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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장-세상을 사랑함*

77장 - 세상을 사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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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 사단이 지극히 높은 산에서 우리 주님에게 제시한 유혹은 인간이 만나야 할 주된 유혹 가운데 하나이다. 영광 중에 드러난 세상 왕국은, 그리스도께서 보다 초월한 자에게 드리는 경배를 사단에게 드리는 것을 조건으로, 사단에 의해 그리스도께 선물로 제시되었다. 우리 구주께서는 이 유혹의 힘을 느끼셨으나 우리를 위하여 대항하시고 승리하셨다. 만일, 인간이 동일한 유혹에 의해 시험을 당하지 않을 것이었다면, 그분은 이 문제로 시험을 당하지 아니하셨을 것이다. 시험을 대항하심으로 그분은, 사단이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접근하여 성실에서 떠나도록 미혹할 때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에 대한 본을 보이셨다.

어떤 사람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되면서 동시에 세상 사물에 애정을 둘 수는 없다. 요한은 그의 첫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2:15). 이 사단의 유혹을 힘을 다하여 대항하신 우리의 구속주께서는 세상을 사랑하도록 미혹하는 이 유혹에 넘어갈 인간의 위험을 익히 아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점에 있어서 시험을 당하시고, 인간을 위하여 승리하심으로 당신 자신을 인간과 동일시하셨다. 그분은, 사단이 인간을 유혹함에 있어서 가장 잘 성공하는 바로 그 점들을 경고를 통하여 깨우쳐 주셨다. 그분께서는, 인간이 식욕과 세상의 부와 명예를 사랑하는 마음에 대하여 특별히 경계하지 않으면 사단이 인간에 대해 승리를 거둘 것을 아셨다. 그분은 말씀하신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19-21, 24).

405 여기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앞에 두 주인 곧 하나님과 세상을 제시하시며, 우리가 양자를 동시에 섬기는 것이 도무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제시하셨다. 이 세상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사랑이 주도권을 쥔다면, 우리는 다른 어떤 것보다 우리의 주의를 끌 가치가 있는 사물을 옳게 식별하지 못할 것이다.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추방시켜 버릴 것이며, 우리의 최고의 관심은 세상에 대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애정과 헌신에 있어서 세상의 사물과 같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행동은 세상 보화가 우리의 애정을 차지한 정도를 정확하게 보여 줄 것이다. 영원한 관심사는 이차적인 것이 되는 반면에, 세상 관심사에 가장 큰 주의와 염려와 활동을 경주한다. 그리하여, 사단은 그리스도께 요구했으나 얻지 못한 그 경배를 사람에게서 받는다. 그리스도를 따르노라 공언하는 자들의 믿음을 부패시키고 그들을 도덕적 능력에 있어서 연약하게 만드는 것은 세상에 속한 이기적 사랑이다. 세상의 부를 사랑할수록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더 멀리 떠나게 되며, 부패케 하는 세상의 감화와 그들이 처해 있는 위험에 대하여 자각할 수 있는 그분의 거룩한 속성을 덜 받게 된다.

유혹을 통하여 세상을 매우 매력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 사단의 목적이다. 부와 세상의 명예에 대한 사랑을 통하여, 사단은 그리스도인이라 공언하는 자들의 애정까지도 차지하는 매혹적인 능력을 갖는다. 그리스도인임을 공언하는 사람들 중 많은 무리가 부를 얻기 위하여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하며, 그들의 목적하는 바에 더 크게 성공할수록 고귀한 진리에 대한 사랑이 감소되며, 그 진리의 확장에 대한 관심도 줄어든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사랑을 상실하고 정신병자처럼 행동한다. 부를 얻는 일에서 번영할수록, 그들은 더욱 많이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이유로 더욱 가난함을 느끼며, 하나님의 사업에 더욱 적게 투자하게 될 것이다.

406 부에 대한 정신병적인 사랑을 가진 자들의 행동은 두 주인, 곧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돈은 그들의 신이다. 그들은 돈의 능력 앞에 경배를 드린다. 그들은 모든 긴요한 점에 있어서 세상을 섬긴다. 그들의 명예, 곧 그들의 장자의 상속권은 세속적 이익 때문에 희생된다. 이 지배적 능력이 그들의 마음을 다스리게 되고, 그들은 개인적 이익을 돌보고 세상의 보화를 증가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게 된다.

재물의 노예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말씀이나 원칙에 유의하지 않고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 많은 자들이 그리스도를 믿노라는 신앙을 고백할 수도 있다. 그들은 그들의 최선의 힘을 세속적 사업에 기울여서 재물을 섬긴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사단에 의해 속임을 당하고, 세속적 이득에 대한 빛나는 전망에 의해 그들의 상상력이 고조되어 있다는 사실은 두려운 일이다. 그들은 세상에서 명예와 부를 얻고자 하는 그들의 목적이 달성될 경우에 누리게 될 완전한 행복에 대한 생각으로 도취된다. 사단은 “이 모든 것” 곧 그대가 그것으로 큰 선을 행할 수 있는 이 모든 권세, 이 모든 부를 “내가 네게 주리라”는 매력적인 뇌물로 그들을 유혹한다. 그러나, 그들이 얻기 위하여 수고한 그 목적을 달성할 경우, 그들은 거룩한 품성을 나누어 받게 하는 자아 부정의 구속주와 맺은 관계를 끊어 버린다. 그들은 그들의 세속적 보화에 집착하며, 그리스도를 위하여 요망되는 자아 부정과 자아 희생을 멸시한다. 그들은 그들의 마음이 고정되어 있는 그 아까운 세상 보화를 나누어 줄 마음이 없다. 그들은 주인을 바꾸어 버렸다. 그들은 그리스도 대신에 재물을 받아들였다. 재물이 그들의 신이며, 그들은 재물을 섬긴다.

