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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장-헌금을 아낌*

87장 - 헌금을 아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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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5 그리스도의 사업을 마음에 품고 있는 _____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있을 것이다. 우리 형제 자매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구속주를 믿는 믿음과 사랑으로 자원해서 드린 헌금은 그들에게 축복을 가져다 줄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성도들의 너그러운 모든 행동을 주목하시고 기억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집을 마련할 때는, 하나님을 믿는 큰 믿음과 신뢰가 있어야 한다. 사업상의 거래에 있어서 아무런 모험도 하지 않는 자들은 거의 발전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위한 사업에 있어서도 믿음을 가지고 그분의 사업에 투자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떤 사람들은 가난할 때 그들이 가진 적은 것으로 관대하지만, 재물을 얻어 감에 따라 인색해진다. 그들이 그렇게 적은 믿음을 가지는 이유는, 그들이 번영함에 따라 계속적으로 전진하지 않고, 희생을 하면서까지 하나님의 사업에 바치지 않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제도에 의하면, 하나님께 먼저 헌금을 드리도록 요구되었다. 추수 때나 포도 수확 때에 밭의 첫 열매-곡식, 포도즙, 기름-는 주님께 헌물로 드려져야 했다. 이삭들과 밭의 모퉁이는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남겨졌다. 자비로우신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가난한 자들의 필요를 등한히 하지 않으셨다. 양털을 깎을 때 그첫 양털과, 밀 타작할 때 그 첫 열매들은 주님께 드려져야 하였다. 그리고, 가난한 자들, 과부들, 고아들, 나그네들을 그들의 잔치에 초청하도록 명령되었다. 매년 끝에,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했는지의 여부를 엄숙히 맹세하도록 요구되었다.

466 이런 규례는 모든 일에 있어서 그분이 첫째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백성들에게 인식시켜 주기 위하여 주님께서 정하셨다. 이러한 헌물 제도를 통하여, 그들은 은혜로우신 주님께서 그들의 밭과 양떼와 소떼의 진정한 소유주가 되시며, 하늘의 하나님께서 파종과 수확기에 햇볕과 비를 내리시고, 그들이 소유한 모든 것이 그분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마음에 간직하여야 하였다. 모든 것이 주님의 소유물이었고, 그분께서 그들을 당신의 재물을 맡은 청지기로 삼으셨다.

성막을 짓고 성전을 세울 때 나타난 유대인들의 관대함은 그 이후의 어떤 그리스도인들도 필적할 수 없는 헌금의 정신을 보여준다. 그들은 오랜 애굽의 종살이에서 바야흐로 풀려나서 광야의 방랑자들이 되었다. 서둘러 여행을 떠난 그들을 추격한 애굽 군대로부터 구원을 받기가 무섭게, 하나님의 말씀이 모세에게 임하였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 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출 25:2).

그분의 백성들은 소유물이 조금밖에 없었고, 그것이 불어날 기쁜 전망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 앞에는 하나님을 위하여 성막을 짓는다는 단 하나의 목적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므로, 그들은 그분의 음성에 순종해야 한다. 그들은 아무것도 아끼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되 그들의 증가된 수입의 특정부분을 드린 것이 아니고 실제적인 소유물의 대부분을 드렸다. 그들이 즐겁게 또한 마음을 다하여 주님께 바쳤으므로, 그분께서는 그 일을 기뻐하셨다. 그것이 모두 그분의 것이 아니었던가? 그들이 소유한 모든 것은 그분이 그들에게 주신 것이 아니었던가? 그분이 그것을 요구하신다면, 빌려주신 분께 그분의 것을 돌려드리는 것이 그들의 의무가 아니었던가?

