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생활과 음식물에 관한 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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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의 유산

117 [C.T.B.H., 7-11] (1890) C.H., 19-23

194.인간은 그 조직에 있어 완전하게, 그 풍채에 있어 아름답게 창조주의 손에서 나왔다. 여전히 증가하는 질병과 범죄의 무거운 짐을 6천년 동안이나 잘 견디어왔다는 사실은 인간이 최초로 받았던 인내력이 어떠함을 결론적으로 증거한다. 비록 홍수 전 사람들이 마음대로 죄에 몰두하였을지라도, 2천여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천연의 법칙을 범한 것을 민감하게 느꼈던 것이다. 아담이 만일 지금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체력보다 더욱 많은 체력을 소유하지 못했더라면, 인류는 벌써 이전에 자취를 감추고 말았을 것이다.

인류가 타락한 이래 연속되는 세대를 통하여, 인간성은 계속적으로 내려가고 있다. 질병이 부모에게서 자녀에게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되고 있다. 심지어 요람의 유아까지 그 부모의 죄로 말미암는 고통을 당하고 있다.

최초의 역사가인 모세는 세계 역사 초기의 사회 생활과 개인적인 생활에 대하여 아주 분명한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눈멀고, 귀머거리가 되고, 저능아가 된 아기가 탄생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가 없다. 영아기와 유년기, 또는 청년기에 자연사로 죽었다는 하나의 실례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창세기에 사망자의 기사는 다음과 같다. “아담이 … 구백삼십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셋은 … 그가 구백십이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창 5:4-8). 다른 사람들에 대한 기록은 “그가 장수한 노년이 되어 수한이 차서 죽었더라”고 말한다. 자식이 아버지보다 먼저 죽는 일은 참으로 드물었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건, 즉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 죽었더라”는 사건은 기록해 둘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아담으로부터 노아에 이르기까지 거의 예외 없이 약 일천 년을 살았다. 그 후로부터 평균 수한이 감소되고 있다.

118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시던 때에 와서는 인류가 이미 너무도 퇴화되어 노인뿐만 아니라 중년과 아이들까지 그들의 병고침을 위하여 각 성에서 예수께로 그들을 데려왔다. 많은 사람들은 말할 수 없는 불행의 짐에 눌려 고생하였다.

그 결과로 고통과 요사(夭死)가 따르는, 신체 법칙을 범하는 일이 너무도 오랫동안 편만하여 이것이 결과적으로 인간의 지정된 운명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연약한 상태로 인간을 창조하지 않으셨다. 이러한 상태는 신의 섭리의 역사(役事)가 아니요 인간의 역사(役事)이다. 그것은 그릇된 습관 즉 하나님께서 사람의 생존을 다스리기 위하여 제정하신 법칙을 범함으로 빚어진 것이다. 천연의 법칙을 계속적으로 범하는 것은 하나님의 법칙을 계속 범하는 것이다. 만일 사람들이 그 교훈을 생애에 실천하면서 십계명의 율법을 순종해 내려왔던들, 오늘날 세상에 범람하는 질병의 저주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 20). 사람들이 쓸데없이 자기들의 활력을 소모하거나 또는 자기들의 지성을 흐리게 하는 어떠한 행로를 취한다면 그들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니 이는 주님의 소유인 그들의 몸과 정신으로 그분을 영화롭게 하지 않는 연고이다.

그러나 인간이 그분께 돌리는 모욕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아직도 인류에게 베푸시며, 빛을 비추게 허락하셔서 사람이 완전한 생애를 살기 위하여는 자기 몸을 다스리는 자연 법칙을 순종하여야 함을 깨닫게 하신다. 그렇다면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능력, 즉 몸과 마음을 활용하면서 이 빛 가운데서 행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우리는 의와 순결한 성품 특히 은혜 안에서 자라나는 것을 반대하는 세상에 존재한다. 우리가 어느 곳을 돌아보든지, 불결과 부패를 보며 누추한 것과 죄악을 보게 된다. 이 모든 것들은 불멸의 선물을 받게 될 바로 직전에 우리 안에서 성취되어야 할 역사와는 얼마나 대립되는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은 이 마지막 날 그들 주위에 우글거리는 부패 중에 더럽히지 않고 서야 한다. 그들의 몸은 거룩해져야 하고, 그들의 정신은 순결해져야 한다. 119 만일 이 역사(役事)가 이루어져야 한다면 그것을 열성적으로 잘 이해하여 지금 즉시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의 영께서 완전히 지배하시어 모든 행동을 감화시켜 주실 것이다.

