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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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제 27 호 - 교회증언

-2장 -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순종

144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놀라운 명령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을 때, 아브라함은 노인이었다. 아브라함은 그의 세대에서도 노인으로 간주되었다. 젊음의 열정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고난을 견디고 용감하게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 이제 그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젊음의 활력을 가졌을 때는 힘에 대한 자랑스런 자각으로 폭풍을 정면으로 대항할 수 있고, 인생의 후기 곧 무덤을 향하여 비틀거리며 발을 옮길 때 낙담시킬 수 있는 방해물까지라도 딛고 일어설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섭리로써, 아브라함을 위한 가장 혹독한 마지막 시험을 그가 연륜의 무거운 짐을 지고 근심과 수고에서 벗어나 쉬기를 바랄 때까지 보류해 두셨다. 주님께서는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창 22:2)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 노인의 심장은 공포로 멎는 듯했다. 그러한 아들을 질병으로 잃는다 해도 그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질 것이며, 백발이 된 그의 머리는 슬픔으로 숙여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러한 아들의 고귀한 피를 자신의 손으로 흘리라는 명령을 받은 것이다. 그것은 그에게 도저히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므로, 그분의 말씀을 순종해야만 하였다. 아브라함은 노인이었으나 그것이 그를 의무에서 벗어나게 하지는 않았다. 그는 믿음의 지팡이를 붙잡고, 말못할 고통 속에서, 장미빛 혈색의 건강미를 띤 아름다운 젊은 아들의 손을 이끌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 위하여 나아갔다. 이 위대한 늙은 부조는 인간이었다. 145 그의 정열과 애착은 우리와 동일했다. 그는 노년기의 위안이요 또한 주님의 약속이 주어진 그 아들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만일 이삭이 죽임을 당하면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성취될 수 있을지 질문하기 위해 머물러 서지 않았다. 그는 아픈 마음으로 그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머물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을 글자 그대로 순종하되 칼이 그 아들의 떨리는 살에 내리 꽂히기 직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는 말씀이 들리기까지 이행하였다.

이 위대한 믿음의 행위는 세상 끝까지 하나의 빛나는 거룩한 모본으로 거룩한 역사의 책장에 기록되어 세상에 빛을 발해야 한다. 아브라함은 나이가 많다고 해서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아도 괜찮게끔 제외시켜 달라고 간청하지 않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았다. “내 머리는 백발이며, 장년기의 활력은 사라졌습니다. 이삭이 없어지면, 누가 나의 기우는 인생을 위로하겠습니까? 어떻게 늙은 아비가 독자의 피를 흘릴 수 있겠습니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인간은 질문하거나 불평하거나 용기를 잃지 말고 순종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 주변에 몰려와서 하나님의 사랑의 유쾌한 햇빛을 차단하고 영적 성장을 저지시키는 흑암을 물리치기 위하여, 오늘날 교회 안에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필요하다. 나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아도 괜찮도록 결코 면제시켜 주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믿음은 선한 행실을 낳아야 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한 모든 의무나 이루어진 모든 희생은 참으로 큰 보상을 가져온다. 의무 이행, 바로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축복을 말씀하시고 또한 주신다. 그런 그분은 우리에게 모든 능력을 완전히 바치도록 요망하신다. 마음과 정신, 온 몸을 그분께 드려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부를 얻게 해주는 것은 무엇이나 사람에게 아끼지 않으셨다. 그분은 지구를 아름다움으로 옷 입히시고, 인간의 현세적 생애의 소용과 안락을 위하여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셨다. 그분은 당신의 아들을 주셔서 죄와 어리석음으로 타락한 세상을 구속하기 위하여 돌아가시게 하셨다. 그처럼 비할 데 없는 사랑, 무한한 희생은 우리의 가장 엄격한 순종, 가장 거룩한 사랑, 무한한 믿음을 요구한다. 146 그러나 이러한 모든 미덕들이 최대한 발휘된다 해도, 우리를 위해 제공된 그 위대한 희생에 비교될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율법에 신속하고 의심 없이 순종하기를 바라신다. 그러나 사람들은 잠들어 있거나 사단의 속임수에 마비되어 있는데, 사단은 변명과 핑계를 제시하며, 동산에서 하와에게 말한 것처럼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 3:4)고 하여, 주저하는 자들을 제압한다. 불순종은 범법자의 마음과 양심을 강퍅하게 할 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믿음도 타락하게 한다. 처음에는 매우 그릇되게 보이던 것들이 계속 그들 앞에 있게 되면 차츰 그러한 모습을 잃어버리게 되어, 마침내 그것이 정말로 죄인지 의심하게 되고 무의식중에 동일한 잘못을 범하기까지 된다.

사무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가서 아말렉 족속을 치고 그 소유를 모두 진멸하라고 사울에게 명령하셨다. 그러나 사울은 그 명령을 부분적으로 순종하였다. 그는 열등한 가축들은 진멸하였으나 최상의 것들은 보존하고 그 악한 왕도 살려 두었다. 다음날, 그는 우쭐해져서 자축의 말로 선지자 사무엘을 맞았다. 그는 “원컨대 당신의 여호와께 복을 받으소서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선지자는 즉시 대답했다. “그러면 내 귀에 들려오는 이 양의 소리와 내게 들리는 소의 소리는 어찜이니이까”(삼상 15:13, 14).

사울은 당황하였고, 이렇게 대답함으로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였다.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삼상 15:15). 사무엘은 그에게 아말렉 족속에게 속한 모든 것을 진멸하라고 지시하신 하나님의 명백한 명령을 상기시키면서 그 왕을 책망하였다. 그는 사울의 범죄를 지적해 내고, 그가 주님께 불순종했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사울은 자신이 잘못했음을 시인하지 않고 주님께 제사하려고 가장 좋은 가축을 살려 두었다고 주장함으로써 자신의 죄를 다시 변명하였다.

사무엘은 그 왕이 고집스럽게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자백하지 않았으므로 마음속 깊이 슬퍼하였다. 그는 탄식하며 말했다. 147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 15:22, 23).

의무가 생길 때, 우리는 그 의무의 요구에 응하기를 지체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한 지체는 의심이 생길 틈을 준다. 불신이 스며 들어오고, 판단이 왜곡되고, 이해력이 어두워진다. 마침내 성령의 책망은 이 미혹된 자의 마음에까지 이르지 못하게 되고, 그는 그 책망들이 자신을 위한 것이요 자신의 상황에 적용되는 것일 수는 전혀 없다고 생각할만큼 눈이 어두워진다.

귀중한 은혜의 기간이 지나가고 있으나, 그것이 영원을 위한 준비를 목적으로 주어졌다는 사실을 깨닫는 자는 거의 없다. 황금 같은 시간은 세속적인 업무와 쾌락과 흉악한 죄 등으로 허비된다. 하나님의 계명은 소홀히 여겨지며 잊혀진다. 그럴지라도, 그 계명의 매 조항의 규제력(規制力)은 살아 있다. 모든 범죄마다 형벌이 따를 것이다. 세속적 이익을 좋아하면 안식일을 더럽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거룩한 날이 요구하는 바는 폐기되거나 감소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계명은 이 점에 있어서 명백하고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분은 안식일에 노동하는 것을 단호하게 금하셨다. 그분은 안식일을 당신께 거룩한 날로 구별하셨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자들의 길에 놓여진 방해물이다. 그들을 세상 길에 묶어 놓는 강하고 교묘한 영향력이 있지만, 주님의 능력은 이 사슬을 깨뜨릴 수 있다. 그들이 그분의 도움을 열렬하게 구하면, 그분은 당신께 신실한 자들의 발 앞에 있는 모든 방해물들을 제거해 주시든지, 그렇지 않으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실 것이다. 자아에 대하여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비록 생명 자체가 희생당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열렬한 소망과 불굴의 노력 앞에는 모든 방해물이 사라질 것이다. 시련과 어려움 속에서도 예수님을 그들의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분으로 바라보고 전진하는 자들에게 있는 흑암은 하늘에서 오는 빛이 제거해 버릴 것이다.

옛날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와 사도들의 입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148 오늘날 그분은 성령의 증언들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뜻과 당신의 백성들이 따르기를 바라시는 길에 대하여, 오늘날 백성들을 가르치시는 것보다 더 열렬하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가르치신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분의 가르침을 통하여 유익을 얻을 것인가? 그들이 그분의 책망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경고에 유의할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부분적인 순종을 받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자아와 타협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으실 것이다.

열두 정탐꾼

주께서는 당신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실 가나안 땅을 정탐하도록 사람들을 보낼 것을 모세에게 명령하셨다. 각 지파에서 한 명의 두령들이 이 목적을 위해 선발될 것이었다. 40일 후에 그들은 정탐을 마치고 돌아와서 모세와 아론, 그리고 온 이스라엘 회중 앞에 나아 와 그들에게 그 땅의 소산들을 보여주었다. 모두가 그 땅이 좋은 땅이라는 데 있어서 의견이 일치하였으며, 그들은 증거로서 그들이 가져온 풍부한 과실을 내 보였다. 포도 한 송이가 얼마나 큰지 중간에 막대기를 끼워서 두 사람이 그것을 운반해 왔다. 그들은 또한 그곳에서 풍성하게 자라고 있는 무화과와 석류도 가져왔다. 그들이 그 땅의 비옥함에 대해서 말한 후에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그 땅을 차지할 그들의 능력에 대하여 비관적으로 말했다. 그들은 그 땅에 거하는 백성들은 매우 강하였고, 도성들은 크고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더욱이 그들은 거기서 거인 아낙의 자손들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그 백성들이 가나안 일원에 어떻게 자리잡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나서 그들이 이 땅을 차지하기가 불가능하리라는 두려움을 표현하였다.

이 보고에 귀를 기울이던 백성들은 과격한 비난과 통곡으로 그들의 실망을 표출하였다. 그들은 여기까지 그들을 데려오신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그 땅을 그들에게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추론하기 위해 기다리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을 논외(論外)로 제쳐놓았다. 149 그들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여리고 성을 취하는 데 오로지 무력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처럼 행동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그들에게 그 땅을 주시겠다고 선언하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분께서 당신의 말씀을 성취하시도록 그분을 온전히 신뢰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의 정복되지 않은 마음은 그분의 계획과 조화되지 않았다. 그들은 그분께서 그들을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구출해내시고 그들이 통과할 수 있도록 바닷물 가운데로 길을 내시고, 추격하는 바로의 군대를 멸망시키시면서 그들을 위해서 얼마나 놀라운 일을 행하셨는지를 반추(反芻)하지 않았다. 불신에 빠진 그들은 하나님의 사역을 제한시키고, 여기까지 안전하게 그들을 인도해 오신 그 손길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 경우에 있어서도 그들은 모세와 아론에 대하여 불평하던 그들의 이전 실수를 되풀이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모든 드높은 희망은 끝장이야”라고 그들은 말했다. “우리는 이 땅을 차지하기 위해 애굽에서 여기까지 여행해 왔다.” 그들은 이스라엘에게 환난을 가져온 데 대하여 그들의 지도자들을 비난하였고, 백성들을 속이고 그들을 미혹시켰다고 그들을 다시 비난하였다.

모세와 아론은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모두 열두 명인 정탐꾼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한 두 사람 갈렙과 여호수아는 이 불리한 보고로 전 진영이 낙담한 것을 깨닫고 비탄 중에 그들의 옷을 찢었다. 그들은 그들과 변론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회중은 광기(狂氣)와 실망에 가득 찬 나머지 이 두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마침내 갈렙이 군중을 헤치고 앞으로 나왔다. 그의 분명하고도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가 무리들의 왁자지껄한 소리 가운데서 명확하게 들렸다. 그는 온 이스라엘의 믿음과 용기를 약화시킨 그의 동료 정탐꾼들의 겁쟁이 같은 견해를 반박하였다. 그는 군중들의 관심을 휘어잡았다. 그들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위하여 잠시 동안 그들의 불평의 입을 다물었다. 그는 그가 정탐했던 땅에 대하여 말하였다. 그는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고 했다. 그러나 그가 말을 할 때, 불충실한 정탐꾼들이 그의 말을 가로막으며 이렇게 소리 질렀다.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이 사람들은 그릇된 방향에서 출발하여 하나님과 모세, 아론과 갈렙 그리고 여호수아를 대적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150 그들이 이 그릇된 방향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가나안 땅을 점령하려는 모든 시도를 좌절시키려는 그들의 의도는 더욱더 굳어졌다. 그들은 자신들의 파괴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진실을 왜곡했다. 그들은 그곳의 기후가 건강에 좋지 못하며, 모든 사람들이 거대한 신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냈다. 그들은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고 했다.

이것은 불길한 보고였을 뿐 아니라 거짓된 보고이기도 했다. 그 말은 모순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 땅이 건강에 좋지 못한 땅이며, 그곳 거민들을 삼켜 온 땅이라면, 어떻게 그들이 그처럼 키가 클 수 있었겠는가? 중책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마음을 불신에 굴복시킬 때, 그들이 악에 빠져드는 데는 끝이 없다. 이런 위험한 길로 들어설 때 사단이 그들을 어디까지 인도할지 깨닫고 있는 사람은 몇 안된다.

그 악한 보고는 백성들에게 가공할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을 격렬하게 비난하였다. 어떤 사람은 신음하면서 이렇게 울부짖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아니면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그 다음에 여호와께 대하여 그들의 적대감이 일어났다. 그들은 울고 통곡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민 14:2-4)

그와 같이 그들은 하나님께 대하여 그리고 그분께서 그들을 인도하도록 임명하신 지도자들에 대하여 불경(不敬)을 나타내었다. 그들은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여호와께 묻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자. 그들은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 그들의 문제를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문제들을 그들이 떠맡았다. 그들은 자신들을 속였다고 모세를 비난했을 뿐 아니라, 그들이 차지할 수 없는 땅을 약속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속이셨다고 비난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전능하신 강한 팔로 그들을 인도해 내신 땅, 곧 그들의 고통과 노예 생활의 땅으로 그들을 되돌아가게 해 줄 장관으로서 그들 중 한 사람을 실제로 임명하기까지 했다.

151 모세와 아론은 반역적인 이스라엘을 위해 조용히 하나님의 자비를 간청하면서, 모든 회중들이 있는 데서 하나님 앞에 여전히 엎드려 있었다. 그들의 비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깊었다. 다시 갈렙과 여호수아는 앞으로 밀치고 나아간다. 그리고 슬픔에 가득 찬, 그러나 열렬한 어조의 갈렙의 음성이 다시 한번 회중들의 불평을 뚫고 울려 퍼진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7-9).

가나안 족속들은 그들의 죄악의 잔을 가득 채웠고, 주께서는 그들을 더 이상 참으실 수 없었다. 그분의 보호가 그들에게서 제거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히브리 사람들의 손쉬운 먹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전쟁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이는 그들은 자신들의 무력이 너무도 막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과 싸워서 이길 만큼 무서운 군대는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 속고 있었다.

갈렙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언약으로 말미암아 그 땅이 이스라엘에게 보증되었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광기에 사로잡혀서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았다. 만일 그 두 사람이 악한 보고를 가져오고, 열 명이 모두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 땅을 차지하자고 그들을 격려했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들의 사악한 불신의 연고로 열 명의 충고는 제쳐놓고 여전히 두 명의 충고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바른 것을 옹호하는 사람은 단 두 명 뿐인 반면 그들의 지도자와 하나님에 대하여 공개적인 반역을 하고 있는 사람은 열 명이나 되었다.

이제 극도의 흥분이 백성들 가운데서 사납게 휘몰아친다. 그들의 최악의 격정이 격발된다. 그들은 이성(理性)에 귀를 기울이기를 거부한다. 열 명의 불충실한 정탐꾼들은 갈렙과 여호수아를 탄핵하는 일에 있어서 그들과 연합한다. 그리고 그들을 돌로 치라는 음성이 발해진다. 정신이 나간 폭도들이 이 충실한 사람들에게 던져서 살해하려고 돌들을 움켜쥔다. 그들은 광기 어린 고함을 지르며 앞으로 돌진한다. 그러나 보라! 돌들이 그들의 손에서 떨어진다. 그리고 침묵이 그들을 휩싼다. 그들은 공포로 몸을 떤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무모한 기도(企圖)를 저지하시기 위해 개입하셨다. 그분의 임재의 영광이 화염과 같이 성막을 환하게 비춘다. 그리고 모든 회중은 여호와의 표징을 바라본다. 152 그들보다 더 강하신 분께서 자신을 드러내셨다. 아무도 감히 반항을 계속하지 못한다. 모든 불평은 침묵당한다. 그리고 악한 보고를 가져온 정탐꾼들은 숨을 죽이고 공포에 질린 채 웅크리고 있다.

굴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던 모세는 몸을 일으켜 하나님과 교통하기 위하여 성막으로 들어간다. 그 때 여호와께서는 이 반역적인 백성을 즉시 멸망시키겠다고 제안하신다. 그분은 모세를 이스라엘보다 더 큰 나라로 만드시기를 갈망하신다. 그러나 그의 백성의 온유한 지도자는 이러한 제안에 동의하지 않으려 한다.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애굽인 중에서 주의 능력으로 이 백성을 인도하여 내셨거늘 그리하시면 그들이 듣고 이 땅 거민에게 고하리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백성 중에 계심을 그들도 들었으니 곧 주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보이시며 주의 구름이 그들 위에 섰으며 주께서 낮에는 구름기둥 가운데서, 밤에는 불기둥 가운데서 그들 앞에서 행하시는 것이니이다 이제 주께서 이 백성을 한 사람 같이 죽이시면 주의 명성을 들은 열국이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가 이 백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에 인도할 능이 없는 고로 광야에서 죽였다 하리이다”(민 14:13-16).

다시 모세는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자신을 그들보다 더 큰 나라로 만들어 주시겠다는 제안을 거절한다. 은총 받은 이 하나님의 종은 이스라엘에 대한 그의 사랑을 나타내고 그의 주님의 영광과 그분의 백성의 명예를 지키려는 그의 열성을 보여 준다. 이 백성의 죄를 사하시되 지금까지 사하셨나이다. 당신께서는 이 감사할 줄 모르는 나라에 대하여 지금까지 오래 참으셨고 인자가 많으셨나이다. 그들이 무가치하다 할지라도 당신의 자비는 동일하시니이다. 그는 이렇게 탄원한다. “그러므로 당신께서 그들을 이 한 번만 살려 두시고 당신이 이미 그들에게 베푸신 거룩한 인내를 이번 한 번 더 베풀지 않으시겠나이까?”

모세는 하나님과 싸워 이겨서 그 백성을 살렸지만, 그들의 거만함과 불신의 연고로 주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기적적인 방법으로 일하시기 위해 그들과 함께 가실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거룩한 자비하심으로 그들에게 가장 안전한 길을 택하여 홍해를 향하여 광야로 되돌아가도록 명령하셨다. 153 그분은 또한 그들의 반역에 대한 형벌로서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하고 애굽을 떠난 모든 성인들이 가나안에 영원히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선포하셨다. 그들은 하나님께 순종하겠다는 그들의 약속을 지키는 데 완전히 실패하였다. 그러므로 그분은 그들이 너무도 되풀이하여 깨뜨렸던 언약에서 풀려 나셨다. 그분은 그들의 자녀들이 좋은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지만, 그들 자신의 몸은 광야에 묻히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그리고 악한 보고를 하여 이스라엘로 불평하고 반역하게 만들었던 열 명의 불충실한 정탐꾼들은 백성들이 보는 데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했다.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그들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알리자 그들은 그들의 죄악된 행위를 진심으로 뉘우치는 듯 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슬퍼한 것은 그들의 악한 행실이 초래한 결과에 대한 슬픔이지 자신들의 배은망덕과 불순종에 대한 깊은 느낌에서 솟아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셨다. 그러나 그들의 회개는 너무 늦게 이르러 왔다. 하나님의 의로운 분노가 격발되었고, 그들의 운명은 선언되었다. 그 운명에서 구제될 길은 없었다. 여호와께서 그분의 포고를 누그러뜨리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들의 완고함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들은 광야로 되돌아가지 않겠노라고 선언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원수의 땅에서 퇴각하라고 명령하심으로써 그들의 겉치레에 불과한 굴복을 시험하셨고, 그것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셨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모한 감정에 사로잡혀, 하나님께 순종하자고 촉구한 정탐꾼들을 죽이려고 함으로써 큰 죄를 범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이 두려운 실수를 저질러 그 결과로 그들에게 재앙이 닥치리라는 것을 발견하고 두려워한 것뿐이었다. 그들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고, 그들은 그와 비슷한 폭동을 일으킬 핑계거리가 필요할 따름이었다. 모세가 하나님의 권위로 그들에게 광야로 되돌아가도록 명령했을 때 이런 사실이 다시 드러났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올라가서 그분께서 그들에게 약속하신 땅을 취하도록 명하셨을 때 그들은 그분의 명령을 거역하고 반역했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분께서 거기서 퇴각하도록 지시하셨을 때, 그들은 마찬가지로 복종하지 않았고, 그들의 원수와 싸우러 나가겠다고 선언하였다. 154 그들은 전사(戰士)의 옷과 갑주를 입고 정렬하여 모세 앞에 나타났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으로는 전쟁할 준비가 갖추어졌지만, 슬프게도 하나님과 그분의 슬픔에 가득 찬 종이 보기에는 불충분하였다. 그들은 이런 무모함의 결과는 재난과 죽음이 될 것이라는 그들의 지도자들의 엄숙한 경고에 귀를 기울이기를 거부하였다.

하나님께서 올라가서 여리고를 취하라고 그들에게 지시하셨을 때, 그분께서는 그들과 함께 가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분의 율법이 담긴 법궤는 그분 자신의 상징이 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지도자 모세와 아론이 그분의 방심하지 않는 지시 아래 이 원정을 수행할 것이었다. 이러한 지휘가 있을 때에는 어떤 해도 그들에게 닥쳐올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명령과 그들의 지도자들의 엄숙한 금지를 거스르고 하나님의 법궤와 모세 없이, 그들은 원수의 군대들과 싸우기 위해 진군해 나갔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사악한 불복종으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아말렉 족속들과 가나안 족속들은 전쟁 준비를 완료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제넘게도, 감히 그들을 공격하려고 하지 않은 원수에게 도전했다. 그러나 그들이 원수의 영토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아말렉 족속들과 가나안 족속들이 무력으로 그들과 맞섰고, 세찬 공세를 퍼부어 그들을 격퇴시켰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엄청난 손실을 입은 채 쫓겨났다. 살육의 들판은 그들의 피로 붉었고, 그들의 사체는 땅을 온통 뒤덮었다. 그들은 완전히 참패하고 패배당했다. 멸망과 죽음이 그들의 반역적인 실험의 결과였다.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의 믿음은 풍부한 보상을 받았다. 그분의 말씀에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 신실한 정탐꾼들을 그분께서 그들에게 약속하신 땅으로 인도해 들이셨다. 겁쟁이들과 반역자들은 광야에서 멸망했지만, 의로운 정탐꾼들은 에스골 골짜기의 포도를 먹었다.

열두 정탐꾼의 보고에 관한 역사는 한 백성으로서 우리에게 적용된다. 맞닥뜨려야 할 위험이 있을 때 겁쟁이 같은 불평과 행동하지 않고 물러서는 장면들이 오늘날 우리 가운데서 재연되고 있다. 갈렙과 여호수아 시대에서처럼 신실한 보고들과 참된 권면들에 유의하기를 꺼리는 일이 나타나고 있다. 그분의 사업의 짐을 지고 그분의 백성을 돕기 위하여 엄격한 자아 부정과 결핍을 실천하고 있는 하나님의 종들이 그 당시보다 지금 더 잘 인정을 받고 있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155 고대 이스라엘은 거듭거듭 시험을 받았으나 부족함이 보였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신실한 경고를 받아들이는 자는 몇 안된다. 그리스도의 재강림의 때가 가까워 와도 어두움과 불신이 줄어들지 않는다. 진리는 육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입맛에 점점 더 맞지 않는 것이 되어 가고 있다. 그들의 마음은 믿는 데 더디고 회개하는 데 늑장을 부린다. 하나님의 종들은 그들의 주께서 그분의 지혜와 도우심에 대해서 그들에게 끊임없이 주시는 증거들이 없다면 낙담하게 될지도 모른다.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오래 참으셨다. 그분은 그들의 방황을 용서해 오셨고, 그들이 그분께서 그들의 마음에 거하실 공간을 드리기를 기다려 오셨다. 그러나 그릇된 생각들, 질투 그리고 불신이 그분을 내쫓아 버렸다.

이스라엘에 속하였다고 공언하는 사람들 가운데,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지혜의 계시들로 말미암아 밝아진 사람들 가운데 갈렙처럼 담대하게 앞으로 나아와서 하나님과 정의를 위해 굳게 서는 사람은 별로 없다. 주께서 그분의 사업을 수행하도록 선택하신 사람들이 이기적이며 성별되지 못한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정직의 길에서 돌이키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적의와 악의에 가득 찬 허위의 표적이 되어 버린다. 사단은 이 마지막 때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전투하듯이 일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용기와 원기를 가진 사람들이 사단의 술책을 물리치도록 부르신다.

예수를 따르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할 수 있도록 철저한 회심이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사람들 가운데 필요되고 있다. 무한하신 분의 능력이 그들에게 나타났을 때 겁먹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환경에 의해 강요된 그런 복종이 아니라 깊고 진심 어린 회개와 죄에 대한 포기가 필요된다. 반만 회심한 사람들은, 가지들은 마치 진리 편에 매달려 있지만, 뿌리는 땅에 단단히 심겨져 세상의 불모의 땅 속으로 뻗쳐 들어가는 나무와 같다. 예수께서는 그 가지들에서 열매를 찾으시나 얻지 못하신다. 그분은 잎사귀밖에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신다.

수천의 사람들은 자아를 부인함 없이도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렇게 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의 사업을 증진시키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그들에게 승리를 주시도록 그들의 거룩한 지도자를 신뢰하면서, 원수­세상, 자아에 대한 사랑, 그리고 육신의 정욕들­에 대항하여 용맹스럽게 진군하지 않을 것이다.교회는 순종이라는 하나님의 단순한 조건하에서 영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신실한 갈렙과 여호수아같은 사람들이 필요하다. 156 우리의 교회는 일꾼들이 없어 고통당하고 있다. 세상은 우리의 밭이다. 진리의 빛을 결코 본 적이 없는 동방의 이교도들보다 더 확실히 우상숭배에 속박되어 있는 도시와 촌락들에서 일할 선교사들이 모자란다. 믿노라는 공언만 드높은 교회들에게서 진정한 선교사 정신이 떠나갔다. 그들의 마음은 더 이상 영혼들에 대한 사랑과, 그들을 그리스도의 우리로 인도해 들이려는 갈망으로 불타오르고 있지 않다. 우리는 열렬한 일꾼들을 원한다. “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도처에서 들려오는 외침에 반응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가?

하나님의 율법의 간수자로 공언하고 하늘 구름을 타고 예수께서 곧 강림하시기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행하는 사람들의 긴급한 필요들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들이 영혼들의 피에 대하여 무죄할 수 있을까? 준비되어 배포되어야 할 책들이 있고, 주어져야 할 공과들이 있고, 행해져야 할 자아 희생적인 의무들이 있다! 누가 와서 구조할 것인가! 누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아를 부인하고 흑암 속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건네줄 것인가?

여리고를 정복함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할 지도자로 임명되었다. 그는 이런 중책을 맡을 만한 좋은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방황하던 대부분의 시간 동안 모세밑에서 총리 대신의 역할을 해 왔었다. 그는 모세가 행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役事)들을 목격했고, 백성들의 기질을 잘 이해했다. 그는 약속의 땅을 탐지하러 파송되었던 열두 정탐꾼의 하나로, 그 땅의 비옥함에 대한 신실한 보고를 하면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올라가서 그 땅을 차지하자고 독려했던 두 사람 중의 하나였다.

주께서는 그가 그분의 모든 계명을 신실히 준수한다면, 그분께서 모세와 함께 하셨던 것처럼 그와 함께 하실 것이며, 가나안 땅을 그가 쉽게 정복하도록 해 주겠다고 여호수아에게 약속하셨다. 157 여호수아는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들이라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내리신 명령의 집행에 관하여 염려해 왔었다. 그러나 이러한 보증은 그의 두려움을 없애 주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3일 길 여행을 위하여 그리고 모든 군사들에게 전쟁을 위하여 준비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에게 명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우리는 범사에 모세를 청종한 것 같이 당신을 청종하려니와 오직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 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 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무릇 당신의 시키시는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는 자 그는 죽임을 당하리니 오직 당신은 마음을 강하게 하시며 담대히 하소서”(수 1:16-18).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가는 일이 극적이 되도록 계획하셨다.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내일 여호와께서 그들 가운데서 기사(奇事)들을 행하실 것이므로 스스로 성결케 하라고 명했다. 지정된 시간에, 그는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율법이 담긴 법궤를 메고 그것을 백성들 앞서서 지고 가라고 지시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로 알게 하리라”(수 3:7).

제사장들은 그들의 지도자의 명령을 순종하여 언약궤를 메고 백성들 앞서 갔다. 히브리 백성들은 긴 행렬을 이루어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물인 이 법궤를 뒤따랐다. 길고 넓은 행렬이 줄지어 요단강 둑으로 내려갔고, 제사장들의 발이 강 가장자리에서 물에 잠겼을 때, 물이 위로부터 끊겼고, 아래쪽의 물은 흘러가 버려 강바닥이 드러나 버렸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궤를 메고 계속 전진했고, 백성들은 뒤따랐다. 요단강 중간에서 제사장들은 모든 히브리 백성들이 다 건널 때까지 하상(河床)에 머물러 있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것은 요단강 물을 멈추게 한 능력은 그들의 선조들이 40년 전 홍해를 건널 수 있게 한 동일한 능력이었다는 사실을 힘있게 그들의 마음에 각인시키기 위함이었다.

158 어릴 때 홍해를 건넜던 많은 사람들은 이제 유사한 기적 덕분에 전쟁을 위해 무장을 갖춘 전사(戰士)들로서 요단강을 건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요단을 건넌 후 여호수아는 제사장들에게 강에서 나와 올라오라고 명했다. 그들이 언약궤를 메고 건너편 강가에 안전히 발을 디뎠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능하신 손을 거두셨고, 쌓였던 물은 강력한 홍수처럼 강의 원래의 통로로 밀려 내려갔다. 요단강의 물은 물밀듯이, 요동치는 홍수처럼 그 모든 둑을 넘쳐흘러 내려갔다.

그러나 제사장들이 강에서 올라오기 전에, 이런 놀라운 기적이 결코 잊혀지지 않도록 주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각 지파에서 저명한 사람들을 뽑아서 제사장들이 서 있었던 강 하상의 바로 그곳에서 돌들을 취하여 그들의 어깨에 짊어지고 길갈로 가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요단강을 마른 땅처럼 건너게 하신 사실을 기념하여 기념비를 세우도록 명령하셨다. 이것은 주께서 그들을 위해서 행하신 기적을 끊임없이 생각나게 해 줄 것이었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기념물에 관하여 질문할 것이고, 그리하여 거듭 거듭 그들은 최후의 세대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마음에 지울 수 없도록 각인될 때까지 이 놀라운 역사를 그들에게 되풀이해서 이야기해 줄 것이었다.

아모리 백성들의 모든 왕들과 가나안 족속의 왕들은 주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요단강 물을 멈추게 하셨다는 소식을 듣자 마음이 공포로 녹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에 모압 왕들 중 둘을 죽인 바 있었다. 그리고 불어 오르고 맹렬하게 흘러가는 요단강을 그들이 기적적으로 건넌 사실은 그 백성들을 큰 공포심으로 가득 채웠다. 여호수아는 그 다음에 광야에서 태어났던 모든 백성들에게 할례를 행했다. 이 의식을 마친 후에 그들은 여리고 평원에서 유월절을 지켰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셨다”(수 5:9)고 말씀하셨다.

이방 나라들은 히브리인들이 애굽을 떠난 후 그들이 곧 기업으로 받을 것으로 기대했던 가나안 땅을 차지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주님과 그분의 백성을 모욕해 왔었다. 그들의 원수들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매우 오랫동안 방황해 왔기 때문에 환호해 왔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에 대항하여 거만하게 자신들을 높이면서, 그분은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들일 능력이 없다고 선언했다. 159 주님은 그의 백성들이 이제 요단강을 마른 땅처럼 건너게 하심으로써 그분의 능력과 은총을 현저하게 나타내셨다. 그러자 그들의 원수들은 더 이상 그들을 모욕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계속 내렸던 만나는 이제 그쳤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곧 차지하게 될 것이었고, 그 좋은 땅의 과실들을 먹게 되자 그것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군대로부터 물러나서 묵상하고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가 그와 함께 하도록 기도하고 있을 때, 손에는 칼을 빼어 든, 군인 복장의 한 키 큰 사람을 보았다. 여호수아는 그를 이스라엘 군인으로 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적군의 병사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는 열성 있게 그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그가 가로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절하고 가로되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나이까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수 5:13-15).

하나님의 영광이 성소를 거룩하게 했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임재로 말미암아 거룩케 된 곳은 발에 신을 신은 채 결코 들어가지 않았다. 먼지들이 신발에 달라붙어 있을 수도 있으며, 그럴 경우 그것은 성소를 더럽힐 것이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은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그들의 신을 뜰에 벗어 놓도록 요구되었다. 회막문 옆 뜰에는 제사장들이 회막에 들어가기 전에, 모든 불결이 제거되도록 그들의 손과 발을 씻는 놋대야가 놓여 있었다. 성소에서 직무를 수행한 모든 사람들은 그분의 영광이 드러난 곳에 들어가기 전에 특별한 준비를 하도록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다.

이스라엘의 지도자 앞에 무장한 전사(戰士)로 서신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낮에는 구름기둥에, 밤에는 불기둥에 싸여 계시면서 광야를 통과할 때 히브리 백성들을 인도하신 분은 바로 그분이셨다. 그가 다름 아닌 높임을 받으신 분, 그리스도라는 것을 여호수아의 마음에 깊이 각인시키기 위해 그분은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셨다. 160 그리고 나서 그분은 여호수아에게 여리고를 정복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따라야 할지에 대한 지시를 주셨다. 모든 군인들은 6일 동안 매일 한번씩 그 성을 돌고, 일곱째 날에는 여리고 성 둘레를 일곱 번 돌도록 명령을 받아야 하였다.

그 명령에 따라 여호수아는 주께서 그에게 지시하신 대로 제사장들과 백성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는 이스라엘 군대들을 완전히 질서 있게 정렬시켰다. 맨 앞에는 전투복을 입은, 무장한 빼낸 무리들이 섰다. 그들은 무기를 다루는 솜씨를 지금 발휘할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주어진 지시들을 믿고 순종하기만 해야 할 것이었다. 그 다음은 나팔을 든 일곱 제사장이 뒤따랐다. 그 뒤를 그들의 신성한 직무를 암시하는 화려하고 특별한 옷을 입은 제사장들이 짊어진 법궤, 금으로 번쩍거리고 그 위에 영광의 후광이 머물고 있는 하나님의 법궤가 뒤따랐다. 이스라엘의 거대한 군대는 각 지파들이 각기 그들의 군기 아래 선 가운데 완전히 질서 있게 뒤를 따랐다. 그와 같이 그들은 하나님의 법궤와 함께 그 성을 돌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다만 그 능한 군대의 발걸음 소리와 골짜기들 사이에서 메아리치고 여리고 성의 거리들을 통하여 울려 퍼지는 나팔의 엄숙한 소리뿐이었다.

