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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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난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신 15:11)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 주 예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다. 오늘날처럼 자비심을 발휘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때는 일찌기 없었다. 우리들 주변에는 가난한 자와, 재난당한 자와, 괴로워하는 자와, 슬퍼하는 자와, 멸망해 가는 자들로 가득 차 있다.

재물을 얻은 자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들을 활용하여 얻었다. 그러나 재물을 얻는 이 재능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도록 그들에게 주어졌다. 그러한 은사는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똑같이 태양을 비치게 하시며 비를 내리게 하시며, 땅의 풍성한 소산으로 그들의 모든 필요를 충분히 공급해 주시는 분께서 주신 것이다. 들판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왔으며, “가난한 자를 위하여 주의 은택을 준비하셨나이다.”(시 68:10) ― 영문 시조 1892.6.13

고난과 재난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이 아님 ― 세상에 궁핍과 고통이 충만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불행이 존재하도록 결코 의도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어느 한 사람이 사치스런 생활을 마음껏 누리는 한편, 다른 사람들의 자녀들은 빵을 달라고 부르짖도록 계획하지 않으셨다. 주님은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시다.―교회증언 6권 273

16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당신의 청지기로 삼으셨다. 그러므로 고통과 불행과 헐벗음과 인간애의 결핍이 그분에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충분한 준비를 하셨다. 그분께서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공급해 주심으로 그것으로 저희 동료들의 어려움을 덜어 주게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우신 청지기들이 고통과 궁핍을 구제해 주지 않으므로 그들은 직분을 다하지 못하였다.

사람들이 하늘로부터 많은 재물의 축복을 받고도 하나님의 계획을 수행하지 않고, 가난한 자와 압제받는 사람들을 구제하지 않으면, 주님께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틀림없이 그들을 벌하실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힘으로 할 수 있게 해주신 도움을 이웃에게 베풀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수치를 당하게 하시고, 그분의 성품이 사단에 의하여 잘못 해석되게 하고, 그분을 당신이 창조하신 피조물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엄한 법관처럼 나타낸 데 대하여 변명할 여지가 없다. 하나님의 성품에 대하여 이처럼 그릇되게 제시된 것이 마치 사실처럼 보이게 된다. 그리하여 원수의 시험으로 사람들의 마음은 하나님께 대하여 강퍅해 진다. 사단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모든 재물을 고난당하는 자들에게 주지 않게 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범하게 한 모든 죄를 하나님께로 돌린다. 사단은 그의 모든 성격들을 하나님께 돌린다.―리뷰 앤 헤랄드 1894.6.26

고난과 궁핍이 존재할 이유가 없음 ― 만일 사람들이 주님의 재산을 관리하는 신실한 청지기로서 그들의 의무를 다했을 것같으면, 양식을 위하여 부르짖는 일이 없었을 것이며, 궁핍으로 고생하는 일이나, 헐벗는 일과 결핍되는 일이 결코 없었을 것이다. 인간이 빠져 있는 고통의 상태에서 건져내는 일은 사람들의 불성실에 기인된 일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청지기로 삼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부과된 목적대로 주님의 재물을 사용하였을 것같으면 이러한 고통의 상태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비유에 나오는 부자를 시험하신 것처럼 사람들에게 풍성한 물질을 주심으로 시험하신다. 17 만일 정당한 재물에 우리의 불성실이 판명된다면 누가 우리에게 참된 재산을 맡기겠는가? 주님의 입에서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마 25:23)라고 하시는 칭찬을 들을 사람들은 지상에서 시험에 견딘 사람들, 자비하게 되라는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주님의 나라의 발전을 위하여 그들의 재정을 사용한 사람들이다.―리뷰 앤 헤랄드 1894.6.26

어떤 이는 부하고 어떤 이는 가난함 ― 사람들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어 자기들의 이기적 생각대로 하는 대신 하나님의 경륜을 수행하지 않는 한, 그들은 하나님께서 인간 가족 중 어떤 사람들은 그처럼 부하게 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처럼 가난하게 되도록 허락하셨는지 그 이유를 영원한 세계가 올 때까지 하나의 신비로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TM 280

사랑과 자비로 격려함 ―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자비와 사랑의 특성을 끊임없이 발휘케 하시고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섭리로써 가난한 사람들이 항상 우리와 함께 존재해 있도록 일들을 주선해 오셨다. 사람은 그리스도의 온유와 동정심을 계발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슬퍼하는 자, 괴로워하는 자들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고자 해서는 안 된다.―영문 시조 1892.6.13