강요가 필요하지 않았다. 백성들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가져왔다. 소용될 것보다 더 많이 가져 왔으므로, 그만 가져 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성전 건축 때에도, 재물에 대한 요구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반응으로 충족되었다. 백성들은 마지못해 드리지 않았다. 467 그들은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한 건물이 세워질 것이라는 전망으로 즐거워하였으며, 그 목적에 쓰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 드렸다. 다윗은 모든 회중 앞에서 주님을 송축하였다.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 29:14). 또다시 그의 기도를 통하여, 다윗은 다음과 같이 감사하고 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대상 29:16).

다윗은 그의 모든 헌물이 누구에게서 왔는지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이 시대에 구주의 사랑 안에서 기뻐하는 자들은 그들의 금과 은이 주님의 소유물이라는 사실과, 그것이 그들을 부요하게 하며 만족시키기 위하여 인색하게 간직될 것이 아니라 그분의 영광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분은 당신의 피조물에게 빌려주신 모든 것에 대해 명백한 권리를 가지고 계신다. 그들이 소유한 모든 것은 그분의 것이다.

재물을 구하는 고상하고 거룩한 사업이 있다. 이렇게 투자된 재물이 개인적 만족을 위하여, 또한 소유욕을 위해 이기적으로 축적된 것보다 더욱 그 드린 자에게 고상하고 영속적인 기쁨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 금액이 얼마이든 간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재물을 요구하실 때에 기꺼이 반응하면, 그 헌물은 그분께 헌납된 예물이 되며, 그 드린 자를 위하여 하늘에는 좀이 쏠지 못하고 불이 사르지 못하며 도둑이 침범하여 훔치지 못할 보물이 쌓인다. 이러한 투자는 안전하다. 돈은 구멍이 뚫리지 않은 전대에 넣어진다. 그것은 안전하다.

히브리 인들이 가진 것보다 더 많은 빛을 가지고 있노라고 자부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들보다 적게 드릴 수 있을 것인가? 시대의 마지막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들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예물로 만족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의 관대한 헌물은 그들 자신의 국가만의 유익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마지막 시대의 사업은 전세계에 미치는 것이다. 진리의 기별은 모든 나라와 방언과 백성들에게 전해져야 하며, 여러 나라 말로 인쇄된 진리의 인쇄물들은 마치 가을 낙엽처럼 뿌려져야 한다.

십자가는 희생의 원칙을 보여 줌

468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벧전 4:1). “저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일 2:6). 우리는 스스로 자문해 보자. 우리 구주께서 우리의 처지에 계셨으면 어떻게 하셨을까? 영혼의 구원을 위한 그분의 노력은 어떠했는가? 그리스도의 모본은 이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그분은, 인간이 있는 곳에서 그들과 만나시기 위하여 당신의 왕위를 떠나시고, 영광을 버리시고, 부를 희생하시고, 신성을 인성으로 바꾸어 입으셨다. 그분의 모본은 죄인들을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버리셨음을 보여 준다.

사단은 하와에게,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상태는 허락되지 않은 식욕을 만족시킴으로 얻어질 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자아 부정을 통하여 이루질 것이었다. 치욕의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구속을 위한 고통을 당하실 때에, 인간의 본성은 높여졌다. 십자가를 통하여서만 인간 가족은 높임을 받아 하늘과 연결될 수 있었다. 하늘을 향한 우리의 여행의 매발걸음에서, 우리는 자아 부정과 십자가들을 만난다.

관대한 정신은 하늘의 정신이며, 이기적 정신은 사단의 정신이다. 그리스도의 자아 희생적 사랑은 십자가 위에 나타나 있다. 그분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당신이 소유한 모든 것과, 당신 자신까지라도 주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복된 주님을 따르는 모든 자들의 자선심에 호소한다. 거기에 예시된 원칙은 주고 또 주라는 것이다. 실제적 자선과 선한 행동으로 실천된 이 원칙은 그리스도인 생애의 진정한 열매이다. 세상에 속한 자들의 원칙은 가지고 가지라는 것이며, 이렇게 하여 그들은 행복을 얻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이 적용된 모든 행동의 열매는 불행과 죽음이다.

