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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0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에 관한 진리를 유대인들은 거의 잊어버리고 있었다. 랍비들은 노력에 의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얻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들은 의인이 받을 보상을 저희 자신의 행위로써 얻어 보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저희의 예배는 이욕을 탐하고 돈에 팔린 정신에서 출발되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까지도 이 그릇된 정신을 끊어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이같은 그릇된 정신을 깨우쳐 주기 위하여 늘 기회를 찾고 계셨다. 예수께서 품꾼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시기 바로 전에 그분께서 바른 원칙을 제시할 수 있는 사건이 일어났다.

예수께서 길을 걸어가고 계실 때에 한 젊은 관원이 달려와서 존경하는 태도로 꿇어 엎드려 인사하며 말하기를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했다.

이 관원이 그리스도께 이러한 질문을 했을 때에는 그가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지 못하고 다만 한 지체 높은 랍비로만 알았다. 구주께서는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 네가 어떤 근거를 가지고 나를 선하다고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만이 선하신 분이니라. 391 만일 네가 나를 그런 분(하나님)으로 인정한다면 너는 나를 하나님의 아들과 그분의 대표자로써 받아들여야 한다.

예수께서 덧붙여서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품성은 그분의 율법 속에 나타나 있으므로 네가 하나님과 융화하려면 그분의 율법의 원칙들이 네 모든 행동의 근원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의 요구를 감소시키지 않으셨다. 그분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영생을 얻는 조건임을 오해할 수 없도록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이 조건은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 그에게 요구했던 것과 같은 조건이다. 주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사람들에 요구하셨던 것보다 못하지 않은 것을 오늘날 사람들에게도 요구하시나니 곧 완전한 순종과 흠없는 의를 요구하신다. 은혜의 언약 하에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에덴에서 사람에게 요구하셨던 것과 같은 것이니 곧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하나님의 율법과 일치하는 것이다.

“계명들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이 청년은 “어느 계명이오니이까”라고 물었다. 이 청년은 어떤 의식적 율례(儀式的 律禮)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분명히 시내산에서 반포하신 율법을 말씀하셨다. 그는 둘째 돌비에 기록된 여러 계명들을 말씀하신 다음에 이것들을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한 계명으로 요약하셨다.

이 청년 관원은 서슴지 않고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라고 말했다. 율법에 대한 이 관원의 개념은 표면적이고 피상적인 것이었다. 사람의 표준에 따라 판단할 때 그는 흠 없는 품성을 보전해 왔다. 그의 외적 생애는 별로 죄가 없었다. 그는 솔직히 말해서 자기의 순종에는 결함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자기와 하나님 사이에 옳지 않은 어떤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라고 묻게 되었다.

예수께서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392 자신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범하는 자이다. 예수께서는 이 사실을 그 청년에게 보여 주시려고 그의 마음속에 있는 이기심이 드러날 수 있는 시험을 주셨다. 예수께서는 그의 품성 가운데 있는 환부(患部)를 보여 주셨다. 그 청년은 주님께서 더 이상 밝히 알려주시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는 마음속에 한 가지 우상을 간직하고 있었다. 즉 세상이 곧 그가 숭배하는 신(神)이었다. 그는 모든 계명을 지켰다고 말했으나 실상은 그 모든 계명의 정신이 되고 생명이 되는 근본 원칙을 망각하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이것의 결핍이 그로 하여금 천국에 들어가게 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의 결핍을 의미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사랑하고 세상 재물을 사랑함으로 하늘의 원칙과 조화되지 못했다.

이 청년 관원이 예수님께 왔을 때에 그의 진실성과 열성은 구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393 예수께서는 “그를 보시고 사랑”하셨다. 예수께서는 이 청년이 의의 전도자로 큰일을 할 수 있음을 보셨다. 그는 당신을 따른 어부들을 받으신 것처럼 이 재능 있고 고귀한 청년도 기뻐 받으셨을 것이다. 이 청년이 만일 자기의 재능을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바쳤을 것 같으면 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열성 있는 큰 일꾼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먼저 제자가 되는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자신을 하나님께 아낌없이 바쳐야만 했다. 구주께서 요한과 베드로와 마태와 그들의 형제들을 부르셨을 때에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눅 5:28)았다. 이 청년 관원에게도 이와 같은 헌신이 요구되었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이 요구는 당신이 몸소 하신 희생보다 더 큰 희생은 아니었다. 그는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8:9). 이 청년은 다만 그리스도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갔어야 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청년을 바라보시고 그의 영혼에 대하여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셨다. 그분은 이 청년을 사람들에게 축복을 나누는 사자로 보내시기를 원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에게 버리라고 요구하신 물질 대신에 그가 당신과 동역자가 될 특권을 주셨다. 그분은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셨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이 특권을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이 청년 자신도 그리스도를 훌륭하게 보았고 그의 마음도 그리스도께로 이끌었으나, 그리스도의 자아 희생의 원칙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예수님보다 재물을 선택했다. 그는 영생을 원했으나 그의 심령 속에 생명이 되는 이기심 없는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근심하면서 그리스도를 떠나갔다.

