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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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제 28 호 - 교회증언

-3장 -

경험과 수고

271 이 때에 사랑하는 나의 형제와 자매들에게 다른 「증언」을 보내게 된 이유는, 여호와께서 내게 그분 자신을 은혜롭게 보이셨으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인자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있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를 계시하셨기 때문이다. 1875년 1월 3일에 내게 주어진 이상과 최근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이 나타난 것의 간격에는 3년 이상이 있게 되었다. 그러나 내게 최근 보여진 이상에 들어가기 전, 나는 지난 일 년 혹은 이 년의 경험을 간략히 묘사해 보도록 하겠다.

1877년 5월 11일, 우리는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를 떠나서 미시간 주의 배틀크릭으로 갔다. 나는 여러 달 동안 심장 통증으로 어려움을 당했으며, 초원을 가로질러 여행하는 동안 호흡 곤란으로 매우 어려움을 당했다. 이 고통은 우리가 미시간에 도착해서도 나를 떠나지 않았다. 배틀크릭에 있는 우리 집을 다른 사람이 쓰고 있었으며, 우리를 돌보아 줄 다른 친척들이 그곳에 없었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은 내내 캘리포니아에 있었다. 친절한 친구들은 나를 위해 그들이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주었으나, 나는 그들이 자신들의 가족들에게만 온전히 쏟아야 할 관심을 내게 갖는 것에 대해 편안하지가 않았다.

한 전문이 내 남편에게 전달되었는데, 사업에 관련된 중요한 일을 돌보기 위해 배틀크릭으로 와 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특별히 큰 요양원 건물의 계획을 수립하는 일을 감독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 요청에 응답하여 그는 이곳에 왔으며, 설교하고 저술하고 리뷰 출판소, 대학과 요양원에서 이사회를 주재하고, 거의 언제나 밤중까지 일하고 신실하게 종사하였다. 272 이것은 그를 두렵도록 쇠잔하게 하였다. 그는 이 기관들의 중요성을 느꼈다. 그러나 특별히 요양원 건물의 중요성을 느꼈는데, 여기에는 5만 달러 이상이 투자되었다. 그의 계속적인 정신적 고뇌는 갑작스럽게 쓰러지는 길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우리의 위험을 느꼈으며, 콜로라도로 물러나서 휴양과 쉼을 누리고자 결심했다. 이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동안, 한 음성이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갑주를 입어라. 배틀크릭에서 그대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 이 음성이 너무 분명했기 때문에 나는 누가 말하는가를 보기 위해 돌이켰다. 나는 아무도 볼 수 없었으며,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끼는 중에, 내 심령은 그분 앞에 부드러움 가운데 부서져 버렸다. 남편이 그 방에 들어 왔을 때, 나는 그에게 내 마음속에서 있었던 인상에 대해 말했다. 우리는 함께 울고 기도드렸다. 우리는 사흘 안에 떠나고자 했지만 이제 우리의 모든 계획은 바뀌게 되었다.

5월 30일, 요양원의 환자들과 의료진들은 이 날 배틀크릭에서 2 마일 정도 떨어진 고구악 호수 변의 아름다운 숲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계획하고, 나보고 참석해서 환자들에게 말해 달라고 요청했다. 만일 내가 내 자신의 감정을 생각했다면 가지 않았겠지만, 나는 아마도 이것이 배틀크릭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식사 때쯤 되어 건강 식품이 식탁에 차려졌고, 맛있게 식사들을 했다. 3시에 기도와 찬양으로 행사가 시작되었다. 나는 거침없이 사람들에게 말했다. 모든 사람은 깊은 관심을 가지고 들었다. 내가 말을 마친 후 요양원의 한 환자인 위스콘신의 판사 그래함이 일어서서 그 강연을 인쇄해서 그들의 도덕적이고 육체적인 유익을 위해 환자들과 다른 이들에게 배포하여, 그 날 전해진 말씀들이 잊어버려지거나 없어지지 않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이 제안은 만장일치로 승인되었으며, 이 강연은 “고구악 호수의 요양원 환자”라는 제목의 작은 팜플렛으로 출판되었다.

배틀크릭 대학의 학년도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나는 학생들에 대해 큰 관심을 느꼈는데, 이들 중 많은 이들이 회심하지 않았거나 하나님으로부터 물러갔다. 273 나는 그들에게 말하고자 원하였으며, 그들이 자신의 가정으로 흩어지기 전에 그들의 구원을 위해 노력하고자 애썼으나, 나는 그들을 위해 수고하는 일에 종사하기에는 너무도 허약했었다. 내가 이야기한 그 경험 이후에 나는 학생들의 구원을 위하여 수고하는 일에 하나님께서 나를 붙들어 달라고 구할 수 있다는 온갖 증거를 갖게 되었다.

학생들의 유익을 위해, 우리의 예배 장소에서 집회들이 열리기로 예정되었다. 나는 그들을 위해 일주일 동안 수고하며 보냈고 매일 저녁과 안식일, 그리고 첫날에 집회가 있었다. 내 심령은 우리 학교의 학생들로 거의 채워진 예배당을 보면서 감동되었다. 나는 그들에게 순결함과 기도의 생애가 학문의 철저한 지식을 얻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그들이 지식 안에서 자라나는데 많은 방해를 제거하는 것이라는 감명을 주기 위해 애썼다. 구주와 연결됨으로써 그들은 그리스도의 학교에 보내졌으며, 만일 그들이 이 학교에서 부지런한 학생들이 된다면, 악과 부도덕은 그들 가운데서 물리쳐질 것이다. 이것은 모두 쓸려나갈 것이며 그 결과로 지식이 향상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우는 자가 되는 모든 이들은 그들의 교육의 질과 범위 모두에 있어서 탁월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들 앞에 그리스도를 위대한 교사로서, 모든 지혜의 근원으로서, 세상이 일찍이 알았던 가장 위대한 교사로서 제시했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다.” 하나님과 그분의 요구하심에 대한 지식은, 학생들에게 하나님과 세상에 대한 책임감을 깨닫도록 지혜를 열어 줄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해 학생들은 자신의 달란트가 가장 좋은 결과를 낳는 그런 길로 계발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 일은 종교의 모든 교훈과 원칙이 그들의 학교 교육과 연결되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 어떤 경우에도 그의 연구가 하나님과 단절되어서는 안된다. 지식을 추구함에 있어서 그는 진리를 구한다. 그리고 모든 진리는 진리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덕성이 있고 그리스도의 영으로 채워진 학생들은 그들의 모든 능력을 다 발휘하여 지식을 붙잡게 될 것이다.

274 배틀크릭의 대학은 학문을 가르치고 동시에, 모든 참된 지식이 흘러나오는 구주에게로 학생들을 인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졌다. 성경의 종교 없이 얻어진 교육은 그것의 참된 밝음과 영광을 빼앗기게 될 것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우리 학교는 젊은이들 앞에 생애의 고상한 견해와 목적과 목표를 펼쳐 주고, 인간의 의무와 영원한 관심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교육함으로 다른 어떤 학문 기관보다 교육적인 견지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감명시키려고 노력했다. 우리 대학을 세우는 데 있어서 큰 목표는 과학과 성경의 종교와의 조화를 보여 주면서 정확한 견해를 가르쳐 주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내게 힘을 주셨고 우리의 노력을 축복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위해 앞으로 나왔다. 이런 이들 중 얼마는 깨어 기도하지 못함으로서 그들의 믿음과 하나님과의 연결의 증거를 상실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단계를 취함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고 간증했다. 이 집회의 결과로 수많은 사람들이 침례를 위해 자신을 드렸다.

대학 학년도의 종업식이 고구악 호수에서 개최됨으로, 침례식이 그 호수에서 진행되기로 결정되었다. 이 침례식은 모인 많은 회중들에게 큰 관심을 끄는 행사였으며, 적절하게도 이 엄숙한 예식으로 끝을 맺게 되었다. 나는 이 예식의 처음과 마지막에 연설을 했다. 남편은 열 네 명의 고귀한 젊은이들을 아름다운 호수의 물로 데리고 내려가서 침례를 줌으로 주님과 함께 장사를 지냈다. 여기에 참여했던 몇 사람들은 그들의 고향에서 침례를 받기로 선택하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사랑하는 학교인 대학의 기념할 만한 예식이 끝나게 되었다.

절제회 모임들

그러나 배틀크릭에서의 내 사업은 아직 다 마쳐지지 않았다. 호수에서 돌아오자마자 우리는 큰 절제 집회에 참여해 달라는 간절한 요청을 받게 되었다. 이것은 배틀크릭의 상류층 시민들에게 나아가고자 하는 칭찬 받을 만한 시도였다. 275 이 운동은, 6백명 회원의 배틀크릭 개혁 클럽과, 260명 회원의 그리스도인 여성 절제 연합과 손을 잡았다. 하나님, 그리스도, 성령, 그리고 성경은 이 열성적인 일꾼에게 낯익은 단어들이었다. 이미 많은 선한 것들이 성취되고 있었으며, 일꾼들의 활동과 그들이 수고하는 체계, 그리고 이들의 모임의 정신은 미래에 큰 선을 약속하고 있었다.

6월 28일, 바르넘의 큰 이동 동물원이 이 도시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이 때 그리스도인 여성 절제 연합의 여성들은 시골에서 이 동물원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 시험에 노출되기 쉬운 살롱이나 주점에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대중들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절제 식당들을 만듦으로써 절제와 개혁 사업을 위해 효과적인 결과를 거두었다. 미시간 합회가 장막회용으로 사용하는, 오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텐트가 이 일을 위해 제공되었다. 이 거대한 텐트 성전 밑에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15개에서 20개의 테이블이 세워졌다.

초청을 받은 요양원은 큰 천막 중앙에 대형 테이블을 설치하고, 거기에 맛좋은 과일과 곡류, 그리고 채소들을 차려 놓았다. 이 테이블은 가장 큰 매력을 불러 일으켰으며, 다른 어떤 것보다도 고객들이 더 많았다. 이것은 길이가 30피트 이상이었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이것의 2/3 정도 되는 다른 것을 놓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이것도 역시 사람들로 크게 붐볐다.

초청 위원회의 초대로 오스틴 시장과, 제일 국립 은행의 현금 계원 W.H.스키너와, C.C.피비와, 내가 말하게 되었다. 나는 7월 1일 일요일 저녁, 그리스도인 절제에 관한 주제로 말했다. 하나님께서 그날 저녁에 나를 도우셔서 90분간 강연을 했는데, 거의 오천명의 군중이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침묵 가운데 경청하였다.

인디애나 방문

276 8월 9일-14일에 나는 내 자부 메리 K.화잇을 데리고 인디애나 장막회에 참석했다. 남편은 배틀크릭을 떠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 장막회에서 여호와께서는 아주 열렬하게 수고하도록 내게 힘을 주셨다. 그분은 내게 사람들에게 호소할 수 있도록 명확함과 능력을 주셨다. 내가 그곳에 모인 남녀들을 살펴 볼 때, 외모의 고상함과 눈에 띄는 영향을 보면서, 6년 전에 모였던, 대부분이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소수의 무리들과 비교하면서 나는 이렇게 외칠 수밖에 없었다. “여호와께서 어떻게 역사 하셨는가!”

월요일에 나는 폐의 심한 통증으로 고통을 당하였으며 독감에 걸렸다. 그러나 나는 다시 한 번 영혼의 구원을 위해 수고할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여호와께 탄원하였다. 나는 내 연약함을 딛고 일어섰으며, 거침없이, 그리고 권세 있게 말할 수 있는 축복을 받았다. 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심령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호소하였다. 약 오십명이 기도를 위해 앞으로 나왔다. 가장 깊은 관심이 나타났다. 이 집회의 결과로 열 다섯 명이 침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다.

우리는 오하이오와 동부의 장막회에 참석하고자 계획했다. 그러나 우리 친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렇게 하는 것은 나의 현재 건강 상태로 보아 도가 지나칠 것으로 생각되어 우리는 배틀크릭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내 목과 폐는 나를 매우 고통스럽게 했으며, 내 심장은 아직도 병에 걸려 있었다. 큰 고통의 시간이 되어서 나는 요양원의 치료에 내 자신을 맡기게 되었다.

과로의 영향

남편은 배틀크릭에 중심을 둔 사업의 다양한 분야에서 하나님의 사업의 유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수고하였다. 그의 친구들은 그가 성취한 일의 양을 보고 탄복하였다. 8월 18일 안식일 아침, 그는 우리 예배당에서 말씀했다. 오후에 그의 마음은 「예언의 신」 제3권의 원고가 낭독되는 것에 귀를 기울이면서 네 시간 동안 연속적으로 세밀하게 그리고 활발하게 활동했다. 277 그 책의 원고는 매우 흥미 있는 것이었으며, 그리스도의 심문과 십자가에 못 박히심, 부활과 승천에 관련된 내용이기에 영혼을 그 가장 깊은 곳까지 분기시킬 것으로 생각되었다. 우리가 그것을 알기 전에, 그는 매우 쇠약해 있었다. 그는 일요일 아침 다섯 시에 일하기 시작하여 밤 12시까지 일했다.

다음날 아침, 여섯시 반쯤 그는 현기증으로 쓰러졌으며, 마비될 위험에 빠졌다. 우리는 이 위험한 질병을 크게 두려워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자비로우셨으며, 우리를 이 어려움 중에서 구원하셨다. 그러나 그의 발작에 심한 육체적 정신적 쇠약이 잇따르게 되었고, 지금은 참으로 우리가 동부 장막회에 참석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아니면 정신적으로 좌절감에 빠져 있고 건강이 쇠약한 남편을 그냥 두고 내가 거기에 참석해야 할 것이다.

나의 남편이 이렇게 쓰려져 있을 때, 나는 말했다. “이것은 대적의 일이다. 우리는 그의 힘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일하실 것이다.” 수요일에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이 그에게 임하고 그를 건강하게 회복시켜 달라는 특별한 기도회를 가졌다. 우리는 또한 장막회에 참석하는 것에 관하여 우리의 의무를 알 수 있도록 지혜를 구했다. 여호와께서는 좌절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나아가서 그분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여러 번 용기를 주셨다. 그리고 이런 때에 그분은 놀랍게 우리를 보존하시고 붙들어 주셨었다. 그러나 우리 친구들은 우리가 쉬어야만 한다고 간청했으며, 우리가 이런 여행을 시도하고 피로를 무릅쓰고 야영 생활에 노출되는 것은 불합리하고 사리에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우리 자신은, 만일 우리가 한 쪽에 비켜서고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담당할 일이 없다 하더라도 그분의 사업은 동일하게 발전하리라고 생각하려고 애썼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사업을 행하도록 다른 사람들을 일으키실 것이다.

그러나 나는 수고의 현장으로부터 멀리 떠나 머무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가 보기에는 사단이 내가 증언하는 것을 가로막고 하나님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나는 혼자서 가려고 결심하였으며, 필요한 힘을 달라고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내가 맡은 일을 하려고 했다. 그 때에 해스켈 형제로부터 한 편지를 받게 되었는데, 그는 이 편지에서 화잇 부부가 뉴잉글랜드 장막회에 참석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표했다. 278 캔라이트 목사는 자신은 참석할 수 없을 것이라고 썼으며, 그는 댄버의 사업을 떠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어떤 군중도 그 장막회에 제외될 수 없다고 했다. 해스켈 목사는 그의 편지에서, 그로브랜드에서의 큰 집회를 위해 모든 준비가 이루어졌으며, 자신은 비록 혼자서 수행해야 하더라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 집회를 주관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다시 이 문제를 기도하는 가운데 여호와께로 가져갔다. 우리는 힘센 치료자께서, 만일 그렇게 하시는 것이 그분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남편과 나를 건강하게 회복시켜 주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쇠약함과 질병과 좌절을 물리쳐 내기는 어려운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때때로 나는하나님께서 만일 우리가 그분을 신뢰하는 가운데 나아간다면 이 여행이 우리 모두에게 축복이 되도록 해 주실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 생각이 자주 내 마음에 일어났다. “네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셨다. ‘네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

나는 남편에게 용기를 주려고 노력했다. 그는 만일 내가 장막회의 피로와 수고를 감당할 수 있다고 느낀다면 내가 가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그가 활동할 수 없는 연약한 상태로, 그의 마음이 낙담으로 흐려지고, 그 자신이 형제의 동정의 대상이 되는 채로 나와 같이 가야 한다는 생각을 견딜 수 없었다. 그는 갑작스런 발병 이래로 조금밖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고 더 이상 강해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우리는 구름 가운데 갈라진 틈이 있으리라고 소망하면서 여러 번 여호와를 찾았으나 아무런 특별한 빛도 비쳐나오지 않았다. 마차가 우리를 정거장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동안, 우리는 다시 기도하면서 여호와 앞에 나아갔고, 우리를 여행중에 붙들어 달라고 탄원했다. 우리는 모두 믿음으로 행하고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의지하고 전진할 것을 결심했다. 우리 편에서의 이 움직임은 대단한 믿음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차 안에 자리를 잡으면서, 우리는 의무의 길 안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여행하면서 쉬었으며 밤중에 잘 자게 되었다.

장막회

금요일 저녁 8시경에 우리는 보스턴에 도착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그로브랜드 행 첫 열차를 탔다. 우리가 장막회 장소에 다다랐을 때, 비가 심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279 해스켈 목사는 이 때까지 쉼없이 수고하고 있었으며, 훌륭한 집회들이 보고되었다. 3개의 대형 텐트 주위에 마흔 일곱 개의 텐트가 쳐져 있었으며, 회중을 위한 한 텐트는 크기가 80×125 피트에 이르렀다. 안식일 집회는 가장 깊은 흥미가 있었다. 교회는 부흥하고 힘을 얻게 되었으며, 죄인들과 낙심자들이 그들이 처한 위험을 깨닫고 각성하게 되었다.

일요일 아침까지도 날씨는 여전히 구름이 끼어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이는 시간이 되기 전에 태양이 솟아올랐다. 배와 기차는 수천 명의 사람들을 땅에 쏟아 놓고 있었다. 스미스 목사가 아침에 동방 문제(Eastern Question)에 대해 설교했다. 이 주제는 특별히 흥미가 있는 것이었으며, 사람들은 아주 신실하게 주의를 기울여 경청했다. 오후에, 서 있는 군중들 사이로 길을 만들어 내가 강단에 가기가 힘들었다. 거기 다다르자 수많은 얼굴들이 내 앞에 있었다. 대형 텐트는 초만원이었고, 수천명은 밖에 서 있었으며, 수 피트 높이의 살아 있는 벽을 이루었다. 나는 폐와 후두가 몹시 고통스러웠으나, 하나님께서 이 중요한 때에 나를 도와주실 것을 믿었다. 말을 하고 있는 동안, 나는 내가 나의 말을 한담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의 쇠약함과 고통을 잊게 되었다. 이 강연은 한 시간 가량 진행되었으며, 내내 사람들은 정신을 바짝 차리며 들었다. 마치는 찬미를 부를 때, 헤이버힐의 절제 개혁 클럽의 임원이 지난해처럼, 월요일 저녁에 자기네 협회에서 강연해 달라고 졸랐다. 댄버에서 강연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 초청을 정중하게 거절해야만 했다.

월요일 아침에 우리는 내 남편을 위하여 우리 텐트에서 기도회를 가졌다. 우리는 그의 문제를 위대하신 의사께 내놓았다. 이것은 귀한 시간이었다. 하늘의 평안이 우리에게 임했다. 이 말씀들이 내 마음에 강하게 밀려 왔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니라.” 우리 모두는 우리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축복을 느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대형 텐트에 모였으며, 나의 남편은 우리를 만나서 짧은 시간 동안 부드러운 심령에서 우러나오는 말과 하나님의 자비와 선하심에 대한 깊은 감각으로 밝게 빛나는 말을 했다. 280 그는 진리 안에 있는 신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심령에 하나님의 은혜의 확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들의 특권이라는 것과, 우리가 믿는 위대한 진리들은 생애를 성화시키고 품성을 고상하게 하고 세상에 구원하는 영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자 애를 썼다. 사람들의 눈물 어린 눈은 그들의 심령이 이 교훈으로 감명을 받고 녹아내렸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안식일에 보류해 두었던 우리의 사업을 다시 하기 시작했으며, 오전중에는 죄인들과 낙심자들을 위해 특별한 수고를 하며 보내게 되었다. 이들 중 기도를 위해 약 이백명 정도가 앞으로 나왔으며, 열 살 가량의 어린이로부터 머리가 흰 남녀들까지 망라되었다. 스무 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 때에 처음으로 생명의 길에 자신들의 발걸음을 놓게 되었다. 오후에 삼십 팔 명의 사람들이 침례를 받았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침례를 연기했다.

월요일 오후, 캔라이트 목사와 여러 사람들과 함께 나는 댄버 행 기차를 탔다. 내 남편은 우리와 동행하지 못했다. 장막회의 급박한 압박으로부터 놓여 나자, 나는 내 자신이 아프며 힘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기차는 우리를 싣고 빠르게 댄버의 약속된 곳으로 달리고 있었다. 여기에서 나는 전혀 낯선 사람들 앞에 서야 했다. 이들의 마음은 거짓 보고와 사악한 비방으로 편견을 갖고 있었다. 나는 만일 내가 폐에 힘을 갖게 되고 명확한 음성을 갖고, 심장의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하나님께 매우 감사드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과 느낌들이 나를 떠나지 않았으며, 큰 고통중에 나는 하나님을 불렀다. 나는 너무 쇠약해서 내 생각을 조리있게 연결시킬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반드시 도움을 받아야 겠다는 것과 그것을 위해 전심으로 구해야 겠다고 느꼈다. 그날 밤에 말하려면 나는 육체적, 정신적인 힘을 가져야만 했다. 나는 조용히 기도하는 중에 여러 번 반복해서 이렇게 말했다. “내 무력한 영혼은 당신께 매어 달립니다. 오 하나님, 나의 구원자이시여. 내게 도움이 필요한 이 때에 나를 버리지 마소서.”

집회 시간이 다가오면서 내 영혼은 하나님께 힘과 권능을 달라고 고뇌어린 기도로 씨름하게 되었다. 마지막 찬미가 불리워지고 있을 때, 나는 강단에 서게 되었다. 나는 만일 내 수고에 어떤 성공이 있다면 그것은 능하신 분의 힘을 통하여 온 것이리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매우 연약한 몸으로 섰다. 281 내가 말하고자 할 때 여호와의 영이 내게 임하셨다. 나는 전기 충격 같은 것을 심장에 느꼈으며, 모든 통증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나는 뇌 중앙부에 위치한 신경에 큰 통증을 느껴 왔었으나, 이것도 역시 완전히 없어져 버렸다. 예민한 후두와 쓰린 폐도 역시 완화되었다. 심장의 통증으로 인해 왼팔과 왼손을 거의 쓸 수 없었는데, 자연스러운 감각이 이제 회복되었다. 내 정신은 맑아졌으며, 내 영혼은 하나님의 빛과 사랑으로 가득하였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불벽처럼 사방을 두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텐트는 가득 찼으며, 안쪽에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약 이백명의 사람들이 장막 밖에 서 있었다. 나는 율법 중에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가에 관하여 학식 있는 서기관들이 제기한 질문에 답하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허두를 열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마 22:37). 하나님의 축복이 내게 임했으며, 내 고통과 연약함은 나를 떠나갔다. 내 앞에는 심판의 때까지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그들의 구원을 향한 나의 열망은 내가 그들의 피로부터 자유롭게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간절하게 말하도록 이끌었다. 1 시간 10분 동안 계속된 강연 중 나는 거침없이 말할 수 있었다. 예수께서는 나의 도움이셨으며, 그분의 이름은 모든 영광을 차지하셔야 할 것이다. 청중들은 정신을 집중하고 들었다.

우리는 화요일에 돌아왔는데, 야영이 끝나고 텐트들이 치워졌으며, 형제들이 작별 인사를 나누며 자기들의 가정에 돌아가기 위해 차를 타려 하고 있었다. 이것은 일찍이 내가 참석한 장막회 중에서 가장 좋은 장막회 중의 하나였다. 이 지역을 떠나기 전에 캔라이트 목사와, 해스켈 목사와, 나의 남편과 잉스 자매 그리고 나는, 작은 숲에서 휴양처를 발견하여 건강의 축복과 내 남편에게 풍성하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함께 연합하여 기도하였다. 우리 모두는 나의 남편의 도움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는데, 이 때는 사방에서 많은 긴급한 설교의 요청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 기도회 시간은 매우 귀한 것이었으며, 우리에게 임한 달콤한 평안과 기쁨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간구를 들으셨다는 확신을 우리에게 가져다 주었다. 282 오후에 해스켈 목사는 우리를 그의 마차에 태우고 갔으며, 우리는 그의 집에서 잠시 쉬기 위해 사우스 랭카스터를 향해 출발했다. 우리는 이것이 우리 건강에 유익하리라고 생각하면서 이런 식으로 여행하는 것을 좋아했다.

우리는 흑암의 세력과 매일 싸웠지만, 우리는 우리 믿음을 포기하거나 자그마한 절망에 빠지지도 않았다. 내 남편은 질병으로 인해 침울해 있었고 사단의 시험이 그의 마음을 크게 어지럽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우리는 대적에게 정복당하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루에 적어도 세 번 이상, 우리는 그의 병을 위대하신 의사에게 내놓았다. 그분은 영혼과 육신을 다 고쳐 주실 수 있는 분이시다. 모든 기도회 시간은 우리에게 매우 귀중하였다. 매번 우리는 하나님의 빛과 사랑의 특별한 나타남을 보게 되었다. 해스켈 형제의 집에서 어느날 저녁, 남편을 위해 하나님께 탄원하고 있을 때 여호와께서 참으로 우리 중에 계신 것처럼 보였다. 이것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 방은 천사들의 임재로 환히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마음과 음성으로 여호와를 찬양했다. 거기 있던 한 눈먼 자매가 말했다. “이것은 이상입니까? 이것은 하늘입니까?” 우리 심령은 이처럼 하나님과 가까이 교제하게 되었으며, 이 거룩한 시간을 자면서 보내기에는 너무 성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쉬기 위해 물러났다. 그러나 거의 온 밤을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에 대해 말하고 명상하며 기쁨으로 그분께 영광을 돌리며 보내게 되었다.

우리는 버몬트 장막회에 가는 길에 각자 개인적인 교통 수단으로 여행하기로 결정했는데, 이것이 남편에게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오에 우리는 길가에 멈추어서 불을 피우고 점심을 준비했으며, 기도회를 가졌다. 해스켈 부부와 잉스 자매, 그리고 헌틀리 자매와 함께 무리 지어 보낸 이런 고귀한 시간들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기도는 사우스 랭카스터에서부터 버몬트에 이르기까지 내내 하나님께 올라갔다. 사흘을 여행한 후에 우리는 기차를 탔고, 이렇게 해서 우리의 여행을 마쳤다.

이 집회는 버몬트의 사업에 특별히 유익한 집회였다. 여호와께서는 거의 매일 한 번씩 백성들에게 말할 수 있도록 내게 힘을 주셨다. 다음의 글은 리뷰 앤드 헤럴드 지에 실린 우라이아 스미스 목사의 보고에서 취한 것이다.

283 “화잇 부부와 해스켈 형제가 이 집회에 참석했는데 이것은 우리 형제들에게 큰 기쁨입니다. 화잇 형제의 건강 상태와 관련하여 특히 금식하는 날로 정해진 9월 8일 안식일은 이 장막회 장소에서 지켜졌습니다. 이 날은 좋은 날이었습니다. 기도가 막힘없이 흘러나왔고, 이 기도회가 헛되지 않았다는 좋은 징표가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축복이 그분의 백성들에게 크게 함께 했습니다. 안식일 오후에 화잇 자매가 술술 설득력 있게 말씀했습니다. 약 백명의 사람들이 기도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 왔으며, 여호와를 찾고자 하는 깊은 감동과 열렬한 의사를 나타냈습니다.”

우리는 버몬트에서 바로 뉴욕 장막회로 떠나갔다. 여호와께서는 내게 거침없이 사람들에게 말하도록 하셨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 장막회에서 유익을 얻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형편을 깨닫는 데 실패하였으며, 그들의 뒤로 물러감을 고백하고 자신들의 죄를 버리면서 하나님을 간절하게 찾지 않았다. 장막회를 개최하는 목적들 중의 하나는, 우리 형제들이 이생의 염려에 너무 크게 억눌릴 위험이 있다는 것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장막회에 참석할 이런 특권이 증진되지 않으면 큰 손실이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미시간으로 돌아왔으며, 며칠 후에 장막회에 참석하기 위해 랜싱으로 갔다. 이 집회는 2주 동안 계속되었다. 여기에서 나는 매우 열렬하게 수고하였으며, 여호와의 영으로 지탱되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말하고 그들의 구원을 위해 수고하는 데에서 크게 축복을 받았다. 이것은 훌륭한 집회였다. 하나님의 영께서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임재하셨다. 이 장막회의 결과로 130명이 침례를 받았다. 이 중의 대부분은 우리 대학에서 온 학생들이었다. 우리는 이 집회에 있었던 하나님의 구원을 보면서 기뻐했다. 배틀크릭에서 몇 주일을 보낸 다음, 우리는 캘리포니아로 가기 위해 평원을 가로지르기로 결심했다.

캘리포니아에서의 활동

내 남편은 캘리포니아에서 거의 활동하지 못했다. 그의 회복은 더딘 것처럼 보였다. 우리 기도는 하루에 적어도 세 차례 이상, 때로는 다섯 번씩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 하나님의 평안이 우리에게 임했다. 나는 조금도 좌절하지 않았다. 284 잠못 이루는 수많은 밤들은 대부분 기도하고 그분의 자비를 구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 보냈다. 나는 계속적으로 내 마음을 지배하는 하나님의 평안을 느꼈으며, 내 평안은 강과 같다고 참으로 말할 수 있었다. 나의 남편의 질병 이외에도 보이지 않고 예측할 수 없는 시련이 거의 나를 압도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나의 신뢰와 확신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분은 실로 필요한 모든 시간에 즉각적인 도움이셨다.

우리는 힐즈버그, 세인트 헬레나, 바카빌, 그리고 파체코를 방문했다. 나의 남편은 날씨가 괜찮으면 나와 동행하였다. 겨울은 우리에게 시련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남편은 건강이 좀 좋아졌고 미시간의 날씨도 온화해져서 그는 돌아와 요양원의 치료를 받게 되었다. 여기에서 그는 크게 유익을 얻었으며, 평상시의 명료함과 힘을 가지고 우리 책들을 위해 글을 쓰게 될 만큼 회복되었다.

나는 평원을 횡단하는 데 남편과 동행하려고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계속적인 근심과 염려, 그리고 잠을 못 이루는 것 때문에 나에게 위험스러운 심장 질환이 왔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헤어지는 시간이 다가옴에 따라 큰 고통을 느꼈다. 우리가 눈물을 자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의 남편은 미시간으로 돌아가고 있었으며, 우리는 내가 오레곤을 방문하여 내 말을 전혀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의 증거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결정했다.

나는 힐즈버그를 떠나 오클랜드를 향해 가서 6월 7일에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대형 텐트 아래 모인 오클랜드와 샌프란시스코 교인들을 만났는데, 여기에서는 힐레이 형제가 수고하고 있었다. 나는 증거의 부담을 느꼈으며, 다른 사람들을 진리의 지식으로 이끌어 들이기 위해 이 교회 편에서 끈기 있는 개인적 노력을 해야 할 큰 필요성을 느꼈다. 나는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가 선교지이며 계속적으로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을 보았다. 교인 수의 증가는 더딜 것이었다. 그러나 만일 이 교회의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교인들이고 다른 사람들 앞에 빛을 가져가는 데 있어서 자신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행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대열에 들어와 진리에 순종할 것이다. 진리 안에 있는 현재의 신자들은 마땅히 그들이 해야 할 만큼 다른 이들의 구원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285 하나님의 사업에 있어서 비활동과 게으름은 그들 자신을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가게 하는 결과를 가져 올 것이며, 그들의 모본으로 그들은 다른 이들이 전진하는 것을 방해할 것이다. 무아적이고 인내하며 활발한 활동은 아주 좋은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여호와께서 내 앞에 제시하신 것과, 그분께서는 단지 그것을 믿는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열렬하고 활동적으로 수고하는 자들에 의해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가 제시되도록 하신다는 것을 감명시키기 위해 애썼다. 그들은 단지 말로써만 아니라 신중한 생애와 진리의 살아 있는 대표자들이 되어서 진리를 제시해야만 한다.

