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과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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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 관계

368 생애의 모든 교제는 자제와 인내와 동정이 발휘되기를 요구한다. 우리는 성격과 습관과 교육에 있어서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사물을 관찰하는 우리의 방법도 다양하다. 우리는 서로 다르게 판단한다. 진리에 대한 우리의 이해, 생활에 관한 우리의 생각은 모든 면에서 동일하지 않다. 모든 특수한 점에서까지 꼭 같은 경험을 한 두 사람이 있을 수 없다. 한 사람에게 시험이 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시험이 되지 않는다. 한 사람에게는 가벼운 의무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가장 큰 어려움과 난관이 된다.

인간의 본성은 너무나 연약하고, 무지하고, 오해하기 쉬우므로 각 사람은 다른 사람을 평하는 일에 주의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의 경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별반 알지 못한다. 우리가 행동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 우리에게 별반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눈이 열리게 되면, 우리는 선악에 대한 가장 중요한 결과가 우리의 언행에 달려있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다지 큰 짐을 져보지 못하였고, 그들의 마음은 진정한 고민을 별로 알지 못하고,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어려움과 고통을 별반 느껴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진정으로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의 일을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이 그의 짐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짐을 지고 있는 아버지의 걱정과 수고를 이해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어린아이는 아버지가 염려하고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한다. 그에게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의 생애에 여러 해 동안의 경험이 쌓이게 되고, 그 자신이 생애의 짐을 지게 되면, 그는 그의 아버지의 생애를 돌아보게 되고, 한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을 깨닫게 된다. 369 쓰라린 경험은 그에게 이해력을 열어준다.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의 많은 사업이 이해되지 못하고, 마침내 죽음이 그를 쓰러뜨릴 때까지 그의 활동이 인정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그가 내려놓은 짐을 지고, 그가 당했던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그들은 그의 믿음과 용기가 어느 정도로 시련을 받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흔히 그 때에 가서야 그들이 너무도 신속히 비난하던 잘못을 버리게 된다. 경험이 그들에게 동정을 가르쳐준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책임 있는 지위에 있도록 허락하신다. 그들이 실수할 때 그분께서는 그들을 교정하거나 옮기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심판하는 일을 우리 손으로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다윗이 사울에 대하여 취한 행동에는 교훈이 있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사울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 그가 불순종하였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에게서 나라를 빼앗을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에 대한 다윗의 태도는 얼마나 부드럽고 예모있고 관대하였던가. 사울은 다윗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광야로 왔다. 그리하여 그는 아무런 수행원도 없이 다윗과 그의 용사들이 숨어 있는 바로 그 동굴에 들어왔다. “다윗의 사람들이 가로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붙이리니 네 소견에 선한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 다윗이 …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삼상 24:4-6). 구주께서는 우리에게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 7:1, 2)고 명령하신다. 370 미구에 그대의 생애의 기록이 하나님 앞에 보여질 것임을 기억하라. 그분께서는 또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롬 2:1)고 말씀하신 바를 기억하라.

우리는 우리에게 가해진 어떤 실제적 혹은 가상적 피해 때문에 우리의 마음을 짜증스럽게 해서는 안 된다. 자아(自我)는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적이다. 어떤 형태의 악이라도 성령의 지배를 받지 않는 인간의 정욕보다 더욱 나쁜 영향을 품성에 미치는 것은 없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어떤 승리도 자아를 이기는 승리보다 더 귀한 것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이 쉽게 상처를 받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이나 명성을 수호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살아야 한다. 우리가 영혼 구원에 관심을 가지게 될 때, 우리는 상호간의 교제에서 그처럼 흔히 대두되는 사소한 의견 차이를 괘념치 않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거나 행동하든지 간에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되고 성령과 교통하는 일에 방해받을 필요가 없다.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벧전 2:20).

복수하지 말라. 그대는 할 수 있는 대로 오해의 원인이 되는 모든 것을 제거해 버리라.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원칙을 희생하지 않는 한 그대에게 있는 모든 힘을 다하여 다른 사람들과 화목하도록 하라.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3, 24).

그대에게 성급한 말을 하거든 같은 정신으로 결코 대답하지 말라. “유순한 말은 분노를 쉬게”(잠 15:1) 한다는 말을 기억하라. 371 그리고 침묵에는 놀라운 힘이 있다. 화를 낸 사람에게 대답으로 말을 하면 때때로 분노를 자극하는 역할만 하게 된다. 그러나 부드럽고 오래 참는 정신으로 침묵을 지키게 되면 분노는 빨리 사라져버린다.

