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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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약 2:15-17

가장 아름다운 복음 ―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어야 한다. 복음이 가장 가난하고 궁핍한 지역에 전해지는 것보다 더 아름답게 보이는 적은 없다. 각 계층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은 그 교훈을 주며, 그들의 의무를 규정해 준다. 그리고 복음의 약속들은 그들에게 의무들을 이행할 용기를 준다. 또한 복음의 빛이 가장 찬란하고 능력 있게 비추는 것은 바로 그 때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진리는 흑인과 백인을 막론하고 농부의 오막살이 속으로 들어가고, 가난한 자들의 거친 시골집을 밝혀 준다. 의의 태양에서 나오는 광선은 병자와 고통당하는 자들에게 기쁨을 가져다 준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곳에 있으며, 그곳에 나타나는 단순한 믿음은 마른 떡조각과 물 몇 잔만으로도 호화로운 잔치처럼 되게 한다. 혐오의 대상이 되고 버림받은 자들이 믿음과 용서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의 위엄을 가진 사람으로 높여진다. 그들은 무엇보다 세상에서 높임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 처소에 앉게 된다. 그들이 지상의 보화는 가지고 있지 않으나 그들은 매우 가치있는 진주를 발견하였다. 죄를 용서하시는 구주께서는 가난한 자와 무식한 자들을 받아 주시고, 그들에게 하늘에서 내려온 떡을 주셔서 먹게 하신다. 그들은 생명수를 마신다.―서신 113, 1901

170 예수님께서 가난한 자들과 직접 교제하심 ― 가난한 자들을 멸시하는 것이 일반적 통념으로 되어 있다. … 그러나 주 예수님은 가난하셨으며, 그분은 가난한 자들과, 버림받은 자들과, 압제받는 자들을 동정하신다. 그리고 그들에게 나타낸 모든 모욕을, 마치 당신 자신에게 한 것처럼 말씀하신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실천하신 동정과 불친절과 사랑이 너무도 결여된 것을 볼 때 더욱 더 놀라게 된다. 남북에 있는 모든 교회들이 우리 주님께서 가르치신 정신으로 젖게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원고 6, 1891

그리스도께서는 가난한 자들에게 봉사하러 오심 ― 그리스도께서는 인성을 입고 인간의 선두에 서셨다. 그분의 태도에는 동정과 사랑이 너무도 충만했기 때문에 가장 가난한 사람도 그분께 나오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분은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셨으므로 가장 비천한 사람도 그분께 쉽게 접근해 갔다. 그분은 집집을 방문하여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배고픈 자들을 먹이시고, 슬퍼하는 자들을 위로하시며, 고통하는 자들을 편안하게 해 주고, 근심하는 자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셨다.―서신 117, 1903

“예수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며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171 이것은 그리스도의 사업에 대한 훌륭한 묘사이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가난한 자들을 멸시했다. 배웠다는 자들과 부자들은 마치 그들의 부와 지식이 가난한 자들보다 자기들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어 놓는 것처럼 가난한 자들을 멸시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장 필요되는 곳에 격려와 위로와 도움을 주는 것이 당신의 사업이라고 선언하셨다.―원고 65b, 1898

그리스도께서 영혼의 갈증을 일으켜 주신 방법 ― 그리스도의 주요 사업은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다. 그분은 궁핍한 자와 무식한 자들에게 봉사할 길을 선택하셨다. 단순하게, 그분은 그들이 받아야 할 축복들을 그들 앞에 열어 놓으셨고 그리하여 진리와 생명의 양식에 대한 갈급성을 그들에게 일으켜 주셨다. 그리스도의 생애는 그분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모본이 된다.―원고 103, 1906

복음이 하나님께 속한 증거 ― 그리스도께서는 가난한 자들 사이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두셨다. 그러므로 배운 자나 배우지 못한 자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은 이 부류에 속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할 일을 많이 찾을 수 있다. 가난한 자들은 위로와 동정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도움의 손이 없으면 스스로의 힘으로 결코 회복할 수 없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을 위하여 일하는 중에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들의 사명을 완수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복음사업에 위탁된 최고의 위임장이다. 복음이 사람에게서 나왔을 것 같으면, 부자와 권세자들에게 인기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복음은 부자와 강한 자들을 지나쳐 버리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을 불러 가난하고, 멸시받고, 버림받고, 고통하는 자들을 도와 주는 그리스도의 일을 하게 한다.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영혼들에 대한 사랑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일하신 그 분야에서 일하게 될 것이다. 이 세상은 하나의 가난한 병자의 수용소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병자를 고치고, 마음 상한 자를 위로하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눈먼 자들에게 다시 보게 하고자 오셨다. 172 복음은 바로 회복의 실체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마음 상한 자들과 소망 없는 자들과 고통하는 자들로 그분의 힘을 붙들도록 해주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신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은혜의 해가 이르렀기 때문이다.―원고 65b, 1898

가난한 자들에게 위로가 되는 그리스도교 ― 그리스도의 종교와 빈곤과는 관련이 있다. 그리스도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된다. 그것을 주장하는 모든 자들의 심령을 위태롭게 하는 거짓 믿음이 있는데, 그것은 이기적인 향락과 쾌락이 행복의 총체라고 가르치는 일이다. 그러나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이것이 거짓임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부자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주고서도, 한때 가난하고 헌 데로 덮여 있던 나사로와 입장을 바꾸고자 한 때가 왔다.

그리스도의 인성 안에는, 믿고 신뢰하는 가난한 사람을 무한한 사랑을 가지신 하나님의 심령과 연결시켜 주는 황금실이 있다. 그분은 위대한 의사시다. 우리의 세상에서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지시고, 우리의 무거운 짐들을 옮겨 가셨다. 그분은 모든 질병을 고치시는 위대한 의사시다. 그분은 가난하셨으나, 모든 선과 축복의 중심이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는 사업에 그들의 능력을 바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능력의 저장소가 되신다.―원고 22, 1898

그리스도는 가난에서 오는 오명을 제거하셨음 ― 그리스도는 언제나 가난한 자의 친구가 되셨다. 그분은 빈곤을 택하시고, 빈곤을 당신의 운명으로 삼으심으로 그것을 높이셨다. 그분은 하나님 나라의 후사인 가난한 자들을 축복하심으로 가난에 붙은 조소의 비난을 영원히 떼어 버리셨다. 이것이 바로 그분의 사업이었다. 그분은 빈곤의 생애에 자신을 바치심으로 빈곤을 그 굴욕에서 벗어나게 하셨다. 그분은 가난한 사람들과 같은 입장을 취하심으로 세상이 빈곤에 대하여 붙여 놓은 오명이 제거될 수 있게 하셨다. 그분은 부를 사랑하는 위험을 아셨다. 173 그분은 부를 사랑하는 것이 많은 영혼들에게 파멸을 초래하는 일임을 아셨다. 그것은 부자들로 하여금 화려함을 탐하는 소원만을 갖게 하는 위치에 놓이게 한다. 그것은 빈곤에 눌려 고생하는 자들을 멸시하도록 그들을 가르친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을 약해지게 해 주고 부자들이 풍부한 부가 있으면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부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많은 사람들의 품성은 세속적인 부자들에게 둔 거짓 평가에 의하여 꼴지어져 왔다. 저택과 토지들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에게 주어지는 존경으로 칭찬을 받고 기만당하여, 부자가 갖지 못한 덕성들을 소유한 가난한 사람들을 멸시할 수도 있다. 성소의 황금 저울에 달릴 때 이기적이요 욕심 많은 부자들은 부족함이 드러날 것이다. 그와 반면에 자기의 덕성과 선이 오로지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달려있는 것으로 신뢰한 가난한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부를 상속받는 자로 선언을 받게 될 것이다.―원고 22, 1898

세상의 위인들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 ― 대도시에는 빈곤과 불행 가운데서 음식과 의복과 거처가 거의 없이 사는 무수한 사람들이 있다. 그와 반면에 그같은 도시에는 더 이상 마음으로 바랄 수 없을 만큼 많이 소유하고 있는 자들이 비싼 가구가 비치된 집들, 개인의 장신구, 더욱 불행하게도 관능적 욕망을 만족시키는 일, 술과 담배, 그 밖에 두뇌의 힘을 약화시키고, 정신의 균형을 잃게 하며, 영혼을 타락시키는 것 등에 그들의 금전을 낭비하면서 사치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굶주리고 있는 인간의 부르짖음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고 있다. … 심지어 교육가들과 정치가들 중에도 사회의 현 상태를 이루고 있는 원인을 이해하는 자가 많지 않다. 정부의 지도권을 쥐고 있는 자들도 도덕적 타락, 빈곤, 빈민구호, 격증하는 범죄 등에 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174 그들은 좀 더 안전한 기반 위에서 사업을 경영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실패하고 만다. 만일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에 좀 더 유의하였을 것 같으면, 그들은 그들을 난처하게 하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찾았을 것이다.―교회증언 9권 12, 13

불공평을 제거하기 위하여 세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 ― 가난한 자도 부자와 하나님의 세계에서 한 자리를 차지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의 마음에 인상시켜 주어야 하였다. 자비하신 우리의 창조주께서는 가난하고 압제당하는 자들의 생애에 고통을 덜어 주고, 희망의 빛을 가져다 주고 명랑한 햇빛을 비추어 주시기 위하여 이와 같은 준비를 갖추셨다.