나는 이 교회들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성경의 학도가 되어야 하며, 그들이 하나님의 사업에서 일꾼들이 되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가장 열렬히 연구해야 된다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그들이 어느 곳에 있든지, 집회 장소에서와 마찬가지로 집에서나 일터에서나 시장에서라도 진리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들은 성경과 친숙해지기 위해, 이것을 주의 깊이, 그리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과 그들의 짐을 그리스도께 드리기 위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것을 지는 것을 배우기 위해 즉시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 만일 그들이 거룩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그들은 지금 자신들 앞에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간직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도록 이끄는 것은 시련이다. 한 사람의 진정한 품성의 일면을 보여 주고 선한 특질을 계발할 필요성을 보여 주는 것은 시험의 시간이다. 하나님의 축복을 신뢰하면 그리스도인은 어디에 있든지 안전하다. 도시 안에서 그는 더럽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는 회계실에서 그의 엄격한 고결함의 습관으로 눈에 띌 것이다. 기계 공장에서 그의 일의 모든 분야는 충성스럽게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편단심으로 행해질 것이다. 교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런 노선을 따른다면 그 교회는 성공할 것이다. 각 교인들이 하나님과 밀접하게 연결되고 그들의 동료 인간들의 구원에 대해 무아적인 관심을 가질 때까지 이 교회들에게 번영은 오지 않을 것이다. 목회자들은 마음에 드는 힘있는 설교를 하며, 교회를 세우고 번창하게 하기 위해 많은 수고가 행해질 수도 있다. 286 그러나 그 교회의 각 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자신의 분야에서 일하지 않는다면 그 교회는 계속해서 어두움 가운데에 있을 것이며 항상 힘이 없게 될 것이다. 세상이 험하고 어두운 만큼, 진정으로 일관된 모본의 영향은 선을 위한 힘이 될 것이다.

사람이 자신이 결코 씨를 뿌리지 않은 곳에서 수확을, 혹은 그것을 얻기 위해 애쓰지 않은 곳에서 지식을 기대할 수 없는 것처럼 게으름 가운데 구원받는 것도 기대할 수 없다. 게으른 자와 나태한 자는, 교만을 무너뜨리고 자신을 그의 구주로부터 막아 버리는, 죄된 방종으로 이끄는 시험의 권세를 극복하는 데 있어서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생애를 성화시키는 진리의 빛은, 이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해 정복할 수 있으려면, 사단을 대항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그의 모든 능력을 행사하는 일을 필요하게 만드는, 자신을 지배하려고 애쓰는, 자신의 심령 안에 있는 죄된 정욕을 발견하게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도록 이끌고자 하는 수많은 영향에 둘러싸일 때, 사단의 간계를 정복할 수 있도록 예수님으로부터 도움과 힘을 구하기 위해 끈덕지게 기도해야 한다.

이 교회 안의 어떤 사람들은, 이생에 대한 염려와 세상적인 생각으로 마음이 가득 차서 하나님이나 하늘, 그리고 자신들의 영혼의 필요를 생각하지 못하는 위험이 항상 있다. 그들은 때때로 자신들의 혼수 상태에서 깨어나지만, 곧 다시 더 깊은 마비 상태에 떨어진다. 그들이 자신들의 무감각에서 완전히 일어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주신 빛을 제거하시고 축복을 거두실 것이다. 그분은 분노하심으로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실 것이다. 그분은 이 교회를 그분의 율법의 보관자로 삼으셨다. 만일 그들이 죄를 물리치고, 활동적이며 열렬한 경건으로 안정감과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에 순종을 나타내 보이고, 종교적인 의무를 수행하는 데 성실하다면, 그들은 촛대를 그 자리에 굳게 세우는 것을 도울 것이며, 만주의 여호와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이 그들의 피난처가 된다는 증거를 갖게 될 것이다.

오레곤 방문

6월 10일 일요일, 우리는 오레곤으로 출발하게 되어 있었는데, 나는 심장병으로 쇠약해 있었다. 내 친구들은 내가 배를 타는 것이 거의 어렵지 않은가 하고 생각했으나, 나는 배를 타게 되면 쉴 수 있으리라고 여겼다. 나는 여정에 많은 글을 쓰려고 예정하였다.

287 한 여성 친구와 J.N.러프보로우 목사와 동행하여 나는 증기선 “오레곤” 호를 타고 10일 오후에 샌프란시스코를 떠났다. 이 훌륭한 배의 책임을 맡은 코넬 선장은 그의 승객들에게 아주 주의를 기울였다. 우리가 금문교를 통해 넓은 바다로 나갈 때 대단히 어려웠다. 바람이 거슬러 불어왔고, 증기선은 무섭게 곤두박질을 쳤으며, 바다는 바람으로 인해 맹렬하게 날뛰었다. 나는 구름 낀 하늘을 바라보았으며, 산더미처럼 밀려오는 파도와 무지개빛을 반사하는 물보라를 보았다. 이 광경은 두려울 정도로 어마어마한 것이었으며, 나는 깊음의 신비를 생각하면서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288 이것은 두려운 분노 그 자체였다. 거만한 파도가 울부짖으며 솟아오르고 이어서 슬프게 울며 떨어지는 모습에는 두려운 아름다움이 있었다. 마치 고뇌의 경련 속에 물결을 높이 솟구치게 하는, 무자비한 바람의 움직임 밑에서 울부짖으며 쉼없이 요동치는 물의 모습에서 나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남을 보았다.

우리는 아름다운 배 안에 있었으며, 영원히 쉬지 않을 것 같은 파도에 부딪히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거렸다. 그러나 바다 물결을 굳건히 붙잡고 있는 보이지 않는 능력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만 이것들을 그들의 정해진 경계 안에 지키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 그분은 그 물을 마치 그분에게 예속되어 있는 것처럼 붙드실 수 있다. 깊음은 그의 창조주의 음성에 순종할 것이다. “네가 여기까지 오고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교만한 물결이 여기 그칠지니라.”

넓고 광대한 태평양은 얼마나 놀라운 생각의 주제인가! 겉으로 볼 때, 이것은 태평의 정반대였다. 이것은 광기였으며 두려움이었다. 우리가 바다의 표면만을 본다면, 그 큰 깊음만큼 전적으로 다루기가 불가능하고 그처럼 법칙이나 질서가 없는 것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대양은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한다. 그분은 물을 균형지게 하시고 그 바닥을 표하신다. 나는 위에 있는 하늘과 밑에 있는 물을 보면서 이렇게 질문했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오로지 끝없는 물만이 나를 두르고 있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배를 타고 나와서 이 물위에 있었으며, 다시는 푸른 초원과 혹은 그들의 행복한 가정을 볼 수 없게 되었는가! 289 그들은 하나의 모래알처럼 깊음 중에 떨어지고 이렇게 해서 그들의 삶을 마쳤구나.”

하얀 모자를 쓰고 포효하는 물결을 보면서, 나는 그리스도의 생애 가운데 제자들이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바다 저편으로 배를 띄우고 갈 때의 장면을 회상하게 되었다. 이 때에 무서운 폭풍이 그들에게 임하였다. 그들의 배는 그들의 뜻에 순종하지 않았으며, 그들은 여기저기로 떠다니게 되었고 마침내 그들은 절망중에 노를 놓게 되었다. 그들은 거기에서 죽으리라고 예상하였다. 그러나 폭풍과 물결이 죽음을 예고하고 있을 때, 그들을 바다 저편에 두신 그리스도께서 사납고 흰머리를 드러낸 파도 위를 조용히 거니시면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 그들은 자신들의 노력이 쓸모 없는 것과 자신들의 상황이 분명히 소망 없는 것에 당황하였으며, 잃어버린바 되었다고 모든 것을 포기했다. 그들이 물위에서 자신들 앞에 계신 예수님을 보았을 때, 그들의 두려움은 더욱 커졌다. 그들은 이것을 자신들의 임박한 죽음에 대한 분명한 전조로 해석했다. 그들은 큰 두려움으로 소리쳤다. 그러나 그분은 나타나셔서 죽음의 도래를 전하신 것이 아니라 생명의 기별자로서 오셨다. 그분의 음성은 폭풍의 부르짖음 위에 들렸다. “내니 두려워 말라.” 그 장면은, 사랑하는 주님의 임재 앞에서, 절망의 두려움으로부터 믿음과 소망의 기쁨으로 얼마나 빨리 바뀌었는가!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므로 더 이상 어떤 불안이나 죽음의 공포를 느끼지 않았다.

우리는 심지어 바다와 물결도 그분의 율법을 순종하는, 모든 능력의 근원되시는 분께 순종하는 것을 거부할 것인가? 한 마리의 참새라도 우리 하늘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그분의 보호에 내 자신을 맡기기를 내가 두려워할 것인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특별 전용실을 향해 떠났을 때, 나는 갑판에 계속 머물렀다. 선장은 내게 등받이가 있는 안락의자를 마련해 주었으며, 찬 공기로부터 보호될 수 있는 담요를 주었다. 나는 객실로 들어가면 아플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밤이 오자 어두움이 바다를 뒤덮게 되었고, 맹렬히 돌진하는 파도는 우리 배를 무섭게 내던지곤 했다. 이 거대한 배는 무자비한 물위의 한낱 나무토막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배는, 그분의 명령을 행하라고 명을 받은 하늘의 천사들에 의해 인도되고 보호를 받았다. 이것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이 휘황찬란한 배의 흔적이 하나도 남지 않은 채, 순식간에 다 삼켜져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까마귀를 먹이시고 우리의 머리카락을 세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잊지 않으실 것이다.

선장은 날씨가 너무 추워서 내가 갑판에 있기가 어렵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에게, 내 안전에 관한 한, 나는 두 여성이 뱃멀미를 하고 있으며 깨끗한 공기를 빼앗기게 될 전용실보다는 밤새 거기에 머무는 것이 낫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꼭 전용실로 가라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당신이 잠자기 좋은 곳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나는 승무원의 안내로 위층에 있는 방으로 갔는데, 거기에는 바닥에 모직 매트리스가 깔려 있었다. 이것이 비록 아주 짧은 시간에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나는 심하게 앓게 되었다. 나는 내 침상에 누워 다음 목요일 아침까지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이 동안 나는 단 한 차례만 식사를 했고, 쇠고기 수프 몇 숟가락과 크래커를 먹었다.

나흘간의 이 여행 중, 사람들은 차례로 창백하고 연약해지며, 비틀거리면서 자기 방을 빠져 나와 갑판으로 나가고자 했다. 두려움이 모든 얼굴에 씌어 있었다. 삶 그 자체가 바람직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우리 모두는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쉼을 갈망했으며, 무언가 고요히 서 있는 것을 보기 원했다. 개인적인 중요성은 그 때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우리는 사람의 가치 없음에 대한 교훈을 배웠다.

우리 여정은 모래톱을 지나 콜럼비아 강에 들어갈 때까지 매우 험하게 계속되었는데, 이 강은 유리처럼 부드러웠다. 나는 도움을 받아서 갑판에 올라갔다. 아주 아름다운 아침이었으며, 승객들은 벌떼 같이 갑판에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처음에는 보기 민망할 정도의 무리들이었는데, 바람과 폭풍 뒤의 생기를 주는 공기와 빛나는 태양 빛은 곧 그들의 활기와 명랑함을 일깨워 주었다.

우리가 배에 있었던 전날 밤, 나는 하늘 아버지께 아주 큰 감사를 느꼈다. 나는 거기에서 내가 결코 잊을 수 없는 한 교훈을 배웠다. 하나님께서는 폭풍과 물결 속에서 그리고 뒤이어 온 평온함 중에서 내 심령에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분께 경배하지 않을 것인가? 290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자신의 뜻을 세울 것인가? 우리는 통치자의 매우 강한 명령을 불순종할 것인가? 우리는 모든 능력의 근원이시며, 그분의 마음으로부터 무한한 사랑과 축복이, 그분이 보호하시는 피조물로 흘러드는 지극히 높으신 분에게 불평할 것인가?

나의 오레곤 방문은 특별한 관심 사항의 하나였다. 나는 여기에서 4 년간이나 헤어져 있던 사랑하는 친구들, 우리가 자녀들이라고 주장하는 반 호온 부부를 만났다. 반 호온 형제는 그가 지금 막 행한 자신의 사업에 대해 완전하고 호의적인 보고를 하지는 않았다. 나는 오레곤 같은 환경에서 하나님의 사업이 그렇게 성공하는 것을 보고 어떤 면에서 매우 놀라고 매우 기뻤다. 이런 충실한 선교사들의 지칠 줄 모르는 수고를 통해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의 한 합회가 세워졌고, 또한 이 광활한 지역에서 수고할 여러 명의 목회자들이 일으켜졌다.

6월 18일 화요일 저녁, 나는 이 주(州)에서 아주 많은 안식일 준수자들을 만났다. 내 심령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부드러워졌다. 나는 예수님에 대한 간증을 했으며 그분의 사랑을 신뢰하고, 죄인을 멸망으로부터 구원하는 우리의 노력에 연합하도록 그분의 능력을 주장할 수 있는 아름다운 특권에 대해 나의 감사를 표현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사업이 발전하는 것을 보고자 한다면, 우리는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거하시도록 해야만 한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업을 해야만 한다. 우리가 어디를 바라보든지 희어져 추수할 것이 보이는데, 일꾼은 매우 적다. 나는 내 심령에 하나님의 평안이 가득한 것을 느꼈으며, 내가 처음으로 같이 예배드리는 그분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향한 사랑으로 이끌어졌다.

6월 23일 일요일, 나는 살렘의 감리교회에서 절제에 관한 주제로 설교하였다. 참석자들은 상당히 많았고,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인 이 문제를 막힘없이 취급할 수 있었다. 나는 같은 장소에서 장막회가 끝난 뒤 일요일에 다시 말씀해 달라고 요청을 받았는데, 목이 쉬어서 하지 못했다. 그러나 다음 화요일 저녁, 나는 이 교회에서 다시 말씀하게 되었다. 오레곤의 여러 도시와 마을에서 절제에 관해 강연해 달라는 요청이 쇄도하였는데, 내 건강 상태가 이런 요청에 응하는 것을 막았다. 계속적인 강연과 날씨의 변화는 비록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내게 있어서 심하게 목이 쉬게 하였다.

291 우리는 아주 깊은 흥미를 가지고 장막회에 참여하였다. 여호와께서는 내가 백성들 앞에 설 때 나에게 힘과 은혜를 주셨다. 내가 이 지성 있는 청중들을 바라볼 때, 내 심령은 하나님 앞에서 깨어졌다. 이것은 이 주에서 우리 백성들에 의해 개최된 최초의 장막회였다. 나는 말을 하고자 애썼지만, 울음 때문에 어조가 흩어지고 말았다. 나는 그의 나쁜 건강 때문에 남편에 대해 매우 염려하고 있었다. 말씀을 하고 있는 동안, 배틀크릭의 교회에서 있었던 집회가 내 마음의 눈앞에 생생히 들어왔는데, 남편은 그에게 임하여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여호와의 부드러운 빛을 받으며 그 가운데 있었다. 그의 얼굴은 건강의 표가 배어 있었고 분명히 매우 행복하였다.

나는 백성들 앞에 하나님의 부드러운 긍휼과 큰 사랑에 대해 우리가 느껴야 할 감사를 제시하고자 애썼다. 그분의 선하심과 영광이 현저하게 내 마음에 새겨졌다. 나는 그분의 비할 데 없는 자비와, 오레곤에서 뿐 아니라 우리의 중요한 기관이 위치하고 있는 캘리포니아와 미시간,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그분이 행하시고 있는 사업에 대한 생각으로 압도되었다. 나는 이 때 내 마음에 생생하게 새겨진 장면을 다른 사람들에게 결코 잘 제시해 줄 수 없다. 잠시 동안 사업이 확장되는 것이 내게 다가왔으며, 나는 내 주위 환경을 의식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 설교와, 내가 말씀을 전하고 있던 사람들은, 내 마음에서 사라져 버렸다. 빛, 하늘에서부터 온 고귀한 빛이, 하늘이 그들에게 비췬 빛의 광선을 반사하는, 엄숙하고도 고상한 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기관들 위에 매우 찬란하게 비취고 있었다.

이 장막회 내내 여호와께서는 내게 매우 가까이 계셨다. 이 집회가 끝났을 때, 나는 매우 피곤했으나 여호와 안에서 자유로웠다. 이 때는 유익한 수고의 시기였으며, 교회들이 진리를 위해 싸우러 나아가는 데 힘을 주었다. 장막회가 시작되기 직전 밤중에, 많은 것들이 이상 가운데 내게 펼쳐졌다. 그러나 침묵을 지키라는 명령이 내게 임했으며, 그 당시에는 아무에게도 이 일을 말해서는 안되었다. 장막회가 마친 후, 나는 밤중에 또 다른 현저한 하나님의 능력의 나타나심을 보게 되었다.

292 장막회 후 일요일 오후에 나는 대중 강연장에서 말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내 심령 안에 있었으며, 나는 복음 신앙의 단순성을 깊이 숙고했다. 내 자신의 심령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녹아서 흘러 넘쳤으며, 나는 모든 사람이 그분의 품성의 사랑으로 매료되게끔 그분을 제시하기를 갈망했다.

오레곤에서 머무는 동안, 나는 카터 부부와 요르단 자매와 함께 살렘에 있는 교도소를 찾았다. 예배 시간이 다가오자, 우리는 강당으로 향했는데, 이곳은 많은 전깃불과 깨끗하고 신선한 공기로 매우 활기가 있었다. 종소리로 신호가 나자, 두 사람이 육중한 철문을 열었고, 죄수들이 떼지어 들어왔다. 문이 그들 뒤에서 안전하게 닫혔고, 나는 내 생애 처음으로 감옥 벽 안에 갇히게 되었다.

나는 쌀쌀한 표정을 한 사람들을 볼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그것이 아니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지성적으로 보였으며, 어떤 사람들은 능력이 많은 사람 같았다. 그들은 천하지만 잘 맞는 죄수복을 입고 있었으며, 머리카락은 부드러웠고, 신발은 광이 났다. 나는 내 앞에 있는 여러 모양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이들 각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영광과 세상의 유익을 위해 사용되도록 특별한 은사가 위탁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이 하늘의 은사를 경시하고 남용하였으며, 잘못 사용하였구나.” 나는 18세부터 약 20에서 30세 사이의 젊은이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불행한 어머니들과 그들의 쓰디쓴 몫인 슬픔과 후회를 생각했다. 이 많은 사람들의 어머니의 심령은 자기 자녀들이 추구했던 불경건한 행위로 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 자녀들에 대해 자신의 의무를 다했던가? 그들은 자녀들이 제멋대로 하도록 내버려두고,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법과 그분의 요구를 그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아니했는가?

모든 사람들이 모이자, 카터 형제는 찬미 하나를 불렀다. 모든 이들은 책을 가지고 마음을 다해 노래 부르는 데 동참했다. 훌륭한 음악가였던 한 사람이 오르간을 연주했다. 나는 그 때 기도로 집회를 시작했고 다시 모든 사람은 노래하는 데 참여했다. 나는 요한의 말로부터 설교를 시작했다. 293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나는 그들 앞에, 타락한 인간을 위해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을 주심으로 아버지에 의해 이루어진 무한한 희생을 높였으며, 순종을 통해 변화되고 하나님의 인정받는 아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했다. 교회와 세상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며 심지어 하늘의 천사들도 놀라워하는, 이렇게 표현된 사랑을 바라보고 찬송하도록 부름을 받고 있다. 이 사랑은 너무 깊고 매우 넓고 아주 높아서, 영감 받은 사도는 교회와 세상에게 그것을 바라보라고, 즉 이것을 명상과 찬탄의 주제로 만들라고 요청하고 있다.

나는 청중들 앞에 아버지 하나님의 특별한 명령을 위반한 아담의 죄를 제시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곧고, 완전히 거룩하고, 행복하게 만드셨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은총을 상실하였고 아버지의 율법에 불순종함으로 자신의 행복을 파괴했다. 아담의 죄는 인류를 절망적인 재난과 불행에 던져넣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놀랍고 긍휼이 많은 사랑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소망 없고 타락한 상태에서 멸망하도록 내버려두시지 않았다. 그분은 그들의 구원을 위해 가장 사랑하시는 아들을 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신성을 인성으로 옷 입히시고 세상에 오셨다. 그분은 아담이 실족한 땅을 건너가셨으며, 아담이 감당하는 데 실패한 시험을 이기셨다. 그분은 사단의 모든 시험을 극복하셨으며 이렇게 해서 아담의 배은망덕한 실패와 타락을 구속하셨다.

그리고 나서 나는 광야에서의 그리스도의 장기간의 금식을 말했다. 식욕에 방종하는 죄와 인간의 본성에 끼치는 그것의 능력은, 흑암의 권세를 가진 왕과 단독으로 투쟁한 그리스도의 긴 금식을 연구하고 이해하기 전까지는 결코 이것을 충분히 깨닫게 될 수 없다. 사람의 구원은 위기에 놓였다. 사단이나 혹 세상의 구속주 중에 누가 승리자가 될 것인가?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들의 사랑하시는 사령관의 시련을 지켜보면서 어떤 강렬한 관심을 가졌는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해하기가 불가능하다.

294 예수께서는 시험 당하게 될 자들의 구원자가 되는 법을 아시기 위해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당하셨다. 그분의 생애는 우리의 모본이다. 그분은 그분의 자발적인 순종으로 사람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있다는 것과, 율법에 순종하지 않고 그것을 위반하는 것은 사람을 속박에 빠지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신다. 구주는 긍휼과 사랑이 충만하셨다. 그분은 그들의 죄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진정으로 뉘우치는 사람을 결코 내어쫓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분은 모든 종류의 위선을 심하게 견책하신다. 그분은 사람의 죄들을 잘 아시며, 그들의 모든 행위를 아시고 그들의 은밀한 동기를 읽으신다. 그렇지만 그분은 죄악 가운데 빠져 있는 그들로부터 돌이키지 않으신다. 그분은 탄원하시며 죄인들과 변론하신다. 그리고 자신이 인간의 연약성을 지니셨다는 한 가지 면에서, 그분은 자신을 그 사람의 수준에 두신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더럽혀진 생애로 자신의 영혼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지워 버린 사람은, 단순한 인간의 노력으로 자신 안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 그는 복음의 은총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는 그분의 율법에 대한 순종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과 화목해야만 한다. 그 이후에 그의 생애는 새로운 원칙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회개와 믿음, 그리고 선행을 통해 그는 의로운 품성을 완전하게 할 수 있을 것이며, 그리고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들의 특권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심령 안에 받아들여지고 간직된 신령한 진리의 원칙들은, 우리가 다다르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도 못한 도덕적 탁월함의 높이까지 우리를 이끌고 갈 것이다.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여기에 사람들이 해야 할 한 사업이 있다. 그는 하나님의 율법인 거울을 바라보고 자신의 도덕적 품성의 흠을 분별해야 하며, 어린양의 보혈로 자신의 품성의 옷을 씻어 죄를 제거해 버려야 한다. 시기와, 교만과 악의, 속이는 것, 투쟁, 그리고 죄악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수혜자요, 그분께서 나타내심이 되면 그분을 계신 그대로 보며 그분과 같아지리라는 소망을 품고 있는 사람들의 심령에서부터 깨끗이 없어져야 할 것이다. 295 그리스도의 종교는, 그의 생애에 있어서 교제나 위치가 어떠하든지 간에, 이것을 소유한 사람을 정결하게 하고 고결하게 한다. 깨우쳐진 그리스도인들이 된 사람은, 그들의 이전의 품성의 수준에서 일어나 위대한 정신적 도덕적인 강인함에 들어가게 된다. 죄와 악으로 타락하고 퇴화된 사람들은 구주의 공로를 통해 천사들보다 조금 못한 자리까지 높여질 것이다.

그러나 복음의 영향력은, 그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가운데 살기를 계속하는 한, 죄인을 값없는 은혜의 문제로 그리스도의 구원을 바라보도록 이끌지는 않을 것이다. 진리의 빛이 그의 마음에 비쳐 오고, 그가 하나님의 요구를 충분히 이해하고, 자신의 범죄의 범위를 깨닫는다면, 그는 자신의 길을 개혁할 것이며, 자신의 구주로부터 얻어진 힘을 통해 하나님께 충성하게 되고 새롭고 깨끗한 생애를 이끌게 될 것이다.

나는 살렘에 있는 동안 도널드슨 부부를 알게 되었는데, 이들은 자신의 딸이 우리와 함께 배틀크릭으로 돌아가서 대학에 가기를 원했다. 그 여자의 건강은 나빴으며, 그들에게 있어서 이 외동딸이 그들과 헤어진다는 것은 큰 투쟁거리였다. 그러나 그녀가 거기에서 얻을 영적인 유익이 그들로 하여금 그 희생을 감수하게 하였다. 그리고 이 사랑스러운 아이가 최근에 배틀크릭에서 있었던 장막회에서 침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다는 것을 여기에서 말하게 되어 우리는 기쁘다. 여기에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이 그들의 자녀들을, 그들이 직접적으로 구원의 영향 아래 놓여질 수 있는, 우리 학교에 보내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증거가 또 하나 있는 것이다.

오레곤으로부터의 우리 여정은 험하였으나 나는 전에 했던 여행에서처럼 전혀 아프지는 않았다. 이 배는 “아이다호”였는데, 솟구치지는 않았지만 요동이 심했다. 우리는 배에서 매우 친절한 대우를 받았다. 우리는 많은 유쾌한 사귐을 가졌고 우리 출판물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이것은 유익한 대화로 이끌어 주었다. 오클랜드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거기에 텐트가 쳐져 있는 것을 보았고, 힐레이 형제의 수고 하에 수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텐트 아래에서 여러 차례 말씀을 전했다. 안식일과 주중 첫날에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에 있는 교회들이 함께 만났으며, 우리는 재미있고 유익한 집회를 가졌다.

296 나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장막회에 참석하기를 몹시 갈망하였으나 나에게는 동부 장막회에 참석해 달라는 긴박한 요청이 있었다. 동부의 사업의 형편이 내게 제시되었을 때, 나는 뉴잉글랜드 합회에 있는 내 형제들에게 특별히 증거해야 할 증언이 있음을 알았고, 더 이상 캘리포니아에 머무는 것이 자유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동부를 향하여

7월 28일, 내 딸[자부]인 엠마 화잇과 에딧 도널드슨과 함께 동행하여 우리는 오클랜드를 떠나 동부로 향했다. 우리는 같은 날 새크라멘토에 도착했으며 윌킨슨 부부를 만났는데, 이들은 우리를 진심으로 환영했으며,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는데, 여기에서 머무는 동안 우리는 친절한 접대를 받았다. 약속에 따라 나는 일요일에 설교했다. 이 집은 경청하는 청중들로 가득했으며, 여호와께서는 내게 그분의 말씀을 사용하여 그들에게 유창하게 말할 수 있게 해 주셨다. 월요일에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네바다의 레노에 들렀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화요일 저녁에 텐트에서 강연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여기에서는 러프보로우 목사가 강의를 하고 있었다. 나는 약 사천명 가량의 주의 깊은 청중들에게 자유롭게 말하였는데 요한의 말씀을 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우리가 알칼리성 모래를 뒤집어쓰고 거대한 미국의 열사의 사막을 지나갈 때, 우리는 비록 모든 편의 시설로 치장을 하고, 강철 군마로 이끄는 선로 위를 빠르게 미끄러지고 부드럽게 넘어갈지라도 그 황막한 광경에 매우 피로해졌다. 나는 40 년간 바위와 건조한 광야를 넘어서 여행한 고대 히브리인들이 생각났다. 열기와 먼지, 그리고 길이 험하였으므로 피곤한 여정을 터벅거리며 걷던 많은 사람들로부터 불평과 피곤한 한숨이 배어 나왔다. 나는 만일 우리가 걸어서 황량한 사막을 지나 여행하도록 명을 받았다면 목마름과 더위와 피로로 인해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했던 것보다 더 많이 불평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펼쳐진 육로에 있는 산악 장면들의 특이한 모습들이 종종 펜과 연필로 그려졌다. 297 자연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으로 기뻐하는 모든 사람은 이 거대한 오래 된 산과 아름다운 언덕과 거칠고 암석이 많은 계곡을 보면서 기쁨의 흥분을 반드시 느끼게 된다. 이것은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 사실이다. 그는 화강암과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에서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의 작품을 본다. 그는 높은 언덕을 오르기를 갈망한다. 왜냐하면 낮은 골짜기나 높은 산꼭대기에서나 그분의 자녀들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것을 비록 그가 알지라도, 이렇게 하는 것이 하늘에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콜로라도

덴버에서 나의 남편이 여름 몇 달을 보내고 있는, 산악 수양회가 개최된 월링스 밀스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는 보울더 시에 머물렀으며, 기쁨으로 우리의 장막 집회장을 바라보았다. 여기에서는 코넬 목사가 일련의 집회를 주관하고 있었다. 우리는 다르트 자매의 안락한 집에서 조용한 쉼터를 발견했다. 이 텐트는 절제회를 위해 빌린 것이었으며, 특별한 초청에 의해 나는 경청하는 청중들로 가득한 텐트에서 강연했다. 여행 때문에 피곤했지만, 여호와께서는 나를 도와주셔서 사람들 앞에 모든 면에서 엄격한 절제를 실행할 필요성에 대해 성공적으로 제시하게 하셨다.

8월 8일 월요일, 나는 남편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의 건강이 많이 좋아지고, 명랑해지고 활동적이 된 것을 보았으며, 이것에 대해 나는 하나님께 감사했다. 얼마간을 산간에서 남편과 시간을 보낸 캔라이트 목사가 이 때쯤에 아픈 자기 아내로 인해 집으로 불려 가게 되었다. 그리고 일요일에 남편과 나는 그와 동행하여 기차를 타기 위해 보울더 시로 갔다. 저녁에 나는 텐트에서 설교했으며, 다음날 아침 우리는 월링스 밀스에 있는 임시 거처로 돌아왔다. 다음 안식일에 나는 다시 이 텐트에 모인 사람들에게 강연했다. 내 강연이 끝난 후 우리는 연구 모임을 가졌다. 몇 가지 훌륭한 간증이 있었다. 몇 사람은 그들의 첫 번째 안식일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안식일이 지난 저녁과 일요일 저녁에도 사람들에게 강연했다.

우리 가족은 에드슨만 제외하고 모두 산에 있었다. 298 남편과 아이들은, 내가 오레곤 장막회 이후 거의 끊임없이 수고하였으므로 내가 몹시 피곤하다고 생각했으며, 쉬는 것이 내 특권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내 마음은 동부의 장막회에 참석해야 하며, 특히 매사추세츠의 집회에 참석해야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의 기도는 만일 이 집회에 참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남편이 나를 가도록 동의하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보울더 시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우리 둘 다 장막회에 참석해 달라고 강권하는 해스켈 형제의 편지를 보게 되었다. 그러나 남편이 올 수 없으면 가능한 나라도 오기를 그는 원했다. 나는 남편에게 편지를 읽어 주었으며, 그가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지 기다리게 되었다. 몇 분간 침묵이 흐른 뒤, 그는 말했다. “엘렌, 당신은 뉴잉글랜드 장막회에 참석해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 날 우리 가방이 채워졌다. 오전 두 시에 달빛을 받으며, 우리는 기차를 향해 출발하였고 여섯시 반에 열차를 타게 되었다. 이 여행은 전혀 유쾌한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더위가 심했고 나는 몹시 피곤했기 때문이었다.

