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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장-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된 하나님의 성품*

45장 -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된 하나님의 성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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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 구주께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고 말씀하셨다(요 17:3).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언명하셨다. “지혜로운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9:23, 24).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하나님께 대한 이런 지식을 얻을 수 없다. 사도는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말한다(고전 1:21). 세상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다(요 1:10).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마 11:27). 구주께서는 겟세마네의 어두움 속으로 들어가시기 전에 당신을 따르는 자들을 위하여 드린 마지막 기도에서, 당신의 눈을 하늘에 고정시키시고 타락한 사람들의 무지를 긍휼히 여기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삽고”,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요 17:25, 6).

태초부터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하고 그들을 사단 자신에게 예속시키는 것이 사단이 고안해 낸 계획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성품을 그릇되게 나타내고자 노력하고 사람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그릇된 관념을 갖도록 지도해 왔다. 335 창조주께서는 악의 왕이 가진 독재적이고 가혹하고 용서성이 없는 특성들을 가진 것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제시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분을 무서워하고, 피하고, 심지어 미워하기까지 했다. 사단은 자신이 기만한 자들을 너무도 혼란시켜 그들이 하나님을 알기 싫어하도록 희망했다. 그리하여, 그는 인류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워 버리고 심령 속에 그 자신의 형상을 새겨 주고자 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의 정신을 넣어 줌으로 그들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는 포로로 만들고자 했다.

사단이 하와를 유혹하여 죄를 짓게 한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그릇되게 나타내고 하나님을 불신하게 함으로써였다. 범죄로 말미암아 우리 첫 조상의 정신은 흐려지고, 그들의 본성은 타락해지고 하나님에 대한 관념은 그들 자신의 편협과 이기심으로 꼴 지어졌다 그리고, 사람들이 범죄하는 데 담대해지자,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사랑은 그들의 정신과 마음에서 사라졌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다(롬 1:21).

때때로, 인간 가족을 지배하기 위한 사단의 투쟁은 성공의 영광을 얻는 듯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시기 전 여러 시대에 걸쳐 세상은 흑암의 지배 아래 거의 완전히 놓여지는 듯하였다. 그리고, 우리 조상의 범죄로 말미암아 세상의 나라들은 당연히 사단의 것이 된 것처럼, 그는 무서운 세력으로 지배하였다. 심지어 세상에서 하나님께 속한 지식을 보존하도록 하나님께서 택하신 언약의 백성들까지도 그분에게서 너무 멀리 떠나가 버렸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참된 관념을 모두 잃어버렸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을, 사랑과 자비와 인자와 긍휼이 충만하신 하나님으로 세상에 나타내 주고자 오셨다. 사단이 하나님의 보좌를 가리워 버리고자 노력한 짙은 흑암은 세상의 구속주에 의하여 제거되어 버렸고, 아버지께서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빛으로 다시금 드러나셨다.

빌립이 예수님께 와서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고 요구하자, 구주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336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였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8, 9).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아버지의 대리자로 세상에 보내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고상한 성품, 당신의 자비와 부드러운 긍휼, 당신의 사랑과 양선을 통하여 하나님의 완전하심의 체현(體現), 곧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우리 앞에 서 계신다.

구속의 계획에 나타남

사도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라고 말한다(고후 5:19). 우리가 위대한 구속의 계획을 명상할 때만,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다. 창조의 사업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범죄로 타락한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선물만은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와 긍휼의 깊이를 드러내 준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하나님의 율법이 지속되고 그 율법의 공의가 옹호되고 있는 한, 죄인은 용서받을 수 있다. 하늘이 줄 수 있는 가장 귀중한 선물을 주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신다(롬 3:26). 이 선물을 통하여 사람들은 죄의 파멸과 타락에서 건져 냄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바울은 너희가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고 말한다(롬 8:15).

