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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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장-로마에서

43장 - 로마에서

447 항해가 시작되어 백부장과 죄수들은 로마로 여행길에 올랐다. 알렉산드리아 배 디오스구로 호는 서쪽으로 가는 도중 멜리데에서 과동(過冬)하였으며 이 배로 여행자들은 출항하였다. 다소 역풍으로 지체는 되었으나 항해는 안전히 이루어져 그 배는 이탈리아 해안에 있는 보디올의 아름다운 항구에 닻을 내렸다.

이곳에 몇몇 그리스도인들이 있어 그들이 바울에게 이레를 저희와 함께 유할 것을 간청하였고 백부장은 친절하게 특전을 주었다. 로마인들에게 보내는 바울의 편지를 받은 후, 이탈리아의 그리스도인들은 사도의 방문을 열렬히 고대하였다. 그들은 그가 죄수가 되어 오는 것을 보리라고는 생각지 아니하였으나 그의 고통은 그로 더욱더 그들의 사랑을 받게 할 뿐이었다. 보디올과 로마 사이의 거리는 140마일이나 되었으나 그 항구는 수도와 통신이 빈번하였으므로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의 도착 소식을 듣고 그들 중 어떤 이들은 바울을 만나 환영하려고 출발하였다.

448 상륙한 지 8일 만에 백부장과 그의 죄수들은 로마로 출발하였다. 율리오는 그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은총을 기쁜 마음으로 허락하였으나 죄수로서의 그의 환경을 변화시키거나 그를 그의 파수병의 사슬로부터 풀어 줄 수는 없었다. 바울은 무거운 마음으로 오랫동안 기대해 왔던 세계의 수도를 방문하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가 예상하였었던 것과는 얼마나 다른 환경이었던가! 족쇄를 차고 오명을 쓴 그가 어떻게 복음을 선포할 것이었는가? 로마에서 많은 영혼들을 진리로 인도하고자 하였던 그의 희망은 실망으로 운명지어진 것처럼 보였다.

마침내 여행자들은 로마에서 40마일 떨어진 압비오 저자에 도착하였다. 그들이 큰 도로에 모인 무리들 사이를 지나갈 때 냉담하게 보이는 죄수들의 무리와 함께 사슬에 매인 백발의 노인은 많은 경멸의 시선을 받았으며 많은 격렬한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돌연히 기쁨의 부르짖음이 들리고 지나가던 군중 가운데서 한 사람이 나와서 마치 아들이 오래 헤어져 있던 아버지를 환영하듯이 죄수의 목을 안고 눈물을 흘리면서 기뻐하였다. 사랑스러운 기대로 눈들이 예민하여진 많은 사람들이 이 사슬에 매인 죄수가 고린도에서, 빌립보에서, 에베소에서 그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하던 사람임을 분별하였을 때 거듭거듭 이런 광경이 반복되었다.

온정이 넘친 제자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그들의 복음의 아버지 주위로 모여들자 일행 전체가 정지하게 되었다. 449 군사들은 지체되는 것이 초조했으나 이 즐거운 회합을 방해할 마음은 없었다. 군사들도 그 죄수를 존경하고 존중히 여긴 때문이었다. 피로와 고통에 지친 바울의 얼굴에서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모습이 반사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바울에게 그들이 그를 잊지 않고 사랑하고 있다는 것과 그들의 생애를 활력 있게 하고 그들에게 하나님께 향한 평화를 준 기쁨에 충만한 소망을 인하여 바울에게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하였다. 그들은 허락만 되었다면 사랑의 열정으로 로마 도성까지 가는 모든 길에 바울을 그들의 어깨에 메고 갔을 것이다.

바울이 그의 형제들을 보고 “하나님께 사례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었다고 누가가 말한 이 말의 의미를 깨닫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의 속박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하고, 울며 동정하는 신자들의 무리 가운데서 사도는 소리를 높여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의 마음에 도사리고 있던 슬픔의 구름은 사라졌다. 그의 그리스도인 생애는 시련과 고통과 실망의 연속이었으나 그 시간에 그는 풍부한 보상을 받았다는 느낌을 얻었다. 그는 확고한 발걸음과 즐거운 마음으로 그의 가는 길을 계속하였다. 그는 과거에 대하여 불평하지도 미래에 대하여 두려워하지도 아니하였다. 속박과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또한 더욱 무서운 영원한 속박에서 영혼들을 구원할 수 있기 위하여 이것이 그의 것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그리스도를 위한 그의 고통을 기뻐하였다.

