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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성화된 생활

6장 - 성화된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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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우리 구주께서는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을 요구하신다. 그는 우리의 가장 으뜸이 되며 가장 성결한 생각, 우리의 가장 순결하고 가장 열렬한 애정을 요구하신다. 우리가 만일 진정으로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면 우리는 늘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입술로 그분을 찬양할 것이다. 우리의 유일한 안전책은 우리의 모든 것을 그에게 바치고 은혜와 진리를 아는 지식 가운데서 끊임없이 자라나는 것이다. ― SL, 95.

성경 가운데 설명된 성화는 전체, 곧 영과 혼과 몸에 관계하고 있다. 여기에 온전한 헌신에 대한 진정한 관념이 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의 교회가 이 큰 축복을 누리기를 기원하고 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존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

그 자체가 허위요 위험한 감화를 가진 성화의 이론이 종교 세계 내에 있다.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성화되었다고 공언하는 자들이 그 정수(精粹)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 저들의 성화는 이야기와 자의적(自意的) 숭배에 있다.

저들은 이성(理性)과 판단을 제쳐놓고 저들이 성화되었다는 주장을 한때 경험하였던 감동에 그 기초를 둠으로 저희의 감정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저들은 저희가 성결하다는 고집센 주장을 역설하는 데 완강하고 괴팍하다. 그러나 이와 같이 말은 많이 하면서 그 증거가 되는 귀중한 열매는 맺지 아니한다. 이 성화되었다고 공언하는 자들은 저희의 가식으로 자신의 영혼을 속이고 있을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르고자 일심으로 바라는 많은 사람들을 곁길로 인도하는 그런 감화를 끼치고 있다. 저들은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신다! 하나님께서 나를 가르치신다! 나는 죄없이 생애한다!”는 말을 거듭거듭 되풀이 하여 들었을 것이다. 이런 정신을 가진 자들과 접촉을 하게 되는 많은 사람들은 저들이 이해할 수 없는 어둡고 이상한 무엇에 부딪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유일의 참 모본이신 그리스도와는 전혀 같지 아니한 것이다. ― SL, 7-10.

성화는 점진적인 사업이다. 연속적인 계단이 베드로가 한 말로 우리 앞에 제시되어 있다.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벧후 1:5-8)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이 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벧후 1:10, 11).

51 여기에 우리가 결코 실족하지 않을 보증이 될 도정(道程)이 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의 은혜를 얻기 위하여 더하기 법의 계획에 따라 일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성령의 선물을 그들에게 허락하시기 위하여 곱하기 법의 계획에 따라 역사하시리라는 보증을 얻는다. ― SL, 94, 95.

성화는 한 순간, 한 시간, 혹은 하루의 과업이 아니다. 그것은 은혜 안에서의 계속적인 성장이다. 우리는 다음번에 올 투쟁이 얼마나 강할 것인지 알지 못한다. 사단은 살아 있고 활동적이므로, 우리는 그를 저항하기 위한 도움과 힘을 얻기 위하여 매일 하나님께 열렬히 부르짖을 필요가 있다. 사단의 지배가 계속되는 한, 우리에게는 굴복시켜야 할 자아와 극복해야 할 약점이 있다. 그러므로 정지해 있을 장소는 없고 우리가 도달하여 완전히 얻었다고 할 수 있는 지점도 없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빌 3:12).

그리스도인 생애는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전진이다. 예수님은 당신의 백성을 정결케 하시는 분이요 순결케 하시는 분으로 좌정해 계신다. 그러므로 그분의 형상이 그들에게서 완전히 반사되면, 그들은 완전하고 거룩하며, 승천을 위한 준비가 이루어진다. 그리스도인은 큰 사업을 하도록 요청을 받고 있다. 우리는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스스로를 정결케 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완전히 이루라는 권면을 받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큰 사업이 지워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끊임없이 해야 할 일이 있다. 열매를 맺기 위하여 포도나무 줄기에 붙어 있는 모든 가지는 그 포도나무에서 생명과 힘을 얻어야 한다. ― 교회증언 1권, 361.