여호와께서는 재산과 세력에 대하여 과도한 애착심을 갖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한 계급은 끊임없이 재물을 축적하고 다른 계급은 빈곤과 타락에 빠짐으로 큰 악이 초래될 것이다. 어떤 제재가 없으면 부의 세력이 독점되므로, 가난한 자들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모든 면에서 매우 가치가 있을지라도 그들은 더욱 부한 동료들에게 열등한 자로 간주되고 그런 취급을 받을 것이다. 이런 압박감은 보다 가난한 계층에 속한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사회를 타락시키고 각종 범죄의 문을 열어놓게 될 전망과 자포자기의 감정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세우신 규정은 사회적 평등을 유지하게끔 되어 있다. 안식년과 희년을 마련하심은 그동안 국가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 체제에서 그릇된 것을 대폭 시정하려 함이었다.

이 법규들은 가난한 자뿐 아니라 부자도 축복하기 위하여 제정되었다. 그것은 허욕과 자고하는 성벽을 제어하고 고상한 박애심을 일으킬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회 계급 간에 선의와 신뢰를 육성함으로 그들을 사회적 질서, 곧 정부의 안정도를 촉진시킬 것이다. 175 우리는 모두 인간이란 거대한 피륙에 함께 짜여져 있으므로 우리가 다른 사람의 이익과 향상을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우리에게 축복을 가져 올 것이다. 상호 의존 법칙은 사회 모든 계급에 다 미친다. 가난한 자가 부자를 의지한다 해도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의지하는 것보다 더 하지는 않는다. 한 계급이 부요한 이웃에게 하나님께서 하사하신 축복에서 한 몫을 나눠 갖기를 간청하는 한편 다른 계급은 가난한 자의 자본인 뇌와 뼈와 근육의 힘으로 하는 충실한 노역을 요구한다. … 모든 사람이 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평등하게 누려야 한다고 큰 열심으로 논의하는 자들이 많다. 그러나 이것은 창조주의 목적이 아니었다. 상태의 다양성이 하나님께서 성품을 향상 발전시키고자 계획하신 방법 중에 하나이다. 오직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재산을 가진 자로 하여금 고통당하고 궁핍한 자들을 위하여 사용될 자금을 위탁받은 당신의 재산의 청지기에 불과함을 스스로 생각하게 하려 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가난한 자가 항상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며 그분은 당신의 고통당하는 백성에게 관심을 가지신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구주의 마음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낮은 당신의 자녀들을 동정하신다. 구주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저들은 세상에서 당신을 대표하는 자들이라 하신다. 구주께서는 당신이 고통과 압박당하는 자들에 대하여 느끼시는 사랑을 우리 마음에 각성시키시려고 우리들 가운데 그들을 두셨다. 그들에게 베푼 동정과 자비심은 마치 당신 자신에게 베푼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받으신다. 그들에게 잔인하게 한 행위나 등한시한 행동은 마치 그리스도께 행한 것처럼 간주된다.―부조와 선지자 하권 186-189

그리스도는 극도의 곤경에 처한 인간의 기회를 주시하심 ― 그리스도의 마음은 모든 의미에서 가난한 자들을 보실 때 기뻐지며, 학대받는 겸손한 자들과, 사별의 슬픔으로 머리 숙인 자들을 보실 때 기운이 나며, 의를 위하여 충족되지 못한 갈급성을 가진 듯한 자들을 볼 때 기뻐지며 시작할 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의 무능을 볼 때 활기를 띄신다. 176 그분은 이른바 많은 목사들이 낙담하는 바로 그런 상태를 환영하신다. 그분은 도움이 너무도 많이 필요되는 사람들을 그들이 처해 있는 그곳에서 만나심으로 그들을 도와 줄 기회를 보신다.

주 예수님은 무식한 자들과 정로에서 이탈한 자들의 진상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을 소유한 유능한 남녀들에게, 어려운 곳에 있는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을 위한 이 사업에 대한 책임을 지우심으로, 우리의 그릇된 경건을 고쳐 주신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경우들을 대처할 방법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신다. 이러한 일꾼들은 의료선교사업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들어갈 문호가 그들에게 열리는 것을 볼 때 용기를 얻을 것이다. 그들은 별반 자기를 과신(過信)하지 않고 자신에게 영광을 전혀 돌리지 않으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구주께서는 손이 거칠고 숙련되지는 않았을지라도, 마음이 동정심으로 민감하고 많은 불행들을 제거해 주기 위하여 무엇인가를 하고자 깨어 있는 자들을 통하여 일을 착수하고자 기다리고 계신다. 그분은 불행중에 자비를, 모든 것의 상실에서 이득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들을 통하여 일하신다. 세상의 빛되신 예수님이 지나가실 때, 모든 고난 중에 특별한 은혜가 혼란 중에 정의와 질서가, 인간의 경험으로 실패된 것처럼 보인 것 중에 하나님의 성공과 지혜가 나타난다. … 그리스도께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같이 하는 자들에게 당신 축복을 선언하신다. 누가복음에서 우리는 “가난한 자는 복이 있”(눅 6:20)다는 말씀을 읽는다. 가난한 자들은 부자가 받는 속기 쉬운 유혹들 중 백 분의 일도 받지 않는다. 우리는 마태복음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마 5:3)라는 말씀을 읽는다. 177 심령의 빈곤은 하나님의 은혜의 부로 채워질 수 있다는 뜻이다.―서신 100, 1902

빈곤이 지상에서 제거된다면 ― 곤궁과 빈곤은 언제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지식과 도덕의 표준이 높다 하여도, 아무리 우리가 고도의 문명에 이를 수 있다 해도,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 4:6)는 말씀의 진리에 대한 하나의 기념비, 곧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하심에 대한 하나의 표로서 빈곤은 항상 계속될 것이다. 지구에서 빈곤을 제거하는 것은 주님을 믿는 그리스도교의 유익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믿음의 발휘, 곧 자비의 복음이 고통하는 자들의 마음에 접촉되는 하나의 수단을 위하여 오늘날 열려 있는 문이 닫혀질 것이다. 다른 방법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영혼들을 그리스도인 구제사업으로 접근할 수 있다. 그 사업은 복음사업을 돕는 손이다.―서신 83,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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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믿음의 가정의 궁핍 ― 우리가 필요성을 깨닫고 우리의 보호가 요망되는 믿음의 가족 중에 있는 궁핍한 사람과 고통하는 사람들에게 선을 행함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이 표현되어야 한다. 각 사람은 특별한 동정심으로 하나님의 귀중한 가난한 사람들을 돌아보아야 하는 하나님께 대한 특별한 의무를 지고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들은 지나쳐 버리지 말아야 한다.―교회증언 6권 271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 6:10).

특별한 의미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교회에 교인들 중 가난한 사람들을 돌볼 의무를 맡기셨다. 그분께서는 각 교회안에 당신의 가난한 사람들이 있도록 허락하신다. 그들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하며, 주님께서는 교인들에게 그들을 돌볼 개인적 책임을 맡기셨다.

진실한 가정의 가족들이 병자를 돌봐 주고, 약한 자를 도와 주고, 무식한 자를 가르쳐 주고, 경험이 없는 자들을 단련시켜 줌으로 서로 보호하는 것처럼, “믿음의 가정”에서도 가난하고 속수무책인 사람들을 돌봐 주어야 한다.―치료봉사 184

돌봐 줄 두 부류의 사람들 ― 우리의 주변에는 우리가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두 부류의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 그 두 부류는 자신의 독자적 행동 노선을 취하며 계속적으로 범죄함으로 스스로를 파괴하는 자들과, 진리를 위하여 고생스런 환경으로 들어가게 된 자들이다. 우리는 우리 이웃을 우리 자신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 179 그렇다면 이 두 부류의 사람들에 대하여 우리들은 건전한 지혜의 인도와 권면 아래 올바르게 일해야 할 것이다.