멸망당할 운명에 처한 그 도성의 파수꾼들은 경이와 우려가 교차하는 가운데 모든 움직임을 주목하였고, 그것을 당국자들에게 보고하였다. 그들은 이 모든 과시(誇示)가 무엇을 뜻하는지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다. 여리고는 이스라엘 군대와 하늘의 하나님께 도전했었다. 그러나 강력한 군대가 전쟁의 모든 장관(壯觀)과 위엄 가운데서 매일 한 바퀴씩 그들의 성 주위를 도는 모습을 보고, 게다가 신성한 법궤의 장엄함과 수행하는 제사장들을 바라보았을 때, 이 인상적이며 신비스런 장면은 왕들과 백성의 마음을 공포에 질리게 했다. 그들은 어떤 강력한 공격도 물리칠 자신이 있다고 재차 확신하면서 강력한 방어 시설을 점검하곤 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원수 편에서의 이런 이상야릇한 전시(展示)를 통해서 그들에게 어떤 위해가 가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비웃었다. 그러나 매일 성 주위를 도는 웅장한 행렬의 위엄과 광휘를 경이감을 가지고 바라본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40년 전 홍해가 이 백성들 앞에서 갈라졌었다는 사실과, 이제 방금 그들을 위해서 요단강이 갈라져 길을 내었다는 것을 기억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또 어떤 다른 기사들을 그들을 위해서 하실 지 알지 못했다. 161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문들을 조심스럽게 잠그었고, 강력한 군사들을 배치해 문들을 지켰다.

엿새 동안 이스라엘 군대는 성 주위를 돌았다. 일곱째 날이 밝아 오자 여호수아는 주의 군대들을 집합시켰다. 이제 그들은 여리고 성 주위를 일곱 번 행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들에게 그 성을 주셨으므로, 그들은 나팔들이 강력한 소리를 내면 큰 소리로 외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 당당한 군대는 바쳐진 성벽을 돌아 행진했다. 어둑어둑한 이른 아침을 밝히는 하나님의 찬란한 법궤, 번쩍번쩍 빛나는 흉배와 보석들로 장식된 배지를 착용한 제사장들, 그리고 번쩍거리는 갑옷을 입은 전사들의 모습은 참으로 웅장한 행렬이었다. 이른 아침의 텅빈 고요함을 깨뜨리는, 보조를 맞추어 걷는 많은 발걸음들 소리와 이따금 높이 울려 퍼지는 트럼펫 소리들을 제외하고는 그들은 죽은 사람처럼 조용했다. 거대하고 견고한 석벽들은 사람들의 포위를 비웃는 양 위압적인 자세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갑자가 거대한 군대가 멈추어 선다. 나팔들이 땅 자체를 흔드는 소리를 내며 터져 나온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소리를 합하여 내는 강력한 외침이 대기를 찢는다. 거대한 망루와 총안(銃眼)이 있는 흉장(胸牆)들이 상하로 뒤흔들거리며 형체도 없이 파괴되어 땅으로 주저앉는다. 원수의 거민들과 군대들은 공포와 경악으로 마비되어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행진해 들어가서 강력한 여리고 성을 사로잡는다.

하늘 군대들은 거짓 보고를 가져온 정탐꾼들에게는 너무도 무서워 보였던 성벽들을 얼마나 손쉽게 허물어 버렸던가! 사용된 유일한 무기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이스라엘의 전능자께서는 “내가 여리고를 네 손에 붙였”(수 6:2)다고 말씀하셨다. 성벽들을 쳐부수는 데 있어서 단 한 사람의 군사의 힘이 사용되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은 감소되었을 것이며 그분의 뜻은 좌절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은 전능자에게 맡겨졌다. 그리고 총안이 있는 흉장들의 기초가 지상의 중심부에 세워지고, 그 꼭대기가 하늘 궁륭에 닿았다 할지라도 여호와의 군대 장관께서 그 공격을 지휘하셨을 때는 그 결과가 동일했을 것이다.

162 하나님께서는 여리고 성을 그분의 은총 받은 백성에게 주시고, 그분의 이름을 지상의 나라들 가운데서 높이기를 오랫동안 계획해 오셨다. 그분께서 이스라엘을 노예 생활에서 이끌어 내신 40 년 전, 그분은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제안하셨다. 그러나 악한 불평과 질투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그분의 노를 격동시켰고, 그분께서는 그들의 불신으로 그분을 모욕한 모든 사람들이 하나도 남지 않고 다 죽을 때까지 광야에서 곤비한 세월 동안 방황하도록 하셨다. 여리고 성을 정복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자녀들처럼 그들의 선조들이 그분을 신뢰했었더라면, 40년 전에 그 성을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히브리 백성들에게 선언하셨다.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는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기록되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고전 10:5, 6).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11, 12).

고대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외적으로는 하나님의 법도를 순종하면서도 불신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큰 빛과 고귀한 축복으로 은총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반역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의 순종의 상급으로서 그들에게 약속하셨던 지상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하늘 가나안을 잃어버릴 것이다.

한 백성으로서 우리는 믿음이 부족하다. 오늘날 이스라엘 군대들이 여리고 성을 취할 때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선택된 종을 통해서 주시는 지시들을 순종하는 자들이 얼마 되지 않는다. 여호와의 군대 장관은 모든 회중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셨다. 그분은 여호수아와만 교통하셨고, 그는 이 면담의 이야기를 히브리 백성들에게 전달했다. 여호수아의 말을 믿든지 의심하든지, 여호와의 군대장관의 이름으로 그에 의해 주어진 명령을 따르든지 그의 지시를 거역하고 그의 권위를 부정하든지 하는 것은 그들에게 달려 있었다. 163 그들은 그들의 선봉에 서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정렬시키고 계신 천사들의 군대를 볼 수 없었다. 그들은 이렇게 추론할 수도 있었다. “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 수양의 뿔로 된 나팔을 불면서 성벽을 날마다 행진하는 행위는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그렇게 한다고 해도 저렇게 우뚝 솟아 있는 강력한 성채들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성벽들이 최종적으로 무너져 내리기 이전에 오랫동안에 걸쳐 이 의식을 계속 행한 바로 그 계획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믿음을 증가시킬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그들은 그들의 힘은 사람의 지혜나 그의 무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들의 구원의 하나님 안에 있다는 사상에 철저하게 감명을 받게 될 것이었다. 그들은 그와 같이 자신들을 제쳐놓고 전적으로 그들의 지도자이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에 익숙하게 될 것이었다.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도 이와 유사한 상황에서 그와 같이 행동할 것인가? 의심할 나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계획을 따르기를 원할 것이며, 그들이 이루려는 목적을 성취하는 다른 길들과 수단들을 제시할 것이다. 그들은 순종의 공로밖에는 그들에게 아무런 영광도 반영해 주지 않는 그토록 단순한 방법에 굴복하기를 몹시 싫어할 것이다. 그들은 또한 강력한 성이 그런 방법으로 정복될 수 있을 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그러나 의무의 법은 지상 명령이다. 그것이 인간의 이성을 지배해야 한다. 믿음은 모든 장벽을 꿰뚫고 들어가고 모든 장애물들을 뒤엎고 그 깃발을 원수 진영의 심장부에 꽂는 산 능력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신뢰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이한 일들을 행하실 것이다. 그분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백성들이 더 이상 능력이 없는 이유는 그들이 자신의 지혜를 너무 신뢰하고, 그분의 능력을 나타내실 기회를 하나님께 드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분은 그들이 전적으로 그분을 신뢰하고 절대적으로 그분을 순종할 때 모든 비상 상태 시에 그분을 믿는 자녀들을 도우실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는 깊은 신비들이 있다. 그분의 섭리 가운데는 불가해한 신비들이 있다. 164 구원의 계획 안에는 인간이 그 깊이를 측량할 수 없는 신비들이 있다. 그러나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무한의 문제들을 풀려는 갈망이 강한, 유한한 마음을 가진 인간들이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지시된 명백한 방침을 따르기를 등한히 하고 창세로부터 숨겨진 비밀들을 꼬치꼬치 캔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론을 세우고, 참 신앙의 단순성을 상실하고, 주님의 선언들을 믿기에는 너무도 자부심이 강하며, 자만(自慢)으로 자신을 둘러싼다.

우리의 신앙을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처지에 있다. 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의뢰하기 때문에 연약하고 무력하다. 하나님은 의문이나 의심 없이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는 신실한 백성들을 위하여 능한 일을 행하신다. 하늘의 대주재께서는 그분의 천사 군대들과 함께 인간의 도움 없이 여리고 성벽을 쓰러뜨리셨다. 이스라엘의 무장한 용사들은 그들의 성취를 뻐길 까닭이 조금도 없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능력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백성들로 하여금 자아와, 자기 나름의 계획대로 일을 행하려는 갈망을 포기하도록 하라.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에 겸손히 순복하도록 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능력을 소성시키시고 그의 자녀들에게 자유와 승리를 안겨 주실 것이다.

예레미야가 이스라엘을 책망함

주께서는 예레미야에게 그의 백성에게 전하도록 책망의 기별을 주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권면을 끊임없이 배척한 데 대해 그들을 고발하는 기별이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나도 내 종 모든 선지자를 너희에게 보내고 부지런히 보내며 이르기를 너희는 이제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켜 행위를 고치고 다른 신을 좇아 그를 섬기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나의 너희와 너희 선조에게 준 이 땅에 거하리라”(렘 7:13, 35:15).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손과 마음의 행위로 그분의 노를 격동시키지 말라고 그들에게 간청하셨다. 그러나 “그들이 듣지 않았다.” 그러자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말씀에 유의하지 않은 연고로 인한 형벌로서 유대인들이 포로가 되리라고 예언하였다. 165 하나님께서 불순종하는 당신의 백성들을 징벌하시는 도구로 갈대아인들이 사용될 것이었다. 그들의 형벌은 그들의 지능에 그리고 그들이 무시해 온 경고에 비례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택된 백성에게 굴욕을 안겨 주는 일을 꺼리셨기 때문에 그분의 심판을 오랫동안 지체시켜 오셨다. 그러나 이제 그분은 그들의 악한 길에서 그들을 제지시키는 최후의 노력으로서 그들에게 당신의 불쾌함을 보이실 것이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의 순결을 보존하기 위해 어떤 새로운 계획도 세우신 것이 없다. 옛날과 마찬가지로 그분은 당신의 이름을 믿노라고 공언하지만 그릇 행하는 자들에게 회개하고 그들의 악한 길에서 돌아서라고 탄원하신다. 그 당시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그분의 선택된 종들의 입을 통하여 그분께서는 그들 앞에 있는 놓여 있는 위험을 예언하신다. 그분은 경고의 음성을 발하시고, 예레미야 당시와 똑같이 신실하게 죄악을 꾸짖으신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이스라엘은 고대 이스라엘이 그러했듯이 견책을 경멸하고 권면을 싫어하려는 동일한 유혹을 받는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진리를 공언하는 자들의 유익을 위하여 그분의 종들에게 주신 말씀들에 조금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경우가 너무도 흔하다. 주께서는 예레미야 당시처럼 자비하심으로써 한동안 그들의 죄에 대한 보응을 보류하시지만, 그분은 항상 당신의 치려는 손을 보류하지는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의로운 심판으로 악을 징벌하실 것이다.

주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여호와의 집 뜰에 서서 그리로 예배하러 들어오는 모든 유다 백성들에게 그들이 듣고 그들의 악한 길에서 돌이킬 수 있도록 그분께서 말하라고 주시는 말씀을 한 말씀도 감하지 말고 말하라고 명하셨다. 그들이 돌이킨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사악함 때문에 그들에게 내리려고 하셨던 형벌을 돌이키실 것이다.

주께서 그분의 그릇 행하는 백성들을 징벌하시기를 내켜 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이 여기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그분은 그분의 심판을 보류하신다. 그분은 돌이켜 충성하라고 그들에게 탄원하신다. 그분은 그들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 살아 계신 하나님이신 그분을 신실하게 섬길 수 있도록 그들을 노예 생활에서 이끌어 내셨다. 그러나 그들은 방황하다가 우상숭배에 빠져 버렸고, 그들은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전한 경고들을 경시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그들에게 회개하여 죄에 대한 보응을 돌이킬 기회를 다시 한 번 그들에게 주시기 위해 당신의 징벌을 연기하신다. 그분은 그분의 선택된 선지자를 통하여 그들에게 명백하고도 적극적인 경고를 보내시고, 그들이 받아 마땅한 형벌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그들 앞에 제시하신다. 166 그 길은 그들의 죄를 온전히 회개하는 것이요 그들의 사악한 길에서 돌이키는 것이다.

주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명하셨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나를 청종치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내 법을 행치 아니하며 내가 너희에게 보내고 부지런히 보낸 나의 종 선지자들의 말을 이미 듣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가 만일 다시 듣지 아니하면 내가 이 집을 실로 같이 되게 하고 이 성으로 세계 열방의 저주거리가 되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렘 26:4, 5). 그들은 실로에 대한 이런 언급과,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이기고 하나님의 법궤가 빼앗김을 당했던 때를 이해했다.

엘리의 죄는 거룩한 직임을 맡고 있었던 그의 아들들의 죄를 가볍고 너그럽게 넘겨 버린 데 있었다. 그의 아들들을 책망하고 제어하는 일에 있어서 아버지의 소홀함은 이스라엘에 두려운 재앙을 가져왔다. 엘리의 아들들은 죽임을 당했고 엘리 자신도 생명을 잃었고 하나님의 법궤는 이스라엘로부터 취해 감을 당했으며, 3만 명의 백성들이 죽임을 당했다. 이 모든 것은 죄가 가볍게 간주되고, 그들 가운데 남도록 허용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중대한 교훈인가! 그것은 그들에게 진리의 사업을 욕되게 하는 잘못을 제거하는 일을 신실히 하라고 엄명한다.

사무엘 당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십계명이 담긴 법궤가 함께 있으면 그들이 자신들의 악행을 회개하든지 하지 않든지 블레셋 사람들을 이길 수 있게 해주리라고 생각했다. 예레미야 당시에도 그와 똑같이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성전의 봉사들을 엄격하게 준수하면 그들의 악한 행위에 대한 공의로운 형벌을 당하지 않게 되리라고 믿었다.

하나님의 율법의 보관자라고 공언하는 사람들 중에도 이와 똑같은 위험이 존재하고 있다. 그들 또한 계명들에 대한 그들의 존중이 하나님의 공의의 권세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줄 것이라고 스스로 아첨하는 경향이 너무 많다. 그들은 악에 대하여 책망 받기를 거절하며, 진영에서 죄를 몰아내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종들이 과도한 열성을 보이고 있다고 비난한다.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은 그분의 율법을 지키노라고 공언하는 백성들에게 모든 악으로부터 떠나라고 요청하고 계신다. 167 회개하고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기를 게을리 할 경우, 그 동일한 죄가 고대 이스라엘에게 안겨 준 것처럼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분께서 그분의 심판을 더 이상 지체하실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예루살렘의 황폐는 그분의 선택된 도구로 쓰이는 사람들을 통하여 주어진 교정들을 무시하고서는 무죄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엄숙한 경고로 현대 이스라엘의 눈앞에 서 있다.

제사장들과 백성들은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기별을 전했다는 것을 듣고 노하여 그를 죽여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그들은 매우 격렬하게 그를 비난하면서 이렇게 부르짖었다.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고 예언하여 이르기를 이 집이 실로 같이 되겠고 이 성이 황무하여 거민이 없으리라 하느뇨 하며 그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집에서 예레미야에게로 모여드니라”(렘 26:9). 그와 같이 하나님의 기별은 멸시를 받았고, 그분께서 기별을 위탁하셨던 그 종은 죽여 버리겠다는 위협을 받았다. 제사장들과 신실치 못한 선지자들, 그리고 모든 백성들이 그들에게 평탄한 것을 말하거나 허탄한 것을 예언하지 않은 그에 대하여 진노하였다.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종들은 대체로 거짓 종교 교사들로부터 가장 혹심한 박해를 받았다. 그러나 참 선지자들은 하나님께 불충실하기보다는 항상 치욕을, 심지어는 죽음을 더 선호하였다. 무한하신 분의 눈은 당신께서 견책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사람들을 굽어보신다. 그들은 막중한 책임을 감당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릇 대표하는 것, 허위, 혹은 폭언을 통하여 그들에게 가해진 위해들을 마치 그것이 그분 자신에게 대하여 가해진 것처럼 간주하시며, 그것에 어울리게 처벌하실 것이다.

유다의 방백들은 예레미야가 한 말들에 관하여 듣고 왕궁에서 올라와 여호와의 문 어귀에 앉았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방백들과 모든 백성에게 말하여 가로되 이 사람은 죽음이 합당하니 너희 귀로 들음같이 이 성을 쳐서 예언하였느니라”(렘 26:11). 그러나 예레미야는 방백들과 백성들 앞에 담대히 서서 이렇게 선언했다.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너희의 들은 바 모든 말로 이 집과 이 성을 쳐서 예언하게 하셨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너희 길과 행위를 고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선고하신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시리라 보라 나는 너희 손에 있으니 너희 소견에 선한 대로, 옳은 대로 하려니와 너희는 분명히 알라 너희가 나를 죽이면 정녕히 무죄한 피로 너희 몸과 이 성과 이 성 거민에게로 돌아가게 하리라 이는 여호와께서 진실로 나를 보내사 이 모든 말을 너희 귀에 이르게 하셨음이니라”(렘 26:12-15).

168 만일 그 선지자가 그 고관들의 위협과 오합지졸들의 아우성 소리에 겁을 먹었더라면, 그의 기별은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했을 것이며, 그는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가 자신의 고통스러운 임무를 수행하면서 나타낸 그 용기는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이스라엘 방백들을 그의 편으로 돌려놓았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을 위하여 변호자들을 일으키셨다. 그들은 제사장들과 거짓 선지자들로 더불어 변론하면서, 그들이 주장하는 극단적 조치들이 얼마나 지혜롭지 못한 것인지 그들에게 보여 주었다.

이 권세 있는 사람들의 영향은 백성들의 마음에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자 장로들이 예레미야의 운명에 관한 제사장들의 결정에 항의하는데 연합하였다. 그들은 “시온은 밭같이 경작함을 당하며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며 이 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들 같이 되리라”고 말하면서 예루살렘의 심판을 예언했던 미가 선지자의 경우를 상기시켰다. 그들은 그들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유다와 히스기야와 모든 유다가 그를 죽였느냐 히스기야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고한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였느냐 우리가 이같이 하면 우리 생명을 스스로 크게 해하는 일이니라”(렘 26:19, 20).

그와 같이 아히감과 다른 사람들의 간청을 통하여 선지자 예레미야는 목숨을 건졌다. 많은 제사장들과 거짓 선지자들은 예레미야가 그들의 사악함을 폭로한 진리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난동을 구실 삼아 그를 사형시켰더라면 기뻐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여전히 회개하지 않고 있었고,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죄로 인하여 그들이 형벌을 받지 않으면 안될 것을 보셨다. 169 그리하여 그분은 예레미야에게 줄과 멍에를 만들어 그것을 그의 목에 얹고 그것을 에돔과 모압과 암몬 족속과 두로와 시돈의 왕들에게 보내면서, 기별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이 모든 땅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주셨음과 이 모든 국가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출하실 때까지 일정 기간 그와 그의 자손들을 섬길 것이라고 말하도록 명령하라고 지시하셨다. 그들은 만일 이 나라들이 바벨론 왕을 섬기기를 거부하면, 그들은 기근과 칼과 염병으로 벌을 받아, 마침내 멸망당할 것이라고 선언할 것이었다. “너희는 너희 선지자나 너희 복술이나 너희 꿈꾸는 자나 너희 술사나 너희 요술객이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바벨론 왕을 섬기지 아니하리라 하여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하여서 너희로 너희 땅에서 멀리 떠나게 하며 또 나로 너희를 몰아내게 하며 너희를 멸하게 하느니라 오직 그 목으로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고 그를 섬기는 나라는 내가 그들을 그 땅에 머물러서 밭을 갈며 거기 거하게 하리라”(렘 27:9-11).

예레미야는 그들이 70년 동안 노예의 멍에를 메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이미 바벨론의 왕에게 사로잡힌 포로들과 그가 취해 간 여호와의 집의 기명들도 그 기간이 경과할 때까지 바벨론에 머물 것이었다. 그러나 70년이 마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포로 됨에서 구출해 내시고 그들의 압제자들을 벌하시고 거만한 바벨론 왕을 굴복시키실 것이다.

바벨론 왕과 전쟁하는 문제에 대하여 유다 왕의 의견을 듣기 위해 임명된 사신들이 여러 나라에서 왔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지자는 복종의 상징물을 몸에 지닌 채 이들 나라들에 여호와의 기별을 전하면서, 그들에게 그들의 왕들에게 가서 그것을 전하라고 명하였다. 이것은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그처럼 반역적인 백성들에게 가하실 수 있는 가장 가벼운 형벌이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이런 예속(隸屬)의 천명(天命)에 맞서 싸운다면, 그들은 그분의 가혹한 징책을 온전히 맛보게 될 것이었다. 그들은 거짓을 예언한 그들의 거짓 교사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말도록 신실하게 경고를 받았다.

170 예레미야가 그의 목에 복종의 멍에를 얹고 하나님의 뜻을 그들에게 알릴 때 각국에서 참석한 위원회의 경악(驚愕)은 끝이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하여 그분의 백성들에게 주의하라고 경고하셨던 거짓 선지자 중 하나인 하나냐는 선포된 예언에 반대하여 목소리를 높였다. 왕과 그의 궁정의 은총을 얻기를 희망하면서 그는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위한 격려의 말씀을 그에게 주셨다고 확언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이곳에서 바벨론으로 옮겨간 여호와의 집 모든 기구를 두 해가 차기 전에 다시 이곳으로 가져오게 하겠고 내가 또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와 바벨론으로 간 유다 모든 포로를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니 이는 내가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을 것임이니라”(렘 28:3, 4).

예레미야는 모든 선지자들과 백성들이 있는 데서 하나님께서 그처럼 당신의 백성들에게 은총을 베푸시사 여호와의 집의 기구들과 포로들이 돌아오게 하시는 것은 그의 마음의 간절한 소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일은 백성들이 회개하고 그들의 악한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게 되는 조건하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었다. 예레미야는 그의 조국을 사랑하였고 예언된 황폐가 백성들의 굴욕으로 말미암아 비켜 가기를 열렬히 소원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런 소망이 헛되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이스라엘의 형벌이 가능한 한 가볍기를 희망했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에게 주께서 구체적으로 말씀하신 기간 동안 바벨론 왕에게 복종하라고 열렬히 간청했다.

그는 그들에게 그가 말한 것들을 들으라고 간청했다. 그는 호세아, 하박국, 스바냐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견책과 경고의 기별과 흡사한 기별을 외친 다른 사람들의 예언들을 그들에게 상시키셨다. 그는 회개하지 않은 죄에 대하여 보응이 뒤따르리라고 한 예언들의 성취로서 그들의 역사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그들에게 가리켰다. 이 경우에서처럼 이따금 하나님의 기별에 반대하여 일어나서 백성들의 두려움을 진정시키고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의 총애를 얻기 위해 평안과 번영을 예언해 온 사람들이 존재해 왔었다. 그러나 과거의 모든 경우들에 있어서 하나님의 심판은 참 선지자들이 지적했던 그대로 이스라엘에게 내려진 바 되었다. 171 그는 이렇게 말한다.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는 진실로 여호와의 보내신 선지자로 알게 되리라”(렘 28:9). 만일 이스라엘이 모험을 감수하기로 선택한다면, 누가 거짓 선지자였는지는 미래의 사태 진전이 효과적으로 결정짓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냐는 이 말을 듣고 몹시 성을 내면서 예레미야의 목에서 그 멍에를 취하여 그것을 꺾어 버렸다. “하나냐가 모든 백성 앞에서 말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두 해가 차기 전에 열방의 목에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이같이 꺾어 버리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기 길을 가니라”(렘 28:10-20). 그는 자신의 임무를 다했다. 그는 백성들에게 그들의 위험에 대하여 경고했다. 그는 그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다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지적해 주었다. 그러나 그의 유일한 죄는 믿지 않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기별을 충실히 전달한 죄 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의 말을 모욕했으며, 중책을 맡은 자들은 그를 비난하고 백성들을 선동하여 그를 죽이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또 다른 기별이 예레미야에게 주어졌다. “너는 가서 하나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나무 멍에를 꺾었으나 그 대신에 쇠 멍에를 만들었느니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니라 내가 쇠 멍에로 이 모든 나라의 목에 메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게 하였으니 그들이 그를 섬기리라 내가 들짐승도 그에게 주었느니라 하신다 하라 선지자 예레미야가 선지자 하나냐에게 이르되 하나냐여 들으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네가 이 백성으로 거짓을 믿게 하는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지면에서 제하리니 네가 여호와께 패역하는 말을 하였음이라 금년에 죽으리라 하더니 선지자 하나냐가 그해 7월에 죽었더라”(렘 28:13-17).

이 거짓 선지자는 예레미야와 그의 기별에 대한 백성들의 불신을 강화시켜 왔다. 그는 사악하게도 자신이 여호와의 사자라고 선언했었다. 그는 그의 무서운 죄악의 결과로 죽임을 당하였다. 172 제5월에 예레미야는 하나냐의 죽음을 예언하였고, 제7월에 그가 죽음으로써 선지자의 말이 참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만일 그들이 불평 없이 그분의 계획에 순복한다면, 그의 백성이 구원함을 받고, 그분께서 그들에게 지워 주실 멍에가 가볍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의 종살이는 쉽게 질 수 있는 나무 멍에로 대표되었다. 그러나 저항에는 철멍에로 대표되는, 그에 상응하는 가혹함으로 대처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인명 손실이나 소름끼치는 압제가 없게끔 바벨론 왕을 제어하기로 계획하셨다. 그러나 그분의 경고와 명령들을 경멸함으로써 그들은 최대 한도로 가혹한 속박을 자초하였다. 번영을 예언한 거짓 선지자의 기별을 받아들이는 것이 백성들에게는 훨씬 더 마음에 맞았다. 그러므로 그 기별이 받아 들여졌다. 그들의 죄가 끊임없이 그들의 눈앞에 제시되자 그들의 자만심은 상처를 입었다. 그들은 그것들을 시야에서 사라지게 만들기를 훨씬 더 원하였다. 그들은 이처럼 도덕적 어두움 속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죄책의 흉악성을 깨닫지 못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견책과 경고의 기별도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들의 불순종에 대하여 올바른 느낌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그들은 여호와의 행사의 공의로움을 인정하고 그분의 선지자의 권위를 인식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굴욕을 면하게 하실 수 있도록, 그리고 그분의 이름으로 불림을 받는 백성이 이방 나라의 종속국이 되지 않게 그들에게 회개하도록 간청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그분의 권면에 코방귀를 뀌고 거짓 선지자들을 따라갔다.

그러나 주께서는 호위병들, 장로들, 제사장들, 선지자들 그리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모든 백성들에게, 거짓 선지자의 말에 현혹되어 그들의 구원이 가깝다고 믿지 말고 그들을 사로잡은 자들에게 조용히 순복하며 그들의 생업을 영위하고 그들의 정복자들 가운데서 평화스러운 가정을 그들 스스로를 위하여 꾸리도록 당부하는 편지를 쓰도록 예레미야에게 명하셨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선지자들이나 복술자들이 거짓된 기대로 그들을 기만하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에게 명하셨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70년 노예 생활 후에 그들이 다시 구출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예레미야의 말을 통해 그들에게 보증하셨다. 그분은 그들이 전심으로 그분께 돌아올 때 그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그분의 은총을 그들에게 주실 것이다. 17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열방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나게 하던 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29:14).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자애스러운 동정심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그분의 계획에 관하여 사로잡힌 그분의 백성들에게 알리셨던가. 그분은 거짓 선지자들이 예언한대로 그들이 속히 속박에서 구출되어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믿도록 인도된다면 그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과 재난을 당할지를 아셨다. 그분은 이런 믿음은 그들의 처지를 대단히 어렵게 만들 것을 아셨다. 그들 편에서의 어떤 폭동적 시위도 왕의 경계심과 가혹함을 깨울 것이었고, 그들의 자유는 그 결과로 제한 받게 되었을 것이다. 그분은 그들이 그들의 운명에 조용히 순복하고 그들의 종살이를 가능한 한 기쁘게 만들기를 갈망하셨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한 두 다른 선지자, 즉 아합과 시드기야가 있었다. 이 사람들은 거룩한 교사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은 타락했고, 그들은 죄의 쾌락의 노예였다. 하나님의 선지자는 이 사람들의 악한 행실에 대하여 정죄했고, 그들에게 그들의 위험에 대하여 경고했다. 그들은 회개하고 개혁하기는커녕 그들의 죄를 신실하게 책망하는 이 사람에게 격노했고, 백성들로 하여금 그의 말을 불신하고 바벨론 왕에게 복종하는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권면에 배치되게 행동하도록 선동함으로써 그의 사업을 좌절시키려고 애썼다. 여호와께서는 이 거짓 선지자들이 바벨론 왕의 손에 넘겨져서 그의 눈앞에서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예레미야를 통하여 증거하셨고, 때가 되매 그 예언이 성취되었다.

다른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예레미야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명령들을 순종하는 데서 백성들을 돌이킴으로써 혼란을 뿌렸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이 그분께 반역하도록 만든 중한 죄의 결과로써 그들에게 선언되었다.

바로 이와 똑같은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일어나,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노라고 공언하는 백성들 가운데 혼란과 반역을 발생시킨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내렸던 것과 똑같이, 이들 악한 일꾼들은 틀림없이 그들의 보응을 충만히 받게 될 것이다. 174 왜냐하면 여호와께서는 변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거짓을 예언하는 사람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심상한 것으로 보도록 부추긴다. 그들의 죄악들의 두려운 결과들이 명백히 드러나게 될 때, 그들은 유대인들이 그들의 나쁜 운명의 책임을 예레미야에게 뒤집어 씌웠던 것과 마찬가지로, 가능하다면 그들의 어려움들의 책임을 그들을 충실히 경고해 온 사람들 탓으로 돌리려고 노력한다.

여호와께 대하여 반역의 길을 좇는 사람들은 그들의 행위를 정당화시켜 주고, 그들에게 아첨하여 결국 그들을 멸망에 빠뜨릴 거짓 선지자들을 항상 발견할 수 있다. 거짓말들은 아합과 시드기야의 경우에서처럼 많은 친구를 사귀게 해주는 경우가 흔하다. 하나님을 위하여 열성을 내는 척 하면서 이들 거짓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단순한 기별을 전한 참 선지자보다 훨씬 더 많은 신자들과 추종자들을 얻었다.

레갑 족속에게서 배울 교훈

하나님께서는 레갑 족속들을 여호와의 집으로, 그 방들 중의 하나로 모으고 그들 앞에 포도주를 차려 놓고 마시라고 초청하라고 예레미야에게 명하셨다. 예레미야는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행했다. 그러나 “그들이 가로되 우리는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겠노라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와 너희 자손은 영영히 포도주를 마시지 말”(렘 35:6)라.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너는 가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내 말을 들으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겠느냐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 그 자손에게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 한 그 명령은 실행되도다 그들은 그 선조의 명령을 순종하여 오늘까지 마시지 아니하거늘”(렘 35:13, 14).

여기서 하나님은 견책과 경고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그분의 백성의 불순종과 반역을 레갑 족속들의 순종과 대조시키신다. 레갑 족속들은 그들의 선조의 명령을 순종하였고, 꾀임을 받아 그의 요구를 범하기를 거절하였다. 175 그러나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청종하기를 거절하였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고 부지런히 말하여도 너희는 나를 듣지 아니하도다 나도 내 종 모든 선지자를 너희에게 보내고 부지런히 보내며 이르기를 너희는 이제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켜 행위를 고치고 다른 신을 좇아 그를 섬기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나의 너희와 너희 선조에게 준 이 땅에 거하리라 하여도 너희가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며 나를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레갑의 아들 요나답의 자손은 그 선조가 그들에게 명한 그 명령을 준행하나 이 백성은 나를 듣지 아니하도다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거민에게 나의 그들에게 대하여 선포한 모든 재앙을 내리리니 이는 내가 그들에게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며 불러도 대답지 아니함이니라 하셨다 하라.

예레미야가 레갑 족속에게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너희 선조 요나답의 명령을 준행하여 그 모든 훈계를 지키며 그가 너희에게 명한 것을 행하였도다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영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렘 35:14-19).

레갑 족속들은 즉각적이고 자원하는 순종을 했기 때문에 칭찬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의 선지자들의 책망을 받기를 거절하였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지만 그들이 듣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께서 그들을 부르셨지만 그들이 대답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 대하여 심판을 선언하셨다. 예레미야는 신실한 레갑 족속에게 여호와께서 주신 칭찬의 말을 반복하였고, 그분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축복을 선언하였다. 그같이 하나님께서는 레갑 족속들이 그들의 선조의 명령에 순종했기 때문에 축복을 받은 것처럼, 신실함, 그리고 그분의 요구에 대한 순종은 다시 축복으로 그들에게 되돌아올 것이라고 가르치셨다.

그의 자손들이 부절제의 해악을 피하도록 최선의 효과적인 수단을 마련한, 한 선하고 지혜로운 아버지의 지시가 그처럼 엄격하게 순종되어야 할진대, 하나님의 권위는 그분께서 사람보다 더 거룩하신 것처럼 훨씬 더 큰 존경심으로 높이 들리워져야 할 것이다. 176 그분은 우리의 창조주시요 사령관이시며, 능력이 무한하시고 심판 때에 두려운 분이시다. 자비하신 그분께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도록 이끌 다양한 수단을 사용하신다. 만일 그들이 그분께서 그들에게 보내시는 견책을 계속 무시하고 그분의 선포된 뜻에 배치되게 행동한다면, 파멸이 뒤따를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은 그분의 하늘 기별자들의 보호를 통하여 그분의 자비로 말미암아서만 번영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분은 그분의 권면을 무시하고 견책을 멸시하는 사람을 붙드시거나 지켜 주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의 경고들이 배척됨

예레미야는 그가 하나님을 순종하고,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받은 경고의 말씀을 왕들과, 이스라엘에서 중책을 맡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려고 했기 때문에 이미 그의 자유를 박탈당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견책들을 받아들이거나 그들의 행실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허락지 않을 것이었다. 그들은 견책의 말들에 대하여, 그리고 그들이 여호와께 대하여 계속 반역을 할 경우 그들에게 임하리라고 예언된 심판에 대하여 큰 분노와 경멸을 나타냈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권면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말씀의 효력이 감소되지 않았으며, 그분의 요구 사항을 순종하기를 거절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분의 불쾌하심과 심판으로 견책하고 위협하기를 그치지도 않으셨다.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지시하셨다. “너는 두루마리 책을 취하여 내가 네게 말하던 날 곧 요시야의 날부터 오늘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와 열방에 대하여 나의 네게 이른 모든 말을 그것에 기록하라 유다 족속이 내가 그들에게 내리려 한 모든 재앙을 듣고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킬 듯 하니라 그리하면 내가 그 악과 죄를 사하리라”(렘 36:2, 3).

