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마음과 품성과 인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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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장-두려움
11편정서적인 문제들

51장 - 두려움

수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에 매여 있음

474 수백만의 사람들이 공포심과 무관심에 노예처럼 속박되어 있으며, 거짓 종교 아래 묶여 있고, 내세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만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는 희망도 기쁨도 포부도 없는 짐 나르는 짐승처럼 고생하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만이 영혼을 향상시킬 수 있다.-시대의 소망, 478 (1898).

하나님을 불신함으로써 그들은 수천 가지 두려움들을 갖고 있음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빌려 주신 돈으로 선한 일을 하여 하늘에 그들을 위하여 보물을 쌓아 두는 일을 등한히 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불신하며 미래에 관한 수천 가지 두려움을 갖고 있다. 이스라엘 자손들과 같이 그들은 불신의 악한 마음을 갖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대로 이 백성들에게 풍요함을 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미래에 대해 부질없이 걱정했다. 그들은 여행 중에 모세가 그들을 죽이고 자녀들을 굶기려고 인도해 냈다면서 불평 불만을 토로했다. 상상적인 결핍이 그들의 눈을 멀게 하여 여행 중에 주신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를 보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이 모든 은택을 감사하지 않았다.

이 불신과 타락의 시대에 불신으로 가득 차 있는, 하나님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백성들의 경우도 그와 같다. 475 그들은 핍절하게 될까 걱정이다. 자녀들이 곤궁해질까, 그들의 손자들이 가난뱅이가 될까 걱정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분에 대한 진정한 믿음이 없다. 그분은 그들에게 삶의 축복과 은택을 주셨으며 그분의 사업을 진전시킴으로써 그분께 영광이 되도록 사용할 재능을 주셨다.-교회증언 2권, 656, 657 (1871).

사단은 두려움을 통해서 지배하려고 시도함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의지와 양심을 결코 강제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사단은 자기가 꾀일 수 없는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하여 잔인한 강요를 상투적 수단으로 쓴다. 위협과 완력을 통하여 그는 양심을 지배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숭배를 확보하려고 노력한다. 이 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그는 종교적 세력과 세속적 권세를 통하여 활동하며,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고 인간의 법률을 강요하도록 사람들을 충동한다.-각 시대의 대쟁투, 591 (1888).

두려움에 대하여 논하므로 그것들을 강화시킴

만일 우리가 의심과 두려움에 대하여 생각하면, 그것들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우리는 속절없음을 느끼면서 자신의 모습 그대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필요가 있다. 비록 그분께서 모든 것을 다 아실지라도 우리는 겸손하고 신뢰하는 믿음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그분께 아뢰야 한다. 그분께서는 창조된 모든 것을 보시고 그것들이 올바르게 유지되도록 하신다. 그분은 우리가 부르짖음을 들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들어주실 것이며, 빛이 우리의 마음을 비추도록 해주신다. 진실한 기도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과 가까워진다. 우리는 그분이 가까이 계심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구속주께서는 사랑과 동정의 마음으로 우리를 굽어보고 계신다. 우리는 그분의 손길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분의 손길은 사랑과 부드러운 동정으로 우리 위에 얹혀 있다.-정로의 계단, 96, 97 (1892).

육체와 정신의 질병 원인

대부분의 사람에게 육체와 정신의 질병을 가져다주는 것은 불만의 감정과 불평의 정신이다. 476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없다. 그들에게는 휘장 안에까지 들어가는 소망, 영혼의 닻같이 분명하고 견고한 소망이 없다. 이 소망을 가진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정결하신 것처럼 자신을 정결케 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불확실할 바람, 불평, 불만이 없을 것이다. 그들은 계속해서 악한 것을 바라보거나 가상적인 고통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환난의 때를 미리 당하고 있는 많은 사람을 본다. 그들의 모습에는 어디에나 걱정이 새겨져 있다. 그들은 위안을 찾지 못하고, 어떤 무서운 재난을 계속해서 불안하게 예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교회증언 1권, 566 (1867).

