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와 복음 교역자에게 보내는 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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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 오스트레일리아 쿠란봉, 1895.8.27.

사랑하는 ______ 형제 자매여: 이 곳에 있는 우리 노작 수련 학교의 학생들은 지적 수련에 뇌와 근육의 사용을 적절하게 결합시키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주신 빛을 따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결과는 우리가 기대했던 것을 능가한다. 실험으로 간주된 한 학기가 끝났을 때, 학생들에게는 방학이 주어졌고, 그들이 원하는 어떤 일이든지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모두가 매일마다 노작과 특정 시간 동안의 연구를 병행하는 학교를 이전처럼 계속해 달라고 간청했다. 학생들은 일하는 법과 연구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현재의 기회를 포기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이것이 가장 불리한 환경 중에서 그들이 택한 선택이라면, 학교 건물을 세우고 학생들에게 좀더 나은 환경을 이루어 줄 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인가?

현재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건물은 이 목적에 맞는 유일한 것으로 낡은 호텔을 세내어 그 설비를 최대한도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곁에 있는 잔디밭에 쳐놓은 네 개의 천막도 학생들이 차지하고 있다. 매일 아침 여섯 시면 학교의 일원들이 함께 모여 아침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연구한다. 이러한 시간들은 축복임이 입증되었다. 240 … 나는 8일간 아침마다 학생들에게 말했다. 주 예수께서 정말로 우리 모임에 계셨다. 회중은 평균 26명에서 30명이 되었다. 첫 집회 때에 중보의 정신이 내게 임했으며, 모든 사람은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을 느꼈다. 다음에 나는 약 30분 정도 이야기했으며, 주님께서 모인 사람들을 위해서 내게 말씀을 주셨다. 이러한 시간들은 지극히 유익했다. 이어진 학생들의 간증을 통해서 성령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물들을 엿볼 수 있게 해 주셨다는 증거를 받았다.

집회가 진행됨에 따라 영적 감동이 더욱 현저하게 나타났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셨다. 능력과 은총으로 참석자들의 동정심과 감정이 고무되었다. 심령은 성령의 감동하심에 민감해졌으며, 마음과 품성에 결정적 변화가 일어났다. 하나님의 영께서 인간 대리자들 위에 역사하고 계셨다. 나는 내 심령에 그분의 영의 고무적인 감동을 베풀어 주신 것을 인해 주님을 찬송한다. 우리 모두는 주님께서 우리와 협력하사 우리를 이끌어 뜻을 정하고, 결심하고, 행동하도록 하셨다는 것을 느꼈다.

주님께서는 뜻을 세우는 일이나 행동하는 일에 우리 대신 행하시겠다고 제안하지 않으신다. 이것은 우리 고유의 일이다. 우리가 열렬하게 사업에 참여하자마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우리 속에서 뜻하고 행동하도록 하시지만 그것이 결코 우리의 노력을 대신하지는 않는다. 우리 영혼은 협력하기 위해서 분기(奮起)해야 한다. 성령께서는 인간 대리자에게 역사하여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루게 하신다. 이것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애쓰시는 실제적인 교훈이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이른 아침 집회에서 학생들에게 말할 때보다도 인간 마음에 역사하는 고귀한 진리와 그 능력을 이토록 깊게 인식한 적이 내게는 없었다. 매일 아침마다 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별로 충전되는 것을 느꼈다. 또한 나는 안식일에 두번씩이나 자유롭게 말할 수 있었다. 매 집회 때마다 여러 명의 불신자들이 참석했으며, 그들은 진리가 제시될 때 큰 감명을 받았다. 241 만일 우리에게 집회하기에 적당한 장소가 있다면, 우리는 이웃들을 오라고 초청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치 상자에 담긴 것처럼 무리들로 빽빽하게 된 길고 비좁은 식당은 예배를 드리기에는 매우 적합지 못한 장소였다. 내게는 방 구석의 좁은 공간이 주어졌고, 나는 벽에 착 달라붙어 서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 예수께서 회중 가운데 계셨다. 우리는 그것을 안다. 여러 영혼들이 진리의 주제에 대해서 현재 아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

사람들이 심령에 받은 바 확신을 행동으로 나타내는 대결단의 시간이야말로 가장 혹독하고 강력한 영혼의 싸움이 요구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영혼을 하나님께 성별하는 것은 무한한 값을 지불하고 그 자유를 사신 분께 영혼을 주관하시도록 내어 맡기는 것이며, 그 다음에 우리는 주님을 알기 위해 따라가야 한다. 우리는 그의 나아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호 6:3)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삼상 15:22)다. 그리스도인의 전체적인 사업은 의지와 행함으로 이루어져 있다.

균형진 훈련

학생들은 열심과 정성을 다해서 일한다. 그들은 근육 활동뿐 아니라 신경 능력과 견실성도 증가하고 있다. 이것은 연약하고 비능률적이며 일방적인 교육이 아니라 신체적·정신적·도덕적으로 골고루 훈련을 받은 청년들을 우리 학교들이 내보낼 수 있는 적절한 교육이다. 품성 건설자들은 최고의 가치를 지닌 교육을 이룩할 기초를 닦아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일에는 자아 희생이 요구되지만, 이 일은 이루어져야만 한다. 적절하게 실시한다면 육체적인 훈련은 정신적 부담을 질 수 있도록 준비시킬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만으로는 언제나 결여된 인물을 만든다. 정신적 수고와 신체적 활동이 결합될 때, 정신과 품행은 더욱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게 되며 훨씬 뛰어나게 일할 수 있다. 242 이러한 훈련 아래에서 학생들은 실생활을 위해 교육을 받고 자신의 지적 능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인물로서 우리 학교에서 배출될 것이다. 우리 학생들을 정당하게 다루고자 한다면, 신체적·정신적 훈련이 결합되어야 한다. 이 곳에서 우리는 불편한 환경 속에서 학생들이 노동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만족스럽게 이 계획에 따라 일해왔다.

내가 이 곳에 와서 내가 맡은 위치에서 열성적으로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신선한 열성으로 고무되었으며, 그러한 특권을 누린 것을 기뻐하면서 성의껏 일해왔다. 우리는 서로간에 열성과 선행을 촉구했다. 학교 일꾼들은 내가 앞장서서 나무를 심는 것을 보고 염려했지만, 지금 그들과 나는 모두 이 근처에서 최초로 과수원다운 과수원을 갖게 된 것에 대해 만족해 하고 있다. 내년부터 우리 나무들 중에서 열매가 맺힐 것이며, 2년 후에는 복숭아를 매우 많이 거두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나무를 판매한 ______는 여기에서 20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살고 있다. 그는 넓고도 아름다운 과수원을 갖고 있다. 그는 우리가 퍽 좋은 과수원 땅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정말 학교는 아주 훌륭하게 출발했다. 학생들은 나무와 딸기 등등을 심는 법, 그것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모든 줄기와 뿌리를 제대로 뻗게 하는 법 등에 대해서 배우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신체의 어느 기관도 억눌리지 않고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적절한 여지를 주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 신체는 물론 인간의 마음을 다루는 법에 대해 지극히 소중한 교훈을 주지 않는가? 정신을 동원하고 정신력에 부담을 주어야 한다.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에서 온전한 사업을 행하기 위해 하나님의 영에 의해 활력을 얻을 수 있는 남녀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은 무위 도식함으로 말미암아 게으르고 왜소해질 것이 아니라 연마되고 사용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자신을 보잘 것 없는 존재라고 느끼지 않고, 하나님인 신성하신 농부께서 이루어 주시는 기적을 보기를 좋아했던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에서 주셨던 바로 그 거룩한 사업을 행한다는 생각으로 땅을 경작하고 자기의 지혜와 기술을 발휘할 남녀와 어린이들이 요구된다. 243 인간 대리자는 씨앗을 뿌리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에 물을 주시고 그분의 태양이 그 위에 비추도록 하시며 작은 싹들이 돋게 하신다. 여기에서 신체의 부활과 심령이 새롭게 되는 것에 관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있다. 우리는 땅의 것들의 성장 과정에서 영적 사물에 관해 배워야 한다.

땅 경작을 통한 교육

실패인 듯하게 보이는 것 때문에 우리는 현세적 사물에 대하여 고민하거나 좌절하지 말아야 하며, 지체된다고 해서 낙담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신실한 농부가 거둬들이도록 대지의 품안에 금이나 은보다도 더욱 부요한 것이 풍부하게 간직되어 있음을 믿으면서 즐거움과 소망, 감사의 정신으로 토지를 경작해야 한다. 땅이 인색하다는 비난은 거짓 증거이다. 적절하고도 현명하게 경작하기만 하면 땅은 인간의 유익을 위해 그 보물들을 낼 것이다.

