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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그리스도인의 연합*

12장 - 그리스도인의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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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 1:10).

연합은 힘이고, 분열은 쇠약이다. 현대 진리를 믿는 자들이 연합할 때, 효과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사단은 이 사실을 잘 안다. 사단이 주님의 백성들 사이에 원한과 불화를 일으킴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무효케 하고자 지금보다 더 굳게 결심한 적은 없다.

세상이 우리를 대항하고 있고, 일반 교회들도 우리를 대항하고 있다. 그리고, 미구에 나라의 법률도 우리를 대항할 것이다. 일찌기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뭉쳐야 할 때가 있었다면 바로 지금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를 위한 특별한 진리를 우리에게 위탁하셔서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게 하셨다. 마지막 자비의 기별이 전파되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남녀들을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모본으로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하여 모든 말과 행동에 있어서 모본자 되신 그리스도를 참으로 밀접히 따라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진리의 아름다움과 단순함을 바라보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게끔 참으로 주의 깊이 진리를 제시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품성이 거룩하게 하는 진리의 능력을 증거하게 되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비춰 주는 끊임없는 빛이 될 것이다. 곧, 우리는 모든 사람이 읽고 아는 산 편지가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분열과 불화와 분쟁에 빠짐으로써 사단에게 자리를 물려줄 수 없다.

우리 구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당신의 제자들을 위하여 드린 마지막 기도의 요지는 그들 사이에 연합과 사랑이 있도록 간구하는 내용이었다. 십자가의 고민이 그분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간청하지 아니하고 지상에서 당신의 사업을 추진하도록 위탁받은 자들을 위하여 간청하셨다. 78 가장 격렬한 시련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가장 큰 위험이 원한과 분열의 정신에서 빚어질 것을 보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이렇게 기도하셨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17-21).

그리스도의 이 기도는 마지막 때에 이르기까지 당신을 따르는 모든 자들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 구주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당할 시련과 위험을 미리 보셨다. 그분은 당신의 교회를 혼란케 하고 약화시키는 불화와 분쟁에 무관심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육신의 부모가 곁길로 나가고 괴롭히는 자녀에 대하여 갖는 마음보다 한층 더 깊은 관심과 부드러운 동정의 마음으로 우리를 바라보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당신을 배우라고 명령하신다. 그분은 확고한 믿음을 갖도록 우리에게 호소하신다. 그분은 우리의 마음을 열어 당신의 사랑을 받아들이라고 명령하신다. 그분은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 되시기로 친히 약속하셨다.

확고한 영적 지도

하늘로 승천하실 때,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의 사업을 미숙한 목자에 불과한 당신의 종들의 손에 맡기셨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1-13).

우리 구주께서는 당신의 목사들을 보내실 때 사람들에게 영적 선물들을 주셨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그들을 통하여 영생의 말씀을 세상에 전해 주시기 때문이다. 79 이것이 하나님께서 지식과 참된 성결을 통하여 성도를 온전케 하시고자 정하신 방법이다. 그리스도의 종들에게 맡겨진 사업은 단순히 진리를 전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들은 마치 자기들이 하나님께 갚아야 할 빚이 있는 것처럼 영혼들을 위하여 깨어 있어야 한다. 그들은 오래 참음과 교훈으로 훈계하고 책망하고 권면해야 한다.

하나님의 종들의 활동을 통하여 유익을 얻는 모든 자들은 그들의 재능을 따라 영혼을 구원하는 사업에 그분과 연합해야 한다. 이것이 모든 참된 신자들, 곧 목사들과 백성들의 사업이다. 그들은 언제나 큰 목적을 바라보고, 교회에서 적당한 자기의 위치에 서고자 노력하고, 모두가 질서와 조화와 사랑으로 연합하여 일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신앙에는 이기적인 것이나 편협한 것이 전혀 없다. 그 원리는 확산적(擴散的)이요 공세적(攻勢的)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광명한 빛, 구원하는 소금, 변화시키는 누룩으로 나타내신다. 하나님의 종들은 열성과 열심과 헌신으로 진리의 지식을 원근에 퍼뜨리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교회의 세력과 연합을 위하여 노력하는 일을 등한히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불화와 분열이 잠입할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하여 주의 깊이 경계해야 한다.