여기 여호와께서 그분의 죄짓는 백성들을 포기하기를 꺼리신다는 사실이 드러나 있다. 이스라엘이 그분의 견책과 경고를 너무도 등한히 하므로 그것들이 그들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분께서는 그들에 대한 그분의 심판을 지체하시고, 그들에게 요시야 때로부터 그들 자신의 때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불순종과 흉악해져 가는 죄악들과 그들의 반역의 결과로 그분께서 선언하셨던 심판들에 대하여 되풀이해서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177 이와 같이 그들은 그들의 죄악들을 다시 보고 회개할 기회를 가졌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벌하기를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과, 곁길로 나가는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불쌍히 여기는 사랑을 훨씬 초월하는 돌봄과 함께, 그분께서는 당신의 방황하는 백성들이 그들의 충성심을 회복하기를 간청하고 계시는 것을 본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주께서 그에게 주신 말씀들을 그의 서기관인 바룩에게 구술하였고, 그는 그것을 두루마리에 기록하였다. 예레미야 36장 4절을 보라. 이 기별은 이스라엘의 많은 죄악들에 대한 견책이며, 악행을 계속한 그들에게 뒤따를 결과들에 대한 경고였다. 이것은 그들의 죄를 버리라는 열렬한 호소였다. 그것이 쓰여진 후에, 감옥에 갇힌 예레미야는 그의 서기관을 보내 “금식일에 여호와의 집에” 모인 모든 백성들에게 그것을 낭독하도록 했다.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이 여호와 앞에 기도를 드리며 각기 악한 길을 떠날 듯 하니라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선포하신 노와 분이 크니라”(렘 36:7).

그 서기관은 선지자의 명령을 순종하였다. 그 두루마리는 유다의 모든 백성들 앞에서 낭독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는 방백들 앞에서 그것을 읽도록 소환당했다. 그들은 큰 관심을 가지고 들었으며, 바룩에게 이 신비스러운 저술에 관하여 질문하는 그들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그들은 그와 그의 백성들에 관하여 그들이 들어왔던 모든 것을 왕에게 말하기로 약속했지만, 그 서기관에게는 피신하라고 조언했다. 그들은 왕이 예레미야를 통해서 주신 그 증언을 배척하고 선지자 뿐 아니라 그의 서기관까지도 죽이려 들지도 모른다고 염려했기 때문이다.

방백들로부터 바룩이 낭독했던 것에 대하여 들은 왕은, 즉시 그 두루마리를 가져와 그에게 낭독해 달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왕은 그 경고들에 유의하고 자기 자신과 그의 백성에게 닥칠 위험을 보고 떠는 대신 격노하여, 그의 신임을 받는 몇몇 고관들이 그것을 태우지 말라고 애걸했음에도 불구하고 불 속에 던져 넣었다. 178 그 다음 이 사악한 군주의 진노는 예레미야와 그의 서기관을 향하여 일어났다. 그리고 그는 당장 그들을 잡아오도록 사람들을 보냈다. “그러나 주께서 그들을 숨기시니라.” 그 왕이 그 거룩한 두루마리를 불에 태운 후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기를, “너는 다시 다른 두루마리를 가지고 유다 왕 여호야김의 불사른 첫 두루마리의 모든 말을 기록하고 또 유다 왕 여호야김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그가 이 두루마리를 불사르며 말하기를 네가 어찌하여 바벨론 왕이 정녕히 와서 이 땅을 멸하고 사람과 짐승을 이 땅에서 없어지게 하리라 하는 말을 이 두루마리에 기록하였느뇨 하리라”(렘 36:28-29).

자비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유익을 위하여 백성들에게 은혜스럽게 경고하셨다. “유다 족속이 내가 그들에게 내리려 한 모든 재앙을 듣고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킬 듯 하니라 그리하면 내가 그 악과 죄를 사하리라”(렘 36:3)고 동정이 많으신 창조주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눈멂과 왜곡됨을 불쌍히 여기신다. 그분은 견책과 위협으로써 그들의 어두워진 이해력에 빛을 보내신다. 그런 견책과 위협들은 가장 높임을 받은 자라도 그들의 무지를 느끼고 그들의 실수를 통한히 여기게 만들도록 계획되었다. 그분께서는 자만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성취에 불만족하도록 느끼게 하실 것이며, 하늘과 더 밀접하게 연결됨으로써 더 큰 축복들을 구하게 하려고 하신다.

하나님의 계획은 죄인들을 기쁘게 하고 그들에게 아첨할 기별자들을 보내는 것이 아니다. 그분은 성화되지 못한 자들을 진정시켜 육적인 안전 속에 빠지도록 아무런 평화의 기별을 주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분은 그릇 행하는 자의 양심에 무거운 부담을 지우시고, 그의 영혼을 회오의 날카로운 화살들로 찌르신다. 수종드는 천사들은 그에게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을 제시하여, 그의 큰 필요에 대한 의식을 심화시키고 다음과 같은 고뇌 어린 부르짖음을 촉발시킨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티끌에까지 낮아지도록 굴욕을 주시고, 죄를 견책하며, 교만과 야망을 수치스럽게 만드시는 바로 그 손이 참회하고 매맞음을 당한 자들을 들어올리시면서, 매우 깊은 동정심으로 이렇게 질문하신다. “내가 네게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사람이 거룩하고 자비로운 하나님께 대하여 죄를 지었을 때, 눈물과 영혼의 비통함 가운데서 진정으로 회개하고 그의 잘못들을 고백하는 것만큼 고상한 길은 없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그에게서 요구하신다. 그분께서는 상한 심령과 통회하는 영 외에는 아무것도 가납하지 않으실 것이다. 179 그러나 거만하고 자만하는 왕과 그의 신하들은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초청을 거절하였다. 그들은 이 경고에 유의하여 회개하려 하지 않았다. 이 은혜스러운 기회가 그들의 마지막 기회였다. 하나님께서는 만일 그들이 그분의 음성을 듣기를 거절하면, 그들에게 두려운 보응을 내리시겠다고 선언하셨다. 그들은 듣기를 거절했고, 그분은 이스라엘에게 그분의 심판을 선언하셨다. 그분은 전능자에 맞서서 자신을 거만하게 높여 왔던 그 사람에게 특별한 진노를 내리셨다.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유다 왕 여호야김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그에게 다윗의 위에 앉을 자가 없게 될 것이요 그 시체는 버림을 입어서 낮에는 더위, 밤에는 추위를 당하리라 또 내가 그와 그 자손과 신하들을 그들의 죄악을 인하여 벌할 것이라 내가 일찍 그들과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사람에게 선포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한 그 모든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다 하라”(렘 36:30, 31).

두루마리를 불태운 것은 문제의 끝이 아니었다. 기록된 말씀은 거기 담긴 견책과 경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반역적인 이스라엘에게 선언하신, 신속히 닥쳐오는 형벌보다 훨씬 쉽게 제거될 수 있었다. 그러나 기록된 두루마리조차도 여호와의 명령에 의해 다시 만들어졌다. 무한하신 분의 말씀이 파괴되어서는 안될 것이었다. “이에 예레미야가 다른 두루마리를 취하여 네리야의 아들 서기관 바룩에게 주매 그가 유다 왕 여호야김의 불사른 책의 모든 말을 예레미야의 구전대로 기록하고 그 외에도 그 같은 말을 많이 더하였더라”(렘 36:32).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라고 먼저 경고하심 없이 그의 백성에게 심판을 보내지 않으신다. 그분은 그들을 순종으로 돌이키기 위해 온갖 방법을 사용하시며, 그들에게 회개할 충분한 기회를 주기 전까지는 심판으로 그들의 죄악을 벌하지 않으신다. 사람의 진노는 하나님의 선지자의 자유를 박탈함으로써 그의 활동을 막으려고 노력했지만, 하나님은 감옥의 벽을 뚫고 나와서 사람들에게 말하실 수 있었고, 심지어 그들의 박해자들이 그들의 영향을 제한하려고 노력하는 바로 그 수단을 통해서 그분의 종들의 유용성을 증가시킬 수 있으시다.

180 많은 사람들이 현재 하나님께서 증언 가운데 주신 충실한 견책을 멸시한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그 사악한 왕이 그렇게 했듯이, 기록된 견책과 경고의 말씀을 태워 버리는 지경까지 나아갔다는 것이 이상 가운데서 내게 보여진바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위협들에 대하여 반대한다고 해서 그것의 집행이 방해받지는 않을 것이다. 그분의 선택한 도구들을 통하여 말해진 여호와의 말씀에 도전하고 그것을 무시하는 것은 그분의 노를 격동시킬 뿐이며, 마침내 범죄자에게 확실한 파멸을 가져올 것이다. 자주 죄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견책을 전달하고자 선택하신 대리자들에 대한 분노가 불붙는다. 항상 그러해 왔고,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한 것 때문에 예레미야를 박해하고 투옥시켰던 그런 동일한 정신이 오늘날도 존재한다.

사람들은 되풀이해서 주어진 경고들에 유의하려 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허영에 아첨을 떨어 주고, 그들의 죄악을 강화시켜 주지만, 환난의 날에 그들을 도와주지 못할 거짓 선지자들을 좋아하게 된다. 하나님의 선택된 종들은 그들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라고 주신 의무를 신실히 수행하기 때문에 모욕, 등한 그리고 오전(誤傳)을 통하여 그들에게 닥치는 어떤 시련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용기와 인내로 대처해야 한다. 그들은 옛날의 선지자들과 세상의 구주께서도 세상을 위하여 학대와 박해를 견디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불러 주신대로 기록된 두루마리의 불태운 것으로 표명된 바, 바로 이런 반대에 맞닥뜨릴 것을 예상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위하여 사람들을 적합하게 만들고 계신다. 품성의 결점, 외고집, 이기적 우상숭배, 흠을 찾는 일에 빠지는 것, 적의, 다툼은 하나님의 진노를 격동시키며, 그것들은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백성들로부터 제거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죄악들 가운데 사는 사람들은 사단의 간계에 속임을 당하고 눈멀게 된 자이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더듬고 있는 데도 자신들이 빛 가운데 있다고 생각한다. 고대 이스라엘 가운데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 중에도 불평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의 자아 사랑이, 받아 마땅한 견책에 상처를 입고 있을 때, 현명하지 못한 동정을 보임으로 반역 중에 있는 사람들을 격려하는 사람들은 위대한 견책자이신 하나님의 친구들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세상에 계속 존재하는 한 그분의 백성들에게 견책과 경고를 보내실 것이다.

181 옳은 쪽에 용맹스럽게 서는 사람, 하나님의 계시된 뜻에 순복하라고 격려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비행을 버리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굳세게 해주는 자들이 여호와의 참된 친구들이며, 그분은 사랑 가운데서 그분의 백성들의 실수들을 바로잡으려고 애쓰고 계시는 바, 그 이유는 그들을 씻고 온갖 더러움에서 그들을 정결케 하여 그분의 거룩한 왕국에 적합하게 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시드기야는 예루살렘에서 여호야김의 뒤를 이어 권좌에 올랐다. 그러나 이 새 왕이나 조정의 신하들이나 그 땅의 백성들도 예레미야를 통해서 발해지는 여호와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갈대아인들이 예루살렘에 대한 포위를 개시했지만, 애굽인들을 대항하는 데 그들의 군대를 돌리기 위해 한동안 예루살렘을 떠났다. 시드기야는 한 사자를 예레미야에게 보내 그들을 위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기도하도록 그에게 요청했다. 그러나 선지자의 두려운 대답은 갈대아 군대가 돌아와서 그 성을 멸망시킬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처럼 여호와께서는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기가 얼마나 불가능한지를 그들에게 보여주셨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스스로 속여 말하기를 갈대아인이 반드시 우리를 떠나리라 하지 말라 그들이 떠나지 아니하리라 가령 너희가 너희를 치는 갈대아인의 온 군대를 쳐서 그 중에 부상자만 남긴다 할지라도 그들이 각기 장막에서 일어나 이 성을 불사르리라”(렘 37:9, 10).

예레미야는 그의 일이 완수되었다고 생각하고 그 성을 떠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그는 거짓 선지자들 중 한 사람의 아들에 의해 방해를 받았다. 그 사람은 그가 원수 편에 가담하려고 했다고 보고하였다. 예레미야는 그 거짓된 고소를 부인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 소환되었다. 방백들은 예레미야를 미워했기 때문에 그 거짓 선지자의 아들을 믿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그가 예언했던 재앙을 그들에게 가져온 것은 바로 그였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분노한 그들은 그를 때리고 감옥에 가두었다.

여러 날 동안 감옥에 머물러 있는 후, 시드기야 왕은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게 하고 여호와께로서 받은 말씀이 있는지 그에게 은밀히 물었다. 예레미야는 다시 그 나라가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기어질 것이라는 그의 경고를 되풀이했다.

182 “예레미야가 다시 시드기야 왕에게 이르되 내가 왕에게나 왕의 신하에게나 이 백성에게 무슨 죄를 범하였관대 나를 옥에 가두었나이까 바벨론 왕이 와서 왕과 이 땅을 치지 아니하리라고 예언한 왕의 선지자들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 내 주 왕이여 이제 청컨대 나를 들으시며 나의 탄원을 받으사 나를 서기관 요나단의 집으로 돌려보내지 마옵소서 내가 거기서 죽을까 두려워하나이다 이에 시드기야 왕이 명하여 예레미야를 시위대 뜰에 두고 떡 만드는 자의 거리에서 매일 떡 한 덩이씩 주게 하매 성중에 떡이 다할 때까지 이르니라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머무니라”(렘 37:18-21).

이 악한 왕은 예레미야에 대한 어떤 믿음도 공개적으로 감히 표명하지는 못했지만, 두려움이 그로 하여금 그에게서 정보를 얻도록 만들었다. 그렇지만 그는 선지자가 선포한 대로 하나님의 뜻에 굴복함으로써 그의 귀족들과 백성들의 반대 의견에 용감히 맞서기에는 너무도 연약했다. 마침내 예레미야가 고집스럽게 악한 일을 예언하는 일을 계속한다고 하여 격노한, 권세 있는 직위에 있는 사람들이 왕에게 가서, 그 선지자가 살아 있는 한 그는 재앙을 예언하는 일을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그에게 말했다. 그들은 그 선지자는 나라의 원수이며, 그의 말들은 백성들의 손을 연약하게 해 왔고, 그들에게 불행을 가져다주었으며, 그들은 그를 죽여 없애기를 원한다고 왕에게 역설했다.

겁 많은 왕은 이런 비난들이 거짓임을 알았으나, 나라의 높고 영향력 있는 직위를 차지한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그들의 거짓말을 믿는 체 했으며, 예레미야를 그들이 원하는 대로 처치하도록 그들의 손에 넘겨주었다. 그에 따라 그들은 선지자를 취하여 “시위대 뜰에 있는 왕의 아들 말기야의 구덩이에 던져 넣을 때에 예레미야를 줄로 달아 내리웠는데 그 구덩이에는 물이 없고 진흙뿐이므로 예레미야가 진흙 중에 빠졌더라”(렘 38:6).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위하여 한 친구를 일으키셨다. 그 친구는 그를 위하여 왕께 탄원하여 그를 다시 시위대 뜰로 데려갔다.

183 다시 한 번 왕은 은밀히 사람을 보내 예레미야를 데려와 그에게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충실히 말하도록 명하였다. “예레미야가 시드기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을 왕에게 아시게 하여도 왕이 단정코 나를 죽이지 아니하시리이까 가령 내가 왕을 권한다 할지라도 왕이 듣지 아니하시리이다 시드기야 왕이 비밀히 예레미야에게 맹세하여 가로되 우리에게 이 영혼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내가 너를 죽이지도 아니하겠고 네 생명을 찾는 그 사람들의 손에 붙이지도 아니하리라”(렘 38:15, 16). 그러자 예레미야는 다시 왕의 귀에 하나님의 경고의 음성을 발했다. 그는 말했다. “예레미야가 시드기야에게 이르되 만군의 하나님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바벨론 왕의 방백들에게 항복하면 네 생명이 살겠고 이 성이 불사름을 입지 아니하겠고 너와 네 가족이 살려니와 네가 만일 나가서 바벨론 왕의 방백들에게 항복하지 아니하면 이 성이 갈대아인의 손에 붙이우리니 그들이 이 성을 불사를 것이며 너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나는 갈대아인에게 항복한 유다인을 두려워하노라 염려컨대 갈대아인이 나를 그들의 손에 붙이면 그들이 나를 조롱할까 하노라 예레미야가 가로되 그 무리가 왕을 그들에게 붙이지 아니하리이다 원하옵나니 내가 왕에게 고한 바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소서 그리하면 왕이 복을 받아 생명을 보존하시리이다”(38:17-20).

여기에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자비가 나타나 있다. 저 마지막 시간에서조차도, 만일 그들이 그분의 요구 사항에 순복한다면 백성들의 생명은 부지될 것이며, 성은 전란(戰亂)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왕은 되돌아서기에는 자신이 너무 멀리 갔다고 생각했다. 그는 유대인을 두려워했고,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이 두려웠고, 그의 생명을 위하여 두려워하였다. 그처럼 늦은 때에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은 너무도 굴욕적인 일이 될 것이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서 말씀하신 바 여호와의 말씀을 받아들이노라. 나는 이 모든 경고들을 앞에 두고서 원수들에 맞서서 감히 싸움을 벌이지 않을 것이다.”

예레미야는 눈물을 흘리면서 왕에게 자신과 그의 백성을 구하라고 간청하였다. 그는 고뇌하면서 왕에게 그가 피할지라도 생명을 부지하지 못할 것이며 그의 모든 소유물은 바벨론 왕의 수중에 떨어질 것이라고 확언했다. 그는 하려고만 하면 그 성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잘못된 길로 들어서기 시작했으며 그의 발걸음을 돌이키지 않을 것이었다. 184 그는 거짓 선지자들의 권면과, 그가 참으로 멸시하는 사람들, 그들의 소원에 그처럼 쉽게 굴복한 그의 품성의 연약성을 조롱한 사람들의 권면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그는 그의 성년(成年)의 고귀한 자유를 포기하고 여론에 굽실굽실하는 노예가 되어 버렸다. 그가 어떤 확정된 악한 목적을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옳은 것을 위해 담대하게 설 만한 과단성이 있지도 않았다. 그는 예레미야가 말한 진리에 대하여 확신을 갖고 있었지만, 그의 권면을 순종할 도덕적 정력은 없었고, 꾸준히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갔다.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그의 영혼을 휘어잡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선지자와 만났었다는 것을 그의 조신(祖臣)들과 백성들이 알게 되는 것을 꺼릴 만큼 너무도 유약했다. 만일 이 겁 많은 통치자가 백성 앞에 용감히 서서, 이미 절반쯤 성취된 선지자의 말을 믿고 있다고 선포했었더라면 얼마나 큰 황폐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인가! 그는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나는 여호와를 순종하고 이 성이 완전히 폐허가 되는 것을 막겠다. 나는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이나 그들의 은총을 위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감히 무시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진리를 사랑하고, 나는 죄를 증오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전능자의 권면을 따를 것이다.” 그렇게 했더라면 백성들은 그의 용기 있는 정신에 경의를 표했을 것이며, 믿음과 불신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던 사람들은 의를 위하여 굳게 섰을 것이다. 바로 이런 두려움 없는 행동과 이런 방침의 정당성은 그의 신하들의 존경과 충성심을 유발시켰을 것이다. 그는 충분한 지지를 받았을 것이며, 이스라엘은 화재, 살육, 그리고 기근으로 인한 말할 수 없는 화를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드기야의 유약성은 일종의 죄악이었다. 그는 그것으로 인하여 두려운 형벌을 받았다. 원수들은 저항할 수 없는 산사태처럼 휩쓸고 내려와서 그 성을 초토화시켰다. 히브리 군대들은 혼란 중에 격퇴당했다. 그 국가는 정복당했다. 시드기야는 포로로 잡혔고, 그의 아들들은 그가 보는 데서 죽임을 당했다. 그 후에 그는 그의 비참한 백성들의 비명 소리와 그들의 집들을 태우고 있었던 화염의 포효 소리를 들으면서 예루살렘에서 포로로 잡혀갔다. 그의 눈은 눈두덩에서 빼내짐을 당했으며, 그는 바벨론에 도착해서 비참하게 죽었다. 185 이것이 불신과 불경건한 권면을 따른 데 대한 형벌이었다.

오늘날에도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있다. 그들에게 죄는 특별히 불쾌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백성들의 평강이 하나님의 기별자들의 견책과 경고들로 인해 불필요하게 깨뜨려지고 있다고 불평한다. 그들은 평탄하고 기만적인 가르침들을 사용하여 죄인들의 영혼들을 속여 치명적인 안락에 빠지게 만든다.

하나님의 종들은 자애롭고 동정 깊은 정신을 나타내고, 백성들을 다루는 데 있어서 그들이 어떤 사사로운 동기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과, 여호와의 이름으로 진노의 기별들을 전달하는 일을 즐기고 있지 않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백성들을 타락시키고 있는 죄들을 지적하는 일에 있어서 꽁무니를 빼서는 안된다. 또한 그들의 오류로부터 돌아서서 여호와께 순종하도록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해 분투하기를 그쳐서는 안된다.

죄를 덮어 가리우고 범죄자의 마음에 그것을 덜 괴롭게 보이도록 애쓰는 사람들은 거짓 선지자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며,이런 행동에는 하나님의 보응하시는 진노가 뒤따를 수도 있다는 것을 예상해야 할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방법들을 타락한 사람들의 희구에 맞추어 결코 조정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 거짓 선지자는 예레미야가 그의 혹심한 탄핵으로 백성들을 괴롭게 했다고 하여 정죄하였다. 그리고 그는 가난한 백성들에게 그들의 죄를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형벌의 위협을 당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그들에게 번영을 약속함으로써 그들을 안심시키려고 애썼다. 이런 방침은 백성들을 강퍅케 만들어 참 선지자의 권면을 저항하도록 만들었으며, 그에 대한 그들의 적의를 증폭시켰다.

하나님께서는 악행하는 자들에게 조금도 동정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그분의 백성의 죄들을 그럴싸하게 얼버무리거나, 그분께서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고 선언하셨는데도 불구하고 “평안하다 평안하다”고 외칠 자유를 아무에게도 주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기별을 전달하도록 보내신 종들에 대하여 반역을 선동하는 자들은 여호와의 말씀에 대하여 반역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신실한 견책이 필요함

186 나는 1875년 1월 5일, 나의 마지막 이상에서 주어진 바 다음의 증언을 1875년 버몬트 장막회의 예배들 사이에 나의 텐트에서 썼다. 이것은 1875년 1월 _____에서 있었던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뒤이은 여름 동안에 일어난 사태의 진전은 언뜻 보기에 가혹한 것처럼 보이는 이 증언을 충분히 정당화시켜 준다. 9월에 나는 그 증언의 몇 부분을 그 교회에 읽어 주었고, 위대한 사업이 우리의 활동으로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 교회와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이 비천한 사업에 대하여 그 증언을 주는 바이다.

오로지 하나님의 영께서만 다스리셔야 하는 곳을 어둠이 점점 더 장악해 가고 있다. 그러나 교역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그들이 어떤 부서에서 일하든지 개인적 노력과 개인적 책임의 필요성을 깨닫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들의 종사하고 있는 사업의 신성성을 느끼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들은 그것을 일반 사업(체)과 같은 수준으로 간주하고 있다.

자아를 희생하는 생활이 평화와 자유의 생활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많은 사람들의 삶 속에 이기심이 지배하고 있다. 그들 자신을 만족시키고, 주로 그들 자신의 이익을 구함으로써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조차도 행복을 얻는 데 있어서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다. 지극히 작은 임무에 충실치 못한 사람은 누구나 보다 더 큰 임무에 충실치 못하다. 자신에게 위임되어 있는 작은 임무들을 신실하게 수행하는 일을 태만히 한다면, 그는 자신이 더 큰 책임을 맡을 능력이 없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그 일에 전력 투구하고 있지 않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일편단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속한 의무들을 규정하고 그들의 책임의 충만한 중요성을 깨닫는 데는 빠르지만, 그들 자신의 것을 쉽게 인식하는 데는 실패한다. 개인적 충성과 각 개인의 책임감이 특별히 건강 기관[지금은 요양원]에, 그리고 기관과 교회와 학교에 필요된다. 만일 이들 기관들에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물어 보기 위해 돌이키지 말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하라고 지시하신 일이 무엇인지 들으려고 열렬히 귀를 기울인다면, 우리는 사업의 각 부서에서 큰 변화를 목격할 것이다. 187 각 사람의 마음의 언어가, “나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 그분의 음성에 순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사람도 내 대신 내 일을 해 줄 수 없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결코 나의 태만을 회복시켜 줄 수 없다”가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업이 전에 결코 본 적이 없었던 그런 방식으로 진척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영적인 나약함을 초래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행하기를 기다리면서 이처럼 행동을 억제하는 것이다. 자신의 정력을 보존하는 것은 그것을 줄어지게 하는 확실한 방법이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모든 종들로부터 절대적인 순종과 자원하는 복종을 요구하신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데 있어서는 머뭇거림이나 자아 방종이 조금이라도 있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와 벨리알 사이에는 일치가 없다. 하나님의 사업에 대한 얼마나 큰 헌신의 결여와 돌봄의 부족이 ______에 있었는지.

A의 마음은 하나님께 바쳐지지 않고 있다. 그는 모든 것을 주신 위대한 시여자께 그것에 대하여 회계하지 않으면 안될 역량들과 재능들을 가지고 있다. 그의 마음은 성별되지 않았고, 생애는 그의 공언에 부합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2년 이상이나 하나님의 신성한 사업과 밀접히 관련을 맺어 왔다. 얼마나 많은 빛을 그가 받았으며, 얼마나 많은 특권을 그가 누렸던가! 그는 견실한 그리스도인 품성을 계발시킬 수 있는 매우 드문 기회를 누려 왔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우시면서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에게 적용된다. “너도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았을 뻔 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눅 19:42). A여, 하나님의 보응이 그대를 위협하고 있다.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눅 19:44).

B는 동일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지만, 그처럼 철두철미하게 이기적이지는 않다. 둘 다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쾌락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행동은 그리스도인 생활과 전혀 일치되지 않는다. 그들은 안정감, 침착,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헌신이 부족하다. B에게 있어서 은혜의 역사는 너무도 한결같이 피상적이다. 그는 그리스도인 되기를 갈망하지만, 자아에 대한 승리를 유지하고 옳고 그른 것에 대한 그의 확신에 따라 행동하려고 분투 노력하지 않는다. 하나님께 가납될 수 있는 것은 한담이나 공허한 의도들이 아니라 행동이다.

A여, 그대는 사랑의 간청에서 뿐 아니라 견책, 권면, 그리고 경고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왔다. 188 그러나 듣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 1:22). 물결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무리들과 함께 호산나를 외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일상 생활의 고요 가운데서, 아무런 특별한 흥분이나 광적인 기쁨이 없을 때에, 그 때 참 그리스도교 신앙의 시험이 이르러 온다. 그대의 마음이 차가워지고, 그대의 열성이 줄어들고, 종교적 활동들이 싫어지는 것은 바로 그때이다.

그대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정말로 등한히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너희가 나의 행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 15:14)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부과된 조건이다. 이것이 사람의 품성을 입증하는 시험이다. 우리는 자주 느낌에 속으며, 감정은 결코 확실한 방위 수단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가변적이고 외부 환경의 영향을 받기 쉽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감각적인 인상들에 의존함으로써 현혹 당하고 있다. 참된 시금석은,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 여러분은 어떤 희생을 하고 있는가? 여러분은 어떤 승리를 얻고 있는가”이다. 이기적인 정신이 정복되고 임무를 등한히 하려는 시험이 물리쳐진바 되고 정욕이 굴복되고 그리스도의 뜻에 자원하는, 기쁨에 찬 순종을 드리는 것이 간헐적인 경건이나 정서적인 신앙보다 그대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훨씬 더 큰 증거들이다.

그대들 둘 모두는 견책을 싫어해 왔다. 그것은 그대의 마음 가운데 그대의 가장 좋은 친구이신 분에 대하여 불만과 불평을 항상 일으켜 왔다. 그분은 항상 그대에게 유익을 주려고 노력하고 계시며, 그대들이 존경해야 할 온갖 이유를 가지고 계신 분이시다. 그대들은 그분과 분리되고, 그분께서 그대들의 행동에 관하여 말하라고 그분의 종들에게 주신 말씀들에 반기를 듦으로써 하나님의 영을 근심시켜 왔다. 그대들은 이런 훈계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영을 배척해 왔고, 그것을 마음에서 멀리 했으며, 그대들의 행동 거지에 있어서 부주의하고 무관심하게 되어 버렸다.

A 형제여, 그대는 하나님께서 그대의 길에 비취도록 허락하신 큰 빛으로 축복을 받아 다년간 귀중한 경험들을 해 왔다. 나는 그대에 관하여 말하는 한 음성을 들었다. “이것은 열매 없는 나무다. 왜 이 열매 없는 가지들이,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나무가 차지할 수도 있는 공간에 그늘을 드리우는가? 그것을 찍어 버리라. 왜 땅만 버리느냐?” 그 때 나는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간청하시는 음성을 들었다. 189 “그것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살려 두라. 내가 그 뿌리 주위를 파고 그것을 전정(剪定)할 것이다. 한번 만 더 시험해 보자. 만일 그때에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그것을 찍어 버려도 좋다.” 열매 없는 나무에게 유예의 기간이 조금 더 허락되었다. 열매 없는 생명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도록 조금 더 긴 시간이 허락되었다. 주어진 기회들이 선용될까? 하나님의 영의 경고들이 유의될까? 그의 구속주께서 은혜스럽게 제공하신 그 구원을 경멸해 온 예루살렘에 관하여 주신 예수님의 말씀은 실질적으로 또한 그대에게도 주어진 것이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 23:37). 그리스도께서는 애원하셨고 또 초청하셨다. 그러나 그분의 사랑은 그가 구원하러 오신 백성들에게서 보답을 받지 못했다. 그대는 가련하고 스스로 속임을 당하고 눈멀어 버린 유대인들이 그들의 시대에 그러했던 것보다 지금 당신의 시대에 조금도 더 잘하고 있지 못하다. 그대는 그대의 복된 특권들과 기회들을 잘 증진시키고 그리스도인 품성을 온전케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대의 마음은 늘 반역적이었고, 그대는 참으로 개심하여 하나님의 요구 사항에 순종하면서 살기 위해 자신을 낮추려고 하지 않았다.

몇몇 사람들이 표출시켜 온 화해되지 못한 감정들과 불평들이 그대의 영혼 속에서 곪아터지고 있다. 그대가 감히 이런 취지로 명백하게 거리낌없이 털어놓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대가 수년 전에 떠났더라면, 그 기관을 위해서 그리고 관계된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훨씬 더 좋았을 것이다. 더 많은 빛을 가질수록, 더 큰 특권을 누릴수록, 그대는 더 적은 성실성과 의를 나타내 왔다. 그대의 마음은 육적이며, 그대는 하나님의 명백한 말씀을 등한히 해 왔다. 그대가 경고들과 권면들로 둘러싸이고, 하나님께서 이 사업 속에 계시며, 그분의 음성이 그대에게 말씀하시고 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는 엄숙한 견책을 경홀히 여기고 배척해 왔으며, 그대 자신의 이기적이고 고집스러운 길로 계속 갔다.

가끔 그대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여전히 그대는 자신의 비참한 영적 상태와 그대의 절대적인 위험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대는 계속적으로 넘어져 동일한 무관심과 이기심의 상태로 되돌아갔다. 그대의 회개는 철두철미한 개혁을 완성하는 데 있어서 충분하리 만큼 결코 깊지 않았다. 그대는 피상적인 일을 해 왔다. 그러나 그대가 하나님의 가납하심을 받도록 하는 데 필요한 전적인 변화가 없었다. 190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요 8:12)리라. 그러나 그대가 살고 있노라고 공언한 그리스도인 생활의 대부분의 기간을 통하여, 그대는 하늘과 연결되어 하나님의 영의 순결한 빛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어둠 속에서 행했다.

그대가 매일 주님과 교통하고 영혼들에 대한 사랑을 계발시킨다면, 그대는 자아를 벗어나고 주님의 포도원에서 열심히 일하는 일꾼이 될 것이다. 그대는 생애의 의무들을 신실히 행하는 것이 자아 사랑과 자아 방종으로부터 그대를 보호한다는 것을 인식할 것이다. 그대는 부지런하여 날마다 진보된 경험을 얻으려고 노력해 오지 않았다. 그대는 이 때에 어떤 중책을 맡을지라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대가 하려고 손 댄 모든 활동에 이기심의 표가 찍혀 있다. 그대는 제딴에는 지혜로웠지만, 다년간의 경험으로부터 지혜를 얻는 데 실패했다.

B는 헛살아 왔다. 그는 꾸준히 전진하여 은혜 안에서 자라날 수 있었지만, 그에게는 외양이, 내적 단장, 더 정확히 말해, 하나님께서 대단히 귀중히 여기시는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옷보다 중요한 듯 보였다. 기관에서 일을 하는 불신자들, 그대처럼 현대 진리의 빛을 받지 못한 불신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말하고 있는 그대들 중 어느 누구보다도 훨씬 더 충실하고 양심적이다. 그대가 그리스도와 함께 부지런히 모아들이고 있었다면, 이들 중 어떤 사람들은 진리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들의 생활은 그들에게 거쳐서 넘어지게 하는 돌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믿고 있긴 하지만 그들의 행실로 그분을 부인하는 자들보다 이 불신자들을 더 큰 동정과 은총으로 주목하고 계신다. 편리할 때는 제쳐놓았다가, 옷처럼 입고 벗는 그런 신앙은 그리스도의 종교가 아니라, 이 세상의 시험조차도 견디지 못할 가짜 신앙인 것이다.

참된 신앙(종교)은 우리의 말과 행동, 그리고 일상 생활의 모든 행위 가운데서 항상 명백히 드러날 것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 있어서 신앙은 결코 사업과 유리(遊離)되어서는 안된다. 그것들은 손을 맞잡고 가야 하며, 하나님의 계명은 세속적 문제들의 모든 세부 사항들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191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지식은 일상 생활의 모든 의무들에조차도 높은 품격을 주어야 하며, 우리로 사업에 게으르지 않고 정신에 있어서 열렬한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와 같은 신앙은 높은 성실 의식을 갖고 있는 비평적인 세상의 정밀한 조사를 견디어 낸다.

기관의 각 일꾼들은 자신을 하나님의 청지기로 간주하고, 정확성과 충실한 경계로 그의 일을 해야 한다. 그들의 끊임없는 질문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는가? 이것이 나의 구속주를 기쁘시게 할까?”가 되어야 한다. 성경적 종교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상에 섞이게 될 때까지 이성을 드높인다. 행동 하나 하나, 말 하나 하나, 그리고 우리 생활의 한순간 한순간은 우리의 거룩한 믿음의 흔적을 지녀야 한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다. 그러므로 우리는 게으름을 피우거나 하나님과 반대되는 목적으로, 쾌락에 빠져 살 시간이 없다.

주께서는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실 것이다. 이러한 호기(好機)의 때에 그분의 자비와 축복들을 등한히 하는 사람들은 뚫을 수 없는 암흑을 자신들에게 초래할 것이며, 하나님의 진노의 후보자들이 될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는 그들의 죄들과 죄악들로 인해 전능자의 저주로 침을 받았다. 우리 시대에 하나님의 자비를 그와 똑같이 오용하고 그분의 경고들을 경시해 온 사람들이 있다. 심판 때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성별되지 않은 생애로 그분을 욕되게 하는 사람들보다 소돔과 고모라가 더 견디기 쉬울 것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그분의 심판을 그들에게 내리실 때 당할 두려운 보응을 그들 자신에게 쌓고 있는 것이다.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가 누려 온 빛과 특권들을 받지 못했던 죄인들은 무지했기 때문에, 그분의 사업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고 그분을 사랑하고 섬기노라고 공언하면서도 불충실해 왔던 사람들보다 하나님 앞에서 훨씬 더 유리한 입장에 있게 될 것이다. 그 산[감람산] 상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눈물은 보답을 받지 못한 그분의 사랑과, 그분의 선택된 백성들의 배은망덕 때문에 그분의 고뇌하는, 상한 심령에서 나왔다. 그분은 그들이 자초하기로 작정한 듯이 보인 운명에서 그들을 구하시려고 지칠 줄 모르고 애쓰셨건만, 그들은 그분의 자비를 거절하였고 ‘권고하시는 날’을 알지 못했다. 192 그들의 특권의 날이 끝나 가고 있었지만, 죄로 인해 너무 눈이 멀어 있어서 그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였다.

