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과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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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하라고 부르심

302 갈릴리 바다에 아침이 왔다.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은 바다에서 폭풍의 하룻밤을 새운 후 해안에 도착하셨다. 마침 떠오르는 햇빛은 평화의 축복인양 바다와 육지를 어루만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바닷가에 발을 딛자 격노한 태풍보다 더 무서운 광경이 저들의 눈앞에 전개된다. 무덤들 사이에 있는 어떤 은신처에서 두 사람의 미치광이가 마치 그들을 갈기갈기 찢어 놓기라도 할 것처럼 그들에게로 달려든다. 그들의 몸에는 그들이 감금된 상태에서 벗어날 때 끊어버린 쇠사슬이 달려 있다. 그들의 눈은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에서 번쩍이고 있다. 인간의 형상 그것은 말살되어 버린 것 같다. 그들은 사람이라기보다 야수에 더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제자들과 그 일행은 무서워 도망친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지 않은 것을 즉시 깨닫고 예수님을 찾고자 돌아선다. 그분은 그들이 그분을 버리고 떠나간 그 자리에 서 계신다. 폭풍을 잔잔케 하시고, 이미 사단과 대결하여 정복시킨 그분께서는 그 사귀들 앞에서 도망하지 않으신다. 그 사람들은 이를 갈고 입에서 거품을 뿜으면서 예수님께 접근해 온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파도를 가리켜 잔잔케 하신 그 손을 드신다. 그들은 더 이상 가까이 접근해 올 수 없게 된다. 그들은 예수님 앞에 서서 화를 내지만 어쩔 수 없다.

그분은 권위를 가지고 더러운 영들에게 그들로부터 나오라고 명령하신다. 그 불쌍한 사람들은 그들을 괴롭히는 사귀들에게서 그들을 구원해 줄 수 있는 분이 가까이 계심을 깨닫는다. 그들은 구주의 자비를 탄원하기 위하여 그분의 발 앞에 엎드린다. 303 그러나 그들이 입을 열었을 때, 그들을 통하여 사귀들이 외친다.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마 8:29).

그 악한 영들은 그들의 희생자들을 놓아줄 수밖에 없다. 그러자 놀라운 변화가 사귀들린 사람들에게 일어난다. 빛이 그들의 마음 가운데 비친다. 그들의 눈은 지성으로 빛난다. 그처럼 오랫동안 사단의 형상으로 찌그러져 있던 얼굴이 갑자기 부드러워지고, 피묻은 손들은 조용해진다. 그들은 음성을 높여 하나님을 찬양한다.

한편 사람에게서 쫓겨난 사귀들은 돼지떼 가운데 들어가 그것들을 멸망으로 달려가게 한다. 돼지를 지키던 자들이 그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급히 달려간다. 그러자 온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려 몰려든다. 귀신들린 그 두 사람은 마을에서 공포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런데 이제 그 사람들이 옷을 입고 올바른 정신으로 예수님의 발 아래 앉아서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을 고쳐주신 예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있다. 그러나 이 놀라운 광경을 보는 사람들은 기뻐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돼지를 잃어버린 것이 이 사단의 포로들이 구원받은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인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두려운 마음으로 예수님의 주위에 모여들어 그분이 그들에게서 떠나가 주기를 간절히 요구한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요구대로 즉시 배를 타고 건너편 해안을 향하여 떠나신다.

그러나 고침을 받은 광인들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그들은 저희를 구원하여 주신분과 함께 있기를 원한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음으로 그들의 생애를 괴롭히고 폐인이 되게 했던 귀신들에게 벗어나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고자 하실 때, 그들은 예수님 곁에 가까이 가서 그분의 발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들은 그들을 예수님 곁에 가까이 있게 해주심으로 그분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애원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집으로 돌아가서 주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행하신 위대한 일들을 이야기하라고 명령하신다.

304 여기에 그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이방인 가정에 가서 그들이 예수님께 받은 축복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일이다. 그들이 구주와 헤어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들이 이방인 동족들과 교제할 때 그들에게는 큰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사회에서 오랫동안 격리되어 있었으므로 이 사업을 할 자격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분께서 그들의 의무를 지적해 주시자 그들은 즉시 순종할 자세를 취한다.