그 청년이 돌아갈 때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제자들을 놀라게 했다. 394 그들은 지금까지 부자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자들이라는 가르침을 받아 왔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메시야의 왕국에서 세상의 권세와 재물을 받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만일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그 외의 사람들은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제자들이 심히 놀라”더라. 그 때에 그들은 자신들도 이 엄숙한 경고를 받아야 할 사람들 중에 포함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구주의 말씀의 빛으로 말미암아 권력과 재물을 사모하는 그들의 속마음이 드러났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의 운명에 대해 불안을 느끼면서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라고 외쳤다.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이와 같이 부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부자의 재산이 광명한 천국에서 성도들에게 유업을 받을 권리를 주는 것이 아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거저 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서만 하늘 도성에 들어갈 수 있다.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고전 6:19, 20)다고 한 성령의 말씀은 가난한 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부자들에게도 하신 말씀이다. 사람이 이 말씀을 믿을진대 저희는 자기의 재산을 하나님이 위탁하신 것으로 생각하고,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고, 곤궁에 빠진 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도와주기 위하여 그것을 하나님이 지시하신대로 사용할 것이다. 사람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한데 그 이유는 사람의 마음이 이 세상 재물에 애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재물의 신을 섬기는 일에 얽매인 자들은 도와 달라는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으로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사랑을 우러러봄으로써 이기적인 마음도 녹아 부드럽게 된다. 그렇게 되면 부자들도 바리새인이었던 사울처럼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빌 3:7, 8)고 말할 수 있게 된다. 395 그리고 그들은 어떤 것도 자기들의 것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며, 또 저희 자신을 하나님의 온갖 은혜를 받은 청지기로 생각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모든 사람의 종이 되는 것도 기뻐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에 감동을 받아 제일 먼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사람은 베드로였다. 그와 그의 동생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린 일에 대해 만족하게 생각했다. 베드로는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라고 말했다.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는 관원에게 하신 조건적인 약속을 기억하면서 베드로는 자기와 자기의 동료들의 희생의 대가로 무엇을 받게 되느냐고 물어 보았다.

구주의 대답은 이 갈릴리 어부들의 마음을 놀라게 하였다. 다음의 말씀이 그들의 최고의 꿈을 실현시킨 명예를 묘사하고 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이 말씀에 부가해서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

396 그러나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라고 한 베드로의 질문은 합당치 않은 정신을 나타냈다. 만일 제자들이 이 정신을 고치지 않을 것 같으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자가 되기에 적합지 않게 될 것이다. 왜냐 하면 이 정신은 품꾼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사랑에 끌리어 그분을 따르게 되었지만 아직도 그들은 바리새인적 사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은 아직도 저희의 수고에 합당한 보수를 받으리라는 생각으로 일했다. 그들은 자신을 높이는 정신과 스스로 만족히 여기는 정신을 품고 서로를 비교했다. 저희 중에 한 사람이 어떤 일에 실패하면 다른 사람들은 우월감을 가지곤 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이 복음의 원칙을 망각하지 않도록 하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을 취급하시는 방법과 그들이 주님을 위해 일할 때에 어떤 정신을 가져야 할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하여 한 가지 비유를 말씀하셨다.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으니.” 일자리를 구하는 자들이 장터에 나가 기다리는 것이 그 당시의 관습이었으므로 고용주들은 품꾼을 찾기 위하여 그리로 나갔다. 비유 가운데 나오는 집주인은 일꾼을 얻기 위하여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장터로 나갔다고 했다. 이른 아침에 고용된 자들은 일정한 품삯을 정하고 일을 했다. 그 후로 고용된 자들은 품삯을 집주인의 처분에 맡겼다.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 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품삯을 주라 하니 제 십일 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집주인이 자기 포도원에서 일한 일꾼들을 취급한 방법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취급하시는, 방법을 나타낸다. 397 이 방법은 항간에 널리 퍼져 있는 사람들의 관습과는 달랐다. 이 세상 사업에서는 일한 분량에 따라 보수를 준다. 품꾼들도 자기가 일한 만큼의 삯을 받을 줄로 기대한다. 그러나 이 비유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 나라가 아닌 당신의 나라의 원칙을 설명하고 계셨다. 그리스도는 어떤 사람의 기준의 지배도 받지 않으신다. 주님께서는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 55:8, 9)고 말씀하셨다.