아무도 하나님의 율법 중 하나를 짓밟으면서 하나님께서 저들을 용서하사 축복하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스스로 속이는 일이 없게 하자. 알고 있으면서 고의적으로 죄를 범하면 성령의 증거하시는 음성을 잠잠하게 하여 그 영혼은 하나님에게서 떨어진다. 어떠한 신앙 감정의 황홀경에 들어간다 할지라도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는 자의 마음에는 거하실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존귀하게 하는 자만을 존귀히 여기신다. ― SL, 92.

바울이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살전 5:23)라고 기록하였을 때에 그는 형제들이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표준을 목적으로 삼으라고 권면한 것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실 마음이 없는 축복을 저들이 받았으면 좋겠다고 기도하지 아니하였다. 바울은 평강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만나기에 합당하게 되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은 순결하고 거룩한 성품의 소유자라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고전 9:25-27, 6:19, 20 참조). 참된 그리스도인의 원칙은 결과를 재어보기 위하여 멈추지 아니할 것이다. 저들은 내가 만일 이것을 행하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든가, 내가 저것을 행하면 나의 세상에서의 앞길에 어떤 영향을 받을까라고 묻지 않는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저희의 사업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는 무슨 일을 하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지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알기 원한다. 주께서는 모든 당신을 따르는 자들의 마음과 생애가 신령한 은혜의 지배를 받을 수 있도록 넓은 준비를 하셨는 바 그것은 저들이 켜서 비치는 세상의 등불처럼 되게 하기를 위함이다. ― SL, 26, 39.

성화의 참된 증거

우리 구주는 세상의 빛이었으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다. 구주께서는 모든 사람들의 길에 빛을 비추시면서 항상 자비의 사업에 종사하셨지만 그는 자기와 사귀는 자들에게 자기의 그 유례가 없는 덕행, 자기 부정, 희생 그리고 자선의 행위를 보라고 요청하시지 아니하셨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생애를 찬미하지 아니하였다. 52 저들은 예수의 신앙을 가치 없는 것으로 생각하였으니 그 까닭은 그의 신앙이 저희의 경건의 표준에 일치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저들은 그리스도가 정신이나 품성면에 있어서 신앙적이 아니라고 결정하였는데 그 까닭은 저희의 신앙이 허식과 기도하는 것과 선전과 외양적인 자선 사업을 행하는 것에 있었기 때문이다.

성화의 가장 귀중한 열매는 온유의 기품(氣品)이다. 이 기품이 영혼을 주관 할 때에 성질은 그 감화로 말미암아 꼴 지어진다. 그런 사람은 항상 하나님을 모시는 생애를 살며 하나님의 뜻에 자기의 의지를 복종시킨다.

자기 부정, 희생, 자선, 친절, 사랑, 인내, 견인 불발 그리고 그리스도인적 신뢰는 하나님과 참으로 연결된 자들에게 열리는 매일의 열매이다. 저희의 행위는 세상에 밝혀지지 않을지도 모르나 저희 자신은 날마다 악과 싸워서 시험과 불법에서부터 귀중한 승리를 얻고 있다. 저들은 엄숙한 서약을 새롭게 하고 간절한 기도와 거기에 끊임없는 경성으로 말미암아 얻어진 힘을 통하여 그 서약을 지킨다. 열렬한 열심가는 이 조용한 일꾼들의 투쟁을 식별하지 못하나 마음의 은밀한 것들을 보시는 하나님의 눈은 겸손과 온유함으로 한 모든 노력을 인정하시고 시인하심으로 이를 높이신다. 품성이 지닌 순금과 같은 사랑과 믿음을 나타내기 위하여는 시험하는 시기가 필요하다. 교회에 환난과 곤고가 임하는 그때에 그리스도를 진실로 따르는 자들의 꿋꿋한 열성과 따뜻한 애정이 계발된다.

참된 신앙인의 분위기에 젖는 모든 사람은 그 자신 스스로는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그가 갖는 그리스도인 생애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감지하게 되는 바 그 까닭은 그 감화가 그의 습관과 경향에 일치되기 때문이다. 그는 하늘의 빛 주시기를 위하여 기도하고 그 빛 안에서 행하기를 좋아한다. 그에게는 하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인 것이다. 그의 생애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안에 감취었으나 그는 이를 자랑하지도 아니하고 또 그것을 의식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발자취를 일심으로 따라가는 겸손하고 겸비한 자들을 보시고 미소하신다. 천사들은 저들에게 마음이 끌려서 저희의 길을 배회하기를 좋아한다. 고상한 학식을 가졌다고 주장하고 저희의 선행을 두드러지게 나타내기를 즐기는 자들은 거들떠 볼 가치가 없다고 하여 그들을 지나쳐 버릴지 모르나 하늘 천사들은 저들을 사랑스럽게 굽어보며 불로 된 성벽처럼 그들 주위를 두른다. ― SL, 11-15.

