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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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제 24 호 - 교회증언

-4장 -

대 반역

339 고라, 다단, 아비람은 모세와 아론, 그리고 주님에 대하여 반역을 하였다. 주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을 선택하사 제사장으로 삼으시고, 이스라엘 회중을 인도하도록 위엄과 권위를 부여하심으로 특별한 책임을 그들에게 지워 주셨다. 모세는 히브리인들의 부단한 반역을 통해 괴롭힘을 당하였다. 하나님의 임명을 받은 가시적인 지도자로서 그는 위기의 때에 걸쳐 이스라엘 백성과 연결되어 있었으며, 그들의 불만, 그들의 질투 그들의 불평을 견디되 보복하거나 그 지위에서 벗어나고자 시도하지 않았다.

히브리인들이 위험한 사건에 처하게 되었을 때, 혹은 그들의 식욕이 제한을 당하였을 때, 그들을 위하여 놀라운 일들을 이루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대신에 그들은 모세에 대해 불평을 터뜨렸다.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비록 회중에게 보이지 아니하셨을지라도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이셨다. 그분의 임재가 그들 앞서서 행하였으며, 그들의 모든 여행을 지도하였다. 반면에 모세는 천사, 곧 그리스도이셨던 분으로부터 지시를 받는 그들의 가시적인 지도자였다.

비열한 우상숭배

모세가 부재한 동안 회중은 아론에게 저희를 위하여 그들 앞에서 행하여 그들을 애굽으로 되돌아가도록 할 신들을 만들도록 요구하였다. 이것은 그들의 대지도자 무한하신 하나님의 아들께 대한 모독이었다. 겨우 수주일 전에 그들은 산 앞에서 두려움 중에 벌벌 떨면서 서서 주님의 말씀을 들었다. 340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출 20:3). 그 산의 기초까지 흔들며 발해진 음성을 들을 때에 산을 성별하였던 영광이 아직도 회중의 목전에서 그 위에 감돌고 있었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은 저들의 눈을 돌려 다른 신들을 요구하였다. 저들의 가시적인 지도자 모세는 산에서 하나님과 대화하는 중이었다. 그들은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로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너희는 삼가 그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 그가 너희 허물을 사하지 아니할 것은 내 이름이 그에게 있음이니라”(출 23:20, 21)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과 경고를 망각하였다.

히브리인들은 무자비할 정도로 믿지 않았으며, 비열하게도 감사할 줄 모르고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고 불경건스럽게 요청하였다. 모세는 부재하였으나 하나님의 임재는 남아 있었다. 그것은 떠나지 않았다. 만나는 계속해서 내렸고, 조석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손에 의해 먹임을 받았다. 낮의 구름기둥, 밤의 불기둥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였으며, 그것은 그들 앞에 살아 있는 기념비였다. 하나님의 임재는 모세의 임재에 의존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산에서 그들을 위하여 주님께 간구하고 있을 때, 그들은 수치스러운 과오를 향해 달음질쳐서 최근, 장엄한 중에 주어진 율법을 범하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론의 연약성을 본다. 만일 그가 진정한 도덕적 용기를 갖고 대처했더라면, 또한 담대하게 이 수치스러운 요구를 하는 것에 대해서 지도자들을 책망했더라면, 그의 시기 적절한 말은 그 무서운 배도를 막았을 것이다. 그러나 회중에게서 인기를 얻으려는 욕망과 그들의 불쾌히 여김을 일으킬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는 비겁하게도 그 결정적인 순간에 히브리인들의 충성심을 희생시키고 말았다. 그는 제단을 쌓고, 새긴 우상을 만들고, 경배의 대상자로서 그 우상을 봉헌할 한 날을 선포하고, 모든 이스라엘 앞에서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출 32:4)라고 선언하였다. 아직도 산의 정상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나고 있을 때, 그는 이 무감각한 우상 앞에서 즐거워하며 춤추는 것을 조용하게 목격하였다. 그런데 모세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백성들을 책망하기 위하여 산으로부터 내려왔다. 341 그러나 모세는 이스라엘을 위한 자신의 탄원이 들으신 바 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하실 것이라는 요청이 허락을 받을 때까지 산을 떠나는 일에 응하지 않았다.

깨어진 율법판들

모세는 그의 손에 소중한 기록을 갖고 내려왔는데, 그것은 순종을 조건으로 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서약이었다. 모세는 지상에서 가장 온유한 인물이었지만, 이스라엘의 배도를 목격했을 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분노하고 시기하였다. 그는 분노 중에 자기에게 있어서 생명보다도 더욱 소중한 하나님의 소중한 서약을 땅위에 내던졌다. 그는 히브리인들에 의하여 깨어진 율법을 보았으며, 하나님을 위한 열성 때문에 그들이 경배하고 있는 우상을 손상시키기 위하여 돌비들을 희생시켰다. 아론은 서서 모세의 심한 견책을 조용히 인내하며 들었다. 이 모든 것은 적시에 아론에게서 나가는 단 한마디 말에 의해 방지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이 위기의 시간에 진정하고, 고귀한 결정이 그들의 마음을 올바른 방향으로 균형을 잡게 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정죄하셨는가? 아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통하여 모세의 성급함과 열성은 용서를 받았는데, 이는 이스라엘의 배도의 증거를 그가 목도했을 때, 그의 실망과 슬픔, 그리고 그의 충성심을 모두 감안한 까닭이다. 히브리인들의 위기의 때에 그들을 구할뻔했던 인물은 침묵하였다. 그는 백성의 죄 때문에 분개하지 않았고, 자책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후회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두려운 죄에 빠진 자기의 행위를 정당화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는 백성들의 요구에 굴복한 자신의 약점에 대해 백성들에게 책임을 돌렸다. 그는 모세가 그랬던 것처럼 이스라엘의 불평을 감당할 용의가 없었으며, 그들의 부르짖음과 비이성적인 소원의 압력 아래 서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는 항의도 없이 백성들의 정신과 기분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들에게 책임을 돌리고자 했다.

이스라엘 회중은 아론이 모세보다도 훨씬 더 기분 좋게 받아들일 만한 지도자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그토록 꼿꼿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세가 매우 나쁜 정신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모세가 그토록 심하게 견책하는 아론에게 동정을 보냈다. 342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정직한 열성 때문에 빚어진 신중치 못한 행동을 용서하셨다. 반면에 그분은 아론에 대하여 환경의 압력에 굴한 그의 죄악된 사악함과 성실성의 부족에 대해 책임을 물으셨다. 자기 자신을 구원하기 위하여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 중 수천명을 희생시켰다. 히브리인들은이 배도한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을 느꼈지만, 오래지 않아 그들은 또다시 불만과 반역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불평하는 백성

이스라엘 군대가 번영했을 때, 그들은 그 모든 영광을 스스로 취하였다. 그들이 배고픔이나 전쟁으로 시험과 연단을 받을 때, 그들은 그 모든 고난에 대해서 모세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애굽에서 그들을 구원할때 괄목할 만하게 나타났을 뿐 아니라, 그들이 여행하는 중에 시시때때로 나타났던 하나님의 권능은 그들의 믿음을 고무시켰어야만 했으며, 또한 감사할 줄 모르는 표현이 단 한마디라도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것을 영원히 막아야 하였다. 그러나 거의 부족함을 모르는 정신과 어떤 일에서든지 거의 위험성을 깨닫지 못하는 마음이 그들을 위해 베풀어진 유익들을 압도하였고, 그들이 처했던 최대의 위험의 때에 베풀어졌던 축복들을 그들은 간과하게 되었다. 금송아지를 섬기는 일을 통해서 그들이 겪었던 체험은 결코 지워질 수 없는 깊은 인상을 그들의 마음 가운데 남겨 주었다. 그러나 그들을 인도하는 천사를 거듭하여 거스림으로 말미암아 그 대열은 끊어지고, 인원 중에 상실된 이들이 생겨나는 등,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이 그들 마음 가운데 생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진심으로 이러한 교훈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충성스러운 순종을 통하여 과거의 실패를 속하지 않았다. 또다시 그들은 사단의 유혹에 정복당하였다.

지상에서 가장 온유한 인물의 최선의 노력도 그들의 불순종을 진압할 수 없었다. 모세의 사심 없는 관심은 시기, 의심, 중상으로 보답되었다. 미천한 목자로서의 그의 삶이 광포한 정신을 지닌 그 거대한 회중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현재 그가 누리고 있는 지위보다도 훨씬 더 평화스럽고 행복하였다. 그들의 타당하지 못한 시기는 광야의 사나운 늑대보다도 다스리기가 훨씬 더 어려웠다. 343 그러나 모세는 감히 자신의 길을 회피하여 자기 맘에 드는 대로 행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목자의 지팡이를 내버리고, 그 대신에 권능의 막대기를 받았다. 그는 이 홀을 내던져 버리고 하나님께서 그를 해고하실 때까지 자기 위치에서 사임하려고 하지 않았다.

마음을 시험하는 것은 사단의 일이다. 그는 그의 간교한 제안들을 은밀히 홀려 보내며 책임을 진 이들, 하나님의 의도를 자신의 봉사를 통해 수행하고자 노력하는 이들의 말과 행동에 대해 의심과 의문과 불신을 선동한다. 하나님의 선택하신 종들 위에, 또한 그들 주변에 곤란과 어려움과 반대를 퍼부어 그들로 하여금 사업에 지장을 받아, 만일 가능하다면 좌절되도록 하는 것이 사단의 특별한 목적이다. 시기심, 분쟁, 악한 추측은 특별한 사역을 위해 임명을 받은 하나님의 종들이 취하게 되는 최선의 노력들을 아주 심하게 저해한다.

사단의 계획은 대리자들의 활동을 통해서 그들로 하여금 책임진 자리로부터 몰아내는 것이다. 불신과 의문을 자극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지 그는 자기의 도구로 사용할 것이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위하여 짐들을 짊어져야 하는 모세의 입장은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 하나님의 성령의 직접적인 감화 아래 놓여 있지 않는 한, 인간의 본성 중에는 질투, 시기, 잔인한 불신 등의 성향이 있는데, 이것들은 정복되지 않는 한 다른 이들을 해치고 넘어뜨리려는 욕망으로 이끌리게 한다. 반면에 이기적인 정신은 그 폐허 위에 스스로를 쌓아 올리고자 노력할 것이다.

고라, 다단, 아비람

하나님의 임명을 통하여 이 인물들에게는 특별한 명예가 주어졌다. 그들은 칠십인 장로와 함께 모세로 더불어 산 위에 올라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던 숫자에 속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신령하신 형체를 덮었던 찬란한 빛을 보았다. 이 구름 밑바닥에는 “그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같이 청명”(출 24:10)한 모습이 있었다. 이들은 주님의 영광의 존전에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으면서 지내되, 그들 위에 비치는 뛰어난 영광과 순결성에 의해서 멸망당하지도 아니하였다. 344 맨 처음에는 아주 약하게 한가지 유혹이 잠복하였다. 그것을 받아들이자 그것은 강력해져서 결국 상상력은 사단의 권세에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들은 불만의 정신을 나타내는 일을 아주 미미하게 시작하였다. 처음에 그들은 암시하였고, 의문을 표시하였는데 그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사로잡아 그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게 되었다. 이 사람 저 사람의 말을 통해 그들의 의심이 더욱 더 인정을 받게 되고, 어떤 일에 대한 각자의 생각하는 바가 표현되는 것을 인식하게 되자, 이 기만당한 영혼들은 그 일에 관해 자기들에게도 여호와께 대한 열성이 있다고 믿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이스라엘에 대해서 모세가 차지하고 있는 불합리한 지위에 관하여 모세로 하여금 보고 느끼게 하려는 저들의 온전한 목적을 수행하지 않는 한, 뒤로 물러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불신, 불화, 시기, 질투의 적은 누룩이 이스라엘 진영에 퍼졌다.

고라, 다단, 아비람은 그들의 무자비한 일을 하나님께서 신령한 책임을 위탁하신 이들로부터 처음 시작하였다. 그들은 회중들 중에서 뛰어난 사람, 유명한 250명의 족장을 이간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자기편에 강하고 영향력 있는 이 인물들이 있었으므로 그들은 사물의 질서에 혁신적인 변화를 분명히 일으킬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그들은 이스라엘 정부를 변화시켜 현 행정부보다도 훨씬 크게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고라는 자기 지위에 대해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회막의 봉사와 관련을 맺고 있었지만, 그는 제사장으로 높임 받기를 갈망하였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대통치자로 임명하셨고, 제사장직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주어졌다. 고라는 모세를 축출하여 사물의 질서를 바꿈으로 제사장직의 존귀를 취하리라고 마음먹었다. 그의 목적의 성취에 대해 점점 더 확신하게 되자 그는 다단과 아비람, 곧 르우벤의 후손들을 자기의 반역에 끌어들였다. 이들은 야곱의 아들 중 장남의 후손이므로, 모세가 탈취한 최상권은 그들에게 속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고라에 대해서는 제사장직을 획득해 주기로 그들은 결정하였다. 345 이 세 사람은 사악한 일에 매우 열성이었으며 250명의 뛰어난 인물들, 제사장직과 통치직을 공유하려는 결심을 마찬가지로 가진 인물들로 하여금 그들에게 합류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들을 영화롭게 하사 회막에서 봉사하도록 하셨는데, 이것은 그들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경배하는 일에 전혀 참가하지 않았으며, 우상 숭배자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시행하는 일에 충성되었기 때문이다. 레위인들에게는 또한 회막을 세우는 책임과 그 주위에 진을 치는 일이 할당되었다. 반면에 이스라엘의 큰 무리는 그 곳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그들의 천막을 쳤다. 그들이 여행할 때에, 레위인들은 회막을 거두어 그것과 법궤와 모든 신성한 기구들을 지고 갔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레위인을 영화롭게 하셨으므로 그들은 야심에 차서 백성들에 대해서 더욱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하여 더욱 더 높은 직분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스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뇨?”

아첨과 거짓 동정

흑암과 과오 속에 빠져 있기 때문에 견책을 받아야 마땅한 때에 칭송과 아첨을 받는 것보다도 백성들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고라는 모세를 전제적인 지도자로 제시함으로써 백성들의 귀를 얻었고, 그 다음에는 그들의 동정을 얻었다. 그는 모세가 너무 거칠고 엄격하고, 독재적이며, 백성이 거룩한 백성, 여호와께 성별된 자이며 주님께서 그들 중에 계시는 때에 그들을 마치 죄인인 것처럼 책망하였다고 말하였다. 고라는 광야를 여행하며 그들이 체험한 것들, 그들이 인도함을 받은 협착한 곳, 불평과 불순종 때문에 그들 중 많은 사람이 죽은 곳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을 재차 언급하였으며, 그들은 비뚤어진 시각을 갖고 만일 모세가 다른 노선을 취했더라면, 그 모든 어려움을 면할 수 있었을 것으로 아주 분명히 생각하게 되었다. 모세는 지나치게 굽힐 줄 몰랐고, 지나치게 엄격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광야에서 그들이 당한 모든 재난에 대해 모세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결정하였다. 주도하고자 하는 정신을 지닌 고라는 그들의 고난과 역경에 대한 진정한 이유를 분별하는 큰 지혜를 가졌노라고 공언하였다.

346 조화될 수 없는 이 구성 분자들은 이전에는 결코 존재해 본 적이 없는 견해와 감정상의 커다란 조화와 연합을 이러한 불만의 일을 통해 이루었다. 고라는 이스라엘 회중의 큰 무리를 자기편에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였으므로 자기야말로 현명하고 정확한 판단의 소유자라고 확신하게 되었으며, 또한 모세는 이스라엘의 번영과 구원을 위협하는 권세를 탈취한 인물이 분명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일을 보여주시고 너무 늦기 전에 이스라엘의 정부를 바꾸는 짐을 자기에게 맡기셨다고 그는 주장하였다. 그는 회중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의로웠다. 회중의 이 커다란 불평의 외침 때문에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초래된다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이다. 백성은 단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뿐이다. 그들은 단지 개인적인 독립을 원할 뿐이다.

모세의 자아 희생적인 인내에 대한 생각이 그들의 기억 속에 떠오르고, 그들이 노예의 속박 가운데 있을 때에 그들을 위해 사심 없는 노력을 기울였던 모세의 모습이 그들 앞에 떠오를 때, 그들의 양심은 어느정도 괴로움을 느꼈다. 모세에 대한 견해에 있어서 어떤 이들은 전적으로 고라편에 서지 아니하고 모세를 위해 말하고자 노력하였다. 고라, 다단, 아비람은 모세가 맨 처음부터 이스라엘 회중을 위해 큰 관심을 보여 온 이유가 무엇인지 백성들 앞에 몇가지 이유를 댈 수밖에 없었다. 사단의 도구로서 저열하게 변해 버린 그들의 이기적인 정신을 통해서 그들은 모세의 분명한 관심의 대상이 무엇인지 결국 발견하게 되었다고 제시하였다. 모세의 의도는 모든 백성이, 혹은 거의 모든 백성이 멸망당하여 그들의 재산을 스스로 소유하게 될 때까지 그들로 하여금 계속적으로 광야에서 방황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고라, 다단, 아비람, 그들과 연합한 250명의 족장들은 처음에는 시기하였고, 다음에는 질투하였고, 그 다음에는 반역하였다. 그들은 백성의 통치자로서의 모세의 지위에 대해 말하였으며, 드디어 모세뿐만 아니라 그들 중 누구라도 차지할 수 있는 탐낼 만한 자리라고 상상하게 되었다. 347 그리하여 그들은 불만 속에 완전히 빠져 버림으로 결국 스스로를 속이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가운데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스스로 취하였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이 제사장직과 통치권을 취함으로 여호와의 회중 위에 자신을 높였으며, 이 직분은 오직 한 가문에만 수여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였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이 그 형제들과 동일한 수준으로 족하다고 말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백성보다도 더 거룩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특별하신 임재와 보호의 은총을 동일하게 누리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성격이 시험을 받음

고라의 말을 들을 때 모세는 슬픔에 가득 차서 백성들 앞에 엎드렸다. “고라와 그 모든 무리에게 말하여 가로되 아침에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자가 누구인지, 거룩한 자가 누구인지 보이시고 그 자를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 오게 하시되 곧 그가 택하신 자를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 오게 하시리니 이렇게 하라 너 고라와 너의 모든 무리는 향로를 취하고 내일 여호와 앞에서 그 향로에 불을 담고 그 위에 향을 두라 그 때에 여호와의 택하신 자는 거룩하게 되리라 레위 자손들아 너희가 너무 분수에 지나치느니라 모세가 또 고라에게 이르되 너희 레위 자손들아 들으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회중에서 너희를 구별하여 자기에게 가까이하게 하사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섬기게 하심이 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 하나님이 너와 네 모든 형제 레위 자손으로 너와 함께 가까이 오게 하신 것이 작은 일이 아니어늘 너희가 오히려 제사장의 직분을 구하느냐 이를 위하여 너와 너의 무리가 다 모여서 여호와를 거스리는도다. 아론은 어떠한 사람이관대 너희가 그를 원망하느냐”(민 16:5-11). 아론이 스스로 아무 직분도 취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거룩한 직분을 그에게 맡기셨다고 모세는 그들에게 말하였다.

다단과 아비람은 말하였다.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 이뿐 아니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아니하고 밭과 포도원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니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 우리는 올라가지 아니하겠노라”(민 16:13, 14).

348 그들은 모세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원인이 된다고 비난하였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렇게 취급하지 않으셨으며, 그분은 그들이 광야에서 죽을 것이라고 결코 말씀하지 않으셨고, 그분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결코 믿지 않을 것이라고 그들은 말하였다. 이렇게 말한 이는 모세이지 하나님이 아니다. 가나안 땅으로 그들을 결코 인도해 들이지 않는 이 모든 것은 모세에 의해 계획된 것이다. 그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그들을 모세가 끌어냈다고 말했다. 맹목적인 반역을 통해서 그들은 애굽에서 겪은 그들의 고통과 그 땅에 임했던 황폐케 하는 재앙들을 잊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모세를 비난하기를 그가 광야에서 그들을 죽임으로 그들의 재물로 부요하게 되고자 좋은 땅에서 그들을 끌어냈다고 했다. 그들은 무례한 태도로 모세에게 물었다. 이스라엘 만민 중에 모세의 동기를 이해하고 그의 속임수를 알아차릴 만큼 현명한 인물이 전혀 없다고 모세는 생각하는가? 모세가 마치 맹인을 이끌듯이 이스라엘을 어떤 때는 가나안 쪽으로, 그 다음에는 다시 홍해와 애굽 쪽으로 제멋대로 끌고 다니도록 모두가 굴복하고 있으리라고 모세는 생각하는가? 이러한 말을 그들은 회중 앞에서 말하였고, 그들은 모세와 아론의 권위를 거절하고 더 이상 인정하지 않았다.

모세는 부당한 비난에 대해 크게 움직였다. 그는 자기가 독단적으로 언제나 행동했는지에 관하여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께 호소하였으며, 하나님께서 그의 판단자가 되어 주시기를 탄원하였다. 일반적으로 백성들은 불만을 품었으며, 고라가 그릇되게 제시한 것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이에 고라에게 이르되 너와 너의 온 무리는 아론과 함께 내일 여호와 앞으로 나아오되 너희는 각기 향로를 잡고 그 위에 향을 두고 각 사람이 그 향로를 여호와 앞으로 가져오라 향로는 모두 이백 오십이라 너와 아론도 각각 향로를 가지고 올지니라 그들이 각기 향로를 취하여 불을 담고 향을 그 위에 두고 모세와 아론으로 더불어 회막 문에 서니라”(민 16:16-18).

349 고라와 그의 무리, 곧 자부심을 통해 제사장직을 탐하였던 이들은 향로를 취하여 회막 문에 모세와 함께 섰다. 고라는 스스로 미혹을 당하게 될 때까지 질투와 배반을 간직하였으며, 그는 회중이 매우 의로운 백성이며, 모세는 전제적인 통치자로서 회중이 거룩하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회중에게 거룩해져야 할 필요성에 대해 계속적으로 말하고 있다고 진실로 믿었다.

이 반역자들은 전체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이 의로우며, 그들의 모든 고생은 모세, 그들의 통치자, 끊임없이 그들에게 저들의 죄를 상기시켜주고 있는 인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믿도록 아첨하였다. 만일 고라가 그들을 이끌고, 또한 그들의 실패를 상기시키는 대신에 그들의 의로운 행동을 끊임없이 바라보게 함으로 그들을 격려할 수 있다면, 그들은 매우 평안하고 번영하는 여행을 하게 될 것이며, 그는 광야에서 왔다갔다 하는 대신에 약속의 땅으로 의심의 여지없이 인도할 것이라고 백성들은 생각하였다. 그들은 약속의 땅으로 그들이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한 것은 모세이지, 주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말하였다.

반역자들이 멸망당함

고라는 자부심에 가득 차서 모든 이스라엘 회중을 모세와 아론을 대항해서 소집하였다. 350 “여호와의 영광이 온 회증에게 나타나시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 그 두 사람이 엎드려 가로되 하나님이여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여 한 사람이 범죄하였거늘 온 회증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회중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 사면에서 떠나라 하라 모세가 일어나 다단과 아비람에게로 가니 이스라엘 장로들이 좇았더라 모세가 회중에게 일러 가로되 이 악인들의 장막에서 떠나고 그들의 물건은 아무것도 만지지 말라 그들의 모든 죄중에서 너희도 멸망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매 무리가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 사면을 떠나고 다단과 아비람은 그 처자와 유아들과 함께 나와서 자기 장막 문에선지라 모세가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이 모든 일을 행케 하신것이요 나의 임의로 함이 아닌 줄을 이 일로 인하여 알리라 곧 이 사람들의 죽음이 모든 사람과 일반이요 그들의 당하는 벌이 모든 사람의 당하는 벌과 일반이면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심이 아니어니와 만일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사 땅으로 입을 열어 이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소속을 삼켜 산채로 음부에 빠지게 하시면 이 사람들이 과연 여호와를 멸시한 것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민 16:19-30). 모세가 말을 마쳤을 때, 땅이 갈라져 그들의 모든 장막과 그들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삼켜 버렸다. 그들은 산채로 구덩이 속에 빠졌으며, 땅은 그들 위로 다시 닫혀지고 그들은 회중 속에서 멸망당하였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멸망당하는 자들의 부르짖음을 들었을 때, 그들은 그들로부터 멀리 도망쳤다. 그들은 그들이 큰 범죄를 저질렀음을 알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세와 아론에 대한 비난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기들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멸망받을까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영광의 구름 속에서 불이 나와서 향을 드리던 250인을 사르어 버렸다. 이들은 족장, 곧 일반적으로 회중 속에서 선한 판단력을 갖고 영향력을 끼치던 유명한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매우 크게 존경을 받았으며,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그들의 판단을 구해 왔었다. 그러나 그들은 나쁜 감화에 전염되어 시기, 질투, 반역에 빠졌다. 그들은 고라, 다단, 아비람과 같이 멸망당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반역의 선봉에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반역한 지도자들의 종말을 먼저 보았으며, 저들의 범죄를 회개할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사악한 인물들의 멸망을 감수하지 않았고, 따라서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임하여 그들마저 멸망시켰다.

35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제사장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을 명하여 붙는 불 가운데서 향로를 취하여다가 그 불을 타처에 쏟으라 그 향로는 거룩함이니라 사람들은 범죄하여 그 생명을 스스로 해하였거니와 그들이 향로를 여호와 앞에 드렸으므로 그 향기가 거룩하게 되었나니 그 향로를 쳐서 제단을 싸는 편철을 만들라 이스라엘 자손에게 표가 되리라 하신지라”(민 16:36-38).

반역이 치료되지 않음

하나님의 심판이 이처럼 무시무시하게 나타난 다음에 백성은 그들의 장막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공포에 사로잡혔으나, 겸비하게 되지 않았다. 그들은 반역의 정신에 깊이 감명되었고, 고라와 그 무리의 아첨을 통해 자기들은 매우 선한 백성이며, 모세에 의해 잘못 취급을 당하고 학대를 받았다고 믿게 되었다. 그들의 마음은 멸망당한 이들의 정신에 너무 철저하게 감염되었기 때문에 맹목적인 편견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어려웠다. 만일 그들이 고라와 그의 무리는 모두 사악하며, 모세가 의롭다고 인정해야 한다면, 그들이 모두 광야에서 분명히 죽을 것이라는 믿기 싫은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이 말에 복종할 수 없었고, 그 모든 것은 모세가 그들을 속이기 위한 협잡에 불과하다고 믿고자 노력하였다. 멸망당한 이들은 그들에게 기분 좋은 말을 했고, 그들에게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나타내 보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모세를 야심적인 인물로 생각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이 잘못할 수가 없다고 결정하였다. 결국 멸망당한 인물들은 선한 인물들이었으며, 모세는 어떤 면에서든 그들의 멸망의 원인이었다.

사단은 미혹당한 영혼들을 더욱 깊이 끌고 들어갈 수 있다. 그는 그들의 판단력 그들의 보는 것, 그들의 듣는 것을 왜곡시킬 수 있다. 이스라엘이 바로 이런 경우였다. “이튿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에게 원망하여 가로되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도다 하고”(민 16:41). 백성은 모세와 아론을 위하는 방향으로 일이 매듭지어진 것에 대해 실망하였다. 고라와 그의 무리들, 불경스럽게도 저들의 향로를 들고 제사장직을 행한 모든 이들의 모습은 백성들에게서 찬양을 자아내었다. 352 그들은 이들이 감히 신령하신 대주재를 모욕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이 멸망당하였을 때, 백성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잠시 후에 모두는 흥분한 모습으로 모세와 아론에게 나아와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멸망을 당한 이들의 피에 대해 그들을 비난하였다.

“회중이 모여 모세와 아론을 칠 때에 회막을 바라본즉 구름이 회막을 덮었고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났더라 모세와 아론이 회막 앞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 하시매 그 두 사람이 엎드리니라”(민 16:42-45). 이스라엘의 반역과 자기에 대한 그들의 무자비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직도 이전과 다름없이 그들에 대해 동일한 관심을 나타내었다. 주님 앞에 엎드려서 그는 백성들을 살려주시기를 하나님께 탄원하였다. 당신의 백성의 죄들을 용서해 주시도록 주님께 그렇게 기도하고 있을 때, 모세는 아론에게 그가 주님 앞에 남아 있는 동안 그들의 죄를 위해 대속하도록 요청하였다. 그의 기도가 향과 함께 올라가 하나님께 가납하신 바 되고, 모든 회중이 그들의 반역을 통해 멸망받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에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너는 향로를 취하고 단의 불을 그것에 담고 그 위에 향을 두어 가지고 급히 회중에게로 가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라 여호와께서 진노하셨으므로 염병이 시작되었음이니라 아론이 모세의 명을 좇아 향로를 가지고 회중에게로 달려간즉 백성 중에 염병이 시작되었는지라 이에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섰을 때에 염병이 그치니라 고라의 일로 죽은 자 외에 염병에 죽은자가 일만 사천칠백 명이었더라 염병이 그치매 아론이 회막 문 모세에게로 돌아오니라”(민 16:46-50).

우리 시대를 위한 교훈

353 고라, 다단, 아비람의 예를 통해서 우리는 그들의 본을 따르지 아니하도록 경고의 교훈을 받는다.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전 10:9-11)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당신의 백성이 크게 미혹당하기 쉽다는 증거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명예에 대한 진실된 열성처럼 보이는 수많은 경우가 사실은 그 근원을 따지자면, 사물의 진실된 상태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통해 마음에 인상을 끼치고, 마음을 시험하도록 원수에 대해서 영혼을 무방비 상태로 놓아 둔 데 있음을 보게 된다. 이 말세에 우리는 바로 그러한 일을 예상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사단은 이스라엘 회중에 대해서 그러했던 것처럼 현재도 그렇게 바쁘기 때문이다. 편견의 무자비함과 그 힘은 이해되고 있지 않다. 회중이 반역으로 인한 이들 지도자들의 멸망을 목격했건만, 그들의 마음 속에 들어간 회의와 불신의 권세는 제거되지 않았다. 그들은 땅이 갈라지고 반역의 지도자 들이 땅속으로 꺼져 버리는 것을 보았다. 이 두려운 모습은 분명히 저들을 고쳐서 저들로 하여금 모세를 비난한 것에 대해 깊이 회개하도록 해야 한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온 이스라엘로 하여금 저들의 죄악된 길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주심으로 회개와 고백으로 이끌고자 하셨다. 그분은 기만당한 이들에게 그들이 죄인이며, 당신의 종 모세가 옳다는 것에 대해 압도적인 증거를 주셨다. 그들은 그들이 목격한 하늘의 두려운 형벌을 생각하는 가운데 한 밤을 보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러나 이성은 비뚤어졌다. 고라는 반역을 부추겼고, 250명의 족장들이 불만을 퍼뜨리는 일에 그와 합류하였다. 모든 회중은 모세를 대항하여 범람하고 있던 시기, 의심, 증오에 다소간 영향을 받았으며, 이 일로 매우 두드러지게 무서운 모습으로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이 임하였다. 354 그러나 우리의 은혜의 하나님께서는 공의와 자비의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신다. 그분은 선동가들, 반역한 지도자들과 그들에 의하여 미혹되어 이끌림을 받은 이들을 구분하셨다. 그분은 미혹당한 이들의 무지와 미련에 대해 불쌍히 여기셨다.

하나님께서는 회중들로 하여금 모세의 자리를 선택한 인물들의 장막으로부터 떠나가도록 모세를 통해 명령하셨다. 스스로의 멸망을 미리 자초한 바로 이 인물들은 하나님의 손안에서 그 기회에 저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수단이었다. 모세는 “너희는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 사면에서 떠나라”(민 16:24)고 말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에 의하여 그들의 죄 가운데서 멸망당할 위험 가운데 빠져 있음을 마찬가지로 경고받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동정을 나타내고, 그들과 사귐으로 그 인물들의 죄악에 참여한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만일 모세가 이스라엘 회증 앞에서 시험을 제시하고 있는 동안에 반역을 시작한 이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과 또한 그분의 손상받은 종의 용서를 구하였다면 하나님의 진노는 그 때에도 정지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장막 속에 고라. 곧 반역의 선동자와 그의 동조자들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 모세를 통하여 결코 하나님의 진노를 내리시지 않을 것처럼 그분의 진노를 무시하는 양 우뚝 서 있었다. 그리고 이 반역자들은 모세와 함께 거의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존전으로 부르심을 받아 그분의 비할 데 없는 영광을 보는 특권을 하나님께로부터 극히 최근에 누린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전혀 그렇지 않은 자인 것처럼 행동하였다. 이들은 모세가 두 돌비를 받아서 산에서 내려올 때 그의 얼굴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반사되어 백성들이 감히 그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그로부터 도망치는 것을 보았다. 모세는 그들을 불렀지만. 그들은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돌비를 제시하고 말하였다. 나는 너희를 위해 간구하였고 너희에게서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켰다.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의 회증을 떠나시고 그들을 멸망시킨다면, 나의 이름을 당신의 책으로부터 도말해 달라고 나는 간청하였다. 보라, 주님께서 내게 응답하셨고, 내손에 들려 있는 이 돌비들은 당신의 백성에 대한 그분의 화해의 서약으로 내게 주어진 것이다.

백성은 그것이 모세의 음성인 것을 깨달았다. 355 비록 그는 변화되어 영광스럽게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모세였다. 그들은 그에게 그의 얼굴을 볼 수 없다고 말하였다. 왜냐하면 그의 얼굴에서 비치는 빛은 너무 찬란하여 그들에게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그의 얼굴은 해와 같았다. 그들은 그것을 볼 수 없었다. 모세가 어려움을 발견하였을 때, 그는 자기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다. 그는 그의 얼굴 위에 있는 빛과 영광이 하나님께서 그의 위에 베푸신 하나님의 영광이 반사되는 것이며, 백성은 그것을 감당해야 한다고 설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영광을 가렸다. 백성의 죄된 상태 때문에 그의 영화케 된 얼굴을 바라보는 것은 고통스럽게 되었다. 하나님의 성도들이 우리 주님의 재림 직전에 영화롭게 변할 때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악인들은 물러나서 그 광경으로부터 숨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도들의 용모에 나타난 영광은 그들에게 고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세에게 임한 이 모든 영광, 하나님의 겸손한 종 위에 찍힌 이 모든 신성한 도장이 잊혀진바 되었다.

자비를 소홀히 여김

히브리인들은 이 큰 반란에 가장 탁월하였던 인물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내리는 모습을 바라 본 장면에 대해 심사 숙고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가장 책임이 큰 이들에 대해 하나님의 진노가 발해졌을 때 이 감사할 줄 모르는 백성을 완전히 멸절시키지 않은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가 나타났다. 그분은 스스로 미혹을 당하도록 허용한 회중에게 회개의 여지를 주셨다. 주님, 곧 저들의 보이지 아니하시는 지도자께서 이 일에 그토록 큰 인내와 긍휼을 보여주셨다는 사실은, 그들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와 겸비로 그분께 돌아갈 때, 그분께서는 가장 흉악한 범죄자들까지도 기꺼이 용서하신다는 증거로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신성 모독적인 길에서 회중은 주님의 진노의 나타남을 통해 저지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대항한 큰 죄인으로서 그 배반적인 길에 대해 그분의 진노를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저들을 인도하도록 임명하신 도구들을 멸시하고 거절하는 것보다도 인간이 더 크게 하나님을 모독할 수 있는 길은 거의 없다. 그들은 이렇게 했을 뿐 아니라, 모세와 아론을 죽이고자 계획하였다. 356 이들은 죽을까 봐 두려워서 고라, 다단, 아비람의 장막으로부터 도망쳤다. 그러나 그들의 반역은 치료되지 않았다. 그들은 저들의 죄를 인하여 슬픔과 절망 가운데 빠지지 않았다. 그들은 저들의 가장 소중한 특권을 남용하고 빛과 지식을 거스려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각성시키고, 책망하는 양심의 작용을 느끼지 못하였다. 우리는 여기에서 예수님, 곧 광야에서 히브리인들 앞에서 행하셨던 천사의 오래 참음에 관한 소중한 교훈을 배우게 된다.