사람들은 영혼의 전을 더럽히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일깨라고 호소하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인격을 되찾기 위하여 전심 전력을 다하라고 호소하신다. 마음을 각성시키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이외에 아무것도 없다. 습관의 노예가 된 자들이 오직 그분에게서만 그들을 붙들어 맨 쇠고랑을 깨뜨릴 능력을 얻을 수 있다. 사람이 육체적·정신적·도덕적 활력을 빼앗아가는 습관에 계속 빠져 있으면서, 자기의 몸을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거룩한 산제물로 바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 다시 사도는 말한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롬 12:1)고.

(1872) 3T, 140, 141

195.이 세대를 특징짓는 원칙에 대한 무시와 생명과 건강 법칙을 무시하는 이상한 방심은 놀랄 만하다. 빛이 그들 주변에 비치고 있는데도 이 주제에 관하여 무관심이 편만하다. 대중과 함께 저희의 근심의 요지는 “내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이다. 어떻게 우리 몸을 취급할지에 대하여 모든 것이 말로 또한 글로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식욕이 남녀들을 주관하는 중대한 법칙이 된다.

남녀들이 건강 법칙에 순종하여 살지 않고, 이 위대한 원칙을 개인적인 의무로 삼지 않기 때문에, 그 도덕적 능력이 약화된다. 부모들은 자기의 후손에게 자신들의 타락한 습관과, 피를 더럽히고 지력을 약화시키는 몸서리나는 질병들을 물려준다. 대다수의 남녀들은 자기들의 신체 법칙을 모르고 있으며, 지력과 도덕력에 손실을 보면서 식욕과 정욕에 방종하며, 천연의 법칙을 범하는 결과에 대하여 일부러 알지 않으려 하는 것같이 보인다. 그들은 그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는 독약을 사용하면서 타락한 식욕에 방종한다. 그러므로 그것이 피를 더럽히고 신경력을 서서히 먹어 들어가 마침내 병과 사망을 자초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120 그들의 친구들은 이렇게 행동한 결과를 하나님의 섭리라고 부른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을 욕되게 한다. 그들이 천연의 법칙에 반역하였고, 천연의 법칙을 이같이 악용한 벌을 당했다. 고통과 사망이 지금에 와서는 곳곳마다, 특히 어린아이들 중에 보편화되어 있다. 이 세대와 최초 이천년 동안에 살았던 사람들 사이의 대조가 얼마나 현저한가!

[C.T.B.H., 44, 45] (1890) C.H., 112

196.체력은 생명의 법칙을 범하는 모든 범법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한다. 체력은 참을 수 있는 한 남용을 견딘다. 그러나 마침내 보복은 올 것인데, 그것은 육체적인 기능은 물론이요 정신적인 기능에까지 미친다. 그것은 또한 범죄자에게만 끝나는 것이 아니요, 자기의 방종의 결과는 후손에게서도 보이며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화가 전달되어 내려간다.

오늘날의 청년들은 미래의 사회에 분명한 지침이 된다. 그런데 우리가 그들을 바라볼 때에 그러한 장래에 대하여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대다수가 유흥을 즐기며 일하기를 싫어한다. 그들은 자기를 제어할 도덕적인 용기가 부족하고 의무에 응할 용기가 별로 없다. 각 연령층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생활 상태는 원칙도 양심도 없다. 또한 게으르고 돈을 헤프게 쓰는 습관을 가진 그들은 타락한 행위로 돌진하고 있으며, 우리 세상은 제2의소돔이 되기까지 부패한 사회가 되고 있다. 만일 식욕과 정욕이 이성과 신앙의 지배를 받는다면 사회는 아주 다른 면모를 나타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현재의 두려운 사태가 존재하도록 결코 계획하지 않으셨다. 그것은 천연의 법칙에 대한 심한 범법으로 발생하였다.