배워야 할 영적 교훈은 결코 저질적인 것이 아니다. 마음 밭에 뿌려진 진리의 씨앗은 모두가 잃어버린바 되지는 않을 것이며, 움이 돋아,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 속의 열매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땅은 풀과 씨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맺는 과목을 내라”(창 1:11)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땅처럼 씨앗도 거룩하신 말씀으로 창조하셨다. 우리는 땅을 경작할 때 이지적인 능력을 사용해야 하며, 인간의 봉사를 위해 땅의 열매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 땅을 가꾸는 데는 우리에게 있는 온갖 지력과 기지를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주변에 있는 땅은 사람들의 나태함에 대해 증거한다. 244 우리는 잠자고 있는 감각들을 일깨워 활동시키기를 원한다. 우리는 지적인 농부들을 보기를 원하는데, 그들은 자기의 열렬한 수고에 대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손과 마음이 협력하여 밭을 경작하는 일에 새롭고 타당한 계획들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거목들을 베어 뿌리까지 뽑아내는 모습을 보았으며, 묘목을 심고 씨앗을 뿌리기 위해 보습으로 땅을 갈아 밭고랑을 깊게 내는 것을 보았다. 학생들은 쟁기로 가는 것의 의미를 배우고 있으며, 괭이와 삽, 갈퀴와 써레 등 모두가 명예롭고 유익한 근면의 도구임을 배우고 있다. 가끔 실수를 저지르겠지만, 오류는 진리 곁에 놓여 있다. 실패를 통해 지혜를 배우며, 시작 때에 기울인 힘은 끝날 때의 성공을 바라게 한다. 지체하게 되면 일이 후퇴할 것이며, 서두르는 것 역시 지연시킬 것이다. 그러나 인간 대리자들이 이런 경험들을 하게 될 때, 모든 것이 교훈을 줄 것이다.

이 곳 쿠란봉에서 시작한 학교에서 우리는 과학 연구와 결부시켜 농업적인 면에서 참된 성공을 기대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 곳을 중심지로 삼아 빛을 비출 작정인데, 그 결과로 묵힌 땅을 경작하게 될 소중한 진보된 지식을 전파하여 산과 계곡이 장미처럼 피어나게 될 것이다. 어린이들과 어른 모두에게 있어서 지적 부담과 결부된 노동은 모든 면에 균형진 올바른 교육을 주게 될 것이다. 마음을 수양함으로 땅을 경작하는 데 필요한 재치와 신선한 동기를 소유하게 될 것이다.

땅을 경작하여 소산물을 얻을 수 있는 교육을 받고 훈련받은 능력을 소유한 생계 유지자로서의 남자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보게 해 줄 것이다. 그들의 마음은 과학 연구로 인하여 과도한 부담을 지거나 극도로 긴장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인물들은 노작에 관하여 편만해 있는 어리석은 견해들을 무너뜨릴 것이다. 245 영향력이 퍼질 터인데, 그것은 큰 소리로 외치는 웅변을 통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사상적 설득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는 투박하지 않고, 거칠지 않고, 태만하지 않고, 자기 복장과 가정 모습에 대하여 부주의하지 않은 농부들을 보게 될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농가에 풍미를 더해 줄 것이다. 방은 햇볕이 잘 들고 매력이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먼지와 때가 덕지덕지 끼어 있는 새까만 천정을 보지 않게 될 것이다. 가정 안에 과학과 비상한 재주와 지성이 드러날 것이다. 땅을 경작하는 것은 향상적이고 고상한 일로 여겨질 것이다. 순결하고 실천적인 경건이 땅을 하나님의 보고(寶庫)로 취급하는 모습 속에 나타날 것이다. 인간이 좀더 지성적이 되면 될수록, 그로부터 경건스러운 감화가 더욱더 많이 비쳐 나와야 한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땅을 소중한 보물로 취급하기를 원하시며, 우리에게 신용으로 빌려 주셨다.

더욱 깊은 연구를 위해 참고할 서적: 그리스도인 교육의 기초(영문).

자아는 더 적게*

오스트레일리아 그랜빌, 1895.9.13.

우리 목사들 가운데 분명히 변화가 있어야 한다. 심령과 품성 속에 좀더 많이 그리스도께서 자리를 잡으시고, 좀더 적게 자아가 자리를 잡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 주님의 대표자가 되어야 한다. 큰 빛과 소중한 기회들을 가진 이들은 하나님께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분께서는 각자에게 저마다의 일을 맡기셨다. 그들은 신성한 위임을 결코 배반해서는 안 되며, 진실로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10). 부패하고 우상숭배하는 백성을 향한 그분의 마음을 표현하는 말씀이 여기에 있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호 11:8). 246 백성들을 위하여 그분 자신의 특별한 형상이신 독생자까지도 예비하셨거늘 어떻게 그분께서 그 백성을 포기하실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범죄를 위하여 그분의 아들을 내어 주도록 허용하셨다. 그분께서는 친히 죄를 짊어지신 분을 향해 아버지라는 사랑스러운 자질을 벗어 버리시고 심판자의 신분을 취하셨다.

이러한 점에서 지극히 경이롭게 그분의 사랑은 반역한 인류의 마음을 끈다. 천사들이 볼 때에 얼마나 놀라운 광경인가!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롬 5:8)셨다니 인간에게 얼마나 놀라운 소망인가! 의로우신 분이 불의한 자를 위해 고난 당하셨다. 그분께서는 나무 위에서 그분의 몸으로 친히 우리의 죄들을 짊어지셨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 8:32).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증인으로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사신 소유물의 가치를 알고 있는가? 우리는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그분과 함께 협력하여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 우리 능력이 미치는 한도 내에서 어떠한 희생이라도 아낌없이 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그분의 시험을 견디는 모든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셨던 것처럼 멸망해가고 있는 인류를 사랑한다. 그들은 높은 자와 낮은 자, 부자와 가난한 자를 찾아 길과 산울가로 나가서 모든 사람에게 그들이 그리스도의 특별하신 사랑과 보호자적 돌보심의 대상이라는 기별을 증거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모본을 좇아 자기를 희생하며 지극한 열성으로 수고할 것이다.

모든 사람을 위해서 일하라

하나님과 구주에 관하여 인간은 본래적으로 매우 눈멀고 무지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은 해야 할 일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단 한 사람도 무관심과 나태 가운데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247 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순종하는 사람과 불순종하는 사람 사이에는 품성과 생애에 있어서 현격한 차이가 있다.

부모들은 그 자녀들의 이기심을 제어하지 않고 있다. 방종이 추구해야 할 목표가 되어 왔다. 이기심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사단에게 속박된다. 그들은 악한 자의 지배하에 놓여 있는 자기 자신의 충동과 정욕의 노예들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섬기도록 초청하심으로 그들에게 자유를 주신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죄의 속박으로부터의 자유이며, 인간적인 정욕과 충동으로부터의 구출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중성을 바치는 이들을 중상 모략하는 일에 자신의 온갖 힘을 동원하는 사람들을 만나 싸워야 한다. 그들의 재치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이성은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을 넌저리나는 일로 보이도록 하는데 바쳐지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의 주장을 옹호하는 이들은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시 119:165.라고 간증한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시 19:7). 주님께서는 오류와 대조시켜 진리를 제시하시며, 또한 진리를 받아들임으로 말미암는 확실한 결과와 기꺼이 순종할 때 항상 이르러 오는 체험에 대해서도 제시하신다. 그것은 평강과 안식이다.

하나님의 종들 앞에 놓여져 있는 사업은 예수님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목사들이 해야 할 사업은 속절없는 영혼들을 그분의 공로에 매달리도록 하는 것이다. 순종의 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는 것을 덕으로 삼는 이들은 대기만자의 영감 아래 있다. 그들은 그의 능력으로 눈이 멀었다. 그들은 오만과 초조로 이끄는 유혹 중에서도 인간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같은 성질을 유지하도록 하는데 진리가 어떤 능력을 발휘하는지 그들 눈으로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250 진리의 원수들은 하나님의 율법이 구속력이 있는 요구라고 가르치는 이들을 격분시키기를 원한다. 우리 편에서 앙갚음하는 일을 하게 되면 사단의 군대는 환호성을 친다. 그는 갑옷에서 약한 곳을 발견한 것이다. 사단의 대리자들은 그들의 야비한 행동 노선을 통해 진리의 옹호자들을 유혹하여 덕스럽지 못한 것들을 말하고 행동하게 하려고 한다.

