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 선교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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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186 그리스도께서 생애하시던 장소들을 방문하는 것, 즉 그분이 밟으신 곳을 걸어 보고 그분이 가르치시기를 좋아하시던 호숫가를 바라보고 그분의 눈이 때때로 머무르던 들과 골짜기를 바라보는 것은 큰 특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위하여 나사렛이나 가버나움이나 베다니에 갈 필요는 없다. 우리들은 병상 곁에서나 빈곤한 오막집에서나 사람이 많이 모인 대도시의 뒷골목 길에서나 인간의 마음에 위안이 필요한 곳에서는 어디서든지 예수님의 발자취를 찾을 수 있다. 지상에 계실 때에 예수께서 행하신 것처럼 행함으로 우리는 그분의 발걸음을 따라 행할 수 있다.─시대의 소망, 640(영문).

예수께서는 당신이 목격하신 모든 종류의 고난을 다 덜어 주시기 위하여 일하셨다. 그는 줄 돈이 별로 없었으나 자기보다 더 궁핍하게 보이는 사람들을 도와주시기 위하여 종종 그 자신의 음식을 먹지 않으셨다. 그의 형제들은 예수의 감화가 그들이 끼친 악한 감화를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의 형제 중 아무도 가지지 못하고 또 가지기를 원하지도 않은 재치를 가지셨다. 그 형제들이 가난하고 천한 사람들에게 거칠게 말할 때에 그는 오히려 그런 가난하고 천한 사람들을 찾아서 그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다. 궁핍한 사람들에게 그는 한 잔의 냉수를 주고 자신이 먹을 음식을 가만히 그들의 손에 쥐어 주시곤 하셨다. 예수께서 그들의 고통을 덜어 주셨을 때에 그가 가르치신 진리는 그의 자비로운 행위와 관련되어 그들의 기억에 굳게 새겨지게 되었다.─시대의 소망, 86, 87(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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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그리스도가 일하신 것처럼 일해야 한다. 우리는 주린 자를 먹이고 벗은 자를 입히며 고통받는 자와 슬퍼하는 자들을 위로해야 한다. 우리는 절망하는 자들을 위하여 봉사하고 소망이 없는 자들에게 소망을 고취시켜 주어야 한다. 그리하면 우리에게도 또한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사 58:8)라는 약속이 성취될 것이다.─시대의 소망, 350(영문).

187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조력 사업에 종사해 온 사람들은 바로 주님께서 이루고자 하신 그 일을 행하고 있는 것이며 주님께서는 그들의 수고를 받아들이셨다. 이 분야에 있어서 이루어진 일들은 모든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신자들이 진심으로 찬성하고 확인한 후 열심으로 착수해야 할 사업이다. 그들의 영역 내에 있는 이 사업을 등한시하고 이 책임들을 지기를 거절함으로 교회가 큰 손실을 당하고 있다. 그들이 마땅히 하여야 할 것처럼 교회가 이 사업을 착수하였을 것 같으면 그들은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방편이 되었을 것이다.─6T, 295.

그분이 주신 모든 선물은 인류를 복되게 하고 그들의 고통과 궁핍을 덜어 주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우리는 주린 자를 먹이고, 벗은 자를 입히고, 과부와 고아를 돌아보고, 곤경에 빠진 자들과 세상에서 버린 바 된 자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세상에 불행이 만연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은 사치스럽고 호화롭게 살고 다른 사람의 자녀들은 빵을 위해 애걸하도록 결코 의도하지 않으셨다. 실생활에 필요한 재물 이상의 것은 인류에게 선을 베풀고 복을 끼쳐 주기 위하여 사람들에게 위탁된 것이다.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눅 12:33)라.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딤전 6:18). “잔치를 배설하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눅 14:13). “흉악한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어 주어라.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라.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사 58:6, 7, 10)라.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이 모든 말씀은 다 주님의 명령이다. 과연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칭하는 큰 단체들이 이 일을 하고 있는지?─실물교훈, 370, 371(영문).