가난한 자들이 주님의 소유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어느 경우에도 그들에게 유익이 된다면 그들을 도와 주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들을 멸망하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았다는 사실을 죄악 세상에 나타내기를 원하신다. 진리를 위하여 자기들의 집에서 쫓겨나, 어쩔 수 없이 고생하게 된 자들을 도와 주기 위하여는 특별한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바로 그 사람들의 사정을 헤아려 줄 만한 사람들, 곧 자기를 부정하고, 도량이 크고, 수용적이고, 관대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더욱 더 많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백성 중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 그들의 궁핍에 대한 대책 없이 버려져서는 안 된다. 그들이 생계를 얻을 수 있는 어떤 길이 모색되어야 한다. 어떤 이들은 일하도록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있다. 다른 이들은 열심히 일을 하고,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하여 그들의 능력의 한계에 이르기까지 무거운 부담을 지고 있는데, 그들은 특별히 도와 주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경우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이 직업을 얻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이처럼 귀중한 가난한 가족들을 돕기 위한 자금이 있어야 한다.

이 사업을 위하여 필요되는 자금이 다른 용도로 바뀌어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 때문에 궁핍과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는 가난한 자들을 도와 주는 일과, 하나님의 계명을 짓밟는 모독자들을 도와 주기 위하여 계명을 지키는 가난한 사람들을 등한히 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그 차이를 주시하신다. 안식일 준수자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계속 범하는 자들과, 자기들을 도와 주기를 누군가에게 바라는 일에 습관화된 자들을 재정적으로 원조해 주는 짐을 스스로 지기 위하여 고통당하고 궁핍한 주님의 백성들을 지나쳐 버려서는 안 된다. 이것은 올바른 종류의 선교사업이 아니다. 그것은 주님의 계획과 일치되지 않는다.

180 교회가 세워지는 곳은 어디에서나 그 교인들이 가난한 신자들을 위하여 성실한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여기에서 그칠 것이 아니다. 그들은 또한 상대방의 믿음에 상관없이 다른 사람들을 도와 주어야 한다. 그러나 노력의 결과로 그들 중 어떤 이들이 이 시대를 위한 특별한 진리를 받게 될 것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강퍅히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 요구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 주라. 삼가 너는 마음에 악념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제 칠 년 면제 년이 가까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에게 악한 눈을 들고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네가 죄를 얻을 것이라.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요,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 바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는고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신 15:7-11).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어떤 이들은 환경에 의하여 가난해 진다. 어떤 이는 부주의해서 처리해 나가는 방법을 모른다. 다른 이들은 병과 불행으로 가난하다. 그들이 무슨 이유로 궁핍하든지, 그들을 돕는 것은 선교사업 중 하나의 주요 분야이다.―교회증언 6권 269-271

불행한 환경에서 초래될 수 있는 빈곤 ― 불우한 환경이 가져온 심한 궁핍 때문에 어느 형제가 빚을 질 수밖에 없도록 된다든지, 그가 아무리 과도한 노력을 할지라도 이 빚을 갚을 수 없어 먹고 입는 것조차 어려움을 당할 수밖에 없게 될 때는 그 빈곤이 반드시 무능의 표적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181 돕는 손길을 가난한 자들에게 뻗쳐 그들의 난처한 지경을 면하게 해 주고, 그들을 자립하게 하여, 주님의 포도원에서 일할 수 있게 하며, 빚의 어두운 그늘이 그들을 덮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압박을 받지 않게 해야 한다.―원고 34, 1894

그 교회와 교회들의 책임 ― 교회에 속한 가난한 사람과 병자들을 돌보기 위하여 주의 깊고 지각 있는 처사를 하는 것이 각 교회의 의무이다.―서신 169, 1901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소유인 가난한 사람들을 각 교회 주변에 있도록 허락하신다. 그들은 항상 우리 중에 있을 것이며, 주님께서는 각 신자들에게 그들을 돌볼 책임을 맡겨 주신다. 우리는 우리의 책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 우리는 주변에 있는 자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우리 입장에 계셨더라면 나타내셨을 그런 사랑과 동정을 나타내야 한다. 이리하여 우리는 훈련을 받게 되고, 그것으로 그리스도의 사업에 일할 준비를 갖출 수 있게 된다.

목사는 여러 가정들을 교육시키고 교회를 굳게 하여, 그 교회의 병자와 가난한 자를 돌보게 해야 한다. 그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재간들을 활용하도록 고취해야 한다. 만일 한 교회가 이 분야에 너무 큰 부담이 되면 다른 교회들이 와서 도와야 한다. 신자들로 하여금 주님의 백성인 그 사람들을 돕는데 있어서 기지와 재간을 활용하도록 하라. 신자들로 하여금 사치품이나 필수품이 아닌 장식품들을 사용하고 싶은 욕망을 버리게 하고, 고통당하는 궁핍한 자들을 편안하게 해주도록 하라. 이렇게 하는 중에 그들은 이사야 58장에서 주신 교훈을 실천하게 되고, 거기에 약속된 축복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교회증언 6권 272

182 각 신자가 해야 할 몫 ― 주님의 백성은 원칙에 대하여 강철같이 강해야 한다. 그분은 각 신자에게 속한 일을 지시하셨다. 그분은 신자들이 그들의 영역 안에 있는 자들에게 해야 할 의무를 성실하게 하라고 언명하신다. 그들은 자기들이 도와야 할 가난한 자들을 너그럽게 도와 주어야 한다. 그들은 그들의 자녀들에게 주의 길을 지키고 공의와 의를 행하도록 가르치면서 조직적인 선교사업에 종사해야 한다.

그러나 여러 해 동안 교회 앞에 비쳐 주신 빛은 무시당해 왔다. 고통하는 인간을 위하여 각 교회에서 해왔어야 할 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교인들은 주님의 말씀에 유의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복음사업에서 얻었어야 할 경험을 빼앗겼다.―리뷰 앤 헤랄드 1902.3.4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들은 보호를 받아야 한다. 우리에게 어떠한 댓가와 희생이 요구될지라도 이들을 등한히 해서는 안 된다.―청년교사 1897.8.26

교회가 짐을 짐 ― 가난한 자들이 있는 교회들은 그들의 청지기 직분을 등한히 하지 말고, 가난한 자와 병자들에 대한 무거운 짐을 위생병원에 지우지 말아야 한다. 여러 교회에 속한 모든 교인들은 그들 가운데 있는 고통당하는 자들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 책임이 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무거운 짐들을 져야 한다. 만일 그들 가운데 병든 사람들이 있어, 치료의 혜택을 원한다면, 할 수 있는 대로 그들을 위생병원으로 보내라. 이렇게 함으로 그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그 기관을 후원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대로 도움이 필요되는 자들을 도와 주고 가난한 자들을 돌보게 될 것이다.―교회증언 4권 551

183 주님의 소유된 가난한 자들이 등한히 취급될 때 ― 주님께 속한 가난한 자들이 등한시되고, 잊혀지고, 냉랭한 표정과 잔혹한 말로 인사를 하게 되면, 그런 실수를 범한 자는 주님의 성도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등한히 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의 구주께서는 고통당하는 인간의 관심사를 당신의 관심사와 동일시하신다. 마치 부모의 마음이 그 어린 것들 중 고통당하는 하나에게 쏠리고 긍휼히 여기는 친절로 애타는 것처럼, 우리 구주의 마음은 당신의 지상 자녀 중 가장 가난하고 미천한 자를 동정하신다. 그분은 고통당하는 자와 압제받는 자들에 대하여 당신께서 느끼시는 그 사랑을 우리 마음에 깨우쳐 주시고자 그들을 우리 가운데 두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그들에게 잘못하고, 그들을 멸시하고 학대하는 자는 누구에게나 당신의 심판을 내리실 것이다.―교회증언 4권 620

빈곤한 자를 찾아냄 ― 우리는 그대의 선한 뜻에 대하여 감사한다. 그러나 가난한 자들은 선한 뜻만으로 안락하게 될 수 없다. 그들은 음식과 의복을 통하여 그대의 친절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를 얻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자들 중 누구든지 양식을 구걸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대에게 풍족하게 주셔서, 근면과 절약으로도 그들의 필요를 공급할 수 없는 자들에게 그대가 공급해 줄 수 있게 하셨다. 그들의 필요에 그대의 주의를 끌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욥이 한 것처럼 하라. 그는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을 찾아 내었다. 직접 답사하여 무엇이 필요되며 어떻게 그것을 가장 잘 충족시켜 줄 것인지 알라.―교회증언 5권 151

