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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장-서원의 신성성*

100장 - 서원의 신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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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1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간략하면서도 비참한 역사는 영감의 붓에 의하여,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모든 자들의 유익을 위하여 기록되었다. 이 중요한 교훈은 우리 백성들의 마음에 충분한 무게로 깨달음을 주지 못했다. 유죄 선고를 받은 이 사람들이 예시하는 이 중대한 범죄의 특성을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이 된다. 하나님의 보복적 공의에 대한 이 두드러진 증거는 두렵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그러한 형벌을 가져 온 죄를 반복하는 것에 대해 두렵고 떨리게 되어야 한다. 이 범죄한 부부의 품성을 비뚤어지게 한 큰 죄는 이기심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아나니아와 그의 아내 삽비라는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는 특권을 가졌다. 전달된 말씀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였고,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큰 깨달음을 얻었다. 마음을 부드럽게 하는 하나님의 자비의 감화는 그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어 그들로 하여금 지상의 소유를 붙들고 있는 그들의 이기적 마음에서 놓이게 하였다. 하나님의 성령의 직접적 감화를 받고 있을 때 그들은 특정한 땅을 주님께 드리기로 서원하였다. 그러나, 더 이상 이 하늘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되자, 그 감화는 약화되고, 그들은 의심하기 시작하고, 그들이 한 서원을 이루는데서 물러섰다. 그들은 너무 성급했던 것으로 생각하고 그 문제를 재고하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사단이 즉시 들어가서, 그들의 마음을 지배할 수 있는 문이 열렸다.

이 사건은 사단의 첫 접근을 방어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경고가 되어야 한다. 그들은 먼저 탐욕을 품었다. 그 후, 하나님께 바치기로 엄숙하게 서원한 것을 이기적 마음 때문에 드리기 아까와했다는 사실이 형제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속이게 되었다. 542 그들은 그 문제를 함께 거듭 이야기하고, 땅값 얼마를 드리지 않기로 고의적인 결정을 했다. 그들의 거짓이 알려지자, 그들은 즉각적인 죽음의 형벌을 받았다. 그들은, 그들이 속인 주님께서 그들을 찾아내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베드로는 말했다.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행 5:3, 4).

교인들의 수효가 신속하게 증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린 교회가 타락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하여 특별한 본이 필요했다. 이리하여, 당시에 그리스도를 믿노라고 공언한 모든 사람들과 그 후에 그분의 이름을 믿노라고 공언할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서원의 이행에 있어서 성실을 요구하신다는 사실이 경고로 주어졌다. 그러나, 속임과 거짓말에 대한 이 두드러진 형벌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죄들이 자주 그리스도 교회에서 반복되어 왔고, 우리 시대에도 널리 파급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이 예증을, 유사한 방법으로 행동하고자 유혹을 당할 모든 사람에게 하나의 경고로 주셨음을 나는 보았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그분께 드리지 않음으로 그분의 것을 도둑질하고, 진리의 빛과 지식을 땅 위의 어느 곳에나 확산하려는 그분의 경륜을 방해하는 일을 통해 이기심과 사취가 교회 안에서 매일 이루어지고 있다.

하나님의 사업을 유지함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지혜로운 계획을 통하여, 당신의 사업의 전진이 당신의 백성들의 개인적 노력과 자원하여 드리는 그들의 헌금에 의존하도록 하셨다. 구속의 위대한 계획에서 인간의 협력을 받아들임으로, 그분은 인간에게 두드러진 명예를 부여하셨다. 목사는 보냄을 받지 않고는 전파할 수 없다. 빛을 나누어 주는 일은 목사들에게만 주어져 있지 않다. 각 사람은 교인이 될 때 그가 공언하는 진리를 생애에 실천함으로 그리스도의 대표자가 될 것을 스스로 서약하게 된다. 543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그분이 승천하시면서 하도록 맡겨 주신 그 사업을 수행해 나가야 한다.