이 비유 가운데 먼저 나온 일꾼들은 품삯을 작정하고 일했기 때문에 작정한 금액보다 더 받지 못했다. 후에 온 일꾼들은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는 주인의 약속을 믿고 일했다. 그들은 품삯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음으로써 주인에 대한 신임을 나타내었다. 그들은 주인이 정당하고 공평하게 처리해 줄 것을 믿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일한 분량에 따라 보수를 받은 것이 아니라 주인의 아량에 따라 보수를 받았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경건치 않은 자를 의롭다 하시는 그분을 의지하기를 바라신다. 그분의 보수는 우리의 공로에 따라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엡 3:11) 정하신 당신의 뜻을 따라주시는 것이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딛 3:5) 하신다. 그리고 주를 의지하는 자들을 위하여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엡 3:20)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치 있게 보시는 것은 우리가 한 일의 양이나 눈에 보이는 결과가 아니라 그 일을 한 정신이다. 열한 시에 포도원에 들어온 자들은 저희가 일할 기회를 얻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저희 마음은 그들을 일꾼으로 불러 주신 주인에 대한 감사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 집주인이 그들에게 하루의 품삯을 지불해 주는 것을 보고 그들은 매우 놀랐다. 그들은 그만한 품삯을 받을 만큼 일하지 못한 것을 알고 있었다. 398 포도원 주인의 모습에 나타나 있는 친절함이 그들을 매우 기쁘게 해줬다. 그들은 집주인의 인자함과 저희가 받은 후한 보수를 도무지 잊을 수 없었다. 자기의 무가치함을 알면서 열 한 시에 주의 포도원에 들어간 죄인도 그러했다. 그가 일한 시간이 너무도 짧았기 때문에 품삯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받아 주셨기 때문에 그의 마음에 기쁨이 충만했다. 그는 그리스도와 동역자가 된 특권을 감사히 생각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열심히 일했다. 이러한 정신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높이기를 기뻐하시는 정신이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받을 보수의 다소를 생각지 말고 그분을 신뢰하기를 바라신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때에는 보수에 대한 생각이 가장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며 그것이 우리의 봉사를 촉진시키는 동기가 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차적인 의미로는 보상 받을 것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약속하신 당신의 축복을 감사하게 생각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가 보상받는 일에 열중하거나 우리가 행하는 의무에 대해 모두 다 보수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지 않기를 바라신다. 우리는 보상을 받기 위해서 너무 조급하게 행하지 말 것이며, 보수의 여하를 막론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야 한다. 399 하나님과 동포들에 대한 사랑이 우리의 행동의 동기가 되어야 한다.

이 비유는 맨 먼저 일하라는 부름을 받고도 주의 포도원에 들어가기를 게을리 한 자들을 변호하는 것이 아니다. 열한 시에 집주인이 장터에 나아가 일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들을 보고 말하기를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 하셨고 저희는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보면 오후에 부름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는 한 사람도 아침에는 장터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그 부르심을 거절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거절했다가 후에 뉘우치고 회개하는 것은 좋은 일이나 처음에 받은 은혜의 초청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은 안전하지 못하다.

포도원의 일꾼들이 “한 데나리온씩”을 받았을 때에 아침부터 일한 사람들은 불평했다. 우리는 열 두 시간을 일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저녁 서늘한 때에 단 한 시간만 일한 사람들보다 삯을 더 많이 받는 것이 합당치 않은가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라고 말하였다.

집주인이 그중 한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 22:14).