예수님은 세상 끝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를 내려다 보셨다. 그리고 그분의 사랑과 훈계를 이기심과 등한히 함으로 되돌린 모든 사람들과, 그렇게 그분께 되갚을 사람들의 경우들을 뚫어지게 바라보시면서 그들이 그들의 권고 받는 날을 알지 못하였다고 선언하시면서 그들에게 그러한 엄숙한 말씀들을 하셨다. 유대인들은 보응의 검은 구름들을 자신들 주위로 모아들이고 있었다. 오늘날도 그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선용하지 못한 기회들, 경멸 당한 예수님의 권면들과 사랑들, 그리고 진리를 말한 것 때문에 멸시를 받고 미움을 받은 하나님의 종들의 연고로, 자신들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끌어들이고 있다.

이 세상에서 ____에서처럼 큰 빛이 주어진 곳은 없다. 고대의 예루살렘조차도 그 백성들이 걸어갈 길에 비취는 하늘의 빛 줄기로 그보다 더 높게 은혜를 받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충실하게 순종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밤낮으로 섬기면서 충만한 빛의 광명 가운데 행하는 데 실패해 왔다. 병약하고, 위축되어 버린 신앙은 여호와의 영의 계시된 빛을 따르기를 등한히 한 결과이다. 에너지와 사랑은 우리가 그것들을 활용할 때 증가하며, 그리스도인 덕성들은 세심하게 계발시킴으로써만 발전시킬 수 있다.

가정 훈육의 필요성

______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상태는 참으로 우려할 만하다. 특별히 대다수의 청년들의 경우가 그렇다. 가족들은 그들이 교회에 부담을 지우지 않고 교회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 장소로 이주해 왔다. 상당수의 교인들에게 있어서 그 결과는 아주 정반대였다. 그들의 자녀들을 적절하게 훈육시키는 일에 있어서의 부모들의 등한은 다수의 가정에서 수다한 악을 유발시키는 근원이 되어 왔다. 청년들은 마땅하리 만큼 제지를 받지 않아 왔다. 부모들은 이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의 지시를 따르기를 등한히 해 왔으며, 자녀들이 통제의 고삐를 그들의 손에 쥐고 흔들어 왔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그들은 부모의 권위 아래 있기보다는 부모들을 다스리는 데 대체로 성공을 거두어 왔다.

193 부모들은 그들을 전적으로 속이는 일에 성공해 온, 그들의 자녀들의 참 상태를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자녀들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사람들은 타인이 그들을 교정할 목적으로 그들을 통제하거나 그들의 결점들을 지적하려고 할 때 달가워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업은 부모들이 자행자지하고 훈육을 받지 못한 아이들을 이 큰 교회로 데려옴으로써 크게 방해를 받았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교양과 훈계로 그들의 자녀들을 양육해야 할 그들의 책임을 계속 태만히 하면서 살고 있다. 그러나 바로 이 사람들이 _____에 있는 청년들의 사악함에 관하여 할 말이 제일 많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실상은 그들이 교제해 온 젊은이들을 타락시킨 것은 바로 그들의 자녀들의 그릇된 모본과 악한 영향인데도 말이다.

이런 가족들은 이 교회에 가장 무거운 부담을 가져다 주었다. 그들은 그릇된 사상들을 가지고 왔다. 그들은 교회는 흠잡을 데가 없어야 하며, 부모로서 그들이 통제하거나 정도를 넘지 않게 만들 수 없는 바로 그 자녀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 책임을 져야 한다고 기대하는 듯하다. 그들은 그들을 교회에 떠넘김으로써, 엄청난, 압도적인 부담을 교회에 지운다. 그들은 그들의 이기심을 버리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들의 생활에서 그들이 저지르고 있는 실수를 회복하려고 노력하려고 한다면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일은 조금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팔짱을 끼고 멀리 서서 교회 내의 영성의 부족을 비평하는 데 빠르다. 그 교회의 가장 큰 재앙은 그 교인들 가운데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그들­무거운 짐이 되는 사람들, 마음과 생애가 성별되지 않고, 그들의 행위가 한결같이 그릇된 사람들­과 같기 때문이다. _____에 소재한 기관들은 너무도 많은 병자들과 생명이 없는 시체들을 떠메고 다녔기 때문에 번영과 영적인 활력을 얻을 수 없었다.

짐지는 자들을 비평함

교회는 이기심 없는 그리스도의 일꾼들이 부족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체로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홀로 서기에는 너무 약한 모든 사람들이 _____에서 떠나 있는다면, 그 곳에는 훨씬 더 순수한 영적 분위기가 감돌 것이다. 194 다른 사람들의 실패와 결점의 껍질을 먹고 살며, 이웃의 태만과 단점의 독기(毒氣)를 자신에게로 모아들여서 [썩은 것을 먹는] 교회 청소부가 되는 사람들은, 그들이 속해 있는 사회에 유익이 되지 않고, 사실상 그들이 신세를 지고 있는 그 공동체에 짐이 된다.

교회는 이러한 짐이 아니라 진정한 일꾼, 흠을 찾는 자가 아니라 시온을 건설하는 자들을 필요로 한다. 사업의 위대한 중심부에 선교사들이 참으로 필요되고 있다. 즉, 요새를 지키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업의 머리에 세우신 사람들의 명예를 보호하는 데 있어서 강철처럼 진실되고, 필요하다면 그들의 이익과 생명까지라도 희생하면서 사업의 모든 부서에서 그것을 떠받치는 일에 혼신의 힘을 다하는 그런 선교사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나는, 진리를 그들의 심령 속 깊이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살피시는 시험을 감당할 수 있는 자들이 있다 해도 극히 소수임을 보았다. 진리를 꼭 붙들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만, 진리가 그들을 붙들어 마음을 변화시키고 모든 이기심에서 그들을 깨끗케 하지는 않고 있다. 옛날의 교인들 중 많은 이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사업을 돕기 위해 _____에 온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이기심과 헌신하지 못한 생애 때문에 그 사업에 방해가 되어 온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두려운 결산 보고를 해야 한다.

신앙을 공언하는 자들의 품성이 그들의 공언과 일치하지 않으면 구원하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_____에 있는 그분의 백성들에게 은혜롭게 큰 빛을 주셨다. 그러나 사단은 성취시켜야 할 그의 일이 있으므로, 하나님의 사업의 대심장부에서 그의 힘을 가장 강력하게 발휘하고 있다. 그는 이기적이고 헌신하지 않은 남녀들을 붙들어서 신실한 하나님의 종들을 살피고, 그들의 말과 행동과 동기에 의심을 나타내고, 그들의 책망과 경고에 흠을 찾고 불평하는 파수꾼을 만든다. 그들을 통하여 사단은 의심과 질투를 일으키고, 신실한 자들의 용기를 약화시키고, 성화되지 않은 자들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의 종들의 수고를 헛되게 하고자 노력한다.

사단은 훈련받지 못한 자녀들을 통하여 그 부모들의 마음에 큰 능력을 발휘해 왔다. 어버이로서의 직무 태만의 죄가, 안식일을 준수하는 많은 부모들에게서 뚜렷하게 보인다. 195 험담과 고자질의 정신은, 불화와 분쟁의 씨를 심고, 친구를 이간하고, 우리의 신조의 진실성을 믿는 많은 사람들의 믿음을 허물어뜨리고자 하는 사단의 특별한 계책 중 하나이다. 형제 자매들은 타인들­특별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책망과 경고의 기별을 위축되지 않고 전한 자들­이 갖고 있다고 생각되는 결함과 잘못을 너무 쉽게 이야기한다.

이 불평 분자의 자녀들은 귀를 쫑긋 세워 듣고, 불만의 독을 받아들인다. 그와 같이 하여 부모들은 자녀들의 마음에 접촉할 수 있는 통로를 부지중에 막아 버리고 있다. 얼마나 많은 가정에서 그들의 매일의 음식을 의심과 의문으로 양념을 삼고 있는가. 그들은 친구들의 품성을 썰어서 맛좋은 후식으로 내놓는다. 비방의 귀한 부스러기들이 어른들 뿐 아니라 자녀들도 촌평을 할 수 있게끔 식탁을 따라 돌려진다. 이런 일 때문에 하나님께서 욕을 당하신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종들을 비방하는 자들에 의해 모욕과 능욕을 당하신다.

하나님의 택한 종들을 떠받쳐 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어떤 사람들에 의해, 하나님의 종들의 이름이 불경스럽게, 어떤 경우에는 분명하게 경멸적으로 취급되어 왔다. 자녀들은 하나님의 종들의 엄숙한 책망과 경고와 관련하여 부모들의 불경스러운 말을 놓치지 않고 들어왔다. 그들은 이따금 그들이 들어왔던 조소 어린 농담과 남을 깎아 내리는 말들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 경향은 그들의 마음속에서 거룩하고 영원한 관심사를 세상의 통속적인 것과 동일한 위치로 끌어내리는 그런 것이었다. 어린아이 시절부터 자녀들의 불신을 조장하는 이러한 부모들의 처사는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가! 그리하여 자녀들은 불경스럽게 되고, 죄에 대한 하늘의 책망에 반항하도록 가르침을 받는다. 이러한 악이 존재한 곳에서는 영적 타락이 성행하지 않을 수 없다. 원수에 의해 눈이 멀게 된 바로 이런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그들의 자녀가 왜 그토록 성경의 진리에 불신을 품고 의심하는 경향으로 기우는지 이상히 여긴다. 그들은 자녀들을 도덕적·종교적 영향으로 감화시키는 것이 왜 이다지도 어려울까 의아해 한다. 196 영적 통찰력을 갖게 된다면, 그들은 이와 같은 통탄할 만한 형편은 바로 그들 스스로가 가정에서 끼친 감화의 결과, 곧 그들의 질투와 불신의 열매임을 즉시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가정 안에서 많은 불신자들이 양성된다.

하나님의 사업의 기관과 관련되어 중책을 맡은 사람들의 결점에 대해서, 그것이 사실이든 허구이든, 논평하고 거듭 이야기하는 데서 특별한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이미 성취된 훌륭한 일들과, 사업을 위한 끈질긴 수고와, 불굴의 헌신으로 얻은 유익은 간과한다. 그리고 그들의 주의를 어떤 명백한 실수나, 이미 이루어져 결과가 뒤따르기는 했지만, 그들이 볼 때 좀 더 좋은 방식으로 그리고 더 훌륭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어떤 문제들에 그들의 관심을 집중시킨다. 그러나 사실상 그 일이 그들에게 맡겨졌더라면, 그 일에 뒤따르는 좌절로 인해 아예 움직이기조차 거부했거나, 아니면 하나님의 섭리의 인도를 따라 그 일을 행한 자들보다 더 무분별하게 그 일을 경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제어하기 힘든 말쟁이들은 마치 이끼가 바위의 거친 곳에 달라붙듯이, 그 사업의 보다 불유쾌한 측면들에 주의를 집중할 것이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실패와 결점을 늘 이야기함으로 영적 난쟁이가 된다. 그들은 선하고 고상한 행동, 무아의 활동, 참된 영웅, 자아 희생을 분별할 도덕적 능력이 없다. 그들은 그들의 생애와 희망에 있어서 보다 고귀하고 고결해지고, 그들의 사상과 계획에 있어서 보다 관대하고 광범위하게 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 생애를 특징지어야 할 사랑을 계발하지 않는다. 그들은 매일 퇴보하며, 편견과 견해에 있어서 점점 더 편협되어 가고 있다. 쩨쩨함이 그들의 요소이며, 그들을 두르고 있는 분위기는 화평과 행복에 해를 준다.

_____의 큰 죄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종들을 통하여 그들에게 주신 빛을 간직하기를 태만히 한 죄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보내신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요 13:20). 하나님의 종들의 기별을 배척하는 자들은 아들 뿐 아니라 아버지도 배척하는 것임이 여기 분명히 드러나 있다.

197 다시 그분께서 말씀하신다.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 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눅 10:10-16).

이 얼마나 두렵도록 엄숙한 말씀인가! 하나님께서 그분의 비천한 도구들을 통하여 전달하시는 경고들과 훈계들을 배척하는 사람들로 발견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왜냐하면 그분의 사자들이 전달한 빛을 경시하는 것은 영광의 왕이신 세상의 구주를 경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무서운 위험을 무릅쓰고 있으며, 그같이 함으로 하나님의 정죄를 자초하고 있다. 전능자께서는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실 것이며, 그분의 음성이 형벌 없이 무시되도록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다.

느슨한 훈육의 해악들

C 형제와 D 형제는 그들이 가져왔어야 할 도움을 _______에 있는 사업에 가져오지 못했다. 그들이 교회와 기관 모두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겸비하게 덕행을 유지하고 보존했었더라면, 그들은 하나님의 사업에 큰 축복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자녀들을 훈련하고 훈육하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책임을 느꼈더라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훌륭한 모본이 되었을 것이다. 이 자녀들은 그들의 정신적 및 도덕적 능력들이 각기 필수적인 훈련을 받아 균형지게 발전될 수 있도록 학교에서 습득되는 교육뿐만 아니라 가정의 훈련 또한 필요했다. 균형이 잘 잡힌 품성을 형성하도록 신체적·정신적 및 영적 재능들이 계발되어야 한다.

198 이 일을 성공적으로 이루려면 자녀들을 지켜보고, 수호하고, 훈육해야 한다. 바른 방식으로 젊은이들을 꼴 짓는 데는 기술과 끈기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떤 악한 경향들은 조심스럽게 제어되고 부드럽게 견책되어야 한다. 마음은 바른 것을 지지하도록 자극을 받아야 한다. 아이들은 자아를 다스리는 일을 시도해 보도록 독려 받아야 하며, 이 모든 일은 사려 깊게 행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얻으려고 했던 목적이 좌절되고 만다.

부모들이 이렇게 묻는 것은 당연하다.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하나님께서만이 그들의 능력(충만)이 되신다. 그들이 하나님의 도움이나 권면을 구하지 않고 그분을 논외로 젖혀놓는다면, 그들의 임무는 참으로 가망이 없다. 그러나 그들 편에서의 기도와 성경 연구, 그리고 열렬한 열정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이런 중요한 임무를 성공적으로 훌륭하게 해내고, 그들이 투자한 시간과 돌봄에 대하여 100배의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외관에 관한 한담과 염려는, 그들에게 위탁된 가장 신성한 책임을 다하도록 필요한 지혜와 능력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데 바쳐졌어야 할 귀중한 시간을 빼앗아가 버렸다.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가진 부모들은 그들의 환경을 잘 조정하여 자녀들에게 바른 품성을 형성시켜 주는 데 유리하게 되도록 만들 것이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거의 항상 그들에게 있다. 지혜의 근원은 열려 있으며, 그곳에서 그들은 이 방면에 필요되는 온갖 지식을 끌어올 수 있다.

교훈이 풍부한 책, 성경이 그들의 교과서가 되어야 한다. 그들이 자녀들을 그 법도에 따라 훈련시킨다면 그들은 젊은이들의 발을 바른 길에 놓을 뿐 아니라 그들이 지고 있는 가장 거룩한 의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자신들을 훈련시키는 것이다. 어린이들의 마음에 찍혀진 인상들은 지우기가 어렵다. 그럴진대 이런 인상들이 바른 종류의 것이 되게 하고, 청년들의 유연(柔軟)한 기능들이 바른 방향으로 굽어지도록 만드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어떤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을 _____으로 데리고 와서, 이제 후로는 그들의 도덕적 및 종교적 훈련에 대한 모든 책임에서 물러난 양 그들을 교회에 떨어뜨려 놓는다. B 부부와 D 부부는 자신들을 올바르게 단속하는 일에 있어서 뿐 아니라 그들의 자녀들을 훈육시키는 데 있어서도 결정적으로 실패해 왔다. 199 그들의 자녀들은 그들이 마음내키는 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자랑으로 여겨 왔다. 그들은 가정의 책임들에서 면제되어 왔고, 제지를 무시해 왔다. 유용성의 생애는 그들에게는 고된 생활처럼 보인다. 가정에서의 느슨한 통제는 그들을 어떤 직임에도 부적합한 인물로 만들었고, 그 자연적 결과로서 그들은 학교의 훈육에 반항해 왔다. 부모들은 그들의 불평을 받아들이고 또 신용했다. 부모들은 자녀들의 상상적인 어려움들에 동감을 표시함으로써 자녀들의 비행을 고무시켜 왔다. 이들 부모들은 많은 경우에 있어서 그들의 속이는 자녀들이 그들을 속여서 안겨 주는 뻔한 거짓말을 믿어 왔다. 이러한 몇몇 자행자지하고 속이는 자녀들의 경우들은 학교에서 모든 권위를 무너뜨리고 우리 교회의 청년들을 타락시키는 데 있어서 많은 일을 할 것이다.

하늘에는 완전한 질서, 완전한 조화와 일치가 있다. 부모들이 여기서 그들의 자녀들을 올바른 권위에 복종하도록 만들기를 그처럼 게을리 한다면, 그들의 자녀들이 평화와 조화의 세상에서 거룩한 천사들과 동행하기에 적합하다고 간주되기를 어떻게 바랄 수 있을까? 비행을 저지르는 자녀들을 두둔해 주는, 멋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는 부모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사회에 불화를 가져오고 학교와 교회의 모두의 권위를 파괴시킬 요인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들은 결코 전에 없는 주의 깊은 돌봄과 지도가 필요하다. 이는 사단이 그들의 마음과 정신을 지배하고 하나님의 영을 몰아내기 위하여 분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 시대 청년들의 두려운 상태는 우리가 마지막 날들에 살고 있다는 가장 강력한 징조의 하나가 되지만, 많은 사람들의 파멸의 원인을 추적해 올라가면 그 직접적인 원인은 직접적으로 부모들의 그릇된 관리에 있음이 밝혀질 것이다. 견책에 대한 불평의 정신이 뿌리를 내려 왔으며, 반항의 열매를 맺히고 있다. 부모들이 그들의 자녀들이 계발시키고 있는 품성에 대하여 기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자녀들의 인격을 그렇게 만들고 있는 실수들을 보지 못하고 있다.

엘리는 그의 아들들을 질책하였지만, 그들을 제지하는 일을 신속히 하지 않았다. 안락을 사랑하는, 이 애정 많은 아버지는 그의 태만에 보응이 뒤따를 것이라는 하나님의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로부터 그 혐오스러운 악을 일거에 제거시키는 일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200 그는 친히 신속한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현저한 순복의 태도로 이렇게 말했다. “이는 여호와시니 선하신 소견대로 하실 것이니라”(삼상 3:18). 만일 그가 자신의 태만의 충만한 죄책에 대해 눈을 떴었더라면, 이스라엘은 패배의 굴욕을 면했을 것이며, 하나님의 궤는 원수의 수중에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죄악과 장난하는 태만과,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가정들 내에서 해를 끼치고 있는 그것들을 탐지해 내는 데 느린 무감각을 정죄하신다. 그분은 부모들에게 그들의 자손들의 결점과 어리석음들에 대하여 큰 책임을 물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의 아들들뿐 아니라 엘리 자신에게도 당신의 저주를 내리셨다. 그리고 이러한 두려운 사례는 오늘날의 부모들에게 경고가 되어야 한다.

나는 우리 청년들의 위험한 상황을 바라보고, 또한 부모들이 그들의 복지에 얼마나 무관심한지 내게 보여진 바 되었을 때, 내 마음은 아프고 용기를 잃었다. 천사들은 걱정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이 청년들은 세상 속으로, 그리고 사단의 수중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감미로운 영향에 덜 민감해지고 있으며, 더욱 담대해지고 방약 무도해지고, 영원한 관심사들에 대하여 점점 더 무시하는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나는 사단이 하나님의 선택된 자들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의 가정 내에 그의 깃발을 꽂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빛 가운데 행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적의 검은 깃발과 그리스도의 피묻은 군기를 식별할 수 있어야 한다.

어린이들은 법도와 모본으로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부모들은 두려움과 떨림으로 그들의 중대한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능력과 지도를 간구하는 열렬한 기도가 드려져야 한다. 많은 가정에서 거의 유아기 동안에 허영과 이기심의 씨가 어린이들의 마음 밭에 뿌려진다. 그들의 귀여운 몇 마디 말들과 행동들이 그들이 있는 데서 칭찬되고 찬양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과장되어 되풀이된다. 어린이들은 이것을 주목하고 자아 존대로 의기양양해진다. 그들은 감히 대화를 가로막으며 건방지고 뻔뻔스러워진다. 아첨과 멋대로 하도록 두는 것은 그들의 허영과 외고집을 기른다. 그리하여 마침내 가장 어린 것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포함된 전 가정을 다스리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되어 버린다.

201 이런 종류의 훈련으로 형성된 기질은 그 아이가 성숙된 판단력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해도 버려지지 않는다. 그것은 그의 성장과 더불어 자라나고, 아기 때는 귀엽게 보였을 수도 있었던 것이 성인 남녀 때는 천박하고 사악스럽게 된다. 그들은 그들의 동료들을 다스리려고 애쓰며, 만일 어떤 사람이 그들의 바람에 굴복하기를 거절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학대를 받고 모욕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된 것은 그들이 인생의 고난과 수고들을 지는 데 필수적인 자아 부정을 배우지 못하고, 어린 시절에 멋대로 하도록 버려진 바 되어 해(害)를 입었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흔히 그들의 어린 자녀들의 응석을 받아 주고 제멋대로 하게 놔둔다. 왜냐하면 그런 식으로 그들을 다루기가 훨씬 쉬워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로 제멋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그들의 가슴에서 대단히 강력하게 솟구치는, 제멋대로 하고 싶어하는 경향들을 제어하는 것보다 훨씬 더 쉬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방침은 겁쟁이 방침이다. 이와 같이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사악한 처사이다. 왜냐하면 제어되지 못한 경향이 더욱 굳어져서 절대적인 악덕이 되어 버린 이런 자녀들이, 그들 자신들과 그들의 가족에게 치욕과 불명예를 가져올 때가 이르러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난관과 환난들을 견딜 만큼 강하게 되지 못한 채, 삶의 시련들을 대처할 준비가 갖추어지지 않은 채 분주한 생애에 들어간다. 성미가 급하고 건방지고, 수양이 없는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그들의 의지에 무릎 꿇리려고 애쓴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못할 때는 그들 자신이 세상에 의해 학대를 받는다고 간주하고, 세상에 대하여 등을 돌린다.

그것이 선한 것이든 나쁜 것이든, 어린 시절에 배운 공과들은 무위로 돌아가지 않는다. 품성은 선을 위해서건 악을 위해서건 청년기에 계발된다. 가정에서는 칭찬과 거짓된 아첨이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각자는 자기 실력으로 선다. 응석받이로 자란 사람들, 그들에게 가정의 모든 권위가 굴복되었던 사람들은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어쩔 수 없이 굴복하지 않을 수 없음으로 해서 굴욕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은 심지어 그때에 이러한 삶의 실제적 공과들로 말미암아 그들의 참된 위치에 대한 가르침을 받는다. 좌절, 실망, 그리고 그들의 상관들로부터 듣는 솔직한 말들을 통하여 그들은 자주 그들의 참된 수준을 발견하며, 그들의 바른 위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도록 낮춰짐을 당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이 통과하기에는 혹독하고 또 불필요한 고초이다. 이런 일은 그들이 어린 시절에 바른 훈육을 받았더라면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202 훈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의 대다수는 세상과는 엇갈린 채 인생을 살아가며 그들이 성공했어야 할 곳에서 실패자가 되고 만다. 그들은 세상이 그들에게 아첨하거나 비위를 맞추지 않기 때문에 세상이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다고 점점 더 생각하게 되며, 세상에 대하여 원한을 품음으로써 복수를 하고 세상에 공공연히 반항을 한다. 이따금 그렇게 할 마음은 없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짐짓 겸비한 척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의 천성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들의 참된 품성은 조만간 확실히 드러나 버린다.

가정을 꾸리게 되면 이런 사람들은 가정에서 전제적인 통치자가 되며, 외부 세계에는 부분적으로 감추지 않을 수 없었던 이기적이며 불합리한 성미를 드러낸다. 그들의 부양 가족들은 그들의 초기 훈육의 온갖 잘못들을 극도로 느낀다. 어찌하여 부모들이 그들의 자녀들을 이런 방식으로 가르쳐서 그들이 그들과 접촉하게 되는 사람들과 불화하게 만들려고 하는가?

그들의 종교적인 경험은 어린 시절에 받은 교육에 의해 꼴지어진다. 교회의 번영에 대단히 위험할 뿐 아니라, 불신자들로 하여금 걸려 넘어져서 의심과 불만을 갖고 돌이켜 떠나게 만드는 서글픈 시련들은, 어린 시절 부모가 멋대로 하게 내버려둔 데서 생긴 소산, 즉 정복되지 못한 반역적인 정신에서 대체로 일어난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지성이 정의를 위하도록 쉽게 영향을 받고 정다운 어머니의 의지에 굴복될 수 있을 때인 어린 시절에 제어할 수 있었던, 급하게 일어나는 격정의 영향 아래서 얼마나 많은 생애들이 파멸되며, 얼마나 많은 범죄들이 저질러지는가. 무능한 자녀 훈육이 엄청난 양의 도덕적 비참함의 기초에 놓여 있다.

제멋대로 하도록 내버려둔 어린이들은 행복하지 않다. 정복되지 못한 가슴은 그 속에 안식과 만족의 요소들을 갖고 있지 않다. 지성과 마음은 훈육을 받아야 하며, 품성이 우리 존재를 다스리는 현명한 법칙들과 조화를 이루도록 적절한 제지 아래 두어야 한다. 불안정과 불만족은 방종과 이기심의 결과이다. 마음의 토양은 정원의 그것과 같이, 귀한 꽃씨들이 거기 심기어지고 돌봄과 재배를 받지 않는 한 잡초와 가시덤불을 낼 것이다. 203 가시적인 자연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영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__________의 청년들은 깜짝 놀랄 만한 상태에 처해 있다. 교회의 어떤사람들이, 중책을 맡고 있는 사람들에 관하여 부담을 느끼고 견책에 맞서서 흠을 찾고, 불평을 해대고, 그들의 의심을 넌지시 비추고, 타인들의 일들에 대하여 한담하는 동안, 그들 자신의 영혼들은 어둠에 둘러싸였고, 그들의 자녀들은 그들의 부모들에게 작용하고 있는 정신으로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기질은 모든 제지와 권위를 파괴시켜 버릴 것 같다. 하나님은 그들의 돌봄을 받고 있는 청년들의 악의와 반역에 대하여 이들 부모들에게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사단은 그의 계획에서 놀랄만하게 성공을 거두어 왔다. 경험 있는 남성들, 곧 그들의 행동이 반대를 받을 때 완고한 반항적 태도를 나타내는 가장들은 그들이 자신들을 제어할 수 없고, 또 그렇게 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들이 그들의 발걸음을 따르는 자녀들, 부모 자신이 교회와 그들의 소속 기관의 권위에 반기를 들고 있듯이 그들의 권위와 그 밖의 모든 다른 제지에 반기를 드는 그들의 자녀들을 통제하는 데 성공할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를 믿노라고 하는 이런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항복하여 사단의 수중에 들어가 그의 도구가 되어 버렸다. 그들은 그들의 반항과 끊임없는 불만족을 드러냄으로써 진리에 적대적이 되도록 영혼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그들은 의를 공언하면서도 전능자에게 정면으로 반항하고 있으며, 그들의 죄의 흉악성을 그들 자신이 채 알기도 전에 그들은 대적(對敵)의 목적을 성취해 버린다. 인상이 끼쳐졌고, 어두움의 그림자가 던져졌고, 사단의 화살들이 그들의 표적을 발견했다. 진실로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졌다. 불신이 살금살금 기어 들어와 진리를 전적으로 받아들였을 사람들의 마음을 단단히 장악한다.

그러는 동안, 사단을 위하는 이들 발작적(發作的)인 일꾼들은 회의주의로 흘러 떠내려간 사람들, 견책이나 간청에 꿈쩍도 하지 않는 사람들을 순진하게 바라본다. 이렇게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그들 자신들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을 그런 불신 가운데로 더 깊이 빠져 들어간 반면, 그들 자신은 그들과 비교할 때 그들은 덕이 있고 의롭다고 자위한다. 204 그들은 이런 슬픈 경우들이 그들 자신의 재갈 물리지 않은 혀들과 사악한 반역의 결과이며, 시험받은 자들이 그들의 악한 영향을 통해서 타락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 어려움은 그들이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무질서와 불신의 씨앗들을 뿌렸다.

어떤 가정도 그들의 부모의 통제를 벗어난 자녀들을 ____로 데려 오는 일에 있어서 정당화 될 수 없다. 만일 그들의 부모들이 자녀들을 가르치고 훈육하는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해 왔다면 ______은 그들이 있을 곳이 못된다. 그들은 그 곳의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평화와 번영이 흘러 넘쳐야 할 곳에 불화를 가져오는 수단이 될 뿐이다. 이런 부모들은 ____에 있는 교회에 그들의 자녀들을 감히 떠맡기려고 하기 전에, 그들이 등한히 해 온 일, 즉 그들의 자녀들을 제어하고 훈련시키는 일에 착수하도록 하라.

많은 사람들이 엘리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자녀들에 대하여 태만의 죄를 범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형벌이 그에게 내린 것처럼 그들에게도 확실히 내릴 것이다. E 형제의 경우가 현저한 예이다. 하나님의 손이 그분의 징벌의 진노로서 그의 자녀들 뿐 아니라 그들 자신들에게도 뻗쳐졌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하건만, 그 훈계는 짓밟힘을 당해 왔다. 경고가 그에게 주어지고, 견책이 가해졌건만, 그 모든 것이 유의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에게 저주가 떨어졌다. 자녀 교육을 등한히 하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그 결과로 자녀들이 잃어버림을 당할 뿐 아니라, 그들의 신성한 책임에 대한 모든 의식을 상실할 만큼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떠나간 부모들 자신이 영생에 관하여 매우 위험한 입장에 선다.

맹신적이고 멋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는 부모들이여, 나로 하여금 반역적인 아들을 다루는 데 있어서 성경의 지시들을 그대의 교육을 위하여 제시하게 해달라.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 아비의 말이나 그 어미의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부모가 징책하여도 듣지 아니하거든 그 부모가 그를 잡아가지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방탕하여 술에 잠긴 자라 하거든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라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신 21:18-21).

205 기관과 관계가 있는 젊은이와 노인들은 모두, 그들의 영향이 기관이 계획하고 있는 목적에 정면으로 배치되게 사용되지 않도록 면밀한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 만일 하나님과 진리로부터 떠나가게 하는 그런 성격의 영향력을 끼치는 어떤 사람들이 채용된다면, 그들을 해고시키는 데 있어서 한 순간의 의심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즉시 기관에서 분리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분과 함께 모아들이는 대신에 그분으로부터 흩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실상 사단의 종들이다.

기관과 관련된 젊은이 중에 부모의 권위를 존중하지 않고 가정에서 제멋대로 하고, 권면과 제지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하나님의 저주가 그들에게 내릴 것이다. 그들이 그곳에서 계속 일을 하고 그곳에서 접촉하게 되는 젊은이들을 나쁜 길로 이끌 기회를 더 이상 제공한다면, 그 저주는 그들에게 뿐만 아니라 기관에도 머물 것이다. 기관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사람들은 그곳에 두루 퍼진 영향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하며, 만일 그들이 불복종하고 회개하지 않는 자들의 행동에 대하여 무관심 한다면, 그들은 그들의 죄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

_____에서 죄악을 은폐하는 일이 있어 왔다. 하나님은 일들이 다른 방식으로 행해지기를 요청하신다. 그분의 사업에 관련된 청년들은 엄선된 자들이어야 하며, 하나님의 사업과 연관됨으로써 자신이 계발되고, 세련되고 고상하게 될 그런 자들이어야 한다. 신실한 민병(독립 전쟁 때 언제라도 응소 준비가 되어 있었던 민병)들이 온갖 의무의 직임에 필요된다. 특별히 사업의 큰 심장부에서 그러하다. 잠자지 않는 파수병들처럼, 진리를 공언하는 사람들은 기관에서 사업의 이익을 수호해야 한다. 그들은 영적 오염으로부터 자신과 서로를 신성하게 지켜야 한다.

독립의 정신을 받아들이고, 모든 일을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려고 생각하면서 우리 학교에 학생으로서 ______에 온 자들의 그릇된 생각을 신속하게 일깨워 주어야 하며, 그들을 적절한 규율 아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특별히 ___에 거주하는 청년들은 그들의 성실과 도덕성을 지키도록 엄한 규칙들 아래 두어야 한다. 206 그들이 이러한 규제에 굴복하기를 거절하면 그들을 퇴학시켜, 그릇된 모본을 보임으로 그들이 타락시키고 있는 자들과의 교제를 끊도록 해야 한다.

멀리서 사는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을 ________에서 교육받도록 보내면서, 그들이 그곳에서 올바른 도덕적 훈련을 받고 그릇된 영향에 노출되지 않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우리 학교의 도덕적 분위기가 정화되어야 하는 것은 이들 우리 학교의 보호자들에게는 당연한 것이다. ____에 있는 어떤 부류의 청년 남녀들 가운데 예절의 부족과 엄격한 덕성에 대한 무시가 자라나고 있다. 이들 중 어떤 이들은 도덕성 등급이 낮으며, 먼 곳에서 그곳에 보내져서 부모의 조언과 보호의 이점을 갖고 있지 않는 어린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들은 즉시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데, 이는 그렇게 하는 것은 심히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________에 있는 어떤 청년들의 영향은 풍기를 문란케 하고 있다. 그들은 독립적으로 보이고 그들의 부모의 권위에 대하여 무시를 나타내는 것이 칭찬 받을 만한 일로 생각하는 듯하다. 바울은 다음과 같은 말로 이런 부류의 청년들에 대하여 충실한 묘사를 하고 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딤후 3:1-4).

청년들에게 끼치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의 영향은 많은 해를 끼치고 있다. 그들의 대화와 모본은 말할 수 없이 천하고 저열하다. 도덕성이 확립되고 고상한 품격을 가진 청년들은 그들과의 교제에 아무런 매력을 느끼지 않을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영향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단이 진리를 믿어 온 어떤 사람들의 영적 감수성을 마비시키고 거짓된 사상으로 그들의 마음을 흐리게 하는 데 있어서 현저한 성공을 거두어, 마침내 바른 것과 그릇된 것을 구별할 수 없게 만든 바로 이런 사람들과 교제하는 데서 기쁨을 발견하는 청년 남녀들이 있다. 207 이어서 하나님의 선택받은 종들에 대한 그들의 신뢰심을 저해하기 위하여 암시들이 주어지며, 그들은 노골적인 불신으로 이끌림을 받는다.