그들의 보이지 아니하는 지도자께서는 저들이 수치스러운 멸망 가운데 빠지지 않도록 지켜 주실 것이었다. 용서가 그들 위에 머물렀다. 만일 그들이 지금이라도 회개한다면, 용서를 받을 수 있었다. 하나님의 진노는 이제 그들 가까이에 이르러 왔고,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였다. 특별하고, 거역할 수 없는 하늘로부터의 간섭을 통해서 그들의 신성 모독적인 반역이 제지되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섭리의 간섭에 대해 지금 반응을 보인다면, 그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회중의 회개와 겸손은 그들의 범죄에 비례하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현저한 능력이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불확실한 영역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들이 받아들이려고 한다면, 모세와 아론의 거룩한 부르심과 진정한 위치에 관하여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증거들을 그들이 등한히 한 것은 치명적이었다. 그들은 저들 편에서 신속한 행동을 통해 저들의 흉악한 죄에 대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하는 일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였다.

히브리인들에게 주어진 유예의 밤은 저들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일 없이 지나갔으며, 오히려 그들에게 저들이 죄인 중 괴수임을 보여준 증거들을 거절할 다른 길을 모색하는 중에 보내어졌다.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임명함을 받은 인물들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을 간직하고 있었으며, 모세와 아론의 권위를 거스리는 미친 길을 더욱 힘차게 걸어갔다. 판단력을 마비시키고 그들의 눈을 가려 멸망으로 끌고 가기 위해 사단이 활동하고 있었다. 그들의 마음은 불만으로 철저하게 중독되었으며, 모세와 아론은 사악한 인물로서 고라, 다단, 아비람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것으로 여겼다. 357 그들은 고라, 다단, 아비람이 히브리인들에게 견책 대신에 찬양이, 근심과 고난 대신에 평강이 지배하는 더욱 나은 질서의 세계를 가져다 줄 구주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였다.

그 전날, 모든 이스라엘은 구덩이로 빠져들어 가 멸망당하는 죄인들의 부르짖음에 놀라 도망을 쳤다. “땅이 우리도 삼킬까 두렵다”(민 16:34). 그러나 “이튿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에게 원망하여 가로되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도다”(민 16:41)라고 하였다. 분노한 중에 그들은 하나님의 임명함을 받은 사람들 그들 생각에 선하고 거룩한 인물들을 죽이는 큰 죄를 범한 이들에 대해 폭력의 손길을 뻗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회막 위에 여호와의 영광 속에서 그분의 임재하심이 나타났으며, 반역한 이스라엘은 그들의 미치고, 신성 모독적인 길을 저지당하였다. 그분의 두려운 영광 속에서 여호와의 음성이 그 이전 날 이스라엘 회중에게 명령하던 때와 동일한 말씀으로 모세와 아론에게 지금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민 16:45)

여기에서 우리는 빛과 증거로부터 돌아서는 인간의 마음을 가리워 버리게 될 눈먼 상태에 대한 현저한 예증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완고한 반역의 힘을 보며, 그것을 정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발견할 수 있다. 진정으로 히브리인들에게는 그들을 속인 인물들의 멸망을 통해서 가장 크게 확신시켜 주는 증거가 주어진바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담대하고도 멸시적인 태도로 우뚝 서서 모세와 아론이 선하고 거룩한 인물들을 죽였다고 비난하였다.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슬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삼상 15:23).

모세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으며, 히브리인들이 그 전 날, 고라 다단, 아비람의 장막으로부터 도망친 것처럼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신속히 자리를 뜸으로 회중이 멸망당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모세는 지체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그 큰 무리가 지속적인 반란을 통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들로 하여금 멸망당하도록 포기하는 것을 승낙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백성들이 겸비해야 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스스로 엎드렸다. 358 그는 그들이 그들 스스로를 위해 간구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을 위하여 중보하였다.

모세는 여기에서 그리스도를 표상한다. 이 위기의 때에 모세는 그분의 돌보심 아래 있는 양들에 대해 진정한 목자의 관심을 나타내었다. 그는 감정이 상하신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그분의 선민이 전적으로 멸망당하지 않게 되기를 간구하였다. 그리고 그의 중보를 통하여 그는 진노의 팔을 붙잡았으며, 불순종하고, 반역적인 이스라엘의 완전한 종말은 이르러 오지 않았다. 그는 아론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발해져서 염병이 시작된 그 무서운 위기의 때에 어떻게 해야 할지 아론에게 지시하였다. 아론은 모세의 중보가 향연과 함께 올라가는 동안 그의 향로를 가지고 여호와 앞에서 흔들었다. 모세는 그의 간청을 감히 중단할 수 없었다. 그는 마치 야곱이 씨름할 때에 그랬던 것처럼 천사의 힘을 붙들었으며, 야곱처럼 승리를 거두었다. 아론은 “내가 너의 기도를 들었노라. 내가 철저히 소멸하지 아니하리라” 는 은혜의 응답이 이르러 올 때에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서 있었다. 회중이 무시하였고, 죽이고자 했던 바로 그 인물들이, 하나님의 복수의 칼을 칼집 속에 집어 넣음으로 죄된 이스라엘이 살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해 간구하는 인물이었다.

견책을 멸시하는 자들

사도 바울은, 여행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한 경험이 말세를 맞을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자들을 위하여 기록되었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당하는 위험이 히브리인들이 당했던 것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오히려 더욱 큰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 기록된 것처럼. 앞으로도 질투와 불평에 대한 유혹이 있을 것이며, 대담한 반역이 일어날 것이다. 죄악과 잘못에 대한 책망을 대항하기 위해서 일어나는 정신이 언제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견책의 음성이 잠잠해져야 하겠는가!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백성들의 잘못과 범람하는 죄악들을 견책하기를 두려워하는 우리 나라의 여러 다른 교단과 아무 다를 바가 없는 위치에 처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의의 교역자로 세우신 자들은 백성들의 죄악을 책망할 엄숙한 책임을 지고 있다. 359 바울은 다음과 같이 디도에게 명하였다.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딛 2:15). 담대히 죄를 견책하는 자를 멸시하는 자들이 항상 있을 것이나 견책을 하지 않으면 안될 때가 있다. 바울은 디도에게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믿음 안에 견고히 서도록 엄한 책망을 할 것을 지시한다.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지고 교회로 모여든 남녀들은 독특한 성격과 결점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발전될 때, 그들에게는 견책이 필요된다. 중요한 위치에 놓여진 자들이 전혀 견책이나 책망을 하지 않는다면 이내 하나님의 명예를 크게 손상시킬 비도덕적인 상황들이 벌어질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견책해야 할까? 사도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견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 견책을 필요로 하는 자 앞에 원칙이 제시되어야 하되 하나님의 백성들의 잘못이 무관심하게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견책을 멸시하고 항상 그것에 대항하여 감정을 내는 남녀들이 있을 것이다. 잘못을 지적당하는 것은 유쾌한 일은 아니다. 견책이 필요한 거의 모든 경우마다 주님의 성령께서 슬픔을 당하시며 하나님의 사업이 수치를 당한다는 사실을 완전히 무시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자들은 개인 감정이 상했다는 이유로 견책을 받아 마땅한 자들을 동정할 것이다. 이 모든 성화되지 못한 동정 때문에 동정자들은 견책을 받은 자의 죄악에 동참하는 자리에 나아간다. 견책을 받은 자가 자신의 잘못을 느낄 수 있는 위치에 놓여진다면, 십중팔구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일에 도움을 받을 것이요 개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참견하기를 좋아하며 성화되지 않은 동정자들은 견책자의 동기와 주어진 견책의 성격에 잘못된 의미를 부여하며, 또한 책망받은 자를 동정함으로 그로 하여금 정말로 자신이 학대를 받았다고 생각하게 한다. 그리하여 책망받은 자의 감정은 단지 의무를 이행한 견책자에게 반항하여 일어나게 된다. 하나님께 책임을 느끼면서 이 불유쾌한 의무를 충실히 이행한 자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이 당신의 뜻을 행함에 있어서 언제나 진지하기를 요구하신다. 360 디모데에게 권고하는 중에 사도는 이렇게 말했다.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견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

히브리인들은 주님의 지시와 제지에 기꺼이 순복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자신의 길을 원했으며, 그들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며, 그들 자신의 판단에 의해 지배받기를 원했다. 만일, 그들이 이 일을 행하도록 자유로이 방치되었다면, 모세를 향한 불평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제한을 받을 때 그것을 참지 못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훈련을 받아 행동의 조화를 이룸으로써 그들이 동일한 견해를 가지며, 한마음이 되고, 동일한 판단을 내리게 되기를 바라신다. 이러한 상태가 되기 위하여는 많은 일이 성취되어야 한다. 육욕적인 마음은 굴복되고 변화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안에 항상 살아 있는 증언이 있도록 계획하신다. 책망하고 교훈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며, 어떤 이들은 경우에 따라 심한 책망을 받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오, 나는 너무나 감정이 예민하여 조그마한 비난도 감당할 수 없다!” 고 변명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이러한 인물들이 정확하게 자신의 경우를 표현한다면, 다음과 같이 말하여야 할 것이다. “나는 너무 고집스럽고 자부심이 강하고 교만하여서 남의 명령을 받지 않을 것이며 책망을 받지 않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인 판단의 권리를 요구한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믿고 말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주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개성을 굴복하도록 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누가 개인의 자주권을 행사할 한계를 정할 올바른 판단자가 될 수 있겠는가?

베드로는 그의 형제들에게 권면한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 5:5). 사도바울 역시 빌립보 교회의 형제들에게 연합과 겸손에 대해 권고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1-5). 361 또다시 바울은 그의 형제들에게 권한다.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하며”(롬 12:9, 10). 에베소 교회를 향해 편지를 쓰는 중에 그는 말한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 5:21).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는 우리에게 기만의 큰 위험을 보여 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저들 자신의 죄악적인 본성에 대해서나 용서의 은혜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본성적 어두움에 처해 있으며, 유혹과 큰 기만에 굴복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행위가 하나님께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에 크게 만족하고 있다. 이러한 자들은 항상 성령의 인도를 거스릴 것인데, 특히 책망에 대하여 그렇게 할 것이다. 그들은 간섭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간혹 그들은 이기적인 두려움과 선한 목적을 가지며 근심스러운 마음이나 죄책감을 가지지만, 영원한 반석되신 분에게 고착되어 있지 않음으로 깊은 경험을 가지지 못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분명한 증언의 필요를 결코 깨닫지 못한다. 그리스도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처럼 그들도 빛 가운데 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죄는 그들에게 심히 악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한편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큰 빛을 받아 특별한 각성을 하고 하나님의 영의 역사를 진정으로 경험한 자들이다. 그러나 사단의 다양한 유혹이 저들을 굴복시켰다. 저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빛에 대해 감사하지 않는다. 그들은 성령께서 발하시는 경고와 책망에 유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정죄 아래 놓여져 있다. 이들은 직설적인 증언이 저들을 정죄하기 때문에 항상 그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한 연합체가 될 것을 계획하신다. 그리하여 그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동일한 마음을 가지고 동일한 판단을 내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일은 교회 내에 명백하고 단도직입적이며 산 증언이 없이는 성취될 수 없다. 그리스도의 기도는 당신의 제자들도 당신이 당신의 아버지와 하나이신 것처럼 서로 하나가 되는 것이었다. 362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 17:20-23).

청년들에게 호소함

사랑하는 청년들에게: 때때로 주님께서는 그대들을 위한 경고의 증언을 내게 주셨다. 만일 그대들이 그대들의 심령의 가장 좋고 거룩한 애정을 그분께 드렸을 것 같으면, 그분은 그대들을 격려해 주셨을 것이다. 이 경고들이 분명하게 내 앞에 되살아날 때, 나는 그대들이 느끼지 못하고 있는 그대들의 위험을 느낀다. 배틀크릭에 위치한 그 학교에는 여러가지 심성(心性)을 지닌 많은 청년들이 모여들고 있다. 만일, 이 청년들이 하나님께 헌신하지 않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지 않으며 그분의 계명을 따라 겸손히 행하지 않는다면, 배틀크릭에 한 학교가 위치함은 교회에 큰 실망을 주는 요소임이 입증될 것이다. 이 학교는 축복이 되거나 저주가 될 수 있다. 나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붙들고 있는 그대들에게 권고하는데 모든 죄악으로부터 떠나라.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수 있는 품성을 계발하라.

나는 묻는다. 그대들에게 주어진 견책의 증언들이 하나님께로서 이르러 온 것임을 그대들은 믿는가? 그대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음성이 그대들의 위험을 지적하고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그대들은 주어진 충고에 유의하고 있는가? 그대들은 자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경고의 증언들을 읽음으로써 그대들의 마음 속에 이것을 신선하게 보존하고 있는가? 주님께서는 어린이와 청년인 그대들에게 거듭거듭 말씀하여 오셨지만 그대들은 주어진 경고에 유의하기를 지체해 왔다. 363 비록 그대들은 하나님께서 그대들의 품성과 위험에 대하여 제시하신 관점에 대항하거나, 그대들이 추구하도록 제시하신 길을 거슬려 반역적으로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는 않았으나, 그대들 중의 어떤 이들은 그대들이 영적 힘을 얻으며, 학교에서와 교회에서, 그리고 그대들이 교제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도록 그대들에게 요구된 것들에 유의하지 않았다.

청년 남녀들이여, 그대들은 하나님께서 그대들에게 주신 빛에 대하여 그분께 책임을 지고 있다. 만일, 이 빛과 경고에 유의하지 않는다면, 심판 때 그것들이 그대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그대들의 위험이 명백하게 진술되었으며, 그대들은 모든 면으로 주의를 받고 보호를 받았으며, 경고들로 둘러싸여져 있었다. 하나님의 집에서 그대들은 성령의 증거를 통하여 하나님의 종들에 의하여 제시된 가장 엄숙하고 마음을 살피는 소리를 들었다. 이 엄숙한 호소가 그대들의 마음에 얼마만한 영향력을 나타내고 있는가! 그것들이 그대들의 품성에 어떠한 감화를 끼쳤는가? 그대들은 이 모든 호소와 경고에 대하여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그것들은 심판 날에, 헛되고 경솔하며 교만한 생애를 추구한 자들을 정죄하기 위하여 일어날 것이다.

사랑하는 젊은 친구들이여, 그대들은 뿌린 대로 거두게 될 것이다. 지금은 그대에게 있어서 뿌리는 시기이다. 어떤 추수를 거두어들이게 될 것인가? 그대들은 무엇을 뿌리고 있는가? 그대가 발하는 모든 말, 그대가 행하는 모든 행동은 선악간에 열매를 맺게 될 것이며, 뿌리는 자에게 기쁨이나 슬픔을 가져올 씨앗이다. 씨앗이 뿌려진 대로 수확이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대들에게 큰 빛과 많은 특권들을 주셨다. 이 빛이 주어지고 그대들의 위험이 그대들 앞에 명백히 제시된 이후에는 그대들에게 책임이 있다. 하나님께서 그대들에게 주시는 빛을 그대들이 취급하는 방법이 행복 혹은 불행의 척도가 될 것이다. 그대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운명을 꼴 짓고 있다.

그대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품성에 선악간에 영향을 끼친다. 그대들이 행사한 바로 그 영향력이 하늘의 기록책에 기록된다. 한 천사가 그대를 따라다니며, 그대들의 말과 행동을 기록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날 때, 그대는 자신의 연약함을 느끼고, 하나님께서 능력을 얻어야 함을 느끼는가? 그리하여 그대는 겸손하고도 진실되게 그대의 소원을 하늘 아버지께 아뢰는가? 만일 그렇다면, 천사들은 그대의 기도를 주목할 것이며, 만일 이 기도가 거짓된 입술에서 발해진 것이 아니라면, 그대를 보호하는 천사는 그대가 부지중에 다른 사람들을 잘못하도록 유도할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잘못을 범할 위험에 처할 때 그대 편에 서서, 그대로 하여금 더 나은 행동을 하도록 충동하며, 그대를 위하여 말을 선택하고 그대의 행동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364 만일, 그대가 전혀 위험을 느끼지 않고, 유혹을 대항하기 위한 도움과 힘을 위해 전혀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틀림없이 곁길로 나아갈 것이요, 그대의 의무 태만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책에 표시되어, 심판날에 그대는 부족함이 드러날 것이다. 그대의 주변에는 교육을 받아 온 자들과, 제멋대로 하고 귀염만 받고 뽐내고 칭찬을 받아 옴으로 마침내 실생활을 위하여는 사실상 쓸모 없게 된 자들이 있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이들과 관련해서 말하고 있다. 그들의 품성은 방탕과 아첨과 나태에 너무나 단단히 싸여 있기 때문에 이생에서 그들은 쓸모가 없다. 만일 이생에 관한 한 쓸모가 없다면, 모든 것이 순결하고 거룩한 곳, 모두가 조화되는 품성을 지닌 곳인 저 생에 대해 어떤 소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나는 이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해 왔다. 나는 그들에게 개인적으로 편지를 보냈다. 나는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허영과 의복에 대한 애착, 그리고 그들의 영원한 관심사에 부주의하도록 이끎으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끼치는 영향을 볼 수 있었다. 이런 사람들의 유일한 희망은 그들이 자신들의 길에 유의하고 하나님 앞에 자신들의 교만하고 헛된 마음을 낮추고 그들의 죄를 자복하고 회심하는 것이다.

의복에 있어서의 허영은 오락을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청년에게 있어서 큰 유혹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신성한 요구를 하신다. 그분은 온 마음, 온 영혼, 온 애정을 요구하신다. 이 요구에 대해 간혹 어떤 이들은, “오, 나는 그리스도인임을 공언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그렇다 한들 무엇이 다를 게 있는가?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임을 공언하는 자에게 요구하시는 것과 동일한 것을 그대에게 요구하고 계시지 않는가? 거룩한 사물에 대해 그대가 대담하게 부주의한다고 해서 그대의 태만과 반역의 죄를 주님께서 간과하시겠는가? 하나님의 요구를 무시한 매일, 그대가 경솔하게 여긴 매 번의 주어진 자비의 기회가 그대의 심판의 자료가 되며, 모든 영혼의 행위가 조사를 받는 날에 그대의 죄의 목록에 첨가될 것이다. 나는 그대들, 신앙을 공언하든지 공언하지 않든지 간에 청년 남녀들에게 말하고 있다. 365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의 애정과, 그분에 대한 즐거운 순종과 헌신을 요구하신다. 그대들에게 주어진 은혜의 시간은 짧다. 그대들은 이 시기를 하나님께 무조건 복종하는 기회로 이용할 수 있다.

하나님의 요구에 대한 순종과 굴복은 영감받은 사도에 의해 하나님의 자녀, 곧 왕족의 일원이 될 수 있는 조건으로 제시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모든 어린이와 청년들, 장년 남녀들을 사단이 그들에게 떨어지도록 강요하고 있는 멸망의 심연에서 당신의 피로 구해 내셨다. 죄인들이 그들에게 값없이 제공된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여 그들의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죄악에 머물러 있고자 하는 그들의 선택과 대담한 범죄가 그들의 죄를 경감시키지 않는다. 예수께서 그들을 위하여 값을 지불하셨으므로, 그들은 그분께 속한다. 그들은 그분의 소유이다. 만일, 그들이 그들을 위하여 생명을 주신 그분께 순종치 아니하고 시간과 힘과 재능을 사단을 섬기는 데 바친다면, 그들은 사망이라는 삯을 받고 있는 것이다. 불멸의 영광과 영생은 우리 구주께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상급이다. 그분은 그들이 그분의 이름을 통하여 그리스도인 품성을 완성하는 일을 가능하게 하셨으며, 그분이 그들을 위하여 승리하신 것처럼 그들이 그들 자신을 위하여 승리하는 일이 가능하게 하셨다. 그분은 자신의 생애를 통하여 한 모본을 주시고, 그들이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셨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하나님의 요구는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주어져 있다. 값없이 제공된 구원을 태만히 하기로 선택하는 자들, 자신을 섬김으로 하나님의 원수, 곧 자아 희생적이신 구주의 원수로 남아 있기로 선택하는 자들은 그들의 삯을 받고 있다. 그들은 육체를 위하여 심고 있으므로 육체에 속한 썩어질 것을 거둘 것이다.

침례를 통해 그리스도를 옷 입은 자들, 또한 이 예식을 통해 세상에서 분리된 것을 보여 주고 새 생명 가운데 행하기로 약조한 사실을 드러낸 자들은 그들의 마음에 우상을 세워서는 안 된다. 죄악을 용서받은 증거를 얻어 즐거워 해 본 경험이 있고, 구주의 사랑을 맛보았지만 그리스도의 대적과 연합하기를 고집하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제공해 주신 완전한 의를 거절하며 그분이 정죄하신 길을 선택한 자들은, 빛을 전혀 받아본 적이 없고 하나님이나 그분의 율법을 전혀 알지 못한 이방인들보다 더 심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366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빛을 따르기를 거절하는 자들 즉 오락과 허영, 세상의 어리석음을 선택하며 하나님의 율법의 의롭고 거룩한 요구에 그들의 행동을 일치시키기를 거절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심한 죄를 짓는 것이다. 그들의 범죄와 그 삯은 그들에게 주어진 빛과 특권에 비례될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이 그들의 오락에 빠져 있는 것을 본다.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여성들의 첫째 되며 가장 중요한 생각은 과시하는 정신이다. 의복과 쾌락에 대한 사랑이 수천명의 행복을 파괴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명을 사랑하고 지키노라고 공언하는 자들 중 어떤 이들은 가능한 한 그들과 유사하게 흉내내면서 그리스도인의 명칭을 보유하고 있다. 청년들 중 어떤 이들은 너무나 과시하는 데 열중한 나머지 그들의 의복에 대한 허영심과 쾌락에 대한 사랑을 충족시킬 수만 있다면 그리스도인의 명칭을 기꺼이 포기하려고까지 한다. 의복에 있어서의 자아 부정은 우리 그리스도인 의무의 일부이다. 평범하게 옷을 입고 어떤 종류의 보석이나 장식품으로든지 장식하는 일을 삼가는 것이 우리의 믿음과 조화를 이룬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의복의 과시와 오락을 사랑하는 일에 방종하는 어리석음을 깨닫는 사람들 가운데 속해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이생만을 위하여 살며 내세를 위하여는 아무런 생각과 관심도 두지 않는 자들의 생각과 마음을 사로잡는 이러한 정신을 찬동하는 그 어떠한 것도 외면하는 그러한 부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 청년들이여, 나는 그대들 중 어떤 사람들이 나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의복과 과시에 대한 사랑에 빠져 있는 것을 보았다. 훌륭한 교육을 받고 어린 시절부터 종교적 특권을 누리고, 침례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옷 입고 세상에 대하여 죽었다고 공언하는 자들 중 어떤 이들 가운데서 나는, 사랑하는 구주를 슬프시게 하며 하나님의 사업에 불명예가 되어 온, 의복에 있어서의 허영과 행위에 있어서의 경솔을 보았다. 나는 그대들의 신앙적 타락과 의복을 꾸미고 치장하는 성향을 고통스럽게 주목해 왔다. 367 어떤 이들은 유감스럽게도 금사슬이나 금핀, 혹은 그 둘 다를 소유하고, 주목을 끌기 위하여 그것을 눈에 띄게 치장하여 보임으로써 악한 취향을 드러내었다. 나는 이와 같은 특성을 볼 때 찬탄을 얻기 위하여 그의 호화스러운 깃털을 과시해 보이는 허영스런 공작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주목을 끌 만한 것으로 이 가련한 새가 가진 모든 것은 깃털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의 목청이나 모양은 전혀 매력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온유하고 정숙한 정신, 곧 하늘의 은혜로 입혀질 수 있는 값을 헤아릴 수 없는 보석의 장식을 추구하는 일에 뛰어나기 위하여 노력할 수 있다. 이러한 장식은 이 세상에서 많은 사람에게 매력을 줄 것이며, 하늘 천사들에 의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하늘 아버지에 의해 큰 가치가 있는 것으로 간주될 것이며, 그것으로 단장한 자를 하늘 궁정에 환영받을 손님으로 적합하게 해줄 것이다.

청년들은 적당하게 계발되기만 하면 그들을 신임받는 어떠한 위치에도 적합하게 할 수 있는 그러한 기능들을 가지고 있다. 만일 그들이 유용한 자가 되고 남에게 축복이 됨이 입증되도록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능력을 활용하고 계발시킬 수 있는 교육을 받는 일을 그들의 목적으로 삼는다면, 그들의 마음은 열등한 표준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깊은 생각과 확고한 원칙을 보일 것이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존경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현명한 그리스도인 생애의 능력을 보고 인정하게 하는 고상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최대한의 유용성을 위해 정신을 연마하고 그들의 능력을 활용하기보다는 자신의 몸을 단장하는 일에 더 큰 관심을 쏟는 자들은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책임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그들이 맡는 모든 일에서 피상적으로 되는 경향이 있으며, 그들의 유용성을 감소시키며 지능을 위축시킬 것이다.

나는 자녀들뿐 아니라 이 청년들의 부모들에 대해서 심한 고통을 마음 속에 느끼고 있다. 이 자녀들을 훈련시키는 일에 부족했기 때문에, 무거운 책임이 다른 어느 곳으로 넘어갔다. 원칙에 입각하여 자녀들을 현명하게 제어하는 대신에 자녀들을 귀여워하고 방종하도록 방임한 부모들은 자기들이 꼴 지어 놓은 품성을 보게 될 것이다. 훈련한 대로 품성은 꼴 지어진다.

충성스러운 아브라함

368 나의 마음은, 브엘세바에서 밤중의 이상 중에 주어진 거룩한 명령을 순종하는 가운데 이삭을 옆에 데리고 여행하는 신실한 아브라함에게로 향한다. 그는 희생을 드리도록 하나님께서 지적해 주신 산이 그의 앞에 있는 것을 본다. 그는 종의 어깨에서 나뭇단을 취하여, 희생물로 드려질 이삭에게 지운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도록 요구하시는 그 일을 하고자 확고하되 고뇌에 찬 굳건함으로 자신의 마음을 준비하였다. 찢어질 듯한 마음과 떨리는 손으로 불을 취할 때, 이삭이 묻는다. “내 아버지여 …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그러나 오, 아브라함은 그에게 지금 그것을 말할 수 없다! 아버지와 아들은 제단을 쌓는다. 이제 아브라함에게는 그의 긴 여로에서 줄곧 심령을 괴롭게 한 사실, 곧 이삭 자신이 희생물임을 그에게 알려야 할 비참한 순간이 다가온다. 이삭은 어린아이가 아니다. 그는 이제 장성한 젊은이다. 그가 택하기만 하면, 아버지의 계획에 순종하기를 거절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를 이상하다고 비난하지도 않고, 그의 목적을 바꾸려고 조차 하지 않는다. 그는 순종한다. 그는 그의 아버지의 사랑을 믿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는 명령을 하지 않으셨다면 그의 독자를 이렇게 비참하게 희생물로 드리지 않을 것임을 믿는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므로, 이삭은 가엾게 여기고 있는 아버지의 떨리는 손, 사랑의 손에 의해 묶인다. 아들은 아버지의 온전함을 믿기 때문에 희생물이 되고자 순종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준비되고 아버지의 믿음과 아들의 순종이 완전히 입증되었을 때, 하나님의 천사는 아들을 죽이고자 치켜든 아브라함의 손을 붙잡고 이제는 충분하다고 말한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

이와 같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행위는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기록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요구가 아무리 심하고 괴로운 것일지라도 신뢰해야 한다는 큰 교훈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며, 자녀들에게 부모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라는 교훈을 준다. 아브라함의 순종을 통하여 우리는, 너무 귀중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릴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교훈을 배우게 된다.

369 이삭은 세상 죄를 위해 희생물로 드려진 하나님의 아들의 모형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는 복음을 아브라함에게 인상 깊이 새겨 주고자 하셨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또한 그의 믿음을 시험함과 동시에 이 진리를 그에게 있어서 실제적인 것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그분은 그의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드리도록 그에게 요구하셨다. 그 어둡고 두려운 시련을 통하여 아브라함이 견뎌 낸 모든 슬픔과 고뇌는 타락한 인간을 위한 구속의 경륜을 그의 이해력에 깊이 새겨 주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그는 완전한 멸망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해 내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돌아가시도록 주신 무한하신 그분의 자아 부정이 어느 정도로 말로 다 할 수 없는 일이었는가를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해하게 되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그 어떠한 심적 고뇌도, 그의 아들을 희생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견딘 그 고뇌를 필적할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비천한 생애, 자아 부정, 가난, 고난, 수치, 그리고 십자가의 고통의 죽음을 당하도록 내어 주셨다. 그러나 거기에는 “이제 충분하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이제 죽을 필요가 없다” 라는 기쁨의 기별을 가져올 천사가 없었다. 천사의 무리들은 이삭의 경우에서처럼 하나님께서 마지막 순간에 그분의 수치스러운 죽음을 중단시키기를 슬픈 마음으로 기다리며 희망하였다. 그러나 천사들에게는 그와 같은 어떤 기별을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에게 전하는 일이 허용되지 않았다. 심판정과 갈바리로 가는 길에서의 굴욕은 계속되었다. 그분은 조롱과 비웃음과 침뱉음을 당하셨다. 십자가 위에서 머리를 떨구시고 운명하시기까지 그분은 그분을 미워하는 자들의 조소와 모욕과 욕설을 견디셨다.

이와 같은 고난을 겪도록 그분의 아들을 주신 것보다 더 큰 사랑의 증거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수 있겠는가? 인류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은 값없이 제공되었고 그분의 사랑은 무한한 것처럼 우리의 신뢰, 순종, 온 마음과 풍부한 애정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요구도 무한하다. 그분께서는 인간이 바칠 수 있는 것은 모두 요구하신다. 우리편에서의 순종은 하나님의 선물에 비례되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완전하고 부족한 것이 없어야 한다. 그분은 우리 자신을 즐겨 완전한 희생 제물로 드리지 않고는 충족될 수 없는 요구를 우리에게 하신다. 그분은 신속하고 즐거운 마음에서의 순종을 요구하시며, 이보다 못한 것은 아무것도 받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얻을 기회를 가지고 있다. 370 금년은 이 글을 읽는 어떤 이들의 생애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이 호소를 읽는 청년들 가운데, 그리스도의 뜻을 진정으로 구하고 즐겁게 행하는 자들에게 그분께서 주시는 화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쾌락을 택하고자 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성소의 저울로 우리의 품성과 행위와 동기를 달아보고 계신다. 우리의 마음을 당신께로 이끄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우리 구주에 의해, 사랑과 순종에 있어서 부족하다는 선고를 받는 것은 두려운 일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크고 귀중한 선물을 주셨다. 그분은 당신의 뜻에 대한 빛과 지식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가 실수하거나 흑암 중에 걸어가지 않게 하셨다. 최종 판결의 날, 보상의 날에 저울에 달려서 부족하다고 판결이 나는 것은 두려운 일이요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될 것이다. 젊은 친구들이여, 하나님의 책에서 그대들의 이름을 찾는 일에 허사가 되게 할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이 하나님과 동역자가 되게 하는 한 가지 일을 하도록 그대를 임명하셨다. 그대의 주위에는 구원해야 할 영혼들로 가득차 있다. 그대들의 열렬한 노력으로 격려하고 축복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대들은 영혼들을 죄에서 돌이켜 의로 향하게 할 수 있다. 하나님께 대한 책임을 느낄 때, 그대들은 기도에 있어서의 성실과, 사단의 유혹을 대항하여 깨어 있을 필요를 느끼게 된다. 그대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대들은 의복의 경박함이나 교만에 방종하기보다는 세상의 도덕적 암흑을 통탄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그대들은 땅에서 이루어지는 가증한 것들을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들 가운데 속하게 될 것이다. 그대들은 허영과 과시를 위한 치장이나 장식으로 끌어가는 사단의 유혹을 대항하게 될 것이다. 이 헛될 것들로 만족을 얻을 수 있는 마음과 지력은 고상한 책임을 등한히 하기까지 편협해지고 위축될 것이다.

우리 시대의 청년들은 그들이 뜻하기만 한다면, 그리스도와 동역자가 될 수 있으며, 일하는 중에 그들의 믿음은 강화되고 신령한 뜻에 대한 지식도 증가될 것이다. 모든 참된 목적과 모든 올바른 행동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다. 371 나는 청년들을 각성시켜 그들 자신의 만족을 위하여 사는 것과, 이 세상의 값싸고 헛된 사물에 그들의 지력을 축소시키는 죄악상을 깨닫고 느낄 수 있게 해주기를 바란다. 만일 그들의 생각과 말이 이 세상의 헛된 매력을 초월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을 목적으로 삼는다면, 지각을 초월한 그분의 평강이 그들의 것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겸손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우리 때문에 고되고 자기 부정적이고, 자아 희생적이고, 미천한 길을 우리의 모본자께서 걷지 않으셨는가?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일하실 때, 그분은 역경을 만나시고, 실망을 겪으시고 비난과 고난을 감수하셨다. 그런데 영광의 왕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따르기를 우리는 거절해야 하겠는가? 시험의 광야의 우리 구속주, 겟세마네 동산의 우리 구주, 갈바리 십자가 위의 우리 구주께서 당하신 고통을 기억할 때, 우리 자신을 위해 정복하는 일을 할 때 겪게 되는 고난과 시련에 대해 우리는 불평할 수 있겠는가?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길을 보여 주고, 우리가 마땅히 소유하지 않으면 멸망될 수밖에 없는 신령한 도우심을 우리에게 가져다 주시기 위하여 견디신 바 되었다. 만일 청년들이 영생을 얻기를 원한다면, 그들은 스스로의 성향을 따라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없다. 상급에는 무엇인가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 그렇다, 모든 것을 치러야 한다. 지금 그들은 예수님을 소유하든지, 세상을 소유할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랑스러운 청년들이 자아를 섬기고, 이 세상의 목적을 얻기 위하여, 빈궁, 피곤, 수고, 염려의 고통을 겪으려고 할 것인가! 그들은 스스로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어떤 고난과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불평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영생을 얻기 위한 일에 쟁투, 자기 부인, 혹은 그 어떤 희생에 대해 그들이 움츠러들어야 한단 말인가?

그리스도께서 영광의 궁전으로부터 이 죄로 오염된 세상에 오셔서 인간이 되시기까지 당신을 겸비하게 하셨다. 그분은 당신 자신을 우리의 약점과 동일시 하시고 모든 면에서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 땅위에서 의로운 품성을 완성하셨는데, 당신 스스로를 위해서가 아니라-그분의 품성은 순결하고 흠이 없기 때문에-타락한 인간을 위해서였다. 주님은 그분의 성품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인간에게 제공하신다. 자기의 죄에 대한 회개,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 하나님의 완전한 율법에 대한 순종을 통해서 죄인은 그에게 옷 입혀진 그리스도의 의를 소유한다. 372 그것은 그의 의가 되고, 그의 이름은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다. 그는 하나님의 자녀, 왕가의 가족이 된다.