그들은 집안 사람들과 이웃 사람들에게 예수님에 관하여 이야기하였을 뿐만 아니라, 데가볼리 지방을 두루 다니면서 어디에서나 구원하시는 그분의 능력을 전하고 그분께서 그들을 어떻게 사귀에게서 해방시켜 주셨는지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비록 거라사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아니하였을지라도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선택한 흑암 가운데 저들을 버려두지 아니하셨다. 그들이 예수님을 그들에게서 떠나가도록 말하였을 때, 그들은 그분의 말씀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들은 그들이 무엇을 거절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빛을 보내시되, 그들이 듣기를 거절하지 아니할 사람들을 통하여 하셨다.

돼지가 멸망당하도록 함으로써 사람들을 구주에게서 떠나가게 하고 그 지방에 복음이 전파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 사단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사건은 그 외의 다른 방법으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을 그 지방에서 일어나게 했고, 그리스도께로 주의를 집중시켰다. 비록 구주께서는 떠나셨지만 그분께서 고쳐주신 그 사람들은 그분의 능력을 증거하는 증인들로서 남아 있었다. 흑암의 왕의 매개체가 되었던 사람들이 빛의 통로가 되고 하나님의 아들의 사자들이 되었다. 예수님께서 데가볼리로 돌아오시자 사람들은 그분의 주위에 모여들었다. 그리하여 3일 동안 그 주위의 모든 동네에서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기별을 들었다.

고침을 받은 두 광인은 그리스도께서 데가볼리 지방에 복음을 전하도록 파견한 최초의 선교사들이었다. 그 사람들은 다만 짧은 기간에 그분의 말씀을 들었다. 307 그들은 예수님의 입으로 하신 단 한 번의 설교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들은 매일 그리스도와 함께 있었던 제자들처럼 사람들을 가르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아는 것, 곧 구주의 능력에 관하여 그들이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말할 수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마음에 감동을 받은 각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이 우리 주께서 요구하시는 증거인데, 그와 같은 증거가 부족하므로 세상은 멸망하여 가고 있다.

복음은 하나의 생명 없는 이론으로 제시될 것이 아니고 생애를 변화시키는 산 능력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은혜를 통하여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을 소유할 수 있고, 당신의 위대한 사랑의 보증을 기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당신의 종들이 증거하기를 바라신다. 그분께서는 구원을 받아들인 모든 사람들이 당신의 아들과 딸로서의 거룩한 특권을 회복하고 누리기 전에는 결코 만족하실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들이 증거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분께 대하여 가장 반항적인 길을 걸어온 사람들일지라도 아낌없이 받아 주신다. 그들이 회개하면 그분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성령을 그들에게 주시고, 그들을 불충실한 자들의 진영으로 보내어 당신의 자비를 선포하게 하신다. 사단의 도구로 타락한 영혼들이 오늘날도 여전히 그리스도의 능력을 통하여 의의 사자로 바뀌어져, 주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어떻게 큰 일을 행하시고 그들을 긍휼이 여기셨는지 증거하도록 파견되고 있다.

가버나움의 여인이 믿음으로 주님의 옷자락을 만져 고침을 받은 후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이 받은 축복을 고백하기를 원하셨다. 복음이 제공해 주는 선물은 몰래 간직하거나 은밀히 즐겨서는 안 된다.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이사야 43장 12절

308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우리가 공언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세상에 나타내기 위하여 하늘이 택한 수단이다. 우리는 옛날의 거룩한 사람들을 통하여 알려진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효과적인 것은 우리 자신의 경험에 대한 간증이다. 우리는 우리 속에 있는 신성한 능력의 역사를 드러내는 하나님의 증인들이다. 각 사람은 다른 모든 사람들과 구별된 생애를 하고 있으며,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상이한 경험을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의 개성으로 특징지어진 찬송을 당신께 드리기를 원하신다. 그리스도와 같은 생애에 의하여 입증될 때,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는 귀중한 고백은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역사하는 항거할 수 없는 능력이 된다.

