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와 복음 교역자에게 보내는 권면

본문보기

주제제목없음

105 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어떻게 연구해야 하겠는가? 우리는 통회하는 심령, 배우고자 하며 기도하는 심령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탐구해야 한다. 우리는 유대인들처럼 우리 자신의 사상과 견해에는 전혀 오류가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또한 교황주의자처럼 특정 개인들만이 진리와 지식의 수호자이며, 인간에게는 스스로 성경을 연구할 권리가 전혀 없고, 교부들이 제시한 설명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우리의 선입 주견을 지지할 목적으로 성경을 연구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배우려는 한 가지 목표를 가져야 한다.

어느 한 가지 점에서라도 자기에게 실수가 있다는 것을 시인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모든 진리의 이론을 의심할까봐 두려워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탐구하는 일을 허용해서는 안 되며, 그것은 불화와 분열을 낳는다고 느껴 왔다. 그러나 탐구의 결과가 그러하다면 그런 일은 속히 올수록 좋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의 믿음이 성경 탐구의 시험을 이겨낼 수 없는 자들이 있다면 그런 이들은 빨리 발견될수록 유익하다. 그 때에야 그들에게 그 오류를 보여 줄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때 받아들였던 입장, 한때 옹호했던 사상이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포기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할 수 없다. 오류가 없으신 분은 한 분 뿐이니,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분이시다.

편견을 내세워 지성이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이들은 신령한 깨우침을 얻을 수 없다. 106 그런데 성경에 대한 견해가 제시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진리인가? 하나님의 말씀과 조화되는가? 라고 묻지 않고, 누가 이것을 옹호하는가? 라고 물으며, 그들을 즐겁게 하는 그 통로를 통해서 오지 않는 한,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토록 철저히 자기 자신의 사상에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배우고자 하는 소원을 갖고 성경의 증거를 조사하려고 하지 않으며, 관심을 보이는 것조차 거절하는데,이는 우리가 주님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그분께서 역사하실 때가 종종 있다. 그분께서는 그분 스스로 선택하신 도구들을 통해 그 능력을 나타내심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시는 반면에 빛의 통로가 될 것으로 여겨졌던 인물들을 지나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 진가에 의해서,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에 우리가 진리를 받아들이기를 원하신다.

아무리 오랫동안 진리로 여겨져 오고 있다 할지라도 어떤 인간의 사상에 들어맞도록 성경이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주석가들의 견해를 하나님의 목소리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들은 우리처럼 실수하는 인간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는 물론 우리에게도 추리할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하셨다. 우리는 성경을 그 자체의 해석자로 삼아야 한다.

새로운 사상을 제시할 때 주의하라

성경에 대한 새로운 사상에 대해서는 그 요점들을 충분히 연구하여 성경으로 지지할 수 있는 준비가 충분히 갖춰질 때까지는 그것을 제시하는 일에 모든 사람이 주의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 속에서 이 시대를 위한 특별한 기별을 주고 계신다는 분명한 증거가 없이는 분쟁을 일으킬 만한 어떤 것도 소개하지 말라.

그러나 진리인 것을 거절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우리 백성에게 있는 큰 위험은 인간을 의지하고 육체로 그 힘을 삼는 것이다. 스스로 성경을 탐구하는 습관이 배어 있지 않은 이들이 지도자들을 신뢰하며 그들이 내리는 결정을 받아들이고 있다. 107 이렇게 해서 그들은 그 지도적인 형제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에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에게 보내시는 바로 그 기별들을 거절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주시는 모든 빛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을 아무도 하지 말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일을 용인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계 3:8)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모든 지도적인 인물들이 빛과 진리를 거절할지라도 그 문은 계속해서 열려 있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 시대를 위한 기별을 백성들에게 전할 인물들을 일으키실 것이다.

