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뽑은 기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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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 예언의 신의 권면은 항상 실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그리스도인 생애와 신앙적인 체험의 거의 전반적인 면에 관련된 권면과 교훈을 엘렌G.화잇의 저서 가운데서 찾아볼 수 있다. 비록 대부분의 교훈의 내용들이 교회증언과 다른 엘렌G.화잇 저서들 가운데 실려 있기는하나 과거에 출판되었으면서도 현재는 절판된 자료들과 아직도 출판되지 않은 원고들 가운데 특수한 분야에 관련된 권면의 말씀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현재 그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새롭고 힘든 문제들을 다루는 데 있어서 이러한 권면의 말씀들은 더욱 큰 중요성을 지니게 된다. 이러한 재료들은 현재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의 손에 쥘 수 있는 풍부한 교훈에 대하여 큰 도움을 추가해 주는 재료들이 될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말한다면 과거에 출판되지 않은 재료들 가운데 최면술의 문제를 다룬 내용들이 있는데 오늘날 일부 의학계에서는 이 최면술을 물리 치료의 한 가지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어졌다는 사실이다. 병자를 치료하는 데 있어서 최면술을 사용하는 것에 관하여 엘렌G.화잇의 특별한 권면의 말씀들이 있으며 어떤 경우에 있어서든지 이 방법을 사용하는 데는 큰 위험이 따른다고 지적해 준 사실은 이 때에 매우 적절한 교훈인 것이다.

제8장의 마지막 절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이 시골 생활 환경에서 가정 생활을 하는 가치를 생각케 하는 권면들이 있다. 이 가운데 실린 내용들은 출판된 책들 중에서 재료들을 뽑아낸 것이 아니라 오래전에 소책자 형식으로 출판된 “시골 생활”(Country Living)에 실렸던 내용들을 재판한 것으로서 혼잡한 도시에서 떨어진 곳에 있는 시골에 새로운 위치를 선택하고 이사하는 일에 있어서 보다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해야 할 것을 강조한 말씀들이 있다. 책의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낸 이 자료들 가운데는 언제나 참고할 수 있는 귀한 교훈들이 있다.―편찬자

311 나는 사람이 우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께 기도를 올릴 때에 마땅히 취해야 할 진실한 태도에 관하여 질문하는 편지들을 받았다. 우리 형제들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꼿꼿이 선 자세로 기도해야 한다는 견해를 어디서 얻었을까? 배틀크릭에서 5년 동안 교육을 받은 어떤 사람이 화잇 자매가 신자들에게 설교하기 직전에 기도하라는 요청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꼿꼿이 선 자세로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하여 입을 벌리려는 광경을 목격한 그 찰나에 나의 영혼은 그에게 공개적인 견책을 주기 위하여 격동되었다. 나는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당신의 무릎을 꿇으시오”라고 말하였다. 이것이 항상 취해야 할 마땅한 자세이다.

“저희를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 (눅 22:41)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행 9:40).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 7:59, 60).

312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모든 사람과 함께 기도하니”(행 20:36).

“이 여러 날을 지난 후 우리가 떠나갈 새 저희가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행 21:5).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 대로 무릎을 꿇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러워 낯이 뜨뜻하여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스 9:5, 6).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시 95:6).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엡 3:14)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에베소 3장의 전체 내용을 우리들이 배울 수 있는 고귀한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굽히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러한 예배의 행위가 바벨론에 있는 세 명의 히브리 포로들에게 요구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는 세상의 주권자이시며 우주의 통치자이신 오직 하나님께만 나타내야 할 경배의 표현이다. 비록 정금으로 만든 우상일지라도 세 히브리인은 우상에게 그러한 영예를 돌리는 일을 거부하였다. 만약 저들이 우상에게 경배한다면 모든 의사(意思)와 목적에 있어서 바벨론의 왕에게 굴복하는 격이 되는 것이다. 왕이 명령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저들은 형벌을 당할 수밖에 없었으며 맹렬히 불타는 풀무불에 던지움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저들에게 나타나셨고 불 가운데서 저들과 함께 행하셨으므로 저들은 아무런 해도 받지 않았다.

공중 예배에서나 개인적인 예배 시간에 우리들이 하나님께 간구를 올릴 때 하나님 앞에서 몸을 굽히고 무릎을 꿇어야 한다.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들의 의존심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성전의 봉헌식 때에 솔로몬왕은 단 앞에 섰다. 313 성전 뜰 안에 놋으로 만든 대(臺) 혹은 연단(演壇)이 있었는데 솔로몬은 그 단 위에 서서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이스라엘의 허다한 회중들을 축복하였으며 이스라엘의 모든 회중들도 마주 서 있었다….

“솔로몬이 기왕에 놋으로 대를 만들었으니 장이 다섯 규빗이요 광이 다섯 규빗이요 고가 세 규빗이라 뜰 가운데 두었더니 저가 그 위에 서서 이스라엘의 회중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대하 6:13).

그 때에 솔로몬이 올린 장시간에 걸친 기도는 그 행사에 적절한 것이었다. 그 기도는 하나님의 감동을 입어 올린 기도였으며 가장 깊은 겸비의 정신을 혼합한 가장 경건한 내용의 뜻을 발표한 것이었다.

나는 증거가 되는 성경절들을 제시하면서 “H 형제가 어디서 교육을 받았습니까?” 라고 물어보았습니다.―그는 배틀크릭에서 교육을 받은 자였다. 하나님께서 경건한 예배의 문제에 대하여 당신의 백성들에게 주신 바 모든 빛을 가지고서도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목사들과 우리 학교의 교장들과 교사들이 교훈과 모본으로써 가르칠 때에 바리새인들처럼 예배드릴 때에 꼿꼿이 서서 기도하라고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태도를 볼 때에 우리들 자신이 강한 자부심과 자기 존대의 사상을 은연 중에 나타내는 것이라고 간주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특성들이 점점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눅 18:9-12). 그대들은 바로 이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스스로 의롭다고 자칭한 바리새인은 하나님 앞에서 겸비와 경건의 자세를 취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는 다만 거만한 자세로 서서 자기의 선행에 대하여 주님께 말하였을 따름이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눅 18:11)라는 말씀으로 보아 그의 기도는 아무도 들어주는 이가 없이 자기 혼자서 중얼거리는 것이 되고 말았다.

314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눅 18:13, 14).

우리들이 오직 참되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우리 형제들은 이방인들이 우상 신들에게 나타내는 것보다도 못한 경건과 경외심을 나타내지 않기 바랄 뿐이다. 만약 우리들이 저들보다 못하다면 마지막 심판날에 이러한 백성들이 우리들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하여 우리 학교들의 교사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 남녀들이여 불손하고 잘난 체하는 태도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 말라. 그대 자신의 능력을 믿지 말라. 자신의 능력을 의뢰할 것이 아니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굽혀서 경배할 것이다.

그대들이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하여 모일 때에 반드시 주님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한다. 이러한 행위는 온 영혼과 몸과 신을 진리의 영께 복종시켰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한 모본과 교훈을 성경 가운데서 철저히 연구한 자가 누구인가? 미국과 여러 외국에 있는 우리 학교의 교사들로서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자가 누구인가? 학생들이 여러 해 동안 학창 생활을 한 이후에 하나님께 바쳐야 할 존경과 영예와 경외심에 대하여 그릇된 개념을 가지고 저희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해서 될 것인가? 백발의 어른들, 경험이 많은 선배들, 거의 평생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업에 종사하여 온 하나님의 택하신 종들을 존경할 의무를 느끼지 못하는 자들을 우리 학교에서 배출할 수 있을까? 나는 미국과 여러 다른 곳에 있는 모든 학생들에게 불손한 사상을 본받지 않도록 권고하는 바이다. 그대 자신에게 어떤 종류의 교육이 필요한지 확실히 깨달음으로써 그대들은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자들에게 불원간에 이를 시련을 견딜 수 있는 적합한 품성을 얻게 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을 교육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확고한 그리스도인 사상을 가진 자들과 사귀라. 잘난척하는 선생들이나 학생들을 벗으로 삼지 말고 가장 깊은 경건심을 나타내보이는 자들과 하나님의 사물에 관하여 지혜로운 정신을 가진 자들을 벗으로 삼으라.

우리들은 매우 위태로운 시기에 살고 있다. 315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은 자칭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백성이라고 선언하고 있으나 저들은 점차로 헌신적인 정신을 상실하고 있다. 하나님을 향한 경건한 예배의 정신은 사람들에게 저희 창조주를 접근하는 방법, 곧 저희 자신을 믿지 않고 중보자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거룩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을 가르친다. 이렇게 할 때 인간은 자신이 어떤 환경에 놓이든지 마음이 변치 않는 충실한 자가 되는 것이다. 인간은 은혜의 신하처럼, 자비의 발판 앞에 엎드려 탄원하는 자처럼 무릎을 꿇어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손에 있는 자비의 은사를 매일 받게 될 때에 그는 마음 가운데 고마움을 항상 느껴야하며 공로 없이 얻은 은총을 인해서 감사와 찬송의 말로써 고마운 뜻을 표현해야 할 것이다. 천사들은 그의 일생을 통해서 그가 가는 모든 길에서 보호해 주셨으며 그가 볼 수 없었던 많은 올무들 가운데서 그를 건져냈다. 결코 졸거나 잠자는 일이 없는 눈을 가지고 보호하시며 살피시는 하나님을 위하여 그는 모든 기도 가운데서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봉사를 인정해야 한다.

모든 영혼들은 무력한 상태에서 매일 느끼는 필요성에 의해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저들은 겸손하며 경계하고 항상 기도하는 깊은 신앙심을 지켜야 한다. 하나님을 위한 고마운 마음과 성실한 사랑 가운데서 찬송과 감사의 말이 흘러 나와야 한다.

마음이 바른 자들의 모임과 많은 회중 가운데서 저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하나님과 더불어 산 연합을 가졌다는 신념을 가진 모든 자들은 주님을 위한 증인들로서 주님 앞에 서야 하며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선하심을 나타내야 한다. 저들의 입으로 하는 말은 성실하고 단순하며 진실하고 지혜로운 것이라야 하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불타는 심정으로 하는 말이어야 하며 하나님의 영광으로 성화된 입술은 성도들의 집회에서만 하나님의 자비를 선포할 뿐만 아니라 어느 곳에서든지 주님의 증인들이 되어야 한다. 지상의 모든 거민들은 그분이 하나님이시며 오직 참되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한다.

헌신적인 사랑이 깃들인 경외심과 경건한 두려움으로 하나님께 나오는 방법에 대하여 총명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창조주를 위한 경외심이 점차로 결핍되어 가고 있으며 주님의 위대하심과 존엄하심에 대하여 점점 냉담해 가는 상태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살고있는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들은 폭풍과 무서운 천둥 소리 가운데서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또한 우리들은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지진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재난들에 대한 소식을 들으며 물이 쏟아져 나와 모든 것을 휩쓸어가는 파괴적인 요소들이 되는 것에 대하여 뉴스를 듣는다. 우리들은 배들이 소용돌이치는 바다 물결 속으로 가라앉는 이야기를 듣는다. 316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인정하지 않는 가족들에게 말씀하시며 때때로 회오리바람과 폭풍 속에서 때로는 모세와 대화하신 것처럼 직접 대면하여 말씀하신다. 또한 주님께서는 당신을 신뢰하는 작은 어린이와 노쇠기에 있는 은발의 노인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속삭이신다. 인간의 세속적인 지혜는 보이지 않는 사물을 바라볼 때에 비로소 지혜를 얻게 된다.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순 후에 작은 음성이 들릴 때 모든 영혼들은 저들의 얼굴을 가리워야 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가까이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저들의 피난처가 되시므로 저들은 스스로 주님 안에 자신을 숨겨야 한다. 겸비한 탄원자가 주님께서 당신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듣기 위하여 몸을 굽힌 자세로 기다릴 때 못자국이 있는 주님 자신의 손으로 숨겨놓으신 암혈(岩穴)을 찾아 그 속에서 은거하게 될 것이다(왕상 19:9참고) (1897년, 원고 84).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기에 부적당한 시간이나 장소는 없다…. 거리의 사람이 많은 곳에서나 일에 종사하고 있는 중에서라도 우리는 옛날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왕 앞에 자기의 소원을 아뢴 것처럼 하나님께 기도하여 그의 기도를 구할 수 있는 것이다(정로의 계단 보급판, 99).

우리는 길을 걸어갈 때에도 예수님과 이야기할 수 있으니 예수님께서는 “내가 네 우편에 있노라”(시 16:8)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마음 속으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를 벗삼아 길을 걸을 수도 있다. 우리가 날마다 직무를 행할 때에 마음 속의 소원을 조용히 기도드릴 수 있으며 이 기도가 다른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으나 결코 소리없이 사라지거나 듣지 못하게 되지 않는다. 아무것도 심령의 기도 소리를 막지 못한다. 그것은 번잡한 거리의 소음과 요란한 기계 소리를 초월하여 위로 올라간다. 하나님께 향하여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므로 우리의 기도는 들으신 바 된다(복음 교역자, 260).

기도하기 위하여 항상 무릎을 꿇고 몸을 굽힐 필요는 없다. 그대가 혼자 있을 때나 길을 걸을 때나 그대의 일상 업무로 말미암아 분주할 때에라도 구세주와 더불어 대화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하라(치료봉사, 470).

