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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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1842년 6월에, 밀러 씨는 포틀랜드에서 두번째 전도 강연회를 하게 되었다. 나는 낙망 가운데 떨어져, 구주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이번 강연에 참석하는 것을 큰 특권으로 생각했다. 이 두번째의 강연은 첫번째보다 더 큰 흥분을 그 도시에 일으켰다. 불과 소수를 제외하고, 여러 교파들은 밀러 씨에 대하여 교회의 문을 닫았다. 여러 강단에서 나온 많은 설교들이, 이른바 그 설교자의 광신적 오류를 폭로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열광적인 청중들이 무리를 지어 그 모임에 참석하였지만 많은 사람들이 집회장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회중들은 이상하게도 조용하고 주의력을 집중했다. 그의 설교 방법은 어조가 화려하거나 웅변적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청중들의 부주의한 무관심을 깨우쳐 주는 분명하고 놀라운 사실들을 취급했다. 그는 그의 말과 이론을 전개해 갈 때, 성경의 증거로 그것들을 입증했다. 그의 말에는 확신시켜 주는 능력이 따랐으므로, 진리의 말로써 청중들에게 인상을 지어 주는 듯하였다.

22 그는 예의 있고 동정 깊은 사람이었다. 집 안에 있는 좌석이 다 채워지고 강단과 강도상 주변의 장소들까지 사람들로 메워진 것처럼 보였을 때, 나는 그가 강도상에서 복도로 걸어 내려가서 허약한 노인들이나 부인들의 손을 쥐고 그들에게 좌석을 찾아 준 후 다시 돌아가서 설교하는 것을 보았다. 그가 “밀러 아버지”라고 불리어진 것은 정말로 올바른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봉사의 대상이 된 자들을 자상하게 돌보고, 태도에 애정이 깊고, 온화한 성격과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흥미있는 설교가였으므로, 이른바 그리스도인들과 불신자들에게 똑같이 적절하고 유력하였다. 때때로, 고통스러울 정도의 엄숙함이 그의 집회에 파급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의 감동에 굴복하였다. 백발이 성성한 남자들과 나이 많은 할머니들이 떨리는 발걸음으로, 설교단이 가까운 자리를 찾았다. 장년들, 청년과 어린이들은 깊은 감동을 받았다. 기도의 제단에서 탄식하고 울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음성이 혼합되었다.

나는 하나님의 종이 한 엄숙한 말들을 믿었다. 동시에, 그 말들이 반대를 당하거나 조롱 거리가 되는 것을 볼 때 마음이 아팠다. 나는 자주 그 집회에 참석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미구에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을 믿었다. 그러나, 큰 걱정은, 그분을 만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끊임없이 마음의 성결에 대한 문제를 숙고하고 있었다. 나는 무엇보다, 이 큰 축복을 얻어서 하나님께 완전히 가납된 사실을 느끼고자 열망했다.

나는 감리교인들에게서 성화에 관하여 많은 것들을 들었다. 나는 강력한 정신적 흥분 때문에 육체적 힘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리고, 이것이 성화의 증거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께 완전히 헌신하기 위하여 무엇이 필요한지 깨달을 수 없었다. 그리스도인 친구들은, “지금 곧 예수님을 믿어라! 그분께서 그대를 지금 받아 주신다는 사실을 믿어라!” 하고 내게 말했다. 나는 그렇게 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나는 전신을 감전시킨 듯이 보이는 축복을 받은 것으로 믿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23 나는 내 마음의 완고함이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난 마음의 희열을 경험할 수 없게 하지나 않는지 의아하게 여겼다. 내 자신이 그 사람들과 다르고, 완전한 마음의 성결에서 오는 기쁨을 영원히 받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칭의(稱義)와 성화에 관한 나의 견해는 애매했다. 이 두 상태는 분리되고 서로 구분되어 나의 마음에 제시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 두 말의 차이를 깨닫지 못하고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설교자들의 모든 설명은 나의 어려움을 증가시켰다. 나는 내 자신을 위하여 축복을 주장할 수 없었다. 그리고, 감리교에서만 그것을 발견해야 하는지, 재림집회에 출석함으로, 무엇보다도 내가 바라던 바 거룩하게 하는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내 자신을 차단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아해 했다.