만일 젊은이들이, 자신의 신앙 고백에 영광을 가져다 주는 그런 생활을 하는 사람들과 교제하기로 선택한다면, 그들은 많은 심각한 위험을 피할 것이다. 사단은 그의 계교에 관하여 알지 못하고, 경험 있고 경건한 친구들의 기도와 권면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자들을 파멸시키기 위하여 끊임없이 애쓰고 있다. 그리스도인 삶을 살겠다는 좋은 결심을 가지고 ______에 온 청년들 중 다수가 이 우정이라는 허울 아래 그들을 손으로 잡아끌고 가 직접적으로 사단의 올무에 빠뜨리는 그런 젊은 층의 친구들에게 가담하고 있다. 원수는 항상 우는 사자처럼 오지 않는다. 그는 짐짓 친근한 태도로, 미숙한 자들이 저항하기 어려운 특이한 유혹들을 제시하면서 빛의 천사로 나타난다. 가끔 그는 그들의 동정적인 천성의 동정심을 자아냄으로써 그리고 자신을, 아무 까닭 없이 박해를 받아 온 의로운 존재로 제시함으로써, 방심하는 자들을 속이는 그의 목적을 성취한다.

사단은 자원해서 그의 일을 행하려는 도구들을 발견한다. 그는 이런 방향으로 오랜 세월의 경험으로 다듬어진 기술을 발휘한다. 그는 자산의 악의적인 계획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수세기 동안 축적된 지식을 사용한다. 무지한 청년은 희롱하다가 사단의 수중으로 빠져들어가 영혼들을 파멸시키는 일에 그의 도구로 사용된다. 사단의 권세에 굴복하는 자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어떤 행복도 얻지 못한다. 그들은 결코 만족하거나 평안을 얻지 못한다. 그들은 불만족하고, 불평투성이이며, 짜증내고, 감사치 아니하며 반역적이다. 지금 고찰 중에 있는 청년들이 바로 그러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개심하게 되면 그에게 자비를 베푸실 것이다. 그의 죄들은 예수의 속죄의 보혈로 씻김을 받을 수 있다.

세상의 구주께서는 그릇 행하는 자들에게 영생의 선물을 주겠다고 제의하신다. 말을 듣지 않고, 후회하고, 고통 당하는 아들을 용서하도록 지상의 부모의 가슴을 움직이는 것보다 더 자애로운 긍휼로, 그분께서는 그분의 사랑과 용서의 제의에 대한 반응이 있는지 지켜보고 계신다. 208 “내게로 돌아오라 그러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만일 죄인이 여전히 자애롭고 불쌍히 여기는 사랑으로 그를 부르고 계시는 자비의 음성에 유의하기를 거절하면, 그의 영혼은 어둠 가운데 내버려둠을 당할 것이다. 만일 그가 그에게 주어진 기회를 태만히 하고, 악한 길을 계속 가면, 예기치 못한 순간에 하나님의 진노가 그에게 쏟아져 내릴 것이다.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잠 29:1). 이 젊은이는 아버지의 권위를 경시하였으며 제지를 무시하였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 그것이 바른 교육의 기초에 놓여 있다. 유리한 기회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 첫 번째 되는 큰 공과를 배우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의 사업에서 일할 자격이 없을 뿐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 사회에 결정적인 해가 되는 사람이다.

솔로몬은 청년들에게 이렇게 권고한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좇지 말라…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훤화하는 길 머리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가로되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신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나의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내가 부를지라도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펼지라도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라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오직 나를 듣는 자는 안연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잠 1:8-33).

209 _______에 있는 우리의 여러 다른 기관들에 질서가 유지되어야 한다. 반항은 권세로 제압되어야 한다. 안식일을 준수하는 부모에 의해 교육을 받고 진리를 듣는 특권을 누려 왔지만 그 가르침에 맞서서 반항하는 자들은 어떤 사람도 기관에 머물게 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신성한 사업에 대하여 업신여기듯이 말하거나 우리의 거룩한 신앙을 경멸로 대하는 자들은 아무도 그 사업에 관여되게 해서는 안 된다. 상당히 오랜 기간에 그 기관과 관련되어 왔고 우리의 신앙에 친숙해질 많은 기회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진리에 대하여 반대를 표명하는 자들은 더 이상 기관에 남아 있게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계속 그 빛을 등한히 여기고 구원을 경멸히 여긴다면, 그들은 진리에 적대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바로 이런 무관심이 타인의 신앙에 냉랭한 영향을 끼쳐 그들로 하나님을 떠나도록 만든다. 이들 회개치 않고, 감동을 받지 못할 자들이, 진리를 존중하고 이 신성한 사업에 매우 밀접하게 연결됨으로써 하나님의 영의 영향에 굴복할 사람들에 의하여 채워질 수도 있는 직책들을 차지해서는 안 된다.

기관에서 우리의 젊은이들은 마땅히 끼쳐야 할 그런 성격의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 A와 B는 사실상 사업에 반대되게 일해 왔다. 그들의 대화와 품성의 영향은 불신자들을 역겹게 만들어 우리 신앙으로부터, 그리고 그리스도로부터 그들을 떠나게 만드는 그런 것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의 경고에 유의하지 않고 그분의 성령의 증언들을 경멸히 여기는 청년들은 그 기관에 살아 있는 저주거리가 될 수 있을 뿐이며 그 사업에서 분리되어야 한다.

타락시키는 영향을 끼치는 젊은이들은 우리 대학과 아무런 관계가 없게 해야 한다. 사랑에 번민하는 감상주의에 사로잡히고, 학교에 다니는 것을 연애와 적절치 못한 관심을 교환하는 기회로 만드는 자들은 가장 엄격한 제약 아래 두어야 한다. 권위는 유지되어야 한다. 공의와 자비는 쌍둥이 자매로 나란히 서 있다.

210 만일 _____에 존재하는 상황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전혀 기울여지지 않는다면, 그곳은 곧 부도덕과 방탕을 격려하는 장소가 될 것이다. 사단이 자녀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동안 부모들과 우리의 기관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 잠잘 것인가? 하나님은 교회가 조장하고 감추는 죄악들, 기관이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죄악들, 그리고 부모의 처마에서 피난처를 찾고 있는 죄들을 혐오하신다. 부모들과 당국자들은 열렬하게 그 일을 붙잡고, 그들 가운데서 이 악을 제거하도록 하라.

우리는 마지막 시대에 살고 있다. 요한은 이렇게 부르짖는다.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계 12:12). 그리스도는 이 위험한 때에 유일한 피난처이시다. 사단은 은밀하게 그리고 암암리에 활동하고 있다. 그는 교활하게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을 십자가로부터 끌어내어 자아 방종과 사악함에 빠뜨린다.

사활적인 이해가 걸린 사업이 _____에 위치하고 있다. 사단은 그리스도의 사업을 강화시키고 그의 능력을 약화시킬 모든 것에 반대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사업을 저해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그는 바른 것이 지배권을 얻어 가는 것을 볼 때 한 순간도 결코 쉬지 않는다. 그는 하늘로부터 오는 빛이 백성들에게 비치고 있는 모든 곳에 그가 파송하는 수많은 악한 천사의 무리를 거느리고 있다. 그는 방심하고 있는 모든 남녀, 혹은 아이들을 사로잡아 그의 일을 하도록 압박하기 위해 여기에 그의 피켓을 꽂는다.

사업의 대 심장부는 _____에 있다. 심장이 살아 있는 혈류(血流)를 신체의 각 부분으로 뿜어 보내듯이, 우리 교회의 본부인 이곳에서의 경영은 전 신자들의 몸에 영향을 끼친다. 육체적인 심장이 건강하면 거기서 전 조직을 통하여 보내지는 피 또한 건강하다. 이 샘이 불결하면 전 유기체가 생명의 액체의 독에 의하여 질병에 걸리게 된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사업의 심장부가 썩게 되면, 이 세상의, 해외에 흩어져 있는, 여러 지부와 관심사들을 가진 전 교회가 그 결과로 고통을 당한다.

사단의 주된 사업은 우리 신앙의 본부를 겨냥하고 있다. 211 그는 중임을 맡은 사람들을 타락시키고 그들에게 위임된 여러 직임들에 불충실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어떤 수고도 아끼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의 사업을 충실하게 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그의 의심과 질투심을 은근히 심어 준다. 하나님께서는 이 조력자들을 시험하고 입증하시며 그들의 직임을 위하여 필요된 자격을 얻도록 하시고 있는 반면, 사단은 그들을 기만하고 꾀어 그들 자신이 멸망당할 뿐 아니라 타인이 잘못하도록 영향을 미쳐 위대한 사업을 그르치게 하도록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그의 힘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여 하나님께서 교회를 순결케 하시고 그분의 사업을 흥왕케 하려고 계획하여 보내시는 경고와 견책의 음성에 대한 하나님의 백성의 신뢰를 흔들려고 노력한다.

증언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백성의 믿음을 약하게 하는 것이 사단의 계획이다. 그 다음에는 우리 신앙의 중요한 점들, 우리 입장의 기둥들에 관하여 의심이 뒤따르고, 그 다음에는 성경에 대하여 의심이, 그리고 마침내는 멸망의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다. 한 때 믿어 온 증언들이 의심을 받고 포기될 때, 사단은 그 속임을 당한 자들이 여기서 그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그리하여 그는 그들을 공개적인 반역, 치료가 불가능하고 멸망으로 종언을 고하는 반역으로 그들을 이끌어 들일 때까지 그의 노력을 배가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전초 기지들을 지켜 오지 않았기 때문에 사단이 _____에서 현저하게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 만일 온전히 헌신한다면 그분께서 그들의 노력을 받으시리라고 나타내신 바로 그 사람들이 속임을 당하고 그들의 의무 수행에 실패하고, 마땅히 그러했어야 할만큼 도움과 축복이 되기는커녕, 엄청난 부담과 방해꾼으로 입증되는 사람들이 되어 왔다. 요새를 능히 지키리라고 생각되어 온 이 사람들이 거의 배반하여 그것을 원수에 손에 넘겨주었다. 그들은 그들을 멸망시키려고 애써 온 교활한 원수에게 문들을 열어 주었다.

경험 있는 사람들은 사단이 들어오도록 남의 눈을 피해 빗장을 벗기는 손들을 보아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결과에 대하여 무관심한 듯 침묵을 지켜 왔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그들의 과거의 태만을 경감시켜 주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이것을 보고 기뻐해 왔다. 그들의 태만은 그들이 남용하거나 태만히 해 왔던 중책의 자리들을 차지하도록 다른 사람을 부르는 것을 필요 불가결하게 만들었다. 212 직록(職錄)을 먹는 이 새로 들어온 사람들 편에서의 이러한 경성의 부족은, 그들 자신의 신실성 부족에 대하여 전직(前職) 인사들을 너그럽게 봐주는 것처럼 보였다. 이는 그것이 타인들도 의무 수행에 있어서 온전히 태만하였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성채 안으로 들어오도록 허락된 원수가 얻은 온갖 유리함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책임을 물으시리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태만으로 말미암아 영혼들을 멸망으로 이끌어 들이는 데 있어서 원수의 손에 들린 끄나풀이 된 불신실한 파수꾼들의 문 앞에, 그에 뒤따르는 황폐와 파멸이 놓여 있다. 중책을 맡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도를 구해야 하며, 자신의 판단과 지식을 의뢰해서는 안 된다. 솔로몬과 같이 그들은 믿음과 빛을 달라고 열렬히 간구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그들에게 공급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사업이 되는 대로가 아닌, 지성적으로 수행되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그 일이 그분께서 승인의 사인을 하실 수 있도록 믿음과 주의 깊은 정확성으로 행해지기를 원하신다. 그분께서는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 앞에서 두려움과 겸비로 행하는 사람을 축복하시고 인도하시고 하늘과 연결시키실 것이다. 일꾼들이 그분을 의지한다면, 그분은 그들에게 지혜를 주시고 그들의 연약성을 바로잡으셔서, 그들이 주님의 사업을 완전하게 행할 수 있도록 하실 것이다.

우리는 갑주를 입고 사단의 모든 공격을 성공적으로 물리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의 악의와 잔인한 권세가 충분히 평가되고 있지 못하다. 그는 한 점에 있어서 자신이 실패한 것을 발견할 때, 새 입지와 새 전략을 취하여 다시 시도하며, 인간 자녀들을 속이고 멸망시키기 위하여 기사(奇事)들을 행한다. 청년들은 그의 능력에 대하여 주의 깊은 경고를 받아야 하며, 이생에서 그들에게 반드시 닥쳐올 시련들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지 인내심 있게, 그리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도를 받아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매달리고 권면과 조언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지도되어야 한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구속주의 공로를 믿는 산 믿음은 그들로 하여금 고난과 시련의 맹렬한 풀무불을 통과하게 해 줄 것이다. 넷째의 모양이 풀무불의 맹렬한 열기 가운데서 그들과 함께 있을 것이며, 그 용광로는 그들의 옷에 그을린 냄새도 남기지 않을 것이다. 213 어린이들은 성경 학도들이 되고, 종결되는 세상의 역사의 마지막 날들 동안에 지상에 사는 모든 사람이 확실하게 경험하게 될, 위험스런 시험을 견딜 확고한 종교적 원칙을 갖도록 격려를 받아야 한다.

전적인 헌신

다음의 증언은 1875년 1월에 기록이 되었으며, 이 증언의 진실성은 그것이 그에게 빛과 희망을 가져다 주었다고 말한 C 형제에 의해 인정되었다.

C 형제여, 그대는 하나님께로부터 떠나 타락하였다. 하나님의 요구 사항에 대한 그대의 견해는 결코 제대로 규정되지도 정밀하지도 않았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다수의 사람들의 행위가 잘못되었다 하여 그대가 의무 수행을 태만히 하고 경계를 늦출 아무런 구실도 되지 않는다. 그대는 하나님께 헌신하지 않았다. 그대는 그대를 지켜 주시도록 그분을 의지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대는 정복당해 의심의 노예 생활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불신의 예속(隸屬)이 그대의 영혼을 쇠사슬로 묶었다. 그대는 그대의 생애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는다. 그대에게는 우리의 믿음이 매우 미심쩍어 보인다. 그 이유는 그대 자신 속에 있다. 세상에서 진리와 허위는 너무도 뒤섞여 있기 때문에 그것을 항상 명확하게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진리를 공언하는 사람이 왜 그처럼 힘이 적은 것일까? 그 이유는, 그들이 자신의 무지와 자신의 연약함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안다면, 그리고 자신에 대하여 불신하게 된다면, 그는 원수의 간계로부터 자신을 보존시켜 줄 하나님의 도우심의 중요성을 느낄 것이다. 우리는 마음과 생애에 사욕이 없고, 일편 단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마음을 가진, 활동적이며 일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필요가 있다. 오, 우리는 도처에서 얼마나 많은 몰락한 사람들을 보는지! 얼마나 많은 꾹 다문 입술과 열매 없는 생애들을 보는지! 천사는 “이렇게 된 것은 시험받을 때 타락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다. “불신만큼 영혼의 평화를 손상시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대는 그대가 의심과 불신의 예속 가운데서 살고 죽을 운명이라고 생각하여 절망 가운데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분을 의지하라. 그러면 그분의 능력을 통하여 그대는 대적의 모든 불화살들을 물리치고 넉넉히 이기는 자가 될 수 있다. 214 그대는 아직도 진리를 통하여 성화될 수 있다. 혹은 그대가 선택한다면, 그대는 불신의 어둠 가운데 행하여 하늘을 잃고 그리하여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 빛 안에 행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감으로써 그대는 그대의 이기적 본성을 정복할 수 있다.

그대는 언제든지 자금을 드릴 태세는 되어 있었지만, 그대 자신은 드리지 않았다. 그대는 수고가 수반될 희생을 하라는 부르심을 느껴 오지 못했다. 그대는 그것이 아무리 비천할지라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어떤 일이든지 하겠다는 자원하는 마음을 가져 본 적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겸손한 마음과 정복된 마음으로 그분께서 그대에게 내리시는 시험을 견디고 그분의 봉사와 일에 전적으로 성별되기까지 그대를 그런 지점으로 거듭 거듭 데려가실 것이다. 그때에 그대는 불멸의 생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대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완전히 계발된 사람이 되거나, 아무런 승리도 얻지 못하는 영적 난쟁이가 될 수 있다. 내 형제여, 그대는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그대는 그대의 일을 즐거움과 기쁨으로 하면서, 그리스도인 품성을 온전케 하면서, 그리고 불멸의 상급을 위하여 매진하면서, 자아 부인과 자아 희생의 생애를 살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분열된 봉사를 받지 않으신다. 그분은 모든 것을 요구하신다. 어떤 것이고 드리지 않고 아껴 두는 것은 쓸모가 없을 것이다. 그분께서는 그대를 무한한 값을 지불하고 사셨다. 그리고 그분은 그대가 가진 모든 것이 자원하는 헌물로 그분께 드려지기를 요구하신다. 그대의 마음과 생애가 그분께 온전히 헌신되어 있다면, 믿음이 의심을, 그리고 신뢰가 의혹과 불신을 대신할 것이다.

내 형제여, 그대는 그대 자신의 생애와 그대 가족의 생활에서 더욱 더 엄격하게 건강 개혁을 수행하는 일을 게을리 함으로써 명백한 위험 가운데 처해 있다. 그대의 피는 불결하다. 그런데 그대는 입맛대로 마음껏 먹음으로써 그것을 더욱 더 오염시키고 과도히 흥분시키고 있다. 결코 기만당하여 흥분제[주류, 자극물, 자극성 물질] 사용에 탐닉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왜냐하면 이것은 부작용과 체력의 상실을 초래할 뿐 아니라 감각을 마비시킬 것이다. 하나님을 확고하게 의뢰하면서 먹고 마시는 일에 엄격하게 절제하는 습관은 그대의 육체적, 정신적 및 도덕적 건강을 증진시킬 것이다. 그대는 매우 흥분하기 쉬운 기질을 가지고 있다. 그대는 자제심이 별로 없고, 흥분할 때에는 후일 빈번히 후회하게 되는 일들을 말하고 행한다. 215 그대는 그대의 경향과 성향과 맞서 싸우는 일에 도움을 주도록 단호한 의지를 불러일으켜야 한다. 그대는 빛과 진리를 받아들이도록 여러분의 영혼의 통로를 계속 열어 놓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대를 시험하고 입증하는 어떤 일이 발생할 때, 빈번히 편견이 끼여들고, 그리하여 그대는 그대의 자유의 제한 혹은 그대의 권리에 대한 침해라고 생각되는 것에 대하여 반기를 든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신체적 본성은 영적인 본성과 싸우게 될 것이라는 진리를 우리 앞에 명백하게 제시한다. 사도는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욕적인 정욕을 삼가라고 우리에게 분부한다. 모든 왜곡된 식욕은 싸우는 정욕이다. 식욕에 방종하여 체력을 해치면 영혼의 질병이 유발된다. 사도가 언급하는 정욕은 일곱째 계명의 범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신체적 원기를 약화시키는 온갖 미각의 방종이 싸우는 정욕에 해당된다. 사도는 특별한 승리를 얻고 의(義) 안에서 더 높은 성취를 이룩하려고 하는 사람은 “모든 일에 절제”해야 한다고 선언한다. 다른 모든 점에서의 절제의 실천 뿐 아니라 우리 식탁에서 먹고 마시는 일에 있어서의 절제는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정복하신 것처럼 정복하려면 긴요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빛을 주셨다. 그분께서는 그것이 무관심하게 취급되도록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지도와 도움이 되도록 주신 것이다.

그대는 자제를 계발할 필요가 있다. 그대는 청년 시절에 배웠어야 할 공과를 지금 습득하지 않으면 안된다. 자아에 대하여 죽고, 그대의 의지를 그리스도의 의지에 굴복시키도록 자신을 훈육하라. 깊고 철저한 회심이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사랑하는 형제여, 그대는 영생을 얻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 사업에서의 그대의 봉사는 더욱 더 마음에서 우러나고, 온전하며, 철저해야만 한다. 그대는 그렇게 할 마음이 내키면 하나님을 섬기고, 마음이 내키지 않을 때는 등한히 함으로써 그리스도인 품성을 완성할 수 없다. 결정적인 변화가 그대의 생애에서 일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그대는 과거의 어떤 경험과도 다른 경험을 얻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의 봉사는 하나님께 가납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 하늘 아버지는 그대에게 매우 은혜로우셨다. 그분은 그대를 자애롭게 대우해 오셨다. 그대가 죽을 준비가 갖추어져 있지 않을 때 병과 질병이 그대에게 닥쳐왔다. 그대는 그리스도인 품성을 완성하지 못했으며, 하늘에 들어갈 수 있는 도덕적 적합성을 갖지 못했다. 216 사단은 그대가 범죄자와 함께 헤아림을 받을 수 있도록 질병을 일으키고 멸망시키기 위해 그대 옆에 섰다. 그대를 위하여 드려진 열렬하고 효험 있는 기도가 이겼다. 천사들이 그대를 시중들고 그대 주위를 지키도록, 사단의 권세에서 그대를 지키고 보호하고 그대의 생명을 보존하도록 보냄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비길 데 없는 사랑 가운데 그대에게 또 한번의 시험[기회]을 허락하셨다. 그대 속에 있는 어떤 선함이나 공로 때문이 아니라 그분의 자비 때문에, 그분은 믿음의 기도들에 응답해 주셨다. 그대의 유예의 기간은 그대가 과거를 만회하고, 그대의 품성 속의 결점들을 정복하고, 그대의 생애에서 그분께서 그대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그러한 헌신을 그대의 생애 속에서 나타내 보여줄 수 있도록 연장되었다. 그대는 감사의 마음은 갖고 있었지만, 그분의 비길 데 없는 사랑에 의해서 격발되었어야 할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과 겸손하게 되는 것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대는 그대로 하여금 죽음을 면하게 해 주신 데 대하여 하나님께 대한 그대의 의무를 충분히 느끼지 않았다. 그대는 그대 자신의 사소한 이유들을 핑계로, 항상 그리고 어떤 상황하에서도 우리에게 지워지는 종교적 의무들로부터 거듭 거듭 빠져 나왔다. 단 하나의 의무 태만에 대해서도 좌절감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구실이 될 수 없다. 그대는 그대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대는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산 바 되었다. 그분은 그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요구하신다. 그대의 시간과 능력은 그대 자신의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그분의 사업에서 일익을 담당하도록 교육받을 수 있게 계획하셨다. 그러나 그대의 마음이 하나님의 계획과 조화되게 일하도록 훈육과 훈련을 받는 것이 필요하였다. 그대는 원한다면 필요되는 경험을 얻을 수 있다. 그대는 구주께서 당신의 생활 속에서 모본을 보여주신 대로, 그대 앞에 제시된, 그대의 성벽을 부인할 특권이 있었다. 그러나 그대는 그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 그리고 하나님의 사업에서 올바른 일꾼이 될 수 있도록 그대가 배우는 것이 중요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는 위치에 자신을 두지 않았다. 주께서 그대를 그분의 도구로 효율적으로 사용하실 수 있기 전에 그대 자신 속에 몇 가지 개혁할 것들이 있다.

C 형제여, 그대가 그대의 농장을 떠나는 것은 희생이었다. 그대는 거기서 그대의 인생을 즐겼다. 그대는 선택에 의해서 ________에 오지 않았다. 217 그대는 출판 사업과 관련된 일들에 관하여 지식이 없었다. 그러나 그대는 그대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고 결심했었고, 많은 점에서 그대는 잘 해 왔다. 그러나 그대의 길에 많은 것들이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들로서 일어났다. F 형제의 행위는 많은 점에서 그릇되었다. 그러나 그대는 하나님께 대한 그대의 헌신을 유지하지 못했다. 그대는 정신에 있어서 그와 연합하였고, 독립적으로 서지 않았다. 그대는 많은 것들에서 하나님을 불쾌하시게 하였으며, 그분으로부터 그대의 영혼을 분리시켰다. 사단은 그대를 장악하는데 큰 힘을 얻고 있었다. 그대의 발걸음은 거의 미끄러졌다. 그대는 거의 불신 속에 빠졌다. 그 때 질병이 그대의 행로를 멈추게 했다. 하나님께서 그대를 살려주시고 다시 생명을 빌려주신 것은 위대한 자비에서였다. 그러나 그대는 그분께 전적인 헌신을 하지 않았다. 그대의 외고집은 정복되고 누그러지지 않았다. 그대는 새로운 회심을 필요로 한다. 그대는 쉽게 짜증을 내고 쉽게 화를 낸다. 그대는 그대를 헐뜯었다고 생각되는 모든 것에 저항할 태세를 갖추었다. 어떤 것이 그대의 자긍심을 건드릴 때, 그대의 감정은 전광석화처럼 격발되어 왔다. 자, 나의 사랑하는 형제여, 이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다. 그대는 이것을 정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원수가 그대에 대하여 승리를 얻을 것이다.

그대는 _____에서의 사업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에 괴로움을 느꼈다. 그대는 _________를 향하여 뒤를 돌아보았다. 이는 그대의 마음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대의 몸은 그대의 마음이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그대를 시험하시고 입증하고 계신다. 그대는 어떻게 시험을 견뎌 오고 있는가? 하늘 왕국을 위하여 정련(精練)될 수 있도록, 그대는 설계되고 연마되고, 그대의 품성의 거칠고 들쭉날쭉한 점들을 제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인간 본성이 성향을 부인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인간이 아첨하는 세상적 유인(誘引)을 떠나고, 그들의 주님과 그들의 동료 인간들에 대한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업에 더욱 더 직접적으로 종사하기 위하여 그들 자신의 쾌락을 부인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C 형제여, 그대는 사업에 혼신의 힘을 불어넣지 않고 있다. 그대는 결코 그 일을 직접적인 개인적 관심사로 만든 적이 없으며, 그것은 그대의 마음에 내키지 않는 일이다. 그대가 그런 기질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그대는 그 사업을 더 잘 이해하도록 마음을 훈련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는 어느 정도 그것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대는 그것과 밀접하게 자신을 연결시키지 않았고 그 다양한 분야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218 그대는 마땅하리 만치 사교적이고 예절이 바르지 않다. 그대의 차갑고 접근하기 어려운 태도는 하나님께 기쁨이 되지 않는다. 그대는 그대의 감정이 쉽게 흥분되도록 허락한다. 감정에 의해 통제를 받고 충동에 의해 움직이는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사업과 관련하여 직임을 바르게 감당할 수 없다. 그대의 마음은 하나님과 더욱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야 하며, 동정과 관심에서 그대는 그분의 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그런 사람들과 더 밀접하게 일체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______에서의 사업을 진전시키는 일에 있어서 아무 쓸모도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대는 너무 독자적이고 배타적이다. 그대는 그대의 기질을 누그러지게 하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기분에 융합시킬 필요가 있다. 그대는 사업가로서,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 그대가 그대의 의지와 길을 주께 굴복시키기만 한다면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많은 귀중한 봉사를 할 수 있다. 그대는 온갖 개인적 고려 사항과 모든 이기적 관심을 초월하는 마음을 갖고 진리로 말미암아 성화될 필요가 있다.

나는 완전한 모본으로 예수님의 생애를 그대에게 가리키는 바이다. 그분의 생애는 사욕이 없는 자선으로 특징지어졌다. 귀중한 구주! 우리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도록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얼마나 큰 희생을 하셨는가! 하늘은 우리가 그것을 얻기 위해 온갖 이기적 관심을 포기한다 하여도 너무 값이 쌀 것이다. 우리가 자신의 길이 선천적 마음에 더 든다고 하여 그 길을 고집하고 하나님의 손에서 우리 자신을 벗어나게 할 여유가 있을까?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굴복과 완전한 순종을 요구하신다. 영생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가 있다. 그대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고뇌한다면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에 들어갈 수 있다.

환경에 의하여 그대의 생애의 결핍들이 드러나 보이지 않는 한 그대는 그대의 결핍들을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그대는 ________에 온 이래로 마땅하리 만치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대는 사업에 아낌없이, 충심으로 투신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그대의 주 관심사로 삼지 않았다. 그대가 자신의 참된 위치, 즉 하나님의 사업의 번영을 위하여 최선의 태도로 일하는 법을 배우는 견습생, 그대에게 생소한 그런 것들과 관련된 지식을 얻기 위해 있는 학생임을 깨닫는다면 계속 품을 수 없는 독립심을 버리지 않고 있다. 219 그대가 열심을 다하여, 능률 있는 일꾼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려고 노력했더라면, 그대는 더욱 더 큰 진보를 이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대는 너무도 마음을 터놓지 않고 살아 왔다. 그대는 그 사업의 여러 다른 부서에서 종사하는 사람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지 않았다. 그대는 이해심 있게 처신하기 위하여 마땅하리 만큼 친밀하게 그들과 의논하지 않았다. 그대가 이렇게 했더라면 그대는 더욱더 능률적인 일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대는 너무도 과도하게 그대 자신의 판단에 따라 처신해 왔고, 그대 자신의 생각과 계획을 수행해 왔다. 일꾼들 사이에 조화로운 관계가 결여되어 왔다. 그대 편에서의 이러한 친밀성의 부족 때문에, 그리고 그대가 너무도 빈번히 충동과 느낌에 의해 처신하여 그들이 그대에게 접근하기를 두려워해 오기 때문에, 그대를 도울 수도 있었을 사람들이 그들의 지식을 그대에게 나누어주기를 꺼려 왔다.

세상의 구주께서는 천사들의 숭경을 받으셨다. 그분은 하늘 궁정에서 왕자이셨다. 그러나 그분은 당신의 영광을 제쳐놓으시고 당신의 신성을 인성으로 옷 입히셨다. 그분은 온유하고 겸손한 예수가 되셨다. 그분은 하늘의 부요와 영광을 떠나셨고, 우리가 당신의 가난을 통하여 부요하게 될 수 있도록 가난하게 되셨다. 3년 동안 그분은 집 없는 방랑자로서 이곳 저곳으로 여행하셨다. 그러나 이기적인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들의 적은 세상적 보화를 버리도록 요구받거나, 그분께서 위하여 자신의 귀중한 생명을 주신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에 활동하도록 부름을 받으면 불평하고 투덜댈 것이다. 오, 이 얼마나 큰 배은망덕인가! 어떤 사람도 그가 기쁜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인하여 여하한 희생도, 그리고 온갖 희생도 할 수 있다고 느끼기 전에는 구속의 축복을 이해할 수 없다. 그리스도를 위해 행해진 모든 희생은 드린 자를 부요케 하며, 그분을 위하여 견딘 모든 고통과 궁핍은 하늘에서 이긴 자들의 최종적인 기쁨을 증가시킨다.

그대는 참 희생과 진정한 자아 부인에 대해서 별로 알고 있지 못하다. 그대는 곤궁과 그대의 정력의 완전한 소진(消盡) 등에 대해서는 거의 경험이 없다. 그대의 짐은 가벼웠다.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중대한 책임들을 져 왔다. 예수님께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물었던 젊은 청년은 이런 대답을 들었다. 220 “계명을 지키라.” 그는 자신 있게 그리고 자랑하듯이 대답했다.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내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나이까?” 예수께서는 이 젊은이를 불쌍히 바라보셨다. 그분은 그를 사랑하셨다. 그분은 그가 하신 말씀들이 이 청년과 자신을 영원히 분리시키리라는 것을 아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의 영혼의 악덕의 중심부를 건드리셨다. 그분은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네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러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이 젊은이는 하늘을 원하기는 했지만, 그의 지상 보화로부터 그의 애정을 떠나게 할만큼 충분히 원하지는 않았다. 그는 생명에 들어가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조건들에 굴복하기를 거절했다. 그는 매우 슬퍼했다. 왜냐하면 그는 재산이 많았기 때문이며, 그는 그 재산이 영원한 상급과 맞바꾸기에는 너무도 귀중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구원을 받으려면 그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었다. 그 답이 이제 주어진바 되었다. 그러나 그의 세상적 마음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하여 그의 부를 희생할 수 없었다. 그의 결정은 하늘을 포기하고 그의 세상 보화에 매달리는 것이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젊은이의 운명을 확정시킨 바로 그와 동일한 결정을 현재 내리고 있는지!

우리 중 어느 누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무엇인가 할 기회가 있다면, 얼마나 열렬히 그것을 부여잡고 최대의 열심을 다하여 그분과 동역자가 되기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할 것인가. 우리의 믿음을 매우 혹독하게 시험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신 것처럼 보이게 하는 바로 그 시련들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더욱 더 가깝게 인도하도록 계획된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의 모든 짐들을 그분의 발 앞에 내려놓고 그분께서 그것과 교환하여 우리에게 주실 평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 말이다. 그대는 새로운 회심을 필요로 한다. 그대는 진리를 통하여 성화되고 어린아이와 같은 정신을 가져야 하며, 온유하고 겸손하고, 그대의 구속주로서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의지할 필요가 있다. 그대의 교만과 독립은 하나님의 성령의 복된 감화에 마음을 닫고 있으며 마음이 딱딱하게 다져진 대로(大路)처럼 감수성이 무뎌지게 될 것이다. 그대는 아직도 여전히 믿음의 큰 공과를 배워야 한다. 그대가 자신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굴복시킬 때, 그대가 예수에게 떨어져 완전히 깨어질 때, 그대는 승리, 즉 그대가 결코 경험한 적이 없는 그 승리의 기쁨을 상급으로 받을 것이다. 그대가 명확한 안목으로 과거를 회고해 볼 때 생애가 오로지 당혹 뿐이요 무거운 짐뿐인 것처럼 보이던 바로 그때 예수께서 친히 그대 가까이 계셔서 그대를 빛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노력하고 계셨음을 볼 것이다. 221 그대의 아버지께서는 그대 곁에 계셔서 말할 수 없는 사랑으로 그대를 굽어보고 계시며, 제련자(製鍊者)가 귀한 광석을 정련하듯이 그대의 유익을 위하여 고통을 주고 계시다. 그대가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생각해 왔을 때, 그분은 위로하고 붙들어 주시기 위하여 그대 가까이 계셨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예수님을 좀처럼 보지 못하며, 그분이 우리를 돕고자 하시는 대로 그분의 도움을 받아들일 준비가 결코 되어 있지 않다.

그대가 병들었든지 건강하든지, 풍부하든지 곤궁할 때를 막론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그리고 일편단심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살겠다는 단호한 결심으로 하나님께서 공개하시는 섭리를 따라가기를 배울 때 그대는 얼마나 큰 승리를 얻게 될 것인가. 자아는 매번 접촉될 때마다 살아 있고 떨리고 있다. 자아는 그대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정복하고 신실한 자들의 상급을 받을 수 있기 전에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

조화의 필요

하나님의 영께서는 진리 안에 있는 신자들 가운데 분열과 다툼이 있는 곳에는 거하지 않으실 것이다. 이런 감정들이 표현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것들은 마음을 점령하고 그리스도인 교회를 특징지어야 할 평화와 사랑을 몰아낸다. 그것들은 가장 충만한 의미에서 이기심의 결과이다. 이 악은 지나친 자부심이나 다른 사람들의 인정(그 인정이 받으려고 하지 않는데 얻어진 것이라 할지라도)을 받고자 하는 과도한 갈망의 형태를 취할 수도 있다. 자기를 높이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들을 지키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에 의해 포기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그분의 거룩한 은총으로 말미암는 축복을 받기를 기대할 필요가 없다.

건강 기관에서의 도덕적 및 종교적 영향은 하늘의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고상하게 되어야 한다. 이기심의 방종은 그 곳에서 확실히 하나님의 영을 슬프시게 할 것이다. 의사들, 감독자들, 그리고 조력자들은 서로 다른 사람들을 자신보다 더 낫게 여기면서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조화롭게 일해야 한다.