317 하나님의 모든 참된 자녀는 곡식을 체질하듯 체질을 당하게 될 것이며 체질하는 과정에 있어서 마음을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하는 모든 쾌락은 희생시켜야 한다. 많은 가정들을 보면 벽난로 위의 선반이나 탁자나 책상 위에 여러 가지 장식품들과 사진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다. 가족과 친구들의 사진들로 가득 차 있는 앨범들은 방문객의 눈길을 제일 잘 끌 수 있는 위치에 놓아둔다. 이리하여 하나님과 하늘의 사물들을 향하여 달려야 할 생각들이 세속적인 사물로 집착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 역시 일종의 우상이 아닐까? 그런 일에 사용된 돈으로 인간에게 축복이 되고 병자를 구원하며 벗은 자를 입히고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는 일에 써야 할 것이 아니었는가? 그러한 돈을 가지고 주님의 사업을 발전시키고 이 지상에 주님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주님의 창고에 쌓아두어야 할 것이 아니었는가?

이것은 매우 중대한 문제이며 그대 자신을 우상 섬기는 죄에서 스스로 구원하라는 권면의 말씀이 있다. 만약 그대들이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출 20:3)고 하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다면 축복이 그대들의 영혼에 임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집안에 가득채우는 불필요한 장식품들에 대하여 시간과 생각을 바침으로써 저들 스스로 무익한 염려와 근심을 짐짓 만들어내고 있다. 모든 의도와 목적에 있어서 이것은 우상 숭배와 같은 것이므로 이런 일에 시간과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저들을 일깨워주기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318 심령을 살피시는 주님께서는 온갖 종류의 우상 숭배에서 당신의 백성을 건져내시기를 바라신다. 현재 쓸모 없는 장식품들로 가득 차 있는 책상 위에 복된 생명의 책인 하나님의 말씀을 두도록 하라. 현대 진리에 관하여 정신을 계몽시키는 수단이 될 책들을 사는 일에 그대들의 돈을 쓰도록 하라. 집안에 있는 온갖 잡동사니 장식품들을 여기저기 옮기거나 먼지를 터는 일에 낭비되는 시간을 이용하여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거나 진리를 모르는 자에게 종교잡지나 전도지나 작은 책들을 보내는 일에 사용하라. 주님의 말씀을 무한한 지혜와 사랑의 보화처럼 여기라. 이 말씀이야말로 하늘 가는 길을 가르치는 안내서이다. 진리의 말씀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요 1:29)는 말씀 그대로 죄를 용서해 주시는 구세주를 우리들에게 가르쳐준다.

아, 그대들이야말로 기도하는 마음과 하나님께 굴복하는 정신을 가지고 성경 말씀을 연구하여야 할 것이다. 아, 그대들은 밝은 촛불을 들고 마음을 샅샅이 살필 것이며 하나님에게서 마음을 떠나게 하는 세속적인 습관들에 의하여 묶여 있는 가는 실을 찾아 끊어버려야 할 것이다! 주님께서 그대의 사상과 애정을 돌이키게 하는 모든 습관을 보여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라. 하나님께서는 품성을 저울질하는 당신의 척도로써 인간에게 당신의 거룩한 율법을 주셨다. 이 율법에 의해서 그대들은 자신의 품성 가운데 있는 모든 결점들을 발견하고 정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대들은 모든 우상에게 매인 자신의 관계를 끊고 은혜와 진리의 금사슬로 그대 자신을 하나님의 보좌에 붙잡아맬 것이다(리뷰 앤드 헤랄드, 1901.5.14).

교회를 도울 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으나 저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저들 자신의 마음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어떤 자들은 거짓된 시험거리들을 교회 안으로 이끌어들였으며 저들 자신의 개인적인 이념과 의향들을 하나의 표준으로 삼아가지고 신자들의 교제 관계에 대한 작은 문제들을 크게 확대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무거운 마음의 짐을 지게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비판의 정신과 트집 잡는 버릇과 분열의 사상이 교회 안에 침투하게 되어 큰 해를 끼쳤다. 그렇게 할 때에 안식일을 지키는 재림 신자들은 한 떼의 광신자들이며 극단주의자들이라는 인상을 불신자들에게 주었고 저들의 특이한 믿음이 저들 자신을 오히려 불친절하며 무례하고 품성 면에 있어서 실질적으로 비그리스도인적 특성을 갖게 했던 것이다. 319 이리하여 소수의 극단주의자들이 저지른 행위로 말미암아 대중에게 미칠 진리의 감화력을 막아버렸다.

어떤 자들은 의복 문제를 가장 중요한 일처럼 들고 일어나서 다른 사람들이 입는 옷의 모양을 가지고 비판하며 저들의 견해에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항상 서슴지 않고 정죄하였다. 또 어떤 소수의 무리들은 사진들을 정죄하고 나서며 둘째 계명이 금한 것이라고 하였고 이런 종류의 것은 무엇이든지 없이해야 한다고 권고하였다.

이처럼 한편으로 치우친 사람들은 당장 저들의 마음에 떠오르는 한 가지 문제를 밀고 나아가는 것 외에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우리들은 여러 해전에 이와 꼭 같은 정신과 활동을 본 적이 있었다. 이 사람들은 사진들을 정죄하며 그와 흡사한 것은 무엇이든지 없애버려야 한다는 기별을 받았노라고 주장하였다. 심지어 저들은 숫자가 적혀 있거나 그림이 그려 있는 괘종시계를 정죄하는 극단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들이 성경 가운데 보면 선한 양심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을 알수 있으며, 비단 선한 양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악한 양심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모든 것을 극단적으로 이끌어가며 그리스도인의 의무들을 마치 유대인들이 안식일 준수를 까다롭게 한 것처럼 성가신 짐이 되게 하는 양심이 있다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꾸짖으신 견책은 바로 이런 자들에게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눅 11:42). 강한 정신과 과격한 사상을 가진 자로써 올바르게 살려는 자들의 양심을 학대하는 광신적인 사람은 큰 해를 끼치게 될 것이다. 교회는 그러한 모든 감화력으로부터 깨끗이 벗어날 필요가 있다.

둘째 계명은 어떤 형상을 만들어 경배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가르치시려는 교훈들을 당신의 선지자들에게 증거하시기 위하여 친히 그림들과 상징들을 사용하심으로써 다른 어떤 방법보다도 더욱 쉽게 이해시킬 수 있었다. 주님께서는 시각을 통해 이해력에 호소하셨다. 다니엘과 사도 요한에게 상징들을 통하여 예언적인 역사를 계시해 주셨으며 이러한 상징들을 밝히 검토하도록 제시하여 보는 자들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셨다.

320 사진을 만드는 데 있어서 너무나 많은 돈들을 사용하였으며 하나님의 창고에 들어가야 할 적지 않은 자금이 사진사에게 지불되었다는 것은 너무나도 확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먼저 말한 극단주의자들의 저지른 행위로 말미암아 교회에 끼치게 될 악의 영향은 저들이 바로잡기 위하여 노력해야 할 그 악보다도 훨씬 크다. 때때로 사진을 만드는 것이 죄가 되고 안되는지의 경계선을 말하기란 매우 곤란한 문제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전심으로 그의 계명을 지키려고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어떤 인간이 저들의 양심을 대신하는 자리에 서게 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한쪽으로 치우치는 자들의 모든 사상과 감정을 받아들이는 자는 혼란을 일으키며 당황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의 관심을 셋째 천사의 기별에서 떠나게 하여 별로 중요치도 않은 문제들을 생각케 함으로써 은혜와 진리를 아는 지식 가운데서 자라나야 할 두뇌와 심령이 위축되고 약화되어 저들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을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사단의 목적이다(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 외방 선교 약사(略史), 211, 212).

321 부모들이 저희 자녀들을 거짓되고 유행적인 관습에서 벗어나 유용한 인간이 되게 가르칠 수 있도록 교육하라. 딸들은 어머니들 밑에서 유익한 근로 활동을 할 수 있게끔 교육을 받아야 하며 집안에서 하는 일뿐만 아니라 밖에서 하는 근로 활동까지 할 수 있게 교육을 받아야 한다. 어머니들은 집안에서나 밖에서 유익된 일들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적당한 연령을 따라 아들들도 훈련시켜야 한다.

이 세상에는 쾌락과 오락을 위주로 하는 운동을 거의 완전히 불필요하게 만드는 필수적인 일들로서 유익된 것들이 많이 있다. 정당한 사고력을 발휘하며 지적 능력과 육체적인 기능의 힘을 계발시키기 위하여, 저들(청년들)을 훈련시킬 계획을 세우는 목적을 위하여 뇌와 골격과 근육을 사용할 때 든든하고 힘이 있어야 하며 천부의 재능을 실제적으로 사용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노아와 롯의 시대처럼 우리가 사는 이 시대도 마찬가지여서 우리가 의료기관들과 대학교를 설립해야 할 강력한 이유를 밝히 설명해 주셨다. 인간들은 많은 발명품들을 창안해 냈으며 하나님의 목적과 섭리에서 멀리 떠났다.

322 나는 공을 가지고 단순하게 운동하는 것을 정죄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단순한 것일지라도 과도하게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이러한 오락에 뒤따르는 거의 분명한 결과를 알기 때문에 나는 겁내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도를 모르고 죽어 가는 영혼들에게 진리의 빛을 전하는데 마땅히 사용되어야 할 상당한 자금이 지출되게 한다. 자신의 쾌락을 목적으로 오락을 추구하며 재정을 낭비하는 일은 점차적으로 자기 영광에 도취하게 만들며, 쾌락 위주의 오락을 가르치는 일은 그리스도인 품성의 완성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들을 위한 애착과 정열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학교에서 지도해 온 그런 방법은 하늘나라의 인상을 주지 못한다. 운동경기나 오락을 가르치는 것은 품성을 우아하게 하거나 순결하게 하지 못한다. 습관, 관례 및 세속적인 제도들을 통하여 유도하는 요소들이 있어서 운동과 오락을 즐기는 자들은 너무나 그 길에 몰두하고 매혹된 나머지 저들은 하나님보다도 쾌락을 더욱 사랑하는 자들로서 하늘나라의 판정을 받게 될 것이다. 학생들이 그리스도인 의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자격 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더욱 훌륭한 일을 할 힘을 얻는 지능 대신에 오락과 운동 경기를 위한 활동에 치우칠 때 저들의 머리는 공부에 방해되는 잡념들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하나님과 동역자들이 되게 하는 선교 활동을 함으로써 정신과 근육을 운동시키는 동일한 능력이 여러 가지 방법들을 구상해 낼 수 있게 하며 그런 운동이야말로 고상한 부류에 속하는 운동이 될 것이다. 교육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는 보람 있는 활동을 시킴으로써 이생을 위하여 보다 고상한 유용성을 길러줄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청소년들에게 위탁하신 재능들을 저희 자신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서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유효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많은 방법들이 있다. 천국의 대주재가 되시며 영광의 왕이 되시는 주님께서는 인류를 향상시키고 고결하게 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무한한 희생을 치르셨다. 주님께서는 꾸준하시고 부지런한 일꾼이셨다. 성경에 예수께서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행 10:38)셨다고 기록되었다.

323 바로 이러한 일을 모든 청년들이 그리스도의 노선을 따라 활동하는 데서 해야 할 일이 아닐까? 그대들은 그리스도의 도움을 언제나 받을 수 있다. 학생들의 사상은 크게 발달할 것이다. 저들의 감화력과 유용성의 한계는 먼데까지 미칠 것이며 비록 학창 생활에서나마 계속적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손과 발은 하늘의 인장(印章)을 지닐 선행을 위하여 사용함으로써 그대들은 결국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마 25:21)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제시된 문제의 내용을 보아서 그대들의 구기(球技)운동은 학생들의 생활을 건전하게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방향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으며 행위를 저울질하시는 주님의 평가에 비추어 볼 때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인 선교 제도의 계획을 따라 한 무리를 구성하여 주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기회들을 살피고 계발시킴으로써 각자가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라.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착한 일을 할 수 있는 포도원을 가지고 계신다. 고통 가운데서 신음하는 인간은 어디서나 도움을 요구하고 있다. 학생들은 때에 알맞는 합당한 말을 해주며 육체적인 노동을 요구하는 자들을 도와줌으로써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살 수 있다. 이러한 활동은 어느 누구의 품위를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며 다만 하나님의 인정하심을 의식하게 할 것이다. 위탁된 재능을 현명하게 계발시킬 때에 그 재능은 활용자들에게 불어날 것이다. 또한 재능은 서로 교류함으로써 증가될 것이다.

영혼과 육체에 똑같이 유익을 주는 건전한 운동 방법들을 계획할 수 있다. 반드시 성취해야 할 위대한 사업이 있으며 책임을 가진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 가납하심을 받을 수 있는 사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반드시 자기 자신을 교육해야 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배워야 할 것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방탕하고 사치하는 이 세대의 유행하는 악을 개선하기 위하여 어떤 인간적인 계획을 채택하기보다는 선행을 위한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들이는 것이 뇌와 골격과 근육의 효과적인 활용에 제일 좋다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청년들에게 주신 근육과 뇌를 활용하는 일에 있어서 선행을 하기 위하여 항상 노력하는 것이 우리들의 의무이다. 324 청년들이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쓸모 있는 존재가 되게 하며 다른 사람들의 수고를 덜어주고 슬퍼하는 자를 위로해 주며 낙담한 자에게 용기를 주고 소망이 없는 자에게 위로의 말을 전해 주며 때때로 남녀의 위신을 땅에 떨어뜨려 수치와 치욕을 맛보게 하는 장난과 흥청망청 놀기를 좋아하는 학생들의 정신을 돌이키게 할 수 있다. 주님께서는 인간의 정신을 향상시켜 쓸모 있는 고상하고 고귀한 매개물들이 되기를 바라신다.