인간 안에 하나님과 같은 성품을 계발시킴 ― 이 세상이 동정을 필요로 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도와 도움을 요구하며, 그분을 따르는 자들의 생애에서 그리스도를 볼 필요가 있는 동안,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의 동정심을 나타내고, 그들의 기도가 효력을 나타내며, 그들 속에 거룩한 모본과 꼭 같은 성품을 계발시킬 기회가 다 같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가난한 자들, 불행한 자들, 병든 자들, 고난당하는 자들을 두신 것은 이러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18 그들은 그리스도의 교회에 위탁된 그분의 유산이며, 그분께서 그들을 돌봐 주시는 것처럼 보호를 받아야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불순물을 제거하여 금을 제련하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마음과 성품을 계발시켜 주신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협력없이 당신의 사업을 추진시킬 수 있으시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돈과 시간과 노력을 의지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교회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아주 귀하다. 교회는 당신의 보물이 담긴 상자이며, 당신의 양떼를 넣어 둔 우리이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교회에서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어지기를 원하신다. 그분께서는 교회에 말할 수 없는 사랑을 주고자 원하신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일할 기회를 주시는 이유이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우리의 활동을 우리의 사랑과 충성의 표로 가납해 주신다.―교회증언 6권 261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비를 알게 하심 ― 부자와 마찬가지로 가난한 사람도 하나님의 특별한 염려와 관심의 대상이다. 만일 빈곤을 제거해 버리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이해할 수 없고 하늘 아버지의 긍휼과 동정을 알 길이 없을 것이다.―서신 83, 1902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주기 위하여 우리에게 주심 ―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고자 당신의 축복을 우리에게 주신다. 우리가 하나님께 일용할 양식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것을 우리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인지 보시고자 우리의 마음을 살피신다. 우리가 “하나님이시여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교제하는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나타낼 것인지의 여부를 알기 위하여 지켜 보신다.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우리가 자비롭게 되는 것이 하나님과 우리가 연합한 증거이다.―교회증언 6권 283, 284

19 주지 않을 때 영적 성장이 위축됨 ― 이기주의와 자기 본위의 관심 속에 자신을 가두어 놓는 것 보다 심령에서 영성을 속히 시들어지게 하는 것은 없다. 자신에게 몰두된 나머지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주신 사람들의 심령과 육체를 돌봐 주는 일을 등한히 하는 사람들은 생명의 떡을 먹고 있지 않으며, 구원의 우물에서 물을 마시고 있지 않다. 그들은 열매 없는 나무처럼 마르고 활기가 없다. 그들은 영적 난장이들이며, 자아를 위하여 재물을 다 소비해 버린다. 그러나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 리뷰 앤 헤랄드 1895.1.15

부자들이 차츰 교만하고, 자만하고, 방종하고, 완고해 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도록 계획하신 가난한 자들을 위한 일을 등한히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만 가난하다는 이유로 그들을 가난한 자들로 구별짓는다. 그리하여 가난한 자들에게 질투하고 시기할 기회를 준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을 때 모든 것을 가진 자들에게 원망하고 증오심을 품는다.

하나님께서는 행동들을 헤아려 보신다. 그러므로 청지기 직분의 모든 자들과, 자기 힘으로 치료할 수 있는 악을 고치지 못한 사람들은 하늘 법정에서 귀히 여김을 받지 못할 것이다. 가난한 자들의 필요에 무관심한 사람들은 불충실한 청지기로 간주되고, 하나님과 사람의 원수들로 기록될 것이다.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돕도록 하나님께서 위탁해 주신 재물을 남용하는 자들은 그들보다 불쌍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자비를 나타내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아무 상관이 없는 자로 판명된다.―리뷰 앤 헤랄드 1895.12.10

만일 부자가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른다면 ― 부한 사람은 하나님의 청지기들이다. 만일 부자가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겸손하고 경건한 생활을 계속할 것 같으면, 그는 성품의 변화를 통하여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해진다. 20 그는 자기의 소유물이 다만 위탁된 재물임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도움이 필요한 자를 돕기 위하여 신성한 위탁이 자신에게 주어져 있음을 느낀다. 이 일은 재능으로 그 보상을 받게 되고 재물들은 하나님의 보좌 곁에 쌓이게 된다. 그리하여 부자들은 자기에게 위탁된 주님의 재물을 관리하는 충실한 청지기로서 영적인 성공을 거두는 생애를 누리게 될 것이다.―원고 22, 1898

