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와 복음 교역자에게 보내는 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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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미시간, 페토스키, 1890.8.20.

사랑하는 형제들에게: 그 사업의 진정한 형편이 내 앞에 제시되었을 때 내가 마음속으로 어떤 부담과 고민을 느꼈는지를 그대에게 표현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그들의 첫 공과들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는 이들이 진리의 교사 자격을 갖고 일하고 있다. 하나님의 회심시키는 능력이 목사들의 심령에 임해야만 하는데,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다른 직업을 구해야 한다. 만일 그리스도의 대사들이 백성들에게 진리를 증거하는 일의 엄숙성을 인식한다면, 그들은 침착하고 사려 깊은 인물, 하나님과 함께 하는 교역자가 될 것이다.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제자들에게 주신 참된 사명감을 갖고 있다면, 그들은 경외심을 갖고 하나님의 말씀을 펼치며 주님께서 주시는 교훈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그들은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서 있는 자로서 자기 손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사업에 대해 하나님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늘의 지혜를 구할 것이다.

농담하는 목사

예수님 없이 목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정말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만일 그가 변덕스럽고, 농담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주님께서 그에게 지워 주신 의무를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고 말씀하신다. 그의 입에서 떨어지는 아첨하는 말들, 시시한 일화들, 웃기기 위해 하는 말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정죄 당하고 있으며, 신성한 강단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143 형제들이여, 내가 분명하게 말하는데 목사들이 회심하지 않는 한, 교회는 병들어 죽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만이 인간의 심령을 변화시킬 수 있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그 속에 불어넣을 수 있다. 하나님의 능력만이 정욕을 바로잡고 정복할 수 있으며, 애정을 성결하게 할 수 있다. 봉사하는 모든 사람은 그들의 교만한 마음을 겸비하게 하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뜻을 굴복시키며, 자신의 생명을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숨겨야 한다.

목회의 목적은 무엇인가? 경건 속에 희극을 섞는 것인가? 그런 모습을 보이기 위한 장소로는 극장이 있다. 그리스도께서 속에 계신다면, 성화시키는 능력을 가진 진리가 영혼의 지성소 안에 들어온다면, 그대는 들뜬 사람이나, 심술궂고 까다로운 사람으로 하여금 멸망해 가는 영혼들에게 그리스도의 귀한 교훈들을 가르치도록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목사들은 품성의 변화를 필요로 한다. 그들은 그들의 사업이 하나님 안에서 행해지지 않는다면, 홀로 자신의 불완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면, 그들이야말로 모든 사람들 중에 가장 비참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비록 품성의 완전함에 도달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와 같이 되기를 아주 열렬하게 추구하는 모든 목사와 함께 하실 것이다. 그러한 목사는 기도할 것이다. 그는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울 것이며, 영혼의 번민 속에서 주님께서 자기와 함께 해주시기를 부르짖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백성 앞에 설 수 없을 것인데, 온 하늘은 그를 주목하고 있으며, 천사는 그의 말과 행동과 정신을 기록하고 있다.

오, 사람들이 주님을 두려워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오, 사람들이 주님을 사랑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오, 하나님의 사자들이 멸망해 가는 영혼들에 대하여 부담을 느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144 그렇다면 그들은 단지 말만 하려고 들지 않을 것이며, 그들의 영혼에 활기를 주는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할 것이며, 그들의 심령은 하나님의 사랑의 불로 활활 타오를 것이다. 그들은 연약할 때에 강해질 것이다. 이는 그들이 말씀의 실천자가 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이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예수께서는 그들의 교사가 되실 것이며, 그들이 전하는 말씀은 힘차고 능력이 있으며, 양날이 선 검보다도 더 예리하여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할 것이다. 말하는 자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하나님의 능력을 존중하며 신뢰하는 데 정비례하여 그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으로 여김을 받는다. 그것에 정비례하여 그는 하나님을 통하여 강해진다.