나는 여전히, 거룩하게 되었노라고 주장하는 자들 중 몇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신속한 재림에 관한 주제가 소개될 때 못마땅한 정신을 나타내는 것을 보았다. 이런 일은 그들이 공언한 거룩함의 표현이 아닌것처럼 보였다. 나는 왜 강단에 선 목사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왔다는 교리를 그처럼 반대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신조의 전파에는 개혁이 따랐으며, 가장 헌신적인 목사들과 평신도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진리로 받아들였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 자들은 그분의 오심에 대한 소식을 받아들일 준비를 갖추고 그 일이 가까웠음을 즐거워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들이 칭의라고 부른 것만을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는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읽었다. 그런데, 내가 영생에 대한 확신을 얻기 전에 도달해야 할 더 높은 목표가 있었다. 나는 그 문제를 계속해서 연구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리스도께서 미구에 오실 것을 믿었고, 그분께서 당신을 만나기에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 있는 나를 발견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정죄의 말씀이 밤낮 귀에 울렸고, 하나님을 향한 내 자신의 계속적인 부르짖음은,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하는 것이었다.

24 나의 마음속에서는 하나님의 공의가 그분의 자비와 사랑을 가리워 버렸다. 나는 영원히 불타는 지옥을 믿도록 가르침을 받아 왔다. 그리고, 나의 죄가 너무 커서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과, 내가 영원히 잃어버린바 될 것이라는 무서운 생각이 언제나 내 앞에 있었다. 지옥에 있는 영혼들에 관하여 들은 무서운 이야기는 나의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강단에 선 목사들은 잃어버린 자의 상태에 관하여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거룩한 자 외에는 아무도 구원하고자 하지 않으신다고 가르쳤다. 하나님의 눈은 언제나 우리에게 머물러 있고, 모든 죄는 기록되고 그 죄에 합당한 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 하나님께서 친히 무한한 지혜로 정확하게 책에 기록하고 계시므로, 우리가 범한 모든 죄는 성실하게 기록되었다.

사단은 그의 희생물을 사로잡아 가장 깊은 고통의 밑창으로 떨어뜨리고, 거기서 영원히 불타는 지옥의 공포 가운데 빠져 있는 우리의 고통을 보고 기뻐 날뛰는 자로 나타나 있다. 그 곳에는 수천 수만 년의 고통 후에, 타오르는 불길이 몸부림 치는 희생자들을 표면으로 휘감아 올리면, 그들은 “오, 주님! 얼마나, 얼마나 오랫동안 이런 일이 계속됩니까”라고 부르짖게 될 것이다. 그 때, “영원토록”이라는 대답이 큰 소리로 끝없이 깊은 구렁으로 내려갈 것이다. 다시 용해된 물결이 잃어버린 자들을 삼켜버리고, 그들을 결코 꺼지지 않는 불바다 속으로 빠뜨려 버릴 것이다.

이처럼 무서운 이야기를 들을 때, 나의 상상력은 너무도 예민해졌기 때문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지옥의 고통을 이미 느끼는 것처럼 생각되었으므로, 고통의 부르짖음을 억제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목사는 생애의 불확실성을 논하곤 하였다. 한순간에 우리는 여기에, 그리고 다음 순간에는 지옥에, 혹은 한순간에는 땅에, 그리고 다음 순간에는 하늘에 있을 수도 있다. 우리는 불못을 택하여 마귀를 동료로 삼을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하늘의 기쁨을 택하여 천사들을 우리의 친구로 삼을 것인가? 우리는 영원토록 잃어버린 영혼들의 부르짖음과 저주의 음성을 들을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예수님의 노래를 부를 것인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모든 지각에 뛰어난 사랑으로 당신의 피조물을 사랑하시며 당신의 나라에서 그들을 구원하기를 바라시는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신 죄인들의 친구가 아니고, 징죄받은 자들의 고통을 기뻐하는 폭군처럼 나의 마음에 제시되었다.