다니엘-성화된 생애의 모본

다니엘의 생애는 성화된 성품은 무엇으로 구성되는가에 대한 하나의 고무적인 실증이다. 그의 생애는 모든 사람에게 한 교훈을 제시하는 바 특별히 청년들에게 그러하다. 하나님의 요구에 철저하게 순종하면 심신의 건강에 유익하다. 도덕적, 지적 조예(造詣)의 최고의 표준에 이르기 위하여는 하나님께 지혜와 힘을 구하여 생애의 모든 습관에서 철저한 절제를 행할 필요가 있다. ― SL, 23.

다니엘의 행위가 결백하면 할 수록 그의 원수들은 그에게 대해서 더욱더 심한 증오심을 일으켰다. 저들은 미친 듯한 분노로 충만해 있었는데 그것은 저들이 다니엘에 대한 불평의 근거로 삼을 만한 결점을 그 도의적인 품성에서 또는 그의 의무의 수행에 있어서 전혀 아무것도 발견해 낼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들이 가로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그 틈을 얻지 못하면 그를 고소할 수 없으리라”(단 6:5)하였다.

53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얼마나 훌륭한 교훈이 여기에 제시되어 있는가! 질투에 찬 날카로운 눈들이 매일매일 다니엘을 노려보았으며 그들의 감시는 증오심으로 말미암아 더욱 심하게 나타낼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전히 자기가 성화되었노라고 주장하지 아니하고 이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행하였으니 그것은 곧 그가 충실과 헌신의 생애를 몸소 살았다는 것이다.

왕에게서 조서가 내렸다. 다니엘은 자기를 멸하려는 원수들의 목적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단 한점의 행습이라도 바꾸지 아니하였다. 그는 습관화된 자기의 의무를 조용히 수행하고 기도시간이 되면 자기 거실에 가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열린 그의 창가에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그의 기원(祈願)을 드렸다. 그는 자기와 하나님과의 사이에 개입하여 누구에게 기도하고 누구에게는 기도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두려움 없이 선언하였다. 참으로 첫째 갈 만한 고귀한 사람, 그는 그리스도인적인 담대함과 충실에 대한 훌륭한 모본으로 오늘날의 세상에도 우뚝 서 있다. 그는 신앙에 대한 형벌로 죽음이 임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의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우러러보았다.

“이에 왕이 명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굴에 던져 넣는지라 왕이 다니엘에게 일러 가로되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하니라”(단 6:16).

왕은 새벽에 급히 사자굴에 가서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단 6:20) 고 소리질렀다.

선지자의 음성이 대답하여 들리기를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었더라”(단 6:22, 23). 이와 같이 하나님의 종은 구원함을 받았다. 그리고 원수들이 그를 죽이기 위하여 놓았던 함정은 오히려 그들을 멸망시켰다는 것이 드러났다. 저들은 왕의 명령으로 사자굴에 던짐을 받자마자 그 사나운 짐승들에게 먹히는 바 되었다.

70년의 포로의 기한이 가까웠을 때에 다니엘은 예레미야가 한 예언의 말씀에 크게 마음이 쓰였다.

다니엘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충실함을 밝히지 아니하였다. 이 존귀히 여김을 받은 선지자는 자기가 깨끗하고 거룩하다고 주장하는 대신에 자기를 이스라엘의 실지 죄인들과 다름없이 죄인으로 취급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주셨던 지혜는 마치 정오에 천공에서 비치는 햇빛이 가장 미약한 별빛 보다 밝은 것만큼이나 세상 위인들의 지혜보다 훨씬 더 출중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크신 은총을 받은 이 사람의 입술에서 나오는 기도를 숙고하여 보라. 그는 깊은 겸비와 눈물로써, 그리고 가슴을 찢고 자신과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간구하였다. 54 그는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 앞에 드러내 놓고 자기의 무가치함을 자백하며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엄위하심을 시인하였다.