형제들이여, 나는 사랑하는 요한과 같이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지 그대들을 각성시키고 싶다. 우리와 같은 죄인과 이방인을 하나님께로 데리고 가서 그분의 가족에 속하게 해주시니 얼마나 큰 사랑이며 무한한 사랑인가. 우리는 그분을 “우리 아버지”라고 애정이 넘치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다. 337 그 이름은 그분에 대한 우리의 애정의 표이며, 그분의 부드러운 관심과 우리와의 관계를 보증해 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되시는 그리스도는 은혜의 후사들을 바라보시고 그들을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신다. 그들은 결코 타락한 적이 없는 천사들보다 더욱 거룩한 관계를 하나님과 이루게 된다.

인간의 마음의 통로를 통하여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내려온 모든 형태의 부성애, 사람들의 심령에서 열린 모든 종류의 사랑의 샘들은 무한하고 끝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비교할 때 무변(無邊)의 대양(大洋)에 대한 작은 시내에 불과하다. 그 사랑은 혀로써 나타낼 수 없고, 붓으로 묘사할 수 없다. 그대는 매일의 생애에서 그 사랑을 명상할 수 있고, 그대는 그 사랑을 깨닫기 위하여 성경을 부지런히 연구해 볼 수 있고, 그대는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주신 모든 능력과 재능을 다 동원하여 하늘 아버지의 사랑과 긍휼을 이해하기 위하여 노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한한 피안(彼岸)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대는 여러 해 동안 그 사랑을 연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대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주셔서 세상을 위하여 돌아가시게 한 그분의 사랑의 길이와 넓이와 깊이와 높이를 결코 완전히 깨달을 수는 없다. 영원 그 자체도 그 사랑을 완전히 드러낼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연구하고 그리스도의 생애와 구속의 계획을 명상할 때, 이 큰 주제는 차츰 우리에게 이해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위하여 기도 드리면서 소원한바 축복을 깨닫고 소유하게 될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1:17-19).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얻지 못하게 하는 사물에 사람들의 마음이 몰두되게 하는 것이 사단의 끊임없는 연구 과제이다. 그는 사람들의 이해력을 어둡게 하고 영혼을 낙심케 할 것에 마음을 집착시키고자 노력한다. 우리는 죄악과 타락이 극심한 세상에 살고 있으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유혹하고 낙심케 하는 영향력에 둘려 있다. 338 구주께서는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말씀하셨다(마 24:12).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생각하라

많은 사람들은 그들 주변에 있는 무서운 죄악과, 도처에서 볼 수 있는 반역과 결점에 눈을 고정시키고 그들의 마음이 슬픔과 의심으로 가득 채워질 때까지 그런 것들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그들은 무엇보다 먼저 대기만자의 교묘한 활동을 마음속에 생각하고 그들의 경험에서 실망할 수밖에 없는 것들에 집착되어 있는 한편,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과 그분의 비할 데 없는 사랑을 보지 못하는 것 같다. 이 모든 것은 사단이 원하는 바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의 능력에 관하여 그처럼 적게 생각하면서 의의 원수가 그처럼 큰 능력을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능력에 관하여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사단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에 전혀 무력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마련해 놓으셨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싸울 힘을 가지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게 된다.

우리의 약점과 타락상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사단의 능력 때문에 탄식하게 되면, 우리에게는 영적 힘이 없어 진다. 우리를 위하여 이루어진 제물의 효력, 곧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에 명시된 조건에 부합되도록 당신께 나오는 모든 사람을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으며 또한 구원하신다는 이 큰 진리가 우리의 정신과 마음속에 하나의 산 원칙으로 굳게 세워져야 한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의 뜻을 하나님의 뜻과 같은 편에 두는 것이다. 그리하면, 속죄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사랑하신 것같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보증을 받게 된다. 우리는 예수님과 하나가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길을 인도하시는 대로 행하게 된다. 그분은 사단이 우리의 길에 던지는 어두운 그림자를 제거해 버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 그러므로, 암흑과 실망 대신에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이 우리의 마음을 비추게 된다.