(1898) 시대의 소망 3권, 387, 388

197.병고침을 받은 많은 고통당하는 자들에게 그리스도께서는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요 5:14)고 하셨다. 이와 같이 질병이란 천연적·영적 면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결과라고 그분은 가르치셨다. 121 창조주의 계획에 일치하게 생애하는 사람들에게는 세상의 큰 불행이 닥치지 않을 것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안내자요 교사이셨던 그리스도께서는 건강이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는데 대한 대가임을 저들에게 가르치셨다. 팔레스틴에서 병자를 고치신 그 크신 의원께서는 구름기둥으로부터 당신의 백성에게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하며 하나님께서 저들을 위하여 무엇을 행할 것인지를 저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분은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출 15:26)고 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생활 습관에 관한 분명한 교훈을 주시고 “여호와께서 또 모든 질병을 네게서 멀리 하시”(신 7:15)리라고 보증하셨다. 저희가 그 조건을 다 성취하였을 때에 그 약속이 저들에게 확증되었다. “그 지파 중에 약한 자가 하나도 없었도다”(시 105:37).

이 교훈들은 우리를 위한 것이다. 건강을 보전하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이 지켜야 할 조건들이 있다. 모두 이 조건들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여호와께서는 자연에 있어서나 영적인 면에 있어서 당신의 법에 관하여 알지 못함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심령의 건강은 물론 육체의 건강의 회복을 위하여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이 되어야 한다.

(1866) H.to L., 제3장, 49

198.인간 가족은 자기들의 그릇된 습관으로 여러 가지 형태의 질병을 자신에게 초래하고 있다. 그들은 건강하게 사는 방법을 연구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저희 신체 법칙을 범하므로 통탄스러운 사태를 빚어내고 있다. 사람들은 좀처럼 저희 고통을, 그 참된 원인인 자신들의 그릇된 행로에 돌리지 않는다. 그들은 먹는데 부절제하고 있으며 저희 식욕을 신으로 삼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모든 습관으로 건강과 생명에 관하여 개의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하여 그 결과로써 질병이 그들에게 닥치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 질병의 근원이라고 믿으나, 사실은 그들 자신의 그릇된 행로가 그같은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1905) 치료봉사, 214, 215

122 199.병은 원인이 없이는 생기지 않는다. 건강 법칙을 무시함으로 말미암아 길을 터서 병을 청하여 들이는 것이다. 많은 병자들은 그들의 부모들이 범한 죄과로 인하여 앓고 있다. 부모들이 행한 일에 대하여는 책임이 없다 할지라도 그들은 무엇이 건강 법칙을 범하는 것이며 무엇이 그렇지 않은 것인지를 알아둘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들은 부모의 그릇된 습관을 피하고 바른 생활을 함으로써 건강을 증진시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그릇된 행습의 연고로 고생을 당한다. 그들은 먹고, 마시고, 입고, 일하는 모든 점에 있어서 자신들의 습관을 따르고 건강의 원칙을 무시한다. 그들이 천연의 법칙을 어기는 때에는 틀림없이 바로 그 결과를 당하게 된다. 그리하여 병에 걸리게 되면,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질고(疾苦)를 그 참된 원인에 돌리지 아니하고 다만 고통스러운 까닭에 하나님을 원망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천연의 법칙을 무시한 결과로 나타나는 질고에 대하여 책임이 없으시다….

부절제한 식사는 종종 질병의 원인이 된다. 그러므로 체력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그에게 지워진 지나친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부모가 질병과 죽음의 씨를 심음 ― 635]

[벌을 피하지 못함 ― 11, 29, 30, 221, 227, 228, 250, 251, 294]

(1905) 치료봉사, 207

200.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방종으로 질병을 자초한다. 그들은 천연계의 법칙과 또는 엄격한 순결의 원칙에 따라서 살아오지 않았다. 또 다른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입고, 일하는 습관에 있어서 건강의 법칙을 무시한다.

