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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장-실수한 자들에 대한 사랑*

36장 - 실수한 자들에 대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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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다.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그분은 잃어버린 세상을 위하여 무한한 구속의 대가를 지불하셨다. 그분의 극기와 자아 희생, 그분의 이기심 없는 노력, 그분의 굴욕, 무엇보다 그분의 생명을 주신 것은 타락한 인류에 대한 그분의 사랑의 깊이를 증거한다. 그분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그분의 사명은 죄인들, 곧 온갖 계층에 속한 죄인들, 모든 나라와 방언에 속한 죄인들에 대한 것이었다. 그분은 모든 사람들을 구속하여 그들로 당신과 연합하고 마음이 하나 되게 하시고자 그들을 위한 값을 지불하셨다. 그분은 가장 과오가 많고 가장 죄를 많이 지은 자들도 지나쳐 버리지 않으셨다. 그분의 사업은 그분이 가져다 주시고자 오신 구원을 가장 필요로 하는 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개혁의 필요가 크면 클수록 그분의 관심은 더욱 깊고, 그분의 동정은 더욱 크고, 그분의 활동은 더욱 열렬했다. 그분의 위대한 사랑의 마음은 가장 절망적인 상태에 빠져 있는 자들, 그분의 변화시키는 은혜가 가장 필요한 자들에 대하여 진심으로 움직였다.

잃은 양의 비유에는 실수하고 방황하는 자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이 묘사되어 있다. 그분은 당신의 구원을 받아들이는 자들과 함께 머물러 있으면서 당신의 노력을 그들에게 기울이고 그들의 감사와 사랑을 받는 길을 택하지 않으신다. 참 목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양떼를 버려 두고 광야로 나가서 우리를 떠나 방황하는 양들, 만일 데려오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양들을 찾아 구원하기 위하여 어려움을 견디고 위험과 죽음을 당한다. 애써 찾은 후에 잃은 양이 발견되면, 목자는 비록 피곤하고 괴롭고 배가 고플지라도 그 연약한 양을 자기에게 따라오게 하거나 몰아가지 않는다. 아,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인가! 247 그는 부드럽게 그 양을 팔로 안아 어깨 위에 올려 놓는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로 데려간다. 그는 이웃 사람들을 불러서 잃은 양을 찾은 기쁨을 그들과 나눈다.

탕자의 비유와 잃은 은전의 비유도 동일한 교훈을 알려 준다. 유혹에 빠짐으로써 위태롭게 된 모든 영혼은 그리스도의 마음에 고통을 주게 되고 그분의 가장 부드러운 동정과 가장 열렬한 활동을 불러 일으킨다. 회개하는 한 죄인에 대한 그분의 기쁨은 회개할 필요가 없는 아흔 아홉 사람에 대한 기쁨보다 더 크다.

이 교훈들은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들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이 그분의 사업에서 그분과 협력하고 그분께서 그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피차에 사랑하도록 분부하셨다. 그분께서 십자가 상에서 겪으신 고통은 그분께서 인간의 영혼을 얼마나 높이 평가하시는지 보여 준다. 이 위대한 구원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모두 그분과 동역자가 될 것을 서약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도 자기 자신이 하늘의 특별한 은총을 받은 줄로 생각함으로 관심과 주의를 자신에게 집중시켜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사업에 동참한 자들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일하신 것처럼 일하고, 무지와 죄 가운데 빠져 있는 자들을 사랑하되 그분께서 그들 자신을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해야 한다.

실수한 자들에 대한 동정 깊은 활동

그러나, 한 백성으로서의 우리들 사이에는 유혹을 당하고 실수한 자들에 대한, 깊고 진지하고 감동적인 동정과 사랑이 결여되어 왔다. 그리스도께서, 가장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할 수 있는 대로 피하여 다른 길로 가버린 것으로 설명하신 바와 같이, 많은 사람들은 매우 냉랭하고 죄악적인 무관심을 나타냈다. 새로 회개한 자들은 이미 굳어진 습관이나 어떤 특별한 형태의 유혹과 더불어 이따금 격렬한 투쟁을 하지만 혹 종의 압도적 감정이나 성벽에 정복당하여 무의식 중으로나 실제적으로 잘못을 범하게 된다. 그런 경우에는 그의 영적 건강을 회복시켜 주기 위하여 정력과 재치와 지혜가 형제들에게 요망된다. 그런 상황에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을 적용하는 것이 좋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갈 6:1). 248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롬 15:1).