25 나의 감정은 매우 예민했다. 나는 어떤 생물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두려워했다. 나는 동물들이 학대받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팠다. 아마도 나의 동정은, 내 자신이 무분별한 잔인성의 희생물이 되어 나의 어린시절을 어둡게 만든 상처를 초래한 고통 때문에 더욱 쉽게 일어났던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피조물들의 고통을 보고 기뻐하신다는 생각을 마음에 품게 될 때, 흑암의 벽이 나를 그분에게서 분리시키는 것처럼 보였다. 우주의 창조주께서 악인들을 지옥에 빠뜨려 거기서 영원토록 불타게 한다는 것을 깊이 생각할 때, 나의 마음은 두려움 속에 묻히게 되었고, 그처럼 잔인하고 포악한 분이 나를 죄악의 파멸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을 낮추셨다는 사실에 실망했다.

나는 정죄받은 죄인의 운명을 내 것으로 받아들여, 영원토록 지옥의 불꽃을 견디되 하나님 자신이 존재하는 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와 같은 생각은 미치지 않을까 염려될 만큼 나의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나는 말 못하는 짐승을 부러워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곤 했다. 왜냐하면, 짐승들은 죽음 후에 형벌 받을 영혼이 없기 때문이었다. 여러 번,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다는 마음이 생겼다.

완전한 흑암이 나를 덮었고, 그 흑암의 그늘에서 나올 길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만일, 지금 내가 진리를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그 진리가 제시되었을 것 같으면, 나는 많은 곤란과 슬픔에서 구제받게 되었을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이 생각하고 그분의 엄격한 공의를 적게 생각했을 것 같으면, 하나님의 품성의 아름다움과 영광이 창조주에 대한 깊고 열렬한 사랑으로 나를 감동시켰을 것이다.

그 후 나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많은 사람들이 내 자신의 경험과 유사한 경험에 의하여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생각했다. 그들의 양심은 죄책감으로 충격을 받고, 그들의 떨리는 믿음은 약속된 하나님의 용서를 감히 주장하지 못했다. 지옥에 대한 정통적 설명이 그들의 피를 혈관 속에서 굳어지게 하고 인상이 그들의 기억의 판(板) 위에서 태워지는 것처럼 보일 때까지, 그들은 그 이야기를 들었다. 26 자나 깨나 무시무시한 장면이 그들 앞에 언제나 펼쳐져 있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현실은 상상 속에서 상실당하고, 그들은 다만 황당 무계한 지옥에서 동그라미를 그리며 피어오르는 불꽃을 보고, 멸망하는 자들의 부르짖음만을 들었다. 이성(理性)은 물러나고, 뇌는 무서운 꿈에서 나온 거친 환상으로 가득 채워졌다. 영원한 지옥에 대한 교리를 가르치는 자들은 그처럼 잔인한 신조에 대한 그들의 권위에 대해 더욱 면밀하게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는 공중 기도를 한 번도 드려 본 적이 없고, 기도회에서 다만 소심하게 몇 마디의 기도를 했을 뿐이었다. 이제, 나는 우리의 작은 사교집회에서 기도로써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마음이 혼란해져 생각을 표현하지 못할까 두려워서 감히 그렇게 하지 못했다. 한편,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너무도 강력하게 마음에 새겨졌으므로, 은밀하게 기도하고자 시도하면 나는 마치 하나님을 우롱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왜냐하면, 내가 그분의 뜻을 순종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절망이 나를 억눌렀다. 3주일의 긴 기간 동안, 한 줄기의 빛도 나를 두르고 있는 흑암을 뚫지 못했다.

마음의 고통은 심하였다. 때때로 온 밤 동안, 나는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의 쌍동이 자매가 먼저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그가 잠이 들면 조용히 침대를 떠나 마루 위에 무릎을 꿇고,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말 없는 고민을 안고 조용히 기도를 드리곤 했다. 그럴지라도, 영원히 불타는 지옥에 대한 공포는 언제나 나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이런 상태로 오래 살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죽어서 죄인의 무서운 운명을 당할 수도 없었다. 나는 하나님의 가납하심을 받은 것을 깨달은 사람들을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고민하는 나의 심령에 얼마나 귀중하게 보였던가!