Y.I., 1894.5.31.

201.지력은 흔히 부지런하게 활용하거나 열심히 공부하기 때문에 소모되거나 쇠약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부적당한 음식을 부적당한 시간에 먹으며 건강 법칙에 부주의하는 데서 더욱 많이 소모된다…. 열심히 하는 공부가 지력을 쇠약하게 하는 주요 원인이 아니다. 123 주요 원인은 부적당한 식물과 불규칙한 식사 및 육체적인 운동 부족이다. 불규칙적인 식사 시간과 불규칙적인 취침 시간은 두뇌의 힘을 짜내어 없애버린다.

(1900) 6T, 372, 373

202.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며, 많은 사람들이 무덤으로 가고 있는 것은 식욕의 방종 때문이다. 그들은 저희의 타락한 식욕에 맞는 것을 먹는다. 이리하여 소화 기관을 약화시키며 생명을 유지해 주는 음식을 흡수할 기능을 손상시키고 있다. 이것이 심한 질병을 초래하여 죽음이 따라오는 수가 너무나도 흔하다. 좀더 잘 알았어야 할 사람들의 자살 행위로 말미암아 신체의 섬세한 기관이 낡아 못쓰게 된다.

교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빛에 충실하고 진실되어야 할 것이다. 각 신자마다 자기의 생애의 습관으로부터 모든 타락한 식욕을 다 없애야 한다.

[빈약한 식사에서 오는 질병은 고치기가 어렵다 ― 315]

[화가 났을 때 먹는 부당한 식사와 가정의 감화의 영향 ― 234]

[잘못된 개혁의 효과 ― 310]

(1905) 치료봉사, 303, 304

203.부절제는 흔히 가정에서 시작된다. 양분은 많으나 건강에 좋지 못한 식물을 사용함으로 말미암아, 소화 기관을 약하게 하여서 한층 더 자극성을 가진 음식을 요구하게 만든다. 이리하여 식욕은 계속적으로 더욱 자극이 강한 것을 갈망하도록 자라난다. 자극성 식물에 대한 요구가 점점 더욱 자주 일어나고 제재하기가 더욱 곤란해진다. 조직이 약간의 독소로 채워지고 쇠약하여지면 질수록 자극성 식물의 요구는 더욱 크게 된다. 그릇된 방향으로 디딘 한걸음은 둘째 걸음의 길을 예비한다. 자신들의 식탁에 어떤 종류의 포도주나 술을 올려놓는 죄책감을 지니지 않으려는 많은 사람들이 독주를 갈망하게 하는 그러한 음식을 식탁에 차려놓아 시험을 이기기가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 먹고 마시는 데 대한 그릇된 습관은 건강을 파괴하고 음주의 길을 예비한다.

(1868) 2T, 67-70

204.지난 안식일 내가 설교하고 있을 때에 나에게 보여졌던 그대들의 창백한 얼굴들이 내 앞에 분명하게 떠올랐다. 124 나는 그대들의 건강 상태와 오랫동안 그대들이 그토록 고통을 당하던 병을 보았다. 나는 그대들이 건강하게 살아오지 않았음을 보았다. 그대들의 식욕은 건전하지 않았고 위장을 희생하여 가면서 입맛을 만족시키고 있었다. 그대들은 좋은 피를 만들지 못할 것들을 먹어 위에 넣었다. 이것이 간장에 무거운 부담을 지웠는데 그 이유는 소화 기관에 이상이 생긴 연고이다. 그대들 둘 다 병든 간을 가지고 있다. 만일 그대들이 엄격하게 실천하여 나간다면 건강 개혁은 그대들에게 지대한 유익이 있을 것이다. 그대들이 이행하지 못한 점은 이것이다. 그대들의 식욕은 건전하지 못하다. 그리고 양념이나 기름(반고체의 기름)없이 요리한 평범하고 단순한 음식은 맛있어 하지 않기 때문에 그대는 하나님께서 그대의 신체 조직에 설정해 두신 법칙을 계속하여 범하고 있다. 그대들이 이와 같이 하는 동안은 벌을 면치 못한다. 이는 모든 범법에 벌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대는 건강이 좋지 않음을 계속하여 의아해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대 자신의 관습의 결과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적을 행치 않으신다는 것을 명심하라….