그러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인정 깊은 친절이 얼마나 적게 나타나고 있는가! 한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면, 다른 사람들은 그 상황을 할 수 있는 대로 나쁘게 나타내려고 너무도 흔히 제멋대로 생각한다. 아마도 다른 어떤 면에서는 꼭 같이 큰 죄들을 다분히 짓고 있는 자들도 그들의 형제를 가혹하게 심히 다루게 될 것이다. 부지중에, 부주의해서, 혹은 연약하여 범한 실수들이 고의적이요 계획적인 죄로 과장된다. 영혼들이 곁길로 나가는 것을 볼 때, 어떤 사람들은 수수 방관하면서 말한다. “그렇게 될 것이라고 내가 말했지. 나는 그들에게 믿을 만한 것이 전혀 없는 줄 이미 알고 있었다.” 이와같이, 그들은 자기들의 좋지 않은 추측이 적중한 것을 마음속으로 즐거워함으로 사단의 태도를 취한다.

우리는 젊고 경험이 없는 자들에게서 매우 불완전한 점들을 발견하고 견디어야 한다는 것을 예기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온유한 정신으로 회복시키기 위하여 노력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우리가 그들을 실망과 낙담과 파멸로 이끌어 가는 길을 걷는 데 대하여 책임을 지우신다. 우리가 매일 귀중한 사랑의 식물을 가꾸지 않을 것 같으면, 우리는 편협하고 동정심이 없고 완고하고 비판적이 되어, 우리가 하나님의 인정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스스로를 의롭게 여기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예의가 없고 무뚝뚝하고 거칠다. 그들은 밤송이와 같다. 그들은 닿을 때마다 찌른다. 그들은 우리의 자비로운 구주를 잘못 나타냄으로써 말할 수 없는 손해를 입힌다.

우리는 더욱 높은 표준에 도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이름을 가질 가치가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실수한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활동하신 그 정신을 계발해야 한다. 그분께서 보실 때 그들은 우리와 꼭 마찬가지로 귀중하다. 그들도 꼭 같이 그분의 은혜의 전리품이요 나라의 후사들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간악한 원수의 올무에 노출되어 위험과 더럽힘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가 없으면 틀림 없이 멸망을 당하게 된다. 만일, 우리가 이 사실을 올바르게 보았을 것 같으면, 우리의 도움과 기도, 그리고 우리의 동정과 사랑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가까이 접근해 가기 위하여 우리의 열성은 얼마나 일깨워졌겠으며, 진실하고 자아 희생적인 노력은 얼마나 증가 되었겠는가!

다른 사람들을 위한 이기심 없는 활동

249 이 사업에 지금껏 태만히 해온 자들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19:19)는 위대한 명령에 비추어서 그들의 의무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의무는 모든 사람에게 지워져 있다. 모든 사람은 동료들의 불행을 감소시켜 주고 그들의 행복을 증진시켜 주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만일, 우리가 유혹을 저항할 만큼 강할 것 같으면, 우리는 연약하여 유혹에 굴복하는 자들을 도와 줄 더 큰 의무를 지고 있다. 만일, 우리에게 지식이 있다면, 우리는 무지한 자들을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물질로 우리를 축복하셨을 것 같으면,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복리를 위하여 일하여야 한다. 우리의 영향을 받는 범위 안에 들어온 모든 사람들은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탁월한 것은 무엇이나 같이 나누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어떤 사람도 생명의 떡을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고 먹는 일을 만족히 여겨서는 안 된다.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는 일에 성실한 자들만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고 그분의 이름을 영화롭게 한다. 참된 경건은 십자가에 돌아가신 구주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자들을 구원하기 위한 진지한 열망과 열렬한 활동을 나타낼 것이다. 만일,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부드러워지고 낮추어질 것 같으면,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깨닫고 불타오를 것 같으면, 사랑과 동정과 친절이 다른 사람들에게로 자연히 흘러나갈 것이다. 생애에 예시된 진리는 마치 감추어진 누룩처럼 접촉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은혜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기 위하여 반드시 그분의 본을 따르고 그분께서 일하신 것처럼 일하도록 정해 놓으셨다. 우리 자신의 감정을 지배하고 시험 가운데 애쓰고 있는 자들을 실망시키는 태도로 말하는 법을 억제하는 데는 흔히 투쟁이 요구될 것이다. 매일 기도하고 찬송하는 생애, 다른 사람들의 길에 빛을 비추는 생애는 열렬한 노력 없이 지탱될 수 없다. 그러나, 그와 같은 노력은 받는 자뿐만 아니라 주는 자에게도 축복이 되는 귀중한 열매를 맺을 것이다.