영혼을 구원하려고 애쓰는 이들 편에 고상하고 향상시키는 능력, 하나님과 진리를 아는 지식 안에서 끊임없이 자라나는 일이 필요하다. 만일 목사들이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으로부터 길어 온 말씀을 발한다면, 만일 그들이 자신이 섬기는 분이신 그리스도의 협력을 믿고 기대한다면, 만일 그들이 자아를 숨기고 예수, 세상의 구속주를 높인다면, 그의 말들은 청중의 심금을 울릴 것이며, 그의 사역은 거룩한 신임장을 지니게 될 것이다. 성령께서는 죄를 책망하는 살아 있는 능력이 되셔야 한다. 그 신령하신 집행자께서는 설교자에게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희생의 혜택을 선사하신다. 그리고 참석한 영혼들에게 진리가 전해질 때,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당신께로 구원해 주시며, 그들의 본성을 변화시키기 위해 역사하신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돕고자 하시며, 우리를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고, 하늘에 기원을 둔 사상들로 우리를 고무시키신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얼마나 보잘 것 없는가. 그런데 그들이 그분의 영으로 충만하게 된다면 그리스도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일을 이룰 수 있는가! 인간 교사는 자기의 말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없지만, 예수께서는 각각의 영혼이 필요로 하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그분께서는 인간의 능력, 그 연약함과 힘을 이해하신다. 주님께서는 인간의 심령에 역사하고 계신다. 목사는 그의 말을 듣는 이들에게 사망에서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되어 그들을 그리스도로부터 돌아서게 할 수 있다. 145 혹은 그가 헌신적이고 경건하며, 자아를 불신하고 예수를 바라본다면, 그는 성령의 깨우치시는 능력 아래 이미 서 있는 영혼들에게, 또한 인간 매개자에게 주신 기별들이 들어갈 수 있도록 주님께서 그 심령 속에 길을 마련해 놓은 사람들에게,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는 향기가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불신자들의 마음이 감동을 받고, 진리의 기별에 응답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고전 3:9). 마음속에 심겨진 확신과 들어온 말씀을 이해함으로 얻게 된 깨달음은 완전히 조화되게 역사한다. 마음속에 들어온 진리는 잠자고 있던 영혼의 힘을 일깨우는 능력을 갖고 있다. 심령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인간 도구들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협력한다. 목사들이 자기에게 철저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할 때, 자기가 더욱 높은 표준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을 느낄 때, 그들은 향상시키고 품위 있게 하는 영향력을 교회에 끼치게 될 것이다.

은밀한 결점들을 정복해야 함

목회자들 중에 죄인들이 있다. 그들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몸부림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지 않으시는데, 이는 그분께서 죄의 임재를 견디실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분의 영혼이 미워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보좌 주위에 서서 그분께 사랑을 받았지만 최고의 충성을 바치지 않은 천사들까지도 그 반역 주동자와 함께 하늘에서 내어 쫓으셨다. 거룩은 하나님 보좌의 기초이다. 죄는 거룩과 반대이며, 죄가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인간들이 죄가 얼마나 증오스러운 것인지를 볼 수 있다면 그들은 죄에 대해 관용하거나 거기에 길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생활과 품성 속에 개혁을 하게 될 것이다. 은밀한 과오들은 정복될 것이다. 그대가 하늘에서 성도가 되고자 한다면, 그대는 이 땅에서 먼저 성도가 되어야 한다.

