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뽑은 기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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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 그리스도인은 그가 지니고 있는 표준을 끊임없이 지켜야 한다. 표준이 낮아지고 있는 세상에서의 삶의 변화에 직면하고 자신들끼리 비교하는 교인들과 사귀면서 한 때 높게 가졌던 우리 자신의 표준이 부지중에 낮아질 수 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서 예전과 오늘날 그분의 백성들에게 보내신 기별을 주목한다면 그분이 그분의 뜻에 조화되게 걷도록 그분의 백성들에게 반복하여 격려하시는 일이 필요함을 아셨다는 사실을 보게 된다. 오늘날 이것은 특별히 받으실 만한 안식일 준수, 의복과 치장, 그리고 건강 개혁에 있어서 그러하다. 엘렌G.화잇의 원고와 권면의 서신들 여기 저기에서 발견되는 이런 분야에 있어서의 얼마간의 가치 있는 자료들이 이 총서의 앞선 두 권이 발행된 이후에 어드벤티스트 리뷰에 게재되었으며 여기 책의 형태로 모아졌다. 이 부의 네 장들에는 이미 출판된 출처로부터의 일부의 자료가 포함되었다.

“기도의 다양한 모양에 있어서의 타당성”에 대한 일단의 자료를 제시하고 있는 장(章)은 적절하게 보이는데 이는 어떤 이들이 복음교역자, 178, 179쪽과 가려뽑은 기별 2권, 311-316쪽에서 발견되는 권면을 무리하게 적용하면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로 하여금 기도 시에는 경외와 겸손의 표징으로 무릎을 꿇도록 촉구하기 때문이다. 가르침은 공중 예배나 개인적인 헌신의 때에 무릎을 꿇을 것을 요청하고 있으나 엘렌G.화잇의 명백한 권면과 그의 모본은 마음과 음성이 기도 가운데 올려지는 모든 경우마다 무릎 꿇는 것이 요구되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제시된 자료는 엘렌G.화잇의 오랜 기간에 걸친 봉사로부터 발췌한 것이다.―화잇 유산 관리 위원회.

237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는 자들은 순결하고, 정직하고, 신뢰할 만하며, 또한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고, 동정심이 많으며, 예모가 있어야 한다. 진정으로 예모가 바른 자들과의 교제에는 매력이 있다. 친절한 말, 유쾌한 모습, 예절 바른 품행들은 그 가치를 헤아릴 수 없다. 예의 없는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이들을 소홀히 함을 통하여 그들이 그리스도와 연합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와 연합되었으면서도 예모가 없다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리스도께서 이 지상에서 사신 삶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어야 한다. 그분은 흠 없는 순결성에서 뿐만이 아니라 인내, 온화, 기질의 매력에 있어서도 우리의 모본이시다. 그분은 진리와 의무에 관한 한 바위처럼 견고했으나 늘 친절하고 예모가 바르셨다. 그분의 삶은 진정한 예모에 대한 예증이다. 그분은 핍절하고 억눌린 자들에게 늘 친절한 눈길과 위로의 말씀을 주셨다.

그분의 임재는 가정에 보다 순결한 분위기를 가져왔으며 그분의 생애는 사회의 구성 인자들 가운데 역사하는 누룩과 같았다. 그분은 지각이 없고, 거칠고, 예모 없는 자들과 불공정한 세리, 불의한 사마리아인들, 이방인 군인들, 거친 농부들, 그리고 잡다한 군중들 가운데를 걸으셨다. 그분은 인간이 피곤함과 무거운 짐을 지도록 강요받고 있음을 보실 때에 여기저기에서 동정의 말씀을 하셨다. 238 그분은 그들의 짐을 나누어 지셨으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친절과 선하심의 속성으로부터 배우신 교훈을 반복하셨다.

그분은 가장 거칠고 가망이 없는 자들 앞에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내보일 그러한 품성을 획득함으로써 그들이 비난할 것이 없고 해가 없는 자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놓아서 그들을 희망으로 고취시키시고자 하셨다.

불신자들에게 봉사함 ―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이셨으나 사마리아인들과 섞이셨다. 자신의 민족의 바리새인적인 관습을 무효화하시면서 그들의 편견의 면전에서 그분은 이 멸시받는 백성의 호의를 받아 들이셨다. 그분은 그들의 지붕 아래서 주무셨으며 그들의 식탁에서 함께 잡수셨으며 그들의 손으로 준비되고 제공되는 음식을 함께 나누셨으며-그들의 거리에서 가르치셨고 그들을 최상의 친절과 예모로 다루셨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동정과 사교적 친절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심을 보여주시면서 세리의 식탁에 영예로운 손님으로 앉으셨다. 사람들은 그분의 신뢰를 받을 가치가 있는 자들이 되기를 갈망하였다. 갈급한 영혼들 위에 그분의 말씀은 축복과 생기를 주는 능력으로 임하셨다. 새로운 충동이 일깨워지고 새로운 생애의 가능성이 이 사회의 버림받은 자들에게 열렸다.

복음을 위한 강력한 논증 ― 그리스도의 사랑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여 모든 거친 기질들을 순화시킨다. 순결과 성실에 대한 높은 감각을 밝은 성격과 결합시키는 법을 그분으로부터 배우도록 하자. 친절하고 예모 있는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위해 산출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논증이다.

그리스도인임을 공언하는 어떤 이들의 행동은 친절과 예모가 너무 결핍되므로 그들의 선함이 악평을 받는다. 그들의 신실함은 의심할 나위가 없으며 그들의 정직성은 의문의 여지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신실함과 정직성이 친절함과 예모의 결핍을 보상해 주지는 않는다. 그러한 자들은 구원의 계획이 인간의 속성 안에 있는 단단하고 거친 것은 무엇이든 부드럽게 하도록 실행되는 긍휼의 계획임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239 그들은 사람을 모든 이에게 친절하고 사려 깊게 만드는 그 드문 그리스도인 예모를 배양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인은 진실한 만큼 동정적이며 정직하고 곧은 만큼 인정 많고 예의가 발라야 한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도 예모 있게 되기를 배우며 가능한 한 스스로를 호감이 가게 하기 위하여 연구한다. 그들은 그들의 응대와 예모를 그들과 사귀는 자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행사하도록 표현하는 법을 배운다. 그들은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가능한 한 기술적으로 그들의 지식과 능력을 사용한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라.”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대는 그들의 삶의 몫이 수월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장래에 더 나은 것들에 대한 희망도 없이 노고와 핍절이 그들의 짐을 매우 무겁게 한다. 그리고 고통과 질병이 더해지면 그 짐은 거의 그들이 견딜 수 있는 무게를 초과하게 된다. 고생에 지치고 눌려서 그들은 위안을 얻기 위하여 어디로 향해야 할 지를 알지 못한다. 그러한 자들을 만나게 될 때에는 그들을 돕는 일에 그대의 온 마음을 쏟아라. 그러한 자들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들이 스스로를 단절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대와 마찬가지로 그들을 위해서도 돌아가셨음을 기억하라. 그들을 대함에 있어서 동정적이며 예모 있게 하라. 이것은 그대로 하여금 그들을 돕고 그들의 신뢰를 얻으며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는 길을 열 것이다.

그리스도의 은혜가 온 사람을 변화시킴 ― 사도는 우리에게 권면한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5, 16). 그리스도의 은혜는 조악한 것을 정련시키고 거친 것을 부드럽게 하며 이기적인 것을 관대하게 하면서 온 사람을 변화시킨다. 그것은 성미와 음성을 지배한다. 그것의 외적 역사는 형제가 형제에게 친절한 격려의 말과 무아적인 행동을 통해 나타내는 정중함과 부드러운 관심에 보여진다. 가정에는 천사가 임재한다. 생애는 달콤한 향기를 내뿜으며 이것은 거룩한 향으로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사랑은 친절, 부드러움, 인내, 오래 참음으로 표현된다. 얼굴의 표정은 변한다. 하늘의 평화가 드러난다. 인간의 사랑을 초월하는 부드러움이 항상 보인다. 240 인성이 신성을 나누어 받게 된다. 그리스도는 품성의 완전으로 인하여 영예를 받으신다. 이러한 변화가 완성될 때 천사들은 환희의 노래를 터뜨리며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거룩한 본을 따라 꼴 지어진 영혼에 대하여 기뻐하신다.

