들의 공언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그들의 품성과 의복에 의해서도 마음을 끄는 감화를 나타내야 한다. 그들은 세상을 위한 수탁자, 사람들에게 거룩한 진리를 유증(遺贈)해 주신 분의 뜻을 집행하는 자들이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위탁의 위엄과 영광을 깨달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인

“그가 또 큰소리로 내 귀에 외쳐 가라사대 이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로 각기 살륙하는 기계를 손에 들고 나아오게 하라 하시더라.”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 나의 듣는데 또 그 남은 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그 뒤를 좇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 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겔 9:1, 3-6).

208 예수님께서는 바야흐로 하늘 성소의 속죄소를 떠나 복수의 옷을 입으시고 하나님께서 주신 빛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을 심판하심으로 당신의 진노를 쏟으시려 하신다.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전 8:11).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자들은 주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내신 인내와 오래 참으심으로 부드럽게 되는 대신에 그들의 악행으로 마음을 굳게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에도 한계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그 영역을 넘어가고 있다. 그들은 은혜의 한계를 넘어갔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간섭하셔야 하고 그분 자신의 명예를 옹호하셔야 한다.

여호와께서는 아모리 족속에 대하여, “네 자손은 사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 함이니”라고 말씀하셨다. 비록 이 족속이 우상숭배와 타락으로 두드러진 처지에 있었지만 아직은 죄악의 잔을 가득 채우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족속을 완전히 멸망시키도록 명령하실 수 없었다. 사람들이 아무런 핑계를 할 수 없도록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었다. 그러므로 더 좋은 변화가 보이지 않는 한, 그분의 심판이 그들에게 내릴 것이었다.

무한하신 분께서는 틀림없이 정확하게 모든 나라에 대한 기록을 여전히 보관하고 계신다. 회개하라는 부르심으로 그분의 자비가 제공되어 있는 동안 이 기록은 열린 채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양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특정한 분량에 이르게 되면, 그분의 진노의 역사(役事)가 시작된다. 기록은 종결되고,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도 끝난다. 그들을 위한 자비의 호소는 더 이상 없어진다.

각 시대를 내려다보고 있던 선지자에게 이 시대가 그의 이상 앞에 제시되었다. 이 시대의 나라들은 전례 없는 자비를 받아 왔다. 가장 좋은 하늘의 축복이 그들에게 주어져 왔다. 그러나 늘어난 교만, 탐심, 우상 숭배, 하나님께 대한 경멸, 야비한 배은 망덕이 그들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다. 209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기록을 신속히 종결짓고 있다.

그러나 나를 전율하게 하는 것은 가장 큰 빛과 특권을 가졌던 자들이 팽배해 가는 죄악에 감염된 사실이다. 그들 주변에 있는 불의한 자들의 영향을 받고, 많은 사람들, 심지어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자들 중 많은 사람들까지도 냉랭해 지고 거센 악의 조류에 압도당하고 있다. 참된 경건과 거룩함에 대하여 던지는 보편적 조롱은, 하나님과 밀접한 연결을 이루고 있지 않는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율법을 존중하는 마음을 잃어버리게 한다. 만일 그들이 마음 속으로부터 빛을 따르고 진리에 순종하고 있다면 이 거룩한 율법은 그처럼 멸시를 받고 도외시될 때라도 그들에게 더욱 귀중하게 보일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멸시하는 일이 더욱 현저해질수록 그 율법을 준수하는 자들과 세상과를 구분하는 선은 더욱 분명해 진다. 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교훈을 사랑하는 마음은, 다른 계층의 사람들이 그 교훈을 멸시하는 정도에 따라 증가된다.

위기는 신속히 다가오고 있다. 급증하는 수치(數値)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내릴 시간이 임박했음을 알려 준다. 비록 형벌하기를 싫어할지라도 그분께서는 형벌하시되 신속히 하실 것이다. 빛 가운데서 걸어가는 자들은 다가오는 위험의 징조들을 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실망을 무관심하게 기대하면서, 하나님께서 심판의 날에 그분의 백성들을 지켜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스스로 위로를 받으면서 조용히 앉아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결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활동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임을 깨닫고, 강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야 할 것이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 5:16).

경건의 누룩은 그 힘을 완전히 잃어버리지 않았다. 교회의 위험과 침체가 가장 클 때 빛 가운데 서 있는 적은 무리는 땅에서 자행되는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게 될 것이다. 그러나 더욱 특별히 그들의 기도는, 교회를 위하여 드려질 것이다.

210 이 성실한 적은 무리들의 열렬한 기도는 허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주님께서 복수하는 자로 나오실 때, 그분께서는 또한 믿음을 순결한 그대로 보존해 오고 스스로를 세상에서 더럽히지 않고 지켜온 모든 자들의 보호자로 나오실 것이다. 비록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실지라도 당신께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의 원한을 갚아 주시기로 약속하신 것은 이 때이다.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겔 9:4)는 명령이 주어져 있다. 이 탄식하고 부르짖는 자들은 생명의 말씀을 설교해 왔었다. 그들은 책망을 하고, 권면을 하고, 권유했다.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혀 온 어떤 자들은 회개하고 그분 앞에서 그들의 마음을 낮추었다. 그러나 여호와의 영광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갔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종교의 형식은 여전히 지속하고 있을지라도 그분의 능력과 임재는 결핍되어 있었다.

하나님의 진노가 심판으로 나타날 때, 이 겸손하고 헌신적인 그리스도의 주종자들은, 통곡과 울음, 책망과 경고로 표현되는 그들의 심령의 고뇌에 의하여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구분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존재하는 악을 가리우기 위하여 외투를 씌우고, 도처에 팽배한 큰 악을 변명하고자 애쓰고 있는 동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성과 영혼들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호감을 사기 위하여 침묵을 지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의로운 심령은 부정한 일들과 불의한 자들의 대화 때문에 날마다 상했다. 그들은 거센 악의 물결을 막을 힘이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슬픔과 우려로 충만해진다. 그들은 바로 큰 빛을 받은 자들의 가정에서 신앙이 멸시당하는 것을 보고 탄식한다. 교만과 탐욕과 이기심과 거의 모든 종류의 기만이 교회 안에 있기 때문에 그들은 탄식하고 자신의 영혼을 괴롭게 한다. 211 책망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은 발 아래 짓밟히고 사단의 종들은 승리를 거둔다. 하나님은 모욕을 당하시고, 진리는 효력을 나타내지 못하게 된다.

자기 자신의 영적 쇠퇴에 대하여 슬퍼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죄를 인하여 탄식하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사자들, 손에 살육하는 기계를 든 자들에게 명령하신다. “너희는 그 뒤를 좇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 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겔 9:5, 6).

여기서 우리는 교회, 곧 여호와의 성소가 하나님의 진노의 타격을 제일 먼저 받게 되리라는 것을 보게 된다. 고대의 사람들, 곧 하나님께로부터 큰 빛을 받고 백성들의 영적 유익을 위한 수호자로 서 있던 자들이 그들의 책임을 저버렸다. 그들은 지나간 날들에서처럼 우리가 이적과 하나님의 능력의 두드러진 표현을 기대할 수 없는 위치에 서 있었다. 시대는 바뀌었다. 이 말이 그들의 불신을 굳게 해주므로 저들은 이렇게 말한다. 주님께서는 선을 행치 않으실 것이며 악도 행치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너무도 자비하심으로 그분의 백성을 심판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는 음성을 나팔 소리처럼 높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들의 허물과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는 결코 다시 알려 주지 않을 자들에게서 “평안하다 안전하다”는 부르짖음이 일어난다. 이 짖지 않을 벙어리 개들은 바로 하나님을 거스린 보복을 당할 자들이다. 남자들과 처녀들과 어린아이들이 모두 함께 멸망할 것이다.

성실한 자들이 그것을 인하여 탄식하고 부르짖는 가증한 일은 모두 유한한 사람들의 눈으로 식별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순결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질투를 자극한 가장 악한 죄들은 드러나지 않았다. 마음을 살피시는 위대하신 분께서는 불의를 행하는 자들이 은밀한 중에 범한 모든 죄를 아신다. 기만당한 이 사람들은 그들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212 그리고 주님께서 오래 참으시기 때문에 그들은 주님께서 보시지 않는다고 말하며, 마치 그분께서 세상을 포기해 버리신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간파하시고, 그들이 숨기기 위하여 그처럼 주의를 기울였던 죄들을 다른 사람들 앞에 공개하실 것이다.

사람들을 그들 자신의 기만적 마음 그대로 버려둔다면 계급의 우월, 위엄이나 세속적 지위, 성직에서의 위치 등이 원칙을 희생하는 데서 그들을 보존해 주지 않을 것이다. 가치 있고 의로운 사람으로 간주되어온 자들이 반역하는 일에 주도적인 자요, 냉담한 일과 하나님의 자비를 무시하는 일에 모본이 되고 있음이 입증될 것이다. 그들의 악한 길을 그분께서는 더 이상 용납하지 않으실 것이며, 또한 진노로써 그분께서는 자비 없이 그들을 징치하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한때, 큰 빛으로 축복을 받고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함으로 말씀의 능력을 느꼈던 자들에게서 그분의 임재를 거두시기를 싫어하신다. 그들은 한때 그분의 성실한 종들이었고, 그분의 임재와 지도로 은총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분에게서 떠나갔고, 다른 사람들을 오류 가운데로 이끌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불쾌하심을 입고 있다.

하나님의 복수의 날은 바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하나님의 인은 땅에서 행해지는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슬퍼하는 자들의 이마에 찍힐 것이다. 세상에 동조하여 연합하는 자들은 주정꾼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고 있는데, 그들은 불법의 일꾼들과 함께 분명히 멸망당할 것이다.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벧전 3:12).

우리 자신의 행동의 방향이 우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을 것인지 살육하는 기계에 의하여 베어질 것인지를 결정할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 중 몇 방울은 이미 땅 위에 내렸다. 그러나 마지막 일곱 재앙이 그분의 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어질 때는 회개하여 피난처를 찾기에는 영원히 너무 늦을 것이다. 그 때에는 속죄하는 피가 죄의 얼룩을 씻어 버리지 못할 것이다.

