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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명, 스미스, 사엄태 그리고… 故 전기석

2019.10.21 조회수 265 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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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관에서 오얏봉으로 향하는 기슭에 사엄태 선교사, 스미스 목사, 이제명 목사의 기념비가 나란히 서 있다.

사엄태(Mimi Scharffenberg, 1883-1919) 선교사의 기념비가 들어서며, 삼육대 교정엔 특정인을 기리는 비석이 하나 더 늘었다. (관련기사▷삼육대 공동 설립자 사엄태 선교사 기념비 건립)

사엄태 선교사 기념비는 신학관에서 오얏봉으로 향하는 기슭에 자리 잡았다. 옆으로 스미스 목사와 이제명 목사의 비석이 나란히 서 있다. 모두 한국 재림교회 초기 교육사업과 선교 발전의 기틀을 다진 인물이다.

이제명 목사(1912. 9.12 ~ 2013. 2.19)는 1912년 9월 12일 평안남도 순안에서 삼육대학교의 전신인 의명학교 교장 이희만 목사의 장남으로 태어나 그곳에서 성장했다. 미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후 한국으로 돌아와 삼육중학교장, 한국연합회 교육부장, 삼육신학원장 등의 직책을 맡아 봉사했다. 특히 1947년 현 삼육대학교 캠퍼스를 선정하는 일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불암산 등산로를 끼고 그림처럼 펼쳐진 ‘제명호’가 그의 이름을 따 명명된 것이다. 그는 2013년 2월 19일 미국 테네시 주의 자택에서 별세했다. 삼육대학교는 한국 재림교회의 선교 및 교육 사업에 끼친 그의 공로를 기리며 지난 2013년 6월 기념비를 세웠다.

윌리엄 R. 스미스 목사(1876. 3.11 ~ 1967. 12.10)는 1876년 3월 11일 미국 캔자스 주 하워드시 인근에서 출생했다. 왈라왈라대학을 졸업하고, 북부 컬럼비아합회에서 목회를 하다 대총회의 결정으로 1905년 11월 초대 선교사로 한국에 왔다. 그 후 20년간 조선미션 서기, 남선미션 책임자, 서선대회장 등을 역임했다.

특히 평양 순안에 삼육대학교의 전신인 의명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교장이 되었다. 한국 재림교회의 교육 및 선교 사업의 기초를 놓는데 크게 공헌했다. 1925년 2월 지병으로 본국으로 귀국한 후 로마린다에 거주하다 1967년 12월 10일 별세했다. 삼육대학교는 한국의 삼육교육을 위한 그의 헌신과 희생을 기리기 위해 2014년 5월 이 비를 건립했다.

사엄태 선교사는 1883년 미국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에서 8남매 중 장녀로 출생했다. 1901년 미시간 주 배틀크릭대학에 입학한 후 위스콘신 주에서 여전도사로 활동했다. 그러던 중 1907년 1월 10일 한국 재림교회 첫 여선교사로 내한해 스미스 목사와 함께 순안에서 사역자 양성학교 설립에 협력하고, 여학교 사업을 시작했다.

초대 시조사 편집국장, 안식일학교부장, 교육부장 등을 역임했다. 1918년 6월 지병으로 미국으로 귀국한 후 1919년 12월 19일 별세했다. 삼육대는 초대 여선교사로서 삼육대학교의 전신인 순안 사역자 양성학교를 공동 설립하고, 여성 교육사업 등에 헌신한 그녀의 아름다운 사역을 기리기 위해 기념비를 세웠다.

▲ 故 전기석 목사 추모비

이로부터 몇 발자국 건너편엔 또 하나의 비석이 서 있다. 바로 고 전기석 목사의 비석이다.

그는 2001년 7월 23일, 원주삼육고등학교 하기봉사단을 인솔해 강원도 횡성 지역의 영영포교회에서 활동하던 중 하천에 빠져 생명이 위태롭게 된 동네 중학생을 구하고, 자신은 기진하여 끝내 숨을 거뒀다. 1999년 2월 삼육대 신학과를 졸업한 지 2년 반만의 일이자, 겨우 30세의 꽃다운 나이였다.

삼육대학교 신학부 재학생과 교수 그리고 동문들은 이 살신성인의 죽음 앞에서 지난날 고인이 이 교정에서 목회의 길을 준비하던 밝고 꿋꿋한 모습을 그리며 그의 고귀한 정신이 후대의 마음 밭에서 30배, 60배, 100배로 결실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난 2002년 5월 신학과 앞뜰에 기념비를 세웠다.

세월의 흔적과 함께 어느덧 이젠 돌에 새긴 글자마저 퇴색한 그의 비석엔 올 가을, 다시 낙엽 한 잎이 더 쌓인다.