찌르는 듯이 비난하는 말들이 폭풍우같이 쏟아질 때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에 머물러 있게 하라. 마음과 정신에 하나님의 약속을 저장해 두라. 만일 그대가 학대를 받거나 애매하게 비난을 받으면, 화를 낸 대답에 응수하지 말고 다음과 같은 귀중한 약속들을 반복하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21).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시 37:5, 6).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눅 12:2).

주께서 “사람들로 우리 머리 위로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시 66:12).

우리는 동정과 도움을 얻기 위하여 예수님을 바라보는 대신에 우리의 동료 인간들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자비하시고 성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람을 의지하고 육신을 우리의 무기로 삼는 것이 어리석은 일임을 알려주기 위하여 때때로 우리가 신뢰하는 사람에게서 실망을 당하도록 허락하신다. 진실하고, 겸손하고, 이기심 없이 하나님을 신뢰하자. 그분께서는 우리의 마음 속에 사무쳐 있지만 표현할 수 없는 우리의 슬픔을 아신다. 모든 것이 어둡고 이해할 수 없을 때에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요 13:7)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억하라.

요셉과 다니엘의 역사를 연구하라. 372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해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음모를 막지 않으셨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 모든 계책들이 시련과 갈등 속에서도 그들의 믿음과 충성심을 지켜온 당신의 종들에게 유익하도록 역사하셨다.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는 반대의 세력을 만나게 될 것이다. 성질을 자극하여 화가 나게 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때에 올바른 정신으로 대함으로써 그리스도인 특성이 나타나게 된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게 되면, 우리는 짜증이 나고 화가 날 수밖에 없는 경우에도 인내하고 친절하고 오래 참게 될 것이다. 매일, 매년 우리는 자아를 정복하고 고상하고 용감한 사람으로 자라나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맡은 과업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도움과 확고한 결심과 흔들리지 않는 목적과 끊임없는 경성과 계속적인 기도가 없으면 그 일을 성취할 수 없다. 각 사람은 개인적으로 싸워야 할 싸움이 있다. 우리가 하나님과 협력하는 자가 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까지도 우리의 성품을 고상하게 하거나 우리의 생애를 유용하게 만드실 수 없다. 싸움을 거절하는 사람들은 승리의 힘과 기쁨을 잃어버린다.

우리는 시련과 곤란과 비애와 슬픔에 대한 우리 자신의 기록을 보관해 둘 필요가 없다. 이 모든 것들은 책에 기록되어 하늘에 보관되어 있다. 우리가 불쾌한 것들을 회상하고 있는 동안, 매순간 우리를 둘러 있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 천사들도 경탄해 마지않는 사랑, 곧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우리를 위하여 내어주신 사랑과 같은 유쾌한 생각들이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리게 된다. 만일 그리스도의 일꾼된 그대가 다른 사람들이 당하는 것보다 더욱 큰 근심과 시련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 그대는 이와 같은 짐을 지고 있지 않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평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리스도를 섬기는 데는 위안과 기쁨이 있다. 그분과 함께 하는 생활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 주라.

만일 그대가 쾌활하지 못하고 기쁨이 없거든 그대의 감정을 이야기하지 말라. 다른 사람들의 생애에 그늘을 던져주지 말라. 냉랭하고 음산한 신앙은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결코 이끌지 못한다. 그런 신앙은 사람들을 그분에게서 떠나가게 하여 사단이 방황하는 자들을 발 앞에 펴놓은 그물에 걸리게 한다. 그대의 실망을 생각하지 말고 그대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장할 수 있는 능력을 생각하라. 그대의 상상력으로 보이지 않는 사물을 붙잡으라. 373 그대의 생각을 그대를 위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에 집중시켜라. 믿음은 시련을 견디고, 유혹을 저항하고, 실망을 극복할 수 있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언자로 살아 계신다. 그분의 중보로 얻은 것은 모두 우리의 것이다.