213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단 12:1). 이 환난의 때가 올 때, 모든 사람의 운명은 결정된다. 더 이상 은혜의 시기는 없고, 회개하지 않은 자들을 위한 자비도 없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이 그분의 백성들에게 찍혀 있다. 용의 군대에 의하여 집결된 세상의 권세로 더불어 싸우는 맹렬한 싸움에서 스스로를 방어할 길이 없는 이 적은 무리들은 하나님을 그들의 피난처로 삼는다. 위반하면 핍박과 사형이라는 위협하에 그들이 짐승을 경배하고 그 표를 받아야 한다는 법령은 세상의 가장 높은 권위에 의하여 통과되었다. 이제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도와주시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도움이 없으면 이처럼 무서운 싸움에서 그들이 속수 무책이기 때문이다.

용기, 불굴의 인내, 믿음,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무조건 신뢰 하는 것 등은 순간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이 하늘의 덕성들은 다년간의 경험에서 얻어진다. 거룩한 노력의 생애와 의에 대한 확고한 집착에 의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들의 운명을 인쳤다. 무수한 유혹에 둘러싸인 그들은 저항하지 않으면 정복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완수해야 할 큰 사업이 있다는 것과, 언제 그들의 갑옷을 벗으라는 요구를 받을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그러므로 그들이 사업을 완수하지 못한 채 생애의 종말을 맞게 되면 영원히 잃어버린 바 될 것이다. 그들은 마치 최초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입술에서 받은 것처럼 하늘에서 온 빛을 열렬하게 받았다. 그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이 산과 광야로 추방되었을 때, 지하 감옥에 들어가 기아와 추위와 고문으로 죽게 되었을 때, 순교만이 그들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유일의 길인 것처럼 보였을 때 그들은 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받기에 합당한 자로 인정받은 것을 기뻐했다. 그들의 귀중한 모본은 이전에 결코 없었던 환난의 때를 당하게 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위로와 용기가 될 것이다.

안식일을 지키노라고 공언하는 모든 자들이 인을 받지는 못할 것이다. 214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를 가르치는 자들 가운데도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받지 못할 자들이 있다. 그들은 진리의 빛을 가지고 있고, 그들의 주인의 뜻을 깨닫고, 우리의 신앙의 모든 점들을 이해했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에 합당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예언과 하나님의 지혜의 보화를 그처럼 잘 알고 있던 이 사람들은 그들의 믿음을 실천했어야 했다. 그들은 권속들에게 명령하여 그들을 따르게 했어야 했다. 그렇게 했더라면 질서가 잘 잡힌 가정을 통하여 그들은 세상 사람들의 마음에 진리의 감화를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헌신과 경건의 부족, 고상한 신앙상 표준의 미달 때문에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위치에 만족하게 한다. 유한한 판단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에게 그처럼 자주 하나님의 말씀의 보화를 열어 준 이 사람들의 모본을 따른다면, 그들은 분명히 그들의 영혼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는 것을 볼 수 없다. 예수님은 유일한 참 모본이시다. 누구나 주님께서 그에게 요구하시는 바를 알고자 하면, 겸손하고 배우고자 하는 어린 아이의 마음을 가지고 지금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스스로 성경을 연구해야 한다. 어떤 목사가 하나님의 은총 안에 아무리 높이 서 있을지라도, 그가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빛을 따르기를 등한히 하고 어린아이처럼 배우는 일을 거부할 것 같으면 그는 흑암과 사단의 기만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다른 사람들을 같은 길로 이끌어 갈 것이다.

우리의 품성에 하나의 점이나 흠이라도 있는 동안에는 우리들 중 아무도 하나님의 인을 받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품성에 있는 결함들을 고치고, 심령의 전에서 모든 불결을 정결케 하는 일이 우리에게 맡겨져 있다. 그것들이 고쳐지고 정결케 될 때, 오순절 날 제자들에게 이른비가 내렸던 것처럼 늦은 비가 우리에게 내릴 것이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우리의 성취에 만족한다. 우리는 부요하고 소유가 넉넉하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계 3:17) 알지 못한다. 오늘날은 참된 증인의 권고에 유의해야 할 때이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 3:18).

215 이생에서 우리는 극렬한 시험을 받아 값진 희생을 치르어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평강이 보상이 된다. 극기하는 일이 너무 적고,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 역시 너무 적었기 때문에 십자가는 거의 잊어버린바 된다. 만일 우리가 승리를 거두어 그리스도와 함께 그분의 보좌에 앉기를 원한다면 그분과 함께 그분의 고난에도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안락한 방종의 길을 택하고 극기를 두려워하고 있는 한, 우리의 믿음은 결코 확고해지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예수님의 평안을 깨닫지 못하고 승리감을 통하여 주어지는 기쁨도 알 수 없을 것이다. 흰옷을 입고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 앞에서는 가장 고상한 구속받은 무리들은 승리를 위한 투쟁을 안다. 그들은 그 큰 환난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이 투쟁에 임하기 보다는 환경에 굴복한 자들은, 모든 영혼들에게 번민이 이르는 그날에, 비록 노아와 욥과 다니엘이 그 땅에 있을지라도, 각 사람이 자기 자신의 의로 그의 영혼만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이 아들이나 딸도 구원할 수 없는 그날에는 어떻게 설 것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어떤 사람도 그리스도인 생애를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자신의 상황이 절망적이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영혼을 위한 충분한 준비는 이루어져 있다. 예수님은 궁핍의 때에 언제나 우리의 도움이 되신다. 믿음으로 그분을 부르기만 하면 그분께서는 그대의 탄원을 듣고 응답해 주시기로 약속하셨다.

아, 생기 있고 활동적인 믿음! 우리는 그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것을 소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시련의 날에 기진해지고 실패할 것이다. 그 때에 우리의 길에 있게 될 흑암이 우리를 좌절케하거나 우리를 실망에 빠지게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풍성한 축복을 나누어 주시기 위하여 오실 때 그분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휘장으로 가리우신다. 우리는 우리의 지난날의 경험을 통하여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과 쟁변하시는 그날에 이 경험은 위로와 소망의 근원이 될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과 우리의 자녀들을 세상에서 흠 없이 보존해야 할 때는 지금이다. 216 우리가 우리의 품성의 두루마기를 빨아서 어린 양의 피로 희게 해야 하는 때는 지금이다. 우리가 교만과 정욕과 영적 나태를 극복해야 하는 때는 지금이다. 우리가 눈을 뜨고 품성의 균형을 위하여 결정적인 노력을 해야 하는 때는 지금이다.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히 3:7, 8). 우리가 가장 견디기 어려운 처지에서 우리 주님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며 고대하고 있다. 세상은 흑암에 싸여 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살전 5:4). 기다리고 갈급한 영혼에게 어두움에서 빛을, 슬픔에서 기쁨을, 괴로움에서 안식을 가져다 주는 것이 언제나 하나님의 목적이다.

형제들이여, 준비의 큰 사업에서 그대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세상과 연합하고 있는 자들은 세상의 모습을 본받고 짐승의 표를 받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자아를 신뢰하지 않는 자들,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고, 진리를 순종하므로 자신의 영혼을 정결하게 하고 있는 자들,-이 사람들은 하늘 모습을 본받고 그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받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다. 법령이 내리고 인이 쳐질 때, 그들의 품성은 영원을 위하여 순결하고 흠 없이 남아 있을 것이다.

지금은 준비할 시간이다. 하나님의 인은 부정한 남녀의 이마에는 결코 쳐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야망적이요 세상을 사랑하는 남녀의 이마에도 결코 쳐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거짓된 혀나 속이는 마음을 가진 남녀들의 이마에는 결코 쳐지지 않을 것이다. 인을 받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흠이 없는, 하늘의 후보자들이어야 한다. 나의 형제 자매들이여, 앞으로 전진하라. 나는 다만 이 시점에서는 이 점들을 간략하게 써서 준비의 필요성에 그대들의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을 뿐이다. 현 시기의 놀랍고도 엄숙함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대들 스스로 성경을 연구하라.

호 소*

217 나는 한 백성으로서의 우리의 상태를 생각할 때 슬픔으로 충만해 진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늘을 닫아 버리지 않으셨지만 우리 자신의 계속적인 배교의 행동이 하나님과 우리를 분리시켰다. 교만과 탐욕과 세상을 사랑하는 정신은 추방이나 유죄 선고에 대한 두려움 없이 마음 속에 간직되어 왔다. 비통하고 참람된 죄악들이 우리들 사이에 존재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견해는 교회가 번영하고 있다는 것과 교회의 모든 영역에는 평안과 영적 번영이 있다는 것이다.

교회는 그 지도자 되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에서 돌아섰고 꾸준히 애굽을 향하여 퇴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영적 결핍에 우려를 나타내거나 놀라는 자들은 별로 없다. 의심과, 심지어 하나님의 영의 증언들을 불신하는 일까지 도처에서 우리 교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단은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스도 대신에 자아를 전하는 목사들도 그렇게 되기를 바랄 것이다. 증언들은 읽혀지지 않고 이해되지않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대들에게 말씀하셨다. 빛은 그분의 말씀과 증언들에서 비취고 있었지만 그 둘은 다 같이 등한히 여겨지고 멸시되어 왔다. 그 결과는 우리들 사이에서 순결과 헌신과 열성의 부족으로 나타난다.

각 사람은 마음 속으로 이런 질문을 해보라. “우리는 어떻게 이와 같은 영적 허약과 불화의 상태에 빠져 버렸는가? 우리의 행동이 우리의 믿음과 일치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을 스스로 초래하지 않았는가? 218 우리는 그리스도의 임재와 그분의 뜻을 깨닫는 더 깊은 지식보다는 오히려 세상의 호의와 칭찬을 구하고 있지 않았는가? “그대들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그대들 자신의 행동을 판단해 보라. 그대들은 지혜로운 친구들을 찾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세속적인 친구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순종하지 않는 동료들을 즐겨 택하고자 하고 있는가?