반대에 대처하는 법

건전한 지각과 영혼의 고결성을 간직해야 한다. 진리와 의의 영께서 우리의 품행과 말과 펜을 주관하셔야 한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 2:14). 만일 목사가 그의 회중들 앞에서 반대자의 얼굴에 불신의 웃음이 나타나 있는 것을 본다면, 그를 보고 있지 않는 자처럼 여기라. 어떤 이가 웃고 조소할 정도로 예의바르지 못하다면, 목사는 목소리로나 태도로 동일한 정신을 나타내지 않도록 하라. 그대는 결코 그러한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라. 너무 자주 날카로운 말을 펜으로 홀리며, 오류를 옹호하는 이들의 진술을 반복함으로 우리 형제들이 가끔 오류를 통용시키고 있다. 이것은 잘못이다. 그대의 펜으로 진보된 진리를 기록하라.

성령께서는 날카롭고 비평적인 사람이 되기를 좋아하는 이들과 더불어 일하지 않으신다. 토론자들과 만날 때 그러한 정신을 품어 왔으며, 어떤 이들은 버릇처럼 싸움에 익숙해지기까지 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일을 통해 수치를 당하신다. 날카로운 창살을 뒤로 걷어 치워라. 사단의 학교에서 그의 전쟁술을 익히지 말라. 성령께서는 비난의 말을 하도록 고무시키지 않으신다. 환난의 때가 우리 앞에 있으며, 진리의 빛을 갖지 못했던 모든 정직한 영혼들이 그 때에 그리스도 편에 서게 될 것이다. 진리를 믿는 사람들은 매일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 그러면 그들은 존귀하게 쓰는 그릇이 될 것이다.

반대자를 대하는 적절한 태도

그대의 반대자의 말을 반복하거나 그로 더불어 다투지 말라. 그대는 단지 인간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사단과 그의 천사들을 만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모세의 시신을 두고 사단에 대해서 맹렬한 비난을 퍼붓지 않으셨다. 세상의 구주, 곧 왜곡되고 기만적인 사단의 술책을 알고 계신 분께서 감히 그에게 맹렬한 비난을 퍼붓지 않으시고 오히려 거룩하고 겸손하게 “주께서 너를 꾸짖으신다. 오, 사단이여”라고 말씀하셨다면, 그분의 종들이 그분의 모본을 따르는 것이 현명하지 않겠는가? 사단이 진리를 곡해하고 잘못 나타내고 날조할 기회를 가질 것이라고 해서 그리스도께서 회피하셨던 노선을 유한한 인간이 취해야 하겠는가?

인신 공격을 피해야 함

세상 역사의 이 시기에 우리에게는 너무나 위대한 사업이 있기 때문에 초자연적인 사단의 대리자들의 권세와 대면하는 새로운 유형의 전쟁을 시작할 수 없다. 아무리 말이나 행동을 이용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지라도 우리는 인신 공격을 피해야 한다. 우리는 꾹 참아야 한다. 형제들이여, 그대가 전적으로 주님 편에 서 있다는 것을 나타내라.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의 진리가 범죄와 죄를 드러내고, 인간 심령에 역사하는 진리의 성화시키는 능력을 나타내 보이게 하라. 거만한 정신이 들어와서 하나님의 사업을 망쳐서는 안 된다. 하나님과 연결되는 특권을 지니고 있음을 인해 매 순간마다 하나님께 마땅히 감사하도록 하자.

매일마다 심령에 애통해 할 필요가 있으며, 주님께서는 자기 마음을 낮추고 예수님 안에 숨는 모든 사람에게 큰 유익을 선언하신다. “지존 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사 57:15).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사 66:2),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 34:18).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시 34:6,7).

주님의 율법을 미워하는 이들이 진리를 받아들여 그대로 살아가는 도덕적 용기를 가진 자들을 향하여 격노하여 저주를 퍼붓도록 하라. 주님이 우리의 힘이 되신다. 우리에게 있는 안전책은 자아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 속에서, 우리에 의해서, 우리를 통해서 그분의 뜻을 이루시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는 통회하고 겸손한 심령을 간직해야 하는데, 그러한 심령을 주님께서 소성케 하신다.

상담과 조언의 가치

자부심과 자기 갈채의 정신은 그 행동 노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어떤 사람에게든지 마음속에 적개심을 부추길 것이 분명하다. 상담이나 조언 같은 것은 무엇이든지 손상시키려는 의도로 보고 그에 대해 격분하게 된다. 이런 정신을 품게 될 때 많은 악이 발생한다. 그대가 잘못할 때, 아무도 감히 그대에게 말하려고 하지 않을 것인데, 신실한 자가 원수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어진 바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하는 주의 사항에 대하여 질투심을 갖고 해석함으로 말미암아 믿음의 형제들 사이에서 존재해야 할 친절이 죽임을 당하고 있다. 말들을 부당하게 강조하며, 상상으로 일을 과장하여 소외를 초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형제를 부당하게 대해서는 안 된다. 자부심은 극복되어야 한다. 갈채를 사랑하는 것은 올무로 여겨져야 한다. 우리 자신의 지혜와 자질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질 때,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될 위험이 언제나 존재한다. 251 이러한 자질들이 그 참된 가치를 나타내도록 하자. 그 때에 그 진가가 인정을 받게 될 것이다.

일꾼들 사이에 존재해야 할 연합과 평등의 정신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내 형제들에게 서로 뭉쳐 일하라는 권면을 하도록 나를 강권하셨다. 형제로서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예의를 다하며, 서로 간에 강철처럼 진실될 것이나, 다른 이들과는 뭉쳐 일할 수 없다고 느끼도록 하는 그대 형제 목사들에 대한 우월감을 깨뜨려 버리라. 아무도 자기가 전체적인 일을 해야 한다고 느끼지 말라. 아무리 경험과 자질이 풍부하다 할지라도, 다른 이의 재능이 그의 재능과 결합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신앙적인 노력에 있어서 모든 사람들을 위해 한 사람의 일련의 생각이 일을 성취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서로 다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하며,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에 부드럽게 이끌리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하다. 진리의 씨앗을 뿌리고 곡식을 거두어 들이는 데는 일하는 방법이 정말 서로 다르다. 다른 사람의 수고에 대해 비정하게 대하는 사람들도 아주 미천한 재능의 사람들에게 마음문을 여는 경우가 자주 있다. 많은 기도가 필수적이다. 교제 속에서 하나님께 영혼이 가까이 나아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을 찾는 영혼에게 가까이 나아오심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는 더욱 큰 심령과 생애의 헌신이 필요하다.

더욱 깊은 연구를 위해 참고할 서적: 시대의 소망, 19-26.408.409.417.435.436.439.440(영문).

서로 의논하라*

252 가장 위대한 사업이 우리 앞에 있다. 우리의 유용성을 위협하고, 발견되어 정복되지 않을 경우에 우리의 파멸을 초래할 위험은 이기심이다 그것은 우리의 계획, 우리의 의견, 우리의 수고에 대해 과대 평가하여 우리 형제들로부터 독립하여 움직이는 것이다. “서로 의논하라”는 말씀은 천사들에 의해 거듭거듭 반복되었다.

사단은 한 사람의 마음을 통해서 일들을 제 궤도에서 비뚤어지게 할 것이다. 그는 서로 비슷한 시각으로 보는 두 사람을 통해 성공을 거둘 수 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의 마음이 합해지면 그의 간계에 대해 훨씬 더 안전하다. 모든 계획을 온갖 방면에서 보기 쉽게 되며, 모든 전진마다 좀더 조심스럽게 연구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참여하는 사업에 혼란과 곤경과 패배를 안겨 줄 어떤 사업에도 착수하지 않기가 쉬워질 것이다. 연합 속에는 힘이 있으며, 분열 속에는 연약함과 패배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한 백성을 인도하고 계시며 그들을 승천을 위해 준비시키고 계신다. 이 사업에 참가하고 있는 우리는 하나님을 위한 파수꾼으로 서 있는가? 우리는 우리의 힘을 뭉치고 있는가? 우리는 기꺼이 모든 사람의 종이 되려고 하는가? 우리는 위대하신 모본을 본받고 있는가?

일하는 적절한 방법

진리는 유색인 중에서 아무렇게나 소개될 수 없으며, 신자들과 진리를 가르치는 자들에게 주제넘게 굴라는 충고가 주어질 수 없다. 느부갓네살의 우상에게 절하기를 거절한 세 명의 훌륭한 인물들이 그랬던 것처럼 남부 주에서도 그렇게 행해야 할 시기가 올 때, 그 때는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찬성이나 반대의 결정들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253 우리 스스로의 길을 전적으로 막아 버릴 필요가 전혀 없다. 아직 건드려 보지도 않은 수많은 일터에서 일하는 것이 더욱 어렵게 될 것이다. 우리의 정책은 이것이다. 주님께서 백성들에게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며, 그리스도의 신성과 그분의 선재성을 확실하게 믿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실 때까지, 백성들의 행습과 관습을 아주 결정적으로 강타하는 우리 신앙의 반대 받을 만한 면들을 두드러지게 나타내지 말라. 세상의 구속주의 증거를 깊이 생각하라.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계 22:16). 펜으로 종이 위에 쓰는 말은 엄격하게 삼가야 할 필요가 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그분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도록 도우신다.