동부 집회들

배틀크릭에 도착하자 우리는, 대학 운동장에 세워진 대형 텐트에서 일요일 저녁에 내가 강연할 약속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장막은 차고 넘쳤으며, 내 심령은 백성들에 대한 열렬한 호소로 이끌려졌다.

나는 집에 아주 짧게 머물렀으며, 그리고 나서 메리 스미스 아베이 자매와 판스워즈 형제와 함께 동부를 향해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우리가 보스턴에 도착했을 때, 나는 거의 탈진했다. 우드와 해스켈 형제가 항구에서 우리를 맞이했으며, 집회 장소인 발라드 배일로 동행하였다. 우리는 오랜 친구들의 진심어린 환영을 받았는데, 잠시동안 이것은 내게 쉼을 주는 것 같았다. 날씨는 지나치게 더웠으며, 상쾌한 콜로라도의 날씨로부터 매사추세츠의 숨막힐듯한 날씨의 변화는 후자를 거의 견딜 수 없는 곳이 되게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몹시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말하려고 애썼으며, 증거를 하면서 힘을 얻었다. 299 말씀은 심령에 곧바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이 집회에서는 큰 수고가 필요하였다. 우리의 지난 번 집회 이후에 새로운 교회들이 세워졌다. 고귀한 영혼들이 진리를 받아들였으며, 이 사람들은 더 깊고 보다 철저한 실제적인 경건의 지식으로 전진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여호와께서는 내가 유창하게 간증할 수 있게 해 주셨다.

이 집회를 하는 도중에 한 번은, 옷과 재정의 지출에 있어서 검약의 필요성에 대해 몇 가지 권면을 하였다. 여호와의 재물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부주의함과 무모함의 위험이 있다. 장막 일에 종사하는 젊은 사람들은 불필요한 지출에 빠져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장막들이 새로운 지역에 세워지고 선교 사업이 확장될 때, 사업의 필요는 아주 많으므로 인색함 없이 가장 엄격한 절약이 이 면에서 이용되어야 한다. 계산서를 안정시키는 것보다 그것을 증가시키는 것이 더 쉽다. 별로 필요하지 않지만 편리하고 이용할 만한 것들이 많이 있고 그것 없이도 실제적인 고통 없이 잘 지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쓰는 것을 피하거나 많이 줄일 수 있었던 호텔 계산서나 철도 요금과 경비들을 증가시키기는 매우 쉽다. 우리는 육로를 건너 캘리포니아까지 열두 번 왕복했으며, 레스토랑이나 부속 식당차에 가서 일 달러도 소비하지 않았다. 우리는 점심 도시락으로 우리 식사를 했다. 삼일이 경과한 후, 음식은 아주 변질되기 시작하는데, 약간의 우유나 따뜻한 죽이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었다.

또 다른 시간에 나는 참된 성화에 대해 언급했는데, 이것은 날마다 자아에 대해 죽고 매일 하나님의 뜻에 순응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오레곤에 있는 동안 나는 뉴잉글랜드에 있는 신생 교회 중 얼마는 성화라고 불리는 해로운 영향으로 위험에 처한 것을 보았다. 어떤 이들은 이 가르침으로 속임을 당했으며, 다른 사람들은 이것의 속이는 영향을 알고 그것의 위험을 깨달아 그것으로부터 돌이키고자 했다. 바울의 성화는 자아와의 끊임없는 싸움이었다. 그는 말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그의 뜻과 그의 소원은 날마다 의무와 하나님의 뜻과 충돌했다. 그는 경향을 따르는 대신에, 그것이 얼마나 불유쾌하고 자신의 본성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든지 간에, 하나님의 뜻을 행했다.

300 우리는 침례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과 처음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을 앞으로 나오라고 초청했다. 25명이 반응했다. 이들은 놀라운 간증을 했으며, 장막회가 마치기 전에 22명이 침례를 받았다.

우리는 30 년간 알고 지내 온, 사업의 오래된 친구들을 만나서 기뻤다. 우리의 훌륭한 친구 해스팅스 형제가 그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진리 안에서 깊은 흥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매사추세츠의 다트마우스의 템플 자매와 콜린스 자매, 그리고 윌킨슨 부부를 만났는데, 이들의 집에서 우리는 삼십년 전에 대접을 받았다. 사랑스러운 이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의 순례 생활은 머잖아 마치게 될 것이지만, 만일 끝까지 신실하다면 이들은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킴발 형제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는 벙어리로서 말을 못하는 사람들의 선교사였다. 그의 불굴의 노력으로 수많은 무리들이 진리를 받아들였다. 우리는 연례 장막회에서 벙어리 회심자들에게 둘러싸인 이 신실한 형제를 만났다. 들을 수 있는 어떤 사람은 가능한 한 많이 설교를 기록하였으며, 그는 벙어리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채 읽으면서 수화(手話)로 그들에게 활기 있는 설교를 해 주었다. 그는 선교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재정을 후하게 사용하였으며, 이렇게 해서 그의 재물로 하나님을 명예롭게 했다.

우리는 메인 장막회에 참석하기 위해 9월 3일 화요일 아침에 발라드 배일을 떠났다. 우리는 포틀랜드 가까이에 있는 젊은 형제 모톤의 가정에서 조용한 쉼을 누렸다. 그와 그의 좋은 아내는 그들과 함께 하는 우리의 체류를 아주 유쾌하게 했다. 우리는 안식일 전에 메인 장막회 장소에 도달했으며, 사업에 열심인 친구들을 이곳에서 만나게 되어 기뻤다. 햇빛이 비치거나 폭풍이 밀려오거나 자신들의 의무의 자리에 언제나 있는 어떤 사람들이 있다. 또한 햇빛이 있을 때만 그리스도인인 사람이 있다. 모든 것이 잘 되어 가고 자신들의 생각에 맞는 것 같을 때는 그들은 열심이 있고 분발한다. 그러나 날이 흐리고 좋지 않은 것들을 만나게 되면 그들은 아무것도 말하거나 행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축복은 활동적인 일꾼들에게 임하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사람은 집회에서 마땅히 받아야 할만큼 유익을 얻지 못한다. 301 여호와께서는 교리적이고 실제적인 주제를 다 같이 신실하게 제시하는 데 수고하는 목회자들에게 함께 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를 전혀 보여 주고 있지 않던 많은 사람들이 이 집회에 의해 유익을 받았다는 것을 보기를 심히 원했다. 나는 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높은 특권에 도달하는 것을 보기를 갈망한다.

우리는 매우 피곤한 것을 느끼며 월요일에 장막회 장소를 떠났다. 우리는 아이오와와 캔자스 장막회에 참석하고자 했다. 남편은 아이오와에서 나를 만나겠다고 편지를 썼다. 버몬트 집회에 참석할 수 없었으므로 우리는 메인에서 바로 사우스 랭카스터로 갔다. 나는 숨을 쉬는 데 매우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고 심장의 고통이 계속되었다. 나는 해리스 자매의 조용한 집에서 휴식을 취했는데, 그 여자는 모든 힘을 다해 나를 도와주었다. 목요일 저녁에 우리는 다시 배틀크릭으로 여행을 떠나고자 했다. 나는 건강 상태로 인해 더 이상 차에서 시간을 보낼 자신이 없었으며, 그래서 우리는 뉴욕 주 롬에 머물렀고, 안식일에 우리 백성들에게 설교하였다. 거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월요일 아침, 나는 브룩필드에 있는 아이라 아베이 부부를 방문했다. 우리는 이 가족들과 유익한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는 흥미를 느꼈으며, 그들이 마침내 그리스도인 전쟁에서 승리자가 되고 영생을 얻어야만 한다고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우리는 아베이 형제가 그의 좌절감을 극복하고 자신을 남김없이 그리스도의 공로에 바치며, 극복하는 일에 성공하고 마침내 승리자의 면류관을 써야 한다고 깊이 바라게 되었다.

화요일에 우리는 배틀크릭으로 향하는 차를 타게 되었고 다음 날 집에 도착해서 다시 한번 휴식을 취하고 요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되어 기뻤다. 나는 이 요양원을 이용하게 되어 참으로 유익하다고 느꼈다. 조력자들은 친절하고 주의 깊었으며, 밤이나 낮을 물론하고 어느 때나 내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자신들의 최선을 다했다.

배틀크릭에서

10월 2일부터 14일까지 전국적인 장막회가 배틀크릭에서 열렸다. 이것은 일찍이 열렸던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의 집회 중 가장 많이 모인 집회였다. 40명 이상의 목회자가 거기에 참석했다. 302 우리 모두는 여기에서 유럽에서 온 앤드류스 목사와 보르도우 목사, 그리고 캘리포니아에서 온 러프보로우 목사를 만나게 되어 매우 기뻤다. 이 집회에서 유럽과, 캘리포니아, 텍사스, 앨라배마, 버지니아, 다코타, 콜로라도, 그리고 메인에서부터 네브라스카까지 모든 북부 주들의 사업이 소개되었다.

나는 여기에서 나의 남편과 함께 수고하는 데 동참하게 되어 기뻤다. 그리고 심한 피로와 심장의 질병으로 고통 당함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는 내게 거의 매일 같이, 때로는 하루에 두 번씩 사람들에게 말하도록 힘을 주셨다. 나의 남편은 매우 힘들게 수고했다. 그는 거의 모든 사무회에 참석했으며, 거의 매일 같이 그가 하던 대로 쉽고 요점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설교했다. 나는 이 집회 동안, 두 세 차례 이상으로 설교할 수 있는 힘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해 보지 못했으나, 집회가 진행되면서 내 힘은 증가되었다. 여러 번 나는 내 발로 네 시간 동안 서 있었으며, 기도를 위해 백성들을 앞으로 나오라고 초대했다. 나는 이 집회 동안 다른 어떤 때보다도 더 예민하게 특별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느꼈다. 이러한 수고에도 불구하고 나는 견고하게 힘이 증가되었다. 그리고 나는 지난 6개월 보다 이 집회를 마칠 때, 하나님을 찬양할 만큼 내 건강이 훨씬 더 좋아졌다는 사실을 여기에 기록한다.

이 집회의 둘째 주 수요일에 우리 중 몇 사람은, 낙심하여 고통 당하고 있는 한 자매를 위해 연합하여 기도하게 되었다. 기도하는 도중 나는 크게 축복을 받았다. 여호와께서 매우 가까이 계신 것 같았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의 이상 중에 들어가 많은 것들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집회에 갔으며, 우리 백성들의 상태에 대한 엄숙한 생각을 가지고 내게 보여졌던 것을 그들에게 간략히 설명해 주었다. 나는 이것에 대해 어떤 것은 개인에 대한 증거로, 목회자들에 대한 호소로, 그리고 이 책에 주어진 다양한 다른 기사로 이것을 기록했다.

이 집회는 거룩한 능력과 깊은 흥미가 있는 집회였다. 우리의 출판소와 관련된 몇 사람들이 확신을 얻었고, 진리로 회심하였으며, 분명하고 지적인 증거를 하였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확신을 얻게 되었고, 임마누엘 왕의 깃발 아래 그들의 발을 세웠다. 이 집회는 아주 확실한 승리였다. 백 십이 명이 집회가 끝나기 전에 침례를 받았다.

장막회 그 다음 주에 강연하고 기도하며, 간증을 글로 기록하는 수고가 집회하는 것보다 더 힘이 들었다. 303 우리 목회자들을 위하여 매일 두 세 번의 집회가 열렸다. 이 집회들은 대단한 관심이 있고 매우 중요한 집회였다. 이 기별을 세상에 전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물에 있어서 매일의 경험을 가져야만 하며, 모든 면에서 회심한 사람들이 되어야 하며, 그들의 생애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면서 그들이 남에게 제시하는 진리를 통해 성화되어야만 한다. 그 때에, 그리고 그때까지는 그들이 결코 자신들의 사업에서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고백과 겸손과 기도로 하나님께 가까이 하기 위해 가장 열렬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전에 그들이 결코 보지 못하고 느껴 보지 못한 만큼 그리스도의 목회자로서 그들의 사업의 중요성을 보고 느낀다고 말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 앞에서 사업의 위대함과 자신들의 책임감을 깊이 느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이 크게 나타나시는 것을 보기를 갈망했다. 나는 길에서 장애물들이 제거되면, 오순절에서처럼 하나님의 성령께서 들어오실 것을 알았다.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서 믿음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이 책의 어딘가에 실린 목회자들에 대한 호소들은, 그들의 비참한 형편과 그들의 높은 특권에 관련되어 하나님께서 내게 보여 주신 것을 보다 충분히 표현하고 있다.

캔자스 장막회

나의 딸 엠마의 동행을 받아 우리는 캔자스 장막회를 향해 10월 23일, 배틀크릭을 떠났다. 우리는 캔자스 토페카에서 기차에서 내려 장막회 장소인 리치랜드를 향해 사설 교통 기관을 타고 12마일을 여행했다. 우리는 숲 속에 쳐져 있는 텐트 장을 발견했다. 장막회를 하기에는 늦은 시절이었으며, 추운 날씨를 대비해 할 수 있는 모든 준비가 갖추어졌다. 여러 가족이 들어갈 수 있는 대형 텐트 주위에 열 일곱 개의 텐트가 쳐져 있었고, 모든 텐트에는 난로가 있었다.

안식일 아침, 눈이 오기 시작했으나 한 집회 시간도 늦추어지지 않았다. 약 일인치 정도의 눈이 쏟아졌으며, 공기는 살을 에는 듯 차가웠다. 여자들과 어린이들이 난로 주변에 모여들었다. 이런 상황하에서도 150명이 집회와 또 회의를 위해 모여드는 것을 보는 것은 감동적이었다. 304 어떤 사람들은 사설 교통 수단을 이용하여 200 마일 떨어진 곳에서부터 왔다. 모든 사람은 생명의 양식에 굶주리고 구원의 물에 목말라 하는 듯이 보였다.

해스켈 목사가 금요일 오후와 저녁에 말씀을 했다. 안식일 아침, 나는 이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크게 애를 쓴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말씀을 해 달라는 요청을 느꼈다. 일요일 오후에는, 이 집회가 여행로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많은 외부 참석자들이 있었다.

월요일 아침에 나는 말라기서 3장부터 형제들에게 말씀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며, 하나님을 받아들인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앞으로 나오라고 요청하였다. 약 30명이 반응했다. 어떤 이들은 처음으로 여호와를 찾았고, 다른 교회의 교인인 사람들은 그들의 입장을 안식일로 바꾸게 되었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며, 여호와의 자유롭게 하시는 영이 이 집회에 함께 하셨다. 앞으로 나온 사람들에게 기도를 한 후, 침례를 위한 후보자들이 심사되었다. 여섯 명이 침례를 받았다.

나는 해스켈 목사가 백성들 앞에, 각 가정이 읽을거리를 놓아야 할 필요성, 특히 예언의 신 전 3권과 증언 전 4권을 놓아야 한다고 제시하는 것을 보고 기뻐했다. 이 책들은 긴 겨울 저녁에 가족 중 한 사람이, 모든 가족이 교훈을 받을 수 있도록 크게 읽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부모들이 그들의 자녀들을 적절하게 교육시키고 훈련시켜야 할 필요성에 대해 말했다. 세상에 제시할 수 있는 그리스도교의 가장 큰 능력의 증거는 잘 정돈되고 잘 훈련된 가정이다. 이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진리를 더 잘 권장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심령에 역사하는 실제적인 능력의 산 증거이기 때문이다.

화요일 아침에 집회가 마쳐졌으며, 내 딸 엠마와 해스켈 목사, 그리고 스토버 형제와 함께 우리는 토페카로 갔으며 다른 장막회 약속이 되어 있는 캔자스의 셀만으로 가는 차를 탔다. 이 집회는 흥미있고 유익한 집회였다. 305 거기에는 약 백명의 형제와 자매들만 참석해서 다른 주에서 있었던 우리 장막회들과 비교해 볼 때 작은 것처럼 보였다. 이것은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일반적으로 모이게 하기 위해 계획된 것이었다. 어떤 이들은 남부 캔자스, 알칸사스, 켄터키, 미주리, 네브라스카, 그리고 테네시로부터 왔다. 이 집회에서 남편이 나와 동참하게 되었으며, 여기에서부터 우리는 해스켈 목사와 내 딸과 함께 텍사스의 댈라스로 갔다.

텍사스 방문

목요일에 우리는 그랑프레이르에 있는 맥디어맨스 형제의 집으로 갔다. 여기에서 우리의 딸은, 지나 간 계절 동안에 이 주(州)를 휩쓸었던 열병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던 부모들과, 형제 자매들을 만났다. 우리는 이 어려움을 당하는 가족들의 필요를 위해 봉사하는 것에 큰 기쁨을 누렸는데, 이들은 우리가 어려웠던 지난 여러 해 동안 후하게 우리를 도와주었다.

그들의 건강이 얼마쯤 좋아졌을 때 우리는 플라노 장막회에 참석하기 위해 그들을 떠나갔다. 이 집회는 11월 12일부터 19일 사이에 개최되었다. 시작할 때 날씨는 좋았다. 그러나 곧바로 비가 오기 시작했으며, 이것은 심한 바람과 함께 주변의 여러 시골에서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는 것을 방해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오랜 옛 친구인 R.M.킬고어 목사 부부를 만나게 되어 기뻤다. 그리고 우리는 장막회 장소에서 매우 많은, 지적인 형제들을 보게 되어 심히 좋았다. 북쪽으로부터 온 사람들에 대하여 어떤 편견이 여기에 있든지간에, 이 사랑스러운 형제와 자매들 중에는 그런 어떤 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내 증거는 그 어떤 사람들보다 이 사람들에 의해 가장 쉽고 진심으로 받아들여졌다. 나는 넓은 텍사스 주에서의 사업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모든 중요한 사업의 현장을 미리 점령하는 것이 언제나 사단의 목표였다. 그리고 사단이 아마도 그 어떤 주보다 이 텍사스 주에서 진리가 소개될 때보다 더 바쁘게 일했던 주(州)는 결코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내 마음에, 여기에서 한 큰 사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가장 좋은 증거이다.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준비

306 우리의 장막 집회 동안 배틀크릭에서 나에게 주어진 지난번 이상에서, 한 백성으로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보다는 세상을 닮아 가는 위험이 나에게 보여졌다. 우리는 지금 영원한 세계의 경계에 와 있다. 그러나 우리를 시간의 종말에서 멀리 떨어지게 인도하는 것이 영혼의 대적의 목적이다. 사단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백성이라고 공언하며, 권세와 큰 영광으로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실 구주의 다시 오심을 기다린다고 하는 사람들을 온갖 수단으로 공격할 것이다. 그는 가능한 많은 사람들로 불행한 날을 뒤로 미루게 하며, 영적으로 세상 사람들처럼 되게 하여 그 풍습을 닮아 가게 이끌 것이다. 나는 세상의 정신이 진리를 믿노라고 크게 공언을 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을 지배하는 것을 보면서 우려를 금치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이기심과 자기 방종은 품었으나 진정한 경건함과 순수한 고상함은 배양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천사는 진리를 공언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면서, 거룩한 음성으로 이 말씀을 반복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덫과 같이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시간이 짧음을 고려할 때, 우리는 한 백성으로서 깨어서 기도해야 하며, 어떤 경우에도 우리 앞에 있는 위대한 사건을 위해 준비하는 거룩한 사업에서 곁길로 나가서는 안 된다. 시간이 명백히 연장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언행에 있어서 부주의하고 무관심하게 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위험을 알지 못하며, 그들 장래의 불멸의 생명을 위한 품성을 형성할 수 있는 시간인, 유예의 기간을 연장시켜 주는 하나님의 자비를 깨닫고 이해하지 못한다. 매순간은 가장 고귀한 가치가 있다. 307 시간이 주어진 것은 그들 자신의 안일함을 탐구하고 세상의 거민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결의 아름다움을 보이고 모본과 개인적인 노력으로 자신들의 품성의 결함을 극복하고 남을 돕는 사업에 사용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혼인 예복 없이 발견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믿음과 거룩한 소망 가운데 빠르게 성취되는 예언의 도표를 따라가며, 진리에 순종함으로 자신들의 영혼을 정결케 하려고 노력하는 한 백성을 이 땅에 가지고 계신다.

자신들을 재림교인이라고 불렀던 많은 사람들은 시간을 정했던 사람들이었다. 거듭거듭 그리스도께서 오실 시간이 정해졌으나 그 결과는 계속 실패였다. 우리 주께서 오실 명확한 시간은 사람이 알 수 없다고 선언되었다. 구원의 후사를 위해 봉사하는 천사들조차도 그 날이나 시간을 알지 못한다. “그 날이나 시간은 사람들에게나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오직 내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반복해서 정해진 시간들이 지나갔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에 관해 세상은 더욱 결정적인 불신의 상태에 빠졌다. 그들은 시간을 정하는 사람들의 실수를 혐오감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으며, 그리고 사람들은 너무 속아왔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입증된,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다는 진리에서 돌이키고 있다. 참람되게도 정해진 시간을 설교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함으로 영혼의 대적을 기쁘게 만들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로 인해 그리스도교 신앙보다는 불신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들은 성경절을 이끌어 내고, 거기에 거짓 해석을 보태 자신들의 입장을 명백히 입증하는 듯이 보이는 일련의 논증들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들의 실패는 그들이 거짓 선지자라는 사실과 그들이 영감의 언어를 잘못 해석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와 진실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의미를 왜곡했다. 이러한 실수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이 마지막 시대에 평판이 나빠지게 했다. 재림교인들은 모든 교단의 목회자들에게 조롱을 받고 있으나, 하나님의 종들은 잠잠해서는 안된다. 예언 가운데 미리 말해진 징조들은 우리 주변에서 신속히 성취되고 있다. 이것을 보고 모든 진실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열성적으로 활동해야 한다.

308 백성들에게 감명을 끼치기 위해, 정확한 때를 전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올바른 관점에서 일하고 있지 않다. 백성들의 감정이 분기되고 그들의 두려움이 일어날지 모르나 그들은 원칙에 입각하여 행동하지 않는다. 흥분은 생길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반복되었듯이 시간에 의해 움직인 사람들은 냉담함과 어두움과, 그리고 죄에 빠지게 되고, 어떤 큰 흥분 없이는 그들의 양심을 일깨우기가 불가능하다.

노아 시대에 고대 세계의 사람들은 그들이 칭한 바 미신적인 두려움과 의의 설교자의 예언을 비웃었다. 그는 공상적인 사람으로, 환상가로, 인심을 소란케 하는 사람으로 조롱 당하였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와 같으리라.” 노아의 때에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도 사람들은 거룩한 기별을 거절할 것이다. 그들은 사건을 예언하고 명확한 시간을 정한 거짓 교사들을 가리킬 것이다. 그러고는 그들의 경고를 믿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경고도 믿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세상의 태도이다. 불신이 편만해 있으며,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설교는 비웃음과 조롱을 당하고 있다. 이것은 현대 진리를 믿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행위로 믿음을 보여주는 일을 더욱 필수적으로 만들고 있다. 그들은 그들이 믿는다고 공언하는 진리를 통하여 성화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는 향기이거나 사망에서 사망으로 이르는 냄새가 되기 때문이다.

노아는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회개하도록 120년을 주셨다는 것과 방주 안에서 피난처를 찾으라고 설교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은혜로운 초청을 거절했다. 그들에게는 죄로부터 돌이킬 수 있고 그들의 나쁜 행습을 고치며, 의로운 품성을 계발시킬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다. 그러나 죄의 경향이, 처음에는 약했지만, 반복되는 자기 현혹에 의해 강해졌고 돌이킬 수 없는 파멸로 들어가도록 재촉했다. 하나님의 자비로운 경고는 조소와 비웃음과 조롱으로 거절되었고, 그들은 어둠 속에 남겨졌으며 그들의 죄악된 마음이 선택한 경로를 따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불신이 예언된 사건을 막지는 못했다. 그 사건은 일어났고, 하나님의 진노는 컸으며 그것은 전체적인 파멸로 나타났다.

309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현대 진리를 믿는 사람들의 마음에 깊숙히 들어가야 한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우리의 위험은 그리스도에 의하여 우리 앞에 제시된 바 되었다. 그분은 우리가 이 마지막 날에 당할 위험을 아셨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그들은 먹고 마시고, 심고, 집 짓고, 시집가고, 장가가면서, 노아가 방주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알지 못했으며,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휩쓸어 갔다. 하나님의 날에 사람들은 같은 방식으로 사업과 세상의 쾌락에 빠져 있으며, 연락과 폭식, 그리고 주정 음료와 마약성 담배의 오용으로 인한 왜곡된 식욕에 빠져 있음이 발견될 것이다. 이것은 이미 우리의 세상 형편이 되었으며, 이러한 방종은 심지어 하나님의 공언된 백성들 사이에서도 발견되고 있으며,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세상의 관습을 따르고, 세상의 죄에 동참하고 있다. 법률가들과 기술자들과 무역업자들과 심지어는 강단의 목사들까지 파멸이 빠르게 그들에게 임하고 있는 때, “평안하다, 안전하다”라고 외치고 있다.

하늘의 구름을 타고 인자가 빨리 오실 것이라는 믿음은,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 생애의 일상적인 일을 부주의하거나 등한시하도록 만들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속히 오심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사람들은 게으르지 않고 사업에 있어서 부지런할 것이다. 그들의 사업은 부주의하거나 부정직하게 행해지지 않을 것이며, 신뢰할 만하고, 신속하고, 완전하게 행해질 것이다. 이생의 일에 대한 부주의한 무관심이 그들의 영성과, 세상과의 분리에 대한 증거라고 스스로 아첨하는 자들은 큰 기만에 빠져 있다. 그들의 성실성, 신실함과 고결함은 현세적인 사물에 의해 검증되고 입증되고 있다. 만일 그들이 작은 것에 신실하다면 그들은 큰 것에도 신실할 것이다.

나는 이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시험을 견디는 데 실패할 것을 보았다. 그들은 현세적인 관심사를 다루는 가운데서 그들의 진정한 성품을 계발시키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동료들을 대하는 데 있어서 불신실함과 교활함을 나타내고 있다. 310 그들은 미래에 대한 소유권, 불멸의 생명은 그들이 이생의 관심사를 어떻게 행하느냐에 달려 있으며, 엄격한 고결함은 의로운 성품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부정직이 우리 대열 전체에서 행해지고 있으며, 이것이 진리를 믿는다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뜨뜻미지근한 원인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지 않으며, 그들 스스로 영혼을 속이고 있다. 심지어 안식일 준수자들 중에도 우려할 정도로 정직성이 결여되어 있음을 기록하면서 나는 마음이 아프다.

나는 그리스도의 산상 설교를 돌아보라는 말을 들었다. 여기에 위대한 교사의 명령이 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그리스도의 이 명령은 매우 중요하며, 엄격히 순종되어야 한다. 이것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와 같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여기에 언급하신 원칙을 그들의 생활에서 실천하고 있으며, 이와 비슷한 환경 하에서 자신들이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다른 사람을 대접하고 있는가? 독자들이여, 대답하라.

그리스도의 평가에 따르면, 정직한 사람은, 확고부동한 성실성과 정직성을 드러내는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세상적인 이득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사용하고 있는 속이는 저울과 거짓된 저울 추는 하나님께서 보실때 가증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속이는 저울과 거짓 저울추로 거래하고 있다. 사람이 진실로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고, 또한 진리 가운데서 그분의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의 생애는 그 사실을 나타낼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생애는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조화를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득을 위해 그의 명예를 팔지 않을 것이다. 그의 원칙들은 견고한 토대 위에 세워질 것이며, 그의 세상적인 사무들은 그의 원칙의 사본이 될 것이다. 견고한 고결함은 세상의 찌꺼기와 쓰레기 가운데서 금처럼 빛을 발할 것이다. 기만적이고 속이며, 불신실한 것은 사람의 눈을 속이고 그럴듯하게 꾸밀 수는 있겠지만, 하나님의 눈은 그렇게 할 수 없다. 품성의 발전을 지켜보고 도덕적인 가치를 재어 보고 있는 하나님의 천사들은, 품성을 드러내는 이런 작은 거래의 행위들을 하늘 책에 기록하고 있다. 311 한 일꾼이 매일의 생업에서 불신실하고 그의 사업을 등한히 한다면, 만일 세상이 사업상의 그들의 표준으로 종교상의 그의 표준을 추정한다면, 잘못되게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충성한 자는 큰 것에도 불충성하니라.” 그것을 옳고 그르게 하는 것은 일의 경중에 있지 않다. 사람은 그의 동료를 대하는 방식대로 하나님을 대할 것이다. 불의한 재물에 불신실한 자는 참된 부에 신실할 수 없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들의 모든 사업상 거래 행위에 입각하여, 성소의 저울에 달려서 그들이 시험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열매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라.” 한 사람의 행위는 그가 맺는 열매다. 그가 일시적인 사물에 불신실하고 부정직하다면, 그는 찔레와 가시를 맺고 있으며, 종교적인 생애에서도 불신실할 것이며, 하나님의 십일조와 헌금도 도둑질 할 것이다.

성경은 모든 거짓과 거짓 거래, 그리고 부정직을 매우 강한 어조로 정죄하고 있다. 옳고 그름은 명확하게 진술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 자신을 원수의 편에 가담시키고 있음을 보았으며, 그들은 그의 시험에 굴복하여 그들의 감각이 두려울 정도로 둔해질 때까지 그의 계략을 따르는 것을 보았다. 진리로부터의 약간의 일탈, 하나님의 요구로부터의 약간의 변형은 재정상의 손익이 있을 때, 그렇게 죄악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어진다. 그러나 백만장자가 저질렀든지 거리의 걸인이 범했든지 죄는 죄다. 거짓되게 오도(誤導)함으로써 재물을 얻으려는 자는 그들 영혼에 정죄를 가져오는 것이다. 거짓과 기만에 의하여 얻어진 모든 것은 얻은 그 사람에게 저줏거리가 될 뿐이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명확한 계명을 불순종함으로써 두려운 결과로 고통 당했다. 그들은 이렇게 합리화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매우 작은 죄이며, 결코 죄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무서운 죄악으로 취급하셨으며, 그들의 범죄의 화는 모든 시대를 통하여 느껴지게 될 것이었다. 312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종종 더 큰 범죄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다. 사업상의 거래 행위에서 하나님의 공언하는 자녀들에 의해 거짓이 이루어지며 행해지고 있으며, 이것은 그분의 불쾌함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며, 그분의 사업에 비난을 돌리게 하고 있다. 진실함과 정직함에서 조금이라도 일탈하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것이다. 죄에 계속 빠지는 것은 사람을 악행에 익숙하게 하는 것이며, 죄의 악화된 성격을 누그려뜨려 주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변함없는 원칙을 세우셨는데, 이것은 그분의 전체적인 본성을 변경시키지 않고서는 수정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를 믿는다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들에 의해 신실하게 연구된다면, 그들은 영적인 사물에 난쟁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생에서 하나님의 요구를 무시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하늘에 있다 할지라도 그분의 권위를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온갖 종류의 부도덕이 하나님의 말씀 중에 명확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그 결과는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저열한 정욕의 방종이 그 혐오스러운 특성 그대로 우리 앞에 제시되어 있다. 어떤 사람도 그의 이해력이 아무리 어둡다 할지라도 실수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계명 가운데 행한다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악을 품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그분의 말씀으로 심판하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성경은 실수함이 없는 안내자이다. 그것은 말씀과 사상과 행동에서 완전한 순결을 요구한다. 고결하고 흠없는 성품을 가진 사람만이 순결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하심으로 들어가도록 허용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만일 연구되고 순종된다면,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되었던 것처럼 사람들을 인도할 것이다. 성경은 사람들에게 밝히신 하나님의 뜻이다. 그것은 성품의 유일한 완전한 표준이요, 매일의 삶의 환경 가운데서 사람의 의무를 표시하는 것이다. 이생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많은 책임들이 있다. 이것을 소홀히 하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고통을 줄뿐만 아니라, 그 결과로 다른 사람에게 손실을 안겨 주는 것이다.