이 비유 가운데 먼저 온 일꾼들은 그들의 봉사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보다 삯을 더 많이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대표한다. 그들은 저희 일을 자만하는 정신으로 착수하고 자기 부정과 희생의 정신으로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한평생 하나님을 섬겼다고 주장한다. 400 그러고는 고난과 궁핍과 시련을 누구보다도 많이 견디었을 것이므로 저희는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보수를 받을 특권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저희가 그리스도의 종이 된 특권을 생각하기보다는 저희가 받을 보수를 더 많이 생각한다. 저희는 자기들의 수고와 희생이 그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보다 더 명예를 받을 가치를 부여해 준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저희는 이러한 요구가 인정받지 못할 때에는 불평한다. 만일 저희가 자기들의 일을 사랑과 신뢰의 정신으로 했더라면 그들은 계속적으로 첫째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평하고 원망하는 그들의 성미는 그들이 그리스도인답지 못하고 믿을 만하지 못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그것이 자기가 남보다 앞서겠다는 욕망과, 하나님께 대한 저들의 불신과, 형제들에게 대한 투기심과, 인색한 정신을 나타낸다. 주님의 선하심과 관대함이 오히려 그들에게는 원망거리가 된다. 그리하여 저희는 저희의 심령과 하나님 사이에 아무런 연락이 없다는 것을 나타낸다. 저희는 크신 일꾼이신 주님과의 협력에서 오는 기쁨을 맛보지 못한다.

이처럼 편협하고 자신만을 돌아보는 정신보다 하나님께서 더 싫어하시는 것은 없다. 그분은 이러한 성미를 가진 자들과 같이 일하실 수 없다. 그들은 성령의 역사에 대해 무감각하다.

유대인이 먼저 주님의 포도원에 부름을 받았으나 이 때문에 저희는 교만하고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가 되었다. 저희의 오랜 기간의 봉사가 저희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해 준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이방 사람들이 저희와 동등한 특권을 갖는다는 말보다 더 저희를 격분시키는 말은 없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당신을 따르도록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 사이에 이러한 폐단이 생기지 않도록 경고하셨다. 그분은 교회가 연약해지고 화를 입게 되는 것은 스스로 의롭다는 정신 때문임을 아셨다. 사람들은 저희가 천국의 한 자리를 얻기 위하여 저희의 힘으로 무엇인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사람들은 저희가 어느 정도 진보하면 주님께서 그들을 도와주신다고 생각한다. 401 그리하여 그들은 자기만을 많이 나타내고 예수를 적게 나타내게 된다. 남보다 조금 앞서게 된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이 자만심을 가지고 자기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아첨하는 말을 좋아하고 자기들이 가장 중요한 사람으로 생각되지 않으면 질투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이러한 위험에 대하여 경고하셨다.

우리의 공로를 자랑하는 일은 합당하지 않다.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 9:23, 24).

상급은 우리의 행위로 인하여 받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그분의 은혜로 말미암아 받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도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 4:1~5). 그러므로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자만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원한을 품을 이유가 없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특권을 가진 것이 아니며 또한 어느 누구도 보상을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402 먼저 온 자나, 나중 온 자나 이 크고 영원한 상급에 다 같이 참여하는 것이므로 먼저 온 자는 나중 온 자를 기쁨으로 환영해야 한다. 보상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을 아까워하는 자는 자기 자신이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이다. 품꾼의 비유는 모든 질투와 의심을 책망한다. 사랑은 진리를 기뻐하고 시기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다. 사랑이 있는 자는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품성과 자기 자신을 비교할 뿐이다.

이 비유는 그들의 봉사 기간이 아무리 길고 수고가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저희 동포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께 대한 겸비함이 없을 것 같으면 그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모든 품꾼들에게 경고하는 것이다. 자신을 보좌에 앉히는 곳에는 신앙이 있을 수 없다. 자신의 영광을 목적으로 하는 자는 주님의 사업에 유능한 일꾼이 되게 하는 유일한 미덕이 자신에게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자만심과 자부심을 품을 때에는 언제든지 주님의 사업은 손상을 입는다.