유쾌한 음조와 올바른 언어 ― 우리는 순수하고 올바른 언어와 친절하고 예모 있는 말을 사용하며 스스로를 유쾌한 음조로 말하는 데 익숙해지도록 해야 한다. 친절한 말은 영혼에게 마치 이슬과 부드러운 비와 같다. 성경 말씀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분이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도록 그분의 입술에 은혜가 부어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에게 명령하신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골 4:6; 엡 4:29).

그대가 접촉하게 되는 자들 중에 어떤 이들은 거칠고 예모가 없을 수가 있으나 이것 때문에 그대 스스로 덜 예모스럽게 되지 말라. 자신의 자기 존중을 유지하기를 원하는 자는 다른 이들의 자기 존중을 필요 없이 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만 한다. 이 법칙은 가장 둔하고 어줍잖은 사람들에게도 신성하게 지켜져야 한다.

이 분명히 가망 없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려 하시는지를 그대는 모른다. 과거에 그분은 더이상 가망이 없거나 매력이 없는 자들을 받으셔서 그분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하도록 하셨다. 그분의 영이 마음에 움직여서 모든 기능이 활발하게 동작하도록 일깨웠다. 주님은 그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돌 가운데서 폭풍의 시험과 열기와 압력을 견딜 귀한 재료를 보셨다. 하나님은 사람이 보는 것처럼 보시지 않는다. 그분은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중심을 살피시며 올바로 판단하신다.

항상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는 일에 주의하고 부드러운 친절과 이타적인 사랑의 행동으로 그들의 짐을 가볍게 하면서 자아를 잊자. 가정에서 시작되어 가정의 테두리를 훨씬 넘어 멀리까지 확산되는 이들 사려 깊은 예모는 생애의 행복의 절정을 이루는 데까지 나갈 것이며 이들에 대한 소홀함은 생애의 비참함의 적지 않은 몫을 우리에게 안겨 줄 것이다.­원고 69, 1902(1959년 8월 20일자 리뷰 앤드 헤랄드에 게재).

241 적절하고 정숙하고 어울리게 ― 다른 모든 일에서와 마찬가지로 의복에서도 우리 창조주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다. 그분은 우리의 의복이 말쑥하고 건강에 좋을 뿐 아니라 적절하고 어울리는 것이기를 바라신다.­교육, 248.

우리는 우리의 외모를 가장 좋게 만들도록 애써야 한다. 성막 봉사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그분 앞에서 봉사하는 자들의 의복에 관하여 세세히 모든 것을 지정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이 그분을 섬기는 자들의 의복에 관하여 좋아하시는 것이 있다는 가르침을 받는다. 아론의 복장에 대하여 주어진 지시는 매우 특수하였다. 이는 그것이 상징적이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의 의복도 상징적이어야 한다.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는 그분의 대표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외모는 모든 면에서 말쑥함, 단정함, 순결함에 의하여 특징지어져야 한다.­교회증언 6권, 96.

그리스도께서는 자연의 사물들(꽃들, 백합)을 사용하여 하늘이 귀히 보는 아름다움, 즉 정숙한 은혜, 단순성, 순결성, 적합성을 예증하시는데 이런 요소가 우리의 복장을 그분의 기뻐하시는 바가 되게 한다.­치료봉사, 289.

242 사람이 입는 의복과 그 정돈은 일반적으로 그 남자와 여자를 알려주는 지표가 됨을 알 수 있다.­리뷰 앤드 헤랄드, 1900년 1월30일자.

우리는 사람의 인격을 입은 의복의 모양으로 판단한다. 정숙하고 경건한 여인은 정숙하게 입을 것이다. 세련된 취미와 계발된 마음이 단순하고 적합한 복장을 선택하는데서 드러난다…. 입는 의복과 예모에 있어서 단순하고 허세를 부리지 않는 여인은 참된 여성이 도덕적 가치에 의하여 특징지어진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의복에 있어서의 단순함은 얼마나 매력적이며 흥미로운가? 그것은 아름다움에 있어서 들의 꽃들에 비교될 수 있다.­리뷰 앤드 헤랄드, 1904년 11월17일자.

만약 세상이 성경과 일치하는 정숙하고 편리하고 건강에 좋은 의복의 형태를 도입한다면 그러한 모양의 의복을 채택한다고 해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관계나 세상에 대한 우리의 관계가 바뀌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따라야 하며 그들의 의복을 하나님의 말씀에 맞게 해야 한다. 그들은 극단을 피해야 한다. 그들은 겸손하게 칭찬이나 비난에 상관없이 똑바른 길을 추구해야 하며 그 자체의 장점 때문에 올바른 것에 집착해야 한다.­교회증언 1권, 458, 459.

나는 내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걷기를 바란다. 건강 법칙에 일치하는 범위에서 의복의 관습을 따르라. 우리 자매들은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양질의 견고한 재료로 만든 의복을 가지고 이 시대에 합당하게, 평범하게 입고 의복의 문제로 마음을 채우지 않게 하라. 우리 자매들은 단순하게 옷을 입어야 한다. 그들은 염치와 온건한 정신을 가지고 정숙한 복장을 입어야 한다. 세상에 하나님의 은혜의 내적 치장의 산 예증을 보이라.­원고 167, 1897(새 자녀 지도법, 414쪽에 게재됨).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다르게 옷을 입음으로 스스로를 어이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고통을 받을 필요가 없다. 243 그러나 만약 정숙하고 건강하게 옷을 입는 일에 있어서 의무에 대한 그들의 확신을 따를 경우 그들이 유행에 뒤지는 것을 발견할 때에라도 세상과 같아지기 위하여 그들의 의복을 바꾸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들은 모든 세상이 그들과 다를지라도 올바르기 위한 고상한 독립성과 도덕적 용기를 드러내야 한다.­교회증언 1권, 458.

진리는 결코 남녀들을 조악하고 거칠고 예모 없게 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을 그들의 모든 죄악과 비속함에서 취하여서 세상과 분리시키고 비록 그들이 가난하고 교육을 받지 못하였을지라도 그들의 취미를 정련시킨다. 그리스도의 훈련 아래 진리에 의하여 그들을 성화시켜가는 계속적인 정련의 작업이 지속된다. 만약 그들이 자만, 혹은 유행, 혹은 과시 가운데 그리스도로부터 세상의 길로 이끌어 가는 영향의 한 점이라도 행사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는다면 그들은 원수의 세력을 물리칠 저항의 말을 한다. 그들은 “나는 내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바가 되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 딸이다”라고 말한다.­서신 26, 1900.

안식일을 지키는 많은 재림신도들이 생각과 말과 의복에 있어서 세속화하는 것을 볼 때에 나의 마음은 슬퍼졌다. 세상에 줄 마지막 은혜의 기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고 주장하는 백성이 세상의 유행에 매혹되어 그들의 믿음의 고백이 허용한다고 생각하는 한껏 그것들을 따르기 위하여 큰 노력을 한다. 우리 백성들 중에 세속적 의복은 너무 현저하여 불신자들이 흔히 “의복에 있어서 그들은 세상과 구별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비록 많은 예외가 있으나 이것은 사실이다.

세상의 표준에 영합하는 자들은 그 수가 적지 않다. 그들이 다른 이들로 하여금 그들의 본을 따르도록 이끌면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볼 때 우리는 비통함을 느낀다. 244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세상이 도입한 유행을 흉내 내는 것을 보는 것은 내게 가장 고통스러운 반영이다. 그들이 그리스도와 거의 유사하지 않다는 사실은 모든 이에게 분명하다. 외적인 치장은 세상 사람이나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보시기에 가장 가치가 있는 온유하고 조용한 정신적 장식, 즉 내적 장식의 부재를 드러낸다….

마음의 상태가 표시됨 ― 우리는 우리 그리스도인 자매들에게 그들의 의복을 세상의 모양에 맞게 하여 주의를 끌려는 경향에 대하여 경고한다. 하나님의 집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임을 공언하는 여성들의 의복에 의하여 모독을 당한다. 환상적인 의복, 즉 금사슬과 요란스러운 장식의 레이스의 과시는 빈약한 지성과 마음의 교만을 분명히 표시한다.

유행의 본을 따라가기 위하여 많은 우리 청년들이 그들의 생활 조건에 합당하지 않은 비용을 쓴다. 가난한 부모의 자녀들이 부유한 자들이 하는 것처럼 의복을 입기를 추구한다. 부모들은 그들의 돈과 하나님께서 주신 그들의 시간과 힘을 자녀들의 허영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의복을 만들고 다시 고치고 하는 일로 소비한다. 만약 많은 재물을 가진 우리 자매들이 그들의 부요함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의무에 따라 그들에게 맡겨진 재물을 소유한 지혜로운 청지기처럼 그들의 씀씀이를 조정했다면 그들의 모본은 현재 우리 가운데 존재하는 이 악을 견제하는 데 큰 일을 했을 것이다.