하나님의 모든 선물을 우리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간직하는 것이 우리 자신에게 유익이 된다. 그와 같은 일을 통하여 믿음이 강하여져서 더욱 많은 것을 달라고 주장하고 받게 된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믿음과 경험에 대하여 읽을 수 있는 모든 기록에서 얻는 것보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직접 얻는 가장 적은 축복 속에 우리를 위한 더욱 큰 힘이 있다.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을 나타내는 사람은 물댄 동산과 같아질 것이다. 그의 치료는 급속할 것이며, 그의 빛은 흑암 중에서 발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에게서 나타날 것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시편 116편 12-14절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주여 … 내가 주를 찬양할 때에 내 입술이 기뻐 외치며 주께서 구속하신 내 영혼이 즐거워하리이다.”

309 내 혀로 종일토록 주의 의를 말씀하오리니 “주 여호와여 주는 … 나의 어릴 때부터 의지시라 … 나는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내가 왕의 이름을 만세에 기억케 하리니 그러므로 만민이 왕을 영영히 찬송하리로다.” 시편 71편 22-24, 5, 6절, 45편 17절.

복음의 초청은 범위를 좁혀서 다만 선택된 소수의 사람들, 곧 우리의 생각에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면 우리에게 영광이 될 것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만 제시되어서는 안 된다. 그 기별은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져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축복하실 때 그들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고 세상을 위하여 축복하신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선물을 주실 때, 우리가 그것을 나누어줌으로써 증가시키도록 하기 위함이다.

야곱의 우물가에서 예수님과 이야기한 사마리아 여인은 구주를 발견하자 즉시 다른 사람들을 그분께로 인도해 왔다. 그 여자는 예수님의 제자들보다 오히려 더욱 능률적인 선교사임을 스스로 입증하였다. 제자들은 사마리아가 유망한 선교지라는 것을 알려주는 아무런 흔적도 보지 못하였다. 그들의 생각은 장차 이루어져야 할 큰 사업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그들은 그들 바로 주위에 거두어 들여야 할 수확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멸시하던 그 여자로 말미암아 온 동네가 구주의 말씀을 들으러 나왔다. 그 여자는 그 빛을 즉시 자기 동네 사람들에게 전하였다.

이 여인은 그리스도를 믿는 실천적 신앙의 역할을 설명해 주는 하나의 예증이다. 모든 진실한 제자는 한 사람의 선교사로서 하나님의 나라에 태어난다. 그는 구주를 알게 되자 즉시 다른 사람들에게 그분을 알려 주고자 열망한다. 구원하고 거룩케 하는 진리를 그의 마음 속에 숨겨둘 수 없다. 생명수를 마시는 사람은 생명의 샘이 된다. 받는 자는 주는 자가 된다. 마음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은혜는 사막에 있는 샘과 같다. 310 그것은 모든 사람을 새롭게 해주고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생명수를 마시게 해주고자 갈망하게 한다. 이와 같은 일을 함으로 우리는 단순히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일하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을 받게 된다. 우리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일함으로써 구주께 가까이 나아가게 된다.

당신의 은혜를 받는 사람들에 관하여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내 산 사면 모든 곳도 복되게 하여 때를 따라 비를 내리되 복된 장마비를 내리리라”(겔 34:26).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 7:37, 38).

받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한다. 각 방면에서 도와달라는 호소가 들려온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부르셔서 그들의 동료들에게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하라고 요구하신다. 영생의 면류관을 얻어야 하고, 하늘나라를 소유해야 하고, 무지로 죽어가는 세상을 복음으로 깨우쳐야 한다.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요 4:35, 36).

3년 동안 제자들은 예수님의 훌륭한 모본을 목격해 왔다. 날마다 그들은 그분과 함께 걸어다니며 이야기하고, 고생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기쁘게 해주는 그분의 말씀을 듣고, 병들고 고통 당하는 자들을 위하여 나타내는 그분의 능력을 보았다. 그들을 떠나가실 때가 되자, 그분께서는 그들이 당신의 이름으로 당신의 사업을 완수할 은혜와 능력을 주셨다. 그들은 그분의 사랑과 치료의 복음의 빛을 널리 비춰야 하였다. 311 그리고 구주께서는 당신이 언제나 그들과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분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분께서 사람들 사이를 직접 걸어다니시던 때보다도 그들과 더욱 가까이 계실 것이었다.