선한 행동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맺히기를 요구하시는 열매이다. 즉 그것은 친절한 말과 불쌍한 자와 가련한 자와 고통당하는 자들에 대한 자비스럽고 친절한 행동이다. 마음이 낙담과 비애에 싸인 마음을 동정하고 가난한 자에게 자선을 베풀며 헐벗은 자를 옷 입혀 주고 방황하는 행인을 그대의 안방과 그대의 마음으로 맞아들일 때에 천사들이 매우 가까이 접근하며 하늘에서는 화답하는 노래가 울려 퍼지게 된다. 188 공의와 긍휼과 자비의 모든 행위는 하늘에서는 노래가 된다. 보좌에 계신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자비의 행위를 보시며 그들을 당신의 가장 귀중한 보물로 여기신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으리라. 가련한 자와 고통당하는 자들에게 행한 모든 자비의 행위는 곧 예수께 행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대가 가난한 자들을 도와주고 고통과 억압당하는 자들을 동정하며 고아의 편이 되어 줄 때에 예수님과 더 친밀해지는 것이다.─2T, 25.

가난한 자와 억눌린 자, 고통당하는 자 그리고 궁핍한 자들을 모으는 일은 현대 진리를 믿고 있는 모든 교회들이 벌써부터 하고 있었어야 할 일이다. 우리는 물질적인 필요를 공급해 주며 배고픈 자를 먹이며 유리하는 불쌍한 자들을 우리의 가정에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따뜻한 동정심을 보여야 하며, 매일 하나님께로부터 인간의 가장 비참한 지경에까지 미칠 수 있는 은혜와 힘을 얻어서 스스로 생활하지 못하는 자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이러한 일을 함으로써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소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6T, 276.

많은 사람들은 왜 그들의 기도가 그렇게 생기가 없고 그들의 믿음이 연약하여 흔들리며 그리스도인의 경험이 그렇게 어둡고 불확실한지에 대하여 이상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우리가 금식하며 만군의 여호와 앞에 슬프게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고 말한다. 이사야 58장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상태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 주셨다(6, 7절).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마음이 연약하고 의심하고 떠는 자들을 위해 지어 주신 처방이다. 슬퍼하는 자 곧 여호와 앞에서 슬프게 행하는 자들로 일어나 도움이 요구되는 자들을 도와주도록 하라.─6T, 266.

타락한 자들을 향상시키고 고통당하는 자들을 위로하는 것은 하늘의 기쁨이 된다. 그리스도께서 누구의 마음속에 거하든지간에 그는 그분과 같은 모양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교가 어디서 활동하든지간에 복을 끼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교가 사업을 행하는 곳마다 거기에는 광명이 있을 것이다.─실물교훈, 386(영문).

사렙다 과부는 자기의 적은 양식을 엘리야에게 나누어 주었고 그 보답으로 그의 생명과 아들의 생명이 보존되었다. 시련과 빈곤의 때에 자기보다 더 가난한 자들에게 동정과 도움을 주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큰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189 하나님께서는 변치 않으신다. 하나님의 능력은 지금도 엘리야의 시대보다 적어지지 않았다.─선지자와 왕, 131, 132(영문).

이타적 봉사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사랑은 악을 행하는 자를 개혁시키는 일에 있어서 칼이나 공의의 법정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욱 효과적인 일을 할 것이다. 칼이나 공의의 법정은 범법자에게 공포감을 안겨 주기 위하여 필요하다. 그러나 사랑의 마음으로 봉사하는 선교사는 그보다 더 큰일을 할 수 있다. 때때로 견책 때문에 굳어지는 마음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녹아질 것이다.─치료봉사, 96.

기억하여야 할 것

우리는 모든 교제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경험에는 인간의 눈에 가리워진 면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기억의 페이지에는 호기심 있는 사람들의 눈에 신비하게 가리워져 있는 슬픈 역사들이 있다. 거기에는 어려운 환경에서 치르는 지루하고 고된 싸움, 아마도 날마다 용기와 확신과 믿음을 약화시키는 가정 생활의 어려움이 기록되어 있을 것이다. 커다란 장애물을 놓고 생애의 싸움을 거듭하고 있는 사람들은 다만 친절한 노력만으로 보여 주는 작은 주의력으로 힘을 얻고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진실한 친구가 내미는 강하고 유용한 손이 금이나 은보다 더 가치가 있다. 친절한 말은 천사들의 미소와 마찬가지로 반가운 것이다.