그들이 우리에게 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 것 ― 가정들 안에 있는 빈곤과 고통이 우리에게 알려져 괴로움과 고통당하는 자들이 반드시 구제되어야 할 것이다. … 그들이 그대에게 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을 살펴 보고,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 주라. 우리는 젊은 남녀들이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영원한 진리의 토대 위에 서기 위하여 믿음으로 모험하다가 난국에 빠진 자들을 도와 주는 일에 대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자금을 투자해야 한다. 184 특별히 필요한 사정들이 있는 곳을 맡은 목사는 진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된 자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원고 25, 1894

실직된 새 신자들을 도움 ― 우리의 자선사업에 있어서 진리를 제시함으로 확신이 생겨 진리를 받아들인 자들을 특별히 도와 주어야 한다. 우리는 진리를 받아들일 도덕적 용기를 가진 자들이 진리를 받은 결과 일자리를 잃고 가족들을 부양하던 그 일을 못하게 된 자들을 돌봐 주어야 한다. 도와 줄 가치가 있는 가난한 자들을 도와 주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을 위하여 직업을 제공해 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들이 안식일에 일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고 느낄 정도로 도움 없이 버려져서는 안 된다. 주님의 편에 서는 자들이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을 통하여 어려울 때에 형제들에게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하는 온정적이며, 무아적이고, 자아희생적인 한 백성을 보아야 한다. 주님께서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드리.”(사 58:7)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특별히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교회증언 6권 85

가난한 가족들을 위하여 땅을 준비하라 ― 학교가 설립되는 곳(호주에서)에는 과수원들과 채전들을 위한 땅이 있어야 하며, 그것으로 학생들이 육체적 활동과 정신적 부담을 조화시키고 또한 학교에 낼 학자금 절반, 어떤 경우에는 전부를 지불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안식일을 지키기 때문에 도시에서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가족들이 작은 농장들을 사서 스스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토지를 구입해 두어야 한다. 이것이 이 나라에 적극적으로 필요하다. 185 땅을 경작하는 데 대한 교육을 해야 한다. 우리는 이 활동에 주님께서 축복하실 것을 기대해야 한다.―원고 23, 1894

가난한 가정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 ― 세째 천사의 기별을 받아들이는 가난한 자들에 관한 우리의 의무에 대하여 자주 질문들을 한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 안식일을 받아들이는 가난한 가족들의 사정을 어떻게 신중히 처리해야 할지 오랫 동안 알고 싶어했다. 그런데 내가 1861년 8월 3일, 뉴욕주 루스벨트에 있을 때, 가난한 자들에 관한 어떤 것들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형제들에게 이 기별을 받아들이는 모든 가난한 가족들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요구하시지는 않으신다. 만일 그들이 그렇게 할 것 같으면, 목사들이 새 지역으로 들어가기를 중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자금이 고갈될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근면과 절약의 정신이 부족하기 때문에 가난하다. 그러니까 그들은 돈을 올바로 사용할 줄 모른다. 만일 그들을 도와 주게 되면, 그들은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언제나 가난할 것이다. 비록 그들이 가장 좋은 편의를 얻는다 할지라도, 그들의 처지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계산을 잘하지 못하고, 많거나 적거나 간에 그들이 얻는 재물들을 모두 써버릴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극기하고 절약할 줄을 전혀 모르며 빚에서 벗어나고 미구에 있을 어려운 때를 위하여 대비할 줄을 모른다. 만일 교회가 그런 사람들을 스스로의 재원에 의존하도록 버려두는 대신에 도와 준다면, 결국 그들을 해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교회를 바라보고, 교회에서 도움을 받기를 기대하며, 그들이 도움을 잘 받으면 극기와 절약을 실천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매번 도움을 받지 못하면 그들은 사단의 시험을 받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형제들이 그들에 대한 모든 의무를 이행하지 못할까 두려워하면서 형제들을 질투하게 되고 매우 철저하게 따지게 된다. 잘못은 그들 편에 있다. 그들은 기만당하고 있다. 그들은 주님께 속한 가난한 자들이 아니다.

186 가난한 자들을 도와 주는 것에 관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어진 교훈은 그런 경우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불행한 자들과 고통당하는 자들에 대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섭리로써 다른 사람들을 시험하기 위하여 고통당하는 자들을 두신다. 과부들과 병든 자들을 교회 안에 있게 하여 그것이 교회에 축복이 됨을 입증해 준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의 진정한 성품을 계발시키기 위하여, 또한 긍휼이 많으신 우리 구주께서 나타내신 고귀한 성품의 특성들을 발휘하게 하시고자 하나님께서 택하신 방편 중 하나이다.

독신으로 있을 때 겨우 살아갈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가족들을 부양할 길을 전혀 모르면서 결혼하고 가족들을 양육할 길을 택한다. 설상가상으로 그들은 가정관리를 할 줄 모른다. 가정에서 취하는 그들의 행동 전체는 느슨하고 부주의한 습관으로 특징지어져 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거의 제어하지 못하고, 화를 내고, 참지 못하고, 초조하다. 그러한 자들이 진리를 받아들일 때, 그들은 그들보다 부한 형제들에게서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만일 그들의 기대가 어긋나면, 그들은 교회에 대하여 불평하고, 믿음대로 살지 않는다고 그들을 비난한다. 이러한 경우에 누가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 이처럼 가난한 많은 가족들을 돌보기 위하여, 하나님의 사업이 약화되고, 여러 지역에 있는 금고가 고갈되어야 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부모들이 고통을 당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안식일을 받아들이기 전보다, 받아들인 후에 더욱 큰 어떤 축복으로 고통당하지 않을 것이다.

가난한 자들 가운데는 극복하지 않으면 분명한 멸망이 입증될 어떤 악이 있다. 그들은 야비하고, 거칠고, 세련되지 못한 습관들을 지닌 채 진리를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그들이 자기들의 야비함을 보고, 그것이 그리스도의 성품과 일치하지 않는 것임을 깨닫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을 요한다. 187 그들은 좀더 규모 있고 세련된 다른 사람들을 보고 오만하다고 생각하며 “진리가 우리 모두를 수준 이하로 끌어내린다”고 하는 그들의 말을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진리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를 떨어뜨린다는 생각은 전혀 잘못된 생각이다. 진리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를 향상시키고, 그의 기호들을 세련되게 해주고, 그의 판단을 성화시켜 준다. 그러므로 만일 진리대로 생활하기만 하면 그를 하나님의 도성에서 거룩한 천사들과 교제하기에 계속적으로 적합하게 해준다. 진리는 우리 모두를 어떤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리도록 고안되어 있다.

더욱 유능한 사람들은 그들과 관련된 보다 가난한 자들을 취급할 때 언제나 고상하고 관대한 면에서 행동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유익한 충고를 해주고, 그 다음에는 생애의 싸움을 싸워 나아가도록 그들을 버려 두라. 그러나 가난한 과부와 고아와 병든 자들을 특별히 돌봐 주어야 할 가장 엄숙한 의무가 교회에 지워지는 것을 나는 보았다.―교회증언 1권 272-274

균형잡힌 사업에 관한 권면 ―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모든 활동과 재능을 가난한 자들에게만 기울이라고 요구하지 않으셨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는 그분의 사명을 성취시키고 있는 자들을 위하여, 우리는 할 일이 있다. 봉사의 증가는 재정의 증가를 요구할 것이다. … 그대가 돈을 쓸 때는 “낭비를 장려하고 있지 않는가” 생각해 보라. 그대가 가난한 자와 불행한 자를 도와 줄 때 “나는 그들을 돕고 있는가 아니면 그들을 해하고 있는가” 생각해 보라.

세계적인 우리의 선교 지역의 필요들을 생각하라. … 오늘날은 영원한 것에 대한 관심으로 무거운 부담을 느낄 때이다. 우리는 오류로 멸망해 가는 세상에 진리의 깃발을 펄럭여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피묻은 깃발 아래로 불러서 사람들에게 성경을 공부시키고, 여러 지역에서 장막회의 수를 늘이고, 도시들을 경고하고, 세상의 “거리와 골목길”(눅 14:21)에서 경고하도록 요구하신다.―원고 4, 1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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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가난한 자들의 요구를 채워 줌 ― 우리 주위의 도처에서 우리는 결핍과 고통을 본다. 가정들은 음식이 필요하며 어린 것들은 밥달라고 부르짖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편리한 것이라곤 거의없이 단지 오막살이에서 살고 있다. 가난한 자들의 부르짖음은 하늘에 상달된다. 하나님께서 보시고 하나님께서 들으신다.―교회증언 6권 385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섭리로써 땅을 은혜의 선물로 채우시고 생애를 안락하게 해주는 땅의 창고를 채워 주셨지만 궁핍과 불행이 어느 곳에나 있다. 하나님의 넓은 섭리로 모든 사람의 필요가 채워지리 만큼 풍성한 것이 당신의 인간 대리자들의 손에 주어졌지마는 하나님의 청지기들은 불충실하다. 소위 그리스도교계는 모든 배고픈 자들의 필요를 채워 주고, 헐벗은 자들을 입혀 준다는 지나친 과시를 한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간직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기적인 향락을 위하여, 식욕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독주와 진미를 위하여, 호화로운 주택과 가구와 의복들을 위하여 주님의 돈을 낭비하고 있는 한편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는 동정의 표정을 나타내거나 한 마디의 자비의 말조차 거의 하지 않는다.