사도 유다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유 22). 이런 의심은 편파적인 정신으로 행사되어서는 안된다. 다음과 같이 암시하는 정신의 뒤를 밀어 주어서는 안된다. 222 “네가 나에게 호의를 보이면 나도 너에게 호의를 보일 것이다.” 이것은 성화되지 않은 세상적 정책,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는 정책이다. 이것은 이득을 얻기 위하여 호의와 찬탄을 보이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을 통하여 이득을 얻기를 기대하면서 특정인들을 편애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만큼 충분히 가치가 있는 다른 사람보다 우리가 더 큰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풂으로 그들의 선한 의지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잘못을 보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각 사람은 시기, 적대, 불신, 흠을 찾는 것, 그리고 불화의 정신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부른다. 우리는 한 가족의 자녀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우리 자신을 쌓아올리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존경과 영향을 약화시키려는 경향이 있을 때, 우리는 원수를 기쁘게 하고 우리가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그분을 슬프시게 한다. 예수께서 자신의 고귀한 생애에서 나타내신 친절과 자비는, 우리가 동료 인간들과 특별히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형제들인 자들을 취급하는 방식에서 우리에게 모본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우리를 이롭게 하시고 계시지만, 우리는 그분의 은총들에 대하여 너무도 무관심하다. 무한한 친절로 사랑을 받았건만 우리들 중 다수가 서로에 대한 사랑이 너무 적다. 우리는 오류 가운데 있다고 상정(想定)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너무도 가혹하며, 우리 자신의 행위에 관한 아주 작은 비난이나 의문에 대해서는 너무도 민감하다.

암시가 던져지고 서로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이 던져지지만, 동시에 이런 암시와 비평을 던지는 바로 그들은 자신의 실패들에 대하여는 눈이 멀어 있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실수를 볼 수 있으나 그들 자신의 실수를 볼 수 없다. 우리는 날마다 하늘의 은택을 받는 자들이며, 우리 마음에 하나님께 대한 사랑하는 감사가 넘쳐 나와야 한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이웃에 대하여 동정하도록 만들어야 하며, 그들의 관심사를 우리 자신의 것으로 삼도록 해야 한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생각과 묵상은 사단의 암시들에 대해 영혼의 통로를 닫을 것이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날마다 입증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분의 은총들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고 그분의 간청에 무관심하다. 그분은 당신의 친절의 영과 당신의 사랑과 관용으로 우리에게 감동을 주려고 애쓰신다. 223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친절의 표를 거의 인식하지 못하며 그분께서 우리가 배우기를 갈망하시는 사랑의 공과에 대하여 별 느낌을 갖고 있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하만과 같이 하나님의 모든 은총들을 잊는다. 왜냐하면 모르드개가 그들 앞에 있고, 욕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음이 당신의 원수들을 위해 그분의 고귀한 생명을 주신 우리의 사랑하는 구속주의 정신인 사랑이 아니라 증오와 적의로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동일한 아버지를 모시고, 동일한 불멸의 본향을 향하여 가고 있으며, 동일한 엄숙한 믿음을 향유하고 동일한 시험하는 기별을 믿노라고 공언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싸우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처럼 서로 싸우고 있다. 사업의 같은 분야에서 종사하고 있는 어떤 사람들은 서로 사이가 나쁘며, 그러기에 그리스도의 영과 불화하고 있다.

칭찬에 대한 사랑이 많은 사람의 마음을 부패시켜 왔다. 건강 기관과 관련을 맺어 온 사람들이 때때로 수립된 계획에 대하여 흠을 찾는 정신을 나타내 왔으며, 사단은 그들에게 그곳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할 권한을 주었는데, 그들은 이 사람들을 비난받을 점이 없다고 받아들인 반면에 죄 없는 자들은 잘못 행했다고 고소를 당해 왔다. 자기 자신의 헛된 행위를 기뻐하고 자신의 탁월한 자질을 자랑하면서 자아를 높이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이 열등한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애쓰며, 무정한 자가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는 것보다 더 큰 영광을 주장하는 것은 사악한 교만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주님의 교훈에 유의할 것이다. 그분은 우리에게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고 분부하셨다. 종교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 기초되어 있으며, 그것은 서로 사랑하도록 우리를 이끈다. 그것은 감사와 겸비와 오래 참음이 가득하다. 그것은 자아를 희생하고 오래 참고, 자비롭고 용서성이 많다. 그것은 전 생애를 성화시키고 그 영향을 다른 사람에게까지 뻗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적개심이나 시기심을 품을 수 없다. 영원한 사랑의 하늘 원칙이 마음을 채울 때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흘러갈 것이다. 그저 그들로부터 호의를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이 행동의 원칙이며, 품성을 변화시키고, 충동을 제어하며, 정욕을 통제하고 적의를 굴복시키고 애정을 향상시키고 고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사랑은 단순히 “나와 나의 것”을 포함하도록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처럼 넓고 하늘처럼 높으며, 천사 일꾼들의 그것과 조화된다. 224 영혼 속에 이 사랑을 품으면, 그것은 전 생애를 향기롭게,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정련(精練)시키는 영향을 끼친다. 그것을 소유하면 우리는 운명의 신이 미소를 짓든지 얼굴을 찌푸리든지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그분의 자녀들을 또한 사랑해야 한다. 이 사랑은 하나님의 정신이다. 영혼에게 참된 고결함과 존엄(尊嚴)을 주고 우리의 생애를 주님의 그것에 동화되도록 하는 것은 하늘의 단장(丹粧)이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좋은 특질들을 가지고 있든지 간에, 우리가 자신이 아무리 존귀하고 세련되었다고 간주할지라도, 영혼이 하나님과 서로에 대한 사랑의 하늘 미덕으로 침례를 받지 않으면, 우리는 참된 선함이 부족하며, 모든 것이 사랑과 화합뿐인 하늘에는 부적합하다.

이전에 하나님을 사랑했고 날마다 그분의 은총을 누리며 살았던 어떤 사람들이 지금은 끊임없는 불안 가운데 있다. 그들은 자아를 육성시키고 있기 때문에 어둠과 절망적인 우울함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 그들은 너무도 열심히 자신들을 소중히 하려고 하기 때문에 생각해야 할 다른 모든 것들은 이것에 파묻혀 버린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섭리 가운데서 자신만을 위하여 사는 것으로는 어떤 사람도 행복을 얻을 수 없도록 하셨다. 우리 주님의 기쁨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수고와 수치를 견디는 것에 있었다. 그분은 그렇게 하심으로써 그들이 유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하셨다. 우리는 그분의 모본을 따르고 우리 동료 인간들을 축복하기 위하여 사는 데서 행복하게 될 수 있다.

우리는 그분의 멍에를 메고 그분의 짐을 지라는 주님의 초청을 받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부과한 멍에를 메고 우리 자신의 짐을 지는 데서는 쉼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멍에를 멜 때는 영혼에게 쉼이 있다. 주님을 위하여 어떤 위대한 일을 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선을 행하고, 자아를 잊고, 자아를 희생하고, 다른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햇빛을 가지고 감으로써 그들이 있는 바로 그곳에서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

언제 어디서나 그리스도의 자애로운 동정심이 나타내져야 할 필요성이 매우 크다. 죄를 그럴듯한 말로 발뺌하고, 악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에 모욕을 끼치는 그런 맹목적인 동정이 아니라, 생애를 지배하는 원칙이 되는 사랑,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선행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흘러나가는 사랑이 크게 필요된다.

225 건강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위대한 사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사시는 동안 병자들과 고통받는 자들은 그분의 특별한 돌봄의 대상이었다.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그분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뿐 아니라 병자들을 치료하도록 사명을 주셨다. 70인을 보내실 때, 그분은 그들에게 병자를 고치고, 그 다음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에게 가까이 왔다고 전파하도록 명하셨다. 그들의 육체적 건강이 제일 먼저 돌봄을 받아야 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사도들이 전파할 그러한 진리들로 말미암아 접촉될 수 있도록 길이 준비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세상의 구주께서는 설교하시는 것보다 병 걸린 자들의 질병을 고치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셨다. 지상에 있는 그분의 대표자들인 그분의 사도들에게 하신 그분의 마지막 분부는 병자들에게 손을 얹어 병을 고치는 것이었다. 주께서 오실 때 그분은 병자들을 방문하고 고통 당하는 자들의 궁핍을 덜어 준 자들을 칭찬하실 것이다.

우리는 사소한 일들의 강력한 영향과 그것이 영혼의 구원에 미치는 관계를 배우는 데 더디다. 건강 기관에서 선교사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일할 수 있는 넓은 밭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중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들이 등한히 여김을 받고 있는 동안 큰 존경으로 우러름을 받는 특권 받는 소수가 되기를 의도하지 않으신다. 예수님은 하늘의 왕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자신을 낮추사 가장 비천한 자들에게 수종드셨고, 사람이나 지위에 따라 사람을 편애하지 않으셨다.

사업에 전심을 다해서 일하는 사람들은, 건강 기관에서 그들의 보호 아래 맡겨진 고통 당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경감시켜 주는 데 있어서 주님을 위해 할 일이 충분함을 발견할 것이다. 우리 주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을 위하여 가장 굴욕적인 직무를 수행하신 후 당신의 모본을 따르도록 그들에게 권고하셨다. 이것은 그들이 가장 낮은 성도보다 우월감을 느껴서는 안된다는 사상을 그들 앞에 계속적으로 제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의 고귀한 신앙을 공언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우리 주님의 속히 오심을 고대하는 사람들은 그들 주위의 세상과는 다르고 또 구별되어야 하며, 선한 일에 열심인, 특이한 백성이 되어야 한다. 226 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세상과 구별시키는 특색들 중에 그들의 겸비와 온유함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게서 배우라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신다. 많은 사람들이 갈망하고 그것을 얻기 위하여 헛되이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평안이 여기 있다. 명예와 지위에 있어서 다른 사람과 동등되거나 아마도 더 높고자 하는 야심을 갖는 대신, 우리는 그리스도의 겸손하고 신실한 종이 되도록 힘써야 한다. 이러한 자아 확대의 정신은 그리스도께서 그들과 함께 계셨던 때에도 사도들 가운데 다툼을 일으켰다. 그들은 그들 중에 누가 가장 크냐 하는 것으로 논쟁을 벌였다. 예수께서는 앉으시고 열두 제자를 부르사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마 9:35).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녀의 아들들이 그분의 왕국에서 하나는 우편에, 다른 하나는 좌편에 앉도록 특별한 은총을 베풀어 달라고 요청했을 때, 예수님은 당신의 왕국의 명예와 영광은 이 세상의 명예와 영광과는 정반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 주셨다. 크고자 하는 자는 누구든지 다른 사람에게 겸비하게 시중 들어야 하며,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께서 인간 자녀들에게 봉사자요 종으로 일하셨듯이, 종이 되어야 한다.

다시 우리 구주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지위와 이름을 얻으려고 하지 말라고 가르치셨다.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8-12). 예수님은 시내산에서 주어진 거룩한 율법을 율법사에게 상기시키셨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눅 10:37).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다음과 같은 질문이 일어난다. “누가 나의 이웃이오니까?” 그분의 대답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이다. 이 비유는 우리에게 우리의 동정과 친절한 봉사가 필요되는 사람은 누구든지 우리의 이웃이라고 가르친다. 고통 당하고 빈곤한 온갖 계층의 사람들이 우리의 이웃이다. 227 그리고 그들의 결핍을 우리가 알게 되었을 때 가능한 한 그것들을 경감시켜 주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이 비유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채택하는 것이 좋을 한 원칙이 도출되었다. 먼저 궁핍한 자들의 세속적 필요를 채워 주고 그들의 신체적 필요와 고통을 채워 주라. 그러면 그대는 마음에 접근할 길이 열린 것을 발견할 것이며, 그곳에 미덕과 종교의 좋은 씨를 뿌릴 수 있다.

행복하기 위하여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나타내신 바 그런 품성에 도달하려고 애써야 한다. 그리스도의 현저한 특색의 하나는 그분의 자아 부정과 자선(慈善)이었다. 그분은 자신의 유익을 구하기 위해 오지 않으셨다. 그분은 두루 다니며 선을 행하셨으며, 이것이 그분의 양식이요 음료였다. 우리는 구주의 모본을 따름으로써 그분과 거룩한 교통에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날마다 그분의 품성을 모방하고 그분의 모본을 따름으로써 우리는 세상에 축복이 될 것이며, 현세에서는 자신을 위하여 만족을, 내세에서는 영원한 상급을 얻을 것이다.

신실한 경고에 대한 반대

1875년 1월 3일, 나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일하실 수 있기 전에, 캘리포니아의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행해져야 할 큰 사업이 있음을 보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진리의 원칙을 갖고 있지 않음에도 그들이 하나님과 바르다고 자위하고 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참된 증인의 권고에 유의하려고 부지런히 인내심 있게 열성을 다하여 애씀으로써만 정상 상태로 돌아올 수 있다. 그들은 냉담하고, 형식적이고, 뒤로 물러간 상태에 있다. 참된 증인께서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 3:15-19).

228 G 형제여, 그대가 그것에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대에게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 계신다. 그대의 영적 능력과 은혜 안에서의 성장은 그대를 구하기 위하여 아무것도, 심지어 자신의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으신 그대의 구주를 위하여 기쁜 마음으로 행하는 사랑의 봉사와 선행에 비례될 것이다. 그대는 다음과 같은 사도의 당부를 받고 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 6:2).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신앙을 단순히 공언만 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그대는 일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대는 그분의 율법을 범하는 자이다. 그대는 그대의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대는 마지막 여섯 계명을 순종하는 생애를 살거나 그대의 이웃을 그대 자신처럼 사랑하지도 않는다. 그대는 하나님이나 그대의 이웃을 사랑하는 것보다 자신을 더 사랑한다.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것은 그대가 행할 용의가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대의 도움으로 영혼들이 진리로 인도될 수 있도록 그대에게서 선행, 자아 부정, 자아 희생, 그리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한 헌신을 요구하신다.

우리의 선행만으로는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지만 우리는 선행 없이는 구원받을 수 없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과 능력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 후에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는 우리가 큰 희생을 했으며, 우리가 우리의 연약한 봉사의 대가로 큰 상급을 받으리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것과 육적인 안전감(安全感)은 마치 그대를 강철 줄로 묶듯이 그대를 사방으로 차단시켜 놓았다. 그대는 열심을 내고 회개할 필요가 있다. 그대는 그분께서 당신의 종들을 통하여 이 해안(海岸)에서 하고 있는 일을 반대하는 방침을 따르는, 불평을 가진 자들과 동조함으로써 불행하였다. 잘못된 사람들이 그대의 동정을 얻어 왔다. 그대의 마음이 하나님과 바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대는 그분께서 그대에게 보내신 빛을 받지 않았다. 그대는 주께서 사랑으로 그대에게 보내신 견책을 저항하려고 센 고집을 부렸다. 229 그대는 이런 일들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대 자신의 참된 상태에 관하여 그대의 눈을 감으려고 시도했다. 그대가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보내신 견책과 경고의 음성에 유의하든지 하지 않든지, 그대가 그대의 품성의 결점들을 개혁하든지 그대로 가지고 있든지 간에, 그대는 어느 날 그대가 하나님의 종들에 대항하는 정신으로 싸우면서 반항적인 입장에 섬으로써 무엇을 상실해 왔는지를 깨달을 것이다. H 목사에 대한 그대의 증오심은 놀라울 지경이다. 그는 이 해안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하여 견디고 희생하고 수고해 왔다. 그러나 맹목적으로, 한편 마음과 생애에 있어서 성별되지 않은 채 그대는 I와 J와 연합하여 잔인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종을 감히 다루려고 했다. “나의 기름 부은 자를 만지지 말며 나의 선지자를 상하지 말라”(시 105:15)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대가 지금까지 해 온 대로 백성들을 위하여 빛과 진리를 주셔서 파송하신 사람들에 대항하여 맞서는 것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그대의 영향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을 보내사 선포하도록 하신 진리로부터 영혼들을 돌이키게 하는지 조심하라. 이는 무거운 화가 그대 위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사단은 의심을 교묘히 불어넣어, 성화되지 못한 마음에서 시작된, 하나님께서 그 오염으로부터 정결케 하려고 하셨던 암시와 오전(誤傳)을 거듭 거듭 말하는 데 있어서 그대를 대리자로 사용해 오고 있다. 그러나 그대는 교훈을 받기를 거절하고, 교정 받기를 거절하고, 견책을 배척했으며, 그대 자신의 고집을 따랐다. 영혼들이 이 쓴 뿌리로 말미암아 더럽혀지며, 이런 의심스러운, 불평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견책의 증언이 그들에게 미치지 못할 곳에 영혼들이 있게 된다. 이들 영혼들의 피는 그대에게, 그리고 그대와 연합되어 있는 영혼들에게 책임지워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로서 우리에게 할 일을 주셨다. 그분은 우리에게 당신의 백성에게 전할 기별을 주셨다. 30년 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왔고 그것들을 그분의 백성에게 말해 왔다. 우리는 우리가 많은 기도와 묵상으로 받아들인 책임을 보고서 두려워 떨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영혼들에게 탄원하면서 하나님의 대사들로 서 왔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의 위험을 우리 앞에 제시해 주신 대로 경고해 왔다. 우리의 사업은 하나님에게서 우리에게 주어졌다. 그렇다면 그것이 그들의 길에 방해가 되거나 그들의 잘못들을 책망한다고 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내신 말씀을 듣기를 거절하는 자들의 상태는 어떻게 될까? 230 만일 그대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말씀해 오시지 않았다고 철저하게 확신한다면, 그대의 신앙에 일치되게 행하고 이 사람들처럼 매우 큰 기만 아래 있는 사람들과 모든 관계를 끊는 일을 왜 하지 않는가? 만일 그대가 하나님의 성령의 지시하심에 따라 움직여 오고 있다면 그대는 옳고 우리는 그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가르치시고 그들의 잘못을 책망하시고 그들의 신앙을 강화시켜 주시거나 그렇지 않으시거나 둘 중의 하나다. 이 일은 하나님으로 말미암든지 그렇지 않든지 둘 중의 하나다. 하나님께서는 사단과 협력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신다. 지난 30 년간의 나의 일은 하나님의 인장(印章)을 지니고 있든지 원수의 인장을 지니고 있든지 둘 중의 하나다. 이 문제에 있어서 어중간한 일은 없다. 증언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든지 아니면 마귀에게서 말미암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하나님의 종들과 맞섬으로써 그대는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하든지 아니면 마귀를 위해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그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그대의 일은 어떤 인장을 지니고 있는가? 그대의 행로의 결과를 비평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도움이 될 것이다.

사람이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에 의해 기만당하여 하나님에게 대드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대가 가고 있는 길을 감히 더 가려고 하기 전에 그대의 행로를 비평적으로 숙고해 보라. 유대인들은 스스로 속았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마음의 비밀을 폭로하시고 그들의 죄들을 책망하셨기 때문에 그분의 가르침을 배척했다. 그들은 그들의 행위가 책망 받을 것이 두려워 빛으로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빛보다 어둠을 선택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 3:19)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그들의 길을 따르다 마침내 스스로 속임을 당하고 기만당한 상태에서 그분을 십자가에 못박음으로써 그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그들이 빛을 거절한 결과이다. 그대는 이와 비슷한 기만을 당할 위험 가운데 있다. G 형제여, 그대가 현재 가고 있는 길이 어디서 끝나게 될지 숙고해 보는 것이 그대의 영혼을 위해 유익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대 없이도 할 수 있으시지만, 그대는 하나님 없이 할 수 없다. 그분은 어떤 사람도 믿도록 강제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사람들 앞에 빛을 놓으시고, 사단은 그의 어둠을 제시한다. 기만자는 “빛이 여기 있다. 진리가 여기에 있다”고 끊임없이 부르짖는 반면, 예수께서는 “내가 진리다. 내가 영생의 말씀을 가지고 있다. 231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둠 속에 다니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진리 편에 두기에 충분한 온갖 증거를 주신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굴복한다면, 우리는 빛을 선택하고 어둠을 배척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육적인 마음의 독립성을 유지하기를 갈망하고 하나님의 교정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유대인들이 그러했듯이 명명백백한 증거를 앞에 두고도 우리의 목적과 우리의 사상을 고집스럽게 수행할 것이며, 그들에게 닥쳤던 것과 같은 기만에 빠질 위험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맹목적인 열중 가운데서 우리는 그들처럼 멀리 갈 수 있으며, 그럼에도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고 자위할 수도 있다.

G 형제여, 그대는 현재 그대가 있는 곳에 오래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다. 그대가 출발해서 가고 있는 길은 참된 길로부터 빗나가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마지막 승리를 위하여 정결케 하려고 시험하고 계시는 백성들과 그대를 분리시키고 있다. 그대는 이 몸된 교회와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기도에 부응하기 위하여 열렬히 활동하든지 아니면 더욱더 불신하게 되든지 할 것이다. 그대는 몸된 교회의 확립된 신앙의 한 점, 한 점에 의문을 표시할 것이며 그대의 의견은 더욱 더 완고하게 될 것이고, 이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사업에 대하여 점점 더 어두워 갈 것이며, 급기야 그대는 어둠을 빛으로, 빛을 어둠으로 착각하게 될 것이다.

사단은 섭리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내시는 빛과 특권들을 소중히 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혼란시켜 영혼들을 함정에 빠뜨릴 수 있는 큰 능력을 가지고 있다. 사단의 지배에 굴복된 사람들의 마음은 끊임없이 진리의 빛에서 떠나 오류와 어둠 속으로 이끌려 간다. 그대가 사단에게 조금이라도 이득을 준다면 그는 더 많은 것을 요구할 것이며, 그의 사업을 유리하게 하고 그대의 영혼을 파멸시킬 수 있는 여하한 상황도 최대한 이용하기 위하여 전초 기지를 예의 주시할 것이다.

G 형제 부부여, 그대들 중 어느 하나도 안전한 입장에 있지 않다. 그대들은 견책을 무시한다. 견책의 말 대신에 그대에게 부드러운 말이 발해졌다면, 그대가 칭찬과 아첨의 말을 들었더라면 그대는 증언들에 대한 그대의 믿음에 관하여 현재 그대가 취하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입장을 견지할 것이다. 이 마지막 날들에 이렇게 부르짖을 사람들이 있다. “우리에게…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사 30:10). 그러나 이것은 나의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책망하는 자로 나를 세우셨다. 232 그리고 그분께서 나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신 것이 확실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그분께서는 이 기별이 주어진 자들에게 그들이 그것을 취급한 방법에 대해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실 것이며, 그분의 사업을 멸시하는 자들은 그들의 행한 대로 받게 될 것이다. 나는 스스로 이 유쾌하지 못한 일을 선택해 오지 않았다. 이것은 나에게 사람의 은총이나 칭찬을 가져다 줄 일이 아니다. 이것은 불과 소수의 사람만이 감사할 사업이다. 그러나 그들의 오전(誤傳), 질투 섞인 의심들, 그리고 불신으로 말미암아 나의 일을 이중으로 어렵게 만들려고 애쓰고, 그렇게 하여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증언들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편견을 불러일으키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그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하며, 반면에 나는 섭리의 하나님과 나의 형제들이 내 앞에 길을 여는 대로 앞으로 나갈 것이다. 나의 구속주의 이름과 능력으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하나님의 성령께서 명하시는 대로 경고하고 권면하고 책망하고 격려할 것이다. 나의 의무는 내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내 일을 주신 나의 하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경고하셨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15-20). 여기에 시금석이 있다. G 형제여, 그대는 원한다면 이것을 적용할 수 있다. 그대는 불확실과 의심 속에 빠질 필요가 없다. 사단은 여러 가지 다양한 의심들을 암시하기 위하여 가까이에 있지만, 만일 그대가 믿음으로 그대의 눈을 연다면, 그대는 믿을 수 있는 충분한 증거를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의심을 일으키는 모든 원인들을 어떤 사람에게서도 결코 제거하지 않으실 것이다. 의심과 미심쩍은 불신의 분위기에 거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남부러워 할 것이 없는 특권을 가질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솔직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 충분한 증거를 주신다. 233 그러나 그의 유한한 이해력으로 분명히 깨달을 수 없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고 하여, 압도적인 증거를 외면하는 사람들은 차갑고 을씨년스러운 불신과 의심을 표현하는 분위기에 버려질 것이며, 믿음의 파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대는 믿는 자 편에 서는 것보다 의심한 자 편에 서는 것을 미덕으로 간주하고 있는 듯하다. 예수님은 결코 불신을 칭찬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결코 의심을 칭찬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당신이 행하신 기적 속에서 당신의 메시야 되심에 대한 증거들을 당신의 나라에 주셨다. 그러나 의심하고 이런 증거들을 그럴 듯한 설명으로 넘겨 버리고 모든 좋은 일 가운데서 의문을 표시하고 비난할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것을 미덕으로 간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몇몇 있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의 종을 고쳐 주시기를 갈망한 백부장은 예수님을 그의 집 지붕 아래로 오시게 하기에는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느꼈다. 그리스도의 능력에 대한 그의 믿음은 대단히 컸기 때문에 그는 그분께, 다만 말씀으로 하시면 그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마 8:10-13).

여기서 예수님은 의심과 대조되게 믿음을 높이셨다. 그분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들의 불신 때문에 걸려 넘어질 것임을 보이셨다. 그것은 큰 빛을 배척하도록 이끌 것이며 그들의 정죄와 멸망을 초래할 것이다. 도마는 그의 손가락을 못 자국에 넣고 그의 손을 그의 주님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갈망한 증거를 주신 후 그의 불신을 책망하셨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 20:29).

어둠과 오류의 현 시대에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주님의 종들을 받아들이든지 배척하든지 할 자유가 있으며, 그들이 그렇게 한 데 대하여 셈을 하도록 부름을 받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234 불신과 어둠이 그들을 이렇게 하도록 인도한다. 그들의 민감성은 그들의 불신으로 무뎌졌다. 그들은 양심을 범하고, 그들 자신의 확신에 충실하지 못하며, 자신들의 도덕적 능력을 약화시킨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그들 자신의 관점에서 본다.

열두 제자를 파송하실 때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다.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가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마 10:11-15). 그들은 사람들에 대하여 조심하도록 경고를 받았다. 이는 그들이 공회에 넘겨지고 회당에서 채찍질 당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은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실 때보다 오늘날 조금도 더 부드러워지지 않았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백성들이 그분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그리스도의 종들을 가능한 한 고달프게 만드는 데 있어서 대원수를 조력하는 데 힘닿는 대로 모든 것을 할 것이다. 그들은 중상과 거짓의 혀로 몹시 괴롭힐 것이다. 그들은 비평하고, 그가 그들로 하도록 이끌고 있는 바로 그 노력들을 하나님의 종들에게 불리하게 돌려버린다. 그들은 그들의 악한 추측으로, 모든 것이 바르고 완전한 정직성이 존재하는 곳에서 사기와 부정직을 볼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인도하고 계시며,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면 그들의 생명까지도 드리려고 하는데도, 이기적 동기를 가졌다고 하나님의 종들을 고소한다. 진리의 사업에서 가장 적게 일해 오고 가장 적게 투자해 온 사람들이 위대한 사업에서 재정적 책임을 감당하는 직임에 맡겨진 하나님의 종들의 성실성에 대한 믿음의 부족을 제일 앞장서서 표현할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사업에 신뢰를 두고 있는 사람들은 그 사업의 전진을 위해서 뭔가 과감히 하려고 하며, 그들의 영적인 번영은 그들의 믿음의 행위에 비례될 것이다. 235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표준이지만, 얼마나 적은 수효의 사람들이 그것을 따르는지! 우리의 종교는 만일 그것이 이론적이기만 하고 실제적이 아니라면 우리의 동료 인간들에게 별로 가치가 없을 것이다. 성경을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세상의 영향과 이기심의 영향을 가지고 다니고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는 분위기를 오싹하게 만드는 구름과 같다.

완고함은 독립이 아님

G 형제여, 그대가 순결하고 사욕 없는, 이기적이 아닌 사랑 그리고 사욕 없는 자선을 계발하는 것은 힘드는 일일 것이다. 그대는 그대의 의견들과 아이디어를 양보하는 데 있어서 그리고 가끔 그대 자신의 판단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의 조언의 지도를 받는 데 있어서 많은 경험을 갖고 있지 않다. G 형제 자매여, 그대들 둘 모두 자아는 더 적게, 하나님의 은혜는 더 많이 가질 필요가 있다. 그대들 모두의 생각이 그리스도의 영에게 굴복될 수 있도록 자제의 습관을 습득할 필요가 있다. 그대의 생각이 올바른 통로로 흐르도록 훈련받기 위해서, 그대가 내뱉는 말들이 바른 말들이 되도록, 그리고 그대의 정욕과 식욕이 이성의 통제를 받고 혀가 경솔과 거룩지 못한 비난과 흠 찾는 일을 하지 않도록 재갈이 물려지게 하기 위해 그대가 필요로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약 3:2). 그리스도의 종교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승리는 자신에 대한 통제이다. 우리의 선천적 성향들은 제어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그리스도께서 이기신 대로 이길 수 없다.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사람들 중에 다소의 영적 소화 불량자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이 자처해서 된 병자로서, 그들의 영적인 무기력은 그들 자신의 결점들의 직접적인 결과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지도 그분의 계명의 원칙들을 실천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분의 사업과 일에 태만하며, 그들 스스로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흠을 발견할 수 있는 어떤 것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할 때, 그 때 그들을 활동적이고 열성을 낸다. 일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건강할 수 없다. 영적인 질병이 의무 소홀의 결과로 나타난다. 236 믿음이 강해지려면 은밀한 기도에서 하나님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만일 그가 전혀 자선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자선이 그에게 축복이 될 수 있을까? 진리의 지식을 그들에게 전해 주기 위하여 우리의 능력을 다하여 일하고 있지 않는 한 어떻게 우리가 영혼들을 회심시키는 일에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까? 그대 자신과 교회에 그대를 쓸모 없는 사람이 되게 한 쇠약을 그대는 자초하였다. 그 치료법은 회개, 고백 그리고 개혁이다. 그대는 도덕적 능력과 하나님의 은혜의 진정한 자양분을 필요로 한다. 그대가 사랑하노라고 공언하고 있는 사업을 묶어 매는 대신에 그것을 진척시키기 위해 일하는 것만큼 그대의 경건에 뼈와 힘줄을 제공해 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영적인 나태함을 치료하는 단 하나의 진정한 치료제가 있다. 그것은 일이다. 즉 그대의 도움이 필요한 영혼들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다. 영혼들을 굳게 해주기는커녕 그대는 하나님의 사업이 전진하는 것을 보기 원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손을 낙담시키고 약화시켜 왔다.

하나님께서는 유익이 되도록 사용하거나, 또는 자신에게 해가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해가 되도록 남용할 수 있는 재능들을 그대에게 주셨다. 그대는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과하신 요구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것은 내세를 위한 품성을 형성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동료 인간들과의 우리의 모든 교제는 그들의 영원한 관심사와 우리 자신의 영원한 관심사와 관련된 것이라야 한다. 그러나 만일 그들과 우리와의 면담이 오로지 쾌락에, 그리고 우리 자신의 이기적 만족에만 할애된다면, 우리가 경박하고 진실치 못하다면, 우리가 그릇된 행위들에 방종하고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동역하는 자들이 아니라 그분을 결정적으로 해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고귀한 생애들은 육에 속한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방법으로, 불신자 친척들에 의하여 꼴 지어져서는 안 되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수 있는 방법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J 형제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누린다면, 그는 빛의 통로가 될 것이다. 그는 도덕적 능력이 너무도 없고, 불신으로 향하는 강력한 경향들을 가지고 있다. 하늘 천사들은 그를 불쌍히 여기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어둠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그의 귀는 거의 끊임없이 불신과 어둠의 말들을 듣는다. 그의 앞에는 끊임없이 던져지는 의심과 질문들이 있다. 그 혀는 “불의의 세계”(약 3:6)이다.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약 3:8). 237 만일 J 형제가 하나님께 더욱 굳게 매어 달리고, 그의 육체적 생명을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그의 성실성을 보존하겠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위로부터 능력을 받을 것이다. 만일 그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어둠과 불신­의심들과 질문들과 많은 잡담들­에 의해 그의 신앙이 영향을 받도록 허락한다면, 그는 머지 않아 온통 어둠과 의심과 불신에 둘러싸이게 될 것이며, 진리 안에서 어떤 빛이나 능력도 갖지 못할 것이다.

그는 우리 신앙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그의 친구들에게 양보하려고 애씀으로써 그 신앙을 자신에게 더 좋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만일 그가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하나님을 순종하겠다는 일편단심의 목적으로 선다면 그는 도움과 능력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은 J 형제를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신다. 그분은 모든 당혹과 모든 좌절, 그리고 모든 독설(毒舌)을 아신다. 그분은 그 모든 것을 익히 아신다. 만일 그가 그의 불신을 제쳐놓고 흔들림 없이 하나님 안에 서려고 한다면, 그의 믿음은 실천으로 강화될 것이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히 10:38).

나는 J와 G 형제가 영생을 상실할 특별한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_____에서의 하나님의 사업의 진척에 직접적으로 방해가 되고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있다. 장막 집회가 처음으로 그곳에서 개최되었을 때 우리는 이 해안에 있었고, 수백 명이 진리에 대해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교회가 어떤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알고 계셨다. 영혼들이 진리 안으로 나아온다 해도, 그들을 양육하고 품어 주고 고상한 삶을 살도록 이끌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J 형제는 시기심 많고, 흠을 찾고, 질투심 많은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가 되지 않으면 그는 어떤 일도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평가하시는 것보다 훨씬 더 높게 자신을 평가했다. 그의 기질과 같은 기질을 가진 사람은 어느 누구와도 의합해서 지낼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생각에 맞지 않으면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싸우고, 반대하고 나서는 것이 그의 기질이기 때문이다. 주께서는 그가 자신의 길을 택하도록, 그리고 그가 어떤 정신적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나타내도록 그를 내버려두셨다. 그는 자신의 가정 내에서 실천하고 있는 동일한 정신을 교회 안으로 가지고 들어와서 거기서 그것을 실천하려고 애썼다. 하나님의 종들에 대한 그의 독설과 잔인한 언사는 책에 기록되어 있다. 238 그는 그것들을 다시 마주 대할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에게서 떠나갔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교회가 그를 독려하여 그들과 다시 연합하도록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지금 그가 가지고 있는 그 정신으로 그는 심지어 하나님의 천사들과도 싸우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천사들의 일을 다스리고 지시하기를 원할 것이다. 이런 정신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하늘에 들어갈 수 없다. 하나님께서 불쾌히 여기시는 I와 J는 하나님의 종들에게 반항하고 그들을 헐뜯고 그들이 악한 동기를 가졌다고 고소하는 일을 감히 해 왔다. 그들은 증언들 뿐 아니라 이 일꾼들에 대한 형제들의 확신을 파괴시키려고 애써 왔다. 그러나 그 일이 하나님께로서 말미암은 것이면 그들이 그것을 쓰러뜨릴 수 없다. 그들의 노력은 허지로 돌아갈 것이다. G 형제여, 그대는 이런 사람들이 바르다고 생각할 정도로 어둠 속에 있다. 그대는 그들의 말을 되풀이하고 “일인 독재”에 대해 말해 왔다. 오, 그대는 자신이 말하고 있는 것에 관하여 얼마나 적게 알고 있었는지!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종들을 헐뜯는 말은 무엇이든지 말하고, 고발하고 질투하며, 흠을 찾을 태세를 항상 갖추고 있다. 그리고, 만일 목회자들이 하나님의 사업을 위한 열성에서 결정적으로 그리고 아마도 좀 심하게 말했다고 생각하는 어떤 경우를 발견할 수 있다면, 그들은 그들의 말들을 흔쾌히 이용하고, 매우 신랄하고 사악한 정신을 품을 자유가 있다고 느꼈고, 하나님의 종들이 그릇된 동기를 가지고 있다고 비난할 자유가 있다고 느껴 왔다. 이들 흠 찾는 자들로 하여금 유사한 짐들을 지고 유사한 상황 아래 있었더라면, 그들 자신이 어떻게 행했을 것인가를 물어 보도록 하라. 그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잘못, 거만한 행위, 그리고 그들 자신의 성마름, 그리고 짜증을 보고, 찾고, 그리고 정죄하게 하라. 그리고 그들 자신이 죄가 없거든 그들로 그들을 정상 상태로 들여놓으려고 애쓰고 있는 형제들에 대해서 비난의 첫 돌을 던지게 하라. 거룩한 하나님께서는 그 교회 안에 존재해 오고 있는 이러한 영향 아래 있게 되도록 진리 안으로 영혼들을 데려오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는 너무 지혜로우셔서, 마음과 생애가 성별되지 못한 이 사람들의 영향에 의해 꼴 지음을 받도록 영혼들을 진리 안으로 인도하지 않으실 것이다. 이 사람들은 진리와 조화되지 못한다. 그들은 몸된 교회와 하나가 되어 있지 않고, 교회로부터 빼내 가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영혼들을 진리 안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사용하고 계신 사람들을 거스려 일하고 있다.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순종하려고 그들의 입장을 정하는 사람들을 누가 양육할 것인가? 239 도움과 힘을 필요로 하고 있는 자들에게 누가 양육하는 부모 노릇을 할 것인가? 이 형제들은 그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그들은 죄인들의 길을 직접 막아서고 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그릇된 행위로 말미암아 그 길을 가로막고 있다. 그들이 회개하고 그들의 길을 전적으로 고치지 않는 한 영혼들의 피가 그들의 옷에 묻어 있을 것이다. 이 불평하는 자들은 그들이 옳고, 안식일 준수자들의 단체(body of Sabbathkeepers)는 속임을 당했다고 믿는가?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20). 하나님께서 누구를 축복하고 계신가? 그분께서 누구를 인도하고 계신가? 누가 그분을 위해서 일하고 있는가? 누가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진리를 전달해 주기 위해서 노력하면서 선을 행하고 있는가? 이 사람들은 안식일 준수자들의 단체가 그들에게로 와서 저들의 경험과 견해들을 포기하고 이들 성별되지 않은 자들의 판단을 따르리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들이 그 단체와 일치하게 될 것인가?