그대들의 레크리에이션은 도덕적 영적 활력을 나누어 줄 수 있는 것들인가? 그것들은 사상과 행동의 순결로 이끌어 갈 것인가? 불순이 오늘날 널리 보급되어 있는데, 심지어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자들 사이에서도 그러하다. 도덕적 능력은 끊임없이 약화되고 있는 반면에, 정욕은 억제되지 않고, 동물적 성향은 방종으로 힘을 얻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금지하는 세속적이요 풍기를 문란케 하는 오락에 열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고 세속적 쾌락을 사랑하는 자들의 대열에 속한다. 대홍수 이전의 사람들과 평원의 도시들을 멸망시킨 죄들은 오늘날 단순히 이교의 지역에서 또한 이른바 일반 그리스도교계에서 뿐만 아니라, 인자의 오심을 고대하고 있노라고 공언하는 어떤 사람들에게도 존재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 죄들을 그분의 눈에 나타나는 그대로 그대들 앞에 제시해 주실 것 같으면 그대들은 수치와 공포로 충만해질 것이다.

그러면 이 우려를 자아내는 상태는 무엇 때문에 생겼는가? 진정한 회개를 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진리의 이론을 받아들였다. 나는 무엇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지 안다. 죄를 진정으로 슬퍼하는 자, 중생하지 못한 본성의 타락상을 심각하고 예리하게 깨닫는 자는 별로 없다. 돌과 같은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뀌어지지 않는다. 반석되신 그리스도 위에 떨어져 깨어지기를 바라는 자들은 별로 없다.

그대들이 누구이든지, 그대들의 생애가 어떠했든지 상관없이, 그대들은 오직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대들은 회개해야 한다. 그대들은 속절없는 상태 그대로 반석되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떨어져야 한다. 그대들은 의사의 필요를 느껴야 하고, 죄의 유일한 치료제인 그리스도의 피가 필요함을 느껴야 한다. 이 치료제는 하나님께 회개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만 얻을 수 있다. 219 여기에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많은 자들, 또한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공언하는 많은 자들에 의하여 여전히 시작되어야 할 사업이 있다. 옛날의 바리새인들처럼 그대들 중 많은 사람들은 구주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대들은 자부심이 강하고 교만하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막 2:17)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의 피는 정결케 하는 그 능력의 필요를 느끼는 자들 외에는 아무에게도 효력을 나타내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를 요구할 권리가 조금도 없을 때 그리스도께서 즐겨 우리의 구속을 담당하신 것은 얼마나 뛰어난 사랑이며 겸손인가! 그러나 우리의 크신 의원께서는 모든 영혼에게 주저하지 않는 순종을 요구하신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상황에 대한 처방을 스스로 내려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께서 의지와 행동을 완전히 지배하셔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상태와 위험을 깨닫지 못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업의 성격과 방법에는 모든 세상의 원칙과 반대되고 인간의 마음의 교만과 상치되는 것이 많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자신을 그분의 손에 완전히 맡기고 그분의 사랑과 지혜를 신뢰하도록 요구하신다.

우리는 니고데모처럼, 우리의 도덕적 품성이 올바랐으므로 보통 죄인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낮출 필요가 없다고 뽐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죄인들의 괴수와 똑같은 방법으로 생명에 들어가는 것으로 만족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의를 부인하고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도록 간구해야 한다. 우리는 힘을 얻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완전히 의지해야 한다. 자아는 죽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의 부요에서 온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은 이와 같은 것이어야 한다.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돌리소서”(시 115:1).

진정한 믿음에 사랑이 뒤따르고 사랑에 순종이 뒤따른다. 회개한 사람의 모든 힘과 정욕은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게 된다. 그분의 영은 새롭게하는 능력이므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바꾸어준다. 이 경험은 진리를 믿노라고 고백하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해하고 있다는 말을 하게 되어 나는 슬퍼진다. 220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길을 따르고 그들의 죄악적 욕망에 빠져 있으면서도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공언한다. 그들은 마음을 하나님께 결코 굴복시키지 않았다. 어리석은 처녀들처럼 그들은 등과 함께 은혜의 기름을 그릇에 담는 일을 등한히 했다. 나의 형제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믿노라고 공언하고 심지어 진리를 가르치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죄의 속박에 매여 있다고 말하는 바이다. 저열한 정욕은 마음을 더럽히고 심령을 부패케 한다. 가장 비열한 죄악 가운데 있는 어떤 사람들은 사단을 더욱 효과적으로 섬기기 위하여 하늘의 제복을 빌려 입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요일 3:9).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바 되고, 하나님의 소유인 몸과 정신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는 가장 엄숙한 서약에 매여 있음을 느낀다. 죄를 사랑하는 마음과 자아를 사랑하는 마음은 그의 속에서 정복된다. 그는 날마다 이렇게 물어 본다. “여호와여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시 116:12). “주여, 나로 무엇을 하게 하시려나이까?”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멍에가 목을 괴롭히고 있다고 결코 불평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예수님을 섬기는 일이 가장 진정한 자유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율법은 그에게 기쁨이 된다. 그는 자신의 부족에 맞추고자 하나님의 명령을 낮은 표준으로 내리고자 하는 대신에 그 명령을 이루는 수준을 높이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날에 서기 위하여 준비하고자 하면 그와 같은 경험은 우리의 경험이 되어야 한다. 이제 은혜의 시기가 지체되고 있는 동안, 자비의 음성이 아직 들리고 있는 동안은 우리가 죄를 버릴 수 있는 시간이다. 도덕적 흑암이 장례의 휘장처럼 땅을 덮고 있는 동안 하나님의 깃발을 든 자들의 빛은 더욱 밝게 비추고 하늘의 빛과 사단 흑암과를 구분해 나타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은혜 안에 완전히 설 수 있는 충분한 준비를 해주심으로 아무것도 부족이 없이 우리 주님의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해주셨다. 그대들은 준비하고 있는가? 그대들은 혼인 예복을 입고 있는가? 그 의복은 속임과 불순과 타락과 위선을 결코 가리워 주지 않을 것이다. 221 하나님의 눈은 그대들을 주시하고 있다. 그것은 사상과 마음의 의도를 알아낸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사람들의 눈에서는 숨길 수 있을지라도, 우리의 창조주에게는 아무것도 숨길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의 범죄함을 인하여 죽음에 내어 주시고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 위하여 다시 살리셨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소원을 은혜의 보좌 앞에 아뢸 수 있다. 우리는 무가치하지만 그분을 통하여 모든 영적 축복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생명을 얻기 위하여 그분께 나오고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우리 스스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분의 사랑을 알 수 있는가? 시편 기자는 우리에게-듣고 알 것이 아니고, 읽고 알 것이 아니고, 믿고 알 것이 아니라,-“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시 34:8)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의 말에 의존하는 대신에 그대들 스스로 맛을 보라.

경험은 실험으로 얻은 지식이다. 체험적 신앙이 오늘날 필요하다.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어떤 사람들-사실상 많은 수의 사람들-은 신앙적 진리에 대한 이론적 지식은 가지고 있지만, 새롭게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그들의 마음에 결코 느껴본 적이 없다. 이 사람들은 성령에 의하여 기록된 경고와 책망과 교훈의 증언들에 유의하는 일에 언제나 느리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믿지만 그것을 피하기 위하여 아무런 열렬한 노력을 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하늘을 믿지만 그것을 얻기 위하여 희생하지 않는다. 그들은 영혼의 가치를 믿으며 오래지 않아 그 구속은 영원히 끝나게 된다는 것을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가장 귀중한 기회들을 등한히 한다.

그들은 성경을 읽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위협적인 경고가 경성하게하지 않고 그 약속이 그들과 함께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탁월한 일들을 인정하지만 하나님께서 가지 말도록 금지하신 길을 따른다. 그들은 피난처를 알고 있지만 그것을 이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옳은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즐기지 않는다. 그들의 모든 지식은 그들의 정죄를 가중시킬 뿐이다. 222 그들은 여호와께서 선하시다는 사실을 결코 맛보지 않았고 경험을 통하여 배우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평판이 좋든 나쁘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다. 오늘날 이렇게 하고 있는 자는 별로 없다. 많은 사람들은 거짓되이 예언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거기서부터 결과적으로 무엇이 이루어질 것인가? 그들의 일이 그 모든 결과와 함께 하나님 앞에서 검토될 때 어떤 결정이 내릴 것인가?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하나의 싸움이다. 사도 바울은 그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울 때 정사와 권세를 대항하여 싸우고 있었다고 말한다. 다시 그는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히 12:4)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렇다. 오늘날은 죄를 간직하고 변명한다. 예리한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이 심령을 쪼개지 않는다. 신앙이 바뀌었는가? 하나님께 대한 사단의 적의는 감소되었는가? 신앙 생애는 한때 어려움을 가져다 주고 극기를 요구했다. 그러나 오늘날은 모든 것이 매우 쉬워졌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흑암의 세력과 타협해 왔다.

엄격한 증언이 되살아나야 한다. 하늘로 향해 가는 길은 우리 구주의 시대보다 오늘날 더 순탄한 것은 아니다. 우리의 모는 죄는 버려져야 한다. 우리의 신앙 생애를 방해하는 모든 방종은 끊어 버림을 당해야 한다. 만일 우리에게 거치는 것이 된다면 오른눈이나 오른손도 희생되어야 한다. 우리는 즐겨 우리 자신의 지혜를 버리고 어린 아이처럼 하늘나라를 받아들이고자 하는가? 우리는 우리가 택한 세속적인 친구들을 즐겨 버리고자 하는가? 우리는 사람들의 인정을 즐겨 희생하고자 하는가? 영생의 상급은 무한한 가치가 있다. 우리는 얻어야 할 목적의 가치에 상응한 노력을 하고 희생을 할 것인가?

