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마음과 품성과 인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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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장-하나님의 사랑
5편삶의 원기를 북돋워주는 힘*

27장 -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247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요일 4: 16). 그분의 본성과 그분의 율법은 사랑이다. 이것은 과거에도 그러하였고 미래에도 영원히 그러할 것이다. “그의 행하심이 예로부터 그러”하시며, “지존 무상하며 영원히 거하”시는 분은 변치 않으신다.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다(합 3: 6; 사 57: 15; 약 1: 17).

창조력의 현현(顯現) 하나 하나마다 무한한 사랑의 표현이다. 하나님의 통치권에는 모든 피조물들에 대한 완전한 축복이 포함되어 있다.… 선악의 대쟁투가 하늘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때부터 반역이 영원히 정복되고 죄악이 전멸될 때까지의 역사도 또한 하나님의 변함 없는 사랑의 증거이다.-부조와 선지자, 33 (1890).

하나님의 사랑은 천연계 가운데 증거됨

천연계와 계시는 둘 다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증거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생명과 지혜와 기쁨의 원천이시다. 천연계의 기묘하고 아름다운 사물들을 바라보라. 그것들이 사람뿐 아니라 모든 산 피조물들을 필요와 행복에 얼마나 잘 적응되어 있는지 생각해 보라. 땅을 기쁘게 하고 생기를 주는 햇빛과 비, 산과 바다와 들은 창조주의 사랑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해 준다. 248 그분은 그분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의 매일의 필요를 공급해 주신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은 피어나는 꽃봉오리마다, 파릇파릇 돋아나는 풀잎마다 기록되어 있다. 행복한 노래로 공중에서 노래 부르는 사랑스러운 새들, 대기에 향기를 내뿜는 섬세하게 채색된 꽃들, 풍성한, 생생한 녹색의 이파리들을 갖고 있는 산림의 교목들-이 모든 것들은 자애롭고 자부적인 우리 하나님의 돌보심과 그분의 자녀들을 행복하게 만드시려는 그분의 사랑을 증거하고 있다.-정로의 계단, 9, 10 (1892).

사랑의 원칙에 기초된 계명들

십계명의 계율은 온 인류에게 적응되도록 만들어졌으며, 만민을 위한 교휸과 통치 원칙으로 주신 것이다. 간경하면서도 포괄적이며 권위 있는 십계명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람의 의무를 총망라하고 있으며, 모든 조항이 다 근본적인 사랑의 대원칙에 기초를 두고 있다.-부조와 선지자, 305 (1890).

예수님과 동정적인 사랑의 율법

하나님의 율법은 그 특성상 불변이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타락한 인류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제물로 주셨다. 아담은 에덴을 잃어버렸고 그의 모든 자손들과 함께 집행 유예 아래 처하게 되었다.

사단이 하늘에서 추방된 이래 하나님의 율법이 한 계율이라도 변경되었더라면, 그는 타락 전 하늘에서 얻을 수 없었던 것을 타락 후에 이 땅에서 얻었을 것이다. 그는 요구했던 모든 것을 얻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율법은…하나님의 보좌처럼 여전히 변경이 불가능하며 각 영혼의 구원은 순종 혹은 불순종에 의해 결정된다.… 예수께서는 동정적인 사랑의 율법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고, 우리의 형벌을 취하셨고, 범죄자들을 위하여 할당된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시셨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생명 곧 여생을 얻을 수 있도록 자기 부정과 자기 희생의 십자가를 지셨다. 우리는 예수를 위해 십자가를 지려하는가?-Lt 110, 1896.(KH, 289).

섬세하고 애정어린 그리스도의 본성

249 그분의 생애는 시작부터 끝까지 자기 부정과 자기 희생의 생애였다. 갈바리 십자가에서 그분은 온 세상이 원하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시는 위대한 일을 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안에 감추이셨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아들을 품성 가운데서 세상에 드러난 바 되셨다.… 잃어버린 세상에 대한 사랑은 그분의 생애의 모든 행동 가운데서 매일 나타났다. 그분의 성령에 의해 고무된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일하신 것과 같은 동일한 방면에서 일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빛과 사랑이 인성 가운데서 나타난 바 되었다. 어떤 인간도 죄 없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 신의 성품에 참여함을 통하여 인류가 어떻게 될 수 있는지에 대한 표본과 머리로 서셨던 분처럼 섬세한 본성을 가진 적이 없었다.-YI, 1894.8.16.(KH, 288).

하나님의 사랑은 생명샘임

하나님의 사랑은 단순히 부정(否定)이 아니다. 그것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원칙, 곧 다른 사람들을 복되게 하기 위하여 항상 흘러나오는 생명샘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 속에 거하면, 우리는 이웃에게 증오심을 품지 않을 뿐 아니라 그들에게 사랑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법으로 노력하게 될 것이다.-산상보훈, 58 (1896).

우주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냄

모든 사람이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 세상에 주신 귀중한 선물을 바르게 평가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제자들은 도저히 그리스도의 사랑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느꼈다. 그들은 그저 “사랑은 여기 있으니”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었다. 온 우주는 이 사랑과 하나님의 무한정한 자비심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정죄하시기 위해 그분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놀라운 은혜여! 그리스도께서는 멸망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다. 사도들은 이 주제를 취급할 때 언제나 심령이 구주의 비할 바 없는 사랑의 영감으로 불타올랐다. 사도 요한은 그의 감정을 표현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250 그는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부르짖는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얼마나 많이 사랑하셨는지 우리는 결코 헤아릴 수 없다. 그것을 비교해 볼 잣대도 없다.-Lt 27, 1901.

