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과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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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종

23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요구를 채워주기 위하여 지칠 줄 모르는 종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그분께서는 인간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기 위하여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마 8:17)다. 그분께서는 병과 불행과 죄의 짐을 제거해 버리고자 오셨다. 인간에게 완전한 회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그분의 사명이었다. 그분께서는 사람들에게 건강과 평안과 완전한 품성을 주시고자 오셨다.

그분의 도움을 받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의 환경과 필요성은 제각기 달랐지만, 그분께 나아온 사람이 도움을 받지 못하고 돌아간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분께로부터 치료하는 능력의 물결이 흘러나왔으며, 사람들은 몸과 마음과 영혼이 완전해졌다.

구주의 사업은 어떤 시간이나 장소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분의 동정은 제한이 없었다. 그분께서는 치료하고 가르치는 그분의 사업을 너무도 대규모로 행하셨기 때문에 그분께로 모여든 무리들을 수용하리 만큼 충분히 큰 건물이 팔레스틴에는 없었다. 갈릴리의 푸른 언덕 위에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큰길가에서, 바닷가에서, 회당에서, 그리고 병자들을 그분께로 데리고 올 수 있는 어떤 장소에서든지 그분의 병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분께서 통과하신 모든 도시와 모든 마을과 모든 촌락에서 그분께서는 그의 손을 앓는 사람들 위에 얹으시고 그들을 고쳐 주셨다. 그분께서는 그의 기별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든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보증으로 그들을 위로하셨다. 하루 종일 그분께서는 그에게로 나아오는 사람들을 위하여 봉사하셨다. 그리고 밤에는, 가족들의 생계를 위하여 낮 동안에 적은 돈을 벌기 위하여 수고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이셨다.

238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구원에 대하여 놀라울 정도로 무거운 책임을 지고 계셨다. 그분께서는 인류의 원칙과 목적에 결정적인 변화가 있지 않으면 모든 사람이 잃어버린 바 될 것을 아셨다. 그것이 그분의 심령을 누르는 부담이 되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 위에 지워져 있는 무거운 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분께서는 어린 시절, 청년 시절, 장년 시절을 홀로 고독하게 걸어가셨다. 그러나 그분 앞에는 언제나 하늘이 열려 있었다. 날마다 그분께서는 시련과 유혹을 당하셨다. 날마다 그분께서는 죄악을 목격하셨고, 그분께서 축복하시고, 구원하기 위하여 온 사람들에게 작용하는 죄악의 세력을 보셨다. 그럴지라도 그분께서는 실망하거나 낙담하지 않으셨다.

모든 일에 있어서 그분께서는 그의 마음을 그의 사명 완수에 엄격히 맞추셨다. 그분께서는 그의 아버지의 뜻에 모든 일을 굴복시킴으로 그의 생애를 영화롭게 하셨다. 어린 시절에 예수님의 어머니께서는 그분을 랍비 학교에서 발견하고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고 말했다. 그러자 그분께서는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눅 2:48, 49)라고 대답하셨다. 그 대답은 그분의 평생 사업의 근본을 말한 것이었다.

그분의 생애는 끊임없는 자아 희생의 생애였다. 그분에게는 지나가는 나그네로 그를 영접해 주는 친구들의 친절한 영접 이외는 이 세상에서 거할 집이 없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가장 가난한 자의 생애를 사시고 가장 궁핍하고 고통 당하는 사람들과 함께 동행하고 일하기 위하여 오셨다. 그분께서는 인정받지 못하고 존경받지 못한 채로 그분께서 그토록 많은 일을 행하신 사람들 사이로 왕래하셨다.

그분께서는 언제나 인내하시고 쾌활하셨다. 고통 당하는 사람들은 그분을 생명과 평화의 사자로 환영하였다. 그분께서는 남녀들과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의 필요들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내게로 오라”고 초청하셨다.