313 성경을 존중하고 그 교훈을 따른다고 공언하는 남녀들은 많은 면에서 그 요구를 이행하는 일에 실패하고 있다. 자녀들을 훈육시킴에 있어서 그들은 하나님의 계시된 뜻보다는 자신들의 비뚤어진 본성을 따른다. 이 의무를 등한시함으로 수천명의 영혼을 잃고 있다. 성경에는 자녀들을 올바르게 훈육하는 규율들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님의 이 요구 사항들이 부모들에 의해 유의된다면, 우리는 오늘날 활동 무대에 등장하는 다른 계층의 청년들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읽고 성경을 따른다고 하는 부모들은 그 가르침과 정반대로 가고 있다. 우리는 어머니와 아버지들이 그들 자녀들의 행동을 비통해 하는 슬픔과 고민의 소리를 듣는다. 그들은 이 슬픔과 고민을 자초하고 있다는 것을 거의 모르는 채, 그들의 잘못된 애정으로 자녀들을 망치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자녀들을 어린 시절부터 올바른 행동으로 훈련시켜야 한다는 하나님께서 주신 책임들을 알지 못한다.

부모들이여, 그대들은 자녀들의 영혼에 대해 큰 책임을 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자녀들이 나이가 들면 신중하게 잘못을 억제하고 바르게 자신을 교육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아이들 생후 1 년간의 의무를 소홀히 한다. 그러나 이 일을 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는 그들의 자녀들이 그들의 팔에 안겨 있을 그 때다. 부모들이 자녀를 학대하는 것이 옳지 않으며, 너무 귀여워하거나 비위를 맞추는 것도 옳지 않다. 견고하고 확고하고 곧은 행동의 진로가 가장 좋은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목회자들에게 권면함

한 위대하고 엄숙한 진리가 우리에게 위임되었는데, 우리는 이것에 책임이 있다. 너무도 자주 이 진리는 냉랭한 이론으로 제시된다. 교리적인 요점에 대한 연이은 설교가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있으며, 그들 중에 더러는 확신을 얻고 그리스도께 돌이키는 그처럼 유리한 기회를 결코 갖지 못하게 될 것이다. 황금과 같은 기회가 화려한 설교를 함으로써 상실되고 있는데, 이것은 자아를 나타내고 그리스도를 크게 보여주지 않는다. 314 활력이 넘치는 경건이 없는 진리의 이론은 영혼을 감싸고 있는 도덕적 흑암을 제거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고귀한 진리의 보석은 그들을 감싸고 있는 말들의 지혜로 말미암아 힘을 잃어가고 있으며, 하나님의 영의 능력은 결핍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진리를 단순하게 전하셨으며, 그분은 지상의 가장 고상한 사람들 뿐 아니라 가장 낮은 사람에게도 영향을 끼치셨다. 하나님을 높이기 위해 자신을 낮추는, 하나님의 대사요 지상의 그리스도의 대표자인 목사들은 참된 웅변의 특질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참된 경건, 하나님과의 가까운 연결, 그리스도의 지식 안에서 날마다 살아 있는 경험은 더듬거리는 방언일지라도 그것을 웅변적으로 만들 것이다.

내가 어린 교회들 내에서의 결핍을 볼 때, 내가 그들의 힘있는 경건의 심각한 부족과 진정한 종교적 경험의 결핍을 보고 알게 될 때, 내 마음은 슬프다. 진리의 기별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조화된 품성을 온전케 하는 일에 필수적인 모든 점들을 올바로 교육시키지 못하는 것을 나는 안다. 이러한 것들은 진리의 교사들이 너무 오래 등한시 될지도 모른다. 복음을 말하면서 바울은 이야기한다. “내가 교회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추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여기에 하나님의 목사들이 가지고 있는 사업과 자질과 그들 안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이 분명히 설명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최근 그리스도의 대표자들이라고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있는 큰 부족함을 내게 보여 주셨다. 315 간단히 말해, 만일 그들이 믿음과 힘있는 경건의 지식이 부족하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영혼을 기만할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의 완전을 보여주는 일에 있어서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진리 안으로 이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경건이 부족하다. 그들은 진리의 이론은 가지고 있을지 모르나, 완전히 회심하지는 않았다. 그들의 마음은 세속적이며,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그분은 그들 안에 거하지 않는다. 진리의 이론을 제시하는 것이 목사의 의무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기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그는 바울의 말을 따라야 한다.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목자장과의 힘있는 연결이 목자들을 살아 있는 그리스도의 대표자로 만들 것이며, 참으로 세상의 빛이 되게 할 것이다. 우리 믿음의 모든 점에 대한 이해가 참으로 필수적이지만, 목사가 청중들의 양심을 일깨우기 위해 자신이 전하는 진리를 통해 성화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일련의 집회에서 이론으로만 구성된 강연은 하나라도 전해져서는 안 되며, 길고 지루한 기도가 하나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 기도는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신다. 나는 많은 단조롭고 설교조인 기도, 불필요하고 상황에 맞지도 않는 기도를 들어왔다. 절반만의 말로, 간절하고 믿음 가운데 드려지는 기도가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대신, 나는 사람들이 매 단어마다 기도를 끝냈으면 하고 조바심하며 기다리는 것을 보았다. 목사가, “구하라 그러면 받을 것이요”라는 영원한 약속을 믿음으로 붙잡았다고 느낄 때까지 자신의 방에서 씨름했더라면, 그는 자신이 필요한 것을 간절함과 믿음으로 구하면서 단번에 요점을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회심한 목사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노력을 통하여 세워진 교회는 그들 속에 뿌리가 없기 때문에 홀로 서지 못하게 될 것이다. 신실한 그리스도의 목사는 그의 믿음에 그 부담을 짊어질 것이다. 그는 인기에 목말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인 목사는 먼저 골방에서 하나님을 찾고 그분과 밀접한 연결을 가질 때까지는 결코 단에 오르지 말아야 한다. 그는 백성들에게 말하기 전에, 겸손하게 그의 갈급한 영혼을 하나님께 높이 들어 올리고 은혜의 이슬로 생기를 되찾을 수 있다. 316 그에게 영혼에 대한 부담을 안겨 주는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음으로 그는, 그들의 심령을 감동시키는 진지한 권면을 하며, 죄인의 유일한 피난처인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제시하지 않고는 결코 회중들을 떠나 보내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 회중들을 하나님의 큰 날까지 다시는 만나지도 못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를 택하시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아시는 주인께서는 그에게 언어와 말씀을 주실 것이며, 그리하여 그가 제 때에 능력 있게 말할 수 있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 진정으로 죄를 깨닫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분에게 매료된 사람들은 목사의 능력을 찬양하거나 높임 없이 해야 할 충분한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랑이 모든 인간 도구들보다 높여질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크게 보이시고 사상의 주제가 되시기 때문에 사람은 시야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리스도께 진정으로 회심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목사에게 회심한다. 우리는 영적인 감각을 마비시키는 무감각에 놀란다. 거기에는 원기가 없다. 생명 없는 기도가 드려지며, 회중들의 덕을 세우거나 강화시키지 못하는 간증이 들린다. 모든 그리스도의 목사들이 그 원인이 무엇인지 조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 형제들에게 이렇게 쓰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고한 자니라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317 진리를 시골과 도시에 전하는 데 애쓰는 목사들은, 진리의 이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그것의 성화시키는 힘의 영향을 참으로 깨닫고 하나님께 진정으로 돌이킬 때까지 만족하거나 자신들의 일이 끝났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노력의 결과로, 명목상으로 공언하거나 전적으로 회심하지 않는 60명을 갖게 되는 것보다 진리에 진정으로 회심한 6명을 갖게 되는 것을 더 기뻐하신다. 이러한 목사들은 설교하는 데 시간을 적게 바치고, 힘을 저축하여 방문하고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기도하며, 그들이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자로 세”우려는 목적으로 경건한 교훈을 주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진리의 교사들의 심령 안에서 살아 있어야 한다. 그 자신의 심령은 그리스도께서 가지셨던 깊고 열렬한 사랑으로 가득 차야 하며, 그 때에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흘러 나갈 것이다. 목사들은 진리를 받아들인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들은 날마다 자아 희생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하고, 품어 왔던 많은 것들이 복종되어야 하며, 많은 의무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행해야 함을 가르쳐야 한다. 사업적 관심사와, 사교적인 애정, 안락, 영예, 명성, 요컨대, 모든 것은 더 우선적인, 그리스도의 최고의 요구에 종속되어야 한다. 백성들 가운데 관심을 휘저어 놓고, 생명력 넘치는 경건을 소유하지 않고, 사업을 대충 끝내고 버려두는 목사들은, 다른 사람들이 들어와서 그들이 완성하는 데 실패한 사업을 그들로 하여금 마치도록 매우 어려운 일터를 남겨 놓고 떠난다. 이러한 사람들은 검증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들이 그들의 사업을 보다 신실하게 하지 않는다면, 조용한 시험 후에 그들은 불신실한 파수꾼으로서 사업의 방해자로 제쳐놓음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공과들을 열심히 연구하지 않은 사람들과, 현대 진리의 모든 요점들을 지성적이고 받아들여질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지 않을 사람들은, 교사로서 보내시지 않으실 것이다. 이론적 지식과 더불어 그들은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보다 더 현저한 지식을 얻어야 한다. 규율과 연구는 필요하다. 318 그러나 이것과 함께 목사는 마지막 날에 불에 타 버릴 나무나 건초나 그루터기에 기초를 세우지 않고 신실하게 되도록 열렬한 기도를 추가 해야 한다. 기도와 연구는 함께 해야 한다. 목사가 박수를 받고 찬양을 받는 것이 그가 성령의 영향하에 말씀했다는 증거는 아니다.

젊은 회심자들은 잘 경계하지 않으면, 너무도 빈번히 그들의 애정을 구속주보다 그들의 목사에게 둔다. 그들은 목사들의 수고 덕분에 큰 유익을 얻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가 가장 뛰어난 은사와 은혜를 지니고 있고, 다른 어떤 사람도 그만큼 잘 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그 사람과 그의 일에 합당치 못한 중요성을 부과한다.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그 사람을 우상화하고 그를 하나님보다 더 바라보게 하는 확신이며, 그들은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도, 은혜 안에서 자라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 목사에게 큰 해를 끼치며, 특별히 그가 젊고 전도가 유망한 복음의 일꾼으로 성장해 갈 때 더욱 그렇다.

이러한 교사들은, 만일 그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하나님으로부터 그들의 말씀을 받는다. 그들의 설교 방식이 잘못되거나, 더 개선할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서 영감의 말씀을 불어넣으시면, 그들의 힘은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다. 그 목사는 죄인에게 자비의 기별을 전달하는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에 그의 일로 인하여 귀하게 여겨지고, 사랑을 받고, 존중을 받는 한편 주시는 분은 영광과 심령의 애정을 받으셔야만 한다. 하나님의 아들은 종종 그분과 사람들 사이에 끼어든 사람에 의해 가리워지신다. 사람은 찬양을 받고 애정을 받으며, 높여진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분으로부터 반사되는 빛으로 인해 모든 것이 가려져야 하는, 예수님은 거의 보지 못한다.

주님의 영과 사랑에 물든 그리스도의 목사는 열심히 일하여 하나님과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의 품성이 완전하고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그는 그의 청중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그들의 개념이 명확하게 되어서, 그분의 영광이 지상에서 인정받도록 할 것이다. 자신의 심령 안에 예수 안에서 발견한 소중한 친구를 다른 사람에게 알려야 하겠다는 열망이 싹트지 않은 한, 회심한 것이 아니며, 구원하고 성화시키는 진리는 그의 심령 안에 갇혀 있을 수 없다. 319 그 영혼을 비추어 주는 그리스도의 영은 모든 어두움을 몰아내는 빛으로 대표되었다. 이것은 그 보존력 때문에 소금에 비유되며, 은밀하게 변화시키는 영향을 끼치는 누룩에 비유된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과 연결시킨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 안에 계신 한, 그들 주위에 죽어 가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분께서 일하신 것처럼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일할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진지하고 열렬한 기도로, 그리고 개인적인 노력으로 다가갈 것이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회심하여 그분과 교제하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그리스도 밖에서 멸망해 가는 사람들의 중요한 관심사들은 등한히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목사는 모든 사업을 혼자 해서는 안되며, 진리를 붙들고 있는 사람들과 연합하여 일해야 한다. 그는 이렇게 해서 자신이 떠날 때를 대비하여 사람들을 일하도록 가르칠 것이다. 일하는 교회는 항상 성장하는 교회가 될 것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돕는 가운데 자극과 강건함을 발견하게 되며, 그 일을 하면서 힘을 얻고 용기를 얻게 된다.

나는 어느 겨울날, 폭설로 인해 여행하다가 추위 때문에 온 몸이 마비되어 자신의 힘으로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게 된 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었다. 그리고 그가 혹한에 의해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러 삶을 위한 투쟁을 완전히 포기하려 할 때, 그는 추위로 인해 죽어 가는 같은 여행자의 신음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의 인정은 그 사람을 구하고자 일어나게 되었다. 그는 그 불쌍한 사람의 얼음장같은 사지를 비벼 주었고, 상당히 애쓴 끝에 그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그가 서 있지 못하자 그를 동정의 손으로 안아서 결코 혼자서는 뚫고 갈 수 없다고 생각했던 눈 덮인 길을 헤쳐 나갔다. 그리고 그가 동료 여행자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놓은 후에, 자신의 이웃을 구하다가 자신도 구하게 되었다는 진리가 섬광처럼 떠올랐다. 다른 사람을 구하려는 열렬한 노력은 그 혈관에서 얼어 가던 피를 빨리 돌게 했으며, 사지에 건강한 온기를 만들어 내었다.

320 이 교훈은 젊은 신자들에게 끊임없이 교훈뿐만 아니라 모본으로 주어져야 하며, 그들의 그리스도인 경험에서 유사한 결과를 얻어내도록 해야 한다. 생명의 길은 매우 괴롭고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여 낙담한, 의기 소침한 사람들은 나아가서 일하고 다른 사람을 돕도록 하라. 신령한 빛을 위한 기도와 어우러진 이러한 노력으로 그들 자신의 심령은, 하나님의 은혜의 생기를 띠게 하는 영향력으로 고동치게 될 것이며, 그들의 애정은 거룩한 열정으로 빛나게 되고, 그들의 전체적인 그리스도인 삶은 보다 더 살아 있게 되고, 열렬해지고, 기도하는 삶이 된다.

그리스도의 목사는 기도하는 사람, 경건의 사람, 쾌활한 사람이 되어야 하지만, 야비하거나 조잡하거나 익살스럽거나 천박해서는 안된다. 천박한 정신은 어릿광대나 무대의 배우 같은 직업에는 어울릴지 모르나, 이 모든 것은 삶과 죽음의 사이에 서도록 선택받은 사람, 그리고 하나님의 대변자의 고결함을 저하시키는 것이다.

매일의 일은 하나님의 책에 신실하게 기록된다. 영적인 조명을 구하는 사람으로서 여러분은 접촉하는 모든 사람의 품성에 도덕적인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복음의 신실한 목사로서 그대는 마음의 모든 힘과 생애의 모든 기회를 이용하여 그대의 사업을 완전히 성공하도록 해야 하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든 사람을 완전하게 드려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그대는 진실하게 기도해야 한다. 복음의 목사들은 갈릴리의 겸손한 어부들에게 그토록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 내었던 그런 힘을 소유해야 한다.

그대에게 지워진 중요한 의무들을 충실하게 수행하려면 도덕적인 힘과 지성적인 능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있다 할지라도 심한 경건이 부족할 수 있다. 성령을 부여받은 일이 그대의 큰 사업을 성공시키는 데 필수적이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그러나 그대에게 능력을 주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강하게 하시면, 그대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실수하는 자들에 대한 동정심

321 사랑하는 A 형제여:나는 그대에게 글을 쓰려고 일찍 일어났다. 최근에 부가적인 빛이 내게 주어졌는데, 이것에 대해서는 내게 책임이 있다. 이번 진술에서 주께서는 두 번 자신을 내게 계시하셨다. 밤에 그분께 간구드리고 있을 때, 이상 가운데서 나는 하나님의 사업과 관련된 많은 것들을 보게 되었다. 배틀크릭에 위치한 교회와 대학, 병원, 그리고 출판소들의 형편과, 유럽과 영국, 오레곤, 텍사스, 그리고 새로운 지역에서의 하나님의 사업이 내게 보여졌다. 새로운 지역들에서 사업이 바르게 시작되어 신령한 감명이 새겨져야할 매우 큰 필요가 있다. 이 새로운 지역에서 심령의 진정한 회심을 하지 아니한 많은 사람들이 그 진리를 받아들이거나 그것에 동의하게 될 위험이 있을 것이다. 폭풍과 유혹에 의해서 시험받게 될 때, 그들의 집은 반석 위에 지은 것이 아니라 미끄러지는 모래 위에 지어진 것이 드러날 것이다. 목사들은 실제적인 경건을 가져야 하며, 그것이 매일의 생활과 품성 가운데서 계발되어야 한다. 그의 강연은 전적으로 이론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텍사스에서의 진리의 사업의 번영에 해가 되는 여러 가지 것을 보았다. B형제와 그의 가족은 지금까지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의 사업에 축복이나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전에도 나는 그들의 영향이 달콤한 냄새를 풍기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하나님과 진리 편에서 건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해 줄 수 있는 요소들을 그들 속에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업을 세울 수 없었다. 만일 그대가 하나님의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대는, 특별히 그대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부터 경고를 받은 후에, 분별력이 그렇게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드러운 말과 아름다운 강연이 그대를 속여 왔다. 이러한 형제들은 모두 다 같지는 않지만 모두 결함이 있는 품성을 지니고 있다. 자신들을 끊임없이 살펴보고, 믿음 안에서 하나님께 열렬히 기도함으로써 그들은 바른 위치에서 설 수 있을 것이다. 322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들은 품성이 변화되고 주께서 오실 때 주님을 만날 수 있는 도덕적 적합성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어떤 중요한 책임도 주지 않으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영혼들이 위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양떼들을 인도하기에 부적합하다. 그들이 말을 적게 하고 잘 선택해서, 겸손하고 주제넘지 말게 해야 할 바로 그 때에, 그들의 품성의 본성적인 기질들이 그들의 모든 언행에 짜여 들어가고, 하나님의 사업은 망치게 된다.

그대와 C 형제는 참된 분별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대는 이 사람들의 능력을 너무 크게 신뢰했다. 한 배가 모든 면에서 괜찮은 것처럼 보여도, 거기에 한 가지 결함 - 벌레 먹은 목재의 한 부분 - 이라도 있다면,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의 생명은 위험하다. 사슬의 모든 연결이 다 훌륭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한 곳의 연결이 흠이 있다면 그 가치가 없어질 것이다. 훌륭한 자질을 갖춘 사람일지라도 엄숙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사업을 맡기기에 부적합한 어떤 두드러진 품성의 기질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인 품성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에서 부족하다. 그들의 본은 본받을 가치가 없다.

나의 형제여, 그대는 그대의 사업이 어떠해야 하며 어떻게 될 수 있는지에 앞서 그대를 위해 더 많은 것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대의 이해력은 어두워졌다. 성품이 저열하게 꼴 지워진 사람들과 연합하고 동정하는 것은, 그대를 고상하게 하거나 고결하게 하지 못하고, 그대의 정신을 녹슬게 하고 부식시키며, 유용성을 없애 버리고 그대를 하나님으로부터 단절시킨다. 그대는 충동적인 본성의 사람이다. 가정 생활과 사업에 대한 부담은 그대에게 무겁게 지워져 있지 않다. 그리고 그대가 끊임없이 하나님의 영의 깨끗케 하시는 영향 아래 있지 아니하면 그대는 저열한 태도를 갖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품성을 바르게 나타내기 위해서 그대는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며, 하고 있는 위대한 일에 있어서 하나님과 더욱 친밀히 연결되어야 한다. 그대가 예수 그리스도의 동역자가 되려면 그대의 사상은 높여져야 하며, 심령은 성화되어야 한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여, 스스로 정결케 할지어다.”

텍사스의 하나님의 사업은 만일 B 형제들이 그것과 관련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더 크게 발전했을 것이다. 323 나는 이 사업이 왜 이런지 구체적인 이유를 좀더 말할 수 있지만, 지금은 하지 않겠다. 이 사람들이 하나님과 올바르지 않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거의 어떤 직임도 맡을 능력이 있다며 자만하는 그들은 생득권처럼 전이되었으나 교육과 훈련과 단련에 의해 극복할 수 있었던 품성의 나쁜 특성을 교정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 면에 약간의 성과를 거두기는 했으나 저울에 달아본다면 여전히 부족함이 보일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올바른 생활 습관을 형성하는데 필요한 일반적인 원칙이 풍성하다. 그리고 증언들은, 일반적인 것이든 사적인 증언이든, 그들의 관심을 특히 이 원칙들에 끌어들이도록 의도된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그들로 하여금 결정적인 개혁의 필요성을 깨달을 수 있게끔 그들의 정신과 심령에 충분한 감명을 주지는 못했다. 만일 그들이 완전한 모형이신 분과 대조하여 자신들에 대한 정확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면, 사랑으로 역사하고 영혼을 정결케 하는 믿음을 간직했을 것이다. A B 를 제외한 이 형제들은 천성적으로 제멋대로 이며, 오만하고 자만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자신들보다 낫게 여기지 않는다. 그들은 교회 안에서 자기들보다 높게 평가되는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도 시기하고 질투한다. 그들은 자신들은 양심적이라고 공언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보다 더 뛰어나다고 여겨질 것이라고 그들이 두려워하는 그들의 형제들을 대하는 데 있어서는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킨다. 그들은 사소한 것들을 끄집어내고, 특수한 것들을 말하며, 언행에 그들 나름의 해석을 붙인다. 특히 형제들 중 이 두 사람이 그렇다.

이 사람들, 특히 A B 는 제멋대로 쉽게 말하는 사람들이다. 일들을 처리하는 그들의 부드러운 태도는, 정직한 것처럼 보이고 하나님의 사업에 진정한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여 그들의 말을 듣는 사람들을 속이고 혼란시키는 경향이 있다. 글을 쓰면서 나는 슬픔으로 심령이 아프다. 왜냐하면 이 가족들의 영향이 끼쳐지는 곳마다 그 영향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이 사람들에 대하여 다시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 앞에 엄숙하게 공개된 이 문제들을 보고 나는 한 번 더 쓰지 않을 수 없다. 324 하나님과 연결되었다고 공언하는 말씀의 목사들이, 이런 사람들의 영향을 분별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의 교사로서 서기에 부적당하다. 이러한 사람들이 자신의 제 분수를 지키고 결코 가르치거나 이끌려고 애쓰지만 않는다면, 나는 침묵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업이 손실을 입을 위험에 있는 것을 내가 볼 때 나는 더 이상 침묵을 지킬 수 없다.

이러한 형제들은 교회 안에서 지도자들이 되거나 어떤 자리도 차지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꾸밈없는 애정이 결핍되었다. 그들은 서로를 향하여 동정심이나 사랑이나 세련된 감정을 보이지 않고, 그들 가운데 시기와 질투, 언쟁과 투쟁에 빠져 있다. 그들의 양심은 온화하지 않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부드러움과 온유함은 그들의 경험을 부드럽게 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요소가 교회에 있는 것을 금하신다. 이런 사람들이 회심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하늘 왕국을 볼 수 없다. 자신들의 품성의 옷에서 죄악의 오점을 씻어 내어 어린양의 보혈로 희게 하기보다는, 분열시키고, 결점을 찾아내고, 다른 사람의 흠이나 결함을 찾는 것이 그 사람들의 정서에는 더 맞는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 이야기의 가장 고통스러운 부분에 다다르게 되었는데, 바로 D 형제에 관한 것이다. 주께서는 한 조사 과정을 보게 하셨는데, 거기에서 그대와 C 형제가 두드러진 역할을 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대들 두 사람으로 인해 슬퍼하셨다. 나는 나에게 고통과 자책감을 안겨준 것을 보고 듣게 되었다. 이 조사를 하면서 취한 그런 비이성적이고 불경한 방침은 B 형제에게서나 찾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C 형제와 그대 같은 사람들이 이 수치스럽고 일방적인 조사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는 데 대하여 나는 크게 놀라고 슬퍼하였다.

질문하고, 사소한 것들을 강하게 부각시키는 변호사[법률가] 역할을 하한 C 형제에게 나는 말한다. 나는 세상의 부를 내게 준다하여도 그런 일을 맡지 않을 것이다. 그대들은 자비의 모습이라곤 조금도 없고, 존경이란 한 터럭도 없는 이상한 영에 의해 단순히 기만당한 것이다. 325 이 경우에 시기와 질투, 악한 추측, 그리고 의문의 논쟁이 넘쳤다.

그대는 내가 너무 심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 일로 그대가 받아 마땅한 것보다 더 가혹하지는 않다. 그대가 죄없는 자들을 정죄할 때, 하나님께서 그대와 같은 사람과 함께 할 것이라고 그대들 모두 생각했는가? 그에 뒤따른 D 형제의 형편은 이 경우에 있어서 그대가 취한 태도의 결과였다. 그대가 공정함과 동정심을 보였다면, 그는 오늘날 온유하고 조용한 정신의 소유자들이 발휘하는 능력으로 진리의 편에서 영향을 끼치는 위치에 서 있을 것이다. D 형제는 능변가가 아니었다. 그리고 A B 의 침착하고 솔직하게 나타내는 부드러운 말과 멋진 대화가 큰 영향을 끼쳤다. 불쌍하고 눈먼 사람은 동정과 부드러움으로 대접을 받았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기는커녕 그를 가장 나쁜 시각에서 보게 만들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보시고 그 불공정한 조사에서 일익을 담당했던 그대들 중 어떤 사람도 죄없다 하지 않으실 것이다. A 형제여, 그 때에는 그대가 눈먼 형제를 심판하던 자리에 앉았던 때처럼 그렇게 즐겁게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대는 이 경험에서 한 교훈을 배워야 한다. 즉 하나님께서 그대로 하여금 붙들어 주고, 동정하고, 원기를 북돋워 주게 하실 바로 그 사람들에 대하여 편견을 갖도록 만들려는 사람들의 말에 그대의 귀를 닫는 일이다.

C 형제와 그대는 B 형제의 결점을 볼 수 없었고 그대는 또한 D 형제의 품성의 정반대 특성도 분별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으로 성화된 그의 영향은, B 형제보다 10배의 큰 힘을 하나님의 사업에 미칠 것이다. 그대는 D 형제를 크게 손상시켰다. 그리고 내가 권고하노니, 그대가 그 일을 흔쾌히 저질렀듯이 그렇게 흔쾌히 이것을 고백하면서 회개하라. 주님의 이름으로, 나는 인간의 영향을 떨쳐버리고 험담하는 이야기에 귀를 막도록 간청한다. 어떤 사람도 그대의 입 속에 증언을 넣지 못하도록 하라. 그리고 국내외에서, 거룩치 못한 사람들이 아닌,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그분의 사업에 대한 부담을 그대에게 지우게 하라.

C 형제는 그의 심령속에 부드럽게 하고 정련케 하는 하나님의 영이 필요하다. 그는 이것을 그의 집에서 실행할 필요가 있다. “거짓 없이 사랑하라.” 제멋대로 하는 것과, 전제적이고 비판적인 정신은 모든 악독과 함께 그의 가정에서 추방되어야 한다. 326 그와 동일한 거만하고 판단하는 정신이 교회에서 추방될 것이다. 그의 감정이 한동안 다소 부드러워진다면 그는 보다 친절하게 행동할 것이나 그 반대가 된다면, 그는 그에 따라 행동할 것이다. 그는 자제와 자율을 실행하지 않았다. D 형제가 하나의 결점이 있다면, 그를 심판한 사람들과 그를 정죄한 사람들은 열 개의 잘못을 지니고 있다.

A 형제여, 왜 그대는 압제받는 사람들 편을 온전히 들어주지 않았는가? 왜 그대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는가? 왜 그대는 그대의 구주처럼 음성을 높여 말하지 않는가? “그대들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대는 그대가 그 일을 모르고 했지만, 하나 이상의 많은 영혼을 잃게 될 큰 실수를 저질렀다. 그대가 D 형제에게 한마디라도 부드러운, 진정한 동정의 말을 건넸더라면, 그것은 그대의 하늘에 있는 그대의 계정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는 그리스도를 정죄했던 사람만큼이나 현세와 영원을 위해 그대가 하고 있었던 일에 대한 분별력이 없었다. 그대는 그분의 성도들을 정죄하고 판단함으써 구주를 그렇게 한 것이다. “너희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곧 나에게 행한 것이니라.” 위선은 언제나 예수님으로부터 극심한 책망을 받는 한편, 진실한 회개로 그분께 오는 아무리 흉악한 죄인도 영접 받으며, 용서받고 위로를 받았다.

그대는 그[D형제]의 형제들이 그로 하여금 그것을 믿게 했기 때문에, 그른 것이 바르고, 바른 것이 그르다고 D형제에게 믿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는가? 그는 병들었고 신경질적이었다. 모든 것이 그에게는 어둡고 불확실하게 보였다. 그대와 C 형제에 대한 그의 신뢰는사라졌는데, 그러면 그는 누구를 바라보아야 겠는가, 그는 이런 저런 일로 책망을 받아서, 마침내 그는 당황하고, 마음이 어수선하고 절망적이 되었다. 그를 이 지경에 빠뜨린 자들은 더 큰 죄를 지었다.

세상 사람 차원의 동정심조차도 어디에 갔는가? 세상 사람들도 대체로 이처럼 무관심하거나 자비심과 예모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의 연약함 때문에, 그를 따뜻한 관심과 이웃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더 많은 동정심을 베풀었을 것이다. 327 그러나 여기에 눈먼 사람,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형제가 있었고, 그의 몇 형제들은 그를 심판하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 조사의 과정 중 한 번 이상, 한 형제가 토끼처럼 사냥당해 죽을 지경에 이른 때에, 그대들은 큰소리로 웃어 제쳤다. 거기에 본래 친절하고 동정심이 있는 C 형제가 앉아 있었다. 그는 먹이를 얻기 위해 죽이는 사냥놀이를 하는 잔인성에 대해 형제들을 책망했다. 그런데 여기 한 가련한 눈먼 사람, 곧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이 그분의 보호 아래 있는 말못하는 생물보다 높은 존재이듯이 새들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분의 음성이 그대들이 모인 곳에 들릴수 있었다면, 그대들은 결코 사람이 말하듯이 말씀하지 않으시는 분의 음성, 즉 그대들은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약대는 삼키는”구나 라는 선언을 듣게 되었을 것이다.