146 우리 형제들이 은밀한 과오를 정복하는 일이 크게 필요되고 있다.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이 구름처럼 저들 중 많은 사람 위에 머물러 있다. 교회는 연약하다. 이기심, 무자비, 탐심, 질투, 악한 추측, 사기, 도적질과 강도질, 호색, 음란과 간음* 등이 이 시대를 위한 엄숙하고 신성한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이들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이런 행습에 계속해서 몰두하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이런 저주받은 것들을 진영에서 일소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는 어느 정도 조심스럽게 행하지만, 하나님께 불쾌히 여김을 받고 있다. 그분의 순결한 눈이, 드러나고 숨겨진 그 모든 죄들을 보고 있으며, 한 목격자가 기록하고 있다. 그들이 회개하고 자신의 죄들을 하나님께 고백하지 않는 한, 반석 위에 떨어져 깨어지지 않는 한, 그들의 죄는 기록책에 그들을 고소하는 채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심판 때에 무시무시한 역사-전혀 고백하지 않은 죄의 역사, 도말되지 아니한 죄의 역사-가 만천하에 공개될 것이다! 이 가련한 영혼들이 진노의 날에 임할 진노를 쌓아 올리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 때에는 행동은 물론 마음의 생각까지도 드러날 것이다. 형제 자매들이여, 내가 그대에게 말하노니 하나님 앞에서 그대의 영혼을 겸비하게 하라. “악행을 그치”라. 그러나 여기서 중단하지 말라. “선행을 배우”라. 그대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열매를 맺음으로서만 그분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

목사들이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스스로 그 일을 시작하라. 그대의 성화되지 않은 생애 때문에 그대는 자녀들과 불신자들 앞에 거치는 돌을 놓았다. 그대들 중 어떤 사람은 충동대로 행하며, 정욕과 편견에 따라 움직이고, 하나님께 불순하고 흠이 있는 제물을 가져온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 도덕적 더러움으로부터 영혼을 정결하게 하는 개인적 사업을 시작함으로써 그리스도를 위하여 진영을 깨끗하게 하라. 강단에서 쾌활한 목사, 혹은 자기 분수를 넘어 칭송을 받으려고 손을 뻗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을 또 다시 십자가에 못 박고 그분을 공개적으로 모욕하는 비참한 광경을 연출하는 것이다. 147 철저한 회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 빈틈없는 경각심, 끊임없는 기도, 부지런한 성경 연구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재능을 향상시켰더라면 우리가 될 수 있었을 모든 것에 대해 우리에게 책임을 물으신다. 우리가 어떻게 될 수 있었는데 그렇게 되지 못한 것에 대해, 또한 우리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었는데 우리의 능력을 하나님께 영광돌리기 위해 사용하지 않음으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우리는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가 얻을 수 있었지만 얻지 않은 모든 지식의 경우에 비록 우리의 영혼은 멸망 당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영원한 손실이 있을 것이다. 우리의 모든 영향력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 우리가 얻는 모든 것은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위탁하신 모든 재산은 하나님의 제단 위에 놓여져서 그분께 되돌려져야 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운명을 이루고 있는 중이다. 영원에 대해 슬기로운 사람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바란다.

나의 형제들이여, 우리는 이 지구 역사에 있어서 가장 엄숙한 기간에 살고 있다. 죄를 지을 시간이 전혀 없다. 계속해서 범죄하는 것은 언제나 위태로운 법이다. 그러나 특별한 의미에 있어서 현 시대에 있어서 이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 영원한 세계의 접경에 있으며, 시간과 영원에 있어서 이전 어느 때보다도 더욱 엄숙한 관계 속에 서 있다. 이제 각자 자신의 심령을 살피고, 의의 태양으로부터 나오는 광명한 빛이 모든 영적 암흑을 몰아내고 더러움으로부터 정결케 해 주시기를 간구하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믿음을 통해, 감정과는 상관없이, 우리의 구원의 주시요 믿음의 완성자이신 예수께서 그분의 고귀하신 은혜로써 도덕적 능력을 강하게 하실 것이며, 죄인들은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 것이다. 단순한 믿음은 영혼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함께 신자를 하나님께 연합시킨다. 148 그리스도의 충성된 군인으로 전투를 벌이고 있는 동안, 그는 충성스러운 온 우주의 동정을 받는다. 섬기는 천사들이 투쟁 속에서 돕기 위해 그를 둘러싸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시 28:7.나는 정복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와 능력이 우리를 위해 발휘되고 있다. 하늘의 군대가 확실하게 우리를 위해 우리의 싸움을 싸우고 있다. 그들은 구주의 보혈로 산 영혼들을 큰 관심을 가지고 언제나 바라보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하여 인간 영혼의 가치를 본다. 별로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가 아니라 전심으로 주님 편에 서는 것, 이것만이 항상 안전하다. 그대의 영혼을 그대의 능력의 근원이신 예수님께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은 이렇게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무관심하고 부주의하게 일하는 것이다. “내가 재물과 세상 명예와 모든 것을 잃더라도 오직 주님만은 나와 함께 하옵소서”라는 말이 그대의 기도가 되게 하라. 온 천지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영혼을 지켜 주시도록 의탁하는 것이 안전하다.