G 형제는 그의 생각과 판단의 독립성에 대하여 뻐기지만, 그는 자신의 성별되지 못한 생활과, 그분의 종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맹목적으로 싸우는 가운데 그 일을 반대함으로써 죄인들의 길을 차단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참된 독립의 특성이 무엇인지 모르고 속임을 당하고 있다. 완고함이 자주 독립성과 혼동되기는 하지만 독립은 완고함이 아니다. G 형제는 의견을 형성하고 강력한 확신으로 그것을 그의 가정이나 교회에서 표현해 왔다. 그리고 어느 정도 공표가 되면, 그 다음에는 그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온갖 논증으로 자신이 옳게 보이도록 만들려는 경향이 있다. 그는 눈을 감고 고집으로 양심을 그르칠 위험이 매우 크다. 왜냐하면 원수의 시험이 그에게 강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견에 대한 자만은, 심지어 그가 납득하려고만 한다면 그럴 만한 충분한 빛과 증거를 앞에 두고도 굴복시키기가 어렵다. 그는 만일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의 판단과 식별력을 손상시키는 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G 형제여, 그대는 그대의 영혼을 잃어버릴 큰 위험 가운데 빠져 있다. 그대는 걸출하게 되기를 원한다. 이따금 자신이 경시당한다고 생각하면 그대는 심각해진다. 그대는 행복한 사람이 아니다. 말해진 진리가 너무 가혹하다고 하여 그리스도의 많은 추종자들이 했던 것처럼, 명백한 말씀과 사실에 성을 내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떠난다면 그대는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240 그대는 그대 자신을 버릴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대는 바르지 않다. 그대는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있다. 그대의 기질은 그대의 원수이며, 그대가 어디로 가든지 그대는 그대의 불행의 짐을 함께 지니고 다닐 것이다. 식별되자마자 잘못을 고백하는 것은 명예스러운 일이다.

하나님의 사업과 관련하여 그대가 흠을 발견하는 많은 일들이 있다. 왜냐하면 그대가 그렇게 하는 것이 자연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대 자신에 관하여 드러내 주신 빛을 외면하였기 때문에 그대는 그대의 식별력을 신속히 잃어 가고 있으며 모든 것에 언제라도 흠을 찾을 태세다. 그대는 독재자적인 확신으로 그대의 의견을 내놓고 그대의 의견에 관한 타인의 의문들을 개인적인 학대로 취급한다. 참된, 세련된 독립은 결코 경험 있는 자들, 그리고 현명한 자들의 조언을 구하는 것을 떳떳치 않다고 여기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의 조언을 존중심으로 대한다.

가족 내의 신앙

G 형제여, 그대는 회심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영생을 잃을 것이다. 그대는 지혜로운 온유를 얻을 때까지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없다. 그대와 그대의 아내는 서로 반대되는 목적으로 너무도 오랫동안 일해 왔다. 그대는 이런 흠 찾기, 이런 의심들, 질투들, 그리고 불행한 말다툼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대의 가정에서 발전되어 온 정신은 그대의 종교 경험에도 옮아간다. 그대가 그대의 자녀들이 있는 데서 상대방의 실수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는지에 대하여 조심하라. 그리고 그대의 정신이 그대를 어떻게 통제하도록 할 것인지에 관해서도 조심하라. 그대는 그대의 장남에게서 오로지 나쁘고 악한 것들만을 본다. 그대는 그가 좋은 특질들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가 만일 죽는다면 그대는 그가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갑자기 확신하게 될 것이다. 그대 중 어느 누구도 그대의 아들에 관하여 일관된 길을 좇고 있지 않다. 그대들은 다른 사람들이 있는 데서 그의 결점들을 길게 논하며, 그대들이 그의 품성의 좋은 특질들을 조금도 신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대들 각자에게는 서로 상대방의 실수를 보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모든 다른 사람들의 실수를 찾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그대들 각자는 그대들 자신의 결점과 많은 실수들에 눈멀어 있다. 그대들 둘 모두 신경질적이고, 쉽게 흥분하고 짜증을 낸다. 241 그대는 지혜로운 온유성을 필요로 한다. 그대는 그대 자신의 약점, 정욕들, 그리고 편견들에 고집스럽게 집착한다. 그것들이 가시요, 찌르고 상처를 주는 가시들인데도 불구하고 그대는 그것들을 버리면 이 세상에서 더 이상 행복을 가질 수 없는 양 그렇게 한다. 예수님은 그대의 목을 괴롭히고 있는, 그대가 져 온 멍에를 내려놓고 쉬운 멍에, 가벼운 그분의 짐을 지라고 그대를 초청하신다. 자기 사랑, 탐욕, 자만, 정욕, 질투, 그리고 악한 추측의 짐은 얼마나 지기에 곤비한가.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런 저주거리들을 얼마나 꽉 껴안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들을 포기하기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과하는 이 짐들이 얼마나 혹독한지를 이해하신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에게 그것들을 내려놓으라고 초청하신다. 그분께서는 무거운 짐을 지고 곤비한 영혼들에게 당신께 와서 자신들에게 묶어 맨 짐들을 그분의 가벼운 짐과 바꾸어 메라고 초청하신다. 그분은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29, 30)고 말씀하신다.

일단 그릇된 쪽으로 그의 입장을 정하고 나면 G 형제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고백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만일 그가 그의 잘못된 행위를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도록 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인정함 없이 좀 더 낫게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면, 그는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실수와 고백되지 않은 죄들은 하늘에 기재된 채로 있을 것이며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주어진 지시대로 따르기까지는 도말되지 않을 것이다.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약 5:16). G 형제가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 외에 다른 계획을 발견했다면, 그것은 안전한 길이 아니며, 마침내 그를 파멸시킬 것이다. 이 다른 길은 교회에 파멸적이며, 그의 가족의 번영과 행복에 파멸적이다. 그는 그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고, 자애로움, 겸비 그리고 사랑을 그의 영혼 속에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는 이기적이 아닌 특질들을 배양할 필요가 있다. G 형제 자매여, 그대들은 그대들을 순결하게 하며, 자아를 잊게 하고, 그대들이 접촉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게 해 줄 정신의 특질들을 계발시켜야 한다. 242 그대의 행복을 증진시켜 주지 않고 그대에게 비탄과 슬픔을 가져다 주는 자아 사랑에 대한 기질과 자아에 대한 염려가 있다. 그대들은 오로지 그대들 자신만이 담당할 수 있는 그대 자신들과 관련된 싸움이 있다. 그대들 둘 모두 혀를 다스리고 그대들이 말하는 많은 것들을 삼가야 한다. 첫 번째 악은 잘못을 생각하는 데 있다. 그러고 나서 잘못된 말이 나온다. 그러나 그대는 서로에 대한 사랑, 복종, 그리고 존경을 계발시키는 일을 방치해 두고 있다. 상대방의 감정에 대해 친절하게 헤아려 주고, 서로의 행복을 신성하게 지켜 주도록 힘쓰라. 그대들은 예수의 능력과 이름으로써만 이 일을 할 수 있다.

G 자매는 승리를 얻으려고 강력한 노력을 해 왔으나, 남편으로부터 많은 격려를 받지 못해 왔다. 그들의 품성의 결점들을 정복할 능력을 달라고 열렬한 기도로 하나님을 찾는 대신에, 그들은 서로의 행위를 주목해 보고 상대방의 행위에서 결점을 찾음으로써 그들 자신을 약화시켜 왔다. 마음의 정원은 돌봄을 받지 못했다.

만일 G 형제가 몇 개월 전에 주께서 그에게 보내신 빛을 받아들이고 그의 아내와 솔직하게 대화했더라면, 만일 둘이 주님 앞에서 그들의 완고한 마음을 깨뜨렸더라면, 그들의 현재 상태는 얼마나 달라졌을 것인가.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영의 견책과 호소의 말씀을 경홀히 여겼고, 그들의 생애를 개혁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내신 빛에 눈을 감았다고 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의 실수 중 어느 하나도 위중성이 감해 지거나 그들의 책임이 덜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주께서 불쌍히 여기시는 자애로움으로 그들에게 주신 견책을 싫어하였다. G 형제는 천성적으로 친절하고 자애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자랑, 허영, 그리고 악한 추측으로 껍질이 덮여 있다. 그의 마음은 무감각하지는 않으나 도덕적 능력이 부족하다. 그는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아 부정, 자아 희생의 필요성이 그의 앞에 제시되자마자 겁쟁이가 된다. 자아를 통제하고, 그의 말에 파수꾼을 세우고,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거나 말에 실수했다고 인정하는 것은 그가 지기에는 너무도 굴욕적이라고 느끼는 십자가이다. 그렇지만, 구원을 받기 원한다면 그는 이 십자가를 져야 한다.

G 형제 자매여, 그대들은 모두 그대들의 말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대의 생각과 행동에 세워진 파수병이 없는 것이 분명해지자마자, 그대들은 서로를 좌절시키고 그대들 중 어느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는 확실한 경우가 되게 한다. 243 그대들 둘 모두 성급한 말과 행동을 촉발시키는 성급한 정신에 대해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대가 그릇된 취급을 당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품게 되는 적개심은 사단의 정신이며, 심대(甚大)한 도덕적 악으로 인도한다. 그대가 성급한 정신에 지배될 때, 그대는 한 동안 그대의 말과 행동을 규제하는 이지력을 빼앗으며, 한편 그 모든 악한 결과에 대해서 그대 자신이 책임을 지게 만든다. 성급하게 그리고 분노 중에 행해진 행동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 행동은 나쁘다. 그대는 성급하고 충동적으로 말해진 단 한마디의 말로 결코 잊혀지지 않을지도 모를 상처를 친구들의 가슴에 남길 수도 있다. 자제를 행사하지 않는 한 그대들은 가장 불행한 부부가 될 것이다. 그대들 각자는 그대들의 불행한 생활을 상대방의 결점 탓으로 돌린다. 그러나 더 이상 그렇게 하지 말라. 상대방에게 비난의 말을 결코 한마디도 하지 않기로, 그리고 할 수 있을 때는 언제나 칭찬과 찬사의 말을 해주는 것을 규칙으로 삼으라.

제지를 받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마음에 있는 불유쾌한 것들을 다 털어놓는 그들의 거리낌없는 습관을 칭찬하여 말할 것이다. 그들은 질책과 흠을 찾는 말로써 그들의 성난 정신을 폭포수처럼 완전히 다 쏟아 놓는다. 그들이 더 많이 말할수록 그들은 더욱 흥분되며, 그것은 다시 되돌아가서, 더욱 거친 말을 불러일으키는 성을 돋굴 것이다. 그리하여 급기야 작은 문제가 큰 불로 타오르게 된다. 그대 둘 모두는 그대들이 어쩌면 견딜 수 있는 온갖 시련들을 가지고 있으며, 그대들의 생활이 대단히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다. 단호하게 그대들의 생각, 그대들의 말, 그대들의 행동을 통제하는 일을 시작하라. 그대들 중 어느 누가 적개심이 솟아나는 것을 느끼거든, 홀로 가서 거짓된 입술에서 나오지 않은 기도에 귀를 기울이실 하나님께 겸손히 기도를 드리는 것을 규칙으로 삼으라.

각각의 정욕은 개화된 양심의 통제 아래 두어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 3:12-15).

244 그대가 더하기 법칙에 의거하여 살면서 은혜에 은혜를 더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대에게 그분의 은혜를 곱하기 법으로 주실 것이다. 그대가 더하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곱하신다. 하나님께서 그대가 행하고 말하는 모든 것을 보시고 들으시며, 그대의 모든 말과 행위를 충실하게 기록하고 계시며, 그대가 그 모든 것을 마주 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마음에 품는다면, 그대는 그대가 행하고 말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밝아지고 방심하지 않는 양심의 지시를 따르려고 애쓸 것이다. 그대의 입술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사용되어지고 그대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축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대가 지금까지 해 온대로,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다면, 그대의 혀가 불의의 세계가 되어 그대에게 두려운 정죄를 가져오지 않도록 유의하라. 왜냐하면 영혼들이 그대를 통하여 잃어버림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제의 의무

우리의 동물적 본성의 식욕들은 마땅히 엄격하게 복종시켜 두어야 한다. 이 식욕들은 중요한 목적, 곧 선을 위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지 왜곡되고 싸우는 정욕이 됨으로써 사망의 사자들이 되도록 주어진 것이 아니다. G 형제여 그대가 방종으로 강화시키고 있는 담배에 대한 욕구는 그대의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정욕이 되어 가고 있다. 부절제하는 사람은 참을성 있는 사람이 될 수 없다. 거의 눈치 차리지 못할 정도의 미각의 방종이라 할지라도 더 강한 자극제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생각, 정욕, 그리고 식욕을 적당하게 복종시켜 둔다면, 혀가 다스려질 것이다. 도덕적 능력을 불러 그대의 도움을 삼으며, 영원히 담배를 끊어 버리라. 그대는 그대가 담배를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숨기려고 노력해 왔지만 하나님께는 숨기지 못한다.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 4:8-10). 나는 나에게 사명을 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말씀을 그대들에게 추천하는 바이다. 그것들을 배척하지 말라.

245 그대의 비행(非行)들이 책망을 받지 않았더라면 그대는 지금처럼 증언들을 결코 배척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대는 담배를 끊고 경솔과 불신자들과의 농담의 생활을 그치기보다는 증언들을 희생시키고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주신 빛에 대하여 그대의 눈을 감아 버리는 것이 훨씬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정화시키는 과정은 그대가 견딜 만한 도덕적 능력을 갖고 있지 않은 부정(否定)과 제어(制御)를 수반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대는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보내신 빛을 불신함으로써 그대의 죄를 변명하려고 생각한다. 기억하라. 그대는 이 모든 것들을 다시 마주 대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는 이것들은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전하라고 나에게 위탁해 오신 모든 경고와 견책들과 함께 책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J 형제는 불쌍히 여김을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선천적으로 결함이 많은 신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소망은 작다. 그의 불신과 의심은 그의 판단을 지배한다. 그는 천성적으로 불신하는 일과 의문을 표시하는 편에 선다. 이 큰 악을 정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와 반대되는 품성의 특성을 계발하는 것이다. 그는 불신을 억눌러야지 계발해서는 안된다. 그는 그의 의심들을 표현해서는 안된다. 그는 다른 사람들 앞에 그의 품성의 결점들을 불쑥 내어놓아, 그들로 하여금 슬퍼하고 좌절하게 만들 아무런 권리가 없다. 만일 그가 이런 슬픈 악에 영향을 받은 것이 틀림없다면, 그는 그의 불신을 꺼내 놓아 그의 형제들의 믿음을 냉랭하게 만듦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초를 쳐서는 안 된다. 그는 위안과 격려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모든 설교와 권고에서 거의 모든 것을 그냥 지나쳐 버리고, 그의 의문 표시와 비평에 대한 핑계거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것을 끄집어내려는 경향이 있다. 그의 영혼의 통로는, 사단이 들어와서 그의 목적대로 그의 마음을 꼴 지을 수 있도록 활짝 열려진 채로 경계되지 않은 채 버려져 있다.

그대의 집회들은 하나님의 영이 거기 계시지 않기 때문에 관심을 잃어 가고 있음이 내게 보여졌다. 형제 자매들은 이 두 사람 때문에 완전히 예속되어 있다. 그들은 그들의 자유를 감히 행사하거나 그들의 영혼의 단순성 가운데서 그들의 신앙을 기탄 없이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여기 J 형제가 그의 차갑고, 가혹하고, 비평적인 눈으로 그의 믿지 아니하는 마음의 기능을 행사할 기회를 그에게 가져다 줄 어떤 말이고 엿보며 낚아챌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 사이에서 하나님의 영은 슬퍼하며 그 집회를 떠나셨다. 246 형제들이 용의 정신을 나타내고, 하나님께서 증언들을 통하여 그들에게 빛과 위로를 전달해 오셨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과 싸움을 벌일 때, 이 때는 형제 자매들이 그들의 자유와 완전한 양심의 자유를 주장할 때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빛을 주어 오셨다. 그리고 그 빛을 간직하고 서로를 굳게 하고 격려하기 위하여 그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그들의 특권이다. J 형제는 하나님께서 증언들을 통하여 주신 빛이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여진 것으로 보이게 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혼동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그 문제를 그릇된 각도에서 제시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방식으로 그분의 백성들의 마음을 그분의 말씀으로 인도하여, 그들이 그것에 대하여 보다 명확한 이해를 하도록 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보셨다.

_______의 교회는 거기에 작용해 온 영향, 즉 그것이 전진하도록 돕는 영향이 아니라 바퀴들이 굴러가는 것을 방해하는 영향 때문에 점점 더 약해지고 있다. J 형제가 그의 불신을 제쳐놓고, 원한다면, 그 빛과 함께 전진하는 것이 J 형제의 특권이다. 그가 이렇게 하기를 거부한다 해도, 하나님의 사업은 그의 도움 없이도 전진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______의 교회 안에 변화가 일어나기를 계획하신다. 그들은 전진하든지 퇴각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J와 G 형제가 해 오는 것처럼 행하고 있는 수십 명의 사람들을 통해서보다, 같은 마음과 판단으로 연합된 6명의 영혼을 가지고 더 큰 일을 하실 수 있다. 그들은 교회로 들어오면서 그들과 함께 빛의 천사들이 아니라 어둠의 천사들을 데리고 왔다. 그 집회들은 무익했고, 가끔 적극적인 해가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들이 주님의 편으로 와서 몸과 연합하든지 아니면 온전히 주님의 것이 되려는 사람들을 방해하는 일을 그치라고 요청하신다.

그리스도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그토록 많은 제자들이 중한 유혹에 빠져서 회개해야 할 일을 만드는 큰 이유는, 그들이 자신에 대해서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서 베드로는 원수에 의해 너무도 철저하게 체질을 당했다. 바로 여기서 수천의 사람들이 믿음의 파선을 할 것이다. 그대는 그대의 잘못들과 실수들을 슬퍼하지 않으며 그것들로 인해 그대의 영혼을 괴롭게 하지 않는다. 그대에게 탄원하노니, 진리를 순종함으로써 그대의 영혼을 순결하게 하라. 그대 자신을 하늘과 연결시키라. 주께서 그대를 자아 기만에서 건져 주시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계명의 신성성

247 크게 존경을 받는 K 형제에게:1875년 1월에, 나는 교회의 영적 번영의 길에 방해물들이 있는 것을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과 생애에 있어서 올바르지 못하므로 성령께서 슬퍼하신다. 그들이 공언하는 믿음은 그들의 행위와 일치되지 않는다. 여호와의 거룩한 안식일은 마땅하리 만큼 지켜지지 않고 있다. 매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시간의 경계선에서 침해를 받고 유린을 당하신다. 기도와 명상에 드려져야 할 시간이 세상 사무에 쓰여진다.

하나님께서는 믿을 뿐 아니라 순종해야 할 계명을 주신다. 위대하신 여호와께서는 지구의 기초를 놓으신 후 온 세상을 아름다움으로 입히시고, 사람에게 유용한 것들로 거기에 채우시고, 곧 땅과 바다의 온갖 경이로운 것들을 창조하시고, 안식일을 제정하셔서 그것을 거룩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제칠일을 축복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 당신의 놀라운 창조 사업을 모두 마치고 쉬셨기 때문이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제정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엿새 동안의 창조 사업 후에 쉬신 것 같이 사람이 이 날에 노동을 쉬기를 원하셨다.

십계명의 넷째 계명에 대한 빛을 받은 후에 여호와의 계명을 존중하는 자들은, 순종하는 것이 좋든지 싫든지, 편리하든지 불편하든지 따지지 않고 그것을 순종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드시고, 당신이 거룩하게 구별하신 안식일을 지키는 모본을 보이셨다. 그분은 이 날 사람이 당신을 경배하고 세속적인 일에 종사하지 않도록 계획하셨다. 안식일의 요구를 깨달은 후에 넷째 계명을 무시하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 보시기에 죄 없지 않다.

K 형제여, 그대는 안식일을 준수하라는 하나님의 요구를 인정하나, 그대의 행위는 그대가 주장하는 믿음과 일치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한, 그대는 불신자 편에서 감화를 끼치고 있다. 248 세속적 환경에 주의를 돌릴 필요가 있을 때에, 그대는 양심에 거리낌없이 넷째 계명을 범한다. 그대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편의상의 문제로 삼고, 그대의 사업이나 기분에 따라 순종하기도 하고 불순종하기도 한다. 이것은 안식일을 거룩한 제도로 존중하는 것이 아니다. 그대는 이러한 무분별한 행동을 함으로 성령을 슬프게 하고 그대의 구속주에게 욕을 돌린다.

안식일 계명을 부분적으로 지키는 것은 주께 가납되지 않으며, 그대가 안식일 준수자라고 공언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쁜 영향을 죄인들의 마음에 끼친다. 그들은 그대의 생애가 그대의 신앙과 모순되는 것을 깨닫고 그리스도교에 대한 신임을 잃어버린다. 주님은 말씀하신 그대로 하시기 때문에, 사람이 그분의 계명을 무시할 때는 형벌을 면할 수 없다. 에덴 동산에서의 아담과 하와의 예는 거룩한 율법을 불순종하는 일에 대하여 우리에게 충분한 경고가 되어야 한다. 원수의 그럴듯한 유혹에 귀를 기울인 우리의 첫 조상들의 죄는 세상에 범죄와 슬픔을 가져오고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 궁정을 떠나 지상의 비천한 처지에 놓이게 하였다. 그분은 당신이 친히 축복하시러 오신 바로 그들에 의해 모욕과 거절과 십자가의 형을 받으셨다. 에덴 동산의 불순종 때문에 얼마나 무한한 대가가 지불되었는가! 하늘의 임금께서 인간을 범죄에서 구해 내기 위하여 희생되셨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그분의 계명에 대한 어떠한 범법도 당신께서 아담에게 선고를 내린 당시보다 가볍게 여기지 않으실 것이다. 세상의 구주께서는 거룩한 율법을 부주의하고 무관심하게 대하는 자들에 대하여 목소리를 높이신다. 그분은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마 5:19). 우리의 생애가 드러내는 교훈은 전적으로 진리를 위하든지 반대하든지 둘 중 하나이다. 만일, 그대의 행위가 범죄자의 죄를 정당화시켜 주는 것처럼 보이거나 그대의 감화가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것을 가볍게 만든다면, 그대는 스스로 죄를 범함은 물론이요 그 영향으로 다른 사람들이 범하는 잘못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한다.

249 넷째 계명의 바로 서두에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많은 염려와 고충 속에서 계명의 완전한 요구에 응할 수 없다고 핑계할 유혹을 당할 것과, 세상 사업의 압박 속에서 넷째 계명의 거룩한 의미를 망각할 것을 아시고 “기억하라”고 말씀하셨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출 20:9). 곧 세상의 이익과 쾌락을 위한 생활상 일상 사업이 여기 포함된다. 이 말씀은 매우 명백하여 오해할 여지가 없다. K 형제여, 이와 같이 엄숙하고 중요한 계명을 어떻게 감히 범하는가? 주께서 세상에 주신 계명에서 그대를 면제시키는 예외를 만드셨는가? 그대의 범법이 기록책에서 누락될 것인가? 민족들이 그분 앞에 심판을 받기 위하여 나아 올 때에 그분께서 그대의 불순종을 용서해 주기로 하셨는가? 그대의 죄가 그에 상응하는 형벌을 가져오지 않으리라는 생각으로 한 순간도 그대 자신을 속이지 말라. 그대가 빛을 받았으나 그것과 정반대로 행했기 때문에, 그대의 범법에는 형벌의 채찍이 따를 것이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눅 12:47).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그 자신의 일과 생애의 일반 사업을 하도록 엿새를 주셨다. 그러나 당신이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신 한 날을 요구하신다. 그분은 그 날을, 사람이 노동에서 쉬고 예배에 바쳐 그의 영적 상태를 증진시키는 날로 삼게 하신다. 인간이 여호와의 거룩한 한 날을 도적하여 자신의 이기적 목적에 사용하는 것은 얼마나 큰 죄를 범하는 일인가!

유한한 인간이 자신의 보잘것없는 일시적 이익을 위하여 감히 전능하신 분과 타협하는 것은 가장 참람된 일이다. 때때로 안식일을 세속적 사업에 사용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것을 거절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모한 범법이다. 그것은 주님의 계명을 편의상의 문제로 삼기 때문이다.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이 시내산에서 우레와 같이 울려 나온다. 부분적 순종, 분리된 관심은, 그분을 미워하는 자들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시고, 그분을 사랑하며 그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시겠다고 말씀하시는 분에게 가납될 수 없다. 250 이웃의 것을 훔치는 것은 작은 문제가 아니며, 그러한 행동을 한 죄가 있다고 판명되는 자에게 찍혀지는 낙인은 대단하다. 그러나 동료 인간의 것을 사취하는 것을 멸시하는 자가 하늘 아버지께서 축복하시고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구별하신 시간을 부끄러움도 없이 훔치고 있다.

나의 사랑하는 형제여, 그대의 행위는 그대가 공언하는 신앙과 어긋나고 있으며, 그대의 유일한 변명은 편의상 어쩔 수 없었다는 가련한 호소뿐이다. 과거에 하나님의 종들은 그들의 믿음을 옹호하기 위하여 생명을 버리라는 요구를 받았다. 그대의 행동은, 신앙을 포기하거나 진리의 원칙을 희생하기보다는 차라리 굶주림과 기갈, 고문과 죽음을 당한 그리스도인 순교자들의 행동과 일치하지 않는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약 2:14)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안식일에 일하고자 그대의 손을 놀릴 때마다, 그대는 실제적으로 그대의 신앙을 부인한다. 거룩한 말씀은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것이라고 알려 주고, 생애의 증언은 그가 공언하는 믿음이 과연 진실한지 않은지를 세상에 선포한다. 그대의 행위는 그대의 세상 친구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낮게 평가하도록 해준다. 그것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 준다. “그대들은 계명들을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된다. 나는 하나님의 계명이 어떤 의미로는 사람들에게 구속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주께서는 그 조항들을 엄격히 지키는 일에 매우 철두철미하신 분이 아니시며, 간혹 범법해도 그분께서 혹독하게 처벌하지 않으신다.”

많은 사람들이 그대를 예로 들어 안식일을 범하는 것을 스스로 변명한다. 그들은, 제칠일이 안식일이라고 믿는 그처럼 선한 사람이 상황이 그렇게 요구하는 것처럼 보일 때는 그 날에 세상 사업에 종사할 수 있다면, 분명히 그들도 정죄받는 일 없이 그 동일한 일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대의 감화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불순종했노라고 핑계하면서 심판날에 그대를 대면할 것이다. 비록 이것이 그들의 죄에 대한 변명은 될 수 없을지라도, 그것은 그대에게 두렵게도 불리한 증언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고, 그분께서는 인간이 순종하기를 요구하신다. 251 그분은 인간이 그렇게 하는 것이 편리한지를 묻지 않으신다. 생명과 영광의 주께서는 인간을 불순종의 결과에서 구원해 내기 위하여 높은 사령관의 자리를 떠나시고 슬픔의 사람, 질고를 아는 자가 되셔서, 치욕과 죽음을 당하실 때 당신의 편의와 즐거움을 고려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사람을 구원하시되 죄 있는 그대로 구원하지 않으시고, 죄에서 떠나도록 구원하고자 돌아가셨다.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라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르며 자아를 부정하고,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하나님을 순종하면서 자신의 길의 잘못을 버려야 한다.

예수께서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진실한 종이라면, 그분의 계명을 순종할 것인지 우리의 현세적 이익을 고려할 것인지에 대해 우리 마음에 의문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비교적 평화스러운 요즘, 진리를 믿는 자들이 그들의 믿음으로 지탱되지 못하고 있다면, 큰 시험이 오고 이마에나 손에 짐승의 표를 받거나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모든 자들에 대한 법령이 내릴 때 무엇이 그들을 지탱해 주겠는가? 이 엄숙한 시기는 멀지 않았다. 연약하고 우유부단해지는 대신, 하나님의 백성들은 시련의 때를 위하여 힘과 용기를 축적해야 한다.

우리의 모본이신 예수께서는 당신의 생애와 죽음을 통하여 가장 엄격한 순종을 가르치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계명의 명예가 보존되면서도 사람이 완전히 멸망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의로운 자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고, 죄 없는 자로서 죄인을 대신하여 돌아가셨다. 죄는 불법이다. 아담의 죄가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희생을 요구할 만큼 그처럼 말할 수 없는 불행을 가져 왔다면, 진리의 빛을 보면서도 주님의 넷째 계명을 무시하는 자들이 받을 형벌은 어떠하겠는가?

환경은 세속적 이익을 위해 안식일에 일하는 어떤 사람도 정당화시켜 주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용납하신다면 모든 사람을 용납하셔야 할 것이다. 어찌하여, 가난한 L 형제는 안식일에 일을 하면 가족을 보다 잘 부양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계를 위한 돈을 벌기 위하여 안식일에 일하지 않는가? 252 어찌하여, 다른 형제들이나 우리 모두는 편리할 때에만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가? 시내산에서의 음성이 대답해 준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출 20:9, 10)이다.

진리를 믿는 자들이 범한 잘못들은 교회를 크게 약화시킨다. 그것들은 죄인들의 길에 놓여진 거치는 돌이 되어, 빛으로 나아오는 것을 막는다. 형제여,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완전히 그분의 편으로 나아와서 그대의 행동으로 그분의 계명을 존중하는 것을 보여주고 안식일을 범하지 않도록 그대에게 호소하신다. 그분은 그대의 의무에 대하여 각성하고 맡겨진 책임에 성실하라고 명하신다. 다음과 같은 엄숙한 말씀이 그대에게 주어져 있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사 58:13, 14).

우리 형제들 중 많은 사람들처럼, 그대 역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자들과 어울리고, 그들의 견해에 따라 사물을 보고 그들이 가진 오류 속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섬기노라고 공언하면서도 사실상 금전을 섬기는 자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개인적인 이익을 위하여 주님의 명백한 명령을 무시하는 자들은 장래의 화를 스스로 쌓고 있다. ____에 있는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을 마치 유대인들처럼 장사하는 곳으로 만들지 않았는지 엄격하게 살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마 21:13)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백성들 중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이익을 위해 신앙을 희생하는 죄에 빠져들고 경건의 모양은 유지하면서도 마음은 오로지 세속적인 사업에 바치고 있지 않는가? 하나님의 계명은 무엇보다 으뜸으로 생각해야 하고 글자 그대로 마음을 다해 순종해야 한다. 253 거룩한 산에서 두렵고도 엄숙하게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이 경하게 취급된다면 그분의 영의 증언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겠는가? 인간에게 직접 주신 주님의 계명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을 만큼 어두워진 마음들은 그분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교훈하시기 위하여 택하신 연약한 도구를 통하여 거의 아무런 유익도 받을 수 없다.

그대의 나이가 그대를 거룩한 명령을 순종하는 것에서 면제해 주지 않는다. 아브라함은 노년에 혹독한 시험을 당했다. 주님의 말씀은 이 늙은 노인에게 무섭고 지나치게 보였으나, 그는 결코 그 정당성을 의심하지 않았고 순종하기를 주저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이 늙고 연약하므로 그의 생애의 기쁨이 되는 그 아들을 희생할 수 없다고 간원할 수도 있었다. 그는 이 명령이 그의 아들에 대하여 하신 약속과 상치된다고 주께 상기시켜 드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순종은 한 마디의 불평이나 비난도 없는 것이었다. 하나님을 믿는 그의 신뢰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우리에게 본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영원한 복리를 위태케 하는 죄를 책망하는 단순한 시험을 묵묵히 견뎌 낼 자들이 얼마나 적은가. 책망을 겸손하게 받고 그것을 통해 유익을 얻는 자가 얼마나 적은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과 봉사와 사랑을 요구하실 때, 우리는 즐겁게 반응해야 한다. 우리는 주께 무한한 빚을 진 자들이므로 지극히 작은 그분의 요구도 주저하지 말고 순종해야 한다. 율법을 범하는 자가 되기 위하여 모든 도덕률을 짓밟을 필요는 없다. 한 계명을 무시해도 우리는 거룩한 계명을 범하는 자가 된다. 그러나 우리가 계명을 진실히 지키는 자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모든 요구 사항을 엄격히 준수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계명을 범한 대가를 지불하기 위하여 당신 자신의 아들이 죽임을 당하도록 허락하셨다. 그렇다면, 그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진리의 빛을 받은 후에 감히 불순종의 길을 가고자 모험하는 자들을 그분께서 어떻게 취급하실 것인가? 이 문제에 있어서 사람은 편리나 궁핍을 내세울 권리가 없다.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실 것이다. 시냇가에서 까마귀를 사자로 삼아 엘리야를 먹이신 분께서는 당신께 충실한 자들이 음식에 궁핍을 당하도록 용납하지 않으실 것이다.

254 구주께서는 가난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고 염려하느냐고 물으셨다. 그분은 말씀하셨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 6:26). 그분은 하나님의 손에 의해 창조되고 채색된 아름다운 꽃들을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마 6:28-30).

