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행함

본문보기

29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이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

성화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만 얻어진다. 여호와의 율법을 고의적으로 짓밟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성결과 생애의 성화를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나 그분의 율법에 관한 구원의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큰 반역자의 대열에 서 있다. 그는 하늘과 땅에 있는 하나님의 정부의 기초가 되는 하나님의 율법을 대적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무효화시키려고 애써온 그들의 괴수가 한 것과 동일한 일을 하고 있다. 계명을 어기는 자는 아무도 하늘에 들어가도록 허락될 수 없다. 왜냐하면 한 때 순결하고 고상한 덮는 그룹이었던 그가 하나님의 정부를 반역하므로 쫓겨났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성화는 다만 독선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이 그들의 구주요 성화시키는 분이라고 담대하게 주장한다. 이 얼마나 큰 기만인가! 아버지의 율법, 그리스도께서 높이고 영광스럽게 하기 위하여 오신 그 율법을 범한 자를 하나님의 아들이 성화시키시겠는가?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었노라”라고 그분은 증언하신다. 하나님은 인간의 불완전한 표준에 맞추시기 위해 그분의 율법을 낮추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 없이는 그 거룩한 율법이 요구하는 바에 이를 수 없다.

30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라”(요일 2:1).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신성한 율법을 순종하는 일을 면제시켜 주시기 위해 당신의 아들에게 고통과 경멸과 수치스런 죽음의 삶을 주시지 않으셨다. 사단의 기만적인 힘이 너무 크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속죄를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범죄자들에게는 다른 희망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다. 그는 장래에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고자 노력할 수도 잇다. 그러나 그가 과거에 진 빚은 그대로 남아있다. 그래서 율법은 그에게 죽음의 선고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인 스스로가 갚을 수 없는 그 빚을 갚아 주시기 위해 오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속죄의 희생을 통하여 죄인에게는 또 다른 시험의 기회가 허락되었다.

사단의 궤변

그리스도의 죽음이 율법을 대신하는 은혜를 가져왔다는 것이 사단의 궤변이다. 예수님의 죽음은 십계명의 법을 가장 경미한 정도로도 변화시키거나 감소시키지 않았다. 구주의 보혈을 통해 인간에게 주어진 귀중한 은혜는 하나님의 율법을 확립시킨다. 인간의 타락 이래로 하나님의 도덕적인 정부와 그분의 은혜는 분리될 수 없다. 그것들은 모든 시대를 통하여 공존한다.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시 85:10)다.

우리의 대리자이신 예수님은 범법의 형벌을 인간을 대신해서 받기로 동의하셨다. 그분은 신성을 인성으로 입으시고 인자(人子), 곧 구주요 구속주가 되셨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돌아가신 바로 그 사실이 신성한 율법의 불변성을 나타낸다. 범법자의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당신의 율법을 폐지하신다면 사람들에게 구원받을 길이 주어지고 그리스도께서도 하늘에 머물러 계시게 될 터이니, 이 얼마나 쉬운 일인가! 은혜를 통하여 율법을 깨트리는 자유를 가르치는 교리는 치명적인 기만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 그러므로 알려진 죄 가운데서 사는 동안 아무도 성화될 수 없다.

31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겸비와 고민은 아버지의 율법을 범할 자유를 인류에게 얻어 주기 위해서가 아니고 당신의 보좌에 그리스도와 함께 앉기 위해 겪은 것이었다. 가장 흉악한 죄인이 용서를 받고 순종의 생애를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은 그분의 공로와 회개와 믿음의 행사를 통해서였다. 죄인은 죄 속에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고 죄로부터 구원을 얻는다.

죄란 무엇인가

죄인이 그리스도께로 나아오고자 하는 욕망을 느끼기 전에 먼저 죄를 깨달아야 한다. “죄는 불법이니라”(요일 3:4).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롬 7:7). 계명이 사울의 양심에 새겨졌을 때 죄는 살아나고 그는 죽었다. 그는 하나님의 율법으로 정죄받은 자아를 보게 되었다. 죄인이 죄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면, 자기의 유죄를 깨달을 수 없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든지 불순종하든지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한 성경상 성화를 경험하기란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율법을 지킨다고 공언하면서 여전히 마음으로는 죄악에 탐닉되어 있는 자들은 참된 증인에 의해 정죄를 받는다. 그들은 진리의 지식에 부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진리의 거룩한 원리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 진리는 그들의 삶을 성화시키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계명을 지킨다고 공언하는 자의 생활이 그의 믿음과 모순되는 것을 눈 멀고, 곤고하고, 가난하고, 벌거벗었다고 선언한다.