고난은 성품을 완성시키는 하나의 수단임 ― 구주의 말씀에는 재난이나 사별로 고통당하는 자들을 위로하는 기별이 있다. 우리의 슬픔은 땅에서 솟아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애 3:33)하나님께서 시련과 고난을 허락하실 때, 그것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히 12:10)시기 위함이다. 만일 믿음으로 시련을 받아들이면, 아무리 감당하기에 괴롭고 어려운 시련처럼 보이는 것도 축복임이 입증될 것이다. 세상의 기쁨을 시들게 하는 혹독한 바람은 우리의 눈을 하늘로 향하게 하는 수단이 될 것이다. 만일 예수님 안에서 위로를 구하도록 인도해 준 슬픔이 없었다면 예수님을 알지 못했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생애의 시련은 우리의 성품에서 불순물과 거칠은 것을 제거해 주는 하나님의 공작이다. 그들을 자르고 깎고 조각하고 광을 내고 윤을 내는 일은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연마기에 갈리우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 돌은 하늘 성전에서 제자리를 채울 수 있는 준비가 되어 나온다. 주님께서는 쓸모없는 물건들을 위하여 그처럼 세밀하고 철저하게 노력하지 않으신다. 오직 그분의 귀중한 돌들만이 궁전의 식양을 따라 빛나게 다듬어진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신뢰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일하실 것이다. 신실한 자들은 값진 승리를 얻게 될 것이다. 그들은 또한 고귀한 교훈을 배우고 값진 경험을 체득하게 될 것이다.―산상수훈 23

21 고통이나 재난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표가 아님 ― “예수께서 길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까, 그 부모오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 (요 9:1-3).

죄는 현세에서 처벌된다고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믿고 있었다. 모든 어려움은 고통당하는 본인이나 그 부모의 어떤 잘못에 대한 형벌로 간주되었다. 모든 고통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결과인 것만은 사실이나 이 진리가 곡해되어 왔다. 죄와 죄의 모든 결과의 장본인인 사단은 사람들로 하여금 질병과 죽음의 죄 때문에 당하는 독단적인 형벌로서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큰 고통 혹은 큰 재난에 빠진 자들에게 다른 괴로움이 덮치게 될 때 그들은 큰 죄인으로 간주되었다. … 하나님께서는 이런 잘못된 생각을 막기 위하여 한 교훈을 창안해 주셨다. 욥의 역사는 사단이 욥에게 고통을 주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실 목적으로 이를 권세로 눌러 취소한 사실을 보여 주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교훈을 깨닫지 못하였다. 하나님에게서 책망을 받은 욥의 친구들이 범한 같은 과오를 그리스도를 거절함으로써 유대인들이 다시 되풀이하였다.

죄와 고통의 관계에 대하여 유대인들이 가졌던 신앙은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가지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과오를 시정하는 중에 인간의 고통의 원인을 설명하지 않으시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만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로써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분명하게 나타날 것이었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요 9:5)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르신 다음 예수님께서는 그를 실로암 못에 가서 씻게 하였으며, 그리하여 그 사람의 눈은 밝아졌다. 22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신기하게 여겨 당신에게 묻는 질문에 항상 대답하신 것처럼 이 제자들의 질문에도 실제적인 방법으로 대답하여 주셨다. 제자들은 누가 죄를 지었느냐 혹은 안 지었느냐에 대하여 논의할 것이 아니고 소경의 눈을 밝게 하시는 중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깨달을 것이었다.―시대의 소망 2권 263-265

