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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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장-겟세마네

74장 - 겟세마네

685 구주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계셨다. 유월절의 크고 둥근 달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빛나고 있었다. 순례자들의 천막으로 이루어진 마을은 고요하기만 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진지하게 이야기하며 그들을 가르치고 계셨다. 그러나 겟세마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분은 이상하게도 침묵에 잠기셨다. 예수께서는 때때로 기도와 명상을 하기 위하여 이곳에 오셨으나 당신의 마지막 고뇌의 이 밤처럼 이렇게 슬픔에 가득 찬 마음으로 오신 때는 일찍이 없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지상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의 빛 가운데서 행하셨다. 바로 사단의 정신으로 고무된 사람들과 투쟁할 때에 그분은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 8:29)고 말씀하실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붙드시는 임재의 빛을 차단당한 것처럼 보였다. 이제 그분은 범죄자들과 같이 헤아림을 받으셨다. 타락한 인류의 죄짐을 당신이 지셔야만 한다. 죄를 알지도 못하는 그분이 우리 모든 사람의 죄를 지셔야만 한다. 죄가 그분에게 매우 무섭게 보일 만큼 그분이 지셔야 하는 죄악의 무게는 크며, 그분은 이것이 당신을 아버지의 사랑에서 영원히 쫓아내지는 않을까 염려하도록 유혹받는다.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깨달으시고 예수께서는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부르짖으신다.

제자들은 동산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저희 주님에게 이른 변화에 주의를 집중시켰다. 전에는 결코 예수께서 그토록 큰 슬픔과 침묵에 잠기신 것을 본 적이 없었다. 686 그분이 앞으로 나아가심에 따라 이 알 수 없는 슬픔은 더욱 깊어 갔으나 그들은 그 원인을 감히 물어볼 수 없었다. 그분의 거동은 마치 넘어지시려는 것처럼 흔들렸다. 동산에 도착하자 제자들은 저희 주님을 쉬게 하려고 예수께서 항상 쉬시던 장소를 열심히 찾아보았다. 이제 그분은 단 한 걸음도 떼어놓기 힘드셨다. 마치 무거운 짐에 눌려서 고통당하는 것처럼 예수께서는 큰소리로 신음하셨다. 두 번이나 그분의 동료들이 그분을 부축하였는데 그렇지 않았으면 땅에 쓰러지셨을 것이다.

동산의 입구 가까이에서 예수께서는 세 제자 외에 모든 제자들을 거기 두시고 그들 자신과 당신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명하셨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동산의 격리된 휴식처로 들어가셨다. 이 세 제자는 그리스도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그들은 변화산에서 그분의 영광을 보았으며 모세와 엘리야가 그분과 더불어 이야기하는 것도 보았고, 하늘에서 들리던 음성도 들었다. 이제 당신의 큰 투쟁에서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가까이 있기를 원하셨다. 종종 그들은 이 은신처에서 그리스도와 같이 밤을 보낸 일이 있었는데 이런 때에는 한동안 깨어서 기도한 후에, 아침에 예수께서 다시 일하러 가도록 깨울 때까지 저희 주님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서 평안히 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예수께서는 그들이 당신과 같이 기도로써 밤을 새우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신이 견뎌야 할 고민을 그들이 목격하는 것조차 견디실 수 없으셨다.