최근에 우리들 중에서 그리스도의 종들이라고 공언하면서도 우리 주님께서 교회 안에 확립해 놓으신 연합과 반대되는 일을 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활동에 대한 독창적인 계획과 방법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발전에 대한 그들의 견해에 적합하도록 교회에 변화를 가져 오고자 하고, 그렇게 함으로 괄목할 만한 결과를 얻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가르치는 자가 되기보다는 배우는 자가 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언제나 쉬지 않고, 어떤 큰 일을 성취하고 자신에게 영광이 돌아올 무엇인가를 하고자 열망하고 있다. 그들은 모든 교훈 가운데 가장 유익한 것, 곧 예수 안에서 겸손과 믿음을 배울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 앞에 있는 큰 투쟁을 위하여 자신의 심령을 준비하고자 열렬하게 노력해야 할 때임에도 불구하고 동료 일꾼들을 살펴서 그들의 결함을 찾아내기 위하여 진지하게 노력하고 있다. 구주께서는 그들에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고 명령하신다(마 11:29).

80 진리의 교사들, 선교사들, 교회 직원들이 진리를 순종함으로 그들 자신의 심령을 정결케 하기만 하면, 그들은 주님을 위하여 선한 일을 할 수 있다. 모든 산 그리스도인은 사심 없는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 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로 다른 사람들에게 빛을 전하는 통로가 되게 하신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면, 우리는 그분을 위하여 일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 구주의 사랑의 축복을 누리면서도, 죄로 멸망해 가는 자들의 위험에 무관심할 수는 없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요 15:8).

바울이 연합과 사랑을 호소함

바울은 에배소 인들에게 연합과 사랑을 지속하라고 호소한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침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 4:1-6).

사도는 그가 그들에게 나타내 준 진리의 능력을 그들의 생애에 나타내도록 그의 형제들에게 호소한다. 온유와 겸손, 오래 참음과 사랑으로 그들은 그리스도의 품성과 그분의 구원의 축복을 입증해야 할 것이었다. 몸도 하나이요, 성령도 하나이요,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모든 신자들은 같은 정신과 같은 소망으로 살게 된다. 교회 안에 있는 분열은 세상 사람들 앞에 그리스도교를 욕되게 하고 진리의 원수들에게 그들의 행위를 정당화시킬 기회를 준다. 바울의 교훈은 그 당시의 교회를 위해서만 기록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그 교훈들이 우리에게도 전해지도록 계획하셨다. 우리는 평안의 매는 줄로 연합하기 위하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

성령께서 초대 교회에 강림하시자, 형제들은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81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6, 47). 이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은 수가 적고 재산이나 명예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큰 감화력을 발휘하였다. 세상 빛이 그들에게서 비쳐 나갔다. 그들은 그들의 품성과 교훈이 알려진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악인들에게 미움을 받고 핍박과 심지어 죽음까지 당하였다.

하나님의 표준은 변치 않음

성결의 표준은 오늘날도 사도 시대와 동일하다. 하나님의 약속도 요구도 그 힘을 추호도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주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의 상태는 초대 교회와 비교해 볼 때 어떠한가? 그 당시의 복음 전파에 수반되었던 하나님의 성령과 능력은 어디 있는가? “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정금이 변하” 였는가 (애 4:1).

주님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하나의 포도나무로서 비옥한 땅에 심으셨다. 그분은 가장 부드러운 보호의 손길로 거름을 주고 그것을 가꾸어서 의의 열매가 맺힐 수 있게 해주셨다. 그분은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심은 이 포도나무는 땅으로 기울어져서 그 덩굴이 사람의 지주를 둘러 감았다. 그 가지들은 멀리, 그리고 넓게 뻗쳤다. 그러나, 그것은 변질한 포도 열매를 맺는다. 포도원 주인은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하고 탄식하신다(사 5:4).

