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렌 지 화잇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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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장-질병과의 투쟁

26장 - 질병과의 투쟁

167 *역사적인 배경-제임스 화잇 목사는 1864년 12월 13일자 리뷰지의 논설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우리 신자들은 일반적으로 건강문제에 대하여 각성하고 있으므로 그들의 현재의 요청에 응하기 위하여 가장 가난한 사람들도 살 수 있을 만한 가격으로 건강 문제에 관한 간행물을 내야 합니다.” 그는 “건강 혹은 생활 방법”이라는 일반적인 표제의 일련의 소책자의 조기 발행을 광고하였다.

이 소책자들을 통하여 구체화될 개혁의 중요성에 대한 화잇 목사 부부의 강한 확신이, 일련의 간행물의 제1호에 관심을 기울여 주기를 호소하는 1865년 1월 24일자 리뷰지의 기사에 이렇게 표현되었다.

“우리는 우리에게 매우 필요한 생활 방식의 개혁 문제에 관하여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 제작한 이 책자에 대하여 각처에 있는 우리 교우들이 깊은 관심을 기울여 주기를 호소하는 바입니다. 우리가 생각건대, 이 개혁 사업은, 백성들이 마침내 변화 승천할 준비가 된다면 그 사명이 분명히 완수될 것입니다.”

1865년도 전반 5개월 동안에 일련의 소책자가 완간되었다. 6권으로 된 이 건강 소책자에는 화잇 여사의 “질병과 그 원인”이라는 기사와, 또한 이것과 유관한 제목들에 관한 기사와, 건강 개혁 원칙에 관심이 있는 여러 의사들과 다른 인사들의 저술에서 발췌한 기사들이 수록되었다. 위생적인 생활 처방이 포함되었고, 치료 수단으로써의 물의 사용에 관하여 알아 둘 점들이 또한 소개되었다. 술과 담배와 홍차와 커피와 양념과 기타 자극성 물질과 마약의 해독이 강조되었다.

1864년과 1865년 겨울은 긴장과 시련의 기간이었다. 화잇 목사가 그의 아내와 함께 건강과 절제에 관한 출판물의 내용을 준비하는 동안 그는 군복무를 위해 징집된 안식일 준수자들을 위해 꾸준히 활동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였다. 168 이 일은 육체적인 과로 이외에도 당혹과 고민이 따랐고, 동정이 크게 요구되는 사업이었다. 1865년 5월에 개최된 대총회 회의를 주관하느라고 그의 피곤은 더하였다.

저술 활동과 출판 업무와 일반적인 사업과 관련된 많은 관심사들을 돌아보기에 지친 화잇 목사와 그의 아내에게는 쉴 시간이 허용되지 않았다. 총회를 마친 직후 그들은 위스콘신 주와 아이오와 주를 방문하도록 요청되었는데, 거기서 그들은 많은 난관들을 견뎌 냈다. 그들이 미시간 주로 돌아온 후 곧 그는 부분적인 중풍병에 걸렸다. 이 질환과 몇 달 후에 간접적으로 건강 개혁 운동을 일으키게 된 연유에 관하여 화잇 여사는 1866년 2월 20일과 27일자 리뷰지에 기고하였는데, 그 기사의 일부가 본 장의 내용이다.*

제임스 화잇 목사의 질병

어느 날 아침, 우리가 조반 전에 평상시처럼 산보를 나가서 런트씨의 밭에 들어가 나의 남편이 옥수수를 따려고 하는 동안 나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얼른 나의 남편을 쳐다보니, 그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고 그의 오른팔이 힘없이 옆으로 죽 늘어져 있었다. 그는 오른팔을 쳐들어 보려고 애썼지만 허사였다. 근육이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그를 부축하여 집으로 데려왔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으며 집에 들어와서 간신히 불확실한 발음으로 “기도, 기도해”라고 할 뿐이었다. 우리는 얼른 무릎을 꿇고 어려울 때마다 항상 필요한 도움이 되신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169 얼마 후 그의 팔을 움직일 수 있게 되자 나의 남편은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말을 하였다. 그의 팔은 일부 회복되었지만 완전하지는 못하였다.

나의 남편과 나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우리가 기도하고 자백하며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가까이 계신다는 복된 확증을 갖게 되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이 시간이야말로 귀중한, 아니 더할 나위 없이 귀중한 시간이었다.

우리가 고통당하는 처음 다섯 주일은 우리 집에서 지냈다. 비록 하늘 아버지께서 고맙게도 가까이 계셔서 위로하시고 당신의 성령의 힘으로 붙들어 주셨지만, 그분께서는 현명하신 목적이 있으셔서 우리의 간절한 기도의 응답으로 그를 즉시 건강하게 일으키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여기셨다.

뉴욕 주 댄스빌에서의 요양

우리는 물의 사용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치료 수단임을 믿었지만 약물의 사용은 신임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의 남편의 병을 위하여 수치료법을 실시하기에는 나의 기력이 너무도 쇠잔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뉴욕 주 댄스빌에 보내어 거기서 그가 휴식을 취하며 전문적인 수치료법 의사의 가료를 받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였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판단만을 따르려 하지 않고 하나님의 지시를 구하였다. 이 계획에 대해 기도하며 고려한 결과 가기로 결정하였다. 나의 남편은 여행을 잘 견뎌 냈다.

우리는 댄스빌에 약 3개월간 머물렀다. 우리는 요양원에서 가까운 거리에 방을 얻어서 많은 시간을 밖에 나가 산책하며 야외에서 보냈으며, 안식일과 일요일 외에는 매일 치료를 받았다.