진리는 설 것이다

진리는 영원하며, 오류와의 싸움은 그 능력을 나타내 보일 뿐이다. 우리는 진리가 무엇인지 알기를 원한다는 믿을 만한 증거를 보인 이들과 더불어 성경을 연구하기를 결코 거절하지 말아야 한다. 그대와는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어떤 형제가 그대에게 와서 함께 앉아 성경 속에서 그 점에 관해 조사해 보자고 제안했다고 하자. 그러면 그대는 그의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편견에 가득 차서 벌떡 일어나 그의 사상을 정죄해야 하겠는가? 유일한 바른길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함께 앉아 제시된 주장을 하나님의 말씀의 빛 속에서 조사하는 것인데, 그렇게 함으로 진리를 드러내고 오류의 정체를 밝힐 것이다. 그의 사상을 조롱한다고 그것이 오류일지라도 그의 주장을 약화시키지 못 하며, 그것이 진리일지라도 그대의 주장을 강화시키지 못한다. 우리가 갖고 있는 신앙의 기둥들이 조사의 시험을 견뎌 내지 못할 것이라면, 지금이야말로 그것을 알아야 할 때이다. 우리들 사이에는 바리새인의 정신이 전혀 없어야 한다.

경외심을 갖고 성경을 연구하라

우리는 하나님 존전에 있음을 느끼면서 경외심을 갖고 성경을 연구해야 한다. 모든 경박하고 사소한 것들을 제쳐 놓아야 한다. 108 말씀의 어떤 부분은 쉽게 이해가 되지만, 다른 부분의 참된 의미는 쉽게 파악이 되지 않는다. 끈질긴 연구와 묵상, 그리고 열렬한 기도가 있어야만 한다. 모든 연구자는 성경을 펼칠 때에 성령께서 깨우쳐 주시기를 간구해야 한다. 깨우쳐 주실 것이란 약속은 아주 분명하다.

성경 연구에 임하는 정신 상태에 따라서 그대 곁에 가까이하는 조력자의 성격이 결정될 것이다.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간구하는 자들 곁에 빛의 세계에서 온 천사들이 함께 할 것이다. 반면에 자부심을 갖고 불경스런 태도로 성경을 펼치게 되면, 그 마음속에 편견을 품으면, 사단이 그대 곁에 임하여 하나님의 명백한 말씀을 왜곡된 빛 가운데서 제시할 것이다.

자기와 다른 이들에 대해 경솔하게 처신하고, 비꼬며, 조롱하는 이들이 있다. 어떤 새 견해에 대해 반대를 죽 늘어놓는 이들도 있다. 그리하여 그 반대에 대한 답변이 성경 말씀을 통해 분명히 제시될 때, 그들은 제시한 증거를 용인하려고 하지 않으며, 또한 확신을 가지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질문은 진리에 도달하려는 목적을 가진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려는 것이다.

진리인 것에 대해 사람들의 마음을 당혹하게 만드는 것을 지적 예민성과 우월함의 증거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논쟁의 교묘함과 말장난을 의지한다. 그들은 질문들을 제기함으로 부당하게 유리한 위치에 선다. 그들의 질문에 대하여 훌륭한 대답이 주어지면 그들은 진리를 인정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하여 주제를 바꾸어 다른 문제로 돌아선다. 우리는 유대인들을 지배했던 정신에 빠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에게서 배우려고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분의 성경에 대한 설명은 그들의 사상과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09 그러므로 그들은 그분의 뒤를 밟으면서, “그 입에서 나오는 것을 잡고자 하여 목을 지키더라”(눅 11:54). 구주께서 발하신 무시무시한 정죄의 말씀이 우리 위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자. “화있을진저 너희 율법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눅 11:52).

단순함과 믿음으로

대답하기 힘든 질문을 하는 데는 많은 학식이나 재간이 필요하지 않다. 어린 아이까지도 지극히 지혜로운 사람마저 당황하게 할 수 있는 질문들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종류의 시합을 벌이지 말도록 하자. 그리스도 당시에 퍼져 있었던 것과 아주 똑같은 불신이 우리 시대에 존재한다. 그 때처럼 지금도 승진과 사람들의 찬사에 대한 욕구 때문에 사람들은 진실된 경건에서 벗어나고 있다. 영적 교만 이상으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교만은 없다.

청년들은 스스로 성경을 연구해야 한다. 그들은 좀더 경험이 많은 이들이 진리를 발견하는 것으로 족하며 또한 어린 사람들은 그들에게서 그것을 권위 있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관원, 제사장, 장로들에 의해 성경의 진리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에 한 민족으로서의 멸망을 당하게 되었다. 그들이 예수님의 교훈에 유의하고 스스로 성경을 탐구하였더라면, 그들은 멸망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대열에 서 있는 청년들은 목사들이 어떤 정신으로 성경을 연구하는지 지켜보고 있다. 배우려는 정신을 갖고 있는지, 또한 증거들을 받아들일 정도로 겸비한 자세를 갖고 있는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내기로 선택하신 사자들에게서 나오는 빛을 받아들이려고 하는지의 여부를 눈여겨 본다.