예수께서는 세상을 구속하기 위하여 무한한 값을 치르셨으며, 또한 인류는 그분의 손안에 주어진바 되었다. 그들은 그분의 소유가 되었다. 그분은 왕궁에서 당신이 지니셨던 명예, 부귀, 영광스러운 집을 희생하시고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이 되셨다. 요셉은 가장 미천한 날품팔이 중 하나였다. 예수님도 마찬가지로 일하셨다. 그분은 고난과 수고의 삶을 사셨다. 침례를 받으신 후 그분의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 그분은 거의 6주간에 걸친 고통스러운 금식을 견디셨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그분을 고통스럽게 한 것은 단지 에이는 듯한 굶주림이 아니라, 그분을 무겁게 억누르는 세상의 죄였다. 죄를 알지 못하신 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셨다. 우리의 죄를 인해 그분을 무시무시하게 억누르는 죄의 무게와 더불어, 그분은 식욕, 세상과 명예에 대한 사랑, 신성 모독으로 이끌어 가는 과시적인 교만 등에 관한 두려운 시험을 견디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큰 세 가지 지배적인 시험을 인간을 위해 견디시고 승리하심으로 당신을 위해 의로운 품성을 이루어 내셨는데, 그 이유는 인간 스스로 이것을 행할 수 없음을 아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이 세 가지 점에서 사단이 인류를 공격할 것을 아셨다. 사단은 아담을 정복하였고, 자기의 사업을 인간을 완전히 멸망시킬 때까지 수행해 나가기로 계획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이 스스로를 위해서 정복할 수 없음을 보셨기 때문에 인간을 위해 사단을 정복하고자 인간 대신 전쟁터에 들어오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고통, 자기 부인, 자아 희생의 생애를 통해, 또한 당신의 겸비와 최후의 죽으심을 통해, 인간의 속량을 위한 길을 마련하셨다. 그분은 그리스도의 본을 따름으로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해 승리하신 것처럼 스스로를 위해서 승리할 수 있도록 인간에게 도움을 가져오셨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 20).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 17). 373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후 6:14-18).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은혜롭고 부드럽게 당신의 자녀들을 대하시는가! 그분은 그들이 멸망하지 않도록,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수천의 위험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시며, 사단의 교묘한 수단으로부터 그들을 지키신다. 천사를 통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우리의 둔한 시력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부드럽고 자애로우신 창조주께서 그분의 손으로 하시는 사업에 나타난, 그분의 끊임없이 돌보시는 관심을 깊이 생각하거나 감사하려 하지 않으며, 그분이 매일 우리에게 베푸시는 자비의 풍성함을 고맙게 생각하지 않는다.

청년들은 그들이 접하는 많은 위험들에 대해 무지하다. 그들은 그 모든 위험들을 결코 완전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깨어 있고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양심을 민감하게 하고, 그들의 지각을 밝게 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원수의 역사를 분별하고 그의 공격에 대하여 방비가 되도록 하실 것이다. 그러나 많은 청년들은 자신의 성향을 너무 오랫동안 따랐으므로, 의무는 그들에게 무의미한 단어일 뿐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들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고상하고 거룩한 의무를 깨닫지 않고, 일을 행하기를 전적으로 등한히 한다.

만일, 청년들이 깨어 사단의 유혹을 대항하기 위하여 하나님께로 오는 능력을 받을 필요를 깊이 느낄 수만 있다면, 고귀한 승리는 그들의 것이 될 것이며 그리스도인 싸움에서 귀중한 체험을 얻게 될 것이다. 청년들 중에서 영감받은 사도 바울의 권면을 생각하는 이는 얼마나 적은가! 374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벧전 5:8, 9). 요한에게 주어진 이상 중에 그는 인간에게 역사하는 사단의 능력을 보고 외쳤다.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 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계 12:12).

청년들의 유일한 안전은 끊임없는 경성과 겸손한 기도 속에 있다. 이러한 노력이 없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고 스스로 우쭐해서는 안 된다. 광야에 계신 그리스도께 접근했을 때처럼 사단은 빛으로 자신의 유혹과 계책을 덮어 위장한다. 그때, 그는 하늘 천사 중의 하나같은 모습을 했다. 우리의 영혼의 원수는 하늘에서 온 손님처럼 접근하므로, 사도는 근신하고 깨어 있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안전책이라고 권고한다. 부주의와 경박함에 빠진 청년들과, 그리스도인의 의무를 소홀히하는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것처럼 승리하는 대신에 계속해서 원수의 유혹에 빠지게 될 것이다.

온전히 헌신한 영혼들에게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고역이 아니다. 우리 구주께 순종하는 일은 이생에서의 우리의 진정한 즐거움과 행복을 감소시키지 않고, 오히려 우리의 품성을 세련되게 하고 향상되게 하는 능력을 갖는다. 성경에서 발견되는 고귀한 생명의 말씀을 매일 공부할 때, 지력은 강화되고, 천연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장엄하고 영광스러운 업적에 대한 지식을 제공해 준다. 성경 말씀을 공부함으로써, 우리는 순수한 행복을 가장 크게 누리는 삶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얻게 된다. 성경을 배우는 자들은 또한 성경상 논증을 제공받음으로써 불신자들의 의심을 대항하고 분명한 진리의 빛으로 그 의심을 제거하게 된다. 성경 말씀을 살펴 온 자들은 언제나 사단의 유혹에 대한 방비를 갖추게 되고, 모든 선한 일을 완전히 하게 되며, 그들 속에 있는 소망의 이유를 묻는 모든 사람들에게 대답할 준비를 갖추게 된다.

신앙은 저급한 것이며, 성경의 표준을 자신의 생애의 규율로 받아들이는 것은 죄인에게 생색을 내는 것이라는 인상을 너무 자주 마음 속으로 받게 된다. 375 그들은 신앙적 요구는 세련되지 못하고, 이를 수용할 때 아름다운 것을 찾는 취향과 그것을 즐기는 일을 멀리해야 하며, 그 대신에 수치와 저질적인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단의 기만 중 이것보다도 더 큰 기만은 없다. 예수님의 순수한 신앙은 이를 따르는 이들에게 인위적이고 거짓된 것보다는 단순한 자연미와 자연스러운 고상함과 수준 높은 순결성 등을 요구한다.

순수한 신앙이, 특별히 청년들에게, 가혹한 요구로 간주되고, 세상의 휘황찬란한 싸구려 것들과 비교해서 인기 없는 것으로 여겨질 때, 성경의 요구는 수치스럽고 자아를 부인하는 시험, 곧 인생의 즐거움을 송두리째 그들로부터 빼앗아 가는 것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성경의 신앙은 항상 고상하게 하고, 세련되게 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 또한 그리스도를 따르노라 공언하는 이들이 저들의 생애 속에서 순수한 신앙원칙들을 실천했더라면, 그리스도의 신앙은 더 많은 세련된 지성인들에게 받아들여질만 했을 것이다. 성경의 신앙은 최상의 감정을 얽매는 요소를 전혀 갖고 있지 않다. 그것은 그 모든 계율과 요구에 있어서 하나님의 품성처럼 순수하고, 그분의 보좌처럼 드높다.

세상의 구속주께서는 생애의 교만에 대해 우리에게 경고하시지만, 생애의 덕성과 자연미에 대해서는 경고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들판의 꽃들 속에서 보게 되는 찬란한 영광을 지적하셨고, 또한 호숫가에서 흠없는 순결성을 간직하고 있는 백합화를 가리키셨다.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마 6:28, 29). 여기에서 그분은 사람들이 아무리 큰 공을 들인다 할지라도, 외적인 치장을 통해 사람들의 갈채의 대상이 되기 위해 아무리 피곤할 정도로 노력을 기울인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그토록 큰 값을 매기는 인위적 단장은 자연스러운 사랑스러움에 있어서 들의 단순한 꽃과 비교가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신다. 하나님께서 치장하신 이러한 단순한 꽃들까지도 그 사랑스러움에 있어서는 솔로몬의 찬란한 의상을 훨씬 능가한다.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마 6:28).

376 여기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중요한 교훈이 있다. 세상의 구속주께서 청년들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그대들은 하늘의 교훈인 그분의 말씀을 듣겠는가? 그분은 고상하게 하고, 향상시키고, 세련되게 하고, 순결하게 할 생각거리들을 그대 앞에 제시하신다. 그것은 결코 지성을 추락시키거나 축소시키지 않을 것이다. 그분의 음성은 그대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4, 16). 만일 하나님의 빛이 그대 속에 거한다면, 그것은 다른 이들에게 비췰 것이다. 그것은 결코 숨겨질 수 없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유행을 따라 입고자 하며, 과시하기 위하여 레이스와 금과 인공물들을 착용하고자 하는 그대 속의 성향은 다른 이들에게 그대의 신앙, 혹은 그대가 공언하는 진리를 추천하지 않을 것이다. 분별력을 지닌 사람들은 외모를 미화하기 위한 그대의 노력들을 미약한 마음과 교만한 정신을 입증하는 증거물로 간주할 것이다. 단순하고, 소박하고, 꾸밈이 없는 의복을 나의 젊은 자매들에게 권하고 싶다. 그대의 빛을 다른 이들에게 비취도록 하는 것으로는 의상과 기질의 단순성보다도 더 나은 길이 전혀 없다. 그대는 영원한 사물과 비교해서 이생의 사물들에 대해 제대로 평가하고 있음을 모든 이들에게 보여 줄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하늘을 위하여 순결하고 거룩한 성품을 형성할 수 있는 황금과 같은 기회이다. 그대들은 이 소중한 순간들을 내적인 단장을 등한히 하면서 외양을 꾸미고, 주름을 잡고, 미화하는 일에 바칠 수 없다.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벧전 3:3, 4).

눈길이 머무는 곳마다 만물을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창조하신 하나님은 아름다움을 사랑하시는 분이다. 그분은 그대에게 당신께서 평가하시는 진정한 미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신다.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단장은 그분께서 보실 때에 “값진 것” 이다. 하나님께서 값비싼 의복이나 진주나 은보다도 더 값비싼 것으로 평가하시는 것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열심히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377 내적인 단장, 온유의 미덕, 하늘의 천사들과 조화되는 정신은 품성의 진정한 덕성을 감소시키거나 이 세상에서 우리의 사랑스러움을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다.

순결하고 흠없는 종교는 그 소유자를 고결하게 한다. 그대는 언제나 진실된 그리스도인에게서 현저한 즐거움, 하나님께 대한 거룩하고 행복한 신뢰, 그분의 섭리에 대한 복종 등을 발견할 것인데, 그것은 영혼을 소성시킨다. 그리스도인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그가 받은바 모든 선물들 속에 나타날 수 있다. 천연계의 아름다움은 명상의 주제이다. 우리를 두르고 있는 천연계의 사랑스러움을 연구할 때, 마음은 천연계를 통해서 모든 사랑스러운 것의 근원이신 분께로 이끌려 올라간다. 하나님께서 이루신 모든 작품들은 우리의 감각에 이야기하며, 당신의 능력을 찬양하며, 당신의 지혜를 드높인다.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흥미를 끌어당기며, 또한 이러한 것들을 인간의 손재주를 능가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소중한 증거로 여기도록 하는 감각을 형성시켜 주는, 나름대로의 매력을 갖고 있다.

선지자는 타오르는 열정이 담긴 말로 그분께서 만드신 것들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한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시 8:3, 4).

신앙인이라고 공언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길에 어두움이 깔리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경건의 부재이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지만 그 이름에 합당치 않은 이들이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적 품성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저들의 그리스도교 신앙이 시험대에 오를 때 그 허구성이 자명해진다. 진정한 경건은 매일의 품행 속에서 나타난다.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다른 이들에게 선을 행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열렬하게 이기심 없이 일하는 것으로 특징지어져 있다. 그분의 길은 어둡거나 우울하지 않다. 영감받은 기자는 말하였다.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잠 4:18, 19).

또한 청년들이 허황되게 생각도 없이 유행과 부질없는 일을 추구하는 삶을 살며, 의복 때문에 지력을 축소시키며 육욕적인 쾌락에 저들의 시간을 허비해야 하겠는가? 378 저들이 전혀 준비되지 않았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실 것이다. “이 밤에 그대의 미련함이 끝나리라.” 그분은 당신의 영광을 위해 전혀 열매를 맺지 않은 이들에게 치명적인 질병을 허락하실 수 있다. 영원한 실재를 직면할 때, 그들은 상실해 버린 시간과 인생의 가치를 깨닫기 시작할 것이다. 그때에 그들은 영혼의 가치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생애가 하늘을 향하여 다른 이들에게 빛을 비춤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그들은 자아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해 살아왔다. 그리고 고통과 영혼의 비탄에 사로잡힐 때, 그들은 영원한 사물에 대해 분명한 개념들을 가질 수 없다. 그들은 자신의 과거의 삶을 회고할 때 죄책감으로 각자가 울부짖는다. “나는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행하신 예수님을 위해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내 인생은 비참한 실패작이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그대들이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할 때, 그대의 일은 기도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명심하라. 그 다음에 그대는 가능한 한 유혹에 저항함으로 스스로의 기도에 응답해야 하며, 그대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은 주님께서 그대를 위해서 행하시도록 떠맡기라. 그대는 원수가 그대를 시험에 빠뜨리는 일이 없도록 그대의 말과 행실에 아무리 주의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의 수많은 청년들은 저들에게 주어진 경고와 견책을 부주의하게 무시함으로 사단에게 문을 활짝 열어 준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지침으로 삼고, 예수님을 우리의 하늘 교사로 모시고 있는 한, 우리는 그분의 요구나 사단의 계략에 대하여 무지할 필요가 없으며, 또한 그의 유혹에 정복될 필요가 없다. 성령님의 지시에 우리 자신을 온전히 굴복시킬 때,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은 결코 불쾌한 과업이 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일해야 할 때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세상에 살고 있는 한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우리의 일을 주실 것이다. 우리는 미완성의 사업이 남아 있는 한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고 결코 말할 수 없다. 나는 모든 청년들이 내가 본 것처럼 그들이 행할 수 있는 사업을 보기를 원하며, 또한 하나님께서 태만히 한 것에 대하여 그들에게 책임을 물으실 것이라는 것을 알기를 원한다. 세상에서 일찍이 성취된 사업 중 가장 위대한 사업은 슬픔의 사람이요, 슬픔에 익숙한 인물이신 그분에 의해 성취되었다. 경솔한 마음을 소유한 인물은 결코 선을 성취하지 못할 것이다.

379 만일 그들이 하나님께 헌신한다면, 선을 위해 큰 일을 할 수 있었을 것이므로, 이 시대의 수많은 젊은 남녀들의 영적 허약은 통탄스럽다. 나는 청년들에게 굳건함이 부족한 것에 대해 크게 애통스럽게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이것에 대해 통탄스러워 해야 한다. 선을 행하려는 능력, 성향의 요구보다도 의무의 요구에 순종하려는 열렬한 노력이 부족한 것처럼 보인다. 영적 사물에 있어서 그들이 난쟁이인 이유는 그들이 활동하여 영적으로 튼튼하게 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앞으로 전진해야 할 때에 조용히 서 있는다. 신앙과 의무의 생애에 있어서 매 발걸음은 하늘로 가는 발걸음이다. 나는 지금까지 청년들이 결코 인식하지 못한 만큼 수많은 점에서 개혁에 관한 소식을 듣기를 원한다. 사단이 고안해 낼 수 있는 모든 유혹이 그들 위에 압력을 가하여 그들로 하여금 영원한 사물에 대하여 무관심하고 부주의하게 하려고 한다. 청년들은 침례 서약대로 충성스럽게 살 수 있도록 서로를 도와주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의복과 과시에 대한 사랑을 내버리기로 하나님앞에서 엄숙하게 선서하기를 나는 권한다.

나는 장식으로 치장하고 그 모자 위에 깃털로 꾸미는 청년들에게, 저들의 죄를 인하여 우리 구주의 머리에는 수치스러운 가시면류관이 씌워졌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싶다. 그대가 소중한 시간을 장식을 매만지며 허비할 때, 영광의 왕께서는 단순하고, 통으로 짠 외투를 입으셨음을 기억하라. 몸을 치장하느라 기진맥진하게 된 그대여, 예수께서는 고통과 궁핍에 빠진 이들을 축복하시기 위하여 끊임없는 노고와 자아 부인, 자아 희생을 하심으로 자주 피곤하게 되셨다는 것을 제발 기억하기 바란다. 그분은 당신의 연약함과 당신의 궁핍 때문이 아니라, 그대가 현재 정복하고 있는 바로 그 지점에 관해 원수가 퍼붓는 시험을 저항하는 일에 그대의 본성이 연약함을 보셨고, 느끼셨기 때문에, 외로운 산상에서 밤새워 기도하셨다. 그대가 스스로의 위험에 대해 무관심하고, 기도의 필요성을 깨닫지 못할 것을 그분은 아셨다. 그분께서 강한 울부짖음과 눈물로 당신의 아버지께 당신의 기도를 쏟으신 것은 우리를 위함이다. 그토록 눈물을 쏟으시고, 슬픔과 비통함 때문에 우리 구주의 용모가 인간의 아들들 중 그 누구보다도 상하게 된 것은, 현재 우리가 방종하고 있는, 또한 예수님의 사랑을 가리워 버리는, 바로 그 교만과 허영과 쾌락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였다.

380 젊은 친구들이여, 그대들을 세상에 일치되도록 한 이 무섭고 두려운 무관심과 혼미 상태를 떨쳐 버리고 일어나지 않으려는가? 이 위기의 때에 편안히 있는 자들의 길에 멸망이 도사리고 있음을 그대에게 말해 주는 경고의 음성에 그대는 유의하지 않겠는가? 가련하고 농담을 일삼는 영혼, 그대를 위해서 하나님의 인내하심이 언제나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의 손에 우리의 운명을 쥐고 계신 분께서는 항상 경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실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초래한 것보다도 더욱 큰 죄가 있다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선언하신다. 그것은 이 시대에 진리의 큰 빛을 가졌으되 감동하심을 받아 회개하지 않은 이들의 죄이다. 그것은 시험의 광야에 예수님, 세상의 죄를 인해 죽음의 고뇌 속에 엎드러지신 예수님을 보고서도, 아직까지 철저한 회개를 향해 움직이지 않은 이들의 죄이다. 그분께서는 인간을 위하여 식욕과 허영의 방종, 과시와 세속적 명예에 대한 욕망을 정복하시기 위하여 거의 6 주일간 금식하셨다. 그분은 당신께서 승리하신 것처럼 그들 자신을 위해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지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그러나 갈등과 비난, 조롱과 수치를 귀하신 그분을 위하여 견디는 것은 그들의 본성에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자아를 부인하고, 타인에게 언제나 선을 행하기 위해 애쓰는 것은 받아들일 만 하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 정복하신 것처럼 정복하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그들은 구주께서 하늘 왕궁으로부터 오셔서 그들에게 남겨 주려고 하신 모본을 모방하는 것을 거절하고, 그들에게 모방하도록 분명하게 주신 모본으로부터 돌아섰다.

우리 시대에 빛을 발하고 있는 큰 빛과 특권을 소유했지만, 그 빛을 따르기를 등한히 하고, 그 마음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바치지 않은 이들보다도 소돔과 고모라가 심판 날에 견디기가 더욱 쉬울 것이다.

십일조와 헌금

381 그리스도의 교회의 사명은 멸망해 가는 죄인들을 구원하는 것이다. 그 사명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주고, 그 사랑의 효력을 통하여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이다. 이 시대를 위한 진리는 지상의 어두운 구석까지 전파되어야 한다. 이 일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이기적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영으로 채워져 그분과 조화되게 일해야 한다.

현재의 냉랭함과 불신에는 원인들이 있다. 세상에 대한 사랑과 생활의 염려가 영혼을 하나님께로부터 분리시킨다. 생수가 우리 마음 속에 있어야 하며, 그것이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어 우리에게서 흘러 나가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넣어 주신 일을 달성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생애의 빛을 즐기려면, 진리의 지식 안으로 다른 사람들을 인도해 들이기 위해 자신의 노력을 증가시켜야 한다. 그의 생애는 다른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기 위한 노력과 희생으로 특징 지어져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즐거움의 결핍에 대한 불평이 사라질 것이다.

천사들은 항상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사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것이 그들의 기쁨이다. 이기적인 마음의 소유자들이 비천한 봉사라고 생각하는 일, 곧 비참한 자들과, 품성과 지위에 있어서 모든 면에 열등한 자들을 섬기는 일은 하늘 궁정의 순결하고 죄없는 천사들이 하는 사업이다. 그리스도의 자아 희생적 사랑의 정신은 하늘에 충만한 정신이며, 하늘의 기쁨의 정수이다.

다른 사람에게 축복이 되고자 애쓰고, 그들에게 선을 행하기 위하여 일하고 심지어 희생을 하는 일에서까지 특별한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정신 혹은 하늘의 정신을 가질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늘 천사들의 사업에 연합하지 아니하고, 그들에게 고상한 기쁨을 나누어주는 행복에 참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 하리라”(눅 15:7)고 말씀하셨다. 만일, 죄인이 회개하는 것을 보는 것이 천사들의 기쁨이라면,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은 죄인들이, 그들을 통하여 다른 죄인들이 회개하고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는 것을 보는 것이 기쁨이 되지 않을 것인가? 그리스도와 거룩한 천사들과 조화를 이루어 일하는 중에, 우리는 이 사업을 떠나서는 실현될 수 없는 기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382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리는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아를 부정하고, 남에게 빛을 나누어주고, 빛을 전하는 데 그들의 재물을 드려야 할 큰 책임을 지게 한다. 그들이 하늘과 연결되어 있다면, 그들은 천사들과 조화를 이루는 사업에 종사하게 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원리는 없어질 이 세상의 사물을 가능한 한 최대한으로 갖는 것이다. 취하고자 하는 이기적 사랑이 그들의 생애에 있어서 지배적인 원리이다. 그러나 가장 순수한 기쁨은 부(富)에 있지 않고, 탐욕이 언제나 충족되는 곳에 있지 않고, 지족이 지배하고 자아 희생적 사랑이 지배의 원리가 되어 있는 곳에서 발견된다. 방종의 생애를 보내어 마음이 불만으로 가득 찬 수천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이기심의 희생자들이며, 방종으로 마음을 만족시키려는 헛된 노력에 불만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불행의 흔적이 바로 그들의 얼굴에 찍혀 있고, 그들 뒤에는 사막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는 그들의 길에 선행의 열매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채우고 우리의 생애를 지배하는데 비례하여 탐욕, 이기심, 안일을 사랑하는 정신은 극복될 것이며, 그리스도의 종임을 주장하는 우리는 그분의 뜻을 행하는 데서 즐거움을 찾게 될 것이다. 그 때에 우리의 행복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하여 고무된 비이기적인 일에 정비례할 것이다.

구속의 경륜을 통하여 하나님의 지혜는 모든 자선 사업이 그 세부에 이르기까지 두 배로 축복을 받는,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을 제정하였다.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자는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는 동시에 스스로가 더 큰 축복을 받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시는 일에 사람의 도움이 없어도 당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셨다. 그러나 그분은 인간이 자아 부정과 자선심을 계발할 수 있는 이 큰 사업의 한 부분을 맡아 행하지 않고서는 행복할 수 없음을 아셨다.

인간의 자선의 복된 결과를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 구주께서는 인간을 그분의 동역자의 명단에 올리는 계획을 세우셨다. 인간의 자선을 요구하는 일련의 환경을 통하여, 그분은 인간에게 자선심을 배양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을 주시고, 인간으로 하여금 가난한 자를 도우며 하나님의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습관적으로 주게 하신다. 383 그분은 가난한 자들을 그분의 대표자로 보내셨다. 그들의 필요에 따라서, 황폐된 이 세상은, 그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진리를 제시하기 위한 재물과 영향력의 달란트를 우리에게서 끌어낸다. 우리의 노동력이나 자선을 통하여 이 요구에 유의할 때,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 그분의 형상으로 동화된다. 베풂으로써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며, 그리하여 진정한 부를 쌓게 된다 계획안에서 그리스도인 자선이 크게 부족되어 왔다. 하나님의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가장 좋은 일을 할 수 있었던 자들이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자비롭게도 한 부류의 사람들을 진리의 지식 가운데로 이끌어 주셔서 그들이 이 세상의 보화와 비교하여 그 진리의 무한한 가치를 깨닫게 하셨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당신께서 준비하신 만찬에 오도록 초청하심으로써 그들을 시험하고 계신다. 그분은 그들이 어떤 품성을 형성할 것인지, 그들이 자신의 이기적 유익을 영원한 부보다 더 가치 있게 볼 것인지 보고자 주시하고 계신다. 사랑하는 이 형제들 중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그들의 행동을 통하여, 다음의 비유에 언급된 바와 같이 변명을 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잔치할 시간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가로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하나는 가로되 나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또하나는 가로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눅 14:16-21).

이 비유는 현대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의 상태를 정확하게 나타낸다. 주님께서는 당신 스스로 큰 비용을 들여서 준비하신 만찬에 참석하라는 초청을 그들에게 보내셨다. 384 그러나 세속적 이익은 그들에게 있어서 하늘의 보화보다 더 중요하게 보였다. 그들은 영원한 가치를 지닌 사물에 동참하라는 초청을 받았으나 그들의 밭, 가축, 가정의 이익이 모든 거룩한 이익보다 더욱 압도적인 것이었으므로, 그것이 하늘의 초청에 순종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처럼 보였으며,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라는 하늘의 초청에 불순종하는 일에 대한 핑계거리가 되었다. 이 형제들은 이 비유 가운데 나타난 그 사람들의 본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세속적 사물을 보며, “아닙니다. 주님, 저는 당신을 따를 수 없습니다. 저를 용납해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말한다.

그들을 시험하기 위해, 곧 “하나님께 속한 것을 하나님께” 돌리는지를 보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바로 그 축복들을, 그들은 진리의 요구에 순종할 수 없다는 핑계거리로 이용한다. 그들은 그들의 세속적 보화를 팔로 꽉 끌어안으며, “나는 이것들을 돌봐야 합니다. 나는 이생의 사물들을 등한히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나의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이러한 이들의 마음은 단단히 다져진 대로처럼 감화를 받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들은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고 초청하는 하늘 사자에 대해 마음의 문을 닫고, 자신의 마음 문을 열어 세속적 부담과 사업상 염려를 초청해 들임으로써, 예수께서는 들어가시기 위하여 헛되이 문을 두드리시게 된다.

그들의 마음은 이생의 염려와 가시덤불이 너무나 무성하므로, 하늘의 사물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예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 당신께로 오면 쉼을 얻게 될 것이라는 약속으로 초청하신다. 그분은 그들을 재물의 노예로 만드는 이기심과 탐욕의 괴로운 멍에를 바꾸라고 초청하신다. 그분께서 말씀하시는 멍에는 쉽고 그분의 짐은 가볍기 때문이다. 그분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마 11:29)라고 말씀하신다. 그분은 그들에게, 세상의 염려와 고통의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리고 자아 부정과 다른 사람들을 위한 희생의 멍에, 곧 그분의 멍에를 메기를 원하신다. 385 이 짐은 가볍다는 것이 판명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제공하시는 휴식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하고, 이기적 만족을 위하여 돈을 모으는 계획에 온 정신을 몰두하면서 계속해서 괴로운 이기심의 멍에를 메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멍에를 지고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유익을 위하여 지우신 자아 부정과 무아적 자선의 짐을 지는 중에 누리는 평안과 쉼을 경험하지 못한다.

세상에 대한 사랑이 마음을 점령하고 지배적인 정열이 될 때, 하나님을 숭배할 여지가 없어진다. 왜냐하면, 더욱 고상한 마음의 능력이 재물의 종이 되어 하늘이나 하나님께 대한 생각을 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음은 하나님에 대한 기억을 상실하고, 돈을 모으려는 생각으로 마음은 편협해지고 위축된다.

이기심과 세상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이 사람들은 이 마지막 시대를 위한 사업의 중요성에 대해 점점 희미하게 인식하는 지경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도록 그들의 마음을 교육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 방면에 경험이 없다. 그들의 재물은 그들의 애정을 흡수했으며, 구속의 경륜의 웅장함을 잠식하였다. 그들의 세속적 계획은 증진되고 확대되는 한편, 그들은 하나님의 사업을 확대하고 확장할 필요를 깨닫지 않는다. 그들은 재물을 일시적 사물에 투자하고 영원한 사물에 투자하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은 좀더 많은 재물을 얻으려는 야망으로 차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당신의 율법의 저장소로 삼으셔서, 그들에게 그처럼 은혜롭게 주어진 빛을 다른 사람들에게 비추게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염려와 걱정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에 그들의 영향력으로 다른 사람들을 축복할 시간, 곧 이웃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들과 함께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그들을 진리의 지식 안으로 인도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시간을 갖지 못한다.

이런 사람들은 그들이 할 수도 있었으나 그들의 마음을 빼앗고 애정을 사로잡은 세상의 염려와 걱정 때문에 그들이 회피한 선(善)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영혼들은 그들의 개인적인 노력과 거룩한 모본을 통하여 구원을 받을 수도 있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빛, 곧 다른 사람들의 행로에 반사되도록 주신 빛이 부족하기 때문에, 고귀한 영혼들이 멸망해 가고 있다. 그러나, 고귀한 빛은 말 아래 감취어져 집안에 있는 자들에게 비추이지 못하고 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청지기이다. 386 주님께서 각 사람에게 당신의 재물을 위탁하셨지만, 사람은 그 재물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눅 19:13)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의 것을 그 이자와 함께 요구하실 때가 다가오고 있다. 그분은 당신의 모든 청지기에게“네 보던 일을 셈하라”(눅 16:2)고 말씀하실 것이다. 주님의 돈을 취리하는 자에게 내어 주는 대신 수건에 싸서 땅에 감춘 자들과, 주님의 돈을 주님의 사업에 투자함으로 이를 남기지 않고 불필요한 것들을 위하여 사용함으로써 낭비한 자들은 주님께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결정적으로 단죄될 것이다. 비유 중에 있는 무익한 종은 그 한 달란트를 하나님께로 다시 가져갔다. 그리고 그는 말하였다.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속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그의 주인은 그의 말을 받아 말하였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마 25:24-27).

이 무익한 종은 하나님의 계획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에게 위탁된 달란트를 증가시키라는 그분의 요구가 불공평하다고 비난하고, 하나님의 목적을 좌절시키고자 단호히 결심하였다. 바로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부류의 부자들이 이와 같은 원망과 불평을 하고 있다. 불성실한 종처럼, 그들은 하나님께서 빌려주신 그 달란트의 증가가 진리를 확장시키는 데 요구될까 두려워 그것을 세상의 보물에 투자하거나 세상에 묻어 둠으로써 그것을 얽어매되 너무 강하게 매었으므로, 하나님의 사업에 투자할 것이 전혀 없거나 거의 없게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본전이나 이자 가운데서 얼마를 요청하시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여 그것을 파묻었다. 주님께서 그것을 요구하실 때, 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양을 가져왔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빌려주신 재물을 취리하는 자들에게 주지 못한 사실, 곧 하나님의 사업을 수행하도록 그분의 사업에 투자하지 못한 사실에 대해 배은 망덕의 마음으로 변명했다.

387 하나님의 재산을 유용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빌려주신 재물뿐 아니라 영생도 잃어버린다. 그에 대해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마 25:30)는 말이 주어진다.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업에 자기의 돈을 투자한 충성된 종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의 재물을 사용하게 되므로 주님의 칭찬을 듣게 될 것이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마 25:21). 우리 주님의 이 즐거움은 어떠한 즐거움이 될 것인가? 그것은 구원을 받아 영광의 왕국으로 들어온 영혼들을 보는 즐거움이 될 것이다.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청지기에 대한 개념은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과 실제적인 연관을 맺어야 한다. 달란트의 비유가 올바르게 이해되기만 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상숭배라고 지적하신 탐욕을 몰아내게 될 것이다. 실제적 자선은 오늘날 자신의 흑암을 인해 울고 있는 수많은 형식상 진리의 공언자들에게 영적 생명을 줄 것이다. 그것은 이기적이며 탐욕적인 재물 숭배자의 위치에서, 죄인을 구원하는 일에 있어서 열성적이며 충성스런 그리스도의 동역자로 변화시켜 줄 것이다.

구속의 경륜의 기초는 “희생” 위에 세워졌다. 예수님은 당신의 가난으로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고자 하늘의 궁정을 떠나셔서 가난하게 되셨다. 하나님의 아들에 의하여 그처럼 무한한 희생으로 사신 바 된 구원에 참여하는 자들은 모두 참된 귀감(龜鑑)되신 분을 본받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주된 모퉁잇돌이 되시므로, 우리는 이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한다. 각 사람은 자아 부정과 자아 희생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 지상에서의 그리스도의 생애는 이타적이었고, 겸손과 희생으로 특징지어졌다. 예수께서 하늘에서 오셔서 그들에게 주시고자 한 큰 구원에 동참한 사람이 그들의 주님을 따르기 싫어하고 그분의 자아 부정과 희생에 동참하기를 거절할 것인가?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요 15:5),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요 15:2). 바로 그 생명의 원리, 곧 포도나무를 통하여 흐르는 진액이 가지를 무성하게 하고 열매를 맺도록 양분을 공급한다. 388 종이 자기의 상전보다 크겠는가! 세상의 구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아 부정과 희생을 치르셨는데,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들은 방종해야 하겠는가? 자아 부정은 제자가 되는 필수적인 조건이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나는 자아 부정의 길로 인도한다. 나를 따르는 자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그대들의 주가 되는 내가 내 자신의 생애로써 그대들에게 세워 놓은 모본을 따르는 것 외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세상의 구주께서 시험의 광야에서 사단을 정복하셨다. 그분은 인간이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지 보여 주시기 위하여 승리하셨다. 그분은 나사렛의 회당에서 선포하셨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8, 19).

예수께서 하시기 위하여 오셨노라고 선포하신 그 위대한 사업은 땅위에서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위탁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머리로서 구원의 위대한 사업에서 앞서 인도하시며, 우리에게 당신의 모본을 따르라고 명령하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세계적인 기별을 주셨다. 이 진리는 모든 나라와 방언과 백성에게 전파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와 또한 그분을 따르는 자들은 사단의 능력을 대항해서 싸워야 하며, 사단을 정복해야 한다. 흑암의 세력을 대항하는 방대한 전쟁은 계속되어야 하였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 자금이 필요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직접 자금을 보내도록 계획하지 않으시고, 그분을 따르는 자들의 손에 이 싸움을 계속하는 바로 그 목적을 위해서 사용하도록 자금의 달란트를 주신다.

그분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당신의 사업이 스스로 유지되기에 충분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우셨다. 십일조 제도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획은 그 단순함과 공정함에 있어서 아름답다. 모든 사람은 믿음과 용기로써 그 제도를 유지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근원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단순성과 유용함이 결합되어 있으며, 그것을 이해하고 실행하는 데는 깊은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 모든 사람은 고귀한 구원의 사업을 추진하는 일에 한몫을 담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389 모든 남녀들과 청년들은 주님을 위한 회계원이 되어, 자금에 대한 요구에 응하는 일꾼이 될 수 있다.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고전 16:2)라고 사도는 말한다.

이 제도를 통해서 큰 목적이 성취된다. 만일, 개인이, 그리고 모두가 이 제도를 받아들인다면, 각자는 하나님을 위한 주의 깊고 충성스러운 회계원이 될 것이며, 세상의 마지막 경고의 기별을 전하는 위대한 사업을 수행해 나갈 자금이 결핍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만일, 모두가 이 제도를 채택한다면, 금고는 가득 차게 될 것이며, 헌금을 바치는 이들이 더욱 가난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들이 한 모든 투자를 통해서 그들은 현대 진리의 사업에 더욱 밀접하게 결속될 것이다.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 6:19).

인내성 있고 조직적인 일꾼들이, 그들의 자선적 노력의 경향이 하나님과 동료 인간에 대한 사랑을 배양하며 그들의 개인적 노력이 그들의 유용성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것임을 볼 때, 그들은 그리스도와 동역자가 되는 것이 큰 축복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교회는 일반적으로 세상에 범람하고 있는 도덕적 흑암을 대항하기 위한 싸움을 계속하기 위하여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들을 드리라는 하나님의 요구를 부인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활동적이고 열성적인 일꾼이 되기 전에는, 하나님의 사업은 마땅히 발전되어야 할만큼 발전될 수 없다.