나는 빈번히 기도로써 온 밤을 새우며, 표현할 수 없는 고민과, 어떤 방법으로도 묘사할 수 없는 절망을 안고 신음하며 떨고 있었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이것이 나의 탄원이었다. 그리고, 나는 가련한 세리처럼 감히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지 못하고 마루 위에 얼굴을 숙였다. 나의 신체는 극도로 허약해졌다. 그러나, 고통과 절망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다.

27 이와 같은 절망의 상태에 있는 동안, 나는 마음에 큰 감명을 준 하나의 꿈을 꾸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는 한 성전을 보았다. 때가 찼을 때, 그 성전에서 피난처를 얻은 자들만이 구원을 받을 것이었다. 바깥에 남아 있는 모든 자들은 영원히 잃어버린 바 될 것이었다. 바깥에서 제각기 여러 길을 가고 있는 무리들은 성전으로 들어가는 자들을 조롱하고 비웃었다. 그리고, 그들은 안전에 대한 이런 계획은 교묘한 속임수이며 사실상 피해야 할 아무런 위험도 없다고 말하였다. 그들은 성전 안으로 급히 들어가고 있는 어떤 사람들을 들어가지 못하도록 방해하고자 붙잡기까지 하였다.

조롱받을 것이 두려워서, 나는 그 무리들이 흩어져 버릴 때까지 기다리든지 그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들어가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의 수는 줄어드는 대신에 증가했다. 그러므로, 나는 너무 늦어질까 두려워서 빨리 집을 떠나 군중을 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성전에 이르는 걱정 때문에, 나를 둘러싸고 있는 무리들을 보지도 않고 그들에게 유의하지도 않았다. 건물에 들어가자, 나는 그 거대한 성전이 하나의 큰 기둥으로 받쳐져 있고, 그 기둥에 난도질을 당하여 피가 흐르는 어린 양 한 마리가 붙들어 매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참석한 우리들은 이 어린 양이 우리 때문에 찢기고 상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성전에 들어간 모든 사람들은 그 앞에 가서 그들의 죄를 고백해야만 했다.

그 어린 양 바로 앞에 높은 좌석들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매우 행복하게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하늘의 빛이 그들의 얼굴을 비추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마치 천사들의 노래처럼 보이는 즐거운 감사의 노래를 불렀다. 이 사람들은 어린 양 앞에 나와서 그들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받고, 이제는 어떤 기쁜 일을 즐거운 기대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자들이었다.

그 건물 안에 들어간 후에도 일종의 공포가 나를 엄습하고, 내 자신을 이 사람들 앞에 낮추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일종의 수치심이 밀려왔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 나아가도록 강요당한 것처럼 느껴졌으므로, 어린 양을 대면하기 위하여 기둥 주위를 천천히 돌고 있었다. 그 때 나팔소리가 나고, 성전이 흔들리고, 모여 있던 성도들에게서 승리의 환성이 터지고, 놀랍게 밝은 빛이 건물을 비추었다. 28 그런 다음에, 모든 것이 심한 흑암에 싸였다. 기뻐하던 사람들은 그 밝은 빛과 함께 모두 사라져 버리고, 나 혼자 조용한 밤의 공포 가운데 남게 되었다. 나는 마음의 번민을 안고 깨어 있었으며, 꿈을 꾸고 있었다는 것을 거의 깨달을 수 없었다. 나의 운명은 결정되고, 주님의 영이 나를 떠나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이 일이 있은 지 얼마 후, 나는 또 다른 꿈을 꾸었다. 나는 얼굴을 양손에 파묻고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면서 비참한 절망 가운데 앉아 있었던 것 같다. 만일, 예수님이 지상에 계실 것 같으면, 나는 그분께 나아가서 내 자신을 그분의 발 앞에 던지고 나의 모든 고통을 그분께 말할 것이다. 그분께서는 내게서 돌아서지 않으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실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언제나 그분을 사랑하고 섬기게 될 것이다. 바로 그 때에 문이 열리고, 아름다운 모습과 얼굴을 한, 한 사람이 들어왔다. 그는 나를 동정 어린 모습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너는 예수님을 뵙고자 하는가? 그분은 여기에 계신다. 네가 원하기만 하면 그분을 뵐 수 있다. 네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나를 따라오라.”