우리가 이루는 교제는, 아무리 제한된 것일지라도 우리에게 어느 정도의 영향을 준다. 우리가 그 영향을 받는 범위는 친밀의 정도, 교재의 항구성(恒久性), 우리가 교제하는 자에 대한 사랑과 존경 등에 의하여 결정될 것이다. 223 그와 같이 그리스도와의 친숙과 교제를 통하여 우리는 흠없는 모본되신 그분과 같아질 것이다.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것-얼마나 말할 수 없이 귀중한 일인가! 만일 우리가 그런 교제를 구하고, 그것을 얻기 위하여 어떤 희생도 불사할 것 같으면 그 교제를 누리는 것이 우리의 특권이다. 초기의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이 필요함을 느꼈다. 그들은 그분을 찾고, 발견하고 따랐다. 그들은 집에서, 식탁에서, 골방에서, 들에서 그분과 함께 있었다. 그들은 교사와 함께 있는 학생들처럼 그분과 함께 있었고, 날마다 그분의 입술에서 거룩한 진리의 교훈을 받았다. 그들은 마치 종들이 그들의 의무를 깨닫기 위하여 주인을 쳐다보듯이 그분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그분을 섬겼다. 그들은 훌륭한 병사들이 그들의 사령관을 따르듯이 그분을 따르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웠다. 그들은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계 17:14)이다.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일 2:6).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이와 같이 그리스도와 같아지면 세상 사람들의 눈에 띄게 될 것이다. 그것은 주목과 논평의 주제가 된다. 그리스도인은 그 큰 변화를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품성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더욱 밀접히 닮으면 닮을수록 그 자신에 대한 견해가 더욱 겸손해 질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목격되고 느껴질 것이다. 하나님께 속한 일에 가장 깊은 체험을 가진 자들은 교만과 자고심에서 가장 멀리 옮겨져 있다. 그들은 자아에 대해서는 가장 겸손한 생각을 갖고 그리스도의 영광과 탁월함에 관하여서는 가장 고상한 관념을 가진다. 그들은 그분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가장 낮은 자리가 그들에게는 너무도 명예로운 자리임을 느낀다.

모세는 광채로 빛나는 그의 얼굴이 그 자신처럼 하나님과 교통하지 않은 자들에게 고통과 위협이 된 것을 깨닫지 못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 생애에 나타난 그 자신의 향상에 대하여 매우 겸비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빌 3:12)고 말한다. 그는 자기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말한다. 그러나 바울은 주님께 크게 영광을 받았다. 224 그는 거룩한 이상(異像) 가운데 셋째 하늘로 이끌려 가서, 알려 주도록 허락되지 않은 하나님의 영광의 계시를 그 곳에서 받았다.

침례 요한은 우리 구주께로부터 선지자들 중 가장 크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한 이 사람의 말과 십자가의 종들이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의 말과는 얼마나 대조적인가. 침례 요한이 그리스도이냐는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자기 자신을 주님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할 자라고 주장한다. 그의 제자들이 사람들의 주의가 새 선생에게로 향해졌다는 불평을 했을 때, 요한은 그들에게 자기 자신이 다만 약속하신 분의 선구자에 불과한 것으로 주장해 왔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신랑처럼 그분의 백성의 애정의 첫째 자리는 그리스도에게 속한다.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쳤느니라”(요 3:29-31, 33).

오늘날 하나님의 사업에 필요한 것은 이러한 일꾼들이다. 자부심이 강하고, 질투심과 시기심이 많고, 비평적이고 흠을 찾기를 좋아하는 자들은 그분의 거룩한 사업에 사용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비록 그들이 어떤 선한 일을 성취할 수 있을지라도 그들은 목회직에 용납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나 재물이 없어서 괴로움을 겪지는 않으신다. 그분은 진실하고 성실하며, 순결하고 거룩한 일꾼들, 속죄하는 그리스도의 피와 거룩하게 하는 그분의 영의 은혜가 필요함을 느끼는 자들을 부르신다.

나의 형제들이여, 하나님은 그대들의 질투와 시기, 그대들의 가혹함과 분쟁 때문에 슬퍼하신다. 이 모든 일을 통하여 그대들은 사단에게 순종하고 있지만 그리스도께는 순종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원칙에 확고하고, 의무에 두려움이 없고, 하나님의 사업에 열성이 있으면서도 모든 사람에게 겸손하고 겸비하며, 온유하고 부드럽고 인내하며,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영혼들에게 사랑을 나타내고 즐겨 용서해 주는 사람들을 볼 때, 우리는 그들이 그리스도인가를 물어볼 필요가 없다. 225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었고, 또한 그분에게서 배운 분명한 증거를 제시한다. 사람들이 그것과 반대의 기질을 나타낼 때, 그들이 교만하고, 허왕되고, 경솔하고, 세속적인 마음을 나타내고, 탐욕적이고, 불친절하고, 비판적일 때, 우리는 그들이 누구와 교제하고 있으며, 그들의 가장 친한 친구가 누구인지 들을 필요가 없다. 그들은 마법을 믿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악령과 교통하고 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하는 바이다.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약 3:14-18).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침례 요한에게 몰려왔을 때, 그 담대한 의의 전도자는 그들에게 말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마 3:7, 8). 이 사람들은 합당치 못한 동기로 요한에게 나왔다. 그들은 유해한 원칙을 품고 타락한 행동을 하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참 상태를 깨닫지 못하였다. 교만과 야심으로 충만해 진 그들은 그들 자신을 높이고 사람들에게 그들의 영향을 강화시키는 일에 있어서 어떤 수단도 서슴치 않을 것이었다. 그들은 이런 계획을 더 잘 실천하기 위하여 요한의 손에 침례를 받고자 나왔다.

요한은 그들의 동기를 읽었으므로 엄격한 질문으로 그들을 대했다.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만일 그들이 그들의 마음에 말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것 같으면, 그들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음으로써 그 사실에 대한 증거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열매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단순히 그 경고를 사람의 음성으로 들었다. 226 그들은 요한이 말하는 능력과 담대함에 마음이 끌렸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그들의 마음에 확신을 주지 않았으므로 필연적 결과로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맺지 못했다. 그들은 마음의 변화에 대한 증거를 보이지 않았다. 요한은 그들에게 변화시키는 성령의 능력이 없으면 외형적 의식이 그들에게 아무런 유익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자 했다.

그 선지자의 책망은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에게 적용된다. 그들은 진리를 지지하는 분명하고 확신 있는 논증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계시로서보다는 인간적 추론의 결과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죄인된 그들의 상태에 대한 진정한 깨달음이 없고, 진정으로 마음을 깨뜨리는 일을 나타내지 않는다. 오히려 바리새인들처럼, 그들은 그들에게 있어서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큰 비하(卑下)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의 정신이 전혀 없고 질투, 시기, 또한 칭찬과 인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자신의 업적 때문에 교만으로 충만한 독선적인 형식주의자들보다 하늘 나라에서 더 먼 사람은 없다. 그들은 요한이 독사의 자식, 악한 자의 자녀들이라고 말한 것과 동일한 계층에 속한다. 그런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고, 의심을 받지 않은 채 우리들 사이에 존재한다. 그들은 가장 부도덕한 방탕자보다 더 효과적으로 사단의 사업에 봉사한다. 왜냐하면 방탕자는 그의 참모습을 가장하지 않고 그의 상태를 그대로 나타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요구하신다. 그런 열매가 없으면 우리의 신앙 고백은 아무 가치가 없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이름을 결코 부른 적이 없는 자들 사이에서도 진실한 신자들을 일으키실 수 있다.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마 3:9).

하나님은 마음과 생애가 변화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의존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죄를 범하고 있는 어떤 사람에게도 호의를 보이지 않으실 것이다.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마 3:10).

227 의의 사업을 등한히 하면서 목사를 칭찬하고 추켜 세우는 자들은, 그들이 목사에게 돌아온 것이지 하나님께 돌아온 것이 아니라는 분명한 증거를 보여 준다. 우리는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라고 묻는 바이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기별을 통하여 그대들이 들은 것은 성령의 음성이었는가 그렇지 않으면 사람의 소리였는가? 맺힌 열매가 나무의 성격을 증거할 것이다.

외형적 형식이 우리를 정결케 할 수 없다. 가장 성자다운 사람이 집례한 의식도 성령의 침례를 대신할 수 없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마음에 역사하셔야 한다. 거듭나게 하는 그 능력을 경험하지 않은 모든 사람은 알곡 가운데 있는 쭉정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손에 키를 들고 타작 마당을 철저하게 정하게 하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장차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말 3:18)를 분별하실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은 하나님께로서 난 모든 사람들 안에서 드러날 것이다. 투쟁과 싸움은 성령으로 지배받는 자들 사이에서는 생길 수 없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여 스스로 정결케 할지어다”(사 52:11). 교회는 그 목사가 견지하는 표준보다 더 높이 올라가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는 회개한 목사와 회개한 백성이 필요하다. 마치 그들이 회계해야 할 자인 것처럼 영혼들을 돌보는 목사들은 양떼들을 평강과 거룩함의 길로 이끌어 갈 것이다. 이 사업에서의 그들의 성공은, 그들이 은혜와 진리를 아는 지식 가운데서 자라나는 성장에 비례될 것이다. 교사들의 영혼과 육체와 정신이 거룩해 질 때 그들은 그와 같은 성화의 중요성을 백성들에게 감명 깊이 새겨 줄 수 있다.