교회에 속한 모든 신자는 자신이 공언하는 진리가 실제적인 것임을 느껴야 하며, 모든 사람들은 무아적 일꾼이 되어야 한다. 어떤 부자들은 하나님의 사업이 확장되고 돈이 요구되므로 불평을 하는 것 같다. 그들은 재물을 요구하는 데 끝이 없다고 말한다. 한 일, 다음에 다른 일이 또 생겨서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우리는 하나님의 사업이 더욱 발전함으로 그 사업을 수행할 자금의 공급을 요청하는 더 많은 기회와 더욱 긴급하고 빈번한 요구가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하고 싶다.

만일, 조직적인 헌금 제도가 모든 교인들에 의하여 채택되어 충분히 수행될 것 같으면, 금고에는 계속적인 자금의 공급이 있게 될 것이다. 390 수입은 마치 변함없는 강물처럼, 넘쳐 흐르는 자선의 샘에서 흘러 들어와서 공급될 것이다. 자선은 복음 신앙의 일부이다.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지불된 무한한 값을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의 모든 힘을 주님의 사업에 헌신하여야 할 요구는 물론, 엄숙한 금전상의 의무를 느끼지 않는가?

머지않아 주님께서 “네 보던 일을 셈하라”(눅 16:2)고 말씀하실 때, 우리는 그분과 해결해야 할 빚을 갖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요구를 제쳐놓고 그분께서 베풀어 주신 것을 움켜쥐고 이기적으로 그것을 고수한다면, 그분은 얼마 동안 평화를 유지하시고 흔히 그분의 관대함을 증가시키시고, 축복을 흘러 넘치게 하심으로써 계속하여 그들을 시험하신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교회의 책망 없이 지나갈는지 모른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분께서는 “네 보던 일을 셈하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마 25:45)고 말씀하신다.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며, 그분의 소유가 되는 그대의 몸과 마음은 물론 그대의 재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의무가 그대에게 있다.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 를 지불하고 “너희는 값으로 산 것”이다. 그분은 우리에게 위탁하신 선물을 돌려 드림으로써 영혼 구원의 사업을 돕도록 요구하신다. 그분은 당신의 보혈을 주시고, 우리의 은을 요구하신다. 우리가 부요해진 것은 그분의 가난을 통해서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의 선물을 되돌려드리는 일을 거부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당신의 사업을 유지하기 위하여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섭리로 하늘에서 직접 그분의 금고에 공급하는 것이 인간을 위하여 최선의 길임을 보셨을 것 같으면, 그분께서는 그렇게 하셨을 것이다. 그분은 인간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세상을 위한 진리를 공포하기 위하여 천사들을 보내실 방편을 고안하셨을 것이다. 그분은 하늘에 진리를 기록하여, 그것이 살아 있는 글자로서 그분의 요구를 세상에 선포하게 할 수도 있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의 금이나 은에 의존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시 50:10, 12)라고 말씀하신다. 391 하나님의 사업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우리의 봉사가 필요한 곳은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길을 의도적으로 준비하셨다. 그분은 우리를 당신의 동역자로 삼으심으로써 우리를 영화롭게 하셨다. 그분은 사람들이 계속적으로 자선의 활동을 하게 하시고자 사람들 사이에 협력이 필요하도록 정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현명한 섭리로써 가난한 자들을 언제나 우리 곁에 두셨으며, 우리가 세상의 여러 가지 형태의 궁핍과 고난을 목격할 때, 우리는 시험을 받고 입증을 받으며, 그리스도인 품성을 계발할 수 있는 입장에 놓이게 된다. 그분은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인 동정과 사랑을 발휘하게 하고자 가난한 자들을 우리 가운데 두신다.

지식이 부족하여 멸망해 가는 죄인들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진리의 빛을 전해 주지 않는 한, 무지와 흑암 가운데 남아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하도록 맡겨 주신 일을 하기 위하여 하늘에서 천사들을 보내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모든 사람들에게 할 일을 주셨는데, 그 핵심적인 이유는 그분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진정한 성격을 드러내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당신의 대표자로 우리 중에 두신다. 그분은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마 25:42)다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고통을 당하는 인간, 고난중에 있는 인간 자녀들의 입장에서 그들과 동일시하신다. 그분은 그들의 필요를 자신의 것으로 여기시며, 그들의 불행을 당신의 품에 안으신다.

황폐한 세상의 도덕적 흑암은 그리스도인 남녀들에게, 무한한 부를 소유하셨으나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 분의 형상을 닮기 위하여 그들의 재물과 영향력을 드리는 일에 개인적 노력을 기울이라고 호소한다. 성령께서는, 그분의 진리의 기별을 보내셨으나 강권함을 받아야 비로소 그리스도의 동역자의 의무를 느낄 수 있는 자들과 함께 거하실 수 없다. 감정은 변덕스러우므로, 단지 인간적 동정심에서가 아니라 보다 고상한 근거에서 주어야 할 의무를 사도는 강조한다. 그는 우리가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바라보고 이기심 없이 수고를 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한다.

392 그리스도인들은 동료 인간들의 구원에 계속적인 관심을 나타내는 활동적인 자선의 계획을 시작하라는 요구를 성경을 통하여 받고 있다. 도덕적 율법은 안식일 준수를 명하고 있지만, 계명은 그것을 범하는 경우나 그것을 범함으로써 받는 형벌에 의해 속박받는 경우 이외에는 짐이 아니었다. 십일조 제도 역시 그 계획에서 떠나지 않은 자들에게 짐이 되지 않았다. 히브리인들에게 명령한 이 제도는 그것을 창시하신 분에 의하여 폐지되거나 완화되지 않았다. 현재 효력을 전적으로 상실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것은 그리스도인 시대에 있어서 그리스도만을 통한 구원이 더욱 충만한 빛으로 드러남에 따라 더욱 충실하게 수행되고 확대되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율법사에게, 영생을 얻는 조건이 계명의 특별한 요구를 자신의 생애에서 실천하는 것이라고 알려주셨는데, 그 계명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표상적 제사 제도가 폐지되었을 때에도 돌비에 새겨진 본래의 계명은 각 시대를 통하여 그것을 지키도록 요구하면서 변함없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시대에도 인간의 의무는 제한되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세밀하게 정의되고 단순하게 표현되었다.

넓게 퍼져 나가는 진리는 그리스도의 사망 후에 싸움을 지속하기 위하여 더욱 큰 준비를 요구하였고, 이 때문에 자선의 법은 히브리 국가때보다 더욱 긴급하게 필요되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어느 시대 못지 않게 더욱 큰 선물을 요구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원리는 선물과 헌물이 받은 빛과 축복에 비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분은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 12:48)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교 시대의 축복을 받은 처음 제자들은 구제와 자선을 통하여 반응을 나타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제자들을 떠나 승천하신 후에, 성령이 내리심으로 제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자아 부정과 자아 희생의 사람이 되었다. 바울은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이 고통중에 있을 때 자선 사업에 대하여 이방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 하였다.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고후 8:7). 393 여기에서, 자선은 믿음과 사랑과 그리스도인의 근면과 어깨를 같이하고 있다. 스스로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너그러움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요청에 귀와 마음을 닫는 자들은 두려운 기만에 빠져 있다. 진리를 지극히 사랑하노라는 공언의 말을 떠벌리기 좋아하고, 진리가 전파되는 일에 흥미가 있다고 말로만 표현할 뿐, 그 일을 위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들이 있다. 그러한 자들의 믿음은 죽은 것이며, 행함으로 온전해지지 않았다. 주님께서는 영혼을 회심시키되 탐욕의 세력 아래 그대로 남겨 두는 그러한 실수는 결코하지 않으신다.

십일조 제도의 근원은 모세 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확실한 제도가 모세에게 주어지기 이전에도,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종교적인 목적으로 하나님께 헌물을 바치는 것이 요구되었으며, 그 근원은 멀리 아담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그들은 그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자비와 축복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헌물로 나타내어야 했다. 이 일은 이어지는 세대를 통해서 계속되었으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아브라함에 의해 실천되었다. 동일한 원칙이 욥의 시대에도 존재하였다. 돈 한 푼 없는 방랑자로 도망하는 중이었던 야곱이 한밤중에 벧엘에서 돌을 베개하고 쓸쓸하게 혼자 누워 있을 때, 그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창 28:22)라고 주님께 약속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바치도록 강요하지 않으신다. 그들이 드리는 모든 것은 자원해서 드리는 것이어야 한다. 그분은 당신의 창고가 마지못해 드린 헌물로 채워지게 하지 않으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사람이 이기심을 단절시키고,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을 강화시키는 행동을 하도록 의무를 지워 주심으로써 그를 당신 자신과 동료 인간에 대한 동정과 사랑에 밀접하게 연관되게끔 계획하셨다. 자선의 체계적 계획은, 이기심으로 기울어지며 관대한 행동에 대하여 마음을 닫기 쉬운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마련되었다. 주님은 헌금이 정기적인 것이 되기를 바라시며, 드리는 것이 습관이 되고 자선이 그리스도인의 의무로 느껴지도록 계획하셨다. 하나의 헌물을 통하여 열려진 마음이 이기적으로 냉랭해지고 닫혀지기 전에 또 다른 헌물이 드려져야 한다. 394 그 흐름은 계속적이어야 하며, 자선의 행동에 의하여 그 통로는 계속 열려 있어야 한다.

요구된 분량에 관한 한, 하나님께서는 이득의 십분의 일을 정하셨다. 이 제도는 인간의 양심과 자선에 맡겨져 있으며 이 십일조 제도에 대해 인간의 판단은 자유로워야 한다. 이 제도는 자유롭게 양심에 맡겨져 있는 한편, 한 계획이 모든 사람에게 분명히 제시되었다. 전혀 강요가 요구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모세 시대에 모든 이득의 십분의 일을 바치도록 요구하셨다. 그분은 이생의 사물과 달란트를 증가시켜 그분께 돌리도록 사람들에게 맡기셨다. 그분은 십분의 일을 요구하시되, 이것을 인간이 그분께 돌려드릴 최소한의 것으로 요구하신다. 그분은 내가 내 것인 십분의 일을 요구하는 한편, 너희에게 십분의 구를 준다고 말씀하신다. 인간이 십분의 일을 드리지 않을 때에, 그들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게 된다. 속죄 제물, 화목 제물, 감사 제물 등이 이득의 십분의 일 외에 추가로 요청되었다.

하나님께서 요청하시는 이득의 십일금을 드리지 않는 모든 행위는 하늘의 책에 그 행위자가 도적질한 것으로 기록된다. 그러한 자들은 그들의 창조주의 것을 사취하게 된다. 이러한 태만의 죄가 저들 앞에 지시될때, 그들이 행로를 바꾸고 그때부터 올바른 원칙을 따라 행하는 것만으로는 넉넉하지 않다. 이것은 채주에게 돌려지도록 그들에게 위탁된 재산을 유용한 하늘 기록의 숫자를 바로잡을 수 없다. 하나님과의 불층실한 거래와 배은망덕의 죄를 회개할 필요가 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8-10). 모든 십일조를 창고에 들이면, 순종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부어질 것이라는 약속이 여기에 주어져 있다.

395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말 3:11, 12). 만일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모든 자들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십일조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요구에 응한다면, 창고에는 인간의 구원을 위한 큰 사업을 진행시킬 재물이 풍성하게 공급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인간 자신의 일을 위하여 엿새를 주시고 제칠일은 당신 자신을 위하여 따로 떼어 두신 것처럼, 사람들에게 십분의 구를 주시고 십분의 일은 거룩한 목적을 위하여 요구하신다. 안식일과 마찬가지로 수입의 십분의 일 역시 거룩하므로,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자신을 위하여 따로 떼어 놓으셨다. 그분은 인간에게 맡기신 재물의 수입을 통해서 땅위의 그분의 사업을 추진시키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옛날 당신의 백성들에게 매년 세 번씩 회집하도록 요구하셨다.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년 삼 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신 16:16, 17). 그들의 수입의 삼분의 일 이상이 거룩한 종교적 목적에 바쳐졌다.

역사상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조직적 자선과 헌물과 연보 제도를 실천할 때마다, 그들은 하나님의 요구에 순종하는 것과 비례하여 그들의 모든 활동에 번영이 따를 것이라는 불변의 약속을 깨달았다. 그들이 하나님의 요구를 인정하고 그분의 요청에 응함으로, 그들의 물질로써 그분을 영화롭게 할 때에, 그들의 창고는 풍성하게 채워졌다. 그러나 그들이 십일조와 헌물에 있어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할 때, 그들은 하나님뿐 아니라 자신들의 것도 도적질하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을 제한한 것에 비례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실 축복을 제한하셨기 때문이다.

396 어떤 이들은 이 제도가 히브리인들을 얽어맨 엄한 율법 중 하나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였던 자원하는 심령의 사람들에게는 짐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영원한 관심사를 잃어버리고 그들이 땅위에서 가진 보화를 영혼들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된 것은 하나님께 드리지 않음으로 저들의 이기적 본성을 강화했을 때 뿐이었다. 이 마지막 때의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는 고대의 이스라엘에게 보다 더 긴급한 요구가 주어져 있다. 매우 짧은 시간에 성취되어야 할 크고 중요한 사업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십일금 제도가 당신의 백성에게서 결코 소홀히 여김을 받도록 계획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마지막 사업을 위해 희생 정신이 확대되고 깊어지도록 계획하셨다.

조직적인 자선은 조직적인 강요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헌물은 자원하는 헌물이다. 참된 그리스도인 자선은 감사하는 사랑의 원칙에서 흘러나온다.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은 그분이 구원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사람들에 대하여 나타내는 사랑이 없이 홀로 존재할 수 없다.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은 모든 정서를 지배하고 모든 정력을 지도하는 전인적(全人的)인 지배 원칙이 되어야 한다. 구속의 사랑은 인간의 마음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부드러운 애정과 자아 희생적인 헌신을 일깨워야 한다. 이렇게 될 때, 이기심을 깨뜨리고 잠자는 동정심을 깨우쳐서, 귀중한 진리의 사업을 위하여 자신의 헌물을 드리게 하고자 마음을 감동시키는 호소가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무한한 희생으로 우리를 사셨다. 우리의 모든 능력과 영향력은 진정으로 우리 주님의 것이며, 그분을 섬기는 데 바쳐져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죄의 속박에서 속량받은 감사의 마음을 나타내게 된다. 우리 주님은 언제나 우리를 위하여 일하신다. 그분은 하늘로 승천하셔서 당신의 피로 산 사람들을 위하여 탄원하신다. 그분은 당신의 상처난 손을 드시고, 당신의 교회가 시험에 빠지지 않고 보존되도록 당신의 교회를 위하여 중보하신다.

만일, 우리의 지각력이 일깨워져서 우리의 구원을 위한 우리 주님의 놀라운 사업에 동참할 수 있다면, 깊고 열렬한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불태울 것이다. 397 우리의 무정함과 냉랭한 무관심이 우리를 경고하게 될 것이다. 감사로 충만한, 사랑으로부터 우러난 온전한 헌신과 자선은 지극히 작은 헌물, 자원하는 희생에 거룩한 향기를 더하여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귀중한 예물이 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드릴 수 있는 모든것을 자원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구속주께 드렸을지라도, 비록 그것이 우리에게 매우 가치 있는 것일지라도,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진 감사의 빚을 사실 그대로 볼 수 있다면, 우리가 드린 모든 것은 우리에게 매우 불충분하고 보잘것없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천사들은 우리에게 보잘것없이 보이는 이 예물을 취하여 향기로운 예물로 보좌 앞에 드리게 되며 그것은 가납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로서 우리의 진정한 위치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고용된 종으로서 우리의 책임에 대해 올바른 견해를 갖고 있지 못하다. 그분은 당신의 고난의 생애와 흘리신 보혈로써 우리에게 삯을 미리 지불하심으로 당신 자신을 섬기도록 우리를 붙들어 매셨다. 우리가 가진 모든 좋은 것은 우리 구주로부터 빌린 것이다. 그분은 우리를 청지기로 삼으셨다. 믿음과 사랑으로 드린 우리의 가장 작은 헌물과 가장 비천한 봉사는 영혼을 구원하여 주님을 섬기고 그분의 영광을 증진시키기 위한 헌신의 예물이 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왕국에 대한 관심과 번영은 모든 관심사를 능가하여야 한다. 쾌락과 이기적 관심을 생애의 주된 목적으로 삼는 자들은 충성스러운 청지기가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선을 행하기 위하여 자아를 부인하고, 자신과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봉사 사업에 드리는 자들은 이기적인 사람들이 찾지 못하는 행복을 발견한다. 우리 구주께서는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33)고 말씀하셨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생애를 특징지은 무아적 사랑과 자선의 열매이다. 우리의 마음에 새겨진 율법은 우리 자신의 관심을 고상하고 영원한 관심사에 굴복시킨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라고 명령하신다. 이것이 우리의 첫째 되고 가장 중요한 의무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에게 지상에 보화를 쌓아 두지 말라고 명백하게 경고하셨다. 그렇게 함으로 그들의 마음이 하늘의 사물보다 땅위의 사물에 머무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이야말로 가련한 영혼들이 믿음의 파선을 맛본 곳이다. 398 그들은 우리 주님의 명백한 명령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길을 따랐으며, 돈에 대한 사랑이 그들의 생애에서 지배적 정열이 되도록 허용하였다. 그들은 재물을 얻는 노력에 있어서 절제하지 않는다. 그들은 알코올 중독자가 술에 중독되듯이 부를 향한 그들의 비정상적인 욕망에 중독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주님의 종이라는 사실과, 그들 자신과 그들의 시간과 그들의 모든 소유가 그분께 속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많은 사람들은 사단이 그들의 돈을 금전상으로 최대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곳에 투자하도록 제시하는 기만적 유혹에 미혹당하며, 대다수가 거기에 정복된다.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에 유의하여 그분의 사업의 필요를 채우는 것을 우선적 사업으로 삼고, 그들의 욕구를 채우는 것을 마지막 일로 삼는다. 그들의 재물에 비례하여 하나님의 사업에 투자하는 이들이 거의 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돈을 부동산에 붙들어 매어 놓았으므로, 하나님의 사업에 투자하여 실제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팔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은 이 사실을 그들의 구속주의 사업에 거의 바치지 못하는 데 대한 변명 거리로 삼는다. 그들은 비유에 나온 사람처럼 그들의 돈을 효과적으로 땅에 묻어 둔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것으로 요구하시는 십분의 일을 도적질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늘 보화에 속한 자신의 것들을 도적질한다.

조직적인 자선의 계획은 어느 한 사람도 무겁게 압박하지 않는다.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고전 16:1, 2). 가난한 자들도 주는 특권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부한 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이 사업에서 한몫을 감당할 수 있다. 과부의 두 렙돈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 주신 교훈은, 가난한 자들의 가장 적은 예물이라도 사랑의 마음으로 드려진 기꺼운 예물이면 부자의 가장 많은 헌금과 마찬가지로 받으시는 바 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 드려진 가난한 자들의 예물은, 성소의 저울에서 드려진 양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희생을 유발한 사랑에 의하여 계량될 것이다. 399 예수님의 약속은, 풍부한 데서 드리는 부자에 의한 것과 마찬가지로, 드릴 것을 거의 가지고 있지 못하나 그 적은 것을 기꺼이 드리는 가난한 사람에 의해서도 분명히 실현될 것이다. 가난한 자는 그가 가진 적은 것을 희생하되, 그 희생을 진정으로 느끼게 된다. 부한 자는 풍부한 중에서 드리므로 부족도 느끼지 않고 그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버리지 않지만, 가난한 자는 자신의 안락을 위하여 필요한 것을 희생한다. 하나님의 섭리로,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모든 체계적 자선의 계획이 마련되었다. 그분의 섭리는 결코 중단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종들이 공개된 그분의 섭리를 따를 것 같으면, 모든 사람들이 활동적인 일꾼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창고에 들이기를 거절하고 자녀들을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는 자들은 자녀들의 영적 복지를 위태롭게 한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거치는 장애물이 되는 재물을 자녀들의 앞길에 놓는다. 자녀들은 그것에 걸려 넘어져 멸망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생의 사물에 대하여 큰 잘못을 범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빌려준 재물을 올바로 사용함으로써 받을 수 있는 선한 것들을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지 않고 절약함으로써 이기적이요 탐욕스런 자가 된다. 그들은 자신이 사용하지도 못할 부를 쌓아 두기 위하여 그들의 영적 복리를 등한히 하므로 신앙적 성장이 위축된다. 그들이 자녀들에게 유산을 남겨주는데, 십중팔구 그 재물은 그들에게 저주가 되었던 것보다 상속을 받는 자들에게 더 큰 저주가 된다. 부모의 재물에 의존하는 자녀들은 흔히 이생에서의 성공을 이루지 못하며, 일반적으로 내세에서의 생명을 확보하는 일에도 완전히 실패한다. 부모들이 저들의 자녀들에게 남겨 줄 수 있는 최선의 유산은, 유용한 노동에 대한 지식과 사심 없는 자선으로 특징 지워진 생애의 모본이다. 그러한 생애를 통하여 그들은 돈의 참가치를 깨닫게 된다. 돈은 오로지 자신의 부족과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고 하나님의 사업을 추진시킴으로 성취되는 선을 이룰 때에만 올바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400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가진 소유에 따라서 기꺼이 바치되, 그들이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더 이상은 요구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수입은 가족의 필요를 채우고 나면 여유가 없다. 그러나 이런 부류의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은 다음과 같이 자문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과연 내가 가질 수 있었던 것에 따라 드리고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육체와 정신의 능력이 사용되도록 계획하셨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능력을 최대한으로 증진시키지 않았다. 노동은 사람에게 지정된 것이다. 그것은 죄로 말미암아 필요하게 되었으므로 저주와 연결되었다. 인간의 지덕체의 복리에는 유용한 노동의 생애가 필요하게 되었다. 영감 받은 사도 바울은 “게으르지 말라”고 권면한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간에 게으른 생애로써는 아무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다. 가난한 많은 사람들이 가진 모든 자본은 시간과 육체적 힘인데 흔히 안일을 사랑하고 부주의하고 게으름으로 인해 그것이 낭비되었으므로, 십일조와 헌물로 주님께 드릴 것이 없게 된다. 그리스도인 남성들이 최대한 효율적으로 노동할 지혜가 모자라고 그들의 심신의 능력을 현명하게 이용할 지혜가 결핍되어 있다면, 그들의 형제들의 판단과 충고를 받아들일 수 있는 온유와 겸손을 소유해야만 한다. 그렇게 함으로 그들의 더욱 훌륭한 판단을 통해서 저들 스스로의 결핍을 채울 수 있게 될 것이다. 동료 인간들의 유익과 하나님의 사업의 발전을 위하여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만족하고 있는 많은 가난한 자들은 그들이 할 마음만 있으면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부한 자들이 그들의 자본인 재물에 대하여 책임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그들의 자본이 되는 육체적 힘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

하나님의 창고에 재물을 드리는 사람들이 거기에서는 받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현재는 가난하지만 시간을 현명하게 사용하고 특허권에 대한 생각을 버리고 꾸준하고 힘든 노동보다 더 편안한 방법으로 재물을 얻고자 골몰하는 그들의 성향을 억제함으로써 현재의 처지를 개선할 수 있는 가난한 자들이 있다. 성공적인 생애를 못한 자들이 기꺼이 지도를 받는다면 그들은 자아 부정과 엄격한 절약으로 자신을 훈련시키고, 자선의 혜택을 받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나누어주는 자의 만족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401 게으른 종들이 많다. 만일, 그들이 그들의 힘으로 할수 있는 일을 한다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에 큰 축복을 경험함으로써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을 진정으로 깨닫게 될 것이다.

올바로 발휘된 자선은 사람의 정신적·도덕적 힘을 일으키고, 하나님의 사업을 발전시키고 궁핍한 자를 축복하는 일에 가장 건전한 활동을 하게 한다. 재물을 가진 자들이 그들이 사용하는 푼돈에 대해서까지도 하나님께 책임이 있음을 깨닫는다면, 그들이 필요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 훨씬 많이 줄어들 것이다. 만일 양심이 깨우쳐진다면, 그 양심은 식욕, 교만, 허영, 쾌락에 대한 사랑 등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쓸데없이 사용한 돈에 대하여 증거할 것이며, 하나님의 사업에 사용되었어야 할 주님의 돈을 낭비한 사실을 보고하게 될 것이다. 주님의 재물을 낭비하는 자들은 머지않아 주님 앞에서 그들의 행동에 대해 설명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임을 공언하는 자들이 몸을 치장하고, 집을 꾸미고, 허세를 부리고, 식탁 위에 건강을 해치는 호화로운 음식을 차리는 데 돈을 덜 사용한다면, 하나님의 창고에 많은 돈을 드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 그들은 하늘과 부와 영광을 버리시고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어 우리로 영원한 부를 소유하게 하신 우리의 구속주를 닮게 된다. 우리가 너무 가난하여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십일조와 헌물을 하나님께 성실하게 드릴 수 없다면, 우리는 분명히 너무 가난하여 값비싼 옷을 입고 사치스런 음식을 먹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우리를 즐겁게 하고 영화롭게 하는 해로운 방종에 주님의 돈을 낭비하게 된다. 우리는 하늘 왕국에 어떠한 보화를 확보하고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부요한가? 라고 성실하게 자문하여야 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탐욕에 대하여 하나의 교훈을 하셨다.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편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 12:16-21).

402 인생의 장수와 행복은 우리가 이 땅에서 소유한 재물의 양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이 어리석은 부자는 지독한 이기심으로, 자신이 사용할 수 없는 재물을 스스로를 위하여 쌓아 두었다. 그는 오로지 자신만을 위하여 살았다. 그는 장사로써 부당한 이득을 취하였고, 철저하게 에누리를 하였으며,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발휘하지 않았다. 그는 증가하는 세상 재물에 덧붙이기 위하여 고아와 과부의 것을 도적질하고, 동료 인간들에게서 사취하였다. 그는 해어지지 않는 하늘의 전대에 그의 보물을 쌓을 수도 있었으나 이기심 때문에 두 세상을 다 잃어버렸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재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겸손하게 사용한 자들은 머지않아 “잘 하였도다. 착하고 층성된 종아 …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마 25:23)는 축복과 함께 주님의 손으로부터 그들의 보물을 받게 될 것이다.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이루어진 무한한 희생을 생각할 때, 우리는 놀라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기심이 인간의 마음 속에서 승리를 얻기 위해서 아우성을 칠 때, 또한 선한 사업에 있어서 마땅히 담당해야 할 몫을 거절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 그들은 하늘의 무한한 보화로 부요하셨던 분께서 그 모든 것을 버리고 가난하게 되셨음을 생각하고 올바른 원칙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그분에게는 머리 둘 곳도 없으셨다. 이 모든 희생은 우리를 위한 것으로서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부를 소유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모든 제자들이 최종적으로 당신과 함께 높임을 받으려면 반드시 걸어가야 할 자아 부정과 희생의 길을 친히 걸으셨다. 그분은 인간이 당해야 할 슬픔을 당신의 마음으로 당하셨다. 세속적인 사람들의 마음은 흔히 둔하여진다. 그들은 오직 하늘의 사물의 영광과 가치를 가리우는 지상의 사물만 볼 수 있다. 403 사람들은 세상의 이득을 위하여 지상과 해상을 두루 다니며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가난과 고난을 참아내지만, 하늘의 매력에서는 돌아서며 영원한 부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비교적 가난한 사람들이 흔히 하나님의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많은 일을 한다. 그들은 그들의 적은 소유에서 관대하게 드린다. 그들은 계속적인 관대한 행동을 통하여 그들의 후한 추진력을 강화시킨다. 수입에 빠듯하게 지출이 이루어질 때, 이 땅의 부를 향한 정열은 발붙일 여지와 기회를 얻지 못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땅위의 부를 모으기 시작할 때, 그들이 특정한 금액을 모을 때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계산을 하게 된다. 자신을 위한 부를 쌓고자 염려하는 중에, 그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부요하게 되지 못한다. 그들의 자선은 그들의 재물의 축적과 보조를 같이하지 않는다. 부를 향한 그들의 정열이 증가함에 따라, 그들의 애정은 그들의 보화에 얽매인다. 재산의 증가는 더 많은 것을 바라는 열렬한 욕구를 강화하여, 주님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심하고 불공평한 세금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영감의 말씀은 “재물이 늘어도 거기 치심치 말지어다”(시 62:10)라고 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내가 만일 아무개처럼 부하다면 하나님의 창고에 여러 배의 예물을 드릴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사업을 발전시키는 데만 나의 재물을 사용하겠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 어떤 이들을 부하게 하심으로 시험하셨다. 그러나 부와 함께 더욱 격렬한 시험이 이르러 오자, 그들의 자선은 그들이 가난할 때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더 큰 부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그들의 정신과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그들은 우상숭배의 죄를 짓게 되었다.

충성스런 인간의 상급으로 무한한 부와 당신의 나라에서의 영생의 축복을 인간들에게 제시하시는 분께서는 나뉘어진 마음을 받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마음을 떠나게 하고 애정을 분리시키는 말세의 위기 가운데 살고 있다. 우리의 의무는 그리스도의 생애에서 비쳐 오는 빛을 바라볼 때만 분별될 것이다. 태양이 동쪽에서 떠서 서쪽을 향하여 지나가면서 온 세상을 빛으로 채우듯이,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따르는 자들은 세상의 빛이 될 것이다. 404 그는 그에게서 발산되는 빛줄기에 의하여 흑암에 놓인 자들이 빛과 온기를 받도록, 밝고 빛나는 빛으로서 세상에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신다.

우리의 크신 모본자께서는 자아를 부정하셨는데, 그분을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의 행동 노선이 그분의 것과 현저하게 대조적이어야 하겠는가? 구주께서는 멸망해 가는 세상을 위하여 당신 자신까지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모든 것을 내어 주셨다. 하나님의 교회는 잠자고 있다. 그들은 무활동으로 인하여 약화되어 있다. 세상의 여러 곳에서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음성이 우리에게 쇄도하고 있으나, 이에 반응하는 행동이 없다. 때때로 연약한 노력만이 기울여지고 있을 뿐, 소수만이 그들의 주님과 동역자가 됨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혼히 그러한 자들의 경우에도 거의 홀로 애쓰도록 방치되어 있다. 이 모든 외국의 넓은 일터에, 우리 백성들로부터 한 명의 선교사밖에 없다.

진리는 강력하나 실천되지 않고 있다. 제단에 헌금을 드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나라와 방언과 백성들에게 진리를 전할 지원자 곧 사람을 부르고 계신다. 우리에게 현저한 승리를 가져다 줄 것은 우리의 수효나 부가 아니라 사업에 대한 헌신, 도덕적 용기, 영혼에 대한 열렬한 사랑, 지칠 줄 모르고 쇠하지 않는 열심이다.

자신의 신앙을 유지하기 위하여 계속적으로 세금을 바쳐야 했다는 이유로 유대 백성을 동정 받아야 할 백성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가 누리는 모든 축복을 베푸신 하나님께서는 무엇이 그에게 최선인지를 아셨다. 그분은 당신의 축복을 통하여 인간의 십 분의 구를 당신의 축복이 결여된 전체의 금액보다 더욱 그들에게 가치 있게 하셨다. 어떤 사람이라도, 이기심으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거나 불완전한 헌물을 가져간다면, 재앙과 손실이 분명히 따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동기를 읽으신다. 그분은 사람들의 목적을 아시며, 당신께서 보시기에 적당한 때에 사람들이 받을 만한 대로 보상하실 것이다.

십일조를 드리는 특별한 제도는 하나님의 계명과 마찬가지로 견고한 원칙 위에 세워졌다. 이 십일조 제도는 유대인들에게 축복이 되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하나님께서 그 제도를 그들에게 주지 아니하셨을 것이다. 이 제도는 또한 세상 끝 날까지 그것을 실천하는 이들에게 축복이 될 것이다. 405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당신 자신을 부요하게 하시고자 체계적인 자선 계획을 창시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큰 축복이 되도록 고안하셨다. 그분은 이 체계적인 자선이 바로 사람에게 필요한 것임을 보셨다.

하나님의 사업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가장 체계적이고 관대한 교회들이 영적으로 가장 번영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의 진정한 관대함은 자신의 관심을 주님의 그것과 일치시킨다. 유대인들과 마지막 때까지 있을 당신의 백성을 취급함에 있어서, 그분은 그들의 수입에 비례되는 체계적인 자선을 요구하신다. 구원의 계획은 하나님의 아들의 무한한 희생에 의하여 세워졌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비쳐 오는 복음의 빛은 이기심을 책망하며, 관대함과 자선을 격려한다. 드리라는 요청이 증가하는 것은 슬퍼할 일이 아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섭리로 당신의 백성을 그들의 제한된 행동 영역에서 불러내어 더욱 큰 사업을 하게 하신다. 도덕적 흑암이 세상을 덮고 있는 이 때에, 제한 없는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세상에 속한 마음과 탐욕이 하나님의 백성의 생명력을 잠식하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재물에 대한 요구를 배가시키는 것이 그분의 자비임을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의 천사는 자선 행위를 기도와 밀접히 연결시킨다. 천사는 고넬료에게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행 10:4)라고 말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교훈을 통하여 말씀하셨다.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눅 16:11). 교회의 영적 건강과 번영은 체계적인 자선에 크게 좌우된다. 그것은 마치 신체 각부에 생명력을 공급하며 온몸으로 흘러가야 하는 혈액과 같다. 그것은 동료 인간의 영혼에 대한 사랑을 증가시킨다. 왜냐하면, 자아 부정과 자아 희생을 통하여,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 그리스도와 더욱 밀접한 관계에 이르기 때문이다. 영혼의 구원을 돕기 위하여 하나님의 사업에 더 많이 투자하면 할수록, 그 영혼들은 더욱 가까이 우리의 마음과 밀접해진다. 우리의 수효가 지금의 절반일지라도 그들이 모두 헌신한 일꾼들일 것 같으면, 세상을 흔들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활동적인 일꾼들에게 그리스도께서는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고 말씀하셨다.

406 우리는 이기적 동기, 고집, 편견에 의해 일어나는 반대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불굴의 용기와 산 믿음을 가지고 우리는 모든 물가에 씨를 뿌려야 한다. 사단의 부하들은 만만찮다. 우리는 그들을 만나 그들과 더불어 싸워야 할 것이다. 우리의 사업은 우리 자신의 나라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일터는 세계이며, 곡식은 무르익어 있다. 승천하시기 전에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명령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는 것이었다.

우리 교역자들 중 어떤 이들이 외관상으로 약간의 노력만을 기울이며 그들의 노력에 대한 열매를 거의 거두지 못한 채 교회들을 맴도는 것을 볼 때,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낀다. 우리의 일터는 온 세계이다. 그들로 하여금 믿지 않는 세계로 나아가서 영혼을 진리 안으로 돌아오게 하는 사업을 하게 하라. 우리는 우리의 형제 자매들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독자를 드리기 위하여 모리아 산으로 올라가는 아브라함의 모본을 제시하는 바이다. 여기에는 순종과 희생이 있다. 모세는 왕궁에 거했으며, 장래의 왕관이 그의 앞에 놓여져 있었다. 그러나 그는 유혹적인 뇌물에서 돌아서고,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 11:24-26).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당할 가치가 있는 자로 인정받는 것을 즐거워하고, 자신의 생명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바울과 실라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그들은 채찍으로 맞고 감옥의 차가운 마룻바닥에 가장 고통스러운 자세로 우악스럽게 던져졌으며, 그들의 발은 들린 채 차꼬에 채워져 있었다. 그러나 원망과 불평의 소리가 간수들의 귀에 들렸던가? 결코, 그렇지 않다! 한밤중의 정적을 깨고 기쁨에 넘치는 노래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음성이 감옥 속에서 흘러나왔다. 이 제자들은 그들이 위하여 고통을 당하고 있는 구주의 사업에 대한 진실하고 깊은 사랑으로 격려되었다.

하나님의 진리가 우리의 마음을 채우고 우리의 애정을 흡수하고 우리의 삶을 지배할 때, 우리 역시 진리를 위하여 고난받기를 기쁘게 여길 것이다. 어떤 감옥의 벽이나 순교자의 화형주도, 이 큰 사업에 가담한 우리를 두렵게 하거나 방해하지 못할 것이다.