이러한 구기(球技)놀이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만을 생각할 수 있을까? 나는 결코 그럴 수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도리어 하나님의 섭리와 목적에 대한 견해를 망각하게 된다. 은혜의 시기 동안에 지식 위주의 인간들을 채용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섭리를 인간의 생각과 교체하는 것이 되며 사단의 곁에 서서 그의 정신에 물든 인간의 공론과 창안들을 진리와 대체하는 것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의 곁에 가까이 두라. 진리의 인도를 받을 때에 그대는 지혜롭게 될 것이며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요동함이 없이 항상 주님의 사업에 용기를 가지고 나가게 될 것이다. 우리들은 이 마지막 날에 있어서 깨어 기도해야 한다. 하늘에 계신 주 하나님께서는 그처럼 열중하는 구기 놀이에 있어서 패권을 쥐려는 정열적인 욕망에 대하여 항의하는 주장을 하신다.

과거 그대의 생애 가운데 앤아버(미쉬간 주)에서 의학 공부를 하고 있는 현재의 입장만큼 그대의 형편이 더 심각한 처지에 놓여 있었던 적은 없었다. 사단은 영혼을 좀먹는 거짓된 유혹으로 침투하기 위하여 그가 이용할 수 있는 모든 통로들을 감시하고 있다. 그대는 자칭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하는 지식이 많은 인물들에게 불신적인 사상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계시된 지혜의 말씀을 붙잡아야 할 것인데 만약 그대가 진리의 교훈에 순종한다면 진리가 그대를 하나님의 보좌에 묶어 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어느 시기보다도 지금 이 때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개인적으로 거룩한 모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는 까닭으로 하나님에게서 분리되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다. 저들은 자기 자신이 켜놓은 점화(點火)를 바라보며 걷는 것이 안전한 줄로 생각하고 그 길이 주님의 길이라고 생각하면서 영혼을 속이고 있다(서신 17a, 1893).

325 (사업하는 사람이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에 사용해야 할 방법에 관하여 주신 권면)

그대는 동전을 공중에 날렸다가 손등이나 땅 위에 떨어뜨려 동전이 어느 쪽인가에 따라 신앙적인 의무와 사업 계획에 관한 결정을 내리려고 애쓰고 있다. 나는 우리들이 결코 그러한 방법을 장려해서는 안 된다는 지시를 받았다. 그것은 너무나도 저속한 방법이며 너무나도 날랜 손재주나 요술에 맡기는 것과 같은 그릇된 방법이다. 그러한 방법은 주님께서 찬성하시는 것이 아니며 방향 지시를 위하여 그런 방법들을 의존하는 자들은 패배와 실망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러한 방법은 운수를 맡기는 것에 불과함으로 우리의 모든 사업과 계획을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의 확고한 기초 위에 세워야 할 때에 의무에 관하여 그러한 시험 방법들을 채택하는 결과로 사람들이 운수와 어림 잡기에 의존하게 하는 습관을 길러주게 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직 성실한 기도와 성령의 거룩케 하시는 능력을 간절히 간구함으로써 저희 의무에 대하여 올바른 인식을 가질 수 있다. 저희가 취해야 할 행동에 관하여 올바른 지시를 받고자 할 때에 저들은 이처럼 이상스럽고 신빙성이 없는 방법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할 때에 저들은 되는 대로 적당히 해버리는 그러한 습관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며 인간적인 계책을 의존할 때에 결과적으로 틀림없이 맛보게 될 혼란을 피할수 있을 것이다.

326 나는 우리 신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지도하시기 위하여 제정해 놓으신 확고하고 지혜로운 원칙들을 떠나 동전을 던지는 것과 같은 그런 방법으로 방향 제시를 의존하지 않도록 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사단은 그러한 동전을 조정하려고 역사할 것이며 그의 매개물들을 통하여 자신의 계획들을 추진할 것이므로 그러한 방법은 영혼의 원수를 즐겁게 해줄 뿐이다. 아무도 그러한 방법을 신뢰함으로써 쉽사리 속임을 당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사업에 관련된 중대한 문제들의 방향 지시를 알기 위하여 비천한 방법들을 의지함으로써 저희의 고귀한 경험을 멸시하는 일이 없게 할 것이다.

주님께서는 적당히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일하는 그런 방법으로 일하지 않으신다. 가장 열렬한 기도로써 주님께 간구하라. 주님께서 마음에 감동을 주실 것이며 혀와 할 말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저들 자신에 관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기 위한 방법으로써 인간적인 창안이나 불확실한 시험 방법들을 신뢰하도록 가르침을 받아서는 안 된다. 사단과 그의 부하들은 영혼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순결한 원칙에서 떠나게 할 수 있는 어떤 틈이든지 엿보려고 항상 준비하고 있다. 하나님의 지도와 가르침을 받은 백성은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는 보증의 말씀을 얻을 수 없는 데서는 어떤 계획도 채택하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재림을 위하여 준비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주님의 섭리에 대한 지식과 주님께서 보내신 모든 빛 가운데서 기꺼이 행하려는 정신을 얻기 위하여 겸손하게 주님께 간구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지혜와 권고를 받기 위하여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많은 가르침을 받은 바 있다. 우리는 교훈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자. 구주께서는 “성경을 상고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자신의 심령을 겸비하게 하고 우리의 영혼을 매일 순결하게 하여 항상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행하도록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나의 형제 자매들이여, 그대들이 유혹을 받기 쉬운 모든 비천한 방법들을 깨끗이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증거로써 그대의 정신을 시험해 보라. 그대들이 하나님의 성품과 뜻을 알기 위하여 진리의 말씀을 연구하라. 모든 신자들이 성경의 진리를 자신의 안내자와 방위 수단으로 삼는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긴요한 일이다. 말씀을 연구하는 것이 영혼들이 끝날까지 충성되게 남아 있게 하는 유일한 안전 책임을 모든 청년 남녀들과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증언하는 바이다(특별한 증언, B, No.17.25-29).

327 W.C.화잇: 사업에 관한 문제, 일상 활동과 개인적인 결정의 문제들을 주님께 물어서 가부간에 응답을 받기 위한 방법으로 작은 카드 양쪽에 글을 쓴 다음 그것을 떨어뜨려서 하나님께서 어떤 것을 찬성하시고 혹은 찬성하지 않으시는지를 가리키는 방법으로 믿는 것에 대하여 어머니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엘렌G.화잇: 이것은 하나님께서 찬성하실 수 없는 버릇없는 방법이다. 나는 그러한 방법들을 제시한 사람들에게 “결코 안 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하나님의 사업에 관한 거룩한 일들을 그런 방법으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방법으로 당신의 섭리를 깨닫도록 우리에게 교훈하신 일이 없다.

카드나 동전을 떨어뜨려서 그것들이 떨어지는 상태 여하에 따라 하나님의 섭리를 결정케 함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체험을 맛볼 수 있을까? 결코 그럴 수 없다. 그런 시험 방법들은 그런 방법들을 채택하는 사람의 신앙적인 경험을 더럽힐 것이다. 그러한 방법으로 지도를 받고자 하는 자는 누구든지 다시 회개할 필요가 있다(이것은 화잇 여사가 이 보고를 읽을 때 직접 삽입한 것이다).

1844년 재림 신자들이 큰 실망을 겪은 이후에 우리들은 이런 문제들 때문에 거듭거듭 반복해서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한번은 내가 병상에서 일어나서 광신주의적인 행위로 말미암아 견책의 기별을 주게 되었다. 저들은 여러 가지 다른 방법들을 사용하였다. 그 중 하나가 어떤 표징을 택하는 것으로써 그 표징이 지시해 주는 길을 따르는 방법이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죽은 아이를 땅에 묻지 않고 저들이 정한 어떤 표징에 의해서 그 죽은 아이가 부활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나는 저들이 표징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런 것들의 허위성에 관하여 나의 증언을 전해 주기 위하여 저들에게 갔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빛에 의하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는 진리의 말씀 외에 우리들에게 안전한 길은 하나도 없다….

W.C.화잇: 가령 사업상 거래에 있어서 이런 방법을 사용하면 어떨는지 제가 보기에 상당히 좋은 토지인 듯하여 그것을 사야 할는지 혹은 사지 말아야 할 것인지 주님께 물어보고 싶은 것입니다. 328 그래서 저는 동전을 공중에 날리는 방법을 채택하여 만일 그 동전의 어느 한 쪽이 제가 결정한 대로 땅에 사려는 방향으로 동전이 떨어지면 그 땅을 사고 그 반대쪽으로 동전이 떨어지면 사지않을 것입니다.

E.G.화잇: 하나님의 거룩한 사업을 하는 가운데 결코 그러한 방법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기별을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셨다. 그런 일들은 고귀한 사업의 위신을 땅에 떨어뜨리는 것이다. 이 문제의 진상을 나에게 그렇게 보여 주셨다. 그런 방법은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과 그의 능력과 은혜에서 돌이켜 저속한 사물들을 생각하게 하며 영혼의 원수인 마귀는 이러한 저속한 방법들을 사용하게 함으로써 인간이 꾸며놓은 시험 방법들을 따르는 결과가 마치 신비한 것이기나 한 것처럼 보여 주려고 한다….

W.C.화잇: 해리스 자매는 자기 남편은 동전을 공중에 날리기 이전에 항상 기도한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E.G.화잇: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내가 전에도 광신주의자들에 대하여 말한 것처럼 메인 주에서 일어났던 무서운 경험들을 통해서 저들이 항상 기도하였다는 사실을 생각지 않는가? 이러한 계획은 인간의 능력을 신뢰하는 길에 빠지게 한다. 우리들이 바라는 것은 하나님의 온전한 능력인 것이다. 우리들이 바라는 것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신성한 것이다. 우리들은 신성한 능력을 받을 때 비로소 거룩한 교훈에 일치한 사업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믿음을 가지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당신의 성령을 교사와 안내자로 저들에게 값없이 주실 것이며 성령의 역사에 따라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을 저들로 믿게 하기 위하여 우리들의 전력을 기울여 노력하여 왔던 것이다(특별한 증언, B, No.17.16-20).

나는 제비를 뽑는 것에 대하여 전혀 찬성하지 않는다. 모든 교회의 의무들에 관하여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는 분명한 성경 말씀을 가지고 있다….

나는 ____에 있는 교회 신자들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많은 기도를 올리면서 그대들의 성경을 읽어라. 다른 사람들을 겸손하게 만들려고 애쓰지말고 그대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겸비하도록 노력할 것이며 서로 부드럽게 대하도록 힘쓰라. 교회 직원들을 선정할 때 제비를 뽑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다. 책임감이 있는 사람들이 교회 직원들을 선정하도록 부름을 받아야 한다”(서신 37, 1900).

329 매주일 그대는 안전한 장소를 마련하여 5불 혹은 10불씩 저축해 두고 질병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돈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경제성을 위하여 그대는 이자를 붙일 수 있는 곳에 돈을 저축해 두도록 하라. 보다 현명한 관리를 위해서 그대는 부채를 청산한 이후에 약간씩 저축할 수 있다(복사하지 않은 서신 29, 1884).

나는 매주 20불의 수입을 가지고 한푼도 남김없이 써버리는 한 가족을 알고 있는 동시에 같은 수효를 거느린 또 다른 한 가족은 매주 12불의 수입을 가지고 1불 혹은 2불씩 저축해 나가는데 저들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필요한 듯하면서도 없이도 살 수 있는 그런 물건들을 사지 않고 지내기 때문이다(서신156, 1901).

만약 그대가 마땅히 경제하는 생활을 하였더라면 위급한 경우와 하나님의 사업을 돕는 일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재산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매주 그대가 받는 급료의 일부를 저축해 두어야 하며 실제적인 결핍에 의한 고통이나 하나님께 헌금을 바치는 일 외에 어떤 경우에도 그 돈에 손을 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대가 번 돈을 현명하게 그리고 경제적으로 지출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대가 병들거나 그대의 가족이 궁핍해졌을 때, 쓸 수 있는 돈을 남겨놓지 못하였다. 330 비록 그대가 돈에 쪼들리는 형편에 처하게 될 경우에라도 그대의 가족은 의지할 수 있는 약간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서신 5, 1877).

그대가 모든 일에 경제하지 못하였다는 것은 확실한 일이며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그대는 어떤 청년에게든지 칭찬할 만한 지혜로운 경제성의 결과를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매주일 수입의 일부를 조심스럽게 저축하는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손대지 않겠다고 하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사업에 근면성을 보이며 쾌락을 금하고 건강에 위험이 따르지 않은 이상 그대와 같은 환경에 처한 청년으로서 기꺼이 옹색한 생활을 견디어 나가야 하며 그대 자신이 병들거나 그대에게 달려 있지 않은 다른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을 위하여 소액의 금전이나마 다치지 않은 채 남겨두었어야 할 것이었다. 그대는 불필요한 일에 돈을 많이 지출하였는바 그러한 돈은 현재 이자가 붙어서 그대에게 약간의 수익(收益)을 얹어줄 수 있는 것이었다….

비록 제한된 급료에서나마 그대는 소용될 데를 위해서 어느 정도의 자금을 저축할 수 있었다. 또한 그 자금으로 가격이 상승하는 토지를 매입하는 일에 투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청년으로서 자기가 번 돈의 마지막 한푼까지 다 써버리는 습관은 숙려(熟慮)와 식별력이 크게 결핍하다는 것을 증거할 뿐이다.