지상에서 그분의 사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그분의 도구가 되는 기관들은 유지되어야 한다. 교회들은 세워져야 하고, 학교들은 설립되어야 하고, 출판소들은 세상의 각 곳에 전해질 진리를 출판하는 일에서 큰일을 하도록 설비들이 갖추어져야 한다. 이 기관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셨으므로 십일조와 자원해서 드리는 헌금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사업이 확장됨에 따라 그 모든 분야에서 사업을 수행해 나가기 위한 자금이 필요해질 것이다. 진리로 돌아와서 그분의 은혜에 참여하게 된 자들은 그분에게 자원하는 희생과 헌금을 드림으로 그리스도와 동역자가 될 수 있다. 교인들이 마음속으로 자금에 대한 요청이 더 이상 없기를 바라는 것은 그들이 사실상 하나님의 사업이 발전하지 않아도 만족한다고 말하는 셈이다.

야곱의 경험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의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창 28:20-22) 야곱이 주님께 서원하게 한 환경은 남녀들이 우리들 시대에 주님께 서원하게 하는 것과 유사하다. 그는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에게 약속된 줄 알고 있었던 그 축복을 죄된 행동을 통해 얻었다. 이렇게 함으로 그는, 현재 눈에 보이는 상황이 아무리 낙담될지라도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그분의 능력을 믿는 믿음의 부족을 크게 나타내었다. 그는 자기가 탐하던 자리에 앉는 대신에 에서의 분노에서 생명을 건지기 위해 도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544 손에 지팡이 하나만을 가지고, 그는 황량한 지방을 지나 수백 마일을 여행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의 용기는 꺾이고, 분노한 형에게 추적당하지 않기 위해 사람을 피하고자 애쓰면서, 그는 자책과 겁에 질려 있었다. 그에게는 자신을 위로해 줄 하나님의 평안이 없었다. 그는 하나님의 보호를 상실했다는 생각으로 당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틀째의 여행이 끝나 가고 있다. 그는 피곤하고, 허기져 있었고, 가정을 잃고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느낀다. 그는 자신의 그릇된 행동 때문에 이런 일이 스스로에게 초래되었다는 사실을 안다. 절망의 검은 구름이 그를 둘러싸고, 그는 자신이 버림받은 자임을 느낀다. 그의 마음은 말할 수 없는 공포로 충만해지고, 감히 기도할 엄두도 못 낸다. 그러나, 그는 너무 외로왔기 때문에 이전에 결코 느껴 보지 못한 하나님의 보호의 필요를 절실하게 느낀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통곡하며 죄를 고백한다. 그리고, 그분께서 그를 완전히 버리지 않으셨다는 어떤 증거를 보여 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그의 답답한 가슴은 아무런 안도감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을 완전히 잃고, 그의 조상의 하나님께서 그를 버린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하나님,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돌을 모아서 베개를 삼고 하늘을 유일한 이불로 삼고 있는 이 고독하고 슬픔에 눌린 사람을 불쌍히 여기신다.

밤중의 이상을 통하여, 그는 땅에 세워져서 꼭대기가 별무리보다 더 높은, 가장 높은 하늘에까지 닿은 신비한 사다리를 본다. 천사들은 환한 광채가 나는 이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그에게 땅과 하늘 사이의 교통의 길을 보여 준다. 자비와 보호와 장래의 축복의 약속을 새롭게 해주는 한 음성이 그에게 들린다. 꿈에서 깨어난 후에, 야곱은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창 28:16)라고 말했다. 그는 하늘의 사자들을 보고자 바라듯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그의 열렬하고 놀라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다만 땅 위에 있는 물체들의 어두운 윤곽들과, 위로는 빛의 보석으로 빛나는 하늘뿐이었다. 사다리와 빛나는 사자들은 사라지고, 그는 상상을 통해서만 그 위에 계신 영광의 왕을 볼 수 있었다.

545 야곱은 밤의 깊은 적막과 하나님의 직접적인 임재에 접하였다는 생생한 인상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그의 마음은 그가 멸망되지 않은 데 대한 감사로 충만해졌다. 그 날 밤, 그는 더 이상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거룩한 기쁨과 함께 깊고 열렬한 감사가 그의 영혼을 채웠다. “야곱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베개 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창 28:18). 그는 거기서 하나님께 엄숙히 서원했다.