소위 그리스도교국이라 하는 우리나라의 바로 중심부에 어떠한 불행이 존재해 있는가? 우리나라 대도시들 안에 있는 가난한 자들의 상태를 생각해 보라. 그 도시들 안에는 짐승만큼도 보호와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무수하다. 얼굴에 부도덕과 사악함이 찍혀 있는 헐벗고 거의 기사상태(饑死狀態)에 이른 비참한 아이들이 무수하다. 가정들이 비참한 셋방에 함께 모여 있는데, 그들 중 대부분은 습기와 불결로 악취가 나는 어두운 움막들이다. 189 어린 아이들이 이 끔직한 곳에서 탄생한다. 유년기와 청년기에 매력적인 것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오관을 즐겁게 하도록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연계의 사물들의 미를 전혀 보지 못한다. 이 어린 아이들은 그들 주위에 있는 저질의 교훈과, 불행, 악한 모본으로 성품이 꼴 지어지고 형성되어 자라나도록 방임된다. 그들은 오직 모독적인 언사에서만 하나님의 이름을 들을 뿐이다. 불순한 말들, 술과 담배 냄새, 각종 도덕적 타락들을 눈으로 보고 오관을 타락시킨다. 이 비참한 거처들로부터 음식물과 입을 것을 달라는 가련한 부르짖음이 기도에 대하여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많은 사람의 입에서 튀어 나온다.

우리 교회를 통하여 이루어져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별로 생각지도 않고, 거의 손도 대지 않은 일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고 말씀하신다(마 25:35, 36). 어떤 사람들은 만일 그들이 이 사업을 위하여 돈을 내기만 하면 그것이 그들이 해야 할 일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이다. 금전의 기부가 개인적인 봉사를 대신할 수 없다. 우리는 재물을 바치는 것이 정당한 일이며, 더욱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힘과 기회가 있는 대로 모든 사람에게 개인적 봉사가 요구된다.

가난한 자, 압제받는 자, 고통당하는 자, 궁핍한 자들을 모으는 일은 이 시대를 위한 진리를 믿는 모든 교회가 오래 전부터 해 왔어야 할 바로 그 사업이다. 배고픈 자들을 먹이고, 쫓겨난 가난한 자들을 우리 가정으로 데려오고, 우리로 하여금 바로 인간의 불행의 심연에까지 내려가서 스스로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자들을 도울 수 있게 해줄 은혜와 능력을 매일 하나님께로부터 받으면서 육체적 필요를 채워 주는 일에 있어서 사마리아인의 부드러운 동정심을 보여야 한다. 190 우리는 이 일을 하는 중에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보일 절호의 기회를 갖게 된다.―교회증언 6권 274-276

그대의 이웃을 도움으로 시작하라 ― 모든 교인은 이웃에 사는 사람들을 위하여 활동하는 것이 특별한 의무임을 느껴야 한다. 그대가 종교적 사물에 관심이 없는 자들을 어떻게 최선껏 도울 수 있을 것인지 연구하라. 그대가 친구들과 이웃들을 방문할 때 그들의 육신적 복리에는 물론 영적 복리에도 관심을 보여 주라. 그리스도를 죄를 용서해 주시는 구주로 제시하라. 이웃 사람들을 그대의 가정으로 초청하여, 귀중한 성경과 성경 진리를 설명하는 책들을 읽어 주라. 그것이 단순한 찬미의 노래와 열렬한 기도와 합해 지면, 그들의 마음을 감화시킬 것이다. 이 일을 하도록 교인들 스스로가 훈련되게 하라. 이것은 외방 나라에서 어두움 속에 헤매는 영혼들을 구원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필수적이다. 어떤 사람들은 원방에 있는 영혼들에 대하여 무거운 부담을 느끼는 한편, 본국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저들 주변에 있는 귀중한 영혼들에 대하여 무거운 부담을 느끼고, 마치 자기들의 구원을 위하여 부지런히 일하는 것처럼 그 영혼들을 위하여 일해야 한다.

육체도 영혼도 새롭게 못하는 유흥으로 소모되는 시간들을 가난한 자들, 병자들, 고통당하는 자들을 방문하는 일에, 혹은 도움이 필요한 어떤 사람들을 도와 주기 위하여 노력하는 일에 쓰여져야 한다.

가난한 자, 멸시받는 자, 버림받은 자들을 돕기 위하여 노력할 때, 그대의 위신과 우월감이라는 죽마(竹馬)를 타고 그들을 위하여 일하지 말라. 191 이런 방법으로 그대는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할 것이다. 진정으로 회개한 자가 되라. 그리고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그분을 배우라. 우리는 언제나 주님을 우리 앞에 모셔야 한다.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그 사실을 잊지 않도록 “나는 값으로 산 바되었다”고 계속 말하라.

하나님께서는 그대의 자선심만을 요구하시지 않으시고, 그대의 명랑한 얼굴과, 그대의 희망찬 말과, 그대의 악수도 요구하신다. 고통당하는 주님의 자녀들을 방문할 때 그대는 희망이 사라진 자들을 만날 것이다. 그들에게 햇빛을 도로 가져다 주라. 생명의 떡이 필요되는 자들이 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주라. 또 지상의 어떤 유향으로나 의사로도 고칠 수 없는 심령의 병에 걸려 있는 자들이 있다.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그들을 예수님께로 데려오라.

특별한 경우에 어떤 이들은 충동적인 행동을 유발하는 감상적인 기분에 빠진다. 그들은 이러한 방법으로 그들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위대한 봉사를 하고 있는 줄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의 영성은 미구에 죽어 버리고, 그리스도의 봉사는 등한시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적합한 봉사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동료 인간들에게 유익을 끼칠 수 있는 것은 정에 끌리기 쉬운 발작적인 행동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을 행하려는 발작적인 노력은 이따금 유익보다 손상을 끼치는 결과를 초래한다.―교회증언 6권 276, 277

올바른 방법으로 도와 주라 ― 궁핍한 자들을 도와 주는 방법들은 주의 깊고도 경건한 마음으로 연구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분은 당신께서 만드신 피조물들을 돌보는 방법을 근시안적인 인간보다 더 잘 아시기 때문이다. 도와달라고 간청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분별하지 않고 도와 주는 자들이 있다. 이 점에서 그들은 잘못한다. 궁핍한 자들을 도와 주고자 노력할 때, 우리는 올바른 방법으로 도와 주도록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도움을 받을 때 그들 스스로를 계속해서 특별한 도움의 대상이 되게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의지할 수 있는 어떤 것을 보기만 하면 의지하려 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부적당한 시기에 적합하지 않는 관심을 기울이므로 우리는 나태와 무능과 낭비와 부절제를 장려할 수도 있다.

우리가 가난한 자들에게 줄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는 낭비를 장려하고 있는가? 나는 그들을 도와 주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그들을 해하고 있는가?” 자기 스스로 생계를 꾸려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할 권리가 없다.

192 “세상이 나에게 살아가게 해 줄 의무가 있다”는 말은 거짓과 기만과 절도의 요소를 간직하고 있다. 세상은 스스로 일하고 벌어서 생계할 수 있는 어떤 사람에게도 생계를 유지시켜 줄 의무가 없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우리의 문간에 와서 먹을 것을 구걸하면, 우리는 그를 주린 채로 돌려 보내지 말아야 한다. 그의 궁핍은 불행의 결과일 수도 있다.