새에게 그처럼 부드러운 동정심을 보이셨던 분께서는 그분의 억압당하는 성도의 인격 가운데 그리스도를 위한 사랑과 칭송할 만한 긍휼을 행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들은 눈가리움을 받은 사람 같았다. B 형제는 부드럽고 힘있는 말을 했다. D 형제는 능변가가 아니었다. 그의 생각은 자기 입장을 변명할 수 있는 언어로 꾸며지지 않았으며, 너무 놀란 나머지 상황을 될 수 있는대로 이용하지도 못했다. 그의 날카롭고 비평 잘하는 형제들이 재판관이 되었고, 눈먼 사람은 크게 불리한 자리에 놓였다. 하나님께서는 그 날의 재판을 보셨으며, 주목하셨다. 상황을 호도하고 자기 입장을 변명하는 데 명수인 이 사람들은 명백하게 승리를 얻었고, 이 눈먼 형제는 그릇된 취급을 받고 학대받아서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느꼈다. 그가 그리스도의 대표자들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에 대한 그의 신뢰는 크게 흔들렸다. 그가 당한 도덕적인 충격은 영적으로, 육신적으로 그를 거의 파멸시켰다. 이 일에 관계된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깊은 후회와 회개를 느껴야 한다.

D 형제는 다른 사람들이 받았어야 할 치욕의 짐, 부당한 비평의 짐에 눌려 쓰러짐으로써 실수를 했다. 그는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의 사업을 사랑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번영케 해주심으로써 눈먼 사람에 대한 그분의 관심을 보여 주셨는데, 그의 시기하는 형제들은 이것마저도 그를 헐뜯는 데 사용하였다. 328 하나님께서는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가 장님이기 때문에 그를 동정하고 친절하게 대할 마음을 넣어 주셨다. D 형제는 그리스도인 신사였으며, 그는 심지어 그의 세상적인 대적들과도 화평을 유지했다. 하나님은 그에게 자애로운 아버지이셨으며, 그의 여정을 평탄케 하셨다. 그는 진리에 대한 지식에 진실해야 했으며, 비난, 시기, 거짓 고소에 개의치 않고 심령의 단순함으로 하나님을 섬겼어야 했다. A 형제여, D 형제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한 것은 바로 그대가 취한 입장이었다. 비록 목사들이나 백성들이 그가 보기에 아무런 공의도 찾을 수 없는 길을 취한다 할지라도 그는 하나님을 붙든 손을 놓치 말았어야 했다. 영원한 반석 위에 굳게 고정되어, 그는 원칙에 견고히 서서, 만난을 무릅쓰고 믿음과 진리를 수행했어야 했다. 오, D 형제에게는 구원하기에 능하신 팔을 더 굳세게 붙잡는 일이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했는지!

이생에서의 모든 가치와 위대함은 그것이 하늘과 미래와 불멸의 생명과 연관되는 데서 비롯된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팔은 그 영혼이 아무리 미약할지라도 도움을 구하기 위해 그분에게 오는 영혼을 감싼다. 언덕 속의 보석들은 사라질 것이나 하나님을 위해 살고, 책망에도 끄덕하지 않고, 칭찬을 받아도 타락하지 않는 사람은 그분과 함께 영원히 살 것이다. 하나님의 도성은, 이 땅에서 인도하심과 지혜를 위해, 그리고 상실과 고통 중에 위로와 소망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께 의지하는 법을 배운 모든 사람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황금 문을 열게 될 것이다. 천사들의 노래는 거기 들어온 그를 환영할 것이며, 그를 위해 생명나무는 그 열매를 낼 것이다.

D 형제는 그가 성공해야 했을 곳에서 실패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동정하시는 눈은 그를 바라보신다. 비록 사람의 동정은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사랑하시고 동정하시며, 그분의 도움의 손길을 펼치신다. 만일 그가 겸손하고 온유하고, 심령을 낮춘다면, 그분은 그의 머리를 높이 들어 그의 발을 영원한 반석 위에 세우실 것이다. “산들은 떠나며 언덕은 움직일 지라도 나의 인자는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나의 평화의 언약은 옮기지 아니할 것이라 자비하신 주가 말씀하시니라.”

우리 중 누구라도, 어떤 시험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붙잡은 손을 놓은 것에 대해서 변명할 수 없다. 그분은 모든 시험 가운데서 우리의 힘의 원천이시며, 요새이시다. 329 우리가 도움을 달라고 그분께 외치면, 그분의 손은 구하기 위해 힘있게 펼쳐질 것이다. 비록 모든 인간 친구들이 그를 버릴지라도 D 형제는 그분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기 때문에 희망과 기쁨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야 했다. 나는 그에게, 연약한 인간이 그를 잘못 판단했다고 해서 하나님께 대한 그의 봉사를 그치지 말 것을 간청하며, 서둘러 하나님께 헌신하며, 그의 힘을 다하여 그분을 섬기라고 탄원한다.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시며, 그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대하든지, 그의 일은 그의 믿음과 일치해야 한다. 그의 대적은 그에 대한 심판이 그들이 옳았다는 증거로 그의 현재의 처지를 지적할 것이다. D 형제의 처신은 성급했고, 합당한 생각이 결여되었다. 그의 영혼은 미워함을 받았고, 그는 그것이 회복될 가망이 없도록 너무 철저히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했다. 그를 그처럼 가혹하게 몰아친 사람들은 생애와 품성에서 결코 흠 없지 아니하였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들이 D 형제를 다루던 식으로 그들의 불완전한 품성과 비뚤어진 길들을 재판하셨다면, 그들은 오래 전에 멸망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긍휼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 대해 참으시고, 그들의 죄에 따라 그들을 다루지 아니하셨다.

하나님께서는 D 형제에게 진실하셨다. 그리고 그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도 보일 통상적인 자비와 인정을 그에게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대우들에 반응해야 한다. 구설의 다툼을 피해 그리스도 안에 숨는 것과, 다함이 없는 감사와 만족의 원천이 그에게 개방되어 있고 언제라도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 D 형제의 특권이었다. 그가 지상의 보화를 무한히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구원의 우물에서 풍족히 마시고 옳은 편에 설 수 있는 특권을 지닌 지금처럼 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를 위해 죽도록 그분의 아들을 주신 하나님께서 D 형제를 위해 하시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분이 그분과 함께 이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시지 않겠는가? 사람들이 그를 불신실하게 대했다고 해서 왜 그가 하나님께 불신실해야 하는가? 고통 당하는 자신의 자녀에게 어머니를 묶어 매는 사랑이 죽음보다 얼마나 강한가?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비록 어머니가 그의 자녀를 잊을 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 그를 신뢰하는 한 영혼도 잊혀짐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330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을 가장 자애로운 관심을 갖고 생각하고 계시며, 그분의 돌보심을 받는 자녀들을 결코 잊지 않으시도록 그분 앞에 항상 기념책을 펼쳐 놓으신다.

모든 인간적 유대는 사라지고,친구가 친구를 배반하고,어머니가 그의 자식을 소중히 기르는 일을 그칠지라도, 하늘과 땅은 마침내 옮겨질지라도, 그러나 여호와의 사랑은 변할 수 없네.

D 형제 자매는, 교회가 그들의 노고를 받아들였다면, 더 잘 이해되는 자리에 놓이게 되어 교회에 귀한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기와, 악한 추측과 질투가 그들을 교회에서 쫓아내었다. 그들이 더 빨리 그들의 시험의 장면에서 떠났더라면 그들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살렘, 오레곤, 1878년 7월 8일

텍사스의 사업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텍사스에서의 사단의 일에 관한 많은 것과, 미시간에서 그곳으로 이주한 어떤 사람들의 비그리스도인적인 행위를 보여 주셨다. B 형제가 그들에게 주어진 증언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나에게 보여졌다. 그들은 예언의 신보다 자신들에게 더 신뢰를 갖고 있었다. 그들은 주어진 빛은 하늘에서 온 것이 아니라 그들에 관해 나에게 보고된 것들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느꼈다. 이것은 옳지 않다. 내가 묻고 싶다. 보고에 대한 근거가 없었는가? 바로 그들의 생애의 역사가 그들의 행위를 정죄하고 있지 않는가?

이 가족 중에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를 가르치는 지도적인 책임을 지는 데 적합한 종교적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여 스스로 정결케 할지어다”라는 말은 하나님의 천사가 한 말이다. “그대는 그분의 거룩한 일의 어떤 부분도 행하도록 선택받은 하나님의 그릇이 아니다. 그대는 깎아 내리고 부식시키지만, 그러나 성결케 하거나 축복하지 않는다.” B 형제여, 그대는 그리스도인의 아주 낮은 표준을 지니고 있다. 한때, 그대는 그대가 잘 알려져 있지 않았을 때, 영향력이 있었다. 331 영향력을 얻자, 그대는 경계를 덜하고 심령의 본성적인 성향을 표출시켰다. 마침내, 진리를 사랑하는 자들은 그대가 하나님의 사업의 발전에 큰 장애가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만일 그대가 항상 친절과 존경과, 고상한 사랑과 관용을 심지어 사악한 사람에게까지 나타낸다면, 그대는 그리스도께 효과적인 봉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리스도의 영이 그대 안에 거하신다면, 그대는 말과 행위와 심지어 얼굴의 표정에서까지 그분을 드러낼 것이다. 그대의 대화는 자만과 오만이 아닌 온유를 나타낼 것이다. 그대는 자신을 높이거나 자신에게 영광을 구하지 않을 것이다. 겸손함은 그대가 잘 알고 있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의 미덕이다. 그대는 최상권을 탐했고, 그대의 힘과 우월함을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고 명령하는 방식으로 사용하려고 애썼다. 특별히A B 형제의 경우가 그렇다. 그와 그의 아내는 그들의 영향으로 하나님의 사업의 도덕적, 영적 입지를 높일 수 없었다. 하나님의 사업과 관련되어 그들의 영향력의 범위가 제한되면 될수록 그 사업에 더 좋을 것이다. 거래에 있어서 그들의 언행은 믿을 수 없다. A B와 그 형제들의 경우가 그렇다. 세상과 교회는 그들의 신앙이 공허하다고 말할 권리가 있다. 그들은 세상적이고 교활하며, 그들은 각박한 거래를 할 기회를 찾고 있다. 그들은 그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게 잔혹하며 가혹하다. 그들은 질투하고 시기하며 우쭐댄다.

진리를 이렇게 나타내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하도록 큰 장벽을 쌓아 올린다. 그들이 변화되지 않는 한, 차라리 그들이 진리를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영보다는 사단의 지배를 받는다. A B 형제의 아내는 본래 친절한 마음을 가졌으나, 남편에 의해 꼴 지움을 받았다. 그 여자는 주의 없이 말하는 사람이다. 그녀의 혀는 자주 지옥의 불을 지핀다. 그것은 길들여지지 않았다. 솔로몬은 말하기를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렵다고 했다. 그녀의 경우가 꼭 그렇다. 그녀는 과장하고, 거짓 증거를 대고 이렇게 해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고 공언한다. 332 그녀는 잘못을 행할 의도는 없지만, 그녀의 심령은 진리로 성화되지 않았다.

그대, B 형제여, 그대는 주제넘게도 우리의 신앙의 요점들을 놓고 다른 사람들과 논쟁을 해왔지만, 언제나 예외없이, 그대는 그리스도교에 속한 것들에 관하여는 흐리멍텅하다. 그대는 그대가 현재 위태로운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는 전혀 꿈에도 생각지 않고 있다. 이 무감각은 교회와, 그대처럼 그들의 행위로 그분을 부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좍 퍼져 있다. 그대는 다른 사람들을 그대가 걷고 있는 무모한 길로 이끌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을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예수께서는 우리 모두를 죄악에서 구속하시고 순결하게 하시기 위해 돌아가셔서, 우리로 하여금 선한 사업에 열심하는, 특별한 백성이 되게 하셨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한편으로 그대가 마음에 죄를 품고서 기도한 것은 얼마나 되는가? 그대가 전적인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멀지않아 책망에 싫증을 느끼고 불평으로 인해 그들과 같이 그대는 하나님에게서 배도하게 될 것이다. 그대들 중 어떤 사람들은 말로는 견책을 인정한다고 말하지만, 마음으로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대는 전과 똑같이 행하고 있으며, 점점 더 하나님의 영의 감화에 대한 감수성이 적어지고, 점점 더 눈이 멀고, 지혜가 적어지며, 자제가 줄어들며, 도덕력이 약화되고, 열심과 종교적인 행사에 대한 미각을 잃어 가고 있다. 회개하지 않으면, 그대는 마침내 하나님을 붙잡은 손을 완전히 놓게 될 것이다. 그대는 그대의 품성의 결점과 그대의 생애와 그리스도의 생애 사이의 엄청난 대조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견책이 주어졌을 때 그대의 생애에 결정적인 변화를 이루지 못했다. 그대의 형제들의 신임을 전적으로 잃지 않는 위치에 있으려는 것이 그대의 방침이 되어 왔다.

나는 _________ 교회의 형편이 개탄스러운 것을 보았다. A B 형제여, 그대와 그대의 아내의 영향은 그대 모두가 알다시피, 불화와 투쟁을 낳았고, 그대가 위치를 바꾸거나 회심하지 않는 한 교회를 철저히 황폐케 할 것이다. 333 그대는 그대와 관계하고 있는 사람들을 부패케 하고 부식시키고 있다. 그대는 동조하는 자들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대를 보시는 것처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인식은 그대들의 다변과 매끄러운 말솜씨 때문에 왜곡되었다. 이것은 참으로 슬프고 용기가 꺾이는 상황이다.

말에 관한 한, A B는 모임을 이끌 자질이 있지만, 도덕적 적합성을 재 본다면 그는 부족함이 보일 것이다. 그의 심령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지 않다. 다른 사람이 지도적인 입장에 선다면, 그들은 그와 그의 아내의 절대적인 정신과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이 성화되지 않은 정신은 공공연하게 나타나지는 않지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은밀하게 방해하고, 당황케 만들고 낙담시키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아시며, 그것은 때가 되면 그 공의로운 보응을 받게 될 것이다. “지배하하던지 파멸시키던지”가 이 형제의 정책이며, 그의 아내도 더 나은 형편이 아니다. 그녀의 감각은 왜곡되었다. 그녀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지 않다.

A B 형제여, 그대가 만들고 있는 슬픈 역사의 기록은 하늘에 간직되고 있다. 마음 가운데서 그대는 책망의 증언과 싸우고 있다. E 가족은 그대에게 기만당했고 지금도 당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그대가 현대 진리에 대해 말을 잘하고 있기 때문에다소간 혼돈을 겪고 있다. _______ 교회에는 조화와 일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대는 그대에게 주어진 빛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것에 따라 행하지 않았다. 그대가 솔로몬의 말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그대는 지금 그처럼 불안정한 길에 서 있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그는 말한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그대 자신의 지혜를 크게 불신하면서 하나님의 뜻과 방법에 전적으로 순복했다면 그대는 안전한 길로 인도 받았을 것이다.

그대의 자아 신뢰는 매우 컸다. 한 형제에게 모임들을 지도하라는 제안이 주어지거나, 그대보다 중책을 차지하자마자, 그대는 만일 그대가 그것을 도우면 할 수 있는 한 그가 성공하지 못하게 해야 겠다고 결심하고, 그대의 왜곡된 의지의 힘을 사용하여 적대하는 정신을 나타내 왔다.

D 형제에 대한 그대의 태도는 독설적인 것이었다. 그의 심령은 그대에 대한 깊은 동정으로 뭉클거렸다. 그는 그대의 친구였다. 그러나 그가 그대로부터 떨어져 나갔다는 그 사실은 그대의 마음속에 음부같이 잔혹한 정신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334 그리고 이 정신은 모든 사람으로부터 가장 친절한 관심과 깊은 동정을 받아야 했던 한 눈먼 사람을 대적해 발휘되었다.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 사람보다는 그대에게 동정하도록 이끈 것은 그대의 왜곡되고 기만적인 정신이었다. 그의 경우에 관한 명백한 사정이 형제들에게 제시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보고, 또한 악이 의를 이기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확신하게 되었을 때, 그의 정신은 너무도 상처받아서 그는 절망에 빠졌다. 그가 하나님을 붙든 손을 놓은 것은 바로 그때였다. 부분적인 마비의 충격이 그에게 임했다. 그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거의 파멸되었다. 교회의 집회들에서 별 가치가 없는 일들이 논의되었고, 숙고되었고, 또 이용되었다. 그리고 참석한 사람들의 마음에 참혹하고도 잘못된 인상들이 심어졌다.

온갖 역량을 지니고 있는 온전한 사람을 이렇게 해하려고 도모하는 것은 큰 죄다. 그러나 눈먼 사람, 자신의 시력 상실의 아픔을 가능한 한 적게 느끼게끔 취급을 받아야 할 사람을 이런 식으로 다루는 것은 훨씬 더 큰 죄악이다. 그대가 올바른 감정을 지닌 사람이라면, 그리고 공언하다시피 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대는 그를 그렇게 마구 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D 형제는 그를 위해 송사하시며, 하나님의 약속을 새롭게 붙잡도록 그에게 힘을 주시는 하늘 친구를 가지고 있다. D 형제가 그가 당한 수모와 큰 슬픔으로 인해 정신이 없었을 때, 그는 미친 사람처럼 행동했다. 이것은 또 그가 그릇된 정신을 가진 증거로 그를 대적하는 데 이용되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아시는 심판자께서는 동기를 헤아리시며, 그분은 일이 행해진 대로 갚으실 것이다.

A B 형제여, 그대는 헛된 자부심으로 우쭐해 있고, 자신이 어떤 일도 능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대는 하나님의 영의 「증언」을 저버렸다. 그리고 만일 그대가 그대 뜻대로 한다면, 모든 것을 새로운 틀에 던져 넣을 것이다. 의무가 이쪽 방향으로, 경향은 다른 쪽으로 이끌 때 그대가 올바른 시각에서 사물들을 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스도의 품성에 대한 그대의 개념과 내세를 위한 필수적인 준비에 대한 개념은 너무 편협하고 삐뚤어져 있다. 335 나는 B 형제와 그의 가족이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저희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열매 없는 가을 나무”이다.” 그리고 그들이 추구해 온 노선을 계속 따른다면, 그들은 마침내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히게” 될 것이다. 그들 자신의 지혜에 기대어, 그들은 실제적인 경건도, 하늘도, 하나님도 그들의 것이 아닌 지점까지 내려갔다.

만일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분과 모두 연결되어 있다면, 그들은 이런 사람들의 제한된 능력과 선입견과, 시기와 질투, 자아 신뢰를 분별할 것이다. 사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님의 「증언」에 대하여 제기하는 반대는, 하나님의 섭리로 제거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 지어낸 의심들에 걸려서 넘어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의 교만한 심령이 결코 겸손해지지 않고, 그들의 높은 콧대가 결코 낮추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성경은 그리스도인 의무에 관계된 모든 사항들에 대해 명확하게 말한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 교훈을 알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의의 태양이 아닌, 자신의 약한 불에서 빛을 찾고 있다.

자신의 진정한 감정을 말하지 않는 모든 사람은 아무도 진실한 사람이라고 불려질 수 없다. 거짓은 참으로 속이고자 하는 의도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것은 시선이나 말로 표현될 수 있다. 심지어는 사실이라 할지라도 거짓 이 되도록 배열하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일에 능숙하고, 그들은 엄격한 정직으로부터 벗어난 것에 대해 자신들을 합리화시킬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명성을 파괴시키고 손상시키기 위해 악의로 그들에 관하여 거짓을 날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리사욕을 위해 물건이나 가축들, 그리고 어떤 종류의 상품을 매매하는 일에 있어서 거짓말이 발해진다. 허황된 거짓이, 자신이 있는 그대로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에 의해 말해진다. 어떤 이야기도 꾸며짐 없이 그들의 손을 통과할 수 없다. 오, 세상에는 그 일을 행하는 사람들이 언젠가는 그 일을 취소하기를 바랄 일들이 얼마나 많이 행해지고 있는지! 그러나 하늘의 책들에 기록된 언행의 기록은, 말해지고 행해진 거짓말의 슬픈 이야기를 말하게 될 것이다.

336 온갖 종류의 거짓과 기만은 진리와 진실의 하나님에 대한 죄악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점에서 분명하다. 그대들은 “속이지 말며 서로 거짓말하지 말”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니라.” 하나님은 진실과 진리의 하나님이시다. 예수께서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다. 교회는 증인이며 진리의 터이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모든 교훈은 참되고 의롭다. 그렇다면, 어떻게 변명과 어떤 과장이나 기만이 그분의 눈앞에 나타나게 될 것인가? 선지자가 거절했던 선물을 탐내서 거짓을 말했기 때문에, 엘리사의 종은 문둥병에 걸리게 되었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심지어 생명 그 자체도 거짓의 대가로 얻어져서는 안 된다. 순교자들은 단 한 마디의 말이나 끄덕거림으로 진리를 부인하고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우상의 제단에 단 하나의 향 가루를 던지는 데 동의했었다면 그들은 고문대와 단두대, 혹은 십자가를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비록 그렇게 해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게 된다 할지라도, 말이나 행동으로 거짓말을 하기를 거절했다. 그들은 기만과 거짓과 배교를 조건으로 놓여나기보다는, 투옥과 고문과 죽음을 깨끗한 양심으로 환영했다. 충성심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그들은 흠없는 두루마리와 보석이 박힌 면류관을 얻었다. 그들이 극한 상황 하에서도 진리를 위해 굳건히 섰기 때문에 그들의 생애는 고상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눈앞에서 높여지게 되었다.

사람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들은 진실로 경건할지라도 많은 이해의 실수들과 품성의 결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의 추종자이면서 “거짓을 행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연합할 수 없다. 이런 생애는 기만이며, 영원한 거짓이고, 치명적인 속임수다. 자기의 죄에 감연히 맞서서 그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은 남녀들의 용기에 대한 엄격한 시험이 될 것이다. “잘못은 나에게 책임을 돌리라”고 말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극히 제한되게 가지고 있는 내적인 원칙의 용기를 필요로 한다. 337 그러나 이것을 신실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자아에 대한 결정적인 승리를 얻게 되며, 원수가 들어오지 못하도록문을 닫을 수 있다.

진리의 원칙을 엄격하게 고수하는 것은 당장의 불편함을 초래하며, 심지어는 일시적인 상실을 가져다 줄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내세에 상급을 증가시켜 준다. 종교는 단지 메마른 교리의 체계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으며, 생애를 성결케 하고 가정 생활과 교회 안에서의 행동을 바로 잡아주는 실제적인 믿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많은 사람들은 박하와 회향의 십일조를 드리면서도 더 중요한 문제인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은 소홀히 한다. 하나님과 겸손히 동행하는 것이 그리스도인 품성의 완전에 있어서 꼭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모든 거래 행위의 아주 작은 것에서라도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 원칙을 요구하신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느니라.

사업상 거래를 공정하거나 불공정하게 만들고 또는 정직하고 부정직하게 만드는 것은 그것의 크기나 사소함이 아니다. 정직으로부터 아주 조금이라도 이탈하면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원수의 땅에 발을 들여 놓게 하는 것이며, 이것이 한 발 한 발 더 나아가서 어떠한 크기의 불의에도 빠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스도교계의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그들의 사업과 분리시키고 있다. 수천 번의 속임수와 소소한 부정직이 그들의 동료들과의 거래에서 행해지고 있는데, 이것은 부패된 그들의 진정한 심령의 상태를 보여준다.

그대, A B 형제는 진리의 사업을 영화롭게 하지 않는다. 샘이 정결케 되어야 샘물이 깨끗해질 수 있다. 그대의 아내는 그녀의 형제 자매들의 품성에서 점과 흠을 찾는 일을 너무 많이 하고 있다. 이웃의 정원에서 잡초를 뽑으려고 애쓰는 동안 그녀는 자신의 것에 소홀하다. 그녀는 흠없는 품성을 건설하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해야 한다. 그녀가 여기에서 실패할 두려운 위험이 있다. 만일 그녀가 하늘을 잃는다면 그녀는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그대들 모두는 심하게 오염된 영혼의 성전을 정결케 해야 한다. 그대들의 마음은 비참하게 왜곡되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 열심을 내고 자아를 불신하라. 그러나 다른 사람에 관한 그대의 심령의 질투를 표현하는 일에 그대의 혀를 결단코 사용하지 말라. 그대들 모두가 해야 할 큰 일이 남아 있다. 338 그대들 둘 모두 해야 할 일, 즉 하나님 앞에 그대들을 낮추어 그분이 그대들의 회개를 받아들이시도록 해야 할 큰 일이 있다. 지금까지 그대는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였지, 그 말씀을 끈기 있게 실행하는 자는 아니었다. 그대는 반복해서 그대가 잘못임을 인정하였지만, 그러나 그 저속한 마음은 변화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그대는 감정의 영향으로 약간의 변화를 일으켰지만, 그러나 원칙의 변화는 없었다. 나는 그대의 생애에 전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대의 경우를 취급할 조치가 취해질 시간이 다 된 것을 나는 보았다. 하나님의 교회는 그대의 저속한 방법과 그리스도인의 낮은 표준과 타협할 수 없다.

그대 형제들 중 하나는 한 자리를 차지하기에 충분하다. 그대는 그대들 가운데서 끊임없이 투쟁과 전쟁을 하고 있으며, 증오하고 서로 미워한다. 그러나 그대는 그대와 교제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조소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그대는 하나님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대 자신이 대체로 옳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대들 각자는 그리스도의 품성에 대해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분과 같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보다 분명하게 분별할 필요가 있다. 그대들 모두 품행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대들의 뽐내고 전제적이며 무례한 행위들을 전적으로 극복하지 않는다면, 그대들은 어디에 있든지 사업에 수치를 돌릴 것이다. 그리고 그대들은 전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대들이 좌로나 우로나 선택할 때가 왔다. “만일 여호와가 너희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그대 안에서 형성된 일그러진 품성은 그리스도인 이름에 불명예가 된다. 그대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떤 교회도 그대의 지배나 지도 하에서 발전하지 못한다. 그대는 거만하고 교만하며, 자아를 존중하고, 다른 사람들을 그대 자신과 같은 유형으로 꼴 짓는다.

하나님의 교회는 그대의 비그리스도인적인 행위와 품행 때문에 오랫동안 괴롭힘을 받아 왔다. 하나님께서 그대를 도우셔서 그대의 영원한 이익을 위해서는 전적인 변화가 필요함을 알고 느끼게 하시기를 나는 바란다. 그대의 모본으로 다른 사람들이 정결하고 고상한 거룩함의 길에서 떠나가고 있다. 진실로 위대한 사람은 변함없이 예모가 있다. 겸손은 그들에게 의복처럼 자연스럽게 꼭 어울리는 미덕이다. 339 그들의 마음을 유용한 지식으로 채우고, 진정한 재능과 세련됨을 소유한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지혜의 연약함을 기꺼이 인정할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아를 신뢰하거나 뽐내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다다라야 할 높은 지적인 위대함을 성취하는 일에 관한 한, 그들은 이제 막 첫 걸음을 뗀 것처럼 그들에게 보일 것이다. 지식의 초보자이거나 수박 겉 핥기 식의 사람들, 자신을 현명하다고 생각하거나 중요한 것으로 거부감을 풍기는 사람들은 피상적인 지식의 소유자들이다.

그대는 오늘날 명예롭고 신뢰받는 사람이 되었어야 했으나, 그대 자신에게 너무 만족하여 그대에게 은혜스럽게 주어진 빛과 특권 가운데서 향상하지 못했다. 그대의 마음은 그리스도인 미덕들로 말미암아 넓어지지 않았으며, 생명의 시여자와의 교제로 애정이 성화되지도 않았다. 외적 품성을 인치고 의심할 나위없이 그대가 그대 소견에 옳은대로 살아왔으며 자기 꾀로 가득찼다는 것을 보여 주는 소심함과 세속성이 있다.

하나님과 연결되고 그분의 인정하심을 신실하게 구할 때, 사람들은 높아지고 고상해지며, 성화된다. 고상하게 되는 것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스스로 성취해야 할 것이다. 하늘은 현세적인 것과 영적인 것에 관한 한 모든 유익을 그에게 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기꺼이 이 축복을 자기 것으로 삼고 스스로를 돕지 않는 한 이 모든 것은 헛것이 될 것이다. 그가 가진 힘은 사용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마침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하다고 선언될 것이다. 그는 이생에서 실패자가 될 것이며, 미래의 생명도 잃게 될 것이다.

위로부터 도움을 구하기 위해 결정적인 노력을 하고 자아를 복종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 모든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도 성공을 거두고, 미래의 영생도 얻게 될 것이다. 이 세상은 사람이 일할 터전이다. 미래의 세상을 위한 그의 준비는, 이 세상에서의 자신의 의무를 행하는 방식에 의존한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사회에 축복이 되도록 계획하셨으므로, 그가 하려고 해도 자신을 위해 살고 죽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한 가족의 식구로 함께 묶으셨으며, 모든 사람이 이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우리가 소홀히 하고서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고 할 수 없는, 남에게 해야 할 봉사가 있다. 340 자신만을 위해 살고 생각하며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쓸모 없이 되는 길이다. 어마어마한 직함이나 큰 재능이, 좋은 시민이나 모본적인 그리스도인이 되는데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 가운데는 불안정하고 말이 많고, 자화자찬하며 노골적으로 자신을 앞세우고, 나이든 사람들이나 경험이 많은 사람들과 직원들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주 많이 있다. 교회는 다른 품성­예모 있고 조용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을 가진 사람, 탐탁하지 않은 부담이 지워질 때, 이름 때문이 아니라 자기를 위해 돌아가신 주님에 대한 봉사를 위해 이것을 기꺼이 질 사람의 도움이 없어 고통을 겪고 있다. 이런 품성의 사람들은 노인들 앞에서 일어서고 백발 노인을 존경하는 것이 그의 위엄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생각지 않는다. 너무 많은 자아 높임과 자만이 그들 가운데 존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경외하고 존중하는 사람들을 영예롭게 하기를 기뻐하신다. 사람은 아주 높임을 받아서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고리가 될 수 있다. 그는 창조주의 손에서 나올 때 균형잡힌 품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신의 노력에 하나님의 영향을 결합시켜 그가 자신을 거의 천사의 영역에까지 높일 수 있는 능력, 향상시킬 수 있는 그러한 능력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이렇게 높여질지라도, 그는 자신의 선함과 위대함을 의식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높이 계발시킬 수 있는 지적인 능력을 주셨다. B 형제가 그들의 품성의 본성적인 저열함과 거친 것을 보았더라면, 그리고 세심한 주의로 마음을 계발시키고 훈련시켜서, 그들의 품성의 약점이 강화되고 눈에 띠는 결점들이 극복되었다면, 그들 중 얼마는 그리스도의 사자들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상태로는 그들은 한 사람도 그분의 대표자로서 그리스도께서 받아들이실 수 없다. 그들은 진보를 위해 애쓰도록 만들만큼 진보의 필요성을 충분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마음은 연구와 관찰, 반성, 그리고 생애의 의무들을 위해 철저하게 자신을 교육시키려는 계속적인 노력으로 훈련을 받지 못했다. 향상의 수단은 모든 사람들이 미치는 범위 안에 있다. 아무리 가난하고 바쁠지라도 예수님이 그들을 도와주시면 그들의 생애와 품성에 있어서 향상할 수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신만을 돌보는 목회자

341 F 형제 자매여:나는 하나님께서 그대들에게 또 다른 시련을 주심에 있어서 하나님의 위대한 자비와 무한한 사랑을 보았다. 그대가 육체적·영적 힘을 얻도록 능력 있으신 치료자를 굳게 붙잡을 적극적인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그대는 건강하지 못하다. 그러나 그대 실제보다 자신의 건강이 더 나쁜 상태에 있다고 생각할 위험이 있다. 그대는 인내하고 희망적이며 용기 있는 정신을 품고 있지 않기 때문에 견딜 수 있는 힘이 없다. 그대는 질병을 딛고 일어나는 대신 그것에 굴복하였다. 시험들이 그대를 좌우에서 맹렬히 공격할 것이나, 인내성 있게 선행을 계속해 나감으로써 그대는 품성의 결함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대들이 참으로 사지(死地)에 발을 들여 놓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대들 중 어느 누구도 완전히 버리지 않으셨음을 보게 되었다. 그분에 대한 그대들의 충성을 입증할 또 다른 기회를 주시는 그분의 비할 데 없는 자비는 그대에게 위대한 겸손으로 행하고 자신을 방비할 것을 요청한다. 그대는 너무 귀여움을 받았고 자행자지하는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이제는 정반대 방향에서 일할 필요가 있다.