하늘의 주재께서 사단과 타락한 천사들의 마음을 격분시키지 않기 위하여 그분의 모든 말씀을 삼가셨거늘, 우리는 만사에 얼마나 더욱 조심해야겠는가!

올바른 원칙들

나는 원근 각처에 있는 나의 형제들에게 말해야 한다. 나는 편안하지가 않다. 그들은 올바른 원칙에 따라 일하고 있지 않다. 책임 있는 자리에 서 있는 이들은 그 중대한 자리가 그들을 오판이 없는 인물이 되게 한다는 생각을 갖지 말아야 한다. 인간의 모든 일은 주님의 심판 아래 놓여 있다. 지극히 높으신 분께 지식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인간에게 전적으로 안전하다. 스스로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과 그분의 지혜를 의지하는 이들은 안전한 길을 걷고 있다. 그들은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까지도 재갈 물릴 권세를 갖고 있다고 결코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동반자요 주 예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28-30)고 말씀하신 인간 대리자들을 인간들이 지배하려고 한다는 것은 얼마나 무례한 짓인가! 254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전 3:9).

사업을 확장하여야 할 우리의 의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새 땅을 개척하고, 새롭고 활발한 사업을 확립하기 위하여 힘을 모아 일하자. 사람들에게 열렬하며 간단하고 요점 있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자. 세상의 구속주에 대해 이야기하며, 갈바리의 사람을 더욱더 높게 들어올리는 법에 대해 그들이 배우게 하자. 밀집된 묘상(苗床)으로부터 나무들을 옮겨 심으라. 하나님께서는 한 장소에 그토록 엄청난 혜택을 집중할 때 영광을 받지 못하신다. 우리는 나무를 다른 장소로 옮겨 심고 그들이 자랄 수 있도록 혜택을 베푸는 현명한 정원사를 필요로 한다. 저 먼 지역으로 나아가는 것은 확실한 의무이다. 진정한 선교적 열성을 가진 이들을 불러 모아 원근(遠近) 각처로 빛과 지식을 전하기 위해 나가게 하자. 건강 개혁의 살아 있는 원칙들을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거의 알지 못하는 지역 사회에 전파하자. 남녀들로 하여금 배틀크릭의 거대한 위생병원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계층민들에게 이들 원칙을 가르치게 하자. 하늘의 진리가 위생병원의 감화를 통해 수천의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등한시되어 온 것으로 이룩되어야 할 사업이 있다. 우리는 시카고와 다른 몇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업을 볼 때에 격려를 받는다. 그러나 여러 해 전에 배틀크릭에 집중된 거대한 책임은 분담되었어야 마땅하다.

백성들은 배틀크릭으로 모여들도록 고무되고 있으며,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일치하지 않는 현대판 예루살렘을 세우기 위해 십일조를 드리고 그들의 영향력을 행사한다. 255 이렇게 함으로 꼭 세워야 할 다른 지역에 기관들을 세울 수 없다. 확장하고 널리 퍼치라. 그러나 한 장소에서만 그렇게 하지는 말라. 나가서 아무것도, 거의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은 곳에 영향력의 본 거지를 세우라. 밀집되어 있는 무리를 헤쳐 버리라. 구원의 광선을 비추며, 어둠에 싸인 땅 모퉁이에 빛을 비추라. 독수리가 자기 둥지를 흔드는 것으로 묘사된 것과 같은 사업이 수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모압은 예로부터 평안하고 포로도 되지 아니하였으므로 마치 술의 그 찌끼 위에 있고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기지 않음 같아서 그 맛이 남아 있고 냄새가 변치 아니하였도다”(렘 48:11). 배틀크릭으로 오고 있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것은 사실이다. 많은 이들이 발작적인 열성을 갖고 있지만, 그것은 하늘을 가로지르면서 반짝이다가 사라지는 별똥별이나 다름없다.

하나님의 사업을 추구하는 그분의 일꾼들은 남부 지역에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하나님의 청지기는 손가락 끝으로 건드리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사업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이들은 열성을 다해 일터를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대는 이것에 대해 말해 왔지만, 하나님의 재산을 맡은 청지기로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야 할 한 사업을 주시지 않았는가? 반대를 무릅쓰고서 사람들을 오류로부터 진리로 돌이키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시지 않았는가? 그토록 빈번하게 배틀크릭의 대형 집회에 참석했던 이들이 자기가 들은 진리를 실천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만일 그들이 자기가 받은 빛을 나누어 주었더라면, 얼마나 놀라운 품성의 변화를 볼 수 있었을까! 이는 나누어 주신 모든 은혜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더하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위해 수행된 사업에 대하여 그들은 마땅하리 만큼 높이 평가하지 않았으니, 그들이 그렇게 여겼더라면 그들은 지구의 어두운 곳으로 나아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비추어 주신 빛을 널리 비추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256 그들은 믿음을 통한 그리스도의 의의 기별을 세상에 전파했을 것이며, 그들의 빛은 더욱더 분명해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역사하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진리를 공언하는 이들이 자기가 받은 소중한 지식을 전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오류에 빠진 채로 무덤 속에 들어갔다. 배틀크릭에 철철 넘치도록 비친 빛을 발산했더라면,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가 되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일어서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더욱 깊은 연구를 위해 참고할 서적: 교회증언 5권, 463(영문); 9권 257-261(영문).

장황한 설교의 해악*

사랑하는 ______형제여: 하나님의 대변자가 되고자 하는 이들은 자신의 입술이 제단에서 취한 핀 숯으로 지져지고, 성령의 나타남으로 진리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긴 설교는 말하는 사람과 그토록 오랫동안 앉아 있어야 하는 청중에게 부담이 된다. 설교자가 퍼붓는 엄청난 양의 절반 정도만 제시되어도 청중은 좀더 많은 유익을 얻게 될 것이다. 앞 시간 동안에 한 말은 거기서 설교가 끝난다면 연장 설교 반 시간 동안의 말보다도 훨씬 더 가치가 있다. 이미 제시한 것까지 잊어버리도록 만드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 목사들이 청중에게 끼친 최초의 강렬한 인상마저 씻겨나가게 할 만큼 오랜 시간 동안 말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이 내게 반복해서 제시되었다. 너무 많은 것을 제시하기 때문에 청중은 붙잡아서 소화할 수 없으므로 모든 것이 혼란스럽게 느껴진다.

257 나는 이 문제를 목회하는 우리 형제들에게 제시하고 그들의 말을 길게 하지 말라고 간청해왔다. 이 점에 어느 정도의 개선이 이루어져서 최고의 효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소수의 설교가 한 시간을 초과하고 있다.

미국에 있는 동안에 밤중에 그대에 관한 빛이 내게 주어졌다. 그대는 아주 길게 말하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말하고 싶은 것을 다 말하지 못했으므로 좀더 시간을 연장해서 말할 수 있기를 요청하였다. 그대가 강단에서 있는 동안에 위엄과 권세를 가지신 분께서 그대 앞으로 걸어와 말씀하셨다. 그대는 백성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었다. 그대가 제시한 것의 절반 정도가 전체보다도 훨씬 더 백성에게 유익했을 것이다. 만일 성령에 의해 활기를 얻었더라면, 그것은 틀림없이 인간 청중들에게 인상을 끼쳤을 것이다. 성령께서 인간에게 역사하시지만, 제시되어야 할 필수적인 것들을 청중이 흘려 버린다면, 쏟아지는 말들은 그 강렬한 인상을 희석시키고, 그릇에 담길 수 있는 것보다도 훨씬 많은 것을 쏟아 붓는 식이 되어 결국 엄청난 노력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진리는 소중하고, 활기를 주는 능력이다. 단순한 자에게 빛을 비추고 명철을 더하는 것은 말씀이 들어감으로서이다. 진리는 분명하게. 천천히, 강력하게 말함으로 청중에게 감화를 주어야 한다. 그 모든 소중한 음식, 생명의 떡,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를 받을 수 있도록 어떤 면의 진리를 제시할 때 그것을 깨닫도록 하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다. 모든 조각을 모아 하나도 손실이 없도록 해야 한다. 말씀을 전파함으로 진리를 제시할 때 감수성이 예민하게 듣는 이들이 아무것도 상실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중요하다. 주 예수께서는 성령에 의하여 제시되어 마음속에 받아들여지기를 원하시는데, 그럴 때에 확신이 마음과 의식 속에 오게 된다. 258 그러나 지나치게 많은 것이 제시되면 그 효과가 감소되고, 이미 받은 감화를 지워 버린다. 짧게 말하라, 그러면 그대는 거듭거듭 듣고 싶어하는 흥미를 일으킬 것이다.

