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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장-고아의 보호*

73장 - 고아의 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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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9 우리의 관심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과부와 고아가 우리의 부드러운 동정을 가장 강하게 요구한다. 그들은 주님의 특별한 보호의 대상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돌보도록 그리스도인들에게 맡겨져 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약 1:27).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을 믿고 죽은 많은 아버지들은 그들의 사랑하는 자들을 주님께서 돌봐 주실 것으로 완전히 믿고 떠나갔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그 사별당한 자들의 필요를 어떻게 채워 주실 것인가? 그분은 하늘에서 만나를 보내 주심으로 이적을 행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그들에게 음식물을 가져다 줄 까마귀를 보내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분은 사람의 마음에 이적을 행하셔서 심령에서 이기심을 제거하시고 자선의 샘을 열어 주신다. 그분은 당신을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의 부드러운 자비에 고통당하는 자들과 사별당한 자들을 위탁하심으로써 그들의 사랑을 시험하신다.

가정에서 돌봐 줌

하나님의 사랑을 가진 자들은 그들의 마음과 가정을 열어 놓고 이 아이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큰 기관들에서 고아들을 돌보는 것은 최선의 계획이 아니다. 만일, 그들을 길러 줄 친척들이 없으면, 우리 교회의 교인들은 그 어린이들을 그들의 가정에 양자로 입양시키든지 그들에게 적합한 다른 가정들을 찾아 주어야 한다.

이 어린이들은 특별한 의미에서 그리스도께서 주시하시는 자들이며, 그들을 등한히 하면 그분께 범죄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한 모든 친절한 행위는 그분에게 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재물을 어떤 방법으로든지 빼앗는 자들, 그들의 궁핍에 무관한 자들은 온 세상의 심판자에게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520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눅 18:7, 8, 약 2:13). 주님께서는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라고 명령하신다(사 58:7). 그리스도교는 이와같이 빈곤한 자들에게 아버지와 어머니와 가정들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기도와 거기에 따르는 행동으로 나타낸 과부와 고아에 대한 동정은 하나님 앞에 기억될 것이고 미구에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부모들의 주의 깊은 지도와 그리스도인 가정의 부드러운 감화를 박탈당한 이와 같은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게 될 모든 사람 앞에는 유용한 넓은 분야가 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익힌 성품의 특성들을 유전으로 받아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무시된 채 자라나도록 방임될 것 같으면, 그들은 부도덕과 범죄로 끌어가는 교제 가운데 빠지게 될 것이다. 전도가 바람직하지 못한 이와 같은 어린이들을 올바른 품성 형성에 유리한 위치에 놓아 줌으로써 그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을 열어 줄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공언하는 그대들은, 구주께로 나오는 길을 그처럼 꾸준하게 가르칠 필요가 있는 이런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그대들의 몫을 감당하고 있는가? 그대들은 그리스도의 성실한 종으로서 그대들의 할 일을 다하고 있는가? 제대로 꼴 지어지지 못하고, 아마도 균형이 잡히지 않은 이 어린이들의 마음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나타내 주신 그 사랑으로 돌봄을 받고 있는가?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의 영혼이 그들 스스로에게 방임되면 치명적인 위험에 빠지게 된다. 그들은 꾸준한 교훈과 사랑과 부드러운 그리스도인적 보호를 필요로 한다.

만일, 우리의 의무를 지적해 주는 계시가 없다면, 바로 우리의 눈으로 보는 광경과, 원인과 결과의 필연적인 역사(役事)에 대하여 깨달은 바가 이 불쌍한 자들을 구원하도록 우리를 각성시키게 될 것이다. 만일, 교인들이 생애의 일반적인 사업 관계에서 활용하는 것과 동일한 정력과 기지와 기량을 이 사업에 바친다면, 만일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지혜를 구하고 이 계발되지 못한 마음들을 형성시키는 방법을 진지하게 연구할 것 같으면, 멸망 길에 놓여 있는 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521 만일, 부모들이 그들의 자녀들의 구원을 위하여 마땅히 해야 할만큼 염려를 한다면, 만일 그들이 기도로써 그들을 은혜의 보좌로 데려가고, 그들의 기도를 실천하는 생활을 하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협력하실 것을 깨닫는다면, 그들은 그들의 가정 밖에 있는 어린이들, 특별히 부모의 교훈과 지도를 받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위하여 성공적인 일꾼들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교인들에게 이와 같은 고아들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도록 요구하신다.