사단의 전술 ― 사단은 배후에 서서 재정을 과장되게 지출하도록 유도하는 유행을 고안하고 있다. 당시의 유행을 조성하는 일에 그는 고정된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는 유행의 요구를 만족하기 위하여 드려지는 시간과 돈은 보다 높고 보다 거룩한 목적을 위하여는 사용되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 항상 변하며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유행에 보조를 맞추기 위하여 귀중한 시간이 허비된다. 한 모양이 도입되기가 무섭게 새 모양이 고안되며 유행을 좇는 사람은 계속 유행에 맞추기 위하여 의복을 다시 새 모양으로 고쳐야 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임을 공언하는 자들은 나누인 마음을 가지고 그들의 시간을 허비하면서 세상에 거의 그들의 모든 정력을 바친다.

245 우리 자매들은 이 전적으로 불필요한 짐을 들어 올려 기꺼이 진다. 그들의 진 짐의 절반은 유행을 따르고자 하는 시도로부터 오나 그들은 이 멍에를 열렬히 지는데 이는 유행이 그들이 섬기는 신이기 때문이다. 순전한 노예처럼 진실로 굴레의 족쇄에 채워져 있으나 그들은 독립성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들은 독립성의 첫 번째 원리도 알지 못한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지성이나 취미나 판단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사단은 항상 변하는 의복의 모양에 마음을 열중하게 하는 일에 놀랍게 성공하고 있다. 그는 여성들의 마음이 항상 유행을 따르고자 하는 열망으로 차 있는 동안에는 그들의 도덕적 지각이 약하며 그들의 진정한 영적 형편을 깨닫기 위하여 일으킴을 받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도 없고 소망도 없이 세속적이다.

취미와 적합성과 견고성 ― 우리는 의복에 있어서의 취미를 좌절시키지 않는다. 의복에 있어서의 올바른 취미는 경멸시되거나 정죄되지 말아야 한다. 불필요한 주름, 부속물, 장식들을 제외시키는 반면 우리는 우리 자매들에게 양질의 견고한 재료를 확보하도록 격려한다. 값싼 천을 구입함으로 돈을 절약하려는 시도에서 얻어지는 것이 없다. 천은 과시의 사치를 배제한 평범하고 산뜻한 것으로 하라.

유행의 노예를 깨고 나오는 젊은 여성들은 사회에 광채를 더해 줄 것이다. 의복과 예모에 있어서 단순하고 젠체하지 않는 여성은 진정한 여성이 도덕적 가치에 의하여 특징지어진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원고 106, 1901(리뷰 앤드 헤랄드, 1958년 3월20일자에 다시 게재됨).

의복에 있어서 자아 부정은 우리 그리스도인 의무의 한 부분이다. 보석이나 각종 장식으로 과시하는 것을 피하여 평범하게 옷 입는 것은 우리의 믿음과 조화를 이룬다. 오락을 사랑하는 것에서와 마찬가지로 의복의 사치에 방종함에서도 세속에 속한 사람의 어리석음을 보는 자들 중에 우리는 속해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이 세상만을 위하여 살며 오는 세상에 대한 아무 생각이나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런 정신을 인정하는 모든 것을 피하는 그런 부류에 속해야 한다.­교회증언 3권, 366.

246 배틀크릭에 있는 우리 기관 중의 한 곳에서 몇 주를 지낸 한 자매가 거기서 그가 보고들은 것에 대하여 크게 실망했다고 말했다. 그는 진리에 대한 지식과 신앙적 체험에 있어서 크게 진보된 교회의 백성을 발견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여기서 그는 멀리 떨어진 주에 있는 믿음의 자매들에게 그가 전달할 수 있는 많은 교훈을 얻을 것을 희망하였다. 그러나 어디서나 만나는 경박함, 세속성, 헌신의 부족은 그를 놀라게 했고 고통스럽게 했다.

진리를 받아들이기 전에 그는 의복에 있어서 세상의 유행을 따랐으며 값나가는 보석과 다른 장식물들을 착용하였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로 결정하자 그 가르침이 그에게 모든 사치스럽고 과도한 장식을 버리도록 요구함을 느꼈다. 그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은 보석, 금, 은, 값비싼 보석류들을 차지 않으며 의복에 있어서 세상적 유행을 따르지 않는다고 배웠다.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들 중에 매우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단순성에서 떠난 것을 보았을 때 그는 당황하였다. 그들은 그가 공부하여 오던, 그리고 거기에 그의 생애를 일치시키고자 노력하던 그 성경과는 서로 다른 성경을 가지고 있었는가? 그의 과거의 경험은 단지 광신에 불과했던가? 그가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약 4:4)고 한 사도의 말씀을 잘못 해석했던가?

그 기관에서 한 직책을 담당하고 있는 D 부인이 하루는 ______자매의 방을 방문하고 있었다. 그 때 그 후자는 그의 트렁크에서 금목걸이와 사슬을 꺼냈다. 그리고 그 보석을 처분하여 그 판매금을 주님의 금고에 넣고 싶다고 말했다. 전자가 그에게 말했다. “왜 그것을 팝니까? 그것이 내 것이라면 나는 그것을 착용하겠습니다.” ________자매가 대답하였다. “왜요? 내가 진리를 받았을 때, 이 모든 것들은 버려야 한다고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247 분명히 이것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에 위배됩니다.” 그리고 그는 그 듣는 자에게 이 점에 대한 바울과 베드로 사도들의 말씀을 인용하였다.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딤전 2:9, 10).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를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벧전 3:3, 4).

그에 대한 답변으로 그 여성은 불신자가 그에게 준, 그의 손가락에 낀 반지를 내보이며 그러한 장식물을 착용하는 것은 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전처럼 그렇게 특별하지 않습니다. 우리 백성들은 의복의 주제에 대한 그들의 의견에 있어서 너무 꼼꼼했었습니다. 이 기관의 여성들은 금시계와 금사슬을 차며 다른 이들과 같은 의복을 입습니다. 우리의 의복에 있어서 유별난 것은 좋은 정책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가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그가 말했다.

그리스도와의, 혹은 세속과의 일치 ― 이것은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일치하는가라고 우리는 묻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하는가 혹은 세상의 관습을 따라야 하는가? 우리의 자매는 성경의 표준을 고수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결정하였다. D 부인과 및 그와 유사한 노선을 따르는 다른 이들은 모든 이들이 그의 행위에 따라 보상을 받게 될 그 날에 그들의 영향의 결과를 기쁨으로 맞이하게 될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은 명백하다. 그 가르침은 잘못 이해될 수 없다. 우리는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그대로 그것을 순종할 것인가 혹은 우리가 얼마나 멀리 벗어날 수 있는지 알고자 하면서 동시에 구원받기를 추구할 것인가? 우리 기관과 연관된 모든 자들은 거룩한 빛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따름으로 어두움 가운데서 걷는 자들에게 빛을 전할 수 있게 되지 않으려는가?

세속에 일치함은 우리 백성의 영성을 약화시키는 죄로서 그들의 유용성에 심각한 방해가 된다. 매일의 생애의 거래에서는 경고의 기별을 부정하면서 세상에 그것을 선포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리뷰 앤드 헤랄드, 1882년 3월28일자.

248 팔찌를 가지고 있으며 금과 장식물들을 차는 자들은 이 우상을 그들의 몸에서 취하여 내서 비록 그들이 그것을 위하여 지불한 것보다 훨씬 적은 금액일지라도 그것을 팔므로 자아 부정을 실천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금과 은이나 값비싼 옷으로 몸을 장식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나는 이 방면에서 좋은 일이 이루어 질 수 있음을 안다. 하늘 궁정의 사령관이신 예수님은 그분의 왕관과 왕복을 벗어버리시고 보좌로부터 내려오사 그분의 신성을 인성의 복장으로 옷 입으셨으며 우리가 그분의 가난을 통하여 영원한 부를 소유할 수 있도록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가난해지셨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멸망으로부터 죽어 가는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가능한 한의 모든 일을 해 주신 바로 그 대상자들은 그들이 돈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어떤 것에서도 자아를 부정하려는 의도를 거의 느끼지 않는다.