성경을 연구하고 믿음으로 기도하라

목회하는 내 형제들이 신중하게 일하며 사도 바울이 디도에게 준 명령에 유의했으면 좋겠다. “너는 이와 같이 젊은 남자들을 권면하여 근신하게 하되 범사에 네 자신으로 선한 일의 본을 보여 교훈의 부패치 아니함과 경건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디도서 2:6-8.11-15절도 읽어보라).

우리의 모든 합회에 있는 목사들이 성경 연구와 진리 탐구를 등한히 하고 있다는 것이 내게 보여졌다. 149 만일 그들의 마음이 제대로 훈련을 받고 그리스도의 고귀한 교훈으로 채워졌다면, 어느 때, 어떤 위기 속에서도 그들은 새것과 옛 것을 지식의 보물 창고로부터 꺼내어 하나님의 교회를 먹이고, 각 사람에게 때를 따라 그 양식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영혼 속에 거하시면, 그분께서는 생명샘, 곧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요 4:14)이 되실 것이다.

내가 본 것 곧 사실인 것들을 그대에게 말하노니, 잘 관리되고 인내성 있는 노력을 통해서 많고 많은 훨씬 더 많은 영혼들이 진리의 지식을 알게 될 것이다. 오, 종말이 가깝다! 보좌로부터 일어나서 복수의 옷을 갈아입으실 그리스도를 위해 준비된 사람은 누구인가? 어린양의 생명책에 누구의 이름이 녹명되어 있는가? 그분께서 어디로 가시든지 어린양을 따르는 이들의 이름만이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대의 그릇된 사상, 그대의 품성 속에 있는 불쾌한 면은 포기되어야 하며, 그대는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어야 한다. 믿음과 사랑교회에 이것이 얼마나 부족한가! 하늘 상인께서 그대에게 충고하신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 3:18). 우리 합회에서 설교하는 사람들이 미련한 처녀처럼 등잔은 가졌으되 등불을 타게 해서 빛을 내는 은혜의 기름이 부족한 것은 당치 않은 일이다. 오, 우리는 보다 많이 기도하는 목사들을 필요로 한다. 영혼에 대한 엄숙한 부담을 지고 있는 인물, 사랑으로 역사하며 영혼을 정결케 하는 믿음을 소유한 인물을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우리 교회에 얼마나 믿음이 불완전한지 모른다! 주님께서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바로 그대로 그분께서 행하실 것을 왜 우리는 믿지 않는가?

150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며, 우리 각자에게 그분께서는 선천적, 영적 재능을 주셨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하여 예비하러 가신다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하늘 집에 적합한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의를 붙잡는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완전한 사람이 될 것이다. 고상한 관점에서 일하고,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르고자 노력함으로 우리는 더욱 많은 품위를 소유하고 그분의 모습으로 자라날 것이다.

구주께서는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라고 기도하셨다. 진리로 훈육 받은 사람들은 말씀의 실천자가 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그분의 뜻을 지성적으로 행하고자 하는 열렬한 소원으로 성경을 탐구하는 부지런한 성경 통독자가 될 것이다.

