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렌화잇 기도력

오늘의 말씀

11. 17

품성을 재는 표준

주제성구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 7:3)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는 충고라 할지라도, 형제를 비판하고 정죄하는 사람의 죄의 과중함은 다 나타내지 못한다.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셨다. 그분의 말씀은 타인의 결점을 잘 찾는 사람에 대한 설명이다. 품성이나 생활에서 결점을 발견했다고 생각할 때, 그는 그것을 지적하기 위해 몹시 안달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이 비 그리스도적인 행동을 통해 꼴 지어지는 품성의 특성은, 비판의 대상이 된 결점과 비교할 때, 마치 티에 대한 들보와 같은 것이라고 주장하신다. 침소봉대하는 것은 사랑과 용서의 정신의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 완전히 굴복하는 회개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들의 생애를 통해 구주의 사랑에서 나오는, 마음을 여는 감화를 끼치지 못한다. 이들은 복음의 따뜻하고 친절한 정신을 잘못 나타내어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귀한 영혼들에게 상처를 준다. 그리스도만이 품성의 유일한 표준이시다. 그러므로 자신을 다른 사람들의 표준으로 삼는 자는 자신을 그리스도의 위치에 놓게 된다. 그리고 하늘 아버지께서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요 5:22)셨으므로, 사람들의 동기를 비판하고자 하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의 특권을 다시 찬탈하는 것이다. 이처럼 스스로 판관과 비평과의 위치에 서는 자들은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살후 2:4)는 적(敵)그리스도 편에 자신을 두고 있다. 가장 불행한 결과로 이끌어가는 죄는 바리새주의의 특성인, 냉랭하고 비판적이고 용서를 모르는 정신을 가지는 것이다. 신앙 경험에 사랑이 없으면 예수님도 거기에 계시지 않으신다. 즉, 타인의 결함을 찾아내는데 남다른 지각과 예민함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신에 빠져 있는 각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고 말씀하신다. (산상보훈, 125, 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