육신을 쓴 인간이 신체와 두뇌와 심령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면서 살아야 하는 이상, 이 세상에서 적당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하여 육신을 위한 어느정도의 준비를 해야 한다. 물론 세상의 표준에 달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결코 그럴 수는 없다. 다만 착한 행실을 위하여 세상에 좋은 감화력을 끼쳐야 한다. 사랑과 동정심을 활용해야 하며 일반적인 형제 우애의 자비로운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서신 41, 1877).

331 우리들은 아홉 시에 큰 천막에서 몇 형제들과 함께 그 동안 계속적으로 재촉을 받아 온 문제를 토의하기로 하였는데 그 문제란 가정이 없는 노년층의 신자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빛이 반복되었다. 모든 가족이 각기 자기 친척들을 돌보아야 하며 저들을 위하여 적당한 생활 대책을 세워주어야 한다. 만약 그것이 가능치 못할 때에는 교회가 그 부담을 져야 한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교회가 자선을 베풀 때에 축복하실 것이다. 저들은 하나님께 속한 불쌍한 식구들이며 저들을 불행하고 가련한 채로 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만약 교회도 이 일을 할 수 없을 경우에는 주님께 속한 불쌍한 자들을 위해서 합회가 그 책임을 져야 하며 생활 대책을 세워주어야 한다. 따라서 고아들을 위해서도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만약 이러한 고아들을 저희 친척들이 돌보아줄 수 없을 경우 교회나 합회가 저들을 돌봐주어야 하며 적당한 가정에 저들을 맡겨야 한다(원고 151, 1898).

332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미디안인들을 박해하며 그들을 치라”(민 25:17)고 명령하셨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궤계로 이스라엘 백성을 박해하였고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도록 유혹하였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미디안인들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원수를 갚아주라고 명령하셨으므로 모세는 자기 백성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하였다. 모세는 용사들에게 명하여 미디안인들을 대항하는 전쟁 준비를 하라고 명령하였다. 그 때에 저들은 주님께서 명령하신 그대로 전쟁을 하였으나 남자들만을 죽이고 여자들과 어린이들은 포로로 하였다. 발람도 미디안인들과 함께 목 베임을 당하였다.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회증의 족장들이 다 진 밖에 나가서 영접하다가 모세가 군대의 장관 곧 싸움에서 돌아온 천부장들과 백부장들에게 노하니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자들을 다 살려두었느냐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좇아 이스라엘 자손으로 브올의 사건에 여호와 앞에 범죄케 하여 여호와의 회중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민 31:13-16).

모세는 용사들에게 명하여 여자들과 남자 아이들을 모두 멸하라고 명령하였다. 333 발람은 보상에 대한 욕심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을 팔아 넘겼으며 그는 자기에게 은혜를 입힌 24, 000명의 이스라엘 백성의 희생과 함께 멸망을 당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다른 민족들과 더불어 전쟁을 하도록 하신 것을 보아 잔인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저들은 그러한 점이 주님의 자비스러운 성품에 정반대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지상에 거하도록 인간을 창조하신 주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피조물들에 대하여 무한한 지배력을 가지고 계시며 당신께서 원하시는 대로 행하시며 당신의 피조물들을 마음대로 하실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계신다. 인간은 자기의 창조주에 대해서 “왜 그렇게 하십니까!” 라고 말할 권리가 없다. 주님의 성품 가운데는 불공평함이 없으시다. 주님께서는 세상의 통치자이시며 큰 수에 속하는 신하들이 주님의 권위를 대항하여 반기를 들었고 당신의 율법을 짓밟았다. 주님께서는 저들에게 너그러운 축복을 베푸셨고 모든 필요한 것들을 넉넉히 주셨으나 저들은 저희 손으로 만든 목상, 석상 및 금, 은으로 부어 만든 우상에게 경배하였다. 저들은 저희 자녀들에게 생명과 건강을 주는 신들이 이러한 우상들이며 이러한 우상들이 저희 땅을 비옥하게 하고 저희에게 재물과 영예를 주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저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조롱하였다. 또한 저들은 주님의 백성의 행실이 의로우므로 멸시하였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시 14:1). 하나님께서는 저들의 악의 잔이 찰 때까지 참고 견디셨으며 악이 차고 넘칠 때에 저들을 즉시로 멸망에 이르게 하셨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박해하고 우상 숭배의 길로 유혹한 악한 민족들을 벌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백성을 진노의 도구로 사용하셨다.

한 가족 사진이 계시로 나타나 보였다. 그 가족에 속한 자녀들의 일부는 아버지의 요구를 배우려 하고 순종하려고 애쓰는 듯이 보였으나 이와 반면에 다른 자녀들은 아버지의 권위를 짓밟고 그 아버지의 가족 정부에 대하여 모욕함으로 기뻐 날뛰는 듯이 보였다. 저들은 아버지의 집에서 온갖 혜택을 입고 있었으며 계속적으로 아버지에게서 하사금을 받고 있었다. 저들은 저희의 수입 전부를 아버지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으나 고마운 줄을 몰랐으며 관대한 부친에게서 받은 모든 은혜가 마치 저들 스스로 얻은 것처럼 거만하게 행동을 취하였다. 그 아버지는 불순종하며 감사할 줄 모르는 그 자식들의 무례한 행실들을 다 알고 있었으나 참고 지내셨다.

334 이 거역하는 자식들은 한동안 계속하여 더욱 배도하는 길로 나아갔으며 지금껏 성실했던 아버지의 다른 식구들마저 배도의 길로 유혹하려고 애쓰는 것이었다. 그 때에 그 아버지는 모든 위신과 권위를 행사하기에 이르렀으며 저들 스스로 아버지의 사랑과 축복을 남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가정에서 행사하고 지혜롭고 공의로운 법률에 복종하여 온, 남아 있는 작은 무리마저 멸망시키려고 노력하였다.

반역적인 식구들의 선동적인 감화력으로 말미암아 행복의 위협을 받고 있는 충성된 소수의 자녀들을 위하여 그 아버지는 불순종하는 자식들을 분리시키는 동시에 아버지 자신이 진실하고 충성된 소수의 자녀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려고 힘쓴다. 모든 자들은 그러한 부친의 현명하고 의로운 처사를 존경할 것이며, 그 아버지는 그의 불순종하고 반역적인 자녀들을 가장 엄하게 벌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처럼 당신의 자녀들을 다루신다. 그러나 무지한 인간은 불의에 속한 온갖 가증한 죄들을 모르는 척해 버릴 것이며 계속적인 배은망덕, 반역 및 하나님의 율법을 짓밟고 거룩한 권위를 무시하는 두려운 죄들을 깨닫지 못한 채 지나게 될 것이다. 저들은 자기 자신들만이 죄를 짓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멸망에 이르게 하는데 기뻐 날뛸 것이며 저들의 간계로 범죄하게 하고 여호와의 지혜로운 요구에 대해서 공개적인 모욕을 하도록 영향을 끼친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원수들을 멸망시키는 일을 무자비하고 가혹하게 생각한다. 저들은 그 이면의 원인들을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충동적이며 자랑을 일삼는 자선심으로 심한 변덕을 부리는 인간이 사건들을 처리하고 조정하는 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우리들은 영원토록 감사해야 할 것이다. “악인의 긍휼은 잔인이니라”(잠 12:10) (4SG, 49-52).

그대는 우리 신자들이 자신의 양심의 지시에 따라 예배를 드리는 권리를 옹호하기 위하여 어떤 길을 취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질문하였다. 335 한때 이것이 우리의 믿음을 부인하는 것인지 혹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증거인지 아닌지를 몰라서 이 문제를 가지고 나 자신이 번민하였다. 그러나 나는 징집 문제와 기타 그와 흡사한 문제들에 관하여 과거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여 주신 것들을 회상해 보았다. 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우리 신자들에게 부과되는 압력을 피하기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마땅히 기울이는 것은 옳은 일이다(서신 55, 1886).

우리 사무실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세 사람이 정부의 소집을 받아 3주간의 훈련을 받게 되었는데 우리들은 방금 저들과 송별 인사를 나누었다. 현재 우리 출판 사업은 매우 중대한 단계에 놓여 있으나 정부의 부름이 우리의 편리만을 도모하도록 편의를 보아줄 수 없다. 정부는 군인으로서 받아들였던 청년들이 필수적인 군사 훈련에 태만하지 않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 사람들이 군복무에 충실했던 표로서 영예의 훈장들을 단 군복을 입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우리는 기쁨을 금할 수 없었다. 저들은 믿음직스런 청년들이었다.

이 사람들은 자원해서 간 것이 아니라 국가의 법률이 훈련을 요구하였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저들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정병이 되라고 격려의 말을 해주었다. 우리가 이 청년들을 위해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천사들은 저들과 동행할 것이며 모든 시험에서 저들을 보호할 것이다(복사하지 않은 서신 33, 1886.스위스의 바젤에서 1886년 9월 2일에 씀).

336 깨어 기다리며 기도하는 것이 우리들의 할 일이다. 성경 말씀을 연구하라. 그리스도께서는 그대에게 세상과 짝하지 말라는 경고의 말씀을 주셨다. 우리는 저희 가운데서 나와서 따로 있어야 한다.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후 6:17, 18). 그대가 정치 문제를 가지고 투표하는 것에 관하여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든지 간에 그것을 펜으로나 음성으로 선포해서는 안 된다. 우리 신자들은 셋째 천사의 기별과 관련이 없는 문제들에 관하여는 침묵을 지킬 필요가 있다. 만일 하나님께 가까이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는 백성들이 있다면 저들은 필연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이다. 과거에 여러 가지 놀라운 구상들과 꾸며진 계획들이 있었다. 무엇인가를 선포하거나 무엇을 놓쳐서는 안되리라는 일종의 불타는 욕망이 남녀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으나 저들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 그러나 많은 문제들에 관하여 그리스도께서 침묵을 지키신 것이야말로 참된 웅변이었다….

나의 형제들이여, 우리 기관지에 그대들의 정치적인 선택을 출판해 내거나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한자리에 모였을 때에 정치적인 발언을 하라는 책임을 주님께서 아무에게도 맡기지 않으셨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치 문제와 관련해서는 안 된다. 모든 신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유의할 때에 실수함이 없을 것이며 정치적인 투쟁이나 세속적인 애착으로 말미암아 불신자와 더불어 멍에를 같이 메서는 안 된다. 337 불신자와 더불어 같은 입장을 취하거나 함께 일하는 곳에는 안전함이 없다. 충성된 자와 충성되지 못한 자가 함께 만날 수 있는 동등한 근거가 없다.

하나님의 계명 중 그 한 가지를 범하는 자는 전체의 법을 범하는 자이다. 투표하는 일은 오직 그대 자신에게만 국한시키라. 그대가 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행하도록 권고하는 것이 그대의 의무인 줄로 여기지 말라(서신 4, 1898).

저녁 집회에 참석하였다. 분위기가 매우 온건하고 흥미 있는 집회였다. 집회를 마친 후에 투표에 관한 문제를 가지고 생각하며 서로 토의하였다. 제일 처음으로 제임스(남편)가 말하였고 그 다음에 J.N.앤드루스 형제가 말하였다. 그릇된 편을 반대하여 올바른 편에 유리한 영향을 끼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부절제한 사람들이 선출되도록 방임하여 위태로운 모험을 치르기보다는 절제하는 인물들을 찬성하여 우리 시(市)의 책임자들로 선출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였다. 데이빗 휴윗 형제는 지난 며칠 동안의 자기의 경험에 대하여 말하고 나서 투표하는 것이 옳다는 결정을 내렸다. 죠시아 하트 형제는 말을 썩 잘 하였다. 헨리 라이온 형제는 투표를 반대하였다. 그 외에 다른 형제들은 투표를 반대하지 않았으며 J.P.켈록 형제는 점차로 투표하는 편이 옳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모든 형제들 사이에 서로 경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아, 저들 모두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행동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날 부절제한 인물들이 공직을 맡아왔으며 비위를 맞추는 수단으로 투표하지 않는 안식일 준수자들의 태도를 인정한다는 뜻을 표현하였고 계속 안식일 준수자들이 투표하지 않는 퀘이커교도들처럼 저들의 노선을 굳게 지키기를 희망한다는 뜻을 말했다. 사단과 그의 악한 천사들은 매우 분주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이 지상에 자기의 일꾼들을 가지고 있다. 사단이 실망하게 되기를 나는 기도한다(엘렌G.화잇, 1859년 3월 6일 일요일의 일기).

338 많은 질문들에 대하여 답변하기에 앞서 우리들은 먼저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인들로서 홉과 담배를 재배하며 돼지를 사육하는 것보다 더욱 믿음에 일치한 생업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싶다.

우리들은 저들이 이 이상 더 홉과 담배를 재배하지 않고 저들이 가진 돼지의 수를 줄이기를 충고하는 바이다. 대부분의 견실한 신자들처럼 결국 저들도 그런 것들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것을 저들의 의무로 여겨야 할 것이다. 우리들은 이러한 견해를 아무에게도 강권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물며 “홉과 담배밭을 갈아부치고 돼지를 개들에게 먹이라”는 말에 대한 책임을 우리들이 질 수는 없는 것이다.