예의를 갖추라

우리 합회의 목사들은 하나님 앞에서 조심스럽게 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 목회 활동, 회계해야 할 자인 것처럼 영혼을 돌보는 일, 그릇 행하는 자들을 구원하려는 노력, 이 모든 일에 “겸손하”(벧전 3:8)라는 사도의 권면의 말씀이 크게 필요하다. 그대는 원칙에 진실되고, 올바르고 정직하며 경건한 사람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모든 것과 아울러 그대는 진정으로 부드러운 마음, 친절과 예의를 도야해야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실수에 빠졌으면, 그에게 좀더 친절하라. 만일 그대가 예의바르지 않다면, 그대는 그를 그리스도로부터 내어 쫓을 수 있다. 그대의 한마디 한마디 말이, 목소리의 어조까지도 위기 속에 빠져 있는 영혼들에 대하여 관심과 동정을 표현하도록 하라. 만일 그대가 거칠고 비난하며 참을성 없게 그들을 대한다면 그대는 원수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대는 그들에게 시험의 문을 열어 놓고 있으며, 사단은 그대를 주 예수를 모르는 인물로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다. 151 그들은 자기의 길이 올바르고, 자기가 그대보다도 낫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대는 어떻게 실수 가운데 있는 자를 구원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말과 품성에 표현된 진정한 경건을 인식할 것이다. 만일 그대가 회개, 믿음, 겸손을 가르치고자 한다면, 그대는 그대 스스로의 심령 속에 예수님의 사랑을 가져야 한다. 그대가 믿는 진리는 영혼을 성화시키며, 전 인격을 형성하고 꼴 지을 수 있으며, 그대의 말과 성향을 바꾸어 줄 뿐 아니라 교만을 없애고 모든 더러운 것으로부터 영혼을 정결하게 할 수 있다.

성경적인 경건

성경적인 경건이 아주 희귀한데, 심지어 목사들 사이에서조차도 그러하다. 나는 하늘 왕의 자녀요, 왕족의 일원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나타낸 거칠고 불친절한 말과 정신 때문에 주야로 통곡하였다. 특별하게 마음에 드는 사람이 아닌 자들에게 아주 냉정하고 불친절하게 대하는데, 이것은 하늘 책들에 큰 죄로 기록이 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말하고, 진리의 이론을 설교하지만, 녹여 주는 예수님의 사랑이 그들의 품성 속에서 살아 있는 활동적 힘이 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거의 우주적인 배도의 시대이다. 진보된 진리를 붙들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자신의 품성과 사역이 거룩한 진리에 조화된다는 증거를 보이지 않음으로 교회를 그릇된 길로 인도하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공언하는 이들, 특히 멸망해 가고 있는 이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생명의 말씀을 갖고 주 예수로부터 파송된 사자라고 공언하는 이들의 말과 태도와 품성 속에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 동정과 인자하심이 표현되어야 한다. 그들의 품성 속에 있는 모질고, 천박하고, 거칠은 모든 것은 벗어 버려야 하며, 산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께 접붙여져야 한다고 성경은 그들에게 명령하고 있다. 152 그들은 포도나무가 맺는 것과 질적으로 동일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 이렇게 할 때에 가지는 포도나무의 참된 가치를 나타낼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시에 널리 퍼진 극심한 오류의 암흑과 미신 중에서 아버지를 계시하시기 위해 우리 세상에 오셨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들의 일상 생활에서 그분을 나타내어야 하며, 그리하여 하늘로부터의 참 빛이 세상을 향해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비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인도자요 표준으로 삼지 않은 이들 속에서 보이는 것과는 전적으로 다른 특성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세상을 뒤덮고 있는 암흑과 백성을 감싸고 있는 엄청난 암흑 속에서 보존되어야 한다. 시대에 시대를 거듭해서 그리스도의 순결하신 품성은 그분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노라고 주장하는 이들에 의해 그릇되게 대표되었다. 가혹한 마음이 배양되고, 사랑과 친절, 진정한 예의는 목사들과 교회에서 신속히 사라져 갔다. 하나님의 우주는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그리스도의 대표자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사단의 특성인 가혹함을 보이고 있는데, 사단이 하늘에 거하는 것이 부적합하고 불안한 존재가 된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진리를 알되 그 성화시키는 능력에 대하여 마음문을 닫는 이들도 그와 같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21). 그리스도의 종들은 예수님을 전파함으로 사람들을 회개에 이르도록 하는 도구가 되어야 할 뿐 아니라, 교훈과 모본을 통해 주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백성들 앞에 모심으로 흥미를 유발시키고 돌보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 그들은 그들의 청중들도 거룩하게 되도록 스스로를 거룩하게 해야 한다. 153 그렇게 함으로 모든 사람은 은혜에 은혜를 덧입어 경건 속에서 성장하게 될 것이며, 마침내 하나님의 대사는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완전한 사람으로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 때에 목회직의 그 진실되고 신성한 성격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낮추어진 표준

