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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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가난한 사람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일에 있어서 할 수 있는 일을 다한 후에도 동정과 보호를 요구하는 과부와 고아와 나이 많은 사람과 속수무책인 사람과 병자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런 사람들을 결코 등한히 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청지기로 삼으신 모든 사람들의 자비와 사랑과 친절한 보호를 받도록 위탁하신 사람들이다.

믿음의 가정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 6:10).

특별한 의미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교회에 교인들 중 가난한 사람들을 돌볼 의무를 맡기셨다. 그분께서는 모든 교회 안에 당신의 가난한 사람들이 있도록 허락하신다. 그들은 언제나 우리들과 함께 있어야 하며, 하나님께서는 교인들에게 그들을 돌볼 개인적 책임을 맡기신다.

한 가정의 가족들이 병자를 돌봐 주고, 약한 자를 도와 주고, 무식한 자를 가르쳐 주고, 경험없는 자를 단련시켜 줌으로 서로 보호하는 것처럼 “믿음의 가정”에서도 가난하고 속수무책인 사람들을 돌봐 주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을 생각하는 일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된다.

과부와 고아들

202 과부와 고아들은 주님의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다.

“그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

“네 고아들을 남겨 두라 내가 그들을 살려 두리라 네 과부들은 나를 의지할 것이니라.”(시 68:5, 사 54:5, 렘 49:11)

많은 아버지들은 사랑하는 가족들과 헤어지라는 부름을 받을 때, 그들을 돌봐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죽음의 안식에 들어갔다. 주님께서는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주시거나 까마귀를 시켜 음식을 가져 오는 이적을 행하심으로써가 아니고 사람들의 마음에서 이기심을 제거해 버리고 그리스도와 같은 사랑의 샘물이 터져 나오게 하는 이적을 행하심으로 과부와 고아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신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고통당하는 사람들과 사별의 슬픔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귀중한 위탁물로 맡겨 주신다. 그들은 우리의 동정을 가장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생활의 이기(利器)들을 갖추고 있는 집들, 풍성한 수확물로 가득찬 저장소와 곡물창고들, 직조물을 저장해 둔 창고들, 금과 은을 넣어 둔 저장소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생계의 수단을 마련하셨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자비의 통로가 되도록 요구하신다.

203 아버지 없는 자녀들을 가진 많은 홀어머니들은 이중의 짐을 지고 용감하게 투쟁하고 있다. 그들은 때때로 그와 함께 있는 어린 것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기 위하여 자신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수고를 하고 있다. 그에게는 그들을 훈육하고 교훈할 시간이 별로 없으며, 그들의 생애를 밝혀 줄 감화력을 그들에게 미칠 기회가 별로 없다. 그는 격려와 동정과 실제적 도움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보호에 필요한 것을 할 수 있는 대로 채워 주도록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초연한 입장에 서서 그들의 실수나 그들이 일으킬 수도 있는 문제들에 관하여 비난하는 대신에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그들을 도와 주라. 걱정에 눌려 있는 어머니를 도와 주기 위하여 노력하라. 그의 짐을 가볍게 해 주라.* 그런데 부모의 지도와 그리스도인 가정의 부드러운 감화를 완전히 박탈당한 아이들이 수 없이 많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마음과 가정을 그처럼 속절없는 아이들을 향하여 열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개인의 의무로 그들에게 맡겨 주신 사업은 어떤 자선기관(慈善機關)에 넘겨지거나 세상의 자선사업에 기회를 주기 위하여 남겨져서는 안된다. 만일 그 아이들에게 그들을 돌봐 줄 친척이 없을 경우에는 교인들이 그들을 위하여 집을 제공해야 한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가족들과 반드시 연합하고, 어린이의 성격이 그리스도인 가정의 따뜻한 분위기에서 가장 잘 계발되도록 제도를 마련하셨다.

자신의 아이들이 없는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아이들을 돌봐줌으로써 좋은 일을 할 수 있다. 그들은 애완동물에게 관심을 쏟거나 말 못하는 동물들에게 극진한 애정을 바치는 대신에 품성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꼴지어질 수 있는 어린 아이들에게 애정을 바쳐야 한다. 집 없는 인간 가족에게 그대의 사랑을 주라. 204 그대는 그런 어린 아이들 중 몇 사람쯤 주님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 보라. 많은 사람들은 그와 같이 함으로 자기 자신이 크게 유익을 보게 될 것이다.

