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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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 그리스도께서는 감람산 위에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재림에 대하여 말씀하신 일이 있었다. 그분은 당신의 재림의 때가 가까웠음을 보여 줄 징조를 말씀해 주시고 당신의 제자들에게 깨어 준비하라고 명하셨다. 그는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고 다시 반복하여 경고하셨다. 다음으로 그는 그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여 주셨는데 그것은 무료하게 기다리는 일로 시간을 보낼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일하면서 시간을 보내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교훈을 달란트의 비유로써 가르쳐 주셨다.

그분은 “천국”은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라고 말씀하셨다.

이 비유 가운데서 다른 지방으로 가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대표한다. 326 이 비유를 말씀하시던 때는 바로 조금 후에 그분이 세상을 떠나 하늘로 가시려던 때였다. 여기에 “종들”, 혹은 노예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대표한다.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값으로 산 것이”(고전 6:20) 로되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벧전 1:18, 19) 산 것이니 이는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후 5:15).

모든 사람은 다 이 무한한 값으로 산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모든 보물을 이 세상에 부어 주심으로써, 즉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하늘을 우리에게 주심으로써 각 사람의 의지와 애정과 지능과 심령을 다 사셨다.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은 다 주님의 소유이다. 모든 사람은 그분을 위해 봉사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저희가 이 요구에 어떻게 응했느냐에 따라 큰 심판 날에 그것에 대해 회계(會計)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요구를 모든 사람이 다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비유 가운데 그리스도의 종으로 나타난 자들은 저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봉사하라는 초청을 받아들였다고 주장하는 자들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봉사를 위하여 구속함을 받았다. 우리 주께서는 인생의 참된 목적은 봉사에 있음을 가르쳐 주셨다. 그리스도 자신이 일꾼이셨으며 그분을 따른 모든 사람들에게 봉사의 법칙, 곧 하나님과 저들의 동포에게 대한 봉사의 법칙을 주셨다. 이 점에 있어서 그리스도께서는 저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고상한 생애의 개념을 세상에 보여 주셨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생애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결된다. 봉사의 법칙은 우리를 하나님과 연결시키는 고리가 되는 동시에 우리 동포들과 연결시키는 고리가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종들에게 “자기 소유” 곧 당신을 위하여 사용해야 할 것들을 맡겨 주신다. 그분은 “각각 사무를 맡기”신다. 각 사람은 하늘의 영원한 경륜 속에서 각자가 차지할 자리를 갖고 있다. 각 사람은 영혼 구원 사업을 위하여 그리스도와 협력해서 일해야 한다. 327 하늘 집이 우리를 위하여 준비되어 있음이 확실한 것처럼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일할 특별한 자리가 정해져 있다는 사실도 확실하다.

주제제목없음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교회에게 위탁하신 달란트는 특별히 성령이 나누어 주시는 선물과 축복을 나타낸다.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고전 12:8~11). 모든 사람이 다 같은 선물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주님의 종들 각자에게 어떤류의 성령의 선물을 주시기로 약속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제자들과 작별하실 때에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요 20:22)고 말씀하셨다. 그는 또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눅 24:49)라고 말씀하셨으나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야 비로소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 제자들이 성령의 역사를 위하여 믿음과 기도로서 저희 자신을 완전히 굴복시켰을 때에 비로소 성령의 부어 주심을 받았다. 그 때에 특별한 의미에 있어서 하늘의 선물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 위탁되었다.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엡 4:8).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엡 4:7),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고전 12:11). 이 모든 선물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우리의 것이 되었지만 실지로 그것을 소유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을 받아들이는 데에 달려 있다.

328 성령의 약속이 느껴져야 할 만큼 절실하게 느껴지지 않고 있다. 이 약속이 마땅히 성취되어야 할 만큼 성취되지 않고 있다. 복음 사업이 그처럼 무력한 이유는 성령의 임재가 없기 때문이다. 학식과 달란트와 웅변과 선천적 또는 후천적 재능을 다 가졌다해도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한 사람의 마음도 감동시킬 수 없고 단 한 명의 죄인도 그리스도를 믿게 할 수 없다. 이와 반면에 만일 저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성령의 선물을 갖게 된다면 아무리 가련하고 무식한 제자일지라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이 우주에서 최고의 감화를 끼치는 통로가 되게 하실 것이다.

다른 달란트들

특별한 성령의 선물만이 비유에 나오는 달란트라고 할 수 없다. 이 달란트는 선천적이고, 후천적인 것에 관계없이 또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에 관계없이 모든 선물과 재능을 다 포함한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에 사용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때, 우리는 우리의 모든 소유와 우리 자신을 아울러 그분에게 바치는 것이다. 그분은 우리가 바친 것을 순결하게 하시고 고상하게 하셔서 그것으로 동료 인간들을 축복하고 그분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데 쓰도록 우리에게 다시 돌려주신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각각 그 재능대로” 나누어 주셨다. 달란트는 아무렇게나 나누어 주시는 것이 아니다. 다섯 달란트를 사용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받게 된다. 두 달란트만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두 달란트를 받게 된다. 한 달란트만을 지혜롭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달란트를 받는다. 아무도 저희가 더 큰 선물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슬퍼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각 사람에게 달란트를 나누어 주신 분은 그것이 크거나 작거나 간에 각자가 그 맡은 달란트를 잘 활용할 때 모든 사람들로부터 똑같은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이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사용해야 하고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한 달란트를 사용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고후 8:12)신다.

달란트의 사용

329 비유에는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다고 했다.

달란트는 아무리 적을지라도 사용해야 한다. 우리에게 가장 크게 관계되는 문제는 내가 얼마나 많이 받았느냐가 아니고, 내가 받은 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의 온갖 능력을 계발하는 것이 하나님과 우리의 동포를 위해 해야 할 첫 번째 의무이다. 330 재능과 유용성이 날마다 자라나지 않는 자는 인생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자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공언할 때 주님의 일꾼으로서 우리가 가능한 한 최고의 표준에 달하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최대의 선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의 각 기능을 최대한 완전하게 계발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이루어야 할 큰 사업을 가지고 계신다. 그분은 현세에서 가장 신실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는 자에게 오는 세상에서 가장 많은 것을 유업으로 주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대리자들을 택하시고 그들로 날마다 같지 않은 환경에 처하게 하심으로 당신의 경륜을 이루고자 하신다. 그분의 경륜을 이루고자 하는 일념으로 그분은 당신의 대리자들을 택하시되 그들이 완전하기 때문에 택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분과 연합함으로 완전함을 얻게 하기 위하여 택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표준을 높이 세우기로 결심한 자들만을 받으실 것이다. 그분은 당신의 대리자들에게 무슨 일에나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의무를 지우신다.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도덕적으로 완전하기를 요구하신다. 우리는 결코 선천적으로나 후천적으로 악으로 기울려는 우리의 성벽에 맞추기 위하여 의의 표준을 낮추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품성의 불완전함이 죄가 된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품성의 모든 의로운 특성들이 하나님 안에서 전체적으로 완전하고 조화를 이루게 되어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누구나 다 이 특성을 가질 특권이 있다.

하나님과 동역자가 되고자 하는 자들은 신체의 각 기관(器管)과 마음의 자질을 완전하게 하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참된 교육은 육체적·지적·도덕적 능력을 우리의 모든 의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준비시키는 것이다. 이 교육은 거룩한 봉사를 위하여 육체와 정신과 영혼을 훈련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영생에 이르게 하는 교육이다.

주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모든 방면으로 능률과 재능이 자라나기를 요구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는 봉사를 받으시기 위하여 피를 흘리시고 고난을 받으심으로써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셨다. 331 그분은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어떻게 일해야 하고 어떤 정신으로 일하여야 할 것에 대한 모본을 보여 주셨다. 그분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당신의 사업을 가장 잘 추진하고 당신의 이름을 영화롭게 함으로써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요 3:16)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며 그분에게 최대의 사랑과 충성을 바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를 바라신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한 품성을 얻는 일이 쉽다는 보증을 주지 않으셨다. 고상하고 모든 면으로 원만한 품성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연히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고상한 품성은 그리스도의 공로와 은혜를 통하여 개인이 노력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재능과 정신력을 주시지만 품성 형성은 우리가 하는 것이다. 품성은 자아로 더불어 맹렬하게 싸움으로써 형성된다. 타고난 성벽을 끊어 버리기 위하여 거듭거듭 계속적으로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자신을 면밀하게 비판해야 하고 단 하나의 좋지 않은 성벽도 고쳐지지 않은 채 남아 있도록 해서는 안 된다.

어느 누구도 “나는 품성의 결점을 고칠 수 없다”는 말을 하지 않게 하라. 만일 그대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대는 분명히 영생을 얻지 못할 것이다. 할 수 없다는 것은 그대의 의지에 달린 것이다. 그대가 하려고 하지 아니하면 할 수 없게 된다. 진짜 어려움은 성화되지 못한 타락한 마음에서, 생기며 하나님의 지배에 복종하기를 즐겨하지 않는 데서 생긴다.