새롭고 깜짝 놀랄 만한 주제를 백성들에게 지나치게 길게 제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정말 사실이다. 설교 때마다 마음에 진리를 적용해 주어 듣는 이마다 이해하고, 남녀와 청년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 있는 자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극히 작은 자로부터 지극히 큰 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말씀을 탐구하도록 이끌라. 이는 그분의 영광에 관한 지식이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온 땅을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 깊은 연구를 위해 참고할 서적: 교회증언 2권, 116-118.616.617.672(영문); 3권, 419(영문); 4권, 261(영문); 5권, 252.253(영문); 복음 교역자, 167.168.171(영문).

하나님을 아는 것*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벧후 1:1.2). 이 귀중한 말씀은 하나님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통하여 우리와 함께 보배로운 믿음을 소유하게 된 자들에게 말한 것이다. 약속의 위대함을 인식하기 위해 우리는 약속의 배후에 계신 분을 체험적 지식을 통해 알아야 한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9:23.24).

하나님의 사업에 필수적인 자격들

259 그분의 말씀 속에서 주님께서는 그분의 사업에 관련된 모두에게 필수 불가결한 은사와 은혜들을 열거하셨다. 그분은 우리에게 배우는 일을 무시하거나 교육을 멸시하라고 가르치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경외심으로 지배를 받게 될 때, 지적 교양은 축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께 봉사하는 일에 가장 중요한 자격으로 제시되지는 않았다. 예수님은 당대의 지혜 있는 자, 교육과 지위를 가진 인물들을 지나치셨는데, 이는 그들이 우월감에 부풀어 올라 지나치게 교만하고 자만했기 때문에 고난 당하는 인류를 향하여 동정심을 갖고 나사렛 사람과 동역자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독선 속에서 그들은 그리스도께 가르침 받는 것에 대해 조소를 보냈다. 주 예수께서는 그 사업을 신성하게 여기는 이들을 당신의 사업에 연결시키고자 하셨다. 그러면 그들은 하나님과 협력할 수 있다. 그들은 그분의 사랑을 거침없이 흘러 보낼 수 있는 통로가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성품의 속성은 자신을 불신하는 이들에게만 나누어질 수 있다. 최고의 과학적 교육도 그 자체로는 그리스도를 닮은 품성을 계발시킬 수 없다. 진정한 지혜의 열매들은 오직 그리스도께로부터 나온다.

모든 교역자는 자신의 자격을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시험해야 한다. 신성한 사물을 취급하는 이들이 영원한 이해가 걸린 문제에 대해 분명한 이해와 올바른 인식을 갖고 있는가? 그들은 성령의 역사에 굴복하기로 동의하는가? 혹은 그들이 자기 스스로의 유전적이고 배양된 경향의 지배하에 자신을 내맡기고 있는가? 260 자신이 믿음 안에 있는지 스스로 조사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합당한 일이다.

지위와 책임

하나님의 사업에 책임을 지고 있는 이들은 그 지위에는 엄청난 책임이 얹혀져 있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이 시대를 위한 엄숙한 사업을 올바로 수행하는 일과, 어떤 면으로든지 우리와 관련을 맺고 있는 영혼들을 구원하는 사업은 우리 자신의 영적 상태에 크게 좌우된다. 모든 사람은 생생한 책임 의식을 계발해야 한다. 이는 그들 자신의 현세적 복리와 영원한 운명이 그들이 품고 있는 정신에 의하여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업에 자아를 짜집어 넣게 되면, 신성한 곳에 다른 불의 제물을 드리는 것과 같다. 그러한 교역자들은 주님의 진노를 격발시킨다. 형제들이여, 그대들이 신성한 불과 평범한 불을 구별할 수 없다면 사업에서 그대들의 손을 떼라.

대표적인 사람으로 서 있는 사람들이 모두 그리스도인 신사는 아니다. 타인을 지배하려는 정신이 편만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을 권위자로 여기면서 전혀 체험적 지식도 없는 일들에 대하여 자신의 견해를 표현하고 결정을 내린다. ______에 있는 출판소와 관련된 몇 사람은 자기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직분을 벗어나서 서로 다른 이들과 말하며, 그들의 생각에 적당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지시하고 있다.

불의와 부정직

경험이 없는 이들을 유능한 재판관으로 삼아 그들 앞에 문제들을 가져옴으로 큰 불의와 심지어 부정직이 회의석에서 자행되어 왔다. 비평하기 위해 사람들의 손안에 원고들이 놓여졌지만, 그들은 이해의 눈이 너무 멀었기 때문에 자신이 취급하고 있는 주제의 영적 취지를 식별할 수 없었다. 261 더욱이 그들은 편집에 대해서는 전혀 지식이 없었다. 그들은 인쇄물을 발간하는 일에 대해서는 연구한 적도 해본 적도 없었다. 사람들은 그러한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야 할 처지이면서도 그들 손에 분별 없게 놓여진 책들과 원고들에 대하여 심판하기 위해 앉아 있다. 그들이 “나는 이런 면의 사업에는 전혀 경험이 없으며, 내 의견을 제시할 때 내 자신과 타인에게 틀림없이 부당하게 행할 것입니다. 형제들이여, 실례합니다. 타인을 지도하는 대신 내게는 나를 가르쳐 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정말 정직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의 생각에서 동떨어진 일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대해 멋대로 말했다. 결론들은 현명한 사람들의 의견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사실상 그것들은 한낱 풋내기의 의견에 불과하였다.

하나님의 이름과 능력으로 교회가 영혼들의 유익과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행동해야만 할 때가 왔다. 확고한 믿음과 신성한 사물에 대한 인식 부족은 어떤 인물을 하나님의 사업과 관련을 맺는 일로부터 제외시키는 충분한 이유로 여겨져야 한다. 마찬가지로 급한 성질, 거칠고 지배적인 정신에 탐닉하는 것도 그 소유자를 하나님의 유업에 영향을 끼치게 될 중대한 문제를 결정짓는 자리에 앉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성미가 급한 사람은 사람들의 마음을 다루는 일에 전혀 참여해서는 안 된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무한한 대가를 지불하여 사신 이들과 관련된 일들을 형성하는 일에 책임을 질 수 없다. 만일 그가 사람들을 다룰려고 한다면, 그는 그들의 영혼을 다치고 상하게 할 것이다. 이는 그에게 그리스도의 은혜로 부여되는 섬세한 접촉, 민감한 감수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 자신의 마음은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부드러워지고 정복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262 돌 같은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를 대표하여야 함

그렇게 그리스도를 그릇되게 나타내는 이들은 사업을 그릇된 모습으로 꼴 짓고 있는 것인데, 이는 그들이 그들과 관련된 모든 사람을 자기가 행하는 것처럼 행하도록 장려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영혼을 위하여, 또한 그들의 영향을 통해 위험 속에 빠진 이들을 위해, 그들은 자기 지위에서 물러나야 한다. 왜냐하면 악행자들이 자기의 두루마기를 많은 영혼들의 피로 더럽혔다는 기록이 하늘에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이들을 자포 자기하도록 했으며, 그리하여 그들은 신앙을 포기하였다. 어떤 이들은 그의 사단적 속성에 감염되었으며, 저지른 악은 감히 측량하기가 불가능하다. 진리를 통해 자신의 심령이 성화되었다는 것을 드러낸 자들만이 주님의 사업에서 책임 있는 지위에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직무가 무엇이든지간에 그리스도를 대표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굳건한 목표를 갖고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소유하고자 애써야 한다. 특별히 책임자나 협의자의 위치를 받아들인 자들은 모든 면에서 그리스도인 신사가 되어 줄 것을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타인을 취급할 때, 우리는 항상 신실해야 하며, 거칠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관련을 맺고 있는 영혼들은 주님께서 값으로 사신 소유이며, 우리는 입 밖으로 성급하고 강압적인 표현은 한마디도 내지 말아야 한다.