서원을 지킴

야곱은, 은혜의 이슬로 새 힘을 얻고 하나님의 임재와 보증으로 격려를 받자 서원을 하였다. 거룩한 영광이 사라지자 그는 우리 시대의 사람들처럼 유혹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그의 서원에 충실했고, 그가 한 서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오늘날의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이 계시가 단지 꿈에 불과한 것이고 그가 서원할 때 지나치게 흥분했으므로 그것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한 것은 오랜 세월이 흐른 후였다. 그러나, 그 때는 그가 주님께 진 빚을 성실히 갚았을 때였다. 그는 부자가 되어 있었고, 심히 많은 양의 재물이 그의 소유로부터 주님의 창고로 옮겨졌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야곱이 성공한 그 점에서 실패한다. 하나님께로부터 가장 많이 받은 자들이 그들의 소유를 간직하려는 가장 강한 경향을 갖는다. 그들이 재산에 비례되는 액수를 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야곱은 그가 가진 모든 것의 십분지 일을 드렸고, 십분지 일을 사용한 것도 계산하여 그가 이방에서 서원대로 할 수 없던 때 그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한 십일조의 이익도 주님께 드렸다. 그것은 많은 양이었지만,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자신의 것으로서가 아니고 주님의 것으로 간주하였다.

하나님께서 번영하게 하신 대로

546 요구되는 양은 주어진 양에 따를 것이다. 위탁된 자본이 많을수록,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돌리도록 요구하시는 예물은 더욱 많다. 어떤 그리스도인이 일만 불 혹은 이만 불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십일조 제도에 따른 부분뿐만 아니라 속죄제와 감사제를 당신께 드리기를 요구하신다. 레위기의 제도는 재산을 성별하는 것으로 두드러져 있다.

우리가 십일조를 유대인들이 종교적 목적으로 드리는 헌금의 표준이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말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요구를 최고의 것으로 삼으시고, 거의 모든 물품에서 그분께 돌려드리는 것이 있도록 요구하심으로 그들이 그 시여자를 기억하게 하셨다. 그들에게는 첫아들, 가축의 첫 새끼, 수확의 첫 열매를 위한 속전을 지불하도록 요구되어 있었다. 그들에게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 추수하는 밭의 한 모퉁이를 남겨 놓도록 요구되었다. 거두어 들이다가 손에서 떨어진 것은 무엇이나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남겨 두었고, 칠 년마다 한 번씩 그들의 땅은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절로 열매를 내도록 묵혀졌다. 그 다음에는 희생제, 속건제, 속죄제, 7년마다 모든 빚을 탕감해 주는 일들이 있었다. 또한, 가난한 자들에 대한 후한 대접과, 선물을 위한 갖가지 비용과, 그들의 재산에 대한 세금이 있었다.

일정한 기간마다, 율법의 완전성을 보존하기 위해, 백성들은 충실하게 그들의 서원을 이행한 여부에 대하여 조사를 받았다. 양심적인 소수의 사람들은 종교적 사업의 이익과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그들의 모든 수입의 약 삼분지 일을 하나님께 돌려드렸다. 이러한 징수액은 백성들의 특수한 계층에서가 아니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거출되고, 요구액은 소유액에 비례하였다. 이 모든 체계적이고 정규적인 헌금 외에도, 광야에서 성막을 세울 때나 예루살렘에 성전을 세울 때처럼 자원하여 드리는 헌금을 요구하는 특별한 목적들이 있었다. 547 이러한 징수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업을 유지하시기 위함일 뿐만 아니라 백성들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이루어졌다.

의무에 대한 자각

이 문제에 대한 자각이 한 백성으로서의 우리 중에 있어야만 한다. 헌금하는 의무를 소홀히 할 경우,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자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리고, 매일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기 때문에, 심령의 가책을 느끼는 자들은 거의 없다. 만일, 어떤 그리스도인이 고의로 혹은 우연히 이웃에게 급료를 충분히 지불하지 않거나 정당한 빚을 갚기를 거절한다면, 그의 양심은 마비되지 않는 한 그를 괴롭힐 것이다. 그 자신 외에 아무도 모를지라도, 그는 안식을 얻지 못한다. 소홀히 한 서원과 갚지 않은 서약들이 많을지라도, 이 일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자들이 얼마나 적은가. 이러한 의무 불이행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는 자들이 얼마나 적은가.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새롭고 보다 깊은 죄의 자각을 느껴야 한다. 양심은 일깨워져야 하고, 이 문제에 열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 계산서가 제출되어야 하고 그분의 요구가 해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본이 어느 정도로 많든지 적든지 간에, 그리스도인 사업가의 책임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선물에 정확히 비례될 것이다. 부의 기만은 수천 수만의 사람들을 멸망시켰다. 이 부한 사람들은 그들이 청지기라는 사실과, “네 보던 일을 셈하라”(눅 16:2)는 말씀이 그들에게 떨어질 날이 신속히 이르러 오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였다. 달란트의 비유에서 알려진 바와 같이, 각 사람은 주어진 선물을 현명하게 사용할 책임이 있다. 비유에 나오는 그 가련한 사람은 가장 적은 선물을 가졌기 때문에 가장 적게 책임을 느꼈고, 그에게 위탁된 달란트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바깥 어두움에 내어 쫓겼다.