239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봉사 기간 동안에 설교하는 것보다 병자를 치료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바치셨다. 그분의 이적은 그분께서 멸망시키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다는 당신의 말씀의 진실성을 입증하였다. 그분께서 어디로 가시든지 그분의 자비의 소식이 그분을 앞서 갔다. 그분께서 지나가신 곳은 어디든지 그분의 동정을 받은 사람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기뻐하고 있었으며, 그들이 새로 발견한 능력을 시험해 보여주고 있었다. 무리들은 그들 주위에 모여서 주님께서 행하신 일을 그들의 입을 통하여 듣고 있었다. 그분의 음성은 많은 사람들이 지금껏 처음으로 들어 본 소리였으며 그분의 이름은 그들이 처음으로 말한 말이었으며 그분의 얼굴은 그들이 처음으로 쳐다본 얼굴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고, 그분을 찬양하는 음성을 높이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분께서 마을과 도시들을 통과하실 때 그분께서는 마치 생명과 기쁨을 나누어주는 물줄기 같으셨다.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마태복음 4장 15, 16절

구주께서는 모든 치료의 사업을 사람들의 마음과 심령 속에 하나님의 원칙을 심어주는 기회로 삼으셨다. 그것이 그분의 사업의 목적이었다. 그분께서는 그의 은혜의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준비시켜 주기 위하여 이 세상의 축복을 나누어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나라의 교사들 사이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차지할 수 있으셨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는 그 길을 택하셨다. 그분께서는 이곳에서 저곳으로 다니시며 큰길가나 골목길에 있는 사람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들려주셨다. 240 바다에서, 산기슭에서, 도시의 거리에서, 회당에서, 성경을 풀이하고 있는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때때로 그분께서는 성전의 바깥 뜰에서 가르치심으로 이방인들도 그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해 주셨다.

그리스도의 교훈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성경을 설명하는 것과 너무나 달랐으므로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랍비들은 유전에 집착되어 인간의 이론과 사상을 강조하였다. 때때로 성경에 관하여 사람들이 가르치고 기록한 것이 성경 자체를 대신하였다. 그리스도의 교훈의 주제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그분께서는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기록하였으되”, “성경에 무엇이라고 말했느냐?” “너희가 어떻게 읽었느냐?”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친구이거나 원수를 막론하고 어떤 관심이 일어난 것을 볼 때마다 그분께서는 말씀을 제시하셨다. 분명하고 능력 있게 그분께서는 복음의 기별을 주장하셨다. 그분의 말씀은 부조들과 선지자들의 교훈에 빛을 비추어주었으며, 성경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계시로 주어졌다. 그분의 말씀을 듣는 청중들은 하나님 말씀에 포함되어 있는 그처럼 깊은 의미를 이전에 결코 깨닫지 못했다.

그리스도와 같은 전도자는 결코 없었다. 하늘의 왕이셨던 그분께서 당신 자신을 낮추시고 우리와 같은 인성을 입으신 것은 사람들을 그들이 있는 바로 그곳에서 만나기 위함이었다. 부자와 가난한 자, 자유한 자와 속박되어 있는 자, 곧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께서는 언약의 사자로서 구원의 기별을 증거하셨다. 위대한 치료자로서의 그분의 명성은 온 팔레스틴에 퍼졌다. 병자들은 그분에게 도움을 요청하고자 그분께서 지나가시는 곳으로 나왔다. 여기 저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말씀을 듣고자 갈망하여, 또한 그분의 손으로 만져주심을 받고자 나왔다. 그와 같이 영광의 왕께서 비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파하고 병자들을 고치셨다.

241 그분께서는 그 나라의 큰 연례 축제들에 참석하셨다. 그리고 외적인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에게 그분께서는 하늘의 사물들을 이야기해 주고 영원한 것을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지혜의 보고에서 보화를 가져다주셨다. 그분께서는 사람들에게 너무도 단순한 말로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결코 그 말을 오해할 수 없었다. 그분께서는 그의 독특한 방법으로 슬픔과 고통 중에 있는 모든 사람을 도와 주셨다. 그분께서는 부드럽고 예모있는 덕성으로 죄에 병든 영혼들에게 봉사하셨고 치료와 능력을 가져다 주셨다.