홉과 담배를 재배하며 돼지를 사육할 의향이 있는 자들에게 어떤 의미에서든지 이런 것들로 신자의 자격을 시험하는 기준을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싶은 동시에 현재 이러한 비참한 것들을 가지고 생계를 유지해나가는 자들에게는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만약 그대들이 막대한 손실이 없이 이것들에서 손을 뗄 수만 있다면, 건강 개혁의 문제로 많은 출판물들을 내며 구두(口頭)로 가르치고 있는 백성들의 믿음과 일치하기 위하여 그대들은 가급적 속히 이런 것들에서 손을 떼야 할 것이다”*(리뷰 앤드 헤랄드, 1868.3.24).

339 그대의 딸이 J 와 결혼한 것에 관하여 그대가 왜 고민하고 있는지 나는 알고 있다. 이 결혼은 그대의 찬성을 얻어 이루어진 것이며 그대의 딸도 그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다 알고 그를 남편으로 받아들인 이 마당에서 그대가 이 문제를 가지고 왜 번민해야 하는지 나는 그 까닭을 알 수 없다. 그대의 딸은 J 를 사랑하고 있으며 J 와 그대의 딸이 보다 경건한 신앙적인 경험을 얻고 서로 부족되는 점들을 보충시켜 주기 위하여 하나님의 섭리로 이 결혼이 성립된 듯하다. 그대의 딸은 J 에게 스스로 결혼 서약을 하였으니 그의 결혼 서약을 깬다는 것은 너무나도 지나치게 부당한 일이다…. 나는 J와 그의 전처 K 와의 관계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다. 그 K 가 J 의 관심의 대상이 될 만한 가치가 없는 여성임에 비하여 J가 K 를 사랑하는 정도는 매우 지극한 것이었다. 그는 K를 도와주기 위하여 자기의 전력을 다하였으며 자기의 아내로 거느리기 위하여 모든 가능한 방법을 모색하였다. 아무도 그가 한 것 이상으로 K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 간청하였으며 K 의 모순된 태도를 보여 주려고 노력하였으며 이혼하지 말라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K 는 이미 굳게 결심하였으며 제멋대로 완고하게 자기의 길을 택하기로 하였다. K 는 J 와 살고 있을 때에 가급적 남편이 가진 모든 돈을 긁어내려고 애썼다. 340 그러나 K 는 아내로서 마땅히 남편에게 보여야 할, 친절을 베풀지 않았다.

J 가 자기 아내를 버린 것이 아니다. K 가 그를 버렸고 떠났으며 다른 남자와 결혼하였다. 나는 성경 말씀 가운데서 그가 주님 안에서 재혼해서는 안 될 아무런 조건도 발견할 수 없다. 그에게는 한 여인의 애정을 받을 권리가 있다….

나는 이 새로운 결합이 방해를 받아야 할 아무런 이유를 발견할 수 없다. 한 남자를 그의 아내에게서 떨어지게 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이 결합에 있어서 분리시켜야 할 성서적인 근거가 하나도 없다. 그 남자가 그 여자를 떠난 것이 아니라 그 여자가 남자를 버린 것이다. K 와 정식으로 이혼하기까지 그는 재혼하지 않았다. J 는 K 와 이혼하게 될 때 그의 심적 고통은 대단한 것이었으며 K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기까지 J 는 재혼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선택한 배우자가 그에게 도움이 되는 배필이며 그도 또한 그 배필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배필임을 확신한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 그대의 딸을 그에게서 분리시켜야 할 아무런 조건을 발견할 수 없다. 그대가 나에게 요구한 권고에 응하여 나는 그대에게 마음놓고 하고 싶은 말을 기록하였다(서신 50, 1895).

이 경우에 있어서 L 형제가 자기 아내와 가족을 버리고 먼 곳으로 떠났는데 그는 자기의 장인이 처자를 돌보아 줄 것을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얼마 후에 남편의 처자 불법유기죄(不法遺棄罪)를 근거로 이혼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 이혼이 정식으로 성립되기 이전에 그는 여기에 권면을 받은 젊은 여성에게 자기의 애정을 표시하기 시작하였다.―편찬자

나는 L 과 관련된 그대의 문제를 깊이 생각하여 왔으나 과거에 말해 준 것 외에 다른 권면의 말을 해줄 것이 없다. 나는 그대가 L 과 결혼할 도덕적인 권리가 없으며 그에게도 역시 그대와 결혼할 도덕적인 권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기의 아내를 상당히 괴롭히고 격노케 한 이후에 아내에게서 떠나갔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같이 사는 동안 사랑하고 아끼겠다고 서약한 아내를 버린 것이었다. 아내가 정식으로 이혼 소송을 제기하기 이전에 법률상 자기 아내로 있는 동안 그는 아내에게서 3년 동안 떠나 있었으며 마음으로 완전히 아내를 버린 순간에 그대에게 자기의 사랑을 고백한 것이다. 그 남자가 법적으로 한 아내와 두 자녀를 거느린 가장으로 되어 있는 동안에 주로 그대와 그 기혼 남자 사이에 교제가 이루어짐으로 문제가 생긴 것이다.

341 비록 그의 아내가 정식으로 이혼한 처지에 있을지라도 그대들이 혼약을 맺어도 될 만한 성경상 관대한 허락의 말씀을 찾아볼 수 없다. 그에게 이러한 결과를 초래하게 한 근본적인 원인은 그가 자기 아내를 괴롭히고 격노케 한데서 빚어진 것이었으며 나 자신이 아무리 유리하게 보아주고 싶어도 그가 감히 어떻게 그대에게 대한 관심을, 혹은 그대가 그에게 대한 관심을 표명할 법적인 권리를 어떻게 행사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나는 그대가 그러한 일을 한 순간이나마 생각할 수 있었다는 것과 그러한 환경과 처지에서 자기 처자를 버린 기혼 남자에게 그대의 애정을 둘 수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나는 그대가 마치 책임있는 지위에 있는 우리 형제들 앞에서처럼 이 문제에 관한 그대의 생각과 계획들을 솔직히 토론하고 저들의 권면을 들으며 하나님의 율법으로 그대가 범한 오류를 지적받도록 충고하는 바이다. 그대들은 다 같이 비록 마음으로나마 결혼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가짐으로 율법을 범한 것이다. 그대는 이러한 제의를 애당초 물리쳐야 할 것이었다(서신 14, 1895).

재혼을 합법화시키기 위해 오래전 성경상 타당한 이혼 사유 없이 첫 아내와 그의 아들이 이혼했다는 이유로 다년간 살아온 둘째 아내와 그의 아들을 이혼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었던 한 아버지에게 보낸 권면 ― 편찬자 나는 방금 그대가 M 씨에 관하여 설명한 편지를 받아 읽어보았다. 나도 역시 그대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같은 관점에서 그 문제를 생각하고 있으며 M 씨의 아버지가 고집하는 뜻에 따라서 일을 결정한다면 그야말로 잔인하고 악독한 일이 될 것이다…. M 씨의 경우 그가 현재의 아내를 버린다고 해서 다소나마 개선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지 않는다. 문제의 다른 여인에게로 간다고 해서 사정이 나아질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그 아버지의 태도를 매우 별난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으며 그의 증언들은 하나님의 날을 기꺼이 맞이할 수 없는 성질의 것임이 틀림없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정신과 행위를 회개할 필요가 있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문제를 들쑤셔 놓는 것을 중단하는 일이다…. 그 아버지나 M 형제는 먼저 저들 자신을 위하여 부지런히 해야 할 일이 있다. 저들 두 사람은 똑같이 하나님의 회개케 하시는 능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 주님께서 이들 불쌍한 영혼들이 저희 자신의 품성 가운데 있는 흠과 점을 지워버릴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바라며 저들의 그릇됨을 회개하기를 바란다. M 씨의 문제를 주님께 맡기라.

342 나는 그 아버지의 일을 생각할 때마다 유감스러운 감정을 금할 길이 없다. 그의 처신은 도무지 남의 도움이나 간섭을 받을 수 없는 그런 형편에 놓여있으며 설상가상으로 난관에 난관을 스스로 거듭 쌓고 있다. 그러나 나는 주님께서 모든 사정을 이해하시며, 만일 M 씨가 전심으로 주님을 찾는다면 그가 주님을 만나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그가 자기의 최선을 다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용서하시고 받아주실 것이다.

아, 우리가 가장 절망적인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잘 알아보시고 이해하시며 도와주실 주님을 알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고귀한 일인가. 그러나 하나님의 안목으로 보실 때에 저들과 똑같은 정죄의 상태에 놓여 있는 사람 M 씨를 멸망과 영원한 죽음으로 몰아넣으려는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제에게 하나님의 견책하심이 임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저들은 M 씨를 절망 속으로 몰아넣기 위하여 그를 낙담케 하고 실망케 하는 언변의 재주를 부릴 것이다.

M 씨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하며 모든 겸손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며 그의 의지할 데 없는 영혼을 세상 죄를 짊어지신 위대하신 주님께 맡겨야 한다. 나는 그 아버지나 그 아들에게 단 한 번도 편지를 쓴적이 없다. 나는 딱한 처지에 있는 M 씨가 문제를 바로잡도록 하기 위하여 무슨 일이든지 기꺼이 도와주고 싶다. 그러나 현재의 여러 가지 사정을 감안해 볼 때 누군가의 명예를 크게 훼손시키는 일이 없이는 일을 바로잡을 수 없게 되어 있다(서신 175, 1901).

343 어떤 가족이든지 그리스도께 저들 자신을 바치고 진리를 듣고 순종하면 저들은 다 같이 한 가족의 자녀들이 된다. 무식한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 부자와 가난한 사람, 이방인과 노예들 혹은 백인과 흑인, 이 모든 사람들의 영혼을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속량을 치르셨다. 만일 저들이 주님을 믿는다면 주님의 정결케 하시는 피가 저들에게 뿌려질 것이다. 생명책에는 백인의 이름 옆에 흑인의 이름도 적히게 될 것이다. 모두가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 문벌, 지위, 국적 혹은 피부색이 인간을 고상하게 하거나 저속하게 할 수 없다. 품성이 그 인간의 가치를 결정한다. 만일 홍인종(아메리칸 인디안), 중국인 또는 아프리카인이 그의 마음을 순종과 믿음으로 하나님께 바친다면 예수님께서는 그의 피부색에 관계없이 그를 사랑하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를 당신께서 극진히 사랑하시는 형제로 부르실 것이다. (원고 6, 1891).

우리는 한 형제이다. 어떤 이득이나 손실이 있든지 간에 우리는 하나님과 구세주의 목전에서 고상하고 용감하게 행동을 취해야 한다. 우리는 백인이나 흑인이나 간에 모든 인간이 자유롭고 동등하다는 원칙을 받아들인 그리스도인들로서 이 원칙을 고수해야 하며 세상 사람들과 하늘의 지적 존재자들 앞에서 비겁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존경하는 마음으로 백인에게 대하는 것과 똑같이 흑인에게도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해 주어야 한다. 우리들이 교훈과 모본으로 이렇게 할 수 있을 때에 다른 영혼들을 믿음의 길로 인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백인종과 흑인종 사이의 결혼은 반대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저희 소생이 불리한 입장에 처하도록 할 권리가 저들 자신에게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저들에게는 자기 자식들에게 생득권(生得權)으로써 굴욕적인 생애에 복종해야 할 조건을 물려줄 권리가 없다. 이러한 혼혈(混血) 결혼에서 태어난 자식들은 저희에게 평생에 따를 상속을 물려준 부모에 대하여 비통한 감정을 품게 된다. 344 무엇보다도 이러한 이유에서 백인종과 흑인종 사이에 결혼이 있어서는 안 된다(원고 7, 1896).

사랑하는 친구에게: 백인, 혹은 그리스도인 청년들 사이에 혼혈 결혼을 권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관한 질문에 대답하기 위하여 나는 오래전에 이 문제가 생겼을 때 주님께서 나에게 보여 주신 빛을 말해 주려고 하는데 주님께서는 이러한 결혼은 분명히 투쟁과 혼란을 일으킬 것이기 때문에 성립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나는 항상 똑같은 권면을 하여 왔다. 이런 성격의 결혼은 결코 우리 신자들 사이에 격려해서는 안 될 것이다. 흑인 형제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훌륭한 흑인 자매와 결혼해야 한다. 흑인 형제와 결혼할 생각을 가지고 있는 백인 자매는 주님께서 이런 제도를 찬성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하여 결혼을 거부해야 한다.

이런 문제로 말미암아 일어날 분쟁 때문에 상실하게 될 시간이야말로 너무나 귀하고 아까운 시간들이다. 이런 종류의 문제들로 말미암아 우리 목사들이 목회 사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한 결혼 관계는 환난과 큰 장애를 일으킬 것이다. 사회 발전이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서신 36, 1912).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이 어떤 인종에 속하든지 상관치 않으시고 깊은 동정심으로 바라보신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창 17:26)셨다. 구주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다 형제니라”(마 23:8)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모두의 아버지이시며 우리들 각자는 형제를 지키는 자이다(리뷰 앤드 헤랄드, 1896.1.21).

345 병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문제에 관해서 여러 가지 복잡한 개념들이 조장되어 왔다. 어떤 사람들은 “병을 위하여 기도를 받던 사람은 믿음으로 나가야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어떤 치료제든지 사용해서는 안 된다. 만약 그가 병원에 입원해 있다면 당장 그 자리를 떠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분명히 이러한 개념들이 그릇된 것임을 알고 있으며 만약 신자들이 이런 개념을 받아들일 때에 온갖 죄악의 길로 이끌리게 될 것이다.