로마에서 백부장 율리오는 그의 죄수들을 황제의 근위대장에게 인계하였다. 사도는 백부장이 그에게 대하여 좋게 보고한 것과 베스도의 편지 때문에 근위대장의 호감을 사게 되어 투옥되는 대신 자신이 세로 얻은 집에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450 비록 그는 여전히 한 병사의 쇠사슬에 매였으나 그의 친구들을 영접하고 그리스도의 사업을 전진시키기 위하여 수고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몇 년 전에 로마에서 추방되었던 많은 유대인들이 돌아오도록 허락되었기 때문에 많은 수효가 이제 로마에 있게 되었다. 바울은 무엇보다도 먼저 그의 원수들이 그들을 격분케 하여 그를 대적하게 할 기회를 가지기 전에 이들에게 자신과 자신의 사업에 대한 사실을 제시하고자 결심하였다. 그런고로 로마에 도착한 지 삼일 후에 그는 그들의 지도자들을 모두 불러 단순하고 직접적인 방법으로 그가 죄수로서 로마에 오게 된 이유를 말하였다.

바울은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규모를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어 준 바 되었으니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놓으려 하였으나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못하여 가이사에게 호소함이요 내 민족을 송사하려는 것이 아니로라 이러하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노니 이스라엘의 소망을 인하여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고 말하였다.

바울은 그가 유대인들의 손에 당하였던 학대나 그를 암살하려는 그들의 거듭된 음모에 대하여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아니하였다. 그의 말에는 신중함과 친절함이 현저히 나타났다. 그는 자기 개인에게 주의를 끌거나 동정을 얻고자 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옹호하고 복음의 영광을 유지하고자 하였다.

451 이에 답하여 그의 청중들은 그들이 공한이나 사신으로 그를 대적하는 비난을 받지 아니하였고 로마에 온 유대인들은 아무도 그에게 어떠한 죄를 씌우지 아니하였다고 말하였다. 그들 역시 자신들을 위하여 그가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가진 이유를 듣고자 하는 강렬한 소망을 나타내었다. 그들은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우리가 앎이라”고 말하였다.

그들이 스스로 이것을 갈망하는 이상, 바울은 그가 그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전할 수 있는 날을 정하라고 그들에게 명하였다. 작정한 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였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말하였고 구약 성경의 논증을 단순하고 성실하고 능력 있게 제시하였다.

사도는 신앙이란 의식이나 예식, 신조나 교리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타내었다. 만일 그렇다면 육에 속한 사람은 그가 세상 사물을 이해하는 것처럼 연구에 의하여 신앙을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바울은 신앙이란 실제적인 구원의 능력이요 전부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원칙이며 하나님의 새롭게 하시는 능력이 영혼에게 임하는 것을 각인이 체험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바울은 어떻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이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할 선지자로 그리스도를 지적하였으며, 어떻게 모든 선지자들이 그분을 죄에 대한 하나님의 크신 치료제요, 죄인들의 죄를 지셔야 할 무죄하신 분으로 증거하였는지를 나타내었다. 그는 그들의 형식과 의식의 준수에 대하여 잘못을 찾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들이 의문의 예식은 매우 엄밀하게 유지하는 반면에 그 모든 제도의 원형이 되시는 그분을 거절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452 바울은 그가 회개하지 아니하였을 때는 오실 메시야의 성격과 사업에 관하여 개인적인 지식에 의해 알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들과 같은 그런 생각으로 그리스도를 알았었다고 선언하였다. 그가 나사렛 예수를 사기꾼으로 거절하였던 것은 그분께서 이같은 생각을 충족시켜 주시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명에 대한 바울의 견해는 매우 신령하였고 고상하였는데 이는 그가 회개한 까닭이었다. 사도는 그가 육체를 따라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소개하지 아니하였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헤롯은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쓰셨을 때 그분을 보았다. 안나스도, 빌라도와 제사장들과 관원들도, 로마의 군사들도 그리스도를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신앙의 눈으로 그리스도를 보지 아니하였으며 영광을 받으신 구속주로서 그분을 보지 아니하였다.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이해하는 것, 곧 그리스도에 관한 영적 지식을 얻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계셨을 때 그분과 개인적 친분을 갖는 것보다 더 바람직한 일이었다. 지금 바울이 누리고 있는 그리스도와의 교제는 단지 세상적인, 인간적인 그러한 교제보다 더욱 친밀하고 더욱 지속적인 것이었다.

