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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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1 우리는 우리가 참전하고 있는 대쟁투에 관련된 문제들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욱 분명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진 진리의 가치와 대기만자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을 거기에서 떠나가도록 허용하는 위험을 더욱 충분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구속을 위하여 요구된 무한한 희생의 가치는 죄가 무서운 악이라는 사실을 나타내 준다. 죄로 말미암아 사람의 모든 육체적 조직에는 이상이 생기고, 정신은 왜곡되고, 상상력은 부패되었다. 죄는 사람의 능력을 퇴화시켰다. 밖에서 오는 유혹은 마음 속에서 공명을 얻고, 발길은 부지 중에 죄악으로 향하게 된다.

우리를 위한 희생이 완전하였던 것처럼 죄의 더러움에서 회복되는 것도 완전하여야 한다. 하나의 악행도 하나님의 율법은 면제해 주지 않을 것이며, 어떠한 불의도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복음의 윤리는 하나님의 품성의 완전성만을 표준으로 인정한다. 그리스도의 생애는 율법의 모든 교훈을 완전히 성취하였다. 452 그분께서는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켰다고 말씀하셨다(요 15:10). 그분의 생애는 순종과 봉사에 있어서 우리의 모본이다. 하나님께서만이 심령을 새롭게 하실 수 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명령을 받고 있다(빌 2:12, 13).

우리의 생각을 요구하는 사업

연약하고 간헐적인 노력으로 잘못이 바로 잡히거나 행동의 개혁이 이루어질 수 없다. 품성을 형성하는 일은 하루나 일 년의 과업이 아니고 평생의 과업이다. 자아를 정복하고, 성결과 하늘을 얻기 위한 싸움은 필생의 싸움이다. 끊임없는 노력과 계속적인 활동이 없으면, 거룩한 생애에서의 진보가 있을 수 없고 승리자의 면류관도 얻을 수 없다.

사람이 높은 상태에서 타락했다는 가장 강한 증거는 그 상태를 다시 회복하는데 그처럼 많은 희생이 요구된다는 사실이 입증해 준다. 돌아가는 길은 한 치, 한 치씩 옮길 때마다, 한 시간 한 시간씩 경과할 때마다 무서운 싸움을 거듭함으로써만 갈 수 있다. 조급하고 주의성 없는 행동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한 순간에 우리 자신을 악의 세력 아래 둘 수 있다. 그러나 그 악의 사슬을 끊어 버리고 성결한 생애에 들어가는데는 순간 이상이 요구된다. 목적을 설정하고 일을 시작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일을 성취시키는데는 노력과 시간과 인내와 오래 참음과 희생이 요구될 것이다.

우리는 충동에 의하여 행동하도록 우리 자신을 허락할 수 없다. 우리는 한 순간이라도 방심할 수 없다. 무수한 유혹에 둘러싸여 있으므로 우리는 굳게 저항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자신이 정복당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사업을 마치지 못한 채로 생애의 끝을 맞게 될 것인가. 그렇게 되면 영원히 잃어버린 바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의 생애는 자아와 더불어 끊임없이 싸우는 생애였다. 그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말하였다(고전 15:31). 날마다 그의 뜻과 욕망은 하나님의 뜻과 의무에 반대되었다. 453 그러나 자신의 본성을 십자가에 못박는 일이 될지라도, 그는 자신의 성향대로 하는 대신에 하나님의 뜻을 행하였다.

그는 자신의 투쟁의 생애가 마칠 무렵, 그 투쟁과 승리를 회고하면서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라고 말할 수 있었다(딤후 4:7, 8).

그리스도인 생애는 싸움과 전진의 생애이다. 이 싸움에는 면제가 없다. 계속적이고 끈기 있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끊임없는 노력을 통하여 우리는 사단의 유혹을 승리하게 된다. 그리스도인 성실성은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구해야 하고 확고부동한 목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기 자신을 위하여 엄격하고 불굴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향상하지 못할 것이다. 모든 사람은 그들 자신을 위하여 이 싸움에 참전해야 한다. 다른 어떤 사람도 우리의 싸움을 대신 싸워 줄 수 없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이 싸움을 감당할 책임이 있다. 비록 노아, 욥, 다니엘이 이 땅에 살아 있을지라도 그들은 그들의 의로써 그 아들도 딸도 구원할 수 없다.

숙달해야 할 과학

숙달해야 할 그리스도인 과학, 하늘이 땅보다 높은 것같이 어떤 인간적 과학보다 훨씬 더 깊고, 넓고, 높은 과학이 있다. 마음은 연단받고, 교육받고, 훈련받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천성적인 인간의 경향과 일치되지 않는 방면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봉사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악으로 기울어지는 선천적 혹은 후천적 성향은 극복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우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때로는 필생의 교육과 훈련을 버리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안에서 확고해 지도록 교육을 받아야 한다. 454 우리는 유혹을 저항할 수 있도록 생각하는 습관을 형성해야 한다. 우리는 위를 쳐다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원칙, 곧 하늘처럼 높고 영원을 포함한 원칙을 우리는 일상생활과 관련시켜서 이해해야 한다. 모든 행동, 모든 말, 모든 생각은 이 원칙과 일치되어야 한다. 모든 것은 그리스도와 조화를 이루고, 그분께 굴복되어야 한다.