그리스도께서는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막 10:23)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의 제자들은 그분의 교훈에 놀랐다. 예수 그리스도께 영혼을 인도하는 일에 성공적으로 일한 목사가 세속적 이익을 얻기 위하여 그의 거룩한 사업을 포기할 때, 그는 배교자라고 불리게 되고, 그가 잘못 사용한 그 재능에 대해 하나님 앞에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548 사업가, 농부, 기술자, 상인, 법률가로 일하는 사람들이 교회의 교인이 될 때, 그들은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것이다. 그들의 재능이 전혀 다를지라도, 개인적 노력과 재물을 통해 하나님의 사업을 진전시켜야 할 그들의 책임은 목사들에게 지워진 책임 못지않다. 복음을 전하지 않을 경우 목사에게 주어지는 화는, 사업가가 그의 다른 재능으로 동일한 결과를 성취하는 일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동역자가 되지 않는다면 분명히 그에게도 꼭 같이 주어질 것이다. 이 사실이 개인에게 똑똑히 자각될 때, 어떤 사람들은 “이것은 과도한 말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럴지라도, 그것은 사실이다. 비록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의 행위가 계속 이와 모순된다 할지라도, 그것은 사실이다.

조직적 헌금 제도의 공평함

하나님께서는 은혜의 이적을 통해 광야에서 당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양식을 제공하셨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신앙적 봉사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실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무한한 지혜로써, 그들이 당신과 협력하는데 그들의 도덕적 훈련이 좌우된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이 협력은 그들 중 각 사람이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다. 진리가 발전하는 한, 이 목적을 위하여 그분께서 그들에게 위탁해 준 것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요구는 인간에게 주어진다. 인류의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조직적 헌금 제도를 제정하심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능력에 따라 공평하게 일을 분담시키셨다.

각 사람은 스스로 자기 재산의 평가자가 되어, 마음에 의도하는 대로 드리게 되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십일조 제도를 통하여 요구하시는 부분 중 일부를 주님께 드리지 않아도 형제들이 전혀 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죄를 짓는 자들이 있다. 우리에게 경고의 예증으로 주어진 범죄한 그 부부도 그렇게 생각했다. 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마음을 살피신다는 사실을 입증하셨다. 인간의 동기와 목적은 그분께 숨겨질 수 없다. 그분께서는 인간의 마음이 끊임없이 기울어지는 이 죄에 대하여 조심할 것을 모든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깨우치는 영원한 경고를 남기셨다.

549 비록 오늘날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의 표가 눈에 보이게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반복적인 죄에 따르지 않을지라도, 그 죄는 하나님 보시기에 꼭 같이 가증스럽고, 범죄자에게는 심판날에 동일한 형벌이 분명히 내릴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생에서도 하나님의 저주를 느끼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사업에 대해 서약하면 하나님께서 원한 것이므로 신성하게 지켜져야 한다. 하나님의 거룩한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일단 서약한 것을 우리 자신의 용도에 사용하면,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신성 모독이나 다를 바 없다.

서약의 신성성

우리 형제들 앞에서 말이나 글로 얼마의 금액을 바치겠다는 서약을 하는 경우에는, 그 형제들이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맺어진 계약에 대하여 눈에 보이는 증인이다. 그 서약은 사람에게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한 것이며 이웃에게 준 어음과도 같은 것이다. 금전의 지불에 대하여 하나님께 한 서약보다 그리스도인에게 책임을 지우는 더 큰 법적 채무 증서가 없다.

