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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장-개혁의 장애물*

59장 - 개혁의 장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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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우리의 학교에 어느 정도 성경을 소개하고, 개혁 면에서 약간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오랫동안 세속적인 방법에 습관화되어 온 후 올바른 원칙을 적용하기는 가장 어렵다. 옛 습관을 고치고자 하는 첫번째의 시도는 하나님께서 지시해 주신 길을 따르고자 하는 자들에게 심한 시련을 가져 왔다. 실수들을 범하게 되고, 큰 손실이 초래되었다. 우리들을 세속적이요 평범한 면에 머물러 있게 하고 참된 교육의 원칙들을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들이 존재해 왔다. 인간적인 이기심과, 불신과 무관심의 낮은 땅에서 문제를 보는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옳은 원칙들과 방법들이 그릇 되게 보였다.

오직 절반만 회개한 교사들과 관리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거치는 돌이 된다. 그들은 어떤 것들을 양보하고 절반만 개혁한다. 그러나, 더욱 큰 지식이 나타날 때, 그들은 발전하고자 하지 않고 그들 자신의 견해를 따라 사업을 하고자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인간을 하나님보다 더 높이는 지식의 나무에서 열매를 따먹는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수 24:14, 15, 왕상 18:21). 빛이 우리에게 주어졌을 때 전진했을 것 같으면, 우리는 현재의 영적 상태보다 훨씬 더 진보했을 것이다.

420 새로운 방법들이 제시되었을 때 의심하는 너무도 많은 질문들이 나오고, 어려운 많은 문제들을 분별하기 위하여 너무도 많은 회의들을 개최하였으므로, 개혁자들은 방해를 받게 되고 어떤 사람들은 개혁을 주장하기를 중단했다. 그들은 의심과 비판의 물결을 저지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아덴의 사람들은 지성적 교만과 세속적 지혜를 간직하고 있었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어리석은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아덴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은 비교적 별로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 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5, 23, 24).

우리는 이제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다. 개혁은 마음과 영과 뜻으로 착수되지 않으면 안 된다. 오류들은 햇수로 오래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햇수가 오류를 진리로 만들거나 진리를 오류로 만들지는 않는다. 옛 습관과 관습들이 너무 오랫동안 답습되어 왔다. 주님께서는 이제 그릇된 모든 사상들을 교사들과 학생들에게서 제거해 버리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단순한 습관이라는 이유로 세상의 표준이나 교회의 표준에 맞도록 가르칠 자유가 없다.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교훈이 표준이 되어야 한다. 주님께서 우리의 학교들에서 실천되어야 할 교훈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은 엄격히 존중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학교들 중 어떤 것에서 실시되어 온 바가 전혀 다른 성격의 면들을 지니지 않았을 것 같으면, 우리는 토지를 구입하여 학교 건물들을 세우는 데 비용을 지출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표준을 낮춤으로 얻는 명성

어떤 사람들은 신앙적 교육이 두드러질 것 같으면 우리 학교들을 유명하게 만들지 못할 것이며, 우리와 동일한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는 자들이 우리 학교들을 후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매우 지당한 생각이다. 그런 사람들은 그들의 취향에 맞는 교육 활동을 발견할 수 있는 다른 학교로 가도록 해야 한다. 421 이와 같은 생각으로 우리의 학교들이 설립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 사단의 계획이다. 사단의 계획에 의하여 방해를 받은 학교 경영자들은 세상의 방법을 따르고, 세상의 계획들을 본받고, 세상의 관습들을 모방할 것을 주장한다. 많은 사람들은 학생들에게 세속적 오락들을 제공해 줌으로 하나님과 진리의 원수들과 연합할 정도로 하늘에서 온 지혜가 너무도 부족함을 보여 주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을 스스로 받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젊은이들을 그릇되게 인도하며 사단을 위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정에서 이 일을 그 모든 결과와 함께 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와 같은 길을 따르는 자들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잘못을 범한 후에, 그들은 그들의 잘못을 고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끼친 영향을 취소할 수 있을까? 맡은 일에 불성실한 자들에게 “잘하였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이 불성실한 일꾼들은 영원한 반석 위에 세워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의 기초는 흘러 떠내려가는 모래였음이 판명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독특하고 특별하기를 바라시는데, 우리가 어떻게 유명해지기를 원하고 세상의 습관과 관습을 본받고자 노력할 수 있겠는가?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약 4:4).

명성을 얻고 학생 수를 늘이기 위하여 표준을 낮추고 이와 같은 숫자의 증가로 기쁨의 원인을 삼는 것은 크게 눈먼 일임을 보여 준다. 만일, 수가 성공의 증거일 것 같으면, 사단은 두드러진게 성공한 자라 할 것이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그를 따르는 자들이 절대다수이기 때문이다. 학교의 번영을 시험하는 것은 학교에 퍼져 있는 도덕적 능력의 정도이다. 기쁨과 감사의 근원이 되어야 할 것은 학생들의 수가 아니고 우리 학교들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덕성과 지식과 경건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학교들이 세상으로 돌아가서 세상의 관습과 풍습을 따라야 할 것인가?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1, 2).