우리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보여 주고 그분의 음성을 들려주어야 함 ― 하나님께서는 병든 자와, 불행한 자와, 악한 귀신이 들린 자들이 우리를 통하여 그분의 음성을 들려주도록 계획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인간 대리자들을 통하여 세상이 이전에 전혀 목격하지 못한 위로자가 되시고자 갈망하신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는 그분의 말씀은 그분을 따르는 자들을 통하여 들려져야 한다.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역사하실 수 있도록 자신을 포기하는 모든 사람을 통하여 설교할 뿐만 아니라 절망 중에 있는 자들에게 봉사하며, 희망을 잃은 사람들의 마음에 소망을 일으켜 주는 사업을 하실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 생애의 불행을 해방시켜 주고 경감시켜 주는 일에 있어서 우리의 몫을 담당해야 한다. 오늘날 생활의 불행과 신비들은 몇천 년 전의 그것들처럼 어둡고 흐리다. 우리에게는 무엇인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 60:1). 도움이 필요한 자들이 우리 곁에 가까이에 있으며, 고난당하는 자들이 바로 우리 지역 안에 있다. 우리는 그들을 돕기 위하여 힘써야 한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그분께서 하셨던 것과 유사한 진지한 사업에, 굳게 닫힌 상태에서 샘물 터지듯 열려져야 한다. 모든 능력을 소유하신 그분의 힘으로 우리는 이전에 결코 해보지 못한 것처럼 일해야 한다.―원고 65b, 1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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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그리스도께서 친히 고난당하는 인간과 함께 고난을 당하심 ― 그리스도는 당신의 관심을 고난당하는 인간의 관심과 동일하게 보신다. 그분은 당신의 백성들이 그들의 동료를 잘못 취급한데 대하여 책망하셨다. 그분은 가장 연약한 자, 가장 실수를 많이 저지르는 신자들을 소홀히 하거나 학대하는 것이 당신 자신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에게 베푼 호의는 그리스도께 베푼 것으로 간주된다. 그분은 우리의 의무에 관하여 무지한 상태에 놓여 있도록 우리를 버려 두지 않으시고, 여러가지 표상과 각기 다른 진리의 빛으로 동일한 교훈을 자주 반복하신다. 그분은 행동한 자들을 마지막 큰 날로 데려가서 당신의 형제들 중 지극히 작은 자에게 행한 것을 당신 자신에게 행한 것처럼 여기시고, 칭찬도 하시고, 정의의 선고도 하신다. 그분은 너희가 “내게 한 것이니라”,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마 25:40, 45)고 말씀하신다.

그분은 우리의 대리자요 보증인이시다. 그분은 인간의 입장에 서 계시므로 그분을 따르는 가장 연약한 자가 영향을 받으면 그분께 영향이 미친다. 그리스도의 동정은 이런 것이며, 그 동정이 그분으로 하여금 당신의 자녀들에게 생긴 어떤 고통에도 결코 무관심한 방관자가 되지 않도록 한다. 말과 정신과 행동으로 줄 수 있는 아무리 작은 상처라도 타락한 인류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주신 그분의 마음에 감촉되지 않는 것은 없다. 그리스도 몸의 각 기관에 생명의 피를 흘려 보내 주는 위대한 심장이 되심을 기억하자. 그분은 머리가 되시며 그 머리에서부터 모든 신경이 몸의 가장 연약하고 먼 지체에까지 전해진다. 그리스도와 그처럼 신비롭게 연결된 몸의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그 고통의 맥박은 우리 구주에게까지 감촉된다.

24 교회가 각성해야 하지 않겠는가?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동정심을 갖게 하여 그리스도의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양들과 어린 양들에게 주님의 친절을 나타내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의 유익을 위하여 하늘의 주재(主宰)께서는 아무런 명성도 당신 자신에게 돌리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저주로 마비되고 망쳐진 이 세상에 오셔서 배은망덕하고 불순종하는 백성들을 가르치시고 향상시켜 영원한 기쁨을 안겨 주시고자 밤낮으로 수고하셨다. 그분은 그들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고, 그들은 그분의 가난으로 부요하게 될 수 있었다. 그분은 그들을 위하여 자신을 부인하셨다. 그분은 그들을 위하여 궁핍과 조롱과 멸시와 고난과 죽음을 견디셨다. 그분은 그들을 위하여 종의 형체를 취하셨다. 이것이 우리의 모본이다. 우리는 그것을 본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후사들을 돌보아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실수한 자와, 시험을 당한 자와, 시련을 겪고 있는 자에게 부드러운 연민의 정을 품어야 하지 않겠는가? ― 서신 45, 1894

우리의 연약한 감정에 감촉되심 ― 우리의 대리자요 보증인이신 그리스도는 슬픔의 사람이며 비애를 아는 분이시다. 그분의 인간 생애는 당신이 그처럼 무한한 댓가를 지불하고 사고자 했던 후사들을 위한 오랫동안의 수고의 생애였다. 그분은 우리의 연약한 감정에 감촉되셨다. 그분은 당신의 피로 산 자들에게 주어진 가치를 생각하여, 그들을 자녀로 삼고, 당신의 부드러운 관심의 대상으로 삼으신다. 그리고 그들의 육체적 필요와 영적 필요를 공급해 주기 위하여, 그분께서는 그들을 교회에 위탁하시고,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고 말씀하신다.―원고 40, 1899