무심한 방법으로 신앙적 문제들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진정한 심령의 갈급성과 산 믿음 없이 영적 축복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별로 효력이 없다. 그리스도의 주변으로 가까이 밀려간 방황하는 군중은 그 접촉에서 생명의 능력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불쌍하고 고통받는 여인이 큰 필요를 느끼고 손을 뻗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을 때, 그는 치료의 능력을 느꼈다. 그의 접촉은 믿음의 접촉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접촉을 아시고, 마지막 때까지 그분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교훈을 거기서 주시고자 작정하셨다. 228 그분께서는 능력이 당신에게서 나간 줄 아시고 무리를 돌아보시면서,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그런 질문에 놀라서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라고 대답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한 여자를 주목하셨다. 그 여자에게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에게는 큰 기쁨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주제넘은 일을 했던가? 그에게 이루어진 것을 알고 그는 떨면서 나아서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다 말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책망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부드럽게,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막 5:30, 31, 34)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무관심한 접촉과 믿음의 접촉이 구별되었다. 하나님을 믿는 산 믿음의 활용이 없는 기도와 설교는 허지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믿음의 접촉은 우리에게 하늘의 능력과 지혜의 보고를 열어 준다. 그리하여 진흙으로 된 기구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은혜의 이적들을 이루신다.

이러한 살아 있는 믿음이 오늘날 우리에게 크게 필요하다. 우리는 예수님이 진실로 우리의 소유임을 알아야 하고. 그분의 정신이 우리의 마음을 정결케 하고 세련되게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만일 그리스도의 종들이 온유와 사랑과 함께 진정한 믿음을 가진다면, 그들이 어떤 사업을 이루겠는가! 어떤 열매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나타나겠는가!

나의 형제들이여, 그대들의 육신적 방심에서 그대들을 깨우기 위하여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대들의 위험을 보았다. 교회안에는 신자들과 불신자들이 공존한다. 그리스도께서는 포도나무와 그 가지의 비유에서 이 두 계급을 나타내신다. 그분은 당신을 따르는 자들을 권면하신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4, 5).

가장(假裝)된 연합과,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이룬 진정한 연결과는 크게 다르다. 진리를 믿는다는 공언은 사람들을 교회에 속하게 한다. 그러나 이것이 그들이 산 포도나무와 생명적 연결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지는 않는다. 229 참 제자와,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주장하면서도 그분을 믿는 믿음이 없는 자들을 구별하는 하나님의 척도가 주어져 있다. 한 무리는 열매를 맺고 있지만 다른 무리는 열매가 없다. 한 쪽은 더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하여 하나님의 칼에 자주 전정을 당하지만 다른 쪽은 마른 가지들로서 머지않아 산 포도나무에서 잘려 나가게 되어 있다.

나는 우리 백성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산 증언을 간직하고 교회가 불신의 요소들로부터 순결하게 보존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요 15:4)라고 한 말씀에서 밝혀진 것보다 그리스도에 대한 더 밀접하고 더 친밀한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는가? 가지의 섬유질은 포도나무의 섬유질과 거의 동일하다. 줄기에서 가지로 전달되는 생명의 교류와 힘과 결실은 방해받지 않고 계속적이다. 뿌리는 가지를 통하여 그 영양분을 보낸다. 그와 같은 것이 그리스도에 대한 참 신자의 관계이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서 그분에게서 영양분을 흡수한다.

이 영적 관계는 개인적 믿음을 활용함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다. 이 믿음은 우리 편에서 최고의 우선권, 완전한 의존, 완전한 헌신을 나타내어야 한다. 우리의 의지는 완전히 하나님의 의지에 굴복되고, 우리의 감정과 욕망과 흥미와 명예는 그리스도의 왕국의 번영과 그분의 사업의 영광과 동일시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분에게서 끊임없이 은혜를 받고, 그분께서는 우리에게서 감사를 받으셔야 한다.

이와 같은 연결과 교통의 친밀함이 이루어질 때, 우리의 죄는 그리스도께 놓여지고, 그분의 의는 우리에게 입혀지게 된다. 그분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 죄로 삼으신 바 되셨다. 우리는 그분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사랑하는 아들 안에서 영접을 받는다. 누구든지 말이나 행동으로 믿는 자를 해치는 자는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님을 해하게 된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한 사람의 제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주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리스도께 드린 것으로 인정을 받게 될 것이다.

230 그리스도께서 신자들에 대한 당신의 관계를 나타내는 아름다운 상징을 주신 것은 그분께서 바야흐로 제자들을 떠나가고자 하신 때였다. 그분은 볼 수 있는 당신의 임재가 없어진 후에 그들이 영적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그분 자신과의 밀접한 연합을 그들 앞에 제시하고 계셨다. 그것을 그들의 마음에 새겨 주기 위하여 그분께서는 그 가장 두드러지고 적합한 상징으로서 포도나무를 그들에게 제시하셨다.

유대인들은 언제나 포도나무를 식물들 중 가장 고상한 것으로, 또한 강하고, 탁월하고, 결실이 풍부한 모든 것의 한 상징으로 간주했다. 우리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싶으셨던 것 같다. “그대들이 그처럼 높이 평가하는 포도나무는 하나의 상징이다. 나는 실체이다. 나는 참 포도나무이다. 한 민족으로서 그대들은 포도나무를 높이 평가한다. 그대들은 죄인들로서 나를 세상의 모든 것보다 높이 평가해야 한다. 가지가 포도나무에서 분리되면 살 수 없다. 그대들도 내 안에 거하지 않으면 더 이상 살 수 없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자들은 그분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처럼 이 교훈에 깊은 흥미를 가지고 있다. 사람은 반역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로부터 분리시켰다. 그 분리는 넓고 무섭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다시 그분 자신과 연결시켜 주기 위하여 대비책을 마련하셨다. 악의 세력은 인간의 본성과 너무도 동질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않으면 아무도 승리할 수 없다. 이 연합을 통하여 우리는 도덕적 영적 힘을 얻는다. 우리가 만일 그리스도의 정신을 소유하게 되면 의의 열매, 사람들에게 영광과 축복이 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아버지는 포도를 손질하는 분이시다. 그분은 능숙하게 자비롭게 열매맺는 모든 가지를 전정하신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고난과 비난에 동참하는 자들이 이후에는 그분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분은 그들을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히 2:11)신다. 그분의 천사들이 그들을 섬긴다. 그분의 두번째 나타나심도 인자로서 나타나실 것이다. 그리하여 그분의 영광 중에서까지도 그분은 당신 자신을 인간과 동일시하실 것이다. 그분과 연합한 자들에게 그분께서는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사 49:15, 16)라고 언명하신다.

231 아, 얼마나 놀라운 특권이 우리 앞에 제시되어 있는가!

우리는 이런 축복을 얻는 유일한 통로가 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루기 위하여 가장 열렬한 노력을 할 것인가? 우리는 의에 의하여 우리의 죄를, 주님께로 돌아옴으로 우리의 범죄를 깨뜨려 버릴 것인가? 회의론과 불신이 널리 보급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라고 질문하셨다. 우리는 적극적인 산 믿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의 믿음의 항구성(恒久性)은 우리의 연합의 조건이다.

산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이룬 연합은 지속적이다. 모든 다른 연합은 파멸되고야 말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의 구속을 위하여 무한한 값을 지불하셨다. 그러므로 참된 신자는 그리스도를 모든 것 가운데 첫째요 마지막이요 최선의 것으로 택한다. 그러나 이 연합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치르게 한다. 그것은 교만한 자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할 철저한 의존의 연합이다. 이 연합을 이루는 모든 자들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의 필요를 느껴야 한다. 그들은 마음의 변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들은 자신의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에 굴복시켜야 한다. 외적 장애와 내적 장애로 더불어 싸우는 투쟁이 있을 것이다. 애착의 과업은 물론이요 괴로운 분리의 과업도 있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려면 교만, 이기심, 허영, 세속적인 것-모든 형태의 죄-을 이겨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 생애는 그처럼 통탄스럽게도 어렵다고 생각하고, 그들이 그처럼 변덕스럽고, 그처럼 가변적인 이유는 이 간직된 우상들로부터 먼저 그들 자신을 분리시키지 않고 그들 스스로를 그리스도께 결합시키고자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이루어진 후에는 오직 열렬한 기도와 불굴의 노력을 통해서만 그것이 유지될 수 있다. 우리는 자아를 저항하고, 자아를 부인하고, 자아를 정복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하여, 용기와 믿음과 경계로써 우리는 승리를 얻을 수 있다.

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 그러나 하나의 가지는 다른 가지에 의하여 지탱될 수 없다. 포도나무와의 산 연결을 통하여 영양분이 섭취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완전히 의존할 필요를 느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232 그것이 “내 안에 거하라”는 명령의 의미이다. 우리가 육체 가운데 사는 삶은 사람들의 뜻을 따르기 위함이 아니고, 우리 주님의 원수들을 기쁘게 하기 위함도 아니며,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주신 분을 섬기고 영화롭게 하기 위함이다. 애정이 세상과 그 쾌락과 그 방탕에서 분리되지 않고 이 연합에 동의하는 것만으로는 불순종하는 일에 마음을 담대하게 만들 뿐이다.

우리는 한 백성으로서 믿음과 사랑이 슬프게도 결핍되어 있다. 우리의 노력은 우리가 사는 위기의 때를 위하여 너무 약하다. 우리를 두르고 있는 교만과 방종, 불경과 죄는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할 수 있는 대로 신앙 생애에 불리한 모든 교제를 피하는 일의 중요성을 깨닫는 자는 별로 없다. 환경을 택할 때에 그들의 영적 번영을 먼저 생각하는 자는 별로 없다.

부모들은 시골에서보다 생계를 유지하기가 더 쉽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의 가족과 함께 도시로 모여든다. 자녀들은 학교에 있지 않을 때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으므로 거리의 교육을 받는다. 이들은 나쁜 친구들에게서 부도덕과 방탕의 습관을 배운다. 부모들은 이 모든 것을 본다. 그러나 그들의 잘못을 고쳐 주는 데는 희생이 요구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단이 자녀들을 완전히 지배할 때까지 그들이 있는 곳에 머물게 된다. 그대들에게 맡겨진 귀중한 영혼들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것보다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모든 세속적 유익을 희생하는 것이 더 낫다. 그들은 유혹의 맹렬한 공격을 받을 것임으로 그것들을 대항하도록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대들 자신과 그대들의 가족을 하나님께 가장 거리낌 없고, 솔직하고, 진심으로 헌신하지 못하게 하는 모든 영향력을 끊어 버리고, 모든 습관을 깨뜨리고 모든 유대를 잘라 버리는 것이 그대들의 의무이다.