영양이 많은 음식과 체열-그대가 지금과 같이 먹고 마신다면 현재 당하고 있는 어려움에서 그대를 구제할 수 있는 치료법이 없다. 그대는 자신을 위하여 가장 경험 있는 의사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 그대의 식사를 조절하라. 그대는 식욕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가장 비건강적이며 때로는 지나친 분량의 음식물을 자주 위장에 넣으므로 그대의 소화 기관에 심한 부담을 지운다. 이것은 위장을 피로케 하여 가장 건강에 좋은 음식일지라도 받아들일 수 없게 한다. 그대는 그릇된 식사 습관 때문에 계속하여 약화된 위장을 보유하고 있다. 그대의 음식은 자양이 지나치게 많게 요리된다. 단순하게 천연 그대로 준비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대의 입맛에 맞게 음식을 준비한다면 위장을 위하여는 전혀 맞지 않는다. 체력에 부담이 되므로, 체력을 무력하게 하려는 그대의 노력을 저항하려고 애쓴다. 그대가 지운 짐을 벗어 버리려는 노력의 결과로 오한과 열이 일어난다. 그대는 천연의 벌을 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대의 신체에 법칙들을 설정해 두셨는데 그대가 그것을 범하면 반드시 그 형벌의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다. 125 그대는 건강을 참작하지 않고 입맛만 고려하고 있다. 그대가 약간의 변경을 시키기는 했으나 겨우 음식물 개혁의 시초 단계를 시작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에 절제하라고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섭리를 비난함-내가 아는 모든 가정 중에서 그대의 가정보다 더 건강 개혁의 유익을 요구하는 가정이 없다. 그대는 이유를 밝힐 수 없는 고통과 쇠약으로 신음한다. 그리고 고통이 그대의 운명이며 신의 섭리가 이와 같이 그것을 정하였다고 생각하면서, 그대가 할 수 있는 대로 그것을 크신 은혜로 감수하느라고 애를 쓴다. 만일 그대가 눈을 뜨고, 그대의 평생 걸어온 발자국이, 현재의 빈약한 건강 상태 가운데로 직행한 것을 볼 수 있다면, 그대는 이전에 그 진상을 보지 못했던 그대의 맹목(盲目)을 놀라게 될 것이다. 그대는 비정상적인 식욕을 조성해왔다. 그러므로 그대가 만일 식욕을 그릇되게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즐길 수 있었던 음식 맛을 절반도 맛보지 못한다. 그대는 체력을 악용하였으며, 그 결과로 고통을 당하고 아프게 되었다.

“포식”의 대가-체력은 저항 없이 참을 수 있기만 하면 남용을 견딘다. 그러나 그가 당하는 고통스러운 짐들과 잘못된 대우를 떨쳐버리려고 일어나서 강력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면 두통과 오한과, 열이 나며, 신경질, 마비 등 너무 많아 열거하지도 못할 다른 여러 가지 불행들이 나타난다. 먹고 마시는데 대한 그릇된 행습이 건강을 파괴하며, 아울러 향기로운 생애를 파괴한다. 오, 그대는 신체에 열이 나게 하고, 식욕을 잃으며, 단잠을 잃는 희생을 치루면서, 그대가 “포식”이라고 부르는 음식을 얼마나 여러번 사먹었던가!음식을 즐기지 못하고 잠 못이루는 밤, 고통스러운 시간들-이 모든 것이 입맛을 만족하게 하는 한 끼의 식사 때문이 아니었던가!