다니엘의 기도가 아직도 진행되고 있을 때에 그의 간구가 상달되어 응답되었다는 소식을 그에게 전하기 위하여 가브리엘 천사가 하늘 조정에서 급히 내려온다. 이 능력 있는 천사는 다니엘에게 재주와 지혜를 전할 사명 곧 그의 앞에 미래의 각 시대에 대한 신비들을 공개할 사명을 받았다. 이와 같이 다니엘은 진리를 열심으로 알고 깨닫고자 힘쓸 때에 하늘에서 파견된 사자와 교통하게 되었다.

다니엘은 자기가 간구한 기도의 응답에서 자기와 자기의 백성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빛과 진리만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장래의 큰 사건들에 대한 전망과 심지어 세상의 구주의 강림하심에 대한 광경까지 받았던 것이다. 성경을 상고하거나 혹은 성경의 진리를 더 명백히 깨닫기 위하여 기도로써 하나님과 씨름 하고자 하는 욕망은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성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진정한 성화란 무엇임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다니엘은 하나님과 더불어 이야기하였다. 하늘이 그의 앞에서 열렸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높은 영예는 겸비와 간절한 추구(追究)의 결과였다. 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하여 주리고 목마름같이 할 것이다. 하나님은 진리의 창시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어두워진 이해력을 계발시키고 인간의 마음에 당신께서 계시하신 진리를 포착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세상의 구속자께서 계시하신 위대한 진리들이 감추인 보화를 찾는 것처럼 진리를 찾는 이들을 위하여 있다. 다니엘은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이방 궁정의 매혹 가운데서 생애를 보냈으며 그의 마음은 대제국의 국사 때문에 번거로웠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영혼을 괴롭히며 지존하신 자의 목적을 알고자 하여 이런 모든 것들에게서 피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간원에 응답하여 하늘 조정에서 비치는 빛이 후세에 사는 자들을 위하여 전하여졌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늘에서 우리에게 전하여진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지혜를 깨우쳐 주시도록 얼마나 한 열성을 가지고 하나님께 간구할 것인가.

다니엘은 지극히 높으신 자의 헌신한 종이었다. 그의 긴 생애는 주님을 위한 고상한 봉사의 행위로 충만해 있었다. 그의 결백함과 품성과 요동하지 아니한 충실성은 오직 그의 겸비한 마음과 하나님 앞에서의 그의 깊은 회개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었다. 우리는 반복하여 말한다. 다니엘의 생애는 진정한 성화의 고무적인 실증이라고, ― SL, 43-52.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가치 있게 여기시는 자들을 시험하신다

우리가 시련을 견디라는 요구를 받은 그 사실은 주 예수께서 계발시키고자 하시는 매우 귀중한 그 무엇을 우리 안에서 발견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주께서 당신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것을 우리 안에서 도무지 발견하지 못하신다면 우리를 연단하기 위하여 시간을 소비하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는 가시덤불을 자를 때에 무슨 특별한 수고를 들이지 아니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풀무속에 무가치한 돌을 던지지 않으신다. 주께서 시험하시는 것은 가치 있는 금속이다. ― 7T, 214.

하나님께서는 책임 있는 지위를 차지하도록 계획하시는 사람들에게 자비로써 저희의 숨은 결점들을 드러내사 저들이 속사람을 들여다보고 저희 속마음의 복잡한 정서와 정신 활동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그릇된 것을 찾아내게 하시는 바 이와 같이 함으로써 저들은 저희의 성질을 시정하고 저희의 태도를 고쳐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55 주께서는 당신의 섭리로써 당신께서 그 도덕력을 시험하시고 그 행위의 동기를 드러내실 수 있는 위치에 사람들을 데려다 놓으시는 바 이는 저희가 자신 안에 있는 정당한 점은 향상시키고 그릇된 점은 내버리게 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이 그 자신의 마음의 도덕적 장치에 대해서 잘 알게 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종종 불과 같은 어려움을 허락하사 저들을 엄습하게 하시는데 이는 저들이 정결함을 받게 하기 위함인 것이다.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은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말 3:2, 3). ― 4T, 85.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한 계단씩 계속해서 인도하신다. 그분께서는 마음 속에 있는 것을 드러내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여러 가지 점들을 그들에게 제시하신다. 어떤 사람들은 한 가지 점은 견디지만 다음 것에는 넘어진다. 발전되어 가는 모든 지점에서 마음은 시험을 받고, 조금씩 철저하게 연단을 받게 된다. 만일,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엄격한 과업을 반대하는 마음이 그들에게 있는 것을 발견한다면 그 사실은 그들이 주님의 입에서 토하여 냄을 받지 않기 위하여 극복해야 할 일이 있음을 그들에게 확신시켜 주는 것이다. ― 교회증언 1권, 208.