주님은 곧 오실 것이며 그분의 상급이 그분과 함께 있고 모든 사람에게 그 행위를 따라 줄 일이 그분 앞에 놓여 있다. 나는 우리가 성취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주님의 돈을 취급하고 있음을 백성 앞에 제시하고자 노력한다. 만약 모두가 조금씩 한다면 그들은 자아 부정을 통하여 개인적으로 훨씬 많은 것을 할 것이며 그 많은 작은 시내는 하늘을 향하여 흐르는 꽤 큰 흐름을 형성할 것이다.

진실로 모두가 이 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자아, 자아, 자아가 섬김을 받고 영광을 받아야만 하니 모두가 하나님과 동역자가 되는 것은 얼마나 힘이 드는가. 오, 자아 희생의 정신이 모든 교회에 임하여 가까이 혹은 멀리 있는 모든 영혼들이 돈의 가치를 배우고 그들이 쓸 수 있는 동안 그것을 사용하며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 29:14)라고 말한다면 좋으리라.­서신 110, 1896.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일로 걱정할 시간이 없다. 단순하게 살고 단순하게 일하자. 249 우리가 어디에 가든지 받아들여지도록 정숙하고 아담하게 옷 입자. 보석과 값비싼 옷이 우리에게 영향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온유하고 조용한 정신의 장식-그리스도의 봉사에 헌신한 결과-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준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위한 친절과 사전의 고려가 하늘이 보기에 고귀한 자질이다. 이러한 은혜를 얻기 위하여 주의하지 않았다면 지금 그렇게 하라. 이는 잃어버릴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원고 83, 1909.

엡 3:6, 7-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단지 백성들에게 진리를 제시하기 위함 뿐 아니라 생애에 그것을 실천하기 위하여 “이 복음을 위하여 내가 일꾼이 되었”다…. 그러나 이뿐만이 아니다. 어떤 이들이 소홀히 하였으나 중요한, 내게 제시된 빛 안에서 생각해야 할 다른 것들이 있다….

조심스럽게 옷을 입는 일은 중요한 문제이다. 현대 진리를 믿는 목사들이 이 점에서 부족하였다. 어떤 이들의 의복은 너저분하기까지 하다. 몸에 어울리는 모양으로 옷을 입는 일과 그리스도의 목사에게 적합하고 어울리는 색깔을 고르는 데 있어서 취미와 질서가 없을 뿐 아니라 어떤 이들의 복장은 꾀죄죄하기까지 하다. 어떤 목사들은 백성 앞에 나아 올 때에 몸에 옷을 착용하는 일에 있어서 취미나 질서도 없이 바지를 어둡게 입는 반면 상의를 밝은 색깔로 입거나 어두운 상의에 밝은 바지를 입는다. 이러한 것들이 백성에게 설교를 한다. 250 목사는 그들에게 질서의 모본을 주며 복장에 있어서 산뜻함과 취미의 적절함을 제시하거나 그들이 따를 때에 위험에 빠질 느슨함이나 취미의 결여에 대한 가르침을 줄 수도 있다.

강단에 적합한 복장 ― 복장에 있어서 검거나 어두운 천이 강단의 목사들에게 더욱 잘 어울리며 두세 가지 다른 색이 조합되어 만들어진 옷보다 백성에게 더 나은 인상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고대의 이스라엘 백성이 내게 지적되었으며 하나님께서 당신 앞에 봉사하는 자들이 입을 옷의 재료와 모양에 대하여 특별한 지시를 내리셨음이 보여졌다. 그 팔로 세계를 움직이시며 우리를 유지하고 우리에게 생명과 건강을 주시는 하늘의 하나님께서 그분 앞에서 직무를 행하는 자들의 복장에 의하여 영광을 받으시거나 불명예를 당하실 수 있음에 대한 증거를 주셨다. 그분은 모세에게 당신께 봉사하는 일과 관련된 모든 것에 관하여 특별히 지시하셨다. 그분은 당신께 봉사하는 자들의 가옥의 배열에 대한 지시까지 주셨으며 당신께 봉사하는 자들이 입어야 할 의복을 지정하셨다. 그들은 모든 일에 있어서 질서를 유지해야 하였다….

올바른 인상을 끼칠 수 있도록 해야 함 ― 그분의 거룩한 임재로 나아 올 때에 그분 앞에 나타나는 자들에게는 느슨함이나 너저분함이 없었어야 하였다. 왜 그랬는가? 이 모든 주의함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단지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호감을 사게 하기 위함이었는가? 단지 그분의 인가를 받기 위함이었는가?

올바른 인상이 백성에게 끼쳐지도록 해야 했었다는 것이 내게 주어진 이유였다. 거룩한 직분을 가지고 봉사하는 자들이 만약 그들의 복장과 태도에서 조심성과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나타내는 데 실패한다면 백성은 하나님과 그분의 거룩한 봉사에 대한 경외심을 상실할 것이다.

만약 제사장이 그분이 계신 앞에 나아 올 때에 매우 조심하며 매우 각별하였다면 그것은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그분의 요구에 대해 고상한 생각을 가지게 하였을 것이다. 251 그것은 그들에게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그분의 사업은 신성하고 그분의 사업과 관련된 것은 거룩해야만 한다는 것, 즉 그것은 불순함과 부정함 같은 모든 것에서 벗어나야 하며 하나님께 가까이 접근하는 자는 모든 더러움을 버려야 함을 보여 주었다.

목사의 의복과 진리 ― 내게 주어진 빛에 의하면 이 점에 있어 부주의함이 있어 왔다. 나는 바울이 제시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에 대하여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부주의함은 자의적 경배와 몸을 소홀히 하는 가운데 실행되었다. 그러나 이 고의적인 겸손, 즉 자의적 경배와 몸을 소홀히 하는 것은 하늘의 맛을 내는 겸손이 아니다. 겸손은 특별히 하나님의 거룩한 진리를 전파하는 모든 자들의 몸과 행동과 의복을 바르게 하고 완전히 적합하게 할 것이므로 우리와 관련된 모든 사항들이 우리의 거룩한 종교를 천거하게 될 것이다. 의복 그 자체가 불신자들에게 진리를 추천한다. 그 자체가 설교가 될 것이다….

복장에 있어서 소홀한 목사는 흔히 훌륭한 취미와 고상한 감각을 가진 자들에게 상처를 입힌다. 이 점에 있어서 결점이 있는 자들은 그들의 잘못을 고치고 보다 신중해야 할 것이다. 어떤 영혼들의 상실은 그 원인이 목사의 너저분함에 있음이 마침내 밝혀질 것이다. 첫 인상이 백성에게 나쁜 영향을 끼쳤는데 이는 목사의 모습을 그가 전하는 진리와 어떤 방법으로도 연관시킬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의복은 그와 반대였다. 끼쳐진 인상은 그가 대표한 사람들이 그들의 의복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부주의한 무리라는 것이었다. 그의 청중은 그러한 계층의 사람들과 상관되는 것은 어떠한 것도 원하지 않았다….

의복에 의하여 판단되는 목사들의 사업의 위상 ― 거룩한 일에 봉사하는 어떤 이들은 적어도 얼마간 그들의 노동의 영향에 손상을 가져오는 그런 모양으로 그들의 몸에 옷을 착용한다. 분명 색깔에 있어서의 취미와 적합성에 있어서의 정숙함이 결핍되어 있다. 그러한 옷매무새에 의해 주어지는 인상은 어떠할 것인가? 그들의 종사하는 일이 들에서 밭을 가는 일과 같은 평범한 노동보다 더 거룩하거나 고상한 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목사는 그의 본을 통하여 거룩한 사물을 보통의 사물 수준으로 끌어내린다. 그러한 설교자의 영향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는다.­교회증언 2권, 609-614.

252 그대의 편지를 받아서 읽었다…. 그대가 충고를 위하여 내 앞에 제시한 주제(1860년대 후반에 주창되고 입혀지던 개선 의복으로 돌아가자는 제안)는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는 문제이다. 개선 의복을 다시 입자는 주제로 그 마음이 동요되고 있는 우리 자매들은 그들이 행하는 매 움직임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이 특별한 때를 위한 가장 엄숙하고 중요한 시금석들을 가지고 있다. 이 시금석은 모든 세상을 위한 것이다. 주님은 인간이 고안한 어떤 시금석들이 백성의 마음을 딴 데로 돌리거나 어떤 분야에 있어서 분쟁을 일으키기 위하여 들어오는 것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어떤 이들은 어떤 방법에서 구별되기를 갈망하기도 한다. 만약 그들이 사단의 대리자들과의 전쟁을 갈망한다면 우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갑옷의 모든 부분을 입어야 함을 확신하게 하라. 만약 그들이 그렇지 못하다면 그들은 분명 패배할 것이며 미처 대응할 준비를 갖추지 못한 비통한 시련과 절망에 스스로 빠지게 될 것이다. 모든 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께서 길을 인도하시는 대로 그분을 따라 갈 마음의 준비를 갖출 때에 그 주제에서 얻게 될 깊고 풍부한 경험을 위하여 주님을 가장 진지하게 찾게 하라.