성령의 귀중한 은사들은 한 순간에 계발되지 않는다. 용기, 견인불발, 온유, 믿음,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확고하게 신뢰하는 일 등은 여러 해 동안의 경험을 통하여 얻어진다. 옳은 일을 위하여 거룩한 노력을 기울이고 확고하게 붙드는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들의 운명을 결정하게 된다.

낭비할 시간이 없음

우리는 낭비할 시간이 없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의 시기가 얼마나 빨리 끝나게 될 것인지 모른다. 가장 오래 살지라도, 우리는 이 세상에서 다만 짤막한 일생을 지낼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사망의 화살이 얼마나 빨리 우리의 심장을 꿰뚫을 것인지 알지 못한다. 우리는 얼마나 빨리 세상과 세상에 속한 모든 흥미를 버리라는 부름을 받을지 모른다. 영원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휘장은 바야흐로 걷히어지려 하고 있다. 불과 몇 해만 지나가면, 살아 있는 모든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이 주어질 것이다.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계 22:11).

우리는 준비를 갖추고 있는가? 우리는 하늘의 통치자시요 입법자이신 하나님과, 또한 그분께서 당신의 대표자로 세상에 보내신 예수그리스도를 잘 알고 있는가? 우리의 일생을 마칠 때, 우리는 우리의 모본되시는 그리스도께서 하셨던 것처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하여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요 17:4-6).

하나님의 천사들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과 세속적인 사물에 애착을 갖지 않게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하자.

455 해이한 생각으로 지내 온 정신은 바뀌어질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 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3-16).

생각은 하나님께 집중되어야 한다. 우리는 육신적인 마음의 악한 성향들을 극복하기 위하여 열렬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의 노력과, 우리의 극기와 인내는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대상의 무한한 가치와 정비례해야 한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것처럼 승리함으로써만 우리는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될 것이다.

자아를 버려야 할 필요성

사람에게 있는 큰 위험은 자기에게 기만당하고 자기 만족에 도취되어 그의 능력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떠나는 것이다. 우리의 육신적 성향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교정되지 않으면, 그 속에 도덕적 죽음의 씨앗을 간직하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과 생명적인 관계를 맺지 않으면, 우리는 방종과 자기 본위의 마음과 죄의 유혹 등의 부정한 세력들을 저항할 수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도움을 받기 위하여 우리의 필요를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올바르게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자만을 구원하실 수 있다. 우리가 전혀 속절없이 우리의 상태를 깨닫고 자신을 의지하는 모든 마음을 버릴 때에만,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붙잡게 될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인 생애의 초기에서만 자아를 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하늘을 향하여 옮겨놓은 매 발자욱마다 그 일은 새롭게 반복되어야 한다. 우리의 모든 선행은 우리 자신의 외부에서 오는 힘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끊임없이 하나님을 찾아가고, 꾸준하고 열렬하게 죄를 고백하고, 그분 앞에 심령을 겸비하게 할 필요가 있다. 위험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456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느끼고 믿음의 손으로 전능하신 우리의 구원자를 굳게 붙잡을 때에만 우리에게 안전이 있다.

참 지식의 근원이 되시는 그리스도

우리는 주의를 끄는 수 많은 화제에서 돌아서야 한다. 시간을 허비하게 하고 의문을 일으키는 문제들이 있다. 그러나 끝에 가서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 최고의 관심사가 면밀한 주의력과 정력을 요구하고 있지마는 너무나 흔히 비교적 무의미한 것에 그것들이 바쳐지고 있다.

새로운 이론을 받아들일 때 그 이론 자체가 영혼에게 새 생명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 중요한 사실과 이론에 정통할지라도 그 자체가 실제적으로 이용되지 않으면 별반 가치가 없다. 우리는 영적 생활을 길러 주고 활기 있게 해 주는 양식을 우리의 심령에 공급해 줄 책임을 느낄 필요가 있다.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 은을 구하는 것같이 그것을 구하며 … 감추인 보배를 찾는 것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 그런즉 네가 공의와 공평과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 곧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에 즐겁게 될 것이요 근신이 너를 지키며 명철이 너를 보호하여”

“지혜는 그 얻는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잠언 2장 2-11절, 3장 18절

우리가 연구해야 할 문제는 “무엇이 진리, 곧 마음에 간직하고, 사랑하고, 높이고, 순종해야 할 진리인가”라는 문제이다. 과학에 몰두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발견하고자 한 그들의 노력에서 실패하고 실망해 왔다. 이 시점에서 그들이 질문해야 할 것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해 줄 수 있는 진리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457 “너희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것은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그대는 그분을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는가? 그분께서는 당신을 영접해 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의 마음 속에 특별한 일을 이루어 주시는 방법으로써 그들에게 하나님을 나타내셨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마음 속에서도 그와 같이 일하기를 바라신다. 너무 지나치게 이론에 사로잡힌 나머지 구주의 모본에 대한 산 능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겸손하고, 자아를 부정하는 일꾼이신 그분을 보지 못한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그분의 임재의 새로운 계시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분의 자아부정(自我否定)과 자아희생의 모본을 더욱 가까이 따라갈 필요가 있다.

우리는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고 기록할 당시에 가졌던 그 경험이 필요하다.

품성 속에 나타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땅과 하늘에서 평가되는 어떤 것보다 더욱 고상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최고의 교육이다. 그것이 하늘 도성의 문을 여는 열쇠이다. 그리스도를 옷 입은 모든 사람이 이 지식을 소유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