나는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나의 적은 모든 소유물, 곧 모아 두었던 온갖 자질구레한 장신구들을 기쁜 마음으로 챙겨서 안내자를 따랐다. 그는 나를 가파르고 약해 보이는 계단으로 인도했다. 내가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자, 그는 나에게 눈을 위로 고정시킴으로 현기증이 나서 떨어지지 않도록 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 가파른 층계를 올라가고 있던 많은 다른 사람들이 정상에 이르기 전에 떨어졌다.

우리는 마침내 마지막 발판에 이르러 문 앞에 섰다. 거기서, 나의 안내자는 내가 가지고 온 모든 것을 버리도록 지시했다.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것들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그는 문을 열고 들어가라고 명령했다. 그 순간, 나는 예수님 앞에 섰다. 그 아름다운 얼굴과, 자비와 위엄을 갖춘 그 표정으로 보아 그분이 예수님이심에 틀림이 없었다. 그분의 시선이 나를 주목할 때, 나는 즉시 그분께서 내 생애의 모든 사정과, 나의 마음속의 모든 생각과 감정을 잘 알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감찰하시는 그분의 눈을 견디어 낼 수 없음을 느끼고, 그분의 시선에서 내 자신을 숨기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그분은 미소를 지으시고 가까이 오셔서, 나의 머리에 손을 얹으시고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셨다. 29 그분의 부드러운 음성은 이전에 결코 경험한 적이 없는 행복감으로 나의 마음을 전율시켰다. 나는 너무 기뻐서 말을 할 수 없었고, 감격에 압도되어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렸다. 내가 속절없이 그 곳에 누워 있는 동안, 아름답고 영광스런 장면이 내 앞으로 지나갔다. 그리하여, 나는 하늘의 안전과 평안에 이르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침내 기력이 회복되어, 나는 일어났다. 예수님의 사랑스런 눈은 여전히 내게 머물러 있었고, 그분의 미소는 기쁨으로 나의 심령을 채웠다. 그분의 임재는 거룩한 경외심과 표현할 수 없는 사랑으로 나의 마음을 채웠다.

나의 안내자는 이제 문을 열었으며, 우리는 함께 밖으로 나갔다. 그는 내가 밖에 놓아 둔 모든 것을 다시 가지라고 명령했다. 그렇게 하자, 그는 똘똘 감겨진 푸른 끈을 하나 내게 주었다. 그는 이것을 나의 가슴에 품고 있다가 예수님이 보고 싶으면 가슴에서 그것을 꺼내어 끝까지 늘어뜨리라고 지시했다. 그는 그 끈을 어떤 일정 기간 감겨진 채 버려둠으로 매듭이 져서 바르게 늘이기 어렵게 되지 않도록 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나는 그 끈을 나의 가슴 가까이에 품고 즐거운 마음으로 좁은 계단을 내려오면서 주님을 찬양하고, 내가 만난 모든 사람에게 그들이 어디에서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인지 알려 주었다. 이 꿈은 나에게 소망을 주었다. 그 푸른 끈은 나의 마음에 믿음을 나타내 주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신뢰하는 아름다움과 단순함이 나의 심령속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나는 모든 슬픔과 어려움을 어머니께 털어놓았다. 그는 부드럽게 동정하고 내게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당시에 포틀랜드에서 재림교리를 전파하고 있던 스토크먼 목사에게 가서 권면을 요청하도록 조언해 주었다. 스토크먼 목사는 헌신적인 그리스도의 종이었으므로, 나는 그를 크게 신뢰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은 후, 그는 가만히 나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눈물을 머금고서 말했다. “엘렌, 너는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너의 경험은 너처럼 어린 나이의 아이로서는 매우 비범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특별한 일을 위하여 너를 준비시키고 계시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는, 내가 장년으로서 그처럼 의심과 절망으로 괴로움을 당하고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의 사랑을 통하여 나에게 희망이 있음을 알고 있다고 나에게 말해 줄 것이라고 했다. 30 내가 당한 마음의 번민 자체는 주님의 성령이 내게 역사하고 계신다는 적극적인 증거였다. 그는, 죄인이 죄악 가운데서 굳어져 버리면 그의 범죄의 가증함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이 의롭고 특별한 위험이 없는 것으로 자부하게 된다고 말했다. 주님의 영이 떠나게 되면, 부주의하고 무관심하게 되거나 무모하게 반항적이 된다. 이 선량한 사람은 곁길로 나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내게 말해 주고, 그분께서는 그들의 멸망을 즐거워하는 대신에 그들이 단순한 믿음과 신뢰로 당신께 나아오기를 바라신다는 사실을 내게 알려 주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랑과 구원의 계획에 대하여 길게 논했다.