339 우리의 소망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의가 되신다는 것을 앎으로 끊임없이 강화되어야 한다. 우리의 믿음을 이 기초 위에 세우도록 하자. 왜냐하면, 그 기초는 영원토록 굳게 서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단의 흑암을 생각하고 그의 능력을 무서워하는 대신에, 우리는 마음을 열고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빛을 받아들여 그 빛을 세상에 비춰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사단의 모든 세력 위에 뛰어나 계시다는 것과, 그분께서 붙들어 주시는 팔은 그분을 신뢰하는 모든 사람들을 붙들어 주실 것을 선포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셨다. 만일, 우리의 믿음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고정될 것 같으면, 그 믿음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게 될 것인데, 예수님께서 그리로 앞서 가셨다(히 6:19, 20). 낙망을 겪을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시련을 기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크고 작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그분께서는 걱정 거리가 많음으로 난처해지거나 우리가 지워 드리는 짐이 무거움으로 압도당하지 않으신다. 그분의 돌보심은 모든 가정에 미치고 모든 개인에게 이른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일과 우리의 슬픔에 관심을 가지신다. 그분은 모든 눈물을 주목하시고 연약함을 느끼는 우리의 감정에 공명하신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당하는 온갖 고통과 시련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거룩함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고 그분 앞에서 발견하는 충만한 기쁨에 동참하는 자를 만들기 위한 그분의 사랑의 섭리를 이루시고자 허락된 것이다.

바라보고 변화를 받으라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 4:4). 그러나, 성경은 가장 강한 어조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얻는 중요성을 우리에게 밝혀 준다. 베드로는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고 말한다(벧후 1:2, 3). 340 성경은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고 우리에게 명령한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고 우리에게 명령하신다(벧전 1:16). 영감 받은 사도는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말한다(히 12:14). 거룩함은 하나님과 일치하는 것이다. 죄로 말미암아 사람 안에 있던 하나님의 형상은 훼손되고 거의 지워져 버렸다.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는 것이 복음의 사업이다. 우리는 이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능력에 협력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할 것 같으면 어떻게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게 되며, 그분의 형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알려 주시고자 하신 지식이 이것이다.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고상한 성품과 직분에 대하여 가진 불충분한 견해는 그들의 신앙 경험을 축소시키고 거룩한 생애에서의 발전을 크게 방해해 왔다. 한 백성으로서의 우리들 사이에는 개인적 신앙이 쇠퇴한 상태에 놓여 있다. 많은 형식과 많은 조직적 기구와 많은 언어적 신앙은 있다. 그러나, 좀더 깊고 좀더 확고한 무엇인가가 우리의 신앙 경험에 도입되어야 한다. 우리의 모든 시설, 우리의 출판소들, 우리의 학교들, 우리의 의료 기관들, 그밖의 많은 유리한 방편들을 가지고서, 우리는 현재의 위치보다 훨씬 더 진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생애와 성품을 통하여 복되신 예수님을 알려 줌으로써 세상에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이 맡은 사업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빛을 주신 것은 그 빛을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우리가 받은 빛과,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와 특권에 비교하면, 우리의 사업의 결과는 너무도 적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우리에게 깨우쳐 주신 진리가 지금까지 맺은 것보다 더욱 많은 열매를 맺도록 의도하신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울적과 슬픔으로 채워져 있고, 우리 주변에 있는 흑암과 악에 대한 생각으로 여념이 없는데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를 세상에 나타낼 수 있겠는가? 우리의 증언이 사람들을 구원할 능력을 어떻게 가질 수 있겠는가? 341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체험적 지식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그대로의 하나님과 그분의 사랑의 능력을 아는 것이다. 우리는 열렬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성경을 연구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깨우침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은 믿음과 소망과 끊임없는 찬송을 통하여 하나님께 상달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하여, 믿음으로 우리에게 전가된 그분의 의를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인 품성을 완성해야 한다. 우리의 매일, 매시간의 일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고 한 사도의 말 가운데 설명되어 있다. 이와같이 할 때 우리의 정신은 더욱 맑아지고, 우리의 믿음은 더욱 강해지고, 우리의 소망은 더욱 굳세어진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순결과 자비,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시키기 위하여 이루신 희생에 대한 생각에 오로지 열중함으로써 의심과 낙담에 속한 말을 하는 기질에 빠지지 않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 그분의 긍휼과 자비의 표현, 그리고 마음을 깨우치고 새롭게 하기 위하여 역사하는 성령의 활동은 믿음을 통하여 우리를 그리스도와 매우 밀접한 관계에 놓아 주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성품에 대하여 분명히 깨닫고 사단의 교묘한 속임수를 식별할 수 있게 된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공로를 신뢰함으로, 우리는 성령 안에서 빛과 화평과 기쁨의 축복을 소유하게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루신 큰 일을 생각할 때, 우리는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라고 부르짖을 수 있게 된다(요일 3:1).