오, 내 영혼아, 갈바리로 오라

407 하나님의 아들의 비천한 생애를 주목하라. 그분은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사 53:3)였다. 그분이 당하신 치욕과 갈바리에서의 고뇌를 바라보고, 자아 부정이 무엇인지를 배우라. 우리가 궁핍을 당하고 있는가? 하늘의 주재이신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셨다. 그러나 그분의 가난은 우리를 위함이었다. 우리는 부유한 자 중에 속하는가? 그분도 그러하셨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가 그분의 가난을 통하여 부요하게 되도록 하시고자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기로 응낙하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아 부정이 예시되었다. 그분의 희생은 그분이 하늘 궁정을 떠나 악한 자들에 의하여 범죄자처럼 고난을 당하시고 죄인으로 선고되고 범죄자로서 죽음에 넘기워진 데에만 단순히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세상의 죄짐을 지신 데 있다. 그리스도의 생애는 우리의 무관심과 냉정을 책망한다. 우리는 사단이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 알고 크게 분내어 내려온 세상 끝에 접근해 있다. 사단은 멸망해 가는 자들 가운데서 모든 불의의 속임수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의 인도자께서는 우리가 활력을 가지고 그 싸움을 싸우도록 우리의 손에 그 투쟁을 맡기셨다. 우리가 만일 깨어 있었다면 성취했을 분량의 이십 분의 일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우리 구주께서 당신의 생애를 통하여 모본을 보이신 자아 부정의 정신의 결핍과 안일에 대한 사랑 때문에 사업은 지연되고 있다.

그리스도의 동역자로서 최대의 노력을 기울일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이 부족하다. 출판 사업은 축소될 것이 아니라 배가되어야 한다. 진리를 전파하는 사업에 우리 청년들을 준비시키는 교육을 위하여, 곳곳에 학교를 세워야 한다.

이미 상당한 시간이 낭비되었으며, 하늘의 천사들은 우리의 태만에 대한 기록을 하늘로 가져간다. 헌신하지 못한 채 졸고 있는 우리의 상태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현재의 필요를 채우는 일에 우리를 도울 자격을 가진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베푸신 귀중한 기회를 상실하였다. 오, 다른 나라에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 한나 모아로 하여금 오늘날 우리를 돕도록 하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가! 선교지에 대한 그의 방대한 지식은 지금 우리가 접근할 수 없는 다른 방언의 백성들에게 우리로 하여금 접근할 수 있게 해주었을 것이다. 408 하나님께서는 현재 우리가 처한 위기를 대처하도록 우리에게 이 선물을 주셨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선물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으며, 그분께서는 그를 우리 중에서 취하여 가셨다. 그는 이제 수고에서 벗어나 잠들어 있으나, 그의 자아 부정의 사업이 그를 따른다. 거대한 추수장에서, 다른 민족과 지방에 접근하는 방법에 대한 지식이 결핍함으로 우리의 선교 사업이 지연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통탄할 일이다.

우리가 깨어 있기만 했더라면 현재 우리가 소유하게 되었을 어떤 선물들을 우리가 상실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심령의 고통을 느낀다. 일꾼들이 희어져 무르익은 추수장으로 나아가는 일이 막혔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마땅히 저들의 마음을 그분 앞에서 겸비히 하고, 가장 깊은 겸비로, 우리의 무정함과 이기적 방종을 용서해 주시고 태만히 한 의무와 활용하지 아니한 특권에 대한 부끄러운 기록을 지워 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해야 한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갈바리의 십자가를 숙고하는 가운데, 그에게 아무런 희생이 되지 않는 범위 안에 그의 예물을 제한하고자 하는 생각을 버리고, 다음과 같은 나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가라, 내 포도원에서 일하라. 머지않아 쉼이 있으리 승천하시고자 할 때, 예수께서는 추수할 들판을 가리키시며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 10:8). 우리는 유실되고 있는 수확물을 거두기 위하여 자아를 부정할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영향력과 재물의 달란트를 요구하신다. 우리는 순종하기를 거절할 것인가?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선물을 주시고, 그 일부를 되돌려 주도록 요구하심으로 우리가 영생의 선물을 받을 가치가 있는지를 시험하신다.

조직적인 헌금

하나님께서 지상의 재물로 번영케 하신 모든 이들이 그들의 모든 증가액의 십분의 일을 충성스럽게 바침으로 그분의 계획을 수행한다면, 그들의 속건제와 감사제를 붙잡고 있지 않는다면, 창고는 끊임없이 채워지게 될 것이다. 409 조직적인 헌금 계획의 단순성은 그 효력이 사라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것을 준비하신 하나님의 지혜를 높인다. 하나님의 도장이 찍힌 모든 것은 단순하며 유용하다. 만일 조직적인 헌금을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전체적으로 받아들여 가난한 계층의 사람들이 행하는 것처럼 부유한 이들도 충성스럽게 십일조 제도를 수행했더라면, 우리의 대형 신앙 집회에서 자금에 대해 반복해서 긴급하게 호소할 필요가 전혀 없게 될 것이다. 교회에서 조직적인 헌금 계획을 준수하는 일을 등한히해 왔으며, 그 결과로 창고는 고갈되고 교회는 뒤로 미끌어졌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 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말 3:8-12).

하나님께서는 십일조와 헌물을 도적질당해 오셨다. 창고에 집어 넣지 않거나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죄는 두려운 것이다. 우리의 대형 집회에서 설교하는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을 등한히 하는 일의 죄됨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헌금 계획을 무시하는 한 하나님께서 그들을 축복하시지 않을 것을 그들은 알고 있다. 그들은 이기심과 탐심의 위험과 죄됨을 보여주며 요점적이고 실제적인 말씀을 통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그 의무에 대해 깨닫게 하고자 노력한다. 마음에 확신이 들 때, 얼음처럼 차가운 이기심은 무너져 내린다. 또한 하나님의 사업에 헌금하라는 호소를 듣게 될 때, 어떤 이들은 집회를 흔드는 감화 아래에서 드리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데, 이들은 그렇게 되지 않고는 아무것도 드리고자 하지 않는다.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에 관한 한, 좋은 결과를 거두어 왔다. 410 그러나 강요적인 호소 아래에서 이기심으로 그 마음이 꽁꽁 얼어 붙지 않은 이들은 아주 깊이 느낀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그들의 자금이 흘러 나가도록 양심적으로 노력해 왔다. 그들의 전존재는 발해진 열렬한 호소에 감동되며, 자신의 생활 여건이 옳다고 주장하는 모든 것을 바침으로 반응하는 이들은 바로 이들이다.

그러나 사업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신속하게 행동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움직이는 이 후하고 전심을 바치는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보다도 더욱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스스로 판단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유용성은 다른 방면으로는 무능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원하는 이들은 어느 근원으로부터 돈이 올지를 알지 못할 때에 헌금에 대한 서약을 하는데, 그 서약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이들은 어려운 환경에 빠진다. 어떤 이들은 큰 손해를 보면서 그들의 생산품을 팔 수밖에 없으며, 어떤 이들은 그 서약을 지키기 위하여 생필품과 생활의 안락을 실제적으로 희생하였다.

우리의 사업이 시작될 때, 그러한 희생이 정당화되던 때가 있었는데 당시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업을 위하여 그렇게 모험을 감행한 모든 이들을 축복하셨다. 진리의 친구는 극소수였고, 그들의 재정도 지극히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업이 확장되고 강화됨에 따라 만일 모든 사람이 자기 분량만큼 감당하려고 한다면, 그 어떤 사람에게 괴로움을 주지 않고서도 모든 방면의 사업을 지탱할 만큼의 돈이 신자들의 수중에 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사업은 조금도 손상을 입을 필요가 없다. 소중한 진리는 매우 분명해졌으며 하나님께서 진리의 사업을 발전시키는 데 사용하라고 자금을 그 수증에 의탁하신 이들이 이것을 감당하게 되었다. 만일 자금을 갖고 있는 이러한 인물들이 저들의 의무를 다한다면, 가난한 형제들에게 압력을 가해야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풍요로운 세상에 살고 있다. 만일 헌물과 헌금이 하나님께로부터 각자가 받은 재물의 비율만큼 된다면, 우리의 대형 집회에서 자금에 대한 긴급한 호소는 결코 필요 없게 될 것이다. 나는 우리의 야영회에서 자금면에 대해서 압력을 가하는 것은 최상의 계획이 아님을 매우 크게 확신한다. 생활하면서 하나님의 사업을 사랑하는 남녀들이 이러한 경우에 서약을 할 것인데, 사실상 그 가족은 그들이 사업의 발전을 위해 바치기로 약속한 바로 그 돈 때문에 고통을 겪을 수 밖에 없다. 411 우리의 하나님은 엄격한 감독이 아니시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 가족에게 속한 돈, 가족들에게 안락함을 제공하고 쪼들리는 궁핍에서 벗어나게 할 돈으로 사업을 위해 바치라고 요구하지 않으신다.

부유한 사람들에 관한 한 우리의 대형 집회에서 발한 헌금 호소는 지금까지 분명히 좋은 결과를 거두어 왔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식으로 창고를 채우기 위해서 계속 노력함으로 이르러 올 결과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 다른 교회에서 책임 있는 이들은 모든 이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세워 놓으신 계획을 따르도록 더욱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만일 조직적인 헌금이 시행된다면, 여러 가지 사업을 위해 야영회에서 긴급하게 호소하는 일은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대로 모든 사람이 바칠 뿐 아니라, 특별한 호소를 기다리는 일 없이도 바치는 습관을 형성하게 될 한 계획을 하나님께서 마련하셨다. 이렇게 할 수 있는데도 이기심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 이들은 그들의 창조주의 것을 도적질하고 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당신의 일에 투자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자금을 베풀어 주셨다. 조직적인 헌금 제도를 모든 사람이 실천할 때까지, 사도적 규칙에 이르는 일은 실패할 것이다. 말씀과 교리의 봉사를 하는 이들은 분별력 있는 인물들이어야 한다. 그들은 대중적인 호소를 하는 한편, 그들의 호소에 화답한 이들의 능력에 대해 알아야 하며 가난한 이들로 하여금 크게 서약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주님께 얼마만큼의 액수를 작정한 후에, 그는 그것을 거룩한 용도에 사용될 신성한 것으로 느낀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설교하는 형제들은 그들에게 서약하는 이들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진리를 믿는 우리 교회의 각기 다른 가정의 각 신자들은 조직적인 헌금을 기쁘게 받아들임으로 진리의 발전에 한몫을 감당할 수 있다.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집에)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고전 16:2). 개인들에게 각자의 돈을 바치도록 강요하고 압력을 가하는 짐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목사들이 짊어지도록 계획하지 않으셨다. 진리를 믿는 일을 기뻐하는 각 개인에게 의무가 지워져야 한다. 412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라.” 가족들은 가장 연로한 자로부터 가장 연소한 자에 이르기까지 헌금하는 이 일에 각자의 몫을 감당해야 한다.

작은 어린이들의 예물도 하나님께 가납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다. 예물의 가치는 예물을 드린 정신과 일치될 것이다. 사도가 제시한 법칙에 따라 매주 소액을 따로 떼어 놓는 가난한 자들은 창고를 채우는 데 도움이 되며, 그들의 예물은 온전히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보다 부요한 형제와 동일하거나 그들보다 더욱 큰 희생을 했기 때문이다. 조직적인 헌금 계획은 불필요한 것들을 위하여 돈을 낭비하고자 하는 유혹에서 모든 가족들을 지켜 주는 방비의 수단이 되고, 특히 부자들에게는 그들을 사치에 방종하는 일에서 보호하는 축복이 될 것이다.

매주일마다 하나님께서 각 가족에게 요구하시는 것을 그 계획을 온전히 실행하는 가족 각 사람이 기억하게 된다. 따라서 그들이 창고에 돈을 드리기 위하여 몇몇 불필요한 것들 없이 지내게 될 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자아부인의 가치에 대한 교훈이 마음에 새겨진다. 한 주일에 한 번 각자는 지난 주일 동안 행한 일을 대면하게 된다. 만일 그가 절약했더라면 소유했을 수입과, 방종 때문에 갖지 못한 돈을 대하게 된다. 그의 양심은 하나님 앞에서 본래적인 힘을 발하게 되어 그를 칭찬하든지 견책하게 된다. 그는 만일 자기가 마음의 평안과 하나님의 총애를 유지하려고 한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먹고, 마시고,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계획과 일치하여 조직적으로 자원해서 바치는 일은 마음의 통로를 열어 놓는다.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 자신을 연결시킴으로 그분께서 당신의 선물들을 다른 이들에게 흘려 보내시는 통로로서 우리를 사용하실 수 있다. 가난한 이들은 조직적인 헌금에 대해 불평하지 않을 것인데, 이는 그들에게 가벼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등한시되거나, 그냥 지나쳐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동역자가 되는 일에 참여함으로 은총을 누리게 되고, 재물뿐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413 그들이 아낄 수 있는 만큼 조금씩 떼어 놓는 바로 그 과정 속에서 그들은 자아를 부인하고 후한 마음을 계발한다. 그들은 선행을 위해 스스로를 교육하며, 풍요한 중에 드리는 좀더 부유한 이들과 마찬가지로 조직적인 헌금 계획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을 효과적으로 성취한다.

사도 시대에, 사람들은 각처로 말씀을 전파하러 나갔다. 새 교회들이 세워졌다.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과 열성으로 그들은 위대한 부정과 희생의 행동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방 교회 중 많은 수효가 매우 가난하였다. 그러나 사도는 그들이 크게 궁핍한 중에도 그들은 후하게 드렸다고 선언하였다. 그들의 헌금은 그들이 바칠 수 있는 능력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진리 때문에 사람들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모든 것을 잃는 고통을 감당하였다.

섭리의 손길과 받은 바 축복을 회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그분께서 베푸신 축복에 대해 진정으로 감사하는 심령으로 하나님께서 손수 세워 놓으신 계획에 따라 그분께 얼마를 되돌려 드려야 할지 결정하는 적절한 날로 사도는 주일 중 첫날을 제시하였다.

하나님께서는 헌금을 실천하는 일은 동정을 유발시키기 위해서 열렬하게 호소하는 일이 없이 순수하게 자원하는 것이 되도록 계획하신다.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그분께서는 당신의 창고가 강요된 공급물로 충당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이 시대를 위한 구원의 진리를 기뻐하는 당신의 백성의 충성스러운 심령은, 이 소중한 빛을 주신 하나님께 사랑과 감사로 충만하여 그들의 재물로써 진리를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일에 도움을 주기를 열렬히 원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구속주께 우리의 사랑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길은 영혼들에게 진리를 알려주기 위하여 헌금을 드리는 일이다. 구속의 계획은 우리의 구속주의 편에서 전적으로 자원하신 것이며, 또한 우리의 모든 헌금도 자원하는 헌금이 되는 것이 그리스도의 목적이다.

개인의 독립심

414 사랑하는 A 형제에게. 그대의 처지에 대해 내 마음이 끌렸다. 나는 그대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길과 관련해서 내게 보여진 몇 가지 것을 그대에게 기록하였다. 나는 그대의 위험을 보았기 때문에 그대에 대해 걱정이 된다. 그대에게 있는 이전의 강신술 체험을 통해서 그대는 유혹과 혹독한 싸움에 노출되어 있다. 사악한 천사들을 통해서 원수의 직접적인 지배에 마음이 일단 굴복하게 되면, 그 사람은 인상과 느낌에 있어서 매우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되고, 그리스도의 교회로부터 멀어진다. 교회와는 별개로 그러한 인물들이 내딛는 첫 발걸음은 미혹하고 파괴시키기 위한 원수의 고안물로 간주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빛의 통로로 삼으셨으며, 이를 통하여 당신의 목적과 당신의 뜻을 전달하신다. 그분께서는 어떤 한 사람에게 교회와는 독립된 어떤 체험을 주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흑암 중에 내버려두시면서 온 교회를 위해 당신의 뜻에 대한 지식을 어떤 한 사람에게 주시지 않는다.

A 형제여, 그대는 그대가 어떻게 짓는지 큰 주의를 기울여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대의 소망을 최대한도로 시험할 폭풍이 다가오고 있다. 그대는 깊이 파고, 그대의 기초를 든든하게 놓아야 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 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마 7:24, 25). 건축가들은 건축물이 돌과 돌 위에 서게 될 때까지 꾸준하게 돌 위에 돌을 쌓아 올린다. 복음의 건축가들은 흔히 눈물과 시련, 핍박의 폭풍, 쓰라린 반대, 부당한 비난 속에서 그의 일을 수행한다. 그러나 그는 마음 속 깊이 열성을 유지하는데, 이는 그가 영원을 위하여 짓고 있기 때문이다. A 형제여, 그대의 기초가 든든한 반석이 되도록, 그대가 반석이신 그리스도께 고착되도록 주의하라.

그대는 강하고 완고한 의지, 매우 독립적인 정신을 소유하고 있는데 이것을 어떤 위험에 처해서라도 굳게 지켜야 한다고 그대는 생각한다. 그대는 이 동일한 정신을 그대의 신앙 체험과 생활 가운데 끌어들였다. 그대는 하나님의 사업에 있어서 그대의 미국인 형제들이 행해 온 것과는 언제나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그대는 그들처럼 보지 못하며, 그들이 일하는 방식과 일치하지 않는다. 415 그대는 이 사업의 다른 부서들의 일에 대해 거의 알고 있지 못하다. 그대는 사업의 여러 분야에 대해서 알기를 갈망하지 않았다. 그대는 사업에 대해, 또한 그것을 추진하도록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지도자들에 대해 의심과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대는 하나님의 사업을 수행하고 발전시키는 일에 대해 연구하고, 참가하고 익숙하게 되려고 노력하려는 대신에 의심하고, 추측하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업의 막중한 책임을 맡기신 이들에 대하여 시기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전적으로 변화된 인물이 되기 전에는 목자, 다른 이들에게 진리를 선포하는 의의 목사가 되기에 부적합함을 보셨다. 불행하고 학대받는 이들에게, 또한 궁핍 때문에 주저앉고, 고난과 시련을 통과하고 있는 이들에게 어떻게 긍휼과 동정과 부드러운 사랑을 베풀 수 있는지 알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대로 하여금 실제적인 고난을 통과하고, 궁핍을 느끼도록 허락하셨다.

그대가 역경 중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평강을 얻기 위해 기도할 때 흑암의 구름이 그대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대가 기대한 것처럼 쉼과 평강이 이르러 오지 않았다. 때때로 그대의 믿음이 최고의 시험을 받는 것처럼 보였다. 과거 생애를 뒤돌아 보았을 때, 그대는 슬픔과 실망을 보았다. 미래를 볼 때, 모든 것은 불분명하였다. 그대를 십자가로 인도하여, 당신을 부지런히 찾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상 주시는 분임을 가르치고자 신령한 손이 기이하게 그대를 인도하였다. 올바르게 구하는 이들은 받을 것이다. 믿음으로 구하는 이는 찾을 것이다. 시련과 역경의 풀무 속에서 얻은 체험은 그것이 치러야 하는 모든 불편과 고통스러운 체험보다도 훨씬 더 가치 있다.

시련에 빠져 외롭고 지친 가운데 드린 그대의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대의 기대를 따라서가 아니라 그대의 유익을 따라 응답하셨다. 그대는 그대의 형제들에 대해 올바른 견해를 갖고 있지 않으며 올바른 빛 가운데서 그대 자신을 보지 않는다. 416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서 그분은 그대가 고통중에 드린 기도를 그대를 구원하고 당신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는 방향으로 응답하시고자 역사하셨다. 스스로를 모르기 때문에 그대는 그대에게 최선이 아닌 것을 구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대의 진실된 기도를 들으셨으나, 허락하신 축복은 그대의 기대와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섭리를 통해서 그대를 당신의 교회에 직접적으로 연결시키는 곳에 놓으셨는데 이는 그대로 하여금 자신에 대해서는 적게 신뢰하는 대신에 당신의 사업을 전진시키기 위해서 당신께서 친히 인도하고 계시는 다른 이들에 대해 더욱 크게 신뢰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진실된 기도를 들으신다. 그분께서는 그대로 하여금 빛 가운데 더욱 직접적으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당신의 사업에 그대를 참여시키고자 하셨다. 그런데 그대가 증거와 빛을 거스려 그대의 이상을 인봉하지 않는 한, 그대가 자아를 좀 덜 믿고, 그대의 형제들을 좀더 믿는 사람이 된다면, 그대가 하나님 안에서 좀더 번영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그대는 확신을 갖게 될 것이다. 그대로 하여금 협착한 곳을 지나가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뜻이 있으셔서 이렇게 하셨는데, 곧 환난을 통해서 그대 안에 인내를, 인내는 체험을, 체험은 소망을 이루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분께서는 시련들을 통해서 그대가 의의 평화스러운 열매들을 체험하도록 그것들이 그대에게 닥치는 것을 허용하셨다.

베드로는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사 53:3)께서 치욕을 당하시는 시간에 그분을 부인하였다. 그러나 후에 그는 회개하고, 재 회심하였다. 그는 심령에 진정한 통회를 체험하였으며, 자기 자신을 새롭게 그의 구주께 바쳤다. 눈물이 앞을 가리는 가운데 그는 겟세마네동산 조용한 곳으로 갔으며, 그의 구주께서 엄청난 고뇌를 인하여 땀구멍으로부터 피땀을 홀리시며 엎드러지셨던 곳, 그가 본 바로 그 장소에 엎드렸다. 베드로는 그 두려운 시간 동안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 잠들었던 것을 기억하고 가책을 느꼈다. 그의 교만한 심령은 부수어졌으며, 얼마 전에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아들의 피땀으로 얼룩졌던 잔디를 그의 통회의 눈물로 적셨다. 그는 회심한 사람으로 바로 그 동산을 떠났다. 그는 시험당하는 이들에 대해 동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겸손해졌으며, 연약하고 과오를 범하는 이들에게 동정을 베풀 수 있었다. 그는 신성 모독자들에 대해 주의하고 경고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 형제들을 든든하게 할 수 있는 완전한 준비를 갖추었다.

417 하나님께서는 그대로 하여금 당신께 대하여 더욱 완전한 신뢰와 신임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 또한 그대로 하여금 스스로의 판단에 대해 좀 덜 생각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대를 고난과 역경의 길로 인도하셨다. 그대는 번영보다도 역경을 더욱 잘 감당할 수 있다. 그대가 금으로 여겨 너무 가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버릴 수 없는 수많은 찌꺼기들을 모든 것을 통찰하시는 여호와의 눈은 그대 속에서 발견하셨다. 때때로 원수의 권세가 매우 강하게 그대를 이끌었다. 강신술의 기만이 그대의 신앙을 휘감았으며, 그대의 판단력을 곡해시켰으며, 그대의 체험에 대해 혼란을 일으켰다. 그대로 하여금 당신께 의의 예물을 드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레위 자손처럼 그대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섭리 가운데 단련하시고, 정결케 하시고자 하셨다.

그대의 모든 수고 속에는 자아가 너무 많이 섞여 있다. 그대의 뜻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꼴 지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무시무시한 유혹에 넘어가게 될 것이다. 자아를 시야에서 사라지게 하고 하나님안에서 수고할 때, 그대가 심령들에 접근할 수 있도록 그분께로부터 이르러 오는 능력을 그대가 깨닫게 될 것에 대해 나는 보았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그대가 스스로를 미천하고 낮게 여기게 될 때, 그대의 노력에 역사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여러 해 동안 인도하시고, 진리로 교훈하시고, 당신의 사업의 확장을 위해 자격을 갖추어 주신 이들 보다도 그대가 더욱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할 때, 그대는 스스로 높아져서 유혹에 넘어지고 만다.

그대는 친절과 부드러움을 계발하여야 한다. 그대에게는 동정과 용기가 필요하다. 그대의 수고는 지나치게 가혹하고, 엄격하고 독재적이고 참지 못하는 정신으로 배어 있다. 그대는 다른 이들의 감정을 언제나 친절하게 배려하지 않으며, 불필요하게 시련과 불만을 초래한다. 그대가 좀더 많은 사랑과 좀더 많은 친절을 베풀며 수고한다면, 그대는 심령들에 접근하여 그리스도와 진리 편으로 영혼들을 구원하게 될 것이다.

그대는 끊임없이 개인의 독립성 쪽으로 기울고 있다. 그대의 형제들, 특별히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일을 위해서 임명하신 직분 가운데 있는 이들의 조언을 크게 존중하고, 그들의 판단을 크게 평가하는 대신에, 그대가 지나치게 자신을 신임하고, 자신의 판단을 신뢰할 때, 그대는 독립성이 형편없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도 무시하고 멸시하는 일에 대해 정당성을 주장할 수 없는 특별한 권위와 능력을 당신의 교회에 부여하셨는데, 이는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음성을 멸시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418 인상과 감정을 신뢰하는 것은 그대에게 안전하지 못하다. 그러한 사단적 기만, 강신술의 권세 아래 그대가 들어섰다는 것은 그대에게 불행이다. 이 사망의 덮개가 그대를 덮었으며, 그대의 상상력과 신경은 마귀의 지배 아래 있다. 그대가 자만 가운데 빠져 하나님께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갖고 매어 달리지 않을 때, 그대는 헤어나올 수 없는 위험 가운데 빠진다. 그대는 자주 그렇게 하는 것처럼 문빗장을 걷어 내고 원수로 하여금 들어오도록 초청하며, 원수는 그대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한다. 그렇지만 그대는 정말 미혹을 받았기 때문에 그대가 하나님의 총애 속에 있다고 자만하고 있다.

사단은 그대가 그대의 미국인 형제들을 신임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노력하여 왔다. 그들이 그대를 도울 수 있고, 그대에게 축복이 될 수 있는 바로 그런 인물인데도 불구하고, 그대는 그들과 그들의 움직임과 체험을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전달하시고, 당신의 사업을 일으켜 세우고 확장시키시는 일에 빛의 통로로 삼으신 이들로부터 그대를 분리시키는 것이 사단의 계획적인 노력이다. 그대의 견해와 그대의 감정과 체험은 지나치게 좁으며, 그대의 수고도 동일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대의 백성들에게 축복이 되기 위해서 그대는 많은 면에서 향상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대는 예절을 기르고, 모든 사람을 향해 부드러운 동정심을 간직하여야 한다. 그대는 하나님의 은혜의 면류관이 되는 사랑을 소유해야 한다. 그대는 지나치게 많이 비평하고 그대가 영혼을 얻으려 할진대 참아야 할만큼 참지를 못한다. 그대가 만일 조금 덜 형식적이고 굳어 있지 않는다면, 또한 좀더 성령의 감동을 받아 행동을 한다면 그대는 훨씬 더 큰 감화력을 갖게 될 것이다. 그대는 사람들에게 인도를 받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많이 염려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고 계시며, 또한 세상이 계속되는 한 그들을 사용하실 것이다.

타락한 천사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독립하기를 열망하였다. 그들은 매우 아름답고 매우 영광스러웠지만, 그들의 행복과 그들이 향유하고 있던 빛과 지성은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었다. 그들은 불복종을 통해서 그 높은 위치에서 떨어졌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는 나뉘어질 수 없다. 하나님의 사업과 진리를 발전시키고 전파하는 일에 책임을 지고 인도하도록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이들을 무시하거나 멸시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도움과 격려와 힘을 주기 위해서 임명하신 방도를 거절하는 것이다. 419 이들을 무시하고 생각한다면, 그대의 빛은 분명히 하나님 외의 다른 근원으로부터 온 것이며, 그대는 기만 가운데 빠져 전복되고 마는 위치에 서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그들에 의하여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당신의 교회 안에 친히 임명하신 도움들과 더불어 연결될 수 있는 곳에 그대를 놓으셨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이전에 강신술과 연결되었다는 것이 그대에게 위험이 되고 있는데, 이는 그대의 판단, 지혜, 분별력이 비뚤어졌기 때문이다. 그대는 스스로 언제나 영들을 분별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단은 매우 교활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대를 도울 수 있도록 당신의 교회에 그대를 연결시켜 주셨다.

그대는 때때로 너무 공적이고, 냉정하고, 동정심이 없다. 그대는 백성들이 처한 곳에서 그들을 만나야 하며, 그들보다도 그대를 크게 높인다거나, 그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그대는 백성들에게 설교하는 동안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부드러워지고, 정복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대는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최선의 방식으로 수고할 수 있도록 스스로 교육해야 한다. 그대의 말을 부드럽게 하고, 그대의 기질을 형성하고, 그대의 영혼을 향상시키는 예수님의 사랑이 그대의 심령 속에 차고 넘쳐서, 이것이 그대의 수고를 특징짓게 해야 한다.

하늘의 영의 활기를 주는 감화력이 없는데도 그대는 지나치게 오랫동안 말하곤 한다. 그대는 그대의 말을 듣는 이들을 피곤하게 한다. 수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흥미가 고조되어 있는 동안에 저들의 설교를 중단하지 못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그들은 청중의 마음 속에 고조된 홍미가 죽어 버리고, 특별히 비중이 있거나 흥미가 있지 않은 말로 백성들이 정말 피곤해질 때까지 계속해서 말을 해댄다. 그런 입장에 빠지기 전에 말을 중단하라. 말할 만큼 특별히 중요한 것이 없으면 중단하라. 오직 편견이나 자극하고, 심령을 부드럽게 하지 못하는 메마른 말을 계속해서 말하지 말라. 그대의 말이 녹아서 영혼을 불태우게 될 수 있도록 그리스도께 연합하기를 그대는 원한다. 이 시대에는 단조로운 말은 불충분하다. 논증은 좋지만, 그것은 지나치게 논쟁적이 될 수 있으며, 또한 하나님의 영과 생명이 지나치게 부족하게 될 수 있다.

420 그대의 노력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그대의 정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겸손하게 굴복되고, 그대의 심령이 부드럽게 되고, 그대의 말이 사랑의 심령으로부터 흘러나오지 않는 한, 그대의 수고는 스스로에게도 피곤할 뿐 아니라 복된 결과를 맺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목회자들이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 그 이상의 지점에 대해서는 인간의 지식과 기술은 무력하다. 우리에게는 마음을 변화시킬 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힘으로 치료가 불가능하고, 백성을 일깨워 보고 깨닫도록 할 수 없는 거대한 오류들과 악으로 더불어 우리는 싸우고 있다. 죄의 죄됨을 식별하고 구주의 필요를 느낄 수 있도록 우리가 영혼들을 일깨울 수 없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수고가 하나님의 영의 감화를 담고 있다면, 또한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우리의 노력에 좀더 높은 능력, 신령한 능력이 함께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수고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열매를 맺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A 형제여, 그대가 이와 같다. 그대는 어두워진 마음을 향해 지나치게 서둘지 말며,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라. 그대는 하나님께서 기이하게 깨우치시는 성령의 감화를 자비스럽게 베풀어 주실 것에 대해 겸손히 기대해야 한다. 오직 그것을 통해서만 그대의 수고가 주님 안에서 헛되지 않을 것이다. 매 순간마다 그대의 위기와 그대의 약점을 인식하고, 하나님께서 홀로 주실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구하며 그대는 살아 있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매어 달려야 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그대의 최선을 다한다 할지라도, 그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대는 마음들을 다루는 지혜를 얻기 위하여 자신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 그대는 어떤 이들에 대해서 동정을 베풀며, 차이를 내어야 하되, 어떤 이들에 대해서는 두려움으로 그들을 구원하고, 저들을 불 가운데로부터 끌어내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이든, 저것이든, 어느 것이 번영하게 될지 모르므로, 모든 물가에 뿌려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능력의 근원으로부터 우리의 믿음과 활력을 분기시키고, 그분께 온전하고도 완전하게 기대어야 한다.

A 형제여, 그대는 자아를 지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원칙과 조화되게 품성을 계발하기 위하여 지극히 큰 열성으로 일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대는 성공적인 목자가 되기 위하여 스스로를 교육하고 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대는 좋은 기질, 곧 친절하고, 쾌활하고, 관대하고, 불쌍히 여기고, 예절바르고, 동정적인 품성의 자질들을 계발해야 할 필요가 있다. 421 그대는 침울하고, 독단적이고, 편협하고, 흠잡기를 잘하고 독재적인 정신을 정복해야 한다. 만일 그대가 하나님의 사업과 연결되어있다면, 그대는 그대 자신으로 더불어 맹렬하게 싸워서 거룩하신 모본자를 본받아 그대의 품성을 형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대가 지속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한, 부패한 마음의 영향력 아래에서 몇 가지가 발전되어 나타나서 그대의 길을 막을 것인데, 그러한 장애에 대해서 그대는 그 진정한 원인을 향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향해서 비난하게 될 것이다. 그대는 자기 연단이 필요하다. 우리의 경건은 꾀까다롭고, 냉정하고, 침울한 것처럼 나타낼 것이 아니라, 사랑스럽고, 가르칠 만하게 보여야 한다. 비난의 정신이 그대의 길에 울타리를 치게 될 것이며, 또한 그대를 향해서 마음 문을 닫게 할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 겸손하게 의지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장애물들로 스스로의 길을 자주 막게 될 것이며, 바로 그것을 다른 사람들의 행실 때문이라고 비난하게 될 것이다.

그대는 편견을 조장하는 독단적인 정신을 갖고 진리를 가르치거나 의무를 수행하지 아니하도록, 굳건히 서서 스스로를 지켜야 할 필요가 있다. 그대는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께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지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대의 자연적인 성격이 무엇인지, 그대가 계발한 성격이 무엇인지, 스스로 질문하여 보라. 그대가 진리 가운데로 이끌어 내는 이들 가운데서 나타나는 것을 원치 않는 행동 습관이나 정신적·도덕적 경향을 그대가 간직하는 일이 없도록 최대의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그리스도의 모든 목사들뿐 아니라 그대가 연구해야 할 일이다.

그리스도의 목사들은 하나님의 양들의 모본이 되도록 요구받고 있다. 목사의 감화는 그의 백성의 품성을 형성하는 일에 많은 힘을 미칠 수 있다. 만일 목사가 게으르다면, 만일 그의 심령과 생애가 순결하지 않다면, 만일 그가 날카롭고, 비평적이고 흠잡기를 좋아하고, 이기적이고, 독립적이고, 자제심이 부족하다면, 그는 이와 동일한 불쾌한 요소들을 그의 백성들 중에서 상당히 많이 부딪쳐서 다루게 될 것이다. 그릇된 감화로 혼란이 야기된 곳에서 질서를 잡는 일은 힘든 일이다. 백성들 속에 그리스도인 덕성을 계발하는 일과 관련해서 그들의 목사에게서 보는 것은 큰 차이를 만들어 낼 것이다. 만일 그의 생애 속에 탁월한 특질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면, 진리의 지식을 전달하기 위하여 그가 수고하고 있는 대상들은, 만일 그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매우 크게 그의 모본과 감화를 반사할 것인데, 이는 그가 그리스도의 대표자이기 때문이다. 422 따라서 목사는 범사에 하나님 우리 구주의 교훈을 아름답게 돋보이도록 하는 것을 자신의 의무로 느껴야 한다.