우리는 스스로 진리를 연구해야만 한다. 우리 대신 생각해 주도록 그 누구도 의지해서는 안 된다. 110 그가 누구이든지, 또한 그가 어떤 지위를 차지하고 있던지 상관없이 우리는 그 누구도 우리를 위한 판단의 표준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서로 협의하고, 서로 복종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진리가 무엇인지 배우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능력을 행사하여야 한다. 우리 각자는 신령한 깨우침을 위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날에 있을 시험을 견뎌 낼 품성을 개인적으로 계발해야 한다. 우리는 자기 사상에만 집착한 나머지 아무도 우리의 견해에 간섭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대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교리상의 어떤 문제에 부딪치게 될 때, 하나님께 무릎을 꿇음으로 진리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되도록 하고 유대인들처럼 하나님을 대항하여 싸우는 자리에 서 있는 자로 발견되지 않게 하라. 우리는 진리가 아닌 것은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말도록 사람들을 경고하는 한편, 빛 되는 진리를 거절함으로 그 영혼을 위태롭게 하지 말며 하나님의 말씀을 열렬하게 연구함으로 어두움을 물리치라고 경고해야 한다.

나다나엘이 예수님께 나왔을 때, 구주께서는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 외치셨다. 나다나엘은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라고 말했다. 예수께서는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고 대답하셨다(요 1:47.48). 마찬가지로 우리도 진리가 무엇인지 알기 위하여 예수님께 빛을 구하게 되면 그분은 은밀한 기도처에 있는 우리를 보실 것이다.

어떤 형제가 오류를 가르치고 있다면,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이들은 그것을 알아야 한다. 그가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면, 그들은 그 사람 편에 서야 한다. 우리 모두는 우리 사이에서 가르쳐지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리인 경우에 우리는 그것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안식일학교 교사는 그것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으며, 모든 안식일학교 학생들은 그것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시는 것을 이해해야 할 책임을 그분께 지고 있다. 그분께서는 모든 교리를 시험할 수 있는 지침을 주셨다. 111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사 8:20). 그러나 그것이 이 시험에 일치하게 되면, 그대는 지나치게 편견에 치우친 나머지 그것이 그대의 사상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요점을 거절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주신 한 가지 약속조차도 그 부요함과 광대함을 모두 다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어떤 사람은 이런 관점에서 영광을 포착하고, 다른 사람은 저런 관점에서 아름다움과 은총을 포착하며, 영혼은 하늘 빛으로 충만해진다. 우리가 모든 영광을 보게 된다면, 영혼은 기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위대한 계시들을 하나님의 풍부한 약속들로부터 얻을 수 있다. 우리를 위해 마련된 온전한 축복을 어떻게 해서 우리가 바라보지 못하는지를 생각하면 내 마음은 서글퍼진다. 우리는 잠깐 동안 반짝이는 영적 깨달음에 만족하고 있지만, 이 때야말로 우리는 그분의 임재의 빛 안에서 날마다 걸어가야 한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의의 태양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광선이 말씀 위에 비치기를 이전 어느 때보다도 간절히 기도하여 그 참 의미를 이해하게 되기를 바란다. 예수님은 그분의 제자들이 진리 즉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거룩하게 되기를 간구하셨다. 우리는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고전 2:10)는 분, 모든 것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기억나게 하며 그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는 직임을 가지신 분께서 그분의 거룩한 말씀을 탐구할 때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열렬하게 기도해야 한다.