예수께서는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조금 나아가사 그들이 당신을 보고 들을 수 있는 멀지 않은 거리의 땅바닥에 엎드리셨다. 그분은 죄로 말미암아 아버지에게서 분리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 심연(深淵)은 매우 넓고 매우 검고 매우 깊었으므로 그분의 심령은 그 앞에서 떨었다. 이 고민을 피하기 위하여 그분은 신성의 능력을 행사하지 말아야 하셨다. 인간으로서 그분은 인간의 죄악의 결과를 감당하셔야만 했다. 인간으로서 그분은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견디셔야 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전에 항상 서시던 바와는 다른 태도로 서셨다. 그분의 고통은 다음과 같은 선지자의 말 가운데 가장 잘 묘사되어 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된 자를 치라”(슥 13:7). 죄 많은 인간들의 대속자 그리고 보증인으로서 그리스도는 거룩한 공의 아래서 고통을 받고 계셨다. 그분은 공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셨다. 지금까지 그리스도께서는 다른 사람의 중보자가 되셨으나 이제 그분은 자신을 위한 중보자를 가지고자 원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와의 연합이 깨어진 것을 느끼셨을 때 당신의 인성으로 다가오는 흑암의 세력과의 투쟁을 견딜 수 없을 것이라고 두려워하셨다. 광야의 시험에서 인류의 운명은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 때 그리스도께서는 승리자가 되셨다. 이제 유혹자는 무서운 최후의 투쟁을 위하여 나왔다. 687 이 일을 위하여 유혹자는 그리스도께서 봉사하시는 삼 년 동안 준비해 왔다. 사단은 이 일에 모든 것을 걸었다. 만일 그가 여기서 실패하면 패권을 잡으려던 희망은 좌절될 것이며 세계는 마침내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이고 그 자신도 실패하고 내어쫓길 것이었다. 그러나 만일 그리스도께서 실패하신다면 지구는 사단의 왕국이 될 것이며 인류는 영원히 그의 권세 아래 있게 될 것이었다. 당신 앞에 놓인 투쟁에서 그리스도의 영혼은 하나님에게서 분리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사단은 그리스도에게, 만일 그분이 죄된 이 세상을 위하여 보증인이 된다면 하나님과는 영원히 끊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분은 사단의 왕국에 동화될 것이며 다시는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희생으로 무엇을 얻게 될 것인가? 사람들의 죄악과 배은망덕은 얼마나 절망적으로 보였는가! 사단은 가장 어려운 상황을 들추어서 구주를 맹렬히 공격하였다. 세속적으로나 영적으로 다른 모든 백성들보다 우월함을 주장하는 백성이 그대를 거절하였다. 그들은 그들을 특별한 백성으로 만든 약속의 기초요 중심이요 보증이 되는 그대를 죽이려고 찾고 있다. 그대의 교훈을 듣고 교회의 활동에서 선두를 차지하고 있던 제자 중에 하나가 그대를 배반할 것이다. 그대를 가장 열심히 따르던 자 중에 하나가 그대를 부인할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대를 버릴 것이다. 그리스도의 온 영혼은 그 생각을 몹시 싫어하였다. 그분이 구원하시고자 했던 자들, 그분이 그렇게 극진히 사랑하신 자들이 사단의 음모에 연결되리라는 사실은 그분의 영혼을 찔렀다. 투쟁은 무서웠다. 그 투쟁의 크기는 유대 민족과 그분을 고발하고 배반한 자들과 죄 가운데 놓인 이 세상의 죄악을 합친 크기였다. 사람들의 죄악이 그리스도를 무겁게 억눌렀으며,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를 의식함으로 그분의 생명은 파쇄(破碎)되고 있었다.

인간의 영혼을 위해 지불할 값을 깊이 생각하시는 예수님을 보라. 고통 중에 마치 그분은 하나님에게서 더 멀리 떨어지지 않으시려는 것처럼 차디찬 땅바닥에 엎드리신다. 밤의 찬 이슬이 예수님의 극도로 지친 몸 위에 내리나 그분은 그것을 개의치 않으신다. 그분의 창백한 입술에서는 “내 아버지여 만일 하실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는 고통의 부르짖음이 새어 나온다. 그러나 아직도 그분은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덧붙이신다.