그러나 목회자의 표준이 아주 크게 낮추어졌으며, 참 성소의 봉사자께서 세상 앞에 그릇 제시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그분의 동역자로 받아들이고, 그들을 세상의 빛으로 삼아 사람들의 지성 속에 그분께서 은혜롭게 빛을 비추시는 통로가 되게 하려고 하신다. 기별을 증거하는 사람들이 그들 속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지 않다면, 그들이 진실되지 못하다면(어떤 이들은 이렇다), 주님께서 너무 늦기 전에 그들을 기만으로부터 깨우쳐 주시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부드럽고 동정적이 되어 형제처럼 사랑하기를 원하신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문을 열기를 바라시는데, 이는 그분께서 안에 들어오셔서 그들의 마음속에 그분의 따뜻한 사랑, 그분의 선함, 그분의 자비를 베푸시고자 함이다. 그리하여 교역자는 인류와의 모든 접촉에 있어서 구주를 세상에 나타내게 될 것이다.

목사들은 너무 자주 비평자 역할을 함으로 논쟁 잘하는 날카로운 모습을 보인다. 그리스도의 은혜가 듣는 이들의 심령과 마음속에 거의 인상 지워지지 않은 채로 매 안식일이 지나가고 있다. 이렇게 해서 목회직이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 온 하늘은 죄인의 구원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인간 가족 중 가장 가련한 자가 탕자가 그랬던 것처럼 회개하며 그 아버지께로 올 때, 하늘 대군 속에는 기쁨이 있다. 따뜻함과 예의, 그리고 사랑이 하늘에 있다. 목사들이여, 하나님 앞에 기도로 나아가 그대의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어린 아이처럼 아주 단순하게 그대가 필요로 하는 축복을 간구하라. 그리스도의 사랑의 따뜻함을 간구하고, 그것을 그대의 말 속에 담으라. 154 그리하여 그대가 믿는 교리는 고통 당하는 인간에게 동정을 표할 수 없게 한다는 말, 곧 그대의 종교는 사랑이 없는 종교라는 말을 아무도 가서 말할 수 없게 하라.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이기심의 찌꺼기들은 불타 없어질 것이며, 불 속에서 연단된 사랑, 곧 부요하게 하는 사랑이 나타날 것이다. 이런 부요함을 가진 사람은 우리를 이토록 사랑하사 우리의 구속을 위해 그 생명을 주신 그분의 마음과 매우 비슷한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영광을 돌리지 말라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고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것이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바울은 연약하고 실수하는 인간에게 복음이 의탁된 이유에 대하여 목사들과 백성들의 마음에 인상을 끼치고 싶었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께만 돌려야 할 영예를 받지 않고 하나님께서 모든 영광을 받으시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대사는 자축(自祝)하거나 성공에 따르는 명예를 스스로 취해서는 안 된다. 또한 마치 자기 스스로의 능력으로 일을 성취하기라도 한 것처럼 하나님과 명예를 나누어 갖고자 해서도 안 된다. 복잡한 추리나 교리들에 대한 논증적 증거로는 듣는 이의 마음에 궁핍감과 위기감을 느끼게 하는 일이 거의 힘들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부드러워진 동정적인 마음에서 우러난 단순하고 간단한 진술들이 겨자씨와 같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이 말씀하신 신령한 진리를 그것에 비유하셨다. 그분께서는 영혼에게 그분의 영의 활력을 불어넣으심으로 진리의 씨앗이 발아하여 열매를 맺게 하신다.