이와 반면에 나는 기도의 효능에 대한 신념을 약하게 하는 뜻으로 이러한 말을 한다는 오해를 받고 싶지 않다.

믿음의 도리는 오만한 길의 바로 곁에 놓여 있다. 사단은 우리를 거짓된 길로 인도하기 위하여 항상 노력하고 있다. 또한 사단은 무엇이 믿음을 구성하는 요소인지에 대하여 오해할 때 혼란과 실망을 낳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사단은 남녀들을 설득하여 거짓된 전제를 가지고 추리하도록 설득할 수 있을 때에 매우 기뻐한다.

나는 오직 한 가지 방법으로만 병자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다. 나는 이렇게 기도한다. “주님, 병자를 낫게 하는 것이 당신의 섭리에 부합되고 당신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며 병을 앓고 있는 자에게 유익된 것일진대 이 병자를 고쳐주시기를 기도하나이다. 우리 뜻대로 마옵시고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주옵소서.”

346 느헤미야는 주님 앞에서 통곡하여 울며 기도하는 것으로 자기의 의무를 다한 것처럼 생각지 않았다. 그는 기도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탄원과 노력을 기울이면서 동시에 일하였다.

합리적인 치료제들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것은 믿음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원고 31, 1911).

하나님의 이적들은 항상 이적의 외형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지 않다. 때때로 이적들이 자연적인 사건의 과정처럼 보이게 이루어질 때가 있다. 우리들이 병자를 위하여 기도할 때에 병자를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미칠 수 있는 한계내에 있는 치료제들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을 수 있다. 물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은 가장 효과적인 치료제가 된다. 물을 지능적으로 사용하였을 때에 좋은 결과들이 나타나 보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지능을 주셨으며 우리가 건강에 도움이 되는 신령한 축복들을 가장 적절하게 이용하기를 바라신다. 우리들은 굶주리는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세요 하고 하나님께 요청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이 굶주리는 자에게 도움을 주기 위하여 주님의 조수로서 활약해야 한다. 우리들은 위험에 빠진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우리가 미칠 수 있는 한계내에 있는 모든 하나님의 축복들을 활용해야 한다.

하나님의 섭리에 일치하게 자연계에 속한 방편들을 사용할 때 초자연적인 결과를 거둘 수 있다. 우리들은 기적을 바라지만 주님께서는 인간에게 단순한 치료제들을 지시하신다. 우리는 온 세상에 무서운 세력으로 퍼지고 있는 바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시 91:6)에서 보호해 달라고 간구해야 할 뿐만 아니라 건강과 생명의 법칙을 지킴으로써 하나님과 협력해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한 이후에 우리는 건강과 체력을 위하여 계속해서 믿음으로 간구해야 한다. 우리는 신체의 건강을 보존케 하는 음식물을 먹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당신께서 대신 해주시겠다는 격려의 말씀을 해주신 적이 없다. 자연계의 법칙들을 준수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등한히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빌 2:12, 13)신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지 않는 한 자연계의 법칙을 무시할 수 없다. 347 우리는 제 때에 사용하기만 하면 기적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치료제들, 곧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사용하라고 준비해 주신 단순한 치료제들을 거절하면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기적을 행하시도록 기대할 수 없다.

그러므로 기도하고 믿어야 하며 또한 노력해야 한다(서신 66, 1901).

목사인 _____가 관련된 한 가지 사례가 계시의 장면으로서 내 앞에 전개되었다. 그 목사는 병을 앓고 있는 한 자매를 위해서 기도해 주기 위하여 8마일 거리가 되는 그녀의 거처를 찾아갔는데 그 때 그 자매는 야고보서의 교훈이 주는 명령에 따라서 목사의 방문을 요청하였다. 그는 가서 열렬히 기도하였으며 그 자매도 기도하였다. 그 자매는 그 목사가 하나님의 사람이며 신앙적인 인물로 믿었다. 의사들은 그 여인이 폐병으로 죽을 것이라고 하면서 포기하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자매는 기도한 즉시로 병상에서 일어났으며 근 10년 동안 그녀가 해보지 못한 일을 해보기 위하여 부엌에 들어가 저녁식사를 준비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 목사의 인격이 매우 비열하였으며 그의 생애는 타락한 상태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큰 일을 이루어 놓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모든 영광을 자기 자신에게 돌렸던 것이다.

그 후에 위에 말한 내용의 사건이 또다시 내 앞에 계시의 광경으로 전개되었다. 나는 그 여인이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임을 알게 되었는데 그가 고침을 받은 것은 자신의 믿음 때문이었다. 나는 저들이 기도하는 광경을 보았다. 한 기도는 몽롱하고 암담하며 아래 쪽으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또 하나의 다른 기도는 빛과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점들로 섞여 있었으며 예수님을 향하여 올라갔고 주님께서는 그 기도를 감미로운 향기처럼 하늘 아버지께 상달케 하였다. 그 때 빛의 한 광채가 즉시로 병자에게 비쳤으며 그 빛의 영향을 받아 그 여인은 소생하여 힘을 얻게 되었다. 천사는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참되고 성실한 믿음의 모든 입자(粒子)들을 한데 모으시며 다이아몬드를 수집하는 것처럼 소중하게 모아서 분명히 보상과 응답을 해주시고 하나님께서는 보배로운 믿음을 악에서 구별해 내실 것이라고 하였다. 비록 하나님께서는 위선자와 죄인을 오래 참고 내버려두시나 결국에 그런 자들을 찾아내실 것이다. 그러한 위선자가 푸른 월계수와 같은 정직한 영혼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는지는 모르나 때가 이를 때에 그의 어리석음이 드러나게 될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혼란이 빚어질 것이다(서신 2, 1851).

우리들은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의 마음 가운데 병든 인간에 대한 한 가지 문제를 깊이 생각케 하시고 저들의 마음 가운데 영혼에서 우러나오는 간절한 탄원을 하게 하시는 몇 가지 사례들을 알고 있다. 348 그리하여 저들은 병 회복을 위하여 가장 열렬한 마음으로 기도하게 되었고 저들 자신에게 허락의 말씀을 주장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러나 결국에 그 병자는 죽게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다보시는 주님께서는 만약 당신의 능력으로 병자를 고치시는 이적을 행하실 경우 당신의 신령한 뜻이 오해받게 될 것을 아셨다.

때때로 병의 회복이 그 환자의 친구들이나 교회를 위하여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고 조잡한 열광주의와 광신주의로 이끄는 결과를 낳게 하며 어떤 사람들에게는 감정적인 충동이 마치 우리 신앙의 기초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한다. 유일하게 안전한 길은 기록된 말씀을 따라가는 길뿐이다. 그대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이후에는 병자의 문제를 주님의 손에 맡기라. 죽음이 주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주님께서는 여러달 혹은 여러 해 동안 지루하게 병을 끌며 신음하던 자들이 죽는 것을 허락하실 때도 있다. 주님께서는 병으로 신음하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휴식을 주는 것을 가장 적합하게 보실 때가 있다(원고 67, 1899).

349 N 형제 자매여, 나는 주님의 이름으로 그대들이 명심하기를 부탁하는바, 정신 치료의 과학에 관한 그대들의 주장을 바로잡지 못하고 그대들 자신의 마음이 회개하고 변화해야 할 것에 대한 결정적인 필요성을 깨닫지 못하는 한, 그대들은 거치는 돌들이 될 것이며 천사들과 사람들 앞에서 불쌍한 구경거리가 될 것이다.

진리로 말미암아 그대들이 받은 감화력이란 너무나 미력한 것이었다. 인간이 아무리 선하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의 정신을 자기 정신의 지배 하에 두려고 영향력을 끼치려 노력을 하는 것은 누구에게 있어서나 위험스러운 일이다. 그대들이 주장하는 정신 치료란 사단에게 속하는 과학임을 분명히 말해 줄 수 있다. 그대들은 이미 그대들 자신의 장래의 경험을 크게 위태롭게 할 만큼 깊이 빠져 있다. 그대들이 맨 처음에 이것을 받아들인 때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큰 해를 끼치는 상태에서 자라왔다. 만약 그대들이 이러한 과학을 구상케 한 배후 조종자가 사단임을 깨닫지 못하는 한 그대들이 그런 과학의 근본적인 사상이나 지엽적인 이론에서 떨어져버리라는 생각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닐 것이다. 이러한 과학의 근본적인 철학은 사단의 기만적인 걸작품에서 나온 것이다. 그대들 자신의 영혼을 위하여 이런 계열의 모든 것으로부터 손을 끊어야 한다. 350 그대들이 이런 과학에 관련된 개념을 다른 사람의 정신에 주입시키려고 할 때마다 그대들은 그 사람의 정신을 지배하게되고 사단의 터전에 들어서는 것이며 결정적으로 그와 협력하게 되는 것이다. 그대들 자신의 영혼을 위하여 원수 마귀의 이러한 올무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대들은 과거로부터 관심을 두어온 이런 과학을 연구해서는 안 된다. 이런 과학을 연구하는 것은 마치 선악과의 열매를 따먹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이나 다른 어떤 인간도 이러한 과학을 배우거나 가르치는 것을 금하신다. 그대들이 과거에 이러한 과학과 일종의 관련을 맺어왔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N 형제가 위생병원의 지도적인 입장에 있는 의사로서 크게 모순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충분히 증거하고도 남음이 있다….

정신 치료의 과학을 다루어오면서 그대들은 하나님께서 만지지 말라고 금하신 선악과의 열매를 따먹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지금 이 때야말로 그대들이 예수님을 바라보기 시작해야 할 때이며 주님의 품성을 바라봄으로 거룩한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기회이다.

그대들 자신을 사단의 매개물들이 작용하는 과학, 곧 최면술이 풍기는 모든 향기에서 멀리 떨어져 있게 하라(서신 20, 1902).

한때 여러 해 동안 사업의 수익성을 고려하여 상업적인 목적의 일을 맡아 우리 출판 기관에서 인쇄하여 준 적이 있었다. 그 때에 다른 여러 가지 재료들과 함께 우리 사업에 해를 끼칠 성격을 띤 책을 출판하게 된 일이 있었다. 이러한 슬픈 경험에 대하여 7T.161-168에 참고가 되는 권면의 말씀을 주셨고 여기에 실린 내용은 특히 최면술에 대한 책을 출판하는 문제에 관하여 취급한 것이다.―편찬자 기관의 총무들이 최면술의 주제를 다룬 서적들을 출판함으로써 사단의 매개물이 되도록 찬성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퇴폐적인 일들을 기관에 끌어들여서 될 것인가! 사단과 그의 부하들은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출판 기관들이 원수의 기만술을 용인할 때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축복을 부어주실 수 있을까! 주님께 거룩히 바쳐야 하는 것처럼 백성들 앞에서 거룩히 보존되어 온 기관들이 교역자들로 금지된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따먹게 하는 학교들이 되게 할 수 있을까! 우리들이 사단을 도와서 그가 에덴에서 했듯이 그의 가증한 과학을 진리의 성 안에 기탁하도록 비밀 통로를 열어주어서 될 것인가? 351 사업의 중심 인물들이 진리와 오류를 식별할 수 없는 사람들인가! 그들은 그릇된 일에 감화력을 끼침으로 어떤 두려운 결과가 이를 것인지에 대하여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사람들인가?

만약 그대들이 이런 종류의 사업으로 수백만 불을 벌 수 있다고 할지라도 사단에게 속한 거짓말들을 선전하며 세상 사람들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출판 기관들이 이런 오류들을 포함한 서적들을 출판하고 있다는 말을 온 세상에 퍼뜨리게 함으로써 끼치게 될 두려운 손실에 비교해 볼 때 무슨 가치가 있을 것인가?

그대들이 소유하고 있는 인쇄기들이 마귀의 거짓말들을 출판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각성하라. 진리를 아는 사람들은 현명한 사람들처럼 행동하여야 하며 저들은 전적으로 진리와 의의 편으로 기울어지는 감화력을 끼쳐야 할 것이다(서신 140, 1901.1901.10.16, 우리 출판 기관의 총무들에게 말씀하심).

오늘날 회의주의와 불신의 사상이 과학이라는 의상을 걸치고 나타나는 이때에 우리들은 백방으로 경계하여야 한다. 대적 마귀는 이런 방법을 통해서 수많은 인간들을 속이고 있으며 자기의 뜻을 따르게 하는 포로들이 되게 한다. 소위 과학이라고 일컫는 분야 중에서도 인간의 정신에 관련된 과학들을 이용하여 사단이 노리는 결과는 실로 놀라운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사단은 뱀처럼 살그머니 기어들어와 하나님의 사업을 타락케 한다.

과학 분야를 통한 사단의 이러한 침투는 교묘하게 꾸며진 것이다. 골상학, 심리학, 최면술 등의 경로를 통하여 사단은 이 세대의 인간들에게 더욱 직집적으로 접근하고 있으며 은혜의 시기가 끝날 무렵에 나타낼 그의 독특한 능력을 가지고 역사하게 될 것이다. 허다한 인간들은 이러한 방법으로 중독되었으며 불신에 이르게 되었다. 한 인간의 정신이 다른 인간의 정신에 얼마나 쉽사리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를 너무도 확실히 믿고 있는 사단은 모든 유리한 기회를 엿보고 있으며 스스로 환심을 사기 위하여 사방 팔방으로 활약하고 있다. 이러한 과학 분야에서 연구하는 자들은 저들 자신이 확인할 수 있는 위대하고 선한 사업들을 이러한 과학의 힘을 빌어서 행함으로 말미암아 이런 것들을 극구 찬양하면서도 저들 자신은 자기가 품고 있는 악의 세력에 대하여 너무도 모르고 있다. 352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이 세력이야말로 저들이 온갖 표징과 거짓된 기사(奇事)를 행할 수 있는 세력이며 이 세력은 온갖 불의한 기만술로 활약할 것이다. 사랑하는 독자여,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에 투쟁이 아직 종결되지 않았으므로 이러한 과학 분야의 영향에 대하여 주의하라….