고통 가운데서 인간의 마음은 동정을 갈망한다. 이와 같은 갈망을 그리스도께서는 마음속 깊이에서부터 느끼셨다. 극도로 고민하는 가운데 그처럼 자주 축복하고 위로하며, 슬픔과 어려움에서 보호하셨던 제자들에게서 어떤 위로의 말을 듣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그분은 그들에게로 오셨다. 항상 그들에게 동정의 말씀을 하셨던 그분이 이제 초인간적인 고민을 당하시면서 그들이 당신과 그들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자 열망하셨다. 죄의 악함이 얼마나 어둡게 보였던가! 인류로 범죄의 결과를 당하게 하고 당신 자신은 하나님 앞에 결백한 사람으로 서라는 유혹은 무서운 것이었다. 688 만일 제자들이 이 사실을 깨닫고 감사한다는 것을 아실 수만 있었더라도 그분은 용기를 얻으셨을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고통스럽게 일어나셔서 동료들을 두고 온 장소로 비틀거리며 걸어가셨다. 그러나 그분은 “저희가 자는 것을 보”셨다. 만일 그들이 기도하는 것을 보셨더면 그분은 고통을 면하셨을 것이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 안에서 피난처를 찾았더라면 사단의 작용이 그들을 넘어뜨릴 수 없었을 것이며 예수께서는 그들의 꿋꿋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반복하여 경고하신 말씀에 유의하지 않았다. 처음에 제자들은 항상 매우 평온하고 위엄이 있으신 저희 주께서 이해할 수 없는 슬픔으로 고투하시는 것을 보고 매우 걱정했었다. 고통하는 자의 힘찬 부르짖음을 듣고 그들은 기도했었다. 그들이 주님을 버리려고는 하지 않았으나, 그들은 하나님께 계속하여 간청하였더라면 쫓아버릴 수 있었던 혼수상태에 빠져 마비된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시험을 물리치기 위하여 깨어서 열심히 기도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지 못하였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발걸음을 동산으로 향하기 직전에 이미 “오늘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같이 옥에나 죽는 곳에라도 가겠다는 가장 굳센 보증을 그분에게 드렸다. 불쌍하고 자부심이 강한 베드로는 덧붙여서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막 14:27, 29)라고 하였다. 그러나 제자들은 자신들을 의지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권고하신 대로 강한 조력자를 바라보지 않았다. 689 그리하여 구주께서 그들의 동정과 기도를 가장 필요로 하였을 때에 그들은 잠자고 말았다. 베드로까지 자고 있었다.

예수님의 품에 의지한 일이 있었던 사랑하는 제자 요한까지도 자고 있었다. 확실히, 주님을 사랑했던 요한은 깨어 있어야만 하였다. 요한은 그의 사랑하는 구주께서 극도의 슬픔에 처했을 때에 그분과 함께 열렬히 기도했어야 하였다. 구주께서는 온밤 동안 그들의 믿음이 식어지지 않도록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셨다. 만일 예수께서 지금 야고보와 요한에게 전에 질문하신 일이 있는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시며 나의 받을 침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하신다면 그들은 감히 “할 수 있나이다”라는 대답을 할 수 없을 것이었다(마 20:22 참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잠에서 깼으나 그분의 얼굴은 고민으로 몹시 변하여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의 연약함이 예수님의 동정심을 일깨웠다. 예수께서는 배반당하여 죽임을 당할 때 그들에게 임할 시험을 그들이 견디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셨다. 그분은 그들을 책망하지 않고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비록 큰 고통 가운데서라도 제자들의 연약함을 용서하려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말씀하셨다.

다시 하나님의 아들에게 초인간적인 고통이 엄습하였으므로 그분은 기진하여 실신한 상태로 전에 투쟁하시던 곳으로 비틀거리며 되돌아가셨다. 그분의 고통은 전보다 더욱 격심하였다. 마음의 고민이 그분에게 이르렀을 때에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었다. 삼(杉)나무와 종려나무들은 예수님의 고뇌를 고요히 지켜보고 있었다. 잎이 무성한 가지들에서 진한 이슬이 내려 고통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위에 떨어지는 모습은 마치 창조주께서 홀로 악의 세력과 더불어 싸우시는 것을 보고 대자연이 우는 것 같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수께서는 굳센 백향목처럼 서서 당신에게 분노를 퍼붓던 반대의 폭풍우를 물리치셨다. 완고한 의도와 적의와 교활로 가득 찬 마음을 가진 자들이 그분을 어지럽히고 넘어뜨리려고 헛되이 노력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거룩한 위엄 가운데 서 계셨다. 지금 그분은 분노한 폭풍에 시달려 꺾인 갈대와 같으셨다. 그분은 매 발걸음마다 악의 세력을 물리치고 승리를 얻은 정복자로서 당신의 사업의 정점에 다다르셨다. 이미 영화롭게 하심을 받은 자로서 그분은 하나님과 하나임을 주장하셨다. 690 분명한 어조로 그분은 찬양의 노래를 부르셨다. 그분은 용기와 친절을 담은 말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제는 어둠의 권세의 때가 이르렀다. 이제 그분의 음성은 승리의 음조가 아니라 인간적인 고민으로 가득 찬 음조로 조용한 저녁 공기를 타고 들렸다.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시는 구주의 음성이 졸음을 이기지 못하는 제자들의 귀에 들려왔다.