250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이기심 없이 활동하는 정신은 품성에 심오함과 안정감과, 그리스도와 같은 아름다움을 주고 그것을 소유한 자에게 평안과 행복을 가져다 준다. 포부는 고상해지고, 게으름과 이기심은 있을 자리가 없다. 그리스도인의 미덕을 실천하는 자들은 자라날 것이다. 그들은 영적 체격과 체력을 갖추어서 하나님을 위하여 활동할 만큼 튼튼해질 것이다. 그들은 명석한 영적 지각(知覺)과, 확고하게 자라나는 믿음과, 기도를 통한 효과적인 능력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영혼들을 돌봐 주고 있는 자들, 실수한 자들을 구원하는 데 자신을 완전히 바치는 자들은 가장 확실하게 그들 자신의 구원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 일은 얼마나 소홀하게 취급되고 있는가! 만일, 생각과 애정이 하나님께 완전히 바쳐졌을 것 같으면, 실수를 저질러 사단의 시험을 받고 있는 영혼들이 지금까지처럼 버림을 받고 부주의하고 냉정하게 취급되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는가? 이처럼 방황하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사랑과 단순함으로 더욱 큰 노력이 기울여지지 않겠는가? 하나님께 진정으로 헌신한 자들은 그분께서 최선을 다한 사업, 그분께서 무한한 희생을 치르고 이룩한 사업, 곧 영혼들의 구원을 위한 사업을 가장 큰 열성으로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소중하게 간직되고 계속되어야 할 사업, 그리고 결코 약화되도록 허용되어서는 안 될 사업이다.

하늘의 공기를 호흡함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일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온 냉랭하고 쌀쌀한 분위기에서 나와서, 그들의 사랑의 충동을 얼어붙게 하고 그들을 이기적 무활동 상태에 붙들어 매어 둔 생각과 사상들을 떨쳐 버리기를 바라신다. 그분께서는 그들이 낮은 세속적 수준에서 나와서 명랑하고 햇빛 밝은 하늘의 공기를 호흡하라고 명령하신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모임은 거룩하고 귀중한 기회가 되어야 한다. 기도회는 형제들이 서로 비난하고 정죄하는 곳, 불쾌한 감정과 거친 말을 주고받는 곳이 아니다. 이와 같은 정신이 나타나는 곳에는 그리스도께서 쫓겨나고 사단이 주도권을 쥐기 위하여 들어올 것이다. 251 비 그리스도인적 냄새가 나는 것과 불친절한 정신은 어떤 것이나 개입되도록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님께 자비와 용서를 구하기 위하여 모였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마 7:2). 누가 하나님 앞에 서서 흠없는 품성을 가지고 책망할 것 없는 생애를 하노라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감히 그들의 형제들을 비판하고 정죄할 것인가?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해서만 구원을 바랄 수 있는 자들, 그분의 피의 공로로 용서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자들은 그들의 동료 죄인들에게 사랑과 동정과 용서를 나타낼 가장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다.