주님께서는 당신의 교회에 큰 축복을 주셨다. 교회가 높은 이자(利子)와 함께 그 양쭝들을 돌려주는 것이 정당한 일이다. 교회에 위탁된 진리의 보화가 증가됨에 따라 교회의 책임도 증가하였다. 그러나, 그 선물들을 이용하여 완전함을 향하여 전진하는 대신에, 교회는 초기의 경험에서 얻은 것에서부터 떠나가 버렸다. 교회의 영적 상태에 있어서의 변화는 점진적이요 거의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루어졌다. 82 교회가 세상의 칭찬과 우정을 구하게 되자 교회의 믿음은 약화되고, 교회의 열성은 식어지고, 교회의 열렬한 헌신은 죽은 형식으로 대치되었다.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는 매 발걸음은 하나님을 등지고 떠나가는 발걸음이 되었다. 교만과 세속적 야망을 품고 있는 동안 그리스도의 정신은 떠나가고, 경쟁과 분열과 분쟁이 들어와서 교회를 혼란시키고 약화시켰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형제들에게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라고 편지를 쓴다(고전 3:3). 시기와 분쟁으로 마음은 오묘한 하나님의 말씀의 영적 진리를 이해할 수 없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 2:14).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 그 영의 도움 없이 하나님의 계시를 올바르게 이해하거나 인식할 수 없다.

교회의 영적 이익을 돌보도록 임명받은 자들은 올바른 모본을 보여 주도록 주의해야 하고, 시기와 질투와 의심의 기회를 주지 말고, 그들이 형제들에게 장려하기를 바라는 사랑과 존경과 예절의 정신을 언제나 나타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에 부지런히 유의해야 한다. 모든 악의나 불친절의 표현을 저지하라. 모든 쓴 뿌리는 뽑아 버려라. 형제들 사이에 불화가 생길 때는 구주의 명령을 엄격히 따르라. 화목을 이루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노력은 다해야 한다. 그러나, 만일 그 파벌들이 이간된 채로 있고자 완강하게 고집하면, 그들이 화목할 때까지 정지된 상태로 있게 해야 한다.

마음을 살필 때

교회 안에 시련이 생기면, 모든 교인은 그 어려움의 원인이 내부에 있지 않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자기 자신의 마음을 살펴야 한다. 83 영적 교만, 지배욕, 명예나 지위에 대한 야망, 자제의 부족 등에 의하여, 정욕의 방종이나 편견에 의하여, 변덕스런 마음이나 판단력의 부족에 의하여 교회가 혼란에 빠지고 평안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소문을 퍼뜨리는 자들로 말미암아 어려움이 자주 생기는데, 그들이 속삭이는 암시와 시사(示唆)는 의심하지 않는 마음에 독소를 넣어 주고 가장 절친한 친구들을 이간시킨다. 이간질하는 자들은, 열려진 귀와 악한 마음을 가지고서 “소문을 전해 달라, 우리도 그것을 전하겠다”고 말하는 자들에 의하여 그들의 악한 일에 지지를 받는다. 이런 죄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 사이에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 부모는 누구든지 가정 안에서 험담을 되풀이하거나 교인들을 비난하는 말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시기 경쟁의 정신을 억누르는 것을 하나의 종교적 의무로 여겨야 한다. 그들은 자기 자신의 인격이나 업적이 그늘 아래 가려지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형제들의 탁월한 명성이나 번영을 기뻐해야 한다. 사단이 하늘에서 추방당한 것은 그의 마음속에 교만과 야심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악들이 우리의 타락한 본성 가운데 깊이 뿌리 박혀 있다. 그러므로, 그것들을 제거해 버리지 아니하면, 그것들이 모든 선량하고 고상한 성질을 가리어 버리고, 그 해로운 열매로서 시기와 분쟁이 나타나게 한다.

우리는 위대한 것보다 참된 선(善)을 구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정신을 소유한 자들은 자기 자신을 겸비하게 할 것이다. 그들은 교회의 순결과 번영을 위하여 활동할 것이며, 형제들 사이에 불화를 일으키기보다는 차라리 자기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희생하고자 할 것이다.

사단은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불신과 이간과 적의(敵意)를 일으키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우리는 사실상 그런 생각을 할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권리를 침범당하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끔 흔히 유혹을 받을 것이다. 자아에 대한 사랑이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업에 대한 사랑보다 더 강한 자들은 그들 자신의 이익을 첫째 자리에 놓고 그것들을 수호하고 유지하기 위하여 거의 모든 수단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형제들에게서 해를 입었다고 생각되면, 어떤 사람들은 구주의 명령을 따르는 대신에 법에 호소하기까지 할 것이다.