교사들의 왕이신 그분께서는 사람들이 가장 잘 아는 것을 매개로 하여 백성들과 접근하고자 하셨다. 그분께서는 그의 말씀을 듣는 청중들이 그 후에 언제나 그들의 가장 좋은 사상과 마음으로 그 말씀과 상호 연결시킬 수 있는 그런 방법으로 진리를 제시하셨다. 그분께서는 청중들의 유익과 행복이 그 자신이 보시는 바와 완전히 일치됨을 깨달을 수 있도록 가르치셨다. 그분의 교훈은 매우 솔직하고, 그분의 비유는 매우 적절하고, 그분의 말씀은 매우 동정적이며 즐거운 것이었으므로 청중들은 매혹되었다. 필요한 사람들에게 말씀하신 단순성과 열성 때문에 모든 말은 존중되었다.

그분께서 보내신 생애는 얼마나 바쁜 생애였던가! 날마다 그분께서 궁핍과 슬픔을 안고 있는 사람들의 비천한 가정에 들어가서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소망을, 근심하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은혜롭고 친절하고 동정 깊은 마음으로 그분께서는 눌린 자를 일으키시고, 슬픔에 잠긴 자를 위로하시면서 다니셨다. 그분께서는 어디로 가시든지 축복을 가지고 다니셨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봉사하시는 한편 부요한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방법을 발견하고자 연구하셨다. 그분께서는 부요하고 교양 있는 바리새인들, 유대의 귀족들, 로마의 집권자들과 더불어 교제하고자 노력하셨다. 그분께서는 그들의 초청을 받아들이시고 그들의 잔치에 참석하시고 당신 자신이 그들의 취미와 직업에 친숙하시므로 그들의 마음을 얻어 그들에게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부를 보여 주고자 하셨다.

242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 하늘에서 능력을 받음으로써 흠없는 생애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 그분께서는 지칠 줄 모르는 인내와 동정 깊은 도움으로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 주셨다. 그분께서는 부드러운 은혜로 사람들의 심령에서 불안과 의심을 제거해 주시고, 적의를 사랑으로, 불신을 믿음으로 바꾸어 주셨다.

그분께서는 그가 마음에 원하는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일어나서 그분을 따랐다. 세상에 사로잡힌 속박은 깨뜨려졌다. 그분의 음성을 듣자마자 탐욕과 야망의 정신은 마음에서 사라졌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구주를 따르기 위하여 일어났고, 모든 속박에서 벗어났다.

그리스도께서는 국적이나 계급이나 신조를 구별하지 않으셨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지역을 제한하고 하나님의 선물을 민족적인 특권으로 규정하고 세상에 있는 그 외의 하나님 가족들을 제외시키고자 욕망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장벽을 깨뜨려 버리기 위하여 오셨다. 그분께서 그의 자비와 사랑의 선물이 마치 공기와 햇빛과 땅을 적시는 소낙비처럼 제한 없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보여 주시고자 오셨다.

그리스도의 생애는 계급 제도가 없는 종교, 곧 유대인과 이방인, 자유자와 노예를 하나의 형제로 연결시켜 주고 하나님 앞에 동등하게 해주는 종교를 세우셨다. 어떤 정치적인 문제도 그분의 운동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분께서는 이웃 사람들과 낯선 사람들, 친구들과 원수들 사이에 차별을 만들지 않으셨다. 그분의 관심을 끈 것은 생명수를 갈급하는 영혼이었다.