빈곤과 싸우는 많은 사람들, 적은 임금을 위하여 힘겹게 일을 할 수밖에 없지만 겨우 연명할 정도의 필수품밖에 얻을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좀더 나아지리라는 희망 없이 당하는 수고와 손실은 그들의 짐을 매우 무겁게 해준다. 고통과 질병이 첨가되면 그 짐은 거의 질 수 없게 된다. 근심에 시달리고 억압된 나머지 그들은 헤어날 길을 어디에서 찾을지 알지 못한다. 그들의 시련과 마음의 고통과 실망을 동정해 주라. 그렇게 할 때 그대에게는 그들을 도와줄 길이 열려질 것이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이야기해 주고, 그들을 위하여 그들과 함께 기도하고 그들에게 희망을 넣어 주라.─치료봉사, 143, 144.

생애 자체가 고통스런 투쟁이 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늘 부족을 느끼며, 괴로워하고 불신을 나타낸다. 자신들에게는 감사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190 계속 투쟁하는 고독한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친절한 말과 동정의 표정과 감사의 표시는 마치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 한 그릇과 같을 것이다. 동정의 말 한마디, 친절한 행동 하나는 피곤한 어깨에 무겁게 지워져 있는 짐을 치워 줄 것이다. 따라서, 사심이 없는 모든 친절한 말과 행동은 잃어버린 인류를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표현이다.─산상보훈(영한 대역), 59.

도움의 손길을 뻗쳐라

죄는 모든 사악한 것 가운데 가장 악한 것이다. 그러므로 죄인을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같은 방법으로 접근할 수 없다. 세상에는 심령의 기갈을 숨기는 자들이 많이 있다. 그러한 사람들은 친절하게 말해 주고 친절하게 생각해 줌으로써 그들을 많이 도와줄 수 있다. 이 밖에도 많은 도움이 요구되는 자들이 있으나 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저 무서운 결핍을 깨닫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죄 가운데 너무 깊이 빠져 있기 때문에 영원한 사물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렸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모습도 잃어버리고 심지어 저희 영혼이 구원받아야 할 필요성까지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을 뿐더러 사람도 신임하지 않는다. 그러한 사람들 중에 많은 이들이 오직 사욕이 없는 친절한 행위를 통해서 진리로 인도될 수 있다. 저희의 물질적 필요를 먼저 돌봐 주어야 한다. 그들을 먹여 주고, 씻어 주고, 부끄럽지 않게 입혀 주어야 한다. 그들이 그대의 이기심 없는 사랑의 증거들을 보게 될 때 그리스도의 사랑을 믿기 쉬워질 것이다.

세상에는 실수를 저지르고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며 그들의 어리석음을 곰곰이 생각하는 자들이 많다. 그들은 자기들의 실수와 과오만을 생각한 나머지 마침내는 자포자기하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영혼들을 등한히 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 흐르는 물을 거슬러 헤엄을 치게 되면 물살의 힘이 그 사람을 뒤로 민다. 그러한 때에 우리의 맏형님 되시는 예수께서 일찌기 물에 빠진 베드로에게 당신의 손을 내미셨던 것처럼 우리도 그들에게 구조의 손길을 내밀자. 그들에게 희망적인 말 곧 그들에게 확신을 주고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말을 해 주라.─실물교훈, 387(영문).

아, 고통을 더욱 심하게 해 주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말아야 한다! 죄악 생애에 지쳐 있으면서도 벗어날 길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긍휼이 많으신 구주를 알려 주라. 그의 손을 잡아 주고, 그를 일으켜 주고, 그에게 용기와 희망의 말을 해 주고, 그를 도와서 구주의 손을 붙들게 해 주라.─치료봉사, 153.

그리스도인의 의무인 친절한 대접

191 남의 유익을 위해서 생애하고 남을 복되게 하며 남을 대접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이다. 참으로 우리의 돌봄과 우리 사회와 우리 가정의 도움이 필요되는 자들을 우리가 대접할 수 있을 만큼 우리의 형편이 좋을 때가 별로 없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불가피한 책임을 회피한다. 그러나 누군가가 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대개 형제들이 대접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이 그리스도인의 의무를 동등하게 분담하지 않으므로, 자발적이며 기꺼이 남을 돕는 일을 자기의 일로 여기는 몇몇 사람들이 무거운 짐을 지게 된다.─2T, 645.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 13:2). 이 말씀은 시간이 흐른다 해도 그 힘이 조금도 약해지지 않는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계속 당신의 자녀들의 길에 불행중에 축복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두시며 이 기회를 선용하는 자들은 큰 기쁨을 발견하게 된다.─선지자와 왕, 132(영문).