형제들간의 소송

84 양심적인 그리스도인처럼 보이는 많은 사람들까지도 교만과 자존심 때문에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찾아가서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그 문제를 이야기하고 서로 기도하지 아니할 수도 있다. 형제들간의 다툼과 분쟁과 소송은 진리의 사업에 욕을 돌린다. 그러한 행동을 하는 자들은 교회를 원수들의 조롱 거리로 만들고 흑암의 권세가 승리하게 해준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상처를 다시금 찌르고 그분으로 하여금 공공연한 수치를 당하게 한다. 교회의 권위를 무시함으로써, 그들은 교회에 권위를 주신 하나님께 대한 멸시를 나타낸다.

바울은 갈라디아 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한다.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이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2-16).

거짓 교사들은 그리스도의 복음과 반대되는 교리를 갈라디아 인들에게 전했다. 바울은 이와 같은 오류들을 폭로하여 바로잡고자 노력했다. 그는 거짓 교사들을 교회에서 분리시키고자 크게 원했지만 너무나 많은 신자들이 그들의 영향을 받고 있었으므로, 그들을 대항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위험할 것처럼 보였다. 교회의 영적 이익을 파괴시킬 분쟁과 분열을 일으킬 위험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형제들에게 피차 사랑으로 도와 주기 위하여 노력하는 일의 중요성을 깨우쳐 주고자 애썼다.

그는 동료 인간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밝혀 주는 율법의 모든 요구는 피차 사랑함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는 만일 그들이 증오와 분쟁에 빠지고, 여러 당파로 나누어지고, 짐승들처럼 서로 물고 먹으면 그들은 현재의 불행과 장래의 파멸을 스스로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85 이처럼 무서운 악을 방지하는 길은 하나밖에 없는데, 그것은 사도가 그들에게 명령한 대로 “성령을 좇아 행하”는 길이었다. 그들은 끊임없는 기도로써 그들을 사랑과 연합으로 이끌어 줄 성령의 지도를 구해야 한다.

사단이 지배할 때

스스로 분열된 집은 설 수 없다. 그리스도인들이 다툴 때, 사단이 들어와서 지배한다. 그는 교회의 평안과 조화를 깨뜨리는 일에 얼마나 자주 성공해 왔는가. 매우 작은 문제로 얼마나 맹렬한 투쟁과 괴로움과 증오가 생겼던가. 불화와 분쟁으로 어떤 희망들이 사라졌으며, 얼마나 많은 가정들이 산산조각이 났는가!

바울은 형제들에게 다른 사람들의 결점을 고쳐 주고자 노력할 때, 그들 역시 그들과 동일하게 큰 죄를 범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명령했다. 그는 증오와 다툼과 분노와 분쟁과 선동과 시기가, 호색과 간음과 술취함과 살인과 마찬가지로 육체의 일임이 분명하므로 그런 범죄자들은 하늘 문을 통과하도록 분명히 용납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 던지움이 나으리라”고 말씀하신다(막 9:42). 누구든지 고의적인 기만이나 그릇된 모본으로 한 사람의 그리스도의 제자를 그릇되게 인도하면 큰 죄를 범하게 된다. 그 사람을 비방이나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모욕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행한 모든 잘못을 주목하신다.

옛날에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에게 거룩한 것으로 택한 것을 경솔히 여긴 자들이 어떤 형벌을 받았는가? 벨사살 왕과 그의 일천 명 귀인들은 여호와의 금 기명들을 모독하고 바벨론의 우상들을 찬양했다. 그러나, 그들이 무시한 하나님은 그 불경한 장면을 목격하는 증인이 되셨다.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환락에 빠져 있을 때, 창백한 한 손이 나타나서 왕궁의 벽 위에 신비한 글자를 쓰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86 왕과 조정의 신하들은 공포에 사로잡힌 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이 그들의 운명을 선고하는 음성을 들었다.

그리스도의 종들에 대한 비방의 말과 거짓말을 찾아내기를 좋아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고 계심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의 헐뜯는 행동은 혼 없는 도구를 더럽히고 있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피로 산 자들의 품성을 더럽히고 있다. 벨사살의 왕궁 벽 위에 글자를 쓴 그 손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과하는 모든 불의와 압제의 행위를 충실하게 기록하고 있다.