그는 나의 어린 시절의 불행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그것은 정말로 끔찍한 고통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사랑 많으신 아버지의 손이 내게서 떠나가지 않았다는 것과, 미래의 생애에, 그 당시 나의 마음을 가리웠던 안개가 사라졌을 때, 그처럼 잔인하고 신비롭게 보이던 섭리의 지혜를 깨닫게 될 것을 믿으라고 말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고 말씀하셨다. 미래에, 우리는 더 이상 거울 속으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게 보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의 신비를 직접 대면하게 될 것이다.

그는 말했다. “엘렌, 예수님을 신뢰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자. 그분께서는 진정으로 구하는 자에게서 그분의 사랑을 거두지 않으실 것이다.” 그리고, 그는 나를 위하여 열렬하게 기도했다. 비록 나의 비천한 간구는 들어주지 않으실지라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성도의 기도를 분명히 돌아보실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위로와 용기를 얻고 그의 앞을 떠나 왔다.

스토크먼 목사에게서 교훈을 받은 몇 분 동안에, 나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로운 친절에 관하여 내가 지금껏 들은 모든 설교와 권면에서 얻은 것보다 더 많은 지식을 얻었다. 집에 돌아오자 나는 다시 주님 앞에 나아가서, 예수님의 미소가 나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기만 하면 그분께서 내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행하고 또 감수하기로 약속했다. 31 전에 나의 마음을 괴롭게 한 동일한 의무 곧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서 십자가를 지는 의무가 나에게 제시되었다. 오랫동안 지체되지 않고 기회가 왔다. 그 날 저녁에 기도회가 있었는데, 거기에 내가 참석하였다.

기도를 드리고 있는 동안, 나는 떨면서 머리를 숙였다. 몇 사람이 기도를 드린 다음에,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기도로 음성을 높였다. 하나님의 약속은 오직 구하는 자만이 받을 수 있는, 대단히 귀중한 많은 진주처럼 나에게 나타났다. 기도하게 되자, 그처럼 오랫동안 계속 되어온 심령의 부담과 번민이 내게서 떠나가고, 주님의 축복이 부드러운 이슬같이 내 위에 내렸다. 나는 마음속 깊은 데서부터 하나님을 찬양했다. 예수님과 그분의 영광 이외에는 모든 것이 나에게서 차단된 것처럼 느껴졌고, 나는 내 주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하였다.

하나님의 영이 너무도 강한 힘으로 임하였기 때문에, 나는 그 밤에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이튿날 돌아왔을 때, 큰 변화가 나의 마음에 일어났다. 나는 전날 저녁 아버지의 집을 떠난 동일한 그 사람이 될 수는 거의 없을 것처럼 보였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성경절이 언제나 나의 생각을 채우고 있었다. 내가 그 말을 조용히 되풀이할 때, 나의 마음은 행복으로 충만해졌다.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나의 견해는 바뀌어졌다. 나는 이제 그분을 사람들에게 맹목적인 순종을 강요하는 엄격한 압제자로서보다는 친절하고 자상한 부모로서 바라보았다. 나의 마음은 깊고 열렬한 사랑으로 그분을 향해 갔다.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기쁨으로 여겨졌다. 그분께 봉사하는 것이 기쁨이었다. 어떤 그림자도 하나님의 완전한 뜻을 나에게 나타내 준 빛을 가리우지 못했다. 나는 구주께서 내 속에 계신다는 확증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하신 말씀이 진리임을 알았다.