그분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말씀은 깊이 숙고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따르기를 원하는 자,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 걷기를 선택하는 자는 그 길에서 자아 부정과 십자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자는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의복은 시금석적인 문제가 되지 말아야 함 ― 하나님의 시험들은 이제 명백하고 오해의 여지가 없는 모양으로 드러나야 한다. 우리 앞에는 폭풍우,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투쟁이 놓여 있다. 지금은 우리의 의복에 있어서 어떤 특별한 개조를 할 필요가 없다. 가장 건강에 유익하게 만들어진, 지금 입고 있는 의복의 평범하고 단순한 형태는 버팀살 대와 긴 치맛자락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어디서나 입을 만하다. 253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은 세상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는 큰 시금석-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으로부터 우리들의 마음을 딴 데로 돌리도록 들어와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 세상 역사의 종점에 가까워지고 있다. 지금은 의복의 단순성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주어진 것처럼 명백하고 직접적인 증언이 필요하다. 이것이 우리의 짐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문제를 시금석으로 하는 일에 열심을 내기에는 지금은 너무 늦다. 마음을 준비하며, 품성을 순결케 하며 전적으로 마음을 겸손하게 하고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자매들은, 한때 축복으로 주어졌으나 많은 사람에 의하여 저주 거리로 미움을 받고 멸시를 받는 것으로 시금석을 삼도록 주님께서 그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시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확신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개선 의복 ― 한때 옹호되었던 개선 의복*은 매 단계마다 투쟁을 일으켰다. 교인들은 이 건강에 적합한 모양의 의복 입기를 거절하면서 알력과 불화를 일으켰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 앞에 명백하게 제시된 모양을 따라 의복을 마련함에 있어서 취향이나 통일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이것은 이야기거리였다. 그 결과 그 못마땅한 모양, 즉 그 바지는 입지 않게 되었다. 축복으로 주어졌던 것이 저주가 되었으므로 개선 의복을 옹호하던 짐은 벗어졌다.

개선 의복을 결정적인 축복으로 만든 것이 몇 가지 있다. 그 당시에 유행하던 우스꽝스러운 버팀살 대는 이 옷과 함께 입을 수가 없었다. 땅 위에 질질 끌리며 거리의 오물을 쓸어 대던 긴치마는 지지를 받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 못마땅한 모양들을 제외시킨 보다 합리적인 형태의 의복이 채택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모두는 유행의 모양을 따르는 의복을 벗어버릴 수 있으며 벗어 버려야 한다. 254 의복 개선을 옹호하는 데 쓰여지는 시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데 쓰여져야 한다.

우리 백성들의 의복은 가장 단순하게 만들어져야 한다. 내가 이미 언급한 치마와 겉저고리가 사용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다만 그 형태 외에 다른 것이 제정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의복이 대표하는 그 단순한 형태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주어진 꼭 그 형태가 모든 사람이 채택해야 할 형태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 그러나 이와 같이 단순한 어떤 것이 그 상황에서 우리가 채택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이다. 의복에 있어서 모두를 지도하기 위한 엄밀한 규정으로 어떤 한 가지 특정한 형태도 내게 제시된 바가 없다….

단순한 의복을 입어야 한다. 자매들이여 이 필수적인 개혁에 있어서 그대들의 재능을 발휘해 보라.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모든 시험을 당하게 될 것이다.

안식일 문제는 온 세상에 임할 시험이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미 당하고 있는 시험을 더 통렬하게 할 시험거리를 발생시키는 그 어떤 것도 허용할 필요가 없다. 원수는 지금 백성들의 마음을 딴 곳으로 돌리는 문제를 제시하여 그들로 하여금 의복의 주제에 대한 논쟁에 빠져들게 함으로써 만족할 것이다. 우리 자매들로 하여금 양질의, 견고하고, 정숙하고, 이 시대에 적절한 의복을 마련하여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하듯이 평범하게 입게 하라. 그리고 마음을 의복 문제로 채우지 말라….

어떤 이들이 보인 본 ― 하나님의 말씀의 모든 빛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분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취향을 따르며 그들이 원하는 대로 행한다. 이들은 청년들과 새로이 진리로 나온, 시간과 돈이 드는 장식물에 있어서 새로운 모든 형태의 의복을 모방하는 것을 습관으로 삼는 자들에게 잘못된 본을 끼친다. 그리하여 그들의 복장과 세상에 속한 자들의 복장 사이에 거의 차이가 없게 된다.

우리 자매들로 하여금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양심적으로 주목하게 하라. 그대가 개혁하기 전에 다른 이들을 위한 개혁 사업을 시작하지 말라. 성공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변화시킬 수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의 내적 역사는 외적인 변화를 보일 것이다. 255 대담하게도 가장 명백한 영감적 진술을 순종하지 않으려고 하는 자들은 듣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을 것이며 어떤 면으로도 그들을 이상하거나 별난 존재로 만들지 않을 평범한, 장식되지 않은, 단순한, 말쑥한, 적절한 의복으로 이 우상 숭배자들을 돌이키는 모든 인간적 노력을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계속적으로 세상의 깃발을 내걸므로 스스로를 드러낼 것이다….

우리의 전 은혜의 기간은 매우 짧으며 지상에서는 곧 일이 끝날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보내시는 시험이 이르러 올 것이다. 그분의 검증은 예리하고 결정적일 것이다. 모든 영혼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고 우리 앞에 있는 것들을 위하여 준비하게 하라.­서신 19, 1897.

256 안식일은 세상에 충성의 표징이 됨 ― 구름기둥으로부터 예수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 인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출 31:12, 13)고 하셨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서약, 즉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에 대한 표징이다. 육일 동안의 세상 창조와 일곱 번째 날의 창조주의 안식을 기념하므로, 즉 그분의 지시를 따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므로, 이스라엘 민족은 세상에 유일하고 참된 살아 계신 하나님, 즉 우주의 통치자에 대한 그들의 충성을 선포하였다.

참된 안식일을 지킴으로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모든 거짓 신들과 구별되신 분이신 참되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지식을 세상에 충성스럽게 증거해야 한다. 이는 안식일의 주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창조주, 즉 다른 모든 신들 위에 뛰어나신 분이기 때문이다.

257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제칠일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 하라”(14-17절).­원고 122, 1901.

안식일과 자녀들에 대한 초기 권면 ― 안식일을 믿는 자들의 자녀들에 의하여 하나님의 집은 모독을 받으며 안식일은 범하여진다. 그들은 거룩한 아름다움 가운데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을 예배하기 위하여 성도들이 함께 모인 바로 그 집회 시간에 건물 안을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놀이를 하며, 떠들며, 그들의 악한 성질을 나타낸다. 거룩해야 할 장소, 거룩한 고요가 지배해야 할 장소, 완전한 질서, 정숙함, 겸손이 있어야 할 장소가 완전한 바벨론, 그리고 혼란, 무질서, 난잡함이 지배하는 곳이 된다. 이것은 하나님을 우리의 집회에서 배제하기에 충분하며 그분의 노를 일으켜 그분으로 하여금 우리의 원수와의 싸움에 이스라엘 군대와 함께 나아가기를 즐겨 하지 않으시게 한다.

하나님은 _______집회에 승리를 주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의 믿음의 원수들이 승리하였다. 하나님은 불쾌하셨다. 그분의 노가 발해져서 그분의 집은 바벨론 같이 된다….

무엇보다도 안식일에 그대의 자녀를 돌보라. 그들로 하여금 그날을 범하지 않게 하라. 이는 그대의 자녀들로 하여금 그 날을 범하게 허락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대도 그날을 범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대가 그대의 자녀들로 하여금 안식일에 놀이를 하도록 묵인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대를 계명을 범하는 자로 보실 것이다. 그대는 그분의 안식일을 범하고 있다.­원고 3, 1854.