거룩한 역사는 주님께서 가장 연약한 당신의 백성들을 방심하지 않고 돌보고 계시는 뚜렷한 예증들을 보여 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여행하는 동안 백성의 집단에서 낙오된 연약하고 피로에 지친 자들은 비겁하고 잔인한 아말렉 족속들에게 공격을 받았다. 그 후에 이스라엘 백성은 아말렉 족속과 전쟁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출 17:14). 모세가 죽기 직전에 그 명령이 다시 반복되어 그의 후손들이 잊어버리지 않게 했다. “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것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너를 길에서 만나 너의 피곤함을 타서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느니라 … 너는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할지니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신 25:17-19).

하나님께서 이와같이 이방 민족의 잔인성을 벌하셨다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면서도 그분의 사업에 피곤하고 지쳐 있는 형제들과 싸우는 자들을 어떻게 여기실 것인가? 사단은 그의 지배를 받고 있는 자들에게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재판정에서 갈바리에 이르기까지 살벌한 군중을 독려한 것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곧 백성의 종교 지도자들이었다. 87 오늘날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자들 가운데는 우리 구주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소란을 일으킨 동일한 정신으로 충동을 받은 자들이 있다. 악을 행하는 자들은 그들의 모든 행동을 지켜 보는 한 증인, 곧 거룩하고 죄를 미워하는 하나님이 계심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다(롬 15:1-3).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연약함과 죄악을 긍휼히 여기시고 도와 주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고 도와 주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의심 가운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연약함에 눌려 있고, 믿음이 약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상태에 놓여 있다. 그러나, 그들이 볼 수 있는 한 친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와서 그들의 떨리는 믿음을 하나님께 붙들어 매주는 사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아, 이것은 얼마나 복된 일인가!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또한 사랑과 부드러운 정신으로 일하면 행할 수 있는 선행을 교만과 이기심 때문에 하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하자.

타락한 자의 회복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 6:1, 2). 여기에 다시 우리의 의무가 우리 앞에 분명히 제시되어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노라 공언하는 자들이 영감받은 이 명령을 어떻게 경하게 여길 수 있겠는가?

얼마 전에 나는 한 형제가 경솔한 행동을 한 경우를 기록한 편지를 받았다. 비록 그것은 여러 해 전에 있었던 일이고 매우 사소한 문제이며 다시 생각할 만한 가치가 거의 없는 것이었지마는, 그 편지를 쓴 자매는 그것 때문에 그 형제에 대한 신임을 영원히 잃어버렸노라고 말했다. 만일, 그 자매의 생애가 더 큰 잘못을 나타내지 않는다면, 그것은 놀라운 일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성은 매우 연약하기 때문이다. 88 과거에 큰 죄를 지었고 지금도 그들의 죄를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처럼 보지 못하는 자들을 나는 형제 자매들로서 교제해 왔고, 지금도 여전히 교제하고 있다. 주님께서 그 사람들의 잘못을 참으시는데 내가 어찌 참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그분께서는 성령으로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바울에게 죄가 심히 죄스럽게 보였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죄가 그렇게 보일 수 있게 해주실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에 대하여 별로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자비가 필요하다는 것도 별로 느끼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나타내시고 우리가 피차간에 나타내야 할 부드러운 긍휼의 정신을 별로 간직하고 있지 않다. 우리는 우리 형제들이 우리 자신과 마찬가지로 연약하고 실수가 많은 사람들임을 기억해야 한다. 한 형제가 부주의함으로 시험에 빠져 그의 평소의 행동과는 달리 어떤 실수를 범하였다고 가정할 때, 그에게 대하여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하나님께서 위대하고 선한 사업을 하는 데 사용해 온 사람들이 중한 죄를 범한 사실을 성경을 통하여 안다. 주님께서는 견책 없이 그들을 간과하지 않으셨고 당신의 종들을 버리지도 않으셨다. 그들이 회개할 때, 그분께서는 그들을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고, 그들에게 당신의 임재를 나타내시고, 그들을 통하여 역사하셨다.

가련하고 연약한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 하나님과 그들의 형제들로부터 동정과 관용을 받을 필요가 얼마나 큰지 생각해야 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을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사도의 교훈에 유의해야 한다.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갈 6:1). 우리도 시험에 빠질 수 있으므로 잘못을 범한자에게 나타내도록 요구받는 모든 관용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 7:2).