사단은 부를 사랑하는 마음을 통하여, 이 속임을 당한 영혼들의 경배를 자신에게 돌리게 했다. 변화는 워낙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진전되고, 사단의 능력 또한 매우 기만적이고 교묘하므로, 그들은 세상과 같은 모양이 되었으나 그리스도를 떠난 사실과, 이름만으로 그분의 종이 되어 있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407 사단은 시험의 광야에서 그리스도를 대하던 것보다 더 조심스럽게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그가 거기에서 실패함으로 견책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정복당한 원수이다. 그는 사람에게 직접 와서 공공연한 경배로 자신에게 경의를 표하도록 요구하지 않는다. 그는 단순히 사람들에게 그들의 애정을 이 세상의 좋은 것들에게 두라고 요구한다. 마음과 애정을 붙드는 일에서 사단이 성공한다면, 하늘 사물의 매력은 가리워질 것이다. 사단이 사람에게 바라는 것이란 오로지 그가 사단의 유혹의 기만적인 능력에 떨어져서 세상을 사랑하고, 계급과 지위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고, 그의 애정을 지상의 보물에 두는 것이다. 사단이 이것을 획득하게 되면, 그가 그리스도에게 요구한 모든 것을 얻는 셈이 된다.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그리스도의 모본은, 승리를 얻을 수 있는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 사단의 공격을 계속 저항하는데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유혹의 투쟁에서 영혼의 원수를 승리하신 그분은, 인류에 대한 사단의 능력을 이해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사단을 승리하셨다. 승리자로서 그분은, 우리가 사단의 유혹을 대항하는 노력에 있어서 우리의 연약함을 그분의 능력과 연합시키고 우리의 무가치함을 그분의 공로와 연합시키도록 그분의 승리의 유리한 조건을 우리에게 주신다. 강력한 유혹 아래 처할 때, 우리는 그분의 지속적인 능력에 의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그분의 전능하신 이름으로 대항할 수 있고 그분이 승리하신 것처럼 승리하게 된다.

우리의 구속주께서는 말할 수 없는 고난을 통하여, 우리의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 구원을 두셨다. 이 세상에서 그분은 존경을 받지 않으시고 사람들에게 알려지지도 않으셨는데, 그 이유는 그분의 놀라운 겸손과 굴욕을 통하여, 사람을 높이셔서 그분의 궁정에서 하늘의 명예와 불멸의 기쁨을 받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오직 투쟁, 겸비와 고생을 통해서만 하늘을 얻을 수 있다고 해서, 타락한 인간이 불평할 수 있겠는가?

교만한 마음을 가진 많은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내가 하나님께 가납되었다는 보장을 얻고 영원한 상급을 받기도 전에 내자신을 낮추고 회개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408 어찌하여 하늘로 향한 길이 어려움이 적고 더욱 즐겁고 매력적일 수 없는가?” 우리는 의심하고 불평하는 이 모든 자들을, 인간의 죄짐을 지시고 고난을 당하시고 가장 심한 굶주림의 고통을 견디신 우리의 위대한 모본자께로 향하게 하고자 한다. 그분은 죄가 없으셨고, 더우기 그분은 하늘의 왕자이셨다. 그러나, 인간을 위하여 그분은 인류의 죄가 되셨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이 하늘을 얻을 수 있게 하시고자 모든 것을 희생하셨다. 이제 인간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무엇을 희생함으로 영원한 영광을 얻게 될 것인지 보여 줄 차례이다. 구원과 그 대가의 크기를 올바로 인식하는 자들은 그들이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려야 한다는 것과, 투쟁과 자아 부정이 이생에서의 그리스도인들의 몫이라는 사실에 대해 결코 불평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구원에 대한 조건들을 제정하셨다. 자아를 낮추는 것과 십자가를 지는 것은 회개하는 죄인에게 위로와 화평을 주기 위하여 마련된 방편이다. 예수님께서, 인간이 감당하도록 결코 요청받지 아니할 모욕과 희생을 당하셨다는 것을 생각할 때, 모든 불평의 소리는 잠잠해져야 할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것을 진정으로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죄인의 구주와 대언자로 믿는 믿음을 통하여 가장 큰 기쁨이 이르러 온다.

사람들은 이 세상의 보물을 얻기 위하여 큰 희생을 치르고 애를 쓴다. 그들은 어느 정도의 세상 이익을 얻기 위하여 수고와 고난과 궁핍을 견딘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죄인들이 불멸의 보화와, 하나님의 생명과 유사한 생명, 쇠하지 않는 영원한 영광의 면류관을 얻기 위하여 인내하고 고난을 참고 희생하지 않을 것인가? 우리는 어떠한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영원한 영광의 중한 하늘의 무한한 보화와, 그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유산을 획득해야 한다. 우리는 자아 부정에 대하여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생명과 영광의 주님께서 우리보다 먼저 그것을 견디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난과 궁핍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 하늘의 임금께서 죄인을 위하여 그것을 감수하셨기 때문이다. 409 안락과 편의를 희생당한다고 해서 단 하나의 불평의 생각도 갖지 말아야 한다. 구세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 모든 것을 당하셨기 때문이다. 우리의 모든 자아 부정과 궁핍과 고난을 아무리 크게 평가할지라도, 그것은 생명의 주께서 지불하신 것에 비하면 모든 면에 있어서 훨씬 작은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행한 어떤 희생이라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하신 것과 비교하면 보잘것없는 것이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