우리의 일이 하나님께 가납되도록 해주는 것은 우리가 일한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그 일에 자원해서 바친 우리의 마음과 충실함이다. 모든 봉사에는 완전한 헌신이 요구된다. 아무리 작은 의무라 할지라도 자기 자신을 잊고 성심 성의껏 할 때에는 그것이 이기심으로 손상을 입은 가장 큰일보다 더 하나님께 기쁨이 된다. 그분은 우리가 얼마나 그리스도의 정신을 품고 있으며, 우리의 일이 얼마나 그리스도의 모습을 나타내는지를 주목하신다. 그분은 우리가 성취한 일의 분량보다도 우리가 일하는 동안 가졌던 사랑과 성실성을 더욱 귀히 보신다.

이기심이 죽을 때, 으뜸이 되려는 분쟁심이 사라질 때, 감사의 정신이 마음에 가득 차고 사랑이 생애를 향기롭게 할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게 되고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 인정을 받게 된다.

진실한 일꾼들은 저희 일이 아무리 괴로울지라도 그것을 고역으로 생각지 않는다. 403 그들은 이 사업을 위해 자신의 것을 쓸 준비를 하고 있고 실제로 써 버리지만 그 일이 그들에게 기쁨이 되고 즐거운 봉사가 될 것이다. 하나님 안에 있는 기쁨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표현된다. 그들의 기쁨은 그리스도 앞에 놓여 있는 기쁨 곧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요 4:34) 이 될 것이다. 저희는 영광의 주님과 협력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이 모든 수고를 가볍게 하고 우리의 의지를 견고케 하며 어떠한 일을 당할지라도 우리의 심령에 용기를 주게 된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으로 고상해지고, 이기심 없는 마음으로 일하며 그리스도의 긍휼하심을 나누어 주고 그분의 사업에 참예해서 주님과 협력함으로써 저희는 주님의 기쁨을 확산시켜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분의 고귀한 이름에 존귀와 찬송을 돌리도록 돕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을 위하여 참된 봉사를 하는 모든 사람이 지녀야 할 정신이다. 이러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은 비록 꼴찌인 것처럼 보이나, 첫째가 되는 반면에 이러한 정신이 부족한 많은 사람들은 첫째인 것처럼 보이나 꼴찌가 될 것이다.

자신을 그리스도께 바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업에서 큰일을 할 기회나 큰 희생을 할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것이 반드시 순교자의 희생만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고 마음의 위로를 받아야 한다. 하늘책에 가장 높은 자로 기록되는 자도 반드시 날마다 위험과 사망을 직면하는 외방 선교사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자기 개인의 생활 속에서, 날마다 자아를 굴복시키고, 진실한 목적과 순결한 사상을 가지며 어떠한 불쾌한 일에서도 온유함을 유지하고 지극히 작은 일에서는 믿음과 경건함과 신실함을 나타내고 가정생활에서도 그리스도의 품성을 나타내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교사나 순교자보다 오히려 더욱 귀한 자가 될 수 있다.

아, 품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얼마나 다른가!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세상은 물론 가까운 친구들까지도 알지 못하는 수많은 시험들 곧 가정과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시험들을 대항하고 있는 것을 보신다. 그분은 사람들이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심령을 겸비하게 하고 또 단 하나의 악한 생각 때문에 진심으로 회개하는 것을 보신다. 404 하나님은 당신의 사업에 온 마음을 바쳐 헌신하는 자들을 보신다. 그분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의 격렬한 투쟁을 하는 것을 지켜보시고 그들의 승리를 주목하신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과 천사들이 잘 알고 계신다.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들은 그의 앞에 있는 기억책에 기록된다.

성공의 비결은 우리의 지식이나 지위에 있는 것이 아니며, 또 사람의 숫자나, 재간이나, 그들의 의지(意志)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자신의 무력함을 느끼고 그리스도를 명상해야 한다. 즐겨 순종하는 자는 모든 능력의 근원이 되시고, 모든 생각의 근원이 되시는 자를 통하여 이기고 또 이기는 생애를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일한 시간이 아무리 짧고 우리의 일이 아무리 천할지라도, 만일 우리가 단순한 믿음으로써 그리스도를 따를 것 같으면 우리는 보수를 받지 못해 실망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가장 위대하고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얻을 수 없는 것을 가장 미약하고 가장 비천한 사람이 얻을 수 있다. 천국의 황금문은 자기를 높이는 자에게는 열리지 않는다. 그것은 교만한 자들에게는 열리지 않는다. 그러나 영원한 문은 작은 아기가 떨리는 손으로 건드릴 때에 활짝 열리게 될 것이다. 순박한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 일한 사람들에게 주시는 은혜의 보상은 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