하나님께서 큰일을 할 수 있는 자질을 주신 많은 사람들이 아주 조금밖에 성취하지 못하는 것은 저희가 적게 노력하기 때문이다. 허다한 사람들이 확실한 생애의 목적도 없고 달하여야 할 표준도 없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그들의 행위에 적절한 보응을 받게 될 것이다.

그대는 절대로 그대 자신이 세운 표준보다 더 높이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표준을 높이 세우고 비록 고생이 되더라도 한 계단 한 계단씩 극기와 희생으로 그 진보의 사다리의 꼭대기까지 올라가도록 하라. 332 아무것도 그 일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라. 운명이라는 것이 아무리 사람을 운신할 수 없을 만큼 단단히 붙잡아맨다 할지라도 그것을 타개할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역경은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굳은 결심을 일으킨다. 하나의 장벽을 깨뜨릴 때 앞으로 나갈 수 있는 더욱 큰 힘과 용기를 얻게 된다. 단호한 결심을 가지고 옳은 방향으로 매진하라. 그리하면 역경이 그대의 방해자가 되는 대신에 오히려 돕는 자가 될 것이다.

주의 영광을 위하여, 또한 품성의 아름다움을 닦기 위하여 대망(大望)을 품으라. 그대가 품성을 닦는 모든 면에 있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 에녹이 비록 부패된 시대에 살고 있었으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것처럼 그대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도 에녹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

어떤 시험도 그를 타락시키지 못했던 저 신실한 정치가 다니엘과 같이 굳게 서라. 그대의 죄를 없이하기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버리시기까지 그대를 사랑하신 그분을 실망시키지 말라. 그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기억하라. 비록 지금까지 실수했다 할지라도 그대가 그 실수를 하나의 경고로 삼을 것 같으면 그대는 틀림없이 승리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그대는 패배를 승리로 바꾸게 되어 그대의 원수로 실망하게 하고 그대의 구주를 높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꼴 지워진 품성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내세로 가지고 갈수 있는 유일한 재물이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교훈을 따라 사는 자들은 모든 신령한 학식을 하늘 집으로 가져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 가서도 우리는 계속 진보하게 된다. 그러므로 현세에서 우리의 품성을 계발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하늘 천사들은 단호한 믿음을 가지고 그들의 행실에까지 완전함을 나타낼 그러한 품성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협력할 것이다. 이 일에 힘쓰고 있는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네 오른편에 서서 너를 돕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333 사람의 의지와 하나님의 뜻이 협력할 때에 그것은 전능한 것이 된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의 힘을 의지하여 이룰 수 있다. 그가 명하는 모든 것은 다할 수 있는 것들이다.

지능

하나님께서는 지능을 훈련시키기를 요구하신다. 그분은 당신의 종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욱 많은 재능과 더욱 명석한 식별력을 갖도록 계획하셨다. 그분은 유능하고 정통한 일꾼이 되기에는 너무 무관심하고 게으른 자들을 불쾌히 여기신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이 명령은 온 마음을 다하여 우리의 창조주를 알고 그분을 사랑하기 위하여 우리의 지능을 최고도로 계발해야 할 책임을 우리에게 부과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의 지배를 받을 것 같으면, 우리의 지능이 철저하게 계발되면 될수록 그것을 더욱 효과적으로 주님을 섬기는 일에 사용하게 될 것이다. 교육을 받지 못했을지라도 하나님께 헌신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을 나누고자 갈망하는 자들은 주께서 그를 당신의 사업에 사용하실 수 있고 또 사용하고 계신다. 그러나 그와 같은 헌신적인 정신을 가진 사람이 원만한 교육을 받았을 것 같으면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훨씬 더 큰일을 할 수 있다. 저희는 그들보다 훨씬 더 유리한 입장에 서 있다.

주께서는 우리가 배우는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교육을 받게 되기를 바라신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저희가 어디서 어떻게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거나 그분에 대해 말하라는 부르심을 받게 될지 알 수 없다. 오직 우리의 천부께서만 사람을 어떠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아신다. 우리의 연약한 믿음으로는 분간할 수 없는 가능성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우리는 필요한 경우에 가장 높은 이 세상 권세자의 앞에 서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방법으로 그분의 말씀의 진리를 증거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훈련시켜야 한다. 334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일할 지적(知的) 자격을 갖출 수 있는 기회를 하나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교육이 필요한 청년들은 교육을 받고자 하는 굳은 결심을 가지고 그 일을 착수해야 한다.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자진하여 그것을 개척하라. 닥치는 기회가 아무리 적을지라도 그것을 붙잡도록 하라. 절약하라. 그대의 식욕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또는 오락을 위하여 재정을 허비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원하시는 만큼 쓸모 있고 유능한 일꾼이 되기로 결심하라. 그대가 손을 대는 그 일은 어떤 일이든지 간에 철두철미하게 하고 신실하게 하라. 지력을 강화시키기 위하여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온갖 이점과 특전을 이용하라. 서적의 연구를 유용(有用)한 노동과 연결시키고 성실한 노력과 깨어 기도함으로써 위로부터 오는 지식을 얻도록 하라. 그렇게 함으로 그대는 원만한 교육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그대의 품성이 점점 자라날 것이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감화시킬 수 있는 감화력을 갖게 되어 그대는 그들을 의와 거룩한 길로 인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와 특권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자기 수양에 있어서 훨씬 더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참된 교육은 대학에서 줄 수 있는 교육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물론 과학을 연구하는 일도 등한히 해서는 안 될 것이나 하나님과의 산 연결을 맺음으로 얻을 수 있는 보다 더 고상한 교육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모든 학생들로 하여금 성경을 그들의 교과서로 삼고 크신 교사와 교통하도록 하라. 신령한 진리를 탐구할 때 만나게 될 어려운 문제들과 씨름하도록 마음을 교육하고 훈련시키라.

저희 동료 인간들을 축복하기 위하여 지식을 갈망하는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께로부터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함으로 그들의 지력은 열심 있는 활동을 하도록 깨우쳐질 것이다. 그리하여 재능은 넓어지고 계발될 것이며, 정신은 능력을 얻고 유용하게 될 것이다.

335 하나님의 일꾼이 되고자 하는 자들은 반드시 자기 자신을 수양해야 한다. 이같은 수양이 웅변이나 그의 가장 훌륭한 재능으로 성취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도 잘 훈련하면, 자제력이 없는 가장 고상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나 가장 유능한 재간을 가진 사람들이 성취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더 고상한 일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언어

언어의 재능은 부지런히 수련해야 할 달란트 가운데 하나이다. 하나님께 받은 우리의 모든 달란트 가운데 언어의 달란트보다 더 큰 축복이 되는 것은 없다. 우리는 말로써 사람의 마음을 각성시키기도 하고, 설득시키기도 한다. 언어로써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을 올릴 수 있으며, 언어로 다른 사람들에게 구주의 사랑을 이야기해 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선을 위하여 가장 효과적인 것이 되도록 언어를 수련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

지성인들과 그리스도인까지도 음성을 수련해서 올바로 사용하는 일을 등한히 하는 경향이 많다. 다른 사람이 얼른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너무 작게 또는 너무 빨리 말하거나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어떤 이들은 둔탁하고 불분명한 소리를 낸다. 또 어떤 이들은 듣는 사람이 짜증스러울 만큼 너무 높고 날카롭게 찢어지는 듯한 소리로 말하는 자들도 있다. 성경절이나 찬미가나 보고서 등을 공중 앞에서 낭독할 때에 어떤 때는 사람들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게 낭독함으로 인하여 그 집회가 힘이 없어지고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폐단은 고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고쳐야 한다. 이 점에 대한 성경의 지시가 있다. 에스라 시대에 백성들 앞에서 성경을 낭독한 레위 사람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율법 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느 8:8)였다.

누구나 다 부지런히 노력함으로써 남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낭독하고 똑똑하고 거침이 없는 목소리로 분명하게 말하고 깊은 인상을 줄 수 있게 하는 재간을 얻을 수 있다. 336 우리는 그렇게 함으로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의 우리의 유용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부요함을 알려 주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결함이 없이 말할 수 있도록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듣는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소개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전하는 통로의 역할을 하는 자들이 무뚝뚝한 자가 되기를 원치 않으신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하여 세상에 전해지는 하늘의 축복을 사람들이 경하게 여기거나 그 가치를 저하시키기를 원치 않으신다.

우리는 완전한 모본이 되시는 예수를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는 성령의 도움을 받기 위하여 기도해야 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의 모든 기관을 잘 훈련해서 완전한 일을 하도록 힘써야 한다.