그대는 그리스도께서 전적으로 당신을 위하여 사는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신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대는 귀양살이 간 사랑하는 요한처럼 그분을 위하여 어렵고 괴로운 지경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주님께서 찾아 주신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신실한 일꾼들 중 한 사람도 홀로 있게 버려둠으로써 많은 역경과 싸워 패배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당신 안에 그리스도와 함께 숨겨진 각 사람을 귀중한 보석처럼 보존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각 사람에 대하여 “내가 …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학 2:23)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약속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축복하기를 좋아하시는 예수님에 대하여 이야기하라. 그분께서는 우리를 단 한 순간도 잊어버리지 않으신다. 좋지 못한 환경에 처해 있을지라도 우리가 확신을 가지고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하고, 그분 안에 감추어지면, 그분께서 임재하신다는 생각이 깊고 조용한 기쁨을일으켜 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에 관하여,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로 알리라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는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 8:28, 29)고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임재하심이 그리스도를 두르고 있었으므로 무한한 사랑이 세상을 축복하기 위하여 허락한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그분에게 일어나지 않았다. 여기에 그리스도의 위로의 근원이 있었으며, 그것은 또한 우리들을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으로 젖어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 그에게 다가오는 것은 무엇이든지 언제나 그의 곁에 계시는 구주로부터 온다. 주님의 허락이 없으면 어떤 것도 그에게 접촉될 수 없다. 우리의 모든 고생과 슬픔, 우리의 모든 시험과 시련, 우리의 모든 핍박과 궁핍, 요컨대 모든 것이 합동하여 선을 이루게 된다. 374 온갖 경험과 환경은 우리에게 유익한 것을 전달해 주는 하나님의 사자들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알게 되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실 때에, 그분의 제자들이 그분을 잘 알게 된 후에 그분께서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헐뜯거나 화를 내는 말을 한 번이라도 하시는 것을 들었다면 그들은 얼마나 놀랐겠는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품성을 통하여 그분을 나타내야 한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롬 12:10; 벧전 3:9).

주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권리를 인정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사람들의 사회적 권리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그들의 권리가 고려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서 예의와 겸손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그리스도교는 사람을 신사로 만들어 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예의가 바르셨다. 그분께서는 심지어 당신을 핍박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예모를 지키셨다. 그러므로 그분을 진정으로 따르는 사람들은 그와 같은 정신을 나타내야 할 것이다. 법관들 앞에 나온 바울을 보라. 아그립바 앞에서 한 그의 말은 설득력 있는 웅변에 대한 예증이 됨은 물론이요 참된 예의에 대한 예증이다. 복음은 이 세상에 유행하는 형식적인 공손을 권장하지 않고, 마음 속에 있는 진정한 친절에서 나오는 예절을 권장한다.

생애의 외형적 예절을 가장 잘 계발한다는 것은 온갖 성내는 것과 가혹하게 판단하는 것과 좋지 못한 말을 금지하는 것 등으로 만족한다는 뜻이 아니다. 375 진정한 예절은 자아를 최고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한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 사랑이 마음 속에 있어야 한다. 철저한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주님에 대한 깊고 진정한 사랑에서 그 행동의 동기가 나오게 된다.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애정의 뿌리에서 그의 형제들에 대한 이기심 없는 관심이 솟아나게 된다. 사랑은 그것을 소유한 자에게 우아함과 예모와 행동의 아름다움을 준다. 그것은 얼굴을 빛나게 하고 음성을 부드럽게 해준다. 그것은 전인적(全人的)인 의미에서의 사람을 세련되고 고상하게 해준다.

생애는 주로 위대한 희생과 놀라운 업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작은 것들로 이루어진다. 우리의 생애에 큰 선이나 악이 초래되는 것이 주목할만한 가치조차 없는 것처럼 보이는 작은 것들로 말미암아 되는 수가 너무도 허다하다. 습관이 꼴지어지고 품성이 잘못 형성되는 것은 작은 것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오는 시험들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더욱 큰 시험이 올 때에, 그들은 준비되지 못한 것을 깨닫게 된다. 오직 우리는 일상 생활의 시험 중에서 원칙대로 행동함으로써만 가장 위험하고 가장 어려운 환경에서도 확고하고 성실하게 설 수 있는 능력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결코 홀로 있지 않다.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하든지 아니하든지 우리에게는 동행자가 있다. 그대가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거기 계심을 기억하라.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님께서 주목하지 않으시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대의 모든 말과 행동에 대한 증인이 계신데, 그분은 거룩하시고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대가 말하거나 행동하기 전에 언제나 그것을 생각하라. 그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왕족의 한 사람이요 하늘 왕의 자녀이다.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약 2:7)을 더럽힐 한 마디의 말이나 행동도 하지 말라.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겸하여 갖춘 분의 품성을 주의 깊이 연구하라. 그리고 “만일 예수님께서 나의 입장에 계시면 어떻게 하실 것인가” 라고 끊임없이 물어보라. 376 이것이 우리의 의무를 측정하는 척도가 되어야 한다. 술책을 써서 옳은 일을 하고자 하는 그대의 목적을 약화시키고 그대의 양심에 오점을 남기고자 하는 자들의 무리 가운데 쓸데없이 들어가지 말라.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거리에서, 차 안에서, 가정에서, 조금이라도 악의 모양이 되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피로 사신 생명을 계발시키고, 아름답게 하고, 고상하게 하기 위하여 날마다 무엇인가를 하라.