그리스도와 같은 활동

우리는 어린이들을 돌보는 일에 있어서 단순히 의무라는 관점에서만 일할 것이 아니고 사랑으로 일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이 영혼들을 사셨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죄악과 방종 가운데 있는 우리를 당신이 사랑하신 것처럼 그들을 사랑하도록 우리에게 기대하신다. 사랑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당신께로 이끌기 위하여 사용하시는 힘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모든 자선 사업에 있어서, 이 원칙만이 효력을 나타낼 수 있다. 유한한 사람은 무한하신 분과 연합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이 사업은 노력과 극기와 자아 희생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희생과 비교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희생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게 하시고자 당신의 축복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다.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그분께 구할 때, 그분께서는 그 양식을 우리 자신들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과 나눌 수 있을 것인지 알아보기 위하여 우리의 마음속을 살피신다. 우리가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때, 그분께서는 우리가 접촉하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나타낼 것인지 보고자 살피신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우리가 자비로운 것, 이것이 곧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증거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주고 계신다. 그러면, 누구에게 그분의 선물이 주어지는가? 품성에 흠이 없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가? 522 하나님은 “그 해를 악인과 의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마 5:45). 비록 인간성이 죄악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때때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슬프게 하고 우리 자신이 가장 무가치함을 보여 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분의 용서를 구하면, 그분께서는 우리를 돌려보내지 않으신다. 그분의 사랑은 우리에게 값없이 주어진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신다(요 13:34).

형제 자매들이여, 나는 그대들이 이 문제를 주의 깊이 생각하도록 요청하는 바이다. 아버지 어머니 없는 자들의 필요를 생각해 보라. 그들의 고난을 목격할 때, 그대들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는가? 이와같이 속절없는 자들을 도우는 일에 있어서 할 수 있는 어떤 일이 없는지 알아보라. 그대들의 힘이 미치는 한, 집 없는 자들을 위하여 안식처를 마련해 주라. 모든 사람은 이 사업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한 몫을 담당할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명령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고아들을 위하여 우리의 가정을 열어 줌으로써, 우리는 이 명령이 성취되도록 도우게 된다. 예수님께서 그대들에게 실망당하시지 않게 하라.

이런 어린이들을 취하여 향기 나는 제물로 하나님께 바치라. 그들에게 축복해 달라고 간구하고,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 그들을 꼴짓고 형성시켜라. 우리의 백성들이 이 거룩한 의무를 수락할 것인가? 우리의 천박한 경건과 세속적인 야망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그들이 고난을 당하고 그릇된 길로 가도록 방임될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에는 과부와 고아와, 가난한 자와 고난 중에 있는 가련한 사람들을 어떻게 취급할 것인지에 대한 교훈이 많이 있다. 만일, 모든 사람들이 이 교훈에 순종할 것 같으면, 과부의 마음이 기쁨으로 노래하고, 굶주린 어린이들이 양식을 공급받고, 가난한 자들이 입혀질 것이며, 멸망 길에 있는 자들이 소성하게 될 것이다. 하늘의 지적 존재들이 살펴보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열성에 고무되어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섭리의 통로가 되면, 이 하늘의 사자들이 우리에게 영적 새 힘을 나누어 주어 우리로 하여금 어려움을 대항하고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일꾼들은 얼마나 큰 축복을 보상으로 받게 될 것인가! 523 오늘날 나태하고 이기적이고 자아 중심적인 많은 사람들에게, 그 축복은 죽은 자에게 생명을 주는 것과 같을 것이다. 우리들 사이에는 하늘의 자비와 지혜와 열성의 부흥이 있게 될 것이다.

목사의 아내들이 고아를 양자로 삼음

목사의 아내가 고아들을 양자로 삼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반복되어 왔다. 나는 그 질문에 대하여, 만일 목사의 아내가 가정 밖에서 선교 사업을 할 의향이 없거나 그 사업에 적합하지 못하다면, 그리고 고아가 된 어린이들을 데려와서 돌보는 것을 의무로 생각한다면, 그는 선한 사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하는 바이다. 그러나, 어린이들을 선택할 때는 안식일을 지키는 부모들에 의하여 고아로 남게 된 어린이들 중에서 먼저 택하도록 하라. 하나님께서는 남녀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그들의 가정을 집 없는 자들과 함께 나눌때 그들을 축복하실 것이다. 그러나, 만일 목사의 아내가 다른 사람들을 교육하는 일에 한 몫을 담당하려면, 그는 그리스도인 일꾼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 그는 남편의 진정한 조력자가 되어 그의 사업을 도와 주고, 자신의 지능을 계발시키고, 기별을 전하는 일을 도와야 한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위엄을 갖춘 겸손하고 헌신적인 여인들이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방문하고 용기를 잃은 영혼들에게 빛을 전해 줄 길은 열려 있다. 그들은 절망에 빠져 있는 자들과 함께 기도하고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소개해 줌으로써 그들을 일으킬 수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끊임없는 보호와 주의를 요구하는 속절없는 어린 영혼들에게 그들의 시간과 힘을 바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이와같이 그들의 양손을 자원해서 묶어 두어서는 안 된다.