그리스도께서 고통을 해결해 주시기 위하여 오셨음 ― 이 세상은 하나의 광대한 환자 수용소이나 그리스도께서는 병자를 고치시고 사단의 포로들에게 구원을 선포하시려고 오셨다. 그분은 당신 자신 안에 건강과 힘을 가지고 계셨다. 25 그리스도께서 병자와 고통당하는 자와 귀신들린 자들에게 당신의 생명을 나누어 주셨다. 그는 당신의 치유의 능력을 받으러 온 자들을 한 사람도 돌려보내지 않으셨다. 그는 그에게 도움을 간청하는 자들이 저희들 스스로가 그 질병을 초래하였음을 아셨으나 저들의 병을 고쳐 주시기를 거절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리스도에게서 치유의 능력이 불쌍한 영혼들에게 들어갔을 때에 저희는 죄를 깨달았으며 많은 사람이 저희 육체적 질병과 함께 영적인 질병도 고침을 받았다. 복음은 아직도 꼭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왜 우리는 이와 꼭 같은 결과를 보지 못하는가?

그리스도께서는 고통당하는 모든 사람의 재난을 감촉하신다. 악한 영들이 인간의 몸을 해칠 때에 그리스도는 저주를 느끼신다. 열병이 금생의 생명을 불태우고 있을 때에 그분은 고민을 느끼신다. 그리고 그분은 당신이 친히 이 땅에 계시던 때와 꼭같이 지금도 즐겨 병자를 고치신다. 그리스도의 종들은 그분을 대표하는 자들이며 그분이 일하시는 통로이다. 그분은 저들을 통하여 당신의 병고치는 능력을 행사하시기를 바라신다.―시대의 소망 3권 386, 387

그리스도께서만이 인간에게 닥쳐 오는 모든 불행과 유혹을 경험하셨다. 여인이 낳은 인생으로서 그리스도처럼 격렬한 유혹을 받고 세상의 죄와 고민으로 이루어진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없었다. 인간의 모든 경험을 맛보신 그리스도께서는 무거운 짐을 지고 유혹을 받고 싸우고 하는 사람을 동정하실 뿐만 아니라, 그들로 더불어 함께 그 참 정상을 느낄 수 있었다.―교육 102

그리스도께서는 부자와 가난한 자를 꼭같이 접촉하셨음 ― 그리스도께서는 가난한 자와 동일한 위치를 취하셨다. 그리하여 우리가 그분과 같이, 성품의 미(美)에서 부요해지고,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는 향기가 될 수 있게 하셨다. 그분께서는 가난하게 되심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동정하실 수 있으셨다. 그분의 인성은 가난한 자들의 인성과 접촉될 수 있었고, 올바른 습관과 고상한 성품을 완성하도록 그들을 도울 수 있으셨다. 26 그분은 그들에게 자신들을 위하여 불멸의 보화를 하늘에 쌓아 두는 방법을 가르칠 수 있으셨다. 하늘 조정의 사령관이신 그분은 인간과 하나가 되셨고 인간의 고통과 괴로움에 동참하는 분이 되셨다. 그리하여 당신의 더럽혀지지 않은 순결한 성품을 제시하심으로 그들로 하여금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다. 또한 그리스도는 부자들에게 기쁨이 되셨다. 왜냐하면 오류의 흑암속에서 멸망해 가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저들의 세상 재물을 희생하는 방법을 그들에게 가르쳐 줄 수 있으셨기 때문이다.―서신 150, 1899

그리스도와 같은 연민과 동정을 계발시킴 ― 우리 구주의 부드러운 동정심은 타락하고 고통당하는 인간을 위하여 일깨워졌다. 그대가 만일 그분을 따르는 자가 되려면, 그대는 긍휼과 동정의 마음을 길러야 한다. 인류의 재난에 대한 무관심이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으로 바뀌어져야 한다. 과부와 고아와 병든 자와 죽어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도움을 요구할 것이다. 여기에 복음을 전할 기회, 곧 모든 사람의 희망과 위안이 되시는 예수님을 높이 들어야 할 기회가 있다. 고통받는 육체가 해방되고, 고통당하는 자에게 깊은 관심이 나타날 때, 마음이 열리게 되고, 하늘의 유황을 부어 줄 수 있게 된다. 만일 그대가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에게서 지식과 힘과 은혜를 얻는다면, 그대는 그분의 위로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보혜사가 그대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의료 선교사 1891,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