수많은 사람들이 저들의 타락한 식욕에 탐익하고 있으며, 그들이 말하는 대로 소위 포식을 해왔다. 그 결과 열이 나거나 혹은 다른 급성 질병과 필연적인 죽음을 초래하여 왔다. 그것은 막대한 값으로 산 즐거움이었다. 126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하고 있는데, 이 자살자들은 친구들과 목사에게 칭찬을 받아왔고, 죽을 때에 하늘로 직접 옮겨진다고 한다. 어쩌면 그렇게 생각할까! 대식가(大食家)가 하늘에 가다니!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절대로 하나님의 금도성 진주문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계속적인 극기와 희생의 생애를 사셨던 귀하신 구세주이시며, 고통당하시는 갈바리의 사람이신, 예수님의 우편에 높임을 받지 못할 것이다. 더 나은 생애 곧 불멸의 유업에 참여할 수 없는 이와 같은 무가치한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지정된 한 장소가 있다.

Letter 274, 1908.

205.많은 사람들이 부적당하게 먹음으로 자신들의 성격을 망친다. 우리들이 성경 연구를 철저히 해야 하듯이 건강 개혁에 관한 공과들을 배우는 것에 똑같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방향으로 채택한 습관이 장래의 생애를 위한 성품 형성을 도와주기 때문이다. 사람이 위장을 악용하므로 자기의 영적인 경험을 망쳐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1905) 치료봉사, 280, 281

206.식사에 관한 나쁜 습관에 빠졌을 때에는 지체 없이 개혁해야 한다. 위를 과도히 사용한 결과로 소화 불량증이 생기었을 때에는 모든 과중한 부담이 되는 짐을 제거함으로써 남아있는 활력을 보존하는데 주의 깊은 노력을 하여야 할 것이다. 위를 오랫동안 학대하면 다시는 완전한 건강을 회복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적당한 식사 습관이, 위가 더 이상 쇠약하여짐을 면하고 많이 회복되게 할 것이다. 각개(各個)의 경우에 적합한 규칙을 제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식사에 관한 바른 원칙에 주의하면 크게 개혁이 생길 것이요, 요리사가 끼니마다 식욕을 일으키기 위하여 애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식사를 절제하면 정신적·도덕적 활기로 보상을 받는다. 그것은 또한 정욕을 통제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1905) 치료봉사, 269

207.식물은 마땅히 신체 구성에 필요한 요소들을 가장 잘 공급할 수 있는 것으로 택할 것이다. 이 선택에 있어서 식욕은 안전한 안내자가 되지 못한다. 127 그릇된 식사 습관으로 말미암아 식욕은 잘못되게 된다. 식욕은 흔히 건강을 손상시키는 음식을 요구하며, 힘을 주는 대신 허약을 일으키는 음식을 요구한다. 우리는 사회 습관에 안심하고 따라갈 수 없다. 각처에 유행하는 질병과 그 고통은 주로 식사에 관한 일반적인 잘못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1909) 9T, 160

208.우리가 건강 생활의 원칙에 관하여 잘 알고 있을 때에만 부적당한 식물의 해로운 결과를 볼 수 있다. 자신들의 실수들을 본 후에 자기 습관을 고치려고 용기를 내는 사람들은 개혁의 과정이 투쟁과 많은 인내를 요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일단 올바른 입맛이 형성되면 느리기는 하지만 그들은 이전에 해롭지 않다고 생각했던 식물의 사용이 확실히 소화 불량증과 기타 질병의 기초를 놓는 것이었음을 깨달을 것이다.

(1909) 9T, 156

209.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의 계속적인 전진을 요구하신다. 우리는 방종한 식욕이 지적 향상과 영적 성화에 최대의 방해임을 알 필요가 있다. 우리 중에 많은 사람들이 모두 건강 개혁을 한다면서 합당치 않게 먹는다. 식욕의 방종이 육체적, 정신적 쇠약의 최대 원인이며, 주로 허약과 요사(夭死)의 기초가 된다. 순결한 심령을 소유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각자는 식욕을 제어할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과식은 질병의 한 원인임: 제7장 “과식”과 제8장 “식욕을 제어함” 을 보라]

[육식과 질병과의 관계 ― 668-677, 689-692, 713, 722]

[차와 커피를 사용하므로 병을 일으킴 ― 734, 736, 737, 7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