형제들이여, 그대들이 예배 장소를 존중하도록 그대 자신을 교육시키지 않으면, 그대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형식적으로 예배를 드릴 것이다. 그러나, 영적 예배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신다(마 18:20).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을 느끼고, 다른 사람들의 결점과 잘못을 생각하는 대신에 그들 자신의 마음을 부지런히 살펴야 한다. 만일, 그대들에게 죄를 자백할 것이 있으면, 그대들은 자신의 의무만 다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의무만을 하도록 버려 두라.

그대들이 딱딱하고 냉랭한 정신을 나타냄으로 그대들 자신의 품성의 거친 모습 그대로 처신하게 되면, 그대들은 그대들이 구원해야 할 바로 그 사람들을 물리쳐 버리고 있는 셈이다. 그대들의 거친 태도는 그들에게서 함께 모이고 싶은 마음을 제거해 버리고 그들을 진리에서 쫓아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하는 수가 너무도 많다. 그대들은 그대들 자신도 하나님의 책망을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대들이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면, 주님께서는 그대들을 정죄하신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비 그리스도인적 태도를 고백해야 할 의무가 있다. 주님께서 교인들 각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그분의 변화시키는 은혜가 생애와 품성에 나타나기까지 이르기를 바라신다. 그러므로, 그대들이 함께 모일 때는, 그 모임이 서로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과 그분의 사랑을 이야기하기 위한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집회들은 심히 유익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252 그 집회들은 바로 하늘의 분위기로 넘쳐 있어야 한다. 단순히 시간을 채우기 위하여 지루하고 냉랭한 설교를 하거나 형식적인 기도를 드려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은 민첩하게 각자의 몫을 감당할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하고, 그들의 의무가 끝나면 집회도 마쳐야 한다. 이와같이 함으로 끝까지 흥미가 유지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예배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흥미 있고 매력적이어야 하며 무미 건조한 형식에 빠지도록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매분 매시간, 매일,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야 한다. 그렇게 될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모일 때 그분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속에 있게 되고, 그것이 사막의 샘물처럼 솟아나서 모든 사람들에게 생기를 주고, 멸망해 가는 사람들에게 생명수를 마시고자 하는 열망을 일으켜 줄 것이다.

우리는 두세 사람들에게 온 교회를 위하여 일을 하도록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강하고 적극적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맡겨 주신 사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우리는 강하고 열렬한 관심으로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질문해야 한다. “주님께서 내게 무엇을 하기를 바라십니까? 나는 이 시대와 영원을 위하여 나의 일을 어떻게 수행할까요?” 우리는 개인적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데 우리의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열렬하고 경건하게 성경을 탐구하는 데 도움이 될 모든 수단을 할 수 있는 대로 다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진리로 말미암아 성화되어야 한다.

중상하는 말을 제거해 버릴 것

교회에 가장 큰 악을 만들어 내는 죄악들 중에서, 중상하는 말과 비난하는 정신을 제거해 버리기 위하여 모든 교회에서는 열렬한 노력을 해야 한다. 혹독한 태도와, 결점을 찾아내는 일은 사단의 소행으로 견책되어야 한다. 상호간의 사랑과 신뢰가 교인들에게 권장되고 강화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형제들을 사랑함으로 험담과 비난에 대하여 그들의 귀를 막아야 한다. 고자질장이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을 가르쳐 주라. 그에게 성경의 말씀을 순종하게 하고, 그의 불평을 그가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로 직접 가져가도록 가르쳐 주라. 253 이와 같은 연합된 행동은 빛의 홍수가 교회로 밀려들어오게 해주고 악의 홍수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닫아 줄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사데 교회에 대한 참된 증인의 권고는 다음과 같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네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라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계 3:1-3). 이 교회에 대하여 특별히 책망한 죄는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지 아니하였다는 점이다. 이 경고는 우리에게도 해당되지 않는가? 우리는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빛에 우리의 마음을 비추어서 살펴보자.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도움으로 우리의 마음을 올바르게 정립하는 것을 우리의 첫째 과업으로 삼자.