떠들썩한 소란과 혼란이 없음 ― 그들(그 가족 모두)은 경망스럽지 않게 탁자 둘레에 모였다. 시끄러운 소음과 말다툼은 일주일 중 어느 날에라도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더욱이 안식일에는 모두가 조용해야 한다. 언제라도 큰 소리의 명령이 들러져서는 안 된다. 더욱이 안식일에 그것은 전적으로 부적절하다. 이 날은 하나님의 거룩한 날, 즉 그분이 그분의 창조적 사업을 기념하기 위하여 구별하신 날, 그분이 거룩하게 하시고 신성하게 하신 날이다.­원고 57, 1897.

258 우리 자신의 오락을 구함 ― 나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에게 그대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요구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그대들은 진리로 거룩하게 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우리는 한 백성으로서 마땅히 우리가 해야 할만큼 하나님의 율법에 탁월성을 부여하지 않았다. 우리는 안식일에 우리 자신의 오락을 행할 위험에 처해 있다.­서신 258, 1907.

오락 추구, 수영, 공놀이의 날이 아님 ―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모든 선물의 진가가 인정되도록 하신다. 모든 부분들, 일점 일획이라도 주의 깊게 마음에 새겨져야 하며 우리는 남들의 필요를 면밀하게 알게 되어야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성경 진리는 단지 우리의 유익만을 위함이 아니라 다른 영혼들에게도 나누어주기 위함이며 이 사실은 사람들의 마음에 감명되어야 한다. 또한 발해지는 모든 친절한 말들은 다른 영혼에게 진리가 풍성하게 흘러 나갈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이적을 통하여 일하신 모든 것은 필수적인 것이었으며 고통을 당하는 인류를 위하여 안식일에 해야 할 큰 일이 있음을 세상에 드러내었다. 그러나 일상적인 일은 하지 말아야 하였다. 오락 추구, 공놀이, 수영은 필수적인 것이 아니며 여호와께서 거룩하게 하신 거룩한 날에 대한 죄된 무시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단지 그분의 능력을 드러내시고자 이적을 행하신 것이 아니다. 그분은 항상 고난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는 인성 가운데 사단을 대항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단에 의해 괴로움을 당하는,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서신 252, 1906.

안식일 접시들 ― 피할 수만 있다면 안식일에 그들의 접시를 설거지하지 말 것을 모두에게 명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거룩한 날에 불필요한 일이 행해 질 때 모욕을 당하신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안식일이 마쳐질 때까지 접시들을 설거지하지 말고 남겨 두는 것이 일관성이 없는 일이 아니라 적절한 일이다.­서신 104, 1901.

봉사의 안식일 ― 기도 주간의 첫 안식일은 열렬한 활동의 날이었다. 259 멀리 걸을 수 없는 사람들을 집회에 데려오기 위하여 “써니싸이드”와 학교로부터 두 팀과 보트 하나가 도라크릭으로 보내졌다. 백성들은 점심을 가져오라는 요청을 받았으며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준비하여 집회에 오도록 요청을 받았다. 그들은 그 요청에 기꺼이 응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을 집회에 데려오기 위하여 우리가 안식일에 힘을 쓰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그들은 일요일을 지키는 것이 대부분 육체적인 무활동으로 이루어진다고 가르침을 받았고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는 일에 열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바리새인의 가르침을 따라 안식일을 지킬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안식일을 지키는 문제에 관하여 우리 친구들에게, 흔히 치료하고 가르치는 진지한 노력으로 안식일을 보낸 그리스도의 모본과 가르침을 우리가 공부했다는 것, 또한 병든 가족을 간호하는 자매들 중의 하나는 안식일 학교 시간에 반을 지도하는 사람 못지 않게 안식일을 지키고 있음을 우리는 믿는다는 것, 그리스도께서는 그분 당시의 바리새인들을 기쁘게 해 주실 수 없었다는 것과 우리도 주님을 섬기는 우리의 노력이 오늘날의 바리새인들을 만족시켜 주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들을 이야기했다.­리뷰 앤드 헤랄드, 1898년 10월18일자.

거룩한, 그리고 세속적인 활동들 ― 성전에 있는 제사장들은 다른 날보다 안식일에 더 큰 노동을 하였다. 세속적 사업에 있어서의 그 동일한 노동은 죄된 것이었을 것이나 제사장들의 일은 하나님을 위한 봉사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시대의 소망, 285.

본부 교회의 널리 미치는 모본 ― 나는 이곳 교회의 형편에 대한 부담을 내 마음에 느낀다…. 올바른 구원의 영향력이 다른 곳으로 흘러 나가기 전에 여러 면으로 이곳에서 표준을 높이는 일이 크게 필요되고 있다. 진리가 여기서 제시됨에 따라 그것은 세상과 교회들로부터 사람들을 취하여 교회가 꽉 차도록 그들을 이곳으로 모아들였다. 그러나 진리를 믿노라고 고백한 사람들 모두가 그것에 의하여 성화된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대회에서 일하는 교역자들에게 안식일을 명예롭게 함으로 표준을 높이고 하나님의 요구에 대한 그들의 경의를 보여줄 것을 촉구하신다. 260 …이곳으로부터 출판물이 발송되어 나가며 교역자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선포하기 위하여 나아간다. 그러므로 교훈과 모본을 통하여 올바른 영향력이 이 교회에 의하여 행사되는 것은 극히 중요하다. 표준이 매우 낮아짐으로 진리를 받아들이는 자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한다고 고백하면서도 그것을 범하게 되어서는 안 된다. 진리를 순수한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그들을 흑암 가운데 그냥 버려두었다면 훨씬 더 나았을 것이다.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을 지켜 봄 ― 진리가 그들 위에 끼친 영향이 무엇인지 보기 위하여 이 백성들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우므로 넷째 계명의 요구가 그들 앞에 놓여질 때 그들은 그것을 순종한다고 고백하는 자들이 그것을 어떻게 여기는지 지켜본다. 그들은 그것을 옹호하는 자들의 삶과 품성을 이것이 그들의 믿음의 고백과 조화를 이루는지 알기 위하여 연구한다. 이렇게 하여 형성된 의견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받아들이느냐 거절하느냐 하는 일에 있어서 크게 영향을 입는다. 만약 이 백성들이 그들의 생애를 성경의 표준에 일치시킨다면 그들은 진정 세상의 빛, 산 위에 세워진 동네가 될 것이다.­원고 3, 1885.

안식일의 중요성과 영광 ― 안식일이었던 어제(1851년 8월 10일) 우리는 행복하고 영광스러운 시간을 가졌다. 주님께서 우리를 만나셨으며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위에 임하였고 우리는 하나님의 지극히 선하심을 인하여 즐거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나는 이상 가운데로 이끌려 들어갔다….

나는 우리가 안식일의 중요성에 대하여 거의 깨닫지 못하는 것과 그 중요성과 영광을 더욱 깨닫고 알 필요가 있음을 보았다. 나는 우리가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도 알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새롭게 함과 늦은비가 주님의 앞과 그분의 능력의 영광으로부터 이르러 올 때 우리는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는 것과 땅의 높은 곳에 올리는 것이 무엇임을 알게 될 것이다. 261 그때에 우리는 안식일의 중요성과 영광을 보다 더 잘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이 나서 우리와 평화의 언약이 맺어지고 새 예루살렘 성의 진주문들이 열려 그 번쩍이는 경칩에 얹혀 뒤로 젖혀지며 사랑스러운 예수님의 기쁘고 즐거운 음성이 우리에게 들어오라는 명령을 발하며 일찍이 인간의 귀에 들려진 어떤 음악보다도 더 아름답게 들려질 때까지는 그 모든 영광과 중요성을 보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켰기 때문에 우리가 성안에 거할 완전한 권리를 가졌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켰기 때문에 하늘, 행복한 하늘이 우리의 집이 되었다는 사실을 나는 보았다.­서신 3, 1851.

(미시간 주, 배틀크릭) 1859년 1월 1일 안식일. 설교 예배, 침례 예식, 그리고 성만찬 예식에 참여함 ― 새해가 시작되는 날이다. 침례에 필요한 준비에 대하여 설교하는 일과 성만찬에 참여하는 일에 있어서 주님께서 안식일 오후에 제임스에게 자유로움을 주셨다. 회중은 크게 감동을 받았다. 휴식 시간에 모두가 물가로 내려갔으며 거기서 일곱 명이 주님의 모본을 따라 침례를 받았다. 능력이 임하며 깊은 흥미가 이는 시간이었다. 열 한 살쯤 된 두 작은 자매들이 침례를 받았다. 그 중 하나인 코넬리아 씨 양은 세속으로부터 더러워지지 않고 지켜지기를 물속에서 기도하였다.