우리는 부양해야 할 대가족을 거느리고 허약과 궁핍으로 더불어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자들을 도와 주어야 한다. 아버지 없는 아이들을 거느린 많은 과부 어머니는 그에게 딸린 어린것들을 부양하고 음식과 의복을 그들에게 공급해 주기 위하여, 힘에 지나치도록 일을 하고 있다. 그러한 많은 어머니들은 지나친 노력 때문에 죽었다. 모든 과부들은 소망에 넘치는 위로와 격려의 말이 필요하다. 그리고 실질적 도움을 받아야 할 자들이 대단히 많다.―교회증언 6권 227, 228

필요한 모든 경우를 기록해 두라 ― 부자와 가난한 자가 동정과 도움의 줄로 굳게 묶이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 그분은 우리에게 알려지는 고통과 궁핍에 대한 모든 사정에 관심을 나타내도록 요구하신다. 고통당하는 인간에게 봉사하는 것이 그대의 위엄을 떨어뜨리는 일이 아님을 생각하라. … 우리의 믿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에 속한 바로 그 도움을 갈망하고 있다. 만일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의 이웃 사람들에게 진정한 관심을 보였을 것 같으면, 많은 사람들이 이 시대를 위한 진리를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있는 바로 그곳에서 그들을 도와 주는 것만큼 사업에 좋은 평판을 주거나 언제나 할 수 있는 길은 없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계명을 지키노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그리스도께서 일하신 것처럼 일을 했을 것 같으면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기별 안에서 기뻐하고 있을 것이다.―교회증언 6권 279, 280

오늘날 사람들의 마음과 접촉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 ― 고통당하는 인류의 결핍에 관심을 보임으로 우리는 사람들의 마음과 가장 잘 접촉할 수 있다. 193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 주기 위하여 우리의 특혜와 특권들을 버릴 만큼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부드러운 동정을 느낄 때, 정신과 마음의 개화가 훨씬 더 쉽게 이루어진다.―서신 116, 1897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찾아 가서 그리스도를 증거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주신 사명 아래 일해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9, 20). 그러므로 등한히 여김을 받는 사람들을 접촉하여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사업이다.

최근까지 우리 백성들이 이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기울여 온 노력은 조금 뿐이거나 전혀 없다. 그리스도는 의인을 부르러 오시지 않고,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려 오셨다. 그분은 모든 사람이 당신의 피의 효력을 무한히 가치 있는 것, 곧 권유당하여 당신께 나오는 모든 자들을 끝까지 구원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닌 것으로 여기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된 우리 인류 각 사람이 하나님은 무한하시며, 모든 인류를 위한 그리스도의 속죄에 나타난 그분의 사랑이 인간에게 주어진 가치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기억하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당신께로 와서 구원을 받으라고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우리는 모든 자비의 근원되신 분에게로 가야 한다. 그분은 사람들을 당신의 기구로 사용하셔서 그의 동료들을 죄에서 구원해 내실 것이다.―서신 33, 1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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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가난한 자들이 자립하도록 교육함 ― 하나님의 남녀들, 분별력 있고 지혜 있는 사람들을 택하여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을 돌보게 하되, 믿음의 가정에 먼저 하게 할 것이다. 이들이 교회에 알려지고, 어떻게 해야 할지 협의되어야 한다.

가난한 자들이 값없이, 혹은 거의 무료로 제공되는 음식물을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끔 격려가 되는 말을 해주는 대신, 우리는 그들을 스스로 도울 수 있는 곳에 두어야 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주고자 노력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일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가난한 가정의 식구들에게 음식을 요리하고 그들 자신의 옷을 만들고 고치는 방법과 가정을 올바르게 돌보는 방법을 가르쳐 주라. 소년 소녀들이 어떤 유용한 사업이나 직업을 철저하게 배우게 하라. 우리는 가난한 자들을 자립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도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들의 생계만 유지해 가게 할 뿐 아니고 다른 사람들까지 도울 수 있게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교회증언 6권 278, 279

생각하고 재력 있는 사람들에 대한 호소 ― 빈곤이 편만하고 매 발걸음마다 생존을 위하여 싸워 나가야 하는 곳에서 무엇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이 자주 일어날 것이다. 이러한 환경 아래서 어떻게 우리가 개선에 대한 정확한 관념을 마음에 새겨줄 것인가? 그 사업은 분명히 어렵다. 교사들과, 생각 있는 사람들과, 재력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재능을 활용하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입장에 계셨을 것 같으면 추진시키게 될 것처럼, 추진시키지 않을 것 같으면 그 사업은 미진한 채 남아있게 될 것이다. 남녀들이 외부의 어떤 힘에 의한 도움을 받지 않을 것 같으면 필요한 개혁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195 재능과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저희 동료들을 복되게 하기 위하여 그 선물들을 사용해야 하며, 그들을 자립할 수 있는 기반 위에 올려 놓기 위하여 일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학교에서 받는 교육이 최선껏 활용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재간들이 말 아래나 침상 밑에 감추어져서는 안된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다(마 5:14). 그대가 가구와 의복이 불충분하고, 생활도구도 없고, 책들이나 집 주위에 품위 있는 것에 대한 다른 표적들도 전혀 없이 움막에서 사는 사람들을 볼 때, 그들에게 관심을 두고 그들의 힘을 가장 유용하게 사용하도록 가르쳐서 개선되고 그들의 일이 진보될 수 있도록 노력하지 않겠는가? ― 교회증언 6권 188, 189

문제의 해결책을 보여 주는 하나님의 말씀 ― 가난한 사람들의 형편과, 그들을 구제해 줄 어떤 방법이 없을까 하고 걱정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관대한 남녀들이 있다. 직업 없고 집없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공통적인 축복을 받고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의도하신 생활을 하게끔 어떻게 도와 줄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대답을 찾고자 열렬히 노력하는 질문이다. … 만일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에 더욱 유의하였을 것 같으면, 그들은 자기들을 괴롭히고 있는 그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발견하였을 것이다. 그들은 구약성경에서 노동문제와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문제에 관하여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되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각 가족은 경작하기에 충분한 땅을 가지고 가정을 세웠다. 그렇게 함으로써 유용하고 근면하고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위한 수단과 동기가 제공되었다. 그리고 지금껏 사람들의 어떤 고안(考案)도 그 계획을 능가하지 못하였다. 196 지금까지 세상이 그 계획에서 떠남으로써 오늘날 존재하는 대부분의 빈곤과 불행이 나타나게 되었다. … 이스라엘에 있어서, 직업훈련은 하나의 의무로 간주되었다. 모든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어떤 유용한 직업을 가르치도록 요구되었다.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사람들은 생산적 직업에 대한 훈련을 받았다. 모든 여자에게는 살림살이에 대한 의무로 아는 지식이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그 의무에 따른 기술이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여자들에게 하나의 명예로 여겨졌다.

여러 가지 직업들을 선지자 학교에서 가르쳤다. 그리고 학생들 중 많은 사람들이 육체노동으로 자급자족하였다.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생활계획은 온 인류를 위한 하나의 실물교훈이 되도록 의도되었다. 만일 그 원칙들이 오늘날 실천되었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다른 장소로 바뀌어졌을까! ― 치료봉사 167-171

많은 사람들이 토지가 딸린 집을 구할 수 있음 ― 광활한 천연계의 영역 안에는 고통당하는 사람들과 궁핍한 사람들을 위하여 집을 마련해 줄 장소가 아직도 남아 있다. 천연의 품 속에는 그들에게 식물을 공급해 주기에 충분한 자원들이 있다. 땅 속 깊은 곳에는 천연계의 보화를 캐낼 용기와 의지와 인내심을 가진 모든 사람들을 위한 축복들이 숨겨져 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토지를 경작하는 것, 곧 인류에게 정해 주신 직업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재산을 얻을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장(場)을 열어 준다. … 오늘날 도시들에 몰려 있는 사람들이 시골에서 생활하였을 것 같으면 그들은 생계를 유지할 뿐 아니라, 오늘날 그들이 잃고 있는 건강과 행복도 찾았을 것이다. 고된 일, 적은 임금, 어려운 경제사정, 이따금 역경과 궁핍 등이 그들의 운명이 될 것이다. 197 그러나 악에 대한 유혹, 환란과 범죄, 불행과 불결 등이 있는 도시를 떠나 시골의 정적과 평안과, 순결을 찾아 가는 일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축복이 될 것인가. … 만일 부지런하고 자급자족하게 되려면,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도움과 격려와 교훈을 받아야 한다. 가난한 가정들이 많다. 그들을 시골에 정착하게 해 주고 땅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방법을 그들에게 가르쳐 줌으로 그들을 도와 주는 것이 그들에게 가장 좋은 선교사업이 될 것이다.