복음을 전하는 목사의 최대의 노력은 그의 모든 재능을 영혼 구원 사업에 바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때에 그는 성공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현명하고 조심성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나 훨씬 고차원적인 의미에서 그것은 그리스도의 대표자인 복음을 전하는 목사들에게 필수적이다. 우리의 구주께서는 당신의 순결과 고차원적인 도덕성을 통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셨으며, 그와 동시에 사랑과 부드러운 온정을 통해서 그들에게 열성을 불어넣어 주셨다. 극빈자와 극히 미천한 자가 그분께 접근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심지어 어린아이들까지도 그분에게 끌렸다. 그들은 그분의 무릎에 올라가고, 사려 깊은 얼굴, 사랑으로 온화한 그 얼굴에 입 맞추기를 좋아하였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부드러움이 그대에게 필요하다. 그대는 사랑을 계발해야 한다. 동정의 표현과 다른 이들에 대해 예의 바르고 존경하는 행동들을 통해서 그대의 위엄은 한치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현재 그대를 거스려 닫혀 있는 많은 심령들이 그대를 향해 열리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목사들이 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할 바로 그런 분이셨다. 우리는 그분의 성품을 본받는 것에 대해 배워야 하며, 엄격한 정의, 순결, 성실, 사랑, 고결한 관대함 등을 결합시켜야 한다. 사랑이 비쳐 나는 기분 좋은 얼굴, 거기에 친절하고 공손한 태도가 곁들인다면, 강단의 노력을 제쳐놓고, 책상 앞에서의 수고가 이것 없이 이룰 수 있는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것을 이루게 될 것이다. 우리가 다소간에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하고 있는 한,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대해 존중 할 줄 아는 정신을 계발하는 것이 우리에게 합당하다. 우리는 진실된 그리스도인 예절과 부드러운 동정심을 가장 거칠고, 딱딱한 사람들에 대해서까지 계발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바로 그러한 이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순결한 하늘 궁전으로부터 오셨다. 그대가 전하고 있는 기별에 대해 눈에 보일 만한 관심을 전혀 나타내고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주님께서 보실 때에 은혜의 대상이며 소중하기 이를 데 없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서 그대는 너무 쉽게 마음 문을 닫는다.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잠 11:30). 바울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몇 사람을 구할 수 있다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모든 것이 되었다. 그대는 유사한 입장에 들어가야 한다. 그대는 그대의 독립심을 굽혀야 한다. 그대에게는 마음의 겸손이 부족하다. 그대에게는 그대의 심령 위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부드럽게 해주는 감화가 필요하다. 423 그대는 성을 내지 않을 것이며, 편견에 감염된 마음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그들의 마음을 녹여 그 안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사업에 열렬한 사람, 열성, 소망, 믿음, 용기가 층만한 사람이 크게 필요하다. 이 시대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인물은 자기 고집이 강한 사람이 아니라 열렬한 사람이다. 체험이 미약하고, 그리스도인 덕성 상에 결함이 있고, 헌신이 부족하고, 쉽게 낙망하는 예민한 목사들이 우리에게 너무 많다. 자기 스스로의 뜻을 만족시키는 데 열성적이며, 자기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달성시키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데 있어서는 아주 인내심이 많은 이들이 많이 있다. 그러한 인물들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바를 충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이 말세에 우리는 항상 깨어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 진실되게 진리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업을 발전시키고 소중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라면 희생을 무릅쓰면서 자원하여 일하려는 의용병이 필요하다. 고난과 시련을 그리스도께서 저들에게 남겨 주신 유물의 일부로 받아들이면서, 그것을 당할 때 불평하거나 투덜대지 아니할 그런 인물이 이 사업에 필요하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선한 용사로서 진 밖으로 나가 비난을 견디고 짐을 지고자 해야 한다. 그들은 불평 없이, 투덜대거나 뒤로 물러서는 일 없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짊어질 것이며, 환난 때에 인내할 것이다.

이 말세를 위한 엄숙하고 시험하는 진리가 우리에게 위탁되어 있으며, 우리는 이것을 사실로 받아 들여야 한다. A 형제여, 그대는 그대 자신을 표준으로 삼는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내가 그대에게 권하노니, 동정심에 호소하는 일을 피하라. 우리 구주께서 죄인된 우리를 위해서 겪으신 것과 비교해 볼 때, 우리가 진리를 위해 겪을 수 있고, 아마 겪도록 부름 받게 될 모든 것은 아주 작은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대가 항상 제대로 평가받고, 제대로 제시되어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라.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서 우리가 환난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분 안에서 우리는 평강을 누릴 것이다.

그대는 전투적인 정신을 계발시켰다. 그대의 길과 어긋날 때, 그대는 방어적인 자세를 즉각적으로 취한다. 그리고 진리를 사랑하여 하나님의 사업에 저들의 생애를 바친 그대의 형제들 사이에 그대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대는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그들을 비난하며, 그들의 말에 대해 시기하고, 그들의 동기에 대해 의심을 품는다. 424 그리하여 그대의 형제들의 경험을 통해서 얻을 수 있었을 그대의 특권으로 주어진 커다란 축복들을 상실한다.

토론을 피하라

그대는 진리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좋아하며 토의를 좋아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쟁은 조화되는 그리스도인 품성을 형성하는 일에 있어서 그대에게 좋지 않다. 왜냐하면, 만일 그대가 하늘에 들어가고자 할진대 필히 정복해야 할 바로 그 성품적 특질이 과시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항상 토론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 두 가지 악 중 선택이 불가피할 경우가 있겠는데, 그것은 토론이다. 그러나 그것을 피할 수 있다면, 피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 결과는 거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자들끼리 싸우는 것을 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토론을 부추길 것이다. 양편의 증거를 듣기 원하는 이들이 순수하게 정직한 동기에서 토론을 강요할 수 있다. 그러나 토론을 피할 수 있다면 언제든지 그렇게 할 것이다. 토론은 일반적으로 호전성을 강화시키고, 의견 상에 차이가 날지라도 그리스도인의 마음 가운데 항상 존재해야 할 순결한 사랑과 신성한 동정심을 약화시킨다.

세상에서 이 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토론은 사람들 편에서 진리를 탐구하고자 하는 열망에 대한 증거를 결여하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토론에 수반되는 신기함과 흥분 때문에 생긴다. 이러한 싸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거의 영광을 받지 못하시며, 진리도 거의 전진하지 못한다. 진리는 그 결과에 있어서 너무 엄숙하고 웅장하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든지, 거절하든지 간에 사소한 문제로 만들어 버릴 수 없다. 토론자의 기술을 반대자에게 보여줄 셈으로 진리에 대해 토론하는 것은 아주 형편없는 정책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리를 거의 전진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진리의 반대자들은 기술을 발휘하여 상대편을 그릇되게 나타나도록 한다. 그들은 지극히 엄숙하고 신령한 진리들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고귀하고 신성한 진리를 가지고 놀며, 모욕한다. 그리고 그것을 그릇된 빛 가운데서 백성들에게 제시한다. 425 오류로 어두워지고, 죄로 더럽혀진 마음의 소유자들은, 고귀하고 중요한 진리를 이런 식으로 덮어 버리고, 그릇되게 나타내는 이러한 의도적인 사람들의 동기와 목적을 식별하지 못한다. 토론에 참가하는 사람들 때문에, 올바른 원칙 위에서 처신하는 것이 가능한 토론은 거의 없다. 양편에서 날카로운 공격을 너무 자주 하게 되고 개성이 개입되고, 자주 양편은 야유와 익살 가운데로 내려간다. 이기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영혼에 대한 사랑은 상실된다. 깊고도 쓰디쓴 편견이 토론의 결과로 남는 경우가 자주 있다.

가장 소중한 진리의 보석이 진리를 위한 증거들에 관해 전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들 앞에 제시되는 것을 보고 천사들이 슬퍼하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들의 전존재는 진리의 원칙으로 더불어 싸우고 있었다. 그들의 본성은 진리와 적대 관계에 있다. 그들의 토론 목적은 진리의 증거 자체를 파악하거나, 백성들이 우리의 진정한 입장을 공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백성들 앞에 왜곡된 빛 가운데 진리를 놓음으로써 이해를 혼란시키기 위해서이다. 토론자로 스스로를 교육한 인물들이 있다. 반대편 토론자를 그릇되게 진술하고 부정직한 궤변으로 분명한 논증들을 덮어 버리는 것이 그들의 정책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이 부정직한 일에 바쳐 왔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 속에는 순수한 진리의 원칙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리의 옹호자들을 꺾기 위해서 얻을 수 있는 어떤 논증이든지 붙잡지만, 사실은 그들 스스로는 그들을 반대하기 위해 억지를 부리는 그러한 논증들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공의와 진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로 선택한 입장을 강화한다. 그들 앞에 심판이 있으며, 그리고 그들이 그릇되게 거두어들인 승리는 그 모든 재앙적인 결과들과 함께 그 진정한 성격을 드러낼 것이란 점에 대해서 고려하지 않는다.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기 위해서 뒤집고, 비틀어 대는 것을 그 모든 정책으로 삼고 있는 오류는, 그때에 모든 기형적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하나님의 날에 어떠한 승리도 견디어 내지 못할 것이며, 오직 진리, 순결하고, 고결하고, 거룩한 진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얻게 될 것이다.

하늘에 근원을 둔 소중한 진리를 돼지 앞에 던짐으로, 그들이 그것을 붙잡아 진흙탕 속에 짓밟아 버리는 것을 보고 천사들은 운다. 426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마 7:6). 이것은 세상의 구속주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목사들은 토론에 참가하는 기회를 큰 특권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편견을 가진 무리들 앞에 우리 신앙의 모든 요점들을 증거하고 제시해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당신께서 그들 앞에 제시하는 진리들을 그릇되게 사용할 것이기에 상징과 표상 아래 진리의 명백성을 숨기시고, 비유로 그들 앞에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교수법으로부터 배워야 하며,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서는 그들이 받아들이도록 준비될 길이 없는 진리들을 제시함으로써 백성의 귀를 막는 일이 없도록 유의하여야 한다.

우리가 공통적으로 믿고 있는 진리들을 먼저 다루어서 청중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그 다음에 백성이 따라올 만큼 우리는 서서히 전진하며 진리를 제시하여야 한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 받아들여지도록 하기 위해서 편견 있는 사람들 앞에서 인기 없는 진리를 제시할 때 지극히 조심스럽게 행동할 수 있도록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의 입장에 대해 알지 못하고, 성경 진리에 대해 무식한 사람들 앞에, 진리의 명백한 요점들을 가리워 버리기 위하여, 솜씨 좋게 계획하고 조심스럽게 짜 맞춘 논증 꾸러미를 토론을 통해 내어놓게 된다. 어떤 이들은 저들의 기만적인 이론들을 갖고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는 사실들에 대한 분명한 진술들을 가려버리는 것을 저들의 사업으로 삼았으며, 스스로 연구해 보지도 않은 이들이 그것에 대해 박수갈채를 보내도록 한다.

사단의 이러한 대리자들은 대처하기 힘든 존재들이며, 그들에 대해 인내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모든 목사들이 계발해야 할 것은 침착성, 인내심, 자제력 등의 요소이다. 진리의 싸움꾼들은 지적인 전쟁을 위해 스스로를 교육시켜 왔다. 그들은 피상적인 궤변과 주장을 마치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시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들은 의심 없는 마음들을 혼란시키고, 진리를 애매 모호하게 한다. 반면에 기쁘게 하는 우화들이 순수한 성경 진리 대신에 백성들에게 제시된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행위가 사악하기 때문에 빛보다는 어두움을 선택한다. 427 그러나 다른 형편 속에서 다른 식으로 진리가 전파되어 저들 스스로 논증의 비중을 달아보고, 성경을 성경으로 비교할 수 있는 공정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진리의 명확함에 매혹되어 그것을 받아들였을 사람들이 있다.

우리 목사들이 엄숙하고 신성한 여호와의 진리를 덮어 버리고 그 능력을 무력화시켜 버리려는 엉큼한 인물들이 마련해 놓은 오류의 간교한 궤변을 세상에 출판해 내는 것은 매우 신중하지 못한 일이었다. 부주의한 이들을 기만하기 위해 엎드려 기다리는 이 교활한 인물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곡해하기 위해 저들의 지력을 사용한다. 경험이 미숙하고, 의심을 하지 않는 이들은 미혹을 받아 멸망한다. 반대자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 낸 모든 논증들을 출판하는 일은 큰 오류인데, 이는 그렇게 함으로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저에는 결코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수많은 논증들을 공급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이렇게 경솔한 전략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신성한 진리를 반박하는 논증들, 곧 간교하게 영향을 끼치는 논증들이 진리의 능력에 대하여 제대로 배우지 않은 이들의 마음에 영향을 끼친다. 지역 사회의 도덕적 감수성은 죄와 친숙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크게 손상되었다. 이 타락한 시대에 범람하고 있는 이기심, 부정직, 그리고 다양한 죄들은 영원한 사물에 대한 감각을 손상시켜 하나님의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게 하였다. 우리의 대적자들의 오류가 담긴 논증들을 출판함으로 말미암아 진리와 오류가 그들의 마음 속에 같은 차원 위에 놓여졌는데, 만일 그들이 진리의 신성성과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오랫동안 그 진리들을 분명하게 그들 앞에 제시했더라면, 그들은 진리를 위한 강력한 논증들에 대해서 확신을 갖게 될 것이며, 그 다음에 그들은 반대자들이 강요하는 논증들을 대처할 준비가 될 것이다.

진리를 알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 애쓰는 이들, 빛에 충실하고 그들의 일상적인 의무를 수행하는 일에 열성인 이들은 교리를 분명하게 알게 될 것인데, 이는 그들이 모든 진리 속으로 인도함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428 사람들이 진리를 찾지 않고 또한 진리에 대해 알고자 하는 갈망도 없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지배적인 섭리의 행동을 통하여 사람들이 당신의 진리를 아는 일 쪽으로 불가항력적으로 이끌려 오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다.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성령을 소멸할 힘이 있다. 선택력은 그들에게 놓여져 있다. 그들에게는 행동의 자유가 허용되어 있다. 그들은 우리 구속주의 이름과 은혜를 통해서 순종하든지, 혹은 불순종하든지 할 것이며, 그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인간은 신성하고 영원한 진리를 받아들이거나 거절하는 일에 책임을 지고 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끊임없이 깨닫도록 하시며, 영혼들은 진리를 받아들이든지 거절하든지 결정한다. 그리스도의 목사들의 품행, 말, 행동은 진리편, 혹은 반대편으로 영혼들을 저울질 할 수 있다. 모든 행동이 회개할 필요가 없는 삶을 산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이것은 특별히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행동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대사들 중에서 특별히 중요하다.

교회의 권위

세상의 구주께서는 당신의 교회에 큰 능력을 주셨다. 그분께서는 교회의 신자들을 심리할 경우에 적용할 수 있는 법칙을 말씀해 주셨다. 따라야 할 행동 노선에 대한 명백한 지시를 하신 후에 그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8:18). 그러므로 성경의 법칙에 따라 행해질 경우에, 하늘의 권위는 교인들에 대한 교회의 징계를 인정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 개인이 교회의 판단에 반대되게 자신의 판단을 세우도록 허용하지 않으며, 그가 교회의 의견에 반대되게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도록 허락하지도 않는다. 교회 안에 징계나 행정이 없으면, 교회는 조각이 날 것이며 한 몸으로서 결속될 수 없을 것이다. 자신들이 옳고, 하나님께서 특별히 그들을 가르치고 감동시키고 인도하셨다고 주장하는 독자적인 마음을 가진 개인들이 언제나 존재해 왔다. 각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의 논리와 독특한 관점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의 관점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각자는 서로 다른 논리와 믿음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각각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한 빛을 받았노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몸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되고, 각자가 스스로 독립된 교회가 된다. 429 이들 모두가 옳을 수는 없으나 그들은 한결같이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영감의 말씀은 “예” 와 “아니오”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 와 “아멘” 이다.

우리 주님은 두세 사람이 합심하여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면 받으리라는 약속과 함께, 그분의 가르침의 교훈을 따르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일정한 목적에 대한 우리의 소원을 아뢸 때에라도 다른 사람들과 연합해야 할 것을 여기서 보여 주신다. 연합된 기도, 곧 목적의 연합에 큰 비중이 주어져 있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기도를 들으시나, 이 경우에 있어서 예수께서는 당신의 새로 조직된 지상의 교회에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중요하고 독특한 교훈을 하고 계셨다. 그들이 소원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이 상호간에 일치해야 한다. 그것은 속임에 넘어가기 쉬운 한 사람의 생각이나 마음의 행사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 아니라, 동일한 문제에 집중된 몇 사람들의 간절한 소원에 의한 것이어야만 하였다.

바울의 놀라운 개심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적적인 능력을 본다. 대낮의 태양의 영광을 초월하는 밝은 빛이 그의 주위를 비추었다. 그가 어떤 사람들의 이름보다 미워하고 경멸했던 예수께서, 무분별하나 정직한 그의 길을 저지하심으로써 이 가장 가망성이 없는 도구를 이방에 복음을 전할 택한 그릇으로 만드시기 위하여 바울에게 그분 자신을 계시하셨다. 그는 양심적으로 나사렛 예수의 이름에 대적하는 많은 일을 하였다. 열성에 사로잡힌 그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집요하고 열렬하게 핍박하였다. 예수께서 생명의 왕이시라는, 어디서나 편만한 이 위험한 교리를 근절시키려는 바울의 의무감은 깊고 강력하였다.

바울은 과거의 모든 세대에 하나님의 완전한 인정을 받아 온 하나님의 계명, 희생 제물의 종교적 봉사, 할례 예식을,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무효로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믿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이적적인 계시는 그의 어두워진 마음의 방을 밝혔다. 그가 전열을 가다듬고 대항한 예수님은 진정 세상의 구주이셨다.

바울은 자신의 그릇된 열성을 깨닫고 부르짖었다. 430 “주여,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나이까”(영문 성경, 행 9:6). 예수께서는 당신이 맡기신 일을 그때 그 자리에서 그에게 말해 줄 수도 있으셨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바울은 그리스도인 신앙 가운데서 지도를 받아 분별력 있게 행동해야만 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심하게 핍박하던 바로 그 제자들에게로 그를 보내셔서, 그들에게서 배우게 하셨다. 하늘에서 비추인 빛은 바울의 시력을 앗아갔으나, 소경들을 고치신 위대한 치유자 예수께서는 그를 회복시키지 않으신다. 그분은 바울의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답변하신다.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예수께서는 바울의 눈먼 것을 고쳐 줄 수 있으셨을 뿐 아니라 그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의 장래의 길을 말씀하심으로 그의 의무를 알게 할 수도 있으셨다. 그리스도께로부터 모든 능력과 자비가 흘러나온다. 그러나 그분은 바울에게 진리로 개심하는 과정에서 이 땅위에 최근에 조직된 당신의 교회와 관련 없는 독자적인 경험을 베풀지 아니하셨다.

그 경우에, 바울에게 주어진 놀라운 빛은 그를 놀라게 하고 사로잡았다. 그는 완전히 압도당했다. 바울의 경험 중 이 부분은 사람이 바울을 위해서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종들이 이루어야 할 일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예수께서는 의무에 대한 보다 넓은 지식을 위하여 그를 교회에 속한 당신의 일꾼들에게로 보내신다. 그리하여 그분은 당신의 조직된 교회를 인정하시고 권위를 부여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계시하시고 확신시키는 일을 하셨다. 이제 바울은, 진리를 가르치도록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자들에게서 배울 입장에 놓였다. 그리스도께서는 확신시키는 당신의 선택된 종들에게 보내심으로 그를 당신의 교회와 연결시키셨다.

바울이 멸절시키고자 했던 바로 그들이, 그가 멸시하고 핍박한 신앙을 그에게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다. 그는 식음을 전폐하고 눈먼 가운데 삼일을 지내면서, 그가 맹목적 열성으로 멸절시키고자 의도했던 자들에게로 나아갈 길을 준비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예수께서는 바울을 땅위의 당신의 대표자들과 연결시키신다. 주님께서는 이상을 통하여 아나니아에게 다메섹의 어떤 집으로 가서 다소 사람 사울을 찾으라고 지시하셨다.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431 다메섹으로 들어가라는 지시를 받은 후, 사울은 재판을 받고 죽임을 당하도록 제자들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고가는 일에 그를 도우려고 그와 동행한 자들에 의해 인도함을 받았다. 사울은 다메섹 유다의 집에 머물면서 금식과 기도에 시간을 바쳤다. 여기서 사울의 믿음은 시험을 받았다. 삼일 동안을 자기에게 요구된 것에 대하여서 전혀 알지 못하는 캄캄한 마음으로 보냈으며, 삼일 동안 눈먼 가운데 지냈다. 그는 다메섹으로 가라는 지시를 받았다. 왜냐하면 거기서 그의 행할 바가 그에게 알려질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불확실한 가운데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는다. 한 천사가 파송되어, 사울이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을 지시받기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 어떤 집으로 가라고 아나니아에게 지시하였다. 사울의 자만심은 사라졌다. 조금 전만 하더라도, 그는 자신이 상급을 받을만한 선한 사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신만만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는 겸손하게 회개의 심령과 부끄러운 마음으로 땅바닥에 구부리고 엎드렸다. 그는 용서를 받기 위하여 열렬하게 탄원했다. 주님께서는 천사를 통하여 아나니아에게 “저가 기도하는 중”이라고 말씀하셨다. 천사는 이상을 통하여 그 하나님의 종에게 그가 사울에게 아나니아라 하는 자가 들어와 그에게 안수하여 그의 시력을 회복시켜 줄 것을 계시했다고 알려주었다. 아나니아는 천사의 말을 거의 믿을 수 없었으므로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성도를 심히 핍박한 사실에 대하여 들은 소문을 반복하였다. 그러나 아나니아에게 주어진 명령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 9:15).

아나니아는 천사의 지시에 순종하였다. 그는, 최근에 가장 깊은 증오심에 충동되어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협박의 뜻을 토한 그 사람의 머리에 안수하였다. 아나니아는 사울에게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고 말하였다.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침례를 받고”(행 9:17, 18).

예수께서는 이 모든 일을 바울을 위하여 직접 하실 수도 있으셨으나, 그것은 당신의 계획이 아니었다. 432 바울에게는 그가 죽이고자 미리 계획했던 사람들에게 자복해야 할 것들이 있었으며,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대신하여 행동하도록 임명하신 자들이 해야 할 책임 있는 사업을 가지고 계셨다. 바울은 개심에 있어서 그와 같이 필요한 단계들을 거쳐야 하였다. 바울은 그 종교 때문에 그가 핍박한 바로 그 사람들과 자신을 연합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그리스도께서는 여기서 당신의 모든 백성들에게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당신이 일하시는 방법의 실례를 보여 주신다. 하나님의 아들은 당신을 당신의 조직된 교회의 직분과 권위와 동일시하신다. 그분의 축복은 당신이 임명한 대리자들을 통하여 이르러 올 것이었으며 그리하여 인간을 당신의 축복의 통로와 연결시킬 것이었다. 그가 한 잔인한 일이 성령에 의하여 그에게 알려졌을 때, 성도를 핍박하는 일에 바울이 극히 양심적이었다는 사실이 그를 무죄하게 해주지는 않았다. 그는 사도들에게 배우는 자가 되어야 하였다.

그는 자신의 눈이 어두워서 협잡꾼으로 생각했던 예수님이 아담의 때로부터 하나님의 택한 백성의 모든 신앙의 진정한 기초요 창시자이시며 믿음의 완성자시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며, 이제 그의 밝아진 통찰력은 그것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그는 진리의 옹호자로서, 그리고 모든 예언의 성취자로서의 예수님을 보게 되었다. 그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율법을 무효로 만드시는 분으로 간주해 왔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길이 그의 영적 통찰력에 접촉되자 그는 그리스도께서 유대인의 모든 희생 제도의 창시자이며 기초가 되셨다는 사실과,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모형과 원형이 만났다는 사실과,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아버지의 율법을 옹호하시기 위한 명백한 목적으로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을 제자들에게서 배웠다.

율법의 빛에 의하여, 바울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다. 그가 그렇게 열심히 지켜 온 것으로 생각한 바로 그 율법을 그가 범해 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는 회개하고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를 순종하고,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어 침례를 받고, 한때 그분을 정죄한 그 열성으로 예수님을 전파한다. 바울의 회심에는 우리가 항상 마음에 간직해야 할 중요한 원리가 주어져 있다. 세상의 구속주께서는 당신이 교회를 가지고 계신 곳에서 당신의 조직되고 인정된 교회를 떠나서, 신앙적인 문제에 있어서의 독자적인 경험과 행동을 허락하지 않으신다.

433 많은 사람들은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로 인정된 자들과는 독자적으로, 그들 홀로 그들의 빛과 경험에 대하여 그리스도께 책임을 지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그분께서 우리를 지시하기 위하여 베푸신 그분의 가르침과 모본과 사실들을 통하여 예수님께 정죄를 받는다. 그리스도께서 가장 중요한 사업에 사용하기 위하여 적합하게 하고자 한 사람, 그분의 선한 그릇이 될 사람, 바울은 여기에서 그리스도와 직접 대면하였다. 그러나 그분이 그에게 진리의 교훈들을 가르치지 않으셨다. 그분은 그의 길을 막으시고, 그에게 죄를 깨닫게 하셨다. 그리고 그가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라고 질문하자, 주님께서는 직접 그에게 말씀하지 않으시고 그를 당신의 교회와 연결시켜주셨다. 그대가 무엇을 할 것인지 그들이 그대에게 말해 줄 것이다. 예수님은 죄인의 친구이시다. 그분의 마음은 언제나 인간의 슬픔을 향하여 열려 있으며, 동정하신다. 그분은 하늘과 땅위의 모든 권세를 소유하고 계신다. 그러나 그분은 인간의 구원과 계몽을 위하여 당신께서 임명하신 방편을 존중하신다. 그분은 사울에게 교회를 가르쳐 주심으로, 세상에 빛을 전하는 통로로서 당신이 교회에 부여하신 그 권세를 인정하신다. 교회는 지상에 있는 그리스도의 조직된 몸이며, 당신의 명령에 대해 존중하도록 요구되고 있다. 사울의 경우, 아나니아는 그리스도를 대표하며, 또한 그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행동하도록 임명된 지상의 교역자들을 대표한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학식 있는 교사였다. 그러나 그가 맹목적인 오류와 편견의 영향력 아래 있는 동안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을 그에게 나타내시고 세상의 빛이 되는 그분의 교회와 교제할 수 있는 곳에 그를 놓으셨다. 그들은 이 학식과 명망 높은 웅변가를 그리스도의 종교로 교육하여야 했다. 그리스도 대신에 아나니아는 그의 눈을 만져 세력을 얻게 하였다. 그리스도 대신에 그는 그에게 안수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으며, 사울은 성령을 받았다.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이름과 권위로 이루어졌다. 그리스도는 근원이시다. 교회는 교통의 통로이다. 개인적인 독립에 대해 자랑하는 이들은 지상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와 연결됨으로 그리스도께 더욱 밀접하게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

434 A 형제여, 하나님께서는 그대를 사랑하시며, 그대를 구원하여 일하는 대열 속에 들어가게 하신다. 만일 그대가 겸손하여 가르침을 받아들이려고 한다면, 또한 그분의 성령에 의해 꼴 지워 지기를 원한다면 그분께서는 그대의 힘, 그대의 의, 비할 데 없이 큰 그대의 상급이 되실 것이다. 만일 그대가 하나님 안에 숨고, 그분의 성령께서 그대의 정신을 부드럽게 하실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그대는 그대의 형제들을 위해서 많은 것을 성취할 것이다. 그대에게는 대처하기 힘든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쓰디쓴 편견으로 가득 차 있지만, 사울만큼 그렇지는 못하다. 만일 그대가 그 길에 방해가 되고 스스로 그대의 길에 울타리를 치도록 허용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그대의 형제들을 위해 힘있게 역사하실 수 있다. 그대가 수고할 때에 그대의 마음 속에 따뜻하게 녹이는 사랑, 동정과 부드러움이 거하게 하라. 그대가 오로지 그리스도께 매어달리고, 또한 좀더 경험이 많은 그대의 형제들에게 충고를 받아들이려고 한다면, 그대는 편견의 철의 장막을 무너뜨릴 수 있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그대는 역경이나 맹렬한 반대에 의해 너무 쉽게 좌절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대의 이름으로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힘과 능력으로 전진하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선한 군사로서 고난을 견디라. 예수께서는 당신을 대항하는 죄인들의 반대를 견디셨다. 그리스도의 생애를 생각하고 용기를 내라. 그리고 믿음과 용기와 소망을 갖고 전진하라.

교회 안의 연합

지난 이상 중에 나는 태평양 연안에 진리가 들어가고, 하나님의 사업이 발전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캘리포니아에서 많은 사람을 위해서 선한 사업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으나,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이들 중에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열림으로 그들이 해야 할 일이 제시됨에도 불구하고 제때에 하나님의 사업에 착수하여 행동할 채비가 되지 않은 이들이 많음을 보았다. 만일 연합해서 활동한다면, 이 연안의 영혼들에게 진리의 지식을 전하는 일에 위대한 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영향력을 지닌 이들이 서로 협력해서 일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당신께서 아버지와 하나이신 것처럼 저들도 하나가 되게 해 달라는 그리스도의 기도를 응답하고자 애를 쓴다면, 현대 진리의 사업은 이 연안에 능력을 미치게 될 것이다. 435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잠자고 있으며, 이 시대를 위한 사업의 필요를 깨닫고 있지 않다. 그들은 집중적인 활동의 중요성에 대해서 느끼고 있지 않다. 사단은 하나님의 백성의 믿음과 마음을 분열시키기 위해서 계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는 연합은 저들의 힘이요, 분실은 저들의 연약함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이들이 사단의 계략을 이해하고 연합하여 전방에서 그의 공격에 대처하여 그를 분쇄하는 것은 중요하고 필요하다. 어떤 이들이 희생을 감수하는 일이 될지라도 지속적으로 함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여러 기질과 조직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교회는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마음 속에 받아들인 하나님의 진리는 생애를 고결하게 하고, 성화시키는 일을 할 것이며, 각자의 독특한 견해와 편견을 정복하는 일을 할 것이다. 가능한 한 각자는 서로 가까워지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은, 크고 횐 보좌 앞에서 전승과 승리의 기쁜 노래가 울려 퍼지도록 불신자들에 대해서 감화를 끼칠 것이며, 그리스도께로 영혼들을 인도할 것이다. 이기심은 정복될 것이며, 그리스도를 위하여 흘러 넘치는 사랑이 그분께서 위하여 죽으신 영혼들을 위해 구하고자 하는 부담을 느낌으로 표현될 것이다.

마치 예수께서 그 가정에 계시지 아니하는 것처럼 살고 있는 많은 가족을 나는 보았다. 그들이 신령한 생애에 전진하기 전에 가정에서 해야 할 사업이 있다. 나는 B 형제의 경우를 보았으며, 그가 처음으로 진리를 받아들였을 당시의 시간으로 돌아가 보았다. 당시에 진리는 그의 생애에 변화시키는 능력을 소유하였었다. 그가 진리에 대해 느꼈던 흥미 속에 자아는 어느 정도 잃어버린바 되었다. 그는 자신의 행위를 통해서 자기의 믿음을 보여 주고자 노력하였으며, 그의 개인적인 이익은 이차적인 것이었다. 그는 주님의 사업을 사랑하고, 그분의 사업이 발전되도록 기꺼이 노력하였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섬기려는 그의 노력을 가납하셨고 주님의 손이 그를 번영하게 하였다.

나는 B 형제가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며 큰 흑암을 자초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는 안식일을 올바로 지키는 법에 관하여 그의 형제들의 판단과 반대되는 자신의 판단을 고집하고 있었다. B 형제의 유익은 위기에 처했으며, 그는 고려 중인 문제가 제대로 증거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이해하기를 거절하였다. 436 만일 그가 빛 가운데 있었더라면, 동부에서 돌아왔을 때 취했던 것과 같은 노선을 결코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에 나는 그의 인생 여정 중 다른 지점을 보게 되었는데, 그는 여행중이었다. 불신자들 속에 처해 있을 때 그는 자기의 빛을 저들 앞에 비치게 함으로 저들이 그의 선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을 잊어버렸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의 구주를 제대로 대표해야 할 자신의 의무에 대해 잊어버렸다.

B 형제는 특별히 몇 가지 점에 있어서 연약하다. 그는 칭송과 아첨을 좋아한다. 그는 쾌락과 두드러지는 것을 좋아한다. 그는 자기를 높이고 말은 많이 하되 기도는 적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약점을 그대로 내버려두셨는데 이는 그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열매를 맺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여행 중에 그는 크게 선을 행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지만, 자기의 재능에 대해서 하나님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자기의 재능을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사용했는지, 혹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사용했는지의 여부에 대해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임을 묻게 될 것에 대해 깨닫지 않았다. 만일 B 형제가 그 마음 속에 그리스도의 사랑의 능력을 느꼈다면, 그가 접촉하는 이들의 구원에 대해 홍미를 느꼈을 것이며, 그들의 영원한 유익에 관해 저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할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에게는 진리의 씨앗을 뿌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해야 할만큼 그것을 활용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친척들 중에 있을 때 그의 신앙의 감화를 끼쳤어야 하였다. 그의 거룩한 공언과 하나님의 진리는 그의 모든 생각, 감정, 말과 행동 속에 서로 결합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이들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행하라고 명령하신다. 행한다는 것은 분투하며, 우리의 재능을 활용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위를 향해서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구주께서 우리를 부르신 선한 사업에 참여하지 않고, 이 사업에 있어서 개인적인 노력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는 병들고, 위축된 신앙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일 속에서 체험을 얻게 됨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승리를 얻는다. 우리는 빛 가운데서 행함으로 말미암아 활기와 힘을 얻고 하나님의 계명의 길 속에서 달려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우리는 하늘을 향해서 전진하는 모든 계단마다 점점 더 힘을 얻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다른 이들에게 축복을 끼치기 위해서 노력할 때에만 그들을 축복하실 것이다. 437 우리의 덕성은 활동을 통해서 성숙되고, 계발된다.

나는 B 형제가 배틀크릭에 있는 동안 도덕적 능력에 있어서 미약한 것을 보았다. 그는 하나님께 매어 달리지 않았으며, 영혼을 지켜 순결한 생각과 행동을 소유하지 않았고, 자기 맘대로 행하며, 그의 영적 유익에 해가 되는 인상들을 받아들였다. 그는 진리를 왜곡시키는 이들을 만났고, 그들에게 이끌려 비진리를 믿었다. 그가 원수에게 문을 열어 주어 그를 빛의 천사로 받아들였을 때, 그는 유혹에 쉽게 정복되었다.

하나님께서 그로 하여금 신뢰하도록 하신 바로 그러한 인물들에 대해서 그는 사악하게도 편견을 보였고, 의심을 품었다. 그는 왜곡된 빛 가운데서 사물들을 보았고, 그에게 큰 힘의 근원이 되었어야 할 집회들이 해가 되었다. 이것은 사단이 바라던 것으로서, B 형제는 이 사업을 이끌도록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이들에 대해 신뢰심을 잃어버렸다. 그는 그들과 이견을 가졌으며, 사업의 심장부와 갈라섰다. 그는 닻과 키도 없이 바다 가운데 떠 있는 한 척의 배와 같았다. 만일 그가 사업의 수뇌부에 있는 이들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그는 아무도 신뢰할 수 없을 것이다.

B 형제는 그 형제들에 대해 거의 존경심을 갖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판단과 자신의 지식과 자신의 재능이 그들의 것보다도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자신이 그들을 지도하고 가르칠 수 있지 않는 한, 그는 그들에게서 어떠한 것도 받아들이지 않으며, 그들의 판단을 신뢰하지 않으며, 그들에게 조언을 구하지 않는다. 그는 그 형제들의 감정과 슬픔과 간청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행동하게 될 것이다. 그가 사업의 심장부로부터 신뢰심을 거두어 버렸을 때, 사단은 그의 신뢰심이 회복되지 않는 한, 그에 대해서 자신을 가질 수 있음을 알았다. B 형제의 영원한 유익은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놓아 두기를 기뻐하신 도움과 행정을 그가 받아들이고, 존중하는가에 달려 있다. 만일 그가 스스로 선택한 길을 따른다면, 그는 결국 자신이 전적으로 그릇된 길 위에 서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스스로 미혹되어 자기 파열에 이르렀음을 알게 될 것이다. 맨 처음에는 조금, 그 다음에 조금 이렇게 돌아설 것이나, 결국 그는 하늘로 이끄는 참되고 유일한 길을 놓치게 될 것이다.