422 사람들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과 주일 중 첫째 날을 지키는 자들과의 차이가 별반 두드러진게 나타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온갖 수단을 다 쓸 것이다.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일단의 사람들이 내 앞에 나타났는데, 그들은 우리를 독특한 백성으로 만들어 주는 깃발이나 표지가 지나치게 뚜렷한 것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논을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기관들이 성공을 거두기 위한 최선의 길이 아니라고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의 깃발을 내려 버리고 우리의 믿음을 부끄러워할 때가 아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는 말이 새겨진 이 독특한 깃발은 은혜의 시기가 끝날 때까지 온 세상 어느 곳에나 꽂혀져야 한다. 여러 지역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활동을 증가시키는 한편, 후원을 얻기 위하여 우리의 믿음을 숨겨서는 안 된다. 진리는 멸망해 가는 영혼들에게 전해져야 한다. 그러므로, 진리가 어떤 방법으로 숨겨질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 모욕을 당하시고 영혼들의 피는 우리의 옷에 묻게 될 것이다.

우리의 기관들과 관련된 자들이 하나님과 겸손히 동행하고 있는 한, 하늘의 지적 존재자들이 그들과 협력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삼상 2:30) 여긴다고 말씀하신 사실을 마음에 명심해야 한다. 자기의 원칙이 알려질 것 같으면 크게 존경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두려워한 나머지 자신의 믿음과 교리를 세상의 불신자들에게 숨기는 것이 유익할 것이라는 인상을 아무에게도, 한 순간이라도 주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공공연하고 담대하게 믿음을 고백하도록 요구하신다. 각 사람은 자기의 위치를 고수하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바라시는 사람 곧 세상과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 거리가 되어야 한다. 온 우주는 그리스도와 사단과의 대쟁투의 마지막 장면을 보기 위하여 말할 수 없는 관심으로 주시하고 있다. 각 그리스도인은 말 아래나 침대 아래 감추어지지 않고, 집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빛을 비추기 위하여 촛대 위에 꽂혀진 빛이 되어야 한다. 423 비겁한 마음이나 세상의 정책 때문에 하나님의 진리를 결코 뒤에 숨겨 두지 말아야 한다….

젊은이들에게 주어지는 교육이 사회의 전체적 구조를 형성한다. 세계적으로 사회는 무질서한 상태에 놓여 있다. 그러므로, 철저한 변화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은 더욱 훌륭한 교육 시설, 더욱 큰 기술, 더욱 현대적인 방법들이 일을 올바르게 해주리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노라고 공언하면서도 그 말씀을 위대한 교육 활동의 구조에서 열등한 위치에 놓는다. 첫째 자리에 놓여야 할 것이, 인간이 고안해 낸 것에 종속되어 버린다.

노아 당시의 사람들처럼 세속적 계획과 방법과 관습에 빠져 버림으로 우리가 살아 있는 시대에 대하여 혹은 이루어져야 할 위대한 사업에 대하여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되기가 아주 쉽다. 우리의 교육자들이 유대인들처럼 동일한 기초 위에서 맴돌므로,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은 관습, 습관, 전통을 답습할 위험이 언제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마치 그들의 구원이 옛 습관을 고수하고 요긴하지 않는 여러가지 연구에 몰두하는 데 있는 것처럼 그것들을 끈질기게 확고한 태도로 붙든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업에서 돌아서고 학생들에게 결함이 있고 그릇된 교육을 하게 된다. 마음들은 영원한 문제가 포함되어 있는, “주께서 말씀하신다”고 한 분명한 말씀에서 떠나 인간의 이론과 교훈으로 향하게 된다. 오직 성령의 능력만이 영적 사물들을 드러내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한하고 영원한 진리 곧 하나님의 계시가 인간이 해석하는 빛에 의하여 설명된다. 인간의 지혜는 어리석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원을 꿰뚫어보는 하나님의 섭리 전체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개혁자들은 파괴자가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계획에 일치되지 않고 그들에게 동화되지 않는 자들을 파멸시키고자 결코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424 개혁자들은 후퇴하지 말고 전진해야 한다. 그들은 확고하고 단호하고, 굳세고 굽힘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확고한 태도가 오만한 정신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섬기는 모든 사람들이 원칙에 관해서는 바위와 같이 변함이 없되, 그리스도와 같이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갖기를 원하신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 그들은 만일 그분께서 그들의 위치에 계셨더라면 하시게 될 그 사업을 할 수 있게 된다. 무례하고 비난하는 정신은 이 시대를 위한 개혁의 영웅적 행동에 있어서 요긴하지 않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 나타나는 모든 이기적 방법들은 그분의 눈에서 가증한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