바울이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나사렛 예수에 관하여 아는 것을 말하고 그가 본 것을 증거하자 정직하게 진리를 찾던 자들은 확신을 갖게 되었다. 적어도 그의 말은 어떤 사람들의 마음에 결코 소멸되지 않는 감명을 끼쳤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성령의 특별한 빛을 받은 사람이 그들에게 전할 때에도 완고하게 성경의 분명한 증거를 받아들이기를 거절하였다. 453 그들은 그의 논증을 반박할 수 없었으면서도 그의 결론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하였다.

바울이 로마에 도착한 이후,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바울에 대한 그들의 고소를 제기하기 위하여 직접 나타나기까지는 여러 달이 경과하였다. 거듭거듭 그들의 계책은 좌절을 당하였으나 이제 바울이 로마 황제의 최고의 법정에서 심문을 받아야 했으므로 그들은 또 다른 패배를 당하기를 원치 아니하였다. 루시아, 벨릭스, 베스도와 아그립바는 모두 그가 무죄함을 믿는다고 선언하였다. 그의 원수들은 음모를 꾸며 황제의 마음을 사서 그들을 총애하게 함으로써만 성공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계획을 완성시켜 집행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시간이 필요하였으므로 지체하는 것은 그들의 목적에 부합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직접 사도에 대해 고소를 제기하기 전에 얼마 동안 기다렸다.

이 지체함은 하나님의 섭리로 복음을 촉진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바울은 그를 책임진 사람들의 호의로 넓은 집에 거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았고 그 곳에서 자유로이 친구들을 만나고 또한 날마다 진리를 듣고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할 수 있었다. 이리하여 2년 동안 바울은 그의 사업을 계속하여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 기간에 그가 여러 나라에 세운 교회들은 잊히지 아니하였다. 새로운 신앙으로 회심한 사람들을 위협하는 위험들을 깨달은 사도는 경고와 실제적 교훈의 편지를 보냄으로 될 수 있는 대로 그들의 필요에 응하고자 노력하였다. 454 로마에서 그는 이 교회들뿐 아니라 자신이 방문하지 아니한 지방에서 일할 헌신적인 교역자들을 파송하였다. 이 교역자들은 현명한 목자로서 바울이 잘 시작한 사업을 굳게 하였고, 사도는 그들과의 계속적인 통신으로 교회들의 상태와 위험을 알고 있어서 모든 교회를 현명하게 감독할 수 있었다.

이리하여 표면상으로는 활동적인 사업에서 차단된 것처럼 보였으나 바울은 이전처럼 교회들 사이를 자유로이 여행할 수 있었던 때보다 더욱 광범위하고 더욱 지속적인 감화를 끼쳤다. 주님의 죄수로서 그는 형제들의 애정을 더욱 굳게 붙잡을 수 있었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속박되어 있으면서 기록한 그의 말은 그가 직접 그들과 함께 있었을 때보다 그들로부터 더욱 큰 주의와 경의를 받았다. 바울이 그들을 떠나가기까지는 신자들이 그가 그들을 위하여 진 짐이 얼마나 무거웠는지를 깨닫지 못하였다. 지금까지 그들은 그들의 지혜와 재치와 불굴의 정력이 사도보다 못하다고 하여 책임과 짐을 지는 일에 크게 핑계하였으나 이제 그들은 무경험 상태에서, 그들이 피하였던 교훈을 배우게 되었으며, 바울이 친히 베푼 봉사를 귀하게 여기지 못했는데 이제는 그의 경고와 권면과 교훈을 귀중히 여기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장기간 감금당해 있는 동안의 그의 용기와 신앙에 대하여 알게 되었을 때 그리스도의 사업에 있어서 더욱 큰 성실과 열심을 나타낼 수 있는 자극을 받았다.

로마에서 바울을 도와준 사람들 중에는 그의 이전 동지들과 동역자들이 많이 있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행에서와 가이사랴에서 투옥된 2년 동안과 로마로 가는 위험한 항해에까지 그를 동반하였던 사랑받은 의원 누가가 여전히 그와 함께 있었다. 455 디모데는 역시 그를 위로하기 위하여 수종을 들었다. “사랑을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된 종”인 두기고가 사도 곁에 고상하게 서 있었다. 데마와 마가도 역시 그와 함께 있었다. 아리스다고와 에바브라는 그와 “함께 갇힌” 자들이었다(골 4:7~14).