형제 자매들이여, 우리는 쳐다봄으로써 변화하게 된다. 하나님과 우리 구주의 사랑을 언제나 생각하고, 하나님의 완전한 성품을 명상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의 것으로 주장함으로써, 우리는 동일한 성품으로 변화를 입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불유쾌한 장면들, 곧 불의와 타락과 실망, 사단의 세력에 대한 증거 등을 우리의 기억의 벽에 걸어 두고 우리의 영혼들이 낙담으로 충만해질 때까지 그것들을 되풀이해서 이야기하고 탄식하지 않도록 하자. 342 실망한 영혼은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빛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받지 못하도록 차단시키는 흑암의 몸이 된다. 사단은 자신의 승리의 장면들 때문에 사람들이 믿음을 잃어버리고 낙담하게 되는 결과를 보기 좋아한다.

영혼을 즐겁게 하는 장면들

주님께서 우리에게 제시해 주신 더욱 밝고 즐거운 장면들이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하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복스러운 보증들을 함께 모아서 그것들을 끊임없이 쳐다보도록 하자. 사단의 세력에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아버지의 보좌를 떠나 당신의 신성을 인성으로 바꾸어 입으신 하나님의 아들,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승리하심으로 인류에게 하늘을 열어 주시고 하나님이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알현실(謁見室)을 인간의 시야에 드러내 주시는 일, 죄악으로 말미암아 빠져 버린 멸망의 구렁에서 건져 냄을 받아 무한하신 하나님과 다시 관계를 맺고 우리의 구속주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한 후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고 그분의 보좌에까지 높임을 받는 타락한 인류,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영혼의 거실을 기쁘게 하도록 분부하시는 장면들이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므로,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고후 4:18, 17)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입증될 것이다.

하늘에서는 하나님이 전부이시다. 그 곳에는 거룩함이 최고의 위치에 있게 된다. 하나님과의 완전한 조화를 깨뜨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만일, 우리가 참으로 그 곳을 향하여 여행하고 있다면, 하늘의 정신이 이 땅에서 우리의 마음에 거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오늘날 하늘의 사물을 명상하는 데서 즐거움을 찾지 못한다면,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구하는 일에 흥미가 없고, 그리스도의 성품을 쳐다보는 데 기쁨이 없다면, 만일 거룩함이 우리에게 아무런 매력을 주지 못한다면, 우리는 하늘을 바라는 소망이 헛된 일임을 확실히 알 수 있다. 343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 그리스도인 앞에 언제나 제시되어 있는 높은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는 하나님에 대하여, 예수님에 대하여, 또한 그분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마련해 놓으신 하늘의 본향과 순결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를 좋아할 것이다. 사도는 영혼이 하나님의 복된 보증을 즐거워함으로 이런 주제들을 명상하는 것을 “내세의 능력”을 미리 맛보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바로 우리 앞에는 사단이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그릇되게 드러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려고 활동하게 될 대쟁투의 마지막 싸움이 놓여 있다. 일찌기 끊임없이 증가되는 하늘의 빛이 필요한 백성이 있었다면, 이 위기의 때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율법의 보관자가 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당신의 성품을 옹호하도록 부르신 백성이다. 그처럼 신성한 의무를 맡은 자들은 그들이 믿노라고 공언하는 진리에 의하여 신령하게 되고, 고상하게 되고, 생기 있게 되어야 한다.

바울이 골로새 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묘사한 경험을 교회가 누리기를 하나님께서 그처럼 간곡히 바라신 적은 일찌기 없으며, 또한 교회에 그런 경험이 그보다 더 절실히 요구되었던 적도 없다.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