언제나 원칙에 의하여 행동하고, 충동에 의하여 결코 하지 말라. 그대의 성급한 본성을 온유와 친절로써 조화시키라. 가볍고 경솔한 일에 빠지지 말라. 야비한 농담이 그대의 입술에서 새어나오지 못하게 하라. 심지어 생각에서까지도 비루한 일이 머물지 않도록 하라. 그것들은 제재되어야 하고 그리스도께 순종하게끔 사로잡혀야 한다. 생각을 거룩한 사물에 집중시켜라. 그리하면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순결하고 진실해질 것이다.

우리는 순결한 사상 속에 있는 고상하게 하는 능력을 언제나 의식할 필요가 있다. 어떠한 사람에 대해서도 유일의 안전은 올바르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잠 23:7)하기 때문이다. 자제의 힘은 사용할수록 강하여진다. 처음에는 어려운 것처럼 보이는 것도 끊임없이 반복함으로 쉬워지고, 마침내 올바른 사상과 행동이 습관화된다. 만일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우리는 천박하고 열등한 모든 것을 버리고 높은 표준에 오를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하나님께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다른 사람들을 좋게 말하는 습관을 배양하라. 그대들과 교제하는 사람들의 좋은 특성들을 바라보라. 그리고 할 수 있는 대로 그들의 과오와 실패를 적게 보라. 어떤 사람이 말하고 행동한 것에 대하여 불평하고 싶은 유혹을 받게 되거든 그 사람의 생애나 품성에서 무엇인가 칭찬해 주라. 감사의 정신을 배양하라. 그리스도를 주셔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게 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 대하여 그분을 찬양하라. 377 우리의 슬픔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은 아무런 보상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자비와 당신의 무한한 사랑을 생각함으로 찬양할 마음이 생기게 하라고 요구하신다.

열심 있는 일꾼들은 다른 사람들의 결점을 생각할 시간이 없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결점과 실패의 껍질에 생계를 위탁할 수 없다. 악담(惡談)은 이중의 저주가 되는데, 듣는 자보다 말하는 자가 더욱 큰 저주를 받게 된다. 분열과 분쟁의 씨를 뿌리는 자는 그 자신의 심령에 치명적인 결과를 거두게 된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악을 찾아내는 바로 그 행동은 찾아내는 그 사람들에게 악을 길러준다. 다른 사람들의 결점을 생각함으로써 우리는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진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사랑과 완전한 품성에 대하여 말함으로써 우리는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된다. 그분께서 우리 앞에 놓아주신 고상한 이상을 명상함으로써 우리는 순결하고 거룩한 분위기로 끌려 올라가 마침내 하나님께서 계신 곳까지 이르게 된다. 우리가 지상에 살고 있는 동안, 우리와 관련되어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추어주는 빛이 우리에게서 나가게 된다.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거나 정죄하는 대신에 다음과 같이 말하라. “나는 내 자신의 구원을 완성해야 한다. 내가 나의 영혼을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분과 협력하려면, 나는 내 자신을 부지런히 살펴야 한다. 나는 모든 죄악을 나의 생애에서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모든 결점을 이겨야 한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악을 대항하여 싸우고 있는 자들을 악하게 하는 대신에, 나는 용기를 주는 말을 함으로써 그들을 강하게 할 수 있다.” 우리는 피차간에 지나치게 냉정하다. 우리는 너무도 흔히 우리의 동료들에게 힘과 격려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그대가 그들에게 관심과 동정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라. 그대의 기도로써 그들을 도와 주고, 그대가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알려 주라.

하나님의 자녀라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들은 선교사로서 모든 계층의 사람들과 접촉해야 한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거기에는 고상한 사람과 무례한 사람, 겸손한 사람과 교만한 사람, 믿음 있는 사람과 회의적인 사람, 교육받은 사람과 무식한 사람,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 등이 있다. 378 그처럼 다양한 사람들을 동일하게 취급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친절과 동정을 요구하고 있다. 상호간의 접촉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은 연마되고 고상해져야 한다. 우리는 형제로서의 유대 관계를 가지고 서로 의존하고, 다 함께 밀접히 결속되어 있다.

“하늘은 서로서로 의지하여 살게 하신다 주인이나 종이나 친구들이 다 같이 모두가 서로서로 도와 주라고 명하신다 한 사람의 약점이 무엇보다 강한 것으로 자라날 때까지.”

사교 관계를 통하여 그리스도교는 세상과 접촉하게 된다. 하늘의 빛을 받은 모든 남녀들은 선한 길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어두운 앞길에 빛을 비춰 주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영으로 성화된 사교의 힘은 사람들을 구주께로 인도하는 일을 통하여 계발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는 신성하고 아름다운 보배처럼 그것을 소유한 자만이 즐기기 위하여 마음 속에 숨겨져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영원토록 솟아나는 우리와 접촉하는 모든 사람에게 활기를 주는 샘물로 우리 속에 간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