기도를 태만히 할 때에 사람들은 저희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게 되며 유혹에 이르는 문을 개방하게 된다. 과학적인 연구로 말미암아 상상력이 사로잡히며 저들 자신의 능력을 의지함으로 인간의 칭찬을 받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간의 정신을 다루는 과학들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한 과학들은 학문으로써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다.* 그러나 사단은 영혼들을 기만하고 멸망시키기 위하여 자신의 강력한 매개물로써 이런 과학들을 이용할 것이다. 사단의 간계들이 마치 하늘에서 주신 것처럼 인정되며 그는 합당한 경배를 받는다. 골상학과 동물 최면술로 큰 혜택을 받는 것처럼 보이는 이세상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강신술의 기초가 놓여지게 된다(영문 시조, 1881.11.6).

사단은 때때로 한 인간의 정신이 다른 인간의 정신에 끼칠 수 있는 능력 가운데 악의 강한 매개물이 있음을 발견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 세력을 매혹적인 것이어서 그 영향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세력을 의식하지 못할 때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이 사단의 기만적인 세력권 안에 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이 악에 대하여 경고하라는 명령을 나에게 주셨다. 원수는 괴수(魁首)로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꾸준히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을 때에 저들은 올무에 걸려 잡히게 될 것이다.

사단은 수천년 동안 인간의 정신 가운데 있는 온갖 요소들을 실험하여 왔으며 그는 그 분야에 대해서 너무도 잘 알게 되었다. 이 마지막 날에 있어서 사단은 그의 음험한 활동을 통해서 인간의 정신을 자기 자신의 정신과 연결지어 가고 있으며 자기 자신의 사상에 물들게 하고 있다. 353 사단은 이 일을 감쪽같이 속이는 방법으로 행하기 때문에 그의 지도를 받는 자들은 사단의 뜻에 의하여 이끌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게 된다. 대기만자는 남녀 인간들이 자기의 음성 외에 다른 아무런 음성을 듣지 못하도록 저들의 정신을 혼란케 하려고 한다.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당신 앞에 직면한 시련과 고통의 시기를 알려주었을 때 베드로는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 16:22)라고 대답하였다. 그 때에 구주께서는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마 16:23)고 명령하셨다. 사단은 베드로를 통하여 말하고 있었으며 베드로가 유혹자의 한 역할을 담당하게 하였던 것이다. 베드로는 사단의 임재를 전혀 생각조차 하지 못했으나 그리스도께서는 기만자의 정체를 간파할 수 있었으며 주님께서 베드로를 꾸짖는 가운데 진짜 원수인 마귀에게 말씀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말씀하시면서 가룟 유다에 관하여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요 6:70)고 말씀하셨다. 때때로 구주께서는 지상봉사의 생애 가운데서 사단의 더러운 영이 인간을 사로잡을 때 인간의 형체로 나타나게 되는 그의 대적을 만나셨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사단은 인간의 정신을 점령해 버린다. 나 자신이 하나님의 사업에 종사하면서 여러 번에 걸쳐서 사단에게 사로잡힌 사람들을 만나보았으며 나는 주님의 이름으로 악한 영을 꾸짖었다.

사단이 인간의 정신을 점령하는 것은 강제로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잠들어 있을 때에 원수가 교회 안에 가라지를 심어 놓는다. 사람들이 영적으로 잠자고 있을 때에 원수는 그의 죄악적인 사업을 성취시킨다. 사단은 자기 부하가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마 13:19) 그는 마음에 뿌려진 좋은 씨를 빼앗아간다. 남녀들이 이런 상태에 빠져 있을 때, 즉 저들의 영적 생애가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을 때 사단은 저들이 자기의 정신으로 물들게 할 수 있으며 저들은 자기의 일을 하도록 유도시킬 수 있다….

나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모든 행동을 생애에서 제거하기를 간청하는 바이다. 우리들은 지구 역사의 종말에 점점 가까이 이르고 있다. 전쟁은 나날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서신 244, 1907).

354 나는 새벽 2시까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밤 시간에 계시 가운데서 나는 회의에 참석하고 있었다. 나는 몇 가족들에게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방법들을 이용하여 저희 자녀들을 구원하려면 도회지에서 떠나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늦장을 부리면서 결정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

자비의 천사들은 롯과 그의 아내와 딸들을 저의 손으로 붙잡고 황급히 서둘러 도성을 빠져나왔다. 만약 롯이 주님께서 그에게 요청한 만큼 서둘렀다면 그의 아내는 소금 기둥이 되지 않았을 것이었다. 롯에게는 지나치게 우물쭈물 하는 기질이 있었다. 우리들은 그와 같이 되어서는 안 된다. 롯에게 소돔을 떠나라고 경고하신 같은 음성은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후 6:17)고 명령하신다. 이 경고에 순종하는 자들은 피난처를 찾게 될 것이다. 각자는 스스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자기 가족을 구원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각자는 사업을 위하여 대기하는 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단계적으로 다음에 행할 일을 나타내 보여 주실 것이다.

사도 바울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2, 13). 롯은 원치 않는 마음으로 마지못해 발걸음을 옮기면서 길을 행하였다. 355 그는 너무나 오랫동안 악한 자들과 사귀어왔으므로 자기의 아내가 영원한 소금 기둥으로 들판에 서게 되는 것을 보기까지 자기의 위기를 깨달을 수 없었다(리뷰 앤드 헤랄드, 1900.12.11).

자녀들이 멸망받기에 알맞는 도시의 유혹에 이 이상 더 노출되지 않게 하라.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도시를 떠나라는 경고와 권면의 말씀을 주셨다. 그러므로 이러한 계제에, 도시에 아무런 투자를 하지않도록 해야 한다. 부모들이여, 그대들의 자녀들의 영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그대들은 자신의 가족들이 변화된 몸으로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는가? 그대들은 자기 가족들이 하늘 임금의 왕족이 되기 위한 준비를 시키고 있는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막 8:36). 그대들의 자녀들의 영혼의 가치와 비교해 볼 때 이 세상의 평안과 안락과 편의가 얼마나 무가치한 것인가! (원고 76, 1905).

모든 부모들은 저희 자녀들을 교육하는 것이 영혼들을 구원하는 중대한 사업임을 깨달아야 한다. 시골에서는 생활에 필요한 일들을 할 때에 풍부하고 유익된 운동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며 신경과 근육을 발달시키므로 육체적인 건강을 얻을 수 있다. 우리 자녀들의 교육을 위하여 “도시들을 떠나라”는 것이 나의 기별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시조에게 땅을 갈고 저희 동산을 돌보라고 가르치신 것은 참된 교육의 수단으로서 하신 것이었다. 그러나 주님의 요구에 대한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죄가 들어온 이후에 이 땅은 저주를 받아 잡초와 엉겅퀴가 무성하게 자라 땅을 경작하는 일이 크게 증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노동 자체만은 죄 때문에 주신 것은 아니었다. 당신 자신이 위대한 군주가 되시는 주님께서는 땅을 가는 일을 축복으로 주셨다.

남녀들을 도시로 이끌어 자기가 연구한 모든 신기한 것들과 오락과 온갖 흥분의 재료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는 것이 사단의 목적이다. 오늘날 이 지상의 도시들은 홍수 이전의 도시들처럼 변해 가고 있다….

누구에게 경고해야 할 것인가? 우리들은 또다시 “도시들을 떠나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다. 356 그대들이 산과 계곡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해서 그것을 큰 손실인 것처럼 생각지 말라. 그대들이 하나님과 홀로 있을 수 있는 은거지를 찾아 거룩한 섭리와 길을 배우도록 하라….

나는 우리 신자들이 영성을 구하는 것을 저희의 필생의 사업으로 삼도록 권고하는 바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문 앞에 서 계신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우리 신자들에게 “그대들이 도시들을 떠나 시골로 이사하라는 부르심을 받을 때에 그것을 큰 손실로 여기지 마라. 축복을 붙잡으려는 자들을 위하여 여기저기에 풍성한 축복들이 기다리고 있다. 자연계의 광경과 창조주의 역사하심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피조물들을 연구함으로써 그대들은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과 같은 거룩한 형상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다”(원고 85, 1908).

나는 이러한 꽃들을 바라볼 때마다 에덴 동산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꽃들은 우리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사는 우리들에게 비록 작게나마 에덴 동산의 면모를 맛보게 하기 위하여 주신 것이다.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것들 가운데 우리들이 기쁨을 누리게 되기를 바라시며 아름다운 사물들을 통하여 장차 주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행하실 것에 대한 표현임을 우리들이 깨닫기 바라신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여유가 있는 대지에서 생활하기를 바라신다. 당신의 백성들은 도시에 운집하여서는 안 된다. 주님께서는 저들이 가족을 거느리고 도시를 떠나 영생을 위하여 보다 철저한 준비를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신다. 잠시 후에 저들은 도시들을 떠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도시들은 온갖 종류의 죄악으로 가득 차 있으며 동맹 파업, 살인자들 및 자살 행위로 가득 차 있다. 사단은 이러한 일에 가담하고 있으며 파괴하는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고 있다. 사단의 영향권내에 있는 인간들은 다만 죽이는 재미로 살인하며 저들은 이러한 일들을 더욱 빈번히 행할 것이다….

만약 우리 자신이 스스로 불의한 감화력 가운데 살고 있다면 우리가 어떻게 자신의 그릇된 행위의 결과들을 취소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이적을 행하여 주시도록 기대할 수 있겠는가? 결코 그럴 수 없다. 가급적 하루 속히 도시들을 떠나서 그대들이 전원을 가질 수 있고 자녀들은 꽃들이 자라는 광경을 바라볼 수 있으며 그 가운데서 단순성과 순결성에 대한 교훈들을 배울 수 있는 작은 땅을 사도록 하라(대총회 회보, 1903.3.30).

357 “도시들을 떠나라.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데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생병원들과 학교들과 사무실들을 세우라”는 지시의 말씀은 아직도 들려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도시에 남아 있고 싶어 할 것이나 모든 사람들이 죄악의 장면들과 소음을 피하여 이사하고 싶은 때가 머지않아 올 것이며 도시들의 공기마저 오염된 듯이 보일 정도로 죄악과 부패상이 증가할 것이다(서신 26, 1907년).

하나님께서는 우리 학교들과 출판사들과 위생병원들을 도시 밖에 세움으로써 청년들이 진리를 가장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게 하라는 경고의 말씀을 거듭거듭 주셨다. 아무도 도시 안에 큰 사업체를 세우려는 목적을 입증하기 위하여 증언들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이 문제에 관하여 주신 빛을 무력하게 하는 어떤 일도 모색하지 말 것이다.

사람들은 주님께서 당신의 종들로 행하게 할 바로 그 운동을 대항하기 위하여 일어나 사악한 일들을 말할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때야말로 남녀들이 원인과 결과를 따져보아야 할 때이다. 도시들 가운데 큰 사업체들을 세우기에는 너무나 늦었다. 그 시기는 벌써 지난 것이다. 젊은 남녀들을 시골에서 도시로 불러 내기에는 너무나 때가 늦었다. 믿음을 가진 자들이 우리 신앙가운데 살기에는 매우 어려운 사정들이 도시들 가운데서 생겨나고 있다. 그러므로 도시 안에 큰 사업체를 세우기 위하여 자금을 투자하는 일은 큰 실수를 범하는 것이 될 것이다(원고 76, 1905).

가능한 한 우리 기관들은 도시에서 떨어진 위치에 세워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기관들을 위하여 교역자들이 있어야 함으로 만약 이런 기관들을 도시 안에 세운다면 우리 신자들의 가족들 역시 그 기관들 근처에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백성들의 지속적인 소동과 혼란이 있는 도시들 안에서 살도록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서두르며 급히 돌진하고 큰 잡음을 내는 일 등으로 말미암아 도시의 전체적인 조직이 문란케 되므로 저희 자녀들은 이러한 것들을 모면케 해야 할 것이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땅을 구입하여 저들이 스스로 과목과 채소를 재배하며 저희 자녀들이 자연계 속에서 하나님의 피조물들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시골로 이사하기를 바라신다. 358 그대들의 가족들을 거느리고 도시에서 멀리 떠나라는 것이 나의 기별이다.

사람들이 듣든지 듣지 않든지 간에 진리는 선포되어야 한다. 도시들 가운데는 시험거리로 가득 차 있다. 가급적 우리 청년들을 이러한 오염에서 멀리 떨어지게 하는 방법으로 우리의 사업을 계획해야 한다.

변경에서 도시에 들어가 일하는 형식을 취해야 한다. “도시들을 경고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렇다. 도시 안에서 살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로 말미암아 경고될 것이 아니라 도시 안에 사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저들에게 이 세상에 임할 일에 대하여 경고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하나님의 사자는 말하였다(서신 182.1902).

주님께서는 거듭 반복하여 우리에게 지시해 주셨는데 우리는 변두리를 중심으로 도시를 상대해서 일을 해야 한다. 우리들은 이 도시들 가운데 하나님을 위한 기념비로서 예배드리는 집들을 세워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서적들을 출판하는 기관과 병자를 치료하는 기관과 교역자들을 훈련시키는 기관들은 도시 밖에 세워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 청년들이 도시 생활의 유혹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은 매우 중대한 일이다.