두려움은 영혼에게 아무런 위안도 주지 못함

그대들은 복음에 대하여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신앙적인 생활이란 음울과 슬픔의 생활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같은 위엄과 거룩한 엄숙성과 결부된 화평과 기쁨의 생활이다. 우리는 의심, 공포, 불길한 예감을 마음에 품지 말라는 구주의 권고를 받고 있다. 이런 것들은 영혼에게 아무런 위안도 주지 못하며, 칭찬을 받기보다는 견책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충만한 영광을 맛볼 수 있다.-MS 6, 1888.(복음전도, 180).

믿음은 의심과 두려움과의 싸움을 통해서 자라남

주께서는 우리가 더 큰 노력을 발휘하도록 자극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빈번히 어려운 입장에 처하게 하신다. 그분의 섭리로 특별한 어려움이 우리의 인내와 믿음을 시험하기 위하여 발생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신뢰의 공과를 주신다. 그분은 시련의 때에 우리가 도움과 힘을 얻기 위해 어디를 찾아야 할지 가르치실 것이다. 그와 같이 하여 우리는 그분의 거룩한 뜻에 대한 실제적인 지식을 얻으며, 그것은 우리의 인생 경험에서 대단히 필요한 것이다. 믿음은 의심과 두려움의 열렬한 싸움을 통해서 자라난다.-교회증언 4권, 116, 117 (1876).

두려움은 불신을 드러냄

예수께서 믿음으로 아버지의 보호 안에서 쉬신 것처럼 우리도 구주의 보호 안에서 쉬어야 한다. 제자들이 예수를 의뢰하였다면 그들은 평강 가운데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위기를 당했을 때 그들이 나타냈던 두려움은 그들의 불신을 드러내 주었다. 477 그들은 자신을 구원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예수를 잊고 있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도움을 주실 수 있었던 것은 저희가 자기 의뢰의 절망에서 예수께로 돌아갔을 때뿐이다.

우리는 얼마나 흔히 제자들의 경험을 겪는가! 시험의 태풍이 점점 거세어지고 번갯불이 무섭게 번쩍거리며 파도가 우리를 덮칠 때 우리는 우리를 도우실 수 있는 예수가 계심을 잊어버리고 홀로 폭풍과 싸운다. 우리의 희망도 사라지고 멸망 직전에 빠질 때까지 우리는 자신의 힘을 의뢰한다. 그때에야 우리는 예수를 기억한다. 만일 우리를 구하시도록 예수께 요청한다면 우리의 부르짖음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불신과 자기 신뢰를 슬프게 책망하시지만 우리가 요청하는 도움을 주지 못하는 일이 결코 없으시다. 육지이건 바다이건 우리가 구주를 마음속에 모시고 있다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주님께 대한 산 믿음이 인생의 바다를 잔잔하게 할 것이며, 그분께서 가장 좋다고 생각하시는 방식으로 우리를 위험에서 건져내실 것이다.-시대의 소망, 336 (1898).

병실에서 두려움을 나타내는 것은 위험함

병자에게 봉사하는 사람들은 건강 법칙에 깊은 주의를 기울일 필요를 깨달아야 한다. 이 법칙에 순종하는 것이 별실에서만큼 요긴한 곳은 없다. 수종을 드는 사람들의 작은 일에 나타내는 성실이 그처럼 크게 영향을 주는 곳은 아무데도 없다. 중병에 걸려 있을 경우에는 환자의 특별한 필요성과 위험에 대한 조그마한 태만, 사소한 부주의, 공포와 흥분의 조급한 마음의 표현, 심지어 동정의 부족까지도, 생과 사가 팽팽히 균형을 이루고 있는 저울에 변화를 주어, 그렇지 않았더라면 회복되었을 수도 있던 환자를 무덤으로 보낼 수도 있다.-치료봉사, 219 (1905).