F 형제여, 그대는 너무 이기적이었다. 이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경멸받을 일이었다. 그대와 아내는 이 악에 계속해서 걸려 넘어져 쓰러졌다. 그대의 능력은 자기 만족과 자아 몰입으로 크게 위축되었다. 그대들 누구도 선천적으로 이성과 분별력이 모자라지 않다. 그러나 그대는 의무의 길보다는 경향을 따랐고, 품성의 잘못된 특질을 극복하고 연약한 도덕력을 강화시키는 데 실패했다.

F 형제여, 그대는 집에서 천성적으로 참지 못하고, 화를 잘 내며, 가혹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대는 조금 사귄 후에 새로운 지역에서 이것을 나타낸다. 그대는 자주 인내하지 못하고 고압적인 태도로 말한다. 이것은 모두 회개해야 할 것이다. 그대는 지금 새롭게 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무한한 자비로 다른 기회를 주셨다. 그대의 아내도 내적으로 대적해서 싸워야 할 것이 많이 있다. 그리고 그대가 그녀를 사단의 진영으로 내 던지지 않도록 그대 자신을 지켜야 한다. 342 화를 잘 내고 결점을 찾아내며, 거친 어조로 말하는 것들은 버려야 한다. 그대는 품성의 결점과 왜곡된 의지를 극복하고 승리를 얻기 위해 얼마의 시간을 떼어 놓았는가? 그대가 지금 이루는 향상에 비추어 볼 때 그대의 유예 기간은 자신을 이기는데 필수적인 결정적인 노력이 행해지기 전에 닫혀질지도 모른다. 만일 그것들이 있다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그대의 특이한 성격들이 시험되고 드러나는 위치에 놓여지게 될 것이다. 그대는 생각이 없고, 인내하지 못하며, 불평하고 푸념하는 말들의 결과를 알거나 깨닫지 못한다.

그대와 그대의 아내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받을 수 있는 또 다른 황금 같은 기회가 있다. 만일 그대들이 불평하면서 이 일을 한다면 아무런 상급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베드로가 부인한 후 가졌던 동일한 정신으로 기꺼이, 기쁘게, 이것을 한다면, 그대들은 승리자가 될 것이다. 그는 죽는 날까지 그리스도를 비겁하게 부인했던 것을 느꼈으며, 그의 믿음으로 인해 순교를 당하도록 부름을 받게 되었을 때, 이 수치스러운 일이 그에게 항상 떠올랐으며, 그래서 그는 자신의 주님이 고통당한 동일한 방법으로 못 박힐 수 없다고 간청하였다. 이것은 배도했던 그에게는 너무 큰 영예가 될까봐 그는 두려워했다. 그의 요청은 거꾸로 매달리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베드로는 자기 주님을 부인한 죄에 대해 얼마나 큰 죄책감을 가졌는가! 그는 또 얼마나 큰 회심을 했는가! 그 이후로 부터 그의 생애는 회개와 겸손의 생애였다.

그대가 그분의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을 보게 될 때 그대는 떨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모세가 그렇게 하나님의 위엄을 보았을 때 그는 소리쳤다.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율법은 범죄자에게 죽음을 선고했으며, 그리고 속죄의 희생이 모세 앞에 드려졌다. 그리스도의 정결케 하는 피가 죄인을 깨끗케 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그의 두려움은 아침 안개가 떠오르는 태양빛에 사라지듯이 사라졌다. 그는 죄인들에게도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에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용서가 기록되었으며, 의의 태양이신 분이 영혼을 짙게 가리고 있는 의심과 두려움을 내쫓으면서, 그분의 밝고 치료하시는 빛을 그에게 비추셨다. 모세는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었던 산에서 내려왔으며, 그의 얼굴은 하늘의 광채로 빛났고, 이것은 그 백성들에게 반사되었다. 343 그는 그들에게 영광의 보좌로부터 직접 나온 천사처럼 보였다. 그 신령한 광명은 그 죄인들에게 고통스러운 것이었으며, 그들은 모세로부터 달아나, 자신들이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면 그 빛이 그들을 죽일까봐 그 영광을 그들의 시야에서 가려달라고 요청했다.

모세는 배우는 사람이었다. 그는 애굽의 모든 학문으로 잘 교육받았다. 그러나 이것이 그가 해야 할 사업을 위해 준비하는 데 적합한 모든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의 섭리로 인내를 배우고 그의 성정을 다스려야 했다. 자아 부정과 고난의 학교에서 그는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될 교육을 받아야 했다. 이 시련은,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될 모든 사람들을 아버지 같이 돌보도록 그를 준비시키게 될 것이었다. 어떤 지식이나 연구, 또한 웅변도, 마치 자신이 회계해야 할 것처럼 영혼들을 보살피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시련의 경험을 대체할 수 없다. 겸손한 목자의 일을 하면서, 자아를 잃어버리고 자기 책임 하에 주어진 양떼들에게 관심을 가짐으로 그는 유한한 사람에게 주어진 일 중 가장 고상한 일, 주의 목장의 양들의 목자가 되는 일에 적합하게 될 것이었다. 그리스도는 일찍이 세상에 알려진 교사 중 가장 완전한 교사이셨다. 그분으로부터 지혜와 지식을 얻는 것이 모세에게는 애굽의 어떤 가르침보다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F 형제 자매여, 나는 그대들에게 진지할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 오기를 간청한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신의 달란트와 재물을 자아 방종과 저열한 욕망을 만족시키는 데 사용한 사람은 썩어진 것을 거둘 것이다. 그의 수확은 분명하다. 그의 마음은 감수성과 힘을 잃게 될 것이다. 그의 지능은 손상되고 그의 수명이 짧아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자아를 제어하고 통제하기 위하여 보다 더 철저하게 노력할 것을 요구하신다. 나는 하나님과 천사들이 이 중요한 일에 그대를 돕기 위해 준비되어 있으며, 기다리는 것을 보았다. 그대가 만일 지체하고, 심지어 시간을 끈다면, 너무 늦게 될 것이다. 그대의 유예 기간은 연장되었으며, 그대의 품성은 지금 형성되고 있다. 그리고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그것은 곧 영원히 굳어지게 될 것이다. 344 그대에게 있어서 반만 이루어진 일은 그대를 하늘로 향하여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게 할 것이다. 우유부단은 그릇된 방향으로의 결정이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품성의 결함을 극복하기 위해 결정적인 노력을 하지 않음으로써 자아와 사단을 섬기기로 결정한다. 많은 사람들이 언젠가는 정복자가 되기를 기대하면서 죄악된 성향과 장난하고 있는 동안에 그들은 멸망당하기로 결심하고 있는 것이다. F 형제 자매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대들은 “오늘이라 일컫는” 지금에라도 승리자가 될 수 있다. 자아를 위해 계획을 세우거나 연구하지 말라. 조금이라도 이기심을 부추기는 한 그대들은 전적으로 주님의 것이 될 수 없다. 구속자께서 그대들에게 보여 주신 그 큰 사랑은 큰 겸손과 계속적인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행복하게 되기 위해 그대들은 그대들의 사상과 말을 조절해야 한다. 그것은 그대 편에서의 큰 노력을 요구한다. 그렇지만, 그대들이 하나님의 인정된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이 일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대들의 노력에서 지치지 말라. 사단은 그대들의 영혼을 위해 싸우고 있으며, 그는 반드시 실망하게 될 것이다.

F 형제여, 그대가 한 장소에서 일을 처음 시작하게 될 때, 그대는 대체로 사람들의 신임을 얻는다. 그러나 좀 더 그대를 알게 된 후에 그대의 품성의 결함은 매우 분명해져서 많은 사람들이 그대의 경건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된다. 그렇게 하여 교단의 모든 목회자들이 비난을 받는다. 어떤 한 곳에서 짧게 머무는 것은 그대의 명성에 해가 되지 않는다. 반대하는 영향에 짓눌린 가운데 열심히 일하는 동안, 그대는 하고 있는 일에 열중하여 자아를 생각하거나 들여다 볼 시간이나 기회가 없다. 그러나 그 일이 끝난 다음, 그대는 자연스럽게 자아를 생각하기 시작하며, 그대는 자아를 아끼게 되고, 유치하게 되며, 날카로워지고, 기질이 폭발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크게 망가뜨린다. 그대는 교회에서 동일한 정신을 나타내며, 이렇게 해서 그대는 공동체에 큰 해를 끼치고, 어떤 경우에는 회복 불능 상태에 빠뜨린다. 그대는 자주 영혼을 진리로 회심시키려고 노력하는 중에 유치한 말다툼을 하기도 했다. 그리하여보는 사람들에게 아주 나쁜 인상을 끼쳤다. 이제 둘 중에 하나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대는 가족들과, 그대의 가정에서, 교회에서, 헌신한 사람으로서 언제나 부드럽고 인내하든지, 아니면 교회에 정착하지 말아야 한다. 345 왜냐하면, 그대의 결점은 너무도 명백하여 그대가 사랑하고 섬긴다고 공언하는 구속주께서 치욕을 당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모세의 믿음은 그를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보도록 이끌었다. 그는 죄가 있었기 때문에 왕궁 생활의 빛나는 매력을 떠났다. 그는 현재의, 그리고 단지 황폐화되고 멸망할 뿐인, 좋아 보이는 것을 포기했다. 진정한 매력인 영원한 것이 그에게는 가치가 있었다. 모세가 한 희생은 실로 희생이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서 희생이란 현세적이고, 외관적이며 사탕발림의 것을 확실하고, 고상하며 불멸의 것을 위해 포기하는 것이었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 그는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을 믿었으며, 어떤 세상의 능욕으로 인해서도 그의 고결함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자유인으로서 세상에서 행했다. 그는 그의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품었는데, 이것은 그를 고결한 사람으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인간의 고매함에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광채를 더해 주었다. 모세는 험하고 위태한 길을 걸었으나,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았으며, 쓰러지지 않았다. 상급에 대한 보상이 그를 이끌었으며, 그리고 이것은 우리에게도 동일하다. 그는 하나님과 친밀했다.

그대에게 품성을 개혁하고 고결하게 만드는 데 있어서 그대의 남은 생애 동안 해야 할 일이 있다. 새 생애는 새로워진 영혼 안에서 시작된다. 그리스도는 내주하시는 구주이시다. 포기하기가 어려운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포기되어야 한다. 위압적이고 명령하는 투의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고귀한 승리가 얻어질 것이다. 진정한 행복은 온갖 자아 부정과 자아를 못 박는 것의 결과가 될 것이다. 한 번 승리가 얻어지면 그 다음 승리는 훨씬 쉽게 얻을 수 있다. 모세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특권들과 기회들을 등한시했다면, 그는 하늘에서 온 빛을 소홀히 했을 것이며, 실망하고 비참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죄는 밑으로부터 오며, 그것에 빠지게 되면 사단이 마음 가운데 거하게 되어, 그곳에서 바로 지옥의 불을 붙이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영혼이 구원 못 받도록 막기 위해 그분의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니다. 346 그분은 모두가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사람은 빛과 기회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향상시킨다면 이기는 자가 될 수 있다. 그대는 그대의 삶을 통해 이기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보여줄 것이다. 사단은 영혼의 성전에 그의 보좌를 건설하고자 한다. 그가 지배하게 되면, 분노한 성정과, 슬프게 하고 상처를 주는 비통한 언어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러나 빛이 어두움과 사귐이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는 벨리알과 연합하지 않으시며, 그 사람은 전적으로 이런 사람이 되든지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자아 방종과 탐욕과 기만과 속임, 또는 어떤 종류의 죄악에라도 굴복하게 되면 그는 자신의 영혼 안에 사단의 원칙을 고취시키고 자신에게 하늘의 문을 닫아 버린다. 죄 때문에 사단은 하늘에서 쫓겨났으며, 어떤 사람도 죄악에 빠지고 죄를 키움으로 하늘에 들어갈 수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 될 때 사단은 다시 한 번 그곳에서 발판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신의 품성의 결점을 극복하는 데 매일 열심히 행한다면, 그는 영혼의 성전 안에 그리스도를 모시게 되며, 그리스도의 빛은 그 사람 안에 있게 된다. 그리스도의 얼굴의 밝은 빛 아래, 그의 전 존재는 높여지고 고상하게 된다. 그는 마음 속에 하늘의 평안을 갖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정욕과 탐욕, 이기심, 그리고 기만의 고삐를 풀어주고는, 항상 자신들을 변명하고, 자신들에게 시련을 가져온 환경을 탓한다. 그대들의 경우가 바로 이러했다. 하나님께서는 품성을 계발시키기 위해 그 환경이 있도록 허락하셨다. 그러나 그대는 그대의 환경을 만들 수 있었다. 왜냐하면, 시험을 대항하고 인내함으로써, 환경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의지력으로 통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것과 같이 이기는 것이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F 형제여, 하나님은 그대에게 자비하시다. 그대의 생애는 마땅히 그랬어야 할만큼 되지 못했다. 그대 안에는 진정한 남성다움이 없었고, 참된 고상함과 감정의 순결함이 없었다. 그대는 올바른 자아 존중이 없었으며, 그래서 다른 사람에 대한 바른 존중심이 없었다. 그대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은혜의 능력을 크게 높이지 않았다. 그대는 전 생애를 통해 보호자들이 필요했다. 347 그대의 생애 초기에 행해졌던 그러한 천박함, 변덕, 부주의함, 자제의 결핍, 이기심과 인내하지 못하는 것이 등이 장년기를 넘긴 지금 너무도 현저하게 발전되었다. 그대가 어린애 같은 감정과 기질을 버리고 성인의 견고함을 옷 입었다면 이렇게 될 필요가 없었다. 그대는 자신을 한결같이 아끼다가 해를 입었다. 그대의 고통과 연약함은 과장되었다. 그대는 그들을 바라보고 그들에게 불평스럽게 말했으며, 시선을 돌려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고통과 비교할 때, 그대의 아픔은 얼마나 작으며, 얼마나 적게 인내하는지 생각해보라. 그분은 죄 없으셨다. 불의한 자를 위해 고통 당하시는 의로운 분이셨다.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좋은 대화는 좋은 양심에 수반된다. 마치 좋은 열매가 좋은 나무에서 만들어지듯이. 만일 한 사람이 자기 가족과 또 다른 관련이 있는 다른 사람에게 불친절하고 천박하다면, 아무도 그가 교회에서 어떻게 하는지 물어 볼 필요가 없다. 그는 가정에서 보이는 까다롭고 위압적인 자세를 나타낼 것이다. 아무도 생애의 의무와 관계에서 그것으로 인해서 더 좋아지지 않음이 없이, 그리스도의 마음과 정신을 가질 수 없다. 불평하고 투덜거리며, 화를 잘 내는 성정은 좋은 원칙의 열매가 아니다. 그대는 품성의 높고 고상하고 도덕적인 특질을 강화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즉각적인 기도가 필요하다. 이것은 그대가 지금 해야 한다. 그 일은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적극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그대가 텍사스에 있었을 때, 그대는 희망이 없었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버려진 것처럼 느꼈다. 그러나 이제 새출발을 하게 된 지금 개혁 사업을 철저히 하고, 그대의 회개는 다시 회개할 필요가 없는 그런 것이 되게 만들어야 한다. 건강과 원기에 관한 한, 그대의 황금시기는 지나갔다. 그러나 올바른 습관과 쾌활한 마음, 그리고 그대의 현재 품행과 관련하여 깨끗한 양심을 가짐으로써 그대는 실패를 승리로 돌이킬 수 있다. 그대는 잃어버릴 시간이 없다. 그대의 아내는 수확의 들에서 그대의 모든 노력을 도울 수 있다. 그녀가 진리를 통해 성화된다면,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사교적이 됨으로 그대와 하나님의 사업에 복이 될 수 있다.

348 많은 사람들이 왜곡된 기질에 빠짐으로 넘어지고 쓰러진다. 알렉산더와 시이저는 그들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보다 한 나라를 정복하는 것이 더 쉽다는 것을 알았다. 나라들을 정복한 다음, 세상에서 소위 위대하다고 한 그들이 쓰러졌다. 하나는 식욕에 빠짐으로 부절제의 희생물이 되었으며, 다른 한 사람은 외람됨과 정신나간 야욕으로 무너졌다.

하나님께서는 그대에게 자만과 완고함을 포기하고 그분의 평화가 그대의 심령을 지배하게 하라고 부르신다. 온유하고 안정된 정신이 간직되어야 한다. 그대의 모든 일에 그리스도의 온유함으로 행하라. 흥분된 성질과 날카로운 비난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지 못하고 그들의 공감을 얻지도 못한다. 만일 우리가 진리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고요함과 안정됨을 갖추게 된다. 우리의 언어는 예모가 있어야 하고 고상해야 한다. 그대가 마음에 간직한 정신은 그 인상을 얼굴에 남겼다. 영혼의 성전에 앉으신 그리스도께서는 화를 잘 내고 언짢은 불행한 외모를 없애 주실 것이다. 그리고 구름같이 둘러싼 증인들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반영하는 한 사람을 바라보면서 그가 즐거운 분위기에 둘러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세상은 학대의 폭풍 가운데서도 마치 우뚝 솟은 히말라야 삼목처럼 그가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 것을 볼 것이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영웅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자아를 이겼다.

생애의 번민, 속을 썩이는 매일의 염려, 그 가슴 아픔과 짜증의 대부분은 제어되지 않은 성질의 결과다. 가정의 조화가 종종 성급한 한마디 말과 함부로 하는 언어 때문에 깨어진다.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한 번의 기쁜 미소, 온유한 정신으로 발한 평화롭고도 인정해 주는 말은 진정시키고 위로해 주고 축복을 가져다 주는 능력이 될 것이다. 자아를 지배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지배이다. 온유하고 조용한 정신을 옷 입는다면, 생애를 그처럼 쓰라리게 했던 문제의 백 가지 중 아흔 아홉은 해결될 것이다. 많은 이들이 그들의 조급한 말과 육욕적인 기질을 이렇게 변명한다. “나는 너무 예민해. 나는 성질이 급해.” 이것은 성급하고 격정적인 말로 가한 상처를 조금도 고쳐 주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참으로 다른 사람보다 본래 성미가 급하다. 그러나 이 정신은 하나님의 영과 결코 조화될 수 없다. 본성적인 사람은 죽어야 한다. 그리고 새 사람이신 그리스도께서 그 영혼을 주관하셔야 한다. 349 그렇게 되어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정직과 진실로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자아는 정복하기가 어렵다. 모든 형태의 인간의 타락은 그리스도의 영에게 쉽게 굴복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통해 이 승리가 얻어지지 않는다면, 그들에게는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이 승리는 얻어질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분의 도우시는 은혜로 모든 악한 기질, 모든 인간의 타락은 극복될 수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욕을 당하셨으나 대신 욕하지 않으신” 그리스도에게서 배워야 한다.

그대 앞에 놓인 일은 가벼운 일이 아니며, 어린애 장난이 아니다. 그대는 완전한 데 나아가는 일에 실패했다. 그러나 이제 그대는 새로 시작할 수 있다. 그대는 그대의 생애로, 본성적인 사람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대는 그 일을 단호하게 붙잡음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승리자가 될 것이다.

내가 그대의 심령에 기록해 두고 싶은 거룩한 말씀이 있다. 사람들이 사단의 계교에 굴복하고 그렇게 해서 자아를 그의 영토에 놓게 되었을 때, 그들이 하나님의 자비를 통해 그의 덫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면, 그들은 승리를 얻고 영생을 취하기 위해 그분과 가까이 연결되고 날마다 자아를 못박고 전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그대들 모두는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나갔다. 그대들은 그분의 사업에 엄청난 비난을 초래했다. 이제 그대는 그대의 품성의 결함을 극복하고, 겸비의 생애와 신뢰하며 간구하는 기도의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열심을 내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공로로 과거를 다 없애 주시사 그대가 뿌린 악의 씨앗들이 확산되지 않고 진노의 날에 당할 진노를 쌓아 놓게 되지 않도록 믿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정신에 있어서 까다로움과, 자아를 사랑함과, 자신의 결점을 어린애같이 말하는 것과, 그대의 감정을 늘어놓는 것과, 어두운 편에 거하는 것 등 그대가 이전 따랐던 길로 또다시 돌아가는 것은 그대를 약하고 풀죽은 사람으로 만들 것이다. 그대를 사단의 계교에 쉽게 굴복되게 만든 것은 이러한 것들이었다. 만일 그대의 발이 미끄러지기 시작할 때 그대가 따라갔던 동일한 노선을 따르기 시작한다면, 그대의 경우는 희망이 없다. 350 그대가 만일 회개함으로 죄를 끊어 버리고, 그대가 가르침을 받고 깨우칠 수 있도록 그분의 영을 달라고 하나님께 신실하게 간구하면서 구주의 중보 안에 피난처를 찾아 두려운 결과를 피하게 된다면, 그대는 영생을 거두게 될 것이다. 그대들의 무력한 영혼을 믿음으로 겸손하게, 일치되게 그리스도의 공로에 맡기는 일에 실패하지 말라.

거래에 있어서의 정직

G 형제여, 지난 번 나의 이상 가운데 그대의 경우가 보였다. 나는 그대가 믿노라고 공언하는 진리를 사랑하는 것을 보았으나, 그대는 그것을 통해 성화되지 않았다. 그대의 애정은 하나님에 대한 봉사와 돈에 대한 봉사로 양분되어 있었다. 이 애정의 분리는 그대가 하나님을 위한 선교사가 되는 길에 장벽이 된다.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봉사하노라고 공언하지만 사리사욕이 그대의 사업을 망치고 그대의 영향을 크게 손상시켰다. 하나님께서는 그대의 마음이 그분과 바른 관계에 있지 않기 때문에 그대와 함께 일하실 수 없다.

그대는 말에 관해서는, 진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대가 행함으로 그대의 믿음을 보여야 할 때는 큰 부족함이 있었다. 그대는 우리의 신앙을 바르게 대표하지 않았다. 그대는 이득에 대한 사랑을 나타냄으로써 하나님의 사업을 손상시켰으며, 매매와 언쟁에 관한 애착은 그대에게 좋지 않았으며, 그대와 접촉하는 사람들의 영적인 건강에도 좋은 것이 아니었다. 그대는 거래에 있어서 각박한 사람이며, 종종 도가 지나치다. 그대는 다른 사람의 이익보다는 그대 자신의 유익을 구하면서, 제일 좋은 흥정을 얻어 낼 때를 포착하는 특이한 솜씨를 가지고 있다. 만일 한 사람이 스스로 속고 그대는 이로 인해 이익을 얻게 될 것 같으면, 그대는 그에게 그것을 하도록 내버려둔다. 이것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선교 사업에 참여하면서 그대는 동시에 매매하는 일에 교활한 성향을 나타냈다. 이것은 비참한 결합을 이룬다. 그대는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 되어야 한다. 351 “만일 여호와가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자신을 이롭게 하는 일에 교활하는 한, 선교 사업과 그 길에서 그대의 일을 받아 주지 않으실 것이다. 그대는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할 위험이 있다. 유혹자는 그대의 영성을 죽일 교활한 정신에 빠지도록 그대를 현혹하고 매혹하기 위해 아첨하는 유혹들을 그대 앞에 제시할 것이다.

세상과 천사와 사람들은 그대를 날카로운 사람, 자신의 이익만을 연구하는 사람, 그리고 자신이 거래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익을 세심하게, 그리고 양심적으로 살피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사람으로 바라볼 것이다. 그대의 사업 거래에는 영혼을 더럽히고 신앙적인 경험과 은혜 안에서의 성장을 위축시키는 부정직의 특질이 있다. 그대는 흥정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를 예민한 사업적인 눈으로 찾고 있다. 이 교활한 성향은 그대의 제2의 천성이 되었으며, 그대는 이것을 부추기는 일의 해악을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대가 공평하고 공명정대하게,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이익을 끼치면서 종사할 수 있는 일은 거래가 정당하게 이루어지는 한 옳은 것이 될 것이다. 그대가 진리를 통하여 성화되었더라면 주께서 그대의 봉사를 받아 주셨을 것이며,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에 그대의 능력과 그대의 예민한 지각력을 사용하셨을 것이다. 이익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의안목의 욕망은 성령에 맞서 투쟁하였다. 수년간의 습관과 훈육은 그대의 품성에 추한 감명을 남겼고, 그대를 하나님의 사업에 적합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대는 장사하려는 끊임없는 갈망이 있었다. 만일 하나님의 봉사를 위해 성화되었더라면, 이것은 그대를 주님을 위한 신실하고 인내하는 일꾼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남용했기 때문에 그것은 그대의 영혼을 위험하게 만들었으며, 다른 사람들도 그대의 영향으로 잃어버릴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때로 양심과 이성은 그대에게 질책한다. 그러면 그대는 그대의 행로 때문에 비난받음을 느꼈으며, 그대의 영혼은 거룩함과 하늘에 대한 확증을 갈급했다. 세상의 소음은 그대에게 불쾌하게 보였고 그대는 이것을 제쳐 두고 하나님의 영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그대의 세상적인 성향이 들어와서 모든 것을 지배한다. 352 그대는 사단의 강습을 받게 될 것이며, 그대의 성향을 굳게 저항함으로써 그것에 대해 대비해야 할 것이다.

사도 바울이 습기로 냄새나는 감옥에 투옥되어 있을 때, 그 자신도 고통으로 아픈 사람이었지만, 복음 안에서의 아들인 디모데를 보기를 몹시 갈망하였으며 죽어 가면서 그에게 당부를 남기고 있다. 그는 자신의 생명이 사라질 때까지 자신의 결박에서 풀려 날 희망이 없었다. 사악한 네로의 마음은 전적으로 사단과 같았으며, 그가 한 마디 하거나 고개를 끄덕여도 사도의 생명은 끊어질 것이었다. 바울은 디모데가 신속히 오기를 당부하였으며, 그의 입술로부터 그가 마지막 증언을 받을만큼 속히 오지 못할까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는 갇힌 중에서 동료가 될 수 있도록 허락 받은 한 동료 역군에게, 그가 디모데에게 할 말을 반복하였다. 이 신실한 사람은 바울이 죽기 전에 남기는 당부를 기록했다. 그 중에서 한 작은 부분을 여기 인용해 본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어떤 사람이 탐욕스러우면서도 하나님의 사업을 한다고 말하면서 자신을 변명할 수 있다. 353 그러나 그는 상을 하나도 얻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속여서나 여하한 형태의 부정직에 의해서 얻어진 돈은 원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더 권한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바울이 죽기 직전 구술한 이 말씀들은 누가에 의해 우리들의 유익과 경고를 위해 기록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그리스도께 연합된 사람은 포도나무의 수액과 영양을 취하여 그리스도의 사업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 사람 안에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포도나무 안에 있을 수 없다. 하나님께 대한 최고의 사랑과, 그대가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신앙의 기초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이름을 공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물으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느냐?” 만일 그대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그대는 그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영혼들을 사랑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외견이 수려하지 않고 많은 면에서 부족할지라도, 그가 곧은 정직으로 명성이 있다면 그는 다른 사람들의 신임을 얻게 될 것이다. 진리의 사랑, 사람들이 그에게 줄 수 있는 의뢰와 확신은 그의 품성의 좋지 않은 면들을 제거하거나 압도하게 될 것이다. 그대의 직임과 부르심에서의 신뢰성과 기꺼이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자아를 부인하려는 마음은 마음의 평안과 하나님의 은총을 가져다 줄 것이다.

354 자아를 희생하고 자기를 부인하는 그들의 구속주의 발자취를 엄밀하게 따를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에 반영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순결과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들의 매일의 생애와 품성에서 비쳐나올 것이며, 온유와 진리는 그들의 길을 인도할 것이다. 열매 맺는 모든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전정을 하게 된다. 열매가 많은 가지들이라도 너무 많은 잎을 매달아 그들의 참 모습이 아닌 것이 나타난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주님을 위해 약간의 일을 하고 있을지 모르나 마땅히 해야 할 일의 절반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 때에 주께서는 그들의 가지를 치시는데, 왜냐하면 세속적인 것과 자아 방종과 교만이 그들의 생애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농부께서는 세상의 쓰레기들을 부여잡고 있는 여분의 덩굴손들을 잘라서 그들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의의 태양의 치료하는 광선에 틈을 비칠 공간을 주기 위해 이러한 장애물들은 제거되어야 하고 해가 되는 어린 가지들은 잘라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타락한 사람에게 또 다른 은혜의 시기를 주시려고 경영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창조된 목적을 오해하고 있다. 그것은 자아를 즐기고 영화롭게 하기보다는 인간을 복되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그분의 백성을 전정하시며, 수없이 퍼진 가지들을 치셔서 잎만 만들지 않고 그들이 그분의 영광을 위해 열매를 맺도록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슬픔과 실망과 고통으로 가지를 치셔서 강하고 왜곡된 특성을 지닌 품성의 성장이 연약해지고 더 좋은 특성이 자라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하신다. 우상들은 포기되어야 하며, 양심은 보다 더 부드러워져야 하고, 심령의 명상은 영적이 되어야 하며, 전체적인 품성은 균형이 잡혀야 한다. 하나님께 진정으로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사람들은 모든 우상과 모든 악을 드러내 주시는 것에 대해 감사할 것이며, 그들은 이런 악들을 보고 그것을 제거해 버릴 것이다. 그러나 나뉘어진 마음은 부인보다는 방종을 갈망할 것이다.

마른 것처럼 보이는 가지는 살아 있는 가지와 연결됨으로 그것의 한 부분이 될 것이다. 섬유소는 섬유소끼리, 가지는 가지끼리, 포도나무에 붙어서 모(母) 줄기로부터 생명과 영양을 끌어낼 것이다. 접붙인 가지는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범죄와 죄악으로 죽은 영혼은 하나님과 화목하고 그리스도의 생명과 즐거움을 받기 위해 비슷한 과정을 경험해야 한다. 355 접붙인 가지가 포도나무에 연결되어 있을 때 생명을 받듯이 죄인도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을 때 신의 성품을 얻게 된다. 유한한 사람이 무한하신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이다. 이렇게 연합될 때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게 되며, 우리는 발작적인 감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살아 있고 내재하는 원칙에 입각하여 행동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마음속에서 명상되고 소중히 간직되고 품어져야 한다. 그것들은 심령과 생애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고 기억되지도 못한채 앵무새처럼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가지가 그것을 무성하게 하는 생명을 주는 수액을 얻기 위해 나무 안에 거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모든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은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해야 한다. 그리스도 없이는 우리는 단 하나의 죄도 정복하거나 아주 작은 시험도 극복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은 소경 바디매오가 원래의 시력이 필요했던 것만큼, 그들의 이해를 밝게 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영과 능력을 필요로 한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진정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이 연합의 유익을 경험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그들을 받아 주실 것이며, 그들은 그분의 염려와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관심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심령을 정결케 하고 신중한 생애와 흠없는 품성을 이루어 낼 것이다. 그리스도인 나무에 맺히는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이다.

나의 형제여, 그대는 하나님과 친밀한 연결이 필요하다. 그대는 그대가 책임져야 할 품성의 특질을 지니고 있다. 그대의 능력은 잘못 사용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대의 행로를 인정하실 수 없다. 그대의 표준은 세상 사람들의 것이지,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생애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그런 것이 아니다. 그대는 세상적인 눈으로 바라보았으며, 성화 되지 않은 판단으로 분별하였다. 그대의 영혼은 세상의 오염시키는 영향으로부터 깨끗케 되어야 한다. 그대는 스스로 이익이라고 자부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엄격한 정직성에서 반복적으로 벗어났는데, 이것은 실제로는 손실이었다. 356 거래에 있어서 속이는 행위는 그대가 하늘 본향을 얻는다 해도, 하늘에서의 그대의 상급을 떨어뜨리고 만다. 모든 사람들은 행한 대로 자기 상급을 받을 것이다.