시험하는 과정

하나님께서는 생애의 평범한 일로 우리를 시험하신다. 사소한 일로 사람의 마음 갈피를 알 수 있다. 조그만 주의와 수많은 작은 사건들과 단순한 예의들이 인생의 행복의 골자를 이루는 한편, 친절과 고무적이며 애정적인 말을 경시하고 조그만 예의를 소홀히 한 것이 불행의 요인을 이루게 한다.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의 유익과 행복을 위해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하늘에 있는 생활 기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됨을 결국 알게 될 것이다.─2T, 133.

나는 과부와 고아들과 소경과 귀머거리와 절름발이와 여러 모양으로 고통당하는 자들로 하나님의 교회와 긴밀한 그리스도인 관계를 맺도록 하신 것이 하나님의 섭리임을 보았다. 그것은 당신의 백성을 시험하며 그들의 참된 성품을 계발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우리가 우리의 동정과 사랑과 순수한 자선을 요구하는 자들을 어떻게 대우하는지 보기 위해 주시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성품을 시험하는 하나님의 시험 방법이다. 우리가 성경에 입각한 참된 종교를 가졌다면 그리스도의 형제들을 위하여 우리가 빚진 사랑과 친절과 흥미의 빚을 마땅히 그리스도께 갚아야 하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192 우리가 우리의 형제들이며 우리 자신보다 불행한 자들에 대하여 깊은 관심과 무아의 사랑을 가짐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을 가치가 없는 죄인되었을 때에 우리에게 나타내신 당신의 무한한 사랑에 대하여 적어도 우리의 감사함을 나타내 보일 수 있는 것이다.─3T, 511.

비유의 적용

하나님의 율법의 두 가지 큰 원칙은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 사랑과 이웃에 대한 이기심 없는 사랑이다. 처음 네 계명과 나중의 여섯 계명은 다 이 두 원칙에서 기원되었거나, 혹은 매달린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여행하다가 강도를 만나 강탈당하고 매맞아 거의 죽게 되어 내버려진 어떤 사람의 비유에서 그의 이웃이 누구였는지를 그 율법사에게 설명하셨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이 사람이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도 그의 요구에 응해 줄 마음이 없었으므로 오히려 그를 피해 길 저편으로 지나갔다. 사마리아 사람은 그 길을 지나다가 도움이 필요되는 낯선 사람을 보고 그가 친척인지 혹은 그의 동족인지를 묻지 않고 누군가가 반드시 도와줘야 하므로 참변을 당한 그 사람을 도와주었다. 그는 최선을 다해 그의 상처를 치료해 주고 자기 나귀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자기의 비용을 내어 그의 필요를 돌봐 주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사마리아인이 강도를 만나 쓰러진 그 사람의 이웃이었다고 말씀하셨다. 그 레위인과 제사장은 그들의 동정과 도움이 요구되는 자들에 대하여 교회 안에 있는 어떤 냉담한 부류의 신자들을 대표한다. 이 부류의 사람들은 교회에서 그들이 차지한 지위를 불문하고 계명의 위반자들인 것이다. 그 사마리아인은 그리스도의 참된 조력자로서 선한 일에 그리스도의 본을 보이는 부류의 사람들을 대표한다.

불행한 자와 소경과 절름발이와 괴로움을 당하는 자와 과부와 고아와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를 그리스도께서는 계명을 지키며 장차 영생을 얻을 자로 나타내신다. … 그리스도께서는 불행한 자와 절름발이와 앓는 자와 과부와 고아에게 베풀어 준 자비와 선행과 깊은 동정적인 모든 행동을 그리스도 자신에게 행한 것으로 간주하신다. 193 그리고 이러한 일들은 하늘에 기록되어 보존되며 갚음을 받게 될 것이다. 그와 반면에 불행을 만난 자들에 대하여 제사장과 레위인과 같이 냉담한 자들과 타인의 불행을 이용하며 자신의 이기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 그들의 고통을 더욱 증가시켜 놓는 자들에 대하여 불리한 기록이 하늘책에 기록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불의한 행동과 우리 가운데 괴로움 당하는 자들에 대하여 소홀히 여기며 냉담했던 모든 일에 대해서 어김 없이 그 대가를 치뤄 주실 것이다. 결국 각 사람은 자기의 행한 대로 갚음을 받을 것이다.─3T, 511-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