제자들은 처음에 그분께 가려는 충동을 받았으나 그분은 그들에게 거기 머물러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명하셨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오셨을 때 그들이 여전히 잠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셨다. 다시 그분은 우정에 대한 갈망을 느끼셨다. 곧 자신을 거의 정복한 듯한 흑암의 마력을 깨뜨리고 구원을 줄 수 있는 말을 제자들로부터 듣고자 하셨다. 그러나 그들의 눈은 피곤하여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예수님이 오심으로 그들은 잠을 깼다.

그들은 그분의 얼굴이 고뇌의 피땀으로 얼룩진 것을 보고 공포로 가득 찼다. 그들은 그분의 심령의 고뇌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사 52:14)다.

예수께서 돌아서서 다시 기도하던 곳을 찾으셨으나 큰 흑암의 공포에 압도되어 땅에 엎드러지셨다. 그 시련의 때에 하나님의 아들의 인성은 떨었다. 지금 그분은 제자들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받고 고통당하는 자신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셨다. 세계의 운명이 결정되려고 하는 두려운 순간이 이르렀다. 인류의 운명이 저울 위에서 떨고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지금이라도 범죄한 인간에게 할당된 잔을 마시지 않을 수도 있으셨다. 아직도 그 일은 너무 늦지 않았다. 그분은 이마에서 흐르는 피땀을 씻어 버리고 인간이 자신의 죄 가운데 멸망하도록 내버려두실 수도 있었다. 예수께서는 범죄자로 그의 죄의 형벌을 받게 하라, 나는 내 아버지께로 돌아가겠노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으셨다. 하나님의 아들이 멸시와 고통의 쓴 잔을 마실 것인가? 무죄한 그분이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죄의 저주의 결과를 맛볼 것인가? 예수님의 창백한 입술에서는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는 말씀이떨면서 흘러나왔다.

예수께서는 세 번이나 그 기도를 드리셨다. 인성이 그 마지막 최고의 희생으로 인해 세 번 움츠러드셨다. 그러나 이제 인류의 역사가 구주 앞에 펼쳐진다. 그분은 율법을 범한 자들을 그대로 버려 두신다면 틀림없이 멸망당할 것을 보신다. 그분은 인류의 무력함을 보신다. 그분은 죄의 세력을 보신다. 운명지어진 세계의 재난과 비탄이 그리스도 앞에 떠오른다. 예수께서는 세계의 절박한 운명을 바라보며 결심하신다. 693 그분은 자신에게 어떤 희생이 요구될지라도 인간을 구원하려고 하신다. 멸망하는 무수한 인간이 당신을 통하여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그분은 피의 침례를 받아들이신다. 그분은 순결과 행복과 영광의 하늘 조정을 떠나 잃어버린 한 마리 양, 즉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한 세계를 구원하려고 오셨다. 그분은 자신의 사명에서 돌아서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스스로 범죄한 인류의 화목 제물이 되실 것이다. 그분의 기도는 이제 복종하시겠다는 말씀뿐이다.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와 같은 결정을 하신 후 그분은 일어나다가 죽은 듯이 땅에 쓰러지셨다. 졸도하신 주님의 머리를 그들의 손으로 부드럽게 받쳐, 일반 인생들보다도 더 상하신 그분의 이마를 씻어드려야 할 제자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구주께서 홀로 포도즙 틀을 밟으셨는데 그분과 함께 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과 함께 고통을 당하셨다. 천사들은 구주의 고뇌하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천사들은 저희 주께서 사단의 군대에 포위되어 그분의 인성이 몸서리치는 불가사의한 공포에 눌린 것을 보았다. 하늘에는 침묵이 흘렀다. 거문고는 모두 멈췄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이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로부터 그분의 빛과 사랑과 영광의 광채를 거두시는 아버지를 말없는 슬픔 가운데 지켜보았던 수많은 천사들의 놀라움을 바라볼 수 있었다면, 그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죄가 얼마나 불쾌한지를 더 잘 깨달을 것이다.