438 행복과 하늘로 이끄는 길 위에 있다고 자만하면서 사실은 사망으로 이끄는 흑암과 오류의 길, 넓은 길을 걷는 사람이 수없이 많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행복과 하늘 중, 그 어느 하나도 발견하지 못하고 거기에도 달하지 못할 것이다. B 형제에게는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놓아두신 도움을 필요로 하는데, 이는 그 홀로는 교회를 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의 길을 통해서 아무에게도 굴복하지 않는 하나의 완벽한 교회가 되는 일에 그 스스로 만족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B 형제는 오래 전에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상실하였다. 그는 사단의 제안에 대해서 그의 영혼의 통로를 지키지 않았다. 나는 하나님의 천사가 그의 말과 행위들을 기록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하늘의 빛으로부터 점점 더 멀리 떠나가고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가 특별히 그대를 지배하지 않을 때, B 형제여, 그대는 접촉하기 힘든 사람이다. 그대는 자신감이 매우 강하고, 요지부동인데, 이것을 그대의 가정과 교회에서 느낄 수 있다. 그대는 어느 누구도 존중하거나 존경할 줄을 거의 알지 못한다. 그대에게는 겸손의 미덕이 없다.

B 형제는 큰 흑암 중에 이 연안으로 돌아왔다. 그는 진리에 대해서, 또한 하나님께 대해서 사랑을 상실하였다. 본능적 감정이 그를 사로잡았으며, 그는 교만하였다. 그는 진리와 그의 구속주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더욱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였다. 나는 그가 연안으로 돌아온 후에 그가 걸은 길은 그리스도의 이름에 수치를 돌리는 것임을 보게 되었다. 나는 그가 쾌락을 사랑하는 방탕한 이들과 손을 잡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의 형제들을 슬프게 하였고, 그의 구주를 상하게 하였으며 불신자들 앞에서 그분께 공개적으로 수치를 돌렸다. 나는 이때로부터 그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나 진리를 발전시키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성경을 연구하고 다른 저자들에 대해 탐구하는 일에 열성을 가진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그분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을 통해서 그에게 제공된 현대 진리의 중요한 요점들에 관해 확고하게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에 확립되어 있는 진리를 반대하기 위하여 새로운 입장을 발견하고, 새로운 견해를 전진시키기 위해서였다. 그의 연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아를 높이기 위해 이루어졌다.

B 형제가 일단 잘못된 편으로 입장을 정하였을 때, 자기의 과오를 발견하고 자기의 잘못을 고백하는 일은 그의 본성에 맞지 않았으며,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끝까지 싸우게 되었다. 439 이 정신은 교회를 망치고, 그 가족을 망친다. 그는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부드러움과 겸손과 사랑이 들어오게 해야 한다. 그는 자선과 고상한 관대함을 필요로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에게는 철저한 회심이 필요하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면 교회 안에서 그는 전적으로 올바른 영향력을 끼칠 것이며, 그들이 필요로 하는 도움을 베풀게 될 것이다. 그는 그의 가족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을 것이며, 가족들에게 자기를 따르도록 명령하게 될 것이다. 의무와 사랑은 마치 쌍둥이 자매와 같아서 그의 자녀들을 다스리는 일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B 자매가 남편이 자기에게 취하는 행동에 대해서 매우 슬퍼하는 것을 보았다. 그가 아내를 기쁘게 해 줄 수 있었을 때에, 그녀의 생애는 매우 슬프게 되었다. 그녀는 낙담한 것처럼 보였으며, 남편이 자기를 등한히 하고 사랑하지 않는다고 예민하게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없는 동안에 그녀는 거의 미칠 지경이 되었으며, 남편에 대해 분을 내고 그를 믿지 못하게 되었다. 사단이 그의 성질에 함께 하였으며, 그녀는 어떤 것들을 과장해서 보았다. 만일 B 형제가 하나님께 계속적으로 헌신했다면, 이런 일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좀더 나아가서 그의 행실을 보게 되었는데, 그는 자기만이 참 빛을 소유하고 있다고 자만하면서 불신과 흑암 속을 걷고 있었다. 하나님께로부티 멀어질수록 그의 형제들과 진리에 대한 사랑은 더욱 더 사라졌다.

나는 B 형제가 우리들을 세상으로부터 이끌어내어 분리되고 독특한 백성, 복된 소망과 우리 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강림을 바라보도록 한 우리 신앙의 요점들에 대해서 차례대로 의문을 품는 것을 보았다. 그의 불신과 흑암은 우리 신앙의 주요 기둥들을 움직이지 못하였다. 그에 의하여 하나님의 진리가 능력을 상실하게 되지는 않았다. 진리는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그 형제들의 마음 가운데 몇가지 영향을 끼쳤다. 거짓말쟁이들이 내 남편과 나에 대해 말하는 것을 그는 동부로부터 가져왔는데,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의심과 의문을 야기시키는 영향력을 가졌다. 우리를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은 우리를 옹호하는 입장에 설 수 없었다. 만일 B 형제가 원수의 손아귀에서 놀아나지 않았다면, _______에 있는 교회는 현재보다 세 배나 많은 교인에, 열 배나 더 큰 세력을 가질 수 있었을 것임을 나는 보았다. 440 맹목적인 불신 때문에 그는 진리를 믿는 신자들을 절망시키고, 흩어 버리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해 왔다. 영적으로 눈먼 상태에서 그는 그의 길이 하나님 보시기에 불쾌한 것임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가 초래한 절망과 흑암 때문에 C 형제의 노고는 두 배나 힘들어졌는데 이는 그의 영향력이 _______교회뿐 아니라 다른 교회들에서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B 형제는 C 형제가 부딪칠 수밖에 없었던 불신과 또한 대적하는 영향력을 강화시켜 왔다. 나는 우리도 동일한 것에 부딪치게 될 것이며, 많은 사람들을 더럽힌 오래된 쓴 뿌리를 제거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을 보았다. 내가 본 바로는 말해야 할 때와 침묵을 지켜야 할 때가 있고, 하나님께서 말하도록 우리에게 짐을 지워 주실 때 사람들이 듣든지 말든지, 혹은 그들이 감당하든지 말든지, 우리는 지체하지 말아야 하며, 만일 그것이 어떤 이들을 교회 밖으로, 또한 진리 밖으로 나가게 한다면 우리는 일을 철저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_______에 있는 어떤 형제들을 위해서 행하실 위대하고 중요한 일을 갖고 계시는데, 그것은 제때에 이루어 질 것이며, 진리는 승리할 것이다.

현대 진리에 관해 스스로 체험을 얻지 못한 그러한 우리 형제들은 B 형제의 논증에 대해 대답을 할 수 없었으며, 비록 그가 주장하는 견해를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그들은 다소간 그의 말과 추론에 영향을 받았다. 어떤 이들은 예배드리기 위해 모였을 때 결코 자유스러운 정신을 느끼지 못하였다. 그들은 자기가 말하는 것에 관해 그가 비평할까 봐 두려워서 감히 안식일에 관한 자기의 느낌과 신앙을 말하지 못하였다. 집회는 죽어 있었고, 거의 자유가 없었다.

B 형제는 다른 이들이 자기를 성경을 설명할 수 있는 인물로 여겨 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가 미혹을 당했으며, 성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았다. 그는 새로운 신앙, 신앙의 독창적인 이론을 추구하는 그릇된 길 위에서 출발하였다. 그는 우리의 올바른 입장, 곧 우리가 이 지구 역사의 종말에 가까이 와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이정표들을 뽑아 버리고, 그릇된 곳에 놓고자 하였다. 그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다고 자만할지 모르나, 그것은 분명히 다른 영이다. 441 그가 자신의 노선을 전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또한 인도함을 받고, 배우려고 하지 않는 한, 그는 스스로의 길을 따르도록 내버려진바 되어 믿음에 완전히 파산을 당하게 될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들 스스로의 불신에 너무 눈이 멀어서 B 형제의 정신을 분별할 수 없었다. 만일 그가 하나님의 권면 속에 서 있었더라면, 그들은 그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그들의 믿음에 혼란을 초래하고, 어려움을 증가시켜 주는 대신에 그들을 빛 가운데로 인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거친 돌이었으며, 눈먼 사람을 위한 눈먼 지도자였다. 만일 그가 곧은 길로 걸어갔더라면, 저는 자가 길 밖으로 떨어지지 않고, 고침을 받았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주신 진리의 빛 속에서 걷기를 거절하고, 빛 가운데서 걷고자 하는 이들을 방해하였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백성에게 확립되어 있는 신앙에 관해 의심과 불신을 제시하는 것이 영광스러운 일인 것처럼 그는 느꼈다. 한때 그가 기뻐하였던 진리는 이제 그에게 흑암이 되었으며, 그의 길을 변경시키지 않는 한, 그는 다른 교단의 견해들을 혼합해 놓는 일속에 떨어질 것이며, 전체적으로 서로간에 일치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는 혼자서 독특한 교회가 될 것이나, 교회의 위대하신 머리의 지배 아래 있지 않게 될 것이다. 몸된 교회의 신앙을 반대하기 위해 자신의 견해를 제시함으로 그는 교회를 낙망과 실망 가운데 빠뜨리고 있다. 그는 만일 안식일 준수자들의 집단이 진리를 갖고 있다면 자기가 흑암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이것을 그는 용납할 수 없다. 진리는 그를 정죄하고 있다. 그 진리에 자기 영혼을 조화시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그 요구에 굴복하며, 자아에 대해서 죽는 대신에, 그는 정죄 받지 않을 수 있는 위치를 찾고 있다.

그가 현재의 노선을 계속적으로 고집하고, 자기의 진정한 상태에 대해서 눈이 먼 상태에 있다면, 안식일을 포기할 수 있는 몇 가지 구실을 발견하고 한동안 기쁘게 지낼 것이다. 그가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 했던 것처럼, 사단은 기만과 오류의 길을 통해서 집단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도록 그를 분명히 인도하고 있다. 자기의 생각과 행동에 조화시키기 위해서 성경을 그릇되게 해석하는 것보다도 진리에 그 영혼을 조화시키는 것이 얼마나 더 B 형제에게 안전하겠는가. 만일 그가 자기의 행동을 하나님의 율법의 원칙들과 조화되게 하고자 한다면, 그는 거의 꿈도 꾸어보지 않은 책임을 지니게 되었을 것이다. 442 육욕적인 마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율법에 복종하지 않으며, 그렇게 할 수도 없다.

B 형제는 동부를 여행하는 중에 배틀크릭에 있는 우리의 원수 된 자들이 제시하는 미묘한 암시와 공개적인 말을 받아들이고, 사업의 심장부에서 일하는 이들 특히 나와 나의 사업에 대해서 비통하고 사악한 감정을 마음에 품은 채로 돌아왔다. 그가 간직하고 있는 감정과 나의 수고와 증언들에 관해서 그가 표현한 견해들은 그에게 전혀 합당한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그의 영혼을 부패케 한 불신과 편견을 그는 다른 이들의 마음 가운데 주입시키고자 하였다. 그는 이 일에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다. 처음에, 많은 사람들은 그의 궤변과 흑암에 영향을 받았는데, 이는 그가 마치 적극적인 사실을 다루기라도 하는 것처럼 주장하고 추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일을 제시하는 법에 관해서 알고 있으며, 말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의 말은 비헌신적인 사람들, 우리의 사업과 우리의 부르심에 관해서 그가 말한 그대로이기를 바라는 어떤 이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가 우리의 길을 막아 그들에게 접근할 수 없도록 하지만 않았더라면 우리가 도와줄 수 있었던 어떤 이들의 마음 가운데 그는 영향을 끼치고, 편견을 자극하였다. 이러한 부류에 D 부부가 속한다.

이 점에 있어서 B 형제는 자기의 노선의 열매들을 볼 수 있을 것인데, 진리에 관한 저들의 신앙과 확신에 관한 한 동일한 면으로, 동일한 결과를 거둔 다른 이들이 있다. 현대 진리 사업을 현상태에 이르도록 최선을 다한 이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계략을 꾸미는 계획적인 인물들로서 백성을 미혹하고 있다고 B 형제와 다른 이들이 결정하자마자, 일관성 있게 그들이 취할 수 있는 길은 전체 사업은 기만이요, 사기라고 정죄하는 것이었다. 이 B 형제는 거의 눈에 띄지 않게 행동해 왔으며, 또한 다른 이들도 그러하였다. 그는 현재는 그렇지 않을지라도, 미래에 언젠가 자기의 사업을 현재 그가 갖고 있는 것과 다른 감정으로 뒤돌아보게 될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처럼 지난 몇 년간 스스로 한 일을 보게 될 것이며, 현재 느끼고 있는 것처럼 만족스럽게 그것을 바라보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443 지난 수년간 그가 애써 온 비참한 행위들을 바라보게 될 때, 자기의 지혜와 우월한 지식에 대한 교만한 자랑은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며, 그는 자기 옷에 묻은 영혼들의 피 때문에 비통한 정신으로 회개하게 될 것이다.

만일 B 형제가 사물을 제대로 보기를 원하고, 미혹당할 수 있는 가능성을 느꼈다면, 그는 화잇 부부에게 그들의 명망에 해로운 소식을 가져와서 그들로 하여금 자신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을 것이다. 그가 대륙을 횡단하여 태평양 연안으로 가져온 소식들은 거짓 증거였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것이다. 어느 날 그는 사단에 의해 고무된 기만적인 궤변뿐 아니라 거친 말을 대면하게 될 것인데, 이것을 그는 내 남편과 나의 영향력을 훼손시키기 위하여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불어넣어 주었다. 이 일은 B 형제와 나 사이의 일이 아니라, 그와 하나님 사이의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의 사업을 주셨으며,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전할 기별을 우리에게 주셨다면, 우리의 일하는 것을 가로막고 그것의 진실성과 확실성에 대한 백성들의 믿음을 약화시키는 이들은, 도구를 대항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항해서 싸우는 것이요, 그들의 말과 행실의 결과에 대해 그분께 책임을 져야만 한다. 영적 식별력을 지닌 모든 사람은 그 열매로 나무를 판단할 것이다. B 형제는 우리의 사업과 사명에 관하여 백성들을 속이기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계몽된 인물인 양 처신한다. 만일 원한다면 모든 사람은 이 나무에 자라고 있는 열매를 볼 수 있다. B 형제여, 그것은 영생의 열매인가, 사망의 열매인가?

B 형제가 이 특별한 지식을 배틀크릭으로부터 받아서 우리의 사업과 사명을 평가절하 하는 길을 취하게 되었는데, 그 후에 그는 쾌락에 방탕하고 있는 불신자들과 마음대로 연합할 수 있다고 느꼈으며 그의 경솔한 행동을 통해서 그는 그리스도의 사업에 수치를 가져오고, 그의 아내에게 큰 고통을 안겨 주었다. 하나님께서 세우고 계시는 것을 무너뜨리려고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할 만큼 그는 그렇게 눈이 멀었는가? 하나님과 거스려 싸운다는 생각을 그는 전혀 하지 못하였는가? 그가 하고 있는 일들을 천사들은 하늘에 기록하였으며, 모든 일이 절대자 하나님의 조사를 받게 되는 심판의 때에 그에 대해 대답을 해야 할 것이다. 444 B 형제는 눈이 먼 가운데 자기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고 있다고 미혹당한 자기 영혼에게 아첨하면서 그 보잘것없는 팔을 들어 하나님과 싸우고 있다. 최후의 날의 불로 모든 사람의 수고는 단련을 받게 될 것이며, 금과 은과 보석이 그 시험을 견디어 내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경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사람들에 대해서 오래 참으실는지 모르나, 결단코 저들의 악을 갚으시되 각자의 행동에 따라 각자에게 갚으실 것이다. 비록 인간이 자만스럽게 말하고 스스로의 지혜에 대해서 교만을 부릴지 모르나, 하나님의 입술은 단숨에 그들의 명예와 자랑을 진토 가운데 내던질 수 있다. 나는 B 형제가 하나님의 날, 곧 모든 것이 성소의 저울에 무게가 달리는 날, 용서받지 못하게 될 것임을 보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임하신 사업의 성격을 판단할 만한 충분한 증거를 가졌다. 이 사업의 열매가 그의 앞에 있으며, 만일 그가 원한다면 그는 그것을 보고 이해할 수 있다.

B 형제의 자만심은 심히 놀라운 것이며, 그에게 무서운 한 덫이다. 만일 그가 품성 속의 위험한 특질을 정복하지 않으면, 그것 때문에 그는 멸망을 받게 될 것이다. 그는 본성상의 경향을 따라서 교리의 요점들과 더불어 싸우고 있다. 사단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자기에게 진리가 있고 그의 형제들은 오류 속에 빠졌다는 생각을 실제로 갖게 될 때까지, 그는 질문하고, 얼버무리고, 그 형제들과 이견을 빚을 것이다. 그는 빛 가운데 서지 않으며, 하나님의 축복을 소유하고 있지 않는데, 이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백성들에게 확정되어 있는 요점들을 반대하는 것이 그의 신앙의 일부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사람이 미혹을 당하고 있는가? 또한 B 형제 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올바른 진리를 주셨는가? B 형제에게 그렇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헌신적이고 자아 희생적인 종들에게 그들을 위해서 성경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주시고자 원하시지 않겠는가?

B 형제는 다음과 같은 간단한 시험을 통해 자기의 길을 점검하는가? “내가 발견한 이 빛과 지식이, 나의 형제들과 이견을 내게 하는 이 빛과 지식이, 나를 그리스도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게 하는가?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내게 더욱 소중한 분이 되게 하며, 나의 품성이 그분의 품성을 더욱 밀접하게 닮도록 하는가?” 우리의 성품 속에 있는 자연스럽되 기쁜 것이 되지 못하는 특질 중 하나는 타인의 실수와 실패에 대해 예민하게 깨닫고 끈질기게 기억하는 것이다.

445 B 형제는 그의 형제들과 연합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는 자만심 때문에 연합해야 할 특별한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는 저들의 마음이 자기의 마음보다도 열등한 틀에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하며, 그들의 의견과 조언을 주목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일에 대해서 커다란 수치로 여긴다. 이러한 자만심 때문에 그는 형제들의 사랑과 동정으로부터 떨어져 나가 스스로를 닫아 버렸으며, 그들과 연합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가 지극히 현명하고 경험이 많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꼭 필수 불가결한 경고가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 높은 견해를 갖고 있으며, 이런 자신의 재간에 대한 신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어떤 위급함에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하늘 천사는 B 형제를 지목하여 이렇게 말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자아 신뢰는 경성함과, 겸손히 기도하는 것을 소홀히 하도록 이끈다. 물리쳐야 할 외적인 시험과, 극복해야 할 내적인 적과 난처한 일이 있는데, 왜냐하면 사단이 그의 시험들을 각기 다른 개인들의 기질과 성격에 적용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끊임없는 위험 가운데 있다. 사단은 하나님의 백성을 파괴하기 위하여 찾고 있으며, 사람들의 정신과 판단은 신뢰하기에 충분치 않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제자들을 교회에 하나로 이끄셔서 질서를 준수하고, 규칙과 훈련을 받게 하시며, 자신들보다 남들을 낫게 여기고 서로간에 복종하게 하신다. 연합과 신뢰는 교회의 번영에 있어 필수적인 것이다. 각 교인들이 자기의 독특한 길을 추구하면서, 독자적으로 자유롭게 다른 이들을 자극한다면 어떻게 교회가 위험과 위기의 때에 안전할 수 있겠는가? 교회의 번영과 존립 자체도 그 교인들의 고무적이고 연합된 행동과 변함없는 신뢰에 기초한다. 위기의 때, 한 사람이 위험의 경고를 발하면, 의심 때문에 지체하거나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살필 것이 아니라 서로 격려하고 동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이것은 연합된 행동이 많은 영혼들을 멸망에서 구원할 수 있었던 순간에 지체함으로 원수가 많은 이익을 얻게 했다.

446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이 절친한 그리스도인 유대 가운데 연합되기를 원하시며 우리 형제들 사이의 신뢰는 교회의 번영에 필수적이고 행동의 일치는 신앙의 위기에서 중요하다. 경솔한 발걸음 하나, 부주의한 한 가지 행동이 교회를 수년간 회복시킬 수 없는 어려움과 시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 불신에 가득 찬 한 교인이 교회 전체의 번영에 영향을 끼칠 대적에 유익을 줄 수도 있으며, 그 결과 많은 영혼을 잃을 수도 있다. 예수께서 그분의 제자들을 서로 복종하게 하신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서로를 구원하는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다른 이들의 눈으로는 빨리 알 수 있는 위험을 식별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식별하지 못하는 마음을 신뢰 가운데 경고하는 것에 순종한다면 그들은 큰 난관과 시험에서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그분의 제자들을 떠나려 하실 때, 그분께서는 그들이 하나가 되도록 감동적이고 거룩한 자세로 기도하셨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에게 보내는 첫 서신에서 그들이 하나가 될 것을 호소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으로부터 한 백성을 인도하셔서 영원한 진리의 토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에 세우신다. 그분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을 훈련시키고 준비시키신다. 그들은 차이가 없으며, 그 몸에 독자적으로 자극을 주면서 한 사람은 이것을 믿고 다른 사람은 이것과 전혀 반대되는 믿음과 견해를 갖지 않을 것이다. 그분께서 교회에 부여하신 통치권과 은사의 다양성을 통해 그들은 믿음의 일치에 이르게 될 것이다. 447 만일 한 사람이 그 형제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성경 진리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취하여 자기의 입장을 정당화하며, 자신의 독특한 견해에 대해 권리가 있다고 단언하고, 그것들을 다른 이들에게 강요한다면 어떻게 그가 그리스도의 기도를 성취시킬 수 있겠는가? 그리고 다른 사람들, 또 다른 사람들이 일어나서 각자 그가 믿는 권리를 단언하고 그 전체의 믿음에 비추어 보지 않고 그가 좋아하는 것을 말한다면 그리스도와 그분의 아버지 사이에 있었던 조화가 어디에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형제들 사이에 있으리라고 기도한 그 조화는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한 백성을 인도하셔서 그들을 한 위대한 믿음의 토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 위에 세우신다. 그분께서는 선명하게 연결된 성경 진리의 곧은 사슬을 그분의 백성에게 주셨다. 이 진리는 하늘에서 시작된 것이며, 숨겨진 보화처럼 찾아내려 왔다. 이것은 주의 깊은 성경 연구와 많은 기도를 통하여 발굴되어 왔다.

B 형제는 우리의 진리를 모든 점에서 의심하고 있다. 만일 그가 그의 새로운 이론에서 옳다면 안식일 준수자들의 집단은 잘못이다. 우리를 세상에서 이끌어내어, 구실되고 독특한 백성으로 연합하게 한, 우리 입장의 강력한 면에서 성립된 믿음이 오류로서 버려져야 할 것인가? 아니면 B 형제가 자신의 판단과 견해를 포기하고 이 조직 안에 들어와야 할 것인가? 만약 그가 편견을 받아들여 자기 영혼이 눈멀지 않고, 하나님의 사업에 대한 사악한 반대를 품지 않고 있다면, 그는 그러한 어두움과 기만에 처해 있지 않을 것이다.

그는 교묘하게 말하는 사람이며, 자신의 견해를 끈질기게 주장할 것이고, 자기를 반대하는 증거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행해온 것처럼 그가 교회의 번영에 방해가 되는 것은 그에게 비참한 일이다. 세상은 넓다 그는 불신자들 가운데서 나오라고 요청하여 그들을 자신의 이론으로 돌이키게 할 모든 특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죄로부터 의로 회심시키는 도구가 되어 왔던 잘 구성된 조직체를 제시할 수 있을 때, 그 이전이 아닌 바로 그 때, 그는 하나님의 교회에 자신의 독특한 견해를 주장함으로 교회는 그의 흑암과 오류로 상처입고 낙심하게 된다. 448 그는 다른 사람의 토대 위에 마지막 날의 불에 살라질 자신의 나무와 건초와 그루터기를 세울 권리가 없다.

나는 B 형제에게 유일의 안전한 자리는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 생명의 길을 보다 더 완전하게 배우는 것임을 보았다. 겸손하고 온순한 심령에 그분의 가르침은 빗물처럼 떨어질 것이며, 그분의 말씀은 이슬처럼 정화시킬 것이다. B 형제는 온순한 성격을 가져야 한다. 그는 판단자가 아니라 배우는 자로서, 트집을 잡는 자가 아닌 믿는 자로서, 의심을 품고 흠을 찾아 대적하는 자가 아닌 듣는 자로서 있어야 한다. 자존심은 겸손에게 양보해야 하고, 편견은 공정함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은혜스러운 말씀은 그에게 공허한 것이 될 것이다. 형제여, 그대는 하나님의 날까지 성화되지 않은 마음과 눈먼 판단으로 변론할지 모르며, 하늘로 향하여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할 것이다. 그대는 학자들의 저작물들, 심지어는 성경까지도 조사하고 탐구하고 논쟁할 것이며, 유대인들이 그리스도께 그랬던 것처럼 자기 기만에 빠져서 어두워지고 더 어두워질 것이다. 그들의 잘못은 무엇이었는가?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미 주셨던 빛을 거절하였고, 자신들의 행위를 지지하기 위하여 성경을 연구하려고 새 빛을 찾았다.

그대도 동일하게 행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현대 진리의 공표와 그분의 말씀에 있어서, 그대에게 적절하다고 보셔서 주신 빛을 그대는 무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지받지 못하는 그대 자신의 이론과 교리를 추구하고 있다. 그대가 기꺼이 인도함을 받는 어린아이와 같이되고, 그대의 이해력이 성화되며, 그대의 의지와 선입견이 굴복될 때, 그러한 빛은 그대의 마음에 넓게 비추어져서 성경을 조명해 주고, 그 아름다운 조화 가운데 현대 진리를 그대에게 보여줄 것이다. 그것은 완전한 총체로 연결되어 황금 고리로서 나타날 것이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고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다.

만일 그대가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학교에 들어갔다면, 그분께서는 그대가 그분의 품성에 그처럼 아름답게 예시된 겸손함을 그대의 품성과 행위 가운데 나타내기를 기대하신다. 449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의와, 자만과 자기 의지를 가르치지 않으신다. 만일 그런 사람들이 진리가 무엇이냐 하고 물으며 그분께 온다면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아무런 대답도 주시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온유한 자 만을 공정함 중에 인도하실 것이며 겸손한 자 만을 그분의 길로 가르치실 것이다. 솔로몬은 천성적으로 좋은 판단력과 넓은 분별력을 부여받았지만,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어린아이와 같음을 깨달았다. 그는 겸손하게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구했으며, 헛되이 구하지 않았다. 만일 그대가 올바른 동기에서 진정으로 진리를 추구한다면, 그대는 그 몸에 속하게 될 것인데, 왜냐하면 그들은 진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대가 성경을 연구하면서, 그대의 선입관과 일치하는 교리를 알게 하는 다른 저자들을 찾으며, 그대의 믿음을 이미 형성했다면, 그대는 대담해지고, 자신을 신뢰하고, 불순종하게 될 것이다.

자기 신뢰의 덫

B 형제여, 그대는 지금의 억지와, 완고한 정신으로 인해 진리로부터 점점 멀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대가 회심하지 않는 한, 그대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어떤 곳에서도 하나님의 사업에 큰 장애가 될 것이다. 그대는 그대의 주장을 수행하는 데 끈질기다. 그대가 모든 것을 분명하게 보기 전에 그대의 자만하는 정신은 굴복되어야 한다. 그대는 아내에게, 그대가 우리의 모든 목회자보다 진리를 더 잘 아는 것처럼 생각하도록 이끌었다. 그리고 그대는 수중에 진리의 열쇠를 취하여, 그녀가 아는 한 그녀를 흑암에 가두어 버렸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교회에 경험과, 믿음과, 분별력이 있는 사람들을 주셨다. 그들은 진리와 구원의 길을 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것들을 고민하는 심령으로 탐구하였으며,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꾼 사람들로부터 반대를 당해야 했고, 이러한 충실한 하나님의 종들의 수고의 공로가 세상에 주어졌기 때문이었다.

일시적인 생애의 일에 관한 심려에 비하여 하나님의 사업의 고상한 속성을 이해하는 사람은 매우 적다. 하늘의 교사이신 예수께서는 그분의 제자들을 통하여 가르침의 교훈을 우리에게 주셨다. 450 그분께서는 12제자를 보내실 때, 그들이 어떤 도시나 촌락에 들어가든지, 누가 그들의 주의를 끌 만하며 방문할 가치가 있는 자가 있는지 물으라고 지시하셨으며, 그들을 파송한 축복-그리스도의 사자들을 영접하는 특권을 평가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 발견되면, 그 도시를 떠날 때까지 그곳에서 머무르며 평안히 쉬도록 하셨다. 그들은 환영을 받든지 받지 못하든지, 사람들에게 있기를 간청하며 아무 곳이나 또는 모든 가정을 찾아가도록 가르침 받지 않았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환영받지 못하고, 또한 그 가정에 그들의 평안이 깃들 수 없다면, 그들은 그 곳을 떠나 가족들이 가치가 있고, 그들의 영혼이 쉼을 얻을 수 있는 집을 찾아야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나아가는 그리스도의 사신들이 거절당하고 그들의 말이 심령에 거할 곳이 없을 때, 그리스도께서 거절당하시고, 그분께서 택하시고 보내신 진리의 사신들에게 있는 그분의 말씀이 무시당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택하신 사자들에게 교훈을 주셨던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 이 시대에 완전히 적용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실 때 하나님의 사자들에게 존경심이나 경외심을 갖지 않았으며, 자신들 스스로의 판단보다 그들의 경고에 더 주의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하나님의 택하신 종들의 증언을 자신들의 견해보다 높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종들의 수고로 인해 유익을 얻을 수 없으며, 그러한 마음들을 충족시키키기 위해 하나님의 사업을 저하시키는 가운데 시간은 낭비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께서 보내시는 종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소리에 권세를 주셨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교회의 판단을 무시한 채 한 사람이 자신의 개인적인 책임감에 기초하여 행동하거나 자신이 택한 견해들을 옹호하는 것은 용인되지 않는다. 451 하나님께서는 하늘 아래 가장 높은 권세를 그분의 교회에게 주셨다. 존중되어야 할 것은 교회 안에 그분의 연합된 백성들 사이에 있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하나님께서는 경험이 있고, 여호와께서 성경을 그들의 마음에 펼쳐달라고 심지어는 밤새워 울며 기도하고, 금식하는 사람들을 그분의 교회에 주셨다. 이러한 사람들은 겸손함으로 그들의 성숙한 경험의 유익함을 세상에 주었다. 이 빛은 하늘의 것인가, 아니면 사람의 것인가? 이것은 가치 있는 것인가, 쓸모 없는 것인가? B 형제는 언젠가는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을, 성경 진리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파급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허사가 될 것이다. 그는 회개할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불 속에서 구원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귀한 시간이 얼마나 많이 허비되겠는가! 겨우 찔레와 가시만을 거둘 씨앗을 그는 얼마나 많이 뿌렸는가! 자신의 흑암을 퍼뜨린 것처럼 진지하게 참된 빛을 그가 전파되게 했더라면, 멸망 받은 영혼이 얼마나 많이 구원받았겠는가! 마땅히 진리를 통하여 성화되고, 희생했어야 할 것을 그는 얼마나 하지 않았는가! B 형제는 너무 자만하고, 너무 부유하고, 재물이 증가함으로, 어떤 필요성을 알지 못한다. 참된 증인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하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책과 소책자에 매우 신중하게 실린 진리의 빛을 그는 존중하지 않고, 그는 이 가장 귀한 빛 위에 자신의 판단을 높인다. 그리고 이 빛은 그를 정죄하기 위한 심판 가운데 일어날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업의 책임을 맡기기에 적합하다고 여기신 사람을 그가 의심할 것을 보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하여 주신 빛 위에 자신의 의견과 견해를 높이고 자신의 지식을 뽐내며 자기 형제들-그리스도의 대사들도 빠뜨리지 않고-의 참소자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종들의 판단을 약화시키고 연약함과 실수들에 대해 그들을 비난하는 이 모든 압도적인 영향과, 그들의 생각 위에 자신의 견해를 높이는 것들을 돌이키지 않으면, 그는 하나님의 날에 책에서 자신에 대해 불리하게 기록된 것을 수치스럽게 보게 될 것이다.

452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종들을 높이실 것이며, 사랑하는 자들을 보존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대사들의 말씀을 무효로 만드는 자들에게는 두려움이 있을 것이다. 이 대사들은 하나님의 입에서 말씀을 받아 백성들에게 말하며, 검이 다가오고 있음을 사람들에게 말하고 하나님의 큰 날을 위하여 준비하도록 경고한다. B 형제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빛이 아니며, 하찮은 일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일은 그의 영혼에게 파멸시키는 힘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는 자신의 정신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데 두었다. 그의 앞에는 어려운 일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B 형제여, 그대가 하고 있는 일이 3년 전 나에게 보여졌다. 나는 그대가 거의 모든 행위에서 잘못하고 있음을 보았다. 그럼에도 그대는 그대의 행위를 진리에 달아보는 대신, 진리를 그대의 행위에 달아보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빛이 아니며, 무서운 부담거리다. 그대는 높여야 할 때 높이지 않을 것이며, 행동이 일치해야 할 때 다른 사람들을 좌절시킬 것이다. 그대는 언제나 그대 형제들의 결점을 찾아 말한다. 그리고 그대가 다른 사람들의 행위를 의심하는 동안 일단의 독있는 가시들이 자라나 무성해지고 그대의 심령에 깊이 뿌리내리게 되었다. 그대가 이것을 알고 근절하지 않는 한, 이 쓴 뿌리는 자라나서 많은 사람들을 더럽히고 더 많이 더럽힐 것이다.

B 형제가 자신의 품성의 처참한 결함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께로부터 그 악을 고칠 수 있는 은혜를 얻지 못한다면, 그에게 거친 바리새인 같은 정신이 자라날 것을 나는 보았다. 그가 진리를 포용하기 전, 그의 손은 모든 사람들에게 대적하는 듯했으며, 그의 투쟁하는 정신은 어떤 도전에도 강하게 되었고 그의 자존심은 상처를 입었다. 그는 강퍅한 사람이었으며 문제를 일으키고 어려움에 빠졌다. 하나님의 진리는 그의 안에 개혁을 이루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받아들이셨으며, 그분의 손은 그를 세워 주셨다. 그러나 B 형제는 희생의 정신을 잃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불화하는, 그의 오래된 불온한 정신이 강화되고 주도권을 잡고자 했다. 그가 자신에 대해 죽고 하나님 앞에 그의 자고한 심령을 겸손히 한다면, 그는 자신의 힘이 얼마나 약한가를 알게 될 것이며, 하늘의 구원자의 필요성을 느끼고 외칠 것이다. 453 “오, 하나님, 당신 앞에 저는 부정하고 부정합니다!” 그의 안에 있는 모든 자고한 오만함은 없어질 것이다.

도덕적 흑암이 진리와 덕을 압도하는 이 험악한 세상에서의 삶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끊임없는 갈등이 된다. 그는 갑주를 반드시 입어야 함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결코 피곤해 하지 않을 세력과, 결단코 잠들지 않는 대적과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많은 시험에 둘러싸여 있으며, 그들을 극복하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힘을 얻든지, 그렇지 않으면 그것들에게 정복당하여 우리의 영혼을 잃든지 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해야 할 위대하고도 신성한 일이 있으며, 만일 우리가 실패한다면 그 손실은 대단히 비참한 것이 될 것이다. 만일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남겨 주신 일이 행해지지 않은 채 발견된다면, 우리에게 제 2의 은혜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영원히 행해지지 않은 채 남아 있을 것이다.