평안과 행복이 이전의 우울과 고민과 너무도 두드러진 대조를 이루었기 때문에, 나는 마치 지옥에서 구조되어 하늘로 옮겨진 듯이 보였다. 32 나는 심지어, 생애의 시련이 되어 온 불행에 대해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나의 사상을 영원한 사물에 고정시켜 주는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본성적으로 교만하고 야심적이었으므로, 어떤 특별한 방법으로 나를 세속적 성공과 허영에서 차단시켜 준 쓰라린 고통이 없었을 것 같으면 마음을 예수님께 바칠 수 없었을 것이다.

6개월 동안, 나의 마음에는 그늘이 덮이지 않았고, 내가 깨달은바 의무를 등한히 하지도 않았다. 나의 모든 노력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예수님과 하늘을 언제나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 내게 제시된 그리스도의 속죄와 사업에 관한 분명한 견해에 놀라고 황홀해졌다. 나는 더 이상 마음의 상태를 설명하고자 하지 않고, 이전 것은 지나가고 모든 것이 새로워졌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었다. 나의 완전한 행복을 손상시키는 한 점의 구름도 없었다. 나는 예수님의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해 주고자 열망했으나 어떤 사람과 세속적 대화를 할 마음은 전혀 느끼지 않았다. 나의 마음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지각에 뛰어난 평안으로 충만해졌다. 그러므로, 나는 명상하고 기도하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나는, 그처럼 큰 축복을 받은 후, 저녁에 재림을 전하는 집회에 참석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에 관하여 이야기할 시간이 주어졌을 때, 나는 침묵을 지키고 있을 수 없었다. 나는 일어나서 경험을 이야기했다. 내가 무엇을 말해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전혀 없었다. 나에게 주어진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단순한 이야기가 나의 입술에서 아무런 거리낌없이 흘러나왔다. 나의 마음은 어두운 절망의 속박에서 해방된 것을 너무도 기뻐했기 때문에, 나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보지 못하고 하나님과 단 둘이만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놀라운 사랑을 말할 때, 말을 중단시킨 감사의 눈물 외에는 나의 평안과 행복을 표현하는데 어려움을 깨닫지 못하였다.

스토크먼 목사가 거기에 있었다. 그는 최근에 내가 깊은 절망에 빠져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나의 모습과 마음에 나타난 뚜렷한 변화에 감동을 받았다. 그는 큰 소리로 울면서, 하나님의 부드러운 자비와 따뜻한 친절에 대하여 나와 함께 기뻐하고 하나님을 찬양했다.

33 이와 같이 큰 축복을 받은 지 얼마 후에, 나는 브라운 씨가 목사로 있는 크리스찬 교회에서 열린 총회에 참석했다. 나는 경험을 이야기하라는 요청을 받고,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단순한 이야기와, 하나님께 가납되는 기쁨을 말하는데 있어서 완전한 표현의 자유뿐만 아니라 행복도 느꼈다. 차분한 마음과 눈물 어린 눈으로 이야기할 때, 나의 심령은 감사한 마음으로 하늘을 향하여 끌려가는 듯하였다. 변화시키는 주님의 능력이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임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울고 있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다.

죄인들을 위하여 기도할 테니 일어나라는 요청을 받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응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축복에 대하여 너무도 감사했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들도 이 거룩한 기쁨에 참여하기를 열망했다. 나의 마음은 주님의 불쾌히 여기심을 받는다는 마음과 죄의 짐 때문에 고통 받고 있을지도 모를 자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졌다. 경험을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아무도 내 속에 그처럼 놀라운 변화를 일으켜 준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사랑의 증거를 저항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참된 회개의 증거가 너무도 분명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나는 젊은 친구들이 빛 가운데로 들어오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고 느꼈다. 그리하여, 나는 기회가 있는 대로 이 목적을 위하여 영향력을 발휘했다.