형제들이여, 사람들을 인간으로 다룰 것이지 그대가 원하는 대로 명령할 수 있는 종으로 다루지 말라. 거칠고 강압적인 정신에 젖어 있는 이는 모세처럼 양치기가 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참된 목자가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배워야 한다. 모세는 애굽에서 유능한 정치가요 군대 지휘관으로서의 경험을 얻었지만, 참된 위대함에 필수적인 공과들에 대해서는 배우지를 않았다. 그는 좀더 비천한 의무에 대한 경험을 쌓을 필요가 있었는데, 이는 그로 하여금 모든 생물을 온유하게 관리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263 이드로의 양떼를 치면서 그는 양들을 향해 동정심을 나타내게 되었으며, 이들 하나님의 피조물을 따뜻하게 돌보며 지키는 법에 대해 배웠다. 비록 학대에 대하여 양들이 결코 말로 불평할 수는 없겠지만 그 양들의 태도는 많은 것을 보여 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계신다. 이 비천한 지위에서 하나님을 위해 일함으로 모세는 이스라엘을 위해 온유한 목자가 되는 법을 배웠다.

하나님을 의지함

주님께서는 우리가 다니엘의 체험을 통해서도 교훈을 얻기를 원하신다. 이 신실한 히브리인처럼 승리자가 될 수 있는 은혜를 얻으며 자기 일을 힘차게 능률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을 의지했더라면, 능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사람들이 많이 있다. 다니엘은 원로들과 청년들 모두에게 지극히 완벽하게 예의를 나타냈다. 그는 하나님을 위한 증인으로 우뚝 섰으며, 하늘을 우러러 말과 행실에 부끄러움이 없는 길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했다. 다니엘은 왕의 상의 진미를 먹으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식욕 속에 빠지지 않으며, 자기가 기뻐하는 대로 먹고 마시려는 결심을 나타내지 않았다. 반항적인 말 한마디 없이 그는 하나님께 그 문제를 맡겼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으며, 열렬히 기도한 후 일어났을 때는 결심이 서 있었다. 참된 용기와 그리스도인 예절로서 다니엘은 자기를 책임진 관리에게 문제를 제시하여 단순한 식사를 허락해 주기를 요청했다. 이 청년들은 자신의 신앙적인 원칙이 위기에 처해 있음을 느꼈으며, 그들이 사랑하고 섬긴 하나님께 의지하였다. 그들의 요청은 허락이 되었는데, 이는 그들이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총애를 받은 까닭이다.

모든 책임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학교에 입학하여 위대하신 교사께서 주시는 교훈에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264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9). 우리는 품성 속에서 그릇된 특질을 한 가지라도 드러내는 것에 대해 전혀 핑계할 수 없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 4:6). 타인을 취급할 때, 고쳐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을 보거나 듣게 될 때 그것이 무엇이든지간에 먼저 주님께 지혜와 은총을 구하도록 하라. 신실하기 위해 애쓸 때에 그대는 무례한 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분께 그리스도의 온유함을 그대에게 주시기를 구하라. 그러면 그대는 그대의 의무에 진실되고, 그대가 책임진 위치에 진실되고, 하나님께 진실된 자가 되어 선척적·후천적으로 악을 향해 기울어지는 성향을 정복하는 신실한 청지기가 될 것이다.

성심 성의를 다하는 그리스도인 외에는 아무도 완전한 신사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영혼 속에 그리스도께서 거하시면 그분의 정신이 태도와 말과 행동 속에 나타나게 될 것이다. 심령 속에 간직한 온유와 사랑은 자기 부정과 진정한 예의 속에 나타날 것이다. 그러한 교역자들은 세상의 빛이 될 것이다.

더욱 깊은 연구를 위해 참고할 서적: 복음 교역자, 36-39.414-419(영문); 교회증언 5권, 553-555.506.586.587.41.42.88.732-740.21.

영적 분별력의 필요*

대양의 “알라메다”호 선상에서 1891.11.17.

구속은 신적 본성에 속한다. 멸망시키지 아니하고 재건하는 것은 하나님의 대권에 속한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창세 전에 죽음에 내어 주신 바 되었다. 죄의 존재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갈바리에서 반사되는 빛 안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쓰라린 마음으로 죄인된 자신의 모습에 대해 혐오하기 전까지는 그 어떤 영혼도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 지를 알 수 없다. 265 그의 영혼이 죄를 용서하시는 구주를 크게 갈급해 할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은혜롭고, 자비와 용서와 사랑이 충만하고, 오래 참으시며 인내하시는 분으로 나타나게 된다. 만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한 종이라면, 교회의 일원으로서 우리 각 개인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일꾼이다. 원수에 의해 하나가 상처받고, 다치고, 잘못을 범하게 될 때, 주인께 신실하고 진실된 자로서, 또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일꾼으로서 우리는 바로 옆에 놓여진 선교 사업을 수행하여야 하며, 파괴시키고 멸망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치유하기 위해 일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있는 소망은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존재한다. 우리에게는 한 분 구주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 기관들 속에 잘못을 범하고 있는 이와 관계된 사람이 있을 경우에 그는 마치 자기에게는 흠이 전혀 없는 것처럼 저주하고 정죄하며 멸망시키는 역할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개선하고, 회복하고, 치유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사업이다. 이러한 치유 과정은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는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자체적으로, 본질적으로 사랑이시다. 그분께서는 손상처럼 보이는 것을 최대한도로 이용하시며, 우리의 원수들에게 최악의 것을 드러내고 우리의 약점을 폭로하여 사단에게 승리할 수 있는 기회를 전혀 주지 않으신다. 세속적인 것은 교회 안에 도입되지 말아야 하며, 교회와 결혼하여 하나로 굳게 결속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길을 통해서 교회는 정말로 부패하게 될 것인데,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것처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될 것이다.

세속적인 인물들과 연합함으로 이르러 오는 영향

세상과 연합한다면, 우리 기관은 허울만 있고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화하게 될 것이다. 266 책임 있는 지위에 있는 이들이 끌어들여 자리에 앉혀 놓은 이 세속적인 인물들이 그 교육과 지시와 공적 지위에 있어서 존경받아야 할 인물로 여겨지고 있는데, 그들은 분명히 흑암의 영과 권세에 의해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그분을 섬기지 않는 자 사이의 구별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알곡만을 심은 것으로 생각했지만 책임진 이들이 보고서 실망을 금할 수밖에 없었던 밭에 대한 비유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셨다. 그들은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라고 질문했다. 포도원 주인은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라고 대답했다.

형제를 참소하는 자

전원 건강 요양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것을 나는 보았다. 내게는 경고의 기별이 있다. 나는 열렬하게 말했으며, 세상과의 사귐과 사랑의 위험성에 대해 제시하는 동안 주님께서 내게 당신의 성령을 베풀어 주셨음을 안다. 세속적인 인물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이들에 대하여 비평하고 비난하기 위해 끊임없이 엿보고 있다. 이런 모습은 공언하는 그리스도인들의 흠을 잡는 불평으로 그 실체를 드러낼 것인데,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의해 변화된 경험이 전혀 없다. 그들은 신자들에게 치명적인 원수이다. 그들은 넷째 계명의 안식일을 멸시한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기 위해 애쓰는 이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나타내 보일 수 있다면, 사단이 그 화살을 쏘아댄 것이며, 이제 무엇을 하겠는가? 그는 자신의 비난하는 권세를 나타내 보였다. 그러나 만일 공언하는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하여 진실되게 선다면, 또한 단지 듣는 사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을 실천하는 자가 된다면, 그 잔인한 공격도 거의 해를 끼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불평의 대상자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묶인 바 되어 교회의 교제 속에서 그리스도에게 연합한 자들 사이에 사랑과 존경과 충성을 나타내는 이들이다. 267 흠을 발견하는 인물들과 연합하고, 형제를 참소하는 자가 되고, 그들이 그대의 문간에 쌓아 놓은 비난에 마음을 쏟는 것은 그대 자신을 원수의 손아귀에 빠뜨려 그의 사업을 성공시킴으로써 원수의 사업에 후원하는 행동이다.