고아원

우리의 가정에서 고아들을 기르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한 다음에도, 세상에는 여전히 돌봐 주어야 할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거칠고 저급하고, 외관상으로 모든 면에서 매력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값으로 산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우리의 어린 자녀들과 꼭 마찬가지로 귀중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소유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영혼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524 이와같이 가련한 자들을 돌보는 것은 좋은 사업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오늘날의 세상에서 이 목적을 위하여 크고 비싼 기관들을 세우라는 지시를 한 백성으로서의 우리에게 내리지 않으신다. 그러나, 우리들 중에서 고아가 된 어린이들을 돌보기 위한 기관들을 세우라는 부르심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으로 느끼는 사람들은 그들의 의무에 대한 확신대로 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가난한 자들을 돌봄에 있어서, 그들은 세상에 도움을 호소할 것이다. 그들은 일찌기 사람들에게 맡겨진 사업 중 가장 중요한 사업, 곧 마지막 자비의 기별을 모든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하는 사업을 주님께로부터 위탁받은 백성들에게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주님의 금고에는 “지경 저편”의 복음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여분의 자금이 있어야 한다.

이런 기관들을 세울 책임을 느끼는 자들에게는, 그 필요를 알려주고 자금을 모금하는 일을 위하여 현명하게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가난한 자들과 고아들을 위하여 무엇인가 이루어져야 할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을 통하여 세상 사람들을 깨우치고, 다른 교파에 속한 교회들을 권유하라. 교회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있다.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들에게 이 사업을 맡기셨기 때문에 그들에게 호소할 것이다.

우리들 중에 있는 고아들과 약한 자들과 나이 많은 사람들을 돌보기 위하여 우리 백성들에 의하여 세워진 기관들은 지원되어야 한다. 이런 기관들이 약해지도록 방임됨으로써 하나님의 사업이 비난을 받게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기관들이 유지되도록 도우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의무로 간주될 것이 아니고 귀중한 특권으로 여겨져야 한다. 상호간에 쓸데없는 선물을 하는 대신에, 가난하고 의지할 데 없는 자들에게 우리의 선물을 주도록 하자. 우리가 이와같이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을 주님께서 보실 때, 이 선한 사업을 도우기 위하여 그분께서는 다른 사람들을 감동시키실 것이다.

고아원의 계획은 단순히 어린이들에게 음식과 의복을 제공하는 것만이 아니고, 그들을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을 아는 지식으로 교육시킬 그리스도인 교사들의 보호 아래 두는 것이어야 한다. 이 분야에서 일하는 자들은 관대한 마음을 가지고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열성으로 고무된 남녀들이어야 한다. 525 그들은 교양을 갖추고 자아 희생적인 남녀들, 하나님의 사업과 박애의 사업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일하신 것처럼 일할 남녀들이어야 한다.

이 집 없는 자들이 지식과 행복과 덕성을 얻을 수 있는 곳에 놓여지고 하늘 왕의 자녀가 될 때, 그들은 사회에서 그리스도와 같은 역할을 담당할 준비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들은 교육을 받아서 다른 사람들을 도와 줄 수 있게 되어야 한다. 이리하여, 선한 사업은 확장되고 존속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어머니가 자녀를 지금껏 사랑했는가? 그분은 어떤 어머니의 슬픔보다 더욱 깊고 절실한 슬픔으로, 훼손된 품성을 바라보신다. 그분은 악한 행동이 초래할 미래의 보응을 보신다. 그러므로, 등한히 여김을 받은 영혼을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도록 하자.

자녀들이 없고 하나님의 재물을 맡은 청지기가 된 자들이 사랑과 보호와 애정과 이 세상 재물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어린이들을 돌보기 위하여 마음을 넓힐 것 같으면, 그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해질 것이다. 아버지의 인자한 보호와 어머니의 부드러운 사랑을 받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이 마지막 때의 타락의 영향을 받도록 노출되어 있다면, 그들 중 어떤 사람들에게 아버지와 어머니의 직무를 대신해 주는 것이 누군가의 의무이다. 그들에게 사랑과 애정과 동정을 기울이는 법을 배우라. 하늘에 아버지가 계시다고 공언하고 그들을 보호해 주기를 바라고, 마침내 그들을 위하여 예비해 놓은 본향으로 데려가 주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은 친구 없는 자들에게는 친구가 되어 주고, 고아들에게는 아버지가 되어 주고, 과부들을 도와 주고, 인류를 유익하게 해 줌으로써 이 세상에 무엇인가 실제적인 일을 해주는 것을 엄숙한 의무로 느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와 같은 일들을 올바른 빛으로 보지 않는다. 만일, 그들이 단순히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살 것 같으면, 그들은 필요한 것보다 더 큰 힘을 갖지 못하게 될 것이다.― 1869, vol.2, P.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