이것은 특히 대중을 상대로 하는 봉사에 부름을 받은 자들에게 더욱 그러하다. 모든 목사와 교사들은 저희가 영생에 관계되는 기별을 백성들에게 전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저희가 말한 진리가 마지막 심판 날에 사람들을 심판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 기별을 전하는 자의 말하는 방법 여하에 따라서 그 기별을 받아들이게도 되고 거절하게도 될 것이다. 그런즉 말할 때에는 듣는 자로 하여금 그 말이 잘 이해되고 마음에 감화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말은 천천히, 똑똑하게 그리고 엄숙하게 말할 뿐 아니라 중요한 대목에서는 온 정력을 기울여야 한다.

언어를 바르게 수련해서 사용하는 일은 그리스도인 활동의 모든 분야와 관계가 있다. 그것은 가정생활에는 물론 피차 하는 교제에도 관계가 있다. 우리는 말할 때 쾌활하게 말하고, 순결하고 정확하게 말할 뿐 아니라 친절하고 예절 있게 말하도록 습관을 길러야 한다. 부드럽고 친절한 말은 사람의 심령에 내리는 이슬이나 가랑비와 같다. 성경에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니”(시 45:2),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사 50:4)하심이라고 하였다. 또 주께서 우리에게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골 4:6) 고 말씀하셨으니 이는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엡 4:29)기 위함이다.

337 우리가 다른 사람의 잘못을 고쳐 주고자 할 때는 특별히 우리의 말을 조심해야 한다. 그 말들은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향기가 될 수 있고 사망에서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은 남을 책망하고 충고할 때 날카롭고 가혹한 말을 할 뿐 아니라 상한 심령을 고치는 데 합당치 못한 말을 한다. 이러한 서투른 말을 함으로 상대방의 정신을 격분시키고 흔히는 상대방에게 반감을 갖도록 한다. 진리의 원칙을 옹호하려는 자들은 하늘로부터 사랑의 기름을 받을 필요가 있다. 어떤 경우를 물론하고 책망은 사랑으로 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에 우리의 말은 상대방을 감화시킬 것이며 화나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성령을 통하여 힘과 능력을 주신다. 이 일은 그가 하시는 일이다.

한마디의 말이라도 경솔히 하지 말라. 험담과 경솔한 이야기와 참을성 없는 원망과 불순한 암시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의 입술에서 흘러나와서는 안 된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엡 4:29)라고 기록 하였다. 여기에 더러운 말이라는 것은 더러운 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신성한 원칙과 배치되고 순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신앙과 배치되는 모든 말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더러운 말은 암시적으로 말하는 불순한 말과 은근한 비평을 암시하는 말들을 포함한다. 이러한 불순한 말이 즉시로 배격되지 않으면 그것이 큰 죄를 범하도록 이끈다.

더러운 말을 억제해야 할 의무가 모든 가정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지워져 있다. 어리석은 말을 함부로 하는 무리들과 함께 있을 때에 할 수 있는 대로 화제를 바꾸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좋지 않은 말은 슬쩍 흘려버리고 유익을 주는 방면으로 화제를 전환시키도록 해야 한다.

자녀들에게 올바른 언어 습관을 가르쳐 주는 것이 부모들이 해야 할 일이다. 이러한 수양에 가장 좋은 학교는 가정생활이다. 자녀들은 매우 어릴 때부터 저희 부모와 서로 간에 존경하고 사랑하는 말을 하도록 배워야 한다. 338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온순하고, 참되고, 순결한 말만이 저희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도록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리고 부모 자신이 날마다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우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면 저희는 저희 자녀들에게 교훈과 모본으로서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말”(딛 2:8)을 하도록 가르쳐 줄 수 있다. 이것이 부모들의 의무 중에 가장 크고 중요한 책임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들은 우리의 말이 그리스도인 생애에 있어서 피차에 도움이 되고 권장이 될 만한 말을 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실행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우리의 경험 가운데 있는 귀중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와 인자하심에 대하여, 또한 구주의 비할 데 없는 사랑에 대하여 말해야 한다. 우리의 말은 찬송과 감사의 말이 되어야 한다. 만일 그 정신과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 있을 것 같으면 그것이 우리의 대화에 나타날 것이다. 우리의 영적 생애에 있어서 믿음을 나누는 일이 어려운 일이 되지 않을 것이다. 위대한 사상, 고상한 포부, 진리에 대한 명백한 이해, 사욕이 없는 목적, 경건과 성결에 대한 갈망 등이 우리의 말 속에 열매를 맺어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 어떠한 것임을 드러낼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말 가운데 나타나시게 되어 그 말이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모르는 자들에게 그분에 대하여 말해 주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처럼 하여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회당에 계실 때나, 길을 가실 때나, 언덕에서 조금 떨어진 배에 타셨을 때나, 바리새인의 잔치와 세리가 준비한 식탁에 앉으셨을 때를 막론하고 어느 곳에 계시든지 사람들에게 더욱 고상한 생애에 관한 것들을 이야기하셨다. 그분은 만물과 일상 생애의 사건을 진리의 말씀과 연결시켜서 말씀하셨다. 청중의 마음은 그분에게 이끌리었으니 이는 그가 병자를 고치시고, 슬퍼하는 자를 위로하시고, 아이들을 그의 팔에 안고 복을 빌어 주신 연고이다. 그분이 입을 열어 말씀하실 때에 청중들은 그분을 똑바로 바라보았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 말씀 하나하나가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향기가 되었다.

339 우리도 또한 그렇게 해야 한다. 우리는 어디 있든지 다른 사람에게 구주에 대하여 이야기해 줄 기회를 엿보아야 한다. 우리가 선을 행하는 일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를 것 같으면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환영했던 것처럼 우리를 환영할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만 사람에 뛰어난”(아 5:10) 자이고, “그 전체가 사랑스”(아 5:16)러운 자이신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에 조급하게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지혜로써 말해야 한다. 이 일은 우리가 우리의 말의 재능을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고상한 사업이다. 그런 재능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죄사하는 구주로 소개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감화력

그리스도의 생애는 계속 넓어지는 무제한의 감화력, 즉 당신을 하나님과 온 인류에게 연결시키는 감화력을 가졌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람에게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 수 없게 하는 감화력을 주셨다. 개인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동료 인간과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대가족의 일원이 되어 있으므로 상호간에 의무를 지고 있다. 아무도 사람들을 떠나 홀로 살 수 없다. 이는 각 사람의 행복이 각각 다른 사람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자기가 다른 사람의 행복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그들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힘쓰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시다.

사람은 각각 자신의 분위기 곧 생명력을 주는 믿음과 용기와 소망으로 가득 차고 달콤한 사상의 향기가 넘치는 분위기에 둘러싸여 있거나 아니면 이와 반대로 불만과 이기심으로 침울하고 우울하고 쓸쓸한 분위기에 둘러싸일 수도 있으며 때로는 품고 있는 죄로 인하여 몹시 오염된 유독한 분위기에 둘러싸일 수도 있다. 우리를 두르고 있는 분위기로 말미암아 우리와 접촉하는 자들이 은연중에 그 영향을 받게 된다.

이러한 감화에 대해 우리는 벗어날 수 없는 책임을 진다. 우리의 말과, 행동과, 의복과, 품행과, 심지어는 안색까지도 각각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340 그렇게 끼친 감화가 선악간에 사람이 판단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렇게 전달된 충동은 반드시 수확하게 될 씨앗이 된다. 이 충동은 우리가 그 범위를 알 수 없는 인간사(人間事)의 긴 사슬의 하나의 고리가 된다. 만일 우리가 모본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선한 원칙을 실행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 같으면 우리는 그들에게 선을 행할 능력을 주는 것과 같다. 이 능력을 받은 사람이 그 같은 감화를 다른 사람에게 끼치게 되고, 또 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에게 끼치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가 무의식중에 주는 감화로 인하여 여러 천만인이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조약돌을 호수 가운데 던지면 하나의 파문(波紋)이 생기고, 이어서 다른 파문들이 생기게 되어, 그 파문이 증가됨에 따라 파문이 그리는 원형(圓形)은 점점 넓어져서 마침내는 그 호수의 가장 자리까지 이르게 된다. 우리의 감화도 역시 그러하다. 우리의 감화력은 우리가 알고 조종할 수 있는 이상으로 멀리 퍼져서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거나 저주가 되기도 한다.