우리가 하나님의 사업을 행하기에 무능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지혜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하여 순복하면 그 즉시로 주께서는 우리와 함께 일하실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자신의 심령을 비운다면 주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여 주실 것이다. ― 7T, 213.

하나님의 가납하심에 대한 보증을 찾는 자들에 대한 권면

그대들이 하나님께 가납되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라. 다른 어떤 책 때문에 그 말씀을 제쳐놓지 말라. 성경은 죄를 깨닫게 한다. 그것은 구원의 길을 분명하게 계시해 준다. 그것은 밝고 영광스러운 상급을 보여 준다. 그것은 완전한 구주를 그대들에게 보여 주고, 오직 그분의 무한한 자비를 통하여서만 구원을 기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대들에게 가르쳐 준다.

은밀한 기도를 등한히 하지 말라. 그 기도는 신앙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진실하고 열렬하게 영혼의 순결을 위하여 간구하라. 마치 그대들의 육신적 생명이 위기에 놓인 것처럼 간절하고 열렬하게 간구하라. 그대의 마음 속에 구원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소원이 생길 때까지, 또한 죄의 용서를 받은 귀중한 증거를 얻을 때까지 하나님 앞을 떠나지 말라. ― 교회증언 1권, 183.

예수께서는 그대가 만나는 시련과 곤란에 놀라도록 버려두지 않으신다. 예수께서는 이런 모든 것들에 대해서 이미 그대에게 말씀하셨으며 또한 시련이 임할 때에 낙담하거나 불안해 하지 말 것도 말씀하셨다. 그대의 구속자이신 예수를 바라보고 원기를 내고 기뻐하라. 가장 견디기 어려운 시련은 우리의 형제들이나 친밀한 친구들에게서 오는 것으로 이런 시험일지라도 인내함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요셉의 새 무덤에 누워 계시지 아니하다. 그는 부활하셔서 하늘에 올라가시고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고 계신다.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신 구주가 계신 바 그가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은 우리로 당신을 의지하여 소망과 힘과 용기와 그의 보좌에 그와 함께 할 지위를 가지게 하시려 함인 것이다. 주께서는 그대가 부르짖을 때에는 언제든지 그대를 능히 도우실 수 있으며 또 즐거이 도와 주신다.

그대는 그대가 차지한 신임받은 지위에 자신이 부족함을 느끼는가? 56 그 일로 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대가 자신의 연약함을 느끼면 느낄수록 그대는 조력자를 찾고 싶은 마음이 더하여 질 것이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약 4:8). 예수께서는 그대가 행복하고 기뻐하기를 바라신다. 예수께서는 그대가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가지고 그대의 최선을 다한 연후에 주께서 그대를 도와 주실 것과 또한 그대의 책임 수행에 있어서 그대의 조력자가 될 자들을 길러 주실 것에 대하여 주께 신뢰하기를 바라신다.

사람들이 불친절한 말을 하여도 상심하지 말라. 사람들이 예수에 대해서 불친절한 말을 하지 아니하였던가? 그대는 실수를 한다. 그리하여 때로는 불친절한 말을 하게 할 기회라도 주지마는 예수께서는 결코 그러지 아니하셨다. 그는 순결하고 흠이 없었으며 깨끗하셨다. 영광의 임금께서 누리신 운명보다 더 나은 운명을 이생에서 누리기를 기대하지 말라. 그대의 원수들이 그대를 상심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저들은 기뻐할 것이요 사단도 기뻐할 것이다. 예수를 바라보면서 그의 영광을 위하여 외곬으로 일하라. 그대의 마음이 항시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있게 하라. ― 8T, 128.