그분께서는 어떤 사람도 무가치하다고 버리지 않으시고 모든 사람들에게 치료제를 적용시키고자 노력하셨다. 그분께서는 어떤 사람들의 무리 중에 계시든지, 그 시간과 환경에 적절한 교훈을 제시하셨다. 243 사람들이 그들의 동료들에게 나타낸 모든 무관심과 모욕은 다만 그들에게 당신의 신성과 인성을 겸한 동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더욱 깨닫게 해 주었다. 그분께서는 가장 거칠은 사람들과 가장 소망 없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넣어주고, 그들에게 흠없는 유익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보증을 주고,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생애할 수 있는 품성을 얻게 해주셨다.

때때로 그분께서는 사단의 지배 아래 들어가 그 올무에서 벗어날 힘이 없는 사람들을 만나셨다. 낙심되고, 병들고, 유혹받고 타락한 그와 같은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가장 부드러운 자비의 말씀, 곧 그 사람들에게 필요하고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을 하시곤 하였다. 그분께서는 영혼의 원수들과 백병전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셨다. 그런 사람들에게 그분께서는 인내하도록 격려하고 그들이 승리할 수 있다는 보증을 해주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들 곁에 있으며 그들에게 승리를 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분께서는 존경받는 손님으로서 세리의 식탁에 앉으셨다. 그리하여 그분께서는 그의 동정과 사교적인 친절로써 그가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분의 신임을 받을 만큼 가치 있는 위치에 놓이고자 갈망했다. 그들의 갈급한 마음에 그분의 말씀은 복되고 생명을 주는 능력으로 전달되었다. 새로운 충동이 일어났고 사회에서 버림받은 그 사람들에게 새 생애의 가능성이 열려졌다.

비록 예수님께서는 유대 사람이었지만 사마리아 사람들과 거리낌없이 사귀셨으며 당신의 동족인 바리새인들의 관습을 무시하셨다. 그들의 편견에도 불구하고 그분께서는 그 멸시받은 사람들의 호의를 받아들이셨다. 그분께서는 그들의 지붕 아래서 그들과 함께 주무셨고, 그들의 식탁에서 그들과 함께 잡수셨으며, 그들의 손으로 만들어 주는 음식을 같이 나누셨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그들의 거리에서 가르치고 무한한 친절과 예의로써 그들을 대하셨다. 그분께서는 인간의 동정의 줄로써 그들의 마음을 자신에게로 이끄시는 한편 그의 거룩한 은혜로써 유대인들이 거절한 구원을 그들에게 가져다 주셨다.

244 그리스도께서는 구원의 복음을 증거하는 기회를 소홀히 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놀라운 말씀을 들어보라. 그분께서는 그 여인이 물을 길으러 왔을 때에 야곱의 우물가에 앉아 계셨다. 그분께서는 그 여자에게 한 가지 요청을 하심으로 그를 놀라게 했다. 그분께서는 “물을 좀 달라” 고 말씀하셨다. 그분께서는 시원한 물 한 모금을 얻고자 하셨으며, 또한 생명의 샘물을 그 여자에게 줄 수 있는 길을 열고자 원하셨다. 그러자 그 여자는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라고 말하였다.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셨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7-14).

그리스도께서는 이 한 여자에게 얼마 만큼 지대한 관심을 나타내셨는가! 그분의 말씀은 얼마 만큼 열렬하고 웅변적이었는가! 그 여자가 그 말을 들었을 때에 그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뛰어가서 그의 친구들에게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고 말하였다. 우리는 “그 동리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요 14:29, 39)는 말씀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말이 그 당시부터 여러 해를 지내면서 영혼을 구원하는데 큰 역할을 한 그 감화력을 누가 감히 평가할 수 있을 것인가?

어디에서나 진리를 받고자 마음을 여는 사람이 있는 곳이면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교훈하시고자 하신다.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 주시고, 마음을 아시는 그분께서 받으실 만한 봉사가 무엇임을 말씀해 주신다. 그와 같은 사람들에게 그분께서는 비유를 사용하지 않으신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에게처럼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요 4:26)고 말씀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