나는 젊은 친구들을 대상으로 집회를 주선했는데,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나보다 꽤 나이가 많았고, 또 몇은 결혼한 사람들이었다. 또,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허영심이 강하고 분별력이 없었다. 나의 경험은 그들에게 무익한 이야기처럼 들렸으므로, 그들은 나의 애원에 유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그처럼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 귀중한 영혼들이 하나님께 굴복하기까지, 나는 결코 노력을 중단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는 내가 찾아내어 함께 활동하고 기도할 목적으로 모여야 할 자들을 위하여 열렬하게 기도함으로 여러 날 밤을 꼬박 새웠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내가 무엇을 말하는지 듣고자 하는 호기심에서 우리를 만났다. 또 어떤 사람들은, 특히 그들이 전혀 관심을 나타내지 않는데도 내가 그처럼 끈덕지게 노력하는 것을 보고, 나를 정신 나간 사람으로 생각했다. 34 그러나, 우리의 작은 집회가 열릴 때마다, 나는 각사람이 예수님께 굴복하고 그분의 용서하시는 사랑의 공로를 깨달을 때까지 계속해서 권면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기도했다.

밤마다 꿈에, 나는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활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때에는, 특별히 귀찮은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이 나의 마음에 제시되었다. 나는 이 사람들을 그 후에 찾아내어 함께 기도했다. 한 경우를 제외한 매 경우에, 이 사람들은 주님께 자신을 바쳤다. 더욱 형식적인 우리의 형제들 중 몇 사람은, 내가 영혼들의 회개를 위하여 지나치게 열성적인 것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시간이 너무 짧은 것처럼 보였으므로, 여전히 죄 가운데 빠져서 무서운 멸망 직전에 서 있는 자들을 위하여 활동하는 것이, 복스런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신속한 재림을 바라는 모든 사람들의 의무인 것으로 느껴졌다.

비록 나이는 매우 어렸지만, 구원의 계획이 마음에 너무도 분명하고 내 자신의 개인적 경험도 너무나 뚜렷했기 때문에, 그 문제를 생각할 때 나는 귀중한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활동을 계속하고,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기도하고,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 의무임을 깨달았다. 나의 온몸은 주님을 섬기는 일에 바쳐졌다. 어떤 일이 있을지라도 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구주께서 오셔서 성실한 자들에게 상을 주실 것을 기대하는 사람처럼 살기로 결심했다. 나는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처럼 하나님께 나아가 그분께서 내가 무엇을 하기를 바라시는지 여쭈어 보는 어린아이처럼 느꼈다. 그리고, 의무가 분명해지자, 그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 되었다. 특별한 시련이 때때로 나를 둘러쌌다. 나보다 더 많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 나를 뒤로 물러가게 하고, 나의 믿음의 열성을 식혀 버리고자 애를 썼다. 그러나, 나의 생애를 밝혀 주는 예수님의 미소와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길을 걸어갔다.

초기 생애의 경험을 회상할 때마다, 나의 소망과 공포를 털어놓고 이야기한 친구이며, 그리스도인 경험에 있어서 나의 진정한 동정자였던 나의 오빠가 부드러운 기억의 홍수와 함께 마음으로 밀려온다. 그는 죄악에 부딪쳐도 유혹을 별로 당하지 않는 자들 중 한 사람이었다. 35 원래 경건했으므로, 그는 어리고 경솔한 자들과의 교제를 구하지 않고, 인생길에서 그를 교훈해 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를 택하였다. 그의 태도는 나이보다 훨씬 더 정중했다. 그는 부드럽고 화평스러웠으며, 그의 마음은 거의 끊임없이 신앙적인 생각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의 생애는 그를 아는 자들에 의하여 젊은이들의 모본, 진실한 그리스도교의 덕성과 아름다움에 대한 산 모본으로 지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