감정만으로는 성화의 증거가 되지 못함

기쁜 감정이나 혹은 기쁨의 결여가 그 사람이 성화되었다든가, 성화되지 아니하였다든가 하는 증거가 되지는 아니한다. 순간적으로 성화되는 것과 같은 일은 전혀 없다. 참된 성화란 생명이 부지하는 동안 꾸준히 계속하는 날마다의 사업이다. 매일의 시험과 싸우고 자신의 죄된 경향을 이기며 마음과 생활의 성결을 위하여 힘쓰는 자들은 거룩하다고 하는 거만한 주장을 하지 아니한다. 저들은 의를 사모하기를 주리고 목마른 것같이 한다. 죄가 그들에게는 몹시 죄되게 보인다. ― SL, 10.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때문에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 우리는 실수하고 그분의 성령을 슬프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고 뉘우치는 마음으로 그분께 나가면, 그분께서는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신다. 물론 제거해야 할 장애물들이 있다. 그릇된 감정을 품고 있었고 교만과 자만과 불평과 성급함이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를 하나님께로부터 분리시킨다. 죄를 고백해야 하고 마음 속에는 더욱 깊은 은혜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연약함을 느끼고 용기를 잃은 자들이 하나님께 속한 강한 자들이 되고, 주님을 위하여 고귀한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높은 견지에서 일해야 한다. 그들은 이기적인 동기에서 나온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들은 주님의 축복을 구하기 전에 유예의 시간을 가지고 그들이 변화한 사실을 그분께 입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 귀중한 영혼들은 지금이라도 그분의 축복을 구할 수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야 하고, 그리스도의 영께서 그들의 연약함을 도와 주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품성을 형성할 수 없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죄 많고 속절없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현실 그대로 당신께 나오기를 바라신다.

회개는 용서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성령의 감화를 통하여, 우리는 죄를 깨닫게 되고 용서의 필요를 느끼게 된다. 회개하는 자 외에는 아무도 용서를 받지 못한다. 그러나 마음 속에서 회개를 이루어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분은 우리의 약점과 연약함을 모두 아신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우리를 도와 주실 것이다. ― 증언보감 2권, 91, 94.

때로는 흑암과 낙담이 영혼을 엄습하여 우리를 삼키려고 위협할 것이나 우리의 확신을 버려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감정적으로 수긍되거나 수긍되지 아니하거나 간에 예수께 눈을 고정시켜야 한다. 57 우리는 모든 부여된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그런 연후에 하나님의 허락 안에서 조용히 안식하도록 하여야 한다.

때로는 우리가 무가치하다는 깊은 의식이 온 심령에 공포의 전율(戰慄)을 일으키기도 할 것이나 이것이 우리에게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변하였다거나 혹은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변심을 하였다든가 하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 마음에 어떤 강렬한 정서를 일으키고자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어제 우리가 느꼈던 바와 같은 그런 평화와 기쁨을 오늘에 느끼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손을 붙잡고 흑암 가운데서도 마치 빛 가운데서와 같이 온전히 주를 신뢰하여야 한다.

이기는 자들에게 씌워지는 면류관을 믿음으로 바라보라. 구원받은 자들의 훌륭하시도다. 훌륭하시도다. 죽임을 당하셔서 우리를 하나님께 속량하신 어린 양이여! 라고 부르는 희열의 노래에 귀를 기울여라. 이런 장면들을 현실화 하여 생각하도록 힘쓰라.

만일 우리가 자신의 마음을 그리스도와 하늘 세계에 더 많이 두도록 허용한다면 우리는 주님을 위한 싸움에서 강력한 자극과 고무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제 곧 우리의 본향이 될 더욱 좋은 저 땅의 영광을 명상할 때에 교만과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 세력을 잃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사랑스러우심 외에는 모든 세상의 매력이 거의 가치 없어 보일 것이다.

바울은 최후에 로마의 감옥에 갇혀서 하늘의 광명과 공기에서 차단되고 그의 활동적인 복음사업에서 끊기우는 바 되었으며 바야흐로 사형 선고를 받는 형편에 있었지만 그는 의심과 낙담으로 꺾이지 아니하였다. 모든 후세대의 성도들과 순교자들의 마음을 격려한 그 심오한 신앙과 용기로 충만한 임종의 증언은 바로 그 음침한 감방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의 말은 우리가 이 페이지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성화의 결과에 대하여 적절히 묘사하고 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6-8). ― SL, 8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