지상의 거민들에게 진리를 전하고 그들을 죄와 무관심에서 구해내는 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의 사명이다. 사람들은 진리를 통해 성화되기 위하여 그것을 소유해야만 하며, 우리들은 하나님의 빛의 통로이다. 469 우리의 재능, 재물, 지식은 단지 우리의 유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것들은 영혼 구원을 위하여, 또한 인간을 죄된 생애에서 향상시키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무한하신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 사업에 있어서 열렬한 일꾼이 되어, 회개하고 믿는 죄인들을 거룩하신 구속주께로 인도하며,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고상한 의미를 그들에게 새겨 주어야 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이 얼마나 비할 데 없는 사랑인가! 얼마나 심오한 명상의 주제이며, 그분을 사랑하지 않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인가! 이를 생각할 때, 영혼은 굴복당하고, 마음은 하나님의 뜻에 사로잡힐 것이다. 얻기 위하여 열광했으나 실망하고, 세상을 좇는데서 행복을 얻지 못한 자들은 그들의 심령의 끝없는 주림과 기갈을 진정시키기 위하여 이 진리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이기심의 저주

사망의 그늘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빛을 전하기 위하여, 그대가 사는 큰 도시에는 하나님의 선교사들이 필요하다. 지혜의 온유와 믿음의 능력으로, 피곤한 영혼들을 자비로운 구속주의 품으로 끌어올리기 위하여 경험 많은 손길들이 필요하다. 아, 이기심! 얼마나 큰 저주인가! 그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업에 종사하지 못하게 한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뜨거운 열심으로 불타오르게 할 의무의 요구를 깨닫지 못하게 한다. 우리의 모든 활력은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일에 기울어져야 한다. 오류의 지도자들과 우리의 관심을 같이 하는 것은 잘못된 편을 도와 주는 일이 되고, 우리의 대적을 이롭게 하는 것이 된다. 하나님의 진리는 죄와의 타협, 책략과의 연관, 범죄와의 결속을 모른다. 도움이 필요할 때 원수를 도와 주는데서 발견되는 자들이 아니고, 언제나 점호에 응하여 즉각적인 행동을 위해 준비된 군사들이 필요하다.

470 우리의 사업은 위대한 사업이다. 그러나, 이 거룩한 진리들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사단의 궤변에 마비되어,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히려 방해한다. 어느 때에 그들이 주님을 기다리는 자들처럼 행동할 것인가? 어느 때에 그들은 믿음에 일치되는 열심을 나타낼 것인가? 많은 사람들은 이기적으로 재물을 간직하고, 죽은 후에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어떤 큰일을 하리라는 계획으로 자신의 양심을 달랜다. 그들은 교회와 교회의 각종 사업에 많은 금액을 기증하겠다는 유언장을 만들고는 그들에게 필요되는 모든 것을 다했다는 생각으로 안심한다. 이 행동의 어떤 면이 그들의 자아 부정을 보여 주고 있는가? 오히려, 그들은 이기심의 진정한 본질을 보여 주었다. 그들은 그들의 돈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될 때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그들은 가능한 한 오랫동안, 즉 물리칠 수 없는 죽음의 사자에 의해 재물을 버리도록 강요받기까지는 그것을 간직할 것이다.