인간이 두려워하므로 성령께서 슬퍼하심

믿음은 자기에게 닥치는 어려운 시험의 이유를 묻지 않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세상에는 믿음이 적은 자가 많다. 그들은 항상 두려워하며 사서 염려를 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매일 하나님의 사랑의 징표들로 둘러싸이고, 매일 그분의 섭리의 은택들을 만끽한다. 478 그러나 그들은 이런 복들을 간과한다. 그들이 만나는 어려움들은 그들을 하나님께로 나아가도록 재촉하는 대신에, 불안과 불평을 유발시킴으로써 그분에게서 그들을 분리시킨다. …예수님은 그들의 친구이시다. 온 하늘은 그들의 행복을 바라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두려워하고 한탄하는 것은 성령을 슬프시게 하는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들으신다는 것을 보거나 느끼기 때문에 믿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분의 약속을 신뢰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는 모든 소원이 그리스도의 마음속에 전달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주님께 복을 구한 후에 우리는 받은 줄로 믿고 받은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 드려야 한다. 그 후에 우리는 받은 줄로 믿고 받은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 드려야 한다. 그 후에 우리는 우리가 가장 필요할 때에 축복이 우리에게 임할 것을 확실히 믿고 직무를 수행하러 나가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기를 배웠을 때 우리는 우리의 기도가 응답됨을 알게 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또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엡 3: 16, 1: 19, 3: 20) 것이다.-복음교역자, 261, 262 (1915).

죄책감으로부터 자유함으로 두려움에서 해방됨

백성들 뿐 아니라 아론도 모세를 피하여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 하”였다. 모세는 그들이 당황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았으나 그 이유를 알지 못하고 그들에게 가까이 오라고 재촉했다. 모세는 하나님이 화해하시겠다고 하신 맹세를 그들에게 제시하고 그분의 은총이 회복되었다는 것을 확신시켰다. 그들은 그의 음성 가운데서 사랑과 간청만을 인식했다. 마침내 한 사람이 담대하게 모세에게 접근했다. 그는 너무 무서워서 말은 못하고 입을 다문 채 모세의 얼굴을 가리키고 다음에 하늘을 가리켰다. 그 위대한 지도자는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차렸다. 그들의 죄를 의식하고 아직도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 아래 있는 줄로 생각한 그들은, 만일 그들이 하나님을 순종하였더라면 그들에게 기쁨을 충만케 해주었을 그 하늘의 빛을 견딜 수 없었다. 범죄에는 두려움이 따른다. 죄와 상관없는 영혼은 하늘의 빛을 피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부조와 선지자, 329, 330 (1890).

두려울 때 어떻게 할까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인식만이, 겁 많은 아이가 갖는, 인생은 무거운 짐이라는 생각과 두려워하는 마음을 없앨 수 있다. 479 그 아이로 하여금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시 34: 7)라고 하신 약속을 기억에 새기도록 하라. 산중의 도시에서 엘리사가 경험한 기이한 이야기, 그와 원수의 군대가 대치하고 하늘 천사들의 군대가 강력하게 그를 둘러 진친 것 등을 읽게 해야 한다. 사형 선고를 받고 투옥된 베드로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 무장한 수위병과 큰 문들과 쇠 문빗장과 큰 못으로 잠긴 옥문을 지나서 이 하나님의 종을 무사히 인도해 낸 사실을 읽게 하라.

폭풍우에 시달린 병사와 선원들이 노역과 수비와 여러 날 동안의 절식으로 피로할 때에, 심문과 처형을 받기 위해 갇힌 자 바울이 그들을 향하여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나의 속한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행 21: 22~24) 하고 용기와 희망에 찬 당당한 말을 하였던 당시의 해상 광경을 읽게 하라. 이 허락을 믿음으로 바울은 그와 같이 있는 자들에게 보장하기를 “너희 중 머리터럭 하나라도 잃을 자가 없느니라”(행 27: 34) 하였는데, 그대로 되었던 것이다. 배 안에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는 한 사람이 있었던 까닭에, 같이 탔던 이교도의 병사와 선원들의 생명도 구조되었던 것이다.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원을 얻으리라”(행 27: 44).-교육, 255, 256 (1903).