저녁에 교회는 주님의 모본을 따라 서로의 발을 씻겼으며 성만찬에 참여하였다. 그 집안에 모인 사람들은 즐거워하였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 장소는 주님의 임재로 인하여 두려웠으나 영광스러웠다.­원고 5, 1859.

(미시간 주, 옷세고) 1859년 1월 8일 안식일. 썰매로 집회 장소까지 갔으며 얼마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눔 ― 거룩한 안식일이다. 오늘 우리가 주님을 명예롭게 하며 영광스럽게 하기를…. 우리는 레이톤 형제와 함께 그의 썰매로 옷세고까지 4마일을 여행하였다. 매우 추웠으며 편안할 수가 없었다. 집회 장소가 별로 따뜻하지 못했다. 모두가 매우 추웠다. 따듯하게 할 시간이 필요했다. 262 로프보로우 형제가 심판에 대하여 설교하였다. 그 후에 내가 몇 마디 하였다. 별로 편치 못했다. 그리고 나서 교인들이 곧 간증을 하였다.­원고 5, 1859.

[배틀크릭]1859년 3월 5일 안식일. 제임스 화잇을 간호하기 위하여 집에 머묾 ― 오늘은 집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나의 남편이 아팠다. 그에게 시중들기 위하여 그와 함께 남아 있었다. 주님께서 우리를 만나셨으며 오늘 아침 우리를 축복하셨다. 나는 평소와는 달리 자유롭게 기도하였다. 오늘 존 앤드루스 형제가 두 번 설교하였다. 그는 우리와 함께 저녁과 밤을 보냈다. 우리는 그 방문으로 크게 즐거웠다.­원고 5, 1859.

[배틀크릭]1859년 3월 19일 안식일. 집회에 참석하였으며 아이들에게 읽어 줌 ― 오전에 집회에 참석하였다. 러프보로우 형제가 죽은 자의 잠과 성도들의 상속에 대하여 매우 자유로이 설교하였다. 오후에는 집에 머물렀다. 나의 자녀들에게 글을 읽어 주고* 뉴톤 형제와 그의 아내에게 편지를 써서 영적 사물에 있어서 그들을 격려하였다. 저녁에는 성만찬과 세족 예식을 위한 집회에 참석하였다. 그러한 경우에 자유롭기를 원하는 만큼 나는 자유롭지가 못했다.­원고 5, 1859.

[미시간 주, 콘비스] 1859년 4월 9일 안식일. 콘비스에서 돌보고 봉사함 ― 일찍 일어나서 콘비스에 있는 성도들을 만나기 위하여 거기까지 12마일 정도를 타고 갔다. 여행은 싱그러웠다. 브라켓 형제의 집에 들렀다. 그들은 그의 집에서 2마일 정도 떨어진 집회 장소까지 우리와 동행하였다. 크고 넓은 학교 건물에 적은 무리의 안식일 준수자들이 모였다. 제임스는 매우 자유롭게 백성들에게 말했다. 263 나는 몇 마디 말을 했다. 집회는 2시까지 열렸다. 거의 모든 사람이 진리에 대한 간증을 하였다. 저녁 식사 후 거룩한 시간이 마쳐지면서 우리는 새롭게 되는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기도하기 위하여 무릎을 꿇기 전에 제임스는 아이들과 이야기하였다.­원고 6, 1859.

[배틀크릭]1859년 4월 23일 안식일. 모임에 참석하고 일단의 내객을 대접함 ― 브라켓 자매, 레인 자매와 그의 딸, 스코트 자매, 그리고 스미스 자매가 콘비스로부터 배틀크릭 집회에 왔다. 그들은 우리 집에서 점심을 들었다.* 집회는 온 종일 흥미로웠다. 와그너 형제가 오전에 설교하였다. 그의 설교는 적절하였다. 중간 쉬는 시간에 네 명이 침례를 받았다-하이드, 스코트 자매들, 그리고 아그네스 어빙, 프래트 형제. 우리의 오후 집회는 매우 흥미로웠다. 나의 남편은 이전 어느 때보다도 더 자유로웠다. 주님의 영이 집회 가운데 함께 하였다. 권고하는 나에게 주님께서 자유로움을 주셨다. 저녁에는 사람들이 성찬식에 참석하였다. 그 시간은 엄숙하고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나는 매우 기진하여 참석할 수 없었다.­원고 6, 1859.

[덴버]1872년 7월 20일 안식일. 산책하고 쓰고 읽음 ― 아름다운 아침이다. 오늘은 주님의 안식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노력을 받으시고 우리 자신의 영혼이 새롭게 되도록 안식일을 지키기 원한다. 우리는 숲속에서 기도하고 읽을 수 있는 한적한 장소를 찾으러 나갔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 날을 종교적인 주제들에 대하여 대화하며, 글을 쓰며, 읽으며 보냈다.­원고 4, 1872.

264 [배틀크릭] 1873년 4월 12일 안식일. 선교적 방문을 많이 함 ― 나의 남편이 오전에 백성들에게 설교하였다. 나는 참석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집에 남아 있었다. 오후에 나는 집회에 참석하였다….

집회가 끝난 후에 나는 엘라 벨덴을 방문하였다. 그와 행복한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그 후에 나는 샐리스버리 형제와 자매를 방문하였다. 우리는 그 가족과 귀한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샐리스버리 형제와 자매는 나와 연합하여 기도하였다. 우리 모두는 주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여 주심을 느꼈다. 그 후에 나는 연로한 모오스 형제와 자매를 방문하였다…. 나는 가드너 형제와 자매를 방문하였다. 그는 그의 여행의 종착역으로 가까이 가고 있었다. 질병이 그를 매우 연약하게 만들었다. 그는 나를 보고 기쁨에 겨워하였다. 우리는 연합하여 기도하였으며 이 질병에 눌린 자들의 마음은 위로와 축복을 받았다.­원고 6, 1873.

[배틀크릭] 1873년 5월 17일 안식일. 몇 마일을 타고 감, 약간의 잠을 잠 ― 우리는 참나무 숲 사이로 몇 마일을 타고 갔다. 한 시간 가량 쉬었다. 우리는 얼마간 잠을 잤다….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오후에 집회에 갔다.­원고 7, 1873.

[아이오와 주, 워싱턴] 1873년 6월 21일 안식일.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하여 씀 ― 아름다운 날이다. 따듯한 편이었다. 찜질을 했다. 기분이 좀 나았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하여 15쪽을 썼다. 나의 주제에 많은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휠러, 헤스터 형제와 밴 오스트랜드 형제가 집회에 갔다. 약간의 비가 예상되었다. 가족을 불러 모아 내가 쓴 것을 읽었다. 모두가 흥미를 갖는 것 같았다.­원고 8, 1873.

[월링스 밀스] 1873년 9월 12일 금요일. 한 비재림교인을 대접함 ― 해가 지기 얼마 전에 집에 도착하였다. 장막 집회에 대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는 캔라이트 형제와 메어리 가스킬 그리고 다니엘 보르도우의 편지를 받았다. 집에 도착했을 때 존 크랜손이 거기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가 안식일에 우리를 만나 보러 온 것에 대해 유감이었다. 265 우리는 하나님이나 그분의 거룩한 날에 대한 경의를 가지지 않은 내방객을 안식일에 맞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원고 11, 1873.

[콜로라도로부터 배틀크릭까지의 노중에서] 1873년 11월 8일 안식일. 유감스럽게 안식일에 여행함* ― 밤중에 차에서 잘 쉬었다. 오늘 아침 우리는 차를 탈 마음이 없었으나 하나님의 사업과 일에 관련된 상황이 대총회에 우리가 참석하는 것을 요구하였다. 우리는 지체할 수 없었다. 만약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사업을 하고 있었다면 우리는 안식일에 여행하는 것을 넷째 계명을 범하는 것으로 느꼈을 것이다. 우리는 일상적인 어떤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경건한 분위기에 있도록 노력하였으며 안식일에 여행할 필요성을 깊이 유감으로 여기는 한편 하나님의 임재를 얼마간 누릴 수 있었다.­원고 13, 1873.

[호주, N.S.W., 시드니] 1893년 2월 4일. 아침에 설교하고, 오후에는 배에 오름 ― 우리는 시드니에 있는 교회까지 승합 마차를 타고 갔으며 나는 히브리 11장으로부터 믿음에 대하여 설교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은혜로 내게 힘을 주셨다. 나는 크게 힘을 얻고 축복 받았음을 느꼈다. 성령이 내게 임했다. 영육간의 힘이 내게 크게 주어졌다….