더욱 깊은 연구를 위해 참고할 서적: 복음 교역자, 98-100.249-254(영문).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의지하고, 인간을 의지하지 말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우리가 새 마음을 갖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비쳐 나오는 빛을 우리에게 보여 주실 것이다. ―리뷰 앤드 헤랄드, 1890.2.18.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의 연구*

112 하나님의 영께서 성경의 매 쪽마다 빛을 비추고 계시지만, 별로 감동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그것이 불완전하게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거짓 이론이 들어오게 됨으로 인하여 흔들림이 닥쳐오면, 아무 데도 닻을 내리고 있지 못한 이러한 피상적인 독자들은 이리저리 날리는 모래와 같다. 그들은 자기의 사무친 감정의 경향에 맞는 아무 입장이나 취하게 된다. … 신구약의 다른 예언들은 물론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을 연구해야 한다. 그대의 처소에 빛, 바로 빛이 비치게 하라. 이것을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신성한 책갈피 위에 비취시는 성령께서, 우리의 이해력을 열어 우리로 하여금 무엇이 진리인지를 알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주 세밀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 특별히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에 대하여 우리 사업의 역사의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관심을 쏟아야 한다. 우리는 어떤 면에 대해서는 좀 덜 말해야 할 것인데, 로마의 세력과 법왕권에 대해서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하나님의 성령의 영감 아래 기록한 것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성령께서 예언을 주시는 일과 묘사된 사건들 속에서 일들을 주관하심으로 인간 매개자들은 시야에서 사라져 그리스도 안에 숨긴 바 되고, 하늘의 주 하나님과 그분의 율법이 높임을 받도록 하셨다. 다니엘서를 읽어보라. 그 곳에 제시된 왕국의 역사를 조목조목 회상해 보라. 정치가들과 의회들과 강력한 군대들을 쳐다보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간의 자만심을 깎아 내리셨으며, 인간의 영광을 흙 속으로 떨구어 버리셨는지를 바라보라. … 다니엘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빛은 특별히 이 말세를 위해 주어졌다. 113 시날의 큰 강인 을래 강변과 힛데겔 강변에서 그가 본 이상들은 현재 성취 중에 있으며, 예언된 모든 사건은 신속히 성취될 것이다.

다니엘의 예언이 주어졌던 당시의 유대 민족의 처지에 대해서 생각하라.

우리는 성경 연구에 좀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한다. 우리는 마땅한 만큼 말씀을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 요한계시록은 그 속에 포함된 교훈을 이해하라는 권고로 시작한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3)고 하나님께서는 선언하신다. 우리가 한 백성으로서 이 책이 우리에게 의미하고 있는 것을 이해한다면, 우리 사이에는 위대한 신앙 부흥이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살피고 연구하라는 권면을 받고 있으면서도 그 가르치는 교훈들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에 교사들은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은 인봉된 책이라고 선언해 왔으며, 백성들은 이 책들로부터 돌아섰다. 그 일견 신비해 보이는 휘장은 사람들이 그것을 걷어 올리는 것을 막았으며, 하나님의 손은 그분의 말씀의 이 부분으로부터 거두워진 바 되었다. “계시록”이라는 이름 자체는 이 책이 인봉된 책이라는 진술과 어긋난다. “계시”는 어떤 중요한 것이 나타내어진 바 된 것을 의미한다. 이 책의 진리들은 이 말세에 사는 이들에게 증거되었다. 우리는 휘장이 걷혀진 신령한 사물의 성소 안에 서 있다. 우리는 바깥에 서 있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들어가야 하는데, 부주의하고 불경건한 생각을 가지고서가 아니라, 또한 성급한 발걸음으로가 아니라, 공손한 태도와 경건한 두려움으로 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예언들이 이루어질 시대에 가까이 이르고 있다. 114 …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예언의 신을 갖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값비싼 보석들이 발견되어야 한다. 이 말씀을 연구하는 이들은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 그들은 먹거나 마시는 일에 있어서 빗나간 식욕에 방종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할 때, 뇌는 혼란스러워져서 그들은 이 지구 역사의 종말 장면과 관련된 사물들의 의미를 깊이 있게 캐내는 수고를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을 좀더 잘 이해하게 될 때, 신자들은 전적으로 다른 신앙 경험을 갖게 될 것이다. 그들은 열려진 하늘 문을 엿보게 될 것이며, 따라서 마음과 정신은 심령이 청결한 자의 보상이 될 그 축복을 실현하기 위해서 모든 사람이 계발해야만 할 품성에 대하여 깊은 인상을 받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진리를 이해하기 위하여 겸손하고 온유하게 연구하는 모든 사람들을 축복하실 것이다. 이 책에는 불멸성과 충만한 영광을 지닌 큰 것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열심히 읽고 탐구하는 이들은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계 1:3)에게 허락된 축복을 받는다.