가혹하고 엄격한 하나님에 대한 개념은 사단이 만들어 낸 것임

사단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그 주요 속성이 엄정한 공의이신 분-엄격한 재판관, 가혹하고 에누리 없는 채주(債主)으로 생각하도록 이끌었다. 그는 창조주를, 그들에게 심판을 내릴 수 있도록 사람들의 잘못들과 실수들을 간파하기 위하여 눈에 불을 켜고 주시하고 계시는 분으로 묘사했다. 예수께서 사람들 가운데 사시기 위하여 오신 것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드러내시고 이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시기 위해서였다.-정로의 계단, 11 (1892).

성부와 성자 사이의 사랑은 표상임

아무리 목자가 자기의 양을 사랑한다 할지라도 실상은 자기 자녀들을 더욱 사랑한다. 예수는 우리의 목자일뿐 아니라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이시다.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요 10: 14, 15)라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신다.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가.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자를 “내 짝 된 자”(슥 13: 7)라고 하나님께서는 선언하셨다. 즉 그리스도와 영원하신 하나님 사이의 친교가 그리스도와 세상에 있는 그의 자녀 사이의 친교를 묘사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시대의 소망, 483 (1898).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독생자를 사랑하시듯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사랑하신다.-MS 67, 1894.

그리스도의 사랑은 원기를 북돋워 주며 치료하는 에너지임

그리스도께서 몸 전체에 나눠주시는 사랑은 일종의 생명력이며, 그것은 모든 중요한 부위들-뇌, 심장, 신경-을 치료의 손길로 어루만진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사람의 최고의 능력들이 일깨워져 활동하게 된다. 그것은 생명력을 파멸시키는 죄책감과 슬픔, 근심과 걱정에서 심령을 해방시켜 준다. 251 그것과 아울러 평온과 안정(安靜)이 온다. 그것은 어떤 세속적인 것도 파괴할 수 없는 기쁨, 곧 성령 안에 있는 기쁨, 건강을 주고 생명을 주는 기쁨을 심령 속에 심어준다.-치료봉사, 115 (1905).

하나님의 사랑을 회고함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내 주시는 밝은 면들에 대하여 감사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들을 자주 볼 수 있게 그것들을 함께 모으자.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당신의 아버지의 보좌를 떠나 당신의 신성을 인성으로 가리셨다. 그분께서 인간이 되시므로 사단의 능력에서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게 되셨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악과 싸워 이기셨고 하늘의 영광을 보여 주기 위하여 하늘 문을 여셨다. 사람들이 어떻게 죄의 구렁텅이에서 건짐을 받고 있는지 연구해보자.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께로 다시 가까이 갈 수 있는지 알아보자. 우리가 우리 구주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어떻게 그분의 의를 옷 입을 수 있는지 마음속에 그려 보자. 우리는 믿음으로 그분의 보좌까지 끌어올림을 받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모든 것들을 생각하기를 원하신다.-정로의 계단, 118 (1892).

우리의 하늘은 사랑이 만드는 것임

우리의 하늘을 만드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사랑에 대해서 말하려고 애쓸 때, 우리는 그것을 표현할 언어를 찾을 수 없다. 우리는 지상에서의 그분의 생애, 우리를 위한 그분의 희생에 대하여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의 대언자로서 하늘에서 하시는 그분의 사역에 대해서, 그분께서 그분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마련하고 계시는 처소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그저, “오, 그리스도의 사랑은 얼마나 높고 깊은가!”라고 부르짖을 수 있을 뿐이다. 우리가 십자가 밑에 머무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희미한 개념을 얻으며, 우리는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 10)고 말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명상하는 가운데서, 우리는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의 가장자리를 맴돌고 있을 뿐이다. 그분의 사랑은 그 기이를 모르는 끝없이 광대한 대양과 같다.-RH, 1902.5.6.

하나님의 사랑은 다함이 없음

252 인간의 마음의 통로를 통하여 세대에 세대를 거쳐 내려온 온갖 자부적(慈父的)인 사랑, 사람들의 심령 속에 열려진 자애의 모든 샘들은 하나님의 무한하고 다함이 없는 사랑과 비교해 볼 때, 끝없는 대양에 대한 작은 실개천에 불과하다. 그것은 혀로도 말할 수 없고, 붓으로도 묘사할 수 없다. 그대는 매일의 생애에서 그것을 명상할 수 있고, 그것을 이해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성경을 탐구할 수도 있다. 그대는 또한 하늘 아버지의 사랑과 긍휼을 깨닫기 위하여 노력하는 일에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주신 모든 능력과 재능을 총동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너머에 무한(無限)이 있다. 그대는 여러 해 동안에 걸쳐 그 사랑을 연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대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주셔서 세상을 위하여 돌아가게 하신 그분의 사랑의 길이와 넓이와 기이와 높이를 결코 완전히 깨달을 수는 없다. 영원 자체도 그것을 결코 완전히 드러낼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연구하고 그리스도의 생애와 구속의 계획을 명상할 때 우리는 이 우대한 주제들을 더욱더 많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교회증언 5권, 740 (1889).

하나님의 사랑은 차츰차츰 계시됨

영원한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더욱 풍성하고 더욱 영광스러운 계시가 나타난다. 또한 지식이 발전되어 감에 따라 사랑과 행복도 증가될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배우면 배울수록 그분의 품성에 대한 그들의 감탄은 더욱 커질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678 (1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