그와 같은 도움과 교훈의 필요성은 도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보다 훌륭한 생활을 할 가능성을 다 갖추고 있는 시골에서까지도 가난한 많은 사람들이 매우 궁핍한 중에 있다. 모든 지역사회는 근면과 위생 면에서 교육이 결핍되어 있다. … 더럽혀진 정신과 연약하고 병든 몸은 악한 유전과 그릇된 습관의 결과가 어떠함을 나타내 준다. 그런 사람들은 바로 기초부터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들은 쓸모없고, 게으르고, 타락한 생활을 해왔으므로 올바른 습관으로 훈련받을 필요가 있다.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개선의 필요를 깨닫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더욱 고상한 생애에 대한 이상을 갖도록 지도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을 일어나도록 어떻게 도와 줄 수 있을 것인가? 빈곤이 편만하고 발걸음마다 싸워야 할 곳에서 무엇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 치료봉사 171-175

그리스도인 농부가 할 일 ― 그리스도인 농부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농촌에서 거처를 마련하도록 도와 주고, 그들에게 토지를 경작하며 그 땅에서 수확을 거두는 방법을 가르쳐 줌으로 참된 선교사업을 할 수 있다. 그들에게 농기구를 사용하고 여러 가지 작물을 경작하고 과수원을 만들어 돌보는 방법들을 가르쳐 주라.

토지를 경작하는 많은 사람들은 게으르기 때문에 적당한 수확을 얻지 못한다. 그들의 과수원은 올바르게 관리되어 있지 않고, 곡식들은 적당한 때에 심겨지지 않고 있으며, 토지들을 경작하는데 있어서 다만 피상적인 일만 이루어지고 있다. 198 그들은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로 땅이 불모하는 데 돌려 버린다. 적당하게 일을 하였을 것같으면 풍성한 수확을 거두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땅을 정죄함으로 거짓 증거를 하게 된다. 빈약한 계획, 적은 노력, 최선의 방법에 대한 적은 연구 등은 크게 개선되어야 한다.―치료봉사 175, 176

심지어 가장 가난한 사람들일지라도 일찍 일어나서 부지런히 일함으로 저들의 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 … 부지런히 활동함으로, 모든 능력을 최선껏 이용함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배움으로, 그들은 토지를 개량하고 땅을 경작하는 일에 있어서 성공하게 될 것이다.―교회증언 6권 188, 189

산업체들을 세움 ― 여러 가지 산업체들을 세워 가난한 가족들이 직업을 찾을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목수, 대장장이, 또한 참으로 어떤 유용한 노동의 분야를 이해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무식하고 직업 없는 사람들을 가르치고 도와 줄 책임을 느껴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봉사할 때,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여자들에게도 넓은 봉사의 분야가 있다. 유능한 요리사, 주부, 여자 재봉사, 보모, 그 밖의 모든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 선교사업을 하는 가족들은 미개척지에 정착할 필요가 있다. 농부, 금융업자, 건축가, 그 밖의 여러 분야의 기술과 재능을 갖춘 사람들은 등한시되어 있는 지역으로 들어가서 땅을 개간하고 산업체들을 세우고, 그들 자신을 위하여 평범한 집들을 마련하고, 그들의 이웃 사람들을 도와 주어야 한다.―치료봉사 176

자립하도록 도와 줌 ― 실제적 분야를 가르쳐 줌으로 우리는 때때로 가난한 사람을 가장 효과적으로 도와 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일하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은 근면과 인내와 절약과 자제의 습관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199 그들은 어떻게 의무를 감당할지 모른다. 만일 주의 깊고 경제적으로 이용했을 것 같으면 가족들을 안락하고 손색없이 부양해 줄 것들이 이따금 주의력과 올바른 판단의 부족으로 없어진다. “가난한 자는 밭을 경작함으로 양식이 많아지거늘 혹 불의로 인하여 가산을 탕패하는 자가 있느니라”(잠 13:23).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의존하는 법을 가르쳐 주게 되어 그들에게 손해를 끼칠수도 있다. … 진정한 자선사업은 사람들을 스스로 도울 수 있도록 도와 준다. … 진정한 구제는 단순한 선물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복리에 진정한 관심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과 고통받는 사람들의 필요를 이해하고 그들에게 가장 유익이 되도록 도와 주고자 노력해야 한다. 생각과 시간과 개인적 노력을 바치는 것은 단순히 돈을 주는 것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 그것이 가장 진실한 구제이다.―치료봉사 177, 178

육체적 노력과 도덕적인 능력이 요구됨 ― 개심시키고 개혁하려는 우리의 노력에 육체적 노력과 도덕적 능력이 연합되어야 한다. 우리는 현실적 분야와 영적 분야의 지식을 다 같이 얻기 위하여 노력하고 그 지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복음을 의미 그대로 실생애에 나타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복음의 현실적 영적 축복들을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교회증언 6권 189

무의식적으로 해를 끼침 ― 우리는 가난한 자들에게 축복이 되지 않는 선물을 주어, 그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고통당하게 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자신들의 힘을 발휘하거나 절약할 필요가 없도록 느끼게 하므로 실수를 범할 수 있다. 우리는 나태를 거들떠 보거나, 방종하도록 재물을 줌으로써 자아 만족의 습관을 장려하지 말아야 한다.―HS, 293

그대는 가난한 자들에게 주므로써 그들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다. 200 왜냐하면 그대가 그들을 의뢰하는 자가 되도록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대신에, 그 스스로 자립하도록 가르치라. 이것이 진정한 도움이 될 것이다. 궁핍한 자들은 스스로를 도울 수 있는 위치에 서야 한다.―원고 46, 1898

게으른 자를 부양하지 말라 ― 하나님의 말씀은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고 가르치신다. 주님은 고된 일을 하는 사람에게 부지런하지 않는 자들을 부양하도록 요구하지 않으신다. 시간의 낭비와 노력의 부족이 있는 곳에 가난과 빈곤이 초래된다. 만일 이런 방종에 빠진 자들이 그런 실수들을 보고 교정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위하여 하는 모든 것은 구멍 뚫린 바구니에 보화를 담는 것과 같다. 그러나 피치 못할 가난이 있는데, 우리는 그러한 불행한 자들에게는 친절과 동정을 나타내야 한다.―리뷰 앤 헤랄드 1899.1.3

권고를 받아야 할 가난한 사람 ― 유혹에서 벗어나지 않은 가난한 부류의 형제들이 있다. 그들은 서투른 경영자들이며, 현명한 판단력이 없고, 그들은 인내로 수고하는 느린 과정을 기다리지 않고 재물을 얻고자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상태를 너무 급히 개선하려고 서두른 나머지 훌륭한 판단력과 경험이 있는 자들과 의논하지 않고 여러 가지 사업에 착수한다. 그들의 기대는 좀처럼 실현되지 않는다. 그 다음에는 시험에 빠져 부자들을 질투하는 기질을 갖게 된다. 그들은 형제들의 재물로 유익을 얻고자 하는데, 기대대로 안 되기 때문에 시험을 당했다고 느낀다. 그러나 그들은 특별한 도움을 받기에 합당치 않다. 그들은 그들의 노력이 분산되어 있는 증거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일을 자주 바꾸고, 적은 이익 밖에 내지 못하는데 대하여 근심과 염려가 가득하다. 그런 사람들은 경험 있는 사람들의 권면을 들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흔히 충고를 제일 듣기 싫어하는 자들이다. 201 그들은 뛰어난 판단력이 있으므로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들이야말로 종종 특허권을 가지고 속임수를 써서 성공하는 교활하고 약삭 빠른 행상인들에 의해 기만을 당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그 행상인들이 무엇을 말한다 할지라도 신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그 형제들은 의심쩍게 여기고 배척해 버려야 할 바로 그것들을 쉽게 믿는다. 그들은 디모데에게 주는 바울의 교훈을 명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 6:6, 8).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들이 다 탐욕스런 자들뿐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부자들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탐욕스럽게 움켜 쥐고 여전히 더욱 많은 것을 얻으려고 애쓰는 한편, 가난한 자들은 부자들의 재물을 탐내는 큰 위험 가운데 빠진다.―교회증언 1권 480, 481

충고를 즐겨 들으라 ― 많은 사람들은 지혜로운 경영과 검약이 부족하다. 그들은 문제들을 잘 헤아려 보고 주의 깊이 행동하지 않는다. 그러한 자들은 자신의 빈약한 판단에 의뢰하지 말고 경험 있는 형제들과 의논해야 한다. 훌륭한 판단과 검약이 부족한 자들은 자주 권면을 구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세속적인 사업을 경영하는 방법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충고를 따르기를 즐겨하지 않는다. 그들은 좋지 못한 행동을 하고 결과적으로 고통스러움을 당한다. 그들의 형제들은 그들이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 마음 아파하면서 어려움에서 벗어나도록 도와 준다. 그들의 지혜롭지 못한 처사는 교회에 영향을 끼친다. 그것은 현대진리의 사업을 진척시키기 위하여 사용해야 할 재물을 하나님의 보고에서 가져 간다.