나이 많은 사람들

나이 많은 사람들 역시 가정의 유일한 감화가 필요하다. 그리스도안에 있는 형제 자매들의 가정에서 자신의 가정에서 상실한 것을 거의 대부분 회복할 수 있다. 만일 그 집안의 관심사와 직업에 동참하도록 권유를 받게 되면 자기들의 유위성(有爲性)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을 그들에게 생각하게 해 줄 것이다. 그들의 도움이 가치가 있다는 것과, 그들에게도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라. 그리하면 그와 같은 생각이 그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 주고 그들의 생애에 관심을 갖게 해 줄 것이다.

희어져 가는 머리칼과 떨리는 발걸음이 무덤에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사람들은 할 수 있는 대로 친구들이나 잘 아는 사람들끼리 지내도록 해 주라. 그들이 잘 알고 피차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게 해 주라. 그들이 상냥하고 친절한 손길에 의하여 보호를 받도록 해 주라.

사람들이 그렇게 할 가능성이 있을 때는 언제든지 그들 자신의 친척에게 봉사하는 것이 각 가정에 속한 가족들의 특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불가능할 때는 그 일이 교회에 속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나의 특권으로서, 또한 하나의 의무로서 수락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정신을 소유하고 있는 모든 사람은 연약하고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부드러운 관심을 나타낼 것이다.

그처럼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이 우리 가정에 있게 되면 그리스도의 자비의 봉사를 통하여 그분과 협력하고 그분의 품성과 동일한 품성의 특성을 계발시킬 귀중한 기회를 얻게 된다. 늙은이들과 젊은이들이 함께 교제하면 축복이 된다. 젊은이들은 나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생애에 햇빛을 비추어 줄 수 있다. 생명을 붙잡는 힘이 약해지고 있는 사람들은 유망하고 쾌활한 젊은이들과 교제함으로 유익을 얻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나이 많은 사람들의 지혜와 경험을 통하여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그들은 이타적 봉사의 교훈을 배울 필요가 있다. 205 동정과 인내와 자아 희생적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을 때 많은 가정이 무한한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이 가정생활을 즐겁게 해 주고 순화시켜 줄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늙은이들과 젊은이들을 거룩한 미(美)로써 꾸며 주고 영원한 하늘의 보화로 풍성하게 해 줄 그리스도와 같은 미덕을 환기시켜 준다.

품성의 시험

그리스도께서는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란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막 14:7, 약 1:27).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사람들 사이에 무력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두시고 그들의 보호에 의존하게 하심으로써 그들을 시험하신다. 하나님의 가난한 자녀들에게 나타내는 우리의 사랑과 봉사로써 우리는 그분에 대한 사랑의 진실성을 입증해 준다. 그들을 등한히 하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거짓 제자들이며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자들임을 보여 준다.

여러 가정에서 고아들을 위하여 집을 제공함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을지라도 돌봐 주어야 할 일들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들 중 많은 어린이들이 유전적으로 악을 이어받고 있다. 그들은 가망이 없어 보이고, 매력적이 못되고, 성미가 비꼬여 있다. 그럴지라도 그들 역시 그리스도의 피로 산 영혼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눈앞에는 우리 자신의 어린 자녀들과 꼭 마찬가지로 귀중하다. 만일 또 도움의 손길이 그들을 붙들어 주지 않으면 그들은 무식하게 자라나서 부도덕과 죄악 속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들 중 많은 어린이들이 고아원의 사업을 통하여 구제받게 될 것이다.

그런 기관들이 효력을 가장 “잘” 나타내려면, 할 수 있는 대로 그리스도인 가정 계획에 가깝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많은 수의 어린이들을 함께 수용하는 큰 기관들보다 작은 기관들이 여러 곳에 있어야 한다. 206 그런 기관들은 어떤 도시나 대도시에, 혹은 그 가까운 곳에 세우는 대신에 경작할 땅을 얻을 수 있고, 어린이들이 천연계와 접촉할 수 있고, 노동의 훈련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시골에 세워야 한다.