그대는 잃어버릴 시간이 없다. 그러나 그대는, 만약 방종하게 되면 영광의 문이 그대에게 닫아버릴 품성의 현저한 특질을 극복하기 위해 부지런히 힘써야 한다. 그대는 하늘을 잃을 수 없다. 그대는 지금 탐욕적인 정신을 극복하고 성화된 진리의 통로로 생각을 돌리기 위해 언행에서 단호한 변화를 이룩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간단히 말해서 그대는 변화되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사업에 있어서의 그대의 수고를 받아 주실 것이다. 그대는 이익에 대한 애착이 그대를 유혹하거나 어떤 시험도 그대를 정복하지 못할 빗나감이 없는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주께서는 그분의 이름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진리를 굳게 붙잡으라고 요구하신다. 이것은 맛을 잃지 않은 소금, 세상의 기만과 흑암 중의 빛과 같을 것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다. 하나님과 진정으로 연결된 사람은 하늘의 빛을 반사함으로써 세상과 교회에서 구원하는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선한 행위, 믿음직한 행위의 향기는, 심지어 우리 믿음 안에 있지 않은 사람들 중에서도 그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그런 품성을 가진 사람들을 존중하고 영예롭게 할 것이며, 우리 믿음의 대적들조차도 매일의 사업에서 그리스도의 영과 생명이 나타나는 것을 볼 때, 그들의 힘과 영예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나의 형제여, 그대는 수 년 전에 진리로 회심하고 하나님의 사업에 자신을 바쳤어야 했다. 그분의 사업에 있어서 실제적인 활동과 하나님의 사물에 대한 경험으로 가득했어야 할 고귀한 수년의 세월이 상실되었다. 지금 그대가 다른 사람을 가르쳐야 할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도 그대는 진리에 대한 완전한 지식에 이르는 데 실패하였다. 그대는 이제 진리에 대한 경험적인 지식을 가져야 하며, 세상에 경고의 기별을 전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 그대의 봉사는 거의 상실되어서 하나님의 사업에 바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대의 마음이 나뉘었기 때문이다. 그대는 계획을 세우고 기획을 하고, 사고 팔고, 공궤를 일삼았다.

357 세상의 곰팡이는 그대의 인식을 흐리게 하고 그대의 지성을 왜곡시켜서 그대의 연약한 노력이 하나님께 가납될 만한 제물이 되지 못하게 했다. 그대가 공상하는 성향을 버리고 정반대 방향에서 일했다면, 그대는 지금 신령한 지식으로 부요해졌을 것이며, 전반적으로 영적 사물에서 이득을 얻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에 반하여 그대는 영적인 힘을 잃고 신앙적인 경험이 위축되었다.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를 가지면 고상하게 되고 높임을 받고,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충만한 영광의 동참자가 되게 할 것이다. 음식과 의복과 신분과 부도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과 연결을 맺고 그분의 신령한 본성의 동참자가 되는 것은 헤아릴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우리의 생명인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 아는 것은 우리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그리스도인 품성의 왕자 같은 위엄은 태양처럼 비췰 것이며,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나오는 광선은 그분이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을 정결케 한 사람들에게 반사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과 같이 되는 특권은, 비록 우리가 가진 모든 것 심지어 그것이 우리의 생명 그 자체를 희생하고서 그것을 얻는다 하더라도 값싸게 얻어진 것이다.

사랑하는 내 형제여, 그대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겠다고 본받는 사람으로서 굳게 결심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인 표준에 엄격하게 일치되지 않는 것을 말하고 행한다 하여도 그것이 그대에게 변명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대는 모든 세상의 심판자 앞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답변해야 한다. 우리는 개인적인 책임이 있으며, 어떤 사람의 품성의 결점도 우리의 죄에 변명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품성 안에서 우리에게 완전한 모형, 흠없는 생애를 주셨기 때문이다.

영혼의 대적은 우리가 고백하는 진리를 가장 줄기차게 공격하고 있으며, 올바른 것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그것에 수치를 가져다 준다. 우리의 가장 큰 위험은 그리스도로부터 다른 데로 돌아선 마음을 갖는 데 있다. 예수님의 이름은 사단의 시험을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그를 대적하여 우리의 군기를 높여 준다. 358 영혼이 대속의 능력과 공로를 흔들림이 없이 신뢰하면서 안식하는 한, 그것은 바위처럼 원칙에 굳건히 설 것이며, 사단의 모든 능력과 그의 천사들이 아무리 흔들어도 그 고결함으로부터 떨어지게 할 수 없다. 예수 안에 있는 진리는 그분께 붙어 있는 영혼을 에워싸고 있는 불벽이 될 것이다. 시험이 우리에게 쏟아져 내릴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 우리는 이 땅에서의 유예 기간에 검증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검증이며, 우리 자신의 심령을 드러내는 것이다. 시험이 있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시험에 굴복하게 될 때, 죄가 들어오게 된다.

그대의 소질과 재능이, 그대가 이득을 얻고 세상적인 소유를 늘리는 데 사용된 것처럼 영혼을 구원하고 진리를 어둠 가운데 있는 영혼들에게 전파하는 데 사용되었더라면, 그대는 영광의 왕국에서 기쁨의 면류관에 많은 별들을 달게 되었을 것이다. 자신의 헌신적인 관심사를 돌보는 것처럼 하나님께 봉사하는 신실한 사람은 드물다. 단호한 목적을 가지면 성취하려는 목표를 확실히 달성하게 해준다.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현세적인 사업에서처럼 하나님의 사업에 있어서도 분별력과 적합성과 능숙함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진리를 믿는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은 고상하고 세련되고 고결하고 영적이어야 한다. 이 중요하고 위대한 일에 마음을 교육시키는 사업이 무서울 정도로 등한시되고 있다. 하나님의 사업은 무시되고 게으르게 행해지고 있으며, 서투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왜냐하면 성화된 원칙과 거룩한 목적에 의해서보다는 감정의 변덕에 맡겨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에 관한 지식을 소유한 남녀들이 그분의 사업에서 성공적인 일꾼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할 필요가 매우 크다. 그들은 기만적인 외모의 허식과 세상 사람의 선웃음치는 꾸밈이 없이, 하늘의 향기가 되고 신의 성품에 참여한 모든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세련되고 진정한 예절을 갖춘, 예모 있고 이해심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안식일 준수자들 가운데서의 진정한 고상함과 그리스도인 세련됨의 결여는 한 백성으로서 우리에게 해가 되는 것이며, 우리가 고백하는 진리를 싫어하는 악취도 만든다. 마음과 예모를 교육하는 일은 완전을 목표로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359 진리를 공언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완전히 장성한 남녀로 자라 날 기회와 특권을 지금 신장시키지 않는다면, 그들은 진리의 사업에 대해서도, 그리스도께 대해서도 영예가 되지 못할 것이다.

나의 형제여, 만일 그대가 이익을 얻기 위해 살펴보듯이 그렇게 성경을 신실하게 연구했다면, 그대는 지금 하나님의 말씀에 있어서 능력 있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며, 또한 다른 이들을 가르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대가 다른 사람에게 진리를 가르칠 수 있는 데 적합하지 못하게 된 것은 그대 자신의 잘못이다. 그대는 주님을 위한 지적이고 성공적이고 영적인 일꾼으로 만들었을 일련의 재능들을 계발하지 않았다. 세상적인 거래에 있어서 욕심과 영리함과 같은 품성의 특질들은 매우 많이 발휘되어, 그대의 마음은, 사고 팔고, 흥정 잘하는 데로만 크게 발전되었다. 그대 자신을 진정한 품성의 고상함을 가진 사람으로서, 그대의 형제 자매들과 친구들에게 신임을 확고하게 받고 온갖 째째함과 탐욕을 초월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대신 그대는 그들로 하여금 그대를 두려워하게 만들었다. 그대의 종교적인 믿음은 그대가 각박하게 거래하고 이익을 남길 수 있게끔 형제들의 신임을 얻는 데 사용되었다. 그대는 이것을 너무 많이 행하여 그것은 제 2의 천성이 되었으며, 그대는 그대의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나타나는지 깨닫지 못한다. 만일 그대가 그리스도와 진리로부터 흩는 데 발휘해온 영향을 상쇄하고자 할 것 같으면 진정한 경건이 그대의 미래의 모든 생애와 행위에 나타나야 한다.

하나님과 그대의 동료 인간에 대한 그대의 관계는 그대의 삶에서 변화를 요구한다. 산상설교에서 세상의 구속주의 명령은 이것이었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이 말씀들은 우리에게 가장 가치가 있는 것이요, 우리의 행위를 재는 황금률이다. 이것은 정직의 진정한 척도이다. 매우 많은 것들이 이 말씀에 함축되어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의 이웃을 그들의 입장에서 우리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라는 요청을 받는다.

텍사스 주, 플라노, 1878.11.24

매일의 생활에서의 종교

360 H 형제여, 나는 그대가 진정으로 진리를 사랑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대는 그것을 통해 성화되지 않았다. 그대는 그대 앞에 해야 할 큰 일이 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그대는 이 일을 행해야 하며, 늦출 시간이 없다. 그대의 생애는 파란만장한 생애였음이 내게 보여졌다. 그대는 형편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그대는 심히 부당한 취급을 받았으며 그대의 동기는 그릇 판단되었다. 그러나 그대의 실망과 재정상의 손실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결국 그대의 유익이 되었다.

그대의 하늘 아버지께서 아직도 그대의 친절한 보호자임을 그대가 느끼기는 어려웠다. 그대의 시련과 당혹감들은 그대를 좌절시키는 경향을 가진 것들이었으며, 그대는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때엔가, 그대의 눈이 열릴 수만 있었다면, 그대는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대를 그대 자신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음을 보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그대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곳으로 인도했으며, 영원한 산보다 더 든든한 기반 위에 그대의 발을 옮겨 놓았다. 여기에서 그대는 빛을 보았고 그것을 받아들였다. 새 믿음과 새 생명이 그대의 인생길에 솟아났다. 섭리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태평양 출판소에서 그분의 사업과 그대를 연결시키셨다. 그분은 그대를 위해 역사 하셨으며, 그대는 그분의 인도하시는 손길을 보게 될 것이다. 슬픔은 그대의 몫이었으나, 그대는 자제력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들 중 많은 부분을 자초하기도 했다. 그대는 때로 매우 가혹했다. 그대는 급한 성미가 있는데 이것은 극복되어야 한다. 그대의 생애에서 그대는 자아 신뢰에 빠지거나 아니면 자신을 잃고 의기소침하게 될 위험이 있다. 말씀에 대한 계속적인 신뢰와 하나님의 섭리로 그대는 구속주를 위해 그대의 능력을 완전히 쓰는 데 적합하게 될 것이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시며 그대를 부르셨다. “나를 따르라.” 그대는 그분의 길을 알기 위해, 그리고 그분의 영의 지도하심을 따르려고 신실하고 겸손하게 노력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순복하는 정신을 길러야 한다. 361 그대는 자신의 명철을 의지해서는 안 된다. 그대는 자신의 지혜와 소위 분별력을 크게 불신해야 한다. 그대의 상황은 이러한 조심을 필요로 한다. 사람이 자신의 판단을 신뢰하는 것은 안전하지 못하다. 그는 기껏해야 제한된 능력만을 지니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출생시에 품성의 강하고 연약한 점을 모두 받았는데, 그것들은 긍정적인 결함이다. 이러한 특질들은 전 생애를 색칠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는 사람들을 이끌어 자아를 살피도록 한다. 진리는 그들의 잘못과 기존의 과오를 그들로 깨닫게 한다. 심령은 이 잘못들을 보고, 깨닫고, 알기 위해 열려져야 하며, 예수님의 도움으로 각자는 그것들을 극복하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한다.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들이 아무리 부지런히 지식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결국 제한되어 있고 상대적으로 열등한 것이다. 그러나 그분의 섭리의 신비 가운데서 하나님의 길과 사업을 이해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들은 조금 전진하다가 그 밑바닥이나 해변에 닿지 못한다. 자신을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피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견실한 가치와 높은 조예를 지닌 사람은 그들 자신의 이해의 연약함을 즉시로 인정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제자라고 주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배우는 사람, 가르치기보다는 배우려는 경향을 가진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신다.

현대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깊게 전진하는데 실패하는지! 그들은 표면을 스쳐 지나간다. 그들은 어려움을 보고 그것을 파악하기 위해 더 자세히 생각하지 않고, 진정한 문제의 요점을 보기 위해 충분한 주의와 관심을 가지고, 또한 사려 깊고 기도하면서 연구함으로 그들 앞에 다가오는 중요한 문제들을 살펴보지 않는다. 그들은 충분히 주의 깊게 재어 보지 않은 것들을 말한다. 지적이고 솔직한 사람들이 자주 단호하게 물리쳐 버릴 필요가 있는, 그들 나름의 견해들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들 지적 능력이 열등한 사람들은 잘못 인도될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정신적인 성향에 의해 습관이 형성되고, 관습과 감정과 의도들이 다소간 영향을 미친다. 때로 어떤 행동의 노선이 매일 같이 계속 추구된다. 판단해 봐서 옳아서가 아니라 그저 습관이기 때문이다. 362 이런 경우에 의무보다는 감정이 지배권을 쥔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극복할 필요가 있는 품성의 날카로운 특질들을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할 일이 너무도 많은 것을 보고 능력 있는 하나님의 손 아래에서 심령을 겸손하게 할 것이다. 무력한 우리의 영혼을 그리스도께 매닮으로써, 우리의 무지를 그분의 지혜로, 우리의 연약함을 그분의 강함으로, 우리의 허약함을 그분의 인내하는 힘으로 보충해야 한다. 하나님과 연결되면 우리는 참으로 세상에서 빛이 될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여, 그대의 많은 잘못과 실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대를 사랑하시고, 그대를 향하여 오래 참으신다. 그대를 위해 행해진 하나님의 부드러움과 동정하는 사랑에 비추어, 그대는 자녀들에게 더욱 친절하고 관용하고 인내하며 용서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대의 거친 것과 잔혹함은 그들의 마음을 그대에게서 떼어놓는다. 그대가 그들을 대하면서 압제적이며 성질을 부린다면 인내와 견딤과 오래 참음과 부드러움에 대해 교훈을 줄 수 없다. 그들은 그들의 부모가 그들에게 준 품성의 인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만일 그대가 그들을 권면하고 교훈하며, 어떤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기를 원한다면, 그 목적은 잔인함이나 그들에게 전제군주처럼 보이는 것을 사용해서는 얻을 수 없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서 그대는, 아버지가 실수한 자녀들에게 나타내야 하는 온화한 사랑과 정직으로 그대가 그들을 권면하고 지도할 수 있을 때에라야 그대는 진리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음을 그들에게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대의 자녀들이 그대의 생각대로 행하지 않을 때, 그들의 잘못에 대한 슬픔을 나타내고 그들을 위해 그들과 같이 기도하고 타이르는 대신에 그대는 감정이 폭발하여, 그들에게 유익이 되지 않고 그대에게 정떨어지게 하여 종래는 그대에게서 그들을 분리시키게 될 길을 따르게 된다.

그대의 작은아들은 비뚤어졌고 그는 옳게 행하지 않는다. 그의 심령은 하나님과 진리에 대하여 반역한 가운데 있다. 그는 자신을 비열하게 하고 거칠게 만들며 무례하게 할 뿐인 영향에 의해 감염되었다. 그는 그대에게 한 시험 거리이며, 회심하지 않는 한 그대의 인내심을 크게 고갈시킬 것이다. 363 그러나 잔혹함과 전제적인 냉혹함은 그를 개혁시키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그대 자신의 정신이나 격정의 영향 하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그를 위해 그대가 할 수 있는 일을 행하려고 애써야 한다. 그대는 그대의 자녀들을 다루는 데 있어서 그대 자신을 제어해야 한다. 그대는 공의는 자비라는 쌍둥이 자매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대가 자비와 부드러움과 사랑을 나타내면서 공의를 행할 때, 그대는 헛되이 수고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대의 아들은 타락된 의지를 지니고 있으며, 그는 현명한 훈육이 필요하다. 그대의 자녀들의 환경이 어떠 했는지, 좋은 품성을 형성하기에 얼마나 좋지 않았는지 살펴보라. 그들은 긍휼과 사랑이 필요하다. 작은아들은 그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있다. 지성은 이제 형성되고 있으며, 애정은 그 인상들이 새겨지고 있다. 이 젊은이의 미래의 경력은 지금 그가 추구하고 있는 행로에 의해 결정된다. 그는 덕이나 악으로 이끄는 길에 들어서고 있다. 나는 그 젊은이들에게 마음을 진리와 순결함으로 가득 채우라고 호소한다. 그가 죄악에 빠지는 것은 그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한다. 그는 죄를 짓는 것과 멋대로 하는 일이 매우 즐거운 것이라고 자신에게 속삭일지 모르나 결국 그것은 두려운 길이 될 것이다. 만일 그가 죄를 사랑하고 악을 행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교제를 사랑한다면, 그의 생각은 저열한 통로로 행할 것이요, 그는 순결함과 거룩함 속에서 아무런 매력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범죄자의 종말 즉, 죄의 삯이 사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는 공포에 사로 잡혀, 이렇게 외칠 것이다. “오 나의 아버지, 당신이 내 젊음의 안내자가 되소서.”

이생에서의 그의 성공은 그가 지금 나아가고 있는 행로에 크게 달려 있다. 그는 생애의 책임들을 짊어져야 한다. 그는 전도 유망한 젊은이가 아니었다. 그는 인내하지 못하였고 자제도 부족하다. 이것은 그의 아버지가 뿌린 씨앗이며, 뿌린 자가 거둘 수확을 낼 것이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우리는 얼마나 조심스럽게 씨를 뿌려야 하겠는가. 예수께서는 아직도 이 젊은이를 사랑하고 계신다. 그분은 그를 위해 돌아가셨고, 그를 초청하여 그분의 팔에 와서 그분 안에서 평안과 행복과 안정과 쉼을 얻으라고 하신다. 이 젊은이는 그의 전 생애를 꼴 짓게 될 친구들을 사귀고 있다. 364 그는 하나님과 연결되어야 하고 지체없이 그의 애정을 남김없이 그분에게 드려야 한다. 그는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사단은 그에게 세찬 공격을 퍼부을 것이나 그는 시험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나는 젊은이들의 위험을 보았다. 그들의 심령은 높은 기대로 가득 차 있으며, 내리막 길에 매우 마음을 끄는 것처럼 보이는 유혹적인 쾌락이 흩뿌려져 있는 것을 본다. 그러나 그곳에는 죽음이 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은 그들에게 매력이 없고, 가시와 찔레가 있는 길로 보이나, 그것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죄악된 쾌락의 부정을 요구하는 길이요, 그것은 좁은 길이며, 주께 사로잡힌 자들이 걸어가도록 닦여진 것이다. 어떤 사람도 자만과 자기 의지와 기만과 거짓과 부정직과 정욕과 더러운 욕정의 짐을 가지고는 이 길을 걸어 갈 수 없다. 이 길은 매우 좁기 때문에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뒤에 남겨 두어야 한다. 그러나 넓은 길은 죄인들이 그들의 온갖 죄악된 성향을 지니고 여행할 만큼 충분히 폭이 넓다.

청년이여, 만일 그대가 사단을 그의 모든 시험과 더불어 거절한다면 그대는 구주의 발자취를 따를 수 있을 것이며, 하늘의 평안, 그리스도의 기쁨을 갖게 될 것이다. 그대는 죄악에 탐닉하는 데서 행복할 수 없다. 그대는 행복하다고 자위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대는 진정한 행복을 모른다. 품성은 죄악의 방종으로 인해 추해질 것이다. 밑으로 내려가는 길로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위험과 마주칠 것이다. 그러나 젊은이를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보거나 깨닫지 못한다. 젊은이들에게 주어져야 할 친절하고 부드러운 관심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만일 좋은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그들에게 친절하고 사랑스런 말이 발해졌다면 많은 청년들이 죄악의 영향으로부터 지켜졌을 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형제여, 나는 그대의 행동이나 의지가 방해를 받을 때, 그대의 감정이 그대를 너무도 자주 지배하기 때문에 실망하지 말기를 바란다. 결코 낙심하지 말라. 요새이신 분에게 피하라. 깨어 기도하고 다시 노력하라.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그대가 경계해야 할 또 다른 사항이 있다. 그대는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기 위해 항상 조심하고 있지 않다. 365 그대는 자매들과 경박하고 어리석은 방법으로 말하며 너무 가까이 하는 위험에 처해 있다. 이것은 그대의 영향을 손상시킬 것이다. 이 모든 점들을 주의 깊이 삼가고 경계하도록 하라. 시험하는 자의 첫 번째 접근에 대해 주의하라. 그대는 매우 신경질적이고 흥분을 잘한다. 차는 신경을 흥분시키는 영향이 있으며, 커피는 두뇌를 마비시키는 것으로 둘 다 매우 위험하다. 그대는 식사에 주의해야 한다. 건강에 좋고 영양이 있는 음식을 먹고, 차분한 마음을 유지하여 아주 흥분되어 감정을 폭발시키는 일이 없게 하라.

그대는 출판소에서 큰 봉사를 할 수 있다. 만일 변화된다면 그대는 중책을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대로서는, 그대가 할 수 있는 일을 확실히 이룰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대가 감정이 거칠고 조악한 것을 보았다. 이것들은 부드러워지고 세련되며, 고상해질 필요가 있다. 그대의 모든 행위에 있어서 그대는 자제의 습관을 배워야 한다. 그대는 지금 가지고 있는 정신을 가지고는 하늘에 들어갈 수 없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어떤 귀족이 이것과 필적할 수 있는가? 무한하신 하나님의 자녀라고 칭해지는 것보다 어떤 더 높은 자리를 우리가 차지할 수 있겠는가? 그대는 주님을 위해 어떤 큰 일을 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그대는 그분을 가장 기쁘게 해드릴 일을하지 않고 있다. 그대는 그리스도의 평안과 내재하시는 구주를 소유할 수 있도록 자아를 극복하는 일에 신실하지 않겠는가?

어려움 당하는 그대의 아들은 조용하고 부드럽게 다루어져야 하며, 그는 그대의 동정이 필요하다. 그는 그대의 비정상적인 기질과 비합리적인 요구에 노출되어서는 안된다. 그대는 그대가 드러내는 정신에 관하여 개혁을 해야 한다. 제어되지 않은 정욕은 한 순간에 누그러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참지 못함과 결점을 찾는 일, 고압적인 자세의 독풀을 마음의 정원에서 제거해야 하는 필생의 사업이 그대 앞에 놓여 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다. 그러나 그대의 본성의 야수적인 부분이 통제의 끈을 쥐고 영적인 것을 지도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질서가 뒤집어진 것이다.

366 일에 있어서 그대의 신실함은 칭찬 받을 만하다. 출판소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그대의 신실함과 근면함과 완전함의 모본을 본받는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는 하나님의 영의 은혜가 부족하다. 그대는 지성적인 사람이지만, 그대의 능력은 남용되었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은혜와 인내와 사랑을 그대에게 제시하신다. 그대는 그 선물을 받아들이겠는가? 그대의 언행에 주의하라. 그대는 매일의 생애에서 씨를 뿌리고 있다. 모든 생각과 행해진 말들과 이루어진 모든 행위들은 땅에 뿌려졌으며, 이것은 싹이 나고 열매를 맺어 영생에 이르든지 비참함과 썩는데 이르게 될 것이다. 나의 형제여, 그대가 정욕이 그대를 지배하도록 할 때, 하나님의 천사가 그대의 불쌍한 형편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생각하라. 그리고 그것이 하늘의 책에 기록된다. 씨를 뿌린 대로 수확을 거둘 것이다. 그대는 그대가 뿌린 것을 반드시 수확하게 될 것이다.

그대는 식욕을 조절해야 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점을 정복해야 한다. 그대의 건강은 올바른 습관을 가지면 좋아질 것이다. 그대의 신경계는 크게 손상되어 있다. 그러나 위대한 의사께서는 그대의 영혼과 육신을 치료하실 수 있다.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고, 그분의 은혜를 힘으로 삼으라, 그러면 그대의 육신적, 도덕적, 영적인 힘이 크게 향상될 것이다. 그대는 다른 사람보다 정복할 것이 더 많다. 그래서 더 심한 싸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대의 신실한 노력을 인정하신다. 그분은 그대가 자아를 그분의 영의 지배 하에 두기 위해 얼마나 힘들게 수고해야 하는지를 아신다. 자아를 예수님의 손안에 놓아라. 그대 앞에 놓인 목표, 즉 그대의 자녀들과 그대가 교제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복이 되는 목표와 함께, 자아 계발이 그대의 사업이 되어야 한다. 하늘은 그대가 정복의 사업에서 얻는 모든 승리를 기쁨으로 바라볼 것이다. 만일 그대가 화내는 것과 정욕을 버리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본다면, 그대는 그분의 공로로 그리스도인 품성을 계발하게 될 것이다. 단번에 결정적인 변화를 이루라. 그리고 그대는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부여하신 지성에 걸맞게 역할을 다 행하겠다고 결정하라.

내가 육신적, 정신적, 도덕적인 면에서 사람의 현재 상태와,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해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보게 되었을 때, 나는 사람들이 이렇게 낮은 차원에 머물러 있는 것에 놀라게 되었다. 367 사람은 그의 살아 계신 머리,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날 수 있다. 그것은 한 순간의 사업이 아니며, 일생의 사업이다. 날마다 신령한 생애 가운데서 자라남으로써 그는 유예의 시기가 끝나기 전까지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사람의 충만한 상태를 성취하지 않을 것이다. 자라남은 계속적인 일이다. 불타는 정욕을 가진 사람들은 자아와 계속 투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힘들수록 승리와 영원한 상급은 더욱 영광스러울 것이다.

그대는 출판소의 사무와 관련되어 있다. 이 위치에서 그대의 품성의 특이한 특성들이 드러날 것이다. 생애의 작은 예모들은 소중히 간직되어야 한다. 견고한 공의의 원칙과 정직과 아울러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기질은 그대를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만들 것이다. 지금이 하늘에 들어갈 도덕적 적합성을 얻어야 할 때이다. 그대가 속한 교회는 정결케 하고 고상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제자들에게 순결하고 고상하고 정직하며 좋은 평판을 받는 사람, 신실하며 친절한 사람이 되기를 요구하신다. 더 중요한 문제들에 있어서 올바른 것이 필수적이지만, 그러나 이것이 보다 덜 중요하게 보이는 것들을 소홀히 하는데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율법의 원칙은 생애와 품성에서 계발되어야 한다. 견고한 정직성과 신실성과 어우러진 사랑스러운 기질은 어떤 직임도 맡을 수 있는 도덕적 적합성을 이루게 될 것이다. 사도 베드로는 간곡히 권한다. “겸손하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기쁜 기질과 겸손한 품행을 갖고 있지 않다면 그분의 모본을 따를 수 없다. 진실한 그리스도인 예모는 배양되어야 한다. 성질을 제어하지 못하고 계속 부리는 일을 통하여 우리의 영향력을 우리처럼 감소시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천성적으로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참된 행복을 알지 못하며, 좀처럼 만족하지 못한다. 그는 항상 더 좋은 자리에 나아가기를 원하며, 평안과 마음의 안식을 찾을 수 있도록 그의 환경을 변화시키기를 원한다. 그의 생애는 무거운 십자가와 시련으로 짐에 눌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가 성질을 제어하고 그의 혀를 통제했더라면 이 많은 괴로움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368 “분노를 쉬게 하는 것은 유순한 대답이다.” 복수심은 적을 결코 정복하지 못했다. 잘 조절된 기질이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으니라.”

모세의 생애를 생각해 보라. 투덜거림과 비난과 화를 돋구는 일들의 와중에서 온유함이 그의 품성의 가장 빛나는 특질을 이루었다. 다니엘은 겸손한 정신의 사람이었다. 비록 주위 사람들이 그를 불신과 의심의 눈초리도 보고, 그의 대적은 그의 목숨을 노리고 덫을 놓았지만, 그는 결코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을 침착하고 용기 있게 신뢰했다. 더욱이, 그리스도의 생애에서 교훈을 배우라. 모욕을 당하셨을 때, 그분은 욕하지 않으셨다. 고통당하셨을 때 그분은 위협하지 않으셨다. 이 교훈은 그대가 반드시 배워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결코 하늘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를 그대의 힘으로 삼아야 한다. 그분의 이름으로 그대는 넉넉히 이길 수 있다. 야곱을 해할 사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다. 만일 그대의 영혼이 영원한 반석에 고정되어 있다면 그대는 안전하다. 기쁨이 오든지 슬픔이 닥치든지 그 어떤 것도 그대를 흔들어서 옳은 데서 떨어지게 할 수 없다.

그대는 세상의 바다에 떠다닌다. 그러나 영원한 진리는 그대에게 닻이 될 것이다. 그대는 그대의 믿음을 지킬 필요가 있다. 충동으로 움직이거나, 모호한 이론을 품지 말라. 그리스도를 믿는 체험적인 믿음과 하나님의 율법에 순복하는 것이 그대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될 것이다.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충고와 권면을 기꺼이 받아 들이라. 정복하는 일에 있어서 어떤 지체도 하지 말라. 그대 자신에게 진실하고 그대의 자녀에게 참되고 하나님께 진실하라. 그대의 고통당하는 아들은 부드러운 취급을 받을 필요가 있다. 아버지로서 그대는, 쾌락으로 전율을 느낄 수 있는 신경은 또한 예민한 고통으로도 전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주께서는 고통 당하는 인류의 관심사를 자신의 관심사로 삼으신다. 많은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을 유용성과 의무를 위해 교육시켜서 그 자신들과 남들을 위해 복이 되도록 해야 할,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책임을 잊고 있다. 아이들은 흔히 아기 때부터 제멋대로 하도록 버려 두며, 그들의 잘못된 관습이 굳어지게 된다. 부모들이 어린나무들을 구부러지게 했다. 그들의 훈련의 방법에 의해 품성이 추하게 계발되든지, 균형지고 아름답게 계발되든지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제멋대로 하게 둠으로써 실수하는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정반대의 극단에 치우쳐서, 그들의 자녀를 철장으로 다스린다. 369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도 성경의 지시를 따르고 있지 않은 것이며 둘 모두 두려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자녀들의 마음을 꼴 짓고 있으며, 하나님의 날에 그들이 이렇게 한 데 대해 설명을 해야 한다. 영원은 이생에서 행해진 일의 결과를 드러낼 것이다. “작은 가지가 굽은 대로 나무가 기울어진다.”

그대의 다스리는 방법은 잘못되었으며, 결정적으로 잘못되었다. 그대는 인자하고 동정적인 아버지가 아니다. 그대가 비정상적으로 감정을 폭발시킴으로써 그대의 자녀에게 어떤 모본을 끼쳤는가! 그대는 그대의 비뚤어진 훈련에 대해 하나님께 어떤 설명을 하게 될 것인가! 만일 그대가 그대의 자녀에 대한 사랑과 존중심을 가지고 있다면, 그대는 그들에게 애정을 나타내야 한다.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은 결코 변명될 수 없으며, 그것은 언제나 맹목적이고 왜곡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대의 행동 노선을 바꾸라고 요청하신다. 그대는 극복하기 위해 결정적인 노력을 한다면 직무에 있어서 유용하고 효율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대의 견해를 표준으로 세우지 말 것이다. 주께서는 그대가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우는 자가 될 수 있도록 그대를 그분의 백성에게 연결시키셨다. 그대의 생각은 왜곡되었으며, 그대는 이제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그대는 정신이 변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 지상에서 살았던 가장 온유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한 사건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불쾌하심을 초래하였다. 그는 물 때문에 이스라엘 자녀들이 불평함으로 인해 크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에게 쏟아지는 당치도 않은 비난이 그로 하여금 한 순간, 그들의 불평은 그를 대적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항한 것이라는 것을 잊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모욕을 당했기 때문에 슬퍼하는 대신, 그는 흥분하여 불끈하게 되었고, 자기 의지로 참지 못하여 반석을 두 번 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모세와 아론은 마치 기적이 자기들에 의해 일어난 것처럼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들을 놓았다. 그들은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을 높이지 않고 자신들을 높였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행위에 빠짐으로 궁극적으로 영생을 얻지 못할 것이다.