오후 2시에 우리가 오래 두려워하던 여행을 하기 위하여 증기선에 올랐다. 우리의 모든 짐은 금요일에 적재되었다. 우리는 안식일에 여행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지만 세상에 기별을 전하는 일이 성취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정신과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여 고양시킬 수 있으며 예수 안에 숨을 수가 있다. 우리가 이런 일을 조정할 수 없을 때에 모든 것을 우리 하늘 아버지께 맡겨야 한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신뢰를 하나님께 둔다면 그분이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원고 76, 1893.

266 우리는 겸손한 마음과 온유하고 겸비한 정신을 가지고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기회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어디에 있든지 우리는 주님과 대화하며 기도할 수 있다.*­서신 342, 1906.

어떤 때나 장소에 있어서 기도에 부적합한 장소는 없음 ― 하나님께 청원을 드리기에 부적합한 때나 장소는 없다…. 거리의 군중 속에서, 사업에 종사하는 중에, 우리는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왕 앞에 청원을 드린 것처럼 하나님께 청원을 드릴 수 있으며 거룩한 지도를 간구할 수 있다.­정로의 계단, 99.

걸으며 일할 때에 우리 마음속으로 하나님과 교통함 ― 길을 걸으면서 우리는 예수님과 이야기할 수 있다. 그분은 당신께서 바로 우리의 오른편에 있다고 말씀하실 것이다. 우리는 우리 마음속으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동행할 수 있다. 267 매일의 노동에 종사할 때에 우리는 어떤 인간의 귀에도 들리지 않으며, 조용하게 사라져 버릴 수도 없으며, 실종될 수도 없는 우리의 마음의 소원을 내뿜을 수 있다. 그 어느 것도 영혼의 소원을 침묵시킬 수 없다. 그것은 거리의 소음 위로, 기계의 잡음 위로 솟아오른다. 우리가 말하는 대상은 하나님이시며 그분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복음 교역자, 258.

항상 몸을 굽힐 필요는 없음 ― 기도하기 위하여 항상 무릎 위에 몸을 굽힐 필요는 없다. 홀로 있을 때, 걸어 갈 때, 매일의 일로 바쁠 때 주님과 이야기하는 습관을 길러라.­치료봉사, 510, 511.

헌신을 위하여 일어선 후에 회중들이 무릎을 꿇음 ― 주님의 영이 내게 임하셨으며 내게 말하도록 주어진 그 말씀 안에 계시되었다. 나는 하나님의 영의 절박함을 느끼는, 진리대로 살며 다른 이에게 진리를 가르치며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일하기로 서원할 마음이 있는, 그 출석한 자들에게 일어섬으로써 그것을 표현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나는 모든 청중이 일어서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후에 나는 모두에게 무릎을 꿇을 것을 요청하였고 그 사람들을 위해 하늘에 나의 청원을 아뢰었다. 나는 이 경험으로 인해 깊은 감동을 받았다. 나는 내 위에 하나님의 영의 깊은 움직임을 느꼈으며 주님께서 이 때에 그분의 백성들을 위한 특별한 기별을 내게 주셨음을 안다.­리뷰 앤드 헤랄드, 1909년 3월11일자.

유럽에서의 혼잡한 군중들은 자리에 앉은 채로 있음 ― 나는 하나님의 종들의 기도를 원하는 자들에게 앞으로 나아오라고 초청하였다. 뒤로 물러갔던 모든 자들과 주님께로 돌아와서 성실하게 그분을 찾기를 원하는 모든 자들은 그 기회를 이용할 수 있었다. 몇몇 자리가 신속하게 채워졌으며 모든 청중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그들에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그들이 있었던 바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죄를 고백함으로 함께 주님을 찾고자 하였다. 주님은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일 1:9)라고 그 말씀 가운데 약속하셨다.­일기, 1887년 2월 20일(가려뽑은 기별 1권, 147쪽에 출판됨).

268 청중들이 헌신의 기도를 위하여 일어남 ― 나는 거룩한 언약 가운데 하나님께 그들 자신을 드리며 그들의 온 마음을 다해 그분을 섬기기를 원하는 모든 자들에게 일어서도록 요청하였다. 집은 가득 찼으며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일어났다. 우리와 믿음을 같이 하지 않는 꽤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으며 그들 중에 얼마가 일어났다. 나는 진지한 기도 가운데 그들을 주님께 드렸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의 나타남을 경험했다는 사실을 안다. 우리는 진정으로 승리를 얻었음을 느꼈다.­원고 30A.1896(가려뽑은 기별 1권, 150쪽에 출판됨).

청중들이 헌신의 기도를 위하여 무릎을 꿇음 ― 나의 설교를 마칠 때에 나는 주님께 온전히 자신을 드리고자 하는 자들 모두에게 앞으로 나오도록 초청하라는 하나님의 영의 감동을 느꼈다. 하나님의 종들의 기도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자들은 그것을 나타내라는 요청을 하였다. 30여명이 앞으로 나왔다….

그 경우에 내가 보기에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자가 나의 아들과 나인데 이렇게 하는 것이 최선일까를 의심하면서 처음에 나는 망설였다. 그러나 마치 어떤 이가 내게 말하는듯이 “너는 주님을 믿을 수 없는가?” 하는 생각이 내 마음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주님 믿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나의 아들은 이 경우에 내가 그런 요청을 한 것에 대해 매우 놀랐으나 그 긴급한 상황을 잘 대처했다. 나는 그가 그 때보다도 더 능력 있게 혹은 더 깊은 감동을 가지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다….

우리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다. 나의 아들이 인도하였으며 주님께서 분명 그의 간청을 그의 입에 넣어 주셨다. 이는 그가 마치 하나님의 존전에서 기도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리뷰 앤드 헤랄드, 1895년 7월30일자(가려뽑은 기별 1권, 148, 149쪽들에 재발간됨).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 있는 교역자 양성소에서 ― 이제 우리는 여러분에게 온 마음을 살피기를 요청합니다. 269 원수의 모든 유혹을 끊고 놓여나서 위의 하늘을 추구하기로 작정한 분들은 일어섬으로써 그 결심을 나타내시겠습니까? [참석한 거의 모든 청중이 반응함.] 우리는 여러분 모두가 구원받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성의 문들이 여러분을 위하여 그 번쩍이는 경칩 위에서 뒤로 열리고 여러분이 진리를 지킨 모든 민족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거기서 우리는 찬양과 감사와 영광을 그리스도와 성부께 영원무궁토록 돌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사 투쟁의 시기에 그분을 섬기는 일에 충실하게 하시고 마침내 승리하고 영생의 면류관을 얻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나의 하늘 아버지시여, 이제 가난하고 궁핍하며 당신께 의존할 수밖에 없는 저의 상태 그대로 당신께 나옵니다. 바라오니 저와 이 백성들에게 그리스도인 품성을 온전하게 하는 은혜를 베푸소서 등.­리뷰 앤드 헤랄드, 1908년 7월16일자.

엘렌G.화잇과 청중들이 헌신의 기도를 위하여 일어섬 ― 누가 지금 보다 높은 교육을 받기 위하여 단호한 노력을 할 것인가를 나는 묻습니다. 그렇게 하실 분들은 자리에서 일어섬으로 그것을 표현하십시오. [청중이 일어남] 여기 온 청중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여러분의 서원을 지키도록 도우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기도] 하늘 아버지시여, 이제 가난하고 연약하며 무가치한 저의 상태 그대로 당신께 나옵니다. 오늘 여기 모인 이 백성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주시기를 빕니다. 저는 그들에게 당신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주님, 당신 홀로 그 말씀을 효력 있게 하실 수 있습니다 등.­리뷰 앤드 헤랄드, 1909년 4월8일자(1909년 2월 8일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의 설교).

워싱턴 D.C.에서의 대총회 설교가 마칠 때에* ― 이제까지 붙들어 본 적이 없는 그런 모양으로 이 사업을 붙들도록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도우시기 바랍니다. 270 여러분은 이 일을 하시겠습니까? 자리에서 일어서심으로 여러분이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것을 입증하시겠습니까?[청중들이 일어섬] [기도]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 당신께 감사합니다. 당신의 백성들의 이 서원을 받으소서. 그들에게 당신의 영을 내리소서. 그들 속에 당신의 영광이 보이게 하옵소서. 그들이 진리의 말을 할 때에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하옵소서. 아멘.­대총회 보고서, 1909년 5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