사도는 아무것도 신뢰하지 않고 자아를 신뢰하는 자들에게 또한 다음과 같이 주의하라고 부언한다. “만일 누가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 …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임이니라”(갈 6:3-5). 89 판단력과 경험에 있어서 자기 자신이 형제들보다 우월한 것으로 생각하고 그들의 충언과 권면을 멸시하는 자는 위험한 기만 가운데 빠져 있음을 나타낸다. 마음은 기만적이다. 그는 그의 품성과 생애를 성경의 표준으로 시험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생애의 길에 확실한 빛을 비춰 준다. 정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빗나가게 하고자 나타나는 많은 영향력이 있을지라도 지혜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께 정직하게 구하는 자들은 바른 길로 인도받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은 마침내 자기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단체의 의견에 의해서가 아니고, 어떤 사람의 판단력에 의해서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보시는 그의 진정한 품성에 의하여 스스로 서든지 넘어지든지 해야 한다. 교회는 경고하고 권면하고 권고할 수는 있을지라도 올바른 길을 취하도록 어떤 사람을 강요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하고자 고집하는 자는 누구나 자신의 짐을 스스로 져야 하고, 스스로 하나님께 답변해야 하고, 자기 자신의 행동의 결과를 감수해야 한다.

주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통하여 분명하고 명확한 교훈을 우리에게 주셨으므로, 우리는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교회 안에서 연합과 화목을 유지할 수 있다. 형제 자매들이여, 그대들은 이 영감 받은 교훈에 유의하고 있는가? 그대들은 성경을 읽는 자들이며 그 말씀을 실천하는 자들인가? 그대들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따르는 자들을 하나 되게 해달라고 간구한 그 기도를 성취시키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가?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 마음과 한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롬 15:5, 6). “온전케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 하여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고후 13:11).

하나님의 집-“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전 3:9)-의 표상은 이루어져야 할 사람의 품성을 하나 하나 지적해서 나타내 준다. 하나님께서는 매일 당신의 집을 손으로 하나 하나 쓰다듬으시며 완전한 건축물로 완성시키는 일을 하신다. 그리하여 그 집이 당신을 위한 거룩한 전(殿)이 되게 하신다. 90 사람은 하나님과 협력해야 한다. 각 일꾼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그대로의 사람이 되어 그의 생애를 고상하고 순결한 행실로써 꼴 짓고, 마지막에 가서는 그의 품성이 균형지게 형성되어 하나님과 사람에게 존중히 여김을 받는 훌륭한 성전이 되어야 한다. 그 집에는 아무런 흠이 없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주님의 집이기 때문이다. 모든 돌은 완전하게 놓여져서 그 위에 가해지는 압력을 견딜 수 있게 되어야 한다. 돌 하나를 잘못 놓으면 전체 건물에 영향이 미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대와 다른 모든 일꾼들에게 이렇게 경고하신다 “그대는 어떻게 집을 세우고 있는지, 그대의 집이 영원한 반석 위에 세워짐으로 폭풍과 사나운 비바람에 견딜 수 있을 것인지 살펴보라. 확실한 기초 위에 돌을 놓음으로써 모든 사람이 현실 그대로 드러나게 될 시험과 시련의 날을 위하여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이 경고는 하나님께서 그대의 복리에 특별히 필요한 것으로서 내게 나타내 보이셨다. 그분은 측량할 수 없는 사랑으로 그대를 사랑하신다. 그분은 믿음 안에 있는 그대의 형제들을 사랑하신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그대와 함께 일하시는 것과 꼭 같은 목적으로 그들과 함께 일하신다.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는 각각 빛을 반사하는 산 돌들로 지어진 성전으로서 세상에서 거룩한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그것은 산 위에 숨겨질 수 없이 서 있는 성처럼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돌과 돌로 잘 맞추어서 튼튼하고 견고한 건물로 세운 집이다. 그 모든 돌은 모양이나 형체가 같은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크고 어떤 것은 작지마는 각각 놓여질 자리가 있다. 그리고, 각 돌의 가치는 그것이 반사하는 빛에 의하여 결정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다. 그분은 당신의 모든 일꾼들이 이 시대를 위한 사업에서 그들에게 정해진 자리를 채우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마지막 날의 위기에 살고 있다. 우리는 정신적 육체적 능력을 모두 지혜롭게 계발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교회를 위대한 설계자이신 하나님의 지혜를 나타내는 집으로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재능들은 그분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피차에 올바른 관계를 이루어 하나의 완전한 전체가 되도록 활용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재능, 곧 정신력을 주시고, 인간은 품성을 형성시킨다.―교회증언 8권, 173, 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