그런 기관을 책임맡은 사람들은 마음이 관대하고, 교양적이며, 자아 희생적인 남녀들이어야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하고 그분을 위하여 어린이들을 양육하는 남녀들이어야 한다. 집 없이 버림받은 많은 어린이들은 그러한 보호하에 사회의 유능한 구성원들이 되어 스스로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고, 또한 다른 사람들을 도와 주기 위하여 준비하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절약을 인색과 편협으로 오해하고 그것을 멸시한다. 그러나 절약은 가장 관대한 자선사업과 일치한다. 사실상 절약이 없으면 진정한 자선사업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주기 위하여 절약해야 한다.

어떤 사람도 극기없이 진정한 자선을 실천할 수 없다. 오직 단순, 극기, 엄격한 절약의 생활을 통해서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표자들로서 우리에게 지정된 사업을 완수할 수 있다. 자만심과 세속적 야망은 우리의 마음에서 추방되어야 한다. 우리의 모든 사업에서 그리스도의 생애에 나타난 이타심의 원칙이 실천되어야 한다. 우리 집들의 벽과 그림과 가구들 위에서 우리는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라는 글귀를 읽어야 한다. 우리의 옷장에서 우리는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라는 글귀가 마치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쓴 글귀처럼 쓰여진 것을 보아야 한다. 식당과 풍성한 음식이 실려 있는 식탁에서 우리는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라고 쓰여 진 것을 보아야 한다(사 58:7).

우리 앞에는 유용한 문들이 수 없이 열려 있다. 때때로 우리는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 적음으로 탄식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철저하고 진지했을 것같으면, 그들은 그 자원들을 천 배로 늘릴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의 유용성을 방해하는 것은 이기심과 방종이다.

207 단순한 우상에 불과한 것, 즉 더욱 고상한데 사용되어야 할 생각과 시간과 힘을 빼앗아 버리는 것들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재물들이 소비되는가! 얼마나 많은 돈들이 비싼 주택과 가구들, 이기적 쾌락, 사치스럽고 불건전한 음식, 해로운 방종등에 낭비되는가! 얼마나 많은 것들이 어떤 사람에게도 유익이 되지 못하는 선물에 낭비되는가 ! 필요없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해로운 것들을 위하여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유혹자로부터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한 활동에 사용하는 것보다 더 많이, 몇 배나 더 많이 돈을 쓰고 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의복에 너무 많은 돈을 써 버리기 때문에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남겨둔 것이 없다. 그들은 가장 평범한 의복을 마련하는 것조차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필요를 무시하고 그들 자신을 위하여 값비싼 장신구들과 의복들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자매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옷 입는 방법을 성경에서 제시한 원칙과 조화되게 한다면 그대들보다 더 가난한 자매들을 도와 줄 수 있는 것을 풍성하게 소유하게 될 것이다. 그대들은 금전뿐만 아니라 시간도 갖게 될 것이다. 때때로 이 일이 가장 필요하다. 그대들의 제안, 그대들의 기지(機智)와 기술로써 도와 주어야 할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단순하고 품위 있게 옷 입는 법을 알려 주라. 많은 여자들이 그들의 허름하고 어울리지 않은 의복이 다른 사람들의 의복과 너무나 큰 대조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 집에 오지 못하고 있다. 그런 대조 때문에 감정이 예민한 많은 사람들은 심한 굴욕감과 불공평하다는 마음을 품게 된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종교의 본질을 의심하고 복음에 대하여 그들의 마음을 무감각하게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신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매일 기근과 유혈사태와 화재와 재난으로 죽어가고 있는 동안, 그의 동족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은 인간에게 도움이 될 것은 아무것도 낭비하지 말고, 쓸데없이 허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208 우리의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잘못이며, 우리의 사상을 낭비하는 것도 잘못이다. 우리는 이기적 욕구에 몰두됨으로 매 순간을 잃어버린다. 매 순간을 가치 있게 여기고 올바르게 활용할 것같으면 우리는 자신들과 세상을 위하여 반드시 해야 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금전을 사용하고 시간과 기회를 활용함에 있어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지도를 받기 위하여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선대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눅 6:35).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많으리라”(잠 28:27).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 6: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