나는 B 형제의 가정에서의 생활을 보게 되었다. 천사들은 가정에서의 그의 행동을 볼 때, 그리고 그의 사랑받지 못하는 아내를 볼 때 울었다. 그의 아내는 그로부터 존중을 받지 못한다. 그의 의무는 마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아끼시던 것같이, 그의 아내를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다. 그는 그녀의 결점을 명백히 하기 위해 애쓰며, 자신의 지혜와 판단을 높여 그녀로 하여금 그녀 자신의 부족함을 공사간에 느끼도록 힘쓴다. 학문이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영혼은 그녀의 남편보다 훨씬 하나님께 가납될 만하다. 하나님께서는 B 자매를 깊은 동정심으로 바라보신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빛만큼, 그녀의 남편보다 훨씬 더 잘 진리의 원칙대로 살아간다. 그녀는 그녀의 남편만 가지고 있고, 자신이 가지지 않은 빛과 지식에 대해 대답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는 그녀에게 빛과 위안과 축복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영향은 잘못된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그는 자신의 견해와 생각을 강화시켜 주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그녀에게 읽어 주는 한편 자신이 그녀에게 들려주기를 원하지 않는 필수적인 빛은 감춰 둔다.

그는 자신의 아내를 존중하지 않으며, 그의 자녀들이 그녀에게 불순함을 나타내는 것을 허용한다. 엘리의 아들들처럼, 이 아이들은 스스로 성장하도록 버려졌다. 그들은 제약을 받지 않았으며, 이런 소홀함은 그 자신에게 되돌아 올 것이다. B 형제가 지금 뿌리고 있는 것을 그는 분명히 거두게 될 것이다. 454 B 자매가 여러 면에서 그녀의 남편보다 하늘 왕국에 가깝다. 자제함을 배우지 못한, 제멋대로 불순종하는 이 아이들은 그들 부모들의 심령에 그들이 막을 수 없는 가시를 심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심판에 그들 부모들에게, 자녀들을 세상에 내보내서 사랑받지 못하고, 남들도 사랑하지 않으며, 무절제하게 성장하도록 내버려둔 것에 대해 책임을 물으신다. 이 아이들은 그들의 품성에 큰 변화가 없는 한, 하늘 왕국에 구원받을 수 없다.

B 형제는 그가 믿는 대로 그의 아내가 믿도록 애쓰고 있으며, 그가 행하는 모든 것이 옳고, 다른 모든 목회자보다 자신이 많이 알고 모든 남자들보다 현명하다고 그녀가 생각하도록 힘쓴다. 그가 자신의 오만한 지혜 가운데 자기 아내의 영혼을 대하는 것처럼 그가 그의 자녀들의 몸을 대하는 것이 나에게 보여졌다. 그는 자신의 지혜에 따라 한 길을 추구해 왔는데, 이것은 그의 자녀들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 그는 자신이 그녀의 신체에 주입한 독이 그녀를 살게 한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이 얼마나 큰 실수인가! 그가 그녀를 홀로 놔두고 그녀의 천성을 혹사하지 않았다면 그녀가 얼마나 더 좋아졌을 것인지를 그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녀의 뼈와 정맥에 있는 피의 흐름이 망가졌기 때문에 이 아이는 결코 건전한 신체 조직을 가질 수 없다. 그의 자녀들의 엉망이 된 신체조직과, 아픔, 비참한 고통은 어리석은 그의 오만한 지혜에 대항하여 울부짖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 통탄스러운 것은, 말하자면 그는 멸망으로 가는 문을 넓게 열린 채 두어 그의 자녀들이 들어가게 했고, 잃어버리게 한 것이다. 그의 자녀들의 천성은 반드시 변화되어야 할 것이고, 그들의 성격은 변모되고 새로워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에게는 희망이 있을 수 없다. B 형제여, 천사들이 그대의 가족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겠는가? 그들이 그대의 가정에 거하는 것이 기쁠 수 있겠는가? 건물은 좋으나 집이 그 안에 행복을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그 울 안에 사는 사람들이 가정을 천국이나 지옥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대는 그대 자녀들의 어머니를 존중하지 않는다. 그대는 그들 안에 불순종과 불경함을 용납했다.

그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왜 화잇 자매가 이런 일로 나에게 오는가? 나는 그 계시에 대한 믿음이 없다” 나는 글을 쓰려고 하기 전에 이것을 알았다. 그러나 내가 이것을 그대 앞에 놓아야 할 때가 왔음을 안다. 455 나는 그대에게 진리를 말해야 한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내가 불완전하게 기록한 것에 대해 나는 심판 가운데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에 기록된 바로 그 말씀이 그대의 심령에 미치고 그것을 부드럽게 하리라고 희망하면서 기다려 왔다. 그러나 나는 이 면에 모든 희망을 잃었다. 왜냐하면 그대가 강철처럼 뚫을 수 없는 갑옷으로 견고히 하였기 때문이다. 그대는 그대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은 어느 것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만일 그대가 안식일을 포용하지 않았더라면 현대 진리의 사업에 더욱 좋았을 것이라는 사실이 나에게 보여졌다. 그대의 양심은 매우 예민하지 않으며, 그대는 원수에 의해 눈멀었다.

그대가 그들에게 거친 돌이 되고 있는 동안은 ________에 있는 교회에 대하여 나는 어떤 것을 해야 한다는 모든 희망을 포기하였다. 그대는 진리를 사랑하였다. 그리고 그대가 진리와 성결의 길 위에 계속 따라왔더라면, 그대는 지금 그리스도를 위한 대사가 되었을 것이다. 그대는 개발되지 않은 그대의 달란트에 대하여 하나님의 큰 날에 드려야 할 두려운 결과가 있을 것이다. 그대는 훌륭한 재능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좋은 결과를 얻도록 그대에게 이 재능을 빌려 주셨다. 그러나 그대는 이 선물을 남용했다. 그대가 올바른 면에서, 하나님이 그대에게 주신 이 능력을 이용했더라면 그리스도께 영혼을 드리는 많은 일을 했을 것이고, 그대는 하늘 왕국에서 그대의 덕분으로 구원받은 영혼들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는 그리스도와 함께 모으는 대신 널리 흩어 버렸다. 그대의 형제들은 일어나서 전진하려는 시도에서 좌절되었다. 그 까닭은 그대가 반대편같이, 그들이 하고자 하는 선행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심령이 지금보다 더 깊은 사랑과 자비로운 애정으로 지상에 있는 그분의 자녀들에 대해 동정해 보신 적은 결코 없었다. 지금보다 더 그분의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준비하시고 더 많은 것을 하시기 위해 기다리신 때는 결코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지정하신 방법대로 구원받기 위해 선택된 사람들은 모두 가르치시고 구원하실 것이다. 영적인 사람만이 영적인 일을 분별하며 도처에 있는 하나님의 사업과 임재에 대한 표를 볼 수 있다. 사단은 그의 교묘하고 사악한 방법으로, 우리의 시조(始祖)를 에덴동산-그들의 순수하고 정결함으로부터 죄와 형언할 수 없는 비참함으로 이끌었다. 그는 멸망시키는 일을 멈추지 않았으며 그가 명할 수 있는 모든 세력들은 이 마지막 날에 영혼을 파멸시키기 위해 부지런히 그에 의해 이용당하고 있다. 456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속이고, 좌절시키고, 혼돈시키기 위해 그가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책략을 포착한다.

그는 그대를 흑암과 혼돈을 퍼뜨리는 그의 도구로 사용해 왔으며 그대가 그의 손안에서 훌륭하게 일함을 알고 있다. 그대는 그가 상심시키고, 좌절시키며. 분해시키는 데 좋은 효과를 거두도록 그가 이용할 수 있는 바로 그 도구다. 그대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그대의 어깨로 짐을 지는데 열심을 내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움직이려고 할 때, 그대는 그들이 올바른 면에서 전진할 수도 있는 것을 막는 과외의 짐으로 그대 자신을 둔다. 사단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닌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하나님께 충성하고 그분의 계명에 순종하는 사람들을 대적하여 그의 안에는 가장 모진 적의가 있다. 그는 잠들지 않으며, 한 순간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사단이 그의 사업에서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공언하는 제자들이 하나님의 사업에서 현명함과 부지런함과 인내에 있어서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B 형제여, 그대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를 따르고, 뒤돌아보지 않았다면 그대는 지금 흑암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하는 빛의 사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형제들과 상의하는 것을 배우고, 알 만한 가치가 있는 것 모두를 그대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그대를 그분의 영광에 사용하실 수 없다. 사단은 그대가 선행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데 성공했다. 그대는 일시적으로 잘 행했으나, 사단의 시험이 그대를 정복했다. 그대는 첫째가 되는 것과 아첨받는 것을 좋아했다. 그대는 돈이 주는 힘을 좋아했다. 사단은 사람들의 연약함을 이해한다. 그는 여러 세대 동안 축적해 온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그의 사업에 노련한 손이다. 그의 교활함과 술책은 잘 발달했으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뱀처럼 지혜롭지 못하므로 그것들은 매우 많이 성공한다.

사단은 자주 하늘의 옷으로 치장한 채 빛의 천사처럼 나타난다. 그는 자기가 속이고 멸망시키고자 작정한 영혼들, 자신의 희생물들에게 친절한 태도와 품성의 큰 신성함과 높은 관심을 보인다. 그가 영혼들을 초청하여 다니도록 한 길에는 위험들이 있지만, 그는 이러한 것들을 숨기고 매력적인 것만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457 우리 구원의 위대한 대장께서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 우리가 했어야 할 것을, 우리를 대신하여 그분을 통해 정복하셨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아무도 자신의 선택에 반대하면서 구원해 주시지 않는다. 그는 아무에게도 순종을 강요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그들이 그분의 이름으로 정복하고 그들에게 그분의 의가 입혀질 수 있도록 무한한 희생을 하셨다.

그러나 그대는 구원받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멍에를 받아들이고 이 멍에를 그대가 꼴 지은 목에 메어야 한다. 예수께서 광야에서 얻으신 승리는 그대가 그분의 이름으로 얻게 될 승리에 대해 그대에게 보증이 된다. 그대의 유일한 희망과 구원은 그리스도께서 정복하신 그 정복에 있다. 지금 하나님의 진노가 그대에게 걸려 있다. 그대는 하늘 보화보다 세상의 매력을 더 사랑한다.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그대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켰다. 그대의 불쌍하고, 연약하고, 흠있는 자아에 대한 그대의 신뢰는 부서져야 한다. 그대의 짐과 더불어 그대가 하나님의 손안에 빠져들기 전, 그대는 자신의 연약함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완전히, 전적으로 신뢰하는 영혼은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순종함에 있어 우리가 우리의 편의를 도모하도록 하시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는 인류 가운데 한 사람이셨을 때,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슬픔의 사람이셨으며, 고통을 아셨다. 하늘의 대주재께서 그분의 머리를 두실 곳이 없었고,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할 장소가 없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가난하게 되셨고, 그분을 통해 우리는 진정 부하게 되었다. 우리는 희생을 말하지 말자. 왜냐하면 우리는 진리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 십자가를 거의 들지 않고 있다. 우리 앞에 우리의 구속자께서 가신 길보다 어떤 길이 쉬운 길인지 찾지 않도록 하자. 자기의 뽐내는 지혜로 자신을 인도하는 그대는 얼마나 무능한가! 기만당한 양심의 가르침을 따르고, 오류의 길에 달리게 하고, 다른 사람들을 그대와 함께 이끈 것에 대해 그대는 얼마나 큰 책임을 지고 있는가!

그대의 본성적인 기질은 하나님의 요구에 굴복하고 순종하는 것이 매우 힘든 그런 것이다. 그대의 자유로운 자아 신뢰, 편견, 그리고 그대의 감정은 그대를 쉽게 잘못 된 길로 이끈다. 458 만일 그대의 눈먼 판단 앞에 그분을 선택한다면, 그리스도께서는 그대에게 확실한 지도자가 되실 것이다. 그대의 사업에서 그대는 하나님의 영광에 성실한 눈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대는 대해야 할 많은 난처함과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그대가 자신의 판단 대신에 참된 조력자를 신뢰했더라면, 그대는 자신의 업무에서 난처한 일로부터 지도함을 받았을 것이다.

그대 앞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도움 없이는 그대가 결코 할 수 없는 중요한 사업이 있다. 그대는 천사들과의 교제를 유지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후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후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대가 그대 자신의 안일함의 좁은 테두리에 있는 소망과 욕구의 범위를 한정하려고 하는 것은 평생의 실수가 될 것이다. 이생만을 위해 사는 것은 비참한 실수다. 그대는 뒤를 돌아보고, 그대 자신의 잘못된 길에 대해 정죄함을 느끼며, 다른 사람의 결점을 찾음으로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길을 추구하든지 혹은 그들이 얼마나 잘못되었든지 간에 그들의 잘못은 그대의 한 가지 실수라도 덮어 주지 못한다. 그리고 마지막 보응의 날에 그대는 이것을 그대가 의무를 소홀히 한 것에 대한 변명으로 하나님 앞에 감히 빌지 못할 것이다.

그대가 이 세상으로부터 나오고 분리되어 부정한 것을 만지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하나님께서는 그대를 그분의 자녀로 받아 주시고 그대를 하늘 왕의 한 자녀, 황실의 한 가족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하신다. 하늘 왕께서는 그대의 존재를 고상하게 하고, 폭넓게 하며, 높일 수 있는 모든 것을 그대가 소유할 수 있고 즐길 수 있게 하셨다. 그리고 그대의 존재를 하나님의 생명과 보조를 맞추어 그대가 그분과 함께 영원히 거하는 데 적합하도록 하신다. 다가 올 세상의 전망은 얼마나 좋은가! 그것은 얼마나 큰 매력을 지니고 있는가! 사람들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은 얼마나 넓고 깊고 무한한가! 어떤 말로써도 이 사랑을 묘사할 수 없으며, 이것은 모든 생각과 상상을 능가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대가 경험으로 배울 수 있는 실제이며, 그대는 이것을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층만한 영광으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대 앞에 있는 이러한 전망에 비추어 볼 때, 어떻게 그대가 유익을 찾으며, 현대 진리를 하나 하나 양보하면서 그대의 마음을 세상적인 생각과 세속적인 직업의 범위로 좁힐 수 있는가? 459 진리, 원칙, 그리고 양심이 그대가 지녀야 할 만한 것이다. 하나님의 인정이 은금으로 된 집보다 더 좋은 것이다. 심령의 가장 깊은 즐거움은 가장 깊은 겸손에서부터 온다.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복종이 품성의 고상함과 힘을 가져오게 한다. 눈물이 모든 경우에 있어서 연약함의 증거는 아니다. 정결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눈앞에서 그대가 균형잡힌 품성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기초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대가 진리와 의무의 요구에 부응할 때까지 심령은 하나님 앞에서 깨어져야 하며, 죄에 대한 진정한 회개가 나타나야 한다. 그 때에 그대는 자신에 대한 진정한 존중심과 하나님에 대한 참된 신뢰를 갖게 될 것이다. 그대는 감정의 온순함을 갖게 된다. 모든 거만함은 사라질 것이다. 냉혹함 대신에, 모든 경우에 진리를 위해 서는 목적의 확고함으로 융합된 큰 온유함이 있게 될 것이다. 그 때에 그대는 세상과 그대 자신의 심령에서 그대를 울게 한 많은 것들을 보게 될 것이다.

목회자의 참된 교양

E 형제에게. 나는 과거 언젠가 그대에게 편지를 쓰려고 계획하였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할 만한 기회를 발견할 수 없었다. 지난 안식일에 백성들에게 말할 때, 나는 그대의 경우에 대해 분명하게 인상을 받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그대의 이름을 부르고자 하는 것을 억누르느라 어려움을 느꼈다. 이제 나는 그대에게 편지를 씀으로써 내 마음을 가볍게 하고자 한다. 나의 지난번 이상 속에서 말씀과 교리의 봉사를 한다고 공언하는 이들의 결함이 보여졌다. 나는 그대가 그대의 재능을 향상시키지 않으며, 오히려 진리를 가르치기에 점점 더 쓸모없이 변해 가는 것을 보았다. 그대에게는 철저한 회심이 필요하다. 그대에게는 강하고 굳은 뜻이 있으며, 그것은 완고하기까지 하다. 만일 그대가 조금 덜 자만적이고, 좀더 겸손하고 온유한 정신을 품었더라면, 지금은 다른 이들에게 진리의 기별을 전파하는 엄숙한 사업에 자격을 갖추었을 것이다.

그대는 면밀한 적용이나 계속적인 수고의 짐을 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대는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키는 학자나 하나님의 사업에 열성을 바치는 일꾼이 아니었다. 460 그대의 생애는 그리스도의 생애를 대표하는 것과는 동떨어져 있다. 그대는 분별력이 없다. 그대는 현명하고 사려 깊은 일꾼이 아니다. 그대는 마땅히 그리스도의 모든 교역자들이 해야 하는 일, 곧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구원하는 일에 대해서 연구하지 않는다. 그대는 정해진 트랙, 그대 스스로의 표준을 갖고 있는데 그리로 백성들을 이끌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들이 그대의 표준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일에 그대는 실패한다. 그대는 독선적이고, 자주 사태를 극단으로 밀고 나감으로 하나님의 사업에 심한 해를 끼치고, 진리 가운데로 영혼들을 거두어들이는 대신에 진리로부터 영혼들을 돌아서게 한다.

그대의 사려 깊지 못한 일하는 태도 때문에 좋게 열렸던 여러 가지 일이 망쳐지는 것을 나는 보았는데, 이 일에 대해서 나는 어떻게 말을 하여야 하겠는가? 진리를 제시하는 일에 있어서 그대의 지혜가 부족하였기 때문에, 또한 예절과 친절과 인내로써 복음 교역자로서의 그대의 부르심을 단장하는 일에 실패하였기 때문에 영혼들을 잃어 왔다. 진실된 그리스도인 예절이 그리스도의 교역자의 모든 행동을 특징지어야 한다. 오, 선함과 진정한 순결의 화신이 되는 생애를 사신 긍휼과 자비가 풍성하신 우리의 구속주를 그대는 얼마나 형편없이 나타내 왔던가. 그대는 거칠고, 비난적이고, 인내성 없는 정신을 통하여 진리로부터 영혼들을 돌아서게 하였다. 그대의 말은 그리스도의 온유함이 아닌 E 형제의 정신으로부터 발하여졌다. 그대의 본성은 천성적으로 거칠고 세련되지 못하였으며, 그리스도인 예절의 진정한 세련미의 필요성에 대하여 결코 느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대의 생애는 있어야 할 만큼 높은 차원에 있지 못하다.

그대는 틀에 박힌 행동을 하고 있다. 그대의 교육과 훈련은 올바르지 못하고, 따라서 그대는 향상시키고 개혁하기 위하여 좀더 열렬하게 노력을 쏟아서 결정적이고 철저한 변화를 이루어야 한다. 만일 그대가 거의 모든 면에서 결정적이고 철저한 회심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대는 진리를 전파하기에 전적으로 부적합한 인물이며, 만일 그대가 성품과 태도와 말에 있어서 적절하고 타당한 만큼 높은 차원에 있지 못하다면, 그대는 선을 행하기보다는 악을 더욱 많이 행하게 될 것이다. 그대는 진리를 전진시키는 일에 많은 일을 행하지 못했는데, 이는 그대가 선은커녕 해만 끼칠 때에 교회들 사이를 너무 많이 맴돌았기 때문이다. 그대의 행동과 태도는 세련되고 성화시키는 성질의 것이 되어야 한다. 461 그대는 더 이상 그대의 결점들 때문에 하나님의 사업을 망쳐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업에 일꾼이 되는 일에 결정적인 향상을 그대는 결코 보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대가 도달해 있는 수준 이상으로 그 어떤 더 높은 수준에 다른 이들을 그대가 이끌어 올리는 일은 불가능하다. 만일 그대가 전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를 경건과 거룩함의 더욱 높은 수준으로 인도할 수 있겠는가? 그대와 같은 모든 교역자들은 여러 해에 걸쳐 하나님의 사업에 축복보다는 저주가 되어 왔으며, 그러한 인물들이 적으면 적을수록 현대 진리의 사업은 더욱 더 번창하게 될 것이다.

그대의 수고에 있어서 그대의 이상과 염원은 높지 못하다. 그대는 평범한 인물이 되는 것, 헐값의 목회자가 되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대는 그리스도인 품성의 완전함을 사모하지 않으며, 사업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선택하신 교역자 모두가 성취하도록 그분께서 요구하시는 위치를 열망하지 않는다. 지식과 사업에 대한 헌신의 면에 발전을 보이고, 자기의 태도와 기질을 향상시키고, 날마다 진정한 지혜 속에서 자라지 않는 한, 진리를 다른 이들에게 전파한다고 공언하는 이들 중 그 누구도 책임 있는 일에 자격을 갖출 수 없다. 하나님과의 밀접한 교제가 영혼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 본성의 어두움으로부터 기이한 빛 가운데로 영혼들을 인도하는 부담을 그 위에 짊어진 이들은 그들 자신이 빛 가운데서 전진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인도할 수 있겠는가? 만일 그들 스스로가 흑암 중에 행한다면, 다른 이들에게 겁을 가르치기 위하여 그들이 짊어지는 책임은 지극히 두려운 것이 된다.

그대는 여러 곳에서 수고해 왔는데, 그대는 맡고 있는 사업을 공정하게 행하는 일에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대는 시려 깊게 수고하지 않았다. 그대는 실제적인 지식의 부족을 다른 교단을 비난하는 것으로 보충하고자 했으며, 다른 이들을 넘어뜨리고, 그들의 길과 상태에 대해 거칠고 쓰디쓴 비평을 하였다. 만일 그대의 마음이 진리의 정신으로 활활 타올랐다면, 만일 그대가 하나님께 성별되어 그리스도께서 빛 가운데 계시는 것처럼 그대도 빛 가운데서 행하였더라면, 그대는 지혜롭게 움직였을 것이며, 정로에서 이탈하여 그대의 특별한 사업에서 비껴 서서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다른 이들을 향해 욕설을 퍼붓는 일을 하지 않고서도 흥미를 유지시킬 수 있는 충분한 방도를 갖게 되었을 것이다.

462 불신자들은 혐오심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그대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를 가장 잘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하여 그것으로 족하며 더 이상 그러한 교리가 필요하지 않다고 결정을 하였다. 우리의 신앙은 아무리 해도 인기를 끌지 못하고, 다른 교단의 신앙과 관습과는 큰 대조를 이룬다. 오류와 거짓 이론의 흑암 속에 빠져 있는 이들에게 접근하기 위하여 우리는 최대한의 조심과 최대한의 지혜를 갖고 그들에게 접근하여야 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면에서 그들과 의식적으로 사이가 좋아야 한다.

오류에 빠진 이들에 대하여 최대한의 배려를 나타내고, 그들의 정직성에 대해서 아주 공정하게 평가하여야 한다. 우리는 가능한 한 사람들 곁으로 가야하며, 그래야 우리에게 있는 빛과 진리가 그들에게 유익을 끼칠 것이다. 그러나 E 형제는 우리의 다른 많은 교역자들처럼 다른 이들이 품고 있는 오류에 대해 단번에 투쟁을 시작한다. 그렇게 함으로 그는 그들의 호전성을 부채질하고 완강하게 마음먹도록 함으로써 아무리 많은 증거를 댈지라도 제거할 수 없는 이기적 편견의 갑옷으로 그들이 무장하도록 한다.

그대의 성화되지 않은 수고를 통하여 진리로부터 돌아서도록 한 영혼들을 그대 이외에 누가 책임을 지게 되겠는가? 그대의 분별없는 수고를 통해 쌓아올린 편견의 장벽을 누가 무너뜨릴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 안에서가 아니라 자아 안에서 일하는 이들이 교역에 종사하는 것보다도 더 크게 하나님을 거스려 범죄할 수 없음을 나는 알고 있다. 그들의 어떠한 수고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정신을 나타내지 않고 있는 때에 그들은 그리스도의 대표자로서 여겨진다. 그들은 비헌신적이고, 회심하지 않은 인간의 수고에 수반되는 위험들을 보거나 인식하지 않는다. 그들은 마치 눈먼 사람처럼 움직이며, 거의 모든 면에서 결점 투성이로되 자부심과 자만심이 강하고, 흑암 속에서 행하여 모든 발걸음마다 넘어진다. 그들은 흑암의 세력에 속한 이들이다.

E 형제여, 그대는 사상의 폭이 좁고, 그대의 수고는 진리를 높이는 대신에 낮추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그대에게 전혀 능력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그대는 훌륭한 일꾼이 될 수 있었지만, 그대는 너무 게을러서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노력을 기울일 수 없었다. 463 그대는 수고의 강도를 높이는 어려움을 택하기보다는 그대와 다른 이들에 대하여 거칠고 참지 못하는 태도 쪽으로 차라리 내려가 버렸다. 그대는 입장을 정하였고, 그 후에 그것들이 의문시되면, 그대는 그것들이 그릇되었다는 것이 보여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대의 생각을 굽힐 만큼 겸손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그대는 독립심을 발휘하여 그대 편에서 양보하는 것이 불가피하고 마땅히 그렇게 하는 것이 의무인데도 그대의 생각을 굳게 붙잡았다. 그대는 영혼들을 희생시켜 가면서 굽힐 줄 모르고 완고하게 그대 스스로의 판단을 붙잡고 있다.

E 형제여, 그대가 정한 입장에 대하여 어떠한 위기를 만나더라도 강하고 흔들리지 않는 뜻을 갖고 그대가 밀고 나가려고 한다는 것을 그대의 아내는 느끼고 통탄해 마지 않았는데, 그 결과로 그녀는 건강의 고통을 겪었다. 그대는 이 예민한 하나님의 딸에 대해서 온유하고 부드럽게 대하지 않았다. 그대의 강한 정신이 그녀의 좀더 온유한 기질을 억눌렀다. 그녀는 많은 면에 대해서 슬퍼하였다. 만일 그대가 노력했다면, 그녀의 삶을 행복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가 사물들을 보는 것처럼 그녀도 그렇게 보게 하려고 그대는 노력하였으며, 그대 자신과 그녀의 고상한 성질을 융화시키려고 노력하는 대신에 그대의 좀더 거친 본성과 그대의 극단적인 사상에 따라 그녀를 꼴 지으려고 그대는 노력하였다. 그녀는 본성면에서 구부러졌으며,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그녀는 맞지 않는 토양에 이식된 식물처럼 말라 버렸다.

그대의 양식대로 마음과 성품들을 꼴 짓고자 노력하지 말고, 그대의 품성이 거룩한 모본자의 모습대로 꼴 지어지도록 그대는 허용하여야 한다. 만일 이 세상이 그대와 같은 성격과 기질의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그것은 재앙이 될 것이다. 그대가 어디로 돌아서든지 같은 것들끼리 만나게 마련이며, 그대는 그대의 모습과 아주 동일한 그대의 친구들에 질려서 세상으로부터 떠나가 버리길 원할 것이다.

그대는 스스로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고 자랑한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정신적 자질을 갖고 아무리 넓게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이렇게 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훌륭한 자질을 갖춘 인물들은 자신의 가치에 대해서, 또한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선을 성취하게 될지에 대해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최대의 영향력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성품에 그대의 도장이 찍힌 인물들은 높임을 받고 자아에 대해서 자랑하기에는 전혀 맞지 않는다.

464 일할 때 그대는 흔히 시작은 훌륭하다. 그대는 흥미를 일으키고, 사용한 논증들은 뒤집혀질 수 없다는 확신이 마음들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진리를 위하여 영혼들이 무게에 달리는 바로 그 때가 되면 자아가 분명히 나타나고 두드러지게 됨으로, 예수께서 그대의 말과 품행 속에 빛을 비추셨다면 얻을 수 있었을 뻔한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그대에게는 그리스도와 진리 편으로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에 필수적인 은혜가 부족하다. 그대는 논쟁을 잘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대에게는 신령한 뜻에 대한 체험적 지식이 없으며, 신앙적 체험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다른 이들을 생수의 근원으로 이끌 수가 없다. 그대의 영혼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중에 있지 않으며, 오히려 흑암 속에 있다. 따라서 흑암을 더듬으며 행하고 있는 영혼들에 의하여 인식된 결함은 오로지 진리의 빛 외에는 그 어떤 것으로 채워 주지 못한다. 만일 그대가 철저하게 회심하지 않는다면, 다른 이들을 회심시키려는 그대의 노력은 지금이라도 중단하는 것이 낫다. 왜냐하면 그대가 더욱 오래 일하면 일할수록 그대의 좁고 독단적인 생각 때문에 신앙적 표준이 망쳐지고 왜곡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에게는 신령한 뜻에 대한 체험적 지식이 없다. 그대 스스로의 의는 그것이 무가치함에도 불구하고 그대에게 가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대가 회심할 때, 그대는 가납될 수 있는 수고를 할 수 있다.

그대는 그리스도의 신앙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그대는 그대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자아에 대하여 죽어야만 하며, 그리스도께서 그대 속에 사셔야만 한다. 그때에 그대는 그분께서 빛 가운데 계시는 것처럼 빛 가운데서 행하게 될 것이며, 하늘로 향하는 밝은 길을 남겨 줌으로 다른 이들의 앞길을 밝혀 주게 될 것이다. 그대는 자신에 대해서 너무 잘 만족한다. 그대는 자기 자신을 교육하고 그대의 독선적이고 트집잡기 좋아하는 정신을 정복해야 한다. 다른 이들에게 전파한 후에 그대 자신이 내버려짐을 당하지 아니하도록 그대는 육체를 지배하고 굴복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그대의 품성과 생애 속에 있는 결점들을 훨씬 더 잘 극복하고,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일을 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빛을 구하고, 천국의 순결한 천사들과 연합하기 위해서 준비할 수 있는 때에, 그대는 사물의 좁은면을 보고, 지푸라기를 붙잡고, 비난하고, 다른 이들의 노선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그대의 현재 모습으로는 온 하늘을 망치게 될 것이다. 그대는 교양 없고, 세련되지 않았고, 성화되지 않았다. 465 현재 그대가 갖고 있는 것과 같은 성품의 소유자가 있을 자리는 하늘에 전혀 없다.

만일 그대가 사업에 열렬하게 참여하고, 죄에 대해 어떤 구실도 대지 않는다면, 또한 육체의 죄를 정죄하고 믿음과 소망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올바른 판단력을 붙잡는다면,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수고하는 일에 그대를 부적격자로 만드는 그대의 품성적 결함들을 그대는 극복하게 될 것이다. 그대는 많은 세월 동안 전진하거나 향상하지 않았다. 그대는 그리스도인 완전의 표준과 복음의 교역자들에게서 발견되어야 할 자질들을 소유하는 일로부터, 그대가 진리를 받아들인지 불과 수개월이 지났을 때보다도 오늘날 훨씬 더 멀리 떨어져 나갔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 경건에 관해 지식이 없으면서도 여전히 다른 이들을 인도하려고 애쓰는 이들에 대해서 불쾌하게 여기신다. 자기 눈에는 들보가 박혀 있으면서도 그 형제의 눈에서 티끌을 끄집어내려고 애쓰는 인물을 그대야말로 정확히 대표하고 있다. 먼저 그대의 마음을 제대로 갖고 그대의 성격을 개혁하라 하나님과 연결되라. 그리고 날마다 그리스도인 체험을 얻으라 그리하면 그대는 그리스도 밖에 있는 영혼들을 위하여 짐을 질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저자들의 글을 읽는 일에 그대 만큼 시간을 바치고 있는 이는 극히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는 진리를 가르치는 목사에게 필수적인 자질들이 매우 결여되어 있다. 그대는 성경을 정확하게 인용하는 일이나 심지어 읽는 일에도 실수를 범한다. 이런 일은 결코 있을 수가 없다. 그대는 정신적 교양 면에 향상을 보이지 않았고, 그대의 말과 품행을 통해서 비쳐 나오게 될 은혜의 성장을 영혼 속에 확보하지 않았다. 그대는 좀더 높고 좀더 거룩한 목표물에 도달하여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피상적으로 책만을 좇아감으로 정신은 막히고, 그대는 정신적 소화불량 환자가 된다. 그대는 그대가 읽는 것의 절반도 소화시키거나 사용할 수 없다. 만일 그대가 정신을 향상시킬 한 가지 목적으로 독서한다면, 또한 정신이 이해하고 소화시킬 수 있을 분량 만큼만 독서하고, 그런 식으로 독서하는 일을 끈질기게 계속한다면, 훌륭한 결과가 수반될 것이다. 다른 교역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대는 학교에 참석하여 어린아이처럼 지식의 첫 과정들을 숙달하기 시작해야 한다. 466 그대는 정확하게 읽고, 쓰고, 발음할 수 없는데, 그대보다도 적게 책임을 지고 있는 이는 거의 없다.

우리 교역자들의 위치는 신체의 건강과 정신적 훈련을 요구한다. 건전한 감각, 튼튼한 신경과 쾌활한 기질은 어느 곳에서든지 복음 교역자를 추천하게 될 것이다. 이것들을 추구하고 끈질기게 계발하여야 한다.

지금까지 그대의 생애는 결실이 없었다. 그대에게는 몇 가지 좋은 생각들이 있지만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대의 심령 속에 거하시지 않는다. 그대는 그분의 능력으로 새로워지지 않았으며, 그대에게는 참된 신앙, 소망, 사랑이 없다. 그대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영께서는 그대를 능하게 하사 하나님의 사물들을 취하여 다른 이들에게 나타낼 수 있게 하실 것이다. 그리스도의 충성스러운 교역자의 사업이 좀더 그대의 마음 속에서 높임을 받게 될 때까지 그대는 하나님의 사업에 전혀 유익을 끼칠 수 없다. 예수께서 행하셨던 것처럼 선을 행하려는 목적이 그대의 생애 속에 필요하다. 이 사업에 나타내는 자아 부정과 사랑은 다른 이들의 생애와 품성을 향하여 말하게 될 것이다.

그대는 그대의 냉랭하게 얼어붙은 형식주의를 가능한 한 빨리 제거해야 한다. 그대는 매일의 생활 속에서 부드러움과 우정의 감정을 계발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대는 진정한 예의와 그리스도인 예절을 나타내어야 한다.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심령은 그분께서 위하여 죽으신 이들을 사랑한다. 마치 나침반의 바늘이 극을 가리키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따르는 이는 열렬한 수고의 정신을 갖고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생명을 주신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애쓸 것이다.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서 일함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은 마음 속에 따뜻하게 간직되고, 그 사랑은 적절한 성장과 발전을 가져다 줄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다면, 그리스도인 품성이 조화되게 계발되는 일은 부족하게 될 것이다.

내 형제여, 그대에게 권하노니 하나님과 사귀라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 37:23)셨다. 돌보는 천사들은 우리가 전진하는 매 발걸음을 주목한다. 그러나 그대의 의지가 하나님께 굴복하지 않았다. 그대의 생각은 거룩하지 않다. 467 그대는 어둠 속에서 넘어지면서 어디에 발을 디뎌야 할지 알지 못하는 가운데 나아가고 있다. 주님께서는 인도함 받기를 열렬히 사모하는 이들에게 당신의 뜻을 보이신다. 그대가 비효율적인 이유는 그대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려는 생각을 포기하였으며, 따라서 그 어떤 것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눈이 멀었으면서도 그대는 눈먼 이들을 인도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오, 그대와 다른 많은 교역자들이 어떤 입장에 빠져 있는가!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나서 그대와 그들은 물을 저장하지 못할 깨어진 웅덩이를 팠다. 그대에게 권하는데, 경고를 받아들이고 깊고 열렬한 회개로 주님께 돌아서라. 그리하면 그대는 그분의 용서와 그분의 능력의 지속적인 힘을 얻음으로 말미암아 진실로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채워지게 될 것이다. 그분은 그대의 길을 달갑지 않게 바라보시는데, 이는 그대가 영혼들에게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대는 성공하기 위하여 스스로의 힘과 의를 의지하였고 하나님의 뜻에 관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

그대의 진정한 성품을 주님께서 그대에게 보여 주시고 그대의 진정한 결핍에 대해 그대가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비추임을 받아 이것을 깨닫게 될 때 그대는 그대의 죄된 태만과 비향상적인 생활을 이해하게 됨으로 그대의 영혼은 두려움에 찰 것이며, 그대는 회개할 것이 없는 회개로 이끄는 슬픔을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