하나님의 백성들의 믿음은 어디에 있는가?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고 당신의 능력으로 그들을 붙들어 주시는 그분을 왜 그들은 믿지 못하고 신뢰하지 못하는가? 주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의 믿음을 시험하실 것이다. 그분은 경고의 책망을 보내시되, 만일 그 경고에 유의하지 않으면 재난이 따를 것이다. 그분은 당신께 대한 충성에서 떠나간 자들이 어떤 대가를 치를지라도, 죄악의 치명적인 혼수 상태를 깨뜨리고 의무에 대한 감각을 일깨워 주실 것이다.

나의 형제여, 그대의 심령은 각성되어야 하고, 그대의 믿음은 증진되어야 한다. 그대는 이런 저런 구실로 그대의 불순종을 너무 오랫동안 핑계해 왔으므로, 그대의 양심을 달래어 쉬게 하고, 그대의 잘못을 깨우쳐 주는 일을 그치게 했다. 그대는 너무 오랫동안 안식일을 지키는 데 있어서 그대 자신의 편의를 따랐으므로 그대의 불순종의 길에 대해 그대의 마음은 가책을 받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그 책임은 그대에게 있다. 그대 스스로가 이런 상태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즉시 거룩한 계명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라. 그분께서 무서운 형벌을 그대에게 내리지 않도록, 그분의 진노를 격발하지 말라. 너무 늦기 전에 그분께로 돌아가서, 그대의 범죄를 용서받으라. 그분은 자비가 많고 풍성하시다. 겸손한 믿음으로 그분께 나아가면, 그분께서는 당신의 평안을 주시고 그대를 가납해 주실 것이다.

교회와 가정에서의 이기심

255 사랑하는 M 형제에게:나는 이상 중에 그대의 품성 가운데 결함이 있으며 이것은 고쳐져야 한다는 것을 보았다. 그대는 그대의 아내에 대하여 견해와 감정이 바르지 않다. 그대는 아내를 잘 알지 못한다. 그녀는 그대가 마땅히 그녀에게 주었어야 할 동정과 사랑의 말을 받지 못했다. 가정에서 그녀가 가지고 있는 염려와 지고 있는 부담에 대해 칭송하는 것은 그대의 남자다움의 위엄을 감소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대는 이기적이고 엄격하다. 그대는 그대의 아내와 아이들에게서 사소한 것들을 끄집어내며 작은 실수에 대해 말한다. 짧게 말하자면, 그대는 자신의 것으로 그들의 양심을 측정하려고 하며, 그들에 대한 양심이 되고자 애쓴다. 그대의 아내는 자신의 고유한 개성이 있으며, 이것은 자기 남편의 것에 결코 융합될 수 없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보존해야 할 독자성이 있다. 왜냐하면 그녀는 하나님 앞에 스스로 회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M 형제여, 그대는 그대의 아내가 형성하는 품성에 대해 하나님 앞에 책임을 질 수 없다. 그녀는 홀로 이 책임을 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그녀에 대하여 그대의 양심에 감명을 주시는 것처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그대의 아내의 양심에 기꺼이 감명을 주신다.

그대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다. 그대는 너무 많이 비난한다. 만일 그대가 자신에게 쾌활하고 행복한 기질을 북돋우고, 그들에게 친절하고 온유하게 말한다면, 그대는 그대의 거처에 구름과 슬픔, 그리고 불행 대신에 햇빛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그대는 자신의 견해를 너무 많이 생각한다. 그대는 극단적인 입장을 취했으며, 그대의 가정 안에서 마땅히 그랬어야 할만큼 아내의 판단을 존중하지 않았다. 그대는 스스로 그대의 아내를 존중하도록 고취되지 않았으며, 또한 그녀의 판단을 존중하도록 아이들을 교육시키지 않았다. 그대는 그녀를 자신과 동등하게 여기지 않았으며, 통제하고 조절하는 고삐를 자신의 손에 잡고 그들을 단단히 붙잡았다. 그대는 애정 있고 동정하는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 만일 그대가 승리자가 되기를 원하고 그대의 가정에 하나님의 축복을 원한다면 이런 품성의 특질들은 잘 다스려야 할 필요가 있다.

256 그대는 그대의 의견에 있어서 매우 완고하며 잘 굽히지 않는데, 이것은 그대의 가족을 매우 어렵게 만든다. 그대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대의 심령을 부드럽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대는 그리스도의 사업을 특징짓는 그런 사랑이 그대의 심령에 필요하다.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다. 이것은 하늘에서 자라나는 식물이며, 본성적인 심령에서는 살 수 없고 번창할 수 없다. 이것이 존재하는 곳마다 진리와 생명과 능력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행동이 없이는 살아 날 수 없으며, 이것이 활용될 때마다 증가와 확장이 있다. 이것은 작은 실수를 살피고 사소한 오류를 책망하는 데 빠르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논쟁과 아무리 많은 말이라도 헛되며 쓸모 없다는 것을 입증하고 지배하게 될 것이다. 품성을 개혁하고 그대의 가족의 행위를 조절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랑의 원칙을 통해 하는 것이다. 이것은 진정한 능력이며, 돈이나 어떤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성취하게 될 것이다.

나의 형제여, 그대의 거칠고 동정심이 없는 말은 베고 상처를 준다. 그대는 정죄하고 결점을 찾는 것이 매우 쉽다. 그러나 이것은 불행을 만들어 낼뿐이다. 그대는, 그대가 다른 사람에게 한 말을 만약 다른 사람이 그대에게 했다면 즉시 그 말에 대해 분개했을 것이다. 그대는 친절하고 부드러우며, 동정적인 것을 연약함으로 생각해 왔으며, 그대의 아내에게 부드럽고 친절하며 사랑스럽게 말하는 것을 그대의 위엄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여겨 왔다. 여기에서 그대는 진정한 남성다움과 위엄이 무엇으로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실수하였다. 친절한 행위를 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태도는 그대의 품성에 있어서 명백한 연약함이다. 그대가 연약한 것으로 여긴 것을 하나님께서는 참된 그리스도인 예의라고 여기시며, 모든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행해져야 하는 것으로 여기신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나타내신 정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대는 매우 이기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으며, 자신에 대해 마땅히 생각해야 할 그 이상으로 높이 생각하고 있다. 그대는 자주, 성경에 대해 매우 독자적이고 환상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유대인들이 그들의 전통에 대해 가졌던 것처럼 이것들에 대해 매우 열심히 집착한다.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정신을 소유하지 않고, 강한 정복자의 능력 안에서 이런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일에 그대 자신을 놓지 않으면, 그대는 교회 안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계속적인 위험에 놓일 것이다. 257 그대의 경우를 위험하게 하는 것은 그대가 이런 일들을 그대의 형제들보다 더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그래서 그대는 접근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대는 자기 의와 위선적인 정신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멀리 떨어져라. 내게 가까이 하지 말라. 왜냐하면 나는 그대보다 거룩하기 때문이다.”

그대는 자신의 심령의 더러움을 보지 못했으며, 그대의 생애를 거의 실패로 만든 것을 보지 못했다. 그대의 의견이 하나님의 교회를 지배할 수도 없으며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 그대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은혜를 계발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사랑을 계발해야 한다. 이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투기하지 않으며, 자랑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으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대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데서 조금 벗어난 것을 꼬집으며, 그것들을 교정하기 위해 고집스럽게 추구한다. 그대가 이렇게 거만하고 독재적이며 다른 형제의 결점을 찾기에 빠른 한편, 그대는 그대의 생애 안에 있는 악을 살피기 위해 자신의 심령을 세밀히 조사하지 않는다. 그대는 그대 자신의 식욕과 정욕에 탐닉해 있는 큰 도덕적 연약함을 보이고 있다. 담배에 대한 식욕의 노예 상태는, 그대를 완전히 지배하여 그대가 그 습관을 극복하기로 결심하고 재차 결심하지만 그것을 성취하지 못하게 한다. 이 잘못된 습관은 그대의 감각을 비뚤어지게 했다. 내 형제여, 그대의 자제는 어디에 있는가? 극복할 수 있는 그대의 도덕적 능력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스도께서는 그대를 위해 시험의 광야에서 식욕의 권세를 정복하셨으며, 그대 스스로 이것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셨다. 이제 전쟁은 그대의 것이다. 정복자의 이름으로 그대는 그대 자신의 식욕을 부정하고 그대 스스로 승리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258 그대는 다른 사람에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 그대는 혐오스럽고, 건강을 파괴하며, 영혼을 오염시키는 방종을 이기고 승리를 얻기 위해 무엇을 기꺼이 하려고 하는가? 전쟁은 그대의 것이다. 아무도 그대를 위해 이 전쟁을 싸워 줄 수 없다. 다른 이들은 그대를 위해 기도할 뿐이며, 이 일은 전적으로 그대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더 이상 유혹하는 자와 장난을 하지 않도록 요청하신다. 그리고 그분을 경외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이루며, 모든 육체와 정신의 더러움으로부터 그대 자신을 정결하게 하기를 요구하신다. 그대는 자신의 품성으로부터 결함을 제거하기 위해 빨리 일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대는 하나님의 작업장 안에 있다. 만일 그대가 거친 각이 제거되도록 자르고 평평하게 하고 대패질하는 공정에 굴복한다면, 옹이와 편평하지 않은 표면이 부드러워지고, 하나님의 깎으시는 칼에 의해 알맞게 되어 그대는 그분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늘의 건물에 적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대가 자아에 집착하고, 하늘의 건물에 적합하게 해 주는 시련의 과정을 기꺼이 감내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도끼나 망치의 소리 없이 짜 맞추어질 건물에 있을 자리가 없을 것이다. 만일 그대의 본성이 변화되지 않고, 이 마지막 때를 위한 진리로 깨끗하게 되고 고상하게 되지 않는다면, 그대는 순결하고 거룩한 천사들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기에 무가치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대는 더러운 습관에 집착하여 마침내 불신자와 성화되지 않은 자 중에 발견될 수 있을 것인가? 그대는 이 면에서 어떤 위험이라도 감수할 수 있을 것인가? 자신이 추구해 온 자아 방종의 행로를 추구하면서 나아가는 것은 그대에게 대단히 위험하다. 그대는 매우 적극적이고 적대적인 방법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해 오는 것을 추구해 왔는데. 이것은 그들의 마음에 아주 나쁜 영향을 주어 왔다. 진리를 옹호하는 데 있어서 한 가지라도 불일치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사단은, 적절한 영향이 있었다면 호의적으로 감명을 받았을 사람들이 싫어하도록 그를 특별히 이용한다. 그대는 그대의 방법을 부드럽게 해야 하며, 그대가 진리를 옹호할 때는 온유한 정신으로 이것을 행하라.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여기에서 말하는 두려움은 불신이나 우유 부단함을 뜻하지 않고, 현명하지 못한 한 마디 말이 나오거나 감정이 흥분되어 우세해지지 않도록 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좋지 않은 인상을 남기고 그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기울어지게 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모든 점을 경계하는 것이다. 259 경건한 두려움, 겸비, 그리고 온유함은 하나님의 진리를 바르게 나타내기 위해 모든 사람에게 크게 필요 되는 것이다.

그대의 큰 위험 중의 하나는 자아 신뢰와 자만의 정신이다. 그대와 그대의 가정에 있는 가장 큰 불행은 교만한 행위의 직접적인 결과이다. 이런 교만을 가진 사람의 유용성은 크게 제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의 교만심과 자아 사랑은 그를 좁은 영역에 가두어 두기 때문이다. 그의 정신은 너그럽지 못하다. 그의 노력은 확장되지 못하고 위축되었다. 이런 교만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그의 대화와 행동으로 드러날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여, 그대의 품성을 꼴 지어 온 영향은 그대에게 오만하고 뽐내는 정신을 주었다. 이 정신으로 그대는 그대의 가정과 이웃과 그대가 사귀는 모든 사람들에게 행하였다. 아 잘못된 행위를 극복하기 위해서 그대는 깨어 기도해야만 한다. 그대는 지금 철저하게 신실해야 한다. 그 이유는 그대가 일할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대는 자신의 능력으로 충분하다고 느끼지 말아야 한다. 능하신 정복자의 이름 안에서 그대는 승리를 얻을 수 있다.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그분의 엄격한 판단과 공의 대신에 하나님의 자비와 선하심과 사랑을 깊이 생각하라. 그분의 약속을 굳게 붙잡아라. 그대는 자신의 능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예수님의 능력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만일 그대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께서 그대 안에 계시면, 그대는 변화될 것이며, 새로워지고 성화될 것이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원하는 것을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이루리라.” 그리스도께서 그대 안에 계시게 하고, 그대의 심령이 깨어지고 복종적이고, 겸손하게 되도록 하라. 하나님께서는 겸손하고 통회하는 심령만 받으실 것이다. 하늘은 온 생애를 바쳐서 불굴의 노력으로 얻을 가치가 있으며, 그것은 최고의 모든 가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만일 그대가 그분 안에서 노력하기만 한다면 그대의 노력을 도우실 것이다. 그대의 가정 안에서 이루어져야 할 일이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이것을 바르게 부여잡기만 한다면 성취할 수 있도록 그대를 도우실 것이다. 260 나는 그대에게 그대 자신의 심령을 질서 가운데 세우기를 탄원하며, 그리고 그대 가족의 구원을 위해 끈기 있게 일하며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대의 집에 와서 그대와 함께 거하도록 추구하기를 바란다.

목회자들에게 드리는 호소

우리는 가장 엄숙한 시기에 살고 있다. 우리 모두는 근면을 요구하는 일을 가지고 있다. 특별히 이것은 하나님의 양떼를 돌보고 먹여야 하는 목회자들에게 적용된다. 사람들을 진리의 길로 이끄는 특별한 일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가르침을 백성들의 필요에 맞도록 적응시킬 수 있는, 능력 있는 말씀의 강해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는 하늘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서 빛의 산 통로가 되어야 하며 하나님의 대변자가 되어야 한다.

목회자는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하며, 사람들의 특성도 잘 알아야 한다. 우리의 믿음은 인기가 없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깊은 오류에 있다는 것을 확신하기를 꺼린다. 해야 할 큰 일이 있지만 지금 이것을 행하는 사람은 몇 안된다. 두 사람이 나누어 수고해야 할 것을 한 사람이 보통 행하고 있는데, 복음 전도자의 사업은 필연적으로 목회자의 일도 겸해야 하기 때문에 현장의 일꾼들에게 두 배의 짐을 안겨 주고 있다.

그리스도의 목회자는 성경 학도가 되어야 하며, 그의 마음은 성경의 증거로 가득 채워져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목회자는 자신이 성경의 진리로 무장되어 있을 때만 강하기 때문이다. 논증도 그 나름대로의 좋은 점이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설명해 주는 것이 훨씬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리스도의 교훈은 매우 분명히 예증되었기 때문에 낮은 계층의 사람과 가장 단순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도 그것들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말씀에 길고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시고 보통 사람들의 지적 수준에 맞추어 단순한 말을 사용하셨다. 그분은 자신이 강해하고 계신 주제를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깊게 다루지 않으셨다.

성경에 대하여는 잘 알고 있지만, 그들의 유용성이 결함 있는 활동 방법 때문에 크게 장애를 받고 있는, 훌륭한 마음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있다. 261 영혼을 구원하는 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어떤 목회자들은 자신들이 큰 열정을 가지고 시작한 사업을 철저하게 수행하지 않기 때문에 최선의 결과를 거두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선입 주견들에 고집스럽게 집착하고 그것을 두드러진 요소로 만들고, 이렇게 하여 그들의 가르침을 사람들의 실제적인 필요에 적합하게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상황에 적응시키고 그들이 있는 곳에서 백성들을 만날 필요성에 대해서 아무런 개념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자신들이 도와주어서 그리스도교의 참된 성경적 표준으로 끌어 올리려는 사람들과 자신들을 동일시하려고 하지 않는다.

참으로 성공적인 목회자가 되려면, 그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자신을 완전히 바쳐야 한다. 그분으로부터 계속적으로 권면을 구하며, 그분의 도움을 의지하면서 그리스도와 밀접하게 연결되는 것이 매우 필수적이다. 어떤 이들은 논쟁 실력만 믿고, 자신을 이끌어 줄 그분의 지혜와 그들의 수고를 성화시켜 줄 그분의 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열렬히 구하지 않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한다. 긴 설교와 따분한 기도는 종교적인 관심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가 되는 것이며, 사람들의 양심을 깨우치지 못한다. 말을 많이 하고자 하는 이 성향은 자주,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 종교적인 관심에 초를 쳐버리고 말았다.

진정한 그리스도의 대사는 자신이 대표하는 그분과 완전히 연합되어 있으며, 그가 몰두하고 있는 목적은 영혼 구원이다. 세상의 부는 우리 주님이시요 주인이신 분이 위하여 돌아가신 한 영혼의 가치와 비교해 볼 때 하찮은 것으로 작아지고 만다. 구릉을 천칭에 달아보시고 산을 저울로 측량해 보신 분은 한 인간의 영혼을 무한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기신다.

목회자의 사업에는 싸워야 할 싸움이 있고 얻어야 할 승리가 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고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다.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그리스도 교회의 초기의 활동에는 어려움과 비통한 슬픔이 동반 되었으며, 초기 사도들의 계승자들은 자신들이 그들과 유사한 시련을 당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수고에서 궁핍과 비방과 온갖 종류의 반대를 만나게 될 것을 알았다. 262 그들은 철저한 도덕적 용기를 가진 사람, 영적인 힘을 가진 사람들이 되어야 했다.

크나큰 도덕적 흑암이 횡행하고 있으며, 진리의 능력만이 한 심령에서 그 그림자를 몰아낼 수 있다. 우리는 큰 오류와 강한 편견과 투쟁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특별한 도우심이 없이는 영혼을 회심시키는 것이나 우리의 도덕적 본성을 고상하게 하려는 우리의 노력에서 실패할 것이다. 인간의 기술과 또한 최상의 선천적인 능력과 습득된 능력도 영혼을 일깨워 죄의 극악함을 분별하게 하고 그것을 심령으로부터 몰아내기에 전혀 무력하다.

목회자들은 여전히 오류의 흑암 중에서 더듬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묻는 영혼들에게 그분의 성령의 신비하고 깨우치는 영향을 나누어주기 위해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성령이 없이는 그들의 수고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알아야 한다. 그들은 심령을 다루는 데 있어서 인내하며 지혜로워야 하고, 각 사람에게 이렇게 다른 특성들을 계발시켜준 환경들이 얼마나 다양한가를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또한 자아가 최상권을 차지하고 예수께서 논외로 밀려나시지 않도록 자신들을 엄격하게 방어해야 한다.

어떤 목회자들은, 줄기차면서도 잘 지도된 수고에 성공이 크게 달려 있는 그 사업에 그들의 관심을 집중시키지 않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일꾼이 아니다. 그들은 강단 밖에서는 자신들의 일을 속행하지 않는다. 그들은 집집마다 다니며 가정의 테두리 안에서 지혜롭게 수고해야 하는 의무를 회피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보호 하에 있는 영혼들에 대하여 그들로 하여금 친절하고 사려 깊게 만들어 줄, 좀처럼 보기 어려운 그리스도인 예절을 계발하고 진정한 신실함과 믿음으로 그들을 위해 일하며, 그들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

목회자들은 자신들이 교제하는 사람들의 품성을 꼴 짓는 데 있어서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만일 그들이 날카롭고, 비평적이며 엄격하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영향이 강력하게 미치는 사람들에게서 이런 불행한 요인들이 나타나는 것을 확실히 보게 될 것이며, 그 결과가 그들이 바라는 그런 성격의 것은 아닐지라도, 그것은 자신들의 모본의 결과가 될 것이다.

263 사람들이 발자취를 따르고 있는 그들의 종교적인 교사들이 이런 원칙들을 광범위하게 계발시키고, 이것들을 그들의 생애에서 나타내지 않는다면, 그들이 평안과 조화를 누릴 것을 기대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목회자들은 만일 그들이 자신의 백성들에게 한 모본이 되고 자기 주인의 가르침을 진정 대표하는 자가 되고자 한다면 짊어져야 할 큰 책임이 있다. 사람들은 우리 구주의 순결함과 도덕적 고결함에 압도되었고, 그분의 무아적인 사랑과 부드러운 자비하심은 그들의 심령을 끌었다. 그분은 완전함의 체현(體現)이셨다. 만일 그분의 대표자들이 그리스도의 봉사를 장식한 것과 비슷한 열매를 그들의 수고에서 보기 원한다면, 그들은 그분의 덕성들을 모방하고 자신들을 그분과 흡사하게 만들어 줄 그런 품성의 특질들을 계발하기 위해 열렬히 애써야 한다.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성공적으로 일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많은 예지와 지혜가 필요하다. 만일 일꾼들의 영혼이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 차 있다면, 그의 가르침은 그의 청중들을 짜증나게 하지 않고, 그들의 심령으로 녹아들어가서 진리를 받아들이게 할 것이다.

현장에서 일꾼들은 낙담해서는 안된다. 그들의 환경이 어떠하든지간에 그들은 소망과 믿음을 활용해야 한다. 목회자들의 일 중에서 강단에서 진리를 제시하는 일은 그의 일의 시작에 불과하다. 그러고 나서 그는 자신의 청중들과 친숙하게 되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도움을 크게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밀접한 교감을 나누지 않음으로 크게 실패하게 된다. 그들은 성경을 손에 들고, “진리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장애물들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예의를 갖추어 노력해야 한다.

그들은 학교의 학생들처럼 조심스럽게, 부드럽게 인도받고 교육 받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애 속에 새겨져 왔던 이론들 중 버려야 할 것이 있다. 성경의 주제들에 관하여 그들이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됨에 따라 그들은 당혹감과 의심에 빠지게 된다. 그들은 매우 부드러운 동정심이 필요하며, 가장 현명한 도움이 필요하다. 그들은 주의 깊은 가르침을 받아야 하며, 그들을 위해 그리고 그들과 함께 기도해야 하며, 친절한 배려로 살펴야 하고 보호되어야 한다. 시험에 빠져 타락하고 하나님에게서 떠나간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하다. 264 이 부류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교훈 가운데 잃어버린 양으로 대표되어 있다. 목자는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들판에 두고, 그 잃은 한 마리 양을 발견하기까지 찾아 다녔다. 그리고 이 양을 어깨에 메고 기쁨으로 돌아왔다. 또한 잃어버린 은전을 발견할 때까지 찾은 한 여인의 예증에서, 그녀는 이 잃은 은전을 찾았을 때 이웃을 불러 기쁨을 함께 했다. 하늘의 천사들과 그리스도인 일꾼들과의 연결이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회개할 것이 없는 아흔 아홉의 의인들보다 한 죄인이 회개한 것이 하늘의 천사들 앞에는 더 큰 기쁨이 된다. 아버지와 그리스도께도 기쁨이 있다. 온 하늘은 사람의 구원에 관심이 있다. 영혼을 구원하는 데 있어서 도구가 되는 사람은 무한한 기쁨을 누린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의 노력을 큰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으며, 그의 성공을 그와 함께 기뻐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의 수고는 얼마나 철저해야 하며, 그의 동료 인간들에 대한 동정심은 얼마나 깊어야 하겠는가. 영혼들의 구원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동역자가 되는 것은 크나큰 특권이다. 그분은 사람의 타락한 상태에 다다르시기 위해, 그리고 죄의 결과로부터 그를 구출하기 위해 인내와 무아적인 노력으로 힘쓰셨다. 그러므로 그분의 말씀의 교사들인 그분의 제자들은, 그들의 위대한 모본자이신 분을 면밀하게 본받도록 해야 한다.

이 위대하고 힘든 사업을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목회자들은 육체적인 건강을 지녀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그들의 습관은 규칙적이어야 하고 삶에 있어서 건강한 삶의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 많은 이들이 여러 가지 병으로 끊임없이 불평하고 고통을 당한다. 이것은 거의 언제나 그들이 현명하게 일하지 않거나 건강의 법칙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주 실내에 오래 머물며, 불순한 공기가 가득한 더운 방에 앉아 있다. 거기에서 그들은 연구하거나 글을 쓰고, 육체적인 운동은 거의 하지 않고, 하고 있는 자세를 거의 바꾸지 않는다. 그 결과, 혈액은 느려지게 되고 정신력은 약하게 된다.

전체적인 신체 조직은 야외에서의 원기 왕성한 운동의 영향을 필요로 한다. 265 날마다 하는 몇 시간의 육체 노동은 신체적인 원기와 쉼을 회복시켜 주고 마음의 피로를 풀어 주는 경향이 있다. 이런 식으로 전반적인 건강은 촉진되며, 목회자의 일이 더 많이 성취될 수 있다. 많은 목회자들의 계속적인 독서와 글을 쓰는 일은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목회 사업에 부적당하게 만든다. 그들은 추상적인 연구를 위해 소중한 시간을 소모하는데, 이것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적시에 돕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어떤 목회자들은 중요한 종교적인 관심의 시기에 글쓰는 일에 몰두해 왔는데, 이 저술은 자신이 하고 있는 사업과 특별한 관계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은 눈에 띄는 실수였다. 왜냐하면 이런 시기에 목회자가 자신의 전적인 힘을 하나님의 사업을 발전시키는 데 사용하는 것이 그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은 명민해야 하고 영혼을 구원하는 한 가지 목적에 집중되어 있어야 한다. 그의 생각들이 다른 주제로 열중해 있다면, 적절한 때 가르침을 주어 구원할 수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사업에서 잃어버린바 될 것이다. 어떤 목회자들은 그들의 사업으로부터 쉽게 벗어난다. 그들은 좌절하게 되거나 그들의 가정으로 들어가 버리고 관심의 부족으로 [구도자의] 일깨워져 가는 관심이 스러지도록 내버려둔다. 이런 식으로 사업에 끼쳐진 손해는 거의 측정될 수 없다. 진리를 선포하는 노력이 시작될 때, 책임을 진 목회자는 이것을 끝까지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책임을 느껴야 한다. 만일 그의 수고가 결과가 없는 것처럼 보이면, 그 일이 정말 그러해야 하는지 발견하기 위해 열렬히 기도해야 한다. 그는 자아를 살피며,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낮추고 믿음으로 신령한 약속을 붙잡고 바라는 결과를 얻기 위해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고 느낄 때까지 겸손히 자신의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목회자들은 자주 새로운 지역으로 들어가기 위해 관심이 최고조에 달한 한 지역을 떠났다고 보고한다. 이것은 잘못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시작한 사업을 마쳐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을 마치지 않고 남겨 둠으로 그들은 현장을 망치게 하여, 다음에 수고할 일꾼들에게 좋은 것보다는 해를 더 많이 끼치기 때문이다.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도록 내버려둔 밭보다 더 장래성이 없는 밭은 없다.

266 새로운 지역에는 많은 기도와 지혜로운 수고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저 말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경건의 비밀에 대한 체험적인 지식을 지니고 사람들의 긴박한 필요를 채워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예수님의 종으로서 자신들의 위치의 중요성을 엄숙하게 깨닫고, 그분이 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십자가를 흔쾌하게 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들이 즉각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할 다른 의무들이 있는데도 한거하면서 독서와 저술에 몰두하려는 유혹이 이르러올 때, 그들은 자아를 강하게 부정하고 자신들 앞에 당면한 사업에 자기를 바쳐야만 한다. 이것은 분명히 학문을 좋아하는 마음이 겪어야 할, 가장 치열한 시험의 하나이다.

목회자의 의무들은, 은둔하여 연구하고자 하는 자신의 성향을 희생할 힘이 없어서 종종 수치스럽게도 소홀히 된다. 목회자는 자신의 양 떼를 집집 방문하여 가르치고, 대화하며, 각 가정과 함께 기도하고, 그 영혼들의 복리를 추구해야만 한다. 우리 믿음의 원칙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등한히 해서는 안되며 진리 안에서 철저하게 교육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목회자는 깨어 있고 열성을 내어 선을 행할 수 있는 어떤 기회도 상실해서는 안된다.

여러 가정의 가장들로부터 초청을 받은 어떤 목회자들이 그들의 몇시간의 방문을 빈방으로 물러나서 독서하고 글쓰는 일에 쓴다. 이들을 맞이했던 가족들은 이 방문에서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다. 목회자들은 그들의 초청에 응하여 환대를 받아들였지만, 그 가정이 매우 필요로 하는,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사교적 모임이라는 통로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목회자들은 방문하는 일을 두려워한다. 그들은 사교적인 자질을 계발하지 않았으며, 사람들의 심령을 사로잡는 다정한 정신을 갖지 못했다. 목회자가 그의 백성들과 많이 섞이고, 여러 다른 측면의 인간 본성을 익히알게 되며, 마음의 심리 작용을 쉽게 이해하고, 그 사람들의 지적 수준에 맞게 그의 자신의 가르침을 적응시키고, 사람들의 본성과 필요를 세밀히 연구하는 사람들만이 소유할 수 있는 큰 사랑을 배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267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격리하는 자들은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상황에 있지 않다. 솜씨 있는 의사는 다양한 질병의 성격을 이해해야 하며, 인체의 구조에 대해 철저한 지식을 가져야만 한다. 그는 환자를 돌보는 일에 있어서 신속해야 한다. 그는 지체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안다. 그의 능숙한 손이 환자의 맥박에 놓이고, 질병의 특이한 증상을 조심스럽게 살피고 나면, 그가 앞서 배운 지식은 그로 하여금 질병의 성격에 관해 결정을 내리게 하고 필요한 치료가 시작될 수 있도록 한다. 의사가 육체적인 질병을 다루는 것처럼, 목회자는 죄로 병든 영혼을 위해 봉사한다. 그리고 그의 사업은, 영생이 일시적인 생존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처럼 전자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목회자는 끊임없이 다양한 기질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어떤 방법이 올바른 방향으로 그들에게 최선의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를 결정하기 위해, 그의 가르침을 청종하는 가족들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할 의무가 있다.

이 중대한 책임에 비추어, 이런 질문이 일어나게 된다.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일꾼들의 심령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다양하고 힘든 의무들을 생각할 때 거의 지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말씀은 위로의 확신으로 그 영혼에게 힘을 주게 될 것이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그가 사랑하는 자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어려움과 위험들은, 그들을 다루는 방법에 있어서 그를 신중하고 주의 깊게 만들며, 자신이 회계해야 할 자인 것처럼 그들을 위해 깨어 있게 해야 한다. 그는 영혼들을 그리스도께 이끌기 위해 그리고 의문을 가진 심령에 진리를 감명 시키는 데 그의 영향을 사려 깊게 행사해야 한다. 그는 세상이 그 속이는 매력으로 사람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멀리하도록 이끌며 그분의 은혜의 영향에 대하여 심령을 강퍅하게 만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목회자는 자신의 보호 하에 맡겨진 양떼 위에 오만하게 군림해서는 안되며, 그들의 모본이 되어야 하고, 그들에게 하늘 가는 길을 보여 주어야 한다. 268 그는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라, 그 자신의 기도의 응답을 볼 때까지 그의 보호에 맡겨진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계속 간구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향한 인간적이고 신령한 동정심을 나타내셨다. 그분은 모든 면에 있어서 우리의 모본이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시요, 통치자시며, 그리스도인 목회자들은 세상에서 그분의 아들의 대표자들이다. 하늘을 다스리는 원칙들이 세상을 다스려야 하며, 천사들을 감동시키는 동일한 사랑과 하늘을 지배하고 있는 동일한 순결과 거룩함이, 가능한 한 이 땅에서도 재현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목회자에게 권세를 행사할 책임을 지우신다. 그러나 그분의 종들이 이 권세를 그들의 보호 하에 있는 양떼에게 독재하는 것으로 왜곡시키는 것을 정당화하시지는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종들에게 그분의 진리의 고귀한 지식을 주셨으며, 그들이 예수님과 가까이 연결되기를 바라신다. 그리고 그들이 동정심을 통해 그들의 형제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들의 권세 하에 놓인 모든 선을 행하도록 하신다. 세상의 구속주께서는 자신의 쾌락을 염두에 두지 않으셨으며, 선을 행하기 위해 두루 다니셨다. 그분은 자신을 아버지와 밀접하게 연결하셔서, 영원한 파멸로부터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그분들의 연합된 힘을 발휘하시려고 하셨다. 그들이 자신들의 사업에서 성공하기를 기대한다면, 그분의 종들도 이와 같이 영성을 키워야 한다.

예수께서 불쌍한 죄인들을 매우 동정하셔서 하늘의 궁정을 떠나셨으며, 왕복을 벗어 놓으시고 자신을 낮추시고 인성을 취하신 것은, 자신이 사람의 필요를 아시고 그 사람이 타락의 퇴화를 딛고 일어서는 것을 돕기 위해서였다. 그분께서 분명한 사랑과 부드러운 동정의 이런 증거를 사람에게 주셨을진대, 그분의 대리자들이 그들의 동료 인간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그들을 도와 진정한 그리스도인 품성을 형성하도록 하는 데 있어서 그분의 모본을 닮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그러나 어떤 이들은 너무도 쉽게 교회 재판을 열어서 실수한 자들에 대하여 날카롭고 동정심이 없는 증언을 해왔다. 이런 행동을 함으로써 그들은 확고하게 눌러두었어야 할 본성적인 성향에 굴복해 왔다. 269 이것은 그리스도인 행정자의 침착한 공의가 아니고 조급한 성향의 거친 비평인 것이다.

교회들은 비난보다는 훈육이 더 필요하다. 목회자는 그들의 영성의 결핍과 의무의 소홀을 너무 심하게 비난하는 대신, 교훈과 모본으로 그들로 은혜와 진리를 아는 지식 안에서 자라나도록 가르쳐야 한다. “내가 교회 일꾼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 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이제 나이가 사십이나 오십에 이른 우리 목회자들은 자신들의 수고가 이전보다 덜 능률적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강력하고도 잘 지도된 노력을 쏟아 넣을 수 있는 바로 그 사람들이다. 그들은 특히 이 시대에 필요한 사람들이며, 교회는 그들과 분리될 수 없다. 이런 사람들은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연약함에 대하여 말해서는 안되며, 또한 쓸모 있는 자신들의 날이 지났다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그들 중의 많은 사람들이 육체적인 활동으로 해소되지 못한 정신적인 탈진으로 고통당했으며, 그 결과는 그들의 능력의 퇴화와 책임을 회피하는 경향으로 나타났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보다 활발한 활동이다. 이것은 세월의 서리와 함께 머리가 희어진 사람들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상태에 빠져 있고 정신적으로 연약해진 젊은이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그들은 짜여진 설교의 항목을 가지고 있지만, 이 한계를 넘어서면 그들은 말문이 닫혀버린다.

말을 타고 양떼를 방문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 구식 목사는 그의 어려움과 노출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모든 육체적인 활동을 피하고 자신들을 집에 틀어 박혀 책만 보는 오늘날 우리 목회자들보다 더 좋은 건강을 누렸다.

270 연로하고 경험이 많은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고용된 종으로서 앞으로 나아가고 날마다 전진하며 계속적으로 자신들의 사업에 더욱 능숙하게 되고 백성들 앞에 끊임없이 신선한 것들을 모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자신들의 의무로 생각해야 한다. 복음을 강해하기 위한 각각의 노력은 그 앞서의 것들을 개선시킨 것이 되어야 한다. 해마다 그들은 더 깊은 경건과 부드러운 정신과 위대한 영성과 보다 철저한 성경 지식을 계발해야만 한다. 그들의 나이와 경험이 많아질수록 그들은 백성들에 대한 보다 완벽한 지식을 지니고 사람들의 마음에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누가 그들을 대적하든지 바른 것을 위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높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오늘날 많이 필요하다. 그들은 강한 정직성과 시련을 견딘 용기의 사람이어야 한다. 교회는 그들을 부르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복음 전도의 모든 분야를 떠받치려는 그들의 노력에 합력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