하나님은 투명하게 다루심

우리 주님께서는 사실이 아닌 어떤 것을 우리에게 이야기 하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너의 앞에 길에는 위험이 전혀 없다”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어려운 시기가 있음을 아시고 우리에게 그 사실을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죄와 악의 이 세상과 분리시키고자 계획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결코 실패함이 없는 피난처를 그들에게 가르쳐 주신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을 위하여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요 17: 15)라고 기도하셨다. 예수께서는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 33)고 말씀하셨다.-정로의 계단, 122, 123 (1892).

자아로부터 시선을 돌리라

480 그대 자신에게서 시선을 돌려 예수를 바라보라. 자신이 죄인이라고 인정하는 한편 그리스도를 그대의 구주로 인정하는 것은 그대의 특권이다. 그분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케 하려고 오셨다. 믿음을 약화시키고 용기를 깨뜨리기 위해 사단이 난관과 암시를 사람의 마음에 제시할지 모른다. 그는 사람의 마음에 잇달아 닥쳐오게 할 수 있는 수많은 유혹들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대의 감정을 면밀하게 살펴 그대의 느낌에 굴복하는 것은, 의심이라는 악한 손님을 환대하는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낙망의 당혹거리들 가운데 얽혀 들게 되는 것이다. 그대는 이런 두려운 암시들을 받을 때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 물을지 모른다. 구주의 사랑의 비할 바 없는 깊이를 바라보고 명상함으로써 마음에서 그것들을 쫓아내라. 선하든 악하든, 슬프든, 격려되는 것이든 간에 그대의 기분을 드높이거나 그것들을 이야기하거나 섬기지 말라.-Lt 31, 1893.

예수를 의뢰함으로써 두려움을 정복하라

예수께서는 당신께 오라고 우리를 초청하시며, 그분은 우리의 곤비한 어깨에서 무거운 짐들을 내려 주시고 우리에게 쉬운 그분의 멍에와 가벼운 그분의 짐을 올려놓으신다. 그분께서 우리를 초청하시는 길은 우리가 항상 그 안에서 걸었다면 결코 우리에게 아픔을 가져다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 길이 어렵고 가시밭길이 되는 것은 우리가 의무의 길에서 벗어날 때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가운데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희생들은 빛과 평화와 행복의 길로 돌아가도록 하는 많은 계단일 따름이다. 의심과 두려움은 그것을 계속 품음으로써 자라나며, 우리가 그것들을 품으면 품을수록 그것들을 정복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모든 세상적 도움을 떠나가게 하고, 폭풍이 부는 바다에 빠져가는 제자들을 들어올리시고 그들을 구원하신 그분의 손을 잡는 것이 안전하다.-교회증언 4권, 558 (1881).

그리스도는 짐을 지시는 분이심

우리는 우리의 소원과 기쁨과 슬픔을 언제나 하나님 앞에 내놓을 수 있다. 우리는 걱정과 근심을 그분과 나눌 수 있다. 우리는 그분을 피곤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의 슬픔을 같이 느끼고 우리로 그 슬픔을 당신께 아뢰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우리를 괴롭히는 모든 것들을 그분께 가져 갈 수 있다. 481 그분께서 감당할 수 없으리만큼 힘에 부친 것은 어떤 것도 없다. 왜냐하면 그분은 이 세상을 붙드시고 우주를 통치하시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그분께 주목의 대상이 되지 못할 만큼 작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 생애에서 그분이 이해하기에 너무 어둡거나 슬픈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분이 해결할 수 없으리만큼 큰 문제도 없다.…하나님과 그분의 백성들 사이의 사랑은 너무나 강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그분의 완전하신 보살핌을 받고 있다. 그분께서는 마치 이 세상에 당신의 아들을 주실 만한 다른 어떤 사람도 없었던 것처럼 각 사람을 대우하신다.-정로의 계단, 100 (18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