만일 이 가난한 형제들이 겸손한 태도를 취하여 형제들의 충고를 즐겨 듣고 권면을 받으면서도 곤란한 처지에 빠진다면, 그들의 형제들은 가난한 그 형제들이 어려움에서 벗어나도록 즐거운 마음으로 도와 주는 것이 그들의 의무임을 느껴야 한다. 202 그러나 만일 그들이 스스로의 진로를 선택하고 그들의 판단에 의지한다면, 그들은 저희의 현명하지 못한 행동에 대한 충분한 결과를 느끼고, “모사가 없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잠 11:14)는 좋은 경험을 배우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피차에 지배를 받아야 한다. 그들은 서로 의논해서 한 사람의 부족한 것을 다른 사람의 넉넉한 것으로 채워야 한다.―리뷰 앤 헤랄드 1871.4.18

가장 가난한 자도 스스로 도울 수 있음 ― 풍부한 우리나라(미국)에서 도움이 필요할 정도로 그렇게 가난한 사람은 극히 소수이다. 만일 그들이 올바른 길을 따랐다면, 그들은 거의 모든 경우에 결핍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나는 부자들에게, 가난한 그대의 형제들을 후하게 대하고, 하나님의 사업을 진전시키기 위하여 그대의 재물을 사용하라고 호소하는 바이다. 불행과 질병으로 가난하게 된 자들은 그대의 특별한 보호와 도움을 받을 가치가 있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믿음을 같이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라(벧전 3:8).―교회증언 1권 481

황금률을 준수하라 ― 하나님께서는 이따금, 심지어 불리한 일을 당할지라도 가난한 자가 손해되는 처지에 놓이지 않도록, 보호해 줄 누군가를 일으키신다. 이것이 자기 동료에 대한 인간의 의무이다. 행동의 결과를 분별할 수 없다는 이유로 사람의 무지를 이해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그가 맹목적으로 행동하지 않도록, 그리고 당연히 그의 것이 되는 자원들을 잃지 않도록, 각 방면으로 문제를 고찰하여, 직접적으로 그 사람 앞에 분명하고 성실하게 그 문제를 보여 주는 것이 그의 형제가 해야 할 의무이다. 사람이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 7:12)고 하신 황금률을 준수하면, 오늘날 존재하는 많은 문제들이 신속히 조정되었을 것이다.―서신 85, 1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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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양보다는 사랑이 동기가 됨 ― 가난한 자들도 주는 특권에서 제외된 것이 아니다. 가난한 자들도 부자와 마찬가지로 이 사업의 일부를 담당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과부의 동전 두 푼에 관하여 주신 교훈은, 가난한 사람의 현금도 사랑의 마음으로 바쳐진다면, 비록 그것이 가장 적은 분량의 것일지라도 부자의 가장 많은 기부와 꼭 같이 받으신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알려 준다. 그리스도께 사랑으로 드린 가난한 자의 예물은 드려진 분량에 의해서가 아니고 희생을 고취하는 그 사랑에 의하여 성소의 저울에 측정된다.―리뷰 앤 헤랄드 1907.10.10

가난한 자에게도 희생이 요구된다 ― 이 세상 물질에 가난한 어떤 이들은 솔직한 증언을 모두 다 재산가(財産家)의 어깨 위에 올려놓기 쉽다. 그러나 그들도 역시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희생할 것을 요구하신다.―리뷰 앤 헤랄드 1871.4.18

과부는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였다 ― 구주께서는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고 그들에게 과부의 빈곤을 주목하도록 명하셨다. 그 때에 칭찬하시는 예수의 음성이 그 여자의 귀에 들렸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궤에 넣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막 12:43). 자기의 행동이 이해와 평가를 받고 있었을 때에 그의 눈에는 기쁨의 눈물이 가득 찼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적은 돈을 보관하여 자신을 위하여 쓰도록 충고했을 것인데, 그 이유는 살찐 제사장의 손에 넣어 주면 연보궤에 들어온 많은 값진 예물 가운데서 그것은 보이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의 동기를 아셨다. 204 성전 봉사는 하나님의 명하신 것이라고 그 여자는 믿었으며 성전을 유지함에 그의 최선을 다하려고 애썼다. 그 여자는 그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였으니 그의 행동은 언제나 자기의 기억에 기념비가 되고 영원히 그의 기쁨이 될 것이다. 그의 마음은 그의 예물과 함께 바쳐졌으니 그 가치는 그 동전의 가치로서가 아니요 그와 같은 행동을 하게 한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하나님의 사업에 대한 관심으로 말미암아 평가되었다.

예수님께서 가난한 과부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그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라고 하셨다. 부자들은 저들의 풍부한 데서 바쳤으며 저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보여서 영광을 받으려 하였다. 저들이 드린 큰 예물들은 저들에게서 안락이나 혹은 사치를 조금도 빼앗지 않은 것이었으며 또 아무 희생도 요구되지 않는 예물이었으므로 과부의 푼돈과는 그 가치에 있어서 비교될 수가 없다.

우리들의 행동들은 비열하다거나 혹은 높은 도덕적 가치를 가진 성질의 행동이라고 판정짓게 하는 것이 그 행위의 동기이다. 모든 사람이 주목하고 찬양하는 큰 것이라고 해서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가장 귀중한 것으로 간주하라는 것은 아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수행한 작은 의무와 남에게 보이지 않게 드린 적은 예물과, 인간의 안목에는 무가치하게 보이는 것이 흔히 하나님 보시기에는 가장 귀한 것이 된다. 믿음과 사랑이 있는 마음이 가장 값진 예물보다 하나님께는 더욱 귀중하다. 가난한 과부는 그가 드린 적은 예물을 드리기 위하여 그의 생활비를 바쳤다. 그는 사랑하는 사업에 이 두 푼을 드리기 위하여 자신의 음식을 희생하였다. 그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의 큰 필요를 모른 체하시지 않으실 것을 믿고 믿음으로 이 일을 행하였다. 구주의 칭찬을 받은 것은 이 이기심 없는 정신과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이었다.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저들의 감사를 드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 저들은 부요한 동포들과 하나님을 봉사하는 일을 분담하기를 매우 원한다. 이런 영혼들을 거절하지 말 것이다. 저들의 푼돈은 하늘 금고에 넣게 하라. 205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 충만한 마음으로 바친다면 겉으로는 보잘것없는 적은 금전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축복하시는 귀중한 재물, 성별된 예물이 되는 것이다.―시대의 소망 3권 75, 76

마게도냐 교회가 어떻게 반응했는가? ―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환란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바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쫓아 우리에게 주었도다. 이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하게 하라”(고후 8:1-6).

예루살렘에 흉년이 들었다. 바울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외국으로 흩어졌고 남아 있는 자들은 인간의 동정을 다 빼앗기고 종교적 적의에 노출되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는 교회들을 권장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저희 형제들에게 재정적 원조를 하라고 하였다. 교회들이 거출한 금액은 사도들의 기대 이상이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강권되어 신자들은 후하게 바쳤으며, 구속주께 대한 감사와 형제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기쁨이 충만해졌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참된 사랑의 기초이다.―교회증언 6권 271, 272

위탁받은 우리의 재능에 따라 ― 마게도냐에 있는 교회에 대하여 “환란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고후 8:2)고 기록한 것을 우리는 읽는다. 206 그렇다면 우리 중에 그리스도인으로 공언하는 누군가가 가난하기 때문에 진리를 위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핑계하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진리의 귀중한 빛을 표현할 수 없이 귀하게, 그리고 다함이 없는 보물로 여긴다. 우리는 부하거나 가난하거나, 신분이 높거나 낮거나, 무식하거나 유식하거나 상관없이 위탁받은 자신의 재능에 비례하여 감화를 끼쳐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최선을 다하기를 기대하신다.―리뷰 앤 헤랄드 1894.9.4

바치는 축복을 거부하지 말라 ― 교회들이 후하게 되도록 가르칠 책임이 그리스도의 목사들에게 지워져 있다. 심지어 가난한 사람도 하나님께 예물을 바치는데 한 몫을 담당해야 한다. 그들도 자기보다 더욱 필요를 느끼는 자들을 도와 주기 위하여 자아를 부정하면서 그리스도의 은혜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가난한 성도들이 그들보다 더 가난한 자들을 돕기 위하여 바치는 축복을 거절당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이 분야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는 사업이 등한히 여겨져 왔다. 그러므로 교회들은 더욱 가난한 교회들의 필요를 공급해 주지 못하게 되었고 그들의 것이 되었을 뻔한 축복들을 받지 못하게 되었고, 그것은 그들의 등한함을 느낄 때까지 보류될 것이다.―리뷰 앤 헤랄드 1894.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