제자들이 한 일을 우리도 또한 해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동정과 긍휼로써 도움이 요구되는 사람들에게 봉사해야 하며, 이타적 열성으로 고통 당하는 인류의 불행을 가볍게 해주고자 노력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무엇인가 할 일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사람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활동할 장소가 없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구주께서는 당신 자신을 모든 인류와 동일하게 간주하신다. 우리를 하늘 가족의 일원이 되게 하시고자 그분께서는 지상 가족의 일원이 되셨다. 그분께서 인자가 되심으로 아담의 모든 아들딸들과 형제가 되신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들 주위에서 죽어가고 있는 세상에서 자기자신이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인간이라는 큰 직물의 일부분이므로, 하늘은 그들을 성도들의 형제로 여기는 것은 물론이요 죄인들의 형제들로도 여긴다.

질병과 무지와 죄에 빠져 있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그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하여 들어야 할만큼 듣지 못하고 있다. 만일 우리의 입장과 그들의 입장이 바뀌어졌다면, 우리는 그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겠는가? 그런 입장에서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을 힘이 미치는 한 그들을 위하여 해주어야 한다. 심판 때에 우리 각 사람이 설 수 있을 것인지 넘어질 것인지를 측정하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법칙은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 7:12)는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더욱 많이 받은 모든 것, 그것들이 교육과 교양, 고결한 품성, 그리스도인 교육, 종교적 경험 등임을 막론하고, 우리는 우리보다 혜택을 적게 받은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312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힘이 미치는 한 그들에게 봉사해야 한다.

하늘에서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는 영광의 천사들은 하나님의 어린 자녀들을 섬기는 일을 기뻐한다. 천사들은 그들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곳에 언제나 나타나며, 자아와 더불어 가장 어려운 싸움을 싸우고, 그들의 환경이 가장 절망적인 사람들과 함께 한다. 천사들은 많은 성품의 결합들을 가지고 있는 연약하고 불안한 영혼들을 특별히 돌봐준다. 이기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모든 면에 있어서 품성이 열등하고 타락한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일을 굴욕적인 것으로 간주하지만, 그것은 바로 하늘 조정에서 온 순결하고 죄 없는 천사들의 사업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잃어버린 상태에 놓여 있는 동안 천국을 바람직한 곳으로 여기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비난과 모욕의 생애, 수치의 죽음을 당하시기 위하여 하늘 조정을 떠나셨다. 하늘의 무한한 보화로 부요하셨던 그분께서 가난하게 되신 것은 당신의 궁핍을 통하여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그분께서 밟으신 길을 따라가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사람은 이제부터 자기 자신을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드리워진 사슬의 한 고리로, 그리스도의 자비의 계획에서 그분과 하나가 되어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구원하고자 그분과 함께 나아가는 사람으로 생각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생애하시던 장소들을 방문하여 그분께서 걸어가신 곳을 걸어보고, 그분께서 가르치기 좋아하시던 호숫가를 바라보고, 그분의 눈이 그처럼 자주 머물렀던 들과 골짜기들을 바라보는 것이 큰 특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위하여 나사렛이나 가버나움이나 베다니로 갈 필요가 없다. 우리들은 병자의 침상 곁에서, 가난한 오두막에서, 사람이 많은 대도시의 뒷골목에서, 그리고 인간의 마음에 위로가 필요한 어느 곳에서든지 예수님의 발자취를 발견할 수 있다.

313 우리는 주린 자들을 먹이고, 벗은 자들을 입히고, 고난과 고통 중에 있는 자들을 위로해야 한다. 우리는 낙심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절망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고취시켜야 한다.

이타적 봉사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사랑은 악을 행하는 자를 개혁시키는 일에 있어서 칼이나 공의의 법정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욱 효과적인 일을 할 것이다.

오늘날 호기심에 찬 군중들은 그리스도를 보고 그분의 음성을 듣기 위하여 한적한 장소에 몰려들지 않는다. 그분의 음성은 번화한 거리에서 들리지 않는다. 길거리에서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신다”(눅 18:37)고 외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말은 오늘날도 해당된다. 그리스도께서는 보이지 않게 우리의 거리를 걸어다니신다. 그분께서는 자비의 기별을 가지고 우리의 가정을 찾아오신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이름으로 봉사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협력하고자 기다리신다. 만일 우리가 그분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분께서는 우리들과 함께 계시면서 치료해 주시고 축복해 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