동료 인간에게 서약한 사람들도 일반적으로 그들의 서약에서 놓여나고자 요구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모든 호의를 베푸시는 하나님께 한 서원은 더욱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하나님께 한 서원에서 놓여나기를 꾀하는가? 하나님께 했기 때문에 그 약속은 책임감이 적다고 생각해야 할 것인가? 그 서원은 법정에서 재판을 받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효력이 적은가?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한 희생의 보혈로 구원을 받았노라고 공언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할 것인가? 그의 서원과 행동들이 하늘 법정의 공의의 저울에 달리지 않을 것인가?

우리 각 사람은 하늘 법정에서 심리를 받을 사건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우리의 행동이 우리에게 불리한 증거를 상쇄해 줄 것인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은 가장 악화된 성격의 것이었다. 값의 얼마를 드리지 않음으로 그들은 성령을 속였다. 이와 유사한 죄를 저지르는 정도에 따라, 각 사람에게는 동일한 방법으로 형벌이 과해진다.

550 하나님의 성령의 임재로 마음이 부드러워 질 때, 사람들은 성령의 감화에 더욱 민감해지고, 자아를 부정하고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희생할 결심을 하게 된다. 거룩한 빛이 특별한 능력으로 마음 속에 밝히 비칠 때, 육신적 마음의 감정은 정복되고, 이기심은 마음에서 힘을 잃어버리고, 극기하고, 헌금을 드리는 일에 있어서 모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으려는 욕망이 일어나게 된다. 그리하여, 본성적으로 이기적인 인간의 기질이 잃어버린 바 된 죄인들에 대해 친절하고 동정적으로 바뀌고, 아브라함과 야곱이 한 것처럼 하나님께 엄숙한 서원을 하게 된다. 하늘의 천사들은 이러한 경우에 참석한다. 하나님과 영혼들에 대한 사랑이 이기심과 세상에 대한 사랑을 정복한다. 특히, 설교자가 하나님의 성령과 능력으로, 하늘의 왕께서 십자가에 희생되심으로 세우신 구속의 경륜을 제시할 때 그러하다. 다음에 나오는 성경절들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서원에 대한 문제를 어떻게 여기시는지 알 수 있다.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두령들에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의 명령이 이러하니라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마음을 제어하기로 서약하였거든 파약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 대로 다 행할 것이니라”(민 30:1, 2) “네 입으로 네 육체를 범죄케 말라 사자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으로 네 말소리를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 하랴”(전 5:6). “내가 번제를 가지고 주의 집에 들어가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니 이는 내 입술이 발한 것이요 내 환난 때에 내 입이 말한 것이니이다.”(시 66:13, 14). “함부로 이 물건을 거룩하다 하여 서원하고 그 후에 살피면 그것이 그물이 되느니라”(잠 20:25). 551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 네가 서원치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니라 마는 네 입에서 낸 것은 그대로 실행하기를 주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 대로 행할지니라”(신 23:21-23).

“너희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 서원하고 갚으라 사방에 있는 모든 자도 마땅히 경외할 이에게 예물을 드릴지로다”(시 76:11). “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상은 더러웠고 그 위에 있는 실과 곧 식물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하여 내 이름을 더럽히는도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폐스러운고 하며 코웃음하고 토색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헌물을 가져 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여호와의 말이니라 떼 가운데 수컷이 있거늘 그 서원하는 일에 흠 있는 것으로 사기하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열방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말 1:12-14).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말라 하나님은 우매자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전 5:4, 5).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동료 인간의 구원을 성취함에 있어서 해야 할 한 부분을 주셨다. 그는 자비와 자선의 행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일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인간들을 구속할 수 없으며, 모욕을 당한 정의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없다. 이 일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께서 명예와 영광을 버리시고, 당신의 신성을 인성으로 바꾸시고, 지상에 오셔서 자신을 낮추시고 인류를 위해 피를 흘리심으로 하실 수 있다.