하나님의 동역자가 된 교인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구원을 위한 사업에서 당신의 몫을 다하셨다. 이제 그분께서는 교회의 협력을 요구하신다. 한 편에는 그리스도의 피와 진리의 말씀과 성령이 있고, 다른 한 편에는 멸망해가는 영혼들이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은 하늘이 제공한 축복을 받아들이도록 사람들을 이끄는 일을 해야 할 몫이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엄격하게 살펴보고 우리가 이런 일을 했는지 알아보자. 우리는 우리의 동기와 우리 생애의 모든 행위를 살펴보자. 기억의 벽에는 많은 불쾌한 그림들이 걸려 있지 않는가? 그대들은 때때로 예수님의 용서가 필요했다. 그대들은 그분의 자비와 사랑을 변함없이 의존해 왔다. 그러나, 그대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대들에게 나타내신 그 정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내지 못한 것이 아닌가? 그대들은 금지된 길로 들어가는 것을 본 사람에 대하여 책임감을 느낀 적이 있는가? 그대들은 그에게 친절하게 충고하였는가? 그대들은 그를 위하여 울면서 그와 함께, 또한 그를 위하여 기도하였는가? 그대들은 부드러운 말과 친절한 행동으로 그대들이 그를 사랑하고 그가 구원받기를 원한다는 것을 그에게 보여 주었는가? 254 그대들은 성격의 결함과 죄악적 습관의 무거운 짐에 눌려 비틀거리고 있는 자들을 만날 때 그들을 마땅히 도와 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 홀로 싸움을 싸우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았는가? 몹시 시험받고 있는 자들에게 세상은 동정의 손을 뻗어 사단의 그물 속으로 그들을 유인해 들이고자 준비하고 있는 반면에, 그대들은 그들을 지나쳐 버리고 있지 않는가? 그대들은 가인처럼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고 대답할 준비를 갖추고 있는가? (창 4:9) 교회의 위대한 머리 되시는 분께서는 그대들의 생애의 과업을 어떻게 여기셔야 할 것인가? 모든 영혼들을 당신의 피로 산 것으로 귀중하게 여기시는 그분께서는 옳은 길에서 떠나 방황하는 자들에 대한 그대들의 무관심을 어떻게 보실까? 마치 그대들이 그들을 버리듯이 그분께서 그대들을 버리실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가? 진실하게 주님의 집을 돌보시는 그분께서 등한히 하는 것을 모두 알고 계심을 명심하라.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랑이 그대들의 생애에서 사라지고, 마침내 기계적인 형식이 마음에서 우러나는 예배를 대신하지 않았는가? 그대들이 한때 예수님의 이름을 들을 때에 느꼈던 심령의 뜨거움은 어디에 있는가? 그대들이 일찌기 헌신의 참신한 상태에 있을 때, 영혼들에 대한 그대들의 사랑은 얼마나 열렬하였던가! 그대들은 얼마나 열렬하게 구주의 사랑을 그들에게 나타내고자 하였던가! 그 사랑이 사라지자, 그대는 쌀쌀하고 비판적이고 각박해졌다. 그 사랑을 회복하기 위하여 힘쓰라. 그리고,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하여 노력하라. 만일, 그대들이 이 일을 하기를 거절할 것 같으면, 빛과 경험과 기회를 적게 가진 다른 사람들이 나타나서 그대들의 위치를 차지하고 그대들이 등한히 한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업은 유혹받고 시험받고 멸망해 가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교회에 봉사 사업을 맡겨 주신다. 그러면, 누가 그 일을 수락할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교회가 한 선한 일과 극기의 행위를 잊지 않으신다. 모든 것들이 하늘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런 것들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교회가 그 사명 완수의 사업을 중지할 때, 이전 것들이 교회를 구원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에 나타난 심한 무관심과 태만이 그치지 않는 한, 교회는 점차적으로 힘을 얻어 가는 대신 계속해서 연약함과 형식주의로 전락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상태를 용납할 것인가? 사랑과 영적 열성에 있어서 무감각한 마비상태와 슬픈 퇴보가 계속되어야 할 것인가? 이런 상태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발견하셔야 할 것인가?