초년에 신앙 고백을 한 이래 마가의 그리스도인적 경험은 깊어졌다. 그리스도의 생애와 돌아가심을 더욱 면밀히 연구하고 마가는 구주의 사명과 그분의 수고와 투쟁을 더욱 분명히 깨달았다. 인류를 위한 그분의 봉사의 표적인 그리스도의 손과 발의 상처와 잃어버린 바 된 사람들과 멸망당하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행하신 자아 희생의 크기를 알고 마가는 자원하여 주를 따라 자아 희생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제 죄수 바울의 운명에 동참한 그는 그리스도를 얻는 것은 무한한 이익이며, 세상을 얻고 그의 구원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피 흘리신 영혼을 잃는 것은 영원한 손실이라는 것을 이전 어느 때보다도 잘 깨닫게 되었다. 마가는 혹독한 시련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도의 현명하고 사랑하는 조력자로서 확고부동하게 나아갔다.

데마는 한동안 확고하였으나 후에는 그리스도의 사업을 버렸다. 여기에 언급하여 바울은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딤후 4:10)렸다고 기록하였다. 세속적 이익을 얻기 위하여 데마는 높고도 고상한 모든 생각을 팔아 버렸다. 그 교환은 얼마나 근시안적이었는가! 세상의 부나 명예만을 가진 데마는 진실로 가난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랑스럽게도 많은 것을 자신의 것이라고 불렀을지 모른다. 또한, 그리스도 때문에 고통을 당하기로 선택한 마가는 하늘에서 하나님의 후사요 당신의 아들과 유업을 함께 누릴 이로 간주되어 영원한 부를 소유하였다.

456 로마에서 바울의 수고로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바친 이들 중에는 골로새의 그리스도인 신자인 그의 주인 빌레몬에게 부당한 일을 행하고 로마로 도망한 오네시모가 있었다. 바울은 친절한 마음으로 이 불쌍한 도망자의 빈곤과 고통을 덜어 주고자 하였고 그리고 그의 어두워진 마음에 진리의 빛을 비추고자 노력하였다. 오네시모는 생명의 말씀을 듣고서 그의 죄악을 자백하고 그리스도의 신앙에 귀의하였다.

오네시모는 그의 경건과 성실, 사도를 위로하기 위한 그의 적지 않은 친절한 염려, 복음 사업을 추진코자 하는 그의 열심으로 바울의 총애를 받았다. 바울은 그에게서 선교 사업에 유용한 조력자가 될 품성의 특성을 발견하고 지체 말고 빌레몬에게 돌아가 그의 용서를 구하고 장래를 위하여 계획하도록 권면하였다. 사도는 빌레몬이 도난당한 금액에 대하여 자신이 책임질 것을 약속하였다. 소아시아에 있는 여러 교회에 보내는 편지들을 주어 두기고를 파송하려 하였을 때 바울은 오네시모를 두기고와 함께 보내었다. 이와 같이 잘못을 범한 주인에게로 다시 돌아가는 일은 이 종에게는 혹독한 시련이었으나 그는 진실로 회개하였으므로 이 의무의 길에서 돌아서지 아니하였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보내는 편지를 전달하는 사람으로 삼았고 이 편지 가운데 바울은 그의 평소의 재치와 친절을 가지고 회개한 종의 문제를 호소하였고 장차 그의 봉사를 계속 받고 싶다는 소망하는 표현을 하였다. 이 편지는 친구요 동역자인 빌레몬에게 대한 다음과 같은 사랑에 넘치는 인사로써 시작하였다.

457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역사하느니라.” 사도는 그가 소유한 모든 선한 목적과 품성의 특성은 그리스도의 은혜에 힘입은 것이며 이것만이 그를 사악한 자들과 죄많은 자들에게서 구실되게 한 것이란 사실을 빌레몬에게 상기시켰다. 동일한 은혜는 저열한 죄인을 하나님의 자녀와 복음사업의 유용한 사역자로 만들 수 있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그의 의무를 요구하였으나 오히려 다음과 같은 간청의 말을 선택하였다. “나이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저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다.

사도는 오네시모의 회개를 보고 회개한 종을 자기의 친 자식처럼 받아들이고 그가 “이후로는 종과같이 아니하고 종에게서 뛰어나 곧 사랑받는 형제로”서 그의 이전 주인과 함께 살기를 선택할 수 있도록 그와 같은 애정을 그에게 나타내도록 빌레몬에게 요구하였다. 사도는 빌레몬이 자발적으로 그 종을 석방시키지 아니하는 한 그의 봉사를 갈망하지 않을 것이지만, 빌레몬 자신도 그렇게 하기를 원했을 일, 즉 속박 중에 있는 그를 섬기는 일을 위해 오네시모를 곁에 두고자 하는 자기의 소망을 표현하였다.