제자들에게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로 사명을 맡기실 때,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에게 복음 전파의 사업을 맡기셨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이 전파하러 나갈 때, 그분께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에 대한 당신의 요구 곧 목회 사업을 유지하고 각 곳에 인쇄된 진리를 전파하기 위하여, 십일조와 헌금에 대한 요구에 응하도록 호소하신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높이시는 방법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에게 필요한 사업이다. 552 그것이 마음 속에서 가장 깊은 동정심을 일으키고 마음의 기능을 최고로 발휘하게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도구인 인간

지구에 있는 온갖 좋은 것들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으로, 그분의 풍성한 손길에 의해 이 땅에 존재한다. 가난한 자들은 그분의 것이며, 신앙의 사업도 그분의 것이다. 그분은, 우리가 동료 인간을 구원하는 일에 있어서 우리에게 지정된 사업을 함으로 인간이라는 통로를 통하여 당신의 거룩한 선물이 흘러나갈 수 있도록 인간의 손에 재물을 두셨다. 이 큰 일터에는 누구에게나 지정된 사업이 있다. 그러나, 아무도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의존하신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그분께서 말씀하심으로 모든 가난한 자들이 부요하게 될 수 있다. 순식간에 그분은 인류를 모든 질병에서 치료하실 수 있다. 그분은 모든 목사들을 제쳐놓고 천사들을 당신의 진리의 대사로 삼으실 수 있다. 그분은 진리를 하늘에 쓰시거나 나뭇잎과 들의 꽃에 새기실 수도 있다. 혹은 알아들을 수 있는 음성으로 하늘에서 그것을 선포하실 수도 있다. 그러나, 완전히 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이 방법들 중 어느 길도 택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생애가 사람에게 축복이 되려면 사람이 무엇인가 할 일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아셨다. 금과 은도 주님의 것이다. 그분께서 하시고자 하면, 그것들이 하늘에서 비가 되어 내려오게 하실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대신에, 그분께서는 사람을 당신의 청지기로 삼으셔서 그에게 재물을 위탁하시고, 그것이 축적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는데 쓰여지게 하셨다. 그리하여, 그분께서는 인간을, 당신의 축복을 세상에 나누어 주는 통로로 삼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품성에 있어서 그의 창조주처럼 자비롭고 이타적이 됨으로 마침내 영원하고 영광스러운 상급을 그분과 함께 누리는 자가 되게 하시고자 헌금 제도를 계획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도구를 통하여 일하신다. 누구든지 사람들의 양심을 깨우쳐서 선한 일을 하게 하고 진리의 사업을 발전시키는데 진실한 관심을 갖도록 자극하는 자는 스스로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하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하는 서약은 신성한 성격의 것이며 성령의 역사의 열매이다. 553 이 서약들이 이행될 때, 하늘은 그 예물을 받아들이고, 이 관대한 일꾼들은 하늘 은행에 아주 많은 보물을 투자했다고 기록된다. 그러한 자들은 내세를 위하여 훌륭한 기초를 쌓고 있으므로 영생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직접적 임재가 생생하게 느껴지지 않고 마음이 일시적인 생활의 염려에 바쳐질 때, 그들은 유혹을 받게 되고 그들이 자원하여 맡은 의무의 중요함을 의심하게 된다. 사단의 제의에 굴복되어 그들은, 지나친 압력이 그들에게 가해졌고, 그 당시에 흥분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사업에 쓰여질 재물에 대한 요구가 과장되었으므로 그 문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잘못된 요구 아래서 서약하게끔 유도되었다고 핑계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서약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 목사들이 그들의 핑계를 받아들이고 “그대는 그대의 서약에 매인 바 되지 않을 것이며 그대의 서원에서 놓여났다”고 말할 권세를 가지고 있는가? 만일, 목사들이 그렇게 한다면, 그들 역시 그 서약을 이행하지 않은 자의 범죄에 동참하는 자들이 된다.

교회는 각 교인의 서약에 대해 책임을 진다. 만일, 서약 이행을 소홀히 하는 형제가 있음을 알면, 그들은 친절하고도 분명하게 그에게 일러주고, 서약을 이행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만일, 그가 서약한 바를 이행하기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환경에 처해졌을 경우, 그가 훌륭한 교인이고 기꺼이 이해할 마음이 있다면 교회가 사랑으로 그를 도와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 그들은 어려움을 해결하고 스스로 축복을 받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에 대한 교인들의 채무가 상인이나 시장에 대한 그들의 채무와 동일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그들이 생각하기를 바라신다. 모든 사람은 과거의 생애를 돌아보고, 갚지 않고 속(贖)하지 않은 서약을 소홀히 하지 않았는지 살펴보고,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도록 특별한 노력을 하라. 우리 모두가, 완전무결과 진실만이 그 시험을 견딜 수 있는 판결 곧 하나님의 법정의 최후 판결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