사람들이 몰려 있는 도시 대신에 할 수 있는 대로 그대들의 자녀들이 유혹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어떤 한적한 환경을 찾아서 거기서 그들을 유용한 사람이 되도록 훈련하고 교육시켜라. 선지자 에스겔은 소돔을 범죄와 멸망으로 이끈 원인들을 이와 같이 열거한다. 233 “그와 그 딸들에게 교만함과 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며”(겔 16:49). 소돔의 운명을 피하고자 하는 모든 자들은 그 악한 도시에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한 그 길을 피해야 한다.

나의 형제들이여, 그대들은 그대 자신과 그대의 자녀들을 하나님께 바치는 일을 등한히 함으로 가장 거룩한 하나님의 요구들을 무시하고 있다. 그대들 중 많은 사람들은 이기적인 관심에 몰두되고, 세속적인 보화에 마음이 끌린 채 거짓된 안전 속에 편히 쉬고 있다. 그대들은 악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위험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대들이 각성하여 회개와 겸손으로 여호와께 돌아가지 않으면 그대들은 기만당하고, 미혹 당하여 영원한 멸망을 당할 것이다.

거듭거듭 하늘에서 온 음성은 그대들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이 음성에 순종하겠는가? 그대들은 불로 연단한 금과, 흰 옷과 안약을 구하라는 참된 증인의 권면에 유의할 것인가? 금은 믿음과 사랑이며, 흰 옷은 그리스도의 의이다. 그리고 안약은 그대들로 하여금 사단의 간계를 깨달아 그것들을 피하게 해 주고, 죄를 찾아내어 그것을 증오하게 하고, 진리를 깨닫고 그것을 순종하게 해주는 영적 식별력이다.

세상의 치명적인 혼수 상태는 그대들의 감각을 마비시키고 있다. 그대들이 사단에 의하여 눈이 어두워져 있기 때문에 죄가 더 이상 불쾌하게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심판은 미구에 지상에 쏟아지려 하고 있다.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창 19:17)는 말은 하나님의 천사들이 한 경고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다른 음성도 들린다. “흥분하지 말라. 특별히 놀랄 이유는 없다.” 하늘은 범죄한 자에게 신속한 멸망이 바야흐로 임한다고 선포하고 있는데, 시온에서 안락하게 있는 자들은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부르짖는다. 젊은이들, 경박한 자들, 쾌락을 사랑하는 자들은 이 경고를 쓸데없는 이야기로 생각하고 조롱하면서 돌아선다.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이 그 문제에 있어서 대체로 올바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모두 평안하게 잠을 잔다. 옛 세상이 멸망될 때와 소돔과 고모라가 불로 소멸될 때도 그러했다. 234 그들의 멸망 전야(前夜)에 그 평원의 도시들은 쾌락으로 떠들썩했다. 롯은 그의 공포와 경고 때문에 조소를 받았다. 그러나 불꽃 가운데서 멸망당한 것은 그 조롱자들이었다. 바로 그 밤에 자비의 문은 악한 자들, 곧 부주의한 소돔의 거민들에게 영원히 닫혀졌다.

영혼들의 운명을 손에 쥐고 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항상 조롱을 받지만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반드시 희롱 당하지 만은 않으실 것이다. 이미 그분의 심판은 땅에 임하고 있다. 사납고 무서운 폭풍은 지나가면서 파멸과 죽음을 남긴다. 삼켜 버리는 불은 사람이 없는 숲과 인구가 조밀한 도시를 쓸어 버린다. 폭풍과 파선은 바다를 여행하는 자들을 기다린다. 사고와 재난은 육지를 여행하는 모든 자들을 위협한다. 태풍, 지진, 전쟁과 기근은 신속히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은 굳어진다. 그들은 경고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몰려오는 폭풍을 피할 수 있는 유일의 피난처로 도망하지 못할 것이다.

날카로운 눈으로 접근하는 위험을 보고 경고의 음성을 높이도록 시온의 성벽 위에 배치된 많은 사람들은 잠들어 있다. 이 위기의 시간에 가장 활동적이고 방심하지 않아야 할 바로 그 사람들이 그들의 의무를 등한히 하고 영혼들의 피를 그들 자신에게 초래하고 있다.

나의 형제들이여, 악한 불신의 마음을 경계하라 하나님의 말씀은 그 제한 조항에 있어서 분명하고 철저하다. 그것은 그대들의 이기적 방종을 방해한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거기에 순종하지 않는다. 그분의 영의 증언들은 성경을 주목하도록 호소하고, 그대들의 품성의 결점들을 지적하고 그대들의 죄를 책망한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그 증언들에 유의하지 않는다. 그대들의 육신적이요 안락을 좋아하는 행동을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그대들은 그 증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에 대하여 의심하기 시작한다. 만일 그대들이 그 교훈에 순종하려고 한다면 그대들은 그 증언들이 하나님께로서 온 것임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그대들의 불신이 그 증언들의 진실성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만일 그것들이 하나님께로서 온 것이면 그것들은 설 것이다. 과거 36년동안 교회안에 존재해 온 이 증언들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믿음을 약화시키고자 노력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대항하여 싸우고 있는 것이다. 235 그대들이 멸시하고 조롱하는 것은 도구가 아니고, 이 경고와 책망을 그대들에게 하신 하나님이시다.

우리 구주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주신 교훈 가운데 특별히 우리에게 적용되는 권고의 말씀들이 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 21:34). 깨어라, 기도하라, 일하라,-이 말은 믿음의 진실한 생애이다. “항상 기도하”(눅 21:36)라. 즉 언제나 기도의 정신으로 지내라. 그리하면 그대들은 주님의 오심을 위하여 준비를 갖추고 있게 될 것이다.

파수꾼들은 백성들의 상태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 그대들이 교만과 시기와 의심과 다른 죄들을 향하여 문을 열어 주는 한 투쟁과, 증오와 온갖 악한 일들이 있을 것이다.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 예수님께서는 그대들의 손님으로 들어오게 해 달라고 요청하신다. 그러나 그대들은 그분께 들어오시라는 말을 하기를 두려워한다. 그분은 구약과 신약에서 다 같이 우리에게 말씀해 오셨다. 그분은 당신의 영과 당신의 섭리를 통하여 여전히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그분의 교훈은 사람들을 하나님께 진실하고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게 만드시고자 의도된 교훈이다.

예수님은 인류에게 완전하고 철저한 모본을 남기시기 위하여 인성을 취하셨다. 그분은 모든 목적과 감정과 사상에 있어서 진실 즉 마음과 영혼과 생애에 있어서 진실하신 당신 자신과 같게 우리를 꼴 지우시겠다고 제안하신다. 이것이 그리스도교이다. 우리의 타락한 본성은 진리를 순종하므로 순결해지고, 고상해지고, 성별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 신앙은 세속적 원칙들과 결코 조화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의 정직은 모든 기만과 가장과 반대된다. 심령 속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장 많이 품고 있는 사람, 구주의 모습을 가장 완전하게 반사하는 자는 지상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진실하고, 가장 고상하고, 가장 존경할 만한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의 연합

236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 1:10).

연합은 힘이요, 분쟁은 허약이다. 현대 진리를 믿는 자들이 연합할 때, 그들은 현저한 영향을 발휘한다. 사단은 이 사실을 잘 안다. 그가 오늘날처럼 주님의 백성들 사이에 원한과 분열을 일으킴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무효로 만들기 위하여 결정적인 노력을 한 적은 없었다.

세상이 우리를 대적하고, 일반 교회들이 우리를 대적하고 있으며 국가의 법이 미구에 우리를 대적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뭉쳐야 할 때가 있었다면 바로 지금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를 위한 특별한 진리를 우리에게 위탁하셔서 세상에 알리게 하셨다. 마지막 자비의 기별은 오늘날 전해지고 있다. 우리는 심판을 피할 수 없는 남녀들을 다루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모본으로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끌기 위하여 모든 말과 행동에 있어서 모본되신 분을 가까이 따르고자 얼마나 세심하게 주의해야 하겠는가. 우리는 참으로 주의 깊게 진리를 제시함으로 다른 사람들이 그 진리의 아름다움과 단순함을 보고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이끌어야 한다. 우리의 품성이 거룩하게 하는 진리의 능력을 증거한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적인 빛, 곧 모든 사람이 알고 읽는 산 편지가 될 것이다. 우리는 분열과 불화와 분쟁을 존재케 함으로 오늘날 사단에게 진리를 양보할 수는 없다.

제자들 사이에 연합과 사랑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그들을 위하여 구주께서 드린 기도의 요지였다. 십자가의 고뇌를 앞두고도 그분의 간구는 그분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고, 세상에서 그분의 사업을 추진하기 위하여 남겨 놓고 가야 할 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가장 극심한 시련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가장 큰 위험은 원한과 분쟁의 정신에 있을 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그분은 이렇게 기도하셨다.

23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17-21).

그리스도의 그 기도는 마지막 때까지 당신을 따르는 모든 자들을 포함한다. 우리 구주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의 시련과 위험을 미리 보셨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괴롭히고 약화시키는 불화와 분열에 무관심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제멋대로 하고 괴로움을 당하는 자녀에 대하여 육신의 부모가 갖는 것보다 더 깊은 관심과 부드러운 동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당신에게서 배우라고 명령하신다. 그분은 당신을 신뢰하라고 우리에게 초청하신다. 그분은 우리의 마음을 열어 당신의 사랑을 받아들이도록 우리에게 명령하신다. 그분은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 되시기로 약속하셨다.

하늘로 승천하실 때, 그분은 지상에 있는 사업을 당신의 종들, 즉 부목자들의 손에 맡기셔서 돌보게 하셨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1-13).