진실된 연구의 결과

요한계시록을 연구할 때 분명하게 깨닫게 되는 한 가지가 있을 것이다. 즉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의 관계는 밀접하고 굳건하다는 점이다.

천상의 우주 세계와 이 세상 사이에 있는 놀라운 관계를 볼 수 있다. 다니엘에게 계시된 것들은 나중에 밧모섬에 있는 요한에게 주신 계시를 통해서 보충되었다. 이 두 책은 세심하게 연구되어야 한다. 115 두 번씩이나 다니엘은 시대의 종말까지 얼마나 걸릴 것인지를 질문하였다.

“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 내가 가로되 내 주여 이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하겠삽나이까 그가 가로되 다니엘아 갈지어다 대저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 일천 이백 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 기다려서 일천 삼백 삼십 오 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 날에는 네 업을 누릴 것임이니라”(단 12:8-13).

그 책의 봉인을 떼어 말세에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계시를 요한에게 주신 분은 유다 지파의 사자이셨다.

다니엘은 종말, 곧 이 세상에 첫째 천사의 기별이 전파되는 때까지 봉인된 그의 증언을 전해야 했다. 이 문제들은 이 말세에 무한한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하며 희게 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편에서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단 12:10). 정말 그렇지 아니한가! 죄는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율법에 관한 빛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이들은 첫째, 둘째, 셋째 천사의 기별 선포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다니엘서는 요한에게 주신 계시 속에서 봉인이 떼어지고, 우리를 이 지상 역사의 마지막 장면으로 안내한다.

우리가 종말의 위기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 형제들이 명심할 것인가? 다니엘과 관련해서 요한계시록을 읽으라. 이것들을 가르치라.

무적의 군대가 기다리고 있음

116 하나님의 아들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자들은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서 성령의 영감을 받은 진리를 이끌어 낼 것이다. 그들은 억제할 수 없는 행동력을 발휘하기 시작할 것이다. 어린이들의 입술은 열려져서 인간 지성에 감취어져 왔던 신비들을 선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바야흐로 크고 엄숙한 사건들이 벌어지려는 때에 서 있다. 수많은 예언들이 신속히 연이어서 성취될 것이다. 모든 세력이 작용하려고 한다. 과거의 역사가 되풀이 될 것이다. 옛 쟁투는 새롭게 불타오를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은 사방으로 위기에 둘러싸일 것이다. 격렬함이 인간 가족을 사로잡고 있다. 그것은 지상의 모든 것 속에 스며들고 있다. … 요한계시록을 다니엘과 관련시켜 연구하라. 왜냐하면 역사는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 우리에게 있는 모든 신앙적 이점을 총동원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많은 것을 오늘 우리는 알아야 한다.

통회하는 심령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며 오직 그분께서 주실 수 있는 지식의 더욱 큰 길이와 너비와 깊이와 높이를 간구하는 이들에게 계시된 진리들을 천사들은 살펴보기를 원한다.

이 세상 역사의 종말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우리는 말세와 관련된 예언들을 특별히 연구해야 한다. 신약의 마지막 책은 우리가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는 진리로 가득 차 있다. 사단이 사람들의 정신을 눈멀게 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요한계시록을 연구하지 않는 어떤 구실에 대해서도 기쁘게 생각해왔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 종 요한을 통하여 말세에 벌어질 일을 여기에 선포해 놓으셨다. 117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계 1:3).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은 함께 묶어 출판해야 한다. 어떤 부분에 대하여 약간의 설명을 덧붙일 수 있겠지만, 이런 일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내게 확신이 없다.

이것은 내가 해스켈* 목사에게 제안한 것인데 그 결과로 그는 책을 발간했다. 이 책으로 필요성이 채워진 것은 아니다. 다니엘서 뒤에 요한계시록을 합본하여 다니엘서에서 취급하고 있는 주제들에 관하여 더욱 충분히 조명하도록 하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 목적은 두 책을 함께 묶어 두 책이 동일 주제들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었다.