워싱턴과 내쉬빌에서 집회 장소들을 사들인 후 재헌당식을 올리게 된 것과 변두리에 있는 센터로서 도심지에서 떨어진 곳에 출판 기관들이나 위생병원들을 세우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지시에 따르기 위한 데서였다. 과거에 우리 출판 기관들과 위생병원들을 시골로 옮긴 계획에 따라서 현재 영국에서도 런던에 있는 출판 기관과 양성학교를 옮기려는 계획을 따르게 된 것이다. 이런 문제에 관련하여 우리 형제들을 도와주고 그 외에 다른 중요한 사업체들을 견고한 기초 위에 세워서 든든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우리는 현재 하나님께서 밝혀주신 섭리를 따라 전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특별한 증언, B, No.8.7, 8페이지 1907).

359 우리들은 염가로 시골의 땅을 매입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때에 뱀처럼 지혜로워야 하고 비둘기처럼 순해야 한다. 우리들은 변두리에 있는 센터에서 도시로 들어가 일하는 형식을 취해야 한다(특별한 증언, B, No.14.7페이지 1902).

우리는 하나님을 존경하지 않는 자들과 억지로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될 위치에 우리 자신이 처해 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일요일 준수에 관한 위기가 불원간에 임할 것이다.

일요일을 지키는 무리들은 저들 스스로 강경하게 거짓된 주장을 고집하고 있으며 이것은 곧 주님의 안식일을 지키기로 결심한 자들에게 대하여 압박이 가해질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안식일 계명을 철저히 지킬 수 있는 위치에 우리들 자신을 두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 20:9, 10)고 하신다. 그리고 우리는 자기 자신이나 우리 자녀들이 안식일을 지키기에 힘든 입장에 놓여 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만약 우리들이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서 도시에서 떨어진 위치에 거처를 마련할 수 있다면 주님께서 우리가 이 일을 하기에 가능하도록 도우실 것이다. 우리 앞에 환난의 때가 놓여 있다(원고 99, 1908).

왕들에게 부여된 권세가 선정을 베풀게 되는 것은 왕위의 책임을 진 자가 거룩한 명령을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세가 죄악과 더불어 동맹을 제휴하게 될 때에 이것은 타락한 세력들과 힘을 합치게 되는 것이며 그 권세는 주님의 소유에 속하는 자들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활약할 것이다. 개신교 세계는 하나님의 안식일이 있어야 할 자리에 하나의 우상적인 안식일을 세워놓고 법왕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도시를 떠나 저들 자신이 땅을 경작하여 저희가 먹을 양식을 재배할 수 있는 시골로 이사해야 될 필요성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저들은 그런 곳에서 자녀들에게 단순하고 건전한 습관들을 길러줄 수 있다. 나는 위기를 위한 준비로써 모든 일들을 서둘러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깨달았다(서신 90, 1897).

360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실 때에 온 가족들이 도시에서 떠나야 할 그러한 때가 왔다. 자녀들은 시골에서 키워야 한다. 부모들은 저희 재정이 허락하는 한도내에서 적당한 거처를 마련해야 한다. 비록 가옥은 작을지라도 거기에 달려 있는 땅이 있어서 경작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원고 50, 1903).

부모들은 과수들을 심으며 채소들과 작은 열매들을 재배할 수 있는 농사할 땅이 있는 시골에 작은 집들을 마련할 수 있으며 저들은 혈관을 통하여 흐르는 생명의 피를 몹시 더럽히는 육식을 하는 대신에 과일과 채소들을 섭취해야 한다. 그러한 위치에서 자녀들은 도시 생활의 부도덕한 감화력에 둘러싸이지 않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도시 밖에 그러한 가정들을 마련할 수 있도록 당신의 백성을 도우실 것이다(MM 310).

세월이 흐름에 따라 점차적으로 우리 신자들은 도시들을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우리 형제 자매들, 특히 자녀를 거느린 가족들은 저들에게 기회가 열릴 때에 도시들을 떠날 계획을 세워야 할 것에 대하여 여러 해 동안에 걸쳐서 지시해 주셨다. 또한 많은 사람들은 그런 길을 개척하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저들이 떠날 수 있을 때까지 저들이 도시에 사는 동안 아무리 저들 자신의 감화력의 범위가 제한되어 있다 하더라도 가장 열렬한 활동으로 선교 사업을 해야 할 것이다(리뷰 앤드 헤랄드, 1906.9.27).

361 나의 형제여, 그대의 편지를 읽고 많은 사람들이 베틀크릭을 떠나기 위하여 심각한 결심들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벌써 이런 성질의 사업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으며 지금 이러한 일에 대한 큰 필요성이 있다. 결국에 도시를 떠나기로 결심한 자들은 흥분한 상태에서 서두르거나 경솔한 태도로 결정하거나 저들이 도시를 떠난 것을 앞날에 가서 뼈저리게 후회할 그런 방법으로 도시를 떠나서는 안 될 것이다….

베틀크릭을 떠나는 문제에 관한 권고를 따르는 데 있어서 경솔한 움직임이 없도록 조심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지 않고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충고하고 권면하는 일이며 신령한 지시를 따라 행동해야 할 의무를 깊이 느끼는 자들이 저희 마음문을 열고 하나님께 대하여 배우며 순종하게 하는 일이다.

나는 우리 교사들 중에 어떤 이들이 좀더 확고한 판단력을 가지고 균형이 잡힌 행동을 취해야 할 필요성을 생각해 볼 때 번민하게 되었다. 신자들이 신뢰를 받고 있는 자들로서 이 세상에 자비의 기별을 전해야 할 사자들은 권고를 구하기 위하여 호소할 것이다. 실제적인 생활에서 순수한 체험을 맛보지 않은 사람들은 크게 경계해야 하며 사실상, 충고라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인지 전혀 모르면서 남에게 함부로 충고하는 위험을 저지를 우려가 있을 것이다.

어떤 인물들은 사물에 대한 통찰력과 권면하는 재능을 갖추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사이다. 하나님의 사업에 있어서 확고하고 엄숙하며 충실한 권고의 말씀을 필요로 할 때마다 저들은 곤란과 암흑 속에 빠져 있는 자들에게 저들이 따를 수 있는 방향을 지시해 줄 태양 광선의 섬광과 같은 빛(질문에 대한 응답)을 보여 주는 말을 할 수 있는데 이러한 빛은 오랜 기간 동안 연구하였을지라도 저들을 혼란에서 건져내지 못하고 좌절케 하였던 그러한 처지에서 밝은 길로 인도해 낸다. 362 저들 앞에 놓인 길이 밝아지며 깨끗해지고 주님께서는 그 길에 당신의 햇빛을 비추신다. 저들의 기도는 응답되며 저들이 나아갈 진로는 분명해진다. 그러나 도시를 떠남으로써 저들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적 발전이 있을 것인지 전혀 뚜렷한 견해를 갖고 있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배틀크릭을 떠나기만 하면 된다는 경솔한 충고가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신중하게 문제를 검토해야 하며 집을 짓기 시작하였으나 그 일을 끝낼 수 없었던 비유에 나타난 인물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도시를 떠나는 문제에 관련된 모든 전조를 신중하게 검토해 보고 모든 것을 저울질해 보기까지 단 한 가지의 행동이라도 취해서는 안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다양한 재능을 따라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위탁받았다. 그러므로 각자는 망설이면서 행동하지 말 것이며 오히려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단호하고 겸손하게 행동해야 한다.

어떤 일이든지 경솔한 판단으로 뛰어들며 저들 자신이 전혀 알지 못하는 사업에 손을 대는 자들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일을 요구하시지 않으신다. 솔직하게 생각하고 기도하는 정신으로 신중하게 말씀을 연구하며 정신으로나 마음으로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하여 깨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일은 위대한 일이다….

나는 배틀크릭에 있는 교회에게 하나님의 권고를 따라서 행동하라는 말을 전해 주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배틀크릭에서 떠나야 할 필요가 있으며 동시에 그대들이 배틀크릭을 떠나서 무엇을 할 것인지 뚜렷한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 그대들이 무엇을 할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경솔하게 이 일에 뛰어들지 말라. 아, 지혜롭고 신중하며 균형이 잘 잡힌 장군과 같은 인물들이 아쉽다. 저들이야말로 안전한 권고자들이 될 것이며 인간의 기질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지시하고 권면할 줄 아는 자들이다.

나는 어떤 사람들이 지나치게 강경한 정신을 가지고 남의 이야기들을 듣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새로운 분야의 체험을 겪을 때마다 위험이 따르는 것을 보았다. 363 혹 어떤 교사들이 성경 교리를 가르치는 분야에 있어서 매우 강경하고 능률적일 수 있으나 저들이 다 실제적인 생애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한 자들일 수 있으며 확실성과 안전성을 가지고 혼란에 처한 자들을 충고할 수 없는 자들일 수도 있다. 저들은 변화를 갖게 될 모든 가족에게 반드시 찾아오게 되어 있는 곤란한 형편을 식별할 줄 모른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어떤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을 모를 경우에 저들이 말하는 것에 대하여 조심해야 하며 결코 짐작으로나 상상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 만약 저들이 확실하게 모를 경우 모른다고 말해야 할 것이며 각자가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뢰해야 한다. 많은 기도가 있어야 하며 심지어는 금식하며 기도함으로써 아무도 흑암 가운데서 행동하는 일이 없게 되고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처럼 빛 가운데서 행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섭리를 거스려서 열성을 불러일으키는 정열적이고 충동적인 말솜씨 때문에 불규칙한 방법으로 일을 처리함으로써 큰 손실이나 재산상 어떤 희생이 따르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며 반드시 얻어야 할 승리를-빈틈없는 온건성, 적절한 계획, 확고한 원칙과 목적 등의 결핍으로 말미암아-패배로 돌리지 말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지혜로운 통솔력이 있어야 하며 지혜로우시고 눈에 보이지 않는 권고자이신 하나님의 지도를 따라서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인간적인 요소들은 상대방을 지배하려고 투쟁할 것이며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활동이 있을 것이다. 지금 나는 모든 영혼에게 인간적인 권고를 지나치게 의뢰하지 말고 열렬한 심령으로 지혜로운 권고자이신 하나님을 바라 보아야 할 것이라고 탄원한다.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뜻에 그대의 방법과 그대의 의지를 복종시켜라….

만약 어떤 사람들이 성급한 행동을 취하여 배틀크릭에서 뛰쳐나가 결과적으로 실망에 빠지게 된다면 분별없는 행동으로 말미암아 저들 자신에게만 악영향이 미치게 될 뿐 아니라 저들에게 압력을 받아 온 다른 사람들에게까지도 그 영향이 미치게 될 것이다. 저들의 모든 좌절과 패배가 전혀 악영향을 입혀서는 안 될 자들에게 책임을 전가시킬 것이다….

바로 지금이야말로 마지막 날의 위기가 우리 주위를 두터운 흑암으로 둘러싸고 있는 때이다. 364 우리들이 필요로 하는 인물은 지혜로운 권고자이며 사람들을 선동시키거나 분요를 일으키는 것을 저들의 의무처럼 여기는 그러한 자들이 아니며 비록 현명한 권고를 줄 수 없고 선동을 받은 모든 자들을 혼란에서 건져내기 위하여 무엇을 조직하거나 일을 꾸밀 능력은 없을지라도 다만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면서 안정과 화평을 구하는 그러한 인물들을 필요로 한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참된 본분을 지키며 자기가 받은 여러 가지 능력에 따라서 주님을 위하여 무슨 일이든 해야 할 것이다….

이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의 보배로운 피로써 그대들을 사시고 당신의 소유가 되며 종들인 그대들에게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29, 30)고 말씀하셨다. 배우려는 정신과 통회하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나올 때 누구든지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상태에 놓이게 되며 예수님에 대하여 배우게 되고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연약한 믿음을 가질 수 없으며 무관심하고 태만하며 나른한 태도로써 우리는 안전할 수 없다. 아무리 작은 재능일지라도 활용되어야 하며 예리하고 침착하며 깊은 생각을 해야 한다. 어떤 인간의 지혜이든지 이러한 시대에서 일을 계획하며 구상하기에는 불충분하다. 주 예수님 앞에서 금식과 겸비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모든 계획을 공개해야 하며 그대의 길을 주님께 맡겨야 한다. 주님께서 그대의 길을 지시할 것이라는 확실한 허락의 말씀이 있다. 주님께서는 무궁 무진한 자원을 가지고 계신다. 만물을 그 이름으로 불러 내시고 하늘의 별들을 제자리에 붙들고 계시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을 개인적으로 보호하고 계신다.

나는 모든 영혼들이 그리스도를 저들의 만족하고 신뢰할 분으로 삼을 때에 저들에게 온갖 가능성들과 실현성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님 안에 숨기운 자의 생명은 언제나 피난처를 갖게되며 그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고 말할 수 있다.

나는 그간 배틀크릭에 있는 모든 신자들에게 엄습하여 온 위험들에 관하여 염려하고 번민하여 왔으나 이 문제를 그대에게 맡기려고 한다. 이 위험들을 바로 대처하지 않을 때에 신자들은 경솔하게 행동을 취할 것이며 원수를 유리하게 만들 것이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겸손하게 행한다면 이럴 필요가 없으며 우리들은 안전하게 행할 것이다(서신 45, 18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