우리 구주께서는 당신의 종들을 보내시면서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그 선물을 통하여 그분께서는 영생의 말씀을 세상에 전해 주시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지식과 진정한 성결 안에서 완전하게 하기 위하여 정하신 수단이다. 그리스도의 종들이 맡은 사업은 단순히 진리를 전파하는 것 뿐이 아니고, 그들은 하나님께 회계해야 할 것처럼 영혼들을 돌봐야 한다. 그들은 오래 참음과 교훈으로 책망하고, 견책하고, 권면해야 한다.

238 하나님의 종의 활동으로 유익을 얻은 모든 사람은 그들의 재능대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활동함으로 그와 연합해야 한다. 이것은 모든 진실한 신자들, 목사들과 백성들에게 속한 일이다. 그들은 큰 목표를 언제나 염두에 두고, 교회 안에 있는 각자에게 적합한 위치를 감당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모두가 질서와 조화와 사랑 가운데 함께 일해야 한다.

그리스도교 신앙에는 이기적이거나 편협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원칙은 확산적이요 공세적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밝은 빛으로, 맛을 내는 소금으로, 또한 변화시키는 누룩으로 나타내셨다. 열심과 열성과 헌신으로 하나님의 종들은 진리를 아는 지식을 원근에 퍼뜨리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교회의 힘과 연합을 위하여 활동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불화와 분열이 잠입할 기회가 주어질까 염려하여 주의 깊이 경계할 것이다.

최근에 그리스도의 종들이라고 공언하면서도 그들의 사업은 우리 주님께서 교회에 확립하신 연합을 해치는 사람들이 우리들 중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기발한 활동 계획과 방법들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발전에 대한 그들의 사상에 적응하게 하고자 교회에 변화를 가져오기를 바라고 그리하여 큰 결과가 얻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교사들이 되기보다는 배우는 자들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무엇인가 큰 일을 이룩하고, 그들 스스로에게 영광이 돌아갈 무엇인가를 하기 위하여 언제나 초조해 하고 갈망하고 있다. 그들은 모든 교훈 가운데 가장 유익한 것, 즉 겸손과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배울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 앞에 있는 큰 싸움을 위하여 그들 스스로의 영혼을 준비시키고자 열렬하게 노력하고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동료 일꾼들을 살펴보고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하여 몹시 애를 쓰고 있다. 구주께서는 그들에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마 11:29)라고 말씀하신다.

진리의 교사들, 선교사들, 교회의 직원들이 진리를 순종함으로 그들 자신의 영혼을 정결케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은 주님을 위하여 선한 사업을 할 수 있다. 239 모든 산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위하여 사욕이 없는 일꾼이 될 수 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뜻을 아는 지식을 주셔서 다른 사람들에게 빛의 통로가 되게 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면 우리는 그분을 위하여 일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 구주의 사랑의 축복을 누리고 있으면서 죄악으로 멸망해 가는 자들의 위험에 대하여 무관심할 수는 없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요 15:8).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연합과 사랑을 보존하도록 권고한다. “그러므로 주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침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 4:1-6).

사도는 그의 형제들에게, 그가 그들에게 제시한 진리의 능력을 그들의 생애에 나타내도록 권면한다. 겸손과 온유, 오래 참음과 사랑으로 그들은 그리스도의 품성과 그분의 구원의 축복을 수범해야 할 것이었다.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요,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뿐이다. 모든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동일한 정신과 동일한 소망으로 활기를 얻는다. 교회 안에서의 분열은 세상 앞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에 욕을 돌리고 진리의 원수들에게 그들의 길을 정당화시킬 기회를 준다. 바울의 교훈은 그 당시의 교회만을 위해서 기록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교훈이 우리에게도 전달되도록 계획하셨다. 우리는 평안의 매는 줄로 연합을 보존하기 위하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

성령이 초대 교회에 내렸을 때 형제들은 서로 사랑하였다. 그들은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6, 47). 240 그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은 수가 적었고, 재산도 명예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세상의 빛은 그들에게서 비쳐 나왔다. 그들의 품성과 그들의 교리가 알려진 곳은 어디에서나 그들은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하나의 공포가 되었다. 이것 때문에 그들은 악인들에게 미움을 받고 죽기까지 핍박을 받았다.

거룩함의 표준은 사도들의 시대에서처럼 오늘날도 동일하다. 하나님의 약속이나 요구는 그 힘을 조금도 상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의 상태는 초대 교회와 비교해 볼 때 어떠한가? 그 당시의 복음 전파에 따랐던 하나님의 영과 능력은 어디에 있는가? 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정금이 변하였”(애 4:1)는가.

주님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하나의 포도나무로 비옥한 땅에 심으셨다. 그분께서는 의의 열매가 맺도록 지극한 관심으로 거름을 주고 그것을 키우셨다. 그분은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사 5:4)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심으신 이 포도나무는 땅으로 기울어져서 덩굴손으로 인간의 지주들을 감았다. 그 가지들은 멀리 넓게 뻗어 가지만 그것은 변질된 포도나무의 열매를 맺는다. 포도원의 주인은,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사 5:4)하며 부르짖는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교회에 큰 축복을 주셨다. 공의는 교회가 이 재물들을 이자와 함께 돌려주기를 요구한다. 교회에게 지키도록 맏겨진 진리의 보화가 증가됨에 따라 그의 책임도 증가되었다. 그러나 이 선물들을 이용하고 완전을 향하여 나가는 대신에 교회는 초기의 경험에서 성취했었던 것에서 떠나가 버렸다. 교회의 영적 상태에 나타난 변화는 점진적이며 거의 깨달을 수 없는 사이에 이루어졌다. 교회가 세상의 칭찬과 호의를 구하기 시작하자 그의 믿음은 줄어들고, 그의 열성은 약화되고 그의 열렬한 헌신은 죽은 형식으로 대치되었다. 세상을 향하여 가는 매 발걸음은 하나님께로부터 떠나가는 발걸음이었다. 교만과 세속적 야망을 품음에 따라 그리스도의 정신은 떠나가고, 경쟁 의식과 불화와 다툼이 들어와서 교회를 괴롭히고 약화시켰다.

241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형제들에게 편지한다.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고전 3:3). 시기와 다툼으로 혼란해진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의 깊은 영적 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 2:14). 우리는 말씀을 주신 그 성령의 도움이 없으면 하나님의 계시를 올바르게 이해하거나 깨달을 수 없다.

교회의 영적 유익을 돌보도록 임명받은 자들은 올바른 본을 보이기 위하여 주의해야 하고, 시기와 질투와 의심의 기회를 주지 말고 언제나 그들이 형제들에게 권유하기를 바라는 사랑과 존경과 예절의 바로 그 정신을 나타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에 부지런히 유의해야 한다. 증오나 불친절에 대한 온갖 표현은 제지되어야 하고, 원한의 온갖 뿌리는 제거되어야 한다. 형제들 사이에 어려움이 생길 때는 구주께서 세우신 법칙을 엄격히 따라야 한다. 화목을 이루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파당들이 분열 상태를 완고하게 고집할 경우에는 그들이 화합할 때까지 (교인)자격을 정지시켜야 한다.

교회 안에 시련들이 생길 때 모든 교인들은 그런 어려움의 원인이 내부에 있지 않은지 보기 위하여 각자의 마음을 살펴야 한다. 영적 교만, 지시하고자 하는 욕망, 명예나 지위를 위한 야망적 갈망, 자제의 부족 등에 의하여, 정욕의 방종과 편견에 의하여, 불안정과 판단의 부족에 의하여 교회가 혼란해지고 평화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어려움은 때때로 험담의 행상인들에 의하여 일어난다. 그들의 속삭이는 암시나 시사는 의심하지 않는 마음에 해독을 끼치고 가장 절친한 친구들을 이간시킨다. 이간질하는 사람들의 악한 사업은, 열린 귀와 악한 마음을 가지고 “소문을 전해 달라, … 우리도 소문을 퍼뜨리겠다”라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지지를 받는다. 242 이 죄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 사이에서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 부모는 가정에서 험담이 되풀이되도록 용납해서도 안 되고, 교인들을 비방하는 말을 해서도 안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시기와 다툼의 정신을 억제하는 것을 일종의 신앙적 의무로 여겨야 한다. 그들은 형제들의 우월한 명성이나 번영을 기뻐하되, 심지어 그들 자신의 품성이나 업적이 그 그늘에 가리워지는 것처럼 보일 때도 그러해야 한다. 하늘에서 사단이 추방된 것은 그의 마음 속에 간직된 교만과 야망 때문이었다. 이 악들은 우리의 타락한 본성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러므로 만일 제거되지 않으면 그것들은 훌륭하고 고상한 특성을 모두 가리워 버리고 그 해로운 열매로서 시기와 투쟁을 맺게 될 것이다.

우리는 위대함보다는 참된 선을 구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소유하는 자들은 그들 자신에 대하여 겸손한 견해를 가질 것이다. 그들은 교회의 순결과 번영을 위하여 노력할 것이며, 형제들 사이에 분열을 일으키기보다는 그들 자신의 유익과 욕망을 희생하고자 할 것이다.

사단은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불신과 이간과 악의를 일으키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의 권리가 침해를 받고 있다고 느끼는 시험을 받을 것인바, 사실상 그런 감정을 가질 참된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될 것이다. 자아에 대한 사랑이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업에 대한 사랑보다 더 강한 자들은 그들 자신의 유익을 첫째 자리에 놓고 그것을 수호하고 지탱하기 위하여 거의 모든 수단을 다 쓸 것이다. 형제들에게 손해를 입었다고 생각되면 그들은 구주의 법칙을 따르는 대신에 법정을 찾아가 기도 할 것이다. 양심적인 그리스도인처럼 보이던 많은 사람들도 교만과 자존심 때문에 그들이 잘못을 범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찾아가서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그 문제를 놓고 이야기하고 서로 기도하지 않는다. 형제들 간의 언쟁과 싸움과 소송은 진리의 사업에 수치가 된다. 243 그런 일을 하는 자들은 교회를 원수들의 조롱거리가 되게 하고 악의 세력이 승리하게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상처를 다시 찌르고 그분을 공공연하게 모욕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의 권위를 무시함으로써 그들은 교회에 권위를 부여하신 하나님을 모욕한다.