하나님의 율법은 그 모습 그대로 인간을 완전히 반사하여 그에게 정확한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 묘사를 외면하고 잊어버릴 것이다. 그런가 하면 다른 사람들은 율법에 대하여 독설적인 말을 하고, 마치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의 성품의 결함을 치료하는 것인 양 행동한다. 율법에 의해 정죄의 선고를 받는 또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범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의 품성을 완성할 것이다.

그들이 거절하는 빛에 의해 정죄의 선고를 받음

32 온 세상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 그분의 율법을 범하는 죄를 범하고 있다. 절대 다수가 계속해서 범죄할 것이며, 하나님과 원수가 될 것이므로 어느 누구도 스스로 죄없다 하거나 순종하고 있다고 할 근거가 없다. 피상적인 관찰자에게는 본성적으로 얌전한 사람들, 교육을 받고 세련된 사람들이 생활에 완전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가 양심에 제시되었을 때 그것을 슬기롭게 받아들여서 성실하게 생활에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늘 나라를 볼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신기로움 때문에 그 진리들에 대해 매력을 갖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 앞에 빛이 주어질 때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그것에 의해 정죄의 선고를 받을 것이다.

이 땅위의 모든 회중 가운데는 구원에 주리고 목말라 하면서 만족을 얻지 못하는 영혼들이 있다. 밤낮으로 그들의 마음은 내가 구원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짐에 눌려 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길을 배우고자 원하면서 인기있는 설교에 열심히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너무도 흔히 그들은 웅변조의 듣기 좋은 열변만을 들을 뿐이다. 종교 집회마다 실망스럽고 슬픈 마음들이 있다. 목사는 회중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없다고 설교한다. 그는 말한다. “오늘날은 율법이 인간을 속박하지 않는다. 그대들은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그분께서 그대들을 구원해 주실 것이다. 믿기만 하라” 그리하여 목사는 감정을 그들의 표준으로 삼도록 가르치고 지적(知的)인 믿음을 그들에게 주지 않는다. 그는 매우 진실한 것처럼 공언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번민하는 양심을 거짓 희망으로 진정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당의(糖衣)를 입힌 영적 독소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거절하면서도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하기 때문에 하늘가는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도록 지도받는다. 그러나 그들은 하늘 대신에 멸망으로 가는 길을 가고 있었다는 것을 마침내 발견할 것이다. 영적인 독소는 성화의 교리로 당의가 입혀져 사람들에게 주어졌다. 33 수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신념에 정직하기만 하면 안전할 것이라 생각하면서, 그것을 열심히 삼킨다. 그러나 정직이 오류를 진리로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사람이 독을 음식이라고 생각하고 삼킬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순진이 그 복용의 효능에서 그를 구해내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우리의 안내자가 되도록 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제자들을 위하여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라고 기도하셨다. 바울은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범사를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행 26:9)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신념이 그의 길을 바르게 만들지 못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였을 때 복음이 그를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했다. 그는 변화되었다. 그의 심령 속에 심겨진 진리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로서의 믿음과 용기를 그에게 주었기 때문에 그는 어떠한 반대에도 요동치 않았고 어떠한 시련에도 위축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거절한 데 대해 위로가 되는 어떤 핑계거리를 만들 수가 있다. 그러나 어떤 변명도 심판날에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범죄한 영혼들을 범죄의 길에서 강하게 하는 자들은 범해진 율법을 통하여 위대한 입법자를 불원간에 만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복수의 날, 맹렬한 그분의 진노의 날이 다가온다. 누가 주의 오시는 날을 견딜 수 있으리요? 사람들은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했다. 그러나 그분의 분노의 화살은 신념의 화살이 뚫을 수 없었던 곳을 관통할 것이다. 하나님이 죄인을 처벌하시기 위해 일어설 날이 멀지 않을 것이다. 그날에 거짓 목자가 범법자를 보호해 줄 것인가?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불순종의 길을 간 그가 용서받을 수 있겠는가? 인기나 숫자가 어떤 사람을 무죄로 만들겠는가? 이것들은 부주의하고 무관심한 자들이 스스로 깊이 숙고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