사도는 주인들이 노예들에게 혹독하게 행한 것을 잘 알고 있었으며 또한 그는 빌레몬이 그의 종의 행동 때문에 크게 화가 났었다는 사실도 알았다. 458 바울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의 가장 깊고 가장 부드러운 감정을 일으킬 수 있는 방법으로 빌레몬에게 편지하고자 노력하였다. 오네시모의 회개는 그를 믿음의 형제로 만들었다. 그러므로 이 새로운 회심자에게 가해지는 어떠한 형벌이라도 바울에게는 자기 자신에게 가해지는 것처럼 될 것이었다.

바울은 범죄자로 하여금 형벌의 수치를 면하고 그가 상실하였던 특권을 다시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오네시모의 빚을 자신이 책임질 것을 자원하여 제의하였다. 그는 빌레몬에게 이렇게 편지하였다.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무로 알진대 저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저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진 것이 있거든 이것을 내게로 회계하라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리라.

회개한 죄인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는 얼마나 적절한 예증인가! 그의 주인의 소유를 횡령한 종은 손해를 배상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하나님에게서 여러 해 동안의 봉사를 도둑질한 죄인은 그 빚을 청산할 방법이 없다. 예수께서 죄인과 하나님 사이를 중재하셔서 내가 그 빚을 갚으리라고 말씀하신다. 죄인을 살려주소서. 제가 그를 대신하여 고통을 당하리이다고 말씀하신다.

오네시모의 빚을 책임질 것을 제의한 후 바울은 빌레몬에게 그 자신이 사도에게 얼마나 큰 빚을 졌는지를 상기시켰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그를 회개시키는 도구로 삼으셨기 때문에 빌레몬 자신도 바울에게 빚을 졌다. 그 후에 바울은 부드러우나 열렬한 호소로써 마치 그가 그의 아량으로 성도들을 대접한 것처럼 사도에게 이 기쁨의 근거를 허락함으로 사도의 마음을 기쁘게 하도록 빌레몬에게 간청하였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부언하였다. “나는 네가 순종함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노니 네가 나의 말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

459 빌레몬에게 보낸 바울의 편지는 주인과 종의 관계에 대한 복음의 영향을 나타낸다. 노예 소유는 온 로마 제국 안에서 굳게 세워진 제도였고, 바울이 수고하던 교회들의 대부분에서 주인들과 노예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노예들이 때로는 자유민보다 그 수효가 크게 많은 도시들에서는 무섭도록 혹독한 법률이 그들을 복종시키는 데 필요하다고 여겨졌다. 한 부요한 로마인은 모든 계층, 모든 민족의 온갖 재주가 있는 노예들을 수백명 소유하고 있었다. 이 불쌍한 존재들의 마음과 몸을 완전히 지배하기 위하여 그는 그가 선택한 어떠한 고통이라도 그들에게 가할 수 있었다. 만일 노예들 중 한 사람이 보복이나 자기 방어로 감히 그의 소유주를 대적하여 손을 든다면 그의 전 가족은 무참하게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아주 사소한 과오나 사고나 부주의도 흔히는 무자비한 벌을 받았다.

다른 사람들보다 자비심이 많은 어떤 주인들은 종들에게 매우 관대하였으나, 제재 없이 색욕과 정욕과 식욕의 방종에 빠진 부자와 귀족들의 대다수는 그들의 노예들을 멋대로 학대하여 참혹한 희생자로 삼았다. 모든 제도의 경향은 극단적으로 비열하였다.

사회의 기성 질서를 독단적으로 또는 갑자기 뒤집어엎는 것은 사도의 사업이 아니었다. 이것을 시도하는 것은 복음의 성공을 방해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사도는 바로 노예 제도의 기초를 공격하는 원칙들, 만일 시행된다면 제도 전체를 분명히 무너뜨릴 원칙들을 가르쳤다. 460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 3:17)고 사도는 선언하였다. 회개할 때 노예는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가 되므로 그와 같은 사람은 형제로서 하나님의 축복과 복음의 특권에 있어서 그의 주인과 유업을 함께 누리는 이로서 사랑과 대접을 받아야 하였다. 반면에 종들은 그들의 의무를 수행하되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엡 6:6)야 하였다.

그리스도교는 주인과 노예, 왕과 신하, 복음의 목사와 그리스도 안에서 죄를 깨끗하게 하심을 찾은 타락한 죄인 사이에 굳은 연합의 유대를 갖게 한다. 그들은 모두 동일한 피로 씻음을 받았고 동일한 성령의 깨우치심을 받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