우리가 댄스빌에 가서 의사의 가료를 받는 것을 보고 어떤 이들은,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나의 남편을 건강하게 일으키실 것을 믿는 우리의 믿음을 포기한 줄로 생각하였다. 170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건강의 회복을 위하여 우리의 수중에 두신 방법들을 경시하고 싶지 않았으며,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므로, 남용된 신체가 그 고갈된 기력을 회복시키는 일에 당신께서 준비해 주신 치료 수단들을 활용하기를 원하신다고 생각하였다. 우리는 건강 법칙에 따라 우리들이 취하는 노력들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줄로 믿었다.

기도 시간과 축복

우리는 하루 세 번씩 기도 시간을 가지며, 주님께서 나의 남편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시고 또 이 괴로운 때에 주님의 은혜로 우리를 붙들어 주 시기를 간구하였다. 이 기도 시간들은 우리에게 매우 귀중하였다. 우리의 심경은 때때로 이 괴로운 때에 우리가 두려움 없이 신뢰할 수 있는 하늘 아버지가 계심에 대한 말할 수 없는 감사로 충하였다.

1865년 12월 4일 밤에 나의 남편은 고통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나는 늘 하던 대로 그의 침대 옆에서 기도하였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고통을 제해 주지 않으셨다. 나의 남편은 마음에 번민이 생겼다. 그는 이러다가 그냥 무덤으로 내려가게 될 줄로 생각하였다. 그는 죽음이 하나도 두렵지 않다고 말하였다.

나는 이 일을 심각하게 생각하였다. 나는 일순간이라도 나의 남편이 죽을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그를 믿음으로 고취시킬 수 있을까?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해 주시고, 내가 한 걸음이라도 그릇 행함을 용납하지 마시고 바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기를 기도하였다. 내가 간절히 기도하면 할수록, 우리가 비록 후에 댄스빌에 다시 돌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나의 남편을 그의 형제들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야 겠다는 확신이 더욱 강해졌다.

아침에 레이 박사가 찾아왔을 때 나는 그에게, 나의 남편의 병세가 길어도 이삼 주일 이내에 결정적으로 호전되지 않는 한 나는 그를 집으로 데려가겠다고 말하였다. 171 그는 “그를 집으로 데려갈 수 없습니다. 그는 그런 긴 여행을 견뎌 낼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나는 가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나의 남편을 데리고 가되, 우선 로체스터에 가서 며칠간 머문 다음 디트로이트에 가서, 필요하다면 거기에서도 수일 간 쉬었다가 배틀크릭으로 가겠습니다”라고 나는 대답하였다.

이것이 나의 의도를 나의 남편에게 처음으로 알린 것이다.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밤에 우리는 우리의 여행 가방을 챙겨서 이튿날 아침에 길을 떠났다. 나의 남편은 편안하게 마차를 타고 갔다.

우리가 로체스터에 3주일간 머무는 동안 많은 시간을 기도로 보냈다. 나의 남편은 메인 주에 기별하여 J.N.앤드루스 목사를 오게 하고, 올코트에 기별하여 린지씨 부부를 오게 하고, 루스벨트에 통지하여 하나님을 믿으며 이곳에 꼭 와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 와서 자기를 위하여 기도드리게 해 달라고 제안하였다. 이 모든 친구들이 그의 요청을 받아 왔다. 우리는 10일간 특별히, 그리고 간절히 기도드리는 기간을 가졌다. 이 기도 기간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은 큰 축복을 받았다. 종종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소나기로 신선하게 되어 “나의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분의 풍성한 구원을 인하여 기뻐 울며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다.

루스벨트에서 온 사람들은 부득이 곧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지만 앤드루스 목사와 린지씨 부부는 남아 있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간절한 탄원을 계속하였다. 이것은 흡사 암흑의 세력과의 투쟁이었다. 때때로 나의 남편의 떨리는 믿음이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잡고 감미롭고 고귀한 승리를 즐겼다.

크리스마스 날 저녁, 우리가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겸비하게 하고 구원을 간절히 탄원할 때 하늘의 빛줄기가 우리를 비추는 듯하더니 나는 하나님의 영광의 이상에 들어갔다. 172 나는 급속히 지구에서 하늘로 옮겨진 것 같았는데 거기에는 모든 것이 건강하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웠다. 음악의 가락이 내 귀를 울렸는데 선율적이며 완전하고 황홀하였다. 나의 주의를 이 암흑한 세상에 기울이도록 요청받기 전에 잠시 동안 이런 장면을 즐기는 것이 내게 허용되었다. 그 후에 나는 이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나는 나의 남편의 병세에 관하여 고무적인 견해를 가졌다.

모든 상황은 우리가 배틀크릭으로 떠나기에 좋지 않은 듯이 보였지만 우리는 꼭 가야 한다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우리는 여행 중에 무사하였다. 열차가 배틀크릭에 도착하자 여러 명의 신실한 교우들이 나아와 우리를 기쁘게 맞이하였다. 나의 남편은 밤새 잘 쉬었다. 다음 안식일에 그는 비록 허약했지만 예배당까지 걸어가서 약 45분간 설교하였다. 우리는 저녁에 성찬식에도 참석하였다. 주님께서는 그가 믿음으로 나아갈 때 그에게 힘을 주셨다.

나의 남편의 장기 질환은 나와 나의 자녀에게 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업에도 큰 타격을 주었다. 교회는 나의 남편과 나의 활동을 둘 다 빼앗겼었다. 진리의 사업이 이와 같이 방해받았을 때 사단은 기고 만장 했지만 우리를 아주 파멸시키도록 허락되지 않은 데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5개월 동안 적극적인 활동에 참여하지 못한 후에 우리는 또다시 위험을 무릅쓰고 교회들을 방문하며 일하러 함께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