그리스도께서 미움을 받으신 이유

생명과 영광의 주 예수께서는 그분이 제시하신 원칙들이 유대인들의 사상과 야망에 찬 목적에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악의를 만족시키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을 나는 청중 앞에 제시하였다. 그분께서는 모든 거짓, 주도권을 잡기 위한 모든 음험한 책동과 모든 거룩하지 못한 행습을 정죄하셨다. 빌라도와 헤롯은 그리스도를 못 박는 일을 통해 친구가 되었다. 그들은 빌라도가 무죄하다고 선언하신 분에 대한 유대인들의 적개심을 실행할 수 있게 함으로 그들을 즐겁게 했다. 나는 그들에게 유다를 제시했는데, 그는 돈 값으로 자기 주님을 배반했다. 베드로, 그는 재판정에서 그분께서 굴욕을 당하실 때 그분을 부인하였다. 몇 시간 전만해도 그는 감옥이든 죽음이든 주님과 동행하겠다는 말로 매우 단호하게 자기 주님께 장담했었다. 닭이 울기 전에 당신을 세 번 부인할 것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너무 자만심에 차 있었던 나머지 그리스도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사실로써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얼마나 자기 자신을 몰랐던가! 그의 주님에 대한 충성심을 시험하는 환경 속에 얼마나 신속히 빠져들어갔던가! 그는 열렬한 기도로 그분과 함께 깨어 있었어야 할 바로 그 시간에 예수님을 부인하였다. 재판정에서 그 사람의 제자 중 하나라는 비난을 받게 되었을 때, 그는 부인했다. 세번째 비난을 당하게 되자, 그는 저주와 맹세로 자기의 부인을 강조하였다.

진정한 회심의 효과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말씀하셨다. 268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보여 주신 서글픔과 슬픔의 표정은 절망적인 표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기 주를 부인한 베드로의 마음을 깨뜨렸다.

그러나 베드로는 회심했으며, 그 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는 관원들 앞에서 담대하게 예수님을 위해 선언했으며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행 3:14.15)라는 말로 관원들을 책망했다. 그 때에 회심한 베드로는 회심하기 이전의 자만과 과장하는 모습의 자신과는 전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다. 나는 그들 앞에 세상, 곧 그리스도의 원수들이 그리스도의 기별자를 향해 외쳤던 목소리를 제시했다.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행 5:28). 이러한 협박이 성공을 거두었는가? 이것 때문에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겁장이가 되었는가?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기별을 전파하였다. 그들은 감옥에 갇혔으나 하나님께서 당신의 천사를 보내어 그들을 풀어 주셨다. 주님의 천사가 밤중에 옥문을 열고 그들을 이끌어 낸 후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행 5:20)고 했다. 하늘의 천사로부터 흘러 나온 이 목소리는 당국자들의 목소리와 정면으로 반대되었다. 그들은 어느 목소리에 순종해야만 했을까?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저희가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행 5:29-33). 그 때 율법 박사 가말리엘이 사도들을 위해 호소했으며, 그의 말을 사람들은 따르게 되었다. 그렇다. 이것은 주님께서 내게 백성들에게 말하라고 주신 말씀 중 일부분이다.

잘못을 범한 이들을 어떻게 취급할 것인가

269 내게 주신 말씀은 백성들에게 필요한 그런 성격의 말씀이라는 것을 나는 알았으며, 만일 그들이 들으려고 한다면 그들에게 유익을 끼칠 것이다. 나는 우리와 연합한 교인들 중에 잘못을 범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에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지에 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들은 주님의 원수들의 말을 듣고 그분의 자녀들을 거스려 행동하도록 그들의 마음이 영향을 받게 해서는 안 된다. 불평과 불만과 비난이 발해질 때, 그들은 불평을 발하는 이들을 향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에 관해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연구해야 한다. 그 문제를 그와 그대 단둘이서 이야기하고, 만일 그가 들으려고 하지 않으면 두세 명의 다른 사람을 데리고 가라. 그들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그것을 말하라.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세상은 이 사업에 신자들과 더불어서 관계할 것이 전혀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상호 관계와 처신 가운데서 그들을 붙들어매고 있는 동기와 원칙들을 식별할 수 없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군대의 진실되고 충성스러운 군인이어야 한다. 그분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지도자 되신 분과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원수들과 막역한 친구가 되어서 그들의 움직임이나 그들의 행동 노선에서 무엇을 행하려고 하는지에 관한 비밀을 털어 놓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신성한 위임에 대한 배반이며, 원수에게 온갖 유익을 끼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의논한 것은 무리 속에 간직해 두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에 대해 무지한 가운데 있는데, 그리스도의 원수들이 그들의 비밀에 친숙해져서는 안 된다. 주님의 비밀이 그분을 두려워하는 자들과 함께 한다.

270 세상은 경건의 대적이다. 사단의 세력은 세상을 통해서 끊임없이 역사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면서도 세상과 밀접한 교제 속에서 연합한 이들은 정신과 목적과 일하는 원칙에 있어서 너무나 똑같이 하나가 되었기에 하나님을 섬기는 이와 세상을 섬기는 이를 식별해 낼 수 없다. 원수는 세상을 정면에 내세우고,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준행하려고 노력하는 자들보다도 세상이 월등한 것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 끊임없이 일하고 있다. 세속적인 인물들로부터 흘러나오는 칭송과 아첨의 말은 달콤한 떡조각처럼 받아들여지지만, 이런 종류의 음식을 사랑하는 이들의 판단은 그들이 이런 면에서 보여 주고 있는 약점과 일치한다. 그들의 영적인 생애는 그들이 먹는 물질과 같은 성격의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의 그리스도인적 체험은 주로 아첨과 인간적 칭찬에 의존되어 있다.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과 사랑이 그들의 체험 속에 짜여져 있지 않다.

하나님의 영에 관해 무엇인가 알았던 자가 세상의 품안에 완전히 떨어져 그 목소리에 휩쓸려가 영향을 받게 되며, 세상의 총애에 의지하여 능력과 성공을 구하는 꼴을 보는 것은 얼마나 비참하고 슬픈 일인가! 그러한 이들은 그리스도로부터 얼마나 현저하게 멀리 떨어져 있는가! 그들은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으며, 헛된 자랑이 가득하고, 영성적인 면에 있어서는 얼마나 근시안적인지 모른다! 하나님의 자녀, 왕국의 후사인 자들과 악한 자의 자녀, 불순종의 자녀요, 하나님 원수인 자들을 구별해내는 참된 분별력이 그들에게 얼마나 부족한지 모른다!

두 부류의 사람

이 세상에는 오직 두 부류만이 존재한다. 한 부류는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자, 주님을 찾아 구하며 그분의 뜻을 행하고, 자기 영혼과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기와 관련된 모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일하는 자이며, 다른 부류는 불순종의 자녀이다. 271 이 세상에는 단 두 부류밖에 없다. 그러면 알고 계시는 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보라.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저희는 세상에 속한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요일 4:4.5). 영혼들이 기만을 당하고 있다.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과 사랑이 지배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세상이 그들의 주인이며, 그들은 그 기만적이고 알랑거리는 신기루를 좇고 있다.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세상을 위해서 당신의 생명을 버리신 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라. 그분께서는 인간이 말하는 것처럼 결코 말씀하지 않으셨다. 요한복음 15장 전체는 지극히 중요한 교훈을 간직하고 있다. 그것을 읽으라. 그 말씀에 순종하라. 또다시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라.

신자와 불신자와의 교제

우리의 어느 기관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든지 하나님과 인간의 원수로 더불어 휴전 협정을 맺지 말아야 한다. 세상을 향한 교회의 의무는 그들의 사상에까지 내려가서 그들의 의견과 제안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종 바울을 통해서 주신 그리스도의 말씀에 유의하는 것이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고후 6:14.15). 이것은 특별히 불신자와의 결혼을 의미하고 있으나 그 범위는 이것을 훨씬 넘어선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우리의 기구들, 우리의 건강 기관, 우리의 대학들, 우리의 출판소를 포괄한다.

진상이 올바른 빛 안에서 우리 앞에 제시되어 있다. 다음과 같은 질문이 발해지고 있다. 272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후 6:16.17). 이것은 무슨 의미인가?-이것은 제안들, 불순종의 자식들 중에서의 악한 역사(役事)이다. 그대는 그 어떤 경우에도 불신자의 정신과 영향으로 오염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과 연합하거나 한 묶음으로 묶여지는 것에 대해 두려워 하라. 주님과 관련된 일을 하나님과 관련이 없거나 하나님의 진리를 사랑하는 이들에 대해 호의를 갖고 있지 않는 이들로 더불어 내통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도록 하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후 6:17.18).

나는 우리 기관이 신자들과 세속적인 사람들을 혼합하는 것에 대해 경고의 음성을 높이고 있다. 우리는 위험 신호를 울려야 한다. 만일 우리 기관에서 책임 있는 자리에 사람들이 앉게 된다면, 그들은 교육자이다. 다른 이들은 그들을 쳐다보고 지시를 받게 되는데, 바로 이것이 부주의한 자들에게 함정이 되는 것이다. 그들의 사상은 의와 진리와 관련해서 혼란 속에 빠지고 만다. 그들은 진리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 자들이 진리에 대해 조소하며 깔보듯이 말하는 것을 듣게 되는데, 사실상 그 진리는 굳건하고도 신성하게 꼭 붙들어야 하는 것이다.