품성은 힘이다. 참되고 이기심 없고 경건한 생애가 나타내는 무언의 증거는 소멸할 수 없는 감화력을 발산한다. 우리의 생애 가운데 그리스도의 품성을 나타냄으로써 우리는 영혼 구원 사업에서 그리스도와 협력하게 된다. 우리의 생애 가운데 그리스도의 품성을 나타냄으로써만 우리는 그리스도와 협력할 수 있다. 우리의 감화의 범위가 넓으면 넓을수록 더욱 많은 선을 행할 수 있다. 하나님을 섬기노라고 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라 그들의 생애에 율법의 원칙을 실천할 때 곧 저희의 모든 행동이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고 저희의 이웃 사람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한다는 것을 증거할 때 교회는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감화력은 이에 못지않은 악에 대한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기 자신의 영혼을 잃어버리는 것도 두려운 일이지만 다른 사람의 영혼을 잃게 하는 것은 더욱 두려운 일이다. 우리의 감화력이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된다면 그것은 생각만 해도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그리스도와 함께 모아들인다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그분으로 부터 흩어 버리고 있다. 341 이 때문에 교회가 매우 연약하다. 많은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남을 비평하고 비난한다. 그들은 의심과 질투와 불만을 표시하므로 결국은 자기 자신을 사단의 도구가 되게 한다. 그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대적 마귀는 그들을 통해서 자기의 목적을 이루고 있다. 나쁜 인상이 나타나고 그늘이 드리우고 사단의 화살이 과녁에 적중된다. 그리하여 불신임과 불신과 철저한 무신론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뻔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박히게 된다. 동시에 사단을 위해 일한 자들은 저희가 만든 회의론자(懷疑論者)들과 책망과 권면에 대해 마음을 완고하게 갖는 자들을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저희를 그런 사람들과 비교해서 덕이 있고 의롭다고 우쭐댄다. 그들은 그들의 품성이 이처럼 비참하게 파괴된 것은 그들의 재갈 물리지 아니한 혀와 반역적 마음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의 감화 때문에 이들이 시험에 빠져 타락하게 되었다.

소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자들의 경박, 이기적인 방종과 부질없는 냉담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생명의 길에서 떠나게 한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저희가 끼친 감화의 결과를 보기를 두려워할 자들이 많이 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서만 우리는 이 천품을 올바로 사용할 수 있다. 우리 자신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선한 감화를 끼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부족을 깨닫고 하나님의 능력의 필요를 느끼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을 의지하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하루나 한 시간이나 한 순간의 일도 예측할 수 없으므로 단 하루도 우리의 길을 천부께 맡기지 않고는 그 날을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우리를 지키도록 배치되어 있으므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천사의 보호에 맡긴다면 위험할 때마다 저희가 우리의 오른편에 서서 도와줄 것이다. 우리가 무의식중에 좋지 않은 감화를 끼칠 위험이 있을 때에 천사들은 우리의 옆에서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나가도록 지혜를 주고, 적절한 말을 하게하며, 우리의 동작을 다스려 줄 것이다. 342 그리하여 우리의 감화가 비록 소리도 없고 의식되지 않을지라도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와 천국으로 이끄는 큰 힘이 될 수 있다.

시간

우리의 시간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매 순간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우리는 그것을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해야 할 엄숙한 의무가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 가운데 그분이 시간에 대해서처럼 엄격하게 따지실 것은 없다.

시간의 가치는 헤아릴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매분초의 시간을 귀히 여기셨으므로 우리도 시간을 그와 같이 귀하게 여겨야 한다. 인생은 헛되이 보내기에는 너무도 짧다. 우리가 영생을 위하여 준비할 은혜의 기간은 불과 며칠밖에 없다. 우리는 낭비할 시간도 없고, 이기적 오락을 위하여 쓸 시간도 없고, 죄에 방종할 여가도 없다. 내세 즉 영생을 위하여 품성을 개발해야 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 조사 심판을 위하여 준비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

사람은 겨우 생을 시작하자마자 죽기 시작한다. 그리고 영생을 얻는 데 대한 참된 지식을 얻지 못한다면 간단없는 세상의 수고는 헛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모든 시간을 근무하는 날처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하늘 집과 불멸의 생명을 위하여 자기를 적합한 자가 되도록 준비할 것이다. 그런 사람은 이 땅에 태어난 것이 잘된 일이다.

우리는 시간을 아끼라는 권면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일단 낭비된 시간은 전혀 회복할 수 없다. 우리는 단 일초도 회복할 수 없다. 우리가 우리 시간을 아낄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은 남아 있는 시간을 가치 있게 사용하는 것과 하나님의 크신 구속 사업에 그분과 동역자가 되는 것뿐이다.

그렇게 하는 자에게는 성품의 변화가 일어난다. 그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왕족의 일원이 되고, 하늘 임금의 자녀가 된다. 그는 천사들의 친구가 되기에 합당하게 된다.

343 지금은 동료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일할 때이다. 어떤 이들은 주님의 사업을 위해 금전만 바치면 그것으로써 저희가 해야 할 본분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저희는 주를 위하여 개인적으로 봉사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이용하지 않고 헛되이 지내버린다. 그러나 건강하고 힘이 있는 사람이 하나님을 위하여 활발하게 봉사하는 것은 저희의 특권이요 의무이다. 모든 사람들이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금전을 바치는 것만으로는 이 일을 대신할 수 없다.

일분일초에는 영원한 결과가 내포되어 있다. 우리는 언제 부름을 받든지 봉사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는 비상 대기병이 되어야 한다. 지금은 도움이 요구되는 사람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할 기회가 있지만 그런 기회가 다시 주어지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 바로 그런 사람에게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눅 12:20)라고 말씀하실는지 알 수 없다. 우리의 태만으로 인하여 그 사람이 주를 만날 준비를 갖추지 못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큰 심판 날에 우리가 하나님께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우리가 일시적이고 세속적인 사물 곧 영원한 사물과 비교할 때에 하나의 작은 원자에 불과한 일들을 위하여 근심하고 걱정하는 일에 온 정신을 쏟기에는 인생이 너무나 엄숙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사 현세의 일에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이 일을 부지런히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 못지않게 참된 신앙의 일부를 이룬다. 성경은 게으름을 시인하지 않았다. 게으름은 세상을 괴롭히는 최대의 저주이다. 참으로 거듭난 남녀라면 모두 부지런히 일하는 자가 될 것이다.

지식과 지능을 습득하는 일에 있어서 우리의 성공 여부는 우리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지능을 계발하는 데 있어서 빈곤이나 신분의 비천이나 역경으로 인하여 지장을 받을 필요는 없다. 일분일초라도 소중히 여겨라. 쓸모없는 이야기로 허비하는 시간, 아침에 침상에서 공연히 써버리는 시간, 전차나 기차로 여행하는 시간, 대합실에서 기다리는 시간, 식사를 기다리는 시간, 약속한 시간에 늦는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과 같은 이런 부스러기 시간을 잘 붙잡아 독서와 연구와 숙고하는 일에 쓴다면 얼마나 큰 일을 성취하게 될까! 확고한 목적과 불요불굴의 근면함과 주의 깊은 시간의 절약이 지식과 지능을 습득하게 해서 그것이 그들로 하여금 어떠한 영향력 있고 유용한 지위라도 차지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해줄 것이다.

344 질서 있고 철저하고 민첩하게 하는 습관을 배양하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의무이다. 일을 더디고 서툴게 하는 것은 그 일이 어떠한 성격의 일이든지간에 핑계의 조건이 될 수 없다. 항상 일을 하고 있는 데도 그 일이 끝나지 않는 것은 그 일에 마음과 정성을 쏟지 않기 때문이다. 일을 하는 데 남보다 더디고 서툰 사람은 반드시 그 결점을 고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가장 좋은 결과를 얻도록 시간을 효과 있게 사용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데 머리를 쓸 필요가 있다. 기지(機智)와 방법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열 시간에 할 일을 다섯 시간에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집안일을 늘 하고 있는 데 그것은 할 일이 그렇게 많아서가 아니라 시간을 절약할 계획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느릿느릿하고 우물거리기 때문에 아주 적은 일을 크게 만든다. 그러나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이같은 우물거리는 습관을 고칠 수 있다. 일할 때는 먼저 분명한 목표를 세우도록 하라. 어떤 일정한 일을 하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요구되는지를 먼저 결정하고 그 결정한 시간 안으로 그 일을 마칠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의지력을 작용시키면 손도 민첩하게 움직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바로잡고자 하는 결심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들의 옳지 못한 습관이 그대로 굳어 버릴 수 있는 반면에, 저희의 능력을 잘 계발시킴으로 가장 고상한 봉사를 할 수 있는 재능을 얻게 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저희는 사회의 요구에 따라 어떤 곳, 어떤 장소에 있게 될 것이며 그들의 실력은 사람들의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345 많은 유년과 청년들이 가정에서 책임을 나눠짐으로써 부모에 대한 효성을 표시할 수 있는 시간을 쓸데없이 낭비해 버린다. 청년들은 다른 사람이 져야 할 많은 책임들을 저희의 튼튼한 어깨에 질 수 있다.

그리스도의 생애는 어려서부터 매우 활동적이었다. 그분은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살지 않았다. 그분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었으나 오히려 당신의 부친 요셉과 같이 목수 일을 하셨다. 그분의 직업은 의미가 있는 직업이었다. 그분은 품성을 건설하는 분으로서 이 세상에 오셨으며 그분이 하시는 일은 모두 완전했다. 그분은 당신의 거룩한 능력으로 품성을 변화시키는 일에 완전하셨던 것처럼 세속적인 일에도 완전하셨다. 그분은 우리의 모본이시다.