바울은 갈라디아인들에게 편지한다.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이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실망할까 조심하라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2-16).

거짓 교사들은 그리스도의 복음과 반대되는 교리들을 갈라디아인들에게 제시했다. 바울은 그 오류들은 폭로시키고 교정해 주고자 노력했다. 바울은 그 거짓 교사들이 교회에서 분리되기를 매우 열망했다. 그러나 그들의 영향이 많은 신자들에게 너무도 크게 미쳤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조치를 취하기가 위험한 것처럼 보였다. 교회의 영적 유익에 해가 될 쟁투와 분열이 생길 위험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형제들에게 사랑 안에서 피차간에 도와주기 위하여 애쓰는 일의 중요성을 알려 주고자 노력했다. 그는 우리의 동료들에 대한 의무를 밝혀 주는 율법의 모든 요구가 피차에 사랑함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주장했다. 그는 그들에게, 만일 그들이 증오와 쟁투에 몰두하고, 당파들을 짓고, 짐승들처럼 서로 물고 먹으면, 현실의 불행과 미래의 파멸을 스스로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무서운 악을 방어할 수 있는 한 길이 있었는데, 그것은 사도가 명령한 바와 같이 “성령을 좇아 행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들을 사랑과 연합으로 이끌어 줄 성령의 지도를 끊임없는 기도로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244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다. 그리스도인들이 다툴 때, 사단이 지배하기 위하여 들어온다. 그는 너무도 자주 교회의 평안과 조화를 깨뜨리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 얼마나 무서운 쟁투, 얼마나 쓰라린 일, 얼마나 증오스런 일이 매우 사소한 문제에서 시작되었던가! 불화와 다툼 때문에 어떠한 희망들이 깨어져 버리고, 얼마나 많은 가정들이 산산조각이 났던가!

바울은 형제들에게, 다른 사람들의 결점들을 고쳐 주고자 노력하다가 그들 스스로가 똑같이 큰 죄를 범할까 조심하라고 명령했다. 바울은 그들에게, 증오와 다툼과 분노와 쟁투와 선동과 이단과 시기는 호색과 간음과 술취함과 살인과 마찬가지로 분명히 육체의 일이므로 그런 죄를 짓는 자들에 대하여 분명히 하늘의 문이 닫힐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 던지움이 나으리라”(막 9:42)고 주장하신다. 누구든지 고의적인 기만이나 그릇된 모본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를 그릇되게 인도하면 큰 죄를 범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그를 비방이나 조소의 대상이 되게 하면 예수님을 모독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구주께서는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저지른 악행을 주목하신다.

옛 시대에 형벌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에게 거룩한 것으로 택하신 것을 얼마나 경하게 여겼는가? 벨사살과 그 귀인 일천명은 여호와의 금 기명을 모독하고 바벨론의 우상들을 찬양했다. 그러나 그들이 무시한 하나님께서는 그 부정한 장면을 목격하셨다. 그들의 신성모독의 환락 중에 핏기 없는 한 손이 나타나서 궁전의 벽에 이상한 글을 쓰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채 왕과 궁중의 사람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이 선고한 그들의 운명을 들었다.

그리스도의 종들에 대하여 중상과 거짓의 말을 하기를 좋아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행위를 목격하고 계심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의 비방적인 언사는 영혼 없는 기물을 모독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피로 사신 자들의 품성을 모독하고 있는 것이다. 245 벨사살의 궁전의 벽에 글자를 쓴 그 손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공평하게 하고 압제한 모든 행동에 대하여 성실하게 기록하고 있다.

거룩한 역사는 주님께서 그분의 백성들 중 가장 연약한 자들을 방심하지 않고 보호해 주심에 대하여 두드러진 예증들을 제시한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행하고 있는 동안 백성들의 본 대열 뒤에 쳐진 피곤하고 연약한 자들은 비겁하고 잔인한 아말렉의 공격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 그 후 이스라엘은 아말렉과 전쟁을 하여 이겼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출 17:14). 후손들이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모세는 죽기 직전에 그 명령을 다시 반복하였다. “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너를 길에서 만나 너의 피곤함을 타서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느니라 … 너는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할지니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신 25:17-19).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이방 민족의 잔인함을 벌하셨다면, 그분께서는 당신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면서도 당신의 사업에서 지치고 피곤해 진 그들 자신의 형제들에게 싸움을 거는 자들을 어떻게 여기실까? 사단은 그의 지배에 굴복하는 자들에게 큰 능력을 발휘한다. 재판정에서 갈바리까지 살기 등등한 군중을 충동한 것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곧 백성들의 종교 지도자들이었다. 오늘날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자들 사이에는 우리 구주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외친 것과 동일한 정신으로 고무된 마음들이 있다. 악의 일꾼들은, 그들의 모든 행동에 대하여 한 증인, 곧 거룩하시고,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기억해야 한다. 그분께서는 모든 은밀한 일과 함께 그들의 모든 행동을 심판하실 것이다.

246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롬 15:1-3). 그리스도께서 연약하고 죄 많은 상태에 있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도와주시는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동정하고 도와주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의심으로 당혹해 하고 있고, 질병으로 괴로움을 당하고 있고, 믿음이 약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그들이 볼 수 있는 어떤 친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와서 그들의 요동하는 믿음을 하나님께 고정시켜 주는 연결의 사슬이 되어 줄 수 있다. 아, 이것은 참으로 복된 사업이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과 친절하고 부드러운 정신으로 하면 할 수 있는 선한 일을 교만과 이기심 때문에 하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하라.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 6:1, 2). 여기에 다시 우리의 의무가 우리 앞에 분명히 제시되어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영감으로 주어진 이 명령을 어떻게 그처럼 경하게 여길 수 있겠는가? 나는 근래에 분별 없는 태도를 나타낸 한 형제의 경우를 묘사하는 편지를 받았다. 비록 그것은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이고, 두 번 다시 생각할 가치가 거의 없는 매우 사소한 문제였지만, 그 편지를 쓴 여성은, 그것이 그 형제에 대한 그의 신임을 영원히 파괴해 버렸다고 말했다. 만일 그 자매의 생애를 살펴볼 때 더 큰 잘못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정말 놀라운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성은 매우 약하기 때문이다. 큰 죄를 범해 왔고 여전히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보시는 것처럼 그것들을 보지 못하는 자들을 형제들과 자매들로서 나는 지금껏 교제해 왔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하고 있다. 주님께서 이 사람들에 대하여 참고 계시는데 어찌하여 내가 그렇게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분께서는 당신의 성령으로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그 죄가 바울에게 심히 죄악적인 것으로 보였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그렇게 보이게 하실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을 조금밖에 모르고 하나님의 자비가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도 별로 깨닫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내시고 우리가 피차간에 나타내야 할 그 귀중한 동정을 그처럼 조금밖에 간직하고 있지 않다. 247 우리는 우리의 형제들이 연약하고 우리 자신과 마찬가지로 실수하는 사람들임을 기억해야 한다. 어떤 형제가 방심한 결과 유혹에 넘어져 그의 평소의 처신과는 달리 어떤 잘못을 범했다고 생각해 보자. 그럴 때 그에게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우리는 하나님이 사용하셔서 위대하고 선한 사업을 이루어 오신 사람들이 중한 죄를 지은 것을 성경에서 알게 된다. 주님께서는 이 사람들을 견책하지 않고 지나쳐 버리신 적도 없고, 그분께서 당신의 종들을 버리지도 않으셨다. 그들이 회개했을 때, 그분께서는 그들을 자비롭게 용서하시고 그들에게 그분의 임재를 나타내시고, 그들을 통하여 역사하셨다. 가련하고 연약한 사람들은 그들이 하나님과 그들의 형제들로부터 받아야 할 동정과 인내의 필요가 얼마나 절실한지 생각해 보도록 하라.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판단하고 정죄하고 있는지 조심하도록 하라. 우리는 사도의 교훈에 유의해야 한다.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갈 6:1). 우리도 유혹에 넘어지고 우리가 범죄한 자에게 나타내도록 요구받고 있는 그 모든 인내를 필요로 할지도 모른다.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 7:2).

사도는 자립적이요 자신감이 강한 자들에게 덧붙여 주의를 환기시킨다. “만일 누가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 …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임이니라”(갈 6:3-5). 판단과 경험에 있어서 형제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그들의 권면과 권고를 멸시하는 자는 위험한 기만에 빠져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마음은 거짓된 것이다. 그는 자기의 품성과 생애를 성경의 표준에 의거하여 시험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생애의 길에 그릇됨이 없는 빛을 비춘다. 마음을 분리시키고 빗나가게 하고자 일어나는 많은 영향에도 불구하고 지혜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을 정직하게 찾는 자들은 바른길로 인도될 것이다. 각 사람은 그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파의 의견에 의해서가 아니고, 또한 어떤 사람의 판단에 의해서도 아니고 하나님 눈앞에서의 그의 진정한 품성에 의하여 마침내 스스로 서거나 넘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248 교회는 경고하고, 권면하고, 권고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어떤 사람에게 바른길을 택하도록 강요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일을 고집하는 자는 누구든지 자기 자신의 짐을 지고 스스로 하나님께 대답하고, 그 자신의 길의 결과를 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

주님께서는 그것에 순종하기만 하면 우리가 교회에서 연합과 조화를 유지할 수 있는 분명하고 명백한 교훈을 당신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셨다. 형제 자매들이여, 그대들은 이 영감의 명령에 유의하고 있는가? 그대들은 성경을 읽는 자들이며 그 말씀을 실천하는 자들인가? 그대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하신 그분의 기도가 이루어지도록 노력하고 있는가?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롬 15:5, 6). “온전케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 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고후 1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