모세는 백성들 앞에서 큰 약점을 드러냈다. 370 그는 현저한 자제의 결핍을 보였고, 불평하는 자들이 가졌던 비슷한 정신을 나타냈다. 그는 대중들 앞에서 인내와 관용의 모본이 되었어야 했다. 대중들은 그들의 실패와 불만, 그리고 불합리한 불평을 그의 편에서의 잘못 때문이라고 변명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데 있었다. 지금까지 모세가 차지하고 있었던 명예의 자리는 그의 죄를 경감시켜 주지 않았으며, 그것을 크게 했다. 지금까지 흠없던 사람이 이제 타락했다. 비슷한 위치에 있는 많은 이들이 그들의 흔들림 없는 신뢰의 긴 생애로 인해 그들의 죄가 간과되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니다. 하나님의 영예가 되었던 사람이 격정을 나타냄으로써 품성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것은, 책임이 덜한 자리에서 보다 더 심각한 문제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대표자였다. 그러나 그 모습이 얼마나 심하게 망가졌는가! 모세는 범죄했으며, 그의 과거의 신임은 현재의 죄를 대속할 수 없었다. 이스라엘의 모든 회중은 후세대를 위한 역사를 만들고 있었다. 실수가 없는 영감의 펜은 이 역사를 정확한 진실로써 기록해야 한다. 모든 미래의 사람들은 하늘의 하나님께서 어떤 경우에도 죄를 정당화시키지 않는, 엄격한 통치자임을 알아야 한다. 모세와 아론은 보다 낮은 위치에 있던 사람들에게 내려졌던 동일한 심판으로 인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어야 했다. 그들은 표현할 수 없는 심령의 고민이 있었지만, 복종했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사랑과 신뢰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들의 모본은 많은 사람들이 이것으로부터 배워야 할만큼 배우지 않고 건너뛰는 한 교훈이다. 죄는 죄되게 나타나지 않는다. 자아를 높이는 것은 그들에게 슬프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죄의 죄악됨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들은 하나님은 너무 좋으신 분이라 범죄자를 책망하지 않으신다고 스스로 아첨한다. 모세와 아론, 다윗과 그 외 수많은 사람들의 경우들은 말이나 생각에서나 행동으로 범죄하는 것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무한한 사랑과 긍휼의 존재이시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행한 고별 설교에서 이렇게 말했다. “너희 주 하나님은 소멸하시는 불이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라.” 가나안에 들어갈 특권을 달라는 모세의 간절한 호소는 단호하게 거절되었다. 371 가데스에서의 범죄는 공개적이었으며 현저했다. 그리고 범죄자의 자리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리고 그 사람이 탁월하면 탁월할수록, 판결은 더욱 확실하고 형벌은 더욱 분명하다.

사랑하는 형제여, 주의하라. 그대의 행로에 비치는 빛에 충실하라. 바울은 말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목사들의 헌신

3년 전, 주께서는 나에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사물에 관한 이상을 주셨다. 나는 젊은이들이 진리를 설교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 당시, 그들 중의 몇 사람은 진리를 아직 자신에게 받아들이지 않은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은 그 때부터 진리를 붙잡고 다른 사람들을 그것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I 형제여, 나는 그대의 경우를 보았다. 그대의 과거의 삶은 그대로 하여금 자신을 버리고 자신을 초월하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아니었다. 그대는 본성적으로 자신의 힘만 신뢰하는, 이기적이고 자만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하면 그대는 겸손하고 능률적인 그리스도의 목사가 되는 데 필요한 경험을 얻지 못할 것이다.

일터에는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진리의 이론은 제시할 수 있으나, 진정한 경건은 부족하다. 만일 그대를 포함하여 복음의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목사들이 매일 자아를 살피고 하나님과 날마다 교제할 필요를 느낀다면,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말씀을 받아 백성들에게 줄 수 있는 상태에 있게 될 것이다. 그대의 말과 매일의 삶은 생명에서 생명으로 이르는 향기가 되든지, 죽음에서 죽음에 이르는 냄새가 될 것이다.

그대는 지성적으로 진리를 믿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대 앞에는 그대의 모든 생애의 행위와 심령의 모든 정서를 그대의 믿음과 조화시키는 일이 놓여 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바로 직전, 그분의 제자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기도는 이러했다. 372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진리의 감화는 이해뿐만 아니라 심령과 생애에까지 영향을 미쳐야 한다. 참되고 실제적인 종교는 그것을 지닌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애정을 조절하도록 이끈다. 그의 외적인 행위는 진리로 성화되어야 한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그대에게 단언하는데, 그대는 실제적인 경건이 대단히 부족하다. 목사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양떼에게 모본이 될, 그 위대한 사업에 성화되어 그 일을 하지 않는다면, 위대한 모본자, 그리스도의 모형으로서 백성들의 교사의 책임을 져서는 안된다. 성화되지 않은 한 목사는 헤아릴 수 없는 해를 끼칠 수 있다. 그리스도의 대사라고 공언하는 동안, 그의 모본은 다른 사람들이 본뜨게 될 것이며, 그의 흠과 결점들은 그들 속에 다시 재현된다.

사람들은 우리의 출판물에 철저하고도 완전하게 제시된 위대한 진리들을 유창하게 되뇌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들은 교회내에서의 신앙의 퇴조를 열렬하게 지적으로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백성들 앞에 복음의 표준을 유용하게 제시할 수 있을 지 모른다. 그러나 느낌과 더불어 행위를 요구하는 그리스도인 생애의 매일의 의무는 더 중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고 있다. 이것이 그대의 위험이다. 실제적인 종교는 심령과 정신과 매일의 생활에 똑같이 그 요구가 적용된다. 우리의 신령한 믿음은 단순히 감정이나 행위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으며, 이 둘은 그리스도인 생애에 같이 결합되어야 한다. 실제적인 종교는 성령의 역사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형제여, 그대는 이 매체 곧 성령이 필요하며 범죄자들에게 그들의 잃어버려진 상태를 확신시키려고 애쓰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필요하다. 하나님의 영의 이 매체는 우리에게서 능력과 재능을 활용할 필요성을 제거하지 않으며, 우리의 모든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지를 가르쳐 준다. 사람의 능력은 하나님의 은혜의 특별한 지도하에 있을 때, 이 땅에서 가장 좋은 목적에 이용될 수 있으며, 미래의 불멸의 생애에서도 활용될 것이다.

나의 형제여, 나는 만일 그대가 사업에 전적으로 헌신한다면 매우 성공적인 교사가 될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헌신하지 않으면 매우 형편없는 일꾼이 될 것임을 보았다. 373 그대는 세상의 구속주께서 하신 것처럼, 복음 설교자의 의무에 있어서 수고스러운 분야 즉, 종의 역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면에 그대처럼 부족한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그들이 자신을 섬기는 데 대부분 일을 했는지, 혹은 사업을 위하여 일했는지 , 그들의 시간과 재능을 하나님의 사업에 전적으로 바쳤는지, 혹은 강단에서 설교만 하고 나머지 시간을 그들 자신의 이익과 기호와 쾌락을 위해 바쳤는지 별로 생각하지 않고 삯을 받는다.

하늘의 대주재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왕복을 벗으시고, 사람들에게 어떻게 자아 부정과 자아 희생의 삶을 살 수 있는지, 그리고 그들의 매일의 생애에서 어떻게 실제적인 신앙을 실행할 수 있는지를 가르치기 위해 저주를 받아 완전히 시들고 망가진 이 세상에 오셨다. 그분은 복음을 전하는 목사의 올바른 모본을 보여 주기 위해 오셨다. 그분은 한 가지 목적을 위해 끊임없이 일하셨다. 그분의 모든 능력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쓰여졌으며, 그분의 생애의 모든 행위는 그 목적을 위해 행해졌다. 그분은 발로 여행하셨으며, 가면서 당신의 제자들을 가르치셨다. 그분의 옷은 먼지가 가득했고, 여행으로 얼룩졌으며, 외모는 사람의 마음을 끌지 못했다. 환영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분의 신령한 입술에서 떨어지는 단순하고 분명한 진리는 그분의 청중들에게 곧 그분의 외모를 잊게 하고, 사람이 아닌 그분이 가르치시는 교훈에 의해 매혹당하게 했다. 그분은 자주 온 종일 가르치신 다음, 밤을 기도로 새우셨다. 그분은 통곡과 눈물로 그분의 아버지께 탄원하셨다. 그분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구속하기 위해 온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우리의 구주처럼 밤새 기도하거나, 능력 있는 복음의 목사가 되고,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의 아름다움을 보도록 하여,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해 구원을 받도록 인도하는데 있어서 효율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낮에 기도하는 데 시간을 바치는 목사는 몇 안된다. 다니엘은 하루에 세 차례 기도했으나,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은 하루에 단 한 번도 기도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영혼을 낮추지 않는다. 사랑하는 구주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겸손에 관한 뚜렷한 교훈을 주셨는데, 특별히 복음의 목사들에게 주셨다. 374 지상에서의 그분의 사업이 거의 끝나고, 그분의 손에 모든 능력을 장악하신 채 그리고 그분의 머리에 온갖 영광을 쓰시고 자신이 내려 오셨던 아버지의 보좌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겸비를 쓰신 그분께서 하신 마지막 교훈 가운데 하나는 겸손의 중요성에 대한 것이었다. 그분의 제자들이 약속의 왕국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이 될 것이냐에 대해 싸우고 있었을 때, 그분 자신은 종처럼 차리시고 그분을 주님이요 선생님이라 부르는 사람들의 발을 씻기셨다.

그분의 봉사는 거의 마쳐졌다. 그분은 나누어 주실 몇 가지 교훈만 가지고 계셨다. 그리고 순결하고 점없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겸손을 결코 잊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하여, 자신을 낮추어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 우리의 구속주의 생애의 마지막 장면을 자주 회고해 보는 것은 일반적으로 우리의 목사들과 그대에게 좋은 일이 될 것이다. 그분과 같이 시험에 둘러싸인 이곳에서, 우리 모두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다. 구유로부터 갈바리까지 그리스도의 생애를 회상하면서 날마다 생각하는 시간을 보내는 것은 좋은 일이 될 것이다. 우리는 특별히 그분의 지상 생애의 마지막 부분을 하나 하나 취하고, 상상으로 매 장면을 분명하게 포착해야 한다. 이렇게 그분의 가르침과 고통, 인류의 구속을 위한 그분의 무한한 희생을 명상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하고, 우리의 사랑을 일깨우고, 우리의 구주를 지탱했던 영예보다 더 깊이 물들 것이다. 만일 우리가 마침내 구원받고자 한다면, 우리는 십자가 밑에서 참회와 믿음의 교훈을 배워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한 수치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굴욕을 당하셨다. 그분은 우리를 지키기 위해 당신에게 떨어지는 책망과 모욕과 훼방을 받기로 동의하셨다. 흑암의 장막을 그분의 영혼에 뒤집어 씌우고 하나님에게 맞아 버림받으신 분으로서그분에게서 그런 부르짖음이 나오게 만든 것은 우리의 범죄였다. 그분은 우리의 슬픔을 지셨으며, 우리의 죄악을 인해 슬퍼하셨다. 그분은 당신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될 수 있도록 자신을 죄를 위한 제물로 드리셨다. 사람 안에 있는 모든 고상하고 너그러운 것은 십자가상의 그리스도를 명상하는 일에 반응할 것이다.

375 나는 우리의 목사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더 많이 생각하고, 그들의 마음은 무한한 희생을 하게 했던, 구주의 비할 데 없는 사랑으로 심령이 부드러워지고 진정되기를 바란다. 진리의 이론과 관련하여, 만일 우리의 목사들이 진리의 영에 물든 마음을 가지고 말하며 실제적인 경건을 깊이 생각한다면, 우리는 더욱 많은 영혼들이 몰려들어 진리의 표준을 받아들이는 것을 보게 될 것이며, 그들의 심령은 인류를 위해 고통당하는 예수님의 무한한 관용과 긍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간구에 의해 감동을 받을 것이다. 이 중요한 주제들은 우리의 믿음의 교리적인 요점과 관련되어 백성들 가운데 더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러나 교사들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체험적인 지식으로 가득 차야 한다.

십자가의 힘 있는 논증은 죄를 깨닫게 해줄 것이다. 사람들이 고상하게 되고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당신의 아들을 선물로 내어 주셔서 수치와 사망을 당하게 한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은 일생의 연구 대상이다. 나는 그대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다시 연구하기를 요청한다. 만일 사람들의 칭찬과 동료들보다 탁월하게 되기를 열망하는 모든 거만하고 자만심이 강한 사람들이, 그분께서 구속하기 위해 오신 바로 그들에 의해 거절당하고 멸시당하며, 침뱉음을 당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가치와 비교하여 가장 높은 지상의 영광을 바르게 평가할 수 있다면, 유한한 사람이 주는 모든 영광이 얼마나 하찮게 나타날 것인가!

사랑하는 형제여, 그대는 그대의 일을 불완전하게성취하면서도 그대가 어떤 자리에도 적합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그대는 아직 자신을 통제하기에도 충분치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대는 기꺼이 지도를 받고 배우는 자의 자리에 자신을 놓아야 할 때, 경험 있는 사람들을 명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대가 그리스도와 비할 데 없는 그분의 사랑을 적게 생각할수록, 그리고 그분의 형상과 비슷하지 않을수록, 그대는 자기 눈에 더 나아 보일 것이며, 자아 신뢰와 자기 도치에 더 많이 빠질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지식, 곧 우리의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를 끊임없이 바라보는 것은 그대에게 진정한 그리스도인 품성의 모습을 보여 주어, 위대한 모본자 되시는 분의 것과 대조하여 그대 자신의 생애와 품성의 올바르게 평가하는 데 실패하지 않도록 해 줄 것이다. 376 그 때, 그대는 스스로의 연약함과, 무지와, 안일을 사랑함과, 자아를 부정하는 데 내키지 않는 마음을 보게 될 것이다.

그대는 이제 겨우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대는 다른 사람들이 많은 수고와 기도로 발굴한 진리의 보석을 몇 개 잡았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으로 가득하다. 그 책을 열심히 연구하고 그대의 생애의 규범으로 삼으라. 그대의 위험은 권면을 무시하고, 하나님보다는 그대 자신에게 더 높은 가치를 놓는 데 있다. 유능하게 말할 수 있는 목사에게 아첨하고 칭송을 돌리고자 준비된 많은 사람들이 언제나 있다. 젊은 목사는 칭찬을 받고 고임을 받아 해를 당할 수가 있다. 동시에 그는 그분의 대변인이라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필수적인 것에는 부족할지도 모른다. 그대는 이제 겨우 그리스도의 학교에 들어갔을 뿐이다. 그대의 사업에 적합하게 되는 것은 일생의 사업이며, 이미 형성된 습관과 경향과 유전적인 성향에 매일같이, 열심히 백병전을 벌여야 하는 투쟁이다. 그것은 끊임없이, 열렬하고 신실하게 자아를 지키고 통제하는노력을 요구하며, 예수님을 높이고 자아를 시야에서 몰아내는 일도 요구한다.

그대는 그대의 품성의 약한 점들을 주의하고, 잘못된 경향을 자제하고, 적절하게 활용되지 않은 고상한 능력들을 강화하고 계발시킬 필요가 있다. 세상은 영혼과 하나님 사이에서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는 일을 결코 알지 못하며, 영혼의 내적인 비통함과, 자아 혐오, 자아를 조절하기 위한 계속적인 노력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이런 노력의 결과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대의 매일의 생애에 나타나신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이다. 그대는 모든 사람에게 읽혀지고 알려진 편지가 될 것이며, 고상하게 계발된 균형진 품성을 갖게 될 것이다.

“내게 배우라”고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그분은 지식을 달라고 그분께 오는 사람들을 가르치실 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거짓 교사들이 있다. 사도는 마지막 날에 사람들이 부드러운 것만 듣기 원하여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둘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것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경고하셨다. 377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 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여기에 묘사된 부류의 종교 지도자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경건의 모양이 있으며 영혼들의 유익을 위해 일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들의 심령은 탐욕적이고, 이기적이고, 안일을 사랑하고, 그들의 거룩지 못한 심령의 충동을 따른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가르침과 모순되며, 그분의 온유하고 겸손한 정신이 결핍되어 있다.

이 마지막 시대를 위한 거룩한 진리를 전하는 설교자들은 이 모든 것과는 반대되어야 하며, 그들의 생애와 실제적인 경건으로 거짓 목자와 참된 목자 사이에 존재하는 구별된 점을 명확하게 나타내야 한다. 선한 목자께서는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구원하려고 오셨다. 그분은 일하시면서 그분의 양들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셨다. 목자장 밑에서 일하는 모든 목자들은 그분의 특성을 가질 것이다. 그들은 온유하고 겸손한 심령이 될 것이다. 어린이 같은 믿음은 영혼에 쉼을 가져올 것이며, 사랑으로 역사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언제나 관심을 갖는다. 만일 그리스도의 영이 그들 안에 거할 것 같으면 그들은 그리스도와 같게 될 것이며, 그리스도의 사업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목사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주인을 오해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섬긴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이 사단의 깃발 아래서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들이 세상적으로 현명하고, 투쟁과 헛된 것을 위해 열심을 내면서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는 쇼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용하지 않으신다. 행위를 하도록 만드는 동기가 사업에 품격을 부여한다. 비록 사람들은 그 결핍을 분별하지 못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간파하신다.

진리의 말씀은 믿음을 굳게 붙잡고 마침내 구원받을 영혼들을 확신시켜 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진리를 제시했던 이기적인 설교자들은 그들을 회심시킨데 대하여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없다. 그는 시온의 성벽 위에서 파수꾼이라고 공언하면서도 불성실한 것에 대해 심판 받을 것이다. 심령의 교만함은 품성의 두려운 특질이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 이것은 가정에서, 교회에서, 그리고 국가에서도 사실이다. 세상의 구주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단순하고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을 선택하셔서 단순성에 있어서 아름다운 그분의 진리를 세상에, 특히 가난한 자에게 전하도록 가르치셨다. 378 목자장은 목자들을 자신과 연결시키실 것이다. 그분은 이 무식한 사람들이 그들의 일을 하는 동안 무지한 채로 남아 있지 않고, 그들이 모든 지식과 빛과 능력의 근원인 그분으로부터 지식을 얻도록 계획하신다.

복음의 목사들을, 확신시키고 회심시키는 데 그처럼 무력하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부재이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박사들과 제사장들과 율법사들과 서기관들과 신학자들은 이 무식하고 겸비한 사람들로부터 나오는 지혜와 능력의 말씀을 듣고 놀랐다. 이 지혜로운 사람들은 비천한 제자들의 성공에 놀랐으며, 마침내 이것은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었고 그분에게서 배웠다는 사실에서 그것에 대한 만족스러운 해답을 얻었다. 그들의 품성과 가르침의 단순성은 그리스도의 품성과 가르침과 비슷했다. 사도는 이것을 이런 말로 묘사한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은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날 인기가 없는 진리를 가르치는 사람들은 그들의 교훈에 결합시켜야할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가져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노력은 별로 중요치 않을 것이다. 겸손의 귀한 은혜는 목회직과 교회에 참담하게도 부족하다. 진리를 전파하는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능력을 너무 높게 생각한다. 진정한 겸손은 그리스도와 진리를 높이도록 사람을 이끌며, 진리의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해야 할 필요성을 깨달을 것이다. 겸손의 교훈을 배우는 것은 고통스러우나 결국 이것보다 더 유익한 것은 없다. 겸손의 교훈을 배우는 데 따르는 고통은 우리가 자아에 대한 잘못된 평가를 하여 우리가 우쭐하게 된 결과이며, 그래서 우리는 큰 필요를 깨달을 수 없다. 허영과 교만이 사람들의 마음에 가득하다. 하나님의 은혜만이 개혁의 일을 할 수 있다.

나의 형제여, 그대 자신을 낮추는 것은 그대가 할 일이며 하나님께서 그대를 낮추시도록 기다리지 말라. 379 하나님의 손길은 때로 사람들을 낮추시기 위해 사람들을 무겁게 누르시고, 그분 앞에 올바른 위치로 그들을 이끌어 오신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날마다 심령을 겸손하게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더 좋겠는가! 우리는 자신을 낮출 수 있다. 아니면 우리가 교만한 마음으로 자신을 세우다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낮추실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 복음의 목사들은 오늘날 진리를 위해 거의 고난당하지 않는다.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의 사도들처럼, 또한 후기의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처럼 핍박을 받는다면, 그리스도 편으로 더 가까이 전진할 수 있을 것이며, 구주와의 더 가까운 연결은 이 땅에서 그들의 말에 능력이 있게 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당하셨다. 그분은 죄인들의 핍박과 반대를 견디셨다. 그분은 가난했고, 배고프고 피로하셨다. 마귀에게 시험당하셨고, 그분의 사업과 가르침은 혹심한 증오를 만났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 무엇에 대하여 자신을 부정하는가? 진리를 위한 우리의 헌신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을 피하며 관심과 책임을 회피한다. 우리가 사업에 대해 아주 적게 헌신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노력에 함께 역사하도록 기대할 수 있겠는가?

나의 형제여, 나는 그대의 경건의 표준이 높지 않음을 보았다. 그대는 하나님과 사회에 대한 그대의 책임을 더욱 깊이 느껴야 한다. 그래야 그대는 그대 자신에 만족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결점들을 가리키면서 자기를 변명하려고 노력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대는 진리에 대한 철저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하여 자격을 갖추는 일을 안이하게 한다. 그대는 능력 있고 헌신한 복음의 목사가 되고 경건함과 거룩함의 사람이 되기 위해 새로운 회심이 필요하다. 만일 그대가 하나님의 사업에 그대의 모든 힘을 바친다 하더라도, 그대는 너무 많이 바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중에 어떤 사람이라도 기껏해야 저는 동물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다. 만일 그대가 계속적으로 하나님을 찾아 구하고 더 깊게 그분에게 충성하려고 노력한다면 그대는 그대 스스로 성경 연구를 하는 가운데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게 될 것이다.

진리를 이해하기 위하여 그대는 마음을 훈련시키고 단련시켜야 하며, 진정한 경건의 덕성들을 갖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대는 지금 그것이 무엇인지 거의 모른다. 그리스도가 그대 안에 계시면, 그대는 진리의 이론 이상의 어떤 것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380 그대는 지상에 계실 때 그리스도께서 주신 교훈들을 회상할 뿐만 아니라 그대는 자아 부정과 하나님의 사업에 대한 헌신의 생애로 다른 사람을 가르치게 될 것이다. 그대의 생애는 강단에서 주어지는 어떤 설교보다 더 강한 능력을 가진 설교가 될 것이다.

그대는 그대가 다른 사람들의 생애에서 실천되는 것을 보기 원하는 그러한 사욕 없는 정신, 그러한 자아 부정의 미덕과 순결한 헌신을 계발시킬 필요가 있다. 영적인 지성을 계속 계발하고 더욱더 효과적으로 만드려면, 그대는 그대의 길에 놓인 작은 의무들에 있어서 유용성의 습관을 키워 나갈 필요가 있다. 그대는 어떤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리지 말고 작은 일에 있어서 그대 자신이 신실함을 보일 수 있는 첫 번째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 그대는 이렇게 일함으로써 하나의 신임 받는 자리에서 다른 자리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그대는 지식이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며, 은밀한 기도와 경성, 성경에 대한 주의 깊은 연구를 등한히 하게 될 것이며, 결과적으로 대적에 의해 정복당하게 될 것이다. 그대의 길은 그대의 보기에 완벽한 것으로 보일지 모르나, 실상 그대는 결함이 매우 많다. 그대는 영혼의 대적과 협상할 시간이 없다. 지금은 그대의 입장을 주장하고 대적을 실망시킬 때다. 그대는 자아를 면밀하고 빈틈없이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대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업을 발전시키는 데 사용하신 경험 있는 사람들의 판단과 견해와 상관없이 그대 자신의 의견을 표준으로 세울 경향이 있다. 오늘날 목회직에 있는 젊은이들은 어려움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일들이 그들에게 너무 쉽게 이루어지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마땅하리만큼 유용하게 되는 데 실패하게 될 것이다.

그대는 그대가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대 가족 내에서의 책임이 있다. 그러나 그대는 마땅히 알아야 할만큼 그들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 그대는 안다고 자부심을 가졌던, 버려야 할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다. 나는 성경에 직접적으로 배치되는 것, 즉 그대가 진실과 진리라고 여기는 견해들을 모아들인 것을 보았다. 바울은 그의 시대에 젊은 목사들 가운데서 이런 것들을 대면하고 싸워야 했다. 그대는 사람들의 말과 주장을 너무 쉽게 빛으로 받아들인다. 381 그러나 어떻게 그대의 견해를 성경의 진리로서 발전시킬지에 대하여 조심하라. 그대의 발걸음을 조심하라. 나는 이런 개혁이 그대의 생애에 일어나서 이런 말들을 기록하도록 부름받지 않게 되기를 바랐다.

그대는 피할 수 없는,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주신 책임에 신실할 수밖에 없는, 집에서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제 내가 말하는 것은 그대의 경우로 내게 명확히 보여진 것이 아니고 비슷한 수백 개의 경우에서 내가 본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가 이 시대의 많은 부모들이 빠지는 동일한 실수에 그대가 빠지는 것을 볼때 나는 그대가 의무를 등한시한 것을 변명할 수 없다. 그대는 그대의 책임에 맡겨진 한 영혼, 한 아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대가 이 한 아이를 훈육함에 있어서 이처럼 명백한 연약함과 지혜의 부족을 드러내고 성경의 규칙보다는 그대 자신의 생각을 따를 때, 많은 사람들의 영원한 복리 문제가 수반되는 그런 문제들을 가르치고 관리하도록 위임을 받을 수 있겠는가?

나는 그대와 그대의 아내 둘에게 말하고자 한다. 하나님의 사업과 일에 있어서 나의 위치는 훈육의 문제에 있어서 말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대가 가정에서 끼치는 모본은 하나님의 사업에 큰 손상을 입히고 있다. 복음의 일터는 세상이다. 그대는 일터에서 복음의 진리의 씨앗을 뿌리기를 원하며, 하나님께서 그것이 열매맺도록 뿌려진 씨에 물을 주시기를 기다린다. 그대는 땅의 적은 부분을 위임받았다. 그러나 그대가 다른 사람의 정원에서 잡초를 제거하려고 애쓰는 동안 그대의 뜰은 가시나무와 가시가 자라도록 방치되었다. 이것은 작은 일이 아니요, 중대한 일이다. 그대는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설교하고 있다. 그것을 집에서 그대 스스로 실천하도록 하라. 그대는 어린이의 감정과 변덕을 나타내며,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께서 싫어하실 특성, 어린이를 불행하게 만드는 품성의 특질을 배양하고 있다. 사단은 그대의 소홀함을 이용하고 있으며, 그는 마음을 지배한다. 그대는 신령한 모본자의 형상대로 그대의 자녀의 품성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그리스도인 아버지에게 지워진 의무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해야 할 일을 가지고 있다. 그대가 이 일을 그대의 딸이 아기 때에 시작했더라면 지금은 그것이 매우 쉬웠을 것이며, 아이는 더욱 행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의 훈육 하에서 그 아이의 의지와 외고집은 그동안 줄곧 아주 강화되었다. 382 이제는 그대가 해 온 것을 본래대로 돌리려면 더욱 큰 엄격함과 보다 계속적이고 인내하는 수고를 필요로 한다. 만일 그대가 통제해야 할 특별한 의무가 있는 어린 아이 하나를 다룰 수 없다면, 그대는 그리스도 교회의 영적인 유익들을 다루는 데 있어서도 지혜가 부족할 것이다.

그대의 경험의 기초에는 뿌리 뽑혀야 될 실수들이 있다. 그리고 그대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우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대의 눈을 열어, 어디에 어려움이 있는지 분별하고, 이러한 일들을 서둘러 회개하고, 올바른 관점에서 일을 시작하라. 자아 안에서 일하지 말고 하나님 안에서 일하라. 교만과 자아 높임과 허영심을 버리고, 십자가의 달콤한 교훈을 그리스도에게서 배우라. 그대는 그대 자신을 남김없이 그 사업에 바쳐야 한다. 하나님의 제단 위에 자신을 산 제물로 바쳐라.

만일 목사의 자녀가 성질을 부리고, 원하는 모든 것들을 마음대로 하도록 버려둔다면 그것은 그들의 자녀들을 올바로 다루는 데 있어서 하나님께서 부모를 위해 나에게 주신 증언을 무력화시키는 영향을 끼친다. 그대는 하나님께서 주시기를 기뻐하신 빛에 직접적으로 반대되게 가고 있으며, 그대 자신이 수집한 이론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실험은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자녀들을 훈련하는 데 관하여 우리가 가르치기를 원하시는 바로 그들에게 손해가 되도록 수행되어서는 안 된다.

그대의 관심은 다른 사람들은 제쳐놓고 그대 자신의 가족에게만 몰입되어서는 안 된다. 만일 그대가 형제들의 후대를 받는다면 그들이 당연히 무엇인가 보답이 있으리라고 기대할지 모른다. 그대의 유익과 부모와 자녀의 이익을 동일시하라. 그리고 가르치고 축복하기 위해 애쓰라. 그대 자신을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구별하고, 그대를 환대하는 이들에게 복이 되고, 부모들과 대화하며, 어떤 경우에도 아이들을 무시하지 말라. 그대의 작은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하나님 보시기에 더 귀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대는 그대의 작은 아이를 귀여워하고 응석을 받아주고 있는 동안 다른 이들을 소홀히 할 경향이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어린아이가 그대의 흠있는 관리의 증거를 준다. 그녀는 하루에도 여러 번 그녀의 뜻이 거절될 때마다 불순종하고 격정을 나타낸다. 383 하나님께서 교훈하시고 훈련에 관한 느슨한 생각을 개혁하려고 애쓰고 계시는 가정에 이것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겠는가!

그대의 맹목적이고 어리석은 애정으로 그대들 둘은 그대들의 자녀들에게 굴복하고 말았다. 그대들은 그녀의 연약한 손목에 고삐를 쥐어 주었으며, 그 아이는 걷기도 전 그대들 모두를 지배하였다. 과거에 비추어 볼 때, 미래에 대하여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 방종하고 귀여움 받는 아이의 본이 그대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고, 심판 때에 수많은 자녀들을 잃어버린 것으로 드러날 교훈을 주지 않도록 하자. 만일 남녀들이 그대를 하나님으로부터 온 교사라고 받아들인다면, 그들이 그대의 해로운 모본을 좇아 그들의 자녀들의 응석을 받아주기 쉽게 되지 않을까? 엘리의 죄가 그대의 것이 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에게 떨어졌던 징벌이 그대에게 떨어지지 않겠는가? 그대의 자녀는 현재의 습관과 성향으로는 하나님의 왕국을 결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부모인 그대들은 그녀 앞에서 하늘의 문을 닫아 버린 사람들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그대 자신의 구원에 관하여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 그대는 뿌린 것을 수확한다는 것을 기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