부모들은 저희 자녀들에게 시간의 가치와 시간을 옳게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들에게 하나님을 존경하고 사람들에게 축복이 될 일을 힘써 하는 것이 가치 있는 일임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자녀들은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을 위하여 선교사가 될 수 있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아무 일도 시키지 않는 것보다 더 큰 죄를 범할 수는 없다. 그렇게 둔다면 자녀들은 쉽게 게으름뱅이가 되고 나아가서는 무능하게 되어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저희가 장차 자라서 그들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어떤 직업에 종사하게 될 때에도 그들은 자기 일을 게으르고 느리게 할 것이요, 그러면서도 저희들은 신실하게 일했을 때에 받게 될 보수를 기대한다. 이런 종류의 일꾼들과 신실한 청지기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꾼들 사이에는 하늘과 땅처럼 엄청난 차이가 있다.

세상일에 나태하고 부주의한 습관을 가진 사람은 그 습관들이 저희 신앙 생애에 재현되어 그것들이 그로 하여금 하나님을 위하여 능률적인 봉사를 하기에 적합지 못한 자가 되게 할 것이다. 부지런히 노력했더라면 세상에 축복이 되었을 많은 사람들이 게으름으로 인하여 파멸되었다. 그들은 하는 일이 없고 분명한 목표가 없기 때문에 만 가지 시험을 초래한다. 악한 친구들과 못된 습관이 그들의 심령과 정신을 부패시켜 그 결과로 그들은 이 세상에서 파멸될 뿐 아니라 내세를 위한 생명까지도 잃어버리게 된다.

346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어떠한 사업에 종사하든지 간에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 12:11)고 가르친다.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전 9:10).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골 3:24).

건강

건강은 사람들이 별로 그 가치를 깨닫지 못하는 축복 가운데 하나인데 우리의 정신적·육체적 능률이 주로 그것에 달려 있다. 우리의 동기와 정서가 우리의 신체 속에 자리 잡고 있으므로 우리의 달란트를 가장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육체를 가장 양호한 상태로 보존하여 영적 감화를 가장 잘 받을 수 있는 상태로 보존해야 한다.

체력을 약화시키는 것은 모두 정신력을 약화시켜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판단력을 감소시킨다. 그리하여 우리는 선을 택할 힘이 약해지고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할 의지력도 약해진다.

우리의 체력을 잘못 씀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될 수 있는 우리의 삶의 기간을 단축시킨다. 그뿐 아니라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업을 완수하지 못하게 한다. 우리 자신이 나쁜 습관에 빠지도록 방임하고 밤늦게까지 자지 않을 뿐 아니라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식욕을 방종함으로써 허약의 기초를 닦는다. 또 우리는 운동을 등한히 하고, 심신을 과도히 사용함으로 신경계통에 균형에 잃게 한다. 자연의 법칙을 무시함으로 자기들의 수명을 짧게 하고 봉사할 수 있는 자격을 상실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대하여 도둑질하는 죄를 범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들은 저희 동포들에 대해서도 도둑질하는 죄를 범한다. 다른 사람에게 축복을 나눌 수 있는 기회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세상에 보내어 하라고 하신 일이 저희의 실책으로 중단되고 만다. 저희는 매우 짧은 시간에 이를 수 있었던 일까지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347 만일 우리가 세상에 줄 수 있는 유익을 우리의 악습으로 인하여 주지 못하게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에 대하여 우리에게 죄를 물으실 것이다.

자연의 법칙을 범하는 것은 곧 도덕적 법칙을 범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도덕적 법칙뿐 아니라 자연법칙도 만드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348 그분은 이 법칙을 당신의 손가락으로 사람의 모든 신경과 근육과 기관(器管)에 친히 기록하셨다. 우리의 신체 조직의 어떤 부분이든지 간에 그것을 잘못 사용할 때에는 그 법칙을 범하게 된다.

주의 사업을 행하기에 적절한 건강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다 인체의 구조를 잘 알아야 한다. 육체적 생명을 잘 보존하고 발달시킴으로서 인간을 통하여 신의 성품이 잘 드러나게 해야 한다. 신체 조직과 영적 생애의 관계는 우리가 연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목 가운데 하나이다. 이 과목을 가정과 학교에서 깊이 연구해야 한다. 누구나 다 자기들의 신체 조직과 그것의 활동을 지배하는 법칙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자기의 육체에 대한 법칙을 고의로 배우려하지 않고 그 법칙을 범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 자신의 생명과 건강을 가장 양호한 상태로 보존해야 한다. 우리의 습관은 마음의 지배를 받아야 하며 우리 마음은 하나님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 20)고 사도 바울은 말했다.

우리는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할 뿐 아니라 우리의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 말씀에는 육체적 힘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영적 사물뿐 아니라 세속적 사물에 있어서도 참된 일꾼이셨다. 그리고 그분은 모든 일을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굳은 결심으로 하셨다. 하늘과 땅의 사물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욱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더욱 완전히 그리스도의 감독 아래 있다. 최초의 지상 성막의 설비를 설계하신 분은 그리스도였다. 349 그분은 솔로몬의 성전 건축에 대한 일체의 설계도를 주셨다. 나사렛이라는 촌에서 목수의 일을 하시면서 지상 생애를 사셨던 그분은 당신의 이름이 존경을 받게 될 거룩한 건물을 설계하신 하늘의 건축 기사이셨다.

성막을 짓는 자들에게 성막을 가장 공교하고 아름답게 지을 수 있는 지혜를 주신 분은 그리스도시다. 주께서는 “내가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사렐을 지명하여 부르고 하나님의 신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 공교한 일을 연구하여…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세워 그와 함께하게 하며 무릇 지혜로운 마음이 있는 자에게 내가 지혜를 주어 그들로 내가 네게 명한 것을 다 만들게 할지니”(출 31:2~6)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업의 어떤 분야에서 일하든지 간에 당신의 교역자들이 그분을 저희가 가진 모든 것을 주신 분으로 바라보기를 원하신다. 모든 올바른 발명과 진보는 오묘한 지혜를 가지고 놀라운 기사(奇事)를 행하시는 하나님께 그 근원을 두고 있다. 의사가 능숙한 솜씨로 환자를 어루만지는 기술과, 신경과 근육을 치료하는 그의 능력과 그가 가진 오묘한 신체의 조직에 대한 지식은 병자를 위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목수가 망치를 쓰는 기술과 대장장이가 모루를 치는 힘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달란트를 맡겨 주시고 그들이 당신에게 지혜를 구하기를 기대하신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또 어떤 분야의 일을 하든지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주관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 일을 완전하게 하도록 하시고자 하신다.

신앙과 사업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이다. 성경을 기초로 한 신앙이 우리가 하는 모든 일과 우리가 말하는 모든 것에 섞여져야 한다. 영적인 일과 세속적인 일에 있어서 한결같이 하나님의 힘과 인간의 힘이 결합되어야 한다. 이 두 힘은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사업, 곧 공업이나 농업이나 상업이나 그 외 어떤 종류의 기업이든지 간에 그 사업에서 연합해야 한다. 350 모든 그리스도인 활동에 있어서 이 두 힘은 협력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협력이 가능할 수 있는 유일한 원칙을 선포하셨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는 생각이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의 동기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해야 한다.

건물을 지을 때에도 예배를 드릴 때처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절대로 필요하다. 그리고 만일 교역자들이 인격 형성에 바른 원칙을 적용했더라면 저희가 건설하는 모든 일에서 그들은 은혜와 지식 가운데서 자라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큰 재능이나 아무리 훌륭한 제사라할지라도 자기 자신을 산 제물로 제단에 올려놓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가납하시지 않으신다. 뿌리가 먼저 거룩해야 된다. 그렇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주님께서는 다니엘과 요셉을 영민한 감독자로 삼으셨다. 그들은 자신을 기쁘게 하는 대신에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살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하여 일하실 수 있으셨다.