타락하지 않은 세계들과 하늘의 천사들은 투쟁의 마지막이 가까워짐에 따라 열렬한 관심을 가지고 이를 주목하였다. 사단과 배도의 무리인 악의 동맹자들도 구속 사업의 이 큰 위기를 열심히 바라보았다. 선과 악의 세력들은 그리스도께서 세 번 반복하신 기도에 어떤 응답이 올 것인지를 보려고 기다렸다. 천사들은 고통당하는 거룩하신 분의 고통을 덜어 드리기를 열망하였으나 그렇게 될 수 없었다. 하나님의 아들에게 피할 길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 두려운 위기, 만물이 위험에 처하고 신비스러운 잔이 고통하시는 자의 손에서 떨고 있던 그 때에, 하늘이 열리며 폭풍이 몰아치는 그 위급한 시간의 흑암 가운데 한 빛이 비추었으며, 사단이 떨어져 나간 그 지위를 차지하여 하나님을 모시고 서 있는 힘 있는 천사가 그리스도 곁에 내려왔다. 천사는 그리스도의 손에서 잔을 취하려고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의 사랑의 보증으로 그리스도께서 이 잔을 마시도록 격려하려고 온 것이었다. 그는 신성과 인성을 겸하여 가지신 탄원자에게 힘을 주려고 왔다. 그분의 고통의 결과로 구원 얻게 될 영혼들에 대하여 말하면서 그 천사는 그리스도에게 열려 있는 하늘을 가리켰다. 그 천사는 그분의 아버지가 사단보다 더욱 위대하고 능력이 많으시므로, 그분의 죽음은 사단이 완전히 패배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며 이 세상 나라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그분께 보증하였다. 694 큰 무리의 인류가 구원, 곧 영원한 구원을 얻는 것을 볼 때에 그분은 당신의 영혼의 수고를 보고 만족하실 것이라고 그 천사는 말하였다.

그리스도의 고뇌는 그치지 않았으나 우울과 낙담은 그분을 떠났다. 폭풍은 결코 경감되지 않았지만 폭풍의 표적인 그분이 폭풍의 분노를 대면할 강한 힘을 얻으셨다. 그분은 침착하고 평온해 지셨다. 피에 젖은 그분의 얼굴에는 하늘의 평화가 깃들었다. 그분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의 고통을 맛보심으로 어떤 인간도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셨다.

잠자던 제자들은 구주를 두른 빛으로 인해 갑자기 잠에서 깨어났다. 그들은 땅에 엎드러지신 저희 주님을 굽어보는 천사를 보았다. 그들은 천사가 구주의 머리를 그의 품에 들어 올리고 하늘을 가리키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가장 아름다운 음악처럼 안위와 희망의 말을 하고 있는 천사의 음성을 들었다. 제자들은 변화산의 광경을 회상하였다. 그들은 성전에서 예수님을 둘렀던 영광과 구름 속에서 들렸던 하나님의 음성을 기억하였다. 이제 그와 같은 영광이 다시 나타났으므로 그들은 주님을 위하여 더 염려할 필요가 없었다. 그분은 하나님의 돌보심 아래 있었으며 그분을 보호하려고 힘센 천사가 보내심을 받았다. 제자들은 피로한 나머지 다시금 그들을 엄습한 이상한 혼수상태에 빠져 들어갔다. 다시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자고 있는 것을 보셨다.

슬픔으로 그들을 바라보면서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웠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고 그분께서는 말씀하신다.

바로 이 말씀을 하셨을 때에 예수께서는 당신을 찾는 폭도들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셨다. 그분은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배반자를 만나기 위하여 나아가실 때에 조금 전까지 고민하시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당신의 제자들보다 앞서 가시며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나사렛 예수라”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는 “내로라”고 대답하셨다.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바로 최근에 예수께 수종들던 천사가 예수님과 폭도들 사이로 나섰다. 거룩한 빛이 구주의 얼굴을 비추고, 비둘기 같은 모양이 그분을 가렸다. 이 거룩한 영광이 나타날 때에 살기 등등한 군중들은 잠시도 견뎌낼 수가 없었다. 그들은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제사장들, 장로들, 군사들, 그리고 유다까지도 죽은 사람들처럼 땅에 엎드러졌다.

천사는 물러가고 빛은 사라졌다. 예수께서는 도망하실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조용하고 침착하게 남아 계셨다. 영광을 받으신 그분은 지금 당신 발 앞에 무기력하게 엎드러진 그 무정한 무리들 가운데 서 계셨다. 제자들은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잠잠히 바라보고 있었다.

695 그러나 그 광경은 곧 변하였다. 폭도들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로마군인들과 제사장들과 유다는 그리스도 주위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저희 연약함을 부끄럽게 여기며 그분이 도망하지나 않을까 근심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시 구주께서는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셨다. 저희는 저희 앞에 서 계시는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를 보았으나 그것을 수긍하려고 하지 않았다.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라는 질문에 그들은 다시 “나사렛 예수라”고 대답하였다. 그 때에 구주께서는 제자들을 가리키면서 “너희에게 내로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의 가는 것을 용납하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이 얼마나 약한지를 아셨으므로 시험과 시련에서 그들을 보호하고자 하셨다. 그분은 그들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려고 하셨다.