나의 형제들이 인간에게 어떤 영광도 돌리지 않도록 주의할 것인가?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인간 심령에 역사하시는 것이지 자신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것인가? 155 봉사하는 나의 형제들이 홀로 은밀하게 그분의 임재하심과 그분의 능력을 위해 간구할 것인가? 그리스도께서 그대에게 어떤 분이신지 스스로의 체험으로 알 때까지는 감히 또 다른 설교를 하려고 하지 말라.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거룩해진 심령으로 그대는 그리스도를 전파할 수 있다. 그대는 그대의 청중들 앞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높이 들 수 있다. 예수님의 사랑에 감복되어 녹아 버린 심령을 갖고 그대는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라고 말할 수 있다.

믿음과 사랑을 배양하라

그대 스스로 성경을 읽고 겸손한 마음으로 성경을 탐구하는 일이 슬프게도 등한시되고 있다. 그의 입장이 어떠하든지간에 성경에 대한 어떤 인간의 설명도 취하지 말고, 성경으로 달려가 그대 스스로 진리를 탐구하라.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다음에 사마리아인들은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요 4:42)고 말하였다. 진리의 광산이 있다. 수갱(竪坑)을 깊이 파라. 그리하면 그대에게 최고의 가치를 지닌 지식을 얻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성경을 탐구하는 일에 있어서 게으르고 범죄가 될 정도로 등한히 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분의 말씀에 대한 지식만큼이나 하나님의 성령에 있어서도 결핍되고 있다. 우리는 요한에게 주신 계시록의 말씀에서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들”에 대해 읽는다. 그렇다. 한 백성으로서 우리들 중에 그런 인물들이 많이 있는데, 살았다고 주장하지만 죽은 이들이 많다. 나의 형제여, 성령께서 그대를 움직이는 활력이 되지 못하신다면, 그분의 역사하심에 순종하며 그 감화력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하지 않는다면, 나를 통해 그대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기별은 다음과 같다. 그대는 그대의 영혼에 치명적이라는 것이 증명될 기만 아래 놓여 있다. 그대는 회심해야 한다. 그대가 빛을 전달할 수 있기 전에 빛을 받아야 한다. 156 “의의 태양의 환한 광선 아래 서 있으라.” 그리할 때 그대는 이사야처럼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 60:1)고 말할 수 있다. 그대는 믿음과 사랑을 가꾸어야 한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사 59:1.2). 주님을 찾으라. 그리스도께서 그대의 구주이심을 알 때까지 쉬지 말라.