다니엘의 실례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이 실례는 사업가는 반드시 교활한 수단가가 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 다니엘은 걸음마다 하나님께로부터 교훈을 받을 수 있었다. 다니엘은 바벨론 나라의 총리대신인 동시에 하늘로부터 영감의 빛을 받은 하나님의 선지자였다. 하나님 말씀에는 세속적 야망을 가진 정치가들은 자라나는 풀과 같고, 시드는 풀의 꽃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당신의 사업에 있어서 지혜 있는 사람들과 각 분야의 사업에 자격을 갖춘 사람들을 갖고자 하신다. 진리의 대 원칙을 그들이 취급하는 모든 사업에 활용하는 사업가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들의 재능은 면밀한 연구와 훈련을 통해서 완전하게 되어야 한다. 351 지혜롭고 능률적인 일꾼이 되기 위하여 그들의 기회를 활용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바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데 저희의 재능을 사용하고 있는 자들이다. 다니엘에 대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그의 모든 업무처리 상태를 엄격하게 조사해 봤지만 단 하나의 흠이나 실책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모든 사업가들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를 보여 주는 하나의 표본이 된다. 그의 역사는 두뇌, 뼈, 근육, 마음 그리고 생명을 하나님의 사업에 바치는 사람이 어떤 일을 이룰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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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재물을 맡겨 주신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재산을 얻을 능력을 주신다. 그분은 하늘의 이슬과 산뜻하게 하는 소나기로 땅에 물을 대신다. 그분은 땅을 따스하게 하는 햇볕을 주심으로 만물에게 생기를 주시고 초목을 무성하게 하사 열매를 맺게 하신다. 그리고 그분은 당신의 것을 당신께 돌리기를 요구하신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돈을 주신 것은 우리 자신을 높이고 영화롭게 하기 위함이 아니다. 우리는 신실한 청지기로써 이 돈을 하나님을 존경하고 영화롭게 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저희의 재물의 일부분만이 주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희는 종교적 목적과 구제 사업을 위하여 얼마의 돈을 떼 놓은 후에 그 나머지는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마음대로 사용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이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은 다 주님의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사용한 용처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 돈을 한푼한푼 쓰는 데서 우리가 하나님을 최상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지의 여부가 나타날 것이다.

352 돈은 큰 선을 행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가치가 있는 것이다. 돈이 하나님의 자녀의 수중에 있을 때는 그것이 주린 자의 양식이 되고, 목마른 자의 마실 물이 되고, 헐벗은 자의 옷이 된다. 그것은 또 압제받는 자에게 방어물이 되고, 병든 자에게 도움의 방편이 된다. 그러나 돈을 생활필수품을 마련하고, 다른 사람을 축복하고, 그리스도의 사업을 전진시키는 목적 이외에 사용할 것 같으면 그 돈은 모래와 마찬가지로 쓸모없는 것이 된다.

아껴 모아서 사장(死藏)해 둔 재산은 쓸데없는 것일 뿐 아니라 하나의 저줏거리다. 그 재산은 이생에서 하늘 보물에 대한 사람들의 애착심을 빼앗는 올무가 된다. 하나님의 큰 날에 사용하지 아니한 달란트와 등한히 한 기회를 들어 그것을 소유했던 자들을 정죄할 것이다. 성경에는 이렇게 말했다.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군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약 5:1~4).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재물을 쓸데없이 낭비하고 조심성 없이 쓰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신다.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요 6:12)고 하신 절약에 대한 그분의 교훈은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자기가 가진 돈이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라고 생각하는 자는 그 돈을 경제적으로 사용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주기 위하여 절약하는 것을 자기의 의무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모양을 내고 방종하는 데 돈을 많이 쓰면 쓸수록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자에게 옷을 줄 자금은 더욱더 부족하게 된다. 쓸데없이 허비된 모든 돈이 그것을 허비하는 자들로부터 행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빼앗아 버린다. 그것은 또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재간을 개발함으로 당연히 하나님께 돌려야 할 존경과 영광을 하나님께로부터 빼앗아 버린다.

친절한 마음과 애정

친절하고 관대한 마음과 애정과 영적 사물을 빨리 깨닫는 이해력 등은 귀한 달란트인 동시에 이러한 달란트를 가진 자는 중대한 책임이 있다. 이 모든 달란트는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353 그들은 이런 장점을 가진 것만으로 만족히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봉사하는 일에 이런 특성을 사용하지 않는다. 만일 그들에게 기회가 주어지고, 환경만 좋으면 그들은 큰일과 선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저희는 기회만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궁핍한 자에게 한 푼도 주지 않는 인색한 사람의 편협함을 업신여긴다. 그들은 그같이 인색한 사람은 자신만을 위해 살고 있으며, 또 그가 잘못 사용한 달란트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저희는 자기 자신과 이러한 편협한 자들을 비교해 보고 저희는 그들보다 훨씬 좋은 상태에 있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만족해한다. 그러나 그들은 저희 자신을 속이고 있다. 쓰지 않고 가지고만 있는 자질은 그들의 책임을 더 중하게 할 뿐이다. 남보다 많은 애정을 가진 사람은 자기의 친구뿐만 아니라 도움이 요구되는 모든 사람에게 그 애정을 베풀어 주어야 할 의무를 하나님께 지고 있다. 사교성(社交性) 또한 달란트로 볼 수 있다. 이 달란트를 우리의 영향을 받고 있는 모든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사용해야 한다. 몇 사람에게만 친절을 베푸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고 이기주의이다. 이런 사람은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이 주님께서 주신 달란트 곧 사교성을 이용하지 않고 버려두는 사람은 저희가 인색하다고 멸시하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더 많은 죄가 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너는 주의 뜻을 알고도 그것을 행치 않았다는 선고가 내려질 것이다.

달란트는 활용함으로 증가됨

달란트는 사용할수록 증가된다. 성공은 우연히 되는 것도 아니고, 운명에 의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성공은 하나님의 섭리(攝理)를 수행함으로 얻는 것이다. 즉 믿음과 깊은 사려와 덕성과 견인불발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보수이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가진 모든 선물을 다 사용하기를 원하신다. 만일 우리가 그대로 한다면 우리는 더욱 큰 선물을 갖게 될 것이다. 그분은 우리의 부족한 재간을 이적을 통해 채워 주시지 않으신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에게 있는 것을 활용할 때 그분은 우리의 온갖 능력을 증가시키고 강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와 협력하실 것이다. 354 주님을 섬기는 일에 온갖 정성을 다하고 참된 희생을 기울임으로 우리의 능력은 증가될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굴복시켜 성령께서 역사하실 수 있는 도구가 되게 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 역사하사 우리로 하여금 옛 버릇을 억제하고, 괴벽한 성질을 극복하게 하시어 새 습관을 기르게 하신다. 우리가 성령의 격려를 존중히 여기고 순종할 때 우리의 마음은 넓어져 성령의 능력을 더욱 많이 받게 될 것이며 더욱 좋은 일을 많이 행하게 될 것이다. 잠자고 있던 능력이 각성되고 마비되었던 기능이 새 생명을 받게 된다.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는 겸손한 교역자들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그처럼 크고 거룩한 책임을 받아들이는 그 자체가 그 사람의 인격을 고상하게 하는 것이다. 이 일은 가장 고상한 정신력과 영적 능력을 요하며 마음과 생각을 강하게 하고 순결하게 한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나아갈 때에 연약한 사람이 얼마나 강하게 되며, 그의 노력이 얼마나 단호하게 되며, 그 결과가 얼마나 유익이 되는지 놀라게 된다. 많지 않은 지식을 가지고 겸손하게 시작해서 한편으로는 더욱 많은 지식을 얻기 위해 노력하면서 다른 편으로는 자기가 아는 바를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여 주는 사람은 온 하늘의 보물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가 빛을 나눠 주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욱 많은 빛을 받게 될 것이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해 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그 말씀은 우리에게 더욱 명백하게 된다. 우리의 지식을 더욱 많이 활용하고 우리의 능력을 더욱 많이 사용할수록 우리는 더욱 많은 지식과 능력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노력할 때마다 우리 자신에게 축복이 임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재물을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할 것 같으면 그분은 우리에게 더 많은 재물을 주실 것이다.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기도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고자 할 때 우리의 심장은 원기를 북돋우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박동하게 될 것이며, 우리의 애정은 더욱 뜨거운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불타게 되고, 우리의 온 그리스도인 생애는 더욱 실제적이고, 더욱 열성 있고 더욱 기도하는 생애가 될 것이다.

하늘에서는 사람의 가치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마음의 역량(力量)에 따라 평가된다. 355 이 지식은 모든 능력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기능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움직이도록 사람을 창조하셨다. 그분은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당신의 마음과 연결시키고자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은혜를 세상에 나타내는 일에 우리가 그리스도와 협력할 수 있는 특권을 주셨는데 이는 우리로 하늘의 사물에 대하여 더욱 많은 지식을 얻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우리는 예수를 바라봄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더욱 밝고 더욱 분명한 견해를 갖게 된다. 우리는 바라봄으로써 변화된다. 선함과 동료 인간에 대한 사랑이 우리의 본성이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寫本)이 되는 품성을 계발하게 된다. 우리는 그분의 형상을 닮아감에 따라 하나님을 알려는 우리의 역량을 더욱 늘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하늘 세계와 더 많이 교제하게 되고, 영원한 세상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점점 커지게 될 것이다.

한 달란트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었다.

자기의 달란트를 활용하지 않은 사람은 가장 적은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었다. 이 사실에는 사람이 자기가 받은 천부적 재질이 적다 해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봉사할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는 경고가 포함되어 있다. 만일 저희가 어떤 큰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면 그들은 얼마나 큰 기쁨을 가지고 그 일을 할지 모른다. 그러나 저희는 작은 일에서 봉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저희는 이 점에 있어서 오해한다. 주님께서는 선물을 나누어 주심으로써 사람의 품성을 시험하신다. 자기의 달란트를 활용하는 데 등한히 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 불성실한 종임을 증명했다. 이것으로 보아 그가 비록 다섯 달란트를 받았다 할지라도 그 한 달란트를 감추었던 것처럼 역시 땅에 감추었을 것이다. 그가 한 달란트를 잘 활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가 하늘의 선물을 멸시했다는 증거이다.