배반자 유다는 그가 해야 할 일을 잊지 않았다. 폭도들이 동산에 들어올 때에 그는 길을 안내하였으며 대제사장은 그를 가까이 따랐다. 유다는 예수님을 찾는 자에게 신호를 주어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마 26:48)고 말하였다. 이제 그는 그들과 아무 관계도 없는 것처럼 보이려고 한다. 예수께 가까이 나아가서 다정한 친구인 것처럼 예수님의 손을 붙잡는다.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라는 말로 유다는 연거푸 예수께 입맞춘다. 그리고 마치 위험 가운데 계신 그분을 동정하여 우는 것처럼 한다.

696 예수께서는 유다에게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고 말씀하셨다. 그가 다시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고 말씀하실 때에 그분의 음성은 슬픔으로 떨렸다. 이 호소는 반역자의 양심을 일깨우고 완고한 마음을 감동시켰을 것이나 그는 염치와 성실과 인간적인 친절을 이미 저버렸다. 그는 상냥해질 의향이 없음을 보이며 방약 무인(傍若無人)하게도 버텨 섰다. 그는 자신을 사단에게 내주었기 때문에 사단을 대항할 아무런 능력도 없었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반역자의 입맞춤을 거절하지 않으셨다.

폭도들은 조금 전에 저희 눈앞에서 영화롭게 되셨던 그분의 몸에 유다가 접촉하는 것을 볼 때에 대담해졌다. 그들은 이제 예수님을 붙잡아 선한 일에만 쓰시던 그 귀한 손을 묶기 시작하였다.

제자들은 저희 주께서 자신을 잡히도록 내주시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폭도들을 죽은 사람처럼 넘어지게 한 그와 같은 능력이 예수님과 그의 동료들이 도망할 때까지 폭도들을 무기력하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자들은 저희가 사랑한 그분의 손을 묶으려고 포승을 가져오는 것을 보고 실망하고 분개하였다. 베드로는 분개하여 성급히 칼을 뽑아 주님을 방어하려고 하였으나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잘랐을 뿐이었다. 이 일을 보신 예수께서는 로마 군병들이 굳게 붙잡은 당신의 손을 풀고 “이것까지 참으라”고 말씀하시며 상한 귀를 만지시니 곧 귀가 완전히 나았다. 그러고 나서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너희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각 제자들 대신에 한 군단(軍團)씩­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왜 그분은 자신과 우리를 구원하지 않으시는가 하고 제자들은 생각하였다. 그들의 발설되지 않은 생각에 대한 대답으로 그분은 다시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고 말씀하셨다.

유대 지도자들 중 고위 관원들은 예수님을 잡는 데 친히 가담하였다. 예수님을 체포하는 일은 부하들에게 맡기기에 너무 중대한 문제였으므로 교활한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성전 경호원들과 폭도들과 합세하여 유다를 따라 직접 겟세마네에 온 것이다. 이 고관들과 연합된 무리는 어떤 무리였던가! 마치 사나운 짐승이라도 잡으러 가는 것처럼 온갖 도구로 무장한 매우 선동적인 폭도들이었다.

697 제사장들과 장로들을 돌아보며 예수께서는 엄중한 시선으로 그들을 주시하셨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저희 생명이 계속되는 한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었다. 그 말씀들은 전능하신 자의 날카로운 화살과 같았다. 예수께서는 위엄 있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가 도적이나 강도를 잡는 것같이 검과 몽둥이를 가지고 나를 대적하러 왔구나. 나는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다. 너희는 나를 잡을 기회가 많았으나 너희가 잡지 않았다. 밤이 너희들의 일하기에 더욱 적합하다.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둠의 권세로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자신을 잡아 묶도록 허락하시는 것을 보고 무서워하였다. 예수께서 자신과 그들에게 굴욕을 허락하시는 데 대하여 그들은 상심하였다. 제자들은 그분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으며 폭도들에게 굴복하시는 예수님을 비난하였다. 분노와 공포 가운데서 베드로는 이제 그들 자신을 구원해야 한다고 제의하였다. 이 제의에 따라서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같은 도망이 있을 것을 미리 예언하셨다. “보라 너희가 다 각기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요 16: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