내 형제들이여, 성서적 경건은 인간적 동정심을 파괴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대가 명심하기를 바란다. 진정한 그리스도인 예절을 가르치고 그대로 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그대의 형제들, 그리고 세상 사람들과의 모든 교제 가운데 실천되어야 한다. 우리 가정에서는 현재 나타내 보이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많은 사랑과 예절이 필요로 되고 있다. 목회하는 형제들이 그리스도의 정신을 날마다 품게 될 때, 그들은 진정으로 예절 바른 사람이 될 것이며, 부드러움과 동정을 결코 연약이라고 간주하지 않을 것인데, 이는 이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의 원칙들 중 한 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영혼을 부드럽게 하며 설복시킨다. 심령 속에 받아들인 진리는 영혼 속에서 혁신하는 일을 한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그분께서 위하여 죽으신 영혼들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마음속에 심겨진 진리는 예수님의 사랑과 그 변화시키는 능력을 나타낼 것이다. 거칠고, 매섭고, 비평적이고, 압제적인 것은 어떤 것이든지 그리스도께 속해 있지 않으며, 사단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냉정, 냉혹, 동정심의 부족 등이 이스라엘에 누룩처럼 작용하고 있다. 이런 악이 과거 여러 해 동안 그랬던 것처럼 그 힘을 강화시킬 수 있도록 허용된다면, 우리 교회는 참담한 상태에 빠질 것이다. 모든 진리의 교사는 자신의 성격 속에 그리스도와 같은 원칙을 필요로 한다. 그리스도교의 덕성을 닦고 있는 어떤 사람 속에서도 찡그린 얼굴, 책잡는 일, 조소하는 표현을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는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하며, 다함이 없는 하늘의 은총의 샘으로부터 계속 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157 그렇지 않으면, 그는 그 영혼 속에서 인간적 친절의 젖을 잃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인간을 사랑해야 한다. 선천적인 마음으로는 소수의 좋아하는 이들만을 사랑하며, 그 특별한 소수를 편애하기가 쉽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고 명하신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약 3:17.18).

그대에게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진지하고 엄숙한 사업이 있다. 그대에게는 하늘의 열정이 필요하며, 그것을 가질 수 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3.24). 죽임당하신 어린양께서 땅 위에 있는 교회의 중보자로 아버지 앞에서 간구하시는 모습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어찌 경박한 자가 될 수 있으며, 경솔하고 비천한 대화에 탐닉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믿음으로 보좌를 두르고 있는 무지개와 그 뒤에 있는 고백한 죄들의 구름을 바라보도록 하자. 약속의 무지개는 모든 겸비하고 통회하며, 믿는 영혼에게 자신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하나 되었다는 것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하나이시라는 보증이 된다. 하나님의 진노는 그분 안으로 도피하는 한 영혼에게도 내리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출 12:13)라고 선언하셨다.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창 9:16).

무궁한 사랑으로 세상을 사랑하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시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고귀한 생명을 주셨다. 그분은 아버지의 독생자이셨다. 그분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일어나셨으며, 하나님 우편에 계셔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신다. 영화롭게 된 인성을 취하고 계시며 그침 없는 사랑을 품고 계시는 바로 그 예수께서 우리의 구주이시다. 158 그분께서는 자기가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고 우리에게 명하셨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랑을 길러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모두 예수님처럼 되도록 하자.

더욱 깊은 연구를 위해 참고할 서적: 복음 교역자, 20-23.254-258.271-276(영문); 그리스도인 교육의 기초, “정치”, 475-484(영문).

그리스도께서 의의 신비들을 드러내실 때 수많은 유대인이 와서 들었지만, 그들은 배우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분을 비평하고 어떤 모순 점들을 찾아내어 그분을 책잡고, 백성들에게 편견을 갖게 할 어떤 것을 얻기 위해서 왔다. 그들은 그들의 지식에 만족했으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참 목자의 음성을 알아야 했다. 지금이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고 기도해야 할 아주 적당한 때가 아닌가? 우리는 서로 불화하게 될 위험이 있으며 어떤 논쟁적인 문제로 분열될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겸손한 마음으로 무엇이 진리인지를 알기 위하여 열렬하게 하나님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리뷰 앤드 헤랄드, 1890.2.18.

그대의 모본으로 다른 영혼들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도록 조심하라. 우리의 영혼을 잃어버리는 것이 두려운 일이지만, 다른 영혼들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노선을 추구하는 것은 훨씬 더 두려운 일이다. 우리의 영향이 사망에서 사망에 이르게 하는 냄새가 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두려운 일이지만, 이것은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말, 습관과 성향을 얼마나 큰 열성을 가지고 지켜야 하겠는가. 하나님께서는 개인적인 성결을 요구하신다. 오로지 그리스도의 성품을 드러냄으로만 우리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그분과 협력할 수 있다. ―리뷰 앤드 헤랄드, 1904.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