356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눅 16:10)된다. 그것이 작기 때문에 작은 일의 중요성이 경시되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러나 이 작은 일이 인생의 실제적인 훈련에 있어서 많은 것을 제공해 준다. 그리스도인 생애에 있어서는 사실상 요긴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작은 일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에 우리의 품성 건설에 여러 가지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 16:10). 사람이 지극히 작은 의무에 불충실함으로써 저희 창조주께 마땅히 돌려야 할 봉사를 돌리지 않게 된다. 이러한 불충실함의 영향은 자신에게 돌아온다. 그는 하나님께 아낌없이 바침으로 받을 수 있는 은혜와, 능력과, 고상한 인격을 얻지 못하게 된다. 그는 그리스도를 떠나 생활함으로 사단의 시험에 빠지게 되고 주를 섬기는 일에 실족하게 된다. 작은 일에 바른 원칙을 따라 살지 아니하므로 그가 특별한 일로 생각하는 큰일에 있어서도 하나님을 순종하지 못한다. 생애의 사소한 일을 취급하는 데 나타나는 결점이 그보다 훨씬 중요한 일에까지 미친다. 그는 자기에게 익숙한 원칙에 따라 행동한다. 그리하여 행동이 반복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은 품성을 이루게 되어 그 품성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현세적인 또는 영원한 운명이 결정된다.

사람은 오직 작은 일에 충실함으로써 연단을 받아 장차 더욱 큰 책임을 지게 되었을 때에도 충실히 행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다니엘과 그의 동무들로 하여금 바벨론의 고관들과 접촉하게 하신 것은 이 이방 사람들이 참 종교의 원칙을 알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357 다니엘은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 나라에서 하나님의 품성을 나타내야 했다. 그가 어떻게 그처럼 영예롭고 책임이 큰 직책을 맡기에 합당한 자가 되었을까? 그의 온 생애를 빛나게 한 것은 작은 일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그는 몹시 작은 일에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했으므로 주님께서 그와 협력하셨다. 하나님께서 다니엘과 그의 동무들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외에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단 1:17)도록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서 당신의 증인이 되게 하기 위하여 다니엘을 부르신 것처럼 오늘날 이 세상에서 당신의 증인이 되게 하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신다. 그분은 큰일에는 물론 지극히 작은 일에 있어서까지도 우리가 당신의 나라의 원칙을 사람들에게 나타내기를 바라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사실 때에 작은 일을 신중히 하라는 공과를 가르쳐 주셨다. 구속의 대사업은 항상 그분의 마음에 짐이 되었다. 그분이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병자를 고치실 때에는 그 일에 당신의 정신과 육체의 모든 정력을 다 쏟으셨다. 그러면서도 그분은 일상 생애와 천연계에서 가장 단순한 것들을 주목해 보셨다. 그분의 가장 귀한 교훈은 바로 그가 천연계의 가장 단순한 사물들을 비유로 삼아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진리를 설명하신 것이다. 358 그분은 당신의 종들 중에 가장 비천한 자의 궁핍함도 못 본 체하시지 않으셨다. 그분의 귀는 도움을 구하는 부르짖음을 다 들으셨다. 그분은 그 많은 무리 중에서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한 여인이 당신의 옷자락을 만지는 것도 감지하셨다. 믿음으로 살짝 건드린 그 여인의 행위는 응답을 받았다. 그분은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을 때 그의 부모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당신의 강한 능력으로 무덤에서 부활하셨을 때 그분은 자기가 입었던 수의(壽衣)를 개서 적당한 자리에 놓으셨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하도록 부름을 받은 사업은 그리스도와 협력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다. 우리는 이 일을 하기로 그리스도와 언약을 세웠다. 이 일을 등한히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 불충실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이 일을 위하여 우리는 작은 일에 충실하시고 양심적으로 행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노력하고 감화를 끼치는 모든 분야의 사업에 성공하는 비결이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사다리의 맨 꼭대기까지 올라가 당신이 주시고자 하는 재능을 소유함으로써 당신을 영화롭게 하기를 바라신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보다 훨씬 더 고상한 경륜을 따라 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나타내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만반의 준비가 갖추어져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또 사람의 마음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기 때문에 지능에 있어서나, 총명에 있어서나, 기술과 지식에 있어서 우월성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러나 천부(天賦)의 재능을 많이 받지 못한 자라도 낙심할 필요는 없다. 그들로 저희에게 있는 것을 선용하고 저희 품성 가운데 약점이 무엇임을 살펴서 하나님의 도움을 힘입어 그것들을 강하게 하기 위하여 힘쓰도록 하라. 우리는 우리의 생애의 모든 면에 진실함과 충성심을 나타내도록 하고 또 그 사업을 성취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특질을 잘 배양하도록 해야 한다.

태만한 습관은 반드시 극복되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커다란 실수를 저질러 놓고 그것을 저희의 건망증으로 돌리면 충분한 변명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변명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지력이 부족하단 말인가? 만일 그렇다면 저희의 정신이 강화되도록 수양해야 한다. 359 잊어버리는 것도 죄요, 태만히 하는 것도 죄이다. 그대가 만일 태만히 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면 그대는 자신의 구원을 등한히 하게 되고 마침내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준비되지 못한 자가 되고 만다.

큰 진리는 작은 일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실제적인 신앙 원칙이 매일의 생애의 사소한 일에도 실천되어야만 한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순종함으로써만 자기가 하는 일에 최대의 적임자가 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저희가 직접 종교적인 사업에 관계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저희의 생애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처럼 생각해서 저희는 천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만일 저희가 하는 일이 누군가가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라면 저희 자신을 하나님의 대가족 가운데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천한 일이라도 얕잡아 보지 말아야 한다. 정직하게 하는 일은 무엇이나 축복이 된다. 신실하게 그 일을 함으로 앞으로 더욱 고상한 일을 맡을 수 있는 훈련을 받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천한 일이라도 자기 자신을 전적으로 바쳐 하나님을 위해 일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 일을 가장 큰 봉사로 받으실 것이다. 성의를 다해서 기쁜 마음으로 드리는 연금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간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당면한 의무를 행하라고 명하신다. 만일 이 의무가 가정에서 하는 일이라면 가정을 즐거운 장소가 되게 하기 위해 그 의무를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이행해야 한다. 그대가 어머니라면 그대의 자녀를 그리스도를 위해 양육하라. 그 일도 목사가 강단에서 하는 일처럼 하나님을 위한 일이다. 그대의 일이 주방에서 하는 일이라면 가장 우수한 요리사가 되기 위하여 힘쓰라. 건강에 좋고 영양이 풍부한, 식욕을 돋우는 음식을 준비하도록 하자. 그리고 그대가 음식을 만드는 데 가장 좋은 재료를 사용할 때, 마음에 가장 좋은 사상을 공급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도록 하라. 만일 그대가 밭을 경작하거나 그 외 어떤 다른 사업이나, 직업에 종사한다면 그 일에 성공하도록 하라. 그대가 하는 일에 그대의 온 정신을 쏟으라. 360 그대가 하는 모든 일에서 그리스도를 나타내라. 그리스도께서 그대의 입장에 서 계시다면 응당 하셨으리라고 생각되는 그대로 행하라.

그대의 달란트가 아무리 적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쓰일 곳을 가지고 계시다. 그 한 달란트가 지혜롭게 사용된다면 그 달란트에 부과된 사업이 성취될 것이다. 우리가 더하기 법(加算法)에 따라 작은 일에 충실하게 행할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는 곱하기 법(乘算法)에 따라 우리를 위해 역사하실 것이다. 이 작은 것들이 주의 사업에 있어서 가장 고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가장 사소한 일들을 행할 때에도 산 믿음이 금실처럼 그 일을 통해 이어지게 하라. 그리하면 우리가 하는 매일 매일의 일이 그리스도인의 성장을 촉진시켜 줄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예수를 쳐다보는 일이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며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행하는 모든 일에 활기를 주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달란트를 바르게 사용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금 쇠사슬로 더욱 고상한 세계와 연결시킬 수 있다. 이것은 참된 성화이다. 왜냐 하면 성화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순종함으로써 매일의 의무를 기쁜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은 저희에게 어떤 큰 일이 맡겨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저희는 저희의 야망을 만족시킬 큼직한 일자리를 얻지 못했다고 해서 생애의 평범한 의무를 신실하게 행하지 않는다. 이러한 평범한 일은 저희들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저희는 날마다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충성심을 나타내 보일 기회를 놓쳐 버린다. 저희가 어떤 큰일을 기다리는 동안에 생애의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인생으로써 할 바 일을 마치지 못한 채로 저희의 한평생이 지나가 버린다.