255 형제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개혁을 위한 결정적인 노력을 하지 않을 것 같으면, 그대들의 등불은 반드시 깜박거리고 희미해져서 마침내 어둠 속에 잠겨 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지금 주어진 기회는 짧을 것이다. 만일, 이 은혜와 회개의 기회를 이용하지 않은채 지나쳐 버릴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는 경고가 주어진다(계 2:5). 이 말씀은 오래 참으시고 기다리신 분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이 말씀은 결코 주무시지 않으시는 감찰자께서 교회와 개인들의 행위를 살피시고 그들에게 하시는 엄숙한 경고이다. 그들이 땅만 폐하는 자들로서 잘리어지지 않는 유일한 이유는 그분의 놀라운 인내력 때문이다. 그러나, 그분의 성령은 언제까지나 애쓰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의 인내는 조금만 더 지체될 것이다.

처음 사랑의 화목

그대들의 믿음은 지금까지의 것보다 좀더 나은 것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드러날 것이다. 마지막 날에 온 세상의 재판장이 내릴 마지막 판결은 가난한 자와 압제당하는자와 시험받는 자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실제적 활동에 의하여 결정될 것이다. 그대들은 언제나 이런 사람들을 한쪽 편에 내버려둔 채 구속받은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도성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신다(마 25:45).

과거에 소홀히 한 일을 보상하기에는 아직도 너무 늦지 않다. 처음 사랑과 처음 열성을 회복하도록 하자. 그대들이 쫓아 버린 자들을 찾아내어 고백으로써 그대들이 가한 상처를 싸매 주라. 자비의 사랑으로 된 위대한 마음에 접근해 가서 그 거룩한 동정의 물결이 그대들의 마음속으로 흘러들어가게 하고, 거기서 다시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흘러가게 하라. 예수님께서 당신의 귀중한 생애에서 나타내신 친절과 자비는 우리들이 우리의 동료들, 특히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의 형제가 된 자들을 취급하는 방법에 있어서 하나의 모본이 되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생애의 큰 투쟁에서 피곤하고 낙심 상태에 빠져 있다. 256 그런 사람들에게는 마음을 즐겁게 해주고 용기를 주는 한 마디의 친절한 말이 승리의 힘이 될 것이다. 결코, 결코, 무정하고 냉랭하고 동정심 없고 비난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 용기를 주고 희망을 일으켜 주는 말을 할 기회를 결코 잃어버리지 말라. 우리는 친절에서 나온 부드러운 말이 얼마나 멀리까지 그 영향이 미치며 그리스도를 닮은 우리의 노력이 어떤 무거운 짐을 가볍게 해줄 것인지 결코 예측할 수 없다. 잘못을 저지른 자들은 온유하고 부드러운 정신과 인자한 사랑 외의 다른 방법으로는 결코 회복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교회에 귀중한 사람들을 소유하고 계신다. 거기에는 또한 알곡 사이에 있는 가라지와 같은 남녀들이 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대들이나 어떤 다른 사람들에게 누가 가라지이며 누가 알곡인지 말하는 일을 맡기지 않으신다. 우리는 결코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분명히 알고 있는 더욱 큰 결점이 우리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의 결점들을 보고 비난할 수도 있다.―1885년, vol.5, pP.333, 334.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를 꼭 같은 정도로 보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유한한 인간의 평가와 마찬가지로 죄악을 평가하심에 있어서 등급을 두신다. 그러나, 사람의 눈에는 그들의 행동에 나타난 이런 저런 잘못이 아무리 사소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작은 죄가 없다. 사람들에게 작은 죄처럼 보이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큰 죄로 여기시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교만과 이기심과 탐욕은 책망을 받지 않고 지나쳐 버리는 한 편, 술주정뱅이는 멸시를 받고 그의 죄 때문에 하늘 나라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교만과 이기심과 탐욕은 특별히 하나님께서 불쾌히 여기시는 죄악이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신다. 바울은 탐심을 우상 숭배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난 우상 숭배에 대한 위협적인 선고를 잘 아는 자들은 이 죄가 얼마나 무서운 죄임을 즉시 깨닫게 될 것이다.―1885년, vol.5, P.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