금요일의 일과는 주님의 안식일과 관련해서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신성한 시간을 범하도록 일을 연장시키기 위해 그러한 불순종의 자식들과 함께 활동하는 사단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시 아래 있는 이들에게 안식일에 일을 하도록 명령한다. 그리고 그들은 기뻐하고 사단은 승리를 거둔다.

273 최고의 책임을 진 인물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그분을 섬기지 않는 자를 전혀 구별하지 않을 때, 그들은 자신의 눈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님을 증명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온몸은 흑암에 싸인다. 당국자들이 세속적인 사람들의 정신을 지나치게 많이 섞음으로 이들 불신자들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불평의 말이 사실과 진리로 받아들여지게 될 때, 그들은 그들이 어떤 정신의 소유자인지를 알지 못한다. 그들이 이러한 정신을 조장하고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 불평할 때, 그들은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을 과소 평가하고 그들을 치욕 가운데 빠뜨리기 위해 원수의 편에 서서 일을 하며, 악행을 저지르고 있는 악인의 손을 강하게 하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 주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를 참소하는 자들로 그분의 선택하신 이들을 대항하는 계획을 제멋대로 추진하도록 내버려둘 때, 그들은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분과 더불어 계획을 세우고 있지 않다.

실수한 자들을 공정하게 대하라

주님의 자녀들 중 어느 한 사람이 잘못을 범하게 될 때,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영적인 사물을 분별하게 된다면, 그들은 자신의 직책이 자기 편에서 신성한 책임을 저버리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음을 이해할 것이며, 하나님의 일을 원수의 손안에 팔아 넘기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신뢰해야만 할 인물들에게 침묵하지 않을 것이며, 조용하고 은밀하게 활동하여 그들의 계획들을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에 대해 전혀 호의를 갖고 있지 않는 인물들에게 털어 놓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의 건강 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어떤 교역자든지 불신자나 신자에게 불평과 비난을 듣게 될 때, 우리 주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다음의 특별한 지시 사항을 모든 사업의 방침으로 삼도록 하자. 274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 7:1.2).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사람에게 가서 그와 더불어 이야기하라. 이중적이고 위선적으로 일하지 말고, 날마다 매우 친밀하게 그들을 만나라. 그와 동시에, 그들이 잘못 가운데 있다면, 그들을 회복시키고 치유하기 위하여 믿음 가운데 있는 형제 자매들과는 일언 반구 나눔 없이 불신자들이 기관에서 제거하기를 원하는 어떤 인물을 뽑아내 버리고, 무너뜨리고, 제거하기 위해서 공작하고 있는 사단의 대리자들과 완전히 일치하여 일하는 자들을 대항할 계획을 세우라. 만일 그들이 잘못 가운데 있지 않다면, 옳은 자를 옹호하고 해당되는 곳, 곧 악행을 도모하는 자들에게 견책을 가하라. 이는 사단이 그 배후에 있기 때문이다. 주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꾸짖으시면서, 그들을 드러나지 않고 시야에서 숨겨져 있지만 썩어 문드러진 무덤에 비유하셨다. 주님께서는 모든 기만, 비밀주의, 간계를 미워하신다. 이것은 사단의 역사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공개적이고 솔직하다. 주님의 원수의 증언에 힘입어 하나님의 자녀를 대항하며, 사단의 방식 곧 자기를 숨기고 주님의 원수와 완전히 일치해서 암시하고, 부추기고, 계획하는 방식을 좇아 아무도 일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을 대항하는 은밀하고 비겁한 이따위 일에 대해 하늘의 우주는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교인들이 잘못을 저지를 것이며, 가끔 실수를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하시는 것처럼 친절하고도 부드럽게 취급되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책망이 하나님의 사업을 속임수로 행하는 이들 위에 머물러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친구라고 공언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을 거스려서 은밀하게 암암리에 일하고 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갈 6:1).

275 형제들이여, 여기 우리의 사업이 있는데 그 일을 성취하지 않겠는가? 이 일은 너무 적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진실된 증인의 말씀이 절실하게 교회에 와 닿는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4.5).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슥 3:1-3). 이것은 사단의 모습이다. 그는 자신의 기만과 술수로 이들 영혼을 속여 왔다. 이제 이들 영혼은 하나님 앞에서 회개했으며, 그들의 이름에는 용서가 기록되었다. 사단은 그들에 대해 죄를 참소하며, 그가 범하도록 이끈 범죄로 인하여 그들을 자기 뜻대로 주관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신을 믿고 당신의 의를 의뢰하는 영혼들을 지극히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동정으로 바라보신다.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내가 말하되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슥 3:4.5).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대항하여 사단의 말을 발해야 하겠는가? 우리는 하나님과 그분의 거룩하신 사업에 대하여 꿋꿋하고 진실된 그리스도인으로서 행동하자. 276 불순종의 자녀들을 통하여 은밀하게 기만적으로 역사하는 사단의 간계를 신속하게 파악하자.

우리의 말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창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니라”(말 3:13-15).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원수에 의해 눈이 멀어 버린 헌신하지 않은 자들의 말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길과 역사를 식별할 수 없다. 이제 그 반대 계층의 사람들이 제시된다.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이 말은 형제를 헐뜯거나 하나님께 불평하는 말이 아니라 진실된 마음으로부터 흘러 나온 말이요, 그 속에 기만이나 은밀한 행동이나 궤사가 전혀 담겨지지 않은 말이었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말 3:16-18).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능력을 얻음

하나님의 자녀들과 세상은 결코 짝할 수 없다는 것을 볼 수 있는 영적 안목을 주시사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축복해 주시기를 기원한다. 277 세상과 친구가 되고자 하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원수이다. 각자가 흑암의 자녀들에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여 줌으로써 그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그리스도와 더불어 일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지나친 동정심을 세속적인 사람들에게 보여 줌으로 그들의 영향력이 하나님의 선택된 자들을 약화시키고 그들에게 불의를 감행하려는 꾀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정도에까지 이르게 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식으로 역사하지 않으신다. 완전하고도 중분한 연합 속에 힘이 있다. 숫자 속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철저한 신뢰와 연합 속에서 한 사람이 천 명을 쫓고, 두 사람이 만 명을 도망치게 할 수 있다. 우리는 세상의 친구들과 더불어 거룩하지 못한 유대를 형성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모든 연합에 대해서 저주를 선언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진리를 위해서, 그리고 의를 위해서 굳건하게 서야 한다. 이미 우리는 신자들이 불신자들과 연합함으로 말미암은 끔찍스러운 결과들을 보고 있다. 그 결과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이들에게만 속해야 할 신임이 불신자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사단의 교활한 간계에 의하여 더럽혀지거나 오염되지 않은 채로 서 있어야 할 사업 위에 이미 흑암의 권세는 그 형체와 기록을 남겼다. 우리는 세상의 요구와 세상의 미끼에 의한 사회적 매력에 대해 경고의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다. 깨끗함을 유지하라.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하나님의 백성을 지배하기 위하여 세상의 지시와 제안을 그들에게 하지 말라. 그 지혜가 위로부터가 아니라 음부로부터 난 이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피상적인 경건의 인물들이 후원을 받고 명성을 얻고자 하는 욕망으로 지극히 신령한 사업을 불신자들의 손안에 팔아 넘기고 있다.

어떠한 부정한 행습에라도 손을 대거나 시인함으로 돈을 벌지 말라. 그리스도의 은혜가 심령 속에 임하도록 하며, 만일 교역자가 소수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기관 안에서 그들과 더불어 일하실 수 있다면, 그들은 승리할 것이다. 278 결코 기만적인 세력이 작용해서는 안 된다. 이는 그것이 부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더럽혀진 손이 전혀 존재해서는 안 된다. 깨끗한 손과 정결한 심령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것이다. “지존 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사 57:15).

더욱 깊은 연구를 위해 참고할 서적: 교회증언 5권, 400-402.4권, 309-312.43-55.617-619(영문); 6권, 17.148(영문); 시대의 소망, 302.313(영문).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우리에게 임해야 한다. 우리는 높은 곳으로부터의 거룩한 기름부음을 필요로 한다. 인간이 제아무리 지성과 학식을 구비했다고 할지라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굳건하게 붙잡지 않는 한 가르칠 자격을 갖추지 못한다. 하늘과 연결된 이는 그리스도의 사업들을 행할 것이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그는 인간을 감동시킬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그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을 찾게 될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능력이 인간의 능력과 결합하지 않는다면, 나는 아무리 위대한 인물이 행하는 그 어떤 일에도 조금도 관여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사업 속에는 성령이 부족하다. ― 리뷰 앤드 헤랄드, 189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