반환된 달란트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주님께서 당신의 종들과 회계하실 때에 달란트에 대한 반환금을 엄밀히 따지실 것이다. 이루어진 일이 그 일을 한 사람의 품격을 나타내게 된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저희가 받은 원금과 남긴 이익금을 모두 주님께 돌려드렸다. 361 그렇게 함으로 저희는 자신들이 세운 공로를 주장하지 않는다. 저희의 달란트는 저희가 받은 것이었다. 저희가 다른 달란트를 더 남겼으나 원금이 없었더라면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저희는 다만 자기들의 의무를 행한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원금이 주님의 것이었으므로 이익금도 그분의 것이다. 구주께서 그들에게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 주시지 않으셨다면 저희의 일은 영원히 파산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달란트를 받으실 때 주인은 그 공로가 모두 종들에게 있는 것처럼 그들을 칭찬하고 그들에게 갚아 주셨다. 그의 얼굴에는 기쁨과 만족이 넘쳐 흘렀다. 주인은 그들에게 축복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몹시 기뻤다. 주인이 그들의 모든 봉사와 희생에 대하여 갚아 주시는 이유는 그것으로 인해 주인이 그들에게 빚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분의 마음에 사랑과 친절이 흘러넘치기 때문이었다.

주인은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라고 말하셨다.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을 받게 해주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신실함과 충성심과 사랑의 봉사이다. 사람이 선하게 되도록 하고 하나님께로 이끌리게 하는 성령의 감동은 다 하늘 책에 기록된다. 심판의 날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하여 일하신 일꾼들은 칭찬을 받게 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저희의 도움으로 구속받은 자들을 보게 될 때에 주의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저희는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의 사업에 참여할 특권을 갖게 될 것인데 이는 저희가 이 세상에서 주의 사업에 참가함으로써 하늘에서 일할 자격을 얻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천국에서 어떠할 것이냐가 우리가 현재 이 세상에서 어떠한 품성을 갖고 있으며 어떠한 태도로 봉사에 참여했느냐를 반사해 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에 대하여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마 20:28) 함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그분이 이 지상에 계실 때에 하시던 일인 동시에 하늘에서의 그분의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같이 일한 데 대한 보상은 우리가 오는 세상에서 그분과 같이 일할 수 있는 더욱 큰 능력과 광범위한 특권을 갖는 것이다.

362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저희가 하늘의 선물을 등한히 여긴 것을 핑계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저희의 잘못을 찾아내서 벌을 주시려고 끊임없이 감시하시는 각박하고 압제적인 분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주시지 않은 것을 요구하시는 분이요, 심지 않은데서 거두려고 하시는 분이라고 비난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소유와 봉사를 요구하시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속으로 하나님은 각박한 주인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바치는 것 중에 그분의 것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 다윗왕은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 29:14)라고 말했다. 창조와 구속을 통해서 만물은 하나님의 것이다. 우리에게 주시는 현세와 내세의 모든 축복에는 갈바리의 십자가의 인이 찍혀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가리켜 심지 않은 데서 거두려하시는 각박한 주인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악한 종의 비난은 전혀 당치 않은 것이었으나 주인은 그것을 반박하지 않으시고 그가 한 말을 그대로 취하셔서 그의 행위가 전혀 핑계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그 달란트를 잘 사용해서 주인에게 이익이 되게 할 온갖 방법과 수단이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주인은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고 말하셨다.

우리의 천부께서는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재능으로 할 수 있는 것 이상도 이하도 요구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당신의 종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지우지 않으신다.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 103:14). 그분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모든 것은 우리가 능히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에게로 돌려드릴 수 있는 것들이다.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눅 12:48). 363 우리 각자는 우리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보다 일점이라도 적게 한 데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봉사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정확히 따지신다. 사용하지 않은 재능에 대해서도 선용(善用)한 것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주께서는 책임을 추궁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달란트를 바르게 사용했더라면 될 수 있었던 그러한 인물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해 우리에게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 우리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우리가 마땅히 했어야 할 것을 성취하지 못한 데 대하여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비록 우리가 우리의 영혼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사용하지 아니한 달란트의 결과를 영원한 세상에서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가 얻었어야 할 모든 지식과 재능을 얻지 않았기 때문에 영원한 손실을 입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치고 우리의 일에 그분의 지시를 따른다면 그분은 책임을 지시고 그 일을 성취시켜 주실 것이다. 그분은 성심으로 한 우리의 노력이 성공할지에 대해 추측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우리는 단 한 번도 실패에 대하여 생각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실패를 모르시는 분과 협력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약점과 무능을 말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불신한다는 것인 동시에 그분의 말씀을 부인하는 것이 된다. 우리가 우리에게 지워질 짐 때문에 불평하고 그분이 우리에게 맡기신 책임을 거절한다면 우리는 실제로 하나님을 인색한 주인으로, 일할 능력도 주시지 않고, 덮어 놓고 요구만 하시는 분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게으른 종의 정신을 겸손으로 해석하기 쉽다. 그러나 참된 겸손은 이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겸손으로 옷 입는다는 것은 우리의 지식이 불완전하고, 포부가 신통치 않고 살아가는 데 겁이 많고, 실패가 두려워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참된 겸손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서 그분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원하시는 사람을 통하여 일하신다. 때때로 그분은 위대한 사업을 행하시기 위하여 가장 미약한 그릇을 택하신다. 364 이는 당신의 능력이 약한 사람을 통해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표준에 따라 갑은 크고 을은 작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표준을 따라 판단하지 않으신다. 우리에게 크게 보이는 것이 반드시 하나님께도 크게 보이고, 우리에게 작게 보이는 것이 반드시 하나님께도 작게 보인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재능을 평가하고, 우리의 일을 택하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께서 그분을 위해 지도록 정해 주신 일을 짊어지고 그분에게 나아가 쉼을 찾아야 한다.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다해 기쁨으로 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우리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의무를 행하고 하나님과의 동역자로 인정받은 것을 인하여 기뻐할 때에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신다.

빼앗긴 달란트

게으른 종에게는 아래와 같은 선고가 내렸다. “그에게서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이 선고에도 신실한 종에게 상급을 주실 때와 같이 최후의 심판 때에 받을 보상을 말씀하셨을 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점진적으로 받게 될 보수에 대한 말이 포함되어 있다. 물질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영계(靈界)에서도 그러하다. 사용하지 않는 능력은 약해지고 쇠퇴해 버린다. 활동은 삶의 법칙이며 게으름은 죽음을 의미한다.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7). 사람이 자기의 재능을 다른 사람을 복되게 하기 위해 사용할 때 그것은 증가한다. 이 재능을 오로지 자기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사용할 때 그것은 점점 쇠퇴해져서 마침내 거두어지고 만다. 그가 받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 사람은 마침내 나누어 줄 것이 없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확실히 자기의 재능을 쇠약하게 만들고 마침내는 그것을 파괴해 버리는 과정을 걷는 데 동의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이기적 생애를 살고 이기적 욕망을 만족시킨 다음에 저희 주님의 즐거움에 참여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지 않도록 하라. 그들은 이기심이 없는 사랑의 기쁨에 참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하늘나라에 합당치 못한 자가 된다. 그들은 하늘에 가득 차 있는 순결한 사랑의 분위기를 즐길 수 없을 것이다. 365 천사들의 노래와 거문고 소리가 그들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다. 하늘의 과학은 일종의 수수께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큰 심판날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일하지 않은 자들과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자신만을 생각하고, 자신만을 기쁘게 하면서, 표류하는 생애를 산 자들을, 온 세상의 재판장께서는 악한 일을 행한 자들로 취급하실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받는 정죄를 받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칭하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훼방하는 자들과 살인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은 반드시 형벌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요구를 등한히 한 것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생각한다. 저희는 교회 예배에 즐겨 참석하고 설교 듣기를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그것으로써 자기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한다. 저희는 자신을 위해 사는 일에 저희 일생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비유 중에 나오는 불충실한 종과 같이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으라”는 선고를 받을 때에 놀라게 된다. 그들은 유대인들처럼 저희의 축복을 마땅히 이용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하지 않고 그 축복을 저희만이 누리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의 봉사 사업에 참여하기를 회피하는 많은 사람들이 저희는 일할 능력이 없다고 핑계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일할 능력이 없는 그처럼 무능한 사람으로 만드셨는가? 아니다. 결단코 그렇지 않다. 이러한 무능력은 저희가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 것이며 그들이 고의(故意)적으로 그렇게 되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굳어져 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미 그들의 품성 속에서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으라는 선고의 결과를 보게 된다. 저희의 달란트를 계속해서 오용(誤用)함으로 그들에게 유일한 빛이 되시는 성령이 소멸되어 버릴 것이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는 선고는 그들이 선택한 영원한 운명에 하늘의 인을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