교회들을 일깨우게 될 한 가지 기별이 전파되어야 한다. 그 빛을 우리 나라 뿐 아니라 세계에 비추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나는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의 예언들을 소책자로 인쇄하여 필요한 설명을 함께 담아 온 세상에 배포해야 한다는 지시를 받았다. 우리 백성들은 그 빛을 분명한 모습으로 그들 앞에 놓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제시하며 요한에게 주신 이상은 모든 나라와 족속과 방언에게 분명하게 전파되어야 한다. 바벨론으로 대표된 교회들은 그들의 영적 상태에서 타락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진 이들을 핍박하는 세력으로 변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요한에게 이 핍박 세력은 새끼 양같이 뿔들을 가졌으되 용처럼 말하는 세력으로 제시되었다. … 우리가 종말에 가까이 이를수록 이교 세력의 외적 과시가 점점 더 커지게 될 것이다. 118 이교의 신들이 자신의 괄목할 만한 힘을 나타내고, 세상 도시들 앞에 자신을 과시할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이미 성취되기 시작하였다. 다양한 상징을 통해서 주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두드러지게 핍박하는 이들의 악한 성격과 기만적인 영향에 대해서 요한에게 보여 주셨다. 이 세상 역사가 끝나는 데 그토록 큰 역할을 하는 불법의 비밀을 주의 깊게 찾아내는 지혜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 …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시대에 주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불러서 증거해야 할 기별을 주셨다. 그분께서는 불법의 사람의 사악함을 폭로하도록 그들을 부르셨는데, 그는 일요일 법이 강력한 힘을 행사하도록 하며,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하며, 유일의 참 안식일, 창조의 안식일을 주님께 거룩한 것으로 지키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 굳건히 공경을 다하는 그분의 백성을 핍박해왔다.

말세의 위기가 우리에게 임하였는데, 우리는 우리의 사업을 통하여 백성들에게 그들이 처한 위험에 대해 경고해야 한다. 예언이 계시하는 엄숙한 장면들을 건드리지도 않고 지나쳐서는 안 된다. 만일 우리 백성이 절반만이라도 깨어 있다면, 만일 그들이 요한계시록에 묘사된 사건들의 임박함을 깨닫기만 한다면, 우리 교회 안에는 신앙 부흥이 일어나 더욱 많은 사람들이 기별을 믿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허비할 시간이 전혀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회계할 자들인 것처럼 영혼들을 돌보아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키신다. 새로운 원칙들을 발전시키고, 명쾌한 진리 안으로 가까이 행하라. 그것은 양 날 선 검처럼 될 것이다. 그러나 너무 성급한 나머지 논쟁적인 태도를 취하지 말라. 우리에게는 조용히 서서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아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다니엘서가 말하게 하라. 요한계시록이 말하게 하라. 그리고 진리가 무엇인지를 말하라. 그러나 주제의 어떤 면을 제시할지라도 예수님을 모든 소망의 중심,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계 22:16)로서 높이도록 하라.

좀더 깊게 파라

119 우리는 진리를 탐구할 때, 충분할 만큼 깊이 있게 파지 않는다. 현대 진리를 믿는 모든 영혼은 그들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제시하도록 요청 받는 곳에 서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왕과 방백과 관원과 지상의 위대한 인물들 앞에 세움을 받게 될 것이며, 따라서 그들은 자신이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회심한 남녀가 되어야만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지상의 위대한 인물들로부터 배우는 것보다도 그분의 성령을 통하여 한 순간에 더 많은 것을 그대에게 가르치실 수 있으시다. 우주는 지상에서 진행되고 있는 쟁투를 지켜보고 있다. 무한한 값을 지불하고서 하나님께서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 할 것을 알 수 있는 기회를 모든 사람을 위해 마련하셨다. 이 기회를 붙잡는 사람을 보게 되기를 천사들은 얼마나 갈망하고 있는지! 어떤 기별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제시될 때, 그들은 그것을 반대하여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들은 성경으로 가야 하며, 그것을 율법과 증거의 말씀으로 비교해 보아 그것이 이 시험을 견디지 못하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넓히시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그분의 은혜를 우리에게 쏟으시기를 갈망하신다. 우리는 날마다 좋은 것을 즐길 수 있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하늘의 모든 보물을 우리에게 열어 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 리뷰 앤드 헤랄드, 1890.2.18.

더욱 깊은 연구를 위해 참고할 서적: 복음 교역자, 297-305.311-315(영문); 그리스도인 교육의 기초, 305-307(영문); 교회증언 5권, 706-708(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