이러한 유언장은 흔히 실제적인 탐욕의 증거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당신의 청지기로 삼으셨으며, 어떤 경우에도 우리의 의무를 등한히 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그 의무를 대신하도록 위임할 권한을 우리에게 주지 않으셨다. 진리의 사업을 전진시키기 위한 재물에 대한 요청은 지금이 가장 절실하다. 우리의 돈이 현재보다 더 많은 양의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다시 없을 것이다. 재물을 바르게 사용하는데 있어서 지체되는 매일은 그것으로 영혼을 구원하는데서 선을 행할 수 있는 기간을 줄이고 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도록 주신 그 일을 다른 사람들이 하도록 위임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주신분을 부당하게 취급하게 된다.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해야 할 자선의 사업을 우리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잘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그의 생전에, 이 문제에 있어서 그 자신의 유언을 실천하기를 바라신다. 역경, 사고, 음모가, 계획된 자선의 행위를 영원히 좌절시킬 수도 있으며, 그 때에 재물을 쌓아 둔 자는 그것을 돌보기 위해 더 이상 살아 남아 있지 않게 된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선을 행할 현재의 황금 기회를 소홀히 함으로,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쓰여지도록 맡겨 주신 재물을 주님께 돌려드리기도 전에 청지기 직분에서 쫓겨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슬픈 일이다.

“탐심을 물리치라”

471 그리스도의 가르침 가운데 두드러진 것 하나는 그분이 자주, 또한 진지하게 탐욕을 책망하시고, 세상 재물을 모으는 것과 이득에 대하여 지나치게 애착하는 위험을 지적해 내신 것이다. 부자의 저택에서, 성전과 길거리에서, 그분은 구원을 얻고자 질문하는 자들에게 경고하셨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눅 12:15).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눅 16:13).

교회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떠나가게 하고 그 영성을 죽이는 것은 돈을 모으기에 이같이 몰두하는 것과, 이득을 얻기 위한 욕망이 빚어 내는 이기심이다. 부를 축적하기 위한 계획과 수고가 머리와 손을 끊임없이 차지하게 되면, 하나님과 인간의 요구를 잊어버리게 된다. 하나님께서 번영으로 우리를 축복하신다 해도, 우리의 시간과 주의가 그분에게서 떠나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향하여 돌려져서는 안 된다. 시여자는 선물보다 더 크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고 값으로 산 것이 되었다.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 무한한 대가가 지불되었음을 잊었는가? 우리 속에서 감사의 마음이 사라져 버렸는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이기적인 안일과 방종의 생애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가?

만일, 그리스도께서 각 방면으로 직면한 배은 망덕과 능욕 때문에 지쳐서 그분의 사업을 포기하셨다면 어찌 되었을까! “다 이루었다”고 외친 단계까지 가지 못하셨다면 어찌 되었을까! 만일, 그분이 받으신 대접에 실망하여 하늘로 돌아가셨다면 어찌 되었을까! 만일, 그분이 땀구멍에서 핏방울 같은 큰 땀방울이 떨어지게 한 겟세마네 동산의 심령의 고통을 통과하지 못하셨다면 어찌 되었을까!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의 구속을 위하여 활동하실 때 비할 데 없는 사랑과, 하늘 아버지의 뜻에 대한 헌신으로 움직이셨다. 그분은 당신의 굴욕의 바로 그 순간까지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애를 쓰셨다. 그분은 타락한 죄인을 위해 가난과 자아 부정으로 당신의 생애를 보내셨다. 472 그분은 자신이 소유한 이 세상에서 당신의 지친 머리를 둘 곳이 없으셨다. 우리는 이 무한한 자아 희생의 열매들을 거두고 있다. 그러나, 수고가 행해져야 하고 영혼 구원에 있어서 구속주의 사업을 돕기 위하여 우리의 돈이 필요되는 때에, 우리는 의무를 회피하고 면하고자 기도한다. 비열한 게으름, 부주의한 무관심, 악한 이기심이 하나님의 요구에 대한 우리의 지각을 가리운다.

아, 우리가 안일에 빠져 우리 자신을 영화롭게 하고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하기 위하여 돌아가신 그 영혼들을 잊어버리고 있는 동안, 하늘의 임금, 영광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시 면류관을 쓰고 쓴 잔을 마셔야만 하겠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가 힘을 가지고 있을 때에 바치도록 하자. 우리에게 힘이 있는 동안 일을 하자. 아직 해가 있을 때에 